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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이 고려 개국 1100주년을 맞이해 9월 11일부터 12월 30일까지 특집전 고려시대의 미륵사를 개최한다. 이번 특집전에서는 익산 미륵사지뿐만 아니라 익산 사자암, 부안 유천리 청자 가마 출토품 등 고려시대 유물 200여 점을 엄선해 선보인다. 디지털 돋보기를 설치해 청동제 보살 손, 금동제 허리띠 꾸미개, 청동 보살 머리 등 주요 전시품의 세밀한 장식과 무늬를 자세히 감상하도록 했다. 특히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납석제 불상, 고려청자, 중국 도자기, 진단구(재앙을 막기 위한 공양물) 등도 처음 전시한다. 특집전은 불교를 장려했던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치며 새로운 역할을 요구받았던 미륵사의 위상을 재조명한다. 미륵사의 청자, 미륵사의 중국 동전, 미륵사의 차(茶) 도구, 미륵사의 수입품 등 다양한 소주제로 이해를 돕는다. 특집전 기간에는 전시 연계 강좌로 10월 11일 전북대 하태규 교수의 고려시대의 전북과 익산, 10월 18일 국립문화재연구소 한주성 학예연구사의 고려시대 미륵사의 변화와 불교사상을 개최해 전시에 관한 이해를 도울 예정이다.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 이병호 관장은 고려시대 민중의 삶 속에 뿌리내린 미륵사의 위상을 재조명해 관람객들에게 삼국시대와는 다른 고려시대 미륵사의 친근한 매력을 소개하겠다고 밝혔다.
전라도천년사는 지역학적 시각에서 편찬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또 주민들의 지역 역사에 대한 인식 확대와 개선도 전제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전북도 주최, 전북연구원 주관으로 지난 7일 국립전주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은 전라도지역사 정립을 위한 과제와 방향 주제발표에서 중앙에 기준을 두지 말고 지역 관점에서 전라도를 해석하면 전라도의 역사문화가 달리 보이는 점이 있고, 더 풍요로우며 자유로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라도천년사가 전라도를 중심에 두고, 전라도의 시각에서 편찬되어 전라도의 역사문화를 새롭게 조명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홍성덕 전주대학교 교수는 전라도 천년사의 문화콘텐츠 활용방안주제발표에서 교육문화학술관광콘텐츠 구축 방안을 설명하며 전라도천년사 편찬은 새로운 지역 패러다임의 출발이다. 지역의 눈으로 지역을 바라보고, 지역의 미래를 바라본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21세기 왜 전라도를 다시 봐야하는지에 대해 합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라도 정명 천년을 맞아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학술대회에는 관계자와 시민 등 200여명이 참가했으며, 전라도가 역사에서 갖는 위상 등을 되짚고, 전라도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학술대회는 이종범 한국학 호남학진흥원장의 기조강연,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조법종 우석대 교수홍성덕 전주대 교수곽장근 군산대 교수의 주제발표와 토론 등으로 진행됐다. 한문종하태규 전북대 교수와 한규무 광주대 교수, 김종수 군산대 교수, 김경옥 목포대 교수, 허인욱 한남대 교수, 송화섭 중앙대 교수, 한수영 호남문화재연구원 팀장이 토론자로 나섰다.
최근 전북 가야사 복원 작업이 탄력을 받은 가운데 장수에서 다수의 제출 유적이 발굴돼 관심이 집중됐다. 선진 기술이자 문물인 철기는 강력한 국력. 장수가야 제철기술의 독자성과 선진성을 증명한다면 당시 삼국(고구려백제신라) 못지 않은 중심축으로 떠오른다. 그렇다면 장수가야의 제철기술은 어디에서 전파됐을까. 중국에서 바닷길을 통해 군산으로 유입돼 풍부한 철 산지인 장수까지 전파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명 아이언 로드(iron road)다. 아이언 로드는 기원전 2세기 중국 산둥성 일대에 있던 제나라 왕의 동생 전횡이 군산 어청도로 망명길에 오르면서 루트가 시작된다. 어청도를 통해 한반도에 도달한 전횡의 후예들과 철기 문물은 내륙인 전주완주(오늘날 전북혁신도시 일대)로 이동한다. 이미 전주완주 일대에서 뛰어난 청동 주물 기술을 갖고 있던 토착세력과 만나 화려한 청동기철기 문화를 꽃피운다. 이들 세력 일부는 1세기 후 풍부한 철광석(철기 원재료)을 찾아 이동한다. 정착한 곳이 바로 장수무주진안에 걸친 진안고원 일대, 그 중 특히 장수지역이다. 그리고 이곳을 기반으로 한 선진집단은 장수가야로 발전했다. 전북일보는 장수가야 제철기술의 뿌리를 찾기 위해 6차례에 걸쳐 아이언 로드를 거슬러 올라가며 쫓고 있다. 장수가야 제철유적 현장에서는 찬란했던 테크노밸리의 영광을 돌아봤고 전주완주(오늘날 전북 혁신도시)에서는 이곳 잡단세력과 장수가야 세력의 연결고리를 찾았다. 세 번째 아이언 로드 거점은 바로 군산 어청도다. 기원전 2세기 전횡은 중국 산둥성 치박시에 수도를 두고 제나라를 다시 일으켰다. 그러나 당시 한나라 유방이 천하를 통일했고 제나라도 위협했다. 제나라의 왕제 전횡은 군사 500여 명을 이끌고 망명길에 올랐다. 산둥반도를 지나 바다를 건넌 전횡 세력은 중국을 떠난 지 3개월 만에 한 섬을 발견한다. 바로 중국과 가장 가까운 서해바다의 섬, 군산 어청도다. 군산항에서 배를 타고 서쪽으로 2시간 30분 이동하면 U자형 어청도항이 나타난다. 물색이 맑고 푸르러서 어청도(於靑島)인가 싶지만, 지명의 유래도 전횡과 관련돼 있다. 기원전 2세기 전횡이 군사들과 바닷길로 망명에 올랐을 때 안개 낀 바다 위에서 푸른 산 하나가 우뚝 나타났다고 한다. 이들은 그 섬을 푸른 청(靑)자를 붙인 어청도라고 이름 짓고, 정착했다. 전설 같은 이야기는 실제 마을 곳곳에서 드러나는 전횡 세력의 흔적을 통해 현실로 여겨지고 있다. 이들은 섬에서 조류의 흐름을 이용, 해적선을 약탈하고 불태웠다. 이를 통해 섬의 안전을 지켜주고 이익을 얻었다. 섬 주민 사이에서는 이곳이 지금의 불탄여라고 전해진다. 어청도 내 불탄여 구역은 지금도 조류의 흐름이 좋아 낚시하기 좋은 포인트로 많은 사람이 찾는다. 남서풍이나 파도 높은 날에는 오르는 것을 삼가야 할 정도다. 더 중요한 것은 전횡을 모시는 전횡사당(치동묘)이 존재한다. 풍어와 해상 안전을 지켜주는 당신으로 모시며 매년 당제를 지낸다. 1960~70년대 고래잡이가 활발할 때까지만 해도 풍성하고 화려하게 제사를 지냈다. 고래잡이가 금지되면서 매우 약소해지긴 했지만 지금도 매년 이어지고 있다. 작은 섬인 어청도에서는 주민들이 대부분 항구 근처에 모여 산다. 배에서 내려 주택 골목길 안으로 5분가량 걸어 들어가자 전횡사당(치동묘)이 모습을 드러냈다. 굳게 닫힌 대문을 열자 잡초가 무성한 마당과 사당이 보였다. 이제는 사람이 잘 찾지 않는 사당은 먼지가 두텁게 내려앉았다. 벽면은 군데군데 벗겨져 깨져 있었다. 그나마 수년 전 군산시청에서 부분 보수를 해 기둥이나 단청, 창호지는 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사당 문을 여니 덩그러니 놓여 있는 전횡의 초상화. 