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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자 같은 부부가 횡단보도를 건너간다구순을 바라보는 동안손을 꼭 잡고서로를 염려하면서급할수록 천천히 세상을 건너왔다파란불을 바라보는부부의 얼굴에는언제나 안도의 빛이 어렸다세월의 저편과 이편을 이어주는횡단보도에발자국을 찍으면늙은 부부의 등 뒤로 깔린 노을이 붉다-횡단보도를 건너는 노부부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노을이 깔린 횡단보도는 급할수록 천천히 건너야 안전하다. 살아 온 생도 그러했으리라. 부부의 등 뒤로 부부의 손이 황홀하게 아름답다. 파란불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부부의 손은 얼마나 따뜻할까. 그 따스한 생의 훈훈한 온기가 내게로 와 닿는다. 부부는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 사랑이다. 서로를 의지하며 걸어가는 횡단보도가 노부부를 지켜 줄 것이다. 이소애 시인
엉망진창 눈감 땡감으로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어.춘삼월 긴긴 해,배고파 우는 어린것들,풀죽 쑤어 먹여 살리던어머니 휘파람 같은한숨 꽃이 피었네요,자줏빛 찡한 모성애,전답 팔아 집 나간 큰자식소식 없어 야속해도마디마디 울음 생키며겉으로 웃는 꽃눈물 없이 볼 수 없는우리들 엄니의 꽃동진강가 거산 들녘에암팡지게 널브러져 피네.- 자운영은 어머니의 한숨이 녹아든 꽃이다. 풀죽으로 하루를 사는 어머니의 배고픔을 알고 있는 꽃이다. 울음을 생키는 꽃이어서 동진강가 들녘은 금방 휘파람 소리가 꽃이랑에서 들린다는 화자의 슬픔을 공감하고 싶다. 암팡지게 널브러져 핀 꽃에서 화자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자식의 생명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의 생을 떠올린다. 엄니의 꽃이 피는 동진강은 해마다 봄이 되면 자운영 꽃빛으로 스며들거다. ·이소애 시인
사나흘 봄바람은 병실 흰 벽에 수채화를 그렸다가로등 그림자에 흔들리는 건벚꽃의 연분홍 유혹이다봄향기 유리창 틈새로 가득했으나한꺼번에 갓 피어난 꽃은손목터널의 고통을 끼고 기억으로 달린다생각이 휘모는 굴곡의 여울엔 통증을 감고 지나가는꾸깃꾸깃 접어둔 용서할 문장들손목으로 지워갈 때 아픔이 사라지는 것가슴 모서리를 휘돌고 가는 참회는벚꽃 입술에 스며든 너그러운 마음으로지독한 그이를 다독일 때다△모든 병은 내 마음으로부터 싹이 튼다. 아니 가슴 깊이 쟁여놓은 미움으로부터 진행된다. 손목터널증후군도 누군가가 연분홍 벚꽃 필 무렵 아픔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해마다 봄바람이 불면 신들린 사람처럼 고통의 트라우마가 생성될지도 모른다. 치유법은 단 한 가지. 미움을 사랑으로 다독일 때다. 참회하는 순간 고통도 사라 질 거다. 시인 이소애
