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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시민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야죠"

임영진 전 군산시공무원노조 위원장(52)이 8년8개월 동안 몸담았던 노조에서의 활동을 마무리한 뒤 최근 시민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청소년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공무원들의 권익신장과 공직사회 개혁에 자신의 공직생활 중 절반가량을 바쳤다는 임 전 위원장은 16일 그동안의 성과와 노조활동의 아쉬움, 2대 노동조합에 대한 기대감 등을 피력했다.그는 "20여년 공직생활 중 절반을 공무원 노조활동에 바쳤기 때문인지 아직도 못다한 일이 많게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홀가분하다"면서 "현업에 복귀한 만큼 시민들에게 한발짝 더 다가설 수 있는 공직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임 전 위원장은 이어 "도내 14개 시·군 중 처음으로 공무원 노조를 출범시키고, 공무원 사회에서는 전국 최초로 노사간 단체교섭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는 등 시공무원노조의 역할은 매우 컸다"면서 "시공무원노조는 행정안전부로부터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합리적인 공무원 노조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고 설명했다.그는 그러나 "지역의 소외계층에 대한 봉사활동과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역할이 부족했던 점, 공무원들의 긍정적이고 합리적인 면을 시민들에게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토로했다.이 때문인지 임 전 위원장은 지난 2월 초에 출범한 2대 노조의 활동에 상당한 기대감을 표출했다.그는 "2대 시 공무원노조는 군산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사는 도시가 되는데 큰 역할을 해낼 것"이라며 "2대 노조가 더욱더 발전해 공무원들과 시민들로부터 사랑받고, 특히 소외계층과 함께하는 노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1986년 공직에 들어선 그는 1∼2대 시직장협의회 사무국장, 3대 직장협의회 위원장을 거쳐 지난 2006년 2월3일부터 2009년 2월2일까지 3년동안 1대 시공무원노조 위원장을 맡았다.

  • 군산
  • 홍성오
  • 2009.02.17 23:02

[일과 사람] 전북대 최고령 졸업자 52세 허은석씨

48살에 수학능력시험을 보고 정시전형을 통해 전북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허은석씨(52)가 4년간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전북대 최고령 졸업자로 학사모를 쓴다.지난 4년간의 대학생활이 꿈만 같다는 허씨는 "대학공부가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었고 아들 또래의 동급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면서 한층 젊어졌다"며 환하게 웃었다.임실에서 자란 허씨는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에도 부모의 배려로 통학열차를 타고 등하교하며 전주농업고등학교(현 전주생명과학고)를 졸업했다. 고교 졸업 뒤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생활에 쫓겨 군에 입대했고 이후 일간지 지국을 운영하며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배우고 싶은 열정 때문에 20대에는 방송통신대에 입학, 라디오로 강좌를 들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중도에 그만둬야 했다.허씨가 뒤늦게 대학 진학의 꿈을 다진 것은 지난 2001년. 당시 고교에 들어간 큰 아들이 방황하며 공부를 게을리 하는 모습을 보고 "아빠도 할 테니까 같이 서울대 가자"고 공언한 게 시발점이 됐다. 허씨는 신문에 나오는 수능문제들을 꼼꼼히 풀었고 아들이 공부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배우기도 했다. 부자간 약속의 결과로 큰 아들은 2003년 전북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허씨도 약속을 어길 수는 없어 이듬해 작은 아들과 함께 본격적인 수능 공부를 시작했고 전북대 정시전형에 합격, 큰아들의 후배인 05학번이 됐다."1학년 1학기 때는 합격한데 감사하며 정신없이 학교만 다녔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들, 딸같은 동급생에게 나이 들어 어영부영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학업과 생업을 병행하느라 매일 새벽 1시 30분에 일어나 신문배달 등 지국 일을 마치면 오전 7시께. 수업은 모두 오전 과목으로 신청해 오전 9시부터 낮12시까지 수업을 듣고 집에 돌아와 잠깐 눈을 붙였다. 오후엔 밀린 일을 처리하고 리포트 작성 등 과제를 하다보면 어느새 하루가 갔다. 그렇게 4년간 하루 평균 3시간 남짓 잠을 자며 생활했다. 그래도 군입대하는 작은 아들을 배웅하느라 단 한차례 조퇴한 것을 제외하고는 4년간 개근을 했다. 또 교양필수 과목인 영어는 고전을 면치 못해 C학점에 머물렀지만 대부분 과목은 A학점을 웃돌았고 1학년 2학기 때는 성적우수 장학금을 타기도 했다. 4년간 모두 146학점(졸업이수 학점 140)을 이수했고 평점은 3.8로 상위권을 기록했다.상대평가 때문에 수업시간에는 경쟁관계지만 동급생들은 '왕형님'이라고 부르며 허씨를 따랐고 허씨도 방황하는 동기와 후배들에게는 경험에서 우러나는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인생은 60부터라고 하잖아요. 저는 아직 시작도 안한 인생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있는 거죠."허씨는 대학원 진학을 계획하고 있지만 올해 세 자녀가 모두 대학생이 돼 잠시 꿈을 미루기로 했다. 여전히 영어는 어렵고 '독수리타법'으로 리포트를 작성하는 게 곤욕이지만 대학원생이 되는 허씨의 또 다른 꿈은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 사회일반
  • 임상훈
  • 2009.02.16 23:02

