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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사람] "춘향전 세계화 준비" 박환덕 춘향제전위원장

“오랫 동안 고향을 떠나 생활했지만 한시도 고향 특히 ‘춘향제’에 대해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제77회 춘향제전위원장으로 추대된 박환덕(74) 서울대 명예교수는 “정절과 부덕 그리고 사랑과 관용을 상징하는 춘향의 고귀한 얼을 기리는 춘향제전위원장을 맡게 돼 개인적으로는 영광이지만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이같이 취임 소감을 밝혔다. 박 위원장은 “1990년도 초반까지 춘향제는 지역민과 행정에서 십시일반의 자금을 마련하고 각 단체의 봉사와 희생으로 행사를 치러왔는데 어느 순간 규모와 조직이 비대화되고 행사는 격식화됐다”며 “그 속에서 춘향제 본래의 얼과 혼은 약해지고 답습적인 행사만 남아 춘향제의 본질에서 벗어난 행사가 돼왔다”고 그동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그 대안으로 먼저 국내 최고의 춘향제를 전통에 충실한 축제로 운영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올 춘향제는 최대한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기 위해 기존의 격식적이고 형식적인 부분들을 춘향전과 춘향제 본래의 정신과 격조로 채워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또 춘향제와 컨셉이 맞는 프로그램은 전폭적으로 예산을 지원하고 거리감이 있는 프로그램은 원칙적으로 제외시키겠다고 밝혔다. 둘째로 박 위원장은 “지역민과 관광객이 자발적으로 체험하는 축제를 만들겠다”며 “이를 위해 함께 즐기고 느끼며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고 다짐했다. 셋째로 박 위원장은 “춘향제를 통해 춘향전을 세계화해야 한다”며 “고전‘춘향전’이 세계인의 가슴속 깊이 사랑과 관용의 정신을 새기는 세계적인 고전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춘향제를 준비해가겠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이번 춘향제전을 계기로 춘향전이 한국인의 고전에서 세계인의 불멸의 명작으로 자리매김 되고 우리 남원이 세계 명작의 고향으로 세계인들의 문화적 향수의 대상이 되도록 하자”며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당부했다.

  • 경제일반
  • 신기철
  • 2007.02.26 23:02

[일과 사람] 한약사국가고시 수석합격 우석대 권민숙씨

우석대 권민숙(한약학과·26)씨는 23일 졸업식을 앞두고 제8회 한약사 국가고시 수석합격의 소식을 듣고 뛸듯이 기뻤다. 시험 준비 기간 중에 위염으로 많이 고생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좋은 결과가 나와 기쁨이 더 크다.전북대 공대 1년, 숭실대 자연계열 1년, 이렇게 2년을 다니고 2004년 우석대 한약학과에 편입학, 뒤늦게 시작한 한약학 공부지만 2년동안 성적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다. 약사인 작은언니의 영향도 받았지만, 밥 한끼를 해 먹어도 열심히 준비해서 열심히 먹으려 한다는 그이기에 한약사 시험도 열심히 준비했다. '뭐든 열심히 한다'는 좌우명이 무색치 않게.“대부분 ‘합격만 하면 되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하지만 저는 ‘중요하고 어려운 시험이다’고 생각하고 예상문제를 풀고 또 풀었지요. 4학년 여름방학때 자취방에서 15과목을 별도 정리한 것이 큰 도움이 됐어요.” 공부하다 지치면 좋아하는 가수 문희준의 공연을 보러 또 사인회에 참여하러 강원도 원주 등 군부대도 좆아다니며 기분을 전환했다.이미 한방과립제 전문회사인 전주 한풍제약에 취직한 권 씨는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이 우선이지만, 공부를 계속할 생각도 하고 있다.한편 우석대 한약학과는 이번 시험에 39명의 응시자 중 38명이 합격했다.

