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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전주박물관 “전북의 소중한 보물 함께 느껴요”

국립전주박물관(관장 천진기, 이하 박물관)이 박물관에 기탁된 개인 소장 지정문화재를 선별해 선보이는 자리를 마련했다. 상설전시관 역사실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개인과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전북의 소중한 보물 6점을 엄선해 특별 공개하는 자리다. 문화재 지정 제도는 보존가치가 높은 문화재를 엄격한 규제를 통하여 항구적으로 보존하고자 하는 제도다. 또한 국립박물관은 문화재 기탁 제도를 통해, 박물관 전시 및 연구에 활용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개인 소장 지정문화재 혹은 지정문화재급 유물을 보관 관리하고 있다. 고령 신씨 종중에서는 신말주(申末舟, 1429~1503) 등 열 명의 원로들을 묘사한 십로계첩(十老契帖)(전북유형문화재 제142호) 등 총 4점의 지정문화재를 박물관에 기탁했다. 지조 높은 선비이자 은사의 모습으로 평가받는 신말주는 26세 때 문과에 급제해 47세 때 전주 부윤으로 관직에 몸담았다. 하지만 생애 대부분을 관직과 상관없는 처사로 보내다 노년에 순창에 귀래정(歸來亭)을 짓고 유유자적한 삶을 누렸다. 70세가 넘은 나이에 가까운 벗들과 만남을 기념한 그림이 바로 십로계첩이다. 더불어 남원 양씨 종중에서 기탁한 남원 양씨 종중문서(보물725호) 7점, 개인 소장품인 이상길(李尙吉, 15561637) 초상(보물792호)도 함께 전시되며, 전주박물관 소장품인 완산부지도 10폭 병풍(보물1876호)도 오랜만에 다시 관람객을 맞이한다. 국립전주박물관 관계자는 전북지역의 역사문화와 관련한 지정문화재를 소개하는 이번 전시를 통해 박물관의 주요 소장품을 국민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면서 관람객에게는 우리 문화의 멋과 향기를 느껴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김태경
  • 2019.07.09 17:31

[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고대사회의 검은 황금, 철(鐵)을 다루는 공구 단야구(鍛冶具)

완주 상운리 유적은 익산-장수간 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발견되었으며, 장장 4년여에 걸쳐 전북대학교박물관에서 조사한 대규모 원삼국시대*~삼국시대 마한계 무덤 유적이다. 300여 점의 토기와 500점이 넘는 철기, 마한사람들의 특징인 옥류가 6천여 점이 넘게 출토되어 당시 상운리 사람들의 위세를 짐작케 한다. 철은 고대사회에서 농업생산력의 증대와 다른 집단과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중요한 원자재였다. 철을 장악한다는 것은 권력과 부를 단숨에 거머쥘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다. 철의 중요성을 대변하듯 제철능력은 오래전부터 고분의 벽화나 토기의 표면에 신의 능력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또한 중국의 진시황(秦始皇, B.C.259~B.C.210)이나 한(漢) 무제(武帝, B.C.156~B.C.87)는 철을 국가차원에서 관리하는 법을 만들기도 하였다. 상운리 유적에서는 이러한 철기들이 동시대의 다른 유적들보다 집중적으로 확인되었다. 길이가 1m가 넘는 대형의 둥근 고리칼, 철검, 철창, 화살촉, 작은 손칼, 도끼, 낫, 덩이쇠(철기를 만드는 중간소재) 등 당시 철로 만들 수 있는 거의 모든 물건들이 발견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철기를 만드는 도구들인 단야구가 세트로 확인된 것이 큰 특징이다. 단야구는 망치, 집게, 줄, 모루 등 철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공구들을 일컫는다. 망치와 집게는 기본으로 구성되고 나머지 도구들이 추가되는 양상이다. 총 20세트의 단야구가 확인되었는데, 한반도에서 단일 유적 출토품으로는 가장 높은 밀집도를 보인다. 아직까지는 상운리 유적에서 제련로 등 명확한 철 생산시설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 고대사회에서 국가형성의 기반이 되는 고도의 철기 제작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동시기 다른 유적들과 비교하였을 때 월등히 높은 철기들의 출토량과 다종다양한 단야구들은 상운리 사람들이 철제 도구들의 생산과 소비시스템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상운리 사람들의 단야기술은 상운리 집단이 성장하는 원동력이자 전북지역 마한사회의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이었다. △원삼국시대: 우리나라 고대 삼국이 성립되기 이전 원초적인 국가의 모습이 나타나던 때. 기원전 1세기~기원후 3세기 정도를 일컫는다. /김왕국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 문화재·학술
  • 기고
  • 2019.07.08 17:36

