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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떠난 사람 생각 말자 애를 써도 생각나는 사람 하나 멀리 가까이 닮은 모습만 비쳐도 행여 그 사람인가 울컥 다가오는 사람 하나 잊기엔 너무 아파 사는 날까지 가슴에 묻어야 할 그런 사람 하나 그리움으로 그리워하는 그리움 가슴 적시는 것은 그리움도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 △그리움으로 그리워하는 그리움 가슴 속 깊이 묻혀둔 울음보가 울컥 온통 세상 밖을 적신다. 강물처럼 흐른다. 물결은 햇살 드리운 곳에서 사랑의 색으로 반짝인다. 초록으로 얼굴 내민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면 행여 그대의 모습이 보일까? 가슴 두근거리는 봄날이 왔다. 잊겠다는 약속을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외로워지면 흔들리는 것 모두 그대 모습으로 보이는 걸 어쩌랴. /이소애 시인
제 몸 깎으며 하늘벽을 오르는 별은 오래 반짝이지만 제 몸 다 지니고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별은 떨어져 돌이 되었다 나는 세상을 걸으며 강변에 왜 그렇게 돌이 많은지 다시 알았다 △ 이 시를 읽었을 뿐인데 천변에 깔린 돌을 밟으니 소리가 들린다. 놀랍다. 놀라운 상상력이다. 몸을 낮추면 돌이 하늘에서 왜 떨어졌는지가 보인다. 화자는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별이었다고, 하늘벽을 오르는 별은 제 몸을 깎는 고통이 있었다고 내 마음을 붙잡고 호소한다. 용케도 선거철이면 돌은 서로에게 부딪히며 말을 세상에 내놓는다. 소음이 아니기를 바란다. 오래 반짝이는 별이 하늘의 주인공이다. 단 몇 행의 시어로 돌을 직조해내는 시인에게 따뜻한 봄꽃을 보낸다. /이소애 시인
여름을 얼리고 겨울도 얼리는 투명한 겨울 정거장 남으로 향하는 번지 없는 철새들이 동면하는 기억을 깨워 철로 없는 투명열차를 타고 야간여행을 떠날 때 난 겨울여행을 떠나고 싶다 꺾어지고 부러진 겨울에 헤메이는 목마를 타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듯 얼굴 없는 겨울에 빈 다리를 건너고 넘어 투명열차를 타고 야간여행을 하고 싶다 ========================== △야간여행은 생각만 하여도 마음이 설렌다. 철새들이 동면하는/ 기억을 깨워 투명열차를 타고 목적지 없이 무작정 떠나는 여행은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삶의 팁이다. 야간열차는 분명 나 혼자인데도 동반자가 보인다. 차창밖에 비친 또 다른 나의 모습이다. 쓸쓸한 그리움을 눈치채고 뺨에 적시는 눈물이 있어, 너는 나다. 기차 바퀴 소리에 헝클어진 시어들을 정돈해 보는 소리와의 융합이 야간여행이다. /이소애 시인
청풍靑風의 땅 작은집 모퉁이에 하나둘 사라져가는 삶의 흔적을 지켜보던 가슴이 철딱서니 없이 익어갔다 아~ 하루가 익어가는 이 밤 그 무엇이 두려워 잠들지 못하고 어둠의 늪에서 헤매고 있을까? 서서히 지워져 가던 삶의 흔적들 안방 화롯불에선 뜨거운 세월이 마지막까지 들썩이며 아우성치다 시나브로 지쳐 연기처럼 무너질 때쯤 지친 문풍지마저 바르르 떨고 있다 고뿔 한번 들지 않는 세월- 간절히 붙들고 싶었던 흔적들 철없이 휩쓸려가는 삶의 늪 속에 신음하는 가막골 양반 ========================= △며칠 전 고인이 된 시인에게 빚을 갚기 위해 붓을 들었다. 진작 초대했어야 마땅한데 내가 게을러 빚쟁이가 되었다. 그 무엇이 두려워 잠들지 못하고/ 어둠의 늪에서 헤매고 계실 것 같아 뜨거운 세월을 살다 가신 시인께 흔적을 붙잡아 드린다. 간절히 붙들고 싶었을 시간이 문풍지처럼 바르르 떤다. 삶의 늪 속에서 신음하시는 모습을 고스란히 새겨드린다면 고엽제에 피폭되어 통증을 견뎌내는 모습이다. 시詩가 시인의 흔적이다. /이소애 시인
