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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관장 이병호)이 백제문화유산 주간을 맞아 7월 6일부터 7월 15일까지 미륵사지와 전시관을 찾는 관람객을 위해 명사와 함께하는 세계유산 백제 특별강좌와 체험프로그램을 마련한다. 백제문화유산 주간은 2015년 7월 8일 백제역사유적지구(8개소)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이 기간 백제 문화유산이 갖는 역사적문화적 중요성을 국민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특별 행사들을 진행한다. 특별강좌는 △7월 10일 세계유산 백제의 도성(박순발, 충남대 고고학과) △7월 12일 세계유산 백제의 분묘(최완규,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7월 13일 사리봉영기와 금강경판의 제작(김정호, 의암서법예술연구소) △7월 14일 세계유산 백제의 사원(이병호,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 순으로 열린다. 시민 누구나 사전 신청 없이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나만의 수막새 배지 만들기, 큐레이터와의 대화, 전통민속놀이마당 등 어린이를 위한 체험도 준비돼 있다. 이병호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 관장은 이번 강좌에서 세계유산 백제유적의 국제적인 면모와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미륵사지 석탑 사리봉영기와 왕궁리 오층석탑 금강경판 제작과정 등을 자세히 탐구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주역사박물관(관장 이동희)이 개관 16주년을 맞아 기념 특별전과 학술대회를 연다. 조선부터 근현대사에 이르는 역사 안에서 도시 전주가 가진 의의를 찾는 행사다. 오는 8월 26일까지 이어지는 조선시대 과거시험 특별전에서는 전주와 남원이 많은 문과 급제자를 배출한 유학자의 도시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때 학문에 들어가는 문이자 벼슬에 들어가는 길이었던 과거시험. 개인의 능력을 시험해 관리를 뽑는 과거시험은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조선사회의 근간이 되는 제도였다. 전시 유물은 총 50점이다. 과거제 도입과 시험 절차, 시험답안지인 시권, 합격증인 홍패와 백패, 전주출신 급제자 등 다각도로 설명한다. 중국 수나라 때 시작된 과거제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고려 광종 때이다. 고려시대 홍패(과거제 문무과 합격증)는 몇 점 남아 있지 않아 귀한 유물인데 이번에 2점 전시된다. 보물 725호 남원양씨 양수생의 홍패와 전주최씨 최광지의 홍패이다. 최광지 홍패는 명나라 초대 황제 홍무제가 내려준 고려국왕지인어보가 찍혀 있는 유일한 현존 문서다. 시권(조선시대 과거시험 답안지)은 과거제도 유물 중 가장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합격하면 시권을 돌려줬고, 가보로 보존되곤 했다. 개인 정보를 적지 않는 오늘날과 달리 응시자의 이름과 직역(직업), 나이, 본관과 거주지, 부조증조외조 등 4조를 기록해 지역별 특성도 분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전북 지역과 관련된 특별한 시권을 찾아냈다. 1798년 광주에 설치된 외방별시에 1등으로 합격한 고정봉의 시권이다. 태조의 고조부 목조 이안사가 전주에서 유년기에 병법을 익혔다는 장군수(將軍樹)가 시험 주제어로 제시됐는데, 고정봉은 조선을 건국할 조짐이 실현됐다고 답해 1등을 차지했다. 또 조선시대 총 1만 4620명의 문과(대과) 급제자를 분석해보면 전주이씨가 847명으로, 다른 성관에 비해 월등하게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주출신의 급제자는 총 105명으로, 전라도에서 남원나주광주와 함께 가장 많은 문과자를 배출했다. 오는 28일 오전 10시 30분부터는 제20회 전주학 학술대회가 열린다. 주제는 근대 전주의 민족운동과 사회상. 김주용 원광대 교수의 일제강점기 전주지역의 민족운동과 사회운동, 박학래 군산대 교수의 근대 전주지역의 유학자와 유학사상, 서종태 전주대 교수의 근대 전주지역의 천주교와 개신교 등이 발표된다.
▲ 최온순 침선장.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2호 최온순 침선장의 전통 복식을 마주하는 의미 있는 전시회가 마련됐다. 전북대 박물관이 최온순 침선장과 상장의례 복식을 주제로 박물관 내 여천 최온순 전통복식실에서 특별전을 개최하는 것. 특별전은 상설 전시 형태로 진행한다. 최온순 침선장은 상장례(喪葬禮) 때 만들어진 굴건제복을 각고의 노력으로 복원했다. 그 공로가 인정돼 1998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그의 노력 덕분에 전라도 굴건제복의 시대성과 지역성, 문화성이 오롯이 전승됐다는 평가다. 최 침선장은 전통복식의 역사와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2015년과 2016년 전통복식 등 543점을 전북대에 기증했다. 