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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웨어 시대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쪽풀잎에서 나온 푸른 물감이 쪽풀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나음을 일컫는 말이다.예로부터 자식이 부모보다 출중하기를 바라는 것이나 스승보다 제자가 출세하기를 기원하는 것이 인간의 성정임에는 틀림이 없다.인간은 교육을 통해서만 인간답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들 교직자를 사람들은 선생님 또는 스승으로 대접한다.또한 교육의 힘이란 위대하고 숭고한 것이다. 예컨대 왜정 36년간의 황국신민을 만든 것도 일제 식민지 교육의 결과요, 영국의 신사도를 만든 것도 기사도 교육의 힘일 것이다.어제의 배고픔을 가난의 서러움을 딛고 일어선 오늘의 한국 경제발전도 우리들 교육의 힘이 아니던가? 이러한 중차대한 과업에 우리 교육자는 서슴지 않고 뛰어든 것이다.초등학교에서는 유치원생과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이들이 더불어 생활하고 있다. 교육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4세가 되면 두뇌의 발달과 형성이 된다고 하니 어린이들은 담임선생의 걸음걸이, 글씨체, 말씨 등을 닮아 간다고 할 때 그만큼 선생님은 일거수일투족에서 모범이 되어야 하고 희생적인 교직생활을 요구받게 된다.이러한 관점에서 선생님들은 진한 사제의 연분을 맺어야 하는데 자칫 티 없는 천진한 어린이라고해서, 무시하는 상태에서 역할기대체제(役割期待體制)가 이룩되지 못한다면 평생을 두고 제자들로부터 사모는커녕 원망의 소리만 듣게 될 것이다. 하루 24시간 중 눈뜨고 지내는 시간은 가정보다 직장이 훨씬 많을 것이다. 직장이란 의식주를 해결키 위하여 돈을 벌려고 다니는 일자리라고 해도 모순은 아니다.그러나 직장에 돈을 벌기위해 나간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나는 봉사하러 나간다`고 마음 먹고 하루 일과에 열중한다면 그 직장은 천직이 되는 것이요, 하루 생활의 보람을 찾는 요람이 될 것으로 믿는다.나는 10여년 전에 정년을 하였다. 내가 근무했던 S학교의 정문을 들ㄹ어서면 통일로 우측에 하얀 글씨로 `오늘도 보람되게`라고 쓴 표지판이 있다. 자신을 위한 자아실현도 해야지만 눈 덮인 겨울 무덥고 지루한 여름, 책가방을 메고 종종걸음으로 선생님을 찾아오는 제자에게 스승으로서 무엇을 도와줄 것인지 오늘의 교육현장에서 다시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주위를 둘러볼 때마다 큰 소리 아니면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뿐이다. 지구의 종말론을 펴내 마음 약한 사람들의 일손을 더듬거리게 하는 무책임한 사람들도 있지만, 먼 훗날을 위하여 애쓰는 사람이 더욱 많은 것 같다.머지않아 물질위주의 가치 판단이 주역에서 밀려나고 지가(知價) 쾌적성(快適性)이 가치의 중심이 될 것이다.그 사회에서는 얼마나 돈이 많고 힘이 세고 큰소리치느냐 보다는 어떻게 하면 삶의 질을 높이며 보람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게 될 것이다.이러한 시대를 `휴먼웨어의 시대`라고 부른다.이런 미래를 맞이해야 할 우리는 오늘을 사는 지혜를 창출해야 한다.가을이 지나가는 스산한 길목에 서서 마음의 설렘 속에 심란해 하지 말고 덤뻑 대는 일없이 오늘에 퇴물이 된 우리들과 현직에 있는 모두가 그 책무를 돌이켜 보면서, 다시는 재생되거나 되돌아오지 않는 오늘의 삶을 보람되게 관리해야 할 것이다.*수필가 문희병씨는 1989년 월간종합예술지 〈거목문학회〉로 등단. 수필집 〈박꽃, 달빛을 머금고〉 〈강물따라 흐르는 세월〉 〈사랑의 밀알이 되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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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18 23:02

행복은 나의 것

행복하면 떠오르는 얼굴. 활짝 웃고 있는 그 얼굴. 2010년 2월, 아프리카 수단 남쪽의 작은 마을 톤즈, 남수단의 자랑인 톤즈 부라스 밴드가 마을을 행진하고 있었다. 선두에 선 소년들은 한 남자의 사진을 들고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의 그 남자. 그 사진에 겹쳐 떠오르던 다른 모습의 그의 얼굴. 한센병 환자를 치료하면서도, 새로 지은 병원의 지붕 위에 올라앉아서도, 흙탕물 같은 개울에서 그 곳 소년들과 한 타령이 되어 뒹굴면서도 그는 웃고 있었다.마을 사람들은 톤즈의 아버지였던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면 눈물을 흘렸다. 강인함과 용맹함의 상징인 종족 딩카족. 눈물을 가장 큰 수치로 생각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들을 울리고야 만 그 남자. 그 곳 삭막한 땅 톤즈에서 눈물의 배웅을 받으며 이 세상 마지막 길을 떠난 사람. 마흔 여덟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고故 이태석 신부. 톤즈의 아버지이자, 의사였고 선생님, 지휘자, 건축가였던 쫄리 신부님 이태석.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그들을 사랑했던 헌신적인 그의 삶. 그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를 보면서 나 또한 주체할 수 없는 많은 눈물을 흘렸다.세상 사람들이 추구하고 있는 것들, 명예와 부, 안락과 평안을 버리고 톤즈로 달려가 그 곳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불살랐던 사람, 그들 모두에게 희망을 주었던 사람. 마지막 그를 배웅한 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흩어지지 않고 한 자리에 모여 부라스 밴드가 연주했던 그 노래.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후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당신이 추구하는 삶의 목적이 뭐냐?"고 묻는다면 어떤 사람들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이다 "목적은 무슨 목적? 그냥 사는 거지 뭐."라는 무책임하고 회의적인 대답을 할 수도 있겠다. 아님 "이왕 태어났으니 내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사는 것." 이라는 약간은 불투명하나 자기 삶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를 밝히기도 하겠지. 나아가 "열심히 일해서 돈도 벌고 명예도 얻고 싶다."라는 분명한 삶의 지향점을 제시하는 이도 있겠다. 또 어떤 이는 이렇게 형이상학적인 대답을 할 수도 있으리라. "내가 사는 동안 오늘이 어제보다 그리고 내일이 오늘보다 더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라는. 그리고 "추구하는 삶의 목적을 이루었을 때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또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행복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모든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고 있는 행복. 그렇다면 행복해지기 위해서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흔히들 세상에서의 행복조건을 건강과 재물, 그리고 권력과 명예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다 이뤘다고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다. 무엇인가를 원하고 그것을 손에 넣는다고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원하던 것을 손에 넣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큰 것을 원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이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끊임없는 질주요, 목마름이니 헉헉대며 달려야 하는 그 과정이 어찌 평탄하기만을 바랄 수 있으며 그 갈증에 어찌 마음이 평안할 수 있을까. 이루려고 힘쓰면 힘쓸수록 평안과 행복은 자꾸 뒷걸음치기 일쑤다.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이란 더 가지려고, 더 이루려고 힘쓰기보다는 그 욕심들을 덜어내는 데 있지 않을까. 남보다 가진 것은 적어도 늘 만족하고 기뻐하면서 살 수만 있다면 진정한 행복은 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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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11 23:02

우리 집 명절

고유의 추석명절이 지났다. 설날과 추석, 단오 3대 명절 중 추석은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이다.초청하거나 마중을 나가지 않아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게 세월이요 또한 추석이다.추석명절은 그야말로 전통문화로서 민족의 대이동을 불러 온다. 그만큼 우리 민족은 조상흠모와 인간 경애사상 그리고 효사상이 깊다. 이는 참으로 자랑스러운 전통이다. 그럼에도 명절이 모두에게 그저 흔연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명절이 더 외롭고, 부담스러운 가정도 적지 않다. 가족을 만날 수 없거나 고향을 찾을 수 없는 경우는 명절이 오히려 고통이다. 명절이 고통스러운 것은 이들 뿐아니다. 일반 가정의 경우에도 주부들 사이에 명절 증후군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명절 준비가 만만치 않은 중노동이다. 오죽하면 명절을 전후해 성형외과와 산부인과 예약 손님이 줄을 선다고 할까. 그러나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보일 수 있다. 명절은 말 그대로 오랜 관습에 따라 즐기는, 좋은 날이다. 명절이 문제가 아니라 명절을 맞이하는 마음가짐이 문제다. 우리 집에서는 형제가 격년제로 준비하여 명절을 쇤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모든 가정이 시제, 제사, 부모님생일과 회갑, 칠순잔치 등 웬만한 행사는 으레 장손들이 담당한다. 그것이 전통풍습이다.나는 2남 2녀 중 장남이다. 맏이로서 가정의 큰 행사는 당연히 내가 도맡아 치렀다. 장남인 나는 조부모님과 부모님으로부터 귀여움도 더 받았고, 재산도 더 많이 상속받았다.그런데 동생부부가 20여 년 전부터 우리 형제가 격년제로 명절을 쇠자고 제의했다. 장남이나 차남이나 부모의 자식 사랑은 똑 같았을 것이므로 명절 행사를 형제간에 1년씩 번갈아 치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 나는 당연히 장남의 몫으로 여겨 몇 년을 그대로 버텼다. 그 뒤 명절 때만 되면 동생 내외는 거듭 번갈아가며 명절 주최를 요구했다. 장고 끝에 어머님을 모시고 가족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가족회의를 열어 동생 내외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새천년 설부터 그렇게 하기로 했다.홀수 해에는 형 집에서 짝수 해에는 동생 집에서 설과 추석 명절을 치른다. 어느새 올해로 13년째가 된다. 가부장적으로 실행해오던 우리 집 가규(家規)였던 장남 중심의 수백 년 명절 전통의 벽을 깬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모두 어색했지만 10년이 지나니 이제 정착이 되었다.두 집 가족이 모두 30명인데 이번에는 25명이 모였다. 옛날 대가족 제도에서 핵가족으로 바뀌었지만 명절 때만은 대가족이 모여 행사를 치른다. 두 집이 돌아가면서 명절을 쇠니 두 집에서 따로 따로 준비하던 경비도 절감되고, 명절증후군도 줄어서 좋다. 특히 형제의 대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단란하고 화합된 분위기여서 참 좋다. 핵가족생활을 잠시 잊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젖어 즐거운 표정들이다. 이것은 동생부부의 제안으로 이루어졌기에 더 없이 고맙고 자랑스럽다.우리의 명절행사가 앞으로도 대대로 이어지고 후손 모두가 화목하게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수필가 고재흠씨는 2000년 월간문학 공간으로 등단. 한국신문학 전북지회장·행촌수필문학회장을 지냈으며, 수필집 '초록빛추억'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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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04 23:02