문화재청, ‘익산 구 이리농림고등학교 본관’ 문화재 등록

익산 구 이리농림고등학교 본관 문화재청이 익산 구 이리농림고등학교 본관을 문화재로 등록하고, 군산 구 십자의원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등록문화재 제758호인 익산 구 이리농림고등학교 본관은 1963년 당시 이리 지역을 대표하는 농업 전문 교육기관인 이리농림학교의 제2본관으로 건립된 건물로, 학교의 역사와 흔적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붉은 벽돌로 쌓아 올려 벽을 만든 조적조(組積造) 건물이면서 주 출입구 상부의 계단실과 정면에 설치한 지붕이 돌출돼 지어진 현관부는 화강석으로 쌓아 입면을 강조한 건축 기법이 특징이다. 특히 보존상태가 전반적으로 우수한 편이라 등록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았다. 아울러, 이번에 등록 예고된 군산 구 십자의원은 일본식 가옥에 서양의 주거 공간(응접실 등)이 절충된 형식으로 1936년 건립됐다. 한국전쟁 기간 중인 1952년에 군산시 소아과 전문병원으로 개원해 1980년대까지 계속해서 사용됐으며, 오늘날 지역민들의 기억 속에 당시의 흔적이 온전히 남아 있는 등 지역의 근대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높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등록 예고한 군산 구 십자의원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등록할 예정이다.

  • 문화재·학술
  • 천경석
  • 2019.07.08 17:26

정읍 무성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정읍 무성서원(사적 제166호)을 포함한 한국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7일 전북도와 문화재청에 따르면 지난 6일(현지시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서원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우리나라 14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은 무성서원(정읍 칠보), 소수서원(경북 영주), 도산서원(경북 안동), 병산서원(경북 안동), 옥산서원(경북 경주), 도동서원(대구 달성), 남계서원(경남 함양), 필암서원(전남 장성) 등 모두 9개다. 서원은 조선시대 사림의 활동 기반으로, 명현을 배향하고 인재를 교육하기 위해 설치한 사설기관이다. 무성서원은 원래 통일신라 말기, 정읍 칠보지역의 태수를 지냈던 유학자 최치원을 제향하기 위한 태산사였으나 1696년(숙종 22년) 국가 공인 서원이 되며 이름을 바꿨다. 전북도는 세계유산 협약과 운용지침 등 국제규범에 근거해 무성서원의 보존 및 관리 방안을 마련시행할 계획이다. 오는 9월에는 세계유산 등재를 기념하기 위한 대규모 행사를 열 예정이다. 전북도는 고창 갯벌과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도 추진할 계획이다. 현재 도내 세계유산은 무성서원을 비롯해 고창 고인돌, 백제역사유적지구 등 모두 3곳이다. 송하진 전북도지사는 전북 문화유산의 우수성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며 전북문화의 자부심과 자존의식을 갖고, 우리지역 문화유산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유진섭 정읍시장은 무성서원 탐방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역사적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편익시설 확충 및 환경정비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임장훈 기자, 최명국 기자

