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숙 칼럼] 사뮤엘 베케트를 기리며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벌판에서 부랑자처럼 허름한 옷차림의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고도라는 사람을 기다린다. 사뮤엘 베케트의 연극『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도가 오면 따뜻한 음식과 잠자리가 제공될 것이란 기대에 부풀은 두 주인공 앞에 포조와 럭키라는 독특한 인물들이 지나가고, 1막 마지막 쯤 한 어린아이가 나타나 말한다. 오늘은 고도가 오지 않지만 내일은 꼭 올 것이라고 전하랬다고. 아이가 도망치듯 사라지면 날이 저문다. 2막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같은 어린아이가 나타나서 오늘도 고도가 오지 못한다는 소식을 전하고 사라진다. 황량한 무대에 남은 두 주인공은 좌절 끝에 자살을 시도해볼 생각도 하지만 여전히 고도를 기다린다. 1952년 파리에서 초연된 후 베케트에게 대중적 명성을 안겨 준『고도를 기다리며』는 쉽게 읽히거나 부담 없이 관람할 수 있는 유의 연극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상아탑 속에서의 연구 대상으로만 머물지 않고, 세계 각국에서 무대화되어 다양한 관객층을 사로잡고 있다. 난해하고, 지적이며, 다양한 의미의 해석 층을 지녔다고 평가되는 사뮤엘 베케트의 희곡들이 세계 각국에서 여전히 무대화라는 도전을 끊임없이 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베케트의 작품 속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연극 언어와 작품 속에 내재된 연극성, 무대화의 잠재적 가능성의 다양함과 풍부함에 기인하는 것 같다. 연극은 모호하게 끝난다. 고도가 어딘가에 있는지, 정말 올 생각이었는지, 1막에서 멀쩡하고 거만하던 포조는 왜 2막에서 장님이 되어버렸는지,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고도를 만나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해 베케트는 설명하지 않는다. 고도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을 무대 위에서 보여 줄 뿐이다. 고도가 무엇을 의미하냐고 끈질기게 묻는 비평가, 기자, 학생들에게 생전의 베케트는 ‘내가 그걸 알았다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다.’라는 말로 설명을 대신하곤 했다. 어떤 이들에게는 하루하루, 일 분, 일 초가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아까우며, 어떤 이들에게는 하루, 한 달, 일 년의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 수도자의 고행처럼 고통스럽다. 그렇게 다른 것이 인간의 삶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죽음 앞에 선 유한한 삶이 동일하게 놓여있다.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한정된 거리를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질주하는 것이 인생일 텐데, 삶이란 어디서부터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 것인지, 왜 흘러가는 것인지 베케트는 작품 속에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 하지만 작품을 통하여 내가 누구인지, 내가 인생에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지를 사유하게 해 준다.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사뮤엘 베케트는 1906년 4월 13일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2006년 4월 13일, 베케트 탄생 100주년을 맞는 날에 사뮤엘 베케트를 기린다./유효숙(우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