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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송광사 소조상 '신비한 속살' 드러내다

우리나라 소조상(塑造像)의 보고 완주 송광사. 송광사 소조상이 감마레이 촬영으로 그 '신비로운 속살'을 드러냈다.지난 14일 송광사에서 지장전(地藏殿) 소조상에 대한 감마레이 촬영을 진행한 예원예술대학교 문화재보존연구소 전경미 교수는 "기존의 소조상에 대한 이해는 서양의 방법대로 각목을 열십자로 세우고 새끼줄이나 끈을 묶고 그 위에 흙을 붙여나가는 방법으로 알고 있었지만, 송광사 소조상은 상의 대부분을 두꺼운 통나무로 세우고 1∼2cm 정도로 흙을 붙이고 그 위에 천을 대고 채색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또 각 상의 머리와 목, 목과 가슴, 팔복, 발목 부분과 두 손을 앞으로 해 합장하거나 지물을 가지고 있는 등 흙이 떨어지기 쉬운 곳은 철핀을 제작해 꽂아놓았다.이날 감마레이 촬영 대상이 된 소조상은 도명존자상과 시왕상 2구, 판관 1구, 동자상 1구, 인왕상 1구 등 지장전 좌우상과 시왕상 및 권속 30구. 1640년 일안, 승명 등의 승려에 의해 조성된 것이다. 지장전 소조상은 복장기(腹藏記)가 있는 절대연대 작품으로, 17세기 소조상이 두꺼운 통나무재를 사용해 목심을 두고 흙을 붙여 천으로 바른 형식이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지난해 익산지역 숭림사 영원전 시왕상과 나한전 나한상, 심곡사의 시왕상을 촬영했던 문화재보존연구소 측은 송광사 상들은 두꺼운 통목재를 사용한 반면, 익산지역 상들은 기본적으로 각목을 열십자로 세우고 힘을 더 받아야 하는 곳에 각목을 2∼3개 덧댄 형식이었다고 분석했다.전 교수는 "송광사는 금강문의 금강역사상, 천왕문의 사천왕상, 대웅전의 삼세불상, 나한전의 나한상 등 모든 불상이 소조로 제작된 점에 있어 우리나라 소조상의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지만, 2004년 천왕문 사천왕상과 2006년 금강문 금강역사상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엑스레이 또는 감마레이 촬영을 하지 않아 중요한 자료들을 잃어버리고 사용된 안료와 섬유의 분석 또한 폐기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교수는 "감마레이 촬영은 내부 구조가 어떻게 조성됐는지 파악할 수도 있지만, 균열 부위를 정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향후 보존처리시 어떤 부분에 어느 정도 손을 대야하는지도 알 수 있다"며 "지장전 소조상은 양호한 상태로 보이지만, 뒷쪽이나 접합 부분 등 보수가 필요한 부분이 많이 있어 모든 소조상에 대한 경화처리는 기본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지장전 소조상들에 대한 안료 및 섬유 분석은 현재 진행 중이다.