저녁 7시의 핸들이 무겁다. 소태정 고개를 넘어 멀리 전조등을 내쏜다. 귀가하는 불개미들의 불빛이 굼실굼실 꼬리를 물고 다가왔다 지나간다. 섬광이 번쩍, 눈앞이 캄캄하다. 온몸이 감전된 듯 소름이 돋는다. 낯선 인연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하루 피곤을 짊어진 불개미들이 지금 제 집을 찾아가는 것이다. 지구가 수만 바퀴 돌다 망가질 때까지 그렇게 불개미들이 짐을 지고 헤맬 것이다. ========================== △ 지구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불개미들은 살아있을 것이다. 세상의 종말까지 불개미들은 일을 할 것이다. 생명이 다 하는 날까지 불개미들은 귀가하고 또 출근할 것이다. 그래서 제가 기어이 불이 되고야 말 것이다. 그 불이 꺼지는 날 비로소 우주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김제김영 시인
새벽 잠버릇에 하루가 길다 용건에 맞게 미리 물건을 챙기지 못한 날 손발에 고양이 한 마리 붙어살아도 늘 치매기가 발동하여 큰 눈으로 어둠을 쓸지만 그만 소리의 발을 밟고 만다 매섭게 추운 날 미화원의 날카로운 비질 소리 같은 시간쯤 만나지만, 먼저 건넨 인사말 되돌아오지 않아 듣지 못해 그러려니 하고 다시 건네도 들리는 토막말 아직 없다 그냥 지나친 일상이 부끄러워 가슴이 찔렸을 거라는 속 좁은 내 생각 경인년 동짓달 가로등 밑 애써 되돌리고픈 마음의 꼬리 바람이 헤적여 낙엽처럼 날린다 ============================= △ 애써 돌리고픈 것들이 어디 마음뿐이랴. 아버지의 굽은 등도 돌려놓고 싶고, 어머니의 손마디도 돌려놓고 싶다. 총총하던 총기도 돌려놓고 싶고, 화사하던 꽃양산도 돌려놓고 싶다. 돌려놓고 싶다는 건 다시 불러오고 싶다는 것, 가난하지만 쇄락했던 마당도 불러오고 싶고, 사람과 사람 사이, 따뜻하던 인정도 불러오고 싶다. /김제김영 시인
바다의 언어는 파도다. 밤낮없이 제 살을 주름잡아 세상을 일깨우는 메시지를 보내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풀지 못해 천지창조의 주역과 조역을 알지 못한다 거센 파도가 치면 바다는 더욱 푸르러 바람과 화답하고 가슴에 안개 거친 날은 파도와 바다가 한 몸 되어 해원에 언어의 씨앗을 뿌린다 파도는 우주의 역사를 상형문자로 기록한 바다의 언어다. ================================== △ 바다는 파도로 제 말을 하는구나. 제 살을 주름잡아 만든 파도라는 상형문자로 우주의 역사를 기록하는구나. 세상을 향해 일갈하는 구나. 가슴에 거친 안개 가득한 날은 머나먼 수평선 끝까지 언어의 씨앗을 파종하는 구나. 그래서 바다에는 늘 윤슬이 조잘대는 구나. 바다의 언어를 받아쓰는 시인은 우주의 역사를 받아쓰겠구나. /김제김영 시인
별스레 눈이 간다 많고 많은 나무 중에 오랜 날부터 사랑 받아서가 아니다 바람 부는 언덕이 추워서도 아니다 왜 좋아, 물으면 벙어리처럼 우물거릴 뿐 이끌리는데 무슨 이유 있을까 가까이 가는 사람이 있다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 ========================================= △ 매화가 봄꽃의 으뜸인 것은 단지 꽃이 지닌 향기 때문일까? 오랜 관습 때문일까? 딱히 꼬집어서 말하긴 어려워도 어쩐지 늘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다. 추위가 극성을 부리는 동안에도 끝까지 봄을 믿는 사람이다. 얼어붙은 현실을 포기하지 않고 꽃을 준비하는 사람이다. 온 생을 치열하게 정진하여 마침내 피어나는 꽃 같은 사람이다. 어둠을 이기고 새벽 이마에 이슬 한 방울 얻어두는, 그런 사람이다. /김제김영 시인
