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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전력망 확충, 재생에너지와 첨단 AI 반도체를 연결하는 필수 인프라

전력망은 도로망, 통신망과 같은 주요 사회 기반 시설이다. 현대의 모든 산업은 전기의 안정적 공급 위에 성장하고 있으며, 가정에서도 전기가 없다면 안전한 삶을 누리기 어렵다. 한편,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산업은 전력 소비의 ‘블랙홀’로 불린다. 그런데 급증하는 재생에너지 수요에 맞춰 태양광, 풍력발전소를 지으려 해도 전력망이 없어서 다수의 프로젝트가 지연되고 있다. 수십 GW 규모의 새로운 전력부하와 연계할 전력망이 시급히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RE100 기업들은 제때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는 지 여부에 따라 대규모 투자 결정을 망설이게 되고 결과적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판이 막힐 수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지속과 기후변화 대응 문제를 동시에 타결할 수 있는 ‘에너지 고속도로’의 핵심은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이다. 전북 새만금, 전남 서남권, 경북, 강원 지역처럼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역에서 수도권 국가첨단산업단지까지 전력을 원활히 전송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전력망이 촘촘히 연결되어 전력수급 안정성이 강화되면 수도권 첨단산업 기업의 지방 이전도 수월해지고, 대규모 풍력, 태양광 발전 지역은 재생에너지 특구로 성장할 수 있다. 국가 경쟁력 강화와 지역 균형발전을 동시에 달성하는 길이 바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이다. 만약 정부 계획대로 전력망이 제때 구축된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전북지역은 2025년 6월 기준 5.1GW의 재생에너지가 전력망 접속을 대기 중이다. 만약 이 전력이 모두 전력망에 연계된다면 연간 수천억 원의 재생에너지 발전 수익 효과가 발생하여 지역주민의 에너지 소득이 기대된다. 또한 전력망은 대규모 정전을 예방하는 안전장치가 된다. 태풍, 폭설, 산불과 같은 돌발 상황에도 사통팔달 전력망이 구축돼 있다면 우회 공급을 통해 정전 지역 규모를 최소화할 수 있다. 올해 국회와 정부는 전력망 건설 관련 주민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과 그 시행령을 마련했다. 과거보다 훨씬 강화된 주민과 지자체에 대한 보상과 지원제도를 담았다. 사업시행자는 국가기간 전력망 경과지 보상 조기 협의시 토지주에게 인센티브를 추가 지급한다. 지자체에는 기존 지역별 지원금의 절반을 추가 지원한다. 송변전 설비 근접지역 또는 밀집지역에는 주민직접지원사업 시행시 지역별 지원금을 가산하여 지급한다. 가공선로 경과 지자체에는 선로 길이 1킬로미터당 20억원 한도의 재정적 지원을 한다. 지역주민의 소득증대를 위해 사업시행자는 10메가와트 미만의 재생에너지 발전 협동조합 설립시 행정적 지원과 전력계통 연계 비용 및 인허가에 관한 지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제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력망 적기 건설은 주민, 지자체, 정부, 한전이 상호신뢰를 기반으로 협력할 때에만 가능하다. 서로의 이해를 조율하며 함께 나아갈 때 비로소 적기에 전력망을 완공할 수 있고, 동시에 지역발전도 이끌어 낼 수 있다. 세계는 이미 전력설비 투자를 대규모 확대하는 ‘전력망 슈퍼사이클’에 들어서고 있다. 우리가 지금 속도를 내지 못한다면 첨단산업 경쟁에서 뒤처지고, 재생에너지는 전력망에 접속되지도 못한 채 버려질 것이다. 이제 전력망 적기 확충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미래 전략산업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시급한 국가적 필수 과제이다. 송승호 광운대 교수·전기공학과

  • 오피니언
  • 기고
  • 2025.11.23 16:16

열린 광장 ‘사통팔달 무주’는 상생의 기준점

지금의 무주는 남북의 통영-대전 간 고속도로가 지나가면서 방문객도 늘었고, 생활 인구 또한 안정적인 추세이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도시의 사람들은 “무주에서 왔다”라고 하면 깊은 산골 동네에서 도시로 나온 것처럼 여겨 “무주 구천동, 멀리서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무주가 산골 오지의 대명사처럼 치부되던 시기에는 고속도로가 아니라 일반국도가 국민 이동의 핵심 축이었고, 무주는 동서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대구에서 김천을 거쳐 무주로 이어지는 길 위에 사람과 물자가 쉼 없이 오갔고, 특히 여름철이면 국립공원 덕유산 자락의 구천동 계곡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 매년 성수기에는 임시 버스가 증편되었다. 지역경제의 순환이나 사람들의 밀집도로 봤을 때, 어쩌면 무주군민들의 기억 속에 “그땐 그랬었지”를 떠올리는 아스라한 풍요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정부는 과거에 산업과 인구 분포가 남북 중심이어서, 동서 간 연결 도로의 필요성이 덜 부각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남북 방향으로 고속도로 건설에 집중했다. 그런 까닭에 동서 고속도로망은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었다. 세월이 흘러, 지방의 균형발전과 지역 간 교통 불균형 해소에 대한 중요성이 두드러지면서 동서 축 고속도로 확충에 힘을 쏟아 지금은 균형을 갖춰가는 중이다. 무주-대구 고속도로 건설은 1998년 말 전북도와 경북도가 영호남 동서 화합과 지역균형개발 차원에서 공동 건의해 1999년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사업으로 선정되었지만, 사업 착공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 후 이제나저제나 될까 하는 주민들의 노심초사 기대 속에 25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그런데 지난달 31일 드디어 기획재정부는 무주-대구 고속도로 건설을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사업으로 확정했다. 이 노선이 갖는 의미는 명확하다. 단절을 메우는 길이 아니라, 국토의 동서를 자연스럽게 관통해 영남과 호남의 일상적 왕래를 늘리고 문화·관광·산업의 교류를 촘촘히 잇는 길이라는 점이다. 지도를 펼치면 무주는 국토의 가운데에서 사방으로 길이 갈라지는 연결 거점이고, 이 중심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 것이 바로 무주–대구 고속도로이다. 대구·경북에서 덕유산과 구천동으로 향하던 여름의 기억이 향수에 머물 이유가 없다. 접근성이 좋아지면 방문은 보다 자연스러워지고, 영호남을 가르는 심리적 거리도 아주 가까워질 것이다. 길은 사람의 동선을 바꾸고, 동선은 관계의 밀도를 바꾼다. 그래서 이 도로는 특정 지역의 편의를 넘어 균형발전과 상생의 상징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기점과 종점의 표지석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이를 오가는 수많은 삶의 사연이 다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고속도로는 속도의 시설이지만, 결과는 신뢰와 교류의 시간으로 환원될 것이다. 무주가 기대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시대 변화에 맞는 사통팔달의 교통망이 곧 무주의 재도약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동쪽과 서쪽이 번거로움 없이 만나는 일상의 회복이라는 확실한 장면이다. 우리는 그 장면을 오래 기다려 왔고, 이제 그 장면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다. 길이 열리면 무주는 만남의 중간 지대가 된다. 영호남을 잇는 한 줄의 선 위에서, 국토의 중심이 다시 살아 움직일 것이라는 기대는 아주 정당하다. 기대를 키우는 일은 과장이 아니라 방향을 확인하는 일이며, 무주–대구 고속도로는 그 방향을 또렷하게 가리키고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25.11.23 14:37

