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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가야 찾기 어디까지 왔나] (상) 발굴·고증 현황

남원 유곡리두락리 가야 고분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최종 절차를 밟고 있는 가운데 전북 가야사의 실체가 어느 정도 규명됐는지 관심이 모아진다. 현재까지 밝혀진 전북 가야사의 존재는 일부 문헌사료와 고분 및 부장품, 제철유적, 봉수 등을 통해 확인된다. 문헌사료에 있는 기록과 유물유적과의 비교 분석도 진전되면서 고증도 진전되고 있다. 특히 장수남원 등지에서 발굴되는 제철유적은 주목할 만하다. 흔히 가야를 철의 왕국이라 하지만, 가야의 중심지라고 일컬어지는 김해와 고령에서 발굴된 제철 유적은 없다. 다만 전북 가야 세력을 독자 세력이 아니라 영남권 대가야의 하위집단으로 보는 통설, 봉수제철유적의 연대기가 가지는 불확실성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 등이 남아있다. 전북의 가야사를 엿볼 수 있는 문헌사료와 유적 분포현황, 대표유적 그리고 이들이 갖는 의미와 추후 과제를 정리해본다. △ 전북 가야 유적 현황과 관련사료 1일 전북도에 따르면 도내 가야 유적은 남원완주무주장수진안임실순창지역에 모두 822개가 있다.(2020년 12월 현재) 종류는 고분, 제철유적, 봉수 산성으로 다양하다. 이 중 전북 가야의 존재를 방증해주는 유적인 제철, 봉수, 고분은 776개로 94%를 차지한다. 전북에 가야소국의 존재여부를 추정할 수 있는 문헌사료도 있다. 중국 양나라 때의 사료인 양직공도(梁職貢圖)와 720년대 완성된 일본서기(日本書紀)이다. 일본서기에는 반파는 백제와 3년 전쟁(514년~515년)을 치르면서 봉수를 쌓아올렸다고 나온다. 군산대학교 곽장근 역사철학부 교수는 반파는 가야계 소국으로 추정되며, 기록에 나온 봉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봉수가 발견된 곳은 전북 동부가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봉수 주변 가야계 산성과 석축, 수혈식 석곽묘, 축대시설이 분포한다며 가야의 봉수로 해석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양직공도에는 남원시 일대에 기문이라는 소국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다. 곽 교수는 이들은 5세기부터 6세기 초까지 백제에 의탁하면서 연명했던 소국이라며 이 지역에서 발굴된 토기와 봉토분 양식을 문헌사료와 비교해보면 가야계 국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 대표유적-남원 유곡리 두락리 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이 고분군은 기문국의 실체를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고고학적 자료로 꼽힌다. 연비산에서 서쪽으로 내려오는 능선을 따라 40기의 봉토분(封土墳)으로 존재하며, 이 중 12기는 지름 20m가 넘는 대형고분이다. 조성시기는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이다. 무덤양식은 가야계 수혈식 석곽묘(구덩식 돌덧널무덤)와 백제계 횡혈식 석실분(굴식 돌방무덤)이며, 지난 1989년과 2013년에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확인됐다 축조세력이 지배층이었음을 방증하는 유물도 출토됐다. 금동신발편, 청동수대경, 갑주, 환두대도(環頭大刀-장식용 칼) 등을 비롯한 금속유물 160여점, 기꽂이, 마구류, 꺽쇠 등의 철기류 210점, 원통형 기대를 비롯한 대가야 양식의 토기류 110여점 이다. 이 중 금동신발과 청동수대경은 처음 출토된 것으로 백제와 왜, 중국 남조 등과의 대외관계를 살필 수 있는 유물로도 평가받고 있다. 전북도 노기환 학예사는 토기를 통해서도 인접 국가와의 대외교류를 유추할 수 있다고 봤다. 노 학예사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철을 가야나 백제에 주고 토기를 가져왔을 것이라며 고부가가치의 생산품을 주고 소모품적인 생산물을 가지고 오는 무역 형태라고 했다. 이어 기문국의 주 세력은 운봉고원에 존재했던 사람들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 대표유적-단야구(鍛冶具) 지난해 9월 장수 백화산 고분군 발굴현장에서 공개된 단야구는 반파와 철제 유물의 실상을 밝혀줄 수 있는 자료로 꼽힌다. 단야구는 철기를 제작할 때 사용되는 망치, 집게, 모루 등의 도구로 호남 가야고분에서 처음 확인됐다. 게다가 단야구에서는 실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타격흔이 발견됐다. 이를 통해 피장자는 장수지역 철기제작을 담당했을 수장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장수남원 등지에서 확인되는 제철유적과의 연관성까지 높여준다. 곽 교수는 운영의 주체는 고증이 되고 있다며 문헌사료와 비교해보면 반파국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지표조사를 통해 확실히 가야 철제유물이라는 점을 시기적으로 규명하는 과제가 남았다고 강조했다.

  • 문화재·학술
  • 김세희
  • 2021.02.02 19:02

[최완규 교수의 '마한이야기'] 마한의 장제(葬制)문화

인간에게 죽음이란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두려움을 영혼불멸 사상으로 승화하여 영혼은 또 다른 세계로 지속된다고 믿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죽은 후에 영혼의 안식처가 되는 무덤의 축조에는 당시 사회생활의 특성이 잘 반영되어 있다. 특히 인간의 생각이나 풍습 등을 바탕으로 묘제나 장제가 형성되기 때문에 전통성과 보수성이 매우 강한 고고학 유적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조」에 마한 장례 풍속의 한 단면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그들의 장례에는 관(棺)은 있으나 곽(槨)은 사용하지 않는다. 소나 말을 탈 줄 모르기 때문에 소나 말은 모두 장례용으로 써버린다. 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관은 시신을 매장하기 위해 담는 용기로 사용되는 널이며, 곽은 관을 보호하기 위해 덧싸는 덧널을 일컫는다. 중국의 고대문헌인 『장자(莊子)잡편(雜篇)』에 보면 천자는 관곽을 일곱 겹으로, 제후는 다섯 겹, 대부는 세 겹, 선비는 두 겹으로 관곽을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곧 신분이나 계층에 따라 관곽의 중첩 사용에 제한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중국의 관곽제도는 묘장제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상(商)주(周)시대를 거쳐 춘추시대에 등급이 분명한 제도로 정착되었다. 이후 전국시대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관곽제도는 쇠퇴해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관이 사용되었던 토광묘 유적은 만경강유역을 중심으로 익산지역과 완주전주 일대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마한을 성립한 집단에 의해 축조된 것이다. 특히 익산지역의 토광묘 유적은 고조선 준왕이 이주해 왔다는 문헌기록을 확인해 주고 있다. 이러한 묘제는 중국의 동북지방에서 철기문화를 가지고 들어온 집단에 의해 새롭게 축조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곳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점토대토기와 흑도장경호, 그리고 세형동검이나 동경을 세트로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특히 토광묘의 발굴과정에서 확인된 매몰토 단면 토층을 통해 무목관, 목관, 목곽, 통나무 목관 등이 사용되었던 흔적이 발견되고 있어서 『삼국지』에 기록된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다. 진한이나 변한지역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토광묘 내부구조가 변화되는데, 곧 목관 단계에서 목곽을 사용하는 단계로 발전해 가는 양상을 띠고 있다. 토광 내에 목곽의 등장은 진변한 사회에 지배 계층의 출현과 관련된 증거로서 사회의 발전의 척도로 해석되고 있다. 한편 마한 사회에서는 토광묘 다음 단계에 유행하는 대표적인 묘제로서 주구묘(분구묘)를 들 수 있는데, 역시 주매장주체부는 주로 토광을 채용하고 있지만, 목곽은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이 삼한사회에서는 토광묘라는 공통적인 묘제를 채용하고 있었지만 내부구조의 변화과정에서 보이는 차이점은 곧 마한과 진변한의 문화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최완규 원광대학교 역사문화학부 교수