문을 열면 정면으로 마주치는 얼굴이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졌다. 초상화 앞에 놓인 막걸리와 소주 한 병, 말라비틀어진 곶감 다섯 덩이, 유통기한이 반년은 지난 주전부리 등이 감정을 달랬다. 고평국 어청도 주민자치위원장(69)은 가끔 전횡사당을 조사하거나 취재하러 오는 사람들이 두고 간다고 말했다. 기자도 간식으로 챙겨온 과자 두 봉지를 올려놓았다. 전횡대감에게 만선으로 돌아오길 빌던 주민의 마음이 이랬을까.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땐 풍어제가 대단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전횡대감이라고 불렀죠. 치동묘에 포경선이 맨 처음 잡은 고래를 바쳤어요. 농악대는 사물놀이를 하며 온 마을을 휘젓고, 배 모양으로 만든 그릇에 고래 고기와 각종 음식을 담아 전횡대감에게 올리고 바다로 띄웠어요. 고 씨가 사당 한켠에서 제기를 꺼내 보여줬다. 스물 둘에 어청도로 시집왔다는 고영아(72) 씨도 젊었을 적 기억을 떠올렸다. 시어머니도, 마을 사람들 모두 전횡대감에게 고마워했어요. 바다를 건너온 대감이 예부터 마을 주민들이 배 타러 가면 안전하게 다녀오도록 도와줬다고 전해내려 왔고 주민들은 그렇게 믿었죠. 다들 전횡대감을 마을 수호신처럼 여겼습니다. 당시 중국 산둥반도에서 한반도 서해까지 바다를 건너는 것이 정말 가능했을까. 고평국 위원장은 중국 어선이 충분히 올 수 있는 거리라며 여름엔 태풍으로 풍랑이 심하지만 가을엔 돛단배로도 한두 달 만에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받았습니다.
전주시가 조선왕조 발상지임을 상징하는 조경단과 조경묘의 가치를 재조명, 국가지정문화재 승격을 추진한다. 전주이씨 시조묘소와 사당인 조경단과 조경묘는 전라북도지정문화재로 지정돼 있지만 그동안 역사학술적으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전주시는 31일 전주역사박물관에서 전라북도 지정문화재인 조경단(도 기념물 제3호)과 조경묘(도 유형문화재 제16호)의 문화재적 가치를 재평가해 향후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시키기 위한 학술회의를 연다. 이번 학술회의를 통해 시는 조경단과 조경묘의 문화재적 가치와 활용방안 등을 재조명해 향후 국가지정문화재 승격을 위한 단초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조경묘는 1771년(영조47)에 세워진 것으로 영조의 친필 위패를 봉안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건축 양식을 유지하고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경단은 1899년(광무 3)에 조성된 것으로 고종의 친필인 대한조경단비가 있으며, 같은 시기에 조성된 태조 이성계의 5대조가 되는 이양무와 그의 부인 평창이씨의 묘소인 강원동 삼척의 준경묘와 영경묘는 이미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524호)로 지정돼있다.
최근 전북 가야사 복원 작업이 탄력을 받은 가운데 장수에서 다수의 제출 유적이 발굴돼 관심이 집중됐다. 선진 기술이자 문물인 철기는 강력한 국력. 장수가야 제철기술의 독자성과 선진성을 증명한다면 당시 삼국(고구려백제신라) 못지 않은 중심축으로 떠오른다. 그렇다면 장수가야의 제철기술은 어디에서 전파됐을까. 중국에서 바닷길을 통해 군산으로 유입돼 풍부한 철 산지인 장수까지 전파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명 아이언 로드(iron road)다. 아이언 로드는 기원전 2세기 중국 산둥성 일대에 있던 제나라 왕의 동생 전횡이 군산 어청도로 망명길에 오르면서 루트가 시작된다. 어청도를 통해 한반도에 도달한 전횡의 후예들과 철기 문물은 내륙인 전주완주(오늘날 전북혁신도시 일대)로 이동한다. 이미 전주완주 일대에서 뛰어난 청동 주물 기술을 갖고 있던 토착세력과 만나 화려한 청동기철기 문화를 꽃피운다. 이들 세력 일부는 1세기 후 풍부한 철광석(철기 원재료)을 찾아 이동한다. 정착한 곳이 바로 장수무주진안에 걸친 진안고원 일대, 그 중 특히 장수지역이다. 그리고 이곳을 기반으로 한 선진집단은 장수가야로 발전했다. 전북일보는 장수가야 제철기술의 뿌리를 찾기 위해 6차례에 걸쳐 아이언 로드를 거슬러 올라가며 쫓고 있다. 전북 혁신도시는 오늘날 전주시의 남서쪽인 전주시 덕진구 만성동완산구 중동 그리고 완주군의 동쪽인 완주군 이서면 일대를 일컫는 곳이다. 2000년~2010년대 초 전북 혁신도시 일대에서 기원전 2세기 전후 청동기와 철기들이 잇따라 발굴되면서 관심이 집중됐다. 완주전주는 한반도에서 가장 발달된 청동기와 철기를 가진 집단이 모여 살던 선진지역이었다. 최근 전북가야사 연구가 진척되면서 당시 완주전주에 머물렀던 선진 세력이 전북가야사와 연관돼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기원전 2세기 완주전주에 있었던 선진 기술자들이 1세기가 지난 후 원재료를 찾아 옛 장수가야 지역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 당시 완주전주 살았던 세력의 기술 수준은 오늘날 전북 혁신도시 일대는 예부터 완만한 구릉과 구릉 사이의 충적지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만경강 본류와도 가까워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잡기 좋은 곳이었다. 이러한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이 일대에서는 선사시대 이래 끊임없이 생활문화 활동이 이뤄졌다. 특히 청동기초기철기 시대에는 한반도 최고의 테크노밸리였다. 제철기술뿐만 아니라 모든 선진 기술의 중심이었다. 완주지역에서 출토된 청동거울은 선진기술의 정수다. 컴퍼스 원리를 이용해 정교한 무늬를 새긴 기법은 당시의 높은 기술력을 말해준다. 완주 갈동의 잔무늬거울은 남한에서 발견된 청동거울 중 가장 정교하고 뛰어나다. 한수영 호남문화재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기원전 2세기에 제작된 세문경(잔무늬거울)이 남한에 70점 밖에 없다. 그런데 전북 혁신도시에서만 20점이 나왔다. 당시 첨단기술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철을 다루는 것보다 청동거울을 만드는 게 기술적으로는 더 어렵다. 그러니 이들의 제철기술 수준은 말할 것도 없다. 철기 문화가 전파됐을 때 이를 다루는 것은 더 쉬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세력집단은 제철기술을 누구로부터 얻었나 그렇다면 기원전 2세기 전주완주에서 살았던 이들은 어떻게 제철기술을 얻었나. 발굴 조사 결과, 중국 산동반도에서 전파된 것으로 확실시 되고 있다. 바로 완주 상림리에서 출토된 중국식 청동검 26자루(청동기초기 철기시대 제작)를 통해서다. 한 연구원은 대량의 검이 완전한 형태로 출토된 적이 없다며, 성분모양개수 등 전반적으로 파악했을 때 완주에서 제작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가져온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검의 생김새에도 주목해야 한다. 보통 한반도 초기철기시대 문화가 중국 요동반도에서 육로로 유입됐다고 알려져 있지만 요동반도에서는 청동검이 거의 발굴되지 않는다. 동시에 중국은 지역별로 각자 자신들만의 독특한 동검이 제작됐다. 