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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가을

입추가 지나고 가을이 코앞에 왔음을 느낀다. 뜨거웠던 여름을 그냥 보내기 아쉽다는 듯이 아직도 한낮의 기온은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말복치레도 하였으니 견딜 만은 하다. 이런 때면 항상 떠오르는 말 중에 천고마비가 있다. 벼가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계절인데, 이 가을에 왜 말이 살찌는지는 잘 모르겠다. 가을은 서늘한 바람이 불어 활동하기 좋은 것은 확실하니, 이런 때에 사람도 같이 마음의 살이 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앞을 다퉈 떠오르는 다른 단어는 바로 독서의 계절이다. 그런데 이 말의 유래는 여름에 실컷 놀았으니 이제는 책 좀 읽어보자는 계몽차원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면 믿을까 모르겠다. 하긴 내용적으로는 서로 같은 말이기는 하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어릴 적 취미를 책 읽는 것으로 삼았던 세대가 바로 50,60세대다. 뭐든 읽고 싶어도 마땅히 읽을 책이 없었지만 그래도 무엇인가는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던 세대이기도 하다. 나도 그 중의 하나였으며, 먹을 것도 부족한 판에 읽을거리란 그야말로 배부른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말로만 해왔던 독서를, 올해에는 제대로 읽어보자고 다짐하고 목표도 제법 크게 잡았다. 지난해 말부터 내 마음을 흔들기 시작한 독서에 대한 갈망이 새해 들어 본격적으로 발동하기 시작했다. 이에 부응하여 세 자릿 수라는 거창한 계획을 세웠던 때가 새해벽두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어려운 금연을 선언하듯 여기저기 소문을 내고 다녔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으니 다시 무를 수도 없다는 각오로 임했다. 그러던 7월, 한 여름의 더위가 절정을 이룰 때 목표를 조기 달성했고 가슴에는 뿌듯함이 넘쳐났다. 그러나 매번 책을 읽고 나면 항상 밀려오는 것은, 내가 왜 이제야 독서를 하게 되었을까 하는 아쉬움이었다. 항상 마음만 앞서 갔을 뿐 행동은 늘 뒤쳐졌던 후회였다. 좋은 뜻으로는 벼가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선인을 통해 자아반성을 하는 것이 바로 독서임을 느낀다. 이런 독서는 누구에게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고 어떤 지식을 모른다고 나무랄 어떤 사람도 없는 이점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이 나이에 책을 읽어서 무엇 하겠느냐고 말하지만, 나는 가을에 말이 살찌듯이 내 마음도 살찌우고 싶다는 욕망에 계속하여 채찍질을 해왔었다. 어제는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를 읽었다. 제목부터 조금은 딱딱한 분위기를 주고 있지만, 특정한 책을 훗날 성인이 되어 다시 읽어가면서 처음 읽었을 당시의 느낌과 새롭게 얻어야 할 느낌을 비교해 정리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봤다. 일반적인 독후감과 다르면서, 저작할 당시의 사회 배경을 현 사회에 비교하여 독서의 기본을 거론하는 것이 바로 독서의 힘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독서를 많이 하지 않는다는 통계가 있다. 선진국으로 가는 마당에 참으로 부끄러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요즘처럼 어수선한 사회에서는 인성이 중요하며, 사람을 다루는 인문학이 중요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이런 현상을 치유하는 방법의 하나에 독서가 제격이라는 것도 다 알고 있다. 마음은 있지만 환경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말은 핑계가 되지 못한다. 나는 올해 목표를 얼마나 더 상향조정해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읽어도 되고 안 읽어도 되는 취미적 독서에서 벗어났으니 이제 삶을 바꿀 독서가 되기를 욕심내본다. △수필가 한호철씨는 2004년 계간지 〈문예연구〉 수필부문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한국농촌문학상(2010), 익산예총공로상(2011), 문예연구 작가상(2014)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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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15 23:02

너를 떠나보내며

너는 하얀 시트 위에서 나신으로 떨고 있다. 너의 몸 이곳저곳엔 봉숭아물처럼 빨갛게 물들어 있다. 아무런 말도 없이 할딱이는 몸짓만 있다. 이제 이것으로 우리의 인연은 끝나는 것일까. 너는 지금 이 이별의 순간 무슨 생각을 하는 거니. 우리의 만남은 길었지만 헤어짐은 이렇게 한순간인 것을. 나 또한 아무런 말없이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며 멀거니 바라만 보고 있다. 무슨 말을 하랴. 우리의 젊은 날, 20년간의 불편한 동거생활이 참혹하게 끝나가고 있는 판에. 너는 어느 해인가 봄에 나에게 찾아왔었다. 너를 처음 대하였을 때, 그냥 그저 일상의 그렇고 그런 대수롭지 않은 만남으로 여겼다. 미모가 뛰어났는지, 성격이 좋다든지 따위에 무심하였다. 나의 현실이 너를 염두에 둘만큼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의 모든 관심사는 이놈의 딱한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죽어라고 아등바등하던 때였으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처음부터 살을 섞는 사이가 되었다. 지금에서야 생각하면 너는 애초부터 도덕이니 윤리 따위에 초탈해 있었다. 그런 점에선 나 또한 누구를 비난할 처지가 못 되는 것을 안다. 너와 나에서 우리가 된 이후, 너는 마치 당연한 양 많은 것들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산으로, 바다로 바람을 쐬러 가자고 하질 않나. 운동해야 한다고 강권을 하질 않나. 끼니때마다 기름진 음식을 버리라고 조르질 않나. 된장을 먹어라, 채소를 먹어라. 잡곡밥을 먹어라. 고기를 먹어선 안 된다. 나는 너의 넌더리나는 간섭이 싫었지만 너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산으로 들로 자연을 대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너의 강력한 요구로 시작된 일이라지만 나 또한 그런 시간이 좋기는 하였다. 간혹 이런 게 행복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기까지 했으니 좋긴 좋았던 모양이다. 때때로 육모정 계곡에 가서 발을 담그고, 피톤치드 뿜어대는 산림을 찾고, 기도가 잘된다는 사찰에 기웃거리며 스님에게 차 한 잔을 청하기도 하였다. 어쩌면 너와 만남은 이런 삶으로 전환하라고 찾아온 인연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원하든 원치 않든 나의 가치는 점점 바뀌어 갔다. 그러나 너는 점점 요구가 심해졌다. 급기야 한복을 입으라 하고, 시골에 한옥을 짓고 살자고 졸랐다. 나는 그 말이 가난한 나를 조롱하는 것만 같아 여러 날을 불쾌해하였다. 누군들 좋은 것을 모르냐 이 말이다. 너의 마음을 모르는 바도 아니나 해 줄 수 없을 때 그 현실적 고뇌를 너는 정녕 모르고 있었다. 너는 너의 요구가 묵살되고 나의 냉소적 반응이 계속되자 급기야 나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밤이고 낮이고 네가 저지른 횡포는 이미 도를 넘고 있었다. 너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너의 광란에 질식하여 죽을 것만 같았다. 치를 떨었다. 정말이지 극단적인 생각을 하루에도 골백번 해야 했다. 나는 너와의 이별을 꿈꾸었다. 원만한 이별.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고 소중한 추억만 간직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이별을 꿈꾸었다. 이제 그만하자. 잘 가라, 그대여. 나는 네가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 너의 숨통을 조를 것이다. 너의 증오보다 나의 적개심이 더 붉다. 이것으로 훗날 또 나의 과보를 걱정할지라도. 나는 필시 너를 해하고야 말 것이다. 미안하다. 그대여, 용서해다오. 너의 목을 조르는 나의 팔이 떨리고 심장은 북처럼 요란할 것이다. 너는 이제 희멀건 시트 위에 피를 토하고 널브러져 있다. 팔딱거리던 너의 숨도 끊어진 듯 정막이 흐른다. 너는 두 자식과 함께 처참하게 쓰러져 있다. 아~ 너는 새끼를 배고 있었구나. 네가 빠져나간 자리가 휑하다. 이제야 나는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나의 20년의 비후증수술은 이렇게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의사는 핏물처럼 빨갛게 물들인 솜을 네가 빠져나간 자리에 쑤셔 넣고 있다.△수필가 이순종 씨는 2010년 〈수필과비평〉으로 등단. 수필집〈내 마음속 99개 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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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08 23:02

내 마음의 리모델링

구구 팔팔 이삼 사(死), 몇 년 전 이 말을 들었을 때 아무리 우스갯말이라지만 그렇게까지 오래 살까, 생각했었다. 하고 싶은 일도 못하면서 생명만 유지하는 그런 삶은 살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육십 중반에 가까운 나에겐 구십구 세까지 팔팔하게 살고 이삼일 아프다가 죽는다는 우스갯말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번에 북유럽 여행을 갔을 때 일행 중 80세 어르신도 두 명이나 있었다. 이런 추세로 보면 구십구 세까지 사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 같다.요즈음 시대는 리모델링 시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성싶다. 리모델링이라는 말은 아파트를 리모델링한다는 말에서부터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리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 뿐이겠는가? 우리 몸의 리모델링도 시작되었다. 여자들이 나이가 들면 눈 꼬리가 처지게 되어 눈물이 나고 짓물러 눈 꼬리를 올리는 수술을 많이 한다. 여자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도 그렇다. 다리 연골이 닳아 무릎을 수술하고, 장기가 좋지 않으면 장기 수술도 한다. 이빨을 다시 심는 작업은 연세 드신 분들에게는 거의 노인세계로 들어가는 통관절차다. 꼭 노인이 아니더라도 젊은이들도 이가 좋지 않으면 리모델링을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어떤 이는 노안수술을 위해 큰돈도 아끼지 않는다. 수술을 해서 좀 더 보람 있고 편리한 삶을 산다면 그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지난해 백내장을 수술할 때 노안수술까지 하여 현대 의료혜택을 누리고 있다. 모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 화제는 대부분 건강이다. 무엇이 어디에 좋다더라.하면 바로 자신에게 일반화시켜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몸의 잘못된 곳은 다 고치고 좋다는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건강을 유지하면 아무래도 건강하게 오래 살지 않겠는가? 스마트폰에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가 많이 돌아다니는 것도 그만큼 건강이 중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건강에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지 우리나라 노인의 평균 수명이 길어진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우리의 몸은 건강해졌는데 우리의 정신은 어떤가? 누가 할머니라고 하면 기분 나빠하면서도 어느 모임에서건 자신이 연장자라고 생각되면 은근히 대접받고 싶어 한다. 우리 또래들이 옛날 같으면 상(上)할머니라면서 자신을 높이고, 일하기는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퇴직자 둘이 있었다. 한 사람은 이 나이에 무엇을 하느냐고 가만히 있었더니 그 사람은 발전 없이 그대로 죽었고, 다른 한 사람은 열심히 노력하여 더욱 황금기로 살았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노인복지관마다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은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직도 무언가 할 만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우리 몸을 리모델링하여 젊게 살듯이 마음도 리모델링하여 봉사나 취미 활동, 건강관리도 열심히 하는 분을 보면 본받고 싶다. 100미터 달리기 선수는 100미터만 달리면 몸에 힘이 다 빠져서 더 이상 달릴 수 없다. 1,000미터 선수는 1,000미터에 맞추어 자신의 힘을 조절하기 때문에 100미터는 거뜬히 달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99세까지 팔팔하게 사는데 자신의 목표를 정하고 건강관리를 하면 어느 정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난 요즈음 내 마음을 리모델링하고 있다. 앞으로 10년까지는 현역으로 직접 활동하고 싶다. 나이 들었다고 뒤로 빼지 않고 적극적으로 봉사와 자기관리 그리고 민폐 끼치지 않고 살아간다면 구구 팔팔 이삼사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려니 생각한다. 물론 하나님의 허락과 보호가 있어야겠지만 말이다. △수필가 윤효숙씨는 2010년 〈대한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한 송이 들꽃처럼〉, 성지순례 기행문 〈어두움에서 빛으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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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01 23:02