  • 문화일반
  • 기고
  • 2021.02.02 17:25

김석환 개인전, 현장의 필치로 담아낸 북한산

건축가로 활동하며 그림을 그리는 김석환 작가의 18번째 개인전이 3일부터 8일까지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다. 작가는 근래 붓펜을 대신해 모필로 작업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수묵과 모필을 사용한 작업은 전형적인 수묵산수화이나, 그의 작품은 일반적인 수묵산수인 실경산수 또는 관념산수와는 어딘가 다르게 보인다. 무엇보다 형태 감각이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다. 이는 산행을 통해 현장에서 작업하는 접근 방식에서 기인한다. 실상을 직접 눈으로 보고 관찰해 그 전체상을 파악해나가는 일련의 과정이야말로 그의 수묵산수화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화강암으로 이뤄진 북한산의 기세와 골격은 어디서 보더라도 힘차고 당당하며 또렷하다. 이와 같은 산의 형태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작가의 수묵산수는 명확한 형태를 추구하는 건축가로서의 성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실사의 힘은 작가의 수묵산수화가 끌어낸 성과이자 특색이다. 선염이나 발묵, 파묵과 같은 수묵산수의 보편적인 기법을 따르지 않고 점과 선만으로 형태를 결구하는 작가의 수묵산수는 실제적인 공간감이 남다르다. 김 작가는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서울산업대, 광주대, 삼육대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대한건축사협회, 한국건축가협회, 한국미술협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전시·공연
  • 문민주
  • 2021.02.02 17:18

충주박씨 기증유물 2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지정

원광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충주박씨 기증유물 2점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2일 익산시에 따르면 충주박씨 기증유물인 눌재 박상 초상화와 사암 박순 초상화가 지난해 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지정예고를 거쳐 최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75호제276호에 각각 지정됐다. 눌재 박상사암 박순 초상화는 충주박씨 문중이 유물의 온전한 보존을 위해 지난 1970년 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눌재 박상은 병조좌랑, 사간원헌납, 상주목사, 나주목사 등을 역임한 조선 전기 사림파 문신이다. 박상 초상화는 오사모에 담홍색 단령을 입은 전신교의좌상으로 15세기 문인 관료 초상화의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19세기 이후 서화를 본떠서 그리는 이모(移模) 과정에서 당시의 시대색과 음영기법이 추가됐다. 조선시대 초상화의 전형적 양식과 시대적 변천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회화사적과 지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눌재 박상의 조카인 사암 박순은 눌재 박상의 조카로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조선 중기 문신이다. 박순 초상화는 오사모와 청색 단령을 입은 전신교의좌상으로서 16세기 공신 초상화의 전형적인 양식을 갖추고 있다. 18세기 이후 이모(移模) 과정에서 당시의 시대색과 장식적 기법이 추가됐으며 조선시대 초상화의 전형적 양식과 시대적 변천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박상 초상화와 마찬가지로 회화사적, 지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박상박순 초상화는 원광대 박물관 4층 서화기증실에 보관 전시되고 있으며,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코로나19 방역수칙에 따라 사전예약 후 관람 가능하다.

