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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전북도립국악원 학예실장의 전통문화 바라보기] 연등회의 포용적 가치

지난달 16일 우리나라 국가무형문화재 122호인 연등회가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무형유산보호 정부 간 위원회 협의를 통해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부처님 태어나신 음력 사월초파일이 되면 전국 사찰과 거리에는 형형색색의 등이 걸린다. 연등의 작은 소박함과 불빛의 수려함 그리고 등을 올리는 한분 한분의 사랑과 소망, 정성을 담은 기도가 연등과 함께 작은 불빛의 아름다움으로 올려진다. 석가모니의 탄생을 축하하는 이러한 연등회는 천 년이 넘는 세월 속에 우리 민족과 함께했으며 현재까지 이어져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큰 의미를 부여받게 되었다. 자, 그러면 우리의 소중하고 궁금한 연등회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자. 연등회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에 서술되어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신라의 48대 왕인 경문왕이 정월대보름을 맞이해 황룡사로 행차해 등불을 구경하고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삼국사기> 중 연등회의 유래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처럼 삼국시대 연등회는 매년 정월대보름에 열렸고 불교적인 행사라기보다는 고대로부터 전해온 기원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연등회를 통해 국가의 덕목과 의례로 도를 다하려 노력하였으며 삭막한 사회의 정화를 끌어내기도 했다. 연등회는 한때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1245년 무인 집권기의 최고 권력가였던 최우는 막강한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왕이 주체가 되는 정월 연등회와는 별개로 사월초파일에 자신의 집에서 연등회를 열어 백성의 환심을 사기도 했으며 공민왕 때의 막강한 권력자 신돈은 자신의 집에서 연등회를 열어 백만을 헤아릴 만큼 많은 등을 걸고 왕을 맞이했다고 한다. 유교가 정치이념이었던 조선시대에는 사찰 정월 연등회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풍속으로 자리 잡은 사월초파일 연등회는 지속해서 민가에서 이어져 내려왔다. 사월초파일 밤이 되면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석류등, 수박등, 마늘등을 달았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거북등과 학등을, 입신과 출세를 위해서 잉어등을 달아 소원과 희망을 담고 기원했다. 이제 국가 종교행사로 시작된 우리의 연등회는 세계인이 함께 보존하고 전승하는 무형문화유산이 되었다. 연등회는 혼돈의 시기에 단합과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국적과 인종, 종교, 장애를 넘어 포용성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펜데믹pandemic 시기에 진정 필요한 한국의 전통문화유산 이념이며 세계인이 함께 공유해야 할 극복과 포용적 회복의 가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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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1 11:59

동물민속학자에게 듣는 소 이야기

2021 신축년(辛丑年)은 흰 소띠의 해이다. 신축의 신(辛)이 오방에서 흰색에 해당한다. △ 근면(勤勉)우직(愚直)충직(忠直)의 소 소의 성격은 순박하고 근면하고 우직하고 충직하다. 소같이 일한다, 소같이 벌어서, 드문드문 걸어도 황소걸음이라는 말은 꾸준히 일하는 소의 근면성을 칭찬한 말로서 근면함을 들어 인간에게 성실함을 일깨워 주는 속담이다. 소는 비록 느리지만 인내력과 성실성이 돋보이는 근면한 동물이다. 소에게 한 말은 안 나도 아내에게 한 말은 난다는 소의 신중함을 들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말을 조심하라는 뜻이다. 우리 민족은 소를 한 가족처럼 여겼기에 그 배려 또한 각별했다. 날씨가 추워지면 짚으로 짠 덕석을 입혀 주고, 봄이 오면 외양간을 먼저 깨끗이 치웠으며, 겨울이 올 때까지 보름마다 청소를 해 주었다. 이슬 묻은 풀은 먹이지 않고 늘 솔로 빗겨 신진대사를 도왔으며, 먼 길을 갈 때에는 짚으로 짠 소신을 신겨 발굽이 닳는 것을 방지하였다. 