새들의 동네

5월은 삼라만상이 은총을 받는 시절이리라. 푸르른 이파리가 산야를 덮고 햇살이 다사롭기 그지없다. 활기찬 생명의 물결을 보면 눈이 황홀하다. 이런 계절에는 새들조차 조물주의 손길을 알아차리고 알을 낳고 기르기에 여념이 없다.오늘은 아내랑 공원의 숲길을 소요하다가 느티나무 그늘의 벤치에 앉는다. 덕진공원의 연꽃 단지에 연잎이 수면 위에 동동 떠 있다. 더러 대궁을 밀어 올려서 봉오리가 봉곳하게 피어오른 것도 있다. 연잎 사이로 논병아리 두 마리가 노닐고 있다. 머리에 빨간 리본을 단 어미 논병아리가 앙증스럽게 귀여운 어린 새끼를 데리고. 어미가 먼저 벌레를 한 마리 잡아서 새끼의 입에 넣어준다. 새끼가 부리를 벌리고 잽싸게 받아먹는다. 이번에는 먹이를 부리로 가리키며 스스로 잡아먹게 한다. 그러더니 날개로 새끼를 안은 채 조속조속 졸고 있다. 이윽고 연잎을 밟고 미끄럼을 타는가 하면 물속으로 들어가 둘이서 물바퀴를 휘저으며 유영을 한다. 먹여주고 다독이며 혼자서 살아가는 훈련을 시키는 것이려니.잠시 눈길을 돌려 건너편의 소나무 단지에 시선이 머문다. 백로들이 흰 구름으로 덮여 있다. 다른 계절이 아니면 둥지를 떠나 먹이를 찾아 모두 떠나곤 했다. 아마 알을 부화하거나 새끼를 기르려는 정성을 다 하는 것이려니. 암수가 일심동체로 저들의 혈육을 애정으로 지키는 게 아닌가. 집단으로 소나무 위에 둥지를 튼 무수한 백로들이 단 한 마리도 신성한 의식에서 이탈하지 않은 채. 저들은 암수가 교대로 알을 품거나 먹이를 물어다 먹인다. 햇살이 따가우면 날개를 펴서 그늘을 만들어 준다. 배설물이 넘치면 물어다 청소를 하며 잠자리를 돌본다. 페리칸의 수컷은 엄마 새가 새끼들을 지나치게 돌보다가 죽어가는 것을 보면 제 몸에 상처를 내어 피를 먹여서 살린다고 한다. 세끼들이 살아서 자랄 때까지 계속하여 먹이다가, 자기는 한 입도 먹지 않고 서서히 죽어간다는 것이다. 병아리를 데리고 마당에서 놀던 암탉은 독수리가 달려들면 새끼들을 모두 품고 제 살이 뜯겨도 놓아주지 않는다. 까치도 개구쟁이들이 제 알을 훔쳐 가면 머리를 쪼아가며 울부짖는다. 이 새들의 엄마와 아빠의 모정이나 부정은 살신성인의 경지라 할만하다.새들이 저토록 새끼들을 몸과 마음을 다하여 정성을 바치는 사랑을 본능이하고 가볍게 넘길 수 있을까. 이는 인간중심의 경솔한 오만이다. 새들도 인간들이 가지는 감정과 생각을 나누어 가지고 살아간다. 저들의 단순하고 탐욕을 모르는 삶을 보면 장자나 노자가 대수로울 게 없다.새들의 가족과 생활을 엿보면서 나조차 반성문을 쓰고 싶다. 우선 내가 아버지로서 다섯 남매를 기른 뒤안길을 헤아린다. 과연 새들에게 비하여 부끄러운 단면은 없는가. 오히려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 많다. 이로 보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은 새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사랑의 손길도 보내야 한다. 인지가 앞선다고 편리한 문명을 좇다가 이 지구를 병이 들게 한 죄책도 반성해아 한다. 인간들의 오만과 이기심 때문에 지구를 떠나는 가족들이 무수하다. 날마다 새와 짐승과 나무와 꽃들이 사라져 가는 현상은 가슴이 아프다. 지구의 사막화가 내다보이는 불안한 현실을 개탄하고 자연의 순량한 새들에게 외경심의 인사를 보내고 싶다.오늘은 새들의 사랑과 평화를 배우며 미소를 짓는다.△ 수필가 이종승씨는 1993년 〈수필과비평〉, 1995년〈한국수필〉로 등단. 수필집 〈새벽이 열리는 집〉 〈정갈한 신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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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25 23:02

엄마의 꽃밭

어느 날, 한동안 잊고 지냈던 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시골에서 봉숭아꽃을 따왔단다. 무료하던 차에 냉큼 달려갔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그녀가 반갑게 맞았다. 그녀와 나는, 매실차를 마시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해질 무렵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일어섰다. 그녀가 미리 싸 놓은 보따리를 내게 안겨줬다. 묵직했다. 오이, 가지, 깻잎, 풋고추 등과 함께 그녀의 넉넉한 정까지 더해진 무게다. 남에게 베풀기 좋아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그녀가 봉숭아꽃을 빌미로 나를 집으로 초대한 셈이다. 연분홍, 하양, 주홍빛이 선연한 봉숭아꽃과 이파리는 투명 봉투에 담겨있었다. 봉숭아꽃 봉투를 전해 받는 순간, 울컥했다. 이 년 전, 이즈음에 돌아가신 친정엄마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나는 들킬세라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돌아섰다.내가 나고 자란 고향은 영광군 불갑면이다. 내륙 쪽에 위치한 불갑은 자연경관이 빼어난 고장으로, 불갑산은 사시사철 등산객들의 발길이 잦고, 상사화 군락지로 잘 알려진 관광지다. 뿐만 아니라 암울했던 나의 초, 중학교 시절, 유일한 피난처 같은 곳이기도 하다. 우리 집은 중학교 관사를 포함해 다섯 가구가 채 안된 작은 동네 맨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었다. 담장도, 대문도 없는 허름한 집이었지만, 전망은 최고였다. 토방 끝에 서면 오미산자락이 훤히 내려다보이고, 징검다리 건너 기와집 너른 마당에서 덕순이가 고무줄놀이하는 모습도 선명하게 보인다.해마다 여름이면 우리 집 주변엔 이름 모를 꽃들의 향기가 진동했다. 유달리 꽃을 좋아하신 엄마의 부지런한 손길 덕분이다. 벌, 나비를 유혹하던 꽃밭에 나는 자주 머물렀다. 엄마의 꽃밭은 소박하고, 다소곳한 여인의 얼굴을 품은 듯 했다. 밤새 지어놓은 거미집엔 잠자리가 포로처럼 붙잡혀 있곤 했다. 나는 어린 마음에 불쌍해서 잠자리를 구출해서 날려주곤 했다. 아침햇살이 퍼질 즈음, 살포시 꽃봉오리를 접던 연보라 빛 물망초의 청초한 모습은 지금도 아련하다. 기찻길처럼 긴 빨랫줄 지지대를 감고 집 앞 밤나무까지 세력을 넓힌 나팔꽃은 잠꾸러기 막내를 깨우기라도 하듯 연신 기상나팔을 불어댔다. 마당가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온 가족이 멍석에 빙 둘러앉아 엄마 손맛 칼국수를 달게 먹을 때, 소문도 없이 피던 하얀 박꽃은 내가 가장 좋아한 꽃이다. 그 꽃을 보고 있노라면 금세 엄마 품처럼 포근해진다. 봉숭아꽃은 리어카 창고로 쓰던 산모롱이 외양간 주변에 도열하듯 피었다. 여러 색깔의 겹 봉숭아는 꽃 대궁이 유독 튼실했다. 꽃이 피면 엄마는 분주했다. 꽃과 꽃잎, 명반을 절구통에 넣고 콩콩 찧었다. 푸르죽죽한 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다져지면 손톱크기 정도로 모양을 만들어 우리들의 손톱에 하나씩 올리고 잘근 묶어 주셨다. 꽃물이 들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했다. 참을성이 없던 나는 엄마 몰래 풀어보다가 지청구를 듣던 기억이 또렷하다. 아침에 잔뜩 기대하고 매듭을 풀면, 손톱뿐만 아니라 주변 살까지 검붉은 물이 들고 쭈글쭈글해진 모습에 적잖이 실망했었다. 시간이 지나면 비로소 고운 빛을 뽐낸다. 첫 눈이 올 때까지 손톱 끝에 꽃물이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이뤄진다는 설을 믿으며 우리들은 달뜬 나날을 보냈다. 이젠 봉숭아꽃 찾기도 쉽지 않지만,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네일숍의 그늘에 가려 꽃물을 들이는 이도 없을성싶기도 하다. 지지리도 가난하고, 옹색한 시골 살림에 일곱 명이나 되는 자식을 먹이고, 입히시는 일이 얼마나 대간하셨을까? 꽃밭을 가꾸시며 엄마는 고단한 당신의 삶을 잠깐씩 달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오는 여름휴가에는 짬을 내 엄마가 잠들어 계시는 불갑면 고향 선산에 다녀와야겠다.△시인 겸 수필가인 류미숙씨는 2003년 월간 〈한국시〉(수필)와 2007년 〈한맥문학〉(시)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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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18 23:02

