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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205) 11장 영주계백 1

다음날 저녁, 이또의 거성(居城)인 야마토(大知)성에 계백이 입성했다. 이또는 영지 5만 7천석을 보유한 영주였지만 백제계 명문가였다. 그러나 왜 왕가와 소가씨 가문에 불만을 품고 은밀하게 신라계와 내통하다가 멸문을 당한 셈이다. 멸문을 당했다고 하지만 이또와 소수의 측근, 병사 일부가 죽었을뿐 나머지는 다 살아있다. 가족도 아직 멀쩡하다. 선봉대에 의해서 성문은 이미 활짝 열렸고 살아남은 가신(家臣)들이 모두 청 앞 마당에 꿇어앉아 있었는데 새 영주의 한마디에 목숨이 달려있는 상황이다. 역적인 영주가 참살된 경우에는 가신들도 모두 죽이는 것이 통례인 것이다. 가족은 말할 것도 없다. 계백이 측근들과 함께 청에 올랐을 때 선봉대를 이끌고 먼저 온 하도리가 소리쳐 보고했다. 주군(主君), 역적 이또의 가신중 5백석 이상을 받은 자들을 모두 모았습니다. 이미 마당에는 횃불을 여러개 켜놓고 모닥불까지 만들어서 화랑이 충천했다. 하도리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모두 32명으로 그중 4명은 이번에 이또를 따라갔다가 죽었습니다. 마당에 모인 가신은 28명이 남았다. 모두 단정한 차림에 칼은 몰수당한 채 포로처럼 꿇어 앉아 있었는데 비장한 표정들이다. 그때 마루끝에 선 계백이 가신들을 내려다 보았다. 이또 다다시가 4대째 내려온 영주라고 들었다. 맞느냐? 맞다, 백제방 관원을 시켜 이또와 아리타, 마사시의 집안 내력과 성품, 가족, 주민들에 대한 통치 방법, 가신들의 성향까지 조사를 해온 것이다. 그동안 칠봉산성 성주를 지냈을 때부터 주민들을 다스려온 계백이다. 전투에서는 일시적으로 용장(勇將)이 이기지만 전쟁에서는 지장(智將)이 패권을 잡는다는 사실을 깨우쳐 온 계백인 것이다. 덕(德)만 베풀어도 안되고 누르기만 해서도 안된다. 선정을 베푸는 것이 전쟁보다 어렵다고 했다. 계백이 말을 이었다. 이또 다다시는 제 조상의 덕분으로 영주를 이어 받았지만 백성들은 수십년동안 늘어나는 조세와 부역과 군역(軍役)에 시달리기만 했다. 이곳 영지는 곡식의 소출이 좋다면서 조세를 다른 곳보다 많이 가져가는 바람에 오히려 주민 수가 줄어들었다. 힘들어서 도망쳤기 때문이다. 계백의 목소리가 마당 밖으로도 퍼져나가 병사와 하인, 내성에 들어온 주민까지 담장에 붙어 귀를 기울였다. 오늘자로 이또 다다시 가문은 끝났다. 너희들, 이또의 가신이었던 너희들에게 묻는다. 죽은 이또에게 충성하겠다는 자들은 영지를 내놓고 떠나라. 그러나 새영주인 나한테 충성하겠다는 자는 남아라. 내가 판단해서 결정을 할테다. 그리고는 계백이 몸을 돌렸다. 화청과 윤진, 백용문이 뒤를 따른다. 저녁, 술시(8시)가 되었을때 청에서 화청과 술을 마시던 계백에게 하도리가 다가와 보고했다. 주군, 이또의 중신 사다께가 왔습니다. 사다께는 이또 다다시의 중신으로 5천석 영지를 떼어받고 집사 노릇을 해왔다. 나이는 55세, 사다께 또한 이또 가문의 대를 이은 가신이다. 곧 청 안으로 들어온 사다께가 두손을 바닥에 붙이더니 계백을 보았다. 주름진 얼굴,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제가 중신(重臣)으로 가신들을 대표해서 말씀 드립니다. 이또 다다시는 능력이 없고 사리사욕만 차리는 영주였습니다. 죽어 마땅합니다. 그리고 새 영주가 새시대를 열어야겠지요. 사다께가 똑바로 계백을 보았다. 제가 가신을 대표해서 죽음으로 사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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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23 19:20

[불멸의 백제] (204) 10장 백제령 왜국 20

소덕, 이또의 성(城)이 그중 가장 낫네. 앞에 앉은 이루카가 입을 열었다. 이루카를 따라온 조정의 관료 대여섯명이 계백을 향해 벌려 앉았다. 이제는 이루카와 계백을 중심으로 회의가 열린 셈이다. 이루카가 말을 이었다. 성이 넓고 성벽 높이가 20자(6m)가 넘어. 그곳을 거성으로 하면 3개 영지를 다스리는데 부족하지 않을 거야. 이루카는 37세였으니 계백보다 7살 연상이다. 경륜도 많은데다 뛰어난 무장(武將)이기도 하다. 계백이 머리를 숙여 답례를 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병력은 얼마나 데려갈 텐가? 제가 백제에서 데려온 3백 기마군중 2백기만 데리고 갈 것입니다. 3개 영지의 소출이 16만석이니 50석당 병사를 모으면 3천2백이 되네. 이루카가 웃음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전시(戰時)에는 5천도 모을 수 있지. 소덕은 이제 왜국의 영주이고 신하가 되네. 명심하겠습니다. 이루카는 그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 같다. 자리에서 일어선 이루카가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아리타, 마사시, 이또의 가족과 가신의 처분은 모두 그대에세 맡기네. 그것이 왜국의 법도일세. 청을 나온 계백의 옆으로 화청과 윤건, 백용문이 다가왔다. 하도리도 그들의 뒤를 따른다. 은솔, 나오시지 않아서 걱정했소. 화청이 투덜거렸다. 원래 음모를 많이 꾸미는 인간들이라 왕자 전하께서도 나오시지 않아서요. 섭정하고 이야기하느라고 늦었어. 말에 오른 계백이 그들을 둘러보았다. 영지로 데려갈 부하들이다. 그대들도 나하고 왜국 영주 노릇을 좀 해야 할 것 같다. 은솔과 함께라면 지옥에라도 가지요. 화청이 대번에 대답했고 윤건이 따랐다. 이곳도 백제땅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상관없습니다. 백용문도 머리를 끄덕였고 하도리는 웃기만 했다. 그렇지만 하도리가 가장 좋은 것이다. 백제 조정에서 11품 대덕 벼슬까지 승급했지만 하도리는 본래 왜인이다. 이름이 핫도리였다가 계백을 주인으로 모신 후에는 하도리(下道理)로 이름을 만든 것이다. 그날밤, 백제방의 청 안에서 풍과 계백이 술상을 놓고 마주보며 앉아있다. 술잔을 든 풍이 정색한 얼굴로 계백을 보았다. 은솔, 지금까지 백제방은 영지를 소유하지 않았어. 왕실처럼 영지를 소유하지 않고 본국에서 데려온 병사로 질서를 잡았더니 한계가 있었다. 한모금 술을 삼킨 풍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이번에 김부성이 난을 일으킨 것이 전화위복으로 되었구나. 이제는 백제방이 자력으로 무력을 갖추게 되었다. 백제방과 왕실의 친위대 역할이 되겠습니다. 신라가 걱정이다. 어깨를 치켰다가 내린 풍이 길게 숨을 뱉었다. 당의 속국이 되겠다면서 당의 관복을 자진해서 입고 새 여왕에게 당왕을 칭송하는 시를 비단에다 자수를 놓게 하다니.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이 어디있단 말이냐? 김춘추의 소행이다. 새로 즉위한 여왕 승만에게 그렇게 시켰다고 한다. 당을 업어야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킬 수 있는 것이다. 사대(事大)쯤은 안중에도 없다.