한 연구원은 비슷한 시기의 중국 동검 분포도를 보면 완주에서 출토된 중국식 동검 26자루가 산동반도에서 일반적으로 제작되는 것과 모양이 일치한다며, 요동반도에서 대륙을 통한 유입 외에도 산동반도에서 바다를 건너 완주전주로 온 세력이 기존 토착세력과 함께 기술을 발전시켰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중국 산동반도에서 바다를 건너 온 세력은 누구인가. 전문가들은 지위가 높은 지배계층으로 판단하고 있다. 아무나 소유할 수 없는 청동검을 대량으로 가져 올 수 있을 정도면 보통 세력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시기의 중국 역사를 뒤져보면 나오는 인물이 바로 제나라의 전횡이다. 그가 한나라와의 세력 다툼에 밀려 바다를 건너 망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제나라는 오늘날의 중국 산동성 치박시에 수도를 둔 나라였다. △ 전횡 후예들, 1세기 후 장수로 이동해 제철문화 꽃피워 바다 건너 중국에서 온 전횡의 후예들과 전주완주의 높은 기술력을 가졌던 토착세력은 시너지를 내며 오늘날의 전북 혁신도시 일대를 당대 최고의 테크노밸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이들은 세력집단은 1세기 후 원료가 풍부한 장수남원 등(옛 장수가야 지역)으로 이동해 더 큰 철기문화를 꽃피웠다. 한 연구원은 장수 남양리에서도 세형동검, 세문경, 토기 등이 담긴 초기 철기시대 고분이 발견됐는데 완주에서 발견된 것보다 제작시기가 약간 늦다며 세력의 이동 경로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또 완주 신풍에서 출토된 간두령(제사의식에서 사용하던 방울)이 경주 죽동리 유적에서 발견됐다. 이는 전국에서 10개가 채 안될 정도로 귀한 유물이기 때문에 아무나 만들 수 없다. 기술력이 직접 전주에서 경주로 이동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두 지역 사이에 장수지역이 존재한다. 한 연구원은 지역별 유적의 시기분포로 미루어 오늘날 전북 혁신도시의 선진 집단이 장수남원 등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명확한 유적유물이 아직 발굴 되지 않았다며, 현장 발굴 조사가 지속돼 장수가야의 기원 전후 200년의 비밀을 풀 유적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을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해서는 훼손된 봉분 복원과 고증을 위한 추가 발굴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현재 남원지역 가야 고분군은 고증이 미비하고 일부가 훼손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충족시키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전북도와 남원시는 28일 경남도청에서 경남, 경북 2곳의 광역자치단체와 고령, 김해, 함안, 창녕, 고성, 합천 등 6곳의 기초자치단체, 문화재청과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 추진 협약(MOU)을 체결했다. 협약식에서 송하진 도지사를 비롯한 10곳의 자치단체장은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고성 송학동 고분군, 합천 옥전 고분군, 김해 대성동 고분군, 고령 지사동 고분군, 함안 말이산 고분군 등 7개 고분군을 2021년까지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힘을 모으기로 했다. 이들은 올해 하반기부터 자치단체의 연구성과 공유와 자료집 편찬, 유산의 통합보존관리를 위한 예산 균등 부담 등을 하기로 했다. 특히 오는 10월 22일부터 26일까지 남원 등 7개 자치단체를 돌면서 7개 고분군에 대한 학술대회와 답사, 워크숍을 연다. 이런 가운데 세계유산등재를 위해서는 남원 고분군에 대한 고증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실제로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에 있는 40기 고분군 중 일부만 발굴과 고증을 마쳤다. 반면 경남경북권의 가야고분군은 대부분 역사적 규명이 마무리됐고, 발굴 유적을 전시하고 있다. 곽장근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 소장은 일부 고분은 훼손돼서 원형을 알 수가 없는데다 농민들이 농사를 짓는 경우도 있다며 그런 고분의 구조와 형태를 파악하고 역사성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발굴조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무덤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한 벌목작업과 탐방로 확보도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발굴을 원할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이 분포한 40필지(9만8225㎡)에 대한 매입을 마쳐야 하는 상황이다. 도는 현재 사유지 37필지 중 28필지에 대한 매입을 토지주와 합의했으며 나머지 9필지는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향후 보존계획도 잘 세워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곽 소장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자치단체와 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보존 및 관리계획을 잘 수립하는 것도 중요하다며세계유산 등재심사를 받을 때 중요한 요소로 평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북농협(본부장 유재도)과 남원축협(조합장 강병무)고창부안축협(조합장 김대중)임실치즈농협(조합장 설동섭)은 지난달 20일부터 축산농가 70여 호를 대상으로 폭염 및 장마철 호우 대비 축사시설 전기점검을 하고 있다. 이번 전기점검은 가뭄과 폭염으로 전기 사용량이 많아지고 장마철 집중 호우 및 축사 침수 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전기화재 및 감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노후 전기설비 안전 점검, 화재 및 감전예방 교육, 노후 소모품 및 불량품 교체 등의 내용으로 실시하고 있다. 전북농협 관계자는 화재예방에 대한 농가의 안전의식을 고취시키고 축산농가의 재산보호, 누전에 의한 감전사고 예방을 위해 중소 축산농가의 노후 전기시설 등에 대해 전기 안전점검을 지속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근 전북 가야사 복원 작업이 탄력을 받은 가운데 장수에서 다수의 제출 유적이 발굴돼 관심이 집중됐다. 선진 기술이자 문물인 철기는 강력한 국력. 장수가야 제철기술의 독자성과 선진성을 증명한다면 당시 삼국(고구려백제신라) 못지 않은 중심축으로 떠오른다. 그렇다면 장수가야의 제철기술은 어디에서 전파됐을까. 중국에서 바닷길을 통해 군산으로 유입돼 풍부한 철 산지인 장수까지 전파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명 아이언 로드(iron road)다. 