  • 경제일반
  • 허명숙
  • 2007.02.23 23:02

[일과 사람] "음식물 불우이웃과 나눠요" 전주푸드뱅크 오영란씨 호소

“너무 많이 준비한 음식물, 불우이웃과 나눠요.”명절을 보내면서 각 가정이나 업소에 적지 않은 음식물이 남아돌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도내 각 시·군 ‘푸드뱅크(FOOD BANK)’가 식품을 통한 사랑나누기에 주민들의 참여를 호소하고 나섰다.푸드뱅크는 생산이나 유통·사용 과정에서 발생한 잉여식품을 기탁받아 재가복지대상자 및 결식아동·무료급식소 등 저소득 계층에 전달하는 ‘사랑의 식품나눔 은행’으로 전주에서는 지난 1998년부터 시작됐다. 전주시 푸드뱅크(원광모자원 부설) 오영란 사무국장(34)은 21일 “전주의 경우 식품을 나눠야 할 각종 사회복지시설이 180여곳에 이르지만 기탁자는 갈수록 줄고 있다”며 “올해는 특히 가정 단위의 참여가 거의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실제 전주 푸드뱅크가 기탁받은 식품을 금액으로 환산한 결과 2004년 3억1846만원에서 2005년 2억8371만원, 지난해 1억 9675만원으로 해마다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오국장은 “주로 제과점이나 시장 상인, 학교, 도·소매 업소에서 식품을 기탁하고 있다”며 “기탁자로부터 연락이 올 경우 차량으로 즉시 가져오기도 하지만 가장 가까운 사회복지시설과 직접 연결시켜 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제과점 및 식품 제조·유통업체에서 대량으로 기탁하는 식품은 주로 유통기한이 임박한 경우가 대부분인 만큼, 가장 신경을 쓰는 분야는 위생문제다. 오국장은 “노인이나 아동은 면역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유통기한과 식품상태를 일일이 확인한다”며 “수혜대상 시설이 많고 위생문제도 고려해야 하는 만큼, 기탁받은 음식물은 당일 배분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버려지는 음식물을 돈으로 환산할 경우 하루 404억원, 1인당 연간 31만여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음식물 쓰레기 처리비용 절감과 환경보호·사회복지 차원에서도 식품나누기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남는 음식이나 식재료를 기탁하고자 할 때는 그 양에 관계없이 도내 각 시·군 푸드뱅크에 연락하면 된다. 연락처는 지역에 상관없이 1688-1377 (전주 225-4215).

  • 경제일반
  • 김종표
  • 2007.02.22 23:02

[일과 사람] "환자 모두를 아버지로" 안민혁·진혁 형제

“무엇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겠습니다.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잖아요. 환자를 가르치기 보다는 환자에게 배우는 자세로 살아가겠습니다. ” 23일 우석대를 졸업하는 안민혁(26·한의학과) 진혁(24·약학과) 형제는 올해 한의사국가시험과 약사국가시험에 나란히 합격했다. 주위에서는 한 집안에 의사, 약사가 동시에 나왔다고 들썩이지만, 형제는 지난해 5월 간경화로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눈시울을 붉혔다. “투병 중에도 ‘우리 형제 학사모 쓸 때까지는 살아있으마’ 하셨는데... ‘큰아들은 한의사, 작은 아들은 약사가 되면 애비 병쯤은 거뜬히 고치겠지’ 하시며 졸업과 시험합격을 고대하셨는데...” 익산 남성고 동문이기도 한 민혁·진혁 형제는 우석대 재학중 봉사와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도 학우들에게 알려진 인물. 봉사동아리 CMF 회원으로 활동한 형 민혁씨는 지난해 2월 러시아로 해외의료봉사를 다녀올 만큼, 사회봉사에 적극적이었다. 동생 진혁 씨는 록그룹 동아리 ‘둘리’의 리드보컬로 주위에서 가창력을 인정받고 있다. 민혁·진혁 형제는 최고의 라이벌이면서 서로의 취약한 부분을 채워주는 최고의 동반자다. 민혁씨는 “교과 중에 유기화학이 까다로웠는데, 그때마다 동생이 도와줘 쉽게 해결했어요. 저도 동생이 어려워하는 생약학은 도움을 주었죠. 앞으로도 격려와 비판을 아끼지 않는 평생의 동지로 살아갈겁니다.” 민혁씨는 내달 22일 공중보건의로 입대하며, 진혁 씨는 1년간 약국에서 실무경험을 쌓은 후, 내년에 입대할 계획이다.