  • 문화
  • 기고
  • 2018.10.22 16:07

[불멸의 백제] (203) 10장 백제령 왜국 19

오, 왔느냐? 여왕이 아래쪽에서 엎드려 절하는 계백을 내려다보았다. 여왕의 얼굴은 수척하다. 여왕의 남편 죠메이왕이 재위 13년 만에 죽고 나서 아직 왕자가 어렸기 때문에 결국 왕후가 여왕으로 즉위한 것이다. 죠메이왕을 왕으로 옹립한 것도 소가 에미시였으니 소가 가문(家門)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계백이 여왕을 우러러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여왕이 머리를 끄덕였다. 얼굴에 희미한 웃음기까지 떠올라있다. 네 공이 크다. 이번 신라소를 격파한 공(功)을 말하는 것이다. 여왕 즉위식 준비를 마치고 돌아가는 백제방(方) 관원들을 몰사시킨 신라측에 대해서 여왕의 진노도 대단했다. 아직 김부성은 잡히지 않았지만 섭정 이루카에게 두 번이나 재촉을 할 정도다. 황공합니다, 전하. 계백의 목소리가 청 안을 울렸다. 왕궁의 청도 백제 왕궁을 모방해서 붉은 색 기둥에 사방이 트여졌다. 여왕의 옥좌는 계단이 6개다. 백제왕의 계단이 9개였기 때문에 3개를 줄인 것이다. 청 안에는 백제방 방주 부여풍 왕자가 와있었는데 여왕 옥좌의 한 계단 아래쪽에 앉았다. 섭정 소가 이루카는 청에 늘어앉은 문무(文武) 대신들의 맨 앞에 앉아서 여왕과 풍을 바라보는 위치다. 오늘은 왜국의 문무 대신, 백제방 방주와 여왕까지 모두 모여 있는 것이다. 왜국은 수백년 동안 백제의 속국이었으며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백제에서 이동한 유민이 규슈에서부터 정착하여 제각기 영지를 세우고 동진(東進)하여 마침내 이곳 아스카까지 진출하는 동안 왜 왕실은 백제계로 이어져온 것이다. 영주 대부분이 백제계이며 지금도 백제어가 일상으로 사용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왜말과 섞여지기도 했지만 왕실과 영주, 지도층은 모두 백제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지금도 왜왕의 한 계단 아래에서 왜국 대신들을 내려다보는 백제방 방주 풍왕자의 위상이 바로 그것을 나타낸다. 그때 섭정 이루카가 입을 열었다. 전하, 이번에 반역을 도모했다가 죽은 아리타와 마사시, 이또 영지에 대한 처분을 내려주시옵소서. 미리 합의가 된 일이어서 이루카가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하루라도 주인 없는 영지로 둘 수가 없으니 그 세 곳 영지를 모아 백제방의 은솔 계백이 다스리게 하여 주옵소서. 그때 여왕이 풍을 보았다. 방주께선 어떻게 생각하시오? 계백은 본국에서 성주(城主)를 지낸 적도 있으니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풍의 말을 들은 여왕이 계백에게 물었다. 계백, 세 영지를 합하면 16만석이 된다. 맡아서 백성을 돌보겠느냐? 명을 받겠습니다, 전하. 계백이 사양하지 않고 대답했다. 미리 풍한테서 지시를 받은 터라 사양하는 시늉을 낼 필요도 없는 것이다. 여왕이 머리를 끄덕였다. 잘 되었다. 주인을 잃은 영지에서 도적떼가 모인다던데 오늘이라도 당장 부임하라. 예, 전하. 네가 백제의 은솔 관등으로 제3급품이니 이곳 왜국에서는 2급품 소덕(小德)이 적당하다. 소덕 직위를 받으라. 황공합니다. 계백이 머리를 청 바닥에 붙이는 것으로 어전회의가 끝났다. 여왕과 풍이 청을 나갔을 때 대신들의 우두머리인 섭정 이루카가 계백에게 다가왔다. 이루카는 대신(大臣)으로 1급품 대덕(大德)이며 섭정이니 최고 실권자다.

  • 문학·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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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21 17:40

[불멸의 백제] (202) 10장 백제령 왜국 18

은솔, 영주가 되어라. 이키타가 물러갔을 때 풍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청 안에는 이제 중신(重臣) 대여섯 명만 둘러앉았다. 전하, 명(命)이시라면 따르겠으나 소장이 감당할 수가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계백이 정색하고 풍을 보았다. 본국에서 성주를 지냈지만 이곳은 체제가 다르다. 백제 성주는 왕이 임명한 후에 수시로 바꿀 수가 있다. 계백이 칠봉산성 성주였다가 수군항장, 고구려 원정군 사령관까지 지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왜국의 영주는 그곳에서 대(代)를 잇는다. 그곳에서 가신(家臣)을 만들고 영지의 소출에 따라 병사도 양성한다. 하나의 소국(小國) 지배자가 되는 것이다. 그때 풍이 말했다. 백제방이 왜 왕실과 함께 왜국을 통치해왔지만 무력(武力)은 본국에서 온 장병들로 충당했다. 풍의 목소리가 낮아지면서 두 눈이 번들거렸다. 그래서 신라소 놈들이 함부로 날뛰었고 소가 가문이 월권을 해도 강하게 저지를 하지 못했다. 풍의 얼굴에 희미하게 웃음이 떠올랐다. 이번에 소가 측에서 어젯밤 죽은 아리타와 마사시 영지를 맡기려고 한 것은 나름대로 계산을 했기 때문이다. 머리를 돌린 풍이 중신(重臣) 백종을 보았다. 백종은 55세로 왜국에서 30년을 지냈다. 장덕 벼슬이나 왜국에서도 6품 소신(小信) 벼슬을 받았다. 왜국의 물정에 통달한 문관(文官)이다. 장덕, 말해라. 풍의 지시를 받은 백종이 입을 열었다. 아리타와 마사시는 어젯밤에 죽었지만 가신(家臣), 군병들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아리타, 마사시에게 충성하고 있어서 소가 가문이 영지를 빼앗는다고 해도 골머리를 썩일 것입니다. 백종이 말을 잇는다. 아리타는 6만5천석, 마사시는 4만3천석 영지를 갖고 50석당 1명씩의 군사를 낼 수가 있으니 각각 1300명, 8백여 명의 군사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가신은 각각 1백여 명 정도는 될 것입니다. 계백이 잠자코 백종을 보았다. 어젯밤 아리타, 마사시는 가신 10여 명, 군사 1백여 명과 함께 시체가 되었다. 살아남은 가신, 군사들은 제각기 영지로 도망쳤을 것이다. 백종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졌다. 소가 측은 아리타, 마사시 영지의 안돈을 은솔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때 계백이 물었다. 김부성과 함께 도주한 이또가 있지 않습니까? 이또 이야기는 없습니까? 그렇다. 김부성은 왜호족 이또와 함께 도주했다. 그러자 풍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렇군, 이또가 잡히지 않았지만 이또 영지도 몰수해야 되는 것 아닌가? 풍의 시선을 받은 백종이 말을 이었다. 이또 영지는 소가 측 옆입니다. 5만7천석이고 기름진 땅입니다. 소가 측이 제 영지로 편입시키려는 것 같습니다. 교활한 영감 같으니. 어깨를 부풀린 풍이 옆쪽에 앉은 관리를 보았다. 시덕, 네가 에미시에게 가거라. 예, 전하. 시덕 등급의 관리가 대답하자 풍이 말을 이었다. 이또의 영지까지 계백에게 넘긴다면 영지를 안돈시키겠다고 전해라. 예, 전하. 안돈시키겠다는 말을 세 번쯤 되풀이해서 너희들의 속셈을 다 알고 있다는 표시를 해주어라. 풍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 문학·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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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18 19:13

[불멸의 백제] (201) 10장 백제령 왜국 17

소가 에미시의 중신(重臣) 이키타가 백제방으로 풍 왕자를 찾아왔을 때는 오전 묘시(6시) 무렵이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백제방은 사람들로 가득찼고 활기에 넘쳐 있었다. 이곳 저곳에서 함성까지 터졌기 때문에 위축된 이키타는 풍 왕자 앞에 엎드리자 숨부터 가누었다. 풍의 옆쪽에 계백이 서 있었는데 갑옷 차림이다. 전장(戰場)에서 밴 피냄새가 나는 것 같다. 전하, 전(前) 섭정 소가 에미시가 저를 보냈습니다. 이키타는 60세, 풍과 안면이 많다. 청안에는 백제방의 중신 10여명과 장수들이 둘러서 있었지만 조용하다. 풍의 시선을 받은 이키타가 말을 이었다. 이번에 신라소는 백제방 관리들을 기습하여 살육했고 그 혐의를 소가 가문에 씌웠습니다. 그 죄를 물어야 했는데 백제방에서 처리해주셨습니다. 전(前) 섭정께서는 전하께 감사 말씀을 전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냐. 풍이 정색하고 머리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수괴인 김부성이 도망쳤다.틀림없이 아스카에서 배를 타려고 할 것인즉 대신의 도움이 필요하다. 네, 전하. 어깨를 편 이키타가 풍을 보았다. 그래서 전 섭정께서는 현(現) 섭정께 말씀하셨습니다. 아스카까지 가는 길목의 모든 영주에게 전령을 보내 김부성을 잡으라고 했습니다. 또한 아스카항 수비장에게 신라선(船)을 떠나지 못하도록 지시를 내렸습니다. 잘했다. 풍의 칭찬을 받은 이키타가 한숨을 쉬고나서 옆쪽의 계백을 힐끗 보았다. 전하, 소가 에미시의 전갈입니다. 말하라. 이번에 신라소의 폭도들에게 가담한 아리타와 마사시가 전장에서 죽었으니 죄값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지. 그런데 아리타와 마사시의 영지는 붙어 있는데다 두 영지를 합하면 10만석 가깝게 됩니다. 모두 시선만 주었고 이키타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두 영지의 영주가 하룻밤에 사라졌으니 주인없는 백성은 물론이고 병사들이 떠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풍이 재촉하듯 물었다. 그 영지를 소가 가문이 갖겠단 말이냐? 여왕께서 결정하실 일이다. 그 영지를 은솔 계백이 다스리게 하는 것이 낫겠다고 하십니다. 그순간 풍이 숨을 들이켰고 계백은 머리를 기울였다. 청에 모인 문무(文武)관리들도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그때 이키타가 말을 이었다. 그 영지를 백제방의 은솔이 영주로 다스리게 하면 백제방의 기반이 더욱 굳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풍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백제방은 왕실과 밀접되어 있어서 영지를 직접 다스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소가 에미시는 백제방 장수와 계백에게 영주를 제의했다. 소가 가문은 부자(父子) 영지를 합하면 150만석 정도가 된다. 최대 영주인 셈이다. 제 왜국 전역에는 미개척지가 절반 이상이지만 7백만석 정도의 영지가 있다. 영주는 1백여명, 그때 풍이 입을 열었다. 소가 대신이 계백을 제 휘하에 두려는 것 같군. 혼잣말이었지만 모두 들었다. 그러더니 풍이 정색하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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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17 20:45