[사설] 개점휴업 전주관광재단, 제 역할 찾아라

전주시의 새로운 출연기관인 전주관광재단이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전주시는 기존 전주문화재단과 한국전통문화전당의 기능을 통합하고, 관광산업을 더 체계적으로 육성한다는 취지로 지난해부터 전주관광재단 설립을 추진했다. 이후 지난해 12월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지난 8월에는 초대 대표이사가 취임하면서 지역사회의 기대 속에 새로운 기관의 첫걸음이 시작됐다. 지난해 말 ‘대한민국 문화도시’로 최종 지정된 전주가 글로벌 관광도시로 발돋움하는데 큰 역할을 해낼 것으로 기대했다. 공모를 통해 경력있는 관광 전문가로 인정받아 선임된 초대 대표이사도 ‘지역 특성을 반영한 관광콘텐츠를 체계적으로 발굴·육성해 관광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며 의지를 피력했다. 그런데 재단은 출범 100일이 넘도록 개점휴업 상태다. 아직껏 인력 구성조차 마무리되지 않았고, 중장기 전략 등 조직 운영의 로드맵도 나오지 않았다. 아직 설립 초기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무척 실망스럽다. 좀 더 지켜볼 필요성도 있지만, 지역사회의 기대 속에 상당 기간 논의를 거쳐 출범한 기관이라는 점에서 분명 문제가 있다. 조례에 명시된 전주관광재단의 역할은 △관광자원 개발·상품화 등 관광콘텐츠 확충 △국내외 관광 홍보 및 마케팅 △마이스(MICE) 유치 지원 △관광시장 조사·연구·컨설팅 △관광 전문인력 양성 △관광기업 육성 지원 등이다. 한옥마을 중심인 관광객 분포를 도시 전역으로 확대해 글로벌 관광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한 통합기구로서의 역할을 요구받는다. 그런데도 재단은 이제껏 어떤 역할을 어떻게 해낼지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까지는 사업보다는 전주 관광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데이터 수집과 행정업무에 집중하겠다’는 게 재단 측의 설명이지만 빈약하다. 재단 설립은 지난해부터 추진됐다. 공모과정에서 조직 운영의 의지와 청사진을 평가받아 선임된 대표이사가 지역사회에서 요구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미리 구상하고, 계획해 취임과 함께 이를 다듬어 보여줬어야 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와 비전·전략, 사업 방향성 정도는 확실하게 정립해서 제시해야 할 것이다.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취임한 조직 수장의 역할과 의지가 중요하다. 지역사회의 요구와 기대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5.11.23 14:36

[사설] 새만금∼전주 개통, 나머지 구간 속도 내야

새만금∼전주 고속도로가 그제 개통됐다. 이 고속도로는 서해안선, 호남선, 순천완주선, 익산장수선 등 전북권의 4개 주요 고속도로와 직접 연결되는 전북권의 핵심 교통망이다. 이 고속도로가 개통됨으로써 새만금 개발사업에 따른 물동량 증가에 대비하고, 동서 간 교통망 구축을 통해 지역경제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고군산 군도, 모악산 도립공원, 전주 한옥마을 등 주요 관광지와의 접근성이 강화돼 전북 관광 활성화에도 큰 역할을 할 전망이다. 새만금–전주 고속도로는 총사업비 2조7424억 원이 투입된 왕복 4차로 노선이다. 김제시 진봉면에서 전주시를 거쳐 완주군 상관면을 잇는 총연장 55.1㎞다. 국토교통부가 밝힌 것처럼 진봉면에서 완주 상관면까지 이동시간은 약 43분 단축(76분→33분)되고 주행거리는 약 8㎞ 단축(62.8㎞→55.1㎞)돼 차량 운행 비용 절감, 교통사고 감소 등 전북도민들에게도 연간 2018억 원의 경제적 편익이 예상된다. 이처럼 전북권 교통망 개선 효과가 크지만 또하나 과제가 남아 있다. 새만금~전주 고속도로는 동서 3축인 새만금~포항고속도로 전체 구간 311㎞ 중 일부다. 65%인 201㎞가 개통됐을 뿐 나머지 35%는 미개통 상태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새만금∼전주 고속도로 개통 기간이 2018년 5월 착공 이후 7년 6개월이 걸린 것을 감안하면 나머지 구간이 언제 완성될지 장담할 수 없다. 무주–성주–대구 구간이 지난 10월에야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사업으로 선정되는 등 절차이행이 매우 느리기 때문이다. 새만금~포항고속도로는 교통혼잡 해소 및 물류비 절감, 관광효과 외에도 호남과 영남을 잇는 교통망 구축이라는 상징성이 크다. 때문에 미개통 구간도 신속히 추진될 수 있도록 절차와 공기를 앞당기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호남 영남 지역구 국회의원과 단체장들이 국가간선도로망 동서 3축의 완성을 위해 새만금∼포항 노선 중 미개통 구간인 전주∼무주∼성주∼대구 구간의 공기 단축을 정부에 촉구하고 실행될 수 있도록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길 바란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5.11.23 14:36

[오목대] 종광대와 여단(厲壇)

전주에서 구전으로만 내려오던 지명이 최근 소환되고 있다. 후백제 왕성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나온 종광대(鐘廣臺)와 여단(厲壇)이 그것이다. 이중 종광대는 아파트 재개발 무산과 겹치면서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1100년 전, 견훤왕은 후백제를 세웠고 도읍을 전주로 정했다. 후백제는 37년간 후삼국 중 가장 강성해 한반도를 호령했으나 갑자기 망하는 바람에 그 흔적이 대부분 지워졌다. 더구나 라이벌이던 고려 태조 왕건은 겉으로 온유한 척했으나 안남도호부(936∼941)를 설치해 5년 동안 후백제 유물 유적을 철저히 파괴했다. 도성과 궁성은 물론 경주에서 가져온 삼국의 서적까지 불살라 버렸다. 그러니 후대에 후백제의 흔적을 찾기가 쉬울 리 없다. 그러나 아무리 짓밟아도 역사의 흔적은 남는 법. 1960년대 이후 뜻있는 분들과 전주시의 노력으로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전주 동고사지가 그렇고 최근에는 왕성 일부가 그렇다. 대표적인 게 전주시 중노송동 일원에 남아있는 ‘전주 종광대 토성’이다. 이 토성은 후백제 왕도의 북쪽을 방어하기 위해 축성된 것으로 지난 6월 20일 전북자치도 문화유산(기념물)으로 지정되었다. 지난해 3월부터 발굴에 들어가 잔존규모 장축(동-서) 204m, 최대 단축(남-북) 14m, 최대 성벽 높이 2.5m의 후백제 토성이 확인되었다. 후백제 토목공사 흔적이 확인된 최초의 사례다. 국가유산청 심의 결과 ‘현지 보존’ 결정이 내려졌고 지금은 국가 사적으로 지정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종광대 토성은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전주부 고적조에 ‘견훤이 쌓은 고토성’으로 기록돼 있다. 또 ‘여지도서(輿地圖書)’와 ‘대동지지(大東地志)’, ‘완산지(完山誌)’ ‘전주부사(全州府史 1942)’ 등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곳은 인근 기자촌 재개발에 이어 2008년 전주 종광대2구역 주택재개발사업(3만1243㎡)이 추진돼 보상을 둘러싸고 어려움이 없지 않다. 이 일대가 종광대와 구(舊) 여단터로 불려온 것은 꽤 오래전부터다. 언제부터 그렇게 불렸고 무슨 시설이 있었을까. 그에 대한 명쾌한 기록은 없다. 다만 전주문화원(2001) 이 발행한 자료에는 “종광대는 물앙말(물왕멀) 북쪽에 있었다는 종루(鐘樓)이다. 후백제 때에 종루라는 얘기도 전해지며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여단(厲壇)이 있었다고 한다.”로 나와 있다. 조선시대 시작된 여단은 질병이나 전쟁 등으로 죽은 주인 없는 외로운 혼령을 국가에서 제사 지내주던 제단이다. 이곳은 이 일대에서 가장 높아 전주 시가지와 익산 미륵산, 동고산성, 남고산성 등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조망점이다. 하루빨리 사적으로 지정되고 역사유적공원을 만들어 전주시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명소가 되었으면 한다.(조상진 논설고문)

