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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켜지자 서늘한 바람이 이마를 스친다 꿈에서 깨어나 듯 서둘러 스크린 밖으로 빠져나가는 관객들 우수수 낙엽이 날린다 엔딩화면 속 날아오르는 기억 저편 익숙하고 낯선 이들이 하나 둘 계절 속으로 사라진다 동네 아저씨1, 행인1, 주인공 주변을 얼쩡거리던 단역들이 날아올라 흩어진다 날아오르는 이름 속에 나도 묻혀 사라진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엔딩 크레딧의 낙엽들 극장 앞 골목에 흩날리고 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엔딩 크레딧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서둘러 스크린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불이 켜지기 전에 일러났다. 낙엽은 외롭고 쓸쓸한 가을무대의 엑스트라다. 낙엽은 가을 계절에 얼쩡거리는 행인1.이지만 단풍이 들고 낙엽이 땅에 뒹굴지 아니하면 어느 누가 가을이 왔다고 하겠는가. 시 한 편을 쓰기위해 언어사냥을 하는 나도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엔딩 크레딧으로 지나가리라. 아등바등 견디어 온 생이 시간을 밟고 지나가는 행인 엑스트라일 뿐이다. -이소애 시인
모진 가뭄도 가뭄이지만 내 몸 추스르기도 힘든 유월 가진 것도 든 것도 모자라기만 하고 이제 버릴 것은 시집 몇 권과 잡동사니 너절한 묵은 서가가 전부인데 정작 버려야할 것은 아직도 남아있는 서어한 욕망의 굴레일는지. 겨우 가뭄 달래는 마른 장맛비가 찔끔거리는 후텁지근한 오후 더 내려 놓은 것은 없나 뒤적여 보는 헌책 갈피에 끼워 있는 청년시절 받은 엽서 한 장 - 허접한 나의 청춘은 잔돌평 철쭉 빛으로 불타고 있어도 내 영혼 불 지필 불쏘시개 감으로라도 이승에 남을 것인가 소나기 한 줄기 넓은 잎 오동잎에 후두둑 걸어오는 유월 마지막 날 △생의 가뭄에 들어섰다. 윤기 나고 화려했던 젊음은 어디로든 벋어나갔으나 이젠 가뭄만 타는 고비에 접어든 것이다, 간혹 비가 내리기는 하지만, 가뭄을 달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버릴 것 다 버렸는데도 아직 시집 몇 권과 연필 몇 자루는 가지고 있다. 청춘은 철쭉 빛으로 타올랐으나 내 영혼에 이글거리는 불을 다시 지필 수 있을 것인가? 사위어 가는 재를 다독여 주는 소나기 한줄기가 말라가는 오동잎을 건드린다. 김제 김영 시인
바다에 그물을 던지면 고래는 웃고 새우들은 죽을상이다 아무리 촘촘한 그물이라도 고래에게는 거미줄이고 새우에게는 동아줄이다 강에 그물을 던졌다 큰 고기는 다 빠져 나가고 잔고기들만 잡혔다 그물 속에도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있었다 ===================================================================== △우린 고래 잡는 법을 모른다. 소설을 빌려 말해보면 고래를 잡으려면 작살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는 미련 없이 정조준해야 한다. 그러고도 그가 기진하도록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고래를 잡으려고 하면 큰일 난다. 온갖 특권으로 보호 받는 인종이기 때문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아직도 활개 치고 있다면 가난한 나는 오늘 가까운 가게에서 고래밥이나 한 통 사서 와삭와삭 깨물어 먹어야겠다. /김제 김영 시인