  • 문화재·학술
  • 전북일보
  • 2019.07.07 18:09

남원소경 실체 밝힌다

남원시는 3일 남원읍성 북문지 안팎에서 통일신라부터 조선에 이르는 시기의 건물지 관련 유구(유적의 구조와 양식을 가늠하는 터)가 집중 분포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통일신라~고려 시대 문화층 존재도 확인돼 통일신라 시대 5소경(小京) 중 하나로 그간 베일에 가려졌던 남원소경에 대한 단서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남원시가 지난해 12월부터 올 6월까지 남원읍성 북문지 바깥과 안쪽 중앙공원(현 만인공원) 조성사업 부지에 대한 매장문화재 시굴조사를 벌인 결과다. 조사는 전라문화유산연구원이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진행했다. 남원시는 명확한 사실 규명을 위해 시굴조사에서 발굴조사로 전환해 유적의 성격 규명과 소경의 단서를 밝혀나갈 계획이다.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남원읍성은 현재 전해지는 우리나라 읍성 가운데 통일신라 방리구획(바둑판식 도시 구조)이 가장 잘 남아 있어 고대 도시의 형태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다만 그동안 통일신라 시대 남원경과 연관 지을 수 있는 유적이 확인되지 않아 남원소경의 구체적인 실체가 지금껏 확인되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나라 고대 도시 방리구획에 대한 조사는 왕경이었던 경주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번 남원 만인공원 부지 시굴조사에서 통일신라~고려 시대 유적의 존재가 밝혀짐에 따라 향후 남원소경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또 조사를 통해 후백제 시기의 기와와 초기 청자인 해무리굽 청자 등이 출토돼 남원읍성의 시공간적 범위와 학술적 가치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연구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남원시 관계자는역사적 가치가 큰 조사인 만큼 신중히 진행해 과거 도시 모습과 조상들의 생활상을 밝히겠다고 전했다. 한편 문헌 기록과 그동안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남원읍성은 통일신라 시대(691년)에 처음 축조된 9주 5소경 가운데 하나인 남원경의 치소로 사용되다가 조선 시대에 현재와 같은 규모로 개축됐다. 그동안 수 차례에 걸쳐 진행된 남원읍성의 발굴조사를 통해 남원읍성의 성격도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글자 대로 작은 서울을 뜻하는 소경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새로 정비한 특수 행정구역이다. 통일신라는 수도 경주가 한쪽에 치우친 약점을 보완하고 지방 세력의 성장을 견제하기 위해 주요 지방에 5소경을 두었다.

  • 문화재·학술
  • 강인
  • 2019.07.03 18:39

[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신구법천문도’ 동양과 서양의 천문도가 결합되다

신구법천문도(新舊法天文圖)는 하늘의 별자리를 묘사한 천문도이다. 작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동양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된 천문도(옛 천문도)와 서양에서 새롭게 유입된 천문도(새로운 천문도)를 함께 배치하여 비교하고 있다. 서양의 천문도는 조선 초기의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에 비해서 새로운 지식을 담고 있기에 신법천문도라 부른다. 한국의 옛 그림이나 책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내용이 진행된다. 따라서 본문의 그림은 오른쪽 상단에서 시작하여 왼쪽 하단에서 끝나게 된다. 천문도의 오른쪽에는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한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수록하였다. 조선시대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크게 세 가지 판본이 존재한다. 태조 석각본, 선조 목판본, 숙종 복각본과 그 탁본들이다. 이 천문도에 수록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숙종 석각 또는 그 탁본을 기초로 교정을 하여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천문도의 상단에는 황도남북양총도설이란 기록이 있다. 이 글에서는 이 천문도에 사용된 좌표계와 좌표 읽는 방법, 별의 밝기, 은하수가 수많은 별들이 모여서 이루어졌다는 점, 천체 망원경으로 관측한 해, 달, 행성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글의 맨 끝에는 옹정(雍正) 원년(元年) 세차(歲次) 계묘(癸卯)에 극서(極西)에서 온 대진현(戴進賢)이 방법을 수립하고 리백명(利白明)이 새겼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1723년 서쪽 끝의 지역(유럽)에서 온 독일 선교사 쾨글러(16801746)가 작성하고 페르디난도 모기(리백명)가 인쇄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천문도의 왼쪽에는 두 개의 원형으로 된 천문도가 있는데, 동양의 전통적인 방법과는 다르게 황도(黃道, 지구가 태양을 도는 큰 궤도)를 중심으로 북쪽의 황도북성도, 남쪽의 지도인 황도남성도를 표현하였다. 이 지도는 황도좌표계의 평사도법(stereographic projection) 기법으로 그려낸 것이다. 가장 왼쪽에는 태양, 달, 진성(鎭星, 토성), 세성(歲星, 목성), 형혹(熒惑, 화성), 태백(太白, 금성), 진성(辰星, 수성)이 그려져 있다. 천체가 배열된 순서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지만 동양의 오행설에 따르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각 천체는 망원경으로 보았을 때의 특징을 묘사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천문도는 중국에 들어와 있던 서양 신부인 아담 샬(Adam Schall, 1591~1666)과 쾨글러가 제작한 천문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물 1318호로 지정된 신구법천문도(국립민속박물관 소장)와는 거의 동일한 형태의 천문도로 여겨진다. 18세기 초에 관상감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연구된 바 있는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지도는 현재 영국과 일본에도 동일한 천문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후기 서양과 한국의 천문지식을 함께 살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천문도는 높은 사료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정대영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 문화재·학술
  • 기고
  • 2019.07.01 17:59