  • 오피니언
  • 조상진
  • 2025.11.20 19:02

[사설] 무분별한 정당·정치인 현수막 규제·단속해야

내년 지방선거 일정이 다가오면서 거리 곳곳에 정당과 정치인들이 내건 각종 현수막이 난립하고 있다. 도시 미관을 해치는 것은 물론 보행자와 운전자의 시야를 가리고 통행을 방해해 교통사고 위험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형평성 문제도 있다. 현행 옥외광고물법(제8조)에는 ‘정당이 통상적인 정당활동으로 보장되는 정책·정치적 현안에 대하여 표시·설치하는 경우’ 허가·신고 규제를 받지 않는다는 예외 조항이 있다. 일반 시민이나 자영업자는 작은 현수막 하나를 내걸려고 해도 일일이 허가를 받도록 해놓고, 정치인은 거리낌 없이 정당명과 자신의 이름을 새긴 현수막으로 거리를 도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조항에 따라 정치 현수막은 사실상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고, 지자체는 특정 현수막이 허용 범위에 해당하는지 일일이 판단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았다. 하지만 정치 현수막이라고 해서 무제한으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법률에서 예외 조항을 두면서 수량과 장소·기간·규격·설치방법 등의 제한 규정을 함께 명시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당연히 불법 현수막으로 단속 대상이다. 그런데도 지자체는 단속에 소극적이다. 전주시의회에 따르면 올해 전주시에서 불법 정치 현수막을 단속해 과태료를 부과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정당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인정한다. 하지만 그 자유가 시민의 안전과 생활환경을 침해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면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다. 정치권은 이런 현수막을 ‘시민 소통창구’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이 정당이나 정치인의 이름을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저비용·고효율의 광고물이다. 지난주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도 거리에는 내년 지방선거 출마가 거론되는 인사들의 응원 현수막이 줄줄이 내걸렸다. 수험생 응원을 빙자한 입지자들의 ‘존재감 알리기’, 정치권의 ‘수능 민심잡기’ 목적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도시 거리는 정당과 정치인들의 광고판이 아니다. 그들의 무분별한 특혜성 홍보물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관련 법률과 제도를 정비해 정당과 정치인의 현수막도 일반 현수막과 동일한 기준으로 규제해야 한다. 아울러 지자체에서도 규정을 어긴 불법 정치 현수막에 대해서는 성역 없이 강력하게 단속해야 할 것이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5.11.20 19:02

[사설] 학교체육 살려야 전북체육 미래가 있다

올림픽 유치에 나선 전북이 가장 집중할 것은 바로 학교체육 활성화다. 총체적 위기에 빠진 전북체육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축인 직장운동부인데 도내 기업체나 공공기관 등이 재정난을 이유로 팀 운영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게 엄연한 현실이다. 결국 장기적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초중고는 물론, 대학부 등 학교체육을 살리는 거다. 전북특별자치도체육회가 지난 19일 개최한 ‘2025년 전북체육 발전을 위한 세미나’ 에서는 이와같은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 단순히 소년체전이나 전국체전에서 전북의 순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반이 허약한 지금 상황이 계속된다면 전북체육의 밝은 미래는 있을 수 없다. 학교운동부는 가장 근원적 문제를 안고 있다. 도내 학생선수는 2022년 4,268명에서 올해 7월 기준 2,553명으로 40%나 감소했다. 대학운동부 역시 대동소이하다. 도내 8개 대학 47종목 가운데 기숙사비를 자부담하는 종목이 31종목, 식비를 자부담하는 종목이 38종목이다. 허약한 직장운동부는 전북이 전국체전에서 만년 하위에 그치는 원인이다. 올 전국체전에서 남자 자유형 200m 경기에서 아시아 신기록을 수립한 강원도청 황선우(수영)의 경우 몸값이 무려 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상대적으로 예산 배분을 꺼려하는 전북으로선 이러한 스타급 선수를 데려오는 건 꿈같은 얘기다. 전북 직장운동경기부는 숫자만을 놓고보면 43개로 전국 17개 시·도 중 10위권 수준이다. 하지만 사실은 속빈 강정이다. 전체 팀의 86%가 지자체와 체육회에 의존하고 있다.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팀이 4개, 공공기관이 2개 팀에 불과해 대형 선수를 유치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전북의 전국체전 종합순위는 2022년 이후 13위와 14위를 겨우 유지하고 있다. 향후 전북체육의 가늠자라고 할 수 있는 전국 소년체전 성적도 아쉬움이 많다. 2021년 87개였던 메달은 꾸준히 감소해 올해의 경우 59개에 그쳤다. 과거처럼 소년체전이나 전국체전 성적에 연연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전북이 도세에 비해 체육 분야가 너무 약한게 엄연한 현실이다. 당장 성적을 내지 못하더라도 초등과정부터 꾸준히 우수 선수를 육성하는 중장기 프로그램이 일관성 있게 추진돼야만 전북의 미래가 있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5.11.20 19:01