하루하루가 삶의 선물입니다 하루하루가 늘 새롭고 신비스럽습니다 같은 길을 가도 늘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하루밖에 없는 하루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루하루가 축제여야 합니다 ======================================================================== △어제는 지나가 버렸으므로 없다.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없다. 오로지 오늘만 있을 뿐이다. 어제는 오늘이 순간적으로 나를 떠난 것이고 내일은 내게 오는 순간 오늘로 변하기 때문이다. 해서 우리는, 어제의 슬픔을 오늘까지 갖고 있지 않아야 하고, 내일이 무궁무진하리라 믿고 오늘을 허투루 쓰지 않아야 한다. 아직 모르는 미래 때문에 오늘 걱정하고 있는가? 지나간 어제 때문에 오늘 분노하고 있는가? 가만히 짚어볼 일이다. /김제 김영 시인
기나긴 추위에서 움츠려 참았었고 바위틈 한 방울 물 생명수 되어 주며 자갈밭 생명 없는 곳 뿌리 내려 피웠지 씨앗이 떨어진 곳 탓하지 않았었고 그 누구 원망 없이 그 자리 내 자린 듯 뿌리를 뻗고 뻗어서 내 운명을 받았지 누구도 생각 못한 그곳에 꽃은 피고 풍파를 이겨낸 힘 짙은 향 발산하며 아픔을 견뎌낸 너는 활짝 웃고 있었지 ========================================================= △꽃 한 송이 피는 일이 어찌 쉽겠는가? 해서 시인 묵객이 시대를 초월하여 꽃이 피어나는 과정을 찬양한 것이렷다. 무서리 내리고 잠도 오지 않았던 밤을 꽃이 피기 직전의 통증에 비유한 서정주도 있고,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냐고 반문을 넘어서서 강변을 토한 시인도 있다. 추위도 참고, 한 방울 물도 감사하며, 떨어진 자리 탓하지 않아야 꽃이 피고 향기가 진하다. 꽃만이 아닐 것이다. /김제 김영 시인
바람 따라 구름 따라 흘러 온 길 또 다시 어드메로 흘러가는가 앞은 길을 따라 열고 등 뒤로 지나간 길은 꿈결만 아른 거리네 한평생 울고 웃으며 살아온 길 뒤 돌아보니 가파른 언덕 넘어에 굽이굽이 아픈 사연만 남아 피고 지는 꽃도 향기마저 잊어 버렸네 이제와 그 길 다시 걸어도 아픈 세월은 여울지고 눈물은 말라 가슴만 메여 우리 이길 다시 걸어도 들꽃처럼 소리 없이 지고 말 것을 우리 손잡고 발맞추며 함께 가세나 ========================================================= △전근표 시인은 2008년 한국시로 등단해 한국시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문인협회 진안지부 6대 회장을 역임했다. 시집 <사랑합니다! 아버지> 등이 있다.
하늘 밑과 바다 끝 그 경계가 아득한 저물녘이다 수평선 따라 통통배 한 척 천천히 지나가고 있다 멀리 벌어진 쪽부터 하루가 캄캄하게 채워지고 있다 ============================================================== △수평선을 천천히 어둠으로 닫고 있는 통통배가 지나간다. 한 폭의 그림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 풍경이다. 저물녘, 매급시 태양이 잠겨버린 곳으로 가보고 싶다는 찰나의 충동이 일기도 한다. 환상일까? 짧은 시가 육지에 살고 있는 나를 바다로 훔쳐 간다. 시인의 상상력에 감탄해서인지 파도 소리가 안방까지 밀려오는 환청에 시달렸다. 수평선 너머엔 누가 살고 있을까? 태양의 비밀스러운 곳, 그곳에서 지퍼를 열어볼까 생각해 본다. 빛이 그리울 때. /이소애 시인
