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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전북의 전통예인 구술사 32' 출간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이하 도립국악원)이 최근 ‘전북의 전통예인 구술사 32권 사통팔달 전통예인 조통달 편’을 발간했다. ‘전북의 전통예인 구술사’는 전통예술의 고장 전북특별자치도에 살아가고 있는 예술인의 자취를 더듬어 보기 위해 지난 2011년부터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이 진행해 오던 사업이다. 새롭게 출간된 조통달 명창을 기록한 이번 책은 총 9회의 구술대담 조사를 실시해, 그의 삶과 더불어 주요 활동, 인생 회고, 앞으로의 계획 등 조통달 명창의 예술 세계를 조명한다. 실제 혼란과 방황을 겪었던 청년 시절 이야기로 시작하는 책에는 국립창극단 단원으로서, 전남도립국악단 단장으로 부임했던 시절 등의 채워진 그의 과거 이야기와 그의 고향인 익산 금마면 진수관을 짓고 후학을 양성해 온 현재, 앞으로 이루고 싶은 여생의 꿈 등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져 조통달 명창의 삶의 궤적을 보여준다. 채록연구자로 나선 김정태 도립국악원 학예연구사는 “조통달 선생은 오랜 세월 동안 학습과 수련 과정을 거쳐 자기와의 싸움에서 인내와 집념을 통해 득음해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개척했다”며 “한평생 판소리의 멋을 알리며 문화 저변 확대에 앞장선 조 선생과 마주 앉아 살아온 삶의 여정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는 값진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감사했다”며 채록 소감을 전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5.01.08 16:37

인간이 필연적으로 겪는 고뇌 탐구…김잠선 시집 '아담의 아들'

김잠선 시인은 두 번째 시집 <아담의 아들>(신아출판사)에서 자기분열과 혼란을 겪는 어두운 인간 내면을 탐구한다. 시인은 스스로 자신이 무엇인지 묻고, 물음에서 야기된 자기 분열과 혼란스러운 감정을 간결한 시어로 진솔하게 표현했다. 특히 시인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인류를 내세워 인간이 느끼는 혼란과 혼돈스러운 감정에 이야기를 덧대 거대한 시세계로 구축했다. 시집에 등장하는 시적 화자들은 자신을 억누루는 자유로부터 도피할 방법을 찾거나, 그 자유의 무게를 온전히 버티며 부들부들 떠는 존재들로 그려진다. 시인은 인류의 유한성과 무지성, 관계의 노예라는 연결성 등 인간이 필연적으로 겪는 고뇌에 기인한 시 60여편을 수록해 선보인다. 김 시인은 책 머리말에서 "오이디푸스는 풍요로운 땅을 떠나 황량한 사막길에 올랐다. 갈 곳이 분명했던 것은 아니다. 길동무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더 나은 무엇인가를 발견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그렇게 했다"며 "시간의 창으로 모래를 실은 한줄기 순풍이 불어온다. 나도 그를 따랐다"고 밝혔다. 장신대에서 서양철학을 전공한 시인은 전북대에서 흄의 미적 속성으로 석사와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위조예술을 주제로 논문을 준비하고 있으며 여러 기관에서 미학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기린봉에 인문학당을 마련해 운영하며 청년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지난해 첫 시집 <이브의 관점>을 출간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5.01.08 16:36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소설] 느지막이 새로운 길 앞에 서다

소설을 긁적이기 시작하면서 이런 날이 오기까지 30년이 흘렀다. 몇 번의 최종심 심사평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지 얼마간 도전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40대가 되면서 나는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영화에 빠져들었고, 소설은 그저 이미지로만 내 머릿속을 떠돌았다. 영화 속 수많은 삶과 허구들이 소설로 들어서는 경계를 막아섰다. 50대에 접어들자 프레임 속 이미지에 갇혀있던 눈에서 시리게 눈물이 흘렀다. 나를 가두고 있던 프레임의 틀을 벗어나자 생각은 차곡차곡 정리되고, 그 거름을 자양분 삼아서 이야기들은 조금씩 스스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글쓰기란 어쩌면 자문자답하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독자의 동감을 설득하는 과정을 동반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작년, 전북일보 최종심에 올랐던 나의 작품에 대해 김병용, 송하춘 선생님은 큰 울림을 던졌다. 꽁꽁 싸매고 살아온 내 삶과 글을 과감히 탈피해서 다양한 타인들의 생각으로 고치고 또 고쳤다. 인생의 변곡점에 들어선 나이에 아직 늦지 않았음을 깨닫게 해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감사드리고 싶다. 느지막이 맞이한 새로운 도전 앞에서 그저 설레고 벅차다. △ 장용돈 씨는 전라북도 고창 출생으로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중에 동아문학상(소설)을 수상했다. 2005년에는 전태일 문학상(소설 부문)을 받았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5.01.01 18:40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소설]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소설

2025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14편이었다. 세상이 어수선하고 현실이 소설의 현재를 넘어서는 시대에 소설 역할은 무엇일 수 있을까. 사회, 경제, 정치적 억압이 심할 때 소설의 경향은 지극히 개인적 서사에 머무는 경우가 많고 대의나 대전제를 작품에 적용하거나 가늠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오히려 소설은 그러한 조건에서 문학적 힘이 발휘된다는 전제를 굳게 믿고 큰 기대와 함께 심사에 임했다. 심사위원들은 14편의 소설을 꼼꼼하게 읽고 최종심에 올릴 작품 4편을 선정하여 심의에 들어갔다. 단점이 적은 작품보다는 장점과 미덕이 많은 작품, 신춘문예 특성에 잘 맞는 작품에 중점을 두고 당선작을 가리는 최종 심사에 들어갔다. 「점, 선, 면」은 발상이 기발하고 전개가 독창적이며 개성도 돋보인 작품이었다. 하지만 독백의 서술이 다소 설명적이고 관념이 삶이 되지 못하고 끝맺는 주제의식의 발현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미친 인간들의 노래」는 정치, 경제계의 추악한 면면을 현실감 있게 그린 전개, 가독성이 좋았으며 인물의 성격을 통한 주제의식의 형성이 매끄러웠다. 다만 주요 서사가 익숙하고 단조로운 고발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새로움이 덜했다. 「기원제」는 현실을 사는 직장인의 욕망과 애환, 삶의 가치를 지켜야 하는 갈등을 소재로 삼고 있다. 전개가 자연스러우며 우리가 매일 겪고 있는 생활의 한 치부를 건드려 여운을 길게 남긴 좋은 소설이었다. 다만 소설의 주제가 다소 협소하고 너무 많이 다룬 소재이다 보니 새로움이 덜했다. 좋은 필력을 가지고 있으니 더 좋은 성과가 있으리라 기대한다. 2025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은 「넋두리」이다. 작품은 현재의 농촌을 배경으로 소를 키우고 소를 잃는 농부의 이야기이다. 그런 이유로 낡은 느낌을 주는 것 빼곤 단점이 가장 적고 장점이 넘치는 소설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단점도 소설 안에 들어가면 기우에 불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전혀 낡지 않은 현재를 그리고 있다. 작품은 소설이 가져야 할 여러 미덕을 잘 갖추고 있다. 뚜렷하며 시대적 반영이 이루어진 주제의식, 서사적 긴장감, 안정적인 문장 등 여러 작품 중 단연 돋보인 작품이었다. 지역어의 복원을 통한 유려한 문장은 이 시대의 소설이 필요로 하는 좋은 예이다. 두 심사위원은 지금 꼭 필요한 소설이라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이렇게 진득한 소설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넋두리」를 당선작으로 뽑게 되어 기쁘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건네며 좋은 작가로 남길 바란다./심사위원 이광재·백가흠 소설가

  • 문학·출판
  • 기고
  • 2025.01.01 18:39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동화] 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동화쓰기 정진

3살짜리 손녀가 감기에 걸렸어요. 어린이집에 못 가고 답답해 하길래 도서관에 갔지요. 널찍한 유아실이 놀이터인줄 알고 뛰는 손녀를 잡으러 다니다가 당선 전화를 받았어요. 동화쓰기를 시작하고 20년 만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영광의 순간은 항상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믿기지가 않았어요. 공모전에 수없이 떨어지고 좌절하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쳤지요. 글쓰기에 재능도 없는데 헛꿈을 꾸는 건 아닐까. 동화에서 도망갈 궁리를 찾는데, 딸이 육아를 부탁했어요. 헛된 꿈보다 손녀 육아가 보람 있는 일인 것 같았어요. 손녀와 개미와 벌, 나비를 쫓아다니느라 동화는 잊어버렸어요. 3월, 손녀가 어린이집에 가자 다시 동화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당선이 더욱 기쁜 건, 내 고향 신문에 작품을 선보이게 된 것입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떠나왔지만 잊은 적 없는 사랑하는 고향, 전라북도. 고향신문에 작품이 당선되어 영광이고 기쁨입니다.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겨준 전북일보 관계자분들, 부족한 제 동화를 읽어주고 당선작으로 밀어주신 심사위원분들, 감사합니다. 이제 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동화쓰기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거친 초고를 읽어주는 글벗 선생님들, 든든한 버팀목 양중님, 혜진, 대희, 경하, 하영 사랑합니다. △ 김정숙씨는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나 현재 경기도 김포시에 거주하고 있다.

