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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충남 홍성군 홍동면 '협동 마을' 가보니 - 먹거리 생산 판매·돈 거래·아이 키우기…일상화된 '협동'

1957년 풀무농업기술학교 소비조합부터 출발 / 생필품·농자재·금융·보육 등 다양한 '협동조합' / 풀무생협, 오리농법 국내 첫 도입 유기농만 취급

   
▲ 충남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와 금평리 일대 지도. 이 곳에는 다양한 형태의 협동조합이 마을 곳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작은 흑백사진은 1957년 개교 당시 풀무학교 건물. ········· 자료·사진 제공=풀무생협 제공
 

충남 홍성은 국내 오리농법의 발원지다. 오리농업을 시작한 이들은 '풀무'라는 이름의 협동조합이다. 풀무는 대장간에서 쇠를 녹일 때 바람을 넣는 기구다.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와 금평리에서는 풀무처럼 협동을 통해 땅에 생명을 불어넣는 이상촌의 실험이 이뤄졌다. 이달 3일 찾은 홍동면에는 조류독감 이후 우렁이 농법으로 전환했지만, 논 곳곳에는 오리농법의 흔적이 보였다.

 

 

   
▲ 풀무생협이 운영하는 갓골작은가게. 풀무학교에서 만든 빵과 지역의 유기농 식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오후 4시께인데도 일부 제품은 완판됐다(사진 위). 이 곳에서는 손님이 장부에 이름과 물건·가격을 스스로 기록하고 돈을 낸다(사진 아래). 홍성=이세명기자

△ 교육으로부터의 시작

 

풀무협동조합은 1957년 풀무농업기술학교(풀무학교)로부터 출발한다.

 

밝맑 이찬갑(1904~1974) 선생이 개척자였다. 그는 해방 후 월남, 무교회신앙집회에서 뜻을 같이한 샛별 주옥로(1919~2001)의 고향인 홍성에서 함께 풀무학교를 운영했다. 목사직을 버리고 교육에 투신했던 주옥로는 당시 교회 부지에 폐교된 학교의 잔해를 모아 학교를 지었다. 전쟁 직후 가난하고 중학교 진학률이 40%였던 마을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학교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들은 학용품을 구하기 위해 읍내까지 나가야 했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1960년 교직원과 학생을 중심으로 교내 구매부를 소비조합 형태로 운영했다. 창업생(풀무학교에서 졸업생을 가리키는 말)을 중심으로 유기농업을 실천하면서 1975년부터는 농민의 생필품과 농자재 공동 구입을 위한 풀무소비자협동조합(현재 풀무생협)으로 확대됐고, 도서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풀무신협)이 교내에서 운영됐다. 풀무소협은 라면·설탕·소금과 같은 생필품으로 시작해 시멘트, 합판 등 농자재까지 취급했다. 나중에는 흥농종묘 홍성대리점과 계약, 씨앗도 판매했다. 1980년까지 학생도서관, 갓골어린이집, 농기계협동조합, 제빵협동조합, 풀무생협 등이 만들어지는 등 이들에게 협동은 일상이었다. 기존 조합이 자금을 빌려주고 조합원의 출자가 더해지면서 다양한 협동조합이 생겼다.

 

현재는 풀무농업기술학교 생태과정(전문대 과정), 환경농업교육관, 홍성여성농업인센터, 밝맑도서관, 갓골목공소 등 마을에 약 30개 기관단체가 운영되고 있다.

 

출자한 주민이 운영에 참여하는 경험과 전통이 쌓이면서 생활 속에서도 협동이 가능했다. 2년 전 동네 치킨집이 문을 닫게 되자 단골 주당 7명이 출자자 100여명을 끌어모았고, 주민의 재능 나눔으로 운영되면서 지금은 마을 카페로 자리잡았다. 흑자가 나면 지역단체에 기부도 한다.