[사람] 전주지검 이은중 군산지청장 "경제위기 극복 최우선"

"경제위기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검찰권을 행사하겠습니다."전주지검 군산지청 이은중 지청장(48·사시 27회)은 지난 1월30일 취임사에서 밝혔던 것 처럼 경제위기 극복에 주안점을 두고 군산지청을 이끌어가겠다는 각오다.이 지청장의 이 같은 운영방향은 세계 경제위기로 관내 기업들에게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고, 지역 서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분석에서 비롯됐다.지난 2002년 전주지검 부장검사로 근무해 전북이 낯설지 않다는 이 지청장은 이미 관내 기업의 현황 및 서민들의 여건을 상당부분 파악하는 열의를 보였다.이 지청장은 자유롭고 생산적인 기업활동 등을 위해 △악성 유언비어 등으로 기업의 신용을 훼손하는 행위 △기업을 상대로 금품을 갈취하는 행위 △기업주가 기업자금을 사리사욕으로 채우는 행위 등을 엄단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서민들의 궁핍한 사정을 악용하는 사기 사범과 불법 사금융 사범도 엄정처벌 대상이다.그는 다만 "기업주가 수사대상에 오르더라도 기업의 정상적인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최대한 검찰권을 절제하고, 서민들의 생계형 범죄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덧붙였다.이 지청장은 이 밖에도 "부정부패 척결 등 법질서 확립을 위한 검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는 직장 분위기 조성에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이 지청장은 강원도 춘천 출신으로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의정부지검 형사1부장검사, 대구지검 형사1부장검사, 서울고검 검사 등을 역임했다.

  • 법원·검찰
  • 홍성오
  • 2009.02.16 23:02

[일과 사람] '남은 음식 재사용 안하기…' 주부클럽 곽인순 회장

"절대 안 됩니다. 남은 음식물을 다시 사용함으로써 우선 시민 건강이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맛의 고장'이란 전주 명성까지 위협 받게 될 것이고요".12일 오후 3시, 전주시청에서 열린 '남은 음식 재사용 안하기 실천 결의대회'에 참여한 대한주부클럽연합회 전북·전주지회 곽인순 회장은 음식 재사용 문제에 대해 강한 경계심을 표출했다.이날 결의대회는 남은 음식을 재사용하는 것이 사회문제로 부각되는 시점에서 음식점 업주와 소비자 단체 등이 자정운동을 벌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음식업소 대표로 모범음식점, 소비자 대표로 식품감시원, 음식단체 대표로 요식업조합 등에서 관계자 300여명이 참석했으며, 곽 회장은 소비자단체 대표 자격으로 찾았다."보다 적극적으로 감시활동을 벌여나갈 것입니다. 전주 이미지를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주민 나아가 국민들의 건강까지 위협할 수 있으니까요".곽 회장은 이날 결의대회 참예 계기로 음식업소에 대한 감시 활동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남이 먹던 음식을 다시 먹지 못하도록 도와주는 것도 소비자 운동의 하나이기 때문이다.특히나 음식문제는 건강문제와 직결된다. 음식 하나를 잘 못 먹었다가 자칫 건강까지 해칠 수 있는 것이어서 음식물 재사용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다루기로 했다.음식업소나 음식단체를 중심으로 절대로 남은 음식을 재사용하지 못하도록 홍보활동을 벌이겠지만,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손잡고 소비자 보호 운동을 적극적이고 벌이겠다는 것.곽 회장은"음식물 10가지가 나오는 것보다는 한 가지라도 특색 있게 나오는 게 중요하다"며 "전주시를 보다 '명품 음식도시'로 육성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사회일반
  • 구대식
  • 2009.02.13 23:02