  • 문학·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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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1 18:39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동화] 기발한 설정과 마음을 울리는 메시지

요즘 어린이들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맞춰 본심에 오른 7편의 작품은 SF, 판타지, 의인화, 생활 동화가 고루 있었다. 7편 모두 어린이의 관심을 담고자 하는 노력이 잘 드러났다. 그중 ‘형광펜’, ‘단비 오는 날에’, ‘재주 내기 한판 할래’가 눈에 띄었다. ‘형광펜’은 어린이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한 점이 뛰어났다. 그러나 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된 형과의 관계에서 주인공이 주체적인 존재가 아닌 수동적인 상태로 결말을 맞이해서 아쉬웠다. ‘단비 오는 날에’와 ‘재주 내기 한판 할래’와 를 두고 오랜 고심을 하였다. ‘단비 오는 날에’는 안정적이고 흡인력 있는 문장으로 가독성이 뛰어났다. 이야기는 인공비만 내리는 미래 도시의 우산 가게가 배경이다. 할아버지는 우산이 필요 없는 세상에서도 우산을 만들면서 자연비를 기다린다. 최근 심각해진 기후위기를 상징적으로 다루면서 희망을 보여주려는 시도가 돋보였다. 그러나 인공비가 내리는 미래 도시의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지 않아서 우산이 필요 없다는 설정에 설득력이 떨어졌다. 당선작 ‘재주 내기 한판 할래’는 도깨비 더잘난이 휴대전화와 내기를 하겠다는 시작이 기발했다. 옛이야기를 읽는 듯한 자연스러운 문장과 빠른 전개도 장점이었다. 더 잘난은 휴대전화에 빠진 아이들에게 외면당하고, 어른들에게는 구경거리가 된다. 다시 떠돌던 중 아들의 전화를 애타게 기다리는 할머니를 만난다. 더잘난이 휴대전화 속으로 들어가서 아들 목소리를 선물하는 결말이 인상적이었다. 작품은 진정한 재주는 내가 더 잘났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돕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 다소 매끄럽지 못한 점이 아쉽지만, 앞으로 크게 발전하리라 기대해 본다. 당선을 축하하며 응모해 주신 모든 예비 작가에게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심사위원 전은희 작가

  • 문학·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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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1 18:39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수필] 겨울에도 꽃은 핀다-김수현

올해 초, 사람들에게 글을 그만 써야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마음을 가다듬기 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글을 쓰는 것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정리해야 할 때를 아는 것도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어려운 시기를 한국어교육학과에서 극복했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몰라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면 조언을 아끼지 않는 교수님들이 계셨다.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도 정서적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이렇게 즐겁고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해도 되나, 겁이 날 정도였다. 2학기가 되고, 글쓰기와 관련된 전공과목을 수강했다. 주제를 선정해서 신문 기사를 작성하거나, 글을 다시 쓰고, 고쳐 썼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글을 1년 이상 쓰지 않았을 때였다. 쓰다 보니 다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한국어교육학과 전공 연계로 후에외국어대에서 특강을 하고 난 후, 중복 투고 확인 전화를 받았다. 다음날 당선 통보를 받았다. 한국어교육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에 대해서도 알려주시는 송복승 교수님, 김지현 교수님, 한지현 교수님, 이정아 교수님, 박은경 교수님, 김정 교수님, 나선혜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한국어교육학과 강의실에서 맞은편을 바라본다. 내가 10년 전에 글을 배웠던 문예창작학과가 있다. 글의 토대를 닦을 수 있게 해 주신 김길수 교수님, 곽재구 교수님, 안광진 교수님, 장철문 교수님, 전성태 교수님, 김춘규 교수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덧붙여, 이 자리까지 오는 데에 많은 지지를 보내 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 김수현 씨는 전라남도 순천 출신으로 순천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해, 같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수료했다. 그는 현재 순천대 한국어교육학과에 재학중이다.

  • 문학·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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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1 18:39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시] 치열하게 꿈꾸는 시인이 될 것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배 한 척, 넘실대는 파도를 가로질러 수평선으로 향합니다. 때론 기우뚱 방향을 잃기도 하지요. 시에 대한 갈증과 물음을 가득 싣고 떠난 배처럼, 시는 가까이 존재하지만 확 잡히지 않는 또 다른 나였습니다. 아우성처럼 쏟아지는 많은 말들을 마음속으로 다시 밀어 넣습니다. 10대 때부터 함께 한 ‘시’이지만, 모든 것이 치열하지 못했던 아쉬움과 핑계일 테니까요. 차곡차곡 접어 둔 못다 한 언어들은 앞으로 써야 할 작품 속에 녹여내면 되지 않을까요. 시를 쓰면서 조금 깨달은 게 있습니다. ‘시’는 언제나 그 과정 속에 놓여 있기에, 매 순간 새롭고 치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 어렵고 힘들지만 참 설레이고 행복한 일이기도 합니다.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넘치게 받은 당선 소식에 감사하고 기쁜 마음입니다. 부족한 제 자신을 다독이면서 더 힘을 내라는 메세지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먼저 부족하지만 가능성을 보시고 선택해주신 김사인 시인님, 박남준 시인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창살에 갇히지 않고 훨훨 날아갈 수 있는 시인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조말선 선생님, 시의 내밀성을 찾지 못하고 추위에 떨고 있는 제가 많이 안타까우셨죠. 시의 바닥과 그 깊이를 채워주시려고 하신 마음 알기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선생님께서 늘 강조하신 사유와 인식, 그리고 대상의 속성으로 새로움을 발견해내는, 이미지와 묘사를 잃지 않는 시인이 되도록 애쓰겠습니다. 시를 쓰는 과정에서 함께 한 신정민 선생님, 강영환 선생님께도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시’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많은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누던 다정한 지평 선생님들, 저보다 더 많이 기뻐해 주시는 모습에 울컥했습니다. 애정어린 잔소리로 응원해 준 사랑하는 남편과 딸 시현, 기뻐해 주시는 아버님, 버팀목과 안식처인 김경남 나의 엄마, 현승, 현준 사랑하는 가족을 비롯해, 진심으로 기뻐해 주시는 소중한 지인분들과 나의 사랑하는 벗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딸이 글쓰는 걸 늘 응원해주셨던 그리운 아버지, 아직 늦지 않았지요, 치열하게 꿈꾸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 이주경 씨는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부산광역시와 김해장유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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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1 18:39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시] 고요한 영혼의 시위를 당겨라

‘신춘 병’이라는 오직 문청이라 분류 지칭되는 종족에게만 대책 없이 전염되고 일사불란하게 치유를 거부하는 지독한 병이 세대를 초월해서 아직도 유효한가 보다. 일천여 편이 넘는 투고 시가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왔다. 모두 열두 분의 44편이었다. “필락경풍우 시성읍귀신(筆落驚風雨 詩成泣鬼神), 붓을 들어 떨치면 비바람이 놀라고 시를 지어 이루면 귀신도 울고 가는 이라며 두보가 이백을 일러 존경을 표한 헌사가 있다. 모름지기 시를 짓는다면 적어도 이 정도의 문장을 꿈꾸어야 하지 않는가.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라고 젊은 날 시마에 빠져 시의 날을 벼리기도, 그렇지 못한 남루한 시적 재능을 자학하던 시절이 있었다. 발칙 풍부하고 패기 넘치는 상상력, 갓 건져 올린 물고기의 비늘에 파닥거리는 윤슬, 우주를 들이마신 숨을 멈추며 이윽고 고요한 내면의 시위를 당긴 숨 가쁘도록 팽팽한 긴장, 수면을 차고 튀어 오른 물방울에 비친 영혼의 무게. 신춘문예 심사를 하다가 위와 같은 문장을 만날 때가 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기쁨을 누리는 순간이다. 잊고 있었던 호승심이 일기도 부러움에 눈꺼풀이 가만히 내리 감기기도 한다. 「카카리키 앵무」외 2편과 「컨베이어 벨트」외 3편, 두사람의 작품을 두고 아주 잠시 머리를 맞댔다. 기성의 시문법, 감각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훈련도 쉽지는 않지만, 그보다는 심사위원으로 대표되는 기성의 미적 감각과 안목을 돌파 해주는 그러한 신선함 속에 시적 설득력을 발휘하는 새 목소리, 새 힘을 우리는 기다리는 것이다. 적어도 그런 의욕과 모험의 열정을 기대하는 것. 기준이 그러했다. 「자석 수평계」, 「새점」, 비록 완성도가 높은 수준작이기는 하지만 기성세대와 크게 다를바없는 작품은 적어도 신춘에서는 보류하기로 했다. 당선작은 왜 꼭 한사람이어야 할까. 「들깨꽃 부각」은 시대상황과 맞물려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시란, 시인이란 내일을 향한 날카로운 예각의 안테나를 갈고 닦고 기다려야 한다. 뮤즈의 샘물이 가득 차오르기 까지. 「카카리키 앵무」는 사회문제로 떠오른 층간소음문제, 육아, 가족, 교육문제등을 반려동물을 통해 바라본 작품이다. 당선작을 받쳐주는 다른 작품의 수준이 조금은 고른 이에게 마음이 더 기울였다. 또한 시를 끌고 나가는 뒷힘과 함께 당선자 쪽의 발랄과 생기가 우리의 의도에 더 맞는 것으로 여겼다. 부디 당선작이 대표작이 된 시인으로 머물지 않기를 바라며 당선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박남준·김사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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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1 18:39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소설] 넋두리-장용돈