  • 문화재·학술
  • 엄철호
  • 2021.02.02 16:15

[전라감사 100인 열전] 소를 타고 다니며 더디게 살려 했던 이행

△ 이행의 가계와 외가 평해 황씨 이행(李行)은 고려 공민왕 원년(1352)에 태어나 조선 세종 14년(1432)에 졸하였다. 그의 본관은 여주이며, 자(字)는 주도(周道), 호는 기우자(騎牛子)ㆍ백암거사(白巖居士)ㆍ일가도인(一可道人)이다. 호 기우자는 소를 타고 다녀서 붙여진 것이다. 이행의 가문은 고려말 신진세력으로 그의 아버지는 충주목사를 지낸 이천백으로 충목왕대 정치도감에서 활약한 개혁세력이며 공민왕대 홍건적 침입시 전사하였다. 어머니는 평해 황씨로 황서의 딸이다. 평해는 지금의 경상도 울진이다. 이행의 외가는 평해지역에 상당한 세력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이행은 개경에서 태어났으나 홍건적 침입 때 외향인 평해로 피신하였으며, 이곳에서 성장하였고, 관직에 진출한 후에도 낙향하여 오랫동안 평해에 은거하였다. 유배도 울진으로 왔다. 그의 행보에 외가 평해는 기반이 되었다. △ 호 기우자와 평해 월송정 평해 월송정은 그가 소를 타고 노닐던 곳으로 그가 지은 월송정 시가 편액으로 걸려 있다. 지난 2019년 바다로 둘러싸인 월송정 가는 소나무숲길에 비를 세우고 기우자길로 조성하였다. 월송정 가까이에 백암온천이 있다. 그의 또 다른 호 백암은 온천이 있는 백암산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의 외가는 백암산 기슭 날라실(飛良縣) 마을에 있었다. 월송정에서 10리쯤 떨어진 마을이다. 그는 달밤이면 소를 타고 월송정에 가서 노닐곤 하였다. 권근은 「기우설(騎牛說)」에서 나의 벗 이공 도주(李公道周, 이행)가 평해에 살면서, 매양 달밤이면 술을 가지고 소를 타고서 산수 사이에 놀았다 무릇 물체를 볼 때 빠르면 정(精)하지 못하고 더디면 그 묘한 것을 다 볼 수 있다. 말은 빠르고 소는 더딘 것이라 소를 타는 것은 곧 더디고자 함이다 소를 타는 즐거움을 그 누가 알랴.라고 하였다. △ 학문이 출중했던 개혁세력 이행은 공민왕 20년(1372)에 과거에 급제하여 예문관 한림에 임용되고 이어 춘추관 수찬이 되었다. 이후 고려 조정에서 좌사의대부, 지신사(도승지), 경연 참찬관, 이조판서, 예문관 제학 등을 지냈다. 조선건국후 계림윤, 전라도관찰사, 예문관대제학, 판한성부사, 형조판서, 완산부윤, 개성유후 등을 지냈다. 그는 학문과 문장에 뛰어났다. 고려말 1386년(우왕 12) 탐라가 자주 반란을 일으키자 전의부정으로 탐라에 가서 성주 고신걸의 아들 고봉례를 볼모로 데리고 와서 이를 수습하였다. 1388년 7월 사전(私田)의 폐단을 논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8월에는 관제 개혁과 인사의 공정도 건의하였다. 권신들의 정치 농단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전하께서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시고 공(公)으로써 하시고 사(私)를 멸하시라고 하였다. 1390년 공양왕 2년에 윤이이초 옥사에 연루되어, 이색과 함께 청주 옥에 갇혔다가 풀려났고, 공양왕 4년에는 정몽주를 살해한 조영규를 탄핵하였다. 고려가 망하자 그는 황해도 강음 예천동에 은둔하여 두문동 72현으로도 불린다. △ 태조가 우왕과 창왕을 죽였다고 사초에 기록 이행은 태조 2년 정도전 등이 <고려사>를 편찬할 때 태조가 우왕과 창왕을 죽였다는 고려시대의 사초를 그대로 넣었다는 무서(誣書) 사건으로 탄핵을 받아 장 1백대에 가산을 적몰당하고 경상도 울진으로 유배되었다. 이듬해 10월 태조 탄신일이라고 하여 풀려났다. 이 사초사건은 태종 14년(1414) 5월 <고려사>를 개수 할 때 또 불거졌다. 이응이 말하기를 , 신이 듣건대, 태조 때에 정도전ㆍ정총ㆍ윤소종이 고려의 실록을 수찬하자 여러 사관이 모두 사초를 고쳐서 바쳤으나, 오로지 이행만은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감옥에 갇히는 것을 면치 못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그의 강직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조선이 이런 기록을 실록에 남겼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이 일은 세종대에 또 한번 언급되는데, 세종이 사관이 죽으면 바로 사초를 거둬들이려 하자 사관들이 이렇게 되면 나라 백성이 이행을 거울삼아 반드시 직필하지 아니할 것이다.라고 반대하여 세종이 뜻을 거두었다. △ 전라감사와 전주부윤 역임 이행은 태종 3년(1403) 1월에 전라감사로 부임하여 그 다음 해 4월경에 이임하여 1년 3개월 정도 재임하였다. 전라감사 재임시 전주, 여산, 익산 등 14개 고을의 가뭄이 극심해 콩도 심지 못할 정도였다. 또한 조선초 빈발하였던 왜구의 침입과 약탈이 이때 더욱 심해 그로 인한 피해도 컸다. 태종 4년 1월에 경상감사 남재와 함께 병으로 사직하였는데 이런 사태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 그는 또 태종 13년 4월에 전주부윤에도 임용되었다. △ 여언(餘言) 이행은 또 차에도 조예가 깊었다. 성현이 찬한 『용재총화』에 보면 그는 성현의 선조 성석인과 친했다. 이행은 물맛을 분간할 수 있었는데, 충주(忠州) 달천수(達川水)를 제1로 삼고, 금강산에서 나와 한강 가운데로 흐르는 우중수(牛重水)를 제2로 삼고, 속리산의 삼타수(三陀水)를 제3으로 삼았다. 그는 또 태종 17년(1417) <농상집요> 에서 양잠방(養蠶方)을 뽑아내어 판각해, 양잠업의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세종 14년 81세로 졸였다.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문집으로 1872년에 편찬한 『기우집』이 전한다. 장자 이척은 제학(提學)을 지냈다. 이행은 장자가 죽어 말년에 차자 이적(李迹)의 집에서 기거하였는데 그의 사후에 이적과 장손 이자(李孜), 서자 몽가(蒙哥) 간에 재산분배를 놓고 불화가 일었다. 이자는 양녕대군의 사위이고 이자의 외조카가 한명회이다. 이행의 장자 계열은 세종대 훈척세력으로 자리하여 성종대 망족(望族)이라고 이를 만큼 성장하였다. /이동희(예원예술대학교 교수. 전 전주역사박물관장)

  • 문화일반
  • 기고
  • 2021.02.01 18:07

전주세계소리축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특별한 협업

전주세계소리축제(이하 소리축제)가 코로나19로 미뤄진 한러 수교 30주년 기념사업을 재개하고 양국 교류의 물꼬를 잇는다. 소리축제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두 나라의 전통예술을 4개의 레퍼토리로 얽어 영상 콘텐츠로 선보인다. 판소리와 태평무, 설장구, 아쟁, 태평소 등을 러시아 예술장르와 접목해 색다른 작품을 만들어 낼 예정이다. 이를 위해 소리축제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심포니오케스트라 측에 편곡한 악보와 설명을 보내고 그들의 연주 장면을 영상으로 받았다고 한다. 오는 4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는 이 영상을 배경으로 한국 연주자들이 실제 연주를 펼치는 영상 콘텐츠를 제작한다. 이렇게 촬영한 영상물은 후반 작업을 거쳐 다음 달 양국 SNS와 유튜브, 공중파 TV 프로그램 등을 통해 공개한다. 곡은 우도농악의 꽃이라 불리는 오채질굿으로 시작해 화초장 타령, 엇모리 볼레로, 아리랑의 순서로 이어진다. 오채질굿은 농악 가락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가락으로, 소리축제는 설장구 4대 편성으로 작품의 도입부를 장식한다. 뒤이어 상트페테르부르크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더해진다. 엇모리 볼레로는 러시아의 대표 발레곡인 볼레로와 한국의 대표 장단인 엇모리의 이질적인 조합 위로 러시아 발레와 한국 태평무가 음률을 탄다. 발레리나 아나스타시아 트리피노바와 한국무용가 복미경 씨가 출연한다. 총연출을 맡은 소리축제 박재천 집행위원장은 소리축제만의 장점을 살려 이질적인 두 나라 음악과 예술을 하나의 작품 속에 녹여내, 좌절의 시간을 딛고 새로움과 연대를 향해 나아가는 예술인들의 갈망과 열정을 담아내겠다고 밝혔다.