소를 생구(生口)라고 할 만큼 소중히 여겼던 우리 조상들은 소를 인격시했던 이야기가 많이 전해 오고 있다. 황희 정승이 젊은 시절에 길을 가다가 어떤 농부가 2마리 소로 밭을 가는 것을 보고 어느 소가 더 잘 가느냐?고 물었더니 농부가 귀엣말로 대답했고 그 이유는 비록 짐승일지라도 사람의 마음과 다를 바가 없어 질투하지 않겠느냐?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황희, 김시습, 맹사성 등은 소와 관련된 많은 일화를 남긴 현인들이다. 특히 조선 초기의 맹사성이 소를 타고 고향인 온양을 오르내린 이야기는 유명하다. 평화스럽게 누워 있는 소의 모습, 어미 소가 어린 송아지에게 젖을 빨리는 광경은 한국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던 풍경이다. 소가 창출해 내는 분위기는 유유자적의 여유한가함평화로움의 정서이다. 우직하고 순박하여 성급하지 않는 소의 천성은 은근과 끈기, 여유로움을 지닌 우리 민족의 기질과 잘 융화되어 선조들은 특히 소를 아끼고 사랑해 왔다. △ 유교의 의(義), 불교의 진면목, 도교의 유유자적(悠悠自適)의 상징, 소 소는 유교에서 의로움[義]를 상징한다. 주인의 생명을 구하고자 호랑이와 격투 끝에 죽은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의 의우도(義牛圖), 의우총(義牛塚) 이야기나 눈먼 고아에게 꼬리를 잡혀 이끌고 다니면서 구걸을 시켜 살린 우답동 이야기에서 소의 우직하고 충직하고 의로운 성품을 잘 나타내고 있다. 불교에서는 사람의 진면목을 소에 비유한다. <십우도(十牛圖)>, <심우도(尋牛圖)>는 선을 닦아 마음을 수련하는 순서를 표현한 것이다. 이는 소를 찾고 얻는 순서와 이를 얻은 뒤에 주의할 점과 회향할 것을 이르고 있다. 고려 때의 보조국사 지눌은 호(號)가 목우자(牧牛子)이다. 소를 기르는 이, 즉 참다운 마음을 장양(長養)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만해 한용운도 만년에 그의 자택을 심우장(尋牛莊)라고 하여 스스로의 진면목을 찾기에 전념하였다. 소가 그려진 아리랑 담배 소를 타면 소의 성질이 급하지 않아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아 좋고, 진창이라도 가리지 않고 잘 가고 무엇보다도 걸음이 느리기 때문에 길가의 풍경을 천천히 구경할 수 있다. 때로는 졸아도 떨어질 염려가 없어서 좋다. 소를 탄다는 것은 옛 선조들은 세사(世事)나 권력에 민감하게 굴거나 졸속하지 않는다는 정신적인 의미이다. 옛 그림 속에서 선비 목동 은자가 소를 타고 언덕을 돌아 나오는 모습은 주변을 흐르는 잔잔한 물결과 함께 어울려, 도가적인 은일의 세계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소의 성품이 창출해 내는 도가적 분위기를 통하여 이상적인 삶에 대한 정신세계의 한 단면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소를 타고 유유자적하는 모습은 바로 이러한 도교적인 영향이다. 도교에서 소는 유유자적이다. 소꿈은 조상산소자식재물협조자사업체부동산을 상징한다. 꿈에 황소가 자기 집으로 들어오면 부자가 된다라는 속신어나 소의 형국에 묏자리를 쓰면 자손이 부자가 된다는 풍수지리설 등을 통해서 볼 때 분명 소는 풍요를 가져다주는 부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황소 주식장세란 말이 있다. 증권가에서 영어로 장세가 좋은 강장세(强場勢)를 불 마켓(Bull Market)ㅡ황소 장세라 한다. 황소의 맹렬한 돌진력과 밑에서 위로 떠받치는 뿔의 힘이 증권가의 오름 장세에 비유된다. 어진 눈, 엄숙한 뿔, 슬기롭고 부지런한 힘, 유순, 성실, 근면, 인내 등 소의 덕성으로 신축년 소띠 새해는 새로운 시작과 힘찬 출발의 한 해가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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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1 11:59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수필] 이다온

이다온 작가 잠시, 공중부양 하듯 중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어느 때 만져지던 허방처럼, 그리곤 내게 온 이 반가운 기별이 현실이란 걸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상실은 늘 내 곁을 맴돌았습니다. 유년시절, 매일 같이 놀아주던 언니가 전염병으로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일. 대학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가 채 피어보지도 못한 채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난 일. 