코뚜레에 걸쳐진 줄은 용수철처럼 딴딴하고 팽팽하다. 조교사들은 금방이라도 튕겨 나갈 듯한 줄을 잡고 용을 쓰며 끌어당긴다. 곧이어 두 소의 머리를 맞대고 코뚜레의 줄을 빼내는 순간, 이내 싸움은 시작된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혓바닥에서 연신 거품이 흘러내린다. 단단한 근육으로 뭉쳐진 네 개의 발은 땅바닥에 단단하게 고정해 상대방의 힘에 밀릴지언정 제 발로 물러서지는 않는다. 목덜미를 앞으로 수그린 채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친 뿔을 부딪치면서 상대 소에게 굴복해 절대로 밀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녀석들의 커다랗고 순한 눈알에서는 이제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전의가 불타오른다. 상대 소는 800Kg 이상의 제일 무거운 체급인 갑종 싸움소 중 청도에서 정읍까지 벌써 4연승을 달리는 갑짱이다. 그렇게 15분여가 흐른 뒤, 갑짱을 상대로 창해의 적극적인 뿔걸이 공격이 시작된다. 창해의 뿔이 갑짱의 뿔을 걸어서 목을 왼편으로 꺾는다. 갑짱은 혓바닥을 땅에 끌릴 듯 길게 늘어뜨리고,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쉰다. 창해는 뿔 기술뿐만 아니라 머리 밀기, 목 감아 돌리기, 들어 밀치기, 배치기 등 어느 기술 하나 나무랄 데 없이 정말 싸움을 하려고 태어난 소 같다. 창해의 지능적인 싸움 앞에서 호흡이 불안해진 갑짱의 눈빛에 긴장한 기색이 뚜렷하다. 곧이어 창해가 뿔걸이 상태로 갑짱의 육중한 몸을 밀치기 시작한다. 밀리지 않기 위해 버티는 갑짱의 앞발이 점차 땅바닥을 파헤치며 뒤로 끌린다. 그러나 창해의 뚝심 있는 밀치기 앞에서 갑짱은 도무지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는 듯 몸을 돌려 싸움을 포기하고 만다. 자신보다 100kg은 더 나가는 갑짱을 이긴 뒤, 창해는 머리에 시퍼런 멍이 들고 뿔에 찢겨 피가 흥건한 상황에서도 갑짱을 뒤쫓아 가지 않는다. 관중들의 환호를 들으며 싸움장 한가운데에 콧바람만 씩씩거리면서 자리를 지킨 채 서 있는 창해의 당당한 눈망울. 당신은 논두렁 길에 우두커니 서서 창해의 맑고 선했던 그 눈망울을 떠올리며 심란해지는 마음을 애써 추스른다. 잔뜩 성이 나서 논배미 위를 휘감아 돌던 바람이 발정 난 수캐처럼 덤벼든다. 조만간 겁나게 심헌 비라도 퍼부어대면 인자 포도시 뿌리 내리고 여물어가는 벼 모가지들이 제대로 버틸랑가, 라고 당신은 멀리 먹물이 번지듯 하늘을 뒤덮은 채 몰려드는 구름을 보며 걱정스레 혼잣말을 한다. 그 구름이 터지면서 내뿜기라도 하는 듯 거칠고 강한 바람이 푸른빛으로 물들어가는 나락을 훑으면서 쏟아져 내린다. 바람은 이내 시누대처럼 가늘고 구부정한 당신의 허리를 세차게 훑는다. 당신은 찢어진 창호지가 되어 금방이라도 바람에 실려 공중으로 날아갈 듯 위태로운 발걸음으로 유모차를 밀면서 논두렁을 걸어간다. 굳이 새로 난 포장된 길이 아닌 좁은 논두렁 길을 택해 걷는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지만, 당신이 매일 이렇듯 비좁은 길로 마을회관에 오고 갔음을 나는 오늘에서야 알게 된다. 잠시 가던 걸음을 멈추고 당신은 이삭이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벼를 자식들 머리카락을 빗겨주듯이 어루만진다. 당신의 손가락 마디에 내 입김이 닿을까 싶어 세차게 내려앉아 보지만, 당신은 그저 두 손에 더욱 힘을 주고서 흔들리는 유모차의 손잡이를 부여잡고 걸어간다. 당신은 젊은 시절 같았으면 몇십 초면 될 마을회관까지의 그 짧은 거리를 한참이나 걸려 어렵게 도착한다. 저 멀리 마을 입구에서는 동물방역단 통제관과 동물위생시험소 소속 가축방역관, 방역팀 등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고, 회관 앞 공터에 모인 사람들에게 군청에서 나온 조사관이 보상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근방에서 소, 돼지 등을 키우는 집은 5가구 정도인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모여있다. 열대여섯 중에서 이장을 비롯한 서너 명의 60대를 제외하면 대부분 70, 80대 노인만 있을 뿐 조사관 또래의 50대 아래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제 머지않아 이 사람들조차 하나둘 떠나고 나면 마을은 잡초와 바람만 무성한 채 느리게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이번에 살처분한 가축들 현시세대로 보상비도 받고, 거기다 위로금까지 더 보태주니 오히려 축산 농가에게는 이득이죠. 그리고….” “에끼! 고런 느자구 없는 야그를 할라문 그냥 우리들까정 다 한꺼번에 묻어 불라고 하쇼. 우리가 키우는 돼아지, 소가 어디 그냥 가축이간디. 맨날 빈 항아리에다 우물물 붓드끼 사룟값도 안 나올 거 뻔히 알면서도 몸이 뽀사져라 지금껏 애지중지 키운 것은…고것들이 우리헌티는 어찌 되었든간에 귀허디 귀헌 자식새끼 같은게 그리 안 했겄소.” 조사관이 설명을 다 마치기도 전에 이장이 금방이라도 멱살이라도 잡아챌 것처럼 눈을 부라리며 잔뜩 부아가 치민 목소리로 말을 던진다. 그는 아침부터 해장술이라도 했는지 눈알이며 얼굴이 불그레하다. “하따! 그렇게 귀헌 자식새끼 같으믄 백신도 잘 맞히고 허지 좀…….” 올봄 이장 선거에서 떨어진 뒤 서로 말도 잘 섞지 않는 낙근 씨가 이장에게 비아냥대면서 말을 받는다. 이번 동물 전염병 사태는 바로 이장이 기르던 소가 처음으로 1급 전염병 판정을 받은 뒤 시작되었기에 사람들은 은근히 이장이 미안하다는 표시라도 해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마을 축산 농가에게 고개 한번 숙이지 않을 정도로 당당했다. “저짝은 고작 3마리밖에 안되는디, 거그서 300미터 떨어진 나는 20마리란 말요. 글고 아, 솔직히 말혀서, 3년 전, 전국적으로 그 생난리를 쳤던 구제역 파동 때도 병으로 죽은 소가 어디 있었다요? 다들 예방 차원에서 수만 마리나 살처분해 불었제.” 낙근 씨가 이장 쪽으로 손가락질을 하더니 조사관을 향해 말을 이어간다. 이장은 은근히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삭이려고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문다. 먼 친척이면서도 두 사람은 무엇이든 서로를 이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라 결국 이장 선거 때는 삿대질까지 하면서 언성을 높이더니 얼마간 왕래를 끊기까지 했다. 당신은 사람들이 왜 모여있는지, 당신이 여기에 왜 왔는지도 모르는 사람처럼 유모차를 한곳에 삐딱하게 버려둔 채로 ‘백계리 마을회관’이란 팻말이 붙여진 현관을 지나쳐 바로 옆 당산나무 앞으로 걸어간다. 오매, 지지리 복도 없는 년! 태어날 때부텀 망태기로 퍼 담을 맹키로 차고 넘치는 복을 원허지도 않았는디 …. 당신은 느닷없이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더니 신세 한탄을 쏟아낸다. 마을 사람들은 또 시작이라는 듯이 하나둘 그런 당신에게서 시선을 돌린다. 군청 직원이 줄을 선 사람들에게 조사서를 나눠주면서 힐끗 당신을 한번 쳐다보았을 뿐, 당산나무를 향해 연신 절을 하면서 주저리주저리 뱉어내는 당신의 말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나무와 처음 마주하던 날, 낯선 곳에서 시작될 새로운 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이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어리고 귀엽기까지 하던 당신의 모습과 지금의 당신은 도무지 겹치지 않는다. 신부 화장을 곱게 하고 수줍은 얼굴로 가마에서 내리던 당신은 그때도 당산나무를 보고 손을 모은 채 절을 했었다. 그 당산나무는 이제 곳곳이 썩고 생채기가 나서 몸통만 유독 만삭의 아낙네 배처럼 부풀어 오르고 위쪽으로 가지들은 앙상하게 말라 있다. 몇 년 전부터 시름시름 앓더니 몸 곳곳에 영양제를 찔러대고 보수를 해주어도 도무지 예전의 풍성한 잎들을 드러내지 못한 채 죽어가는 중이다. 당신이 여기 백계리로 시집을 온 것은 막 스물다섯 살 생일을 보낸 며칠 뒤였다. 열 살도 되기 전에 아버지가 세상을 등지는 바람에 엄니 혼자서 위로 오라버니 셋, 아래로 여동생 둘까지 육 남매를 키우다 보니께 울 엄니 손바닥은 늘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맹키로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고, 삼시 세끼 때만 되면 자식들 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할 생각에 걱정이 가실 날이 없었당게요. 그래서 울 엄니가 나를 열한 살 때 광주에 있는 고모 댁으로 식모살이를 보냈제. 그때는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라도 한 방울 나올지 알았더만, 엄니 고생을 덜어준다고 생각허니께…. 오매, 거 아예 속이 시원섭섭허드랑게. 그때부텀 난 나중에 시집가더라도 울 엄니처럼 시골 사는 남자하고는 상종도 안할 것이라고 속으로 각오를 해불었제. 그런디도 뭔 놈의 팔자가 이리 배암이 똬리 튼 것 맨키 배배 꼬인 것인지 먼 친척 되는 아재가 중매를 서서 여그 백계리까정 안왔겄소, 첫날 밤, 당신의 옷고름을 풀어주기도 전에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내 머리맡에 앉아 당신은 앞으로 펼쳐질 이곳에서의 생활을 뻔히 아는 사람처럼 방바닥이 꺼지라 한숨을 토하며 혼잣말을 해댔다. 당신이 시집을 온 백계리는 이름처럼 하얀 닭 머리 모양의 산 아래 위치해서인지 돌산이 절반을 차지하고 기껏 논이라고 해봤자 갯물을 먹어서 나락을 심어도 한 마지기에 겨우 서너 가마니밖에 안 나와 농사짓기에도 젬병인 그런 동네였다. 그 논에다 거름 져 나르고 땅심을 북돋아가면서 한 해 한 해 힘겹게 농사를 짓다 보니 기름진 농토가 되었고, 또 밤낮으로 쇠스랑이며 곡괭이로 파내고 일구다 보니 그 많던 돌산에 지렁이가 바글거리고 심는 족족 씨알이 굵은 곡식들이 자라는 밭이 생기게 되었다. 참말로 그때만 하더라도 논밭이 아니면 세상에 먹고 사는 길이 없는 줄 알고 당신이나 나나 눈에 쌍심지 켜고 죽어라 일만 했다. “꼭 송충이마냥 겁나게 징그럽더만, 고것이 인자는 맥없이 좋소잉.” 소쩍새 한 마리가 뒤안 대숲에 앉아서 울고 있었다. 곤히 잠들어 있는 어린 것들이 깰새라 당신은 이불을 돌돌 말아 몸에 감더니 코 먹은 소리로 나를 보며 그랬다. 송충이처럼 떡하니 자리 잡은 눈썹을 보면서 처음에는 징그럽다고 하던 당신은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얼굴에서 눈썹이 사내답고 강하게 보여서 유독 좋다고 했다. “남우세스럽구만 잉.” “워매, 고것이 뭣이 남우세스러운 일이다요. 젊을 적에사 밥 먹다 말고도 눈 맞아서 자빠뜨리고 자빠지고 다 그리함서 새끼들 낳고 허는 것이제.” 마당에 덕석 깔고 콩 타작을 할 때면 도리깨를 들어 올릴 적마다 내 눈썹이 위아래로 꼼지락대는 걸 보다가 ‘오매, 참말로 가슴을 콩닥거리게 허요’,라며 당신은 내 팔을 잡아당기고는 했다. 