전북대 박물관은 2017년 여천 최온순 전통복식실을 개관해 그의 다양한 작품을 공개하고 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최 침선장이 복원한 굴건제복과 수의 등 45점을 소개한다. 굴건제복은 머리에 쓰는 굴건과 몸에 걸치는 제복을 합친 말. 상주가 입고 쓰는 삼베로 제작한 옷을 뜻한다. 전북대 이남호 총장은 평소 볼 수 없는 상장의례 복식을 통해 최온순 침선장의 올곧은 침선 인생을 만나보고, 우리 인생의 시작과 끝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예로부터 국왕은 하늘땅인간으로 상징되는 우주를 관통하는 존재로 인식됐다. 왕의 글씨인 어필, 왕의 도장인 어보, 왕실의 족보인 종적 등은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대표적 유물이다. 전주 어진박물관이 그간 수집한 유물들을 모아 왕의 권위를 주제로 전시를 꾸몄다. 6월 21일부터 9월 9일까지 어진박물관에서 개최하는 신소장품 특별전 왕의 권위를 담다.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는 조선 임금들의 어필과 어보, 2부는 조선 왕실의 족보, 3부는 경기전과 조경묘를 지키는 사람들이다. 전시 유물은 30여 점이다. 어필은 임금의 존엄과 권위를 담은 것으로 특별히 관리되었고 함부로 써주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선조에게 어필을 요청했으나 끝내 써주지 않았다고 한다. 어필은 임금의 성품을 보여주기도 한다. 전시 1부에서는 이러한 역대 임금의 어필을 모은 <열성어필>을 임금이 지은 <열성어제>, 어보병풍 등과 함께 전시한다. 조선 왕실의 족보는 태종 때 처음 정비돼 그의 후손들이 왕위를 이어가는 기틀이 됐다. 왕실 족보는 조선 후기 5대 사고인 선원각에 봉안됐다. 선원각에는 실록각과는 별도로 참봉이 임용돼 관리를 책임졌다. 조선 왕실의 족보는 조선 말을 거쳐 일제강점기에도 지속적으로 간행됐다. 전시 2부에서는 이와 같은 왕실 족보, 선원각 참봉 임용첩, 선원록 단자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 3부에서는 경기전과 조경묘를 지킨 사람들에 관한 유물들로 1878년(고종 15) 경기전 수문장을 지냈던 이교의의 임용장, 무과홍패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조경묘에 걸려 있는 어제칙유 현판도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의 허락을 얻어 전시한다. 이 현판은 영조가 내린 것으로 경기전과 조경묘의 제례 및 관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어진박물관 이동희 관장은 이번 전시가 조선 왕실의 권위와 상징 체제, 조선 왕실의 본향으로서 전주의 위상을 생각해 보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경칩이 엊그젠데 봄눈 탐스럽게 내린다/ 보리 풍년도 까마득한 옛 얘긴데/ 촌색시 봄손님 맞은 듯 괜스레 가슴 설렌다. (구름재 박병순 선생 생가 시비 중에서) 구름재 박병순 선생 생가 복원 사업이 마무리됐다. 지난 4일 구름재 박병순 선생 생가복원추진위원회는 복원된 생가를 찾아 건축물, 시비, 입간판 등을 일일이 확인하고 사업 마무리 모임을 했다. 구름재 박병순(1917~2008)선생은 진안군 부귀면 출신으로 한국 현대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시조 시인이다. 전북대와 전북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전주고, 전주공고, 전주여상, 이리공고, 진안농고, 전라고 등에서 40년가량 교편을 잡았다. 시조 문학 최초의 전문지 신조를 발간하고 <낙수첩>, <별빛처럼>, <먼 길 바라기> 등 11권의 시조집을 냈다. 한국 시조작가협회 이사, 가람문학상 운영위원, 한국시조시인협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시조 문학 발전에 헌신했다. 한글전용운동에 앞장서고, 한글학회 이사로도 활동했다. 선생은 생전에 1100편가량의 방대한 시조를 발표했다. 또 시조를 사랑한 전통주의자, 나라 사랑을 강조한 애국주의자, 겨레의 자부심을 지키는 민족주의자였다. 하지만 업적과 품행에 걸맞게 인물이 조명되지 못하고 묻혀 있는 상태다. 생가 복원은 2011년 6월 발기인 모임을 한 것이 출발점이 됐다. 지역의 큰 인물이 조명되지 못하는 점을 안타깝게 여긴 지역민들과 제자들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속도가 나지 않던 생가 복원사업은 2013년 7월 구름재 선생 생가복원추진위원회가 출범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김남곤(시인, 전 전북일보 사장), 윤석정(현 전북일보 사장), 이운룡(시인, 전 전북문학관 관장) 등 3인이 공동위원장을 맡으면서부터다. 이후 2014년 8월 주민설문조사, 같은 해 9월 복원 타당성 연구조사를 마쳤다. 2016년 1월 유가족 의견이 수렴됐다. 2016년 6월 착공해 같은 해 12월 복원 준공식을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시비도 제작설치했다. 지난 5월 왜소하던 생가 안내판이 교체되고, 교통사고 방지 반사경까지 설치되면서 복원 사업은 지난달 완벽 마무리됐다. 복원된 구름재 생가는 진안군 부귀면 모래재로 681에 있다. 복원에 투입된 공사비는 3억 원가량. 예산은 진안군이 지원했다. 