[청춘예찬] 골목문구생활 ⑤문구 너머의 풍경

문구점을 시작하며, 우리는 전주의 일상과 골목의 풍경을 담아낼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싶었다. 우리가 만든 물건이 오래 바라보고 천천히 써 내려갈 수 있는 도구이길 바랐다. 매장을 운영하다 보면 제품이 단지 소비의 대상이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기록의 틈새에 즐거움을 더하는 스티커, 페이지 위로 번지며 소중한 순간을 환하게 비춰주는 펜과 색연필, 책을 읽다가도 마음에 드는 문장으로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세워두는 작은 이정표 같은 인덱스까지. 아주 작고 가벼운 물건이지만, 읽고 쓰고 기록하는 행위는 결국 나를 돌보는 일과 닮아 있다. 우리가 기획하고 제작하는 제품들도 그러한 감정의 궤적 위에 있다. 단순히 예쁜 문구를 넘어, 지역의 일상과 장소, 정서를 함께 담아내고자 했다. 그 마음을 담은 첫 시도는 ‘클립 마이 시티(Clip my city)’였다. 덕진공원의 오리, 전주천의 버드나무, 팔복동의 이팝나무 철길 등 우리가 사랑하는 풍경들을 일러스트로 표현해 엽서로 제작했다. 계절이 지나 풍경이 바뀌어도, 누군가의 책상 위에 오래 머물며 기억을 환기시키는 물건이길 바랐다. 요즘 매장을 찾은 손님들이 특히 좋아하는 제품은 ‘링 마이 시티(Ring my city)’다. 여행자의 기억을 모아 하나의 고리에 완성하는 열쇠고리다. 전주천의 물결, 향교의 은행나무, 완산동 꽃동산의 겹벚꽃과 같은 아름다운 장면과 전주 초코파이, 콩나물국밥의 콩나물까지. 모두가 같은 도시를 여행하지만 저마다의 기억은 다르다. 이 조각들은 누구에게나 다른 형태의 ‘나만의 전주’를 완성해주는 작은 조각들이다. 곧 문을 여는 전시 「백지: 물과 바람의 시간」은 그동안 관찰하고 수집한 전주 한지를 소재로 한 작은 아카이브이다. 백 번의 손길을 거쳐 백지라고도 불리는 한지의 여정을 쫓으며, 우리의 삶과 닮아 있음을 이야기하려 한다. 대표적인 전주의 특산품을 우리 식대로 재해석하고, 그 이야기를 엽서와 노트에 담으며 우리가 경험한 조각들이 누군가의 손에서 다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준비했다. 문구는 도구이자 기억이고, 또 하나의 풍경이다. 손에 쥐어지는 물건을 통해 마음속에 남는 장면. 우리가 만들고 싶은 문구는 그 너머의 이야기를 오래 간직하게 하는 무언가에 가까워지고 싶다. 아무 말 없이 엽서를 고르던 손님, 진지한 표정으로 연필과 펜을 써보며 고민하는 사람들, ‘여기가 진짜 전주 같아요’라고 말해주던 여행자. 그 순간들마다 우리는 문구를 통해 도시의 결을 느끼고 마음이 닿는 지점을 발견한다. 이따금 상상한다. 누군가의 가방에, 책상 위에, 서랍 한 켠에 오래 남아 있는 우리의 물건이 언젠가 전주의 계절 한 장면을, 골목에서 느꼈던 따뜻함을, 종이 위에 내려앉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해주기를. 그저 물건을 만들고 파는 일을 넘어, 이 도시를 조금 더 오래 기억하는 방식이 되기를. 그러니까, 문구 너머의 풍경까지도 함께 떠올릴 수 있기를. 김채람 문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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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1.20 19:00

[금요칼럼] 이 가을의 끝자락

아침에 안개가 마을에 가득하다. 가을 아침 안개가 짙은 날이면 그날 날씨는 좋다. 햇살이 맑고 강하고 바람이 좋아 회관 마당에 가을 곡식 널기 좋은 날이다. 아침 산책은 마을만 한 바퀴 돌기로 한다. 마을 위쪽 길로 걸었다. 집 앞 텃밭에 큰 집 형수가 서리태를 털고 있다. 콩대를 걷어 높이 쌓아 놓고 콩을 털고 있어서 형수님은 보이지 않고, 콩대 두드리는 소리가 타닥타닥 들렸다. 콩대 너머로 머리만 보인다. 종길이 아재 네 집 마당에 불이 켜져 있다. 딸이 와서 어제부터 조금 이른 김장을 하고 있다. 이른 아침인데 사람 말소리가 집안에서 들린다. 마을에 사람 말소리가, 그것도 젊은 사람들의 말소리가 마을 어딘가에서 들리면 반갑다. 종길이 아재 집 앞을 지나 강변 차도로 내려갔다. 안개 때문에 마을 앞 강 건너 복두 농막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선가 오리들이 소리를 꽥꽥 소리가 들린다. 오리들은 새벽에 일어나 먹이를 찾는다. 징검다리 쪽에서 희미하게 오리들의 모습이 보인다. 올해 마을 앞 강에 오리들이 80여 마리가 날아와 마을 앞 강물을 활기차고 또 평화롭다. 머리를 강물 속에 집어넣고 궁둥이를 하늘로 쳐들고 빨간 발과 짧은 꽁지로 허공 속을 버둥거리며 먹이를 찾는다. 오리들의 부리는 갈수록 험하게 금이 가고 헐어간다. 오리가 모여 먹이를 찾는 그 부근에는 학이 두어 마리가 고개를 쑥 빼고 돌멩이 위에 앉아 있다. 오리들이 주둥이로 물속 자갈들을 뒤적여 다슬기와 고기를 잡을 때, 도망가는 고기들을 노린다. 그 부근에 물총새도 학과 오리에 쫓기는 물고기들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마을 앞 강변엔 강둑공사가 한창이다. 공사판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 인부들이 하얀 헬멧을 쓰고 모여 서서 무슨 구호를 크게 외친다. 아침마다 보는 풍경이다. 인부들의 안전한 하루의 일과를 다짐하는 구호일 것이다. 마을 끝 강 건너에는 점순 부부가 살고 희수 부부가 농막을 짓고 이따금 내려온다. 다시 마을 길로 들어섰다. 양식이는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 전주 누나네 식당으로 출근한다. 양식이 집을 지나 빈집 하나를 만난다. 올해 이 집에 사는 현선이가 생을 마감하였다. 아들이 죽자, 어머니는 딸네 집으로 가서 집이 비었다. 떨어진 은행잎이 마당에 노랗다. 현선이네 집을 지난다. 바로 종우네 집이다. 종우는 서울에서 살다가 올해 귀향했다. 마을 뒤 산 넘어 산을 개간하였다. 종우네 집 앞에 경기네 집이다. 경기도 올해 귀촌했다. 처가 땅에 집을 짓고 부부가 산다. 부지런한 부부는 온갖 과수와 채소를 텃밭에 가꾼다. 종우와 경기 부부는 마을의 활력이 되어 가고 있다. 이따금 경기네 집에서 술을 마시는 모습이 보이고 큰 소리로 웃는 소리가 마을을 살린다. 마을 사람들 모두 좋아한다. 경기네 집 지나면 종호네 집이다. 빈집 마당에 마른 풀들이 키가 넘게 자라서 말라 쓰러졌다. 한 집 건너 주성이 엄마가 혼자 살다 몸이 아파 병원 가셨다. 아마 집으로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 같아 마을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회관 마당이다. 모든 곡식을 마무리한 회관 마당은 이제 서리태만 남았다. 작은 마을이어서 많은 농사는 짓지 않았지만 그래도 곡식은 종류별로 모두 이 마당에서 마무리되어 더러 팔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회관을 지나면 우리 집안의 큰집이다. 형수님 혼자 사시다가 딸과 사위가 집을 고쳐 들어와 산다. 도시에서 일을 하고 머물기도 하지만, 거의 이 집에 와서 산다. 우리 마을 사람이 되어 간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 집으로 돌아왔다. 내게 하루의 시작은 이렇게 마을을 한 바퀴 돌면서 시작된다. 우리 마을 사람들의 하루하루 일상은 이웃 마을이나 고을이나 나라에 해가 되고 나라를 어지럽힐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칠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어제는 마을 노인회에서 순창으로 자장면을 먹으러 갔었다. 지난 1년 동안 살아 온 노고가 따듯하게 위로 되었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한 마을의 가장 큰 큰 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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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1.20 19:00