아이언 로드는 기원전 2세기 중국 산둥성 일대에 있던 제나라 왕의 동생 전횡이 군산 어청도로 망명길에 오르면서 루트가 시작된다. 어청도를 통해 한반도에 도달한 전횡의 후예들과 철기 문물은 내륙인 전주완주(오늘날 전북혁신도시 일대)로 이동한다. 이미 전주완주 일대에서 뛰어난 청동 주물 기술을 갖고 있던 토착세력과 만나 화려한 청동기철기 문화를 꽃피운다. 이들 세력 일부는 1세기 후 풍부한 철광석(철기 원재료)을 찾아 이동한다. 정착한 곳이 바로 장수무주진안에 걸친 진안고원 일대, 그 중 특히 장수지역이다. 그리고 이곳을 기반으로 한 선진집단은 장수가야로 발전했다. 전북일보는 장수가야 제철기술의 뿌리를 찾기 위해 6차례에 걸쳐 아이언 로드를 거슬러 올라가며 쫓고 있다. 문헌에 등장하는 가야계 소국만 20개가 넘는다. 대부분 백두대간 동쪽(영남지역)에 있었던 상황에서 유일하게 백두대간 서쪽 진안고원에 위치했던 장수가야가 소외되지 않고 가야계 소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 바로 철기문물 덕분이다. 무주장수진안에 걸쳐 있는 진안고원 일대에서 철광석을 녹여 철을 생산하던 대규모 제철유적이 발견됐다. 가야 문화권에서 유일하게 확인된 제철유적이라는 점에서 장수가야의 우수성과 역동성을 입증하는 셈이다. 현장 발굴 연구원들은 기술력과 동시에 이 일대가 원재료가 풍부한 철산지였다는 것에 주목했다. 진안고원에서 제철기술이 발달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철을 다루는 고도의 기술을 갖고 있던 세력이 원료를 찾아 이곳까지 이동한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 세력이 바로 기원전 2세기 철기문물과 함께 바다를 건너온 제나라 전횡의 후예들이라는 것이다. △ 제련부터 완제품 생산까지철의 테크노밸리 장수가야의 제철기술은 지난 2015년 장수 동촌리 가야계 고총에서 말발굽(편자)이 처음 출토되면서 드러났다. 귀족 계층이 타고 다니던 말의 편자가 나온 것은 강한 지배계층이 있었음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말의 무게, 압력을 버티고 비교적 온전히 보존된 편자의 상태로 미루어 높은 주조기술을 보여줬다. 이후 최근까지 진행된 제철유적 발굴조사 및 지표조사를 통해 철의 생산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유적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장수군 명덕리 대적골 일대가 중요 제철유적지로 꼽힌다. 원료에서 1차적으로 철을 생산하고 생산된 철 소재를 23차 가공해 완제품을 생산했던 곳으로, 모든 제철공정이 갖춰져 있다. 제철기술은 철을 거푸집에 부어서 만드는 주조와 두드려서 만드는 단조 등 두 가지로 나뉜다. 대적골 A구역에서는 제련로, 단조 조각들이 수습된 단야로, 작업대, 석렬유구 등이 한 구역에서 발견됐다. C구역에서는 솥을 만들던 거푸집과 함께 소토, 철재(슬래그제련 과정 중 생성되는 불순물)가 다량으로 나왔다. A구역 등에서 생산된 철을 이용해 이곳에서 솥이 제작됐다고 추정한다. A구역 옆에서는 철재(슬래그), 노벽편(철광석을 녹이는 제련로의 잔해) 등으로 형성된 5m 이상의 대규모 퇴적구도 확인됐다. 즉, 철 다루는 기술이 체계적이고 자유자재로 능한 세력이 집단적이면서도 대규모로 철 생산을 해온 것이다. △ 완벽한 입지조건 찾아 장수로 이동한 기술자들 곽장근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제철기술은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철을 다루는 선진기술과 함께 원료인 철광석, 연료인 숯이다. 장수 제철유적지 인근에는 철광석을 채굴하던 채석장과 숯을 굽던 숯가마가 존재한다. 남덕유산과 합미봉, 봉화산 등에는 니켈이 함유된 품질 좋은 철광석이 가득하다. 게다가 험준한 산맥이 아니라 수(水)량이 풍부한 골짜기 내 평탄대지에 입지해 근거지까지 금상첨화다. 조건들이 적절히 맞아떨어지면서 철광석 채광부터 숯으로 철광석을 제련해 철을 추출해 내는 제철공정이 한자리에서 이뤄지는 한반도 철의 테크노밸리가 된 것이다. 이쯤되면 철기 문화를 꽃피운 기술자들은 어디에서 넘어온 세력인지 궁금해진다. 장수가야 시대의 기술자들은 현재의 전북혁신도시 지역에서 넘어온 제나라 왕제 전횡의 후예 또는 그들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은 세력이라는 주장이다. 곽 소장은 현재까지 발굴된 유적을 토대로 추측할 때 초기 철기문물의 중심지인 전북혁신도시가 쇠락할 무렵 장수가야가 시작됐다며 혁신도시 세력이 장수 쪽으로 이동한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문물을 가진 집단으로서 원재료를 바로 구할 수 있는 철산지에 관심이 컸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유 연구원은 일방적으로 경상도 지역이 철기의 중심이라고 알려졌지만 시기유적으로 봤을 때 전북혁신도시가 초기 철기시대의 가장 이른 중심지이고, 경상지역에서 발굴된 유물은 훨씬 늦다. 전북 혁신도시에서 경상도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장수 남양리 유적에서 나온 유물은 그 중간 시기의 것이다. 이를 미루어 볼 때 장수 제철기술이 혁신도시에서 전파된 것이고, 또 경상지역으로 전파됐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더 밝혀져야 할 부분도 있다. 제나라 제왕 전횡이 어청도로 망명해 현재의 전북혁신도시에 터를 잡았다고 추측되는 시기가 기원전 2세기다. 가야는 기원전 1세기부터 562년까지 존재했다. 장수가야 존재시기를 빠르게 잡아도 약 900년의 공백이 생긴다. 연구자들은 앞으로 유적 발굴이 심화되거나 발굴 지역이 확대되면 900년간의 이동과정이 밝혀지거나, 장수 지역 제철유적의 뿌리가 기원전 2세기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는 추측이다. ● 전북가야 유적 지표조사한 유영춘 군산대박물관 학예연구원 "동부지역 제철유적 175곳정밀조사 필요" 장수를 비롯한 남원, 무주, 완주, 임실 등 전북 동부지역에 분포하는 제철유적은 현재 175개소에 달한다. 지난 6월 마친 전북 가야사 및 유적정비 활용방안 지표조사를 통해 45개소가 추가 발굴됐다. 가야 문화권에서 유일하면서도 우리나라 최대 밀집도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유 연구원은 이번 조사를 통해 남원, 무주 등에서도 괄목할만한 제철유적이 발견됐다며, 당시는 국경이 유동적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철산지들을 찾아 테크노밸리를 이루던 집단의 세력은 더 강력했고, 테크노밸리는 더 넓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지표조사는 눈에 보이는 대략적인 존재만 파악한 것일뿐 실제 개별 유적에 대한 현황 측량이라든지, 유구의 정확한 위치용도 등 세부 내용을 확인 할 수 있는 정밀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며,체계적이고 정밀한 발굴 조사가 찬란한 가야사 복원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역사 복원은 가정과 추측으로부터 시작한다. 가능성 높은 가설을 따라 발굴연구 조사를 해 입증된 퍼즐을 하나씩 끼워 맞추고 큰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다. 