[불멸의 백제] (200) 10장 백제령 왜국 16

무엇이? 신라소가? 흠칫 머리를 든 소가 이루카가 다시 물었다. 불에 타고 있다는 거냐? 예, 대감.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사다케가 말했다. 예. 신라소 안의 신라인은 물론이고 지원을 나온 호족들은 모두 몰살당했습니다. 네가 보았어? 예. 순찰병을 데리고 가서 보았습니다. 누, 누구를 만났느냐? 예. 백제군 장수인데 청색 띠를 허리에 두르고 있었습니다. 그럼 12품 문독 이하다. 이루카가 말했지만 백제군 16품 극우 벼슬이라고 해도 왜국에서는 어렵게 본다. 백제방 소속 관리는 물론 병사도 왜국에서는 직접 연행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루카가 어깨를 늘어뜨리며 말했다. 신라소가 순식간에 멸망했구나. 백제군의 수뇌는 누구냐? 은솔 계백이라고 합니다. 으음. 불타는 대문 앞에 대아찬 박경과 화랑 둘의 머리가 창대에 꽂혀 있었습니다. 호족들의 머리는 땅바닥에 놓였구요. 김부성 머리도 내걸렸더냐? 김부성은 불에 타서 시체를 찾이 못했다는 말도 있고 도망쳤다는 말도 있습니다. 비겁한 놈. 대감. 옆에서 중신 마에온이 말했다. 시급히 부친께 연락을 드리시지요. 이런 일은 부친과 상의하셔야 합니다. 시종을 보내라. 아니, 내가 가겠다. 이루카가 벌떡 일어섰을 때다. 청 밖이 수선스러워지더니 불빛이 왔다갔다 했다. 아직 축시(오전 2시)가 조금 지났을 뿐이어서 사방은 먹물 속 같다. 그때 시종이 서둘러 청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대감, 전(前) 섭정께서 오셨습니다. 에미시를 이곳에서는 그렇게 불린다. 곧 소가 에미시가 청으로 들어섰다. 이루카의 인사를 받은 에미시가 중신들과 함께 청 안에서 마주보고 앉는다. 분위기가 어두웠고 서두르고 있다. 에미시가 묻는다. 들었느냐? 예, 그래서 아버님께 가려던 중입니다. 이루카가 눈썹을 모으고 에미시를 보았다. 백제방이 신라소를 멸망시켰습니다. 아버님. 김부성이 도망쳤지만 곧 잡힐 것이다. 신라소 측에 붙었던 호족들도 이번에 다 죽은 것 같습니다. 그놈들은 우리한테도 불만을 품은 무리들이니 잘 된 거다. 아버님, 백제방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까요? 그 여세를 몰아서. 그래서 내가 온 것이야. 입맛을 다신 에미시가 지그시 이루카를 보았다. 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예? 저는. 백제방 계백은 상승 장군이다. 대야성 김품석을 죽이고 연개소문과 의형제를 맺었다는 소문이 난 용장이야. 더구나 안시성에서는 당황제의 눈알 하나를 빼놓았다. 자, 너는 계백을 어떻게 할 것이냐? . 내일 날이 밝으면 백제방에 왜국 호족들이 구름처럼 몰려올 것이다. 오늘밤에 죽은 호족 놈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충성을 맹세하겠지. . 왜국 군병의 수문은 백제군을 이끄는 계백의 눈에는 원숭이 무리로 보일 것이다. 자, 네 복안을 듣자.

  • 문학·출판
  • 기고
  • 2018.10.16 19:44

[불멸의 백제] (199) 10장 백제령 왜국 15

선두에 서서 마당으로 뛰어든 기마군은 조장(組長) 조무다. 이미 대문 앞에서 신라군 둘을 베고 달려온 터라 장검에는 피가 묻었고 피가 튄 갑옷에 말도 흥분한 상태다. 그때는 마당에 서있던 박경이 마루 위로 뛰어올라가 소리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놈! 말을 내달리면서 조무가 소리쳤다. 조무는 칠봉산성 아래의 개울가가 고향이다. 어려서부터 힘이 장사여서 군사로 뽑혔다가 계백이 칠봉성주가 되었을 때부터 전장(戰場)에 따라나왔다. 계백과 함께 대야성 싸움, 수군항, 안시성까지 종군을 했다가 지금은 왜국에 와있다. 그 짧은 순간에 조무는 마루 위에 선 박경을 보았고 다음 순간 들고 있던 장검을 번쩍 치켜들었다가 내던졌다. 말이 마루 위로 뛰어오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급했다. 전장에서는 임기응변이 가장 중요하다. 수십 번 아수라장 같은 전장을 겪은 터라 조무는 땅바닥에 누워 죽은 척을 한 적도 있다. 손에 쥔 장검이 날아갔다. 손잡이 무게가 더 나갔지만 박경과의 거리는 10보, 거기에다 말이 두 걸음을 더 딛는 바람에 5보로 가까워졌다. 순식간에 판단한 것이다. 그 사이에 장검이 날아갔다. 손잡이 무게로 금방 한 바퀴 돈 장검의 끝이 박경의 가슴에 박힌 것은 눈 깜빡할 시간도 안되었다. 박경은 비명도 못 지르고 장검이 가슴 깊숙하게 박힌 채 뒤로 벌떡 넘어졌을 때다. 조무가 탄 말이 달리는 기세를 멈추지 못하고 마루 끝에 걸려 앞으로 넘어졌다. 그 서슬에 조무도 마루 위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때 조무의 조원 서너명이 그것을 보고 소리쳤다. 적장을 죽였다! 다음 순간 선봉군이 마당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화청이 이끈 선봉군이다. 그 다음부터는 도살이다. 쫓고 쫓기는 자들만 있을 뿐 대항해서 싸우는 광경은 보기 힘들었다. 전장(戰場)이 그렇다. 기세를 타면 일당백이 되고 사기가 떨어지면 1백명이 1명을 못 당한다. 수십명을 한명이 쫓기도 한다. 겁에 질리면 적이 거인으로 보이고 사기가 오르면 적이 좁쌀 만하게 보이는 것이다. 순식간이다. 화랑 석촌은 분전하다가 백제군 셋을 죽였지만 창에 찔려 분사했다. 화랑 하광은 도망치다가 백제군에게 난도질을 당했는데 머리통을 베어든 백제군사는 장수를 베었다고 소리치지도 않고 내동댕이쳐 버렸다. 왜군 장수 아리타는 신라소로 들어오려다가 백제군을 맞자 그대로 도주했는데 방향이 틀렸다. 그래서 백제 본군(本軍)과 마주쳐 말발굽에 밟혀 죽었다. 마사시는 싸우려고 허둥대다가 창에 찔려 죽었으며 신라소를 지키는 일을 맡은 이또는 마루 밑에 숨었다가 다리부터 잡혀 끌려나와 목이 잘렸다. 김부성이 없습니다. 밥 한 그릇 먹을 시간을 한식경이라고 한다. 밥 한 그릇하고 다시 절반쯤 먹었을 시간이 지난 후에 화청이 계백에게 보고했다. 화청의 흰 수염이 붉은 색으로 물들어져 있다. 피가 튀었고 피 묻은 손으로 수염을 쓸었기 때문이다. 신라소의 마당 안이다. 사방은 시체로 뒤덮여 있었는데 신라인은 전멸했다. 그런데 신라소의 수장(首長) 김부성의 시신을 찾지 못한 것이다. 그때 하도리가 왜인 하나의 뒷덜미를 잡고 끌고 왔다. 장군, 김부성이 화랑 아성과 함께 아스카항으로 도망쳤다고 합니다. 하도리가 소리쳐 보고했다. 이놈이 따라가지 못하고 잡혔답니다. 그때 계백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누가 가서 잡겠느냐? 마치 사냥꾼을 찾는 것 같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10.15 20:29