  • 전시·공연
  • 문민주
  • 2021.02.01 17:11

[이승우의 미술 이야기] 우리 생활 속의 색채 ①

몇 가지 예를 더 보자. 음식물이나 의약품은 대개 갈색이나 녹색의 병에 들어 있다. 비타민을 파괴시키는 자외선과 적외선을 통과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북창(北窓)의 방에 청색 톤의 도배는 더욱 추워 보이고 남창의 경우 황색 톤을 하면 우리는 나른해한다. 색은 또 고문에도 사용된다. 빨간 방에 넣어 놓고 금속끼리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들려주는 고문 방식이다. 우리의 감각기관 시각, 미각, 청각, 촉각, 후각, 육감 중에 80%가 시각이고 그 다음이 7%의 청각이다. 나머지 감각 기관은 극히 미미하다. 신체를 구타하는 방법이 초기 단계에서는 흔히 사용되나 자기를 이원화시키는 사람에게는 안 통할 수도 있다. 즉 맞고 있는 자기와, 맞고 있는 자기를 바라보며 위로하는 자기로 이원화 시킬 수 있는 사람에게는 고문의 효과는 크지 않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견디지 못하게 하는 고문 기술이 바로 색채를 이용한 시각고문, 그리고 병행되는 청각 고문이다. 두 가지 고문을 다 하는 것이 그리스 독재 정부에서 사용되었던 것은 분명하고 우리나라도 빨간 색의 고문이 도입되어 있었음을 당시 야당 정치인이 밝혔다. 하루를 지나니 눈을 감아도 빨간 색이 보여 운운 했던 것 같다. 고혈압 환자는 정말 견디지 못할 고문이었을 것이다. 옛날에 고문 기술자 이근안이 관절을 넣었다 뺐다 했다는 기록을 신문에서 본 일도 있지만 그 고문도 기초적인 고문이었을 따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밖에도 스키부대의 군복은 흰색이며 사막 부대의 군복은 올리브색이고 정글을 누비는 부대의 군복은 노랑과 녹색이 얼룩진 정글복이다. 약속된 색도 있다. 빨강은 서시오. 녹색은 가시오, 황색은 조심 또는 준비하시오,이고 청색은 유럽, 황색은 아시아, 흑색은 아프리카, 녹색은 오스트레일리아, 적색은 아메리카인 오륜기하며, 빨간 기미를 띤 주황색은 신학, 그냥 주황색은 공학, 분홍색은 음악, 황금색은 이학, 청색은 철학, 자색은 법학, 녹색은 의학, 흰색은 문학, 흑색은 미학, 미술은 브라운 등은 서로 약속하여 이루어지는 것들이다. 이는 대학 졸업식에 가보면 바로 알 수 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1.02.01 17:11

한국인이 꼭 가봐야할 관광지에 선정된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최근 한국관광공사에 한국인이 꼭 가봐야할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이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다. 남원시는 이번 선정이 광한루원(2013~2014)에 이은 두 번째 쾌거이다. 이번에 선정된 100곳의 명소 중 미술관은 총 3곳(서울시립미술관, 뮤지엄 산)이다. 하지만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의 작은 규모와 운영 예산, 개관한 지 만 3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이런 성과를 보여줘 더욱 놀라는 일로 여겨진다. △ 생명력 넘치는 힐링 공간 김병종 서울대 명예교수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은 2018년 3월에 개관한 이후 첫 해 2만9319명, 2019년 5만6031명이 찾았다. 지난 2020년에는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따른 수 개월의 임시휴관에도 불구하고 4만2501명의 관람객이 미술관을 찾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처럼 단시간에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가 된 이유는 무엇보다 생명 작가라고 불리는 남원 출신 김병종(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천대학교 석좌교수)의 기증 작품이 보여주는 생명의 에너지가 결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그의 작품들은 뉴스 영상을 통해 대통령 집무실과 영부인 접견실에서도 보이고, 드라마와 신문지면에서도 자주 등장해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들이 아, 이 작품!이라며 탄성을 지른다. 김병종 서울대 명예교수는 코로나 블루로 사회 곳곳이 신음하는 가운데 자신의 그림으로 치유의 삶을 선사하고자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20년이라는 나이차를 넘나들어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교감을 나눠 화제를 모았다. 이 전 장관은 연작시에 김 명예교수의 그림을 쓰겠다는 뜻을 피력해 코로나 블루를 이기기 위한 예술인들 간의 의기투합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 역동성 있는 미술관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의 경관도 사람을 끌어모으는 이유 중 하나이다. 바쁜 일상에 지친 관람객들은 미술관에 졸졸 흐르는 계단형 수경(水鏡)을 마주치자마자 무거움 마음을 내려놓는다. 물소리와 새소리가 가득하고, 멀리 지리산의 푸근한 산맥을 바라보며 지친 마음을 위로받는다. 이처럼 열린 마음으로 김병종의 생명 작품을 감상하게 되면 삶 자체에 고마움을 느끼게 되고, 각종 기획전시를 통해 얻는 예술적 영감은 지친 삶을 회복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은 지난 3년여 기간 동안 11번의 기획전시와 15번의 부대행사를 개최하고 역동성 있는 미술관으로 성장해 왔다. 김병종 기증작품 특별전-회상, 회향을 시작으로 FOCUS 이성자 프랑스 하늘에 수놓은 은하수, 예술편력: 김영태 누군가 다녀갔듯이, 최근 폐막한 외롭고 쓸쓸하고 그립고 생각나고가 대표적이다. 이환주 남원시장은 이번에 관광100선에 선정된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덕분에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된 경기가 조금이나마 회복되기를 바란다며 실제로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이 입소문을 타면서 타시군에서 찾는 외지 관람객들로 인해 인근 숙박시설과 요식업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젊은이들이 여행을 갈 때 주로 찾는 SNS를 검색해보면 남원 관광지로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미안커피 #서남만찬 #광한루원 #아담원이 꼽히고 있다.