  • 문화재·학술
  • 도휘정
  • 2008.08.25 23:02

[아무나 모르는 문화이야기] (29)외국서 건너 온 우리나라 보물

우리나라 보물 제904호는 그리스 고대 청동투구다. 1987년 보물로 지정된 이 투구는 21.5㎝ 높이로, 머리에 썼을 때 두 눈과 입이 나오고 콧등에서 코끝까지 가리도록 만들어졌으며 머리 뒷부분은 목까지 완전히 보호하도록 돼있다.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의 코린트에서 만들어진 이 투구가 어떻게 우리나라 보물이 됐을까?이 투구는 1936년 손기정이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한 기념으로 받은 것이다. 1875년 제우스 신전에서 발견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에게 부상으로 수여하도록 돼있었지만 손기정에게 전달되지 않았고, 베를린박물관에 보관돼 오던 것을 1986년 그리스 부라딘신문사가 주선해 우리나라로 오게됐다.이처럼 우리나라 유물이 아닌데도 우리나라 보물로 지정된 것들이 있다. 문화재청 동산문화재과에 문의한 결과, 우리나라 보물 중 외국에서 건너온 것은 총 7점. 보물 제393호 전등사범종(傳燈寺梵鐘), 제560호 진솔선예백장동인(晋率善濊伯長銅印), 제620호 유리배(琉璃杯), 제624호 유리제대부배(琉璃製臺附杯), 제635호 금제감장보검(金製嵌裝寶劍), 제904호 그리스고대청동투구, 제1095호 봉림사목아미타불좌상복장전적일괄(鳳林寺木阿彌陀佛座像腹藏典籍一括)이다.전등사 범종은 일제 말기 금속류 강제수탈로 빼앗겼다가 광복 후 부평군기창에서 발견돼 전등사로 옮겨진 것으로, 형태와 조각수법에서 중국종의 모습이 보인다. 종의 몸통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중국 하남성 백암산 숭명사의 종이라는 것과 북송의 철종 4년(1097년, 고려 숙종 2년)에 주조됐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중국의 철제종이 보물로 지정된 유일한 사례로, 중국제 철종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진솔선예백장동인은 중국 한대 이후 이웃나라 왕에게 수여한 도장이다. 중국 진나라때 만든 것으로 경북 영일군에서 청색 유리옥 10개와 함께 출토됐다. 천마총에서 나온 유리배와 미추왕릉에서 나온 유리제대부배는 유리를 재료로 한 유물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서방에서 전래된 것으로 알려졌다.미추왕릉에서 발견된 금제감장보검은 삼국시대 무덤에서 출토되는 고리자루칼(환두대도)과 형태와 문양이 다르다. 금제감장보검 같은 형태의 단검은 유럽에서 중동지방에 걸쳐 발견될 뿐 동양에서는 나타나지 않아, 동·서양 문화교류를 상징하는 의미있는 자료다.1978년 봉림사 아미타불좌상을 개금할 때 나온 목아미타불좌상복장전적일괄 중 1095-5호인 과주묘법연화경(科注妙法蓮華經)은 우리나라에서 간행한 것이 아니라서 확실한 간행년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명태조에 의해 간행된 대보은사판대장경(報恩寺版大藏經)의 영향을 받은 명나라 초기 간본으로 추정되고 있다.최근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외국 유물이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사례가 떠돌고 있지만, 문화재청 동산문화재과 관계자는 "일괄로 묶인 경우 보물 하나에 100여점이 되는 유물도 있어 일일이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과거 우리나라에서 출토돼 우리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근래 연구에서 외국산의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국보 42호로 지정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木彫三尊佛龕)이 대표적인 예. 불감은 불상을 모시기 위해 나무나 돌, 쇠 등을 깎아 일반적인 건축물보다 작은 규모로 만든 것이다. 목조삼존불감은 보조국사 지눌과 관련돼 있어 한 때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여겨졌었지만 지눌이 당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져온 것으로 기법 등이 8세기 당나라때 작품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외국 것을 우리나라 국보나 보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약탈을 통해 들여온 것이 아니라 문화교류나 외국 유학 과정에서 들어와 한국화되거나 우리 역사가 담기게 된 문화재들은 지정해 보호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 문화재·학술
  • 도휘정
  • 2008.08.20 23:02

