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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멈추지 않고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쁨이 아니던가. 살다 보면 뜻대로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았던 것을 어디 만만한 게 있었던가. 지나간 일들은 바람에 날려버리고 빙그레 던져보는 실없는 웃음 속에 흔적을 그려보는 것도 좋으련만 =================================== △화자는 마치 긴 참회의 피정을 다녀온 사람 같다. 기쁨의 정의가 살아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만족하단다. 하얀 머그잔을 가득 채운 아메리카노 커피 향에 웃음을 띄워보자. 작은 커피잔에 일렁이는 내 얼굴에 미소를 그려 넣어 본다. 느린 시간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나의 존재를 불러보는 순간, 내 안의 나에게 기쁘다고 말하지 말라. 더 큰 외로움이 밀려오니까. /이소애 시인
지리산 등정 길 등에 달라붙은 배낭 오르막길 숨 차오를 때 떨쳐버리고 싶었네 그때 무겁던 배낭 산비탈 벼랑길에서 엉덩방아 찧을 때 나를 받아주는 강보였네 애면글면 끌어온 수레 비틀거리는 나를 잡아주는 고마운 동반자 산 넘고 강을 건너 마을로 접어든 좁은 길섶 허리 굽어진 나를 그대가 끌고 가네 ============================ △지리산 등정 길 등에 달라붙은 배낭처럼 귀찮은 존재들이 있다. 그러나 그 존재가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구원자가 된다면 참 잘 살아온 거다. 내가 외롭다고 말할 때 진정으로 들어 줄 가족이 없다면 어떨까? 회개와 깨달음을 주는 시다. 수레는 고마움을 기워 갚을 줄 아는 사물이어서 보듬어 주고 싶다. 젊음을 바쳐 키워온 자녀들을 재평가해 보는 허리 굽어진 내가 잠시 종이에 끄적거려 본다. /이소애 시인
종이컵처럼 한 번 쓰고 버리는 그를 사람들은 비정규라 부른다 기계 부품을 만드는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풀어지지만 살뜰한 가족이 그를 다시 조여 준다 어쩌다 바라보는 하늘은 너무 높고 그의 신음은 바닥을 기어 다닌다 그가 받는 지시는 장문이고 그를 퇴출하는 문자는 단문이지만 그는 길고 짙은 그림자로 버틴다 노동의 대가가 너무 헐렁하다 싶으면 포장마차에 들러 몸의 전원을 꺼버린다 전원을 꺼도 잠들지 못하는 밤에는 어이, 비정규, 어이, 비정규, 그를 부르는 환청이 족쇄처럼 따라다닌다 △어쩌다 바라보는 하늘은 너무 높고 색연필로 밑줄을 그었다. 공짜로 바라보는 하늘을 어쩌다 본다는 노동자의 고통을 함께하고 싶었다. 온종일 바람과 구름이 내 집처럼 넘나드는 한 평 남짓 하늘이 된다면 어떠하리. 옥탑방에 걸린 그믐달의 슬픈 전원을 꺼버리는 거다. 낮엔 밝은 미소를 내리쬐는 태양이 되고, 밤에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었으면 한다. 별똥별이 빗금을 긋고 지상으로 내려올 때 어이, 비정규라고 부르면 눈 똑바로 뜨고 노동자의 이름표를 보여줄 것이다. -이소애 시인
꽃잎에 백반을 넣고 콩콩 찧었다 손톱에 두근두근 달이 오르고 그날부터 내 몸에 추억 하나 스며들었다 오가는 눈빛에 노을처럼 발개지는 얼굴 하나 가슴에 묻었다 꽃물 든 그리움이 그믐달로 지워질 때까지 내 사랑의 첫눈은 오지 않았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설렘은 손톱 끝에서 야위어 갔다 내 청춘의 백반 같던 그 사람 노안처럼 가물거린다 손도 안 댄 봉숭아 꽃씨가 톡,톡 터진다 △ 내 청춘의 백반 같던 그 사람을 읽다가 문득 그 사람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아무리 봉숭아 꽃잎을 많이 넣고 찧어도 손톱에 진한 꽃물 들지 않는다. 두근두근 내 몸에 빨갛게 스며드는 마력은 봉숭아 꽃잎도 백반도 아니다. 둘이 하나가 되는 찰나에 그리움이 그믐달로 지워질 때까지 내 사랑의 증표가 된다. 장독에 핀 봉선화를 따서 아주까리 이파리로 손톱을 싸고 무명실로 총총 감아 두었다가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봉숭아 꽃씨가 가슴으로 와 발개진다. 그리움의 농도만큼 물든다. /이소애 시인