지난 해, 중환자실에서 눈 맞춤도 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까지. 어느 해, 갑자기 찾아온 암은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갔습니다. 몸과 마음의 자유는 물론, 사소한 일상까지 잃어버린 채 매일 죽음과의 사투를 벌여야했습니다. 천 길 낭떠러지 같은 캄캄한 벼랑 끝에 서 있을 때, 병상에 놓인 노트와 연필은 나의 유일한 위로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뭔가를 끼적거리지 않으면 불안했던 나는 언젠가부터 상처를 제 안으로 치유하는 달항아리처럼 상실의 아픔을 글로 치유하려 했습니다. 갑자기 떠난 언니와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가버린 친구며, 더 이상 울리지 않는 아버지의 휴대폰, 어느 날 잃어버린 한쪽 가슴까지. 어쩌면 그 기록들이 삶의 고비마다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달무리처럼 떠오르는 얼굴들이 많습니다. 늘 부족한 나를 격려해주던 시어머님과 친정어머니, 지칠 때마다 용기를 준 남편과 두 아이, 다정다감한 직장 동료들과 서로 이끌어주며 오랫동안 함께 공부한 시거리 문우들. 그리고 나를 지켜본 모든 사람들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제 글이 달항아리가 되게끔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귀한 상을 주신 전북일보사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두고두고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이다온(본명 이수정) 작가는 경주 출생으로 2018년 머니투데이 직장인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 당선됐다. 울산문인협회 회원, 물푸레 복지재단 국공립 베니 어린이집 교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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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1 11:48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수필] 달항아리 - 이다온

진열대 위로 둥실 달이 떠오른다. 은은한 불빛이 바닥에 고인다. 조명을 받은 항아리는 방금 목욕하고 나온 아낙네 같다. 천의무봉의 살결이 백옥처럼 희다. 아무런 무늬가 없는 데도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해진다. 자세히 보면 달항아리는 좌우균형이 맞지 않는 비대칭이다. 보름달이 약간의 기울기를 가진 것처럼. 가슴이 사라졌다.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왼쪽 가슴을 확인했다. 불룩하게 솟아있던 자리가 분화구처럼 푹 꺼져 있다. 움푹 팬 곳에 낯선 어둠이 만져졌다. 두꺼운 밴드가 선홍색 칼자국을 애써 가렸다. 와락, 울음이 밀려왔다. 재빨리 환자복을 내려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을 덮었다. 이태 전이었다. 부산스럽게 외출준비를 하고 있을 때 왼쪽 가슴에서 심하게 통증이 느껴졌다. 급하게 달려간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릴 들었다. 의사는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지만 내 귀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벚꽃이 만발했던 어느 봄 날, 그렇게 암은 내게로 왔다. 아무 예고도 없이. 임파선으로 퍼진 암 덩어리 크기를 작게 하고 나서야 수술을 할 수 있었다. 크기를 줄이기 위해선 먼저 여덟 차례의 항암치료를 해야 했다. 일차 항암치료를 받기위해 수술실 안쪽의 긴 복도를 따라갔다. 암 환자를 위해 마련된 별도의 공간은 미로처럼 복잡했다. 일반인의 출입이 철저하게 통제되는 곳이었다. 민둥산처럼 머리를 깎은 환자들이 침대마다 누워 있었다. 선뜻 들어가지 못했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서 있어야하는지 실감나지 않았다. 이건 꿈이라고, 잠시 꿈속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애써 위로했지만 현실은 결코 꿈이 되지 않았다. 시부모를 모시는 맏며느리였지만 고부간에 큰 갈등은 없었다. 남편은 자상했고 어머님은 집안일에 서툰 나를 딸처럼 대해 주었다. 결혼한 지 이십년이 다 되어가도록 가끔씩 동서들과의 갈등이나 속상한 일이 더러 있었지만 크게 상심하거나 어려운 일은 겪지 않았다. 아이 둘도 잘 자라주어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런 내게 신은 암이라는 시련을 툭! 던져주었다. 