군산 근대 문화유산 '관광상품' 뜬다

근대 산업유산의 활용이 새로운 문화관광산업의 이슈로 떠오르면서 도내 근대산업유산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군산지역의 경우 일제강점기 쌀을 비롯해 토지와 미술품 등 전북의 경제·문화분야 수탈사를 보여주는 근대산업유산들이 많이 남아 있어, 근대문화경관 조성을 통한 관광상품화가 요구되고 있다.전북도에 따르면 개항 이후 산업부분 시설과 인프라 등은 근현대 역사흐름을 조명할 수 있는 유산으로서 의미가 있지만, 일제 강점기 치욕의 역사로 인식돼 외면되거나 개발논리에 밀려 훼손·멸실 또는 방치되고 있다.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최근 옛 서울역 건물과 마포구 화력발전소 등을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근대산업유산의 문화상품화를 추진하고 나선 것으로 알려져, 도내 근대산업유산의 문화상품화를 위한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여론이다.특히 도내에서 가장 많은 근대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군산시 원도심과 내항 일대를 근대문화테마단지로 조성할 경우 새만금과 연계한 관광상품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실제 군산시 원도심 일대에 남아 있는 근대 건축물은 100여채로, 이중 군산세관과 구 히로쓰가옥, 해망굴, 나가사키18은행, 구 조선은행, 동국사 등 6곳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상태다.군산 최초의 은행건물로 1907년 축조된 나가사키18은행, 1908년 대한제국 예산으로 건립된 군산세관, 전국 유일의 일본식 사찰로 1913년 건립된 동국사, 1923년 축조된 조선은행 군산지점, 1926년 건립된 터널 해망굴, 일본인 포목상 히로스 게이사브로의 저택인 신흥동 히로쓰가옥 등은 전북은 물론 한국 근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건물이다.군산시는 이들 건축물이 모여있는 원도심과 내항일대의 독특한 문화유산인 근대문화유산을 문화자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근대문화경관 보존 정비계획을 추진중이지만, 예산부족으로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이에따라 군산시와 전북도는 물론 지역 정치권이 긴밀하게 공조해 정부 예산확보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도 관계자는 "새만금 배후지인 군산지역에 근대문화테마단지를 조성하고, 군산내항내 산업기반시설 등을 보존·정비해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면서 "관련 사업 추진을 위해 군산시와 협력해 예산확보에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조동식
  • 2008.08.01 23:02

저층부 '부분복원' 상층부 '보수정비'

현재 보수정비사업 중인 국보 제11호 미륵사지석탑이 저층부는 부분복원 방식으로, 상층부는 보수정비 방식으로 복원될 전망이다.지난 31일 익산 미륵사지 현장에서 열린 현장공개설명회에서 국립문화재연구소 측은 "복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원형에 가깝게 하는 것과 원래 부재(部材)를 최대한 사용하면서도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시진 문화재연구소 사무관은 "해체 전 형태를 기본으로 하는 것은 보수정비 사업 전과 크게 달라지는 게 없는 것이며, 9층으로 완전 복원할 경우에는 새로운 석탑을 쌓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현재로서는 부분복원(1∼3층)과 보수정비(4∼6층) 방식을 병행해 미륵사지석탑을 6층으로 복원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남 사무관은 "복원 및 보수에 쓰일 새 부재도 익산 주변에서 산지와 색깔, 강도 등을 고려해 원부재와 가장 흡사한 것으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미륵사지석탑은 구조적 안전성에 대한 우려와 콘크리트 노후화로 1999년 해체조사를 통한 보수정비가 결정됐다. 6∼2층과 콘크리트 해체가 완료됐으며, 현재 1층 및 석축을 해체하고 있는 단계다. 해체 부재 수는 1686개. 문화재연구소 측은 부재별로 상태조사를 통해 훼손도를 진단, 이에 따른 보존처리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구조 안정성 평가에서는 미륵사지석탑은 외부부재와 적심이 분리된 구조로, 단위 부재 강도는 비교적 안전하지만 외부부재와 적심의 구조적 보강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지반은 보수정비 후에도 안전한 상태로 판단됐다. 미륵사지석탑 보수정비사업은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복원공사에 들어가 2014년까지 완료된다.일반인을 대상으로는 처음 열린 이날 설명회는 미륵사지석탑 보수정비사업 주요 추진경과 및 현황, 향후 계획 등에 대한 설명과 부재 해체 및 조사, 보존처리 시연 순으로 진행됐다.일반인들의 관심이 집중된 석인상(石人像)은 석탑 1층부 해체 도중 석축 내부에서 추가로 발견된 것. 전체 높이는 920mm로, 미륵사지석탑 기단 주위에 노출돼 있던 3기의 석인상에 비해 보존상태가 양호했다. 백제시대 이후 고려말-조선초기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 문화재·학술
  • 도휘정
  • 2008.08.01 23:02