[불멸의 백제] (198) 10장 백제방 왜국 14

계백이 이끄는 3백 기마군은 정예다. 그 중 절반 이상이 계백을 따라 안시성에 다녀왔으며 그 중에는 대야성을 함께 친 무장(武將)도 있다. 나솔 화청이 그렇고 이제 11품 대덕 관등이 되어 비색 띠를 맨 하도리가 그렇다. 나솔 윤진은 수군항에서부터 심복이 된 무장이요, 장덕에서 나솔로 관등이 오른 백용문도 계백을 수행하고 있다. 백제 기마군은 10인 1조(組)를 조장인 16품 극우가 지휘한다. 앞장선 첨병으로 2개 조가 살같이 어둠 속을 내달렸는데 길 안내역으로 백제방 군사 둘이 끼어 있다. 그 뒤를 선봉을 맡은 화청이 수염을 휘날리며 1백기를 이끌었고 뒤를 중군 겸 본군(本軍)인 2백기가 계백을 중심으로 내달리는데 한 덩어리의 불덩이 같다. 땅이 울렸고 기수들의 살기(殺氣)가 전염된 전마(戰馬)는 머리를 젖혀 들고 콧바람을 세차게 뿜어낸다. 그 시간에 신라소 안에서는 김부성의 지휘 하에 출동 준비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 투석기와 충차, 마차에는 투석기용 바위를 가득 채웠고 기마군과 보군으로 나뉘어 제각기 점고를 받는 중이다. 신라군과 함께 출동할 왜군은 신라소 밖에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령이 수시로 왕래를 한다. 밤이 깊었지만 주위는 열기에 덮여 있다. 서둘러라! 이번 공격대의 대장 박경이 마당에 서서 소리쳤다. 횃불을 환하게 밝힌 마당은 군사들로 가득 차 있다. 대아찬, 아리타님이 이끈 왜군 150이 도착할 것이오! 화랑 석촌이 다가와 보고했다. 이또님의 군사는 서문으로 들어오도록 했습니다. 아리타의 왜군만 도착하면 바로 출동이다! 충차는 내보냈는가? 지금 나가고 있습니다! 그때 땅이 울렸기 때문에 박경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리타한테 말을 달리게 하지 말라고 전해라! 예, 대아찬. 석촌이 마당을 나갔을 때 박경이 혀를 찼다. 왜인들은 야습의 기본도 모른다.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 말굽 소리를 죽여야 한다는 것도 모른단 말인가? 말굽 소리가 더 커졌기 때문에 박경은 화가 났다. 전장(戰場) 경험이 많은 박경이 그것이 1, 2백기의 기마군의 말굽 소리라는 것을 알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아리타의 기마군은 몇이냐? 5, 60기라고 들었습니다. 뒤쪽에 있던 화랑 하광이 소리쳐 대답했다. 다가온 하광의 얼굴이 굳어졌다. 대아찬, 아리타군(軍)이 아닌 것 같소. 그, 그러면. 그때 말굽 소리가 와락 가까워지면서 땅이 흔들렸다. 그러나 인간의 소리는 둘리지 않았기 때문에 지진이 일어난 것 같다. 마당으로 군사들이 뛰어 들어오더니 그 중 서너명이 소리쳤다. 기마군이다! 그것이 어느 기마군인지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 그때다. 지척으로 다가온 말굽 소리와 함께 비명이 울렸다. 이미 신라소의 모든 문은 열어젖혀 놓았다. 출동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려는 상황인 것이다. 그때 비명과 함께 처음으로 함성이 울렸다. 와앗! 짧고 굵은 함성을 들은 순간 박경은 이를 악물었다. 백제군이다. 창으로 찌르는 것처럼 일직선으로 날아왔다. 그 순간 마당으로 기마군이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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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14 18:36

[불멸의 백제] (197) 10장 백제방 왜국 13

신라소에서 잡인의 출입을 금지 시킨 채 군병의 출동 준비를 했지만 소문은 딴 곳에서 새었다. 신라소와 동맹을 맺은 호족 마사시 일족에 끼어있던 병사 시로가 도망쳐나와 백제방에 뛰어든 시각이 해시(10시) 무렵, 시로는 왜인(倭人)으로 풍왕자가 신임하는 왜인 무장 아베와 동향 사람이다. 오늘밤 자시에 백제방을 기습할 것입니다. 병력은 대아찬 박경이 이끄는 6백이고 응원군으로 김부성이 군병 3백으로 뒤를 잇는다는 것입니다. 아베가 큰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아베의 옆에 선 시로가 말을 받는다. 박경에게 호족 아리타와 마사시가 왜인 군병을 모아 붙었고 김부성은 이또가 가담했습니다. 풍이 머리를 끄덕이며 계백을 보았다. 은솔, 나는 전쟁을 치러보지 못했다. 그대에게 맡긴다. 황공합니다. 계백이 풍에게 머리를 숙여 보이고는 벽에 선 덕솔 국연에게 물었다. 백제방 안에 병사가 몇이 있는가? 당장 전장(戰場)에 보낼 병사는 2백 남짓이오. 내가 3백을 데려왔으니 5백이야. 그만하면 되었다. 그때 아베가 나섰다. 은솔, 적은 박경의 6백에 김부성의 3백까지 9백이오. 지금 호족들에게 전령을 보내면 내일 오전까지 3천은 모을 수가 있습니다. 계백의 시선을 받은 아베가 말을 이었다. 그동안 아군은 백제방 안에서 방어를 하고 있는 것이 낫습니다. 백제방의 청 안이다. 이곳 청은 사방 1백자(30m) 규모로 붉은색 기둥에 대황초를 여러개 붙여 놓았다. 왜 왕궁의 청에 뒤지지 않는다. 청 안에는 20여명의 무장과 백제방 관리가 모여 앉아 있었는데 상석에 앉은 풍왕자의 바로 앞에 계백이 자리잡고 있다. 그때 계백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이것 보게, 아베. 예, 은솔. 신라군이 자시에 온다니 내일 낮까지는 우리가 방어를 한다는 말인가? 예, 은솔. 그것이 안전합니다. 고맙네. 숨을 들이켠 아베에게 계백이 말을 이었다. 그대의 왕자 전하를 위한 충정은 천년이 지나도록 기록되게 하겠네. 은솔, 과분하오. 아베가 큰 눈을 끔벅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베는 북규슈(北九世)의 호족으로 오래전부터 백제의 신민임을 자처했다. 충직한 데다 무용도 뛰어났기 때문에 풍은 왜인(倭人) 심복으로 삼아왔다. 다시 계백이 말을 이었다. 나는 기마군 3백을 이끌고 지금 곧장 신라소를 치겠네. 정공법이지. 아베, 그대는 남은 2백을 모아 왕자 전하를 지키도록 하게. 예, 은솔. 기세에 눌린 아베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대답했다. 자리에서 일어선 계백이 웃음띤 얼굴로 풍을 보았다. 전하, 입만 가지고 싸우는 김부성에게 대륙을 휘젓고 온 백제 기마군을 보여주고 오겠습니다. 숨을 들이켜면서 풍이 머리만 끄덕였다. 계백을 따라 무장들이 일어섰기 때문에 대황초의 불꽃이 흔들렸다. 계백이 청을 나갔을 때 풍이 아베에게 말했다. 아베, 이곳은 왜백제(倭百濟)다. 네 자손들에게도 대를 이어서 왜백제를 넘겨주어야 한다. 풍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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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11 19:19

[불멸의 백제] (196) 10장 백제방 왜국 12

내가 계백을 알지. 김부성이 말하자 청 안이 조용해졌다. 신라소 안, 청에는 10여명의 무장(武將)이 모여 있었는데 분위기가 무겁다. 밤, 술시(8시)가 지난 시간이어서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 놓았다. 신라소는 며칠전부터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지더니 지금은 2백여명의 군사가 상주하고 있다. 근처의 민가, 뒤쪽 골짜기 안의 마을에도 호족들의 준병이 대기하고 있다. 섭정이며 실권자인 소가 이루카가 통제를 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다. 지금은 권력의 공백상태다. 며칠전 왕비가 왜왕으로 즉위했지만 아직 기반이 굳혀지지 않은 것이다. 김부성이 먼곳을 보는 눈으로 무장들을 둘러보았다. 내 사촌 김품석이를 죽인 놈이지. 내 가문하고는 철천지 원수다. 김부성도 왕족이며 김춘추 하고도 먼 친척이 되는 것이다. 김부성이 말을 이었다. 이미 칼을 빼든 상태야. 서문사(西門寺)의 일이 우리 소행인줄로도 밝혀졌으니 앉아서 죽으나 서서 죽으나 마찬가지다. 대감. 앞에 앉은 무장이 나섰다. 계백이 이끌고 온 군병은 3백여명이라고 합니다. 배에서 내린지 얼마되지 않았을 테니 오늘밤 기습을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우리는 1천명 가깝게 됩니다. 계백이 도착하기 전에 백제방을 쳐서 오갈데 없는 신세로 만들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사내는 신라소의 2인자인 대아찬 박경이다. 박경이 말을 이었다. 대감, 저에게 군병을 맡겨주시면 오늘밤 백제방을 치고 결판을 내겠습니다. 내가 우유부단했다. 자책한 김부성이 박경에게 말했다. 소가 일족과 백제방과의 싸움을 붙이려고 골몰하다가 시간만 끌게 되었다. 그동안 군병을 더 모을 수는 있었지요. 위로하듯 말한 박경이 불빛을 받아 번들거리는 눈으로 김부성을 보았다. 대감, 결단을 내려주시오. 좋다. 김부성이 마침내 머리를 끄덕였다. 대아찬, 그대가 화랑 석춘과 아광을 부장으로 삼고 호족 아리타와 마사시의 군병 6백을 이끌고 오늘밤 백제방을 쳐라. 치는 시각은 자시(12시)다. 삼가 명을 받들겠습니다. 어깨를 편 박경이 소리쳐 대답했다. 기밀이 새나가지 않아야 할테니 지금부터 잡인의 출입을 통제 시키겠습니다. 나는 화랑 아성과 호족 이또의 군병 3백을 이끌고 지원군을 맡을 테다. 그대 뒤를 따라 응원을 할 테니 서둘러라. 예옛. 힘차게 대답한 박경이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모두 살기를 띤 얼굴이다. 무장들이 청을 나가자 김부성의 옆으로 화랑 아성이 다가와 섰다. 아성은 22세, 역시 진골(眞骨)가문의 왕족이며 김부성의 친척이다. 대감, 백제방을 태우고 왕자 풍과 계백까지 죽이고 나면 왜왕이 신라소를 인정해줄까요? 왜왕보다 소가 가문이 먼저 우리와 제휴하게 될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선 김부성이 흐려진 눈으로 아성을 보았다. 소가씨는 백제계지만 이제 백제로부터 벗어나 왜국을 지배하려는 것이지, 우리는 소가씨의 앓는 이를 빼주는 셈이 될 것이야. 발을 뗀 김부성이 뒤에 아성 혼자만 따르자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잇는다. 아성, 아스카만에 전함 2척만 대기 시켜라. 만일의 경우에 대비 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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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10 19:48