진안 성수면 ‘도통리 청자 가마터’, 국가 사적 지정 예고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 청자가마터가 국가사적이 된다. 학계에 따르면 이 곳은 최근 우리나라 청자의 발생과 변천과정을 보여주는 초기청자 가마터로 확인됐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도통리 청자가마터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했다.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는 내동산에서 서북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의 끝에 조성된 곳이다. 이 가마터는 도통리 중평마을 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마을 앞에는 도통천이 흐르고 있다. 학계에 따르면 중평마을 전역에는 청자와 갑발편 등이 넓게 분포하고 있다. 마을 일부에는 대규모 요도구 퇴적층이 남아 있다. 지표조사 등을 통해 존재가 알려진 이 가마터는 2013년 최초의 발굴조사가 실시됐다. 이후 2017년까지 총 5차례의 발굴 조사가 이뤄졌다. 그 결과 10~11세기에 걸쳐 초기청자를 생산했던 가마터로 보고됐다. 한반도 초기청자 생산에 이용됐던 벽돌가마(전축요)와 그 이후 청자 생산을 위한 진흙가마(토축요)가 모두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반도 내 가마축조 양식이 벽돌가마에서 진흙가마로 변천하는 전환기적 양상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라는 게 학계의 보고다. 현재 조사된 벽돌 및 진흙 가마는 총 길이 43m다. 이는 초기 청자 가마로는 호남지역 최대 규모다. 최초 가마는 벽체가 벽돌로 축조됐으며 점차 내벽을 진흙과 갑발을 활용한 개보수 방식으로 변천했다. 이후 진흙가마(토축요)는 벽돌 없이 진흙과 갑발로 구축됐으며 길이는 총 13.4m다. 도통리 터의 가마 내부와 대규모 청자 폐기장에서는 다양한 초기청자(해무리굽완잔잔받침주전자꽃무늬 접시 등)와 다량의 벽돌, 갑발(도자기를 구울 때 청자를 덮는 큰 그릇) 등 요도구(도자기를 구울 때 사용되는 도구)들이 출토됐다. 또 대(大)자명 등의 명문이 새겨진 청자는 물론 고누놀이가 새겨진 갑발, 청자가마의 배연공으로 추정되는 벽체편 등의 유물도 발견됐다. 도통리 청자 가마터는 초기 가마의 변화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역사적학술적으로 청자 연구에 매우 가치가 높은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 받고 있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를 통해 의견을 수렴 과정을 거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사적 지정 여부를 결정한다.

  • 문화재·학술
  • 국승호
  • 2019.06.24 17:31

“죽고 사는 것은 나라 운명과 함께…” 동학농민군이 쓴 편지 2점 첫 공개

번거로운 인사말은 접어두고 동생 광팔 보시게. 나라가 환난에 처하면 백성도 근심해야 한다네. 형세가 아주 어려워서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자리 삼는 고초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네. (중략) 바라건대 죽고 사는 것은 나라의 운명과 함께하는 것일세. 갑오년 늦가을날 형 광화 보냄.- 동학농민군 유광화 편지. 어머님께 올리나이다. (중략) 12월 20일 소식도 모르고 이날 나주 옥으로 오니 소식이 끊어지고 노자 한 푼 없으니 우선 굶어 죽게 되니 어찌 원통치 아니하리오. 돈 300여 냥이면 어진 사람 만나 살 묘책이 있어 급히 사람을 보내니, 어머님 불효한 자식을 급히 살려주시오. 1894년 12월 28일 달문 상서. - 동학농민군 한달문 편지. 동학농민군이 1894년 가족에게 쓴 편지가 24일 개막하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기획특별전에서 처음으로 공개된다. 1894년 동학농민군 유광화가 고향에 있는 동생 유광팔에게 보낸 한문편지와 전남 나주지역에서 동학농민군으로 활약한 한달문이 나주초토영으로 압송된 후 어머니에게 보낸 한글편지 등 2점이다. 후손 김순덕한우회 씨가 각각 기증한 이 편지들은 동학농민군이 직접 쓴 몇 안 되는 기록물로, 전투에 참여한 비장한 각오와 그간 겪었던 고초가 담겨있다. 고향과 가족을 뒤로 한 채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걸어갔던 농민군의 삶을 엿볼 수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한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마련한 특별전 우리 곁의 동학농민군 이야기전은 24일부터 11월 17일까지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진행된다.