  • 경제일반
  • 허명숙
  • 2007.02.22 23:02

[일과 사람] "쓰레기 안버리는 의식이 중요" 환경지킴이 권호석씨

국제로타리 3670지구와 JTV가 공동주관한 제3회 초아의 봉사대상 수상자 선정에서 권호석씨(70·장수군 천천면)가 사회봉사부문 대상에 뽑혀 1000만원의 상금을 받게됐다. ‘거리의 천사, 쓰레기 줍는 할아버지’로 잘 알려진 권호석씨는 지난 1969년부터 36년간 눈비가 오는 날도 아랑곳 없이 거리와 행사장 등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아름다운 환경을 지키는데 앞장섰다.거리에 나설때 흰색 T셔츠만을 고집하는 권씨가 입는 옷에는 ‘서로양보하고 기초질서 지켜서 문화국민 됩시다’, ‘담배꽁초·휴지·껌은 휴지통에 버립시다. 내가 머물던 자리는 깨끗이 치우고 갑시다’라는 문구가 앞뒤로 빼곡히 적혀있다. “쓰레기를 줍는 일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버리지 않아야 된다는 의식이 더 중요해 글씨가 잘보이는 흰색 T셔츠를 입는다”는 그의 양손에는 언제나 비닐봉투와 쓰레기집게, 껌 제거용 긁개 등이 필수품으로 함께하고 있다. 고향에서 시작된 그의 봉사활동 무대는 88서울올림픽, 대전엑스포, 고양 세계 꽃 박람회, 전국체전, 강릉단오제, 안동탈춤축제, 남원춘향제, 전주소리문화축제 등 전국의 크고 작은 행사장 등로 넓혀졌다.그는 특히 각종 행사장을 다니며 받은 사례비와 용돈은 모아 매년 지역의 중·고생 3명에게(백화여고, 장수고, 천천중)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지역인재 육성에도 앞장서 왔다.권씨의 이같은 선행은 전 국민의 모범이 돼 장수군민의 장(1983)에 이어 자랑스런 새전북인상 애향대상(1990), 새질서 새생활실천 대통령 표창(1990), 신한국상 대통령 표창(1997), 새마을사업 유공 대통령포장(2003) 등을 수상했다.시상식은 오는 23일 오후 3시 전주리베라호텔에서 열릴 예정이다.

  • 경제일반
  • 정익수
  • 2007.02.21 23:02

[일과 사람] 지체장애 3급 최성열씨 '중단없는 용기 보이다'