자꾸만 줄기가 휘어진다 하나둘 겉옷을 벗어 던지듯 차례차례 잎을 떨구더니 불어온 찬바람에 그만 푹 수그린 얼굴 ======================================== △ 겉옷을/벗어 던지듯 잎을 떨구는 이별의 계절이 찬바람 부는 가을뿐이랴! 가슴 태우는 태양이 이별을 만든다. 하늘 찌를 듯한 백성들의 함성이 달리는 타이어 밑으로 깔리는 경제침략 신음소리다. 휴대전화에 폭염경보가 진동하는 여름 한낮 화려한 나라꽃에 대한 사랑이 뜨겁다. 도로 양쪽 무궁화 꽃이 뚝, 지상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울린다. 꽃은 뒤틀리는 몸을 곱게 견디어내기 위해 꽃잎을 말아 바람 속으로 눕고 있다. 수그린 얼굴처럼 꽃 진 자리 상처가 더 아파 보인다. 그렇게 보이는 무궁화 꽃이 땅으로 떨어진다. /이소애 시인
무리 가운데 있어도 허전하고 외로움은 억누르고 있는 그리움 때문인가요. 눈 감아도 가슴 뭉클 다가오는 그대 두 팔 벌려보아도 한 자락 바람뿐인데 어쩌다가 엇갈려 스쳐간 인연 사랑이란 이름으로 꽃불을 밝히나요.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신명나는 풍경을 마련해놓고 가슴 아픈 사연 다 풀어내겠지요. =========================================== △ 상사화 잎이 무성해져간다. 기다리던 꽃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서던 뒷모습이 퍼렇다. 제발 이번 생에는 꽃을 만나 하나로 어우러지기를 바라던 기도들이 여름 장마에 무참히 쓰러진다. 엇갈려서 스쳐가 버린 인연들, 다시 꽃불을 들고 찾아왔지만 두 팔을 벌려 안아보니 무정한 바람만 휙 지나가 버린다. 어디 육안으로 보는 것만이 만나는 것이랴 마음 안에는 더 깊고 반짝이는 눈이 있다. -김제김영
해질 무렵 작은 감나무에 무너질 듯 노을빛 감이 주렁주렁, 수십 마리의 까치들이 엄마 품인 듯 모여든다 하지만 제 무게가 조심스러워 서로 자리 바꿔 공중을 날고 나뭇가지, 바람 리듬에 맞춰 새 엉덩이를 살짝 올려주는 내려다보면 하늘이 배를 움푹 넣으며 푸른 호수에 배를 띄우라네요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는 시인은 행복하겠다. 이런 풍경에서 배려를 읽은 시인은 더 행복하겠다. 이 시를 읽는 사람들은 더욱 더 행복하겠다. 일상에서 조그만 일이라도 혼자 일어나는 일은 없다. 제 품을 기꺼이 내주는 감나무, 제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까치들, 까치들의 엉덩이를 떠받쳐주는 바람, 그리고 하늘까지 모두 서로를 배려해서 해 지는 하늘에 하나의 장엄경을 이루었다. 늘 누군가의 배려로 살아가는 나날이 고맙고 고맙다. / 김제 김영 시인
높지도 않은 가시덩굴에 매달려 핀 꽃 작은 꽃송이 하얀 찔레꽃 청춘을 노래하고 향수에 찔려 사랑의 소나타를 울려주던 하늘나라 아기천사 하얀 면사포 ===================================== △ 하얀 찔레꽃은 언제나 순결하다. 어린아이 잇몸에 막 돋아나는 젖니 같다. 하얀 찔레꽃은 언제 보아도 슬픔이다. 엄마를 보내는 길 위에 수북하게 쏟아지던 이별이다. 사랑의 소나타를 들려주는 찔레꽃의 마음은 하얗다. 아기 천사의 면사포처럼, 면사포를 쓴 아기천사처럼, 하얀 찔레꽃은 언제나 지고지순하다.