웃음꽃

출근길에 노란 버스를 만났다. 여자 운전자가 저만큼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어린아이를 발견하고 차를 멈춘다. 어서 건너가라고 손짓하며 해맑게 웃는 모습이 한 송이 꽃 같다. 아이가 총총 걸어서 노란 버스를 탄다. 아이를 태우고 병아리처럼 뒤뚱거리며 지나가는 차를 한참 동안 바라본다. 어느새 입가에 꽃향기 퍼지듯 노란 웃음꽃이 피어났다. 최근 주말이면 고속버스를 타고 상경하는 일이 잦다. 정안 휴게소에는 통기타를 치면서 맑은 목소리로 7080세대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는 무명 가수가 있다. 무대 앞에는 백혈병 소아 암 어린이 돕기 모금함이 놓여 있다. 먹고 싶은 호두과자 한 봉지 값을 거기 넣고 싶은데 용기가 없다. 모금함에 다가가는 발길이 많다면 자연스레 그 무리에 휩쓸려 맘을 담을 수 있으련만. 호두과자와 아메리카노를 든 많은 손들이 무심히 그 앞을 지나친다. 오늘도 용기 없는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차에 올라서도 마음이 개운치 않다. 용기 없는 자신이 한심하다. 옆으로 스치는 풍경도 시큰둥하다. 고개를 흔들어 기분을 바꾸려 애를 쓰다 한 송이 꽃을 발견한다. 달리는 버스 안인데도 그 향기가 코에 스미는 듯하다. 입술에 환한 미소가 피어난다. 아침에 만난 그 웃음꽃이다. 그녀에게서 받은 해맑은 웃음. 그녀는 내게 웃음꽃을 선사했다.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사진 속의 나는 천편일률적으로 웃고 있다.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보조개에 대한 설명을 하던 담임선생님께서 나의 보조개를 찾아주셨다. 웃을 때만 살짝 보이는 볼우물. 그 후로 나는 많이 웃는 사람이 되었다. 내 웃는 모습도 보는 사람에게 웃음꽃 선물이 되면 좋으련만. 길을 가다 만난 외국인들은 눈이 마주칠 때 하나같이 웃음을 선사한다. 누구인지 몰라도 그냥 반갑게 웃어준다. 구레나룻이 멋스럽게 난 노신사건, 뱃살이 퉁퉁한 젊은 여성이건 그들은 몸에 밴 자연스런 웃음꽃을 나눈다. 그들을 대하면 자연스레 웃음이 나온다. 거울처럼 마주보며 웃으니 어색할 것도 없다. 태교할 때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책을 읽어주는 것은 고전이다. 이제는 웃음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어떨까.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웃는 것을 익힌다면 화난 사람처럼 굳은 표정으로 스치는 이웃을 마주하지 않으리라.아기는 태어나 3개월이면 눈을 맞출 수 있다고 한다. 엄마의 웃음이 망막에 잡히면 아기는 웃음으로 반응한다. 찡그린 얼굴을 보고는 그만 울음을 터뜨린다. 갓난아기도 따라할 수 있는 쉽고 편한 웃음을 아끼고 사는 우리들은 아닌지. 최근엔 웃음이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기재로도 사용된다. 웃을 일이 있어서 웃는 게 아니라 웃다 보니 웃을 일이 생긴다고도 한다. 아무리 사소한 물품도 자본 없이는 생산할 수 없지만 웃음은 자본 안 들이고 만들 수 있을 뿐더러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서도 예외다. 무수히 만들어도 과잉공급이라 탓하지 않고, 설령 소비하지 않아도 적채되지 않는다. 무한정 생산해도, 아낌없이 소비해도 되는 것이 웃음이다.많은 꽃들 중 웃음꽃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 있을까? 소심한 성격 탓에 선뜻 모금함에 다가가지 못한 내겐 웃음꽃이 있다. 무례하게 운전하는 사람을 만나도, 무단 횡단하는 사람 때문에 급정거를 해야 할 때도 노란 버스의 그 운전자처럼 먼저 웃어 주리라. 초록 나무들로 가득한 저 산처럼 온 세상이 웃음꽃 만발하면 좋겠다. △수필가 박갑순씨는 1987년 〈자유문학에 시, 2004년 〈수필과비평〉에 수필 등단. 현재 월간 〈소년문학〉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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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11 23:02

길,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굵은 소나무 껍질이 세월의 깊이를 말해준다. 솔 향은 둔해진 후각을 자극하고 아름드리 적송의 의연한 자태는 잠자던 이미지를 깨운다. 마음이 울적하고 삶의 좌표를 찾지 못해 방황할 때 찾아가는 곳이 국사암에서 불일암 가는 길이다. 지리산 골골마다 아름다운 길이 있지만 이 길은 내 몸의 생태계를 원시로 회귀해주는 묘한 마력이 있다.어느덧 내 몸은 편리함만 좇아가는 문명화된 도시적 삶에 익숙해져 있다. 걷는 시간이 많지 않아 몸은 점점 둔해지고 마음마저 삭막해진 느낌이 들 때면 훌쩍 떠나는 곳이 국사암이다. 암자는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안식처요, 가문 마음을 촉촉이 적시는 단비다. 훌쩍 떠나면 반겨줄 곳이 있고 기댈 수 있는 곳이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헝클어진 머리도 추스르고 검게 그을린 마음도 헹구어 바람에 말릴 수 있는 곳으로 떠났다. 솔잎이 떨어진 산길은 살포시 내린 비에 젖어 발바닥의 촉감이 부드럽다. 작년에 보았던 나무들도 반갑게 맞아준다. 노란 생강나무꽃과 눈웃음을 하고 돌아서자 갈참나무가 해맑게 미소 짓는다. 붉은 문양으로 단장한 서나무도 살갑게 다가온다. 수많은 나무가 공존하며 살아가는 걸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경쟁에서 승리하는 사람만이 짱짱하게 버티는 우리네 삶과 비교하면 산속 나무들은 얼마나 순수하고 덕스러운가. 인간은 나이 들수록 병들고 추해져 말년에는 단절된 삶을 살다 사라지는데 나무는 해가 갈수록 품위 있고 의젓한 자태를 갖추고 있으니….한참을 걷다 보니 심장이 점점 빨라지며 호흡도 가빠진다. 잠자던 몸의 이곳저곳에서 격렬한 반응으로 신호를 보낸다. 느리게 돌던 혈관 속의 피가 빠르게 움직인다. 세포가 기지개를 켜자 몸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머릿속도 맑은 기운이 들어와 투명해진다. 산이 주는 행복 바이러스다.스님 한 분이 장삼 자락을 스치며 지나간다. 지금도 구도의 길을 찾아 떠날 때의 초발심을 지니고 있을까? 아니면 속세를 그리워하는 마음일까? 괜한 의문을 품으며 스님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불일암이 가까운 듯 거센 물소리가 들린다. 불일폭포다. 수직으로 파문을 일으키며 낙하하는 물줄기가 햇살에 비쳐 무지개를 연출한다. 물살은 깨지고 부서지고 흰 포말을 지으며 계곡을 따라 흘러간다. 불일폭포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흘러 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어 생명의 물로 환원할 것이다조선 시대 선비들이 쓴 지리산 유람기를 보면 세속에서 그리는 이상형인 청학동 가는 길이 불일폭포를 지나는 바로 이곳이라고 한다. 내가 서 있는 이 길이 바로 현실의 땅과 이상향의 경계인 것이다. 몸은 현실이고 마음은 이상향으로 가는 경계에 서 있는 나의 심정과 닮았다. 때로는 삶이 힘겹고 좌절을 겪을 때 건너는 피안의 세계. 결국 내 마음이 안과 밖 사이를 구분 짓는 것은 아닌지. 문득 떠오른 이런 생각들이 각성을 일으키는 분발심으로 작용하는 나를 바라본다. 생각이 일어나는 뿌리를 찾아가면 내가 보인다. 이 길 위에서 어느덧 내 마음은 촉촉한 생명의 물로 촉촉하다.△수필가 이종호씨는 1999년 〈표현〉신인문학상으로 등단. 계간〈문예연구〉편집장·계간〈역사와문화〉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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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04 23:02

촌로(村老)의 한 마디

길게 말하는 데는 도통 재주가 없어서인지 조리 있고 긴말로 좌중을 이끌어가는 사람을 보면 부러울 때가 있다. 감칠맛 나고 유머까지 섞이면 금상첨화다. 그런가 하면 짧은 한마디인데도 오래도록 마음에 꽂히는 경우가 있다. 성현(聖賢)의 명언이 아니더라도 그렇다.예전에 같은 마을에 살던 어르신 이야기다. 입은 무겁고 가방끈은 짧지만, 마음씨 좋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무거운 입을 열어 한 마디씩 던지면 짧지만, 속 깊은 말이 되었다. 마을에서도 쓸 말만 한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는 사람은 어김없이 그의 한 마디 경고를 들어야 했다. 거짓부렁 하는 아이들도 그의 꾸지람엔 고개를 숙였다. 그가 헛기침하며 나타나면 그의 입을 주목해야 했다. 그가 가장 애용하는 한 마디는 사람이 그러면 못 쓰는 거여.였다. 그때는 그러려니 했었는데 요즘에 와서 되새겨 보면, 큰 가르침이 들어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화려한 수사(修辭)나 자상한 설명이 없었는데도 그 말이 생각난다.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면 아무 쓸모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짧지만 얼마나 의미 깊은 말인가. 아마 그의 삶에서 우러나온 진솔한 이야기라 그런 것 같다. 찬찬히 곱씹어보면 그의 한 마디 속에 들어있는 메시지는 사람 노릇이 아닐까 싶다.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 노릇을 하며, 사람답게 사는 것일까?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원초적 질문이다. 누군가로부터 사람 노릇을 못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치자. 아마 이 말처럼 치명적인 평판은 없을 것이다. 반대로 사람 노릇은 하며 산다는 말을 듣는다면, 어느 정도 사람 구실을 하며 살고 있으니 그리 부끄러운 삶은 아니라며 자위하게 될 것이다.당신은 사람 노릇 하면서 살아왔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 얼버무리거나 궁색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사람 노릇이란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기본적인 노릇인 줄 알면서도 대답하기 쉽지 않다. 조선 중기의 문인 성여신은 주인이 주인 노릇을 하면 집이 광채가 나고, 주인이 주인 노릇을 못하면 집이 잡초로 덮인다.라는 말로 아들을 훈계했다 한다.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맡은 바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해독을 끼친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리라. 어른 노릇 제대로 못 하여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힘들게 한 어른들이 새겨들을 이야기다. 사람 노릇 중에서도 어른 노릇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일이 어른 노릇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면서도 행동으로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게 아닌데. 하며 자탄하는 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요즘 입에 올리기조차 부끄러운 어른들이 있어 국민의 탄식을 부르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뻔뻔한 손을 가슴으로 옮겨, 나 자신의 어른 노릇부터 살펴볼 일이다. 사람 노릇 제대로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사는 동안 정녕 이룰 수 없는 명제일까. 오늘도 촌로(村老)의 짧은 한마디가 나를 향해 꾸짖는다. 세상을 향해 매섭게 질책한다. 사람이 그러면 못 쓰는 거여. △수필가 문경근씨는 〈대한문학〉으로 등단. 수필집〈학교 잘 다녀왔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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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6.27 23:02