하늘은 오늘도 그냥 열려 있다 삼라만상이 아직은 무사하다 벽 앞에 서보라 벽 어딘가에 문이 있다 문이 없는 벽은 이미 벽이 아니다 벽이 없는 문도 문이 아니다 우리는 벽을 위하여 벽을 쌓는 것이 아니라 문을 위하여 벽을 쌓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문을 만들기 위하여 벽을 쌓고 있다 ==================================== △ 벽에게는 무언가를 막고, 구분하려는 의도가 이미 내재되어 있다. 벽에게는 무언가를 지키고, 통합한다는 의미도 이미 내재되어 있다. 해서 벽은, 소통과 폐쇄, 분열과 화합의 의미를 동시에 가졌다. 해서 세상의 모든 문과 벽은, 열리면 문이고 닫히면 벽이다. 그대 지금, 아무리 노력해도 완강한 벽 앞에 서 있는가? 완강한 벽은 반드시 문을 준비해 두고 우리를 기다린다. 문도 벽에 기대어 서서 우리를 기다린다. 한 발자국만 더 디뎌보자, 조금씩만 더 마음을 내어보자. /김제김영 시인
구순의 어머니는 부쩍 밥알을 흘리고 기억을 흘리고 여자를 흘린다 몸의 괄호를 다 열어젖혀도 단춧구멍 열리듯 속이 훤히 열린다 이제는 그 흔한 비밀 하나도 간직하지 않는 여자다 목에서 다리까지 훌렁 벗겨져 내리는 이 뻔한 몸을 가지마다 벌목해 살아왔다 옹이마다 손 짚어 오르기만 했던 날들이 부끄러워져서 어머니를 어머니가 아닌 여자로 만나 염을 하듯 어둠을 열어 닦는다 뼈마디 하나하나 닦아내고 문지르다 문득 저 삶으로의 이장인 듯 여겨져서 그만 비누 거품으로 눈 비비고 만다 ◇밥알을 흘리고/ 기억을 흘리고 여자를 흘리고 한 생애를 가족을 위하여 살아온 여자의 삶이 슬프게 파고든다. 흘린다라는 어휘가 비참하게 스며든다. 금방 나도 몸의 괄호를 다 열어 젖히고 누구에겐가 훤히 내다보일 때를 생각하는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잠깐, 좋은 시를 창조해내는 시인에게 고개 숙인다. 기억을 흘리면 여자의 아름다움도 지워진다. 비밀도 지우개로 지우면서 살아가겠지. 마지막 달력을 떼면서 나는 누구의 몸으로 사는가를 생각해 본다. /이소애 시인
너는 나의 숨이다. 너는 나의 심장이다. 너는 나의 가슴에 박힌 돌이다. 너는 나의 영원한 기도다. △ 성탄절이 다가오면 누군가를 위해서 간절한 기도를 하고 싶다. 나의 기도가 그 사람에게 살아갈 용기를 준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기도는 차라리 절규이리라. 자식은 어머니의 숨이고 심장이기 때문에 생명을 연명해 준다. 기쁨과 슬픔의 원천이 너이지만, 너는 24시간 중 몇 초를 떠올려 보았느냐. 기름때 묻은 아슬아슬한 공사장에서 일하는 너. 너울성 파도에 목숨을 걸고 생계를 유지하는 너. 고급 아파트에서 양주를 마실 너, 어머니는 늘 기도의 무게가 같다. 모두 자식이니까. /이소애 시인
한 시름 두 시름 날마다 젖은 밤 허구한 날 종이접기로 날밤을 샌다 반달연을 주소 없이 가을 하늘에 띄워 보니 창 너머 맑은 달이 소리 없이 굽어본다. ================================== △ 허구한 날/ 종이접기로 젖은 밤을 보낸다는 화자의 시름이 슬프다. 밤새도록 누구에게 보낼 종이를 접는지 쓸쓸한 모습이 보인다. 만일 허공에 띄울 수신자가 지구상에 생존하고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허공을 맴돌다가 땅으로 되돌아오는 종이비행기는 찢어진 날개로 피눈물을 닦고 있을 터. 주소도 없는 반달연을 띄우다니요. 은하수 건너 그리움에 보내는 건가요. 생각으로 오는 사람들과 외로울 때 보고 싶은 옛사람에게 반달연은 찾아갈까요. 몸부림치며 내 몸에 닿는 찬바람은 천 마리 종이학을 접어 그리움에 띄우는 밤입니다. /이소애 시인
이제 비로소 철이 드는가 보다. 나이 들면서 오만가지 분노가 삭고 미움도 사라지고 맹물로 오른 생일 아침상이며 아내의 미안해하는 마음이 그렇게 아름답고 감사하구나. △ 참 아름다운 부부의 모습이다. 서로를 배려해 주는 부부에게 꽃다발을 건네주고 싶다. 닮고 싶다. 그렇게 살고 싶다. 아침 생일상을 차려주는 아내의 고운 모습을 생각으로 그려본다. 얼마나 사랑이 듬뿍 담긴 미역국일까. 미안해하는 아내가 천사처럼 아름다워 보이는 건 나이 들어 철이 들어서가 아니다. 분노가 삭고 미움이 사라져서가 아니다. 서로 감사하다는 말을 할 줄 아는 부부 관계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풍경이다. 아내를 위해 기도해 주는 배우자는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아내의 모습을 가슴 속에 되새김질하면서 퇴근길에 오를 배우자는 행복하겠다. /이소애 시인