[기고] K-발효식품 세계화를 위한 국제홍보 전략

지난 10월 30일부터 11월 3일까지 열린 제23회 전주국제발효식품엑스포는 전북이 ‘발효의 중심지’임을 다시 한 번 입증한 뜻깊은 행사였다. 필자는 한국홍보대사협회 회장으로서 이틀간 현장을 직접 참관하며, 한국의 전통 발효식품이 지닌 세계화의 가능성과 함께 엑스포가 진정한 국제행사로 발전하기 위한 과제들을 살펴보았다. 이번 엑스포는 전북특별자치도가 주관하고 전북바이오융합산업진흥원이 주최하여 22개국 326개 기업이 참여했다. 전북 각 지역의 장인들이 손수 만든 발효식품이 한자리에 모이며 K-푸드의 뿌리를 이루는 발효문화의 위상을 보여주었다. 현장에서 만난 외국인 관람객들은 이미 고추장, 된장, 간장 등 한국 발효식품에 대해 높은 이해와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K-푸드가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와 문화적 이미지를 확보했음을 보여준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발효식품이 K-푸드의 토대가 되어 세계 속에서 지속 가능한 영향력으로 확장되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K-푸드의 세계화는 결국 그 토대가 되는 발효식품이 진정으로 세계로 나아갈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수출이나 홍보가 아니라, 문화적 이해와 체험을 중심으로 한 ‘관계형 홍보 전략’이다. 외국인들이 전주를 찾아 전북 각 지역의 발효 음식을 맛보고 장인들과 대화하며 한국인의 정성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체험 속에서 형성되는 신뢰가 곧 한국의 브랜드가 되고, 그 신뢰의 전파가 바로 공공외교로 이어진다. 현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직 보완할 점이 있다. 행사장 접근성이 낮아 외지 방문객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웠고, 발효의 원리와 전통을 배울 수 있는 체험형 교육공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또한 관람객 구성은 대부분 지역민 중심이었으며 외국인 방문객 비율은 여전히 낮았다. 글로벌 식품관의 시도는 흥미로웠으나 언어 장벽과 문화적 거리감으로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만약 현장에서 통역을 통한 직접 대화의 장이 마련되었다면 발효문화를 매개로 한 교감의 순간들이 훨씬 풍성했을 것이다. 앞으로는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접근 인프라와 안내 시스템, 언어 지원과 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 전주는 발효를 주제로 한 교육형 체험관을 마련해 방문객이 직접 장을 담그고 발효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외국인을 위한 다국어 안내와 통역 서비스를 확대해 문화적 교류가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행사장과 교통망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접근성을 높이고, 지역 주민뿐 아니라 해외 방문객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지속적인 교류 프로그램을 마련한다면 엑스포는 명실상부한 국제행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홍보대사협회는 이러한 지역 기반의 국제행사를 국제홍보 차원에서 지원하며 공공외교의 현장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공공외교는 정부의 외교정책을 보완하고 국민과 지역이 주체가 되어 문화를 매개로 세계와 신뢰를 쌓는 관계 중심의 외교이다. 이는 단순한 국가 홍보를 넘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교감하는 새로운 형태의 외교다. 이러한 철학을 ‘발효외교’로 정의하고 브랜드화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 전북의 발효문화는 지역의 전통을 넘어 세계 속에서 신뢰와 관계를 빚는 대한민국 공공외교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정성과 기다림이 숙성되어 깊은 맛을 내듯, 신뢰가 쌓일 때 문화는 외교가 된다. 조진이 한국홍보대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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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1.20 18:52

[딱따구리] 의사봉, 담합 도구여선 절대 안돼

제9대 진안군의회가 지난 18일 임기 마지막 행정사무감사(이하 행감)를 끝냈다. 주말을 빼면 7일 동안 하루 3개 부서씩, 부서당 2~3시간가량, 소위 ‘빡센’ 행감을 진행했다. 어떤 땐 저녁 7시까지 강행군을 펼쳤다. 깊은 공부로 공무원들을 쩔쩔매게 만든 의원들에게는 고개가 숙여진다. 하지만 “있으나 마나 하다”라는 평가를 받은 의원들에겐 성찰을 촉구한다. 국회의원 못지않은 실력을 내보인 동료의원들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존재감 없는 의원들의 볼썽사나운 행위를 보자. 불필요한 자리 이탈이 가장 눈에 띈다. 어떤 의원은 회의장을 수시로 들락날락했다. 동료의원의 발언이 길어지면 ‘후-’하고 한숨을 내뱉다가 급한 용무가 아닌데도 자주 자리를 떴다. 회의 참여 시간보다 자리 비운 시간이 더 많을 거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또 하나. 몇몇 의원은 질문거리가 없어 체면치레식 질문을 하면서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변죽만 울렸다. 군청 직원들에게 ‘공부를 당한 후’ 발언을 끝내기 일쑤였다. 다른 사람이 써준 원고를 서툴게 읽기도 했다. 자질에 의심을 살 정도였다. 압권은 행감특위 의사봉을 쥔 위원장이었다. 위원장은 군민 알권리 실현 차원에서 잘못된 군정을 짚어낼 수 있도록 질문과 발언 기회를 적절하게 부여하고 회의장 내 질서유지를 위해 힘써야 했다. 하지만 정반대였다. 부적절해 보이는 농담 섞인 발언을 던지는가 하면, 동료의원이 군정 핫이슈에 대한 난감한 질문을 펼칠 때 갑자기 의사봉을 치며 정회를 선언해 달궈진 감사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멀리 충북 청주에서 시간과 돈을 들여 발걸음한 청문 증인에게는 발언 기회조차 주지 않아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의사봉을 쥐어준 의미를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의사봉은 엿장수 가위처럼 함부로 사용하라는 게 아니라 군민 알권리 실현 차원에서 쥐어진 것이다. 혈세 낭비 제지 도구여야 한다. 집행부와의 담합 도구여선 절대 안 된다. 진안=국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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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승호
  • 2025.11.20 18:51