김남곤, 윤석정, 이운룡 공동추진위원장은 진안군을 비롯해 복원을 지원해 준 관계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구름재 선생의 업적을 조명하는 일에 앞으로도 꾸준히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북 가야의 실체를 규명할 수 있는 유적이 지난해 파악된 것보다 72개소 늘어났다. 전북도는 5일 청내 소회의실에서 김송일 도지사 권한대행, 김인태 도 문화체육관광국장, 곽장근 군산대 교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전북 가야사 및 유적정비 활용방안 연구용역 최종보고회를 개최한 뒤,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전북 가야사 및 유적정비 활용방안 연구용역은 전북가야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자료 확보, 향후 유적발굴정비활용방안 모색을 목적으로 기획한 용역이다. 도가 이날 공개한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1년간의 지표조사 결과 전북 가야의 고분봉수산성제철유적 750개소가 조사됐다. 이는 지난해 조사를 시작한 시기(678)보다 72개소 늘어난 수치다. 유적별로 보면 봉수가 65개소에서 73개소, 산성이 40개소 46개, 제철유적이 130개소에서 175개소로 늘어났다. 또 최종보고서에는 장수가야 역사문화 관광지 조성, 가야사특별법 제정 및 개정, 세계유산 추진, 제철유적 등 6대 전략 25대 과제에 대한 내용도 담겼다. 사업추진을 위한 비용으로 총 2000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김송일 도지사 권한대행은 2017년 11월 도 주관으로 7개 시군이 함께하는 봉수왕국 전북가야 선포식을 개최하면서 전북가야의 위상을 전국에 선포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며전북가야사 및 활용방안 연구용역을 기초로 전북가야의 실체 규명과 향후 활용방안 및 특별법 제정 등 여러 사안을 선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최종보고회에서는 봉수제철유적 관련 추가 연구용역 추진, 문화재청의 가야 고분군 유네스코 등재 추진에 따른 대응방안, 가야관련 세부사업별 추진에 따른 예산확보 방안 등 다양한 주제를 논의했다.
호남지역 가야유적 중 첫 번째로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542호)로 지정된 남원 운봉 두락·유곡리 가야고분군 유적 현장을 세계에 알리고 보전하기 위한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송하진 전북도지사와 강복대 남원시장 권한대행 등은 8일 남원 두락·유곡리 및 월산리 고분군을 방문해 곽장근 군산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장으로부터 고분군의 보존 상태와 역사적 가치 등에 대한 설명을 청취했다.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로 채택된 가야 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 사업과 관련한 전북 동부권 가야 발굴사업의 당위성 확보와 유적정비 등과 관련한 국비확보를 위해서다. 남원 두락·유곡리 및 월산리 가야고분군 등은 지난 1982년 88올림픽 고속도로 건설공사 과정에서 발굴됐으며, 두락·유곡리 가야 고분군은 남원시 인월면 성내리 35-4외, 유곡리 746-1외 문화재 구역 40필지 9만8225㎡로, 호남지역 최초의 가야유적 지정 사례다. 특히 이곳은 도내 가야 유적의 새로운 지평을 연 사적으로 5~6세기 고대사 및 고대문화 연구에서 역사·학술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 전북도는 남원시와 함께 도내 두락·유곡리 고분군 등과 경상가야 고분군(김해·고령·함안)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시킨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도와 시는 이른 시일 내 토지매입과 발굴조사, 고분군 정비, 전시관 및 편의시설을 조성 등을 위한 사업비 240억원(국비 168억원 포함)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송하진 지사는 “철기문화를 꽃피웠던 남원 운봉가야는 1500여 년 동안 잊혀진 왕국이었다”며 “가야 고분군을 발굴·보존해 자랑스런 역사문화의 현장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백제 부흥운동의 마지막 거점으로 알려진 부안 우금산성(전라북도기념물 제20호)의 남문(南門)터가 확인됐다. 지난 1월 우금산성의 출입문 터인 동문(東門)터가 발견된 것에 이어 성의 정문으로 추정되는 남문터가 확인됨에 따라 우금산성 복원정비 사업에 힘이 실렸다. 부안군청과 (재)전북문화재연구원(원장 김규정)은 발굴 조사에서 우금산성 남문터와 이에 인접한 성벽구조 등을 확인했다고 8일 밝혔다. 전북문화재연구원 관계자는 우금산성의 남문터는 산성 내에서도 지형이 가장 낮은 계곡부에 있고 성 내부로 드나들기 가장 편리한 곳에 축조됐다. 또 성내 주요 시설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건물 대지와도 가까워 정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발견된 초석을 기준으로 볼 때 남문 통로부의 형태는 긴 사각형으로 추정된다. 