오십 년 전에가시가 목에 걸렸다지난 날 나를 따라다니던긴 그림자오랜 세월 그 가시아무도 뽑을 수 없었다하나님이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셨다오늘 평생 목에 걸린 그 가시를 하나 뽑았다벚꽃이 하얗게 피어나던2013년 4월 14일내 나이 예순 일곱에대입검정고시에 합격했다서산의 붉은 노을이꽃다발 들고나에게 걸어오고 있다△수목원에서 조각자나무를 본 적이 있다. 커다랗고 굵은 가시가 얼마나 아플까 생각하다가, 이 나무는 왜 가시를 달고 사는가 생각하다가, 대체 이 나무는 꽃은 필 줄 아는가 생각하다가. 꽃 피면 반드시 와서 꼭 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 후 여러 번 수목원에 가서 다시 보았지만, 아직도 그 조각자나무가 꽃 피는 때를 맞추지 못하고 매년 다음 해로 미루었다. 올해도 꼭 조각자나무에 꽃 피면 안아줘야지 생각하다가 이 시를 읽었다. 긴 그림자를 달고 다니던 날들, 마음에 아픈 가시를 이렇게 승화시키다니 참 훌륭하다. 배우는 때를 놓친 것은 아팠지만 후회할 일은 아니다. 단지 깨달음이 늦을까 마음이 급해지는 것이다. ‘장하십니다’ 노을이 온통 시인을 위해 응원한다. 김제 김영·시인
새해 정월 첫날포근하다.華山에 올라산마루 능선을 따라 걷는다.산길 양 옆으로촘촘히 자란개나리 마른 가지를 보며혹시나서둘러 핀꽃은 없는지여기저기 살핀다.억새를 쓰다듬는한 무더기 바람이개나리꽃일랑봄에나 찾으라고넌지시내게 속삭이고는삼천천을 향해 내려간다.나도 얼빠졌지.아직 한겨울에개나리꽃 피었더라면남은 추위에저 어찌 떨며 지내라고…- 마른 가지에서 꽃을 찾는 게 시인이다. 겨울 한 가운데서 봄을 준비하는 게 시인이다. 남들 눈에는 얼빠진 사람처럼 보여도 끝까지 진실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진짜 시인이다. 이 시를 읽기 직전까지, 참 공교롭게도 ‘4·16 단원고 약전’을 읽고 있었다. 내 의지 밖에서 줄줄 흐르는 눈물도 부끄러운 시간이었다. ‘세월호의 진실규명’에서 눈을 거두지 않은 사람들을 존경한다. 마른 가지에서 꽃이 피어나듯 삭아가는 세월호에서 진실이 피어나리라. 김제김영·시인
햇살이 난을 태우고 있는 날밥숟갈 뉘고누룽지 숭늉 네다섯 모금 드신 어머니어미는 어디 갔냐?“예 밭에 갔습니다.”점심은 먹었냐?“에, 먹었습니다.”미수의 어머니방에서 굶는지 모르고어미는 아비 점심상만 차렸다△이런 황당함이 있나? 감기몸살로 하루 종일 방에서 누워 계시는 어머니를 깜빡 잊었다. 며느리는 지아비 점심상만 차려주고는 다시 밭에 나갔다. TV에 골몰하며 내 밥만 먹던 아들에게 건넌방 어머니 말씀 건네신다. ‘어미 어디 갔니?’(나도 배고프다), ‘점심은 먹었니?’(나도 점심밥 줘라) 어머니의 대화법을 모르는 작가는 막둥이처럼 또박또박 대답한다. 신이 내게 물었을 때 나도 그러했으리라. 김제김영·시인
흑싸리 껍데기라 생각하는 친구 둘이서막걸리집에서돼지껍데기를 배춧잎에 싸서 먹는다난 쫄깃쫄깃한 이 돼지껍데기가 제일 맛나더라고돼지껍데기는 피부미용에도 좋다덩만껍데기가 참 좋은 거구만난 속깡만 좋은 줄 알았는디우리 같은 껍데기 인생도 괜찮은 것 아닌가늘 바람처럼 자유로우니고스톱판에서도 마지막에 심 쓰는 것은 껍데기여그렇지 암 그렇고 말고-껍데기 없는 속깡은 없다. 껍데기는 퇴물이 아니다. 지금 속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세상의 모든 껍닥이 없어진 후에는 기꺼이 자신이 세상의 껍닥이 되어야 한다. 추운 겨울 내내 촛불을 들고 있는 이 나라의 국민들을 권력자들은 껍데기인줄 알았을 것이다. 자기들 영광의 들러리쯤으로 알았을 것이다. 껍데기가 모든 생명을 튼실하게 자라게 하는 걸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껍데기가 부드럽지만은 않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내 삶의 껍데기가 되어준 인연들이 한없이 고맙고 감사하다.( ‘껍닥’과 ‘속깡’은 전라도 토속어임) 김제김영
