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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따구리] 홈런치는 스타기업을 보고싶다

건설업계만큼 부침이 심한 곳도 드물다.수십년씩 탄탄하게 기반을 다져온 회사가 하루아침에 망하는가 하면 설립된지 얼마 되지 않는 신흥업체가 불과 수년만에 수천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건설업계중에서도 특히 주택분야는 빼어난 사업수완과 기술을 갖추면 단숨에 전국에서 눈길을 끄는 기업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아파트 한채 가격을 2억원으로만 잡아도 연 평균 500세대 이상을 짓는 대형업체는 매출이 1000억원에 달할만큼 덩치가 크기 때문이다.도내 건설업계의 성향은 크게 두가지다.비록 협소하지만 도내 시장에서 제몫을 챙기며 안정적 경영을 하는 유형과 다소 위험성을 안고 있지만 수도권에 도전하거나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모험을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실질적으로 건설업을 하는 500여개의 건설업체중 채 10개도 안되는 기업이 후자쪽을 택한 것만 봐도 도내 업계가 얼마나 강한 보수성을 띠는가 알 수 있다.이런 점에서 본다면 좀 더 큰 시장에 도전장을 던지고 나선 E, D, K, J 등 도내 몇몇 업체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물론 수도권이나 해외에 진출해 잘 나가던 기업이 어려운 상황에 빠진 경우가 있지만 지금이 전환기라고 판단, 활로를 찾아나선 용기는 칭찬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남들이 현실에 안주하고 있을때 수도권에 진출하는 모험을 감행, 지금은 대형업체로 성장한 S, J, W를 본받는 젊은 기업인이 나왔으면 한다.모두 그럴 필요는 없지만 전국시장을 석권하는 전북 출신 건설인 몇명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멋진 홈런을 친 뒤 여유있게 홈인하는 슬러거처럼 통큰 건설인의 탄생을 보고 싶다.

  • 지역일반
  • 위병기
  • 2007.03.01 23:02

[오목대] 사이버 태극기

1970년대 까지만해도 각급 기관이나 학교등에서는 태극기 관리를 철저히 했다. 해질 무렵 국기 하강기식때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기관이나 학교 주변을 지나던 주민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부동자세로 태극기가 내려질때 까지 국기를 향해 경례를 했다. 애국심과 충성심을 강요당했던 권위주의 시대의 어두운 추억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 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라는 ‘국기에 대한 맹세’가 탄생한 것도 당시였다. 비오는 날에 국기를 내리지 않을 경우 담당자가 문책을 받을 정도로 국기에 대한 존경심과 엄숙함이 강조되던 시기였다. 태극기는 곧 국가 권위의 상징이자 외경(畏敬)의 대상이었다. 각 가정에서는 경축일이나 게양하기 위해 장롱속에 소중히 보관하던 소품이었다. 이같은 태극기가 우리 생활속에 친근하게 다가선 계기가 지난 2002년 월드컵이었다. 대회 기간중 태극기는 응원단의 두건이나 스커프, 망토, 치마 등의 패션이 되어 거리를 장식했다. 예전 같으면 감히 생각치도 못했던 태극기 패션의 등장이었다.당시 다양한 크기와 무늬로 변신한 태극기에는 단지 승리를 향한 열망이 담겨 있을 뿐 이었다. 어느 누구도 태극기를 훼손하거나 욕보였다고 탓하지 않을 만큼 거부감이 없었다. 정부도 그때까지 존엄성만을 강조했던 ‘국기에 관한 규정’ 개편을 검토할 정도였다. 정보화시대를 맞아 태극기가 또 한번 국민속으로 다가가기를 시도하고 있다. 정보통신부가 오늘 88주년 3.1절을 앞두고 국경일에 인터넷 포털과 함께 ‘사이버 태극기달기 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동안 일부 온라인 업체에서 태극기달기 운동을 전개했지만 정부 정책으로 펼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정통부는 4300여만개의 홈페이지, 미니홈피, 블로그 등에서 게시할 수 있도록 태극기의 정지화상및 동영상을 배포했다. 권위주의 시대가 퇴진하면서 사회 통합은 구성원 다수의 자발성에 의존하게 되었다. 특히 정보화 시대 네티즌들의 여론 형성 기능은 지난 2002년 대선에서 그 위력을 입증했다. 태극기를 이용해 국가공동체를 확인한 지난 월드컵때 처럼 ‘사이버 태극기 달기 운동’이 젊은 세대들에게 자발적 애국심을 키우는 전기가 되길 기대한다.