그녀는 더 예뻤다

일방적으로 예정보다 한 시간을 앞당겨 출발을 알렸다. 그녀의 집에 초대 받은 문우 열두 명은 석 대의 차에 분승하여 농촌 동인 전미동으로 향했다. 늦은 봄 햇살이 온 동네에 가득한 스승의 날 점심나절, 철문을 열어놓고 화장도 미처 하지 못한 그녀가 집 앞에서 우리를 보고 반색하며 안으로 맞아들였다. 영 딴 사람처럼 보이는 그녀의 민낯에 낯설어 나는 잠깐 멈칫했다.“벌써 출발한다고요? 이제야 김치 담아 놓고 나물 준비하고 있는데, 어쩌지요? 알았어요. 어서 오세요.” 나의 전화에 당황하던 그녀가 화장도 못하고 정신없이 시계만 보며 두서없었을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상추 쌈밥에 제비집 구경을 시켜주겠다 해서 모두 부담 없이 나선 길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심성대로 일을 벌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직장 여인의 화장은 자존심이고 필수다. 조금씩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돌아와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기 마련이다. 더구나 연예인 수준의 분장을 하던 여성이라면 더더욱 엉뚱한 모습으로 달라질 수 있다. 그녀도 우리에게 민낯을 보이고 싶진 않았을 텐데, 우리는 기습을 한 모양새가 되어버렸다.손수 뜯어다 말렸다는 더덕, 고사리, 삿갓나물과 미나리, 들깨 머위 탕, 그리고 작년 가을, 직접 쑤어 와서 문우들의 입을 호사시켰던 도토리묵 등, 자연 친화적인 온갖 음식들이 그녀의 손맛으로 준비되고 있었다. 어디 그뿐이던가, 홍어 삼합에 돼지등갈비 김치찌개, 소고기뭇국, 시래기 된장 지짐 등 그야말로 산해진미였다. 주방에서 바쁘게 손을 놀리는 그녀의 민낯은 어느새 예쁜 그녀 본래의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바로 담가 먹어야 맛이 있어요.” “이따 가실 때 한 포기씩 싸 드리려고 많이 담갔어요. 열두 시 넘어오시기로 해서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었는데…”막 담가 놓은 커다란 통속의 김치가 아침 내내 부산했던 열기에 발그레해진 그녀의 볼처럼, 고춧가루로 발갛게 버무려져 맛깔스러워 보였다.“이게 무슨 일이람? 손님을 초대해놓고 맘이 조급했을 텐데 무슨 여유로 이 많은 김치를 새로 담갔어? ” .김치도 여러 종류가 식탁에 놓였다. 정갈한 밑반찬들이 입맛을 돋우었고, 내가 좋아하는 찰밥까지도 밥솥에서 뜨거운 김을 내뿜고 있었다.잠시 밖으로 자리를 피해 준 그녀의 남편은, 내가 펼친 그 상에서 요즘 성서 필사(筆寫)에 열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안방의 필기도구들을 한쪽으로 치우면서 나는 무릎을 꿇고 성호를 그었다. 여자 문우들이 상을 놓는 일에 모두 거들고 나섰다.인정이 메말라 가고 이기적이고 편의주의로 내닫는 이 시대에 그녀의 정성과 따뜻한 마음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채반에 널려있던 버섯과 또 다른 산채들은 알뜰살뜰하고 부지런한 그녀를 닮아 햇볕에 건강한 먹거리로 말라가고 있었고. 텃밭의 상추와 아욱도 푸르렀다. 요즘 시골집에서조차 보기 힘들다는 제비집을 구경할 명분으로 우리는 모처럼 나들이를 계획한 것이었다. 골고루 싱싱하게 가꿔 놓은 채소밭과 그녀의 집 현관 벽에 둥지를 튼 제비집을 카톡 사진을 통해 보면서 반가워하던 우리를, 교수님과 함께 초대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제비는 그녀의 큰 딸에게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네 명의 딸을 둔 그녀의 첫 딸은 십여 년 가까이 고시원에서 적은 용돈으로 줄기차게 공부해 왔다고 한다. 그런데 도내에서 한 명밖에 뽑지 않는 기술고시1차 시험에 합격하던 날, 제비는 길운을 안고 이미 그녀의 집을 선택 했던 것이다. 착하고 성실한 흥부에게 큰 복을 주었던 제비는, 병석의 친정부모와 시부모를 봉양하며 효도를 다하고, 이웃에게 베풀며 살아온 그녀를 눈여겨보고 복을 주기로 선택한 게 아니었을까? 나는 그녀가 고백하기 전까지는 그녀의 글쓰기를 비롯한 많은 재능으로 보아 대학을 마친 여성으로 여겼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오십이 넘은 이제야 고등학교 공부를 시작하고 있다. 할아버지의 반대로 고등학교 진학 기회를 빼앗겼던 그녀는, 결혼하여 낳은 딸들이 모두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방송통신고등학교에 진학한 것이다. 늦은 이 저녁에도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졸리는 눈을 비비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낮에 일터에서 그녀를 만났던 고객들은, 그녀의 해바라기 같은 미소와 인정에 끌려 모두 행복했을 게 틀림없다.천사, 정성려 문우님의 민낯은 오늘따라 화장했던 얼굴보다 정말로 더 예뻤다.△수필가 김덕남 씨는 〈대한문학〉으로 등단. 전북문인협회, 행촌수필문학회 회원으로 돨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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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6.20 23:02

세상을, 이해와 배려와 사랑으로

현대는 컴퓨터를 통한 과학과 더불어 의학발전을 거듭하며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운 세상이 되었지만 이와 반면에 정신의 세력은 급격히 쇠약하여 막연한 불안감으로 가치관의 혼돈과 위기 속에 살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현대사회, 현대인이 안고 있는 두드러진 특징의 증후군이라고 한다.오직 자신의 말이 참(眞)이라며 호령하듯 사는 사람, 늘 자신만 손해 본다며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 늘 방관자적 입장에서 어느 쪽 의견에도 손을 들어 주지 않는 사람, 말끝마다 꼬투리를 잡고 의심하고 불신하는 사람, 의도적인 침묵으로 상대를 주눅 들게 하는 사람, 자신은 늘 남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친절을 가장한 위선에 익숙한 사람, 상하를 몰라보는 사람의 부류를 들 수 있다. 땔나무를 팔아 생계를 유지해가는 나무꾼이 있었다. 하루는 나무를 하던 중 길 다란 칡넝쿨이 손에 잡혀 무심코 낫으로 내려치려는 순간 어흥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칡넝쿨이 아니라 호랑이의 꼬리를 잡고 있음을 알게 된 나무꾼은 재빨리 나무 위로 올라가 죽은 듯이 붙어 있었다. 잔뜩 화가 난 호랑이는 나무 위로 오르지도 못하고 나무 주위를 맴돌다 몸으로 세차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면서 나무꾼의 몸은 그만 호랑이 등에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나무꾼은 호랑이 등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고 호랑이는 굴러들어 온 먹이 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방방 뛰며 야단법석을 떨고 있는 데, 저 편에서 일하던 농부가 그 광경을 바라보며 나는 복이 없어 이 무더운 날 죽도록 일만 하는데 어떤 사람은 팔자 좋아 호랑이 등에서 팔자 좋아 호랑이 등에서 덩실덩실 춤만 추는구나하며 탄식을 했다. 이렇게 인간은 자기의 눈높이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사대성인의 한 사람인 공자도 노년에 한때의 의심과 오해로 후회를 한적이 있었다고 한다. 공자가 어느 날 제자와 함께 이웃나라를 가고 있었다. 여러 날 가기 때문에 날은 저물고 식량마저 떨어져 어느 낡고 오래된 집을 찾아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며칠 동안 채소로 허기를 달래기는 했지만 몹시 밥이 그리웠던 것이다. 이튿날 아침 안회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로 내려가 쌀 한 줌 빌어다가 밥을 짓고 있는데 공자는 밥 냄새에 그만 벌떡 일어나 냄새가 풍겨 오는 창구멍을 통해 부엌을 들여다보았다. 마침 안회가 막 솥뚜껑을 열고 한 주걱 퍼서 먼저 제 입속에 넣는 장면을 보게 된 것이다. 저런저런, 평소에 예의범절이 깍듯하던 애가 오늘따라 속과 겉이 다르다니 이럴 수가공자는 즉시 창구멍을 닫아버리고 토라진 채 안회가 들어오기만을 벼르고 있었다. 이윽고 안회가 밥상을 들고 들어오자 안회야, 게 안거라. 조금 전에 꿈에서 네 조상을 보았는데 하는 말이 조상님께 먼저 진짓상을 지어 올리지 않고 뭘 꾸물거리고 있느냐?며 야단치는 소리를 듣고 깨어났느니라. 안회는 정색을 하며 쌀이 떨어져 여러 날 채소로만 올려 드렸기로 오늘은 마음먹고 아래 마을에 내려가 쌀 한 줌 빌어다가 밥을 지어 푸려는 순간 갑자기 천장에서 흙 한 덩이가 솥 가운데로 뚝떨어지기에 이걸 그대로 선생님께 올리면 정성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곧장 이물질을 제거하고 지저분한 부위를 도려내어 제 입에 넣었을 뿐인데 그것이 잘못이라는 말씀입니까?. 그랬구나. 나는 그런 줄 도 모르고 너를 의심하게 되었으니. 이제 내 나이 칠순, 여태껏 나는 내 두뇌와 내 총명함을 믿고 살았는데 이제는 내 두뇌도 총명함도 믿을 수가 없구나. 자기만의 조그만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재단하거나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면 세상은 거꾸로 보이기 마련이다. 세상을 탓하고 원망하기 전에 한발 나아가 긍정적인 안목으로 바라보며 이해와 배려와 사랑으로 감싸주는 삶은 훨씬 값지고 아름답게 느껴질 것이다. △수필가 오정민씨는 월간 〈수필문학〉과 〈한국문예사조〉(시)를 통해 등단. 원광효도마을 효 실천자원봉사학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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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6.13 23:02