[불멸의 백제] (195) 10장 백제령 왜국 11

계백이 아스카에 도착했을 때는 왜왕 즉위식이 끝난 지 닷새가 지났을 때다. 전선(戰船) 3척에 3백 정예군을 싣고 도착한 계백은 백제방으로 들어가 풍왕자에게 신고를 했다. 은솔 계백이 왕자 전하를 뵙습니다. 잘 왔어. 풍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계백을 맞는다. 손을 들어 앞쪽 두 걸음 거리에 계백을 앉게 한 풍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말로만 듣던 용장을 보게 되는구나. 황공합니다. 둘러앉은 중신들도 밝은 분위기다. 모두 계백의 명성을 들어 아는 것이다. 몸은 왜국에 있어도 수시로 본국에서 오는 쾌선의 전령과 오가는 사신을 통해 정세를 듣기 때문이다. 풍은 의자의 동생으로 38세, 왜국 생활이 10년이 넘은 데다 전에는 대륙의 담로에서 태수를 지냈다. 견문이 넓고 역사에 밝다. 풍이 입을 열었다. 은솔, 그대는 역사(歷史)의 진실을 알고 있느냐? 모릅니다. 전하. 그러자 풍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그대가 지금은 대륙과 본국은 물론 왜국에까지 명성을 떨치는 명장(名將)이지만 훗날 네 기록이 모두 사라질 수도 있다. 알고 있느냐? 예, 전하. 계백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이지요. 승자에 의해 조작되고 묻혀 버린다. 멸망한 왕조는 악(惡)이 되고 정복한 지배자는 선이다. 예, 전하. 명심해라. 대백제의 지금 융성이 잘못되었을 때는 온갖 조작으로 덮어씌워 질 것이니. 예, 전하. 그때에는 네 명성도 죽을 때 한두줄의 기록으로만 남겨지겠지. 명심하겠습니다. 전하. 어깨를 편 계백이 정색하고 풍을 보았다. 교활하고 비굴한 악인의 손에 역사를 맡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면서 쾌선 전령에게서 들었습니다만 백제방 관인들이 습격을 당한 일부터 처리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가 오기를 기다렸다. 풍의 눈빛이 강해졌고 둘러앉은 중신들도 숨을 죽였다. 숨을 고른 풍이 입을 열었다. 신라소의 김부성이 나를 치려고 한 것이다. 덕솔 진겸과 수행원이 나 대신으로 몰사를 했다. 소가 가문에 혐의를 씌웠다고 들었습니다만. 소가가 권력욕이 강하나 백제인이다. 백제를 등질 위인은 아니다. 먼저 신라소를 쳐서 몰사를 시키지요. 여왕께서도 나한테 맡기셨다. 정색한 풍이 말을 이었다. 김부성도 네가 온다는 것을 알고 대비하고 있었다. 풍의 시선이 옆쪽에 앉은 덕솔 윤환에게로 옮겨졌다. 덕솔, 네가 말하라. 예, 전하. 40대쯤의 덕솔 윤환이 계백과 풍의 중간쯤에다 시선을 두고 말했다. 김부성은 신라에 우호적인 호족들로부터 용병을 얻었습니다. 지금 신라소 근처에 모인 용병이 5백명 가깝게 되어서 민심이 흉흉합니다. 그때 풍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놈들은 소가 가문에 뒤집어씌우려던 혐의가 발각되자 발악을 하는 것이다. 김부성은 신라에서 김춘추가 실권자로 부상하자 용기도 일어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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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09 17:57

[불멸의 백제] (194) 10장 백제방 왜국 10

알았다. 소가 에미시의 편지를 읽은 풍이 시선을 들고 말했다. 앞에는 에미시의 중신(重臣) 오다가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 백제계인 소가 가문에서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황공합니다. 왕자 전하. 오다 또한 백제 유민으로 둘은 백제어로 말하고 있다. 50대의 오다가 머리를 들고 풍을 보았다. 전하, 왜국의 부리는 백제계입니다. 소가 가문이 왜국에서 이만큼 기반을 굳힐 수 있었던 것도 백제방 덕분입니다. 백제방을 습격하려는 발상을 낸 것은 우리 백제계의 의식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족속들의 소행입니다. 네 말이 맞다. 머리를 끄덕인 풍의 표정이 엄격해졌다. 덕솔 진겸 이하 12명의 수행원이 몰사를 했다. 놈들은 내가 궁에서 나오는 줄 알고 나를 노렸던 것인데 진겸이 대신 죽었다. 오후 술시(8시) 무렵, 백제방의 청 안은 숨소리도 나지 않는다. 둘러앉은 중신들도 비장한 표정이다. 풍의 말이 청을 울렸다. 어젯밤 본국에서 쾌선을 타고 온 전령의 서신을 읽었다. 신라왕 덕만이 비담의 반란을 진압하는 도중에 살해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수단이 이번에 우리를 습격한 것과 유사하구나. 암살을 하고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수단이 말이다. 오다는 눈만 치켜떴다. 바다 건너 소식은 백제방이 훨씬 빠를 것이다. 풍의 말이 이어졌다. 신라는 비담의 반란을 겨우 진압하고 새 여왕 승만이 즉위했다. 김춘추는 승만의 뒤에서 조종하는 섭정 역할이 되어서 권력을 장악했다. 풍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김춘추의 계략대로 된 것이지만 백제와 신라와의 합병은 멀어진 대신 신라는 당의 신하국으로 더욱 매달리게 될 것이다. 예, 전하. 이럴 때일수록 왜국은 하나가 되어서 신라의 모략에 대비해야 될 것이라고 소가 대신에게 전하라. 예, 전하. 풍이 머리를 끄덕이자 오다가 절을 하고 청을 나갔다. 그때 청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위사장이 보고했다. 전하, 예인 동복이 살아 돌아왔습니다. 무엇이? 놀란 풍이 상반신을 세우더니 물었다. 서문사에서 실종되었던 동복이 말이냐? 예, 전하. 불러라. 청 안이 술렁거렸고 곧 위사장이 초췌한 모습의 관리 하나를 대동하고 청에 올랐다. 예인 동복이다. 동복은 지난밤에 진겸과 함께 백제방으로 돌아오다가 기습을 받았던 것이다. 일행은 몰사했지만 동복 한명만 실종되었었다. 청에 엎드린 동복은 40대의 예식 관리다. 풍이 정색하고 물었다. 어떻게 살았느냐? 덕솔이 서문사 안으로 피하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래서. 습격자는 보았느냐? 모두 검은 옷에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눈만 보았지만 목소리는 들었습니다. 누구 목소리냐? 신라인이었습니다. 동복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풍을 보았다. 덕솔이 하나라도 살아남아서 습격자가 신라인이었다는 것을 전하께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청 안에 살기가 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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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08 19:24