못다 한 사연 두고잠든 영혼들이 모여서 일까여러 산사람이 쏟고 간눈물을 먹고 자라서 일까청춘에 잠든 아들어미의 애타는 마음이그곳에 스민 때문일까봄인데도 용미리 단풍은유난히 붉다- 눈물을 먹고 자란 나뭇잎은 붉은 가보다. 잠든 영혼들이 눈물을 쏟으면 나무는 핏방울처럼 붉디붉어진다. 생명은 서로 상통하기 때문이리라. 밤마다 별빛이 그리워 슬픈 사연을 쓰고, 지우고, 또 써내려간 詩도 붉다고 했다. 하늘나라 별이 되어버린 자식을 그리워하는 어미의 심장도 단풍 들었겠다. 얼마나 아리고 쓰라린 생일까? 그 단풍을 보러 용미리 추모공원에 간다. 시인 이소애
초록이 뿜어낸 피톤치드를 마시며 측백나무 숲길을 걷고 있다 나무는 그냥 숲인 것으로 만족하듯 나도 무엇이 되고 싶은 욕심은 없다 그러나 이곳에 오면 곧게 뻗은 측백나무 밑에 편안하게 누어있는 와불(臥佛)이고 싶은 마음 과욕일까? 부끄러움 같은 것을 느끼면서 눈감고 비스듬히 누어본다- 일어설 수 있을까? 능선 꼭대기에 모셔져 있는 와불의 미소는 알 듯 모를 듯 들리지 않는 말을 건넨다. 교만하고 목이 뻣뻣한 나는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할 뿐이다. 포근하고 온화한 미소에는 나의 이기적인 삶에 채찍질을 한다. 와불 곁에 눈감고 누어보는 화자를 생각한다, 욕심을 버리면 와불이 벌떡 일어날까. 내가 일어설 수 있는 거지요. ·시인 이소애
좌우극과 극상반의 집착부시와 부싯돌이의 충돌이불꽃으로 튀면서말려 진이 털려 나간하얀 쑥이탄다- 부싯깃이 없으면 부시와 부싯돌은 불똥을 만들지 못한다. 서로를 부딪쳐 보아도 끄떡없다. 돌과 돌은 뜨거워져도 불꽃은 일어나지 않는다. 마치 수십 년 살아온 그이와 내가 손을 잡아도 사랑의 불꽃이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부시와 부싯돌의 충돌이 세상에 불꽃을 내보려면, 아니 활활 타오르는 사랑을 소외되고 외롭고 아픔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불꽃을 보내려면, 내가 부싯깃이 되어야 겠다. 내가 부싯깃이 되어 충돌하는 사이사이에서 윤활유처럼 삐걱거리는 세상을 부드럽게 해야 겠다. 시인 이소애
원망과 함성의 시위만 남긴 채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시작되고 있다 나만큼 백성을 어여삐 여기는 이 있느냐 나만이 험한 매듭을 풀 수가 있다고하늘 가득하지만거짓에 이골이 난 군중은 믿음을 잃었다. 얽히고 설킨, 매듭들에 세상이 힘들지는 않을까…진실로, 올해는 험한 매듭 풀고샐리의 법칙(Sally’s Law)처럼 전화위복의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샐리의 법칙은 몰라도, 정유년에는 좋은 일만 일어났으면 하는 희망으로 새해를 맞는다. 부푼 꿈을 꾸기 보다는 원망과 함성이 웃음으로 바뀌었으면 한다. 억울하지 않고 내가 흘린 땀방울 만큼 행복이 오는 나라였으면 한다. 매듭이 잘 플리어 힘들지 않은 세상에서 살며, 깨끗하고 정직한 사람이 존경 받는 사회가 되기를 빌어봅니다. 그런 나라가 될 것입니다. 시인 이소애
가을 동안 헌옷 입고 큰 들판 지켰어요벼농사 끝나고참새도 다 가고이제는 허수아비 쉬어야 해요허수아비야이젠 할 일 다 했으니가도 된다아니야내가 여기는 서 있어야먹이 찾는 겨울새들에게안내 해 줄 수 있지 않겠니?△얼마나 많은 허수아비들이 세상에 허수(虛數)를 길렀는지 하늘만 안다. 평생 헌옷을 받아 입고, 한뎃잠을 자며, 꿍꿍 일 밖에 모르던 허수아비는 이제 일을 그만하시라는 권유에도 쉬는 게 무엇인지 모른다. 세상에 많은 허수들이 아비를 닮아 쉬지 않고 일만 한다. 가끔 실수(實數)로 진입했다는 위대한 허수의 전설이 나돌기도 하나 허수는 허수이어야 한다고 허수 일 때 더 위대하다고 칼바람이 길들이고 있다. 김제김영·시인