[일과 사람] '전주시민 한소리…'대상 솔내청소년수련관·인봉초교팀

"상을 욕심내지 않고 즐기면서 했어요. '화초장' 에서 놀부가 소리 내지르는 대목이 많잖아요.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트이는 대목부터 시작해서 좋은 결과를 얻게 된 것 같아요. 소리는 어렵고 힘든 것이라 여겼는데, 이젠 즐겁습니다."11일 전주 덕진예술회관에서 열린'전주 시민 한소리하기 성과 발표회' 성인부 대상은 솔내청소년수련관에 돌아갔다. 옥빛과 쪽빛이 곱게 어우러진 한복을 차려입고 쪽머리를 한 아줌마들의 얼굴엔 큼지막한 웃음꽃이 번졌다. 이날 주인공은 한순남 고영순 남연옥 기희진 남수란 박순희 방남신씨.이들은 "곰삭은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맑고 실한 소리를 내기 위해 무던히 연습했다"며 "'틀려도 좋으니까 즐겨야 한다' '여긴 남자 없으니 작고 예쁘게 소리 내려고 하지 말라'는 강사 최연하씨의 권고가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수련관과 집을 오가며 시도 때도 연습을 했고, '성과 발표회'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거의 매일 만났을 만큼 열정을 보였던 게 수상의 비결이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전주 시민 한소리하기 성과 발표회 ' 학생부 대상은 전주 인봉초교가 수상했다. '청일점'인 최민강군을 비롯해 박하진 홍은희 강수빈 김민진 김슬기 장서연 김민주 김남주 김소리 임혜윰 박도희양이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얼굴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학교에서 놀았던 것처럼 땀 뻘뻘 흘리면서 해보자'는 지도강사 김연씨의 말대로 아이들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잘 소화했다." 아이들은 빠른 장단의 '방아타령'을 정말 좋아합니다. 어떤 아이는 휘모리 장단에 맞춰 해보더니 '선생님, 이거 랩이네요 '하대요. 부모들은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고, 수학 문제 하나 더 풀어야 한다고 속상해 했지만, 아이들이 정말 열심히 해줬습니다. 고맙고 기쁘고 대견해요."김씨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에 치여 자신의 재능을 발견할 기회를 놓치는 것 같아 아쉬웠다"며 "'전주 시민 한소리하기'를 통해 우리 소리에 관심을 갖는 아이들이 더 많이 발굴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전시·공연
  • 이화정
  • 2009.02.12 23:02

[일과 사람] '울아빠가 농사진 쌀' 주인공 익산 김삼수씨

믿음을 주는 농사를 통해 소비자에게 감동을 전하면서 대박을 터뜨린 전문농업인이 화제다.익산시 오산면 영만리 청수마을 김삼수씨(42).3대에 걸쳐 이 곳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김씨는 지난 2006년도부터 자신이 직접 지은 쌀에 가족 사진을 담은 '울아빠가 농사진 쌀'이란 1인 브랜드 쌀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지역사회의 화제인물이 되고 있다.농고를 졸업하고 군대에 다녀오자 마자 집안 농사일에 뛰어든 김씨는 농사일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게 별로 없었던 평범한 농부였다.그러던 그가 자신이 직접 농사 지은 쌀에 가족 사진을 담겠다는 생각을 할수 있었던 것은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한평생 외길인생을 살아온 결과로 농업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할아버지와 아버지 시대 처럼 단순한 농사일로는 결코 돈을 벌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해마다 되풀이되는 쌀값 폭락 등으로 더이상 고통을 받을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김씨는 이 때부터 농업으로 소비자들에게 감동을 전해줄수 있는 새로운 활로 개척과 해법 찾기에 나섰다.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김씨는 결국 가족의 이름을 내건 1인 브랜드 쌀을 생산 판매키로 결정했다.홀로 대형백화점과 마트, 구내식당과 시내 식당가 등을 돌며 판매처 확보에 나선 김씨는 당시 구매처마다 시큰둥한 반응으로 별다른 호응을 보이지 않자 잠시나마 커다란 좌절감이 몰려왔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더욱 힘껏 운동화 끈을 조여매고 백방으로 뛰어 다녔다.쌀의 품질 하나 만큼은 그 어떤 유명 쌀보다 자신하고 있었기에 시간이 지나면 소비자들이 알아줄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던 김씨에게 얼마안가 소비자들의 구매 신청이 쇄도하는 행운이 찾아왔다.특히 지난해에는 소비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품질 보증 소문이 확산되면서 한해 생산량 40kg짜리 5,000여가마가 모두 바닥날 정도로 크나큰 인기를 차지했다. 여기에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가족사진이 담겨진 쌀 포장 디자인 그림에 평소 미술에 소질이 있는 큰 딸 예지양(중1)이 가족 사진을 보고 그린 작품이 넣으면서 쌀의 품질에 대해 소비자들이 더욱 믿고 신뢰했던 이유인것 같다고 김씨는 설명했다.김씨의 이같은 소비자 감동 서비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질주됐다.벼보다는 쌀, 쌀보다는 가공식품을 만들어야 소득이 더욱 창출 될 것이라 착안한 김 씨는 지난해 가을 울아빠가 농사 지은 쌀로 깜밥을 만드는 깜밥 가공 공장을 준공했다.역시 품질 좋은 쌀로 만든 깜밥 때문에 소비자들의 인기는 생각 이상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이어지는 대성공을 거뒀다.수확하여 거둔 쌀의 품질이 기대에 못미치면 아무리 돈이 궁하더라도 절대 팔지 않는 김씨의 외골 성격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오직 품질 하나로 승부를 걸면 성공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세상 이치를 재차 확인해주었다.

  • 사회일반
  • 엄철호
  • 2009.02.12 23:02
사람들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