임이 마지막 남기고 가신 발자국에 낙엽이 뒹군다. 첫눈이 내리기 전에 임이 가신 흔적을 두루두루 잊지 않고 찾아서 눈물 자국 마르기 전에 임에게 소연昭然 되고 싶어 한없이 뒹굴어 간다. ================================================ △ 소연되고 싶다는 어휘에 질투심이 은근히 치밀어 오른다. 과연 나는 누구에게 소연 된 적이 있었던가. 내장산 단풍에 물든 계곡물이 왜 시퍼렇던가를 누가 아는가. 붉음이 멍이 들면 시퍼렇다라고 말해 준 그 임이 가을이면 낙엽으로 온다. 몸부림친다. 뒹군다. 가을을 붙잡고 놓치지 않으려는 발자국에 낙엽은 바람이 시키는 대로 뒹구는 법. 낙엽이 지나간 흔적은 화자의 가슴에 떡살 문양처럼 새겨져 있을 거다. 그래도 가을은 가고 있다. /이소애 시인
내 나이 이십 전에 물려받은 부모님 피땀서린 고향마을 문전옥답 고향을 찾을 때마다 부모님 뵌 것 같아 지켜온 유산인데 이제 나이 드니 힘이 겨워 넘기고 오던 날 사무치는 지난 세월이 눈시울에 맺혀 고향 하늘과 함께 밤이 새도록 흐느꼈다. ================================== △ 시골의 논밭은 그냥 땅덩어리가 아니다. 부모님이 허리띠 졸라매며 간신히 잡아놓은 바람이다. 구름이다. 사랑이다. 그냥 단순히 논밭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부모님의 한숨과 눈물을 받은 것이다. 아픔과 회한, 한없는 사랑까지 받은 것이다. 그런 논밭을 다른 사람에게 파는 자식의 심정은 말로 형언 못할 아픔이다. 그러나 부모님은 꼭 거기에만 계신 것이 아니다. 늘 나와 함께 계신다. 내 안의 부모님을 가끔 찾아뵙고 문후 여쭙자. <김제김영>
갓 펜을 잡은 아이가 그린 그림 같아서 좋고 반듯이 정리된 논 보다 자유로움이 있어서 좋다 작아도 내 것이기에 좋고 욕심을 버려도 가져다 주어서 좋다 곡선의 아름다움이 여성의 자태 같아서 좋고 반듯이 그리려 자를 대지 않아도 되고 비뚤어져도 탓하지 않아서 좋다 자유가 그리우면 네 곁에서 머물고 고향이 생각나면 너를 찾을까 보다. ============================= △ 여러 층으로 겹겹이 만든 좁고 작은 논이 다락논은 자투리 땅이라도 목숨처럼 사랑했던 우리 부모님들의 초상이다. 한 층씩 더 마련할 때마다 노동의 강도도 훨씬 더 강해졌으리라. 한 층 더 높아질 때마다 부모님의 숨은 턱턱 막혔으리라. 멀리 있으면 더 아름답게 보이고 지나간 것은 그리워진다고 했던가? 멀리 두고 바라보는 다락논의 유려한 곡선이 더 이상 가난하지 않다. 부모님 품처럼 평안하다 작아서 오히려 더 애틋하고 아름답다. /김제김영
여름 내내 초록의 왕관을 썼던 이파리들이 시방은 스치는 바람에도 힘없이 떨어져 보도 위를 수북하게 덮는다 지는 것이 어찌 낙엽뿐이겠는가 마는 새벽안개 속으로 미아가 되어 사라지는 시절의 아픔이 끈적끈적한 정으로 남는다 말없이 떠나가는 세월의 속물들 그것들 중에는 샛노란 은행잎 같은 청초한 나의 인연들도 있었다 어떻게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저렇게 말없이 사라져 버릴 수 있을까? 이 쓸쓸한 계절에 미련도 남겨두지 않고 떠나가는 가을의 미아여 푸른 하늘에 그리운 시절의 파란 동공을 그리며 떠나가는 철새여....... ===================== ◇ 말없이 떠나가는 것들의 계절이 곧 돌아온다. 여름 내내 초록의 향연을 벌였던 나무 이파리들이 이제 가을 속으로 속수무책, 속수무책 사라진다. 이미 지나간 것들을 돌아보지 말라. 미련 없이 떠나는 것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은행잎은 떫던 제 생을 다 익혔으므로 저리 가벼이 떠나는 것이다 /김제김영.