콩나물도시 전주를 교육도시 전주로

전주는 콩나물의 도시다. 콩나물이 그만큼 많이 생산되고 소비되기 때문이다. 전주콩나물국밥은 비빔밥과 더불어 전주를 상징하는 대표적 음식이다. 콩나물국밥이 유명한 만큼 전주는 콩나물도 많이 생산되는 곳이다. 전주에는 한 집 건너 콩나물국밥집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콩나물국밥집이 많다. 전주뿐만 아니라 전국 어느 곳에 가던지 전주콩나물국밥이란 이름을 내걸고 손님을 끄는 식당들이 많다. 그 때문에 전주에서 생산되는 콩나물들이 전국 방방곡곡의 식당으로 공급되기도 한다. 콩나물을 많이 기르다 보니 콩나물 재배기술도 다른 도시에 비해 뛰어난 편이다. 콩나물은 너무 키가 크게 커도 좋지 않다. 알맞게 자랐을 때 조리를 해야 제 맛을 낸다. 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은 콩나물을 거꾸로 키워서 인기를 끌기도 한다. 전주에서 이름난 콩나물국밥집은 돈을 많이 벌어서 그 식당 근처의 건물과 땅을 사들여 기업형 식당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또 어떤 콩나물국밥집은 여러 개의 체인점을 열었는가 하면, 남부시장의 어떤 국밥집은 손님들이, 점심때는 오전 11시부터, 저녁때는 오후 5시부터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빈자리가 생기면 들어가서 국밥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러니 전주를 콩나물의 도시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콩나물은 참 묘한 식물이다. 콩나물시루에 콩을 넣고 물을 뿌리면 물은 그냥 모두 흘러내린다. 아무리 물을 부어도 물은 콩나물시루에 머물지 않고 아래로 빠져버린다. 콩나물시루는 밑 빠진 독처럼 물 한 방울 고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콩나물은 자란다.콩은 샤워만 하는데도 잘 자란다. 흘러내린 줄만 알았던 물이 콩을 어루만져주니 콩은 기분이 좋아서 쑥쑥 자라는지도 모른다. 콩나물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사이에 무럭무럭 자라는 식물이다. 콩나물을 기르는 물은 결코 헛수고를 하지 않는다.아이들을 기르는 것도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고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날마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헛수고 같지만 때가 되면 효과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 부모들은 너무 성급하게 아이들을 기르려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창 또래 친구들과 즐겁게 놀아야 할 아이들을 영어학원, 수학학원, 미술학원, 웅변학원, 피아노학원, 태권도학원 등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고 몰아댄다. 그러면서 부모는 사교육비 때문에 허리가 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몸과 마음이 지치고 만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만 뿌려주어도 잘 자라는 콩나물처럼 우리 어린이들도 놀아가면서 자라게 할 수는 없을까? 부모는 집에서 아이들에게 교양이라는 물을 뿌려 주고, 선생님은 학교에서 지식이라는 물을 뿌려 준다면 우리 아이들이 콩나물처럼 잘 자라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는 날, 콩나물도시 전주가 진짜 참다운 교육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들이 올바른 자녀교육을 시키고자 전주로 전주로 찾아오지 않을까?△수필가 김학씨는 1980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나는 행복합니다〉 등 12권을 냈다. 전북문협회장, 전북펜클럽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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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30 23:02

애정결핍

잎사귀 가장자리에 머물고 있는 연둣빛이 예뻐서 오래 전부터 뱅갈고무나무를 집에 한 그루 들여 놓고 싶었다. 작년 봄에 화단을 정리하다가 맘을 먹고 중간 크기의 화분에 뱅갈고무나무를 심어 들여왔다. 햇볕이 잘 드는 거실 창가에 자리를 잡아 주고 시간이 날 때마다 바라보았다. 뱅갈고무나무가 집에 들어온 뒤, 반려동물이라도 생긴 양 기분이 우쭐해졌다. 작년 여름, 키 큰 뱅갈고무나무를 집으로 배달시켰으니 받으라는 전화가 남편에게서 걸려왔다. 그렇잖아도 그 나무를 한 그루 더 두고 싶었는데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외롭게 베란다를 지키고 있는 주필나무 옆에 두면 좋을 것 같았다. 집으로 배달된 나무는 정말로 컸다. 그 나무가 들어온 날, 남편은 밤 늦도록 베란다에 불을 환히 밝히고서 유심히 관찰했다고 했다. 볼수록 듬직하니 맘에 든다면서 사무실에도 한 그루 두고 싶다고 했다. 아이는 거실 창가 작은 뱅갈고무나무와 비교하면서 저 나무가 이 나무냐며 신기하게 바라보곤 했다. 올 봄, 작은 뱅갈은 가지 끝에 새 잎을 틔우려고 뭉툭하게 부푼 혹을 올망졸망 여럿 달고 있었다. 며칠 지나니, 건드리면 생채기가 날 것 같은 작고 여린 새 잎들이 피어났다. 기특하고 신기했다. 그렇게 피어난 잎들이 제법 커서 작년부터 달고 있는 잎사귀와 그 크기가 비슷해졌다. 베란다를 청소 할 때마다, 듬직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키 큰 뱅갈고무나무를 바라보곤 한다. 가지 끝이 꿈쩍도 하지 않고 작년 그대로다. 남편은 아마도 물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뒤 물을 흠뻑 부어 주었다. 가지 끝까지 잎맥을 따라 시원스럽게 물이 이동할 수 있도록 말이다. 영양제도 적당량 흙에 묻어 두었다. 그런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곁을 지키고 있는 주필나무는 봄부터 지금까지 새 잎을 풍성하게 피우고 있는데. 지난 주말 뱅갈고무나무에 물을 주면서 거실에 있는 딸아이에게 물었더니애정결핍이란다. 엄마가 쟤만 예뻐했잖아요? 쟤 앞에서만 서성거렸고 잎사귀도 자주 만져주었잖아요. 모녀간의 대화를 엿들은 주필나무가 아이의 말에 동의하는 듯 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의젓하게 웃고 있었다. 애정결핍이라, 애정결핍!속으로 여러 번 되뇌었다. 아이의 말을 듣고 보니 과연 그런 것 같았다. 베란다 창가에서 우리 집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뱅갈고무나무는 거리를 두고 보아야 멋스러웠다. 그래서 거실이나 주필나무 옆에서 바라보았다. 키 큰 가지 끝에 매달려 있는 잎사귀들도 팔을 뻗어 닿기에는 너무 멀어서 만져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 내 행동이 서운했던 모양이다. 아이의 말을 듣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 앞에 서서 잎사귀며 가지 끝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아이도 알고 있는 그 사실을 왜 나는 몰랐을까? 몇 년 전, 화초를 처음 가꾸기 시작했을 때 알려 준 화원아저씨의 인상적인 말씀이 떠올랐다. 간단해요. 물 잘 주고, 햇빛 잘 보게 하고, 바람 잘 들게 하면 돼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관심이에요. 아침저녁으로 인사를 꼭 하세요. 그래야 걔들도 사랑 받는 줄 알고 잘 자라거든요. 나무도 사람과 똑 같구나!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란 아이들이 더 밝고 긍정적이라는 사실을 부모들은 잘 알고 있으리라. 그 간, 저 홀로 묵묵히 세월을 견뎌냈을 뱅갈이 짠하게 여겨졌다. 애정결핍을 느끼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더 많은 눈길과 사랑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 2주일쯤 지났을까. 오늘 큰 뱅갈을 자세히 보니 가지 끝에서 새 잎이 하나 돋아나고 있었다. 무척 신기했다. 충분한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한 뱅갈이 보답을 한 것 같았다.△수필가 박세정씨는 〈대한문학〉으로 등단. 현재 KT전주지사에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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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23 23:02