[불멸의 백제] (193) 10장 백제방 왜국 9

왕실의 사신이 여왕의 즉위를 통보했을 때 소가 이루카가 먼저 옆에 앉은 아버지 소가 에미시를 보았다. 오후 신시(4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이니 그 시간의 왕실에서는 여왕과 풍이 마주 앉아 있을 것이었다. 여왕이 즉위하셨단 말이지? 에미시가 잠자코 있었기 때문에 이루카가 사신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이루카의 저택 청안이다. 청에는 가신(家臣) 50여 명이 정연하게 늘어앉아 있었는데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예, 백제방의 풍왕자께서 대관식의 증인이 되셨습니다. 이루카가 입을 다물었다. 왜왕 즉위식에는 백제방 방주가 증인이 되어 주관해왔다. 백제방 방주가 증인이 되어야 왕위에 오르는 것이다. 왜왕이 백제계가 된 지 2백여 년, 그것이 관습이다. 대관식에 결격 사유가 없었기 때문에 이루카는 외면했다. 경축한다는 말도 아직 뱉지 않았다. 그때 에미시가 말했다. 여왕께 축하드린다고 전해주게. 소가 가문이 충성을 다해서 여왕을 모시겠다는 말도 전해주게. 예, 대감. 그리고 곧 소가 가문에서 예물을 보내 드릴 것이라고 전해주게. 알겠습니다, 대감. 에미시는 72세, 30여 년간 섭정을 지내다가 3년 전 이루카에게 섭정직을 물려주었지만 아직도 정정하다. 사신이 청을 나갔을 때 에미시가 둘러앉은 가신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물러가라. 내가 섭정과 둘이 이야기할 것이 있다. 거침없다. 가신들이 두말 못하고 순식간에 썰물 빠지듯이 나간 청에는 둘만 남았다. 검게 반들거리는 마룻바닥 끝 쪽에 경호무사 둘이 석상처럼 서 있을 뿐이다. 그때 에미시가 주름진 눈을 더 가늘게 뜨고 이루카를 보았다. 어젯밤에 서문사 앞에서 풍왕자 일행을 쳤느냐? 그런 일 없습니다. 거침없이 대답한 이루카가 똑바로 에미시를 보았다. 요즘 백제방의 풍왕자와 갈등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제 뿌리를 파헤치는 그런 짓은 안합니다. 그렇다면 신라방 놈들이군. 에미시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김춘추 족속들의 교활함은 가끔 제 위주로 사물을 판단하지. 무슨 말씀입니까? 그놈들은 현장에 우리 가문이 찍힌 갑옷조각, 허리띠를 두고 갔다. 우리가 풍왕자를 기습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였다. 그렇습니까? 놀란 이루카가 눈을 부릅떴다. 저는 풍왕자 일행이 요즘 아스카에서 돌아다니는 야적들의 습격을 받은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너는 연못에서 키운 고기 밖에 안 되는 거야. 눈을 부릅뜬 에미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5척 단구였지만 몸에서 풍기는 위압감에 이루카는 숨을 죽였다. 지금 당장 중신(重臣)을 보내 풍왕자에게 어젯밤의 일을 해명해라. 내가 편지를 써 줄테니 그 편지도 갖고 가도록 해라. 예, 아버님. 얼굴을 붉힌 이루카가 에미시를 보았다. 그리고 당장 군사를 보내 신라소를 몰살시켜 버릴까요? 놔둬라. 에미시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것은 백제방의 처분에 맡기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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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07 19:17

[불멸의 백제] (192) 10장 백제령 왜국 8

무엇이? 다 죽었어? 놀란 풍의 외침이 청을 울렸다. 오전 묘시(6시), 왕궁의 접객소 안, 백제방에서 달려온 한솔 해두가 풍 앞에 엎드려 있다. 비를 맞고 달려온 바람에 옷에서 물이 떨어진다. 예, 덕솔 진겸과 장덕 윤판을 포함해서 모두. 누구냐? 현장에 이것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해두가 풍 앞에 뜯어진 어깨 갑옷과 허리끈, 머리띠를 펼쳐 놓았다. 눈을 치켜뜬 풍이 어금니를 물었다. 모두 소가 가문의 운장이 박혀있는 것이다. 소가 이루카의 부하들이다. 이놈들이. 어깨를 부풀렸던 풍이 해두를 보았다. 시신은 모두 수습했느냐? 예, 적은 한구도 남기지 않고 가져갔습니다. 그랬겠지. 덕솔 장덕 이하 시신 12구는 방의 창고에 일단 모셔 놓았습니다. 잠깐. 풍이 해두의 말을 막았다. 12구라고 했느냐? 예, 왕자 전하. 일행은 진겸 이하 12명이 아니냐? 예, 한명은 서문사 영내에서 피살된 것 같은데 아직 시신을 찾지 못했습니다. 누구냐? 예, 예식을 주관한 예인(禮人) 동보입니다. 찾아라. 예, 왕자 전하. 놈들은 나를 노리고 있었다. 예, 그래서 덕솔 자성이 방(方)의 군사 1백명을 이끌고 소인과 같이 왔습니다. 어쨌든 오늘 오전에 대관식이 열릴 것이다. 어깨를 편 풍의 두눈이 번들거렸다. 여왕의 즉위식이 열린 곳은 왕궁의 왕의 위패를 모신 사당 안이었다. 사당 안에는 백제식으로 제단이 차려졌고 백제식 관복을 갖춘 궁(宮)의 관리들이 도열해 서 있었는데 여왕이 왕좌에 앉아서 제사장인 왕사(王師)로부터 왕관과 옥쇄를 받는 것으로 끝났다. 죠오메이 왕에 이어서 여왕 고교쿠(皇極)의 시대가 된것이다. 여왕은 대관식에 백제방 방주인 풍왕좌와 왕궁 관리들만 참석시켰는데 왕실의 전통이다. 호족이나 영주들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시위이기도했다. 다만 섭정인 소가 이루카를 부르지 않은 것이 걸렸지만 대관식이 끝나자마자 여왕의 사신을 보내 통보를 했다. 여왕과 풍이 접견실에서 마주 앉았을 때는 오후 신시(4시)무렵이다. 풍이 말씀드릴 것이 있다고 했지만 여왕이 먼저 인사를 했다. 왕좌께서 고생하셨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여왕께서 건강하시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나는 왕위를 왕자께 물려드릴 작정이요. 그래야 정국이 안정될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백제 대왕이 계신데 그럴 수는 없습니다. 허락을 받아야지요. 정색한 풍이 여왕을 보았다. 실은 어젯밤 백제방으로 돌아가던 덕솔 진겸 이하 10여명의 백제방 관리가 기습을 받아 몰사했습니다. 놀란 여왕이 숨을 들이켰을 때 풍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졌다. 놈들은 내가 백제방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던 것이지요. 내 대신 덕솔 진겸이 죽은 셈입니다. 누구 소행입니까? 현장에 소가 가문의 장식이 어지럽게 떨어져 있었다는데 전상자를 깨끗히 거둬간 놈들이 흔적을 남긴 것이 수상합니다. 여왕이 머리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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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04 19:27

[불멸의 백제] (191) 10장 백제령 왜국 7

밤, 자시(12시)가 지나자 흐린 날씨에 빗방울이 한두점씩 뿌리기 시작했다. 어둠속에 서문사(西門寺)의 대문 기둥이 흐리게 보였을 때 진겸이 말했다. 서둘러라. 빗발이 굵어진다. 말고삐를 쥔 진겸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따르는 시종은 12명, 그중 경호무사는 여섯, 여섯은 이번 왜왕 조오메이 장례식을 거들고 돌아가는 백제방 문관(文官)들이다. 장례식도 백제식으로 치렀기 때문에 백제방이 기인(技人), 예인(禮人)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때 옆을 따르던 장덕 윤판이 말했다. 덕솔, 금방 쇠 부딪치는 소리가 났소. 쇠? 머리를 든 진겸이 어둠속에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칼 말인가? 매복이 있는 것 같소. 윤판의 눈 흰창이 번들거리고 있다. 이쪽은 모두 기마로 이동한다. 앞에 경호무사 넷이 둘씩 나란히 서서 길을 텄으며 뒤에는 기인, 예인 여섯과 경호무사 둘이 맨 끝을 따르는 대형이다. 윤판은 38세, 백제방에 온지는 2년이나 20년 동안 전장(戰場)을 누빈 역전의 무장이다. 오감(五感)을 이용하여 살기(殺氣)를 정확하게 느낄 수가 있다. 진겸은 43세, 전시(戰時)의 관리였으니 대응력이 빠르다. 말에 박차를 넣으면서 낮게 소리쳤다. 돌파하라! 그순간 윤판이 허리에 찬 장검을 빼들면서 박차를 넣었고 소리쳤다. 매복이다! 따르라! 놀란 앞쪽 경호무사 넷이 박차를 넣었지만 진겸과 윤판이 맨 앞에 선 꼴이 되었다. 그 뒤를 12명의 시종이 따른다. 그때다. 옆을 따르던 윤판이 먼저 낮은 신음을 뱉었다. 화살이 날아와 옆구리에 박힌 것이다. 몸을 숙여라! 화살이다! 그러나 윤판이 말등에 몸을 붙이면서 소리쳤다. 숲에서 쏜 화살이다. 숲속의 길이라 거리는 5, 6보 밖에 되지 않는다. 서문사 앞까지! 진겸이 칼을 치켜들고 있었지만 적은 보이지 않는다. 순식간에 서문사 앞까지 내달린 진겸이 말고삐를 채어 말을 세웠다. 이곳에서도 다시 숲길을 빠져 나가야 한다. 그때 다가온 윤판이 말에서 뛰어내리면서 소리쳤다. 덕솔! 제가 이곳에서 막을 테니 어서 절 안으로! 장덕! 다쳤는가? 그 사이에 일행이 절의 대문 앞에 모였는데 수행원이 네명 줄었다. 경호무사 둘에 기인이 둘 낙오한 것이다. 무사 하나가 발길로 절의 대문을 차면서 소리쳤다. 하나는 칼로 문을 내려쳤다. 그때다. 앞쪽 길에서 검은 옷차림의 사내들이 쏟아져 왔는데 10여명이다. 그리고 뒤쪽에서도 5, 6명이 달려오고 있다. 이놈들, 분명히 신라놈들일 것이다. 눈을 치켜뜬 진겸이 소리쳤다. 잘 들어라! 너희들 중 하나는 꼭 살아서 왕자께 보고를 해라! 진겸이 칼을 고쳐 쥐면서 다시 외쳤다. 이놈들은 왜인 시늉을 하고 있지만 신라인이다! 신라인이 기습했다는 것을 알려라! 그순간 화살이 쏟아졌다. 먼저 소리친 진겸의 가슴에 화살 2대가 박히더니 윤판의 몸에도 다시 화살이 박혔다. 그때 서문사 정문이 열리면서 서너명의 경호무사, 기인, 예인이 쏟아져 들어갔다. 쳐라!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어둠속에서 외침이 울렸다. 습격자의 외침이다. 바로 신라어다. 그리고 백제어, 고구려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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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03 19:04