"'최병심 유물관' 한옥마을 건립을"

전북대 박물관이 마련한 '전주한옥마을 재발견' 특별전에서 유물이 공개돼 관심을 모았던 금재 최병심 선생(1874∼1957)의 유물관을 한옥마을에 건립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최병심은 간재 전우 선생의 수제자이자 전북을 대표하는 유학자. 간재의 뒤를 잇는 대표적인 제자중의 하나였던 그의 학문은 성균관 부관장으로 추대되기까지 할만큼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는 특히 일제 시대 항일운동에 앞장섰던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조선총독부가 선생에게 옥류동 땅을 팔라며 토지수용령을 내렸으나 이를 거부하고 단식으로 항거, 22년간 법정투쟁으로 '한전 사건'을 불사했던 장본인이다. 독립운동 야사 「염재야록」 의 서문을 써주다가 임실경찰서에 구금되는 등 조국 독립을 위한 항일투쟁에 온 몸을 바친 공로자이기도 했다. 평생의 강학과 교육을 통해 길러낸 제자만도 300여명. 그 제자들은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유학과 전통문화의 진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덕분에 전주의 토박이 어른들 사이에서는 한벽루 부근에 살았던 최병심을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삶과 학문적 자취가 담긴 공간는 없어졌다. 지난 1969년 한벽당∼국군묘지 간 도로공사, 1986년 기린로 공사로 인한 강제 철거령으로 그의 초당과 자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남아있는 곳은 최선생의 제향을 드렸던 장소가 전부. 설상가상으로 5년 전부터 이곳에 일반인이 불법 입주해 강제 퇴거를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다.증손 최동호씨는 "소중한 문화유산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무관심 속에 방치돼 있다"며 "어떻게 해 볼 형편은 안되고, 저렇게 스러지게 될까봐 늘 속만 탄다"고 안타까워했다.이런 상황이 알려지면서 학계와 문화계의 전문가들은 최 선생의 수십 여권의 서첩과 14권의 문집, 영정 등 보관할 수 있는 유물관을 세워 한옥마을에 선비정신을 담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조상 대대로 물려 받은 최 선생의 유물들을 보존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유물관을 건립해 최선생의 연구와 그 뜻을 새기는 작업들이 진행돼야 한국 유학과 선비정신의 마지막 불씨를 담았던 곳으로 의미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학계는 "한옥마을의 옛 선비정신을 살리려면 역사의 주체이면서도 변두리로 밀려났던 최 선생의 삶이 재조명돼야 한다"며 서당이 복원되거나 유물관이 건립되면 한벽당∼전주향교∼강암서예관을 잇는 문향(聞香)의 띠가 생겨 한옥마을의 문화적 자산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문화재·학술
  • 이화정
  • 2008.07.28 23:02

故 오정숙 명창 영결식 "편히 쉬십시오, 선생님…"