구두 한 켤레

선물 받은 상품권으로 백화점에 들러 구두 한 켤레를 샀다. 콧등이 준수하고 몸통이 거울처럼 깨끗한 유명상표가 붙은 구두다. 그는 기나긴 외출이나 중요한 행사장에 갈 때면 나와 한 몸이 되어 여행을 즐기기도 한다. 눈이 오나 비가와도 내 발과 생사를 함께 하던 너는 더러운 흙탕물을 뒤집어쓰고도, 냄새나는 시골 뒷간에 들어갈 때도, 어떤 날은 개자리의 그루터기를 밟고도 불만스런 몸짓 한 번 하지 않고 나의 분신으로 살았지. 미끄러운 도로에서 끝 날을 세워 나를 보호하고 바다 건너 일본까지 기꺼이 동행해주던 너와의 인연을 나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그러던 어느 날 길을 걸으면서 발이 좀 불편함이 느껴져 문득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구두의 발등 쪽 옆구리 접히는 부분이 약간 벌어져 있어 볼썽사나워 보인다. 아마 오래전부터 조금씩 달아 헤어졌나보다. 그래도 그와 정 들고 버리기 아까워서 더 신고 다녔다. 여유가 있어 두 켤레를 사서 번갈아 신었으면 좋았을 텐데, 한 켤레만으로 신다보니 빨리 달은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높은 계단을 오르다 발을 헛디뎌 갑자기 구두의 오른쪽 살점이 툭 떨어져 나가버렸다. 그때 내 발도 심한 통증을 일으켰다. 난 상처 난 몸통을 가만히 비닐봉지에 넣어 병원으로 갔다. 우측 골반 뼈를 수술하여 건강을 회복하니 다시 새 구두가 되어 내 발목을 꼬옥 껴안았다. 그러다 며칠 후 이번에는 좌측 골반 뼈가 빠져나가 또 수술을 받고 퇴원하던 날 의사는 웃으면서 대장과 소장의 연결 부위가 닳아서 몇 달 못가서 하직한다니 그는 회생 불능한 불치병에 걸린 걸까?사람간의 인연의 시작과 끝도 구두가 그 수명을 다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만나고 헤어진 무수한 사람들, 낡아 헤어진 구두를 보면서 인연의 깊이를 생각해 보았다. 내 발을 거쳐 간 구두가 몇 켤레인지, 나와 인연을 시작하고 끝맺었던 사람이 몇 명인지 모르겠다. 문득 신발장에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구두를 꺼내 볼 때가 있듯 과거속의 인연도 그렇게 꺼내보고 싶다. 이제 두 번의 수술을 통해 신었던 구두의 수명이 거의 다 되었나 싶다. 수년을 나의 발과 일거수일투족을 같이 해온 어느 날 고약스런 빗물이 옆구리를 살며시 파고들었다 수명을 다한 구두를 쓰레기봉투 속에 넣어 장례를 치러주었다 비스듬히 누워 눈물을 주르르 흘린다. 수년을 나의 발과 함께 해온 그의 생애가 오늘 새벽이면 환경미화원의 손에 이끌려 나락(奈落)에서 열락(悅樂)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당신은 누구냐고 누가 묻는다면 내 갈 길을 안내해준, 희로애락을 함께 한 내 분신이었다고 말하리라. 구두 속에서 내 발은 여름 해같이 불타오르고, 구두 속에서 삶은 언제나 실감나고 즐거웠었다. 구두는 전조등 불빛처럼 욕망을 비추고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외출시켰다. 너는 나의 분신이었다. 내 발과 오래토록 인연을 함께 한 넌 나의 오랜 친구였다. 지상을 더없이 사랑하게 만드는 구두. 지상을 떠날 때 해를 향해 날아갈 구두. 잔인하도록 아름다운 내 희망 한 켤레야!* 수필가 신영규씨는 1995년 '문예사조', 1997년 월간'수필과비평'로 등단. 수필집'숲에서 만난 비',칼럼집'돈아 돈 줄게 나와라''펜 끝에 매달린 세상'등이 있다. 전북신문학상, 전북수필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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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27 23:02

소리, 그 소리

백운봉 산 비알에서 건너온 싸리꽃향기가 살그머니 와 나의 발밑에서 간질입니다. 하늘은 청아한 파란빛이 향기로 감기고, 갈산은 현란하게 물들어 젊어지고 있습니다. 라틴어로 사람이라는 말은 소리를 통과시키다(personare)라는 뜻이 됩니다. 진정한 사람이 되려면, 자신 안에 소리를 통과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닫혀 있으면 안 됩니다. 열려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통과시켜야 할 소리는 세상의 소리보다 먼저 절대자의 소리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의 힘으로 깨달을 수 없는 크고 작은 풍성한 진리, 아름다움, 사랑의 소리가 됩니다. 이런 목소리를 자신 안에 통과시킬 때, 우리는 진정한 사람이 형성된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됩니다. 목소리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맑고 청랑한 목소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너와 나는 마음의 미를 갖게 하는 소리가 됩니다. 나아가 보이지 않는 묵상의 소리는 내적 영혼을 살지게 하는 순종의 소명이란 음성으로 승화하게 만듭니다. 어린 날, 가물 한 동요가 맴도는 푸른 아침에 새록새록 피워봅니다. 썰매타기, 자치기, 구슬치기, 댕기머리 놀려대기는 개구쟁이의 홍소(哄笑)된 목소리가 불현듯 머리에 가득 앉습니다. 너무나 긴긴 그 시절의 이야기이지만 마음에는 어제만 같이 보입니다. 서낙하고 히덕거리며 지순한 웃음소리, 수련한 순이, 복선이의 홈홈한 이뿐 볼, 달구달구한 아이들이 오늘따라 그때의 모습에서 그들의 소리를 다시 듣고 싶은 나의 간절한 가슴의 소리를 보내고 또 듣고 싶습니다. 세월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소리도 더불어 갑니다. 여기에 아름다운 음성, 천진하고 난만한 소리에서 어릴 적 친구들의 살가운 이야기와 모습의 그리움이 흥건히 배어 있는 숙숙(肅肅)하고 찰지고 지순한 정겨움을 맛보고 싶어 그러합니다. 자연은 신이 살아 있는 옷이다 카알라인의 말입니다. 문명은 자연과 적절히 어우러질 때 최적의 환경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소리는천작(天作)으로 문명과 비례할 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편견, 이기심, 탐욕이 가득 찬 세상의 소리는 순수의 자연의 소리를 거슬러 몰 인간이 만들어 지는 순간, 이는 너무도 큰 슬픔이 됩니다. 우리는 장애인 하면 흔히 육체적인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수화의 교감은 소리 아닌 무언의 의미전달을 나눕니다. 그의 초연한 표정 뒤에 감추어 보이지만, 마음에의 미움, 질투, 탐욕이 가득 차 있으면 그 사람 또한 영적인 장애자입니다. 마음이 무디어 다른 사람의 아픈 처지를 외면하는 것도 성령 장애의 요소가 됩니다.우리는 열린 귀로 무엇을 듣고 있으며, 풀린 혀로 무슨 말을 하고 사는지요? 자문해 봅니다. 음악의 본바탕은 소리에서 기인되어 사람과 더불어 먼저 사람을 매혹하고 나아가 인생길의 멋을 치부하는 사랑으로 안내합니다. 음악의 정신은 행복을 추구하는 최후의 목표가 된다는 것입니다. 감미로운 리듬에 자기를 되돌아보며 너무도 하얀 마음의 세계로 이끄는 힘이 곧 소리이며 예술입니다. 이런때, 그에서 세상살이의 정화가 요구되는 것을 배우게 합니다. 이처럼 자연의 큰 틀 안에는 소리를 가득 담고 있습니다. 소리를 떠나서는 잠시를 존재하지 못합니다. 각혼이 없는 생혼만을 지닌 날짐승과 기는 동물은 올금 볼금 울며, 허공과 숲을 전전하며 먹이만을 구하는 소리에서 단순함을 발견합니다. 바람은 소리를 만드는 장치인가 합니다. 들을 건너 산으로 오르면 잎의 군상이 소리의 합창으로 산을 넘습니다. 그의 소리는 습습하여 종합예술의 극치가 되고도 남습니다. 골짜기의 물소리는 산과 벗한 조화이며, 물이 없는 골은 사막과도 같습니다. 바람소리가 모든 소리들을 다 이끌고 간 고요는 정숙과 한가로움이 숲을 덮습니다. 조화는 우리를 만들고 사회를 이끄는 슬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를 지혜롭게 꾸미어 살아가게 합니다. 소리의 조화는 순간의 의미를 남기고 순간 소멸됩니다. 그러나 그의 자국은 시공을 뛰어 넘습니다. 영각(永劫)속에서 영계(정신), 육계에 이어져 그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기에 남긴 소리의 흔적이 더욱 가까워져 다시 찾고 싶은 것은 사람의 애틋한 정서인가 합니다. 이제 소리를 따라 산자락을 내립니다. 자연의 품안으로 나의 몸과 마음을 담 쑥 안겨 청순하고 슴슴이 우러나는 묵념속의 그 소리를 마음과 가슴으로 새겨 사랑에 푹 젖어봅니다. 수필가 이창옥씨는 1982년 한국문협월간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사랑한 너 오늘에 핀다등 6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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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13 23:02