  • 지역일반
  • 전북일보
  • 2007.03.01 23:02

[명상칼럼] 봄이여 오라 - 김경일

방송에서 온난화 현상으로 인해 예년보다 보름 넘게 빨라진 이상한 봄소식을 연일 전하고 있습니다. 옛날 같으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니 하며 꽃샘추위도 있음직하련만 올해는 어찌된 일인지 밀고 당기는 일조차 없습니다. 그래도 내 책상 한 구석에 석곡란이 소박한 꽃을 피웠네요. 정작 봄같은 봄을 실감하기는 그윽한 석곡 난향 때문입니다. 도량 뒤 안으로도 매화나무가 몽글몽글한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구요. 겨우내 기다리며 내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 봄꽃도 같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봄이 점차 세상에 가득 채워지고 있어요. 만화방창(萬化方暢) 온통 봄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계절의 변화에 둔감한 체 살아갑니다. 혹시라도 산더미처럼 밀려있는 일속에 묻혀 봄을 잃어 버린지 오래지는 않으신지요? 세상일에 지쳐 겨울이니 봄이니 하는 말에도 그저 그러려니 하고 무뎌져버린 가슴을 탓하고 계시지는 않으세요? 세상과 조금은 거리를 두고 사는 제 처지에도 취업난이니 양극화니 하는 뉴스를 들으면 힘에 겨운 현실의 무게에 고단함이 느껴집니다. 무역규모 세계 10위에다가 국민소득 2만불 시대이라는데 좀처럼 생활고는 줄어들지 않는 듯 합니다. 어쩜 2만불이니 3만불이니 하는 수치는 오아시스 같은 허무의 꿈일지도 모릅니다. 이미 우리가 경험한 것처럼 아무리 물욕(物慾)의 풍요와 편리가 거듭되어도 삶의 고달픔은 여전하지 않을까요? 고단하다고, 바쁘다고 재처 둔 여유를 되찾는 삶이 차라리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오직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정신없이 달려오는 동안 무심한 세월은 저만치 흘러갔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왜 사는지를 되묻게 됩니다. 사는 게 무엇인지......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과연 옳은 것일까? !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한번 창문을 활짝 열어 재껴 보시지요. 가슴 빵빵하게 숨도 한번 들이켜 보시구요. 그리고 밖으로 눈길을 좀 주세요. 저 깊은 땅속에 꿈틀거리는 봄의 진동도 느껴보시구요. 새 잎을 준비하기 위해 나무줄기를 타고 오르는 힘찬 수액소리가 들리지 않으시는지요? 저 멀리 아지랑이가 보입니다. 남풍을 타고 훈훈한 바람이 온 몸에 느껴집니다. 머지않아 진달래가 피고 개나리가 피어나겠지요. 머지않아 보리밭은 푸르르고 창공에는 종달새가 지저귈 것입니다. 봄이 온 세상에 가득합니다. 봄은 모두에게 평등합니다. 봄이 전해주는 희망의 소식은 만인에게 똑같습니다. 봄의 새로움과 함께 마음의 봄은 희망으로부터 옵니다. 겨우내 우리를 짓눌렀던 묵은 잔설(殘雪)은 결국은 물러갈 것입니다. 어둠이 밝음 앞 에 적수가 되지 못하듯이 실의와 좌절은 희망 앞에 맞수가 되지 못합니다. 한겨울 음울한 기세에 가슴을 펴고 용기있게 씨뿌리는 농부의 마음같이 희망으로 가득 채워갔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봄이 가득해도 묵은 가지에 움이 돋지 않는 것처럼 내 마음에 희망을 담지 않으면 세월의 봄은 허망합니다. 봄기운을 받지 못하는 나무는 살수 없는 것처럼 마음에 희망이 없는 사람은 살았으되 죽은 사람입니다. 원(願) 없는 이는 고목(古木)이요, 믿음이 없는 자는 죽은 나무며, 스스로 포기하는 자 또한 그렇습니다. 농부가 봄을 맞이하여 씨를 뿌리는 노력이 없다면 가을에 결실이 없는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것이 인과(因果)의 진리라, 어찌 농사에만 한한 일이겠습니까? 잠시 세상사도 재껴 놓고 시름도 내려놓고, 옛 선사들의 넉넉한 봄노래와 함께 내 인생의 봄도 가늠해 보시지요. 버드나무 봄 언덕에 석양(夕陽)이 비꼈는데 연못가로 풀꽃나무 쫑긋쫑긋 푸르구나 배고프면 뜯어 먹고 목마르면 물마시니 바위 위에 저 목동은 잠이 절로 무르녹다. 산과 물이 모두가 봄의 소식이요 풀꽃 가득한 봄을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구나. 그 사이 소식을 묻지를 마라 한 생각 돌이킨 뜻 뛰어나 세상만사가 자재(自在)하다네. 자! 가슴을 활짝 열고 창문을 활짝 열고, 용기있게 외쳐 봅시다. 봄이여 오라. 어서 오라. 내 품안에 안기어 오라. /김경일(원불교중앙중도훈련원 교무)