물이 흐르는 것처럼

△수필가 형효순 씨는 2008년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장을 지냈다. 수필집 <재주넘기 30년>이 있다.비가 왔습니다. 밭에 나가봅니다. 가지나무 고추나무도 활기차게 보입니다. 막 머리를 밀고 올라오는 콩이 포동포동합니다. 물과 비는 아주 많이 다릅니다. 가뭄에 물을 아무리 길어다주어도 잎도 열매도 크지 못하고 앙다물고 있습니다. 비를 맞은 곡식들은 어린 자식들처럼 풋풋하고 기운찹니다. 마음에 여유가 생겨 뒷짐을 지고 밭고랑을 이리저리 시찰을 합니다.고랑에 웅덩이가 생겼습니다. 그림자가 진다고 밭 언저리 나무들을 베어버려서 산 흙이 밀고 들어온 탓입니다. 조금 덜 먹을걸 후회가 됩니다. 땅강아지 한 마리가 수선스럽습니다. 어린 시절에 땅강아지는 장난감이 되었습니다. 몸에 물이 묻지 않아 자꾸 물속에 집어넣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수영선수 박태환처럼 빠르게 헤엄쳐 나옵니다. 그런 땅강아지가 물을 무서워하는 것이 이상합니다. 들여다 보니 웅덩이 가까이에 알들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부산했나봅니다. 밭곡식 자라는데 해로운 땅강아지입니다. 하지만 제 새끼들을 지키려는 몸짓이 감동입니다. 그래서 호미로 물길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물이 빠지자 땅강아지는 더 이상 요란을 떨지 않습니다. 밭이랑은 곧 평온해졌습니다. 바람이 살랑 불어 모든 잎들이 춤을 춥니다. 파란 색의 경연입니다. 참 아름답습니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여름철 집중호우만 없다면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참 편안합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말입니다.참깨씨앗을 한 구멍에 많이 심어 놓고 미쳐 솎아주지 못했더니 한꺼번에 키가 자랐습니다. 하나만 남기고 없애야 합니다. 뽑혀진 참깨모종이 오늘은 애잔합니다. 애초부터 적당한 양을 파종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 것도 욕심이었겠지요. 어디 욕심이 그뿐이던가요.밭농사라는 것이 하루 동안 모두 마쳐야 할 일도 있지만 다 하지 않아도 괜찮을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치도록 일을 하고 다음날 병원에 가서 누워 있습니다. 과일사면서 한 개라도 더 얻어오려고 애를 씁니다. 다 먹지 못하고 냉장고에 두었다가 내 버릴 때도 있습니다. 과일에도 상인에게도 미안해합니다. 조금만 먹어야지 하면서 또 배가 부르도록 먹습니다. 더부룩한 배를 문지르면서 혼이 나곤 합니다. 옷이 없다고 푸념을 잘합니다. 일 년 내내 밖으로 외출 한 번 나오지 못한 옷들이 울상 짓고 있다는 것도 깜박합니다. 갚아야 할 빚도 없으면서 돈이 많은 사람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잘못 살아왔나 자꾸만 뒤를 돌아봅니다. 집을 지어 30년 동안이나 잘살아 왔으면서 지금 잘 지어진 집을 보고 다시 짓고 싶어 합니다. 참 쓸데없는 욕심들입니다. 가끔 불같이 화가 치미는 날도 있습니다. 그 감정을 가두어 놓고 엉뚱한데서 폭발합니다. 지나고 나면 항상 후회합니다. 이곳저곳에 질퍽거리는 웅덩이만 많이 만들었나 봅니다. 물길도 없이 화를 가두어 놓았습니다. 이해도 참을성도 심어놓았다면 훨씬 좋았을 것을 화가 더 많이 떠다닙니다. 때로는 자책도 후회도 떠다닙니다. 버리면 편안할 것들을 가두어 놓고 공연히 괴로워 할 때가 많습니다. 물꼬를 빨리 만들어야겠습니다. 화가 적당한 속력으로 빠져나가야 옆 사람도 이웃도 함께 좋아질 테니까요. 욕심보다 더한 불길이 없고, 성냄보다 더한 독이 없으며, 성품이 안온하면 나물죽도 향기롭다고 합니다. 헨리 데이빗 소로의〈월든〉을 자주 읽어보려고 합니다. 법정스님도 머리맡에 두고 보셨다고 합니다. 소로처럼 살수는 없겠지만 흉내라고 내보고 싶습니다. 정이 많이 흐르는 물길도 만들어 가끔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주 앉아 마음 아픈 이야기까지 나 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보아주는 이 없어도 피었다 지는 풀꽃들처럼 겸손했으면 좋겠습니다. 냇물이 유연하게 흐릅니다. 백로 한 마리가 물위에서 다리 하나를 접어 넣고 참선중입니다. 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고고 합니다. 부럽습니다. 바위가 막고 있는데도 거역 없이 돌아 흐르는 물을 바라봅니다. 물이 흐르는 것처럼 앞으로 내 삶이 자연스러웠으면 합니다.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한 풋고추 몇 개를 땄습니다. 가지도 두어 개 소쿠리에 담아 집으로 향합니다. 마음이 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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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16 23:02

참 좋은 친구

하버드 졸업장 보다 더 소중한 것이 독서하는 습관이다는 빌게이츠의 말처럼 독서하는 습관이 중요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독서가 주는 이로움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책을 친구삼아 지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로움이라 하겠다. 좋은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만족감은 친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즐겁기 때문이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어느 작가가 쓴 이야기에 감동하면서 울고 웃는다는 것은 내가 그 작가의 사상이나 감정에 동화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나와 전혀 다른 시대 또는 다른 환경에서 살았을 그 어떤 사람과 내가 같은 생각을 품을 수 있고 시대와 나이, 지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친구처럼 소통 할 수 있다는 사실이.나는 불투명한 미래가 걱정되던 젊은 시절, 책을 벗 삼아 읽으면서 장래희망을 꿈꾸었다. 그 때 읽은 책들은 내게 친구이자 스승이 되어주었는데, 헤르만 헤세는 나의 내면세계를 흔들어 자의식을 일깨워주었고 톨스토이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으며 임어당은 중용의 가치를 설명하여 내가 지금껏 온건한 자세로 살아올 수 있는 균형감각을 갖게 해주었다. 그 시절 나는 척박한 토양에서 자라는 한 그루 작은 나무 같은 처지였지만 늘 책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며 씩씩하게 살아왔다. 나는 지금도 하루 일과 중 책과 더불어 지내는 시간이 많다. 집에다 여기저기 책을 늘어놓고 사는 까닭에 날마다 손에 잡히는 대로 몇 장이라도 읽게 되고, 오후에 우리 학원에 출근을 하면 제일 먼저 성경을 서너 장 읽은 뒤 시간이 되는 대로 책을 읽는다. 주로 창작동화, 역사, 세계명작, 한국문학 등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쉬운 책들이지만 나는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독후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내 생활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만족하고 있다.책은 그 자체가 친한 친구가 되어주면서 실생활에서도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다리 역할도 해주고 있다. 최근에는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에 새로 설립된 독서모임이야기 강의를 듣게 되었는데 거기서 마음 따뜻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참 좋다. 매주 수요일 오전 그들과 함께 책을 읽고 독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친한 벗들과 함께 아름다운 숲을 거니는 것처럼 여유롭고 행복하다. 지도하시는 최 선생님의 열강에 감동하면서 독서모임에 관한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는데, 선진국 대부분이 아주 많은 독서모임을 갖고 있다는 것이 부러웠고 우리나라 독서 인구는 생각보다 적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엊그제 우리 학부모님 몇 분과 작은 독서회를 만들었다. 책보다는 컴퓨터나 스마트 폰을 더 좋아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엄마가 독서 친구 역할을 해주기 위해서이다. 책을 가까이하는 엄마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도 책을 좋아하고 올바른 독서 습관을 갖게 해주자는 취지에서였다. 뜻한 대로 잘 된다면 아이 인생길에 믿음직한 길잡이 친구를 소개해주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가 자식에게 남겨 줄 수 있는 것 중에서 이만큼 가치 있는 유산도 별로 없지 않을까 싶다.책이 귀하던 30여 년 전 밀알독서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회원들이 가져온 책을 서로 돌려가며 읽었던 일, 남의 집을 방문할 때면 그 집에 있는 책을 염치불구하고 빌려다 읽었던 날들을 회상해 본다. 새로운 책을 펼칠 때마다 가슴 설레었던 그 행복한 기대감, 다 읽고 난 뒤의 뿌듯한 충만감은 좋은 친구와 속이 후련하도록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 못지않았다. 나는 지금도 책을 손에 들면 반가운 친구를 만난 것처럼 기분이 좋다. 그래서 누구에게든 책을 친구삼아 보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나랑 대화해주는 친구,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지도 않으면서 내 가슴 가득 그윽한 기쁨을 안겨주는 참 좋은 친구에게책 씨, 그대를 언제까지나 좋아할 것입니다.고백하고 싶다.△ 시인이며 수필가인 김양순씨는 '창조문학신문''대한문학'으로 등단. 시집 〈웃음 세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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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09 23:02

5월을 맞으며

온 국민의 얼굴에서 웃음을 앗아가 버렸던 잔인한 달 4월을 보내고 가정의 달이자 계절의 여왕이라 일컫는 5월을 맞았다.5월의 달력을 살펴보니 1일은 근로자의 날, 5일은 어린이 날이자 입하立夏 6일은 석가탄신일, 8일이 어버이 날, 10일은 유권자의 날이자 바다식목일, 11일이 입양의 날, 15일은 가정의 날과 스승의 날, 18일은 민주화운동 기념일, 19일은 성년의 날이자 발명의 날, 20일이 세계인의 날, 21일은 부부의 날이자 소만小滿, 25일은 방제의 날, 31일은 바다의 날 등이 푸짐하게 들어 있다.아직도 세월호 참사의 악몽이 가시지 않은 탓으로 계절의 변화 따위는 느낄 겨를도 없이 수많은 국민들이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는 가슴 아픈 현실이다.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추억과 욕정을 뒤섞고/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었다.(후략) T.S 엘리엇이 세계1차대전 후 발표한 시에서 표현한 잔인한 달 4월, 2014년 대한민국의 4월은 다시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끔찍하고도 참혹한 달이었다.4월 15일 밤 9시경에 설레는 마음으로 수학여행 길에 오른 경기도 안산시의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포함한 탑승객 476명을 태우고 인천항을 출항해서 제주도로 가던 6800톤급 세월호가 이튿날 아침에 전남 진도앞 해상에서 침몰되는 참사가 발생해 174명이 구조되고 사망 213명, 89명이 실종상태라고 하니 타이타닉호 사고 이후 최대의 선박사고로 기록될 것 같다.호미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 예견된 인재(人災)였기에 국민들의 의혹과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있다고 들었다. 선박이 침몰되는 위급한 상황에서 승객들 구조에 목숨을 바쳐야 했을 선원들이 승객들에게는 선실에서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으라는 방송을 했으면서 자기들만 살겠다고 선장이란 사람은 팬티바람으로 탈출하고 선원들도 앞을 다투어 도망을 쳐버렸으니 누구를 탓하겠는가?가슴까지 물이 차오르는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승객들을 구조하다가 꽃다운 청춘을 마감한 고 박지영 승무원, 자신의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던져주고 또 다른 친구를 구하려다 희생된 고 정차웅 학생, 10여명의 학생들을 구출하고 세월호에 함께 갇혀버린 고 최혜정 교사, 학생들을 비상구로 인도하고 더 많은 학생들을 구하려고 선실로 마지막 발걸음을 돌렸던 고 남윤철 교사, 커튼으로 밧줄을 묶어 20여명의 승객을 구해낸 김홍경씨, 부모와 오빠를 잃고 울고 있는 6살 어린이를 구출해낸 박호진군, 배가 90도로 기운 상황에서도 소방호스를 연결해서 학생들을 구하고 마지막에 간신히 탈출한 김동수씨 등은 세월호의 참사가 만들어낸 영웅들이다.위급한 상황에서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구조에 최선을 다했어야 할 선원들은 도망치기에 급급한 반면 자신들의 목숨도 위태로운 마당에 다른 사람들을 먼저 구하려고 노력했던 영웅들의 쾌거가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가슴을 아리게 한다.아직도 실종상태에 있는 이들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노란리본이 국내외에 물결치고 있는 5월에는 국민들의 가슴에 꿈과 희망을 안겨줄 좋은 일들만 있기를 바라면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수필가 김희선 씨는 1996년 〈문예사조〉로 등단했다. 수필집 〈저녁노을〉, 〈가을밤에 부르는 노래〉, 〈서리실 이야기〉, 〈고향에 사는 뜻은〉 등이 있으며 정읍예총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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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02 23:02