꽃가지를 아우르며

내가 절에서 꽃꽂이를 하게 된 것은 내 건강을 걱정하던 친구의 배려 때문이었다. 아무런 이유도 조건도 말하지 않고 가끔 나를 절에 데려가곤 했다. 갈 때마다 고적한 풍경에 마음이 끌려 툭하면 파닥이던 가슴이 진정되곤 했다. 조용한 분위기를 즐기다가 경내의 경건함이 조금 부담스러워질 무렵에 절 뒷마당을 돌아 산으로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절 지붕 끝자락과 맞닿은 하늘이 참으로 맑고 고왔다. 그 산자락엔 꽃꽂이할 소재들이 많았다. 꽃이나 나뭇가지를 꺾어다 내 방에 꽂고 산사의 분위기를 이어 보고자 했다. 작은 풀꽃에서 절 내음을 맡고 파릇한 잎사귀의 움직임에서 풍경소리를 들으며 자꾸 까무러쳐 가는 심신을 곧추세우곤 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그런 내 행동이 왠지 죄스러웠다. 버리고 와야 할 곳에서 오히려 채워 오려고 한다는 생각이 나를 욕되게 하는 것 같았다. 후론 거꾸로 꽃을 사서 들고 갔다. 정성 들여 꽂고 나면 내 마음도 그 꽃을 보는 사람도 함께 즐거웠다. 눈으로 보는 즐거움이 공양의 의미를 돋보이게 했다. 공양 중에 꽃 공양이 제일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나에게 꽃 꽂기를 부추겼다. 법당에서 시작한 꽃꽂이는 나한전, 관음전, 극락전, 지장전으로 범위를 넓혀 갔고 꽃꽂이를 위한 성금이 점점 많아져 갔다. 큰 행사 때에는 몇 날을 꽃과 씨름하며 파김치가 되도록 몰두했다. 그리고는 며칠씩 앓기도 했다. 그래도 마음만은 보람으로 충만했다. 나뭇가지를 들여다보면 살려야 할 선과 잘라야 할 선이 보인다. 어느 방향으로 어느 만큼을 살리고 자르느냐에 따라 작품의 윤곽이 다르다. 꽃꽂이를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구상하는 대로 자르다 보면 어느 것은 너무 아까운 것이 있다. 물론 꽃꽂이를 하기 위한 절화용이어서 마음껏 자르는 것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물을 빨아 올려가며 생을 이어가는 생명 아니던가. 그러기에 잘려나가야 하는 것이 있을 땐 가위질이 망설여진다. 그러나 잘라 버려야 할 것은 과감히 잘라야만 작품이 나온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잘라내야 할 것들로 진통을 앓듯, 내 삶이 이어지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을 놓고 마음을 앓을 때가 참 많았다. 꺾어지고 시들고 찢어져서 버려야 할 것들은 그래도 괜찮았다. 그러나 어떤 선을 살려야 하는 이유로 정말 멀쩡한 가지를 쳐 내야 했을 때처럼 나 자신 때문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버리고 살아야 하는 것들도 많았다. 누구를 위한 삶인지 회의를 느끼던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그런 일들이 내 삶의 곳곳에 딱딱한 옹이를 만들어 갔고 그 옹이들은 내 마음 깊숙이 어둠을 깔고 숨어 있다가 가끔 튀어나와 벌겋게 성을 내곤 했다. 작품으로 탈바꿈한 꽃과 탐,진,치(貪,瞋,癡)를 버리라는 목탁소리 속에서 지내다 오는 날엔 벌겋던 상처 색깔이 달라져 갔다. 잘려나갔기에 작품으로 승화될 수 있었던 사실과 잘린 것에 대한 애착을 버려야 한다는 이치가 손끝에서 이루어져 가면서 소중한 물건인 것처럼 보듬고 있던 응어리들이 서서히 그 자취를 감추어 갔다. 산사의 풍경소리와 목탁소리와 꽃꽂이. 화사한 봄날 마당에 내려앉는 햇살과 한여름 쏟아지는 소나기 소리, 나뭇잎 뒹구는 소슬한 가을 저녁나절의 고즈넉함과 뒷산 소나무가 꺾어지는 겨울 풍경들을 보고 들으며 꽃을 꽂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 폭의 그림 속에 들어 앉아 갖가지 꽃물에 흥건히 젖는다.- 수필가 김재희씨는 수필과비평,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수필집 그 장승을 갖고 싶다꽃가지를 아우르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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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06 23:02

짝퉁>명품>진품

현대는 짝퉁이 판치는 세상이다. 보석과 의류, 여성용 손가방이 특히 심하다. 심심찮게 매스컴에 모조품 관련 뉴스가 보도된다. 손재주 많은 우리나라에서 심심찮게 범법행위자가 적발되기도 하지만, 모방의 명수 이웃 중국이 단연 으뜸이려니 싶다. 일요일 낮에 방영되는 KBS 교양프로그램 TV쇼 진품명품을 곧잘 시청한다. 골동품, 고미술품, 도자기, 공예품 등 장인의 혼이 서린 각종 명품들의 가치와 예술적 안목을 넓히고 높이기 위해서다. 또한 간접체험을 통하여 대리만족의 환희를 맛보며 희열에 젖는다. 대부분 세상에 빛을 못보고 사가의 깊은 곳에 묻혀있는 귀중한 보물들을 보는 재미가 여간 쏠쏠치 않다. 젊은 시절 한 때 명품에 빠져있던 때가 있었다. 학창시절 소박한 바램, 파커만년필과 라이카 카메라를 꼭 갖고 싶었다. 글쓰기를 좋아했기에 파커를 가지면 글이 더 잘 써질 것 같은 착각을 했었고, 역마살기가 다분해 싸돌아다녔기에 사진 찍기를 즐겼었다. 흑백필름에 투영된 화상은 황홀이었다. 부잣집 도령이 못 되었기에 파커 대신 파일럿으로, 라이카 대신 야시카로 대신하여 살아온 아린 상처가 있다. 바이올린엔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달라니, 승용차엔 벤츠 롤스로이스 캐딜락, 시계는 롤렉스 오메가, 스포츠용품으론 아디다스 프로스펙스, 화장품 샤넬 랑콤, 의류업계엔 크리스천 디올 이브생로랑 루이뷔통 등 수없이 많은 제조사와 브랜드가 있다.요즘 여성들의 액세서리, 핸드백은 루이뷔통 샤넬 구찌 프라다가 최고의 명품을 만들어 판매 1위를 차지하기 위하여 피나는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어느 분야 어느 품목이건 짝퉁 명품 진품은 존재한다. 국가와 정부 사회에도 명품은 있으며, 사람 예술품 건축물 조각품 공예품에도 명품이 있다. 우주가 존재하고 인간이 살아 있는 한 짝퉁 명품 진품은 존재 할 것이다.조선시대 왕, 세종 영정조는 임금으로서 진품이며 명품 성군임에 이의가 없다. 미 대통령 링컨과 루즈벨트, 프랑스 드골 대통령, 영국의 처칠수상, 분명 진품 명품 국가 지도자였다. 충무공 이순신, 도산 안창호, 백범 김구,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역시 진품명품인 분들이다. 그러나 징기스칸, 알렉산더, 시저, 나폴레옹 등은 명품 지도자일 지언 정 진품명품 반열에는 올려 부르기는 뭔가 허전하고 부족한 느낌이다. 우리나라 최근대사엔 불행하게도 진품명품 지도자가 없었다. 실패한 명품과 짝퉁만 있었을 뿐. 짝퉁보다 형편없는 사람을 뭐라 불러야 할까? 아돌프 히틀러, 네로, 도조 히데키 등을 인간말짜 개망나니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짝퉁은 짝퉁 나름대로 필요악이리라. 돈 없어 가난한자, 허영 아닌 소박한 작은 소망, 대리만족을 통하여 희망을 같고 즐겁고 행복하다면 짝퉁의 제 몫은 한 셈이다. 명품을 모르는 사람은 명품과 짝퉁을 분별 하지 못 한다. 유사품 짝퉁을 명품으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 역시 현대를 살아가는 편안 방편이려니 싶다.모든 문화예술 장르의 생산물은 작가의 고매한 혼과 장인정신이 깃들어져 예술성 높게 작품으로 승화될 때 진정한 진품이 될 것이다. 요즈음 우리나라 돌아가는 꼴이 영 미덥지 않다. 양심과 상식을 절해고도에 귀양 보낸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 지도자들이 너무 많이 판치고 있다. 선량한 국민에게 너무 큰 상처를 주고 있다. 한줄기 희망의 빛도 보이지 않는다. 암울한 시대다. 국민이 선택 했기에 국민이 감당 할 몫이다. 건국 이래 최초 여성대통이 된 대통령께서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발휘, 국사를 찬찬히 꼼꼼하게 살펴 보통사람이 평안히 잘 사는 세상, 이시대의 명품 대통령으로 남기를 기원한다. - 수필가 김재환씨는 수필과비평으로 등단. 수필집금물결 은물결이 있다. 전북 수필과과비평작가회의 회장, 한국문인협회 진안지부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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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30 23:02

경기전엔 경기매(慶基梅)