  • 지역일반
  • 전북일보
  • 2007.03.01 23:02

[그리운 사람에게 띄우는 엽서한장] 삶이 한없이 흔들릴때 마다 죽비소리가 되어준 푯대

‘가난한 자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자존심뿐이다.’이 말은 내 친구가 곧잘 했던 말이다. 정확하게는 “국화꽃 향기”의 작가 김하인이 80년대 어두운 통곡의 시대를 향해 가끔씩 자조적으로 내질렀던 말이다. 나는 젊은 날에 인사동에 있는 어느 술집에서 이 말을 극적으로 만났다. 그렇다. 정말 ‘극적으로’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충분히 전율했었지 싶다. 이 말이 내 몸에 들어왔을 때 내 정신은 이미 관능으로 활짝 열렸으므로. 나는 지금도 그러한 상황에 놓일 때 행복을 느끼곤 한다. 그 말을 그대로 마음에 베껴 적고 나의 비망록에 등재하였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죽비소리가 되어 주었던, 외롭지만 푯대가 되어 주었던 감동의 속살. 그럴 때마다 내 존재의 삶은 작은 경련을 일으키며 구겨졌던 삶들을 아름다운 열꽃으로 피워냈다. 지금도 햇빛이 너무 뻑뻑하거나, 어쩌다 잠들지 못하고 비르적거릴 때면 문득 그때 그 말과 함께 그 친구가 한없이 그리워진다. 그리운 말, 차마 그리운 친구! 당시 현실에 안주하기를 부정하며 끊임없이 낯선 세계를 동경했던 나의 청색시대에 만났던 친구. 친구야! 비록 많은 것들이 세월과 함께 무너져갔지만, 그래도 그때의 그리움이 여전히 슬픈 아름다움처럼 남아 지금도 틈틈이 내 삶을 감시하고 있나니, 그대에게 행복 있을진저!/유인실(시인)