  • 문화재·학술
  • 이용수
  • 2019.06.23 16:35

“동학농민혁명군이 직접 쓴 편지 보러 오세요”

우리 할아버지는 동학농민군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말조차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 할머니가 늘 들려주시던 아름답지만 슬픈 1894년 그 이야기 속으로 초대합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사장 이형규)이 기획특별전 우리 곁의 동학농민군 이야기전을 연다. 24일부터 11월 17일까지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이번 전시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3644명과 유족들이 소장하고 있는 기록물과 증언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선보이는 특별한 자리다. 전시는 1부 삶과 죽음, 2부 남겨진 편지, 3부 그날의 기억, 4부 다시 피어나는 희망 등으로 구성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1894년 동학농민군 유광화와 한달문이 가족에게 쓴 편지도 처음으로 공개되며, 동학농민군 김우백 관련 경통, 동학농민군 김학두 궤, 동학농민군 황종모 창, 동학농민군 곽윤중 천인장 등 유족들이 기증한 유물들이 전시된다. 또한 남원과 임실지역에서 동학농민군 지도자로 활약한 이후 1919년 3.1운동에 참여해 순국한 동학농민군 김영원의 관련 유물들(후손 김창식 제공), 경북 예천지역 동학농민군의 동향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인 <갑오척사록>(충남대 도서관 제공) 등도 공개된다. 이형규 이사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역사적 순간에 이름을 남기지도 못하고 스러져 가야했던 많은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을 돌아보고, 그 사건이 한 가족에게 어떠한 생채기를 남겼는지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24일 오후 3시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유족들에게 유족등록통지서를 전달하는 수여식과 유물기증자 감사패 전달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 문화재·학술
  • 이용수
  • 2019.06.23 16:32

부안 유천리 청자 요지서 ‘전체 형태 고려 청자가마’ 첫 확인

부안군 유천리 청자 요지에서 전체 형태의 고려 청자가마가 최초로 확인됐다. 가마가 확인된 곳은 부안 유천리 요지(사적 제69호) 6구역 가마로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부안군과 (재)전북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중인 곳이다. 이번 조사는 지난 2018년 있었던 시굴 조사에서 존재가 확인됐던 가마와 유물 퇴적구의 축조 방법과 운영 시기, 성격 등을 정밀하게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이달 말 마무리 될 예정이다. 부안 유천리 요지는 고려 시대 최고급 상감청자 등 다양한 자기가 제작된 곳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조사된 유천리 6구역은 망여봉에서 뻗어내린 나지막한 구릉지대로 이번 조사에서 발견된 2기의 가마는 구릉의 서쪽 경사면에 등고선과 직교한 방향에 약 5m 간격으로 비교적 가깝게 자리하고 있다. 가마는 진흙과 석재를 이용해 만든 진흙 가마(토축요)로, 가마 바닥 면에는 원통형 갑발(匣鉢도자기를 구울 때 담는 그릇)과 도지미(도자기 구울 때 놓는 받침)가 불규칙하게 놓여 있는 것이 특색이다. 가마 2기 중 1호는 연소실과 소성실(초벌칸 포함), 배연부, 유물 퇴적구로 이어지는 전체적인 구조가 양호한 상태로 발견돼 의미를 더하고 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조사된 고려 시대 청자가마에서 초벌 칸을 운용하던 사례는 강진 사당리 43호가 있으나, 초벌 칸과 연결된 유물 퇴적구에서 초벌 청자가 다량으로 조사된 점은 가마구조의 발전단계를 확인할 수 있는 괄목할 만한 성과로 평가받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한 고려청자 가마 구조상 배연시설과 초벌칸, 초벌칸과 연결된 초벌청자 유물퇴적구 등은 학술 가치가 높아 앞으로 사적지 복원정비 사업에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익현 부안군수는 이번 조사에서 전체형태의 청자가마가 최초 확인된 것이 주요 성과라며 이는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아 향후 사적지 복원 및 정비사업 나아가 세계유산 추진에 큰 밑바탕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홍석현 기자천경석 기자