당신과 나는 아직 몸이 젊을 때라 밭에서 일하다 말고 풀밭에 쓰러져 함께 뒹굴기도 여러 번이었고, 논두렁에서 피 뽑다 말고 내 우악스런 손아귀에 못 이기는 척 논 옆 비닐하우스에 들어가서 그런 적도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큰아들놈 낳고 둘째까지 낳아 오직 자식놈 뒷바라지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평생을 살았다.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남의 집 품앗이 다니고, 하루 일 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뼈가 부서지도록 바쁘게 살다 보니 어느덧 두 마지기였던 논이 네 마지기로 늘었고, 밭도 기름지고 볕 좋은 놈으로 서너 마지기를 장만할 수 있었다. 나는 땅문서에 찍힌 도장밥이 마르기도 전에 당신을 안고 좋아 죽겠다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오매, 이녁은 몸뚱이는 째깐해도 뭔 일을 혀도 각단지게 허는구만. 그동안 겁나게 고생해 불었네.” “으째 근다요. 나는 암시랑도 안해라. 이쁜 우리 아그들 덕분에 신간은 겁나게 편했당게요.” 나는 그런 당신이 얼마나 귀여웠던지 내 몸쪽으로 바짝 당겨서 안고, 밤이 새도록 탐했다. 자식들도 자기 부모 힘들게 일하는 거 보면서 이런 촌구석 아이들 같지 않게 공부도 잘해주고 아무런 말썽도 부리지 않으면서 잘 커 주었다. 큰아들이 그 어렵다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떡하니 합격했을 때 당신은 얼마나 신이 났던지 마을 입구에는 현수막 걸고, 당산나무 아래엔 덕석 깔고서 동네 사람들 다 불러 놓고 돼지도 잡고 떡도 해서 크게 잔치를 열었다. 다들 아시지라? 그날 진안댁이 막걸리에 취해가꼬 먼저 죽은 자슥놈 생각난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잔치판이 난장판이 되질 않았습디요. 근디 자식 놈들을 그렇게 애지중지함서 키웠는디 그라문 뭣헌다요, 당신의 말은 또 이쯤에서 끊긴다. 당신은 빙판길에서 쓰러진 뒤로 고관절 수술을 두 번씩이나 했다. 그 뒤로 당신은 말투가 어눌해지고 행동거지는 생각대로 되지 않아 늘 마음과 말이 엇박자를 놓았다. 큰아들 명호가 베트남 비행기에 오른 그해 겨울, 눈에 파묻힌 마을은 무섭도록 아름다웠다. 당신의 증상도 아마 그날부터 더욱 심해졌을 것이다. 다랑이 논 사이로 드문드문 베트남 전통가옥인 냐산의 삼각뿔형 지붕이 들어서 있다. 논두렁 위, 시커먼 털과 크고 뾰족한 뿔을 가진 물소에 올라탄 채 까맣게 얼굴이 그을린 중년의 아들이 활짝 웃고 있다. 그 옆에 대나무로 만든 뾰족한 논라를 머리에 쓰고 붉은색 아오자이를 곱게 입은 채, 아직도 앳돼 보이는 트엉이 수줍은 듯 서 있다. 마을을 떠난 지 한 달이 넘어서야 보내온 사진 속에서 아들과 트엉은 행복해 보였다. 당신은 아들이 보내온 사진을 나에게 들키기라도 할까 봐서 몰래 감춰두고 수시로 꺼내 보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마실 가고 없을 때면 몇 번씩 훔쳐보고는 했기에 아들이 중국과 국경을 나란히 한 베트남 북부 농촌 마을에서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날이 저리 개러가꼬 어쩔까이? 아무래도 올해 장마는, 몰아치는 바람이며 몰려드는 시커먼 구름떼가 시피 볼 것이 아니구만요. 그랴도 작년처럼 징헌 물난리는 없어야 쓰겄는디.” 언제 왔는지 당신과 그나마 각별하게 지내는 금평댁이 작년 물난리 이야기를 꺼내며 자꾸만 과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당신의 생각을 토막 낸다. 정말이지 작년에는 염병할 놈의 태풍이 초복이 한참 지나서야 뒤늦게 몰려들더니 근 열흘 동안 내리퍼붓던 장대비 때문에 저수지 둑이 무너져 성수네 논이며, 금평댁 수박밭이 죄다 물에 잠겨버렸다. “어따 성님, 저거 쪼까 보랑게요. 저런 오살헐 놈의 시궁창물이 우리 목심줄 겉은 수박들을 다 아작 낸 것도 모자래서 시방 동동거림서 나를 약 올리는 거 맞지라잉. 오매 징한 거! 저 아까운 것들 우짠단가.” 그 금싸라기 같은 수박들이 물 위로 동동 떠내려가는 걸 망연한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금평댁은 힘이 빠진 목소리로 그랬다. 그리고 그날 이후, 금평댁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유모차를 앞세우지 않고서는 제대로 바깥출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올해는 장마가 오기 전부터 징글맞게 궂은일들만 무시로 들이닥쳐서 당신은 애간장이 다 녹아버릴 듯 힘들 때가 부지기수다. 애써 마음을 추스른 채 금평댁의 유모차를 따라 당신과 당신의 유모차는 사람들 쪽으로 향한다. 조사관 앞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밀치고 당신이 맨 앞으로 끼어들어도 누구 하나 막아서지 않는다. 근디 우리 소는 다르단 말요, 라고 시작되는 당신의 넋두리는 당신이 굳이 다음 내용을 말하지 않아도, 회관 앞에 모인 사람들은 당신이 무슨 말을 할 것인지 모두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신은 개의치 않는다. 벌써 사흘째, 당신은 매일 같은 시간에 그곳에서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중이다. 긍게로 이런저런 사정 다 따져서 암만 생각혀도 제일로 불쌍한 것은 우리집 양반이랑게. 우리집 양반이 그 많던 농사는 등한시 하고 날마다 싸움소에 정신이 저러코롬 환장하게 된 게 벌써 십몇 년이 넘었지라. 아들놈들도 어지간한 송아지 열 마리 값을 암시랑도 안하드끼 지불허고 고작 싸움소 될 성싶은 송아지 한 마리만 덜커덩 사오는 즈그 아부지가 제정신이 아니라며 등을 돌리다시피 했당게. 근디도 기언코 우승시키겄다고, 그 양반이 정성을 기울인 내막을 내가 여그서 다 말하는 것은 어림 택도 없을 것이여. 그동안 우시장마다 돌아댕김서 쓸 만한 송아지를 사다가 금이야 옥이야 해감서 보약 다려 멕이고, 타이어 매달고 들로 산으로 끌고 다님서 훈련시킨다고 쏟아 부은 돈만 허드라도 논 열댓 마지기는 족히 넘을 것이요. 근디, 이 양반이 농사일까정 내팽개쳐 감서 그렇게 송아지부텀 온갖 정성을 다해서 키워 어느 정도 자라 코뚜레하고 고생고생 해가꼬 훈련을 시키면 뭣한다요. 이놈의 것들을 비싼 운반 트럭에 태워가꼬 그 먼 곳까지 데리고 가서 조교사까지 붙여 싸움장에 내려놓기만 하면 출전 호명과 함께 잔뜩 긴장을 해가꼬는 상대방 소 한번 들이받지도 못한 채 엉덩이를 빼고 줄행랑을 치기 일쑤였당게. 근디 창해는 고것이 아니드란 말요. 싸움소, 창해! 창해는 흔히 볼 수 있는 누렁소가 아니라 그런 싸움소 중에서도 보기 힘들다는 호랑이 털빛 같은 얼룩 문양을 가진 칡소였다. 정읍 우시장을 수십 번을 다니며 발견한 놈이었고, 태어난 지 석 달밖에 안 된 송아지인데도 목이 드럼통처럼 굵직하고 가슴팍은 단단하면서도 넓으며 등과 뒷다리가 척 봐도 힘깨나 쓰게 생겼었다. 거기다 꼬리는 말 꼬랑지같이 길고, 눈과 귀가 작은 것이 간이 커서 싸움판에서 쉽사리 물러서지 않을 듯 보였다. 당신은 싸움소에 대해 잘 아는 듯이 창해 등짝을 매만지면서 자랑삼아 말했다. 여보! 이놈은 말여, 무엇보다 뿔이 맘에 든당게. 여그를 좀 보소. 아직 삐져나오지는 않았지만 여그 뿔 자리가 하늘을 향해 있는 모양새가 분명히 노고지리 뿔이여. 인자 이놈이 싸움판에 나서기만 해보라제. 뿔치기, 뿔걸이에서 이놈을 당할 소는 없을 것인게. 창해가 소싸움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올 때면 마을회관에서는 늘 당신 덕에 잔치가 열렸다. 멀리 경상도 김해에서 열렸던 소싸움 대회의 갑종 부문에서 창해가 우승했을 때도 그랬고, 전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싸움소 120마리가 모인 창녕 소싸움 대회 결승전에서 목치기 한판승으로 이겼을 때도 당신은 마을 사람들과도 이 기쁨을 같이 해야 한다며 기필코 상금 800만원 중에서 200만원씩이나 턱하니 잔칫상 차리는데 내놨다. 만약에 매일같이 그런 잔치만 있었다면 당신이 말하듯 ‘가슴팍 한구녕에 애리게 박아 놓은 상처’는 좀 누그러졌을까. 당신이 둘째를 낳고, 겨우 산후조리를 마친 그 날밤, 나는 읍내의 허름한 선술집 김 양의 진한 분 냄새에 취해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나는 정신이 회까닥해버린 상태였다. 당신은 그 어둡고 먼 밤길을 손전등 하나만 달랑 들고서 한 시간을 넘게 걸었다. 산짐승과 풀벌레 소리에 잠식되어 어디쯤인지 분간도 하기 힘든 길 위로 눈을 똑바로 못 뜰 정도로 무시로 바람이 덮쳐 왔다. 당신은 고갯길을 두 개나 오르고 바람도 잦아들고 해서 잠시 쉬느라 바위 위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 가득 별들이 마치 화롯불에서 활활 타오르는 숯덩이를 마당에 확 흩뿌려 놓은 것처럼 요상스럽게 빛을 뿜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것들이 가슴팍으로 아리게 파고들더니 불안한 마음의 잉걸불이 되어 버렸다. 불안은 인제 의심 덩이가 되어 가슴팍에다 쉼 없이 풀무질을 해대고 맥없이 눈물마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당신은 담박질로 읍내까지 가서 기어코 두 눈으로 확인을 하고야 말았다. 부뚜막 아궁이에 집어넣고 장작 때기를 겹으로 쌓아 불을 싸질러도 시원찮을 연놈들이 방구석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저승사자 보듯이 당신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당신은 눈앞에서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으면서 온몸에 있는 기운이 실타래 풀어지듯 스르르 땅바닥으로 꺼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참 주저앉아 있다가 그 문짝이 부서지라 닫아버리고 뒤돌아서 터벅터벅 집까지 걸어갔다. 그날, 당신이 나를 원망하거나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면 아마 나는 당신을 따라서 그 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 당신은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일이 있으면 나를 쏘아보며 ‘씨는 못 속인당게. 꼭 그런 것만 저그 아부지를 탁했응게로. 서방 복 없는 년이 뭔 놈의 자식 복을 바란디야.’라며 사금파리처럼 예리한 한 마디를 남편인지 아들인지 모르는 상대에게 쏘아붙이고는 했다. “한탕주의나 부추기는 소싸움이 무슨 놈의 전통이고 민속이라고. 솔직히 불쌍한 동물을 학대하는 거죠. 이제 고만 좀 하세요.” 싸움소에게 먹일 쇠죽에다 미꾸라지며 인삼을 갈아서 넣고 있을 때였다. 아들은 외양간 앞에 삐딱하게 선 채 비꼬는 말투로 이제 막 3살이 되는 창해를 팔자고 했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하마터면 왼손에 들고 있는 솥뚜껑을 놓칠 뻔했다. 서울의 그 좋다는 대학 나와서 착실하게 회사 생활하면서 아파트도 한 채 있겠다, 거기다 많이 배운 마누라 얻어서 떵떵거리면서 잘 살던 아들이었다. 그런데 주식이며 부동산 투자한답시고 눈알이 핑 돌더니 밑 빠진 독에 양수기로 물을 퍼 담아 날라도 차지 않을 만큼 맨날 돈을 꼬라박기 시작했다. 