  • 지역일반
  • 전북일보
  • 2007.03.01 23:02

[시론] 3·1정신 되새겨'희망의 역사'창조 - 나종진

해마다 3월1일이 되면 세계 최대의 민족운동으로 평가되는 기미년 3?1독립만세운동을 생각하게 된다. 1919년 3월 1일 정오를 기해 민족대표 33인은“吾等(오등)은 玆(자)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此(차)로써 세계만방에 告(고)하야 인류평등의 대의를 克明(극명)하며, 此(차)로써 자손만대에 誥(고)하야 민족자존의 正權(정권)을 永有(영유)케 하노라”로 시작되는 3?1독립선언서를 선포하였다. 독립선언서는 우리민족이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이어온 문화민족임을 강조하면서 일본의 침략에 대결하고 정의와 인도에 입각하여 민족의 자유?독립?평등을 요구한 것이었다. 또한, 조선의 독립이 동양의 평화, 세계의 평화,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최후의 1인까지 최후의 1각까지 비폭력적으로 끝까지 투쟁할 것을 의미한다.31독립선언서는 천도교측 15명, 기독교측 16명, 불교측 2명 등 33인이 민족대표로 서명한 후에 천도교에서 경영하는 보성사(普成社)에서 2만 1,000매가 인쇄되어, 2월 28일부터 전국 각지로 배포되어 집집마다 뿌려져 일본과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독립만세운동에 커다란 시발점이 되었다.3?1독립만세 운동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억압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우리의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떨쳤으며 억압받던 민족혼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3?1운동은 2백여만명이 동원되어 10만여명의 사상자를 냈지만 성공하지 못한 미완의 운동으로 끝났다. 그러나, 3?1독립만세운동은 조국 광복의 디딤돌이 되었고, 독립을 갈구하는 세계 약소민족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었다. 또한, 3?1운동의 위대한 정신은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들을 하나로 규합하는 상해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져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되었고 오늘의 대한민국의 모태가 되었다. 이렇듯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부자나라 대한민국이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고, 세계 역사에서도 영원히 묻혀져 잊혀졌을지도 모른다.국가보훈처에서는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헌신하신 독립유공자의 애국정신을 기리고, 독립유공자들의 공헌과 희생이 항구적으로 존중되도록 하고 범국민적으로 예우풍토를 조성하기 위하여 2005년도부터“독립유공자 예우지침”을 마련하여 시행하여 오고 있으며, 금년도 제88주년 3?1절에도 59명에 대해 추가로 독립유공자 서훈을 추서하였다. 전북지역에서는 전북도청 대강당에서 3?1절 기념행사를 거행하는 것을 비롯하여, 조찬기도회, 전북지역독립운동 추념탑 참배, 풍남문 타종 등 각종 기념행사 열리고, 3?1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가 남원덕과, 익산, 군산, 정읍태인 등지에서 펼쳐지며, 오는 3월 9일에는 임실오수에서 만세운동 재현행사가 개최된다. 뜻 깊은 3월1일이 일부 공무원과 학생들만을 위한 날이 되지 않고 전국민들이 함께할 수 있도록 도민들께서도 어린이 회관 옆에 있는 전북지역독립운동 추념탑을 참배하거나 만세운동 재현행사장에 참석하여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선열들의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몸소 체험해 보셨으면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IMF이후 청년실업, 북핵문제, 일본의 교과서 왜곡 및 독도 영유권 문제, 중국의 동북공정, 정치권의 갈등 등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국면에 처해있다. 이러한 때 3?1정신을 바탕으로 한 민족정기를 근본으로 국민적 화합을 구축하여 한민족의 저력을 보여줄 때이다.인간의 움직임이 힘차고 아름다웠을 때 그것은 값있는 역사가 되는 것이요, 그와 반대되는 경우에는 쇠약한 역사가 되는 것이다. 한때 다른 민족의 침략 아래 굴욕의 시간을 보낸 일이 있었지만 거기에 저항하여 분연히 떨쳐 일어났던 우리민족의 움직임은 자랑스러운 힘찬 역사이다. 그것이 바로 3·1운동을 통하여 나타난 우리 민족의 참 모습이요, 또 힘차고 아름다왔던 참 역사인 것이다.3.1운동 당시 온겨레가 함께 외쳤던 그날의 함성과 우리 민족의 혼을 기억합시다! 전국민이 하나된 힘으로 선진한국의 꿈을 반드시 이루어내 우리후손들이 자랑할 만한 영광스런 대한민국의 역사를 만들어 갑시다./나종진(전주보훈지청장)