꽃들은 제 이름을 자랑하지 않는다 지독한 자기 연민과 사랑으로 한평생 흔들려도 목숨줄 부여잡고 제 목숨을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꽃이다 나는 꽃이다 석 달 열흘 땡볕가뭄에도 나는 꽃이다. 속울음 삼키며 눈 부릅뜨고 있다 꽃들은 목 놓아 제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 △제 이름을 자랑하지 않는다는 시인이 있다. 살고 싶지 않았을 때도 살아서 내가 고맙다.는 시인은 슬프고 아프고 괴롭고 쓰고 떫은 것들을 정화할 수 있어서 시에게 고맙다.라는 시인의 말에 내가 현혹되었다. 시름시름 앓던 나도 눈 부릅뜨고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해본다. 사람들은 꽃나무를 볼 때 행인처럼 바라본다. 달맞이꽃이 시들면 기생초와 배롱나무꽃도 시든다. 쇠약해지는 꽃나무 이름을 불러주는 자비의 시인으로 재생하려면 몇 편의 시를 탈고해야 하는지요. /이소애 시인
터벅터벅 실업급여 타러 가는 좁은 골목길 발 끝에 채여도 무심히 지나치는 게 불문율이다 비정규직의 봄은 갓길로 온다 =====================================================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발표 이후 노동자들의 절규를 생각한다. 눈물을 가슴에 품고 실업급여 타러 가는 노동자의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터벅터벅 좁은 골목길의 민들레를 밟고 지나가도 아픈 상처의 비명은 땅 밑으로 깔린다. 가녀린 꽃대가 부러질까 바람은 비껴가는데. 발끝에 채여도, 아니 죽어가는 생명이라 할지라도 세상 사람 누구 하나 관심을 주지 않는 민들레다. 짓밟아도 다시 피어날 거라는 천박하고 질긴 생이라는 운명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이소애 시인
어느 틈에 왔을까 왕눈이 저 사내, 백주대낮 십구 층 난간에 매달려 삼복에 등물 친 알몸 닳도록 훑는다 여기가 어디라고 겁도 없이 올라와 주먹만 한 눈망울 위아래로 굴린다 화들짝 나도 모르게 젖가슴을 가린다 능청스런 저 눈길 왠지 낯설지 않다 제풀에 뜨겁게 익어가던 고추잠자리 유유히 자리를 뜬다 나도 따라, 붉다 =============================================================== △페이소스가 강렬하다. 유유히 자리를 뜨는 고추잠자리의 파장이 가슴을 휘도는 정감을 느끼게 한다. 등물 친 알몸으로 난간에 매달릴 힘이 없으면 잠자리가 아니리. 방황하는 마음에 이정표처럼 허공에 그린 날갯짓은 차라리 붉다, 붉지. 겁도 없이 화들짝 나도 모르게 부끄러움을 갖게 하는 고추잠자리의 능청스러운 눈망울이 그립다. 바지랑대에 앉아서 날 놀리던 어린 시절의 고추잠자리도 붉었다. /이소애 시인
빤히 올려다보면 계수나무 한 가지 툭 부러져있고 나를 슬그머니 들어올릴 것 같은 이 하나 빠지지 않은 둥근 달이 뜬다 창호지에 본을 떠서 창문에 오래도록 걸어두려 했는데 우물이 먼저 와서 제 집에 들여놓았다 아뿔싸, 달은 하난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다 △너무 많은 것을 배우느라 너무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위성을 배우느라 달을 잃어버렸고, 로봇 탐사선을 배우느라 방아 찧는 토기도 잃어버렸다. 자연스럽게 달 속의 계수나무도 잃어버렸다. 오래도록 창문에 걸어두고 싶은 달은 우물에 빼앗겨버렸다. 사람들이 달을 구경하려고 우르르 우물가로 몰려드는데, 저 인파에 끼여 옥신각신 자리다툼을 할 생각이 없는 나는 에라, 모르겠다 허공으로 눈길을 돌린다. 거기 둥근 달이 환하다. 저런, 우물 속의 달은 허상이었구나. /김제 김영 시인
강변의 산책길 자벌레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두 팔꿈치를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며 오체투지하고 있다 힘들 것 같아 꽃가지로 일으켜 풀잎에 올려놓으니 몸을 동그랗게 말고서 나를 노려본다 △ ‘감 놔라 배 놔라 둥글어 간다 깎아 놔라’ 이렇게 간섭하는 사람은 그래도 인간적이다. ‘다 너를 생각해서 그렇다’ ‘내가 너에게 어떻게 했는데 그럴 수가 있냐’ ‘조직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로 남의 생에 함부로 간섭하고 훈수 두는 사람들이 읽어야 할 시다. ‘자벌레 한 마리가 동그랗게 몸을 말고서’ 내게 하는 말 ‘함부로 내 인생에 간섭하지 마라. 꽃가지라고 우기며 함부로 내밀지 마라, 내게는 꽃가지가 아니라 막대기로 보인다. 그대가 내미는 꽃가지가 흉기로조차 보일 때도 있다.’ 가슴 한편이 서늘하다. 오늘 하루라도 판단·분별 버리고, 어설픈 배려심 버리고 묵언해야겠다. /김제 김영 시인