4월의 숲을 바라보며

4월의 숲은 완성을 향해 제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었습니다. 젖살 오른 아기 살결 같은 나무의 어린잎들은 유록(幼綠)의 피부로 숲을 가꾸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나무들은 자기 본디의 모습과 체질에 맞게 잎 피우고 색 드러내면서 넓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 나무들과 풀을 통 털어 ‘숲’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숲은 개성 있는 나무들이 모여 하나의 세계를 형성해 갑니다. 끼리끼리 또는 서로 다른 이유를 인정하면서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들 머리·허리·팔·다리와 같은 역할을 분담하면서 한 해 한 계절을 살아냅니다. 그리하여 숲의 영혼 또한 우리의 심장 같이 보이지 않는 뿌리에 두고 있는 듯합니다. 뿌리가 부실한 나무는 썩습니다. 가는 뿌리가 적은 나무는 건강한 숲을 이룰 수 없습니다. 굵은 뿌리도 중요하지만 잔뿌리의 역할도 매우 소중합니다. 사람 사는 곳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자리에 있는 사람만 중요한 일을 하는 게 아닙니다. 가난한 이웃과 양심적인 서민들이 건재한 뒤 감투 족들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하늘의 뜻입니다. 생각을 그리하다보니 바라보는 숲도 큰 나무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한마디로 항꾸네(함께) 제 자리에서 제 빛을 소리 없이 드러내며 ‘완성의 숲’을 향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 내리는 4월 중순 밤이었습니다. 여암선생과 정종대포 집에서 백화수복을 마셨습니다.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앉아 격 있게 대화를 풀어나갔습니다. 그 때, 여암선생 뒤에는 커다란 거울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거울 속에 알 듯 한 사람이 비쳤습니다. 눈동자 고정시켜 보니 그게 바로 나였습니다. 얼굴 양분하여 아랫부분 코와 입가주름은 포탄 맞은 땅거죽처럼 패이고 굴곡져 있었습니다. 짜증이 묻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거울 속 현실의 나와 마음 속 과거의 내가 융화를 못한 것이지요. 얼굴에 불만을 느끼며 나는 ‘이 얼굴 되기까지 무엇을 하고자 했는가?’ 하는 생각이 무섭게 가슴에 얹혔습니다. 그 순간 ‘술 안 들고 무슨 생각하느냐’는 여암선생의 걸걸한 음성에 나는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내 등 뒤 TV에서는 진도 앞 바다 〈세월호〉 침몰사건 소식만 되풀이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희생당한 어린 영혼들에게 나이 든 자로서 미안하고 무참한 마음이었습니다. 밤 시간은 깊어가고 희생당한 유족들 심장은 타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구조 활동은 거의 없이 정부의 대책회의는 이틀이 지나고, 학생들을 전원 구조했다는 거짓 방송은 유족들을 분개하게 했습니다. 국가도 정부도 군도 경찰도 검찰도 힘을 못 쓰고 있었습니다. 조국의 한계 같은 것이 뼈저리게 느껴졌습니다. “움직이면 더 위험하니 방에서 꼼짝하지 말라”는 어른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학생들은 모두 물 속 저승으로 수학여행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믿지 않고 밖으로 나온 사람과 선장께서는 살아남아 세상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침몰한 〈세월호〉가 남긴 ‘4월의 진실’입니다. 세상은 그렇듯 단장의 아픔인데 숲은 4월의 하늘 아래에서 양떼의 털 같이 부클부클 연한 녹색 옷을 입고 짙어만 갑니다. 그 숲 앞에서 나는 생명의 의미와 완성되어가는 숲을 맨눈으로 실감하고 있었습니다. 4월의 숲을 바라보며 스스로 행복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슴 한 곳의 찜찜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세상 속에서 끓고 있는 ‘4월의 아픔’때문이 아닐까요.△ 수필가 김경희씨는 1985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펜클럽한국본부 전북위원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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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4.25 23:02

은방울

무녀가 모둠 뜀질을 하면 꽃처럼 장식한 신대 상단의 방울들이 짤랑짤랑 맑은 소리를 낸다. 한바탕 뜀질로 신명을 다한 무당은 제 자리에서 맴돌기도 하고 원을 그리기도 하며 장단에 맞추어 신대를 흔든다. 방울소리가 굿판에 흐른다. 무녀는 쉼 없이 주문을 주워섬긴다. 그녀의 얼굴엔 신을 맞은 듯 화색이 돌고 주위엔 신기가 감돈다. 신맞이를 위한 무녀의 뜀질이나 맴돎에는 별로 눈이 가질 않는다. 눈길은 방울에, 귀는 방울소리에 머문다. 대개는 노랑 방울을 쓰는데 오늘은 하얀 방울이다. 백통인지 스텐레이스인지 은인지 구별도 할 겨를도 없이 하얀 방울이 짤랑짤랑 울리면 가슴 안에서 긴 반향이 읾을 느낀다. 가슴 안에 눅눅한 바람이 스민다.어릴 적 어머니께서 가끔 말씀하셨다. “너는 방울이어야. 그것도 보얀 은방울이어야.”옆 동네에서 일을 보고 점등을 넘어오는 참이었다 한다. 점등은 동네 동남쪽에 있는 상당히 가파른 고개였다. 길 왼쪽 낮은 둑은 평평한 밭으로 이어지고, 오른쪽나지막한 언덕 위로는 비탈 벋어 오른 밭, 꼭대기는 노송이 우거진 야산이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밭은 고구마 심은 황토 이랑이 허적했다. 노송 윗가지가 보이기 시작할 지점에서였다. 오른쪽 언덕 중동에 언턱이 져 있고 그 위에 밀가루 같이 몽근 모래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모래를 헤쳐 보았다. 까만 소반이 나오고 그 소반 위에 은방울 한 쌍이 놓여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집어 들었다. 집어 들다가 꿈에서 깨고 말았다.그 은방울이 내 태몽이라 했다. “은방울, 생김새는요?”“색깔 보얗고 귀엽게 생겼재, 시방도 눈에 선히야.” “흔들어 봤어요?”“소리는 못 들었어야.” 태몽 이야길 들을 때마다 궁금한 것은 소리였다. 은방울의 진가는 생김새보다도 짤랑짤랑 맑은 소리일 테니. 그러나 어머니는 소리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다. 바로 위가 다섯 살 터울의 누님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취학 전에는 누님의 반짇고리에서 울긋불긋한 비단 헝겊을 꺼내 벌여놓고 구경하는 게 재미있었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뜀박질, 공차기, 자치기보다 공기놀이, 오자미놀이, 팔방에 더 빠져 지냈다. 때로는 풀각시를 만드는 데 재미를 붙이기도 했다. 보는 사람이 없을 때는 제법 신명나게 춤을 추다가 인기척만 나면 숨어버리는 일도 있었다. 가까운 사람하고가 아니면 아예 입을 봉하기 일쑤였다. 소년 시절, “구멍 속 배암이 한 자가 되는지, 열 자가 되는지 어찌케 알것냐?” 어머니의 걱정을 귓바퀴에 매달고 자랐다. 그때부터 나는 구멍 속에 든 뱀이었다. 바위 사이에 또아리를 뜬 까치살모사도, 열사熱沙의 구릉 밑에서 꼬리를 흔드는 방울뱀도 아닌 그저 논두렁 구멍 속에 숨어 혀만 날름거리는 물뱀이었다. 어릴 적엔 날씨가 잔뜩 흐린 날이면 동네 옆 고래실에서 ‘우웅, 우웅’ 으스스한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어른들은 구멍 속에서 우는 구렁이 소리라 했다. 한물이 질 징후라 하기도 했다. 구렁에서 울려오는 그 소리는 은근히 사람의 심장을 옥죄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구렁도 아닌 물뱀이었다. 해를 마시는 꿈을 꾸고 낳았다는 홍길동이나, 용이 오르는 꿈을 꾸고 낳았다는 이몽룡의 태몽은 언감생심이지만, 적어도 사내의 태몽이라면 호랑이가 포효한다든가 황소가 달려드는 꿈쯤은 되어야 제격이 아닌가. 그런데 작은 소반 위에 놓인 은방울이라니. 그나마 소리 한 번 내보지 못한 방울이라니. 무당의 방울이 흔들어도, 흔들어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어떻게 신을 맞아들일 수 있겠는가. 흔들어도, 흔들어도 짤랑 소리 한 번 내보지 못한 은방울은 이제 꺼멓게 녹이 슬어버렸다.△수필가 김형진씨는 1997년 계간 〈수필〉로 등단. 수필집 〈종달새〉, 수필평론집 〈이어받음과 열어나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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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4.18 23:02