결국, 아파트를 처분한 돈과 회사 퇴직금까지 날리고 이혼까지 당하더니 빈털터리가 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싸움소가 돈이 된다는 소리를 어디서 들었는지 사업자금으로 쓸 돈을 해달라고 보챘다. 그건 가당치도 않았다. 당신과 나에게 창해는 그저 사고팔 수 있는 짐승이 아니었다. 그러더니 아들은 동업자인 친구 상현이가 보증을 서준 덕분에 농협에서 빚을 내 콤바인과 트랙터 등의 농기계를 사 왔다. 둘은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기계로 수확해주는 일을 시작했다. 노인들이 대부분인 농촌에서 그나마 몇 안 되는 젊은 사람들인지라 어느 정도 사업이 성공한 듯 보였다. 늦게나마 정신을 차리고 성실하게 살아주는 그런 아들의 모습에 괜히 마음이 아려오기까지 했다. 아직 한창인 창해를 싸움소에서 은퇴시킨 것도 몸이 늙고 병이 와서라기보다는 아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앞서서였는지도 모른다. 럼피스킨병! 당신에게는 화성이니 명왕성처럼 도무지 가늠하기도 어렵고, 발음조차 하기 힘든 낯선 이름의 병명을 방역관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전염성이 강한 병이라고 했다. 같은 마을의 소는 물론이고 돼지들 전부 살처분 대상이라고 했다. 살처분이라는 말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 더미를 처리하는 것처럼 너무도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당신은 그저 창해 발굽에 조그마한 물집이 잡히고 고열이 있으면서 며칠간 침만 질질 흘리고 먹지도 않아 걱정스러워했을 뿐이다. 창해는 은퇴한 지 벌써 5년이 되었지만 비실비실한 일반 소와 달리 싸움소 출신이라 그런 병에 쉽사리 걸리지 않을 것이란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가축방역관들은 인근 500미터 근방의 모든 소는 살처분 대상이라며 막무가내로 창해에게 마취제를 찔러 넣었다. 마취제를 맞더니 힘이 빠진 채 두 눈을 끔뻑이며 당신을 뻔히 쳐다보는 고것 눈에서 굵은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리는 걸 당신은 분명히 보고 말았다, 아직 숨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창해를 매몰지까지 싣고 온 굴착기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구덩이에다 쳐 박아넣고 흙으로 덮어 버렸다. 당신은 자기 몸이 굴착기의 삽으로 난도질당하고 파묻히기라도 하는 것처럼 가슴이 녹아내릴 듯이 아프고, 발길이 허청대며 제자리에 발붙이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고혈압 땜시 크게 쓰러지고 난 뒤로는 죽을 날만 기둘리며 몸할라 지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양반이 창해가 있는 외양간으로 기다시피 가더니만 꽥꽥거림서 나옵디다. 내가 야그를 마치기도 전에 이 양반이 울부짖음서 창해가 묻힌 땅을 손가락으로 파내는디 오매, 손톱이 빠지기라도 혔는지 그 양반 손가락 살점들이 찢겨져 피가 흥건해지고 세상 다 망했다는 듯이 눈물을 흘리면서 꺼억꺼억 소리 내어 통곡까정 허더랑게요. 그리고 그날 저녁부텀 시름시름 앓더니만 인자는 저렇게 영영 못 일어나는 신세가 안되야 부렀소. 하이고, 우리 영감 불쌍혀서 어짠단가. 저 양반, 소를 지 자식새끼보다 더 애지중지함서 키웠는디. 좋은 것 많이 멕임서 죽을 때까정 호강시키겄다고 벼르고 있었는디. 말 못 허는 짐승이야 그렇다 치고, 시방 자기할라 이 시상 뜰라고 저래 숨을 꼴딱거리고 있응께 인자는 배겨낼 재간이 없는갑소,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당신은 이제 거의 눈물 콧물 범벅인 채로 땅에 털썩 주저앉아 부지깽이처럼 말라비틀어진 손으로 땅바닥을 내리치며 울부짖기까지 한다. 군청에서 나온 조사관이 재빨리 체크리스트를 넘기면서 무엇인가를 찾는다. 그리고 당신과 이장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부러 한마디 던진다. “그건 너무 걱정마세요. 분명 일반소와 싸움소 가치를 달리해서 보상할 테니까요.” “음마! 누가 보상비 바라고 이라요? 거, 좋은 방법으로다 안락사라는 것도 있는디 뭣땀시 애먼 것들을 그리 숭악허게들 생으로 죽이느냐 이 말이제.” 금평댁이 당신의 손을 잡아 일으키면서 조사관을 앙칼지게 쏘아보며 한 마디 내뱉는다. “시간과의 싸움이니까요. 지금 저희도 동물방역당국과 협조하에 현장 통제와 소독, 역학 조사를 벌이느라 밤낮없이 많은 사람이 고생하고 있습니다. 최대한 해당 동물들 고통 없이 처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너무 염려치 마세요.” “그라요? 그라문 하다못해 마취제를 쓰든가 아님, 가스를 쓰든가 해야 쓸 것 아니요. 몇 년 전에 전국적으로 구제역 돌 때는 시간 아낀다고 애먼 근육 이완제를 쓴 거 다 아요.” 담배만 연신 뿜어대던 낙근 씨가 갑자기 나서면서 3년 전에 전국의 축산업을 위기로 몰았던 구제역 파동으로 이야기를 돌려댄다. 그때는 너무 긴박하고 어려운 상황이라 동물 사체처리반 중에서도 과로사하는 사람이 나올 정도였고, 워낙 많은 수의 살처분이 진행되었기에 근육 이완제만 주사하고 바둥거리는 동물을 곧바로 매몰시키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조사관은 곤란한 표정이 역력한 얼굴로 서류를 신경질적으로 넘겨댄다. 당신은 조사관이 입술 꼬리를 한쪽으로 말아 올리며 인상을 쓰는 모습을 보면서 어쩐지 아들 명호의 그것과 닮아있음을 느낀다. 상현에게 국제결혼을 부추긴 것은 명호였다. 어릴 때부터 소아마비를 앓아서 몸이 불편했던 상현은 나이가 들어서도 연애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명호는 그런 상현에게 사내로 태어났으면 결혼도 한번은 해보는 게 좋을 거라며, 내켜 않는 그를 꼬드겨 부득불 베트남까지 동행했다. 그렇게 스물다섯 살의 트엉은 낯선 땅에서 신부가 되었다. 트엉은 눈이 솔방울처럼 크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듯 그렁그렁한 눈동자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가느다란 허리와 어딘지 여리게만 보이는 얼굴은 보호본능을 자극하고 서툰 한국말로 인사를 할 때의 목소리는 상냥했다. 얼마간 결혼 생활은 순탄하게 흘렀다. 그러나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절고, 말이 어눌한 것이 늘 상처로 남아있었던 상현이는 툭하면 술에 취해 아내가 자신을 무시한다며 행패를 부려댔다. 낯선 한국에 아직 적응도 되지 않은 채 나이도 어리고 마음마저 여렸던 트엉에게 이제 의지할 사람은 명호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명호가 빠져든 것은 어쩌면 시간문제였다. 명호는 상현이 몰래 농기계를 처분한 돈과 그의 아내인 트엉까지 챙겨서 폭설로 버스마저 끊긴 마을을 도망치듯 떠나갔다. 그날 이후, 매일 술에 취해 동네를 배회하고, 집에 찾아와 명호의 행방을 묻던 상현이는 갈수록 폐인처럼 변해갔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상현이가 베트남 비행기에 올랐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리고 이듬해 봄이 되어서야 베트남에서 돌아온 상현이는 형사들에게 둘러싸여 손에 수갑이 채워진 상태였다. 느자구 없는 놈! 하루 점드락 모가지 빠지라 기둘려도 편지 한 장 안 보낸디야. 당신은 우체부가 돌아서는 대문간에서 매일같이 항공우편을 기다렸다. 하지만, 당신이 기다리는 그 편지가 더 이상 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나는 차마 아직껏 말하지 못했다. 꽃상여라? 참말로 벨시럽소잉. 나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당신에게 꽃,상,여,라고 말했고, 당신은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뜨악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군청 장례식장이나 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르면 손님 맞이하기도 훨씬 쉽고 오시는 문상객들에게도 편리할 것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장마철을 앞두고 꽃상여를 태워 보내달라고 하니, 당신은 분명 영감탱이가 죽을 때까지 참말로 주책없이 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마지막 가는 길은 그랬으면 했다. 옛날엔 비록 어렵고 힘들게 살았지만, 동네 사람들이 못줄을 치고 한 줄로 서서 타령 불러가며 모내기를 하고 나락도 함께 베었다. 세상 살기 좋고 편해졌지만, 나는 그때 기억들이 뭉실뭉실하면서 간절해질 때가 있었다. 한 세상 궂은일만 징그럽게 하다가 저세상 가는 마당에 온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 마당에 널찍한 차양치고 넉넉하게 차려진 음식 먹어가면서 시끌벅적하게 웃고 떠들고 하는 것 보면 저세상 가는 게 심심치는 않을 것이다. 간짓대에 걸린 꽃술이 깔끄막부터 온 동네에 휘휘 날리며 저세상 가는 길을 훤히 밝혀 주고, 창해가 맸던 워낭을 요령 삼아 앞소리꾼이 메기고 상두꾼들이 받아주는 상엿소리를 들으며 동네 사람들 모두 다 나와서 잘 가라고 손이라도 한번 흔들어주면 북망산천도 꽃구경 삼아 갈만 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바닥에 퍼질러 앉은 당신을 내려다본다. 당신은 바닥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금평댁이 다시금 당신의 몸을 부축해 유모차의 손잡이를 잡게 도와준다. 당신은 한 손으로는 유모차의 손잡이를 잡고, 또 다른 손으로는 코를 팽하고 풀어서 바지춤에 쓱쓱 닦는다. 그리고 이제야 사람들에게 전할 말이 생각난 듯 조금은 가볍고 경쾌한 목소리로 말한다. 어짤라요? 내 홍어 무침도 허고 된장 푼 물에 애 넣고 시원허게 홍어국도 끓일 것인디. 거그다 술까정 푸짐허니 준비헐틴게, 여그 계신 양반들 다들 오실 거지라? 나는 인자 싸게싸게 집으로 가봐야 쓰겄소. 오매, 근디 오늘 저녁에는 저놈의 하늘이 기언시 비를 뿌릴랑가 참말로 날씨 한번 미친년 널뛰드끼 요상시럽구만 잉. 당신 것일 수도 있고, 내 것일 수도 있는 목소리에는 끊어질랑 말랑 엿가락처럼 늘어났다 줄었다 박자가 있다. 당신의 유모차는 그 박자에 맞춰 느릿느릿 논두렁 길을 지난다. 그러다가, 당신에게 손짓하며 더 너른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나를 쫓는 듯이, 박자는 점차로 달음박질을 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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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1 18:37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동화] 재주내기 한판 할래 - 김정숙