장수남원 등 전북 가야사 복원 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장수에서 다수의 제출 유적이 발굴돼 관심이 집중됐다. 그렇다면 장수가야의 제철기술은 어디에서 전파됐을까. 그간 힘이 실렸던 한반도 내 육로를 통한 전파가 아니라 독자성을 가진다면 가야사의 중심이 바뀔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런 가운데 장수가야의 제철기술이 중국에서 바닷길을 통해 군산으로 유입돼 풍부한 철산지인 장수까지 전파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명 아이언 로드다. 전북일보는 장수가야 제철기술의 뿌리를 찾기 위해 6차례에 걸쳐 중국 산동성 치박(淄博)제남(濟南)에서 전북 군산전주장수까지의 아이언 로드(iron road)를 쫓는다. 주요 거점을 방문해 흔적과 연결고리를 찾고, 가설의 보완돼야 할 점도 짚어본다. 퍼즐 조각을 찾아 새 그림을 완성할 수도 있는 첫 걸음이다. △새역사 가능한 철의 왕국 장수가야 지난해 가야사 복원이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채택되면서 전북지역에서도 가야문화 발굴조명에 힘이 실렸다. 그간 경남권에 비해 복원 작업이 더뎠던 전북권 가야 유적도 서서히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전북권 가야는 장수진안무주남원완주임실순창군에서 발굴된 가야계 유적과 유물을 통합하는 명칭이다. 그중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가야계 소국이 바로 장수 가야다. 장수지역에서 175 개소에 달하는 제철유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일대가 당시 최고 수준의 주조기술을 갖춘 철의 테크노밸리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수준 높은 철기 문화로 국력을 이룬 철의 왕국, 가야 수식어를 만들어낸 근원지인 것이다. 반면, 영남권에선 제철유적이 거의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변방으로 취급받던 전북권 가야사를 재평가할 기회를 맞았다. 철의 왕국 가야의 중심이 영남에서 전북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제철기술 어디에서 전파됐나 학계 등에서는 선진 문물인 제철기술이 장수가야에 어떤 루트로 들어왔는지가 관심사다. 잊힌 왕국 가야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1980년대부터 가야 역사문화 연구가 진척되면서 가야가 당시 삼국(고구려백제신라)과 비견할 만한 강력한 통치체제였음이 밝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국력의 바탕에는 제철기술을 바탕으로 한 철기 문물이 있었다. 따라서 장수가야의 제철기술이 태백산맥 등을 넘어 전파된 것이 아니라 당시 한반도에서 독자적인 기술력이었다면, 장수가 고도의 기술을 바탕으로 한 가야의 중심이었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장수가야의 제철기술이 바닷길을 통해 전파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30여 년간 전북 가야사를 연구해온 권위자, 곽장근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 소장은 전북혁신도시에서 발굴된 철기 유물이 경기도충청도의 것보다 빠르다며 이를 볼 때 전북지역 철기문화가 육로로 왔다는 것은 성립이 안 되고, 앞서 철기문화를 가졌던 중국에서 바다 건너 전래됐다고 추론한다고 말했다. 일명 아이언 로드다. △ 아이언 로드란 곽 소장이 주장한 아이언 로드는 중국에서 장수까지 제철기술이 유입전개된 루트다. 기원전 2세기인 2200년 전, 한나라에 밀려 바다 건너 섬으로 망명을 갔다고 기록되는 중국 제나라 왕제 전횡이 당시 오늘날의 군산 어청도에 정착했고, 이때 철기유물과 제철기술을 가져왔다는 주장이다. 이후 전횡의 후손 세력 또는 제철기술을 배운 세력이 100년에 걸쳐 현재의 전북혁신도시로 넘어온 후 풍부한 철산지를 찾아 장수 천천면(옛 장수가야 유적지) 등까지 이동했다는 가설이다. 전북권 가야 유적 발굴은 이제 막 본격적으로 닻을 올렸다. 토막난 몇 백년의 한국 고대사(제철기술 유입과정)를 입증할만한 유물유적을 바로 찾기는 사실상 힘들다. 삼국에 묻힌 비운의 가야는 기록된 자료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곽 소장 등 일부 학자들은 아이언 로드의 존재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가설이 입증되기까지는 보완돼야 할 점들이 있지만 현장에는 중국 제나라가 존재했던 산둥반도 일대, 군산 어청도, 전북 혁신도시, 장수 천천면 등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 전북혁신도시에서 발견된 후기 청동기초기 철기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26점의 중국식 도씨검과 군산 어청도에 있는 전횡사당 등이 그 예다. 따라서 전북일보는 중국 제나라 왕제였던 전횡이 철기문화를 이끌고 전북 군산으로 들어와 전북 혁신도시로 망명하기까지의 여정, 즉 아이언 로드를 쫓아가며 장수가야의 제철기술 유입 과정을 유추해보고자 한다. 전북 가야문화 복원사업이 탄력을 받고, 전북가야만의 독자성정체성을 가진 새로운 가야 역사문화 스토리텔링을 발굴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전북도와 남원시가 가야고분을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문화재청 및 영남권 자치단체와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추진 협약서(MOU)를 체결할 방침이다. 도와 남원시는 이달 말 문화채청에서 경남, 경북 등 2곳의 광역자치단체와 고령, 김해, 함안, 창녕, 고성, 합천 등 6곳의 기초자치단체, 문화재청과 MOU를 체결한다고 6일 밝혔다. 남원 유곡리 및 두락리 고분군을 세계유적에 등재시키려는 목적이다. 아영면과 인월면 경계에 위치한 이들 고분군은 삼국시대 무덤 축조기술을 알 수 있어 가치가 높으며, 무덤안에서 통형기대(원통모양 그릇받침)를 비롯한 각종 토기류, 환두대도 등 무기류, 살포·철겸 등의 농공구 등 다양한 유적이 출토됐다. 도 관계자는 “고분군은 가야과 백제 고분 축조 특징을 모두 갖고 있으며 5세기~6세기로 추정되는 유물이 다량 출토돼 유적으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업무협약서에는 △경남(2017년~2018년)·경북(2019년~2020년)·전북(2021년~2022년) 산하연구기관의 등재추진단 운영 △참여 자치단체의 예산 균등 부담 △공무원 파견 △학술연구팀장이 포함된 사무국 운영 등의 내용이 담길 계획이다. 등재 목표 시기는 2021년이다. 이를 위해 올 하반기부터는 각 자치단체과 모여 연구성과를 공유하거나 연구자료집을 편찬하는 등 활동을 개시한다. 오는 8월 24일에는 경남발전연구원에서 국내외 연구자와 자치단체 관계자, 추진단이 모여 개별 연구성과를 발표하고, 가야고분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기준), 연구자료집 편집·발간 계획 등을 논의한다. 