언제였더라?- 가을 끝자락, 그 투명한 그리움 자락이 휘날리던 날이 언제였더라?- 생각이 멈추는 길고 긴 밤의 정적이 무거울 때가 언제였더라?- 눈길에 예보도 없이 왜 찾아왔을까? 그리움의 주소도 없이 기웃거리는 망설임도 없이 먼 곳에서나 더 가까운 곳에서나 침실까지 찾아온 그녀, 발자국 소리도 없이 언제였더라?- 잠시 머물다 보고 설레며 지나치는 길 지나가는 바람결이야, 반갑지 않은 반가움이어야 하는 열린 마음 닫힌 창문 너머로 잠시 머뭇거리다 갈 뿐 그리움, 그 아련한 그림자를 놓친 때가 언제였더라?- ================================= △문단의 여러 사람들에게서 종종 듣는 이야기가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문장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잠잘 때조차 메모지를 곁에 두고 받아쓸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 문장뿐이던가? 그녀에 대한 그리움도 어느 날 불쑥 찾아오고, 삶에 대한 외로움도 어느 날 불쑥 찾아온다. 주소도 없이 망설임도 없이 찾아오고 먼 곳에서도 가까운 곳에서도 언제든 찾아든다. 이별도 그렇고 만남도 그렇고 귀한 인연도 그렇다. <김제김영>
꽃잎 위에 앉은 모시나비 한 마리 예쁜 브로치 같다 엄마 가슴에 달아드리면 엄마는 향내 나는 한 송이 꽃 꽃 꽃이 되겠지 ====================================== ◆ 나비브로치를 달면 엄마는 한 송이 꽃이 된다는 시인의 발상이 참 싱그럽다. <황금빛 내 인생> 드라마를 보다가 암에 걸린 아버지가 기타를 사들고 들어오신 장면에서 울컥했다. 연장이나 막걸리가 잘 어울릴 듯한 아버지의 신상에는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 기타였다. 기타 안에는 아버지의 젊은 꿈과 낭만이 초라하게 구겨진 채 박제되어 있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는 지금 젊다. 아직은 시들지 않는 한 송이 꽃이다. <김제김영>
양지바른 양지동 동구 밖 양편 갓길에 도열한 근위병 그만그만한 잎 떨어진 소나무 서릿발 눈보라 칼바람 시달려도 언제나 푸른 꿈 감추고 살아 목청 돋아 시 한수 읊으련만 등 올라타고 목 휘감아 재갈 물리고 눈 가리고 귀 틀어막는 삶의 칡넝쿨 제 멋대로 만세 부르며 깃발 흔든다 목 졸려 선 채로 삭정이 될 수 없어 용기 내어 쳐다만 보는 강남의 빌딩 손 내미는 사람 없어 칡넝쿨 짊어진 채 장승처럼 기다리는 양재동 지게꾼 ============================= △ 가난한 사람이 오히려 다른 사람을 더 적극적으로 돕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일면 씁쓸하기도 하나, 어떤 상황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해를 받기가 쉽지도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강남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부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서 늙어 가는 지게꾼의 삶이 우리를 마음 아프게 한다. 칡넝쿨이라는 현실적인 제약은 지게꾼의 눈을 감기고 귀를 틀어막는다. 추운 겨울에도 아랫목에 발 한 번 디뎌보지 못한 채 선 채로 삭정이가 되어가는 우리 이웃들. -김제김영
새가 운다 밤이슬 내리는 자리에 으슥이는 바람 널려 올 때 새가 노을 타고 운다 새가 운다 늘어뜨린 세월의 끝자락 매달리면서 물이랑 술렁대는 소리와 같이 새가 울어 댄다 댓잎 스산한 언덕배기에 새떼들이 몰려와 밤으로 가는 길목에서 새가 운다 ============================== ▲그리움이 치밀어오를 때 들려오는 새의 울음소리는 슬프디슬프다. 세월의 끝자락에서 울어대는 새는 마치 절벽을 바라보는 시인의 절규 같을 것이다. 새는 짝을 찾는 구애의 사랑 노래일 터인데, 화자는 언덕배기 댓잎처럼 스산한가 보다. 외롭다고 말하지 않아도 쓸쓸한 소리가 난다. 밤으로 가는 길목에서 누군가를 달래주고 싶은 새떼들. 새는 우는 소리에서 겹겹 쌓여 온 시간의 기억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 이소애 시인