통로부의 추정 크기는 길이 780㎝, 너비 480㎝이다. 조사구역 북쪽에서 확인된 주춧돌과 성벽 지대석(건물 하중을 견디기 위한 기초석)을 기준으로 판단했을 때의 예상 크기다. 남쪽 성벽의 안팎에서는 박석시설(경사면 위쪽에서 계곡부로 밀리는 압력으로 인해 문터와 성벽이 붕괴되지 않도록 막아주던 역할 추정)이 확인됐다. 규모는 잔존 길이 490㎝, 잔존 너비 280㎝다. 이번 성과에 대한 현장설명회는 9일 오전 11시 발굴 현장에서 열린다.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가 발굴된 지 10년 만에 보물로 지정된다. 또 정읍 은선리도계리 백제고분군은 사적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지난 25일자로 사리장엄구를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는 30일 동안 예고기간을 거쳐 보물로 지정된다. 사리장엄구는 지난 2009년 서탑 심주석(心柱石탑 구조의 중심을 이루는 기둥)의 사리공(舍利孔불탑 안에 사리를 넣을 크기로 뚫은 구멍)과 기단부에서 나온 유물로, 639년(백제 무왕 40년) 절대연대를 기록한 금제사리봉영기(金製舍利奉迎記) 1점과 금동사리외호(金銅舍利外壺) 1점, 금제사리내호(金製舍利內壺) 1점, 각종 구슬과 공양품을 담은 청동합(靑銅合) 6점 등 총 9점으로 구성돼 있다. 금동사리외호와 금제사리내호는 동아시아 사리기 중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독창적인 구조로 주목받고 있다. 금제사리봉영기는 그동안 삼국유사(三國遺事)를 통해 전해진 미륵사 창건설화에서 구체적으로 나아가 조성 연대와 주체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히게 된 계기가 돼 사리장엄구 중에서 가장 주목되는 유물이다. 청동합은 백제 최상품 그릇으로 확인돼 희귀성이 높다. 이처럼 사리장엄구는 백제 왕실에서 발원해 제작한 것으로, 석탑 사리공에서 봉안 당시 모습 그대로 발굴돼 고대 동아시아 사리장엄 연구에 있어 절대적 기준이 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제작 기술면에서도 최고급 금속재료를 사용해 완전한 형태와 섬세한 표현을 구현, 백제 금속공예 기술사를 증명해주는 자료로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또 문화재청은 이날 정읍 은선리와 도계리 고분군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43호로 지정했다. 고분들은 정읍시의 영원면 은선리와 덕천면 도계리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백제 횡혈식 석실분(무덤 옆으로 통로를 내어 석실로 내부를 만든 구조) 56개다. 고분군은 정읍 고사부리성(사적 제494호) 인근에 자리한 중방(백제 지방 행정구역인 오방의 일부)과 마한계 분구묘와의 관계를 살펴볼 때 백제의 지방통치 연구에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웅진기에서 사비기로 이어지는 시기에 조성된 백제 횡혈식 석실분의 변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단서가 될 수도 있다. <강정원김세희 기자>
동학 농민군 최고 지도자인 전봉준 장군(1855∼1895) 동상이 순국 123년 만에 서울 종로 네거리에 세워졌다. 사단법인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이사장 이이화)는 24일 오전 11시 서울시 종로구 서린동 영풍문고 앞에서 전봉준 장군 동상 제막식을 열었다. 전봉준 장군은 고부군수 조병갑이 농민들로부터 과도한 세금을 징수하고 재산을 갈취하는 데 항거해 1894년 3월 농민들을 이끌고 봉기했다. 이후 농민 자치기구인 집강소(執綱所)를 설치해 개혁 활동을 펼치던 중 일본이 침략하자 이를 몰아내기 위해 같은 해 9월 2차 봉기해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다. 우금치에서 일본군에게 패배한 전봉준 장군은 서울로 압송돼 전옥서(典獄署)에 수감됐는데, 이곳이 바로 종로 영풍문고 자리다. 전봉준 장군은 123년 전인 1895년 4월 23일(음력 3월 29일) 재판소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서 다음 날 새벽 2시 동지인 손화중, 김덕명, 최경선, 성두한과 함께 교수형에 처해졌다. 전봉준 장군 동상을 세우자는 논의는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맞은 1990년대부터 있었다. 그러나 서울에는 세워지지 않고 있다가 2016년 8월 전주를 찾아 동학혁명기념사업 관계자들을 만난 박원순 서울시장이 순국 터인 종로 네거리에 동상을 세우자는 제안을 수용하면서 동상 건립이 급물살을 탔다. 마침 전옥서 터는 서울시유지로 돼 있어 지난해 1월 동상 건립을 위한 재단을 만든 지 1년 4개월 만에 결실을 볼 수 있었다. 건립 비용 2억7000만원은 국민 성금으로 모았다. 연합뉴스