지체장애 3급의 사업가가 경제학 박사가 됐다.23일 있을 전주대 학위수여식에서 박사학위에 총장상까지 받는 최성열 씨(59·전주영광교회 전도목사·전주대 구내서점 사장).최 씨의 논문은 ‘환율변동이 경상수지, 투자 및 경제성장에 미치는 효과’로 최근 환율 변동이 심한 시기에 시의적절한 논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완주군 이서면 삼태마을에서 태어난 최 씨는 5살 때 마루에서 떨어져 척추가리에스를 앓고, 평생 등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한채 중증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했다. “10살에 학교에 들어갔지요. 집에서 이서국민학교까지 10리가 넘는 길을 어머니께서 저를 업어서 등하교를 시켰어요. 어머니가 계셨기에 6년 개근에 우등졸업이 가능했습니다. 90세의 노모는 지금도 제가 마음에 걸려서 가끔 제 등을 어루만져주시곤 하십니다.”전주 신흥중과 신흥고를 다니면서는 하루 2번 다니는 버스를 새벽에 놓치면 2시간 넘는 길을 걸어가면서 책을 보고 다녔던 최 씨. 대학생(전북대 상대 경제학과) 최 씨는 몇 가정을 돌면서 입주 가정교사를 하면서도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중앙일간지에서 4년간 편집기자로 일했던 그는 자영업을 하는 것이 장애인에게 가장 적합할 것으로 판단하고 자신에게 가장 익은 ‘책’과 관련된 일을 선택했다. 83년 전주 팔달로에서 3평짜리 국제서림을 열었다. 전북대 정문 앞에 분점을 냈고, 전주대 구내서점에 이어 전북대 구내서점도 운영했다. “전주 국제서림이 발행한 약속어음은 할인이 될 정도로 신용이 좋았습니다. 신용이 자산입니다.”‘뭣이라도 한다, 내 사전에 중단이란 없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성공적으로 해온 최 씨는 2000년 전주대 구내서점 하나로 정리했으며, 학문적 탐구를 지속해 95년 전북대 경영대학원 석사학위를 받고 2005년엔 전주대 선교신학대학원을 수료해 목사안수까지 받았다.“장애가 있을수록 더 공부해서 나보다 못배운 사람들을 깨우쳐주고 싶었습니다. 배움이 없어서, 경제활동도 못하는 장애인들에게 용기를 불러일으키고 싶습니다. 학문으로는 후진들에 도움주는 선배, 목사로서는 장애인들 도와주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최 씨는 교회에서 다비다선교회장을 맡아 불우이웃을 찾아다니며 봉사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젊은이에게는 장학금도 지급하고 있다. 오미화씨(53)와 1남 2녀를 둔 그는 아내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고 했다.

  • 경제일반
  • 허명숙
  • 2007.02.21 23:02

[일과 사람] 조선족 이주 3년차 김소연씨의 설날

중국의 연변을 떠나 낯선 한국의 남편을 만난 것이 지난 2005년 1월 2일. 새해가 밝자마자 서둘러 시작한 결혼생활은 올해로 3년째에 접어든다. 조선족 출신 이주여성으로 전주에 보금자리를 튼 김소연씨(32)는 30년간 중국에서의 생활을 접고 시작한 한국생활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한국말을 잘해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고 남편 역시 그녀를 무척 사랑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국 아닌 이국인 한국에서의 생활이 즐거운 것은 그녀의 부모와 남동생 역시 한국에 살고 있어서다.결혼 당시 남편의 배려로 가족 모두가 방문비자를 통해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부모는 현재 아는 분의 도움으로 전주시내에 소일거리를 하며 살고 있다.거의 매일 부모를 볼 수 있어 좋은 것은 김씨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남편이 더 좋아한다. 사위사랑은 장모사랑이라는 말처럼 어머니 강세복씨(62)의 사위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기 때문.지난 17일 이주여성한마당이 열린 한옥생활체험관에는 모녀가 나란히 손을 잡고 참가했다.김씨는 “요즘은 남편이 어머니에게 더 정을 많이 쏟아 은근히 걱정”이라고 어머니를 힐끗 보며 웃었다.부모가 함께 있고 남편의 사랑이 크지만 낯선 한국문화에 대한 적응이 쉽지만은 않다.“중국은 부모가 돌아가시면 3년 동안만 산소를 찾으며 간단한 제사상을 차리는데, 한국은 몇 대 조상까지 매년 성대한 제사까지 차리니까 너무 복잡하고 힘들어요.”한국의 맏며느리들이 짊어진 제사와 명절에 대한 부담이 김씨에게는 더 크게 다가오는 모양이다.새해를 맞는 김씨의 소망은 두 가지다. 방문비자 만료로 조만간 출국해야 하는 부모와 남동생이 하루빨리 전주에 다시 오는 것과 남편 닮은 아들을 낳는 것.김씨는 “너무 친절한 한국 사람들을 보면 이곳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남편과 함께 평생 예쁜 가정 꾸려가겠다”고 말했다.