  • 문화재·학술
  • 전북일보
  • 2019.06.17 19:17

[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마한스러움의 완성, 옥(玉) 장신구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장신구를 사용했을까? 자신을 꾸미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아래 현대 사람들처럼은 아니더라도 다채로운 장신구를 사용해서 자신의 몸을 치장했을 것이다. 지금은 다이아몬드, 비취, 에메랄드, 금 등이 가장 값비싼 귀금속으로 인식되지만 1600년전 한반도의 마한 사람들은 금과 은보다도 옥을 가장 좋은 장신구 재료로 생각하였다. <삼국지(三國志)> 위서동이전(魏書東夷傳)에는 마한사람들은 금이나 은보다 옥을 귀히 여겨 몸을 꾸미는데 다양하게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증명하듯 마한의 무덤에서는 옥으로 만든 다양한 장신구들이 나타나고 있다. 마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선호한 장신구였음을 의미한다. 마한계 무덤에서 발견되는 옥은 수정이나 마노, 벽옥, 천하석, 탄화목, 뼈, 흙 등 각종 천연재료와 인공적 재료인 유리로 제작된 것들로 나뉜다. 고고학 분야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통칭하여 옥(玉)으로 부르고 있으며, 형태에 따라 곡옥(曲玉), 관옥(管玉), 조옥(棗玉), 다면옥(多面玉), 환옥(環玉丸玉)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옥 장신구는 마한의 이른 시기로 평가되는 초기철기시대부터 발견된다. 이 시기에는 청동기시대부터 이어져 온 장식문화를 유지하면서 신소재로 제작된 옥 장신구가 새롭게 등장하는데, 그 소재가 바로 유리이다. 철기와 함께 당시 최첨단 기술의 결과물인 유리는 부여 합송리, 당진 소소리, 장수 남양리 등에서 대부분 관옥의 형태로 발견된다. 초기철기시대 옥 문화는 원삼국시대 마한사람들에 의해 꽃을 피운다. 이 시기 옥 장신구는 특정 형태나 색상에 국한되지 않고 각양각색, 형형색색의 다채로운 양상으로 발견되면서 옥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전북지역 최대의 마한 분구묘 유적인 완주 상운리 유적에서는 6000여점에 이르는 옥 장신구가 수습되었다. 마한사회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재료와 형태의 옥이 발견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양은 조금 투박하지만 그 영롱한 빛깔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김왕국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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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17 17:36

철기시대부터 고려 초까지…‘완주 역사와 문화’ 한눈에

내가 알고 있던 완주와 새롭게 알게 된 완주, 그 모습은 어떻게 다를까. 완주의 어제와 오늘이 담긴 유물과 미술, 사진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펼쳐진다. 국립전주박물관(관장 천진기)은 완주군(군수 박성일)과 공동으로 오로지 오롯한 고을, 완주 특별전을 18일부터 오는 9월 15일까지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전북지역 14개 시군의 역사와 문화를 재조명해 온 전북의 역사문물전의 13번째 순서로 마련됐으며, 완주지역 최초의 역사 유물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완주지역만의 특색 있는 역사 정체성을 모색하고 그 안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완주의 초기 철기시대부터 고려초까지의 문화재를 △완주 사람들, 한반도 하이테크놀로지의 중심이 되다 △전북지역 마한의 자존심, 완주 사람들 △후백제 사람들, 삼한통일의 꿈을 꾸다 등 3부에 걸쳐 소개한다. 김왕국 학예연구사는 청동기 제작기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청동거울과 상림리에서 출토된 한국식동검, 상운리 유적에서 발견된 옥 장신구를 특히 잘 살펴보시길 권한다면서 한반도 남부지역 초기철기시대의 중심지였던 완주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후백제의 사찰로 추청되는 완주 봉림사터에 서려 있는 후백제인들의 염원과 기원을 새롭게 해석한 현대미술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완주에서 활동하는 권성수, 노정희, 이우엽, 임세진 작가는 언젠가 한자리에 모일 봉림사의 모습을 작품에 담았다. 전시 끝자락에는 현대미술작품을 비롯해 완주 8경의 풍경과 만경강 사진 공모전 수상 작품을 내걸어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완주지역의 역사문화를 한눈에 보게 했다. 천진기 관장은 전시장 안에는 고대 유물들 가운데 현대 유물 1점이 포함돼 있다면서 먼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과거와 현실을 끊임없이 연결하면서 우리 지역 역사문화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귀띔했다. 박성일 완주군수도 이번 전시는 완주군만의 특색 있는 역사가 정립되는 출발점이라면서 앞으로도 완주군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지역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전시와 관련한 연계행사도 다채롭게 마련, 전시의 의미를 더할 예정이다. 일정은 다음과 같다. △20일 강연회(1차), 최완규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마한의 태동과 성장, 그리고 완주 △21일 학술세미나, 국립전주박물관완주군한국청동기학회 공동주최 만경강유역의 고고학적 성과 △22일 완주문화재단지역 공예작가 참여 완주 크리에이터페어 △27일 강연회(2차), 국립광주박물관 진정환 학예연구관 국가 비보의 상징, 완주의 불교미술 △7월 6일 뮤지컬 공연, 삼례, 다시 봄. 김재호김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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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17 17:26