전주역사박물관(관장 이동희)이 6월 17일까지 인동장씨 기증유물 특별전- 효자동의 유래 인동장씨家 이야기를 연다. 인동장씨는 전주시 효자동 일대에서 세거하면서 유력 집안으로 성장한 전주의 대표적인 토호세력이다. 효자동의 유래가 된 효자집안으로 17세기에 장개남이 효자로 정려를 받았고, 19세기 초 장영풍이 남고산성 별장을 지냈다. 집안의 선산이 있던 곳이 1995년 공원으로 조성되면서 선산을 지키던 나무를 전주시에 기증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전주 삼천동의 명물 곰솔나무(천연기념물 355호)다. 인동장씨 집안은 지난해 전주역사박물관에 대대로 내려온 유물 120점을 기증했다. 이번에 전시되는 유물은 집안 대대로 소중히 간직해온 교지와 고문헌, 생활유물 등 70여 점이다. 자료들은 조선초부터 전주에 오백년 이상 세거한 대표적인 토호집안의 내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장씨 일가만이 아니라 지역사적 차원에서 매우 귀중하다는 게 전주역사박물관의 설명이다. 전시 유물 중 장영풍이 1813년에 받은 남고산성 별장 임용교지가 눈에 띈다. 남고산성은 전주성을 수호하는 산성으로 1812년에 개축됐다. 남고산성별장 교지는 처음 공개되는 자료다. 놋쇠그릇, 옹기, 도량형 등 인동장씨 생활유물들도 전시된다. 전주에 세거한 집안의 생활용품들로 전주 토호들의 세간살이를 살필 수 있다. 기증한 대부분 생활용품들이 장씨 할머니의 어머니 때까지도 썼던 것이다. 종가에서 잔치를 하면 200~300명이 모이는데, 그때 꺼내서 쓰던 것들이다. 기증자인 장씨 할머니는 고심 끝에 기증을 결정했다. 장씨는 많은 곳에서 요청이 있었지만 족보를 가져간다고 말해서 거절했다며 족보는 산 사람처럼 대접해서 모셔가는 것이지 가져가는 것이 아니다. 전주역사박물관에서 잘 관리해 달라고 말했다.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은 조선시대 전주에 세거한 유력 집안의 내력과 생활상을 살필 수 있는 매우 드문 유물들이라며 귀중한 유물들을 잘 보존해서 박물관에 기증해 주신 할머니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청와대 경내 대통령 관저 뒤편에 위치한 석불좌상이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이 12일 문화재위원회 2차 최종심의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이 석불좌상은 지난해 6월 참모들과 함께 관저 뒤편을 산책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1974년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의 문화재적 가치를 재평가해보자는 주문이 있었고, 이에따라 서울시 문화재위원회가 지난해 9월 15일 가결한 뒤 올 2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1차 검토심의를 거쳤다. 9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석불좌상은 본래 경주에 위치해 있었으나, 1939년경 조선총독부에 의해 지금의 자리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각형 연화대좌(蓮華大座)를 갖춘 보기 드문 석불인 동시에 보존 상태도 양호하여 문화재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이 석불은 또 편단우견(偏袒右肩: 한 쪽 어깨위에 법의를 걸치고 다른 쪽 어깨를 드러낸 모습)을 걸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왼손을 무릎 위에 얹고 오른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으로, 석가모니가 수행을 방해하는 모든 악귀를 항복시키고 깨달음에 이른 경지를 상징)의 모습이 석굴암 본존상을 계승한 형태이며, 당당하고 균형 잡힌 신체적 특징과 조각적인 양감이 풍부하여 통일신라 불상조각의 위상을 한층 높여주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와대는 앞으로 문화재청 협조를 통해 석불좌상의 백호 및 좌대 등 원형 복원과 주변환경을 고려한 보호각 건립 등 보물로서의 위상에 걸맞는 체계적인 보존·관리를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예총 전북연합회가 주최한 2018 전북민속예술축제에서 김만경외애밋들노래가 대상을 받았다. 최우수 작품상은 고창 강호항공고 농악판굿에 돌아갔다. 김만경외애밋들노래보존회와 강호항공고 농악부는 오는 10월 제주도에서 열리는 제59회 한국민속예술축제와 제26회 전국청소년민속예술제에 각각 전북 대표로 출전하게 된다. 이밖에 일반부 금상은 남원농악보존회, 은상은 순창복흥농악단, 동상은 김제모악풍물단이 받았다. 설태종(고창오거리당산제보존회 회장) 심사위원장은 올해는 바쁜 농촌 생활 속에서도 주민들이 공동체를 이뤄 연습해온 팀들이 많이 참가해 의미를 더했다며 대상을 받은 김만경외애밋들노래는 원형이 잘 보존된 작품으로 지역성과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한국예총 전북연합회 선기현 회장은 전북에는 소중히 보존해야 할 민속이 많은데, 아쉽게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거나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서 계승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익산 쌍릉이 왕릉급 무덤이라는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무차별적인 도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아픈 역사가 재조명되고 있다. 