[사설] 꼴불견 전북도의회 행정사무감사

2025년 전북특별자치도의회의 행정사무감사가 꼴불견이 되고 있다. 전북도의회는 11월 11일부터 오는 20일까지 전북자치도청 각 실국과 산하기관 등을 대상으로 제423회 정례회 행감을 각 상임위원회별로 진행 중이다. 그런데 일부 상임위 소속 의원들의 언행들이 도마에 오르며 ‘꼴불견 행정감사’란 말이 나오고 있다. 이번 감사는 지난 2022년에 개의한 제12대 전북자치도의회의 마지막 행감이다. 따라서 행정감사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싶은 도의원들이 행정감사를 진행하며 비상식적인 행동 및 고성, 고압적인 태도 등을 연출해 전북도민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행정감사는 의원들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여 행정이 챙기지 못한 부분과 전북특별자치도의 발전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의정활동의 꽃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는 의원들의 ‘군기잡기’식 감사로 변질되면서 여전히 지방의회가 구태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들의 행태를 보면 지난 11월 12일 김모 의원이 청각·언어 장애인의 119 신고 관련 질의를 하면서 갑작스레 자신의 휴대전화로 119에 전화를 걸고 질의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지난번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119에 전화해 ‘갑질도백’으로 망신당한 일을 연상케 한다. 또한 재난 및 안전 관리를 관장하는 안전관리위원회의 회의개최방식에 대한 입장차이를 개진하는 가운데 실무국장과 도의원간 서로 고성을 주고받으며 볼썽사나운 장면이 연출되었다. 또한 전주 하계올림픽 유치 관련 질의때는 하계올림픽유치단장이 심적으로 압박을 받아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더욱이 일부 상임위에서는 본인이 발의한 조례의 예산을 도청 관련 부서가 세우지 않는다며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의 자료 요구하기도 하였고 상당수 상임위원장들이 피감기관들을 윽박지르는 모습은 일상이 되었다. 따라서 윽박지르고, 보여주기식 구태의 지방의회 행정사무감사는 지양해야 한다. 피감기관에 대한 존중과 배려, 그에 따른 합리적인 비판을 통해 제대로된 도의원의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특히, 이같은 모습이 지속될 경우 결국 유권자의 엄중한 질책과 선거를 통한 심판으로 이어져 더 이상 구시대적 작태가 자리잡지 못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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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5.11.19 17:40

[사설] 전북 지자체 ‘재정 건전성’ 확보 노력을

전북지역 지자체의 재정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다. 전북특별자치도와 각 시·군의 재정자립도는 전국 최하위 수준이다. 심지어 일부 시·군은 재정자립도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저출산·고령화 기조 속에 인구유출 현상이 더해지면서 세수 기반이 약화돼 빚이 늘어나고 보조금 등 중앙 재원에 대한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지역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거나 당장 시급한 사업을 중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전북지역 지자체장들은 올해 민생 지원과 지역경제 회복을 명분으로 ‘돈 풀기’ 경쟁을 벌였다.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선심성 행정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부족한 재원은 통합재정안정화기금과 지역의 ‘미래자산’까지 끌어다 썼다. 실제 전북지역 상당수 지자체가 통합재정안정화기금 사용 상한을 과도하게 높여 재정위기 대응력을 떨어뜨렸다. 재정안정화기금은 세수감소와 예상치 못한 재정수요 증가 등에 대비해 충격을 흡수하는 ‘재정 완충장치’ 역할을 한다. 그런데도 상당수 시·군이 지자체의 비상금인 이 기금을 민생지원금 등 현금성 지원사업에 사용했다. 지자체의 현금성 복지비용 지출 비율이 높으면 행정안전부의 페널티도 있지만 선거를 앞둔 단체장들은 이를 무시했다. 게다가 올해는 정부가 2차례에 걸쳐 전국민에게 민생회복지원금을 풀었다. 그런데도 김제와 남원·정읍·완주·진안·부안·고창군은 정부 지원금과 별개로 설·추석 명절에 맞춰 20~50만원씩의 민생지원금을 전 주민에게 나눠줬다. 이 같은 돈잔치로 재정안정화기금이 줄어들면 해당 지자체의 재정 건전성은 더 악화되고, 각종 재난 등으로 인해 재정지출 요인이 발생했을 때 즉각 대응할 수 없게 된다. 지자체의 재정 건전성은 지역의 활력을 담보하는 기초체력이다. 지자체장이 표심을 겨냥해 선심성 복지사업에 돈을 풀어 재정이 흔들린다면 지역의 미래는 일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우선 지자체가 재정 운용 계획을 세워 부채를 관리하고, 유사·중복 사업 정비와 대규모 투자사업 타당성 검증 등을 통해 지방재정 지출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아울러 주민들도 ‘곳간을 탈탈 털고 빚을 내서라도 표심을 사겠다’는 지자체장의 선거용 포퓰리즘을 경계하고 감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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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5.11.19 17:40

[오목대] 여론조사와 명심, 정심

밴드웨건(bandwagon)이란 행렬 선두에 있는 악대차를 말한다. 비유적으로 특히 정치 분야에서 우세한 편에 붙는 것을 의미하는데 흥행하는 곡예단이 광고하기 위해 악대차를 앞세워 시가지를 행진했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요즘 지역정가의 최대 화두는 20~21일 이틀간 진행되는 여론조사다. 도지사나 교육감 등 각 후보 진영에서는 이번 여론조사 결과가 향후 판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지지자들에게 여론조사에 적극 응해달라고 호소중이다. 밴드웨건 효과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선두권 구도가 한번 각인되면 오는 12월말~1월초에 진행되는 여론조사는 물론, 추후 경선이나 지방선거 때도 큰 틀을 뒤집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여론조사의 중요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바로 서울과 경기도다. 각종 여론조사(중앙선관위 참조) 결과 집권여당임에도 민주당에서 오세훈 현직 시장의 확실한 대항마가 보이지 않는다는데서 고민이 있다. 민주당 현역 광역단체장 중 한명을 컷오프 또는 최하점을 줘야 하는데 김동연 경기지사는 일단 고비를 넘겼다는 관측이 많다. 친명(이재명 대통령) 또는 친정(정청래 당 대표)을 중심으로 한 여권 핵심에서 볼때 김 지사는 싹을 잘라야 할 대상일 수도 있으나 그를 배제했을 경우 자칫 경기도지사 자리를 국민의힘에 헌납하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북의 경우 교육감 선거에서는 당의 공천이 없기는 하지만 소위 명심 마케팅이 활발하다. 저마다 이런저런 명분과 인연을 내세우며 자신이 이재명 대통령의 측근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전북지사 선거에서는 명심 마케팅뿐 아니라 소위 정심 마케팅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김관영 지사와 안호영 의원은 상대적으로 명심 마케팅에 주력하는 반면, 이원택 의원은 정심 마케팅으로 승부하는 분위기다. 김 지사는 올림픽 유치나 기업유치 등 성과를 거뒀다는 점을 주장하면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때 전국 시도지사 후보 영입 1순위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안호영 의원은 환노위원장으로서 활동 상황을 알리면서 대통령과의 친밀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암시한다. 이원택 의원이 갑작스럽게 출마한 배경에 대해 그의 측근들은 “당 대표의 강한 출마 권유가 있었기에 때문 아니겠느냐”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어떻게든 뒤를 봐줄테니까 나서라고 해서 나섰다는 거다. 하지만 상대 후보 진영에서는 몸 불리기를 위한 자의적 해석일뿐 집권여당 대표로서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을것이라고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이번에 되면 좋지만, 설혹 안되더라도 차기를 위한 몸불리기 차원에서 출마하는 수순을 밟았다는 거다. 어쨋든 오늘, 내일 실시되는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향후 선거구도는 또 한번 요동칠게 분명해 보인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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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5.11.19 17:39