가도 가도 저 끝이 보이지 않는 인생길 무엇이 그리 바빠 가쁜 숨 몰아쉬며 앞으로 그리 서둘러 앞으로만 가는가 인생길 가는 동안 여유롭게 가야할 길 쉬었다 가더라도 늦지 않은 우리의 길 가던 길 잠시 멈추고 돌아보며 가세나 △한 해가 또 반 너머 가버렸다. 이루고자 하는 일들이 많았을수록 허망함도 크다. 비 오시는 날, 바람 좋은 날은 비와 바람을 핑계 삼아 앞으로만 가려고 했던 마음을 잠시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벌써 올 상반기도 너무 바쁘게 살지 않았는가?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얼마나 가졌는가? 이웃의 안부는 챙기며 살았는가? 마른 대궁이었던 국화는 저만큼의 잎을 가지고도 가을꽃을 피울 수 있겠는가? 오늘 하루쯤은 찬찬히 톺아보아야 할 것 아닌가? /김제 김영 시인
지금껏 누구의 가슴이 저렇듯 뜨거웠을까 태워도 태워도 남겨진 불덩이 출렁이는 붉은 하늘빛 가슴 뛰게 하는 황홀함 오늘을 마지막처럼 살다 물 주름 사이로 숨는 너 내 눈빛 거두게 하고 열정의 발자국 남기고 사라지는 낙조여! △낙조와 만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탄하게 된다. 낙조가 거느린 하늘이 웅장해서 감탄하고 낙조의 표정이 장엄해서 감탄한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가질 때까지 그가 겪어온 바람과 구름을 헤아린 마음도 함께 있다. 열심히 살아왔을 열정에 대한 박수와 존경도 함께 있다. 인생 황혼기에 접어들어 단 한 사람에게도 감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젊은 시간을 열정 없이 흘려보낸 것이 틀림없다. 김제 김영 시인
▲ 전근표해 저문 서쪽 하늘에 황금빛 실눈썹 하나 어둠 찾아 선잠 깬 아기천사 눈망울 일레라 지친 몸 나를 불러 방긋 방긋 윙크를 한다 “고마워”, “감사해” 이쁜 네마음 깊은 어둠 열 밤 지나면 둥두렷 네 앞가슴엔 계수나무 옥토끼 혹시나 내 생에 바람 불고 구름 가리면 못다 핀 내 푸른 꿈 너라도 그려주렴 그때 다시 나와함께 하늘에 노세나
평상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다가 긴 장대로 별을 톡톡 건드리면 밤송이처럼 별이 툭툭 떨어진다 도시로 간 별들은 가로등이 되고 가까이 걸어 둔 별들은 반딧불이 되고 미처 줍지 못한 별은 도깨비불이 되었다 500원어치 깨를 사서 하늘에 흩뿌리고 사나흘을 기다리면 새싹이 돋아난단다 하늘에서 박힌 깨알들은 주렁주렁 별들을 매달아 놓고 가을에 이천 원어치만 되판단다 그래도 이문이 남는다고 참으로 귀하다고 한다 △시인은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에서 15년을 살았다고 한다. 뼛속으로 파고드는 추위를 경험했으며 실컷 고독을 체험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평상에 누워서 본 별들은 마치 하늘에 흩뿌린 깨알 같다고 한다. 그 깨알을 장대로 건드리면 밤송이처럼 떨어지며 가로등과 반딧불이와 도깨비불이 된다고 한다. 얼마나 주판알을 튕겼는지 깨알 같은 별을 돈으로 환산해보는 화자의 경제적인 눈매가 경이롭다. /이소애 시인