이같은 도굴 흔적은 백제왕도 핵심유적 보존관리사업의 일환으로 마한백제문화연구소(소장 최완규)가 지난해부터 진행하고 있는 쌍릉의 대왕릉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확인됐다. 3일 문화재청과 익산시, 마백연구소는 쌍릉의 대왕릉 현장에서 지금까지의 발굴조사 성과설명회를 열고 발굴현황과 발굴을 통해 얻은 각종 실체를 공개했다. 대왕릉은 중앙에 입구가 있으며 단면육각형의 현실(玄室시신을 넣은 널이 안치된 방, 무덤방) 구조로 축조된 전형적인 백제 사비기의 굴식돌방무덤으로 조성됐다. 대형 화강석을 정연하게 다듬은 돌을 이용해 축조해 외부로부터 접근을 차단했다. 특히 현실의 규모는 지금까지 확인된 백제의 왕릉급에서 가장 큰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이날 일부의 실체를 드러낸 대왕릉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다. 웅장한 현실 위의 왼쪽 모퉁이와 아래쪽의 오른쪽 모퉁이 등 2곳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는 무차별적인 도굴의 흔적이다. 위쪽 모퉁이는 가로 35cm, 세로 25cm 정도로 어른 머리가 어렵게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의 구멍이 나 있고, 아래쪽 모퉁이는 이보다 약간 좁은 구멍이 뚫려 있다. 두께 20cm가 넘는 현실을 무차별적으로 뚫어 놓은 도굴의 흔적은 이번 대왕릉 발굴조사에서 가장 큰 상처로 기록될 전망이다. 특히 도굴의 흔적과 함께 일제강점기 도굴수준으로 진행된 부실한 발굴조사의 흔적까지 더해지면서 한민족의 아픈 역사를 재차 돌이켜 보게 하고 있다. 지난 1917년 일제 강점기에 야쓰이 세이치(谷井濟一)의 발굴조사는 단 며칠만에 끝난데다 발굴조사 보고서는 13줄짜리로 마무리됐다. 당시 조사결과 보고서에는 관과 토기, 장신구와 치아 일부를 발견했다고 되어 있지만 이번 조사에선 입구 쪽에서 당시 수습되지 않은 관정 등이 발견되면서 당시 얼마나 부실하게 조사가 이뤄졌는지 가늠케 하고 있다. 마백연구소 최완규 소장은 입구와 아래쪽 등 2곳의 도굴흔적과 일본학자에 의한 도굴수준의 부실한 발굴조사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마백연구소는 대왕릉 발굴조사 현장을 4일부터 6일까지 매일 오후 2시 1차례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설명회를 진행할 계획이다.
익산시 석왕동에 위치한 익산쌍릉(사적 제87호)의 판도라 상자가 마침내 열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8월, 일제강점기 조사 이후 100년 만에 재개된 발굴조사를 통해 익산쌍릉이 왕릉급 무덤임에 힘을 실리게 하는 실체들이 일부 드러났다. 2일 익산시와 문화재청, 발굴조사단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등에 따르면 익산쌍릉은 부여에서 익산으로의 천도를 추진한 무왕(재위 600641)이 묻혔다고 전하는 북쪽의 대왕릉과 그의 부인인 선화공주가 묻혀 있다는 남쪽의 소왕릉이 나란히 조성된 원형 봉토분(묘)으로 대왕릉 내부에서 인골이 담긴 나무상자가 나왔다. 쌍릉 대왕릉에서 현실(玄室시신을 넣은 널이 안치된 방, 무덤방)의 가운데에 있는 화강암 관대(棺臺관을 얹어놓는 넓은 받침) 위쪽에서 인골이 있는 상자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근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나무상자는 가로세로 각 26㎝이며, 높이는 33㎝로 안에 인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 인골은 1917년 쌍릉을 발굴한 야쓰이 세이치(谷井濟一)가 관과 토기, 장신구, 치아 등을 수습한 뒤 무덤 주인공의 인골을 모아 다시 봉안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들은 무덤 주인공의 인골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인골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항온항습실에 보관돼 있는데,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옮겨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 구체적인 정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봉분 직경이 약 25m, 높이가 5m인 대왕릉의 내부 구조와 규모도 확인했다. 구조는 백제 사비도읍기의 전형적인 횡혈식 석실분(橫穴式石室墳굴식돌방무덤)으로, 입구가 중앙에 있고 현실은 육각형으로 나타났다. 현실 크기는 길이 378㎝, 너비 176㎝, 높이 225㎝다. 이는 1979년 일본 고고학자 아리미쓰 교이치가 제시한 실측도와 거의 비슷한 수치로, 백제 왕릉급 무덤이 모여 있는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서 현실이 가장 큰 무덤인 동하총보다 더 넓은 것이다. 무덤으로 통하는 길인 연도는 길이 67㎝, 너비 125㎝, 높이 156㎝로 조사됐다. 관대는 길이 268㎝, 너비 82㎝, 높이 24㎝다. 관에서 떨어진 것으로 짐작되는 금박이 일부가 남아 있기도 했다. 이와 함께 이번 조사에서는 현실 조성 과정에서 대형 화강암을 매우 정교하게 다듬어 사용하고, 사비도읍기 백제 왕릉급 무덤 중에는 처음으로 흙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판축 기법으로 봉분을 만들었다는 점도 규명됐다. 