  • 문화일반
  • 신기철
  • 2021.02.01 16:38

전북 후백제 관광자원화 밀릴 이유 없다

경북 문경시가 후백제 견훤 역사유적지 개발을 본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전주시도 관광자원화 작업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삼국사기> 등 문헌사료를 통해 드러나는 후백제 왕도로서의 상징성, 기존에 축적된 고고학 자료 등 관광객을 위해 스토리텔링을 할 만한 조건이 일정 부분 갖춰졌기 때문이다. 다만 후백제 왕궁터의 위치 비정 등 역사적으로 규명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어 충분한 고증과 연구성과 축적이 관광자원화를 위한 선결 과제가 될 전망이다. △ 문헌사료에 나타나는 후백제 왕도 전주 각종 문헌사료에서는 후백제 수도 전주의 존재가 잘 드러나고 있다. <삼국사기>권 제30 열전 견훤에 따르면, 견훤은 900년 나라의 도읍을 완산(전주)에 정하고 후백제 왕이라 칭했다. 관부(官府)도 설치했으며 직책까지 나눴다. 영토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전주의 인구 확충을 위해 신라 등에서 노획한 포로들을 옮겼으며, 백제 부흥을 선언할 때 고조선-마한-백제 계승의식을 드러냈다. 조선 시대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완산지>에는 토성과 왕궁 등 전주에 존재한 도성관련 시설의 존재가 드러난다. 사료는 도성 고을의 방향, 읍성(邑城)을 쌓을 때 사용한 석재, 궁터, 도성의 규모와 방어체계, 도시 구조 등을 보여주고 있다. △ 고고학적 발굴성과와 의미 고고학적 발굴 성과도 점진적으로 거두고 있다. 전주시와 전주국립박물관, 도내 학자들은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고고학적 조사를 벌여 전주성 명문 연꽃무늬 수막새 기와(동고성). 노송동의 후백제 도성 흔적, 오목대 성벽 등을 발굴했다. 후백제 역사 연구의 단초를 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지난 2015년 오목대 동쪽과 남서쪽 지점에서 발굴된 성벽 외벽 기저부는 후백제 성터를 역사적 실체로 복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1940년대 간행된 <전주부사>에 표시된 후백제 도성의 성벽이었으며, 후삼국 통일을 위해 전쟁이 잦았던 상황을 방증해주는 토석혼축(흙과 기와를 마구잡이로 섞어 쌓는 방식)양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또 연와문 수막새와 어골문(魚骨文) 기와 등이 출토됐는데 후삼국 시기(9세기)와 고려 전기 양식과 유사했다. 후백제 유물이 주로 발굴되는 동고산성장수 침령산성 출토품과도 상통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금도 전주시와 고고학계에서는 서고산성과 남고산성, 무릉 등 후백제 유적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 전문가들 관광자원화 필요, 역사 왜곡은 주의해야 문헌사료와 종래 발굴 성과를 토대로 관광자원화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후백제 왕도로서의 상징성을 갖고 있다는 점도 이런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전문가들은 다만 정확한 고증과 규명을 전제로 한 관광자원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정 부분 성과는 거뒀지만 문헌사료가 부족하고 고고학적 성과도 시론적 검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후백제 도성왕궁 위치도 전주역 동쪽 길, 동고산성, 물왕멀 일대. 중노송동 인봉리 등 여러 갈래로 나뉘는 상황이다. 우석대학교 조법종 역사교육과 교수는 역사적 사실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콘텐츠 개발을 통한 관광자원화를 주장한다. 조 교수는 관련 유물유적이 도시 개발과정에서 덮였기 때문에, 유적지를 기본으로 관광자원화에 나서는 건 힘든 실정이라면서 학계에서 검증된 연구 성과 중 하나인 후백제 전주왕도의 사령(四靈) 수호개념(기린용거북봉황)을 캐릭터로 콘텐츠화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대구대학교 박은경 호텔관광학과 교수(문화관광 전공)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비롯한 지역의 유적들은 관광상품화할 가치가 있고 그 만큼 중요하다며다만 유물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이 왜곡된 상태로 관광자원화 할 경우 이런 부분을 바로 잡는 데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01.31 17:37

공석 6개월 만에 전주 국립박물관장 임명

홍진근 국립전주박물관장 지난해 6월 이후 공석이었던 전주국립박물관장이 임명됐다. 국립전주박물관은 홍진근 국립춘천박물관 관장(57)이 신임 박물관장으로 취임한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임기는 1일부터 시작한다. 경북 고령 출신인 홍진근 신임관장은 계명대 사학과를 졸업했으며,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대학원을 수료했다. 전공은 신라가야 고고학이다. 홍 신임관장은 지난 1996년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 학예연구사를 시작으로 국립대구박물관 관장,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 부장, 국립춘천박물관 관장 등을 지냈다. 앞서 전주박물관은 천진기 전 관장이 지난해 6월 30일 임기를 마치고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로 발령된 뒤 7개월 가까이 후임관장이 임명되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지방 국립박물관 13곳(경주공주광주김해나주대구부여전주제주진주청주춘천익산) 가운데 유일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장기간 공석인 경우는 전주가 유일하다며 이유는 내부 사정으로 얘기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운영체제의 문제, 대외 업무의 한계 등 여러 가지 지적사항이 제기됐다. 도내 박물관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학예실장 직무대행체제로 웬만한 일은 처리할 수 있다면서도 대외교류 등 관장이 주도하는 업무와 관련해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01.31 17:37

첫 여성 전북문인협회장 김영 시인 “새로운 시스템 구축… 수평의 힘 믿어”