경기전에 상주했던 마지막 상녀 이문용의 증언이 오늘따라 유달리 생각난다. 일본제국은 '경기전 일부를 헐어 소학교를 건립하고 매화나무를 수차례 고사시키는 회오리바람에 당시 상주 자들이 몰래 풀고 또 풀어 살렸다'는 증거로 등이 절묘하게 꺾이듯 세 번이나 굽어 의아할 만큼 희한한 모습이다. 등걸이 반쯤 비어 치료받고 누워 애달파하는 모습은 곧게 선 직선미 보다 곡선미를 은은히 풍겨 '노매(老梅)'라 하니 그 보다 '고매(古梅)'라 부르는 이가 많단다. 그럼 고매를 분류하니 최고의 매화로 '고매(高梅)', 아픈 역사의'고매(苦梅)', 연고가 있다'고매(故梅)', 나무이기에'고매(枯梅)', 홀로 서있다 해서'고매(孤梅)'라 한다. 신기하고 단아한 맵시에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르겠지만 난 이 매화나무를 볼 때마다 경기 전의 특성과 매화나무의 굽혀진 모습을 감상한다. 때 늦은 눈이 내려 매화 꽃잎 위에 사뿐히 앉았다. 모란이 부귀를, 연꽃이 군자를, 난초가 군자와 귀녀를, 국화가 은일 자를, 해당화가 신선인데 비해 백미고사(白眉故事)의 매화가 일품이다. 매화나무 새 가지에 꽃눈이면 잎은 반들반들하고, 잎눈이면 거칠어 구분이 된다. 꽃은 2월에 잎보다 먼저 백색, 홍색으로 잎겨드랑이에 피는데 향기가 짙다. 꽃받침은 둥글며 꽃잎은 달걀 모양이고 모두 털이 없다. 수술은 많으며 꽃잎보다 비교적 짧다. 6월에 익는 매실은 음식물의 독, 핏속의 독, 물의 독을 제거하는데 탁월한 효능이 있어 한방서 오매(烏梅)라 처방 한다. 우리나라 곳곳에 잘 자라지만 그 중에 먼저 조선 효종(1637)때 명나라에서 세자가 가져와 부여 백강 주변에 심어 12월 동지 때 핀다는 동지매(천연기념물 제105호)가 으뜸이다. 지리산 단속사지에 550년 된 인재 강희안(1419-1464) 심었다는 정당매(政堂梅)도 있다. 그리고 서울 창덕궁의 만천홍매(萬疊紅梅)는 선조 때 것이며 선정전의 와룡매(臥龍梅)가 홍매와 백매가 현재의 서울 송파구 매화나무길(1-4길)을 탄생케 했다. 다음은 고송 팔매는 송매원을 짓고 안방준(1573-1654)이 심었다. 안동의 도산매는 퇴계 이황(1501-1578)초막을 짓고 매화를 처로 학을 자식으로 삶아 매화 단일로 백여 시가 남았다. 그리고 죽림정사에 고매(古梅)와 하회마을의 서애매로 600년간 고택을 지키고 있었다.그 다음엔 관악산 선바위의 장군매다. 또 우리나라 삼대 사찰인 송광사의 송광매. 영취산 통도사의 자장매. 지리산 산청 도천서원의 노산매. 조계산 선암사의 선암매 등이 특성의 매화로 유명하다. 이들은 그곳의 특성과 심은 이의 호와 지역의 명을 붙여서 불렸다. 매화의 은은한 향에 더 가까이 다가섰다. 경기 전의 매화이니 등이 절묘하게 꺾이듯 세 번이나 굽어 의아할 만큼 희한한 모습! 이는 왕실의 한으로 심었고 우리민족의 혼으로 가꾼 나무다. 그러기에 조선 전통문화를 단편적 역사 지식으로만 이해하지 말고 새로운 맥락에서 생생히 살아있는 의미로 경기 전을 찾고 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쾌거의 기념으로 '경기매慶基梅'라 불러도 손색이 조금도 없다고 본다.*수필가 신진탁씨는 전북숲해설협회장·숲생태지도자협회장·국제PEN 전북부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토향''금강산아''노을빛 닮아 튀는 얼굴''해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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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23 23:02

스마트폰 열풍

지난봄 서울에서 오랜만에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안의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옛날에는 지하철을 타면 신문을 읽거나 독서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출퇴근 시간이면 조간이나 석간신문을 들고 다니면서 팔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지하철에서 신문이나 책을 읽는 모습은 구경하기 힘들다. 앉아있는 승객10명 중 7~8명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청소년이나 어른, 노인 할 것 없이 모두 스마트폰에 푹 빠져 있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3천만 명이 넘었다더니 실감난다. 한때 단군 이래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놀이가 고스톱이라 했는데 순위가 바뀌었나 보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사람과 사람의 거리는 멀어져 가는 것 같다. 옛날에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소통했는데 요즘은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밴드 등을 통하여 먼데 있는 사람과만 소통하려고 한다. 옛날에는 버스나 기차를 타고 먼 거리를 갈 때면 옆자리에 함께 가는 사람과 서로 인사도 나누고 신문이나 잡지도 바꿔보며 세상사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좀 더 발전하면 휴게소에서 차도 나누어 마시며 정을 나누었다. 그런데 요즘은 차에 앉자마자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스마트폰만 쳐다보며 종점까지 가버린다. 옆 사람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가족들과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식사시간에도 식탁에 스마트폰을 얹어놓고 들여다보며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면서도 들고 간다고 한다. 그러니 가족들과의 대화도 단절될 수밖에 없다.스마트폰은 정말 편리한 문명의 이기다. 스마트폰을 우리말로 직역하면 '똑똑한 휴대전화'라고 한다. 스마트폰은 전화, 문자, 컴퓨터, 카메라, 녹음기, TV, 라디오, 손전등, 손거울, 전자지갑 (폰뱅킹, 주식거래) 등 못하는 일이 없다. 손에 들고 다니는 컴퓨터다. 기차나 버스를 타고 가면서 영화를 볼 수도 있고, 궁금한 문제가 있으면 즉석에서 검색도하며, 게임도하고, 운전할 때는 내비게이션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여행을 하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도 하고 고향에 있는 부모님께 서울에 사는 아들이 손자의 재롱을 동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듯 다양하게 활용하다 보니 폐해가 심각하다. 거북목이나, 손목장애, 집중력과 수면부족, 시력저하, 학습저하, 과도한 통신요금, 전자파노출. 인간관계의 갈등 등 여러 가지다. 청소년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으로 갈등이 심하다고 한다.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업시간이면 원만한 수업진행을 위해 스마트폰을 수거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수업시간에 스마트폰을 멀리하게 하려고 해도 어렵다고 한다. 스마트폰처럼 훌륭한 문명의 이기를 외면할 수는 없다. 그러니 스마트폰을 슬기롭게 이용하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지금까지 기업에서는 스마트폰을 만들어 편리하고 재미있는 기능만 선전하여 판매량을 늘려 기업의 이윤만 추구했다. 그 결과 기업은 엄청난 돈을 벌었지만 그 폐해가 심각해졌다. 이제는 스마트폰의 폐해를 사전 예방하고 줄이는 노력을 기업에서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스마트폰의 건전한 이용에 대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교육을 강화하고 중독자에 대한 전문상담사를 양성하여 치료에도 힘써야한다. 스마트폰을 판매하고 선전하면서 과도한 스마트폰 이용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해롭다는 내용도 함께 알려야한다. 스마트폰의 건전한 이용을 위해 가정과 학교는 물론 기업과 언론도 힘을 모아 스마트폰 중독 때문에 불행해진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수필가 최기춘씨는 2008년 대한문학으로 등단. 수필집'머슴들에게 영혼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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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16 23:02

웃음꽃 가득 피우던 아이 - 이용만

미옥이라는 아이가 있었다.30년도 더 지난 저 먼 날에, 박사고을 임실 삼계 뒷고개 너머 제각집에서 살던 작은 소녀였다. 낯꽃 좋고 심성 좋았던 아이인지라 사람을 보면 활짝 웃으며 꾸벅 꾸벅 인사를 잘도 하던 아이였다.먼 곳에서도 나를 보면 '선생님!' 소리치면서 달려와 덥석 안기던 아이였다. 그는 매일 아침 출근을 하면 복도 저쪽 끝에서 달려와 나에게 인사를 하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 때에 인사를 공손히 했음은 물론이고 정말 환하고 밝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의 얼굴에서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올랐다. 그 아이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40대 중반쯤 되었을 그 아이는 지금도 고운 얼굴에 웃음꽃 가득하게 사람들을 반기고 있을까? 그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어려서부터 그토록 웃기를 잘 하고 사람을 반겼으니 그 심성, 그 버릇 어디로 갈까? 지금도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갑게 맞아줄 것이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즐거움을 주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설령 어떤 일로 살기가 어렵고 힘들다 해도 그 고운 웃음은 잃지 않고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늘 웃음을 띠우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순간 순간 띠워주는 웃음은 여전히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고 즐겁게 해주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자녀에게 그 웃음을 물려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아이도 그렇게 고운 웃음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왜 그처럼 웃음을 간직하지 못하는가? 그처럼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웃어주지 못하는가? 그처럼 웃어 줄 수만 있다면 나를 만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기쁘고 즐거울 텐데…….부끄럽다. 그 아이처럼 사람들을 대하지 못했던 지난날들이 부끄럽다. 그동안 미옥이의 웃음을 까마득 잊고 살았다. 그의 웃음을 진즉 생각해 냈어야 했다. 그런데 이제야 생각이 나는 것이다. 지난 휴일에 고향을 다녀오면서 박사고을 삼계 소재지의 탑정이 고개를 넘어오면서 그 제각집이 눈에 들어왔고 그 때에 문득 그 아이 생각이 난 것이다. 제각집에 살았으니 그리 넉넉하게 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늘 웃음을 띠고 살았고 사람을 좋아하고 반가워하였다. 지금이야 제자들 머리만 쓰다듬어도 성추행으로 몰려 수난을 당하는 무서운 세상이 되어버렸지만 그때는 아이들과 친하게 잘 지내던 시대였다. 그는 내가 담임선생님도 아니었는데 아침에 출근을 하면 복도 끝에서 걸어오다가 '선생님!' 소리치며 달려와 덥석 내 품에 안기곤 하였다. 그 때에 그가 짓는 미소가 한없이 순진하고 예뻤다. 세월이 흘러 수많은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나와 만나고 헤어졌지만 그가 유독 오래 남아 있는 것은 그의 웃음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렇게도 반가운 표정을 지을 수 있었을까? 누구를 대하든 그런 웃음으로 맞이한다면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도 이제는 4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얼굴에 주름도 생기고 머리에 새치도 생겼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때의 웃음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가 웃음을 잃었다면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닐 것이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과 세상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모나리자의 웃음은 저리 가라 할 그의 아름답던 웃음. 그가 어떻게 변하였든 그를 한 번 만나보고 싶다.*수필가 이용만씨는'수필문학'과 '아동문학'(동화)으로 등단 했다. 현재 전주미산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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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09 23:02