단 한마디 말도 없이. 돌멩이 던지듯 무심하게. 생년월일을 확인하고 이름이 불리어졌다. 간호사는 친절하게 몇 개의 액체가 들어 있는 비닐봉지를 보여주면서 의례적인 설명을 했다. 숨소리가 거칠어졌고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이렇게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닐까? 다시 병실 밖으로 나갈 수는 있을까? 도대체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임종을 맞았던 것일까? 항암제가 잘 스며들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준다는 조형제가 몸속으로 들어오자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전율이 흘렀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자줏빛 종이상자 안에 있던 항암제가 천천히 내 안으로 들어왔다. 까무룩 잠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열흘 정도가 지나갔다. 머리카락을 쓸어 올릴 때마다 한 움큼 검은 시체들이 손아귀에 쥐어졌다. 숭덩숭덩 빠지는 머리카락은 책상 위며 화장대, 거실탁자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삶의 의지마저도 한 움큼씩 빠져나갔다. 항암치료는 마흔 살 나이에 생리를 멈추게 했고, 모든 일상의 시간들을 정지시켰으며, 까마득한 벼랑 끝에 나를 세워놓았다. 항암치료를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날 즈음 왼쪽 유방절개수술을 했다. 임파선을 제거한 팔은 조금만 무리해도 붓고 아팠다. 나이가 젊을수록 예후가 좋지 않을 수 있다고 의사가 말했다. 삶의 의지와 죽음의 두려움이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했다. 때론 침대 난간에 머리를 쥐어박으며 죽고 싶다며 야단을 피웠고 어떤 날엔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져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다섯 개가 넘는 피 주머니가 흔들릴 때마다 통증은 시시때때로 찾아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정신을 놓아 버렸다. 불행은 먼 나라의 것이라 생각했다. 이따금 들려오는 남의 고난은 그냥 타인의 일일 뿐이었다. 어느 나라에선 지진이 일어났다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기아가 넘쳐난다고 해도 관심 밖의 일들이었다. 쇼핑을 하고 몸매를 가꾸고 먼 곳으로 여행을 하고, 그런 순간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거라 믿었다. 가끔씩 현기증 같은 게 찾아왔지만 그건 내가 너무 행복해서 느껴지는 감정 같은 거라고 가볍게 넘겨버렸다. 불행의 씨앗이 조금씩 내 몸에 똬리를 틀기 시작하는 것도 모르고. 아마조네스는 여자들만으로 이루어진 군대이다.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트로이를 구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강력한 특수부대였다. 아마조네스의 아는 없다는 뜻이며 조네스는 유방이라는 뜻이다. 즉, 유방이 없다는 것이다. 여자들로 구성된 이들 부족은 활을 쏘는데 오른쪽 유방이 불편했기 때문에 그것을 미련 없이 제거했다. 조국이라는 더 큰 가치를 위해 여자로서의 아름다움을 당당하게 버린 것이다. 어쩌면 나의 전생은 아마조네스인지 모르겠다. 가슴에 활시위를 대고 적의 심장을 바라보던. 그래서 한 쪽 가슴을 도려내야했는지도. 행복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기 마련인걸까. 암은 무의미한 일상에 함몰된 내게 삶을 향해 제대로 활시위를 당기라며 가슴을 도려내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파르르 떨리는 그 활이 너무 무겁고 감당하기 벅차긴 했지만. 달항아리는 조선후기에 유행했던 도자기다. 둥글고 커다란 모습이 달덩어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높이가 사오십 센티미터에 달하는 커다란 항아리를 제작하려면 흙으로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든 뒤에 서로 이어 붙여야 했다. 그래서 접합 부위가 약간 뒤틀린 모양이 되었다. 하지만 조선 시대 도공들은 이것을 칼로 깎아 내거나 매끈하게 다듬지 않았다. 인위적인 힘을 가해서 정교하고 둥글게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비대칭인 상태 그대로 둔 것이다. 수술결과는 좋았다. 더 이상 항암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몇 번의 작은 수술과 치료가 있었지만 처음의 두려움은 조금씩 사라졌다. 