김영(본명 김영자) 시인이 제32대 전북문인협회장에 오르며 또 한 번 유리천장을 깼다. 전북문인협회 역사 59년 만에 첫 여성 회장이 된 것이다. 김 회장은 김제예총 회장도 역임했는데, 당시에도 시군 여성 예총회장은 그가 처음이었다. 그가 내딛는 발걸음은 자의든 타의든 지역 문단에서는 큰 변화로 읽힌다. 이 변화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문화와 관습, 제도 속에서 의미 있는 징검다리를 놓는 일임엔 틀림없다. 이제 후배 여성 문인들은 그가 놓은 징검다리를 밟고 강을 건널 것이다. 1일부터 본격적인 임기를 시작하는 그를 지난달 29일 전북일보사 편집국에서 만났다. 김영 전북문인협회장이 전북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전북문인협회 운영 방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조현욱 기자 - 전북문인협회장으로 취임한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런 감정이 재미있다고 해야 하나요? 기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러나 걱정도 되네요.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지만 막상 내 앞에 그 일이 다가오니 좀 걱정도 돼요. 물리적인 힘의 부족도 있고, 1000여 명이나 되는 문인들의 개성을 과연 조화롭게 엮어낼 수 있을까? 서로 상충하는 의견들의 어디쯤에서 접점을 찾을 것인가? 이런 걱정들도 앞서네요. - 어떤 마음으로 전북문협 회장직에 출사표를 던지셨나요. 원래 시스템 구축하는 것을 좋아해요. 제가 문단에 들어와서 활동한 지가 30년이 조금 안 되는데 한 번도 시스템이 바뀐 적이 없죠. 어느 날 생각해보니 제가 대한민국 평균 수명을 누린다면 앞으로도 이런 시스템 안에서 또 30년 가깝게 문단 활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건 좀 재미없는 미래였지요. 문학이 돈 벌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면, 문학의 궁극이 인간의 구원이라면, 혹은 삶에 대한 따뜻한 위로가 되어야 한다면, 시스템이 가진 폭력성에서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지요. - 전북문협, 김제예총 등 전북 첫 여성 회장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르는 데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일단, 시대 상황이 저를 이 자리에 데려다 놓은 거지요.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여성의 능력이 인정받는 시대적 상황에 편승한 부분이 많고요. 또 하나는 조그맣고 겁 없는 여성 문인에게 길을 내어주신 문단의 여러 어르신과 선후배 문인들의 배려에 기댄 것이지요. 그러나 현실은 냉정해요. 사회 어느 곳에서나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많은 능력을 발휘해야 비로소 동등하게 보아주는 편이죠. 저를 믿어주신 많은 문인과 특히 후배 여성 문인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전북문협을 운영할 생각입니다. - 59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회장이 취임했다는 소식에, 도내 문단이 남성 중심이었다는 걸 재인식하게 됐습니다. 사회적 편견, 차별을 경험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주 많이 있습니다. 직장생활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요. 비교적 자유로운 영혼의 집합소인 이 문단에 와서도 여성이어서 들어야 하는 거친 언사들이 있지요. 예를 들면 드세다는 말은 여성에게만 쓰는 말이지요. 똑같은 상황에서 남성에게는 다른 언사를 사용하지요. 이런 말들을 제법 들었습니다. 또 전북문협 회장에 출사표를 내고 가장 많이 들은 말이 화장을 해라였지요. 그럴 때마다 과연 저 언사는 여성은 화장하는 것이 예의다는 말인지 아니면 여성은 화장이나 하고 다소곳하게 있으라라는 말인지 헷갈렸지만, 발화 상황에 맞추어서 저 스스로 해석해야 했지요. 어찌 됐든 둘 다 여성에 대한 편견이 들어 있는 말이지요. -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북문협을 이끌어갈 생각이십니까. 저는 수직에 대한 유별난 거부감이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승진을 꿈꾸지 않은 것도 수직구조를 거부했기 때문인데요. 지금도 누군가가 수직의 힘으로 누르면 쓱~ 빠져나가 버리거나 이탈해 버립니다. 예술과 예술가를 좋아하는 것도, 수직의 폭력성이 상대적으로 덜 작용하기 때문이지요. 나이가 들다 보니 어떤 단체를 맡아야 하는 때가 종종 오기도 하는데요. 저는 단체를 맡으면 일단 수평적인 시스템을 먼저 구축합니다. 수평의 힘이 제일 단단한 힘이지요. 단단해서 오래 가는 것이지요. 수직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언제고 무너져 내릴 준비가 되어 있는 게 수직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수직을 먼저 배웠지요. 수직을 통해 권력을 얻고, 수직으로 사람을 다루는 구조에 젖어있지요. 누추하고 허름하게 보이지만, 위계질서가 하나도 없어 보이지만, 수평의 힘으로 사는 것이 미래의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현재 전북문협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를 해결할 복안이 있으시다면. 다행히도 전북문협 내부적인 문제는 없는 편입니다. 굳이 문제점을 들어본다면, 전북문협의 운영이 지금까지는 전주 중심이었다는 것입니다. 지리적 여건이나 문인의 분포도 등에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런 운영은 지역문협을 변방으로 내몰거나, 위화감을 조성하는 일이기도 하지요. 전북문협 스스로 문학적 영토를 줄이는 일이기도 하고요. 이런 점을 해결하려고 저는 전북문협의 행사를 지역문협과 함께 하려 합니다. 전북의 각 지역에 가서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함께 공부하고 그 지역 문인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기회를 한 달에 한 번은 가질 예정입니다. 또 지금은 사회적 형편으로 자주 모이지 못하는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서로 만나 작품을 이야기하고 안부를 물을 기회마저 강제로 박탈당한 것이지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작은 모임을 활성화할 예정입니다. 필요하다면 전북문협의 모든 행사를 작은 행사로 바꾸어서 진행해 볼 계획입니다. 일단 매월 건지산에서 작은 문학 행사를 열 생각인데, 문인들만의 무대가 아니라 도민과 함께 하는 무대입니다. 해서 도민과 문인 사이의 접경을 늘리고 이를 통해 전북 문학의 역량을 키워볼 요량입니다. - 전북문협 고령화, 즉 젊은 문인들이 쉽게 유입되지 않는 현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젠 등단하지 않아도 자신의 글을 쓰고, 표현하는 매체들이 많아졌습니다. 매체의 다변화가 첫 번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현세대는 집단생활을 좋아하지 않죠. 포스트코로나 시국에는 더욱더 소집단으로 움직입니다. 1인당 차지하는 공간이 넓어졌기 때문에 밀집, 집단을 싫어하죠. 이러한 세대적 특징으로 인해 젊은 문인들의 유입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앞으로는 문단이 중년 이후 취미 생활로 하는 분들 위주로 굳어지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 끝으로, 코로나19 속 문학이 줄 수 있는 위로가 있다면. 에포케(epoche)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통을 위한 판단 중지라고 할까요? 문학의 궁극은 삶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일입니다. 사람이 곧 삶이지요. 잃고 또 잃어도 살아야 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해도 시도해야 하는 것이 삶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문학으로 깊어지고 문학으로 치유 받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치유라는 것 따로 있나요? 좋은 글을 읽는 일, 말을 줄이고 자신을 응시하는 일, 자신을 가만히 안아주는 일이지요.