모악령 허리 둘러 골골 모아 흐른 물결 삼천내 이루었다 꽃창포 노란 꽃잎 구름 되어 일렁일 때 어린 갈숲 새로 핀다 대백로 해오라기 치오르는 고기 반겨 꿀 먹은 듯 서있고 세월 가는 소리 조올 졸 시름도 냇물에 띄워 맑은 아침 맞으리라 △세월과 냇물은 거슬러 되돌아올 수 없다. 삼천은 물고기를 꼬나보고 있는 해오라기의 한쪽 발을 감고 돈다. 빛바랜 찔레꽃잎을 훔쳐보다가, 어설픈 해당화는 다홍 치맛자락에 훔쳐 모은 햇살에 정(情)을 풀어놓고 있다. 노란 꽃창포는 천년 전주의 단오 풍경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낙들이 빨래를 하며 수다를 떨던 이야기를 기억하는 듯 냇물은 소리를 안으로 품고 흐른다. 쉼 없이 오늘과 내일을 이어가고 있다. 시름 대여섯 필 둥둥 떠내려간다. /이소애 시인
남고산성을 따라가면 돌들이 엉켜있다 남남이듯 제멋대로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큰놈은 작은놈을 으스러지게 껴안고 작은놈은 큰놈을 악착스럽게 떠받치고 있다 눈비에 오래 시달리면서 기쁘고 좋은 일만 있었을까 그 중에 몇 놈은 시큰둥하게 비껴 설만도 한데 저리 결기 넘치는 한몸이 되었을까 성첩의 어느 돌 하나 따로 노는 놈이 없다 서로 꽉 껴안아 더 단단해진 성첩에서 마음 모아 눈 부릅뜬 민초들을 본다. △ 서로를 꽉 껴안은 성첩의 돌을 눈 부릅뜬 민초로 의인화시키다니요. 남고산성을 오르면서 성첩은 보았으나 큰놈이 작은놈을 으스러지게 껴안고 있을 민초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역시 시인은 사물과 일체감을 갖고 시인이 사물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는군요. 그렇지요, 공동체에서 따로 노는 놈은 왕따를 당하거나 축구공처럼 허공으로 날려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이 순간에도 굽실거려야 살아남는 요령을 터득하는 겁니다. 자유롭지 못한 결박당한 몸으로 하루를 버티며 살지요. /이소애 시인
▲ 전병윤화선(畵仙)이 바다에 화제(畵題)로 쓴 고군산열도 그 자리엔 두인을 찍고 선유도엔 낙관을 찍었다 동해가 출렁이자 화선과 시선(詩仙)이 함께 모여 바닷물에 붓을 찍어 휘두르자 섬들의 이야기가 살아 오르고 고군산군도의 역사가 푸르러 지더라 열도 위에 기러기 떼 떠오르자 어촌은 모두 선유도(仙遊島)가 되어 무녀도(巫女島)는 춤추고 장자도는 뱃노래를 불러주네 억년 바다에 질긴 세월 뿌린 영혼들 화선으로 환생 했던가, 짠 모래 언덕에 해당화로 피고지고 유인도 무인도를 한 화폭에 담았네. △ 전병윤 시인은 진안문인협회 초대회장과 전북문인협회 부회장, 전북시인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청소년문화진흥위원과 전북문인협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비가 내린다 오랫동안 하릴없는 사람처럼 바라만보다가 빗속에 남겨둔 것들을 만진다 저만치 비껴서있는, 시간은 언제나 밀쳐왔다 밀려가고 풀지 못한 과제들처럼 슬픔과도 해후한다 슬픔을 빗속에 여러 번 헹구어 빛 좋은 날 포플러 가지위에 걸어두고 웃음을 와르르 쏟아내고 싶다 웃음의 뿌리는 슬픔이기도 한 것이므로 이제 내 가슴 속에서만 비가 내린다 △슬픔을 빗속에 헹구어 포플러 가지 위에 걸어두고 웃음을 쏟아내고 싶다는 화자에게 내 웃음을 전하고 싶다. 웃음의 뿌리가 슬픔이라고 했던가. 풀지 못한 과제들이 궁금하다. 욕심 보따리에 쟁여놓은 시간들이 아닐까? 나의 오후 세 시. 생각만 하여도 온몸에 전율이 엄습해오는 시간이다. 오후 세 시엔 시상에 젖어 시 작업을 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마음이 경건해지고 생각이 맑아 청정한 우물에서 낱말을 두레박으로 건져 올리는 시간이어서 화자를 초대하고 싶다. /이소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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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당이 사람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