벼랑 끝에서 아스라하게 버텼던 지난날의 흔적은 가족들의 관심으로 조금씩 치유되어져 갔다. 전시대 위로 떠오른 달을 쳐다본다. 어린 시절 초가지붕 위의 박처럼 푸근하다. 문득 항아리 속의 달이 내 안으로 파고든다. 가슴이 사라진 자리에 밀물처럼 고요하게 달이 들어찬다. 보름달이면서 비대칭인, 한 쪽이 약간 기울어져 슬픈 달, 그러나 어떤 대칭의 사물보다도 완벽한 구형이다. 달을 품은 내가 어느새 달항아리가 된다. 따뜻한 달무리가 빈 가슴에 둥글게 번진다. /이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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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1 11:48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수필]

송준호 수필가 붓 가는 대로만 써서는 안 된다는 것. 수필 쓰기의 이중성 내지는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그거야 어쨌든 짧지 않은 세월을 두고 삶의 애환을 웬만큼은 축적해야 비로소 수필스러운 성찰이 가능한 건 아닐지. 예심을 거친 열네 분 응모자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성찰의 깊이가 상대적으로 옅어 아직 덜 여물었거나 붓끝의 농담이 들쭉날쭉인 글을 하나씩 내려놓다 보니 <산골 변사>, <점선, 여백을 품다>, <희생에 대한 회상>, <달항아리> 네 편이 남았다. 시골 마을로 계절을 바꿔가며 무시로 찾아오는 트럭장수들의 찰진 목소리를 해학적으로 풀어낸 <산골 변사>는 에피소드의 전개 과정이 좀 어수선하긴 했어도 읽는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점선, 여백을 품다>는 붓끝이 정갈해서 선뜻 내려놓기가 아까웠다. 그런데 수사적 성찰이 전체 분위기를 이끌고 있어서일까. 독서의 속도감이 떨어지는 문제점까지는 덮고 갈 수 없었다. <희생에 대한 회상>은 읽을거리가 풍부하다는 게 장점이었다. 어미 우렁이와 어머니의 삶을 희생 모티브로 연계시킨 구성도 크게 나무랄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정돈되지 않은 문체였다. 거친 붓끝을 정갈하게 다듬어 썼더라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으리라는 조언을 사족으로 덧붙인다. <달항아리>를 끝까지 손에 붙든 까닭은 앞선 세 편의 글이 갖고 있는 단점이 두드러지지 않아서였다. 안정감 있고 세련된 문체가 읽는 맛을 더해준 까닭도 있었다. 글의 문패로 내건 달항아리의 둥글지만 비대칭인 이미지를 가슴이 사라진 자리에 채움으로써 사라진 가슴 때문에 겪어야 했던 아픔을 따뜻하고 담담하게 어루만질 줄 아는 구성력도 만만치 않은 수준이었다. 최종심에 올랐으면 그다음은 운수소관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 속뜻이야 글을 쓰는 이들에게는 불문가지일 터. 명실상부(名實相符)라는 말이 있는데, 명(名)은 어떨지 몰라도 실(實)에 있어서만은 네 분 응모자 모두 훌륭한 수필가에 상부(相符)하고도 남는다. /송준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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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1 11:48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동화] 뛰어난 상징과 심리묘사, 흡입력 강해

박예분 아동문학가 예심을 거쳐 5편의 작품이 본심에 올랐다. 매일매일 만 천 원은 무럭무럭 꿈 카드로 생활하는 아이의 이야기다. 상징으로 끌어들인 모래바람이 주인공의 삶을 대변해서 좋았으나 작품에 제대로 녹이지 못해 서걱거렸다. 다시 쓴 일기는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들며 쌍둥이 동생을 구하는 이야기로 판타지의 통로가 선명하지 못했다. 사건이 심적인 변화를 일으킬 만한 게 아니어서 설득력이 떨어졌다. 늑대의 담력 테스트는 겁 많은 두 아이가 엄마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문장의 비유적 표현은 새로웠으나 이야기의 소재와 내용이 평이해서 기대치에 못 미쳤다. 나는 빛은 뱀을 의인화한 동화로 뱀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꿈을 실현해가는 과정을 특별한 갈등이나 긴장감 없이 반복적으로 그려서 흥미를 반감시켰다. 괴물 아이는 뛰어난 상징과 심리묘사로 흡입력이 강해서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현재 아이들이 겪고 있는 차별과 따돌림을 괴물이라는 상징을 통해 이야기를 실감 나게 이끌어간 점이 돋보여 당선작으로 뽑았다. 