  • 지역일반
  • 전북일보
  • 2007.03.01 23:02

부인 기리기 위해 18년간 장학금 지급

어려운 이웃들의 아픔을 함께 해달라는 부인의 유언에 따라 장학회를 만든 후 18년동안 장학금을 지급하며 인재양성에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고 있는 독지가가 있어 화제다.화제의 주인공은 지난 1985년 운명을 달리한 부인 홍계식씨의 평소 뜻에 따라 ‘고 홍계식장학회’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임용구씨(81·익산시 용안면).임씨는 36살 나던 해에 부인 홍씨를 만나 고생끝에 얻은 논 3만여평을 경작하며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으나 어느날 갑자기 심장마비로 운명을 달리한 부인 홍씨가 너무 불쌍한 마음이 들어 ‘고 홍계식장학회’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단다.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면학에 정진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함으로써 부인에게 다하지 못한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자 시작된 임씨의 장학금 지급은 올해로 18년째를 맞고 있다.임씨는 27일 오전 용안면사무소 2층 회의실에서 올해 서울대학교 농생명공학부에 진학한 김태현군(19·용안면 덕용리) 등 7명의 학생에게 모두 28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이날 장학금을 전달받은 학생들은 10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의 엄정하고도 공정한 심사를 거쳐 선발됐다.부인 홍씨가 세상을 떠나던 지난 1985년 1000만원의 기금을 마을 이장에게 전달하면서 발족된 ‘고 홍계식장학회’가 지난 18년동안 관내 학생들에게 지급한 장학금은 지금까지 총 4000여만원(141명)을 웃돌고 있다.임씨는 “기금이 해를 더하면서 늘어나 현재 1600만원이 조성돼 지속적인 장학사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지역일반
  • 장세용
  • 2007.02.28 23:02

[딱따구리] 주민 위한 임실군의회 되길...

“35사단 반대를 위해 주민들이 3년여 동안 사투를 벌이고 있는 데도 의회가 강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으니 주민을 위한 의회가 과연 맞습니까”.26일 임실군의회에 불만을 품고 집단으로 항의, 방문한 임실읍 대곡리와 감성리, 정월리 주민 100여명의 분노어린 목소리다.전임 군수들은 임실군의 경제활성화와 인구유입 등을 목적으로 전주시의 골칫덩어리인 35사단의 임실 유치를 위해 안간힘을 썼다. 여기에 일부 사회단체와 자영업자 등도 임실 발전에는 35사단 유치가 필수라며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하지만 지난 2000년 이후 이전 대상지가 임실읍 대곡리 일대로 가시화 되면서 관련 지역 주민 1000여명은 현재까지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 반대를 외치는 이들의 주장은 ‘500년 동안 이어온 선조들의 농토를 지키기 위한 생존권의 몸부림’이었다.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찬성위 주민들과 행정, 의회의 눈길은 그동안 냉담할 정도로 차가웠다.다만 김진억 군수가 ‘주민이 반대하면 유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찬성위 주민들도 반대측 주민들과의 대화를 시도했다.이같은 상황에서 반투위 주민들은 자신이 뽑아준 군의회에서도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 줄 것으로 믿어왔다. 물론 찬성위와 반투위의 양론으로 갈라선 시점에서 의원들이 한쪽을 선택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그러나 35사단 이전 문제로 고을 전체가 술렁일 정도면 의회는 즉시 특위 구성이나 진상조사에 나서야 함이 수순이었다.주민의 집단 항의가 이뤄지면서 마지못해 ‘통합기구 설치’ 표명은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의회의 분발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 지역일반
  • 박정우
  • 2007.02.2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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