상큼한 바람아 불어라

요즈음 이상기온으로 긴긴 땡볕과 일부 지역의 집중 폭우로 올여름은 불쾌지수를 더하여 잠을 설치게 한다. 여기에다 사초(史草)실종사건, 개성공단 협상 난항, 방학을 이용한 해양극기 훈련 받던 고교생 5명의 익사, 명 피디인 김종학씨 자살 사건 등등은 더욱 여름을 빨갛게 색칠했다. 이런 때 시원한 한 가닥 청량감을 주는 소식이 없나 몹시 기다려진다. 며칠 전, 어느 중앙지 얼굴화면에 4단 크기의 세상에 첫 선 보인 미래의 영국왕이라는 막 태어난 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증손자 아기 사진이 실려 있었다. 아직 눈을 뜨지 않고도 앞으로 펼쳐질 영국은 환호를 보낼만한 아름다운 나라라고 확신한 걸까. 손뼉을 치듯 두 손을 벌리고 두 눈을 꼭 감고 강보에 싸여 있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입방아 대신 글방아로 사는 이들은 벌써부터 미래를 점치기에 분주했다. 물려받을 재산이 10억 달러이며, 왕위 서열이 3위이기에 2082년 쯤 되어야 왕위를 계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명문학교에 보내 성인으로 키우기 위해 100만 달러가 들어갈 거라고 미리 계산도 해본다. 바다 건너 먼 나라에서 건너온 소식이지만 우리들에게는 무더위를 식혀주는 한 올의 낭보로 들렸다. 기쁜 소식이 메말라 버린 우리생활에 한 바탕 쏟아지는 소나기는 못될지라도 스쳐지나가는 한 줄기 빗방울은 되었다. 친목 모임에서는 흔히 3가지 금기사항이 있다. 그중에 정치도 한 몫 차지한다.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하기에 누구나 관심이 많은 분야다. 다양한 얼굴 생김새처럼 생각이 모두 다르기에 섣불리 그 이야기를 끄집어 낼 때에는 큰소리가 오고가고 우정에 금이 가기에 십상(十常)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삶의 질과 행복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쩌면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절실하고 중요하기에 관심 뒷전에 둘 수만은 없다.나는 가끔 감칠맛 나는 삶, 상큼한 생활은 없나하며 생각을 그려 보곤 한다. 국회의원은 몇몇 비례대표를 제외하곤 각 지역구에서 뽑은 국민의 대표임에는 틀림없다. 그들에게 거는 우리들의 기대는 문서에 기록된 임무보다 더 높고 크다. 국민의 질 높은 삶, 행복문제 만큼은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밤새워 여야를 떠나 눈알에 핏발이 서도록 토론하는 문제 해결의 모습. 회기 중에는 자리를 꽉 채워 한 건이라도 국민 복리(福利)문제를 소홀이 다루지 않는 성실의 모습. 대외적으로 국익문제에 어려움이 발생하면 내 집안의 문제인양 만사를 제치고 똘똘 뭉쳐 대처하는 의지의 한국인 모습. 당리당략보다 한 걸음 앞서 국민의 입장을 생각하는 큰 가슴의 모습. 국민의 혈세가 삐뚤어진 틈새로 새어 나가지 않나 지키는 파수꾼의 모습. 개천에서도 용이 예전처럼 다시 태어 날 수 있다는 젊은이들의 어려운 꿈을 접지 않도록 도와주는 용기의 모습. 국론 분쟁이 요동치고 휩싸여 국민들의 가슴이 콩닥콩닥할 때 초동(初動)에 불을 끄는 소방서 아저씨의 모습. 대통령을 국가 원수(元首)로 인정하고 통치하는데 밑받침을 튼튼히 해주는 한국인의 긍지 높은 수준의 모습. 틈나는 대로 서민의 아픈 삶의 현장을 돌며, 난제를 풀기위해 함께 고민하는 푸근한 인정의 모습.이런 모습의 정치인들이, 국회의원들이 그득한 살판나는 우리나라 모습을 그려보며, 손에 든 부채를 내려놓고 더위를 식히고자 한다.* 수필가 박종윤씨는 1993년 '수필문학'을 통해 등단, '제20회 수필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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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02 23:02

참 좋다. 그것이

나의 가슴에 오십대의 마지막 불이 꺼지는 여름이었다.감성이 메말라 비틀어 질 때마다 추억의 가방을 뒤적여 하나씩 깨물어보는 것이 여행이다. 그 날도 멀리 시골집을 예약하여 머물기로 했다.아직도 솥단지 걸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사는 동네. 노을이 아름다운 마을이었다.두 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보다 개가 더 많은 동네. 저녁 무렵 이곳저곳에서 연기가 났다. 벽의 틈새를 타고 흐르는 매콤한 연기를 마시며 할머니는 우리에게 시골밥상을 차려주셨다. 손톱 사이로 김치물이 곱게 든 손으로 된장과 호박잎, 보랏빛 가지나물과 황석어 젓갈에 풋고추를 넣은 맛깔스런 밥상.시골의 아침은 햇살이 맑고 투명하여 온 세상이 은빛 꽃으로 활짝 피었다.사람과 기계의 소음을 벗어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동안 우리를 괴롭혔던 요인들이 무엇이었을까? 그 사람만 없었으면 살 것 같고, 그 일만 없다면 어렵고 힘들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밀림의 왕 사자한테도 괴롭히는 적수가 있었다. 사자는 먹이를 먹으면 끝까지 먹어 위를 가득 채운다고 한다. 그리고 소화가 될 때까지 보름정도 깊은 잠에 빠진다. 과식을 하고 바로 눕게 되면 사람과 마찬가지로 소화불량에 걸려 나중에 치명적인 병에 걸리게 되지만 사자는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는다. 바로 똥파리가 사자의 귀, 다리, 배, 머리 등 여기저기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데 사자는 자면서도 본능적으로 온몸과 다리, 꼬리를 끊임없이 흔들다보면 저절로 운동이 되어, 만족스러운 소화까지 된다고 한다.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나를 성숙하게 만드는 그들이 지금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이다. 그들 덕분에 내 삶이 맑아지고 새 살이 찬다면 똥파리 같은 존재가 있어도 가슴 아파하지 말고 그들에게 다가서며 따뜻한 손길을 전하며 만나는 사람마다 나의 소명을 잊지 말고 기쁨을 전달해야한다.이번 여름은 생각 버리기 연습을 하며 살아야겠다. 정형화된 삶보다는 조금은 흐트러지고 약간 너트가 빠진 그런 날도 필요하다.특별한 날에 마시라고 rose sparkling wine(로제스파클링와인)을 선물로 주고 간 사람이 있었다. 탄산 같은 기포가 있었고 장미 빛깔 때문에 로즈라고 하는데 화이트 와인과 레드와인의 중간색이었다. 오늘 같은 날에는 여자들이 즐기기에 달콤한 맛과 향이 있어 아주 좋았다.시각적으로 환상적인 색상과 후각반응이 빠르게 다가와 여름철 모든 향기를 한 병에 담은 향기였다. 나의 똥파리는 누구였을까?여행은 그 사람을 변화 시키는 충만한 에너지가 있다. 일상적 생활에서 웃고 재미난 시간보다는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활력소를 찾으려고 많은 사람들은 가방을 챙기고 있다.섶 다리가 있는 작은 마을, 고추 말리는 두 노인이 사는 방안에 들어가 눈을 감지 않아도 잘 수 있는 그런 방에서 하룻밤을 자고 싶다. 자다가 창문에 스며든 별빛을 마시고 흠뻑 취해 옆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를 떠나고 싶다. 오십대는 흔들리는 바람, 오십대는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이기에 가장 아름다운 나이인지도 모른다. 오십대는 바라보는 것 마다 모두 아름답다. 불타오르는 오십대에 떠나자.여행은 눈과 마음을 호강시켜주기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한없이 그리움으로 기다렸던 사람과 탁월한 이야기꾼이 아니어도 같이 떠나고 싶다. 똥파리도 같이 - 수필가 안영씨는 1997년 문예사조로 등단. 수필집 내안에 숨겨진 바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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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7.26 23:02

습지 비오톱

녹음이 짙어지고 있다. 어디선가 진한 향기가 스멀스멀 코를 간질인다. 그 향기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나도 모르게 습지에 다다른다. 굳이 향기가 아니더라도 싱그러운 숲이 보고 싶으면 나는 아무 때나 찾아가는 곳이 있다. 저리도 푸를까? 멀리서 가까이서 유월의 녹음을 보면 마음마저 풍성해진다.오늘은 다행히도 오전에 오게 되어 그 청초하고 단아한 수련(睡蓮)을 만날 수 있었다. 백의 수련은 기다렸다는 듯이 벙긋하니 미소 짓고 있었다. 순백의 꽃잎 속에 노란 꽃술의 자태는 녹색 연잎에 살짝 가려져 수즙은 모습이다. 아침에 갓 세수한 열여섯 싱싱한 처녀의 얼굴이 이런 것일까.습지를 찾아갔을 때 수련이 피어 있으면 참으로 반갑다. 물 위에서 다소곳이 해를 바라보며 꽃잎이 열려 노란 속살까지 드러냄이 청순하며 고요하다. 로마 신화에서는 수련을 '물의 여신' 이라한다. 수련은 연못 한 가운데에 있어 더 이상 가까이 접근 할 수도 없고 그의 생이 사흘이라는데, 눈부신 여름에 찬란한 청춘의 한 생이다. 6~7월에 흰 꽃이 꽃대 끝에 한 송이씩 피는데, 오후부터 서서히 꽃잎이 접히면서 어두워질 무렵이면 입을 꼭 다문다. 그 주변에 노랑어리연꽃은 꽃도 잎도 작지만 작으면 작은 대로 그도 역시 수련과 어울리며 더불어 살아가는 매력이 있다.작년 이맘때는 가만가만 연못으로 다가가는데 푸드덕 소리가 나더니 웬 청둥오리가 날아오르고 그의 짝인 듯한 놈이 뒤따라 저 멀리 함께 날아갔었다. 청둥오리가 이 숲 속에 먹이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 연못을 헤집고 개구리며 올챙이들을 먹어치우고, 수련마저도 훼손시켜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목격하였는데 청둥오리를 못 오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연 생태계는 먹이사슬로도 훼손되고 있었다. 오늘도 오리가 다녀가지 않았는지 두리번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수련이 깨끗한 옷을 입은 것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완산칠봉 생태습지는 다섯 개의 연못이 층층으로 구성돼있어 참개구리, 청개구리, 무당개구리, 두꺼비, 맹꽁이, 도룡뇽의 양서류가 서식하고, 올챙이가 떼 지어 고물거리고 뒷다리를 쑥 내민다. 지지난 해는 태풍의 피해를 비켜가지 못했다. 시민의 봉사로 잘 가꾸어진 연못이 토사로 뒤덮이고 연못의 둑이 무너져 내려 연못 속에 생태계가 망가지기도 했다. 자연이 심하게 훼손 되면 원상태로 복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지 습지를 찾는 이로 하여금 안타깝기 그지없다. 예전의 질서 있던 습지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연못에 물이 가득 고이면 맹꽁이와 청개구리가 연못가에서 서사시를 읊조리는 곳이었다. 이곳 습지에 유치원 아이들이 현장학습을 나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연못을 가리키며 들여다보는 모습은 꽃보다도 더 예쁜 모습이다. 저만치 벤치에서는 젊은 남자가 않아 책을 보고, 운동기구도 있으니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혼자라도 좋고 둘이라도 좋다. 여럿이면 어떠랴. 넉넉한 자연이 누군들 반기지 않겠는가. 이는 용머리고개의 명소이며 자연이 사람을 품어주고, 사람이 자연을 품으며 더불어 숨 쉬는 쉼터이다.녹음이 짙은 숲 사이의 완산칠봉 습지 비오톱, 청명한 하늘가에 조각구름 한 점이 연못으로 내려 오는듯하다. 연못을 하나 둘 세며 계단을 밟는다. 봄이면 올챙이와 개구리가 물장구치며 뻐꾸기가 노래를 한다. 여름밤이면 풋풋한 신록의 향기와 서늘한 습지기운이 어우러지는 곳, 그곳에서 뜨거운 여름을 보내며, 청순한 수련과의 재회를 꿈꾸리라.-수필가 이금영씨는 2010년'수필과비평' 으로 등단. 전북문인협회·전북수필·영호남수필·행촌수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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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7.19 23:02