구름산 꼭대기 큰 바위굴에 도깨비 가족이 살고 있어요. 아빠도깨비는 예전에 씨름 잘하기로 유명했고요. 엄마도깨비는 재주꾼 '참'으로 뽑혔대요. 이 부부에게 태어난 도깨비 ‘더잘난’은 힘이 세고 재주가 뛰어났어요. 쓰러진 통나무를 번쩍번쩍 들어 올리는 것도 식은 죽 먹기고요, 남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성대모사 재주가 보통이 넘었어요. “마을에 내려가 재주 내기 한판 할래!” 배운 재주를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더잘난이 아빠를 졸랐어요. “더잘난, 마을은 위험해. 차도 많고. 더구나 도깨비 재주보다 센 휴대폰이 사람들 혼을 쏙 빼갔다는 소문이 있어.” “그럼, 휴대폰이랑 재주내기 할래!” 더잘난은 재주대결 할 생각을 하자 힘이 불끈 솟았어요. 휴대폰과 재주내기를 한다면 이길 자신이 있었거든요. 안개가 아랫마을의 높은 건물을 다 잡아 먹은 밤이었어요. 엄마아빠가 잠든 걸 확인한 더잘난이 쏜살같이 산 아래로 내려왔어요. 거리엔 자동차가 씽씽 달리고요, 사람들이 북적북적 했어요. 가게마다 색색의 전깃불을 켜고 사람들이 모여 웃고 떠들었어요. 더잘난은 자동차 지붕에 올라 타 보기도 하고, 사람들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기도 했어요. 더잘난이 장난을 치며 돌아다녀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사람들은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거나, 사진을 찍고, 검색하기 바빴어요. 아빠 말처럼 휴대폰의 재주에 사람들이 모두 홀린 것 같았어요. 더잘난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아이를 봤어요. 휴대폰에 코를 박고 있는 아이는 더잘난이 옆에 앉는 줄도 몰랐어요. “야, 나랑 재주내기 한 판 하자!” “싫어!” 아이는 고개도 들지 않고 짜증을 냈어요. 더잘난이 아이를 슬쩍 밀었어요. 아이가 휴대폰을 들고 땅바닥에 주저앉았어요. “헉!” 더잘난과 눈이 마주친 아이가 흠칫했어요. 더잘난이 혓바닥을 쏙 내밀었어요. 아이가 벌떡 일어나 뒷걸음을 쳤어요. “나랑 한 판 붙자!” “바빠. 학원가야 돼.” 더잘난이 아이의 다리를 덥석 잡았어요. 아이는 다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버둥댔어요. “재주 내기 하자!” “안 돼. 바쁘다고!” 아이가 신경질을 부리며 더잘난을 노려봤어요. 아이의 관심을 끌려고 더잘난이 공중제비를 돌았어요. 아이의 입 꼬리가 잠깐 올라갔다가 금세 내려왔어요. “쳇 별거도 아니면서. 요건 손만 까닥하면 다 해주는데.” 아이가 휴대폰을 흔들어 보였어요. 아이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휴대폰 속에서 노래를 부르고, 게임을 하고, 춤도 추었어요. 휴대폰의 재주는 더잘난의 상상을 뛰어 넘었어요. 또 친구도 사귀고, 아무리 멀리 있어도 금방 소식을 전할 수 있대요. “이제 알겠니? 네 재주가 얼마나 시시한지.” 아이가 휴대폰을 더잘난 코앞에 들이댔어요. 더잘난은 휴대폰의 놀라운 재주에 정신이 아찔했어요. 엄마, 아빠보다 더 뛰어난 자신의 재주가 시시한 취급을 받아 속도 상했어요. 더잘난이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노란차가 달려와 아이를 태우고 떠났어요. 더잘난은 휴대폰 재주에 밀리긴 했지만, 구름산으로 돌아가기 싫었어요. 자신의 재주를 알아주고 좋아하는 사람을 꼭 만나고 싶었어요. 더잘난은 색색의 전기불이 켜져 있던 흥청거리에 다시 가보기로 했어요. 그 거리에 유난히 사람이 많았거든요. 너무 빠르게 달려 사람들이 그냥 지나쳤는지 몰라 이번에 천천히 걷기로 했어요. 더잘난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광장에 가서 발랑발랑 재주넘기를 했어요. 때마침 사진을 찍고 있던 사람이 더잘난의 재주넘기를 보고 뛰어왔어요. “와, 도깨비다. 같이 사진 찍어요!” 젊은 여자 두 명이 더잘난에게 사진을 찍자고 했어요. 어깨가 으쓱해진 더잘난은 젊은 여자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었어요. 여자들이 더잘난과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어요. 더잘난은 사람사이에서 옴짝달싹도 못하고 사진만 찍혔어요. 이리저리 떠밀리고 더잘난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어요. 사람들 등쌀에 더잘난은 흥청거리가 싫어졌어요. 더잘난은 재주를 부리는 척 하다가 작은 골목으로 달아났어요. 사람들이 따라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구름산이 있는 산등성이 마을로 향했어요. 높은 빌딩이 많은 산 아래와 달리 산비탈 마을은 지붕이 낮은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어요. 골목길 입구에 가로등이 켜 있고 허리가 굽은 사람이 느릿느릿 움직이는 게 보였어요. 가까이 다가간 더잘난이 전봇대 뒤로 숨었어요. “비가 오려나. 무릎이 콕콕 쑤시네.” 볼이 홀쭉하고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파인 할머니가 중얼거렸어요. 할머니는 몹시 고통스러운 듯 옆에 세워둔 수레를 잡고 일어서려고 했어요. 비틀거리던 할머니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어요. 더잘난이 가로등 아래로 달려갔어요. “할멈 괜찮아?” 더잘난이 할머니를 부축했어요. 허리를 편 할머니가 더잘난을 뚫어져라 쳐다보았어요. “이게 누군 겨? 도깨비 아녀?” “헤헤. 할멈, 나 가짜 도깨비야.” 더잘난은 흥청거리 사람들이 생각나 거짓말을 했어요. 할머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어요. “내 눈은 못 속여. 넌 진짜 도깨비구먼. 이게 얼마만이여?” 할머니가 더잘난의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였어요. 반가워하는 할머니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더잘난이 생글거렸어요. “할멈, 나랑 재주내기 한판 어때?” “이 늙은이랑 재주내기를?” 할머니가 옷소매로 눈물을 찍어내며 웃었어요. 그때 할머니 목에 걸린 휴대폰이 윗옷 사이로 삐져나왔어요. 휴대폰을 발견한 더잘난이 뒷걸음을 쳤어요. “할멈도 있네.” 더잘난이 휴대폰을 가리켰어요. 할머니가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조심스럽게 어루만졌어요. 할머니 손이 움직일 때마다 손등의 굵은 힘줄도 따라 꿈틀거렸어요. “늙은이가 전화할 때가 어디 있남? 혹시나 아들한테 연락 올까 가지고 다니는 거지. 한 달 요금이 쌀 한 말 값이 넘는구먼.” 할머니는 휴대폰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다시 품에 넣었어요. “도깨비도 돌아 댕기는구만. 잘 있다고 전화 한번 할 것이지.” “할멈, 전화 기다려?” “좋은 전화 갖고 다니면 혹시나 연락 올 까 했지. 다 쓸모없는 짓이구먼. 자식 놈 목소리 한번 듣는 게 소원인데……. 전화가 안 와.” “그럼 할멈이 전화해.” “전화를 받아야지…….” 할머니가 말꼬리를 흐리자 더잘난도 함께 시무룩해졌어요. 만능 재주꾼인줄 알고 부러워했던 휴대폰이 할머니를 더 쓸쓸하게 하는 것 같았어요. “쳇, 재주가 많으면 뭐해? 할멈 마음도 모르면서.” 더잘난이 할머니의 앞섶을 노려봤어요. 할머니가 수레를 끌고 언덕길로 향했어요. 어둠속으로 할머니가 사라지자 더잘난이 외쳤어요. “할멈, 기다려!” 순식간에 할머니를 따라잡은 더잘난이 수레를 언덕에 올려놓았어요. “호오, 힘이 장사네.” “맞지? 할멈. 내 재주 아직 쓸 만하지?” 할머니의 칭찬에 으쓱해진 더잘난은 공중제비를 휙휙 돌았어요. 그리고 휴대폰에서 보았던 아이돌가수 춤을 흉내 냈어요. 할머니가 앞니를 드러내고 웃었어요. “할멈, 정말 재밌어?” “암, 재밌고말고!” 할머니가 어린아이처럼 손뼉을 치며 벙싯거렸어요. 재주를 실컷 뽐낸 더잘난이 할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했어요. 할머니 얼굴이 어두워졌어요. 더잘난도 할머니랑 헤어지는 게 섭섭해 발걸음이 무거웠어요. 몇 발짝 걸었는데 할머니의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더잘난이 뒤를 돌아봤어요. 할머니가 휴대폰을 들고 혼잣말을 하고 있었어요. 더잘난이 살금살금 되돌아왔어요. “아들, 전화 좀 받아. 오늘따라 할 말이 많구먼.” 더잘난은 휴대폰에서 무슨 소리가 들릴까 바짝 다가갔어요. 휴대폰의 신호음이 울렸어요. 신호가 끝나고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간다는 안내가 나왔어요. 잠시 머뭇거리던 할머니가 휴대폰에 대고 말을 했어요. “아들, 도깨비처럼 불쑥 나타나도 괜찮아. 애미 안 놀랜다.” 음성사서함을 닫은 할머니가 다시 전화번호를 눌렀어요. 할머니 표정이 점점 어두워 졌어요. 지켜보던 더잘난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어요. 실망한 할머니가 전화를 끊으려고 했어요. 그때, 더잘난이 움칠하더니 할머니 전화 속으로 쑥 빨려 들어갔어요. “엄니, 나야! 아들!” 할머니가 놀라 휴대폰을 떨어뜨렸어요. 휴대폰 속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어요. “도깨비처럼 나타나도 안 놀랜다고 했잖아.” “정말 내 아들 맞는 겨?” “엄니, 아들 목소리도 잊었어?” “그럴 리가. 내 아들 목소리 맞다.” 할머니가 휴대폰을 쓰다듬었어요. 휴대폰 속에서 엄니, 엄니, 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할머니가 우는 아이를 달래듯 가만가만 속삭였어요. “아가, 오늘 말이여. 도깨비를 봤다. 너도 어릴 때 도깨비불 본 적 있지. 비올 때 앞산에 도깨비불이 꽃처럼 피었구만. 기억 나냐? 너는 무섭다고 내 등 뒤로 숨었어. 고놈들이 어찌나 장난이 심하던지 앞마당까지 불을 켜고 왔지. 그런 밤은 넌 꼭 오줌을 쌌단다. 아가, 너도 도깨비처럼 불쑥 나타나도 괜찮다.” “알았어. 엄니, 내가 도깨비처럼 불쑥 나타나도 놀래지마.” 할머니 휴대폰 속에서 나온 더잘난이 구름산으로 쏜살같이 뛰어갔어요.