[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황산대첩비 탁본

국립전주박물관 역사실에 들어서게 되면 거대한 비석의 탁본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높이 267cm, 폭 130cm에 이르는 탁본의 윗부분에는 한자 전서(篆書)체로 황산대첩지비(荒山大捷之碑)라는 비의 제목이 크게 쓰여 있다. 황산대첩은 고려 말 1380년 이성계가 장군이던 시절 전라도 남원 운봉의 황산에서 왜구를 크게 물리친 전투를 말한다. 그렇다면 이 탁본에 담긴 의의와 역사는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고려 말 한반도는 외부의 침략에 의해 혼란에 빠져 있었다. 북쪽에서는 홍건적 세력이 남하하여 개경에 이르렀으며, 남쪽에서는 왜구가 남부 내륙을 비롯하여 해안을 따라 약탈을 자행하던 상황이었다. 이 두 난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면서 국가를 안정시킨 인물이 바로 이성계였다. 개경탈환에 큰 공을 세운 이성계는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그러한 그를 국가적인 영웅으로 이끈 전투가 바로 남원 운봉에서 있었던 황산대첩이다. 지리산 자락까지 내륙을 침략했던 왜구의 세력은 이 전투를 기점으로 약화되었다. 황산대첩을 계기로 이성계는 조선 건국의 정치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또한 전북 지역에 전하는 이성계 설화의 시초가 되기도 하였다. 이 승리를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선조 10년(1577)에 황산대첩비가 세워졌다. 당시의 승전 사실을 길이 전하기 위하여 호조판서 김귀영이 글을 짓고 송인이 글씨를 써서 제작되었다. 건립 당시에는 비각(碑閣) 등의 다른 건물도 지어 비를 지키도록 하였는데, 지금도 비터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1945년 1월에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따라 소방대를 동원하여 비를 폭파하고 비문의 글자를 긁어 문화재를 훼손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광복 이후 사적으로 지정된 뒤 비석을 새롭게 세우고 비각을 건립하였다. 파괴된 비석의 조각은 현재 파비각(破碑閣)을 마련하여 보관하고 있다. 국립전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황산대첩비 탁본>은 비가 파괴되기 전의 탁본으로 옛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정대영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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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10 18:40

한국의 서원과 조선 선비문화 확산 힘 모은다

국립전주박물관이 한국의 서원문화를 전시와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해 조선 선비문화를 활성화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전주박물관(관장 천진기)은 (재)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이사장 이배용)과 조선 선비문화 활성화와 상호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10일 밝혔다. 양 기관은 지난 7일 서울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사무실에서 협약을 맺고 △학술연구 진흥 및 상호 공동 연구 △전시 및 연구를 위한 자료대여 등 협조 △학술 관련 세미나 공동개최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전주박물관은 조선 선비문화 특성화 사업에 힘을 쏟고 있으며, 연계 특별전과 선비문화 아카데미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올 연말에는 선비문화 주제에 맞게 어린이박물관을 개선하고, 내년에는 선비문화실도 신설할 예정이다. (재)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은 한국의 서원 9곳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의 서원은 정읍 무성서원과 조선 첫 서원인 경북 영주 소수서원을 비롯해 경북 경주 옥산서원,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대구 달성 도동서원, 경남 함양 남계서원, 전남 장성 필암서원, 충남 논산 돈암서원이다. 천진기 전주박물관장은 최치원을 제향하기 위한 태산사였던 정읍 무성서원 등 한국의 서원 9곳이 7월 초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예정이다며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과 유기적인 업무협력 체계를 구축해 한국 서원 관련 조사연구와 콘텐츠 개발을 통해 선비문화 확산에 노력해 나갈 계획이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최종 등재가 확정되면 우리나라는 모두 14건의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되며, 전북은 고창 고인돌(2000년), 백제역사유적지구(2015년)에 이어 3번째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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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용수
  • 2019.06.10 18:32