"참 부모같은 스승입니다. 오래도록 살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가십니다. (남겨진) 우리 제자 선생님들, (동초제 맥을 잇기 위해) 많은 짐을 지게됐습니다. (하지만) 우리 선생님이 도와줄 것입니다. 우리 선생님 천궁으로 가실겁니다. 잘 가십시오. 선생님."삶의 끝자락에서 씻김굿이 펼쳐진다. 귀한 사람이 갔다. 살아생전 극진히도 모시고 또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스승 동초 김연수 선생 곁으로 아까운 사람 하나가 홀연히 떠났다.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예능 보유자인 고 운초 오정숙 명창. 11일 오전 9시 그의 영결식이 열리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광장에는 명창이 부른 '춘향가' 중 '어사출도' 대목이 울려퍼지고 있었다."저는 오정숙 선생이랑 반백년 이상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오정숙 선생, 내가 더 지키고 가꿔서 오랫동안 더 살게 했어야 했는데, 내가 죄인이 됐습니다."유족 배기봉 동초제판소리보존회 회장은 눈물을 훔쳐내느라 말을 잇지 못한다.이일주 조소녀 민소완 이순단 방성춘 이영신 명창 등 문화재로 지정받은 제자들을 비롯해 소리를 물려받은 제자들이 부르는 눈물 섞인 '반야심경'과 '보렴'은 더 구슬프다. 제자 대표로 고별사를 한 동초 선생의 아들 김규형씨는 "부모님 돌아가실 때의 아픔,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느낀다"며 "고된 꾸지람을 끔찍한 제자 사랑으로 생각하고, 동초제가 방방곡곡에 꽃 피울 수 있도록 지켜가겠다"고 다짐했다.맑고도 단단한 소리를 뽑아냈던 작은 체구는 제자들의 오열 속에 전주 효자동 승화원에서 불꽃으로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명창의 유해는 한 줌 재가 돼 전남 고흥군 금산면 대흥리 동초 선생 곁에 뭍혔다.국악장으로 열린 오명창의 영결식에는 송하진 전주시장과 이영희 한국국악협회 회장, 김용삼 문화체육관광부 전통문화예술과장, 황병근 전 전북예총 회장, 이재형 국립민속국악원 원장, 문치상 풍남문화법인 대표, 홍정택 김유앵 최승희 김일구 조통달 명창, 주봉신 김청만 고수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시민 400여명이 참석해 국창 가는 마지막 길에 함께했다.

  • 문화재·학술
  • 도휘정
  • 2008.07.14 23:02

미륵사지석탑, 해체 10년 공정 80%

10년전 보수 정비에 들어간 국보 11호 익산 미륵사지석탑의 해체 공정이 80%를 넘어섰다. 국내 문화재의 전면적 해체와 복원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미륵사지석탑 보수정비공사와 관련, 미륵사지유물전시관이 10일 올 상반기 162일간의 현장보고서를 냈다.이에 따르면 올들어 6월말까지 해체된 석탑 부재는 518개. 하루 3.2개꼴로 부재를 걷어낸 셈이다. 고건축 전공자 3명과 보존학자 4명, 드잡이(석탑을 뜯어내 다시 맞추는 사람) 1명이 투입돼 부재 1개마다 스캔을 뜨고 복원시 재사용 할 수 있게 보존처리 하면서 '진짜 보물 다루듯' 하느라 해체과정이 더디다.문화재연구원은 98년 시작된 미륵사지석탑 보수정비사업을 당초 10개년 계획으로 2007년 마무리 할 예정이었으나, 신중한 해체와 학술연구 병행을 위해 2014년까지 연장키로 지난해 결정했다.연장 첫해인 올 연초 서울대와 카이스트에 의뢰해 안전성평가 용역을 완료했고, 3월에 보수정비 현장 마당에 해체한 옥개석(지붕돌)을 해체전 모습으로 복원했다. 4월부터는 인근 금마 삼기면 일대 민가에 있는 석재 94구를 조사, 20% 정도가 미륵사지에서 반출된 것으로 추정했다.현재 남아있는 부분은 석탑 1층 본체의 옥개석 아랫부분과 북서측 석축 일부로, 연구원은 하반기 남은 부분에 대한 해체를 계속할 계획이다.유물전시관측은 보수정비 과정 자체가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보고 방학중 일반시민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보수정비에 대한 현장설명회를 가질 예정이다.