한복을 다리며

밝은 진달래 빛 한복을 다렸다. 한복도 유행이 있다지만, 여전히 곱고 아름다운 빛깔이 유행쯤은 무색케 한다. 진분홍 겉감과 어우러진 연분홍 속감에 금박무늬가 곱다. 물을 뿌리고 가열된 다리미로 주름을 펴간다. 옷장 속에서 묵혔던 오랜 세월이 서서히 사라진다.새로 단 우유 빛 동전이 저고리의 매무새를 살려낸다. 긴 옷고름도 천천히 다렸다. 정갈한 한복의 맵시는 옷고름에서 마무리된다. 옷고름을 매 본지도 아슴푸레하다. 잠시 옷이 간직한 세월을 헤아려본다. 큰어머니 회갑 잔치 때 맞춰 입은 옷이다. 큰어머니는 이십이 년 전 팔순을 치루셨다. 그러니 옷 역시 스무고개를 넘겼건만 아직도 입고 나서기 손색없는 옷이다. 골 깊은 주름을 펴면서 오래전 그날을 떠올린다. 평생을 혼자 사신 큰어머니는 시집질녀와 친정질녀에게 같은 한복을 입혔다. 다행히 둘은 나이가 같아서일까 진달래 빛 한복이 잘 어울렸다. 그날 모인 축하객들이 딸이 둘이구나 짐작했을 것이다. 우리는 각자 남편과 함께 큰절을 올렸다. 옷이 주는 무게 탓이었을까! 절을 올리는 맘이 숙연했다. 우리부부가 먼저 큰절을 드리고, 친정질녀 부부가 절을 할 순서가 되었다. 왜 그랬을까?그녀는 좋은 날 분위기를 바꿔버렸다. 눈물범벅이 되어 큰절을 올리더니, 일어서지도 못한 채, 흐느끼더니 이내 통곡이 되었다. 잔치 분위기는 일순간 슬픔의 늪이 되어버렸다. 양가 친인척이야 눈물의 뜻을 이해하고도 남았지만, 축하객들은 그 순간 조금 어리둥절했으리라! 몇 년이 흐른 지금도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일이다.그녀는 학교를 나보다 한 해 먼저 입학했다.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취업문을 두드려야 했던 나와 달리, 캠퍼스의 낭만을 만끽하는 여대생이었다. 꿈에라도 대학 정문을 한 번 밟아 보고 싶었던, 당시 내 처지로는 그녀의 생활은 부럽기 그지없었다. 그랬던 그녀가 주체할 수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은, 내겐 겉돌기만 하던 큰어머니의 정을 한 아름 품고 자랐기 때문이었으리라. 큰어머니는 외롭고 고단한 삶을 살았다. 신혼의 달콤함도 모른 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자식 한 명도 없이 평생을 한스럽게 사신 분이다. 다행히 곁에는 늘 그녀가 있었다.질녀를 위해 새벽밥을 지었고, 도시락을 쌌다. 시장을 갈 때도 목욕탕을 갈 때도 질녀와 함께했다. 주변에서 모녀지간으로 착각하기 마땅했다. 그녀가 성장하는 동안은 큰어머니에게는 모정의 싹을 가꾸는 살뜰한 세월이었다. 결혼해서도 출산까지 친정어머니의 손길이 필요한 자리에는 항상 서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던 그녀의 살림을 거들면서 한동안 서울생활도 하셨다. 그녀는 결혼을 하고 여자에게 목숨 같은 가정의 소중함과 가족의 정을 알아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평생을 외롭게 살아 온 고모의 일생을 반추하면서 복받치는 설움을 가누지 못하고 만 것이다. 자매처럼 옷을 입었지만, 난 그녀를 달래거나 말릴 엄두도 못 내고 지켜만 봐야했다. 그날의 설움이 내 가슴에 맺혔을까, 옷은 한동안 장롱을 벗어나지 못했다. 옷을 장롱지기로 묵혀 두기는 고운물색이 눈에 아른거렸다. 가끔 이런저런 행사에 예복이 필요할 때면 그 한복을 꺼내 입었다. 매번 옷고름을 동이면서 발길 닿았던 곳 소식으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전해드린다. 그날 눈물을 참지 못했던 그녀는 고모의 설움을 삭혀드리지도 못한 채, 사십대 초반에 세상을 바쁘게 등지고 말았다.큰어머니는 딸로 의지하던 질녀를 가슴에 묻은 채 의연하게 삶을 가꾸며, 내게 남은 정을 쏟아 주신다. 오랫동안 화초를 가꾸던 화단을 없애고 만든 텃밭에서 가꾼 채소를 다듬어 놓고 가끔 나를 부르신다. 언제나 고운 한복 빛깔만큼 변함없는 큰어머니의 정이다.*수필가 황점숙씨는 2006년'좋은수필', 2013년 '문예연구'로 등단. (사)한국편지가족전북지회장·한글문해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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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7.12 23:02

얼음 한 봉지

앗 뜨거! 요리를 하다가 팔을 데었다. 늦잠을 자 급히 서둘다가 뜨거운 솥 가장자리에 팔이 살짝 닿았다. 약을 찾아 바를 겨를도 없이 겨우 늦지 않게 출근했다. 꽤 붉은 기운이 넓어지면서 후끈거리기 시작했다. 물집은 잡히지 않았는데 몹시 쓰렸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겠거니 생각하며 견뎌보려 했다. 그러나 아픔이 쉽게 가라앉지 않아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닌 성싶었다. 부딪치거나 긁혀 난 상처가 아니라 작지만 화상이 아닌가. 회사 근처 약국을 찾았다. 연고와 붕대를 사서 바르고 친친 감아야지.아직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약국 안은 한산했다. 판매대 뒤에서 연세가 좀 지긋한 남자분과 부인인 듯한 여인과 젊은 아낙이 마주앉아 있었다. 손님 맞을 준비를 끝내고 차 한 잔 마시는 분위기였다.덴 팔을 보여 주니 약사는 냉동실에서 얼음 봉지를 꺼내 주었다. 화상을 입었을 때는 즉시 얼음으로 찜질을 해야 물집이 생기지 않고 빨리 낫는다면서. 얼음을 받아들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멈칫거리는 나를, 밝은 웃음으로 배웅했다. 멋쩍게 약국을 나왔다. 아침 볕이 유난히 포근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입시학원에서 잠시 일한 적이 있다. 공무원이나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주로 다녔다. 학원에서는 수시로 단과반을 개설하고 그럴 듯한 명칭을 붙여 특강을 마련했다. 같은 과목인데 강사별로 몇 개씩 강좌를 개설하기도 했다. 새로 개설한 강좌에 수강신청을 권장하는 일이 나에게 주어진 업무였다. 얼음 한 봉지의 처방을 내린 약사처럼 쉬운 공부법을 가르쳐주거나 더 열심히 하도록 독려하는 일은 할 수 없는 것인가. 학원장의 속사정이 이해는 갔지만 난 도저히 적응이 안 되었다. 학원의 방침대로 학생들을 설득 권유하는 일이 내키지 않았다. 그 길로 뛰쳐나와서 다른 일을 찾았다.책상 위에 수건을 깔고 얼음 봉지를 놓았다. 그 위에 덴 팔을 얹고 일을 시작했다. 얼음이 덴 부위를 달래는 동안 왠지 모를 뿌듯함이 전신으로 퍼졌다. 누구에게라도 큰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저기 주유소 사거리 새로 생긴 약국 아세요?" 웬 얼음이냐고 묻는 직원에게 흥분된 목소리로 노래하듯 말했다. "아, 거기 약국 참 친절해요." 메아리 같은 대답을 들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봉지 얼음이 완전히 녹을 때까지 팔에 찜질을 했다. 약사의 맑은 마음을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안 될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화끈거리던 통증이 잦아들었다. 그 후로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무슨 부탁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그 약국 아저씨의 맑은 표정을 떠올리곤 했다. 어느새 덴 부위는 붉은색이 사라지고 갈색의 가느다란 사선만 남았다. 머지않아 흔적 없이 사라지겠지만, 그날의 감동은 오래도록 기억되리라.*시인이자 수필가인 박갑순씨는 1987년 '자유문학'(시), 2004년 '수필과비평'(수필)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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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7.05 23:02