  • 문학·출판
  • 기고
  • 2025.01.01 18:35

초연한 심경들의 낯섦, 김환생 시집 '낙일' 출간

김환생 시인이 세 번째 시집 <낙일(落日>(월간순수문학)을 펴냈다.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둔 순수서정시를 쓰는 김 시인은 창조적 관점에서 자연에 순응하는 시편으로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선사한다. 시를 통해 인간의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기를 소망하는 시인만의 철학이기도 하다. “못 이룬/사랑이다//죽어서도 못 지울/님의 눈이다”(‘낙일’ 전문) “이 세상/슬픈 짐을/훌훌 벗어버리면/생전 무거운 육신/얼마나 가벼우리//때가 이르면/이승도/그의 업도 모두 거두고/힘든 영혼 또한/가까이 부르시련만//오늘도 아니 부르신다/내게 맡겨주실 일이/아직 남아 있는가 보다.”(‘령’전문) 허무와 무상을 극복한 초연한 심경을 표현한 김 시인의 시들은 정직하고 강직해 시인만의 뚜렷한 철학이 묻어난다. 시인이 쓴 ‘낙일’은 아름다운 노을이 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죽음과 절망을 극복하고 동백꽃으로 윤회하는 승화하는 모습을 목도하게 한다. 동백꽃은 어둡고 음침한 죽음의 계곡에서 붉은 생명으로 부활하는 이미지로, 신성한 붉은 생명으로 이미지를 형상화해 완전히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소재호 시인은 발문을 통해 “시를 쓸수록 내가 쓴 시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꼭 이렇게 쓰고 싶었음을 스스로 확인하면서 시를 쓰고 있다”며 “그러니 이 얼마나 뻔뻔한 시인인가. 그렇지만 그런 뻔뻔함이 없다면 어떻게 한 줄의 글이라도 쓸 수 있겠는가 싶다”고 서술한다. 1997년 월간순수문학으로 등단한 김환생 시인은 순천매산여자고등학교장, 전주기전중학교장, 전주기전여자고등학교장, 석정문학관 사무국장 등을 역임했다. 전북문인협회, 전주문인협회, 전북시인협회, 국제PEN전북지역위원회, 교원문학회, 미래문학, 월간순수문학, 계간별빛문학 등의 회원이다. 그동안 펴낸 시집으로는 <만경강>과 <노송>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4.12.25 15:37

여산 이영자 시인, '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펴내

“사십 세 이후로/ 인상은 자신이 만들어 간다기에/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내./ 더 온화하고 후덕하길 소망하며,/ 인간사 살다 보면 내 뜻대로만 되던가,/ 거울에 비친 얼굴이 마음에 안 차/ 상냥한 표정을 지어보려 애쓰지만,/ 내면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야/ 사랑이 샘물처럼 흘러넘쳐서/ 편안한 아름다움이 생기리니,/ 고운 인물이 되려면/ 밝고 맑은 마음으로 자주 웃으며,/ 덕담을 잘해야 하리,”(시 ‘거울을 보며’ 전문) 수필가이자 시인인 이영자 작가가 시집 <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아트매니저)을 펴냈다. 책은 6부로 구성돼 약 90편의 시를 품고 있다. 정휘립 문학평론가는 평설을 통해 “이여산 시인이 구축한 시적 영역은 천진난만한 시간의 고운 색채가 수더분하다”며 “그가 장착한 시적 의장(意匠)은 지난날의 회억에 몰입하는 깊이만큼, 현재의 인간적 자아를 조성하고 확립하는 쪽으로 초점의 조리개를 조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시인의 작품 세계는 차분한 그리움의 일관적인 주제를 지닌다”며 “그는 신경병적인 감성 체계의 교란이나 속류적인 사회 현상의 모순을 향한 울분 등을 뒤로 물리치면서, 나름의 곡한 이생 자세를 견지해 본인만의 고유한 인생관으로 나름의 개성을 확보하고자 노력을 기울인다”고 강조했다. 이 시인은 전북 익산시 여산면 출생으로 군산사범학교를 졸업해, 초등교사로 43년간 봉직 후 정년 퇴임했다. 그는 2000년 <지구문학>과 2019년 <대한문학>으로 각각 수필과 시 부문에 등단했다. 저서로는 수필집 <아름다운 인연>, <하얀 꽃그늘 아래 누워서>, <향수>, <마음 밭 잡초를 뽑으며>, 시집 <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등이 있다. 현재 그는 한국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 전주문인협회, 여류문학회 등의 회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4.12.25 15:13

시적 감수성 극대화…복효근 디카시집 '사랑 혹은 거짓말'

디카시의 전성기를 만들어낸 복효근 시인이 두 번째 디카시집 <사랑 혹은 거짓말>(도서출판 작가)을 출간했다. 디카시는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에 창작 원리가 창안되면서 하나의 예술적 표현 양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디지털카메라에 시가 조합되어 생긴 신조어다. 복효근 시인은 시적 모티브를 품고 있는 장면을 순간적으로 포착한 이미지에 5행 이내의 짧은 언어를 융합시켜 시적 감수성을 극대화했다. 총 60편의 디카시가 수록된 디카시집은 사진에서 촉발된 상상으로 압축된 서사를 형상화해 독자들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장미꽃잎을 먹은 자벌레는 꽃잎 같은 날개가 돋아 나방이 되었지/책갈피에 눌린 마른 꽃잎 편지에 붙여 보낸 날들이 있었어/그 나방이는 어디로 날아갔을까”(‘꽃잎을 탓하다’ 전문) “슬픔에 겨워 누군가를 피 흘리게 하고 싶을 때 꽃은 뾰족하다/폭발음이 나지 않게/그 모든 것을 눈물로 바꿀 때 꽃은 꽃이 된다/꽃인 네가 그러하듯이”(‘꽃의 감정’전문) 디카시 창작 1세대인 시인 복효근은 이번 시집에서는 전보다 더 유려한 비유와 압축된 서사로 깊은 울림을 준다. 실제 영화 명량의 영화감독 김한민 감독은 책 서평에서“복효근 시인의 디카시를 읽으면 눈이 참 맑아졌다”며 “시인이 순간 포착한 디카시는 환상적이면서도 아이러니컬하고 극적인 시나리오를 연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미지와 언술 사이에 참으로 매혹적인 메타포가 출렁인다”며 “시인과 함께 ‘아름다운 죄 하나 짓고 싶은’ 섬진강의 푸른밤을 거닐어보고 싶어진다”고 평했다. 1991년 등단 이후 10여 권의 시집을 펴낸 복효근 시인은 신석정문학상, 박재삼 문학상, 한국작가상, 디카시 작품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그동안 시집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마늘 촛불> 등 다수의 책을 펴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4.12.25 14:41

[2024 전북문화계 결산]④문학·출판- "비교적 평이하게 지나간 지역 문학계, 아쉬움도 많아"