익산시 관계자는 대왕릉은 규모나 구조 면에서 왕릉급 무덤이 확실하다며 무덤 주변에 제사 행위 흔적 등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주변을 더 조사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익산쌍릉은 향가 서동요에 등장하는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가 묻혀 있다고 전해지는 무덤이다. 하지만 익산 미륵사지석탑 사리봉안기에 무왕의 부인이 선화공주가 아니라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이라고 기록돼 있고, 대왕릉에서 발견된 치아를 분석한 결과 2040세 여성의 것으로 추정된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피장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쌍릉은 야쓰이 세이치의 발굴조사 이전에 도굴된 상태였으며, 관을 비롯한 출토 유물 일부는 국립전주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이 각각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42호로 지정됐다. 남원시 인월면 유곡리 성내마을 북쪽에 있는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은 삼국시대 남원 운봉고원 지역에 존재했던 가야세력의 지배자 무덤군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현재 40여기의 대형 무덤들이 무리지어 있다. 이 무덤들 중에는 직경 20m가 넘는 초대형 무덤들도 상당 수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번에 사적 지정 예고된 고분군의 범위는 40필지 9만8225㎡로 무덤의 전체 분포권에 해당된다.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은 가야와 백제의 고분 축조 특징을 모두 지니고 있고, 출토유물도 재지세력 및 백제의 특징을 보여주는 유물이 함께 출토돼 5∼6세기 남원 운봉고원을 중심으로 백제와 가야 지역의 고대사와 고대 문화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주목된다. 남원시는 2018년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수목 제거 및 정비를 우선적으로 실시하여 유적 보존과 정비를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당산문화축제 제전위원회(위원장 황용순)와 전주 서서학동 주민센터(동장 최현식)는 지난 2일 정월대보름을 맞아 흑석골 만남의광장 당산나무 아래에서 올 한해 서서학동 주민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제20회 흑석골 당산문화축제’를 개최했다. 흑석골 당산제는 동네 어머니들이 좀들이 쌀을 모아 100여 년 전부터 시작됐다. 마을의 공동 우물을 1년 내내 주민들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도록 축원하는 의식과 함께 거행돼 왔다. 이번 행사는 당산제전위원회의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준비와 함께 약 600여 명의 마을 주민들이 참석했다. 식전행사인 지신밟기, 살 풀이 공연을 시작으로 본행사인 제례의식, 부럼나누기와 식후행사로 투호, 윷놀이 등 다채로운 전통놀이체험으로 진행됐다. 달집태우기로 소원지에 각각의 소원을 적어 한 해 동안의 안녕을 염원하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황용순 당산문화축제 제전위원장은 “수백년 묵묵히 서있는 이 당산목 아래에서, 신성당수호당산지신을 모신자리에, 찾아오신 주민들에게 감사하다”며 “300년 동안 서서학동을 지켜온 당산목을 잘 모셔 앞으로 300년을 더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정읍학연구회가 7년 동안 10권의 연구서를 발간하는 등 활발한 지역문화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정읍학연구회는 2011년 정읍 출신 전북대 국문과 김익두 교수를 주축으로 정읍 출신 학자들이 결성한 지역문화 연구 모임이다. 이 모임은 2012년부터 올해 1월까지 총 10권의 연구서를 내놓았다. ‘정읍학’이라는 지역학 전문 학술지 4권과 ‘정읍사상’ 관련 연구서 5권, 마을 민족지 1권 등이다. 정읍학 학술지 창간호는 정읍의 해원·상생·대동 사상에 근거한 화백의 정치, 풍류 문화를 거시적인 학문 방향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어 정읍 문화의 새로운 비전을 2호는 정읍의 풍류 문화, 3호는 정읍의 풍수·세시풍속·선비 문화·주거 문화 등에서 찾았다. 4호는 정읍 공동체 문화를 마을굿, 향약, 형평운동, 의료문화 등에 걸쳐 논의했다. 또 정읍학연구회는 정읍사상에 관한 연구서를 내놓았다. 이 연구서는 정읍의 사상가이자 호남 성리학의 비조인 일재 이항의 사상 연구에 집중해 왔다. 최근에는 정읍사상사 전반으로 연구 범위를 확장했다. 그 저서를 보면 일재 이항을 중심으로 호남사상의 궤적을 탐구한 <호남의 큰 학자 일재 이항 연구>, <일재 이항의 사상·학문·이론에 관한 새로운 시각들>, <일재 이항 선생과 그의 제자들>, <일재 이항과 호남사상>, <정읍사상사>등이 있다. 마을 민족지도 빼놓을 수 없다. 마을 민족지 <샘고을(정읍) 으뜸 마을 농뫼(진산)>은 정읍시 농뫼마을의 마을문화 콘텐츠를 종합적으로 조사해 정리한 책이다. 이와 같은 활동에 대해 김 교수는 “문화 다양성 소멸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며 “문화 다양성 시대에 ‘문화적 차이 만들기’ 전략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볼 때”라고 말했다.