지리산 끝자락집 나간 염소 한 마리편한 밥 먹느니자유를 찾겠다고떠난 지 여러 해폭설 내린 겨울산짐승들 마을로 내려올 때그 염소도 절에 와서스님이 주는 먹이로 허기를 달랬다전생에서 얻은 스님의 아들이라고사람들이 수군거렸지만마을 삼거리에소문 떠돈 뒤부턴두 번 다시 염소를 볼 수 없었다△때로 어떤 죽음은 더 많은 이의 삶에 질문을 던진다는 독일격언이 생각나는 시다. 누군가를 위한다는 것은 꼭 옆에 있어서 무언가를 건네주거나 보태주는 방법만은 아니다. 물러나 주는 것, 때로는 아주 멀리 떠나주는 것도 지극한 사랑이다.저 염소 어디로 갔을까? 설마 사람들 입에 들어갔을까? 스님 곁을 떠나 폭설내린 설산에서 속세를 잊었을까?. ·김제김영 시인
시간이 손끝에 쌓이면문명에 순화됐던 야만이 돋아난다근질근질한 맹수의 싹이 길어할퀴는 각질을 깔끔히 자르면한동안 잊은 듯유순한 문명의 여유가 신선한다오늘도본향을 향해 갈수록 짧아지는남은 아쉬운 삶길어나는 원시 유전자를 세월로 깎아생生을 메워 나간다떨어져 나가는 각질의 이별이영원히 멈추는 순간문명의 틀 모두 내려놓은태고 원시 야생으로의 귀향△‘손톱은 슬플 때 자라고 발톱은 기쁠 때 자란다’는 속담이 있다. 우리 삶은 슬픔이 기쁨보다 더 많다는 말이다. 야만이 우리를 지배하는 순간 슬픔은 돋아난다. 원시의 유전자가 시간 안에서 순치되지 못했을 때, 상대를 할퀴는 슬픔이 자란다. 손톱이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것이 본향으로 귀향하는 거라면, 살아있는 동안은 슬픔도 계속 자란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손톱은 기쁠 때 자라고 발톱은 슬플 때 자란다’로 바꿔서 믿고 있다. 손톱을 깎을 때 마다 감사한다. 김제김영·시인
기억과 기억의행간 사이로눈이 내린다산이면서 산이 아니고들이면서 들이 아닌겨울 한낮이한 점 눈발 속에띄엄띄엄 졸고 있다△폭폭한 것 많은 나라에 한 길 넘는 눈이 푹푹 내렸으면 좋겠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추한 기억들 사이로 눈이 내리면, 사실의 행간에서 진실을 캐내느라 더 이상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지. 함박눈 끌어당겨 덮고 선정에 든 산은 산이면서 산이 아니고, 추한 것들 다 비워버리고 명상에 든 들은 들이면서 들이 아니겠지. 순명하게 늙어가는 느티나무가 눈 속에서 띄엄띄엄 졸다 깨다 할 것이고, 서슬 푸른 기와집은 광화문 쪽으로 귀를 넌짓 열고 곰곰 골똘해지겠지 김제김영·시인
촛불 하나의 온도가 천사백도 252만개가 타오르면 32억 4천 8백도로지구의 심장보다 뜨겁고사랑보다 더 뜨거운 불꽃이다232만의 피맺힌 절규에어느 권세며 불통이며 정권인들 견딜 것이랴그 촛불 들러 광화문 가는 친구에게말없이 시린 손에 장갑만 쥐어주고따라가지 못하는 허리병신 이 늙은 것은한없이 부끄러웠다트랙터 경운기 모두 간다는데시쟁이란 것이 죽고 싶도록 부끄러웠다△간헐천 같은 분노가 하늘 끝까지 치솟는 뜨거운 함성이 들리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사람들이 어디 화자뿐이랴. 마음만 광화문 광장에서 내지르는 소리가 화자의 몸으로 되돌아 올 때의 부끄러움. 두 손을 불끈 쥐고 거리로 뛰쳐나가고 싶어도 늙음을 누가 막아준단 말인가. 밤새도록 쌓인 피맺힌 절규를 원고지에 가득가득 채워 놓으면 화자도 불꽃이지요. 시인 이소애