2024 전북 문학계는 비교적 커다란 사건 사고 없이 비교적 평이한 한 해를 보낸 만큼, 적지 않은 아쉬움도 남겼다. 올해 상반기에는 앞으로 3년간 전북 문학계를 이끌 전북문인협회의 회장 선거로 문인들의 뜨거운 논의가 이뤄졌다. 이후에는 지역 곳곳에 분포한 도내 문학관과 관련한 크고 작은 이슈로 전북 문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하반기에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소식과 함께 지역 문학인들도 크고 작은 문학상 수상 선정되기도 해 지역 문학의 입지를 다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역 문단에서 활발히 활동해 성과를 냈다는 소식에 비해 지역 문학계를 대표할 만한 혹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새로운 수장 맞이한 전북문인협회 2023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전북 문학계는 제33대 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장(이하 전북문인협회) 선거로 뜨거웠다. 제33대 전북문인협회 회장 선거 후보자로 지난해 12월 조미애 표현문학회 회장과 백봉기 전북수필문학회 회장이 최종 등록해, 선거는 2파전으로 치러졌다. 특히 이번 전북문인협회 회장 선거는 과거 직선제 투표와 달리 대의원제로 진행돼,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이는 과정 속 크고 작은 잡음도 함께했다. 실제 이번 회장 선거를 앞두고 해외여행에 나선 남원문인협회장의 실수로 대의원 추천 기간을 넘겨 소중한 투표권을 잃게 된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후 올해 1월에 치러진 선거에서 백봉기 신임회장이 74표 중 49표를 얻어 66% 득표율로 당선돼 3년간의 임기를 채우게 됐으며, 백 회장은 임기내 ‘전북문학관 건립과 공간 활용 극대화’, ‘건지산 문학의숲 조성’, ‘문학 메세나운동 전개’ 등의 공약을 실천할 것이라 밝혔다. △문학인들의 사랑방 ‘문학관’의 제 역할은 글쎄 지난해부터 많은 문인의 관심을 받은 ‘전북문학예술인회관’이 이달 초 착공식을 개최하고, 본격적인 공사에 돌입했다. 과거 전북문학관의 위치에 들어설 전북문학예술인회관은 지난 2020년부터 신축 계획을 추진했으며, 총사업비 157억 원이 투입돼 부지면적 6225㎡, 연면적 2958㎡ 규모로 건립될 예정으로 많은 도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곳이다. 하지만 행정적 이유와 관련한 여러 문제로 당초 지난해 5월에 착공해 올해 12월 준공을 목표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기며, 많은 문인의 볼멘소리를 사기도 했었다. 또 올해 초 위탁 운영자가 바뀐 최명희 문학관 역시 인력 충원이 수개월째 되지 않고, 지난해 90건 넘게 행사가 진행된 것과 비교해 최근까지 공모 당시 계획했던 사업을 단 한 건도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부실 운영을 지적받기도 했다. △지역 문인들이 일궈낸 크고 작은 성과 전북문인협회는 제35회 전북문학상 수상자로 이소애 시인, 양영아 수필가, 이정숙 수필가, 김기찬 시인, 표순복 시인 등 5명의 작가를 선정해 시상했다. 6월 바다의 날을 기념하고 해양문학에 대한 관심을 드높이기 위한 제18회 바다문학상 대상에는 박홍재 작가가 이름을 올렸다. 특히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최기우 작가의 의 희곡집 <이름을 부르는 시간>(평민사·2023)이 2024년 문학나눔 도서로 선정됐다. 문학나눔 도서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국내 문학 창작 여건 조성과 출판시장 활성화 견인을 위해 선정해 오고 있는 것으로, 올해 발표된 책 총 373권 중 희곡은 3권밖에 포함되지 않아 지역 문단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 이경옥 아동문학가는 비영리 공익법인 아이코리아가 주최하는 '한국안데르센상 작품공모‘에서 창작동화 부문 최우수상에 이름을 올려 주목을 받기도 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4.12.25 14:32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영종 시인 –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강의 서랍에 넣어놓은 저녁이 궁금합니다. 꼬마전구 같은 요정들 몇이 모여 달그락달그락 저녁을 먹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 서랍을 열 수 없어,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열어 봅니다. 말들이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눈빛으로 하는 말이 흘러옵니다. 거기 그렇게 있어 주기만 해도 고맙습니다. 그런데 무언가를 묻고 또 묻습니다. “봄빛과/ 번지는 어둠/ 틈으로/ 반쯤 죽은 넋/ 얼비쳐/ 나는 입술을 다문다/ ……/ 기다려봐야지/ 틈이 닫히면 입술을 열어야지/ 혀가 녹으면/ 입술을 열어야지”(‘새벽에 들은 노래’ 중). 넋은 산 사람 안에 있어요. 마음의 머릴 빗어주고 몸의 신발끈을 묶어주죠. 우리가 죽어도 살아 있는 초험적인 것이라 하죠. “반쯤 죽은 넋”은 무엇일까요. 슬픔 마르기 전에 비탄에 젖거나, 희망이 잘려나가 살고픈 뿌리를 잃는 것이겠죠. 죽어 이승으로 가지 못하고 거대한 학살터를 떠돌고 있는 것이겠죠. “혼은 자기 몸 곁에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을까요. 그게 무슨 날개같이 파닥이기도 할까요. 촛불의 가장자릴 흔들리게 할까요.”(소설 ‘소년이 온다’ 중) 혀는 “가슴과 가슴을 연결하는 금실인 언어”를 내죠. 먹고 노래를 불러요. 내밀어 장난을 치거나, 키스를 합니다. 폭력 속에 아름다움을 굴리기도 해요. 이렇게 혀를 쓰고 쓰다 보면 녹아 없어지겠죠. 이제 입술을 열면 침묵의 동굴 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거기 햇볕 가득한 곳에서 침묵이 시간을 낳아 기르고 있을 겁니다.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난 죽어 있었는데/ 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 ……// 거기 있었네/ 파르스름해 더 고요하던/ 그 돌// 나도 모르게 팔 뻗어 줍고 싶었지/ 그때 알았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처음 아팠네”(‘파란 돌’ 중). “눈동자처럼 고요”한 파란 돌은 영혼이겠죠. 그걸 주우려면 “다시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날 수 있을까요. 작가의 말처럼 “질문의 마지막 겹에 사랑”을 놓아야겠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을까요.” “죽은 자는 눈이고 산 자는 사람이라 오늘의 눈사람이 반짝였다”라는 게 제 시에 있어요. 죽은 자는 눈으로 이 세상에 오죠. 산 자는 눈이 좋아 우두커니 서 있어요. 오늘의 눈사람이 반짝이죠.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어느 늦은 저녁 나는’ 전문). 낮인지 밤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어스름입니다. 번져가는 그 먹물 속에 서있는 걸 좋아합니다. 죽어가는 낮을 태어나는 밤이 놓아주지 않아서죠. 밥과 김은 무슨 이야기를 하며 사별할까요. 지나가버린 혼은 우주 어느 의자에 앉아 있을까요. 밥을 먹는 나에게서 김이 나가는 걸 느끼는 존재가 있겠지요. 그래도 밥을 먹고, “당신의 마른 어깨와 내 마른 어깨가 부딪친 순간. 외로운 흰 뼈들이 달그랑, 먼 풍경소리를 내는 순간”(소설 ‘내 여자의 열매’ 중)을 껴안겠습니다. 이영종 시인은 2012년에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에 선정되어 2023년에 첫 시집 〈오늘의 눈사람이 반짝였다〉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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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25 14:18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기우 극작가-윤흥길 '완장'

‘완장’을 얻어 차고 설쳐 대는 이들은 언제나 있다. 소설 「완장」의 종술도 완장을 차게 해준다는 말에 번쩍 귀가 뜨였다. 일제강점기·한국전쟁·자유당·유신 등을 거치며 위세를 떨쳤던 완장의 힘과 권력을 듣고 봐왔으며, 어려서부터 객지를 떠돌며 쌈질로 잔뼈가 굵은 자기 삶에서 완장의 위력을 학습해 왔기 때문이다. ‘감시원 완장 차고 물 가상이로 왔다리갔다리 허면서’ 막강한 권력자처럼 권위를 내세우던 동네 건달 종술. 술집 종업원 부월은 완장을 ‘하빠리 권력’이라며 핀잔하지만, 종술은 눈을 부라리며 “너는 몰라. 차고 댕겨 본 적도 없으니께, 요, 완장에는…”하며 왼쪽 어깨 쪽으로 완장을 바싹 추어올린다. 독재 정권의 검열을 피하기 어려운 1982년 3월부터 1년 동안 『현대문학』에 연재된 「완장」은 전라도 사투리와 우리 민족 특유의 해학·풍자를 잘 살려낸 윤흥길의 장편이다. 이 작품은 한국전쟁 이후 정치권력의 폭력성과 보통 사람들의 암울한 삶을 ‘완장’이라는 상징적 소재로 풀어내며 우리 사회에 내재한 권력욕을 첨예하게 드러냈다. 「완장」은 익산시에 공업단지가 들어서던 시절, 김제시 두악산 아래 백산면 하정리 백산저수지를 배경으로 한다. 종술이 완장 찬 팔을 휘저으며 갈지자걸음으로 순찰하던 ‘판금저수지’다. 작가는 백산저수지 근처에서 과수원을 하던 친구에게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후 작품을 떠올렸고, 저수지 이름을 판금저수지로 바꿨다. 또한, 종술의 욕망을 희화화하기 위해 1966년 호남야산개발 때 축조한 이 저수지를 실제보다 훨씬 큰 규모로 묘사한다. “독재, 전쟁 위협, 빈부 갈등 등 한민족이 겪는 불행과 비극은 모두 6·25 전쟁과 직결돼 있어요. 독재 정권은 전쟁으로 인한 분단을 권력 유지 핑계로 사용했어요. 자유는 유보됐죠. 더 이상 분단을 빌미로 국민을 억압하는 일은 없어야 해요.”(윤흥길·본보 2018년 1월 6일 자) 얼마 전, 우리는 잘못된 권력의 포악과 폐해로 점철된 시대의 불완전한 징후를 봤고, 완장의 역사가 반복되는 현실에 개탄했다. 망설임 없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완장을 차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자가 누구인지, 그 권력을 휘두르도록 외면하는 자들이 누구인지를 찾아내 눈 부릅뜨며 호통을 쳤다. 그 결과 지난 14일 국회에서 국민을 저버린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대한민국의 자존감을 지키려는 시민의 올곧음이 끌어낸 성과다. “눈에 뵈는 완장은 기중 벨 볼 일 없는 하빠리들이나 차는 게여. 진짜배기 완장은 눈에 뵈지도 않어. 자기는 지서장이나 면장 군수가 완장 차는 꼴 봤어? 완장 차고 댕기는 사장님이나 교수님 봤어? 아무 실속 없이 넘들이 흘린 뿌시레기나 주워 먹는 핫질이 완장이여. 진수성찬은 말짱 다 뒷전에 숨어서 눈에 뵈지도 않는 완장들 차지란 말여.”(전주시립극단 연극 <완장> 중 부월의 대사)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완장과 ‘완장질’이 흔전만전한 ‘완장의 나라’. 출간 40주년을 기념해 문장과 표현을 다듬어 나온 『완장』(현대문학·2024)을 펼쳐 그 정체를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완장의 악몽은 쉽게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최기우 극작가는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했다. 희곡집 <상봉>,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은행나무꽃>, <달릉개>, <이름을 부르는 시간>, 어린이희곡 <뽕뽕뽕 방귀쟁이 뽕 함마니>,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 <쿵푸 아니고 똥푸>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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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18 17:11

정겨운 시어로 가득… 호병탁 시인 '아직 멀었다 벌써 다 왔다'

“내가 쓴 글 다시 보니 절로 나오는 말/ 아직 멀었다/ 찬물 세수하고 정신 바짝 차리고 다시 쓰자/ 쓸 것 아직 수두룩하다/ 거울 속 쭈굴탱이 얼굴 하는말/ 벌써 다 왔다”(시 ‘아직 멀었다 벌써 다 왔다-나의 생’ 전문) 호병탁 시인이 시집 <아직 멀었다 벌써 다 왔다>(문예원)을 펴냈다. 시집은 ‘1부 생(生)’, ‘2부 정(情)’, ‘3부 인(人)’, ‘4부 곳(所)’ 등 총 4부로 구성돼 시골의 풍광과 민초들의 모습을 구수한 표현력으로 그린 75편의 작품이 실려있다. 오일장에 팔려 나온 짐승 새끼부터 소쿠리에 담긴 생선 몇 토막, 정겹고 걸쭉한 사투리로 흥정하는 시골 장터의 모습, 막걸리 몇 잔으로 떠들썩해진 민초의 모습까지 시골 장터에서 한 번쯤 마주해본 추억을 소재로 채워낸 이번 시집을 통해 시인은 독자에게 코끝이 찡해지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경험을 전한다. 김익두 문학평론가는 추천사를 통해 “호병탁 시인의 시는 삭을 대로 삭아 아주 호아져버린 나주 영산포 오자 자배기 속 지푸라기에 싸인 흑산도 홍어 맛이다”라며 “이 시인의 도저한 근저에는 때론 어둡고 우중충하고 때론 깊이를 가늠할 길 없는 아득한 절망의 심연이 도사리고 있다. 그럼으로 그의 시 속에는 남도 바닷가의 곰삭아 호아질 대로 호아진 갯땅 홍어 맛에서도 체험할 수 없는, 깊고 으늑한 맛이 느껴진다”고 시인의 작품에 대해 소개했다. 호병탁 시인은 충남 부여 출생으로, 한국외국어대 중어과를 졸업해, 원광대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그는 문예가족 회장, 종합문예지 <표현> 주간, 채만식문학상 운영위원, 혼불문학상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시집 <칠산주막>, 평론집<나비의 궤적>, <일어서는 돌>, <양파에서 고구마ᄁᆞ지-21세기 한국 시문학을 보는 융합적 통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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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현아
  • 2024.12.18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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