[불멸의 백제] (190) 10장 백제령 왜국 6

잡찬 김부성은 김춘추의 친척이다. 왜국에 온지는 3년, 그동안 꾸준히 왜왕실 관리들의 환심을 사 놓았지만 백제방(百濟方)의 위세를 당할 수는 없다. 백제방은 2백년이 넘는 기간 동안 존속해 왔을 뿐만 아니라 왜왕실 또한 백제계인 것이다. 백제 왕실과 마찬가지로 수백년 간 이어져왔기 때문에 신라는 아스카에 신라소(新羅所)라는 이름으로 저택 하나를 빌려 20여명의 상주 인원을 두고 있을 뿐이다. 백제방은 궁성 근처에 성 같은 대저택에서 왕자를 방주(方主)로 삼고 왜왕과 함께 왜국을 통치하는 상황인 것이다. 더구나 왕실의 주요 대신은 물론이고 지방 영주 대부분이 백제계였으니 신라소는 사신 영접이나 무역거래를 돕고 있을 뿐이다. 김부성이 박치수를 불렀을 때는 해시(오후 10시) 무렵이다. 신라소 안쪽 내실에서 둘이 마주앉았을 때 김부성이 말했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야. 왕후가 왕위를 잇는 것을 망설이고 있는 데다가 소가 이루카는 이 기회에 왜왕이 되려고 하거든. 그렇게 되면 왜국은 소가 가문에게 넘어가고 백제와는 원수가 되는 것이지. 불빛을 받은 김부성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김부성이 말을 잇는다. 그러면 이루카는 신라한테 매달리게 되지 않겠나? 백제는 왜국을 잃는 거야. 그때 박치수가 물었다. 대감, 지금 풍이 왕궁에 들어가 있습니다. 아마 왕후께 대관식을 치르라고 조르고 있지 않을까요? 아직 나오지 않았어. 김부성이 눈썹을 모으고 박치수에게 말했다. 아찬, 10명을 데리고 가서 풍을 치도록 하게. 지금 말씀이오? 풍이 아직 궁에서 나오지 않았다니 지금 달려가 길목에서 기습하는 거야. 대감, 풍은 10여 명의 위사를 끌고 다닙니다. 10명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렇다면 내 호위병 10명을 더 떼어줄 테니까 20명으로 하지. 예, 풍을 베고 현장에 이루카 대신의 경호병들의 흔적을 남겨놓지요. 옳지. 김부성이 머리를 끄덕이며 웃었다. 과연 그대는 칼솜씨만큼 지모도 뛰어난 무장이다. 만일에 대비해서 모두 이루카군(軍)의 복장을 하고 전상자는 현장에서 치우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박치수는 거구다. 6척 장신에 허리에는 장검을 찼는데 화랑 출신의 무장이다. 내실을 나온 박치수가 부관 석필을 부르자 어둠 속에서 사내 하나가 소리없이 다가왔다. 검은 옷을 입어서 얼굴만 드러났다. 부르셨습니까? 지금 대감의 경호병 10명까지 합쳐서 20명으로 백제방주 풍을 친다. 박치수가 낮게 말하자 석필이 숨을 들이켰다. 길목에서 기습합니까? 아직 궁에서 나오지 않았다니 서문사(西門事) 앞길이 좋겠다. 숲속인 데다 길이 좁지 않으냐? 앞뒤에서 막고 쳐야 합니다. 좌우 숲에 매복시킨 기습대가 풍을 죽여야 한다. 내가 숲에서 직접 풍을 치겠다. 오늘 왜국의 존망이 결정되겠습니다. 이루카가 왕위에 오르면 일등공신은 우리가 되는 것이야. 박치수가 어깨를 부풀렸다. 검객으로 명성을 떨쳐온 박치수다. 지금까지 검술시합에서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박치수다. 어느새 석필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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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02 19:38

[불멸의 백제] (189) 10장 백제령 왜국 5

마마, 망설이시면 왕가(王家)가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풍이 말하자 왕후가 머리를 들었다. 수심이 덮인 얼굴이다. 왕궁의 내전 안, 풍은 잡인의 출입이 금지된 내전 안까지 들어와 있다. 오후 미시(2시) 무렵, 죠오메이 왕의 장례가 끝난 지 사흘이 되었지만 왕후는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왕궁의 내대신(內大臣)으로부터 왕관만 받아 쓰는 의식만 치르면 되는 일이다. 풍이 말을 이었다. 마마, 소가 일족이 이 기회를 노리고 왕위를 찬탈할 것입니다. 그럴 명분이 있소? 왕후가 겨우 물었을 때 풍이 상반신을 기울였다. 내전에는 시녀까지 물리치고 둘뿐이었지만 풍이 목소리를 낮췄다. 소가는 이제 백제인이 아닙니다. 소가 가문이 대를 이어서 왕실과 인연을 맺고 섭정을 50년 가깝게 이어서 해온 터라 새로운 왕가(王家)를 세워도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젯밤 본국에서 보낸 쾌선이 먼저 도착했습니다. 열흘 후에는 대왕께서 보낸 은솔 계백이 정병 3백을 이끌고 이곳에 옵니다. 어서 왕위에 오르시고 그때까지만 버티시지요. 어젯밤에도 이루카가 보낸 밀사가 궁의 좌대신 마에다를 만났다고 합니다. 대신들이 이루카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음모인 것 같습니다. 그때 왕후가 머리를 끄덕였다. 내일 왕위에 오르겠소. 왕자께서 준비를 해주시오. 제가 궁 안에 머물면서 준비를 하겠습니다. 풍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이루카는 저만 없애면 왕위를 찬탈할 수 있다고 믿고 있거든요. 저도 이곳에서 마마를 지키는 것이 안전합니다. 소가 가문은 백제에서 건너온 목협만치(木협滿致)가 시조다. 소가만치로 개명한 후에 소가 가문은 왜국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왜국의 첫 기틀을 세운 쇼토쿠 태자(聖德太子)의 어머니는 소가 노우마코의 생질녀다. 그때부터 소가 가문은 쇼토쿠와 함께 왜국의 법을 제정하고 문화를 장려했는데 호류사 등 40여 개의 절을 세웠다. 호류사의 금당 벽화도 그때 고구려에서 건너간 담징이 세운 것이다. 쇼토쿠가 죽자 유일한 섭정이 된 소가 노우마코는 왜국의 실세가 되었으며 그 후부터 50년 간 그 아들 소가 에이시, 소가 이루카까지 권력이 승계된 것이다. 내궁을 나온 풍이 밖에서 기다리는 덕솔 진겸에게 말했다. 덕솔, 왕후께서 내일 왕위에 오르시겠다고 했다. 잘 되었습니다. 진겸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루카도 주춤할 것입니다. 선왕의 유언을 집행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은밀히 방해를 할 테니 내궁 안의 관리들만 모아놓고 왕위에 오르시도록 할 작정이다. 이루카에게는 알리지 않으신단 말씀입니까? 에미시한테도 알리지 않겠다. 왕위에 오른 후에 통보를 하지. 알겠습니다. 나는 내궁에 머물면서 대관식 준비를 할 테니 장덕 연홍과 의식을 도울 관리들을 보내라. 예, 왕자 전하. 진겸이 말을 이었다. 호위병 50을 남겨두고 가겠습니다. 이제 본국에서 은솔 계백님이 오시면 불안한 상황이 종결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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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01 19:36