  • 문화재·학술
  • 김원용
  • 2008.07.11 23:02

부여문화재硏, 3중 기단 백제 목탑 첫 확인

목탑이 들어설 기단을 3중으로 다져 만든 사례가 익산 제석사지에서 처음 밝혀졌다.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10일 사적 제45호인 익산 제석사지에 대한 올해 발굴조사 결과, 정교한 판축(版築)으로 만든 삼중기단 목탑지와 화려한 암막새로 장식된 금당지 등 익산제석 사지의 실체를 확인했다고 밝혔다.제석사지는 백제 제30대 무왕(재위 600-641)이 사비(부여)에서 지금의 익산으로 천도하는 일환으로 세웠다가 639년 벼락으로 불당과 회랑 등 불에 탄 백제 왕실사찰로 추정되고 있다.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6월 익산 왕궁성과 관련된 왕실 사찰의 성격을 규명하고 정비 복원 자료로 활용키 위해 사역 중심부인 목탑지-금당지-강당지에 대한 전면적인 발굴 조사에 들어갔다.이번 조사 결과 제석사지 가람의 세부적인 특징이 드러났는데 두께 약 3m에 3중인 목탑 기단은 차곡차곡 흙을 다져 올리는 판축 기법으로 쌓은 것으로 나타났다. 바깥쪽 기단은 한 변의 길이가 21.2m의 이중 구조며 그 안에 목탑 중심부가 위치하는 또 다른 기단이 드러나 결과적으로 3중 기단으로 구성됐다.목탑은 지면을 방형으로 파내고 그 안에 약 70cm 두께로 갈색 사질 점토를 채워 넣은 다음, 다시 그 위에는 약 250cm 두께로 또 하나의 판축 기단을 조성했다.연구소는 이같은 3중 기단 갖춤 목탑은 일본과 중국등 동아시아 3국 불교 건축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독특한 구조라고 밝혔다.이번 조사 결과에서는 또 전형적인 백제 연화문 수막새 및 다른 기와 편과 함께 화려하고 우아한 인동당초문 암막새가 다량으로 확인됐다.조사단은 이 암막새들이 같이 출토되는 유물 및 그 출토 층위를 볼 때 백제시대 유물로 판단된다면서 중앙에는 도식화한 귀면문(소위 도깨비 문양)을 조각했으며 그 좌우에는 유려한 인동당초 문양이 확인됐다고 밝혔다.이밖에 제석사지 곳곳에서 건물 기단 기초를 다지기 위한 달구질 흔적이 확인됐으며 그 북동쪽 폐기장에서는 帝釋寺(제석사)라는 글자를 새긴 기와가 출토됐다.한편 부여문화재연구소는 향후 제2차 발굴조사를 통해 제석사지의 중문지와 회랑에 대한 확인조사를 계획하고 있는데 독특한 형태의 목탑 구조를 밝혀 중국, 일본의 목탑에 대한 비교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이번 발굴조사에 대한 일반인 대상 현장설명회는 오는 12일 실시할 계획이다.

  • 문화재·학술
  • 엄철호
  • 2008.07.11 23:02

"태조 어진 잘 모셔라"…문화재청 전주시 방문

'왕(王)에 대한 예의를 갖춰라'.문화재청이 최근 태조 어진(御眞·보물 제931호)을 풍수지리까지 감안해 봉안해 줄 것을 요청하고 나섰다.이들 관계자들은 9일 경기전 유물전시관 관련, 업무협의를 위해 전주시를 방문한 가운데 태조어진의 봉안 위치와 봉안 방향까지 일일이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태조어진은 오는 21일, 3년여 만에 전주로 환안되며, 오는 2010년 이후 경기전에 건립되는 유물전시관에 봉안된다.문화재청 관계자들은 이와 관련, 태조어진을 유물전시관 지하층이 아닌 1층에 보관하라고 주문했다.전시 방향도 북쪽이 아닌 남쪽을 바라보도록 조정함으로써 조선의 초대 왕인 태조(太祖)에 대한 예우를 제대로 갖출 것을 요청했다.물론 문화재청의 제안에는 지하보다는 지상, 북향보다는 남향이 항온·항습 효과가 크다는 의미도 담겨있다.하지만 비록 초상화지만 왕을 방문객 발밑에, 햇볕과 바람이 적은 북쪽을 바라보도록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따끔한 충고가 담겨있는 것으로 풀이된다.문화재청은 이에앞서 전주시청에 태조어진이 또다시 훼손될 경우 영구적으로 국가에서 관리한다는 공문을 보내왔다.시 관계자는 "문화재청이 왕에 대한 예우를 갖춘 가운데 최대한 잘 모시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라고 설명했다.한편 시는 오는 2010년까지 경기전 내에 총 44억원을 투입해 지상 1층, 지하 1층 규모의 유물전시관을 건립한다.

  • 문화재·학술
  • 구대식
  • 2008.07.1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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