닫혔으나 닫히지 않고 열렸으나 열리지 않은 그냥 훌쩍 뛰어 넘을 수 있을 구멍 숭숭 뚫린 시골집 담장처럼 보일 듯 말 듯 하루가 저물어갑니다 가슴에서 우는 새 길러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해 저문 서쪽 하늘 산기슭에 그림자 길게 드리우듯 그림자 찾아 십 리를 갑니다. 밤 부엉이 우는 소리에 대나무 이파리가 부스스 떨고 창문 스치는 솔바람소리에 귀 기울이노라면 새근거리는 숨소리 들립니다 별을 헤며 새우렵니다 닿을 듯 멀리 있는 그 사람을 기다리며 ======================= 구멍 숭숭 뚫린 시골 담장 같은 하루를 오늘도 보냈습니다. 서쪽 하늘이 하루를 붉게 우려내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우는 새가 있습니다. 오래 키워 온 울음소리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람, 닿을 듯 멀리 있는 사랑의 숨소리가 들립니다. 잠이 쉬 올 리 없습니다. 밤하늘에 초롱초롱한 저 별에게 하소연하며 긴 밤을 지새울 도리 밖에요. 그리움은 왜 이리 먹먹할까요? /김제김영
오늘밤 가야산 기슭에 나는 한 채의 암자로 누웠네 별자리 지나가는 소리 밤은 깊이깊이 흰 눈을 쌓으며 적막 강산은 벌써 이승이 아니네 사바娑婆 세계는 고요로 누워 인간사는 까마득히 자취도 없는 이 허허로운 시공時空 밤은 오히려 하이얀 설국雪國 백야白夜의 천국이 가까이에 있네 차가울수록 정중해지는 나그네의 야삼경 =================================================== ◇ 차가울수록 정중해진다는 말 참 좋다. 어느 시인은 세상에 우리들의 삶을 세상에 소풍 나왔다고 했던가? 기실은 우리 모두가 세상의 나그네다. 잣눈 내리는 겨울 밤, 사바세계는 이미 선정에 들었고 아직 탈속을 못한 암자 한 채는 이제 막 자리를 보았다. 정수리에 차가운 기운을 들이 부어 몸과 마음을 살뜰히 씻어내고 나면, 내게도 순백의 정신이 들어차리라. -김제김영
차고 넘치는 말의 바다 참말도 다 못 할 세상에 참말로는 소통이 안돼서 날마다 쏟아내는 허울 좋은 말들 말에 베이고 말에 채여서 상처 난 마음들이 부딪는 거리 번지르르 포장된 말로는 싸맬 수 없는 참말 하나 얻어듣기 너무 힘들다 ================================ △참말로 참말 듣기가 어려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좋은 약은 입에 쓰고 바른 말은 귀에 거슬린다는 격언이 다시 새롭다. 이순(耳順)이 되어서도 귀에 거슬리는 말들이 많다. 상처 받고 싶지 않아 나 자신을 바로 볼 용기가 없는 날들이 대부분이다. 상대방에게 진실을 말해 주지 못하는 날들이 아주 많다. 그가 받을 상처는 곧 나의 상처이기 때문이다. 내가 참말을 안 하는데 어느 누가 내게 참말을 해주랴! 사실과 진실은 언제나 다르다는 진리를 되새길 밖에. /김제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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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당이 사람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