[의정단상] 초코파이와 대장동, 검찰의 정의는 어디를 향하나

지난해 1월, 완주에서 ‘초코파이 절도사건’이 일어났다. 한 물류회사의 보안 업무를 담당하는 협력업체 직원이 순찰을 돌다가 사무실 냉장고에서 1050원 상당의 음식물을 꺼내먹은 일이 발각된 것이다. 이 사건이 화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월 1심 재판에서 ‘벌금 5만 원’이라는 결과가 나오면서부터다. 450원짜리 초코파이와 600원짜리 과자를 먹은 일이 아무리 ‘절도죄’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랬겠느냐는 것이 국민 일반의 법 감정이었다. 오죽하면 이 사건 2심 재판을 맡은 판사마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일로 지난 국정감사에서 전주지법과 전주지검이 많은 질타를 받았다는 후문도 있다. 검찰의 판단은 추상(秋霜)같았다. 최근 검찰은 검찰시민위원회의 의견을 들어 항소심 재판부에 선고유예를 구형했지만, 그러면서도 ‘공소사실이 명백히 인정되고 이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 판단에 법리 오해가 없다’라면서 ‘절도죄’ 판단을 굽히지는 않았다. 인정에 휘둘리지 않는 정의롭고 강직한 검사의 표본이 여기에 있는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은 검찰의 정치성을 비판할 때마다 덩달아 소환되고 있다. 최근 대장동 재판의 항소 포기와 관련해서 야권이 정부여당을 비난할 때 그 비교대상으로 ‘초코파이 절도사건’이 거론됐다. 일반 국민이 초코파이 하나를 훔쳐도 검찰이 항소를 하는데, 대장동 사건의 항소 포기가 말이 되느냐는 논리다. 아마도 검찰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조직임을 강변하기 위한 수사적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바로잡아야 할 사실관계가 많다. 우선 ‘초코파이 절도사건’의 경우 항소를 제기한 장본인은 피고인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이 항소하지 않은 사례도 상당하다. 일례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재산을 축소 신고해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는데,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검찰이 ‘실익이 없다’라는 이유로 항소하지 않았다. 대장동 일당에 대해서는 검찰 구형보다 더 무거운 형량이 내려진 마당인데, 왜 더 재판하지 않느냐는 비난이 그래서 공허하게 들린다. 과연 검찰은 정의로운가. 더불어민주당 정치검찰 조작기소대응특위 위원장 직을 맡은 지 만 4개월이다. 그 기간 동안 검찰의 민낯이 가소로울 정도로 불의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검찰청사에 외부음식과 술을 동원해가면서 피의자를 회유하려 하고, 원본과는 다른 ‘검찰 버전 녹취록’을 만들어서 증거로 제시한 정황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이런 조작수사와 기소에 터잡아 진행되는 수많은 재판을 지켜보면서, ‘사상누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대장동 사건도 마찬가지다. 조작된 녹취록을 핵심 증거로 삼은 재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바닥을 드러내는 것은 검찰의 실력일 것이라는 확신마저 든다. 어느 국민이 검찰의 수사과정이 이럴 것이라고 상상이나 하겠는가. 줄줄이 집단행동에 나선 검찰들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초리가 곱지 않은 이유다. 프랑스의 철학자 보드리야르는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두고 정치의 부패를 은폐한 ‘저지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대장동 재판 항소 여부와 관련한 검찰의 날 선 항명도 마찬가지다. 그 집단에 법도 정의도 없다는 진실을 간신히 가릴 뿐이다. 지금 이 순간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초코파이도 대장동도 아닌, 검찰 그 자체다. 한준호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고양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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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1.19 17:36

[타향에서] 4년을 맡길 사람, 전화 한 통화로 뽑을 것인가?

그리스에서는 2006년 아테네 교외 마루시에서 사회당 PASOK이 시장 후보를 숙의형 공론조사로 선출하는 실험을 했다. 무작위에 가깝게 뽑힌 시민들이 주말 동안 시정 현안과 후보들의 정책을 학습하고, 소규모 토론과 전체 질의응답을 거친 뒤 비밀투표로 후보를 선택했다. 전화 한 통으로 인지도 높은 이름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정보와 토론을 기반으로 유권자가 직접 후보를 검증한 것이다. 이 사례는 정당 내부 공천 과정에 숙의민주주의를 접목해 기존 여론조사 중심 경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시도이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2016년 국민의당이 광주광역시 5개 선거구 국회의원 후보를 숙의 공론화 방식으로 선출해 모두 당선시킨 경험이 있고, 올해 민주당도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 과정에서 같은 방식을 도입해 전북 출신 30대 청년인 박지원 최고위원을 선택한 바 있다. 인지도와 조직 동원력이 아니라,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은 시민·당원이 토론과 숙고를 거쳐 ‘준비된 사람’을 선택해 낸 결과다. 숙의 공론화 방식의 후보 선출은 특정 계파의 이해관계를 넘어, 당 전체와 지역사회의 장기적 이익을 중심으로 후보를 평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와는 달리 선거후보 공천 방식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되어 온 전화여론조사는 유권자의 검증을 사실상 생략한 절차에 가깝다. 짧은 통화 속에서 유권자는 후보의 경력, 정견, 정책을 제대로 접할 수 없고, 서로 다른 후보를 비교 평가할 기회도 없다. 익숙한 이름과 이미지, 동원된 조직과 광고, 유력 정치세력의 천거가 결과를 좌우하고, 그 여파로 무자격·무능력 후보가 지자체장으로 선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번 그렇게 뽑힌 지자체장은 최소 4년 동안 자리를 유지하고, 시민은 그 기간을 무기력하게 감내할 수밖에 없다. 이는 민주주의가 단지 투표 행위로 축소될 때 어떤 위험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전북처럼 민주당 당내 경선이 곧 본선이나 다름없는 지역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민주당 공천이 사실상 당선을 의미한다면, 민주당 후보 공천 과정은 곧 유권자의 선택권이 실질적으로 행사되는 처음이자 마지막 관문이다. 그 과정이 인지도 조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후보에 대한 충분한 정보 제공과 비교·검증의 기회, 시민이 질문하고 숙고할 수 있는 장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전북 유권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길이다. 지역 언론과 시민사회, 정당이 함께 협력해 공개 토론회와 숙의 패널, 온라인 중계 등을 결합한 새로운 경선 모델을 설계할 수도 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전북의 광역·기초단체장 후보 선출 방식으로 숙의 공론화 모델을 도입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작위에 가까운 유권자 선발과 균형 잡힌 자료 제공, 숙의 과정과 비밀투표를 결합한 공론화 절차는 유권자에게는 더 나은 정보와 숙고의 기회를, 정당에게는 경쟁력 있고 책임감 있는 후보 선출 기회를 제공한다. 호남에서의 민주당 후보, 영남에서의 국민의힘 후보처럼 공천이 곧 당선인 지역일수록 당내 공천 과정은 숙의민주주의에 걸맞게 재설계 할 필요가 있다. 만일 전북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러한 방식을 선도적으로 도입한다면 지방자치를 회복하고, 한국 정당정치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모범을 창출하게 될 것이다. 김춘석 한국리서치 여론조사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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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1.19 17:36