  • 문학·출판
  • 문민주
  • 2021.01.31 17:29

문체부 ‘한국관광 100선’ 전북 신규 3곳 포함 6곳 선정

전북도는 28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2021~2022 한국 관광 100선에 도내 6곳이 선정됐다고 밝혔다. 선정된 6곳은 익산 미륵사지, 전주한옥마을, 진안 마이산, 내장산 국립공원, 옥정호 구절초 지방정원(정읍구절초테마공원), 남원시립 김병종 미술관 등이다. 지난 2013년부터 시작해 올해 5회째를 맞는 한국 관광 100선에서 전주한옥마을은 5회 연속(2013~2022), 진안 마이산과 내장산국립공원은 4회 선정되며 한국 대표 관광지로써 다시 한번 자리를 확고히 했다. 익산 미륵사지와 옥정호 구절초 지방정원(정읍구절초테마공원), 남원시립 김병종 미술관은 올해 처음으로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특히, 익산미륵사지는 2020 한국 관광의 별에 이어 2021~2022 한국 관광 100선까지 연이어 선정되는 쾌거를 거두며 명실상부한 관광지로 우뚝 서게 되었다. 옥정호 구절초 지방정원(정읍구절초테마공원)은 꽃을 테마로 한 공원으로 여유 넘치는 산책을 즐길 수 있어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을 떨치는 향기로운 관광지로 주목을 받고 있다. 남원시립 김병종 미술관은 젊은 층에 이미 사진찍기 좋은 곳으로 명성이 나 있는 곳으로, 건축과 미술 작품의 미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윤여일 전북도 문화체육관광국장은 한국 관광 100선에 선정된 지역을 중심으로 도내의 안전하고 깨끗한 관광지를 지속해서 홍보하고 있다면서 코로나19 시대에 도민과 외래방문객을 위한 관광지를 꾸준히 발굴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 문화일반
  • 천경석
  • 2021.01.28 19:15

후백제 수도 전주, 후백제 관광자원화 ‘뒷짐’

경북 문경시가 후백제 견훤 역사유적지 개발을 통한 후백제 성역화를 본격화하면서 후백제 수도인 전주시가 관광자원화 선점 기회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주시가 후백제 관련 도성절터산성 등 다양한 유적과 문헌을 보유하고도 이를 엮는 큰 그림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경시는 지난 26일 시청에서 지난해 3월부터 추진해온 견훤대왕 역사유적지 개발 종합정비용역 최종보고회를 열었다. 후백제 초대왕인 견훤의 출생지를 스토리텔링하고 역사유적지를 개발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는 것이 골자다. 용역 결과에 따르면 역사유적지 개발은 견훤 탄생 설화와 관련된 문경 가은읍 갈전시 아차마을 중심의 아차마을권, 견훤의 활동과 관련된 희양산성과 근암산성 등 전장유적권, 견훤의 전설과 활약상이 남아있는 말바위와 견훤산성 등 궁기말바위권 3권역으로 나눠 추진할 예정이다. 탄생 설화가 있는 아차마을권에는 후백제 민속촌과 테마영상 전시관, 둘레길 등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문경시 관계자는 견훤대왕 역사유적지를 정비하고 후백제 역사를 복원해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라며 종합정비계획 기본 방향과 사업 대상지 분석, 예산 확보 등을 체계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문경시가 이처럼 견훤 설화 등 지역에 산재한 유적지를 정비해 역사를 재조명하고 새로운 관광자원을 발굴하겠다고 나선 반면, 전주시는 수년째 후백제 유적 발굴조사에만 치중하고 있다. 스토리텔링 등 관광자원화 측면에선 뒤처진 모양새다. 그동안 전주시는 후백제와 관련해 서고산성 남서성벽 발굴조사, 우아동 도요지 발굴조사 등을 진행해왔다. 올해는 서고산성남고산성무릉 발굴조사와 동고산성 국가 사적 지정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고고학적 연구를 통한 유물, 유적 재정립 작업의 일환이다. 이에 대해 지역 고고학계와 문화관광 인사들은 유물과 유적을 잘 정비하는 것 못지않게 의미를 부여해 관광자원화 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문경시가 후백제 성역화를 본격화한 만큼 후백제 수도인 전주시가 역사적문화적 이슈를 뺏기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주는 900년부터 936년까지 36년간 후백제의 수도로, 후삼국시대 격동의 중심지이자 찬란한 문화를 펼쳤던 역사가 잠든 지역이다. 왕궁과 도성 체계를 갖춘 후삼국 최대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 문화일반
  • 문민주
  • 2021.01.28 18:04

[김용호 전북도립국악원 학예실장의 전통문화 바라보기] 대제와 대사습

대사습 명창들 종묘대제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이다. 옛 국가였던 조선의 궁중 사당에서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의식으로 국가적인 제사 중 가장 규모가 가장 큰 궁 안의 행사였다. 종묘대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납일 등 1년에 5번을 지냈다. 현재는 매년 양력 5월 첫 번째 일요일과 11월 첫째 주 토요일에 봉행 되고 있는데 1969년부터 종묘대제보존회에 의해 복원되었다. 제향 행사는 제사 전의 준비과정과 임금이 출궁하여 종묘에 이르는 어가행렬, 제례 봉행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그중 종묘대제의 연행에 치르는 음악(제례악)과 춤(일무)은 그 귀함과 소중함을 함께 인정받아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지정되어 있다. 이러한 의식행사인 종묘대제는 1975년 국가무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되었고 2001년에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옛 조선의 궁 안에는 종묘대제란 큰 의식이 존재했다면, 궁 밖 백성에게는 대사습이란 유명한 행사가 있었다. 대사습놀이는 조선 시대 판소리, 백일장, 무예 대회 등 민중의 종합 경연대회로 출발했다. 제19대 임금 숙종(1661~1720) 시절 마상 궁술대회와 영조(1694~1776)대 물놀이, 판소리, 백일장 등 민속 무예 놀이를 종합해 총칭하며 불렸다. 재인청과 가무 대사습청을 설치해 전주에 4군자청을 신축하고 최초로 대사습놀이를 연 뒤 민중의 연례행사로 개최했으며 철종 무렵엔 여러가지 놀이와 함께 나라 제일의 소리꾼을 뽑는 판소리 경연이 이루어져 대중의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전승이 끊어지게 되었고 1974년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의 발기 및 성원으로 1975년 복원되어 궁 밖 민속예술 명인명창을 등용하는 전통문화의 큰 맥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20년 12월, 전라북도 전주시는 전주대사습놀이라는 궁 밖 전통문화의 가치를 드높이고 궁 안의 종묘대제인 예악과 견주어 민중 의식과 예술을 공유하고 보존하기 위해 비전과 중장기 계획을 만들었다. 그 계획은 바로 체계적인 육성보전에 힘을 더하기 위한 전주대사습놀이의 국가무형문화재 등록이었다. 조선 시대 궁 안 선왕의 종묘대제 의례 행사는 국립국악원 그리고 종묘대제 봉행위원회와 종묘제례악보존회를 통해 오래전 국가의 무형문화재로 지정받고 체계적인 보존과 계승이 진행되고 있다. 이제 궁 밖 대표적인 민중 행사인 전주대사습놀이도 국가무형문화재의 지정을 부여받아 풍패지관(豊沛之館) 즉 전주가 조선왕조의 발원지라는 근본으로 지역 전통문화의 역사와 전승을 더욱 견고히 하고 백성과 함께했던 선왕의 의意를 찾아 이어가야 하겠다. 그것은 전라북도 전주에서 국악을 연구하고 보존하려는 학자의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1.01.28 17:39