  • 지역일반
  • 임상훈
  • 2007.02.20 23:02

[일과 사람] "새 인생위해 한의대 선택" 우석대 편입학 51세 정현씨

51세의 정현 씨(김제 출생, 서울 거주)는 81년 대학 졸업 후 26년 만인 올해 또다시 대학 신입생이 됐다. 그것도 고3생 중에서도, 전국에서 최상위권이 아니면 꿈도 못 꿀 한의대생이.“천운이죠. 실력 좋은 사람들이 많은데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정 씨는 일반편입학생 단 1명을 뽑았던 우석대 한의학과에 시험을 치러 당당히 합격한 것이다. 11대 1의 경쟁률을 뚫고.“어머님이 오래 전 돌아가신 뒤로도 정정하시던 아버님(77세)이 4년전 중풍으로 누우시면서 ‘인생이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을 고민하면서 한의대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한의대 입학을 위해 ROTC 제대 후 84년부터 21년간이나 몸 담아온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부장)를 2005년 4월에 그만뒀다. 두 아들도 장성했고, 부인도 직장을 다녀 경제적인 부담이 적은 것도 ‘사직’ 결단에 작용을 했다. 한의대를 작정하고는 1년여를 공부한 셈이다. 학원을 다니면서 생물과 한문도 새롭게 배웠다. 한문은 줄곧 혼자 공부해왔고, 오래 전 개인선생을 모시고 한학 연구모임을 갖고 꾸준히 익혀왔기에 어느 정도 자신있었지만 한의대 시험용 한문은 달랐다. 또 생물은 어렵고 힘들었다. 한의사를 꿈꾸며 펼쳐본 고등학교 3학년 생물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겉돌았다. 공부하는 데 이력이 붙은 그가 학원을 찾은 이유다.영어는 전경련 국제경제팀장을 오랫동안 맡아왔기도 했지만, 영어를 놓아본 적이 없었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회화는 자신 있었어요. 이론이 좀 약해도. 2년 전 직장 다닐 때 토플 치른 것으로 원서접수를 대신했습니다. 글쎄, 원서 낼 수 있을 정도의 점수밖에 안 돼요.” “어떤 한의사가 될거냐고요? 차차 생각해 봐야죠. 겁나서 아직 한의과 관련 책을 보지도 않고 있는데...”지난 1월 31일의 시험을 앞두고 막판 총정리를 고향 빈집에서 보름동안 했단다.정 씨는 전고 졸업 후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왔으며 전경련 산업조사, 국제경제, 회원관리 부장 등을 역임했다.