해와 달이 화들짝 놀라 밤낮이 뒤바뀔 詩, 마음이 고플 때 햇빛 달빛 모셔올 詩 세상 가득 담고 싶다. ======================================= ▲ 화들짝 피어난 이팝나무 꽃을 보고 책상 서랍에서 기억을 꺼내어 본다. 단발머리 소녀적 꿈은 고봉으로 담은 하얀 밥그릇에 고깃국을 배불리 먹어보는 것. 수수 십 년이 흘러간 엊그제, 이팝나무 꽃그늘에서 나의 꿈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무릎을 치면서 서영숙 시인의 <꿈>을 떠올렸다. 밤낮이 뒤바뀔 詩를 쓰는 일이다. 부자가 되는 꿈이 아닌 소박하고 가난한, 그러나 평온한 시를 써서 햇빛 달빛 모셔올 詩 대여섯 편만 가지고 있어도 남부러울 것 없겠다. 외로울 때 나를 위로해 줄 시를 창고에 가득가득 채우는 꿈을 모셔와야겠다. -이소애 시인
빈 하늘을 쟁기질한다 고랑을 치고 두렁을 만들고 햇살을 찰랑찰랑 심는다 구슬비 물방울도 조롱조롱 매단다 하늘의 바늘귀를 꿰어 허공을 꿰맨다 아침마다 이슬 모아 은빛 줄을 닦고 먼 데서 파닥이는 작은 떨림에 긴장하는 기쁨 촘촘한 한살이가 기다림이다, 때로는 폭풍에 찢긴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하며 수없이 많은 발걸음 소리 거미줄에 얹히는 나날 알곡을 기다리는 기나긴 시간들 단풍잎도 익어가는 가을 마당귀에서 하늘 보면 곤혹한 밤을 털며 떠오르는 별무리. -------------------------------------------------- ▲ 햇살을 찰랑찰랑 심는다에서 찰랑찰랑을 소리 내어 읽는 동안 도랑물에서 햇살이 넘실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거미줄에 매단 구슬비 물방울이 쟁기질하는 빈 하늘에 반짝거리면 별이다. 거미의 농사는 외로운 시인의 마음을 훔쳐가는 걸까. 거미줄의 떨림은 화자의 가슴에서 울려 퍼지는 진동이다. 폭풍에 찢긴 가슴을 쓸어내린다고 별 무리가 알아주랴. 그래도 거미는 허공에 농사를 짓는 삶을 터득했을 터. -이소애 시인
고향 떠난 사람에겐 산록의 푸르름도 아픔이다 눈을 감으면 가득하고 눈을 뜨면 모두가 고향 어릴 적 걷던 오솔길도 보리피리 불던 언덕배기도 지금은 없어진 눈 감아야 보이는 것들 아득히 깊어지는 어둠 속으로 아픔만 남기고 사라진 눈 감아야 보이는 어릴 적 걷던 그 길 ▲고향이란 낱말만 들어도 짜릿짜릿한 전율이 온몸을 휘돈다.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고, 그리움을 손톱에 물들이는 봉선화 꽃과, 저녁이면 환하게 얼굴을 내미는 분꽃. 그 푸르름에 젖어 들면 집 앞 시냇물 소리가 들려왔다. 오솔길과 언덕배기 고갯길도 아픔으로 다가오는 그 길이 사무치도록 그립다. 나이가 들면 새록새록 고향이 활동사진처럼 가물거린다. 차라리 눈을 감아야 환하게 보인다. 냉이꽃 봄까치꽃 꽃망울 터질 때마다 시인은 시를 꽃피우고 있을 것이다. -이소애 시인
슬픔을 등에 지고 가지마라 아픔을 가슴에 안고 가지마라 슬픔과 아픔을 지니고 산다는 것은 봄이 와도 잎 피지 않는 나뭇가지처럼 어둠으로 응고된 암담한 시간과 마주하는 것 봉인된 내일의 비밀 희망의 씨앗까지도 블랙홀 속으로 몰아넣는 것 신이 때때로 슬픔을 주는 것은 서늘하게 자신을 살펴 생을 진실하게 되살려 보라는 뜻이지 슬픔을 담아 두는 그릇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놓아주어라 슬픔도 아픔도 민들레 홀씨 되어 날아가도록 ============================ ▲담장 아래 납작 엎드린 민들레 꽃이 봄을 불렀다. 갓 피어난 꽃은 땅을 바짝 부둥켜안고 있었다. 소리 없이 웃는 모습에서 가난한 노인의 주름살이 물결친다. 추운 겨울을 견디며 살아남은 생명력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본다. 6월, 그 꽃이 솜사탕 같은 깃털을 머리에 이고 있다. 슬픔의 무게에 허리가 짓눌려서 바람을 타고 허공을 누비는가 보다. 민들레 홀씨는 아픔을 지니고 사는 어느 시인의 집 담장 아래 정착할지도 모른다. -이소애 시인