오는 10월 22일부터 10월 26일까지는 남원 등 7개 기초자치단체가 돌아가면서 7개 고분군에 대한 학술대회와 답사, 워크숍을 개최한다. 도 관계자는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위해 세계유산 등재에 필요한 모든사항을 협의해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옛 군산세관 본관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정식 승격됐다. 문화재청은 110년의 관세 행정 역사를 지닌 옛 군산세관 본관이 역사적학술적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545호)로 승격됐다고 밝혔다.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부문은 군산시 최초이고, 전주 전동성당익산 나바위성당에 이어 전라북도 3번째(근대사적) 지정이다. 옛 군산세관 본관은 1908년 군산항 내 군산세관의 본관으로 건립된 건물이다. 당시 감시계 청사와 감시 망루 등 다수의 시설물이 함께 있었으나, 현재는 본관과 창고만 남아 있다. 개항 초기 우리나라에 도입된 서양식 건축기법 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건립 당시 건물의 원형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군산세관은 국가지정문화재 승격과 연계해 1908년에 건립된 군산세관 창고 유휴공간을 활용해 인문학 복합문화공간을 연내 조성운영할 계획이다. 이밖에 근대기 군산에 건립된 옛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청 관사, 중국음식점 군산 빈해원, 군산 옛 남조선전기주식회사, 옛 조선운송주식회사 사택 등 4건은 문화재로 등록됐다. 등록문화재 제726호 옛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청 관사는 일본식과 서양식의 화려한 세부 표현 기법이 잘 남아있는 공공기관 관사 건축물이다. 등록문화재 제723호 군산 빈해원은 1950년대 초 화교인 왕근석 씨가 창업해 대를 이어온 중국 음식점으로서 개방된 1~2층 내부공간이 특징이다. 근대기 군산에 정착했던 화교 문화를 보여주는 건축물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문정곤문민주 기자>
익산군산축협(조합장 서충근)은 지난 30일 익산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지자체 공무원 및 축산단체대표, 건축사협회 등을 초빙하고 관내 조합원 및 축산농가를 대상으로 무허가축사 적법화 교육을 실시했다. 이번 교육은 농협중앙회 무허가축사 적법화 지원단에서 농림부, 환경부 등의 정부 관계부처에서 합동으로 제작한 ‘무허가축사 적법화 합동지침’과 9월 24일까지 제출해야 할 ‘무허가축사 적법화 이행계획서’ 작성방법에 대한 교육으로서 익산군산축협의 주최로 지난 3월 24일까지 배출시설 허가(신고)신청서를 제출한 농가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날 교육장에는 바쁜 농번기철임에도 불구하고 300여 축산농가가 참석하였고, 교육을 마친 후에도 1시간 이상 적법화와 관련한 문의가 끊이질 않는 등 무허가축사 적법화 문제가 축산농가에게 가장 시급한 현안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서충근 조합장은 “무허가축사 적법화 기한연장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며, 이 기한 내 이행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축사폐쇄 및 과태료 부과 등 행정처분이 내려질 예정”이라며, “어떠한 일이 있어도 축산농가가 불이익을 받아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진안군 동향면 대량리에 소재한 제동(製銅)유적을 호남 최초의 구리 생산유적으로 추정케 할 수 있는 근거들이 확인됐다. 진안군은 구리를 생산했던 제동로(製銅爐 : 구리를 생산하는데 사용되는 가마와 유사한 시설) 2기와 대규모 폐기장, 건물지 1기에 대한 유적 발굴조사를 통해 유적은 고려시대를 중심으로 운영된 것으로 판단되며 삼국시대 토기가 일부 수습됨에 따라 고려시대 이전부터 운영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난 31일 밝혔다. 이번 발굴조사는 전라북도와 진안군, 군산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소장 곽장근) 공동으로 실시됐다. 진안군 동향면 지역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등의 문헌 속 동향소(銅鄕所)라는 특수행정구역이 있던 곳. 그동안 제기돼 왔던 구리 생산유적의 존재를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대량리 제동유적은 지난해 11월 실시된 시굴조사에서 대규모 슬래그 폐기장과 제동로 추정 유구가 확인됐다. 확인된 총 2기의 제동로는 모두 노벽(爐壁)과 배재구(排滓口) 등의 상부구조가 유실됐으며 노를 축조하기 위한 하부구조만 남아있다. 또 조사지역 서남쪽 조사경계 부분에서는 건물지 1기의 일부가 조사됐다. 구리 생산 집단의 생활공간 또는 제련을 통해 생산된 구리를 가공해 완성품을 제작하기 위한 공방지(工房址)일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구리를 2차 가공해 완성품을 만든 흔적은 부여 관북리, 익산 왕궁리 등에서 조사된 바 있으나, 원석에서 구리를 1차적으로 생산한 유적은 경주 일부지역 외에는 거의 조사된 바 없다. 때문에 이번 진안 대량리 제동유적은 호남지역 구리 생산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며 전북지역 초기철기시대 및 전북가야 유적 출토 청동유물 등의 원료산지와 유통관계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임용민 전주대 건축학과 교수가 28일까지 전주 누벨백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교수로 재직하고 있지만 매년 쉬지 않고 건축 설계를 이어왔다. 논문을 쓰며 이론을 연구하는 것과 현상공모를 참여해 시공하는 것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그가 2014년에서 2018년까지 작업한 근작 중 주택 2제와 건축 현상공모안 4점을 선보인다. 임 교수는 많은 성과는 아니지만, 한 작품당 최소 두 달 이상이 걸린다며 전시를 통해 오랜 시간 고민한 내 생각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에서 선보이는 석구동 주택은 완공된 것이어서 건축의 물성을 느낄 수 있어 좋고, 지역 건축 문화상도 수상해 의미가 깊다. 또 깊은 산속 경사지에 위치한 죽림리 주택은 지형을 잘 활용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건축 현상공모안들은 건축가의 가치관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계획안이다. 임 교수는 세종시 박물관 단지 계획안은 30년 전 프랑스 유학 때 접했던 라빌레트공원에서 영감을 받아 풍경이 돋보이는 원형 단지로 설계했다며 순천 예술광장 공모는 가장 현실적이였지만 결론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욕심을 내다보니 지반 조건을 고려하지 못해 아쉬웠다고 말했다.