[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군산 십이동파도 출수 청자들

도자기는 과거 삶의 복원에 많은 힌트를 준다. 도자기를 생산했던 가마터는 당시 생산 환경과 입지를, 무덤에서 나온 도자기는 계층별 부장문화와 소비경향을, 또 바다에서 나온 것들은 생산에서 소비까지의 유통과정을 보여준다. 최근 군산, 태안 등 서남해안에 과거 도자기를 선적하여 항해했던 침몰선들이 발견되었다. 이들은 한두점이 아닌 수천에서 수 만개의 그릇들을 선적하여 어딘가로 이동하던 중 천재지변 등의 이유로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사정은 안타깝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중요한 과거의 정보들을 주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조운제도가 체계적으로 운영되었다. 주로 선박을 이용한 수운이 활발히 활용되었고 운영주체는 국가였다. 해로는 운반시설이 발달되지 않았던 과거에는 중요한 운송로였으며, 물산이 풍부한 서남해안으로부터 개경으로 향하는 루트가 중심이 되었다. 청자의 중심 생산지인 해남, 강진, 부안 등 전라도 지역에서 만든 그릇들은 바로 이 방법으로 소비처로 향하였다. 군산 십이동파도 해저유적은 고군산도에 위치한 한 섬에서 조개잡이 어부가 작업 중 그물에 청자들이 걸려나온 것이 조사 계기가 되었다. 공식 발굴을 통해 팔천점이 넘는 많은 청자들이 세상에 나왔다. 발과 접시, 기름병, 작은 합 등 일상생활에서 쓰는 기종들이 주를 이루며, 이들은 짙은 녹색 및 황녹색을 띤다. 접시 중에는 꽃모양으로 만든 화형花形접시가 섞여있으며, 상감이나 철화 등 청자를 장식하는 다양한 시문기법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 청자들은 12세기 해남지역에서 만든 청자들과 유사한 조형적 특징을 보여 이곳에서 만든 후 영암에 설치되었던 장흥창長興倉에서 선적되어 서해연안 항로를 따라 수도인 개경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다 군산 부근 해역에서 항로를 이탈하여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십이동파도 유적에서는 청자뿐만 아니라 도기 등 항해에 필요한 각종 물품들도 발견되었고 그대로 가라앉아 배의 실체도 드러났다. 특히 청자를 차곡차곡 포개어 포장해서 선적하는 효율적인 방법까지 밝혀졌다. 하나의 침몰된 조운선이지만 도자기를 배에 싣는 방법, 선적 상태, 배 위의 생활 등 고려인의 삶의 수수께끼를 풀어주었다. 즉 십이동파도 유적에서 출수된 다양한 유물들은 고려의 경제, 사회, 문화를 살필 수 있는 하나의 문화코드인 셈이다. /서유리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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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03 16:32

전라감사 서유구의 공문서 일기, ‘완영일록’ 완역 출간

전라감영 복원이 속도를 내는 가운데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전라감사를 지낸 풍석 서유구의 일기인 완영일록(完營日錄)이 완역돼 세상에 나왔다. 전주시는 전라도관찰사(1833년 4월~1834년 12월)를 역임한 서유구가 재임기간 필사한 공문서 기록 33만2000여 자를 번역한 완영일록을 출간했다고 2일 밝혔다. 185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완영일록에는 전라도 56개 지역에서 있었던 송사, 환곡, 농정, 향시, 효자열녀의 정려, 망궐례, 기우제, 진상품, 부임 과정, 각 지역 수령의 인사고과 등이 기록됐다. 특히 관찰사의 개인 신상에 대한 내용은 단 한 줄도 없고, 오로지 행정, 사법, 군정 등 감사의 직무 전반에 걸친 공문서를 기록했다. 이에 감사의 직무와 감영문화를 상세히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풍석문화재단 전북지부(대표 서창훈)는 이번 완역 작업을 기념해 지난 31일 전주향교문화관에서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180여년 전 전라도 감영의 공문서를 공개하다란 주제로 열린 이번 세미나는 완역된 완영일록의 전반 내용을 소개했다. 또 배경옥 전북대 박사과정 대학원생과 김순석 전통문화연수원장의 주제발표, 안동교 전남대 교수와 김건우 전주대 교수가 패널로 참여하는 토론이 펼쳐졌다. 완영일록은 2016~2017년 전북도 지원을 받아 번역이 이뤄졌고, 이를 토대로 풍석문화재단 전북지부가 윤문과 교열을 거쳐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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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명국
  • 2019.06.02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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