팔에 검은 점이 가득한 캐릭터가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모습을 멋지게 표현한 부분 또한 인상적이었다. 현실적으로 주인공과 비슷한 고통을 겪는 어린이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동화의 따뜻한 결말도 좋았다. 다만 사건보다 심리묘사에 치중하다 보니 전개가 단조로운 점이 아쉬웠다. 당선을 축하하며, 응모해 주신 예비작가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박예분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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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1 11:39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동화] 전소현

전소현 작가 병아리는 삐약삐약 우는 게 맞아. 근데 모두가 삐약삐약 같은 색으로 우는 건 아니야. 어떤 친구는 연한 파스텔색의 노란색처럼 약하게 우는 친구도 있고, 몇 번을 덧댄 샛노란 색처럼 힘차게 우는 친구도 있어. 닭은 꼬끼오하고 우는데 여름날 올챙이들이 보이는 시냇물처럼 소리가 맑아. 근데 간혹가다 흙탕물같이 지저분한 소리가 나는 닭이 있긴 해.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입학한 대학에서 처음으로 쓴 글의 한 부분이다. 주인공이 청각 장애인에게 소리를 표현해주는 장면이었다. 겪어보지 못한 것들을 표현하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이날도 좀처럼 써지지 않는 글을 부여잡고 답답해하던 것이 기억난다. 그래도 답답한 순간의 연속인, 글 쓰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더니 당선이라는 좋은 순간도 찾아왔다. 앞으로도 조금 느릴 수도 있지만 꾸준하게 걸어가면서 이런 좋은 기회들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항상 따뜻한 이야기를 하고 싶고, 그 전에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남들보다 먼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들, 친구들에게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좋은 순간을 맞이할 수 있게 기회를 주신 최형미 교수님, 여러 방면에서 도움이 되어주시는 양연주 교수님 감사합니다. 또 누구보다 기뻐해 준 엄마를 비롯한 가족들, 친구들, 동기들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따뜻한 말 전해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전소현 작가는 대구 출생으로 경기도 정왕고를 졸업했다. 현재 한양여대 문예창작과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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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1 11:39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동화] 괴물 아이 - 전소현

나는 괴물이다. 괴물이 되어버린 건 열두 살 무렵이었다. 밤마다 왼쪽 가슴 언저리가 웃음이 날 정도로 간지러웠다. 어느 날부터, 왼쪽 가슴엔 초록색 털이 자랐다. 그리고 그 털은 점점 자랐고, 학교 운동장에 있는 잔디와 같아졌다. 엄지손가락 마디의 길이였는데, 가위로 잘라도 잘라도 계속 자라났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피부과부터 시작해 온갖 병원을 다 데리고 다녔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이상해요. 알 수 없지만, 건강엔 이상이 없습니다. 한숨만 푹푹 내쉬는 엄마와 달리 열두 살의 나는 기뻤다. 만화에서 보던 영웅이 변신했을 때의 모습처럼 나도 변신을 하는 것 같았다. 이 영웅의 증표를 친구들에게 가서 보여줄 생각에 신이나 설레하던 전날 밤을 기억한다. 다음 날 입고 있던 티셔츠를 짠하며 벗었다. 친구들의 표정은 제각기였다. 감탄이 섞인 소리도 들렸고 만져보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괴물이야 라고 외쳤다. 이건 괴물이 아니라 영웅의 증표였는데, 괴물 소리가 점점 커졌다. 괴물이다. 괴물. 몸에서 이상한 게 자라는 괴물이 나타났다. 아이들은 잔뜩 신이 난 듯 복도를 뛰어다니며 괴물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이곳저곳에 끌려다녀야 했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내 옷을 멋대로 벗겨내려고 했