정월 대보름은 일 년 열두 달 중 첫 보름달이 뜨는 날로, 달을 중요시하던 농경사회에서는 액운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는 중요한 명절이었다. 올해 정월 대보름은 3월 2일이다. 이날을 전후해 전북에서도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달집태우기와 쥐불놀이, 부럼 깨기 등으로 액운을 몰아내고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해보자. 전북도립국악원은 1일 오후 5시 부안문화원 야외마당에서 정월 대보름 공연을 한다. 福 터졌네! 福 받으란 말이오!라는 부제를 단 이번 공연은 전북도립국악원 예술단(창극단, 무용단, 관현악단)과 객원 출연진이 국악 공연, 복 맞이 행사로 꾸민다. 관현악단이 국악 합주 아리랑 연곡을 시작으로 국악가요 배 띄워라 소금장수 신사랑가, 국악 합주 신뱃놀이를 연주한다. 국악가요는 관현악단의 반주에 맞춰 창극단 한단영, 박현영 단원이 부른다. 이어 판소리 심청가 중 젖동냥 대목을 창극단 장문희 단원의 소리, 박추우 단원의 고수로 만나본다. 무용단은 打風遊(타풍유)를 주제로 대북과 중북, 모듬북 등이 어우러진 타악기 공연을 준비했다. 창극단은 정월 대보름과 관련한 풍속을 노랫가락으로 엮은 민요 달맞이 가세, 자진육자배기, 개고리타령 등을 선보인다. 이와 함께 복 맞이 행사로 달집태우기와 강강술래를 한다. 창극단이 강강술래 앞부분을 선창하고, 무용단이 선두로 나서 강강술래를 펼친다. 달집태우기에 참여한 관객들과 함께 지신 밟는 과정도 형상화한다. 전주역사박물관은 2일부터 3일까지 정월 대보름 맞이 세시풍속 한마당 행사를 개최한다. 전주역사박물관 1층 로비에서는 땅콩과 호두, 밤 등 부럼을 나누고(1일 100가족 선착순) 탁본 체험, 전주 8경 도장 찍기 등을 진행한다. 하늘마당에서는 전통놀이 체험, 연날리기 체험을 진행한다. 녹두관에서는 특선영화 <라이온킹>, <미니언즈>를 상영한다. 또 국립전주박물관은 2일 오후 6시 풍물패의 길놀이를 시작으로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귀밝이술을 나누고, 소원문을 두른 달집태우기로 액운을 쫓고 행운을 염원한다. 전통을 계승한 정월 대보름 맞이 마을 축제도 열린다. 당산문화축제 제전위원회와 전주 서서학동은 2일 오후 1시 흑석골 만남의광장 당산나무 아래에서 제20회 흑석골당산문화축제를 개최한다. 달집태우기, 부럼 나누기, 전통놀이 체험 등 다양한 행사를 추진한다. 흑석골당산문화축제는 동네 어머니들이 쌀을 모아 100여 년 전부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을의 공동 우물을 1년 내내 주민들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도록 축원하는 의식과 함께 치른 것이다. 마을의 안녕과 지역의 발전을 기원하는 제례 의식뿐만 아니라 마을 화합의 장으로 서서학동 주민이 함께하는 지역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도내에서 온전한 형태로 보존된 삼국시대의 봉수가 발견됐다. 전북 가야지역에 존재했던 봉수의 실체를 명확하게 규명할 단초가 마련됐다는 기대가 나온다. 그 동안 전북가야에 분포된 봉수는 주춧돌 정도만 확인됐었다.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소장 곽장근 교수)와 전주문화유산연구원(원장 유철)은 최근 공동으로 실시한 지표조사를 통해 삼국시대 봉수를 발견했다고 22일 발표했다. 가야문화연구소 등에 따르면 이 봉수는 완주군 고당리 탄현(숯고개)의 서쪽 산줄기 정상부에 있어 탄현봉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봉수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납작한 돌을 수직으로 쌓아서 축조됐다. 봉수의 규모는 길이 7m, 높이 2m내외에 이른다. 학계에서는 봉수의 축조시기를 삼국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지표상으로 볼 때 인근에 삼국시대 기와가 수습됐으며, 전북 동부에도 삼국시대 봉수만 80여개 소에 이르기 때문이다. 임재옥 전북도 문화재정책팀장은 도내에서 처음으로 온전한 형태의 봉수가 발굴돼 가야시기에 전북에 존재한 봉수의 실체를 규명하기가 용이해진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일본서기 등 문헌사료와 비교해볼 때도 봉수의 존재시기가 삼국시대였다는 데 힘이 실린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가야계 소국인 반파(半破)는 봉수를 운영했던 것으로 기록돼있다. 반파가 있었던 곳은 장수지역으로 추정된다. 이에 가야문화연구소와 전주문화유산연구원은 탄현봉수를 완주-진안(금산)-장수를 잇는 봉수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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