생일 꽃을 사고 보니 집에 갈 일이 걱정이다 보는 이도 없는데 혼자 붉어 집에 오니 여인이 꽃잎에 녹아 뜨거운 이슬로 떨어진다 쉰 네 송이 장미 건화는 벽에 매달려 붉은 향을 토하고 생화는 가슴에 안겨 촉촉한 눈빛을 뿌린다 이 시를 읽는 동안 아름다운 그림들이 차례로 떠오른다. 장미 한 다발을 수줍게 들고 가는 중년 남자의 그림과 꽃다발을 받아들고 한없이 행복한 아내의 그림, (그리고 시간이 지났으리라) 향기로운 드라이플라워가 벽에 걸려있는 그림과 남자와 아내가 가꾸는 단란한 가정의 그림이 있다. 비오는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사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라는 말은 80년대에 한창 유행하던 다섯 손가락의 노래에서 시작된 말이다. 굳이 어느 날을 기다릴 필요가 있겠는가? 오늘은 퇴근길에 길가 화원에 곱게 핀 꽃이 있거든 주저 말고 하나 사야겠다. 꽃이 있는 저녁이 무척이나 향기롭겠다. / 김제 김영 시인
마음 속에 소나무 한그루 키우고 싶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흔들리지 않는 하늘이 무너져도 부러지지 않는 그런 소나무 한그루 마음 속에 키우고 싶다 죽어가는 것들을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마음 속에 해바라기 한그루 키우고 싶다 세파에 시달려도 색 바라지 않는 동파에 휩쓸려도 마른 잎 떨구지 않는 그런 해바라기 한그루 마음 속에 키우고 싶다 가진 것을 버려도 가진 것을 버린 것을 버려도 가진 것을 버린 것을 버린 것을 또 버려도 가진 것을 버린 것을 무한히 버리고 또 다시 버려도 아직 죽음의 끝에 이르지 않았기에 마음 속에 뜨거운 사람 한 명 키우고 싶다 세상이 아무리 거칠어도 사람을 놓지 않는 인간에 아무리 시달려도 사랑을 접지 않는 그런 뜨거운 사람 한 명 가슴 속에 키우고 싶다 * 이문근 시인은 지난 2004년 <표현>과 2009년 <시선>으로 등단했다. 전북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로 있다. 시집 <봄이 오는 까닭>, <메타-엑스> 등을 펴냈다.
갈바람이 스쳐가는 밤하늘에서 당신의 별이 두 눈을 깜빡인다. 광활한 하늘은 별들이 숨 쉬는 땅 지구 한 모퉁이에서 그리움의 눈길을 보내나니 홀로 창가에 나와 있는 나는 이름 없는 풀꽃 한 송이 마음의 쪽문을 열어 당신의 가슴에 담으면 이 밤 꿈길조차 환할 것이다 닿을 수 없는 멀고 먼 하늘과 땅 사이가 사랑의 슬픔인줄 알게 되나니 별아 이승에서 받지 않는 사랑이라면 저 세상에서라도 너의 희디흰 손 잡아보자 ============================================== 무슨 사랑이 이리도 멀고 애잔한가? 지구 귀퉁이 창가에서 작은 풀꽃 하나가 광활한 하늘의 별에게 띄우는 연애편지다. 닿을 수 없는 먼 사랑에 대한 슬픔이다. 이 사랑 너무 지독하여 이승에서 못 이룰 것 같은 시인은 저승에 가서라도 희디흰 손을 잡아보자고 간구하고 있다. 이 시를 읽는 동안 하늘에 떠 있는 별이든, 먼저 떠난 영혼이든, 아님 지극히 사랑하는 이 세상의 어떤 것이든 - 그것이 문학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 사랑을 향한 진실한 노래는 누가 부르든지, 언제 부르든지 핍진하다는 진리하나 떠오른다. <김제김영>
만경강에 흐르는 물소리도 잠이 들고 꿈꾸는 비비정에 님의 자취 간 곳 없네 강 건너 모래사장 님 떠난 나루터에 무심한 조각배만 홀로 남았소 =========================== -요즈음 시골은 어디건 한적하다 못해 쓸쓸하기까지 하다. 예전의 흥성거리던 골목도 없고, 밥 먹으라 부르던 정겨운 소리도 없다. 굴뚝의 저녁연기도 없고, 아이 울음소리도 없다. 초저녁이면 벌써 어둠이 다 점령해버려 밤이 길고 길다. 강물 소리도 잠이 들었다. 어릴 적 멱을 감고 빨래를 하던 강물이 아니다. 강물 몇 줄기는 공장을 따라 도시의 어둑신한 구석 어딘가로 스며들었고. 또 몇 몇 줄기는 긴 잠에 들었다. 같이 꿈꾸고 웃던 비비정은 아직도 여전한데 모래사장 나루터에 조각배 한 척만 남아있다.<김제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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