[불멸의 백제] (188) 10장 백제령 왜국 4

부친 에미시와 헤어져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온 이루카가 중신들에게 말했다. 소가 가문이 왜국에 집권한 지도 1백년이다. 그중 50년간은 왜국 왕의 섭정으로 통치했다. 이만하면 때가 된 것이 아니냐? 거침없는 언행이다. 청 안이 조용해졌다. 이루카의 저택은 규모가 부친 에미시의 저택을 능가한다. 성벽 같은 담장이 내성, 외성 구분으로 두 겹으로 둘러쳐졌고 저택 안에 주둔한 사병(私兵)은 2천명이나 된다. 마치 궁성이나 같다. 그때 중신 아베가 나섰다. 40대 중반의 아베는 대를 이어서 소가 가문에 충성한 호족가문이다. 대감, 백제방에서 본국으로 밀사가 떠난 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이곳 정세를 보고했을 테니 대비를 해야 됩니다. 무슨 대비 말이냐? 이루카가 묻자 아베가 주위부터 둘러보고 대답했다. 아스카 주위에 왕실파 백제방에 불만을 품은 호족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자들은 기회만 오면 원한을 갚으려고 합니다. 모두 숨을 죽인 것은 아베의 의중을 알기 때문이다. 그때 이루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방법이 있느냐? 신라가 보낸 밀사단에 검객이 끼어 있다고 합니다. 누구한테 들었느냐? 신라의 밀사 잡찬 김부성한테서 직접 들었습니다. 그자가 너에게 그 말을 해준 속마음이 무엇일까? 백제방의 고관이나 백제방의 수족이 되어 있는 왕실 관리들을 처치하는데 써달라는 뜻이겠지요. 교활한 놈들이지만 쓸모는 있군. 대감, 왕위가 왕후에게 넘어가도록 놔두실 겁니까? 이번에는 또 다른 중신 아소가 물었기 때문에 이루카가 보료에 몸을 기댔다. 조금 전에 부친 에미시 앞에서 말을 꺼냈다가 꾸중만 들었던 것이다. 이루카의 중신들은 모두 이루카와 생각이 같다. 이윽고 이루카가 입을 열었다. 백제 본국에서 어떤 대처 방안이 나올지 모르지만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겠다. 이루카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내 조상은 백제계지만 왜국에까지 와서 백제왕의 신하가 되지는 않겠다. 모두 숨을 죽였고 이루카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왜국에서 대권을 장악한지 어언 1백년 가깝게 되는데도 우리가 백제방 휘하에서 지내야 한단 말이냐? 지당하신 말씀이오. 아베와 아소가 동시에 말했다. 이번에 독립을 해야 됩니다. 아베, 신라의 밀사를 만나라. 이루카가 말하자 아베가 상반신을 기울였다. 예, 주군. 만나겠습니다. 풍왕자는 왕궁에 갈 때 동화(東和寺) 앞을 지난다고 알려줘라. 예, 주군. 요즘은 왜왕이 죽었기 때문에 매일 왕궁에 갈 것이다. 예, 주군. 대답한 아베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이루카를 보았다. 신라 밀사는 그 보상을 바랄 것입니다. 어떻게 말해줄까요? 백제방이 무력해지면 신라와 당이 만세를 부르겠지. 그래, 신라인 몇 명을 관리로 임명해주겠다고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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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9.30 19:26

[불멸의 백제] (187) 10장 백제령 왜국 3

풍왕자가 덕솔 진겸을 불렀을 때는 오후 미시(12시)무렵이다. 풍왕자는 방금 왕궁에 들렸다가 나온 것이다. 덕솔, 어젯밤 왜왕이 돌아가셨다. 예엣! 놀란 진겸이 풍을 보았다. 백제방 방주 풍은 거의 매일 왜왕을 만난다. 조오메이는 병약했지만 갑자기 죽을지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풍이 말을 이었다. 왜왕께서 미리 유언으로 왕후에게 왕위를 이양한다고는 했지만 소가씨가 가만두지 않을 것 같다. 본국에서 곧 지원해주실 것입니다. 진겸이 위로하듯 말했다. 본국에 왜국 상황을 알리는 밀사가 급히 떠난 것이 한달 전이다. 백제방은 왜 왕실과 직결되어 있어서 왕가(王家)는 모두 백제 왕실과 혈연관계로 이어져 왔다. 그리고 대신들도 백제계가 많아서 섭정 역할을 맡은 소가 에미시와 그 아들 소가 이루카도 백제계인 것이다. 풍이 길게 숨을 뱉었다. 왕후를 만나고 왔는데 왕위를 사양하고 싶어하셨어. 왕자 전하. 진겸이 목소리를 낮추고 풍을 보았다. 백제방의 청 안이다. 넓은 청 안에는 그들 둘뿐이었지만 진겸이 낮게 물었다. 전하, 이번 기회에 차라리 왜왕 왕위를 이어 받으시지요. 나라의 평안을 위해서는 그것이 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왕위에는 미련이 없다. 소가씨가 왕이 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소가씨는 당의 첩자 뿐만이 아니라 신라 첩자도 만나고 있습니다. 전하. 여왕이 즉위하시고 나서 상의하자. 지금은 왕의 유언을 집행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 시간에 소가씨의 대저택안 청에서는 대신 소가 에미시가 아들인 소가 이루카와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둘도 모두 왕궁에서 나온 참이다. 둘의 주위에는 가신(家臣)들이 둘러 앉았는데 중신(重臣)들이다. 에미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이제 은퇴를 했으니 나설 필요는 없지만 이루카, 당분간은 여왕 천하로 두는게 옳다. 아버님, 능력이 없는 여왕을 내세웠다가 신라짝이 납니다. 신라는 지금 내란이 일어났지 않습니까? 이루카가 어깨를 펴고 에미시를 보았다. 이루카는 37세, 장년이다. 소가 가문은 백제계 목협만치씨를 조상으로 50년이 넘도록 왜국을 통치해왔다. 소가 에미시의 어머니 소가노우마코는 쇼토쿠 태자와 함께 왜국을 다스린 섭정이었던 것이다. 그때 에미시의 중신 이키타가 말했다. 대감, 서두르실 필요가 없습니다. 왕후께서도 왕이 되실 뜻이 없으셔서 백제방 풍 왕자에게 두번이나 사양을 했다고 합니다. 으음, 풍이. 이루카의 눈빛이 강해졌다. 머리를 든 이루카가 에미시를 보았다. 아버님, 풍을 이대로 놔둬야 합니까? 욕심이 과하다. 혀를 찬 에미시가 허리를 폈다. 에미시는 72세, 그러나 아직도 눈빛이 강하고 말을 달려 사냥을 한다. 백제는 네 모국(母國)이고 네 바탕이다. 백제방이 있었기 때문에 소가 가문이 이만큼 번성할 수 있었던 거다. 뿌리를 잃으면 곧 말라죽는다. 에미시의 말이 엄격했기 때문에 이루카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루카의 중신들은 눈빛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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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9.27 19:14

[불멸의 백제] (186) 10장 백제령 왜국 2

소가 에미시는 섭정으로 왜국을 통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재 조오메이왕을 옹립한 것도 소가였으니 왕을 압도하는 세력을 보유했다. 그러나 그 배후는 백제방의 왕자 부여풍이다. 부여풍은 의자왕의 동생으로 왜국에 건너간지 10년이 넘는다. 백제에서는 백제방을 통해 오경박사, 역박사(易博士), 력박사(曆博士), 채약사(採藥士), 악인(樂人) 등을 왜국에 보냈는데 모두 22부사에 소속된 관리들로 왜국에 백제 문화를 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소가 에미시의 조상은 1백년 전 백제에서 건너온 목협만치(木?滿致)로 나중에 이름을 소가만치(蘇賀滿致)로 바꾸었으나 백제인이다. 그 후 소가 가문은 왜왕가와의 혼인으로 왜왕의 외조부가 되었다가 장인이 되는 등 끊임없이 권력의 중심부를 차지했다. 지금도 조오메이왕에게도 소가는 누이를 보내어 비로 만들고는 섭정 노릇을 한다. 다시 성충이 말을 이었다. 소가의 욕심이 지나쳐. 겉으로는 풍왕자께 순종하는 것 같지만 당의 밀사를 만나 군자금을 받았다는 소문도 있어. 성충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대륙이 전란에 싸이고 신라가 백제와 합병되는 이 시기를 노리고 있는 것 같네. 1백여 년 간 제 세력을 늘려왔으니 그런 욕심을 낼 만도 하지. 수단이 뛰어난 인물이야. 흥수가 거들었다. 김춘추보다 더 월등한 인물이니까 조심하게. 저한테 벅찬 인물이 아닙니까? 계백이 묻자 성충과 흥수가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때 흥수는 입을 다물었지만 나이가 위인 성충이 계백을 보았다. 이보게, 은솔. 예, 대좌평 대감. 내가 나이 50이 넘으면서 느낀 점이 있네. 예, 듣겠습니다. 지금 백제, 고구려, 신라, 왜, 당, 이 5국(國) 중에서 누가 천하의 패권을 쥐게 될 것 같은가? 백제올시다. 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대백제(大百濟)는 대륙에 22개의 영토를 소유하고 있는 데다 이제 곧 신라를 병합하게 될 것이오. 그리고 동쪽의 왜국을 오래전부터 속국으로 삼아 백제계인 왕과 대신들이 왜국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더구나 백제방으로 왜국 왕실과 함께 통치를 하고 있는 실정 아닙니까? 백제가 가장 유력합니다. 그렇지. 다 그렇게 믿네.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인 성충이 길게 숨을 쉬었다. 이보게, 은솔. 예, 대감. 난세에는 어느 한 사건이 대세를 흔들 수가 있다네. 흥수와 눈을 맞춘 성충이 말을 이었다. 혼란한 시기일수록 그 가능성이 많다네. 태원유수 이연이 당 태조가 되리라고 누가 예측했겠는가? 그놈 아들 이세민의 지모가 출중했기 때문이라고? 아닐세. 그때 흥수가 말을 받았다. 시(時)와 운(運)이 맞았기 때문이지. 어깨를 부풀린 흥수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대왕께 시(時)와 운(運)을 갖다 드려야 하네.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연히 다가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그때 성충이 말을 잇는다. 작은 사건들을 인연으로 이어줘야 하네. 그래야 우리 대왕이 운을 잡으시네. 그러자 계백이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렸다. 대감들은 충신이시오,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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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9.2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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