부안군과 (재)전북문화재연구소가 문화재청 허가를 받아 조사한 사적 제69호인 부안 유천리 요지(扶安 柳川里 窯址)에서 고려시대 요업 관련 시설로 추정되는 대형 건물지(建物址)가 발견됐다. 요업은 흙을 구워 도자기, 벽돌, 기와, 그릇 따위의 물건을 만드는 공업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부안 유천리 요지는 고려시대 최고급 상감청자를 비롯해 다양한 자기가 제작된 곳으로 알려졌다. 이번 유천리 요지 3구역에 대한 3차 발굴은 요업과 관련된 시설물을 확인하기 위한 조사로, 지난해 12월부터 시작해 오는 8월 마무리될 예정이다. 현재까지 요업 관련 시설로 추정되는 대형 건물지, 소규모 작업장, 최상급 자기(청자백자) 조각, 각종 도범(陶范도자기 거푸집) 조각과 요도구(窯道具도자기를 구울 때 사용되는 도구) 등이 확인됐다. 조사 지역인 유천리 요지 3구역은 완만한 구릉을 평탄하게 조성하고 동-서방향의 석축(石築)을 설치해 요장(窯場도자기 굽는 곳) 전체를 몇 개의 구획으로 분할하고 있다. 조사 지역 중앙에 자리한 석축은 길이가 동-서로 약 38m, 잔존 높이는 최대 42㎝로 약 4단 정도가 남아 있다. 석축의 안쪽으로 정면 5칸, 옆면 1칸의 대형 건물지를 지었다. 건물지와 석축 주변에는 도자기 제작을 위한 부속시설로 보이는 유구(遺構건물의 자취)들이 확인됐으며, 건물지의 서남쪽에 가까운 유구 내에서는 관(官)자명 기와가 출토됐다. 출토유물은 오목새김, 상감(象嵌), 상형(像型) 등의 기법으로 무늬를 새긴 사발, 접시, 매병, 향로, 합(盒), 자판(瓷板), 의자(墩), 연적 등의 자기 유물, 도범 조각 유물, 기와 유물, 요도구 유물 등이다. 전북문화재연구소는 3차에 걸친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자기 가마, 건물지, 고급자기, 도범 조각, 관(官)신동(申棟)명이 새겨진 기와 등으로 미뤄 유천리 요지 3구역은 왕실에 공납하는 최상급 관용 자기를 생산한 곳으로 판단했다.
환경부 산하 한국수자원공사(사장 이학수, 노조위원장 하창원)는 대전시 대덕구 본사에서 19일 일터에서 사용하는 일회용품을 줄이고 친환경 생활문화 확산을 위한 ‘노사공동 에코생활 실천 서약식’을 가졌다. 이번 서약은 환경부가 지난 7월 1일 자로 시행한 ‘공공부문 1회용품 사용 줄이기 실천지침’ 이행을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주요내용은 직장 내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한 개인용 컵과 수돗물 직수 음수대 적극 활용, 종이컵과 병입수(페트병) 등의 사용 자제, 인쇄용지 등의 물품구매 시 재활용 제품(환경표지인증 제품 등)우선 구매 등이다. 한국수자원공사는 환경부 지침에 더해 ‘종이 없는 회의 문화 정착’과 ‘화장실 종이수건 대신 건조기 사용’ 등을 직원 의견 수렴을 거쳐 자체 실천사항으로 추가했다. 또한, 사내 전산망으로 전 임직원의 실천 서약서를 받고 전사적 실행력 확보를 위한 정기적인 점검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학수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은 “그동안 습관적으로 사용하던 일회용품에서 벗어나는 것은 당장에는 불편할 수 있으나, 미래세대를 위해 전 임직원이 한마음으로 실천해 나가겠다.” 고 말했다.
익산 쌍릉이 백제 무왕(재위 600641년)의 무덤일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이상준)는 18일 지난 4월 쌍릉(대왕릉사적 제87호)에서 발견된 인골 조각 102개를 분석한 결과 인골 주인은 50~70대 노년층 남성, 키는 161㎝~170.1㎝, 보정연대는 서기 620~659년으로 산출됐다고 밝혔다. 그동안 쌍릉은 백제 시대 말기의 왕릉급 무덤이며 규모가 큰 대왕릉을 서동 설화의 주인공인 무왕의 무덤으로 보는 학설이 유력했는데, 이번 결과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부여문화재연구소는 발견된 인골 조각이 백제 무왕의 능인지를 결정짓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고고학과 법의인류학, 유전학, 생화학, 암석학, 임산공학 등 관련 전문가들을 총동원해 인골의 성별, 키, 식습관, 질환, 사망시점, 석실 석재의 산지, 목관재의 수종 등을 정밀 분석했다. 인골을 분석한 결과, 성별은 남성인 것으로 조사됐다. 팔꿈치 뼈의 각도(위팔뼈 안쪽위관절융기 돌출양상), 목말뼈(발목뼈 중 하나)의 크기, 넙다리뼈 무릎 부위(먼쪽 뼈 부위)의 너비가 남성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또 넙다리뼈의 최대 길이를 추정해 산출한 결과 키는 161㎝에서 최대 170.1㎝로 분석됐다. 훨씬 후세대에 속하는 19세기 조선시대 성인 남성의 평균 키가 161.1㎝인 것을 고려한다면 비교적 큰 키이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무왕의 모습은 풍채가 훌륭하고, 뜻이 호방하며, 기상이 걸출하다고 되어있다. 나이는 최소 50대 이상의 60~70대 노년층으로 분석됐다. 가속 질량분석기를 이용한 정강뼈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보정연대가 서기 620~659년으로 산출돼, 인골 주인은 7세기 초중반에 사망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밖에 석실의 석재는 약 9㎞ 떨어진 함열읍에서 채석한 것으로 추정됐으며, 수령이 400년 이상으로 알려진 관재(棺材)는 7세기 전반 이전에 벌목된 것을 가공한 것으로 분석됐다. 또 목관은 최고급 건축가구재인 금송으로 제작했으며, 이번에 발견된 유골함은 잣나무류의 판자로 만들었다. 부여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연구를 바탕으로 익산 쌍릉의 성격과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규명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며 아울러 익산지역 백제왕도 핵심유적 보존관리 사업을 통해 백제 왕도의 역사성 회복을 지속해서 추진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전북YWCA협의회와 전북여성단체연합이 양성평등주간을 맞아 각각 미투 이후 여성의 역할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전북YWCA협의회는 지난 6일 전주 중부비전센터에서 미국 최초로 직장 내 성폭력 승소사건을 다룬 영화 <노스 컨츄리>를 관람하고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전북여성단체연합은 같은 날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전북여성인권영화제 개막작인 <더 헌팅 그라운드>를 관람한 뒤 전북지역 대학생들과 관객과의 대화(GV)를 진행했다. △양성평등 가정 속 습관부터 고쳐야 미투(#Mee too) 이후 여성은 말하기 시작했고 여성에 대한 인식과 지위도 변할 것으로 생각했죠. 하지만 여전히 남편이 시키면 부인이 물 떠다 주고, 딸에게만 집안일을 돕게 하는 가정이 상당합니다. 인식하더라도 습관인 거예요. 나부터 참여하고, 생활 속 습관부터 고쳐야 여성 인권이 회복됩니다. 