 

 

   
 

△ 협동하는 마을, 유기농산물 고집

 

홍동면 금평리 김애마을을 찾은 3일 소포장센터에서는 감자 포장 작업이 이뤄졌다. 사회적기업으로 인증을 받은 이곳에서는 주문에서 배달까지 3일 내에 처리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유기농 농산물은 전량 아이쿱(icoop) 생협연대에 공급된다.

 

풀무소협은 1987년부터 유기농산물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풀무생협이 됐다. 교통의 발달로 이들에게 대두된 문제는 구매가 아닌 유기 농축산물의 판로였다. 1989년 여성민우회 납품으로 도시 소비자에게 유기농산물을 직거래로 공급했다. 당시 유기농쌀은 백미 10배 값을 받았다. 200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친환경 유기농 생산자 협동조합으로 정체성을 확립했다. 2003년 풀무환경농업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면서 23개 작목반이 모인 쌀생산위원회, 23개 작목반이 구성한 채소 생산위원회, 7개 작목반으로 이뤄진 축산위원회를 뒀다.

 

이들은 농축산물마다 개별 규정으로 품질을 관리, 지역 지역순환농법을 고수했다. 2007년 7농가가 다양한 논생물과 함께 하는 유기벼를 시범재배하면서 논 안에 다양한 생명이 사는 논생물다양성 농업을 시작했다. 2010년 기준 매출액은 120억 원을 조금 넘었다. 조합원은 850여명으로 이중 야채류는 200여명, 나머지가 벼농사를 주로 지으며 축산 등 혼합농이다.

 

풀무생협의 조합원은 가족단위의 영농체계 속에서 지역농업을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유기농업을 추구했다. '정직한 생산이야말로 지역농업을 지속 가능케 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논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축산의 사료와 깔집으로 이용하고 축산의 부산물은 미생물을 넣어 퇴비화해 다시 논과 밭의 밑거름으로 사용하는 자연순환농법을 실현했다.

 

△ 뿌리가 튼튼하면 흔들리지 않아

 

풀무생협도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다. 2005년 대풍년과 함께 유기농 쌀도 적체가 됐다. 생산자 관리도 어려워지면서 누적 적자가 30억 원을 넘었다.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아 조직의 슬림화 등 변화를 꾀했다. 영농조합법인도 야채, 주곡, 축산 등 4개로 분리했다. 외환위기 이후에는 풀무신협도 위축됐다.

 

풀무생협의 46번째 조합원이라는 이윤확 씨(58)는 "형, 아우, 친구들이 풀무기술학교를 나왔다. 초창기 때는 학교 졸업생이 생산자 조합원이 되고 단합이 잘 이뤄졌다. 유기 농산물이 일반 농산물과 가격차가 컸고 희소성도 높아 고소득도 올릴 수 있었다"면서도 "갈수록 여러 사업과 시설을 구축한 뒤 조합의 빚이 늘면서 어려워졌다. 협동조합은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다. 몇 십년 해도 어렵다"고 들려주었다.

 

홍성풀무센터 서경화 도농교류팀장(42)은 "초기 풀무학교 창업생도 나이가 들면서 생산자의 고령화가 나타났다. 풀무신협은 누구 집에 소가 몇 마리고 이 때쯤이면 왜 돈이 필요한지 알 정도로 가족같은 분위기였지만 예전만큼 공동체적인 분위기는 적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특히 향후 외지인이 땅을 매입할 경우 유기농법의 지속성도 의문이다. 특목고로 인가받은 풀무학교에 농업에 관심이 있는 학생 외에 입시를 목적으로 입학하면서 지역 졸업생의 비율이 낮아지고 있다"고 걱정했다.

 

서 팀장은 이어 "다행히 최근 귀농귀촌 지역으로 홍동면이 각광을 받고 있다. 김애마을 30여 가구 중 8가구가 귀농자다. 일부는 땅이 없어 농사를 못 짓기도 한다"면서 "정부 정책에 기대면 외부의 위협에 조직이 크게 우왕좌왕한다. 하지만 사람을 중심으로 뿌리가 튼튼하면 흔들리지 않는다. 마을에서 자생적으로 조합을 만들고 운영했던 경험이 풀무의 자산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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