지구의 경고

나는 너희들의 품이다. 생명의 근원이요 만물을 창조하는 둥지이며 먹이와 삶의 보고다.내게서 육식동물과 파충류와 양서류 등의 동물들이 나왔고 하늘을 나는 새들과 곤충이 나왔으며 아메바와 미생물도 서식한다. 나는 식물을 주어 꽃잎과 열매와 씨앗을 얻게 하고 있다. 나로부터 마실 물도 나오고 먹을 곡식도 생장하고 공기와 햇빛도 받을 수 있다.내안에서 강함과 약함이 나온다. 무서움과 두려움 공포로부터 연약함까지 존재하며 전쟁도 일어나고 평화를 갈망하게도 한다. 나는 네 어미가 품은 백배 천배 아니 헤일 수 없는 더 깊고 오묘한 포용을 하고 있는 존재다. 내가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는가? 내 이름은 지구라 불리는 땅이다. 특이한 것은 내 품안에 인간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영리하며 만물의 으뜸이다. 내가 가장 아끼고 좋아한다. 그러나 나를 가장 많이 괴롭게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나를 갈라서 우리나라 너희나라 하며 주인 행세를 한다. 핵폭탄이라는 것을 만들어 겁을 주고 유도탄 등 전쟁물자로 인간은 물론 나의 품안에 있는 다른 생명들을 죽이기도 한다. 이 무섭고 가공할 무기를 사용하고 살아남은 자들은 그 무리가 힘이 세다고 으스댄다. 나를 이용해서 땅장사를 하는 자들도 부지기수다. 그렇게 돈을 번 사람들은 더 가지기 위해 경제적인 약자들의 호주머니를 노린다. 내가 태어나서부터 수 억 만년을 지나온 동안 인간이 지금처럼 나를 많이 괴롭힌 때는 일찍이 없었다. 적어도 이삼백년 전부터 말이다. 온갖 고약한 약물을 살포하여 내 살을 괴롭히는가 하면 나의 살 깊숙이 쇠말뚝을 박기도 한다. 나의 살 가장자리를 파내서 시멘트나 아스팔트를 발라 나를 답답하게 하고 전봇대나 철골을 밖아 나를 괴롭힌다.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물을 막아서 유속을 빨리하기도 하고 땜과 보를 막아 지형에 따라 자연적으로 흘러가는 물의 흐름을 방해하기도 한다. 공중으로는 비행기를 날려 시끄럽게 하고 배기가스와 공장굴뚝의 연기 온실가스등 온갖 나쁜 것을 배출하여 나를 오염시키고 있다. 200여국의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유엔에서 모여 멍들어 가는 나를 살리겠다고 회의를 열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효과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쓸데없는 핵무기나 유도탄 등 가공할 만한 살상용 무기를 하루빨리 폐기하고 배기가스나 온실가스등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나쁜 것들을 없애기 위한 노력은 게을리 하고 오늘도 도처에서 헤아릴 수없이 많은 무기를 만들어 내고 전투용 비행기를 만들어 내고 있지 않는가? 일찍이 핵폭탄을 만들어 힘을 과시하고 강대국이라고 큰소리치는 국가가 있는가하면 지금이라도 그 대열에 끼고 싶어 기를 쓰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나라가 늘어나고 있다.나는 인간에게 모든 것을 준다. 먹이를 주고 보금자리를 주며 입을 옻과 신발을 주고 관광을 즐기게도 한다. 마실 물과 맑은 공기를 주고 햇빛과 달빛을 받게 한다. 그런 나에게 인간은 무엇을 주는가? 쓰레기를 주고 매연을 주며, 배설물을 준다. 그리고 시끄럽게 한다. 만물의 영장인 너희 인간들이 이제 나에게 어떤 대접을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해주기 바란다. 나를 아프게 하는 일들을 구만 두고 내 본래의 모습을 찾도록 노력하라. 그렇지 않으면 조만간 너희들은 스스로 파멸을 맞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머리에서 열이 나서 나를 감싸고 있던 얼음이 녹아내리고 있다. 온몸이 으스스 몸살이 나고 많이 아프다. 나는 자유와 평화를 사랑한다.*수필가 최기술씨는 2010년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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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6.28 23:02

할머니

할머니는 타고 난 재담가이셨다. 거의 매일 해어진 버선에 헝겊 조각을 덧대어 꿰매며 지치지도 않고 이야기를 하셨다. 그 내용은 참으로 다양했는데 당신의 개인사뿐 아니라 예의범절, 음식 만드는 법, 사회상, 신앙고백 등을 구성지게 넘나드셨다. 그 때마다 턱을 괴고 앉아 말동무가 되어 드린 덕에 나는 20세기 중반에 태어났지만 19세기 말 정서에도 그리 낯설지 않았다. 권사님이신 할머니는 날마다 새벽기도회에 다니셨다. 교회에서 돌아오면 항상 라디오를 크게 트셨다. 잠결에 들은 것이라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닭 우는 소리와 함께 앞뒤로 하는 샘표간장 선전은 외우고 있다. '맛을 보고 맛을 아는 샘표 간장간장 샘표간장!' 아침마다 닭이 울어도 식구들은 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를 단번에 깨울 수 있는 행사가 있었다. 그것은 화초에 재래식 거름을 주는 일이었다. 그 진동하는 냄새에 이 방 저 방에서 한 사람씩 툴툴거리며 일어나지만 할머니의 화초 키우는 취미를 꺾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할머니에게 당뇨병이 생겼다. 합병증으로 눈까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건강을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으셨다. 기거하시는 건넌방은 깡통마다 콩가루, 우유가루, 황률, 땅콩, 곶감 등이 쟁여져 있었다. 물론 당신 돈으로 산 것임을 주지시키며 철저하게 금을 그으셨다. 그 방을 청소할 때 아랫목부터 닦기 시작하여 윗목으로 가면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문제의 우유가루 통이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할머니 몰래 소리 나지 않게 뚜껑을 열고 한 숟갈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최대의 고민이자 유혹이었다. 결국 먹었다. 정말 달콤하고 고소했다. 후에 할머니의 대변인 역할을 하던 도우미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그 방에 들어가는 손주들이 모두 나와 같은 시험에 들었나 보다. 별명이 변호사였던 할머니의 수사과정은 이랬다. 우유가루를 입에 털어 넣은 뒤 침과 엉켜 끈적거릴 즈음에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는 목소리가 탁하다는 것이다. 그 목소리로 증거를 포착하지만 눈으로 확인한 것이 아니니 내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다 알고 계셨단다. 이 사건으로 우리 오남매에게 청문회를 연다면 다들 할 말이 있다. 할머니는 당신의 세 아들 중 막내아들의 자녀들을 편애하여 우리를 분노케 했다. 그 사촌들이 오면 깡통 속에 든 맛난 것들이 다 자기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순위에서 밀린 우리 처지로는 우유가루를 훔쳐 먹어서라도 억울함을 보상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일로 할머니께 '경옥이 너마저!' 라는 실망을 안겨드린 것은 아직도 내 자존심에 흠집으로 남아있다.이제 나도 할머니가 되었다. 미국에 있는 어린 손자가 자라면 나의 말동무가 되어주기를 기대하며 얼굴에 미소를 가득 짓고 영상통화를 한다. 그러나 요즈음 젊은 부부들은 화장실과 처갓집은 멀수록 좋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을 외면한 채 처갓집 근처에 살며 장모님께 아기를 맡기고 맞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외할머니의 시중을 받고 자란 손주는 외할머니에게 더 정을 느끼는 게 당연지사다. 그러니 나처럼 아들밖에 없는 할머니가 손주를 무릎에 앉히고 흘러간 이야기를 하려는 꿈은 물 건너 간 것이 아닐까.*수필가 민경옥씨는'수필시대'로 등단. 창작 오페라 '한국에서 온 편지'대본 우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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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6.21 23:02

그 부두의 삽화

여객선 터미널로 한 남자가 걸어온다. 그는 광장을 가로 질러 대합실로 들어온다. 매표소 앞으로 가서 고개를 젖히고 높이 걸린 시간표를 올려다본다. 그리고 내가 서 있는 구석으로 와서 털썩 주저앉는다. 배가 떠나려면 꽤나 많은 시간이 남은 모양이다. 오월인데도 시월이 연상 될 만큼 하늘이 파랗고 높다. 거기에 레이스 같은 구름이 가득 뿌려져 있다."휴우"하고 남자가 숨을 내쉰다. 먼 길을 왔는지 얼굴은 창백하고 두 눈이 푹 꺼져 있다. 수염이 텁수룩하고 무척 초라해 보인다. 노숙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나는 하릴없는 사람처럼 벽에 기대어 상상을 한다. 아마 그는 밤기차를 타고 왔을 것이라고. 도시로 들어오기 싫어 떠돌던 외로운 방랑자일 것이라고. 마치 딴 세상에서 온 사람처럼 넋이 나간 듯한, 그러나 철학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좀 특이한 차림새였으므로. 그가 뜻 밖에도 낡은 시집을 꺼내든다. 여기저기 뒤적이다가, 메이스 필드의 〈그리운 바다〉에 손이 멈춘다. 공교롭게도 그 시는, 한 때 내가 공책에 적어서 가지고 다니며 외웠던 몇 편 되지 않은 시 중의 하나였으므로 반가운 마음이 들어 곁눈질로 그의 책을 넘겨다본다. -전략-내 다시 바다로 가리그 외로운 바다와 하늘로 가리큼직한 배 한 척과 지향할 별 한 떨기 있으면 그뿐박차고 가는 바퀴 바람의 노래흔들리는 흰 돛대와 물에 어린 회색 안개 동트는 새벽이면 그뿐이니 -후략-나와 함께 여행을 떠나 온 일행들의 애정 어린 핀잔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왜 그리 멍하게 서 있느냐고. 여기까지 와서도 소설을 쓰느냐고. (그녀들에게 모든 글은 소설로 통한다.)젊은 여인이 바람에 날리는 원피스 자락을 누르며 광장을 걸어온다. 과일 행상의 리어카에 수북이 쌓아 놓은 참외의 노란 빛깔이 곱다.밤기차를 타고 왔을 그 남자가 담배를 피워 물었다. 다정한 연인들이 그의 곁에 서 있다. 외로워서 살 수 없을 거라며 여인이 울음을 터뜨린다. 그녀의 애인이 머리를 가슴에 끌어안으며 달랜다. 수학여행을 떠나는지 갑판에는 고만고만한 여학생들이 몰려 있다. 그들은 벌써 갈매기가 다 되어 있는 듯한 실루엣이다. 삼삼오오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바다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뒤로 항구의 배경이 잡히게. 김치. 치즈. 환히 웃는 모습으로 서로의 사진 속에 남기 위한 주문도 가지가지일 것이다. 30년 쯤 후에 저들은 사진첩에서 〈열일곱 살, 항구를 떠나며〉라고 제목이 붙은 저 사진을 들여다보겠지. 바람이 산들거리고 흰 구름이 떠 있던 어느 봄날을 그리워하면서. 뿌우- 뱃고동소리다. 배를 탄 사람들도 부두에 남은 사람들도 환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든다. 어제까지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오늘은 축제 같은 이별을 하고 있다. 적막한 동굴의 깊은 울음 같은 뱃고동 소리를 남겨두고 배는 멀리 사라져 갔다. 파초 잎을 높이 쳐들고 저들을 반길 그 섬에 가는 동안 아마도 저 사람들 모두 새가 될게다. 노래 소리도 높이높이 띄워 올릴 게다.시인이기도 한 김은숙씨는 1990년 '현대문학'(수필)과 2003년'지구문학'(시)으로 등단. 수필집'그여자의 이미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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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6.14 23:02