이기홍 화백 대숲 개인전… 대나무에 녹여낸 시대 아픔

이기홍 화백(62)의 대숲 개인전이 다음 달 2일부터 28일까지 전주한옥마을 문화공간 향교길68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새롭게 문을 여는 문화공간 향교길68이 개관을 기념해 준비한 전시로 이 화백의 작품 가운데 대나무만을 모았다. 대숲 연작과 대작 등 20여점을 선보인다. 붉은 대숲과 하얗게 눈에 덮인 대숲 그리고 병풍형으로 준비된 10폭의 연작 등이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운다. 통나무에 대숲을 그린 소품도 마련했다. 이 화백은 대나무와 옥수수의 화가로도 불린다. 바람에 일렁이는 대숲과 석양에 홀로 나부끼는 마른 옥수수가 그를 상징한다. 바람 속에 또는 석양 속에 외롭게 서 있지만 의연하다. 그는 그림으로 줄곧 세상과 싸워왔다. 민중미술에 참여해 세상을 바로 잡는 일에 앞장섰다. 그의 작품 속에서 두드러지는 대숲과 옥수수는 이 땅의 민초들의 삶을 대변하고 있다. 작품 속에 일관되게 등장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소재, 바람은 곧 냉엄한 세상, 세파일 것이다. 내 작품의 소재는 자연입니다. 대나무와 옥수수 그리고 작은 들풀 속에 세상을 담고 싶습니다. 그 작고 흔한 것들, 우리가 늘상 보아왔던 것들에 새로운 의미를 담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항상 주변에 관심을 갖고, 보다 나은 세상이 되도록 힘을 보태겠습니다. 그는 리얼리티를 추구한다. 사실화처럼 세밀하다. 그는 댓잎 하나하나를 수묵화처럼 친다. 일일이 붓을 줘 살려낸다. 하나하나 살아나는 댓잎은 꿈틀거리고, 그의 대숲 그림 속에서는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최근에는 작품 소재를 만경강과 동진강으로 확대하고 있다. 자연을 소재로 한 그의 작품들은 대서사시를 떠올리게 한다. 가을 들녘의 모악산에서 보여준 것처럼 장엄하고 화려하고 깊다. 그 울림을 강에서도 찾고 있다. 이기홍 화백은 전주 출신으로 전주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현재 전북민족미술인협회장으로 전북 민중미술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한편 이번 전시를 기획한 전주한옥마을 문화공간 향교길68은 그동안 조미진 전통자수 명장의 작업실인 향목을 활용한 공간이다. 1층은 갤러리 등 복합문화공간, 2층은 사무실 과 휴게공간, 3층은 조 명장의 전통자수 전시실과 작업실로 운영된다. 조 명장은 향교길68을 전시 공간으로만 국한하지 않고 강연, 공연 등 다양한 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라며 작가와 관객이 만나는 가교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 전시·공연
  • 문민주
  • 2021.01.28 16:52

[신간] 도보답사가 신정일 세상을 돌아보다

이 땅에서 나의 자존심은 무엇인가 우리나라에 걷기 열풍을 가져온 문화사학자 신정일 씨가 지난해 말 자신의 답사 이야기를 담은 두 권의 책을 출간했다. 신작 에세이 <길을 걷다 문득 떠오른 것들> (상상출판)과 동학을 재조명한 <동학의 땅 경북을 걷다> (걷는 사람)이다. <길을 걷다 문득 떠오른 것들>은 유년시절부터 도보 답사가가 되기까지 그의 삶의 궤적을 담았다.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됐다. 1장 세월은 가고 추억만 남는다엔 그가 기억하고 있는 유년 시절의 추억이 담겼다. 할머니와 산초를 따러 가던 기억, 덕태산 자락 골짜기에서 가재 잡기, 생계를 위해 먹었던 도토리밥 등 여러 가지다. 이같이 추억을 통해 얻은 삶의 지혜는 나는 자연대학교에서 배웠고 자연대학 총장이다로 귀결된다. 2장 모든 것이 행복이다에서는 그가 답사를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렸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 김지하 시인의 아내인 김영주 선생, 예전 아파트에서 살 때 만났던 사람 등 다양한 삶에 대해 깨달음을 주었던 인연들을 이야기하며 인생의 해법을 모색한다. 3장 후회 없이 돌아가다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원효의 본업경소서 등 그가 읽었던 고전 작품들을 이야기하며,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성찰한다. 책 말미에는 법구경의 구절을 인용해 나 외에는 모두 스승이다라는 말로 끝맺는다. <동학의 땅 경북을 걷다>는 동학사상이 민족 사상으로 자리잡는 과정을 그렸다. 신정일 씨는 동학의 시초인 경북 경주 구미산의 용담정에서부터 여정을 기록하고 있다. 책은 동학 12대 교수진 수운 최제우 선생과 해월 최시형 선생의 삶을 돌아보고, 동학 운동이 경상도부터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등지로 뻗어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책을 마무리하는 장에는 사람을 섬기고, 자연을 섬기고, 세상의 모든 것을 섬기는 그 섬김과 모심을 통해서만 세상은 밝고 건강하게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을 의심치 않는다는 구절로 정리한다. 돈과 명예, 권력 등 세속적인 욕망이 주류를 이루는 현대인의 삶에 동학정신을 구현하고자 하는 바람을 담은 것이다. 신정일은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이사장이다. 1980년대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설립해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사업을 펼쳤으며,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길 위의 인문학을 진행하고 있다. 또 한국 10대 강 도보답사를 기획해 금강에서 압록강을 걸었고, 우리나라의 옛길인 영남삼남관동대로를 도보로 답사했다.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 걷고서 해파랑길을 만드는 데 기여했고 한국의 산 500여 곳을 올랐다. 저서로는 신택리지, 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 고을을 가다, 조선의 천재들이 벌인 참혹한 전쟁, 신정일의 동학답사기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김세희
  • 2021.01.27 17:08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