여성의 목소리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대표성을 쟁취해야 하는 것, 극적인 하나의 계기로 주변의 인식이 변하는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는 여성들이 끊임없이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그러나 무뎌진 인식, 펜스 룰, 펜스 룰 피해로 미투를 비난하는 일부 여성이 걸림돌로 작용해 여성을 비롯한 모두의 인식변화조직문화의 혁신이 절실하다는 주장이다. 행사에 참여한 40대 남성은 여성단체에서 양성평등주간 행사를 하면 남성들이 내빈 자리에서 생색내고 행사를 마련한 여성들은 들러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며 한 명이라도 더 여성을 제도권에 들여보내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학 간 네트워크 형성 필요 다 같이 멸망하고 다시 시작하는 게 쉽지 않을까요? 전북대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정희진 씨는 미국 대학 내 성폭력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더 헌팅 그라운드>에 대한 속상한 공감을 드러냈다. 미국은 다르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은 미국도 다르지 않구나라는 확연한 깨달음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날 GV는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협동조합 김란이 활동가와 전북대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정희진 씨, 전주대 서이경 씨 등이 참석해 얘기를 나눴다. 전북대와 전주대는 미투 운동이 불거진 대학이다. 두 학생은 대학 내 인권센터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폐쇄적인 대학 특성과 인권센터에 대한 낮은 신뢰성 등이 결부돼 제대로 된 성폭력 보호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는 것. 특히 학기 초인 3~5월에 성폭력 신고 건수가 집중되지만 이를 전후해 성폭력 예방 활동이 전개되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또 대학 간 네트워크 형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지인과 지인 간 연락망이 아닌, 대학과 대학 간 네트워크가 구축된다면 장기적인 대학 내 성차별주의 반대 운동이 전개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김보현
전라북도 문화재인 대곡사명 감로왕도(大谷寺銘 甘露王圖)와 익산 미륵사지 서탑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가 보물로 지정됐다. 27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대곡사명 감로왕도가 보물 제1990호로, 미륵사지 서탑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의 사리공(舍利孔불탑 안에 사리를 넣을 크기로 뚫은 구멍), 금제사리봉영기(金製舍利奉迎記) 1점, 금동사리외호(金銅舍利外壺) 1점, 금제사리내호(金製舍利內壺) 1점, 각종 구슬과 공양품을 담은 청동합(靑銅合) 6점 등 모두 9점이 보물 제1991호로 지정했다. 지정된 보물은 지난 3월과 4월, 지정예고를 거쳐 최종 보물로 지정되는 데까지 2개월여가 소요됐다. 대곡사명 감로왕도는 1764년 불화승(佛畵僧) 치상(雉翔)을 비롯해 모두 13명의 화승이 참여해 그린 것이다. 상단에 칠여래(七如來)를 비롯한 불보살이, 중하단에는 의식장면과 아귀와 영혼들, 생활 장면 등이 짜임새 있는 구도 속에 그려져 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색조가 조화를 이루어 종교화로서 숭고하고 장엄한 화격(畵格)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금동사리외호 및 금제사리내호는 모두 동체의 허리 부분을 돌려 여는 구조로, 동아시아 사리기 중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독창적인 구조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전체적으로 선의 흐름이 유려하고 양감과 문양의 생동감이 뛰어나 기형(器形)의 안정성과 함께 세련된 멋이 한껏 드러나 있다. 금제사리봉영기는 얇은 금판으로 만들어 앞뒷면에 각각 11줄 총 193자가 새겨져 있다. 이 봉영기는 그동안 삼국유사(三國遺事)를 통해 전해진 미륵사 창건설화에서 구체적으로 나아가 조성 연대와 주체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계기가 된 사리장엄구 중에서도 가장 주목되는 유물이다. 청동합은 구리와 주석 성분의 합금으로 크기가 각기 다른 6점으로 구성돼 있다. 청동합은 명문을 바탕으로 시주자의 신분이 백제 상류층이었고 그가 시주한 공양품의 품목을 알 수 있어 사료적 가치와 함께 백제 최상품 그릇으로 확인되는 등 희귀성이 높다. 이처럼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는 백제 왕실에서 발원해 제작한 것으로 석탑 사리공에서 봉안 당시 모습 그대로 발굴돼 고대 동아시아 사리장엄 연구에 있어 절대적 기준이 되고 있다. 한편 대곡사명 감로왕도와 미륵사지 서탑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가 보물로 지정되면서 전북도는 98점의 보물을 보유하게 됐다. <김진만강정원 기자>
버들잎을 화살로 꿰뚫는다는 이름을 가진 천양정(穿楊亭)은 전주 다가천 서쪽 기슭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조선시대 활터다. 조선 숙종 38년(1712)에 다가산 아래 바람을 피하는 길지를 골라 세워진 것으로, 그 역사가 올해 306년에 이른다.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6호이기도 하다. 재단법인 천양정(대표 김종오)이 27일 천양정 활터 창건일을 기념하는 행사 대사회(大射會)를 천양정에서 열었다. 이날 김종오 대표가 초헌관을 맡아 제례를 올렸고, 이어서 천양정 소속 회원들의 활쏘기를 겨루는 수련대회가 진행됐다. 김춘근 (재)천양정 사무국장은 선배들의 정신을 잇고 후배들의 숭무정신을 열어주는 것이 목적이었다며 행사 내내 긴장감이 감돌았고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천양인들의 숭무정신이 드날렸다고 말했다.
전북과 각별…황석영 소설가 ‘금관문화훈장’ 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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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출신 배우 김수미 씨 별세⋯전북 애도 물결
부안여성작가 13명, 30일까지 제9회 단미회展 ‘Art Memory’
전북시인협회장 후보에 이두현·이광원 최종 등록
전북작가회의, ‘불꽃문학상’ 황보윤·‘작가의 눈 작품상’ 박복영
제4회 민족민주전주영화제 14일 개막
'작지만 강한' 전북도립미술관의 반란
달빛 아래로 흐르다, 10년 우정으로 빚은 시화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