봄날이 간다

2박 3일의 짧은 기간을 산자락 안에서 머물기로 했다. 야영장의 첫날밤은 생각보다 싸늘했지만 이튿날 산마루를 타고 내려온 봄 햇살은 어느새 따가워져 있었다. 사진기를 챙겨들고 아침나절 제법 멀리 길을 걸었다. 길 아래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길이 있어 걷는다기보다 물소리를 따라 가는 기분이었다. 신록의 수려함이 온 산을 수놓고 있었다. 비슷하지만 제각각 다른 푸른빛, 그 빛에 지쳐 가슴에 우러나는 노래를 절로 흥얼거리고 있었다. '봄날은 간다.'이미 고전이 돼버린 우리가요, 가수 백설희가 불렀던 노래다. 한국의 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중가요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애절한 노래다. 한 시대를 살아오면서 노래 한곡쯤 좋아하게 됨이 어찌 가수 때문이랴. 이 노래의 매력은 분명 그 제목에 있다. 누구나 청춘의 한때를 스쳐 온 '인생의 봄'을 떠올리기 때문일 것이다.이 노래를 나는 누구보다도 잘 부른다. 내 인생의 지나간 봄을 생각하며 스스로 도취되어 부른다는 말이 차라리 옳다. 정말 이 노래를 잘 부르는 분들 많다. 원조인 진짜 가수 백설희씨는 말할 것도 없겠지만 내 가까운 이웃, 돌아온 용팔이도, 친절한 금자씨도 이 노래를 잘 부를 것이다. 가창순위를 매길 수 있는 것도 아닌 이상, 내가 잘 부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인생의 봄'이 허무하다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언젠가 친구가 이 노래를 보내왔다. 편리한 세상이라 이 메일에 보내온 노래였다. 한영애가 부르는 것이 싫지 않았다. 그러나 가슴이 아렸다. 메일을 보낸 사람은 암 투병 중이었다. 얼마 있지 않으면 가고 말 자신의 걸음이었을까, 아니면 이미 가버린 봄날에 대한 회한이었을까. 얼마 후 정말 친구의 봄날은 갔다. 그가 가버린 뒤의 쓸쓸함, 그 빈 자리가 허무해 슬픈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라는 노랫말 때문이었는지 몰랐다. 열아홉의 몇 갑절을 지낸 나이, 그 삶의 길이만큼 얽혀있던 희망도 후회도 함께 가지고 가버린 친구가 마지막 내게 보낸 노래였다. 친구나 나나 함께 지닐 수 있었을 그 처연함이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데 세상의 빛은 저리 푸르다. 그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전화기에 신호가 떴다. 시인 정재영이 보낸 문자다.'눈 빠지게 시린 산하를 두고 이 마음이 타지 못한다면 사랑이 아닐 것 같습니다.'마치 내 마음을 읽은 듯한 그의 문장이었다. 어찌 그는 이 시린 산하의 푸른빛을 사랑이라고 표현했을까. 하긴 이세상은 사랑이 있어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불타는 사랑이 아주 먼 곳에 있으리란 체념은 하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빛깔은 저렇게 아름답다. 그 복판에 내가, 우리가 서 있다. 청춘은 봄이었지만 세월의 영락을 따라가는 것은 정해진 이치다. 우리 모두에게 봄은 가고 있다. 봄만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고 있는 길이요, 인생이 가는 길일뿐이다. 인생의 봄은 지났어도 계절의 봄은 다시 돌아온다. 봄은 가고 다시 오는 것. 푸른 빛 휘감기는 산의 품에서 처연한 마음을 씻는다. 이 봄이 간다. 봄날이 간다.* 수필가 선산곡씨는 1994년 '문예연구'로 등단. 수필집'LA쑥대머리''끽주만필''속아도 꿈 속여도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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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6.07 23:02

단독주택 예찬

"할머니! 싹 났어?" 씨를 뿌린지 겨우 하루가 지난 아침, 눈을 뜨자마자 손자가 물었다. "싹이 나려면 많이 기다려야해. 햇볕도 많이 받고, 물도 많이 먹어야 씨의 눈에서 싹이 나오는 거야." 며느리는 27개월 된 손자를 향해 기다려야 하는 이유를 열심히 가르쳐주고 있었다. "규태야! 할머니랑 씨앗에 물 주러 가자." 점심을 먹고 말을 꺼내자 녀석은 발을 동동 구르며 제 어미에게 옷을 입혀 달라고 보챘다. "엄마! 빨리 옷 입혀줘. 할머니랑 씨앗에 물 주러 갈 거야."작은 컵에 물을 담아 고사리 손을 맞잡고 씨앗에 물을 주었다. 물을 다 주고 나자마자 녀석은 스치로폼으로 엉성하게 만든 화분을 살피며 또 물었다. "할머니! 싹 언제 나와? 빨리 꽃 보고 싶어." 새싹을 기다리는 손자의 마음만큼이나 온 가족들도 싹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하기만 하다. 25년 동안 살았던 아파트를 떠나 주택으로 이사한지 4개월이 지났다. 건강이 좋지 않은 몸으로 주택에서 어떻게 살 거냐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불편한 몸을 움직이기에 아파트는 요새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앞동과 뒷동 사이 간격이 좁고, 게다가 1층인 아파트에서 25년을 살며 나는 햇빛과 바람에 너무도 굶주렸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죽어가는 집안의 식물을 보며, 사람도 그렇게 죽어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햇빛과 바람이 잘 드는 마당이 넓은 집을 노래하고 있었다.간절히 바라면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우연한 기회에 이사한 주택은 넓은 마당과 화단에 창고까지 있는 집이다. 단독주택의 단점인 외풍을 차단하기 위해 도배 전에 2중으로 단열재를 댔고 창문에도 단열처리를 했다. 이웃들의 우려처럼 주택의 삶이 내게 건강악화의 화근이 되는 것은 아닐지 은근히 겁이 나기도 했다.이사를 한 첫날 내게 다가 온 것은 밤의 고요와 어둠이었다. 아파트에선 집 앞뒤로 있는 가로등 불빛 때문에 밤이 늘 낮처럼 환했다. 이웃집의 불빛이 너무도 쉽게 그 빛이 감지되고, 암막 커튼을 치지 않으면 눈이 부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자동차소리는 물론 지나는 사람의 발소리, 말소리, 물 내리는 소리, 소리, 소음…. 그런데 잠을 위해 누운 주택의 첫 밤에 맞았던 완벽한 어둠과 고요는 마치 어느 유배지에 내가 있는 건 아닌지 싶을 정도였다.저물 때까지 한겨울 해의 흔적은 길고 깊어 오후엔 해를 피해 달아날 정도였다. 연일 기록적인 한파라는 뉴스가 오르내려도 햇살이 길게 머무는 주택 안에서, 하나씩 장만한 작은 화초들은 겨울을 모르는 듯 생기가 넘쳤다. 층간소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주택은, 주말마다 아이의 운동장으로 변한다. 아이는 걷는 법이 없이 거실과 방에서 무조건 달리고 뛴다. 마당에서 비눗방울 놀이를 하고, 창고에 놓은 탁구대에 올라앉아 제 아비와 탁구라켓을 잡는다. 집안 가득 머무는 햇살과 바람과 더불어 뛰놀며 우리의 예쁜 희망새싹은 쑥쑥 잘도 자란다.봄의 문턱에서 씨앗을 구입했다. 해바라기 씨앗은 햇빛이 잘 드는 화단 구석구석에 심었다. 빈 화분에는 케모마일과 꽃양귀비, 기생초, 쑥근천인국을 뿌렸다. 상치와 방울토마토씨앗을 손자의 고사리 손위에 얹어주며 스치로폼 박스로 만든 화분에 뿌리게 했다. 주말, 집엘 들어서며 손자는 제일 먼저 씨앗의 안부를 물었다. 아이는 씨앗을 뿌리며 기다림과 희망을 가슴에 담았을 것이다. 혹 보름을 기다려도 방울토마토 씨앗에서 싹이 나지 않는다면 모종을 사다 심을 예정이다. 마당 넓은 집에서 손자가 품은 희망에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한 선한 거짓말을 준비 중이랄까?우리 집의 가장 귀한 희망새싹이, 씨앗을 뿌려놓고 그 싹을 기다린다. 녀석의 탄생과 성장을 지켜보는 우리들의 마음만큼 간절함을 담은 아이의 기다림이다. 아이는 이 기다림을 통해 인내를 배우고 자연에 대한 신뢰와 수고의 대가도 알게 될 것이다. 햇빛과 바람과 별이 머무는 마당 넓은 집은, 지금 새싹을 향한 희망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수필가 유영희씨는 2005년 '수필과비평'으로 등단. 수필집 '남편의 외박을 준비하는 여자''자장면과 짬뽕사이''발칙한 행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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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5.3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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