  • 경제일반
  • 허명숙
  • 2007.02.15 23:02

[일과 사람] '등록금' 애타는 마흔살 장애여성 배움 열정

직장을 갖고 싶었으나 졸업장과 장애로 늘 좌절했던 마흔살 여성장애인이 대학에 합격했다. 올해 한일장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합격한 윤숙경씨(40·풍남동).지난해 고입과 대입검정고시를 함께 통과하고 다시 얻은 결실이다. "재작년 9월에 ‘새로운 누리 장애인 야간학교’가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작은 망설임이 있었지만 사회 활동에 참여해 생활 기반을 스스로 닦고 싶었습니다.”정식인가를 받지 못한 야간학교지만 중학교를 중퇴한지 꼭 25년만에 다시 들어간 ‘학교’에서 그는 대학 진학의 꿈을 키웠다. 윤씨는 뇌병변 1급 장애인이다. 언어에 장애가 있으니 말하기가 어렵고, 한마디 말을 하는것이 글쓰기보다 몇 배의 시간이 더 걸렸다.학교생활은 쉽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공부를 다시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다행히 부모님이 윤씨의 집 근처로 이사를 와 문제가 해결됐다. "어렸을 때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을때의 아픔이 떠올랐어요. 장애인이라는 차별과 다른 아이들의 편견이 싫어서 그만뒀는데..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잖아요. 제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고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다시 힘을 나게 했죠."지난해 4월, 고입검정고시를 치를때 이 학교 강현석교장(41·인후동)은 한번에 합격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너무 오랫동안 책을 놓고 있었던데다 수업이 끝나면 곧장 아이를 돌보기 위해 집에 가야하는 윤씨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윤씨는 야간학교 동창 6명과 나란히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내친김에 8월, 대입검정고시에 도전했다. 넉달동안의 준비기간 밖에 없었지만 역시 합격의 기쁨을 안았다. 그는 '새누장애인야간학교'에서 유일한 대입검정고시 합격생이 됐다. 동기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당당히 대학에 입학할 자격을 얻은 순간이었다. 장애인을 위한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고 있는 그는 한일장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지원해 올해 초 합격통지서를 받았다.1년만에 그가 늘 소망해오던 꿈을 이루어내는 큰 기쁨을 안았지만 그는 다시 큰 어려움을 맞았다. 기초수급대상자인 형편에 대학 등록금 마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등록기간을 유예 받아 사방팔방으로 방법을 찾고 있지만 아직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합격을 누구보다도 축하해주었던 동료들은 더 가슴이 탄다. “여기서 포기할수는 없죠. 사회단체들에 장학금을 신청해놓고 있으니 좋은 소식이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꼭 이루어진다’고 들려주었다.

  • 경제일반
  • 이덕춘
  • 2007.02.12 23:02

[일과 사람] "늦깍이 공부 생애 최고" 김윤덕·효녀씨 자매

김윤덕·효녀씨 자매. 7일 전북도립여성중·고등학교(교장 김형남)를 졸업한 이들 자매는 어렵게 인터뷰에 응했다. 7남매나 되는 대가족에 가정형편까지 어려워 형제들중 자매가 학업의 기회를 양보해야 했다. 지금까지 건강하고 밝게 생활해왔다. 단란한 가정도 꾸렸고 아이들도 반듯하게 키웠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에 공부에의 미련은 남아있었다.“언니가 소원 풀어주겠다며 학교 원서를 가져왔어요. 언니 덕분에 용기를 냈지요.” 성인여성들을 위한 학교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윤덕씨가 원서를 2장 준비했다. 자매는 나란히 학교에 입학했고, 또 나란히 졸업했다. 학교생활은 기대 이상으로 즐거웠다. 효녀씨는 “공부를 시작하면서 자신감이 생기고 도전의식도 강해졌다”고 말했다. 스스로 책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학교에 다니며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재하고 있던 피해의식도 떨쳐버렸다. 물론 기억력 감퇴탓에 어려움도 겪었다. 팔에 통증이 올 정도로 필기를 하며 암기했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렸다. 시험기간이면 아이들의 개인지도까지 받았다. 그래도 효녀씨는 한문자격증도 땄다. 앞으로 더 공부해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하는게 소원이다.공부는 누가 더 잘했을까. 동생은 언니가, 언니는 동생이 나았다고 서로 추켜세운다. 효녀씨는 “침착하고 사려깊은 언니가 학교생활도 모범적이었다”고 하는데, 윤덕씨는 “재치있고 총명한 동생이 학교에서 돋보였다”고 한다. 자매는 최근 3년을 “내 생애 최고의 시절”이라고 말한다. 또 앞으로는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현재 내 자리에 만족하며 행복을 느끼는 것도 깨달았다. “학교에서 얻은게 너무 많아요. 그동안 학교다닌다고 소문내지 않았는데, 저희들 이야기를 보고 더 많은 여성들이 용기를 내 학교에 들어올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 인터뷰에 응했습니다.”졸업식장을 나서는 자매는 서로가 대견하다며 흐뭇하게 웃었다. 한편 7일 오전 10시 전주시 송천동 도립여성중·고등학교에서 열린 제7회 졸업식에서는 중학교 과정에 47명, 고등학교 과정에 43명이 졸업했다. 올해 고등학교 졸업생 중 50%는 대학에 진학했다.