애틋한 그리움 치솟아불꽃 튀는 사랑으로땅 깊이 뿌리 맺고 하늘 향해붉은 정열 태우나 보다나뭇잎새 풀벌레 소리초록빛 이슬 먹어 치켜온 넋기다림에 지쳐 사라져 갈 때못내 아쉬움으로 찾아온 연정활활 타오는 가슴 열어산자락 화사하게 덮여 와도한줄기 꽃무릇외로움으로 남는다.△붉은빛을 토해낼 것 같은 꽃무릇을 생각한다. 꽃잎은 그리움에 붉게 멍이 든 흔적일까. 선홍빛은 화사하다 못해 애틋하다. '연정'이란 낱말을 끌어다 시밭에 올려놓은 시인께 감동을 받는다. 꽃무릇에서 불꽃 튀는 사랑을 느낀다는 화자. 기다림에 지쳐 행여 내 몸 불살라 붉디붉은 꽃무릇으로 피어 날지도 모른다. 시인은 아직도 활활 타오르는 불꽃 청춘입니다. 시인 이 소 애
할 일은 많은데할 일 없이 어슬렁거릴 때가가끔은 있다비어 있는 손처럼머릿속도 휑하니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바닷물처럼 출렁거릴 뿐말갛다조금 전의 복잡은 어디로 갔을까우두커니 앉아 있는 네 앞에 우루루 몰려나온 고요가복잡을 해체하고 있는 중이다할 일 없는 날할 일을 털어버렸다△할 일이 없는 날은 할 일을 털어버린 날이다. 아니, 할 일이 생각나지 않아 머릿속이 휑하니 비어 있는 때이다. 주춧돌이 무너지는 것 같은 두려움과 거센 풍랑이 안방까지 덮칠 것 같은 불안감이 할 일을 생각나지 않도록 한다. 내 몸 주위를 감싸고 있는 고요. 그 고요가 하늘과 땅을 맞닿게 하는 어둠을 느낀다. 어둠은 무섭다. 우두커니란 말도 무섭다. 시인 이소애
바람 부는 날 실꾸리 풀며연을 날린다긴 꼬리 가오리연삼촌들 물레 풀며 네모난 방패연 날린다삼삼히 보이지 않는 실을 따라눈발 날리고 바람도 날리고아버지 꾸중도 날리고 어머니 나무람도 날린다들판과 하늘이 너무 넓어 어지러운 날우리는 마음대로 까불고 마음대로 춤추고달리고 넘어지고 웃다가 까무라친다들판에 벌렁 누운 동무 옆골마리 내리고 소피보는 삼촌이 보인다우리는 모두 잠시 동네 부모와 이웃에 맡겨져 사는애초부터 하늘과 들녘의 개구쟁이 요정이었다이젠 꼬리 흔들던 가오리연 간데없고생계형 비정함과 매연에 묻혀턱수염 까칠한 방패연이 되어구름 겹겹한 하늘을 난다△'달리고 넘어지고 웃다가 까무라친다'를 읽다가 개구쟁이 내가 떠오른다. 목덜미를 휘도는 강바람이 털장갑을 끼고 불어온다. 아버지의 꾸중도 어머니의 나무람도 연에 실려 날려 보냈던 어린시절. 까무라치도록 웃어본 지가 언제였던가. 화자처럼 들판에 벌렁 누워 까불고 깔깔대고 싶다. 얼레에 감긴 실이 술술 풀리듯 꿈도 그렇게 풀렸으면 한다. 시인 이소애
처녀의 몸으로 잉태한 바이러스가 퍼렇게 꿈틀댄다청둥오리 쇠물닭 낳아 기르는그녀, 오늘도 분만중이다억세어진 물갈퀴가 가르어도찢어지지 않는 가슴팍생살을 찢고 나온 물푸레가 어깨를 그러모아 그림자를 품어안는다백신도 막지 못하는 출산 바이러스사철 마르지 않는 물푸레 빛 양수물주름 겹겹이지만 결코 늙지 않는 그녀의 자궁골짜기를 드러내지 않는 저수의 숲에서풍덩, 홀로 깊어간다△아중호에 가면 청둥오리 한창이다. 아중호에 가면 물주름 팽팽하다. 아중호에 가면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는 출산 바이러스가 네게도 퍼렇게 전염된다. 아중호에 가면 움츠러들던 어깨도 싱싱하게 살아난다. 아중호에 가면 나 혼자 깊어져 천천히 걷게 된다. 김제김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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