[기고] 종묘, 인류 전체의 공통자산-일부 시민들 만 누리는 정원이 될 수 없어

요즘 종묘를 둘러싼 개발과 보존이냐?를 두고 양측 주장이 뜨겁다. 한 쪽은 세계유산의 지위를 위태롭게 만드는 무분별한 개발이라 주장하고, 다른 쪽은 건물 높이가 세계유산에 그늘을 만들지 않으니 상관없다고 한다. 급기야 국가유산청은 세계유산지구로 지정하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유네스코가 우리나라의 국가유산인 종묘를 세계유산으로 지정한 것은 그 나라의 정치·예술·건축기술을 총망라하여 인류 전체의 공통자산으로서 인정하고 보존과 전승 의지를 공식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우리는 도시를 볼 때 그 문화가 다르면 공간지각도 달라진다. 세계 어디를 가던지 천편일률적인 고층빌딩과 오랜 역사가 만들어 낸 문화적 소산과는 보는 이들에게 확연히 다르게 인식된다. AI혁명 속에 전 세계는 더욱 빠르게 움직이고 발전한다. 변화하는 도시 속에서 과거에 존재했던 것과 새롭게 들어설 도시 구성요소 간의 위계를 정하는 것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엇에 가치를 두고 있는가를 명확히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전쟁 중에도 상대 나라의 문화유적을 파괴하려는 과오는 역사 속에서 단 한번도 정당화되지 못했다. 인류가 과거의 경관을 복원하거나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경관을 유지하려는 것은 그 문화현상과 지역과의 결합, 그에 따른 도시의 발전단계 및 지역간 차이의 위치를 정립하고 앞으로의 조화로운 발전 방향을 세우기 위한 중요한 작업임에 틀림없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선조들이 일군 문화는 오늘날 진정한 호혜와 인간 평등의 상징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문화적 상징성 속에 내재된 문화주권은 한 국가와 민족의 자존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문화는 인류의 보편성과 평화의 상징으로 일부 사회계층만의 소유물이 될 수 없고 또 그렇게 되서도 안된다. 세계유산은 그런 의미에서 인류 모두의 것이고 미래세대도 이를 향유할 권리가 있다. 오늘의 종묘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보존과 개발의 상충 문제만이 아닐 수 있다. 우리 국가와 민족을 대표할 자존심과 편익과 경제성이 위계를 정하는 과정을 두고 다투고 있는 것이다. 종묘는 도시 속에 영역을 가진 하나의 물리적 건축물만이 아니다. 이는 종묘의 입지단계에서부터 고려된 공간의 특성과 그 속에 내재된 의미를 모두 포함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재개발에 의한 초고층 건물은 주변 건물보다 규모가 매우 커서 주변건물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위압적 경관을 형성하게 된다. 건물 주변에 고층건물이 올라감으로써 종묘 같은 세계유산은 상대적으로 작고 볼품없게 느껴진다. 더욱이 전통공간에 인접한 이질적 요소는 국가유산의 질적 수준을 떨어뜨리고 있다. 단순히 건물이 높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조화성의 허용한계를 초과하면 본래의 위계를 손상시킨다는 것에 있다. 이 위계에는 한 나라의 문화 예술 민족정신의 가치가 반영된다. 쉽게 말해 주변의 초고층 건물은 누가 보더라도 종묘보다 위계상 두드러지게 되는 것이다. 종묘는 역대 왕과 왕후들의 신주를 보관하고 제례를 봉행하는 신성한 곳이자 우리 민족의 정기가 서려있는 중요한 공간이다. 종묘의 성스러운 분위기가 깨져서는 안된다. 가장 성스러운 공간의 남쪽에 142m 빌딩이 들어서면 종묘가 그 건물을 향해 제사지내는 모양새로 오인되기 쉽다. 충과 효의 정신을 간직한 문화적 이미지를 왜 편의와 경제성으로 도전하려 하는가? 아니면 초고층건물에서 내려다 볼 일부 계층만을 위한 전망좋은 정원으로 만들려고 하는가? 이 선택은 우리가 결정할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무는 후손들을 위해서 세계유산인 종묘를 온전히 지켜주면 되는 것이 아닐까? 신현실 우석대 국제교류원장·국가유산청 자연유산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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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1.19 17:35

[오목대] 경복궁과 권력의 사적 오용

궁궐은 본디 ‘왕과 왕실 가족, 그리고 그들의 생활을 돌보는 사람들이 사는 집’이다. 하지만 그 의미는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선다. 궁궐은 왕조의 정치와 행정, 의례와 일상이 집약된 국가의 중심 무대이자, 건축과 조경, 의례 체계가 결합해 권위와 질서를 구현한 복합문화유산이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궁궐은 단순한 건물군이 아니라, 국가의 흥망과 갈등, 번영과 쇠퇴가 켜켜이 쌓인 역사적 무대인 셈이다. 그중에서도 경복궁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하며 가장 먼저 세운 궁궐이다. 태조는 1395년 경복궁을 지어 이곳에서 정무를 보고 대신들과 논의를 거듭하며 새로운 국가 방향과 정책을 세웠다. ‘왕조 일상 자체가 곧 정치’였던 시대, 경복궁은 그 체제를 상징하는 최고 권위의 공간이자 조선의 국정 운영이 실질적으로 구현되던 장소였다. 그러나 경복궁은 왕조의 화려했던 영광만을 담고 있지 않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뒤 270여 년 동안 방치되었고, 대원군의 중건으로 복원되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다시 훼손되는 수난을 겪었다. 다행히 경복궁은 수십 년에 걸친 복원 작업 끝에 오늘의 모습을 되찾았다. 경복궁이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흔들리고 회복해온 역사를 증언하는 살아 있는 역사 공간인 이유다. 굴곡진 역사를 딛고 선 경복궁은 더 이상 ‘여러 궁궐 중 하나’가 아니다. 국가의 흥망과 회복, 정치와 문화, 일상과 의례가 응축된 한국사의 중심 공간이다. 경복궁이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섰다. 김건희 씨의 잦은 출입이 알려지면서다. 궁궐은 ‘국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지만, 그 공공성은 엄정한 기준과 원칙 위에서 지켜져야 한다. 공공의 공간인 궁궐이 사적 활용의 통로를 열게 되면, 궁궐의 역사성과 상징성은 손상되고 만다. 김 씨의 빈번한 출입과 뒷이야기는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공개되지 않고 절차도 거치지 않은 김 씨의 잦은 경복궁 방문은 어처구니없고 이해하기 어렵다. 절차나 목적이 투명하지 않으니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경복궁은 권력을 상징하는 공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의 권력이 사적 이익이나 편의를 위해 점유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역사적 상징성이 클수록, 그 공간은 더 공정하고 투명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오늘의 경복궁 논란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권력의 상징이자 공공의 자산인 공간을 사적 이익으로 훼손하는 순간, 그곳에 담긴 역사적 무게와 국민의 신뢰는 함께 무너진다. 경복궁을 지키는 일은 단순한 복원이나 관리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공공성과 역사적 책임을 얼마나 존중하는지를 시험하는 중요한 지표이자 국격을 지키는 일이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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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5.11.1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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