  • 경제일반
  • 은수정
  • 2007.02.08 23:02

[일과 사람] '청소년 동반자' 최광호씨 "사회적 지지로 비행 막아야"

“낙담하지 말고 내 옆에 도움받을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위기 가능 청소년들의 형, 오빠가 되어주겠다고 나선 최광호씨(30·전북대대학원 심리학과)는, 그냥 내버려 두면 비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도 옆에서 제때 손만 내밀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그러기에 최씨는 전북청소년상담지원센터가 올해 처음으로 선발한 ‘청소년동반자’가 되어 지난 2일 교육을 시작으로 전주지역 청소년들부터 상담 등을 통해 위기에 개입할 계획이다.‘아이들과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최씨는 이미 평생교육사, 유아레크레이션지도사, 유아체육지도사 등 자격증을 갖추고 지난 연말 한국청소년상담원에서 하는 위기개입 전문인력 양성교육을 마쳤으며, 지난해부터는 사회 및 성격 심리학회가 주관하는 범죄심리사를 수련 중에 있다.“가벼운 범죄로 법원 훈방을 받거나 초범인 청소년들을 면담하면서 부모나 학교가, 사회가 조금만 지지를 해줬어도 비행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들 청소년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먼저 달려가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상담에 관심이 있지만 마음에도 없는 대학의 학과를 다니던 최씨는 96년 성당에서 교리교사를 맡았던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여학생이 고1이 되어서 방황하는 모습을 보고, 대학 졸업뒤 다시 심리학과로 학사편입하는 등 진로에 관한 경험도 있어서 청소년들의 고민을 잘 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단지 거울만 되어 줄 생각입니다. 저를 통해서 아이들이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게만 되어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같이 길을 가는 사람이지,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아니라고 봅니다.”최씨는 다른 청소년 동반자 18명과 함께 힘들어 하는 청소년들을 직접 찾아가 같이 놀면서, 또는 같이 공부하면서 부진한 학습을 도와주고, 자살을 막고, 또 직업을 제대로 선택할 수 있게 도와줄 생각이다.