그네타기

봄볕이 좋은 날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왔나보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던 아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이의 발걸음이 그네로 향했다. 엄마가 그네를 가만가만 밀어주니 아이는 까르르 까르르 웃기 시작했다. 아이의 작은 엉덩이가 그네에서 빠질까 염려스러워 엄마의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아이를 태우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반복하는 그네를 물끄러미 바라보니 얼마 전에 읽었던 신문기사가 생각났다. 세 모녀가 반 지하방에서 동반자살을 했다는 뉴스다.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보니 생활고를 비관한 그들의 삶이 여실히 드러났다. 집은 비좁고 세간들은 난잡했다. 하얀 봉투 하나를 남겼는데 신문사진은 그것을 클로즈업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이다. 집주인에게 죄송하다는 인사도 남겼다. 처절한 가난 때문에 극한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던 그들이 마음에 품은 것은 미안함이었다. 고단하게 살던 그들이 차라리 누군가를 향해 분노했다면 어찌 그런 선택을 했느냐고 안타까움이라도 비추겠건만. 신문지면을 넘길 때마다 살기 힘들다는 사람이 없는 날이 있었던가.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하기에 아등바등하며 산다.나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모습이 더 이상 어색하지도 않다. 내가 더 먹고, 더 편안히 누리려 한다. 누가 감히 남을 위해 양보하며 손해를 보려 할까. 포근한 봄볕을 고스란히 받으며 그네를 타듯 약간의 두려움과 함께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아가는 것은 그네를 타는 일이다. 어느새 올라탄 그네에서 동아줄을 단단히 잡고 색 고운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환한 웃음을 짓는다. 그네는 올라갔다가 곧 내려오지만, 멈추지 않고 푸른 하늘을 향해 끊임없이 날아오른다. 그네는 올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려올 때도 있다. 다시 올라갈 때는 앞서보다 더 높이 날아오르려고 무릎을 구부려서 힘껏 굴러줘야 한다. 눈을 질끈 감고 자꾸 도전해야 한다. 엄마 손을 잡고 나온 아이처럼 어린 시절에는 혼자서 그네를 탈 수 없다. 몸을 잡아주고 살살 밀어주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엄마나 언니, 때론 친구일 때도 있다. 점점 그네 타는 요령을 배우고 혼자서 탈 수 있어도 힘에 부친 순간에는 누군가가 그네를 밀어주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세 모녀에게는 그네를 밀어주는 이가 없었다. 왜 도와주거나 지켜봐주는 이가 없었을까. 살짝 힘을 실어주었더라면 그네 타기를 포기하지는 않았으리라. 주변에서 그네를 타고 있는 많은 이들을 돌아본다. 지쳐서 구를 힘이 없거나 오랫동안 그네타기를 멈춰서 다시 용기를 내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속도가 줄어서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이들도 있을 테고, 급기야 그네를 멈추려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들 곁에서 약한 힘으로라도 밀어주고 싶다. 환호성을 지르며 응원을 해 주고 싶다. 비록 아이의 뒤에서 잡아주는 엄마처럼 온전한 희생을 보여줄 수는 없을지라도 허공의 바람을 가르며 신나게 그네타기를 하도록 함께하고 싶다.△ 수필가 이해진씨는 〈대한문학〉으로 등단. 행촌수필문학회늘푸른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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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4.11 23:02

모악산에서 본 찌르레기 부부 새

봄이란 계절 앞에 전해오는 꽃소식은 언제나 반갑다. 그러나 이제껏 머물다간 긴 겨울과의 이별은 아쉬움을 남긴다. 물러가는 겨울과 찾아오는 봄.그리고 다시 오는 여름과 가을, 春·夏·秋·冬 어느 한 계절도 거꾸로 오지를 않는다. 변하지 않는 자연의 섭리(攝理)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어느덧 맺힌 꽃봉오리를 보니 봄이 다시 찾아오는 모양이다. 봄이 오면 나는 따스한 봄바람을 안고 가끔 주변의 산을 혼자 오를 때가 많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 혼잡함을 피해 조용히 사색(思索)하며 혼자 오르기를 좋아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지난 3월 초순 모악산에 올랐다. 만물이 소생하는 듯 추운 겨울 내내 메말랐던 나뭇가지에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새들의 울음소리도 한결 맑아지는 듯 들렸다. 나는 남달리 모악산에 대한 애정(愛情)이 많다. 그것은 내가 어렸을 적 살았던 집이 모악산 가까이 있었고, 때로는 그 산에 올라 흐르는 계곡 물 속에서 고기도 잡고 가재도 잡으면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그리운 옛 추억이 지금도 아련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모악산을 오르는 좁다란 오솔길도 많았지만 지금은 훌쩍 커버린 나무들로 그 좁다란 산길은 모두 다 사라지고 즐비한 음식점들만이 군무(群舞)를 하는 듯 줄지어 있으니 흘러간 세월에 변해버린 환경은 어쩔 수 없는가 싶다. 그러기에 나는 모악산을 오를 때면 그 때에 내가 알고 있었던 옛길이 항상 생각이 난다.이런저런 생각을 더듬으며 따스한 봄볕이 비치는 대원사 절 집 앞을 지나다가 찌르레기 새 두 마리가 빨간 맹감나무 열매를 열심히 쪼아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조용한 산중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새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니 나는 혼자서 무슨 큰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무척 반가웠다. 그 새는 마치 바람결에 타고 온 신선하고 해맑은 미소처럼 보였다. 행운이랄까? 한 손만 쭉 뻗어도 금방 잡힐 듯 가까이 있었다. 정신없이 맹감나무 열매를 쪼아먹는 것을 보니 지난 겨울 내내 굶주렸던 모양이다. 맵시 있는 잿빛 날개의 색깔도 거칠어 보였고, 윤기가 없어 보였으며, 몸통의 날렵한 모습도 조금은 메말라 보였다. 그래도 그 새들의 모습이 어찌나 청순하고 사랑스럽게 보이던지 나는 오르던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한참을 눈여겨보았다. 사랑을 속삭이는 듯 정답게 조잘거리는 모습이 마치 한 쌍의 부부 새처럼 다정스럽게 보였다. 얼마간 정신없이 열매를 쪼아 먹던 새들은 배가 불렀던 모양인지 빨간 열매가 많이 남았는데도 어디론지 훌쩍 날아가 버린다. 미련 없이 떠나버린 새들의 뒷모습이 참으로 예뻐 보였다. 얼마 전에 읽었던 시(詩) 한 구절이 생각났다.산새도 들새도 풀씨가 고소하다고 주머니에 넣지 않고 토끼도 다람쥐도도토리 맛있다고 바구니에 담지 않아 (이화주의 동시‘산새도 들새도’) 날아가 버린 새들의 뒷모습에 아쉬움이 남았지만, 나는 그 부부 새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도록 빌었다. 우리 인간 세상도 저 날아간 새들처럼 정답게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면서 한 세상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기와 질투가 없고 미움과 증오가 없는 새들처럼 언제나 배부르면 욕심 없이 돌아설 줄 아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새들은 나에게 행복한 모습이 진정 어떤 것인가를 순간적으로 보여주는 듯하였고, 배부르면 욕심 없이 돌아설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가르쳐 주는 것 같았다. 이제 봄이 더 무르익으면 또 더 많은 새들을 보겠지만, 나는 그 정다운 부부 찌르레기 새를 보면서 일상에서 찌든 마음이 한 순간에 사라지고 싱그럽고 청순해지는 마음으로 가득 차 하루 내내 무척 즐거웠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새들의 다정한 모습이 머릿속에 남아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수필가 황만택씨는 2008년 〈수필시대〉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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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4.04 23:02

새내기 여고생의 각오

2014년 봄은 내 인생의 봄날이다. 오십 중반을 넘어 방송통신고등학교 학생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얀 칼라에 까만 교복을 입고 고등학교에 가는 친구가 얼마나 부러웠던가. 뒷모습이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난 멍하니 바라보곤 했었다. 그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때로는 먼 길로 돌아서 다니기도 했다. 어쩌다 학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일단 뒤로 물러설 때가 많았다.하지만 결혼을 하고 자식을 키우면서도 배움에 대한 미련은 또 하나의 자식이 되어 커가기만 했다. 그런 나머지 이것저것 관심을 갖다보니, 학력이 요구되지 않는 분야의 자격증은 여러 개 얻었다. 글쓰기를 좋아하다보니 등단을 하고 수필집 〈엄마는 거짓말쟁이〉를 내놓기도 했다. 그동안 고등학교를 나와야할 텐데 생각했었다. 그럴 때마다 아이 넷을 키우며 내 자신이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남들의 시선이 부끄러웠다. 일삼아 고등교육도 못 받은 사람으로 밝혀지는 것이 창피해서였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는 나를 이기지 못했다. 이렇게 고비마다 망설이고 미루던 중, 중학교 동창이 뒤늦게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 사실을 알았고, 더욱이 70세 어르신이 손녀 또래들과 나란히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연을 어느 수필가의 감동적인 글에서 읽고, 나는 그동안 자제해왔던 충동감이 되살아나 견딜 수가 없었다. 큰 맘 먹고 입학을 하고보니 지난날의 망설임이 모두 기우에 불과했다. 입학전형서류를 가지고 전주여자고등학교를 찾던 날, 설렘과 두려움으로 가슴은 쿵쾅쿵쾅 얼마나 뛰었던가!입학하던 날, 입학생을 대표해서 입학선서를 읽게 되는 영광도 안았다. 평소 바쁜 남편과 서울에서 공부하느라 틈 없는 큰딸까지 꽃바구니를 안겨주며 축하해주었다. 초등학교 입학식보다 하객이 많을 줄 알았는데 남편과 딸만 눈에 들어왔다. 입학식 날, 그때 내 기분은 40년 전의 사춘기 시절로 돌아가 풍선처럼 부풀었다. 교실로 돌아온 학생들 중 절반 이상이 기성세대로 보였다. 그들도 나처럼 고등학교 진학을 못한 것에 대한 아픔 때문에 용기를 내어 왔을 것이다. 입학식 전날 밤, 교실에서 재잘대는 여고생의 모습을 상상했는데 그런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말이 없었고 서먹서먹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대다수의 얼굴에서 당찬 용기와 각오를 보았다. 어디선가 할아버지의 말씀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여자가 많이 배우면 남자의 머리 위로 올라가고 결국 집안을 망친다.’는 터무니없는 소리가 새삼스럽게 떠올라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나의 배움을 막았던 할아버지와 울며불며 대응했지만 설득을 못하고 포기해야 했다. 결코 할아버지의 완고함을 아버지도 설득하지 못하고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못난 애비를 용서해 달라.’고 하셨다. 난 지금, 저승에 계신 아버지께 죄송스러울 뿐이다.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꿈을 실현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어렵게 용기를 내어 공부를 시작했으니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오랜 세월 가슴속에서 시소타기를 해왔던 나약함은 이미 버렸다. 내가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분발해서 대학진학도 해야겠다. 이미 〈엄마는 거짓말쟁이〉라는 수필집을 내놓기는 했지만 문학 세계에서 더 품격 높은 수필을 쓸 수 있는 역량을 기르고 싶다. 인생은 짧다고 하지만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에는 지금도 늦지 않다. 어쩌면 가장 빠른 나이인지도 모른다. 50대 중반을 넘어선 이 새내기 여고생은 당차게 공부를 할 것이다.△수필가 정성려씨는 대한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엄마는 거짓말쟁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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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2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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