  • 경제일반
  • 허명숙
  • 2007.02.05 23:02

[일과 사람] 예비 한의사들, 호주머니 털어 12년째 의료봉사

“학교에서 배운 의료지식을 의료혜택을 못 받는 농촌 노인 분들에게 나눠주고 싶어 봉사에 나섰습니다.”병원도, 의원도 없고 의료시설이라곤 보건소와 약국 한 곳만이 있는 농촌지역에 한의학과 대학생들이 방학시간을 쪼개 의료봉사활동을 나왔다.지난 31일 임실군 신풍면 문화회관 2층 회의실. 고단한 농사일에 지친 몸을 달래려 침을 맞고 뜸을 뜨러 찾아 온 노인 40여명으로 문전성시를 이뤘다.노인들 곁엔 20∼30대 예비 한의사들이 문진을 하고 맥을 짚으며 노인들의 아픈 몸과 마음을 어루만졌다.이날 어깨 결림으로 침을 맞고 있던 배점례씨(62)는 “매일같이 아프지만 근처엔 의원이 없어 차를 타고 임실이나 관촌까지 나가야 한다”며 “버스도 하루에 2∼3번만 운행해 병원치료를 거르는 날도 많다”고 말했다.40여명으로 구성된 우석대 한의과대학 동아리 ‘무침세상’(침이 필요 없는 세상, 즉 아픈 사람이 없는 세상을 뜻한다)이 의료서비스에서 소외된 농촌 지역에 봉사활동에 나선 것은 지난 1996년.올해로 12년째 방학과 학기중 주말을 이용해 의료활동에 나서고 있다. 침, 뜸, 부황 시술과 더불어 한약제조까지 드는 비용은 고스란히 동아리 회원의 주머니에서 나온다.이번 봉사활동은 지난달 30일부터 오는 2일까지 3박4일. 회원들은 이 기간동안 식사를 미리 준비해 온 재료로 직접 해결하지만, 노인들이 고마운 마음으로 마련한 점심까지는 거절하지 못한다.요통, 슬통, 어깨 결림 등 오래된 병을 안고 찾아오는 노인들이 하루에 100∼200여명. 무침세상과 함께 농촌의활을 진행하는 전북도립장애인종합복지관 관계자는 “이들의 의료봉사활동이 생활과 문화, 건강에서 소외된 어른들에게 큰 힘이 된다”며 “외부의 방문이 뜸해 한적한 농촌마을들이 이들의 활동으로 활기를 찾는다”고 말했다.의활에 나선 문정희씨(23·여)는 “노인들의 증상을 진료하고 치료하면서 제게도 도움이 많이 된다”며 “이 곳 노인들이 앓고 있는 질환은 대부분 만성적인데 며칠 와서 잠깐 치료하고 가는 게 미안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 경제일반
  • 임상훈
  • 2007.02.01 23:02

[일과 사람] 부모공경...집안일...그 다음이 나죠...

고창군 무장면 새치마을은 풍수지리상 숙조투림형(宿鳥投林形·새가 자고 가는형)이라고 해 조치(鳥峙)로 불린다. 풍수지리보다 마을 사람들의 인심과 정이 훈훈함을 더해 지나가던 새도 잠을 청하는 것은 아닐런지.그 해답은 시할머니와 시부모 등 세 분을 봉양, 효행을 생활의 근간으로 삼아온 김연례씨(72)에게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김씨의 효행기는 열아홉살되던 해 남편 정휴량씨(70)와 결혼하면서 시작됐다. 시집오자마자 김씨의 하루 일과는 시할머니를 살피는 일이었다. 식사를 입에 떠넣어 줘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세수나 목욕, 대소변까지 모두 챙겨야 했다. 그렇게 5년을 모신 시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지병으로 해수병을 심하게 앓고 있는 시어머니가 김씨의 몫으로 돌아왔다. “밤에는 길쌈한다고 잠도 제대로 못잤제. 그렇게 번 돈으로 집안 어른들께 반찬도 올리고 살림도 꾸리고 혔응게.”부모를 공경하고 집안일을 챙기는 것은 자식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이라고 말하는 김씨의 굴곡진 삶은 아픈 몸에 고스란히 배어있다. 2003년 이후 척추 수술을 2번이나 한 뒤에야 몸을 가눌 수 있게 됐단다“집사람이 고마운 사람이지.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서 시댁어른 세 분을 모시느라 자기 몸 하나 챙길 시간이 없었으니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아버지가 치매로 쓰러져 대소변을 또 받아냈어. 요즘은 장례만 치르고 탈상하는 것이 상식인디 이사람은 세분 모두 3년 탈상을 했으니 장허제.”김씨가 ‘집안의 보물’이라는 남편 정씨는 효심은 집안에서 어른들과 생활하며 자연스레 체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김씨의 시부모도 한국전쟁때 피난가자는 주위 사람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나 하나 살자고 노모를 두고 갈 순 없다”며 고향에 남아, 훗날 무장향교에서 효자효부로 향천했단다.“요즘 사람들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이 웃어른 공경이나 효행을 멀리하고 있어 안타깝다”는 김씨의 효행은 입소문을 타고 번지면서 지난 19일 고창충효회(회장 김경수)로부터 효행상을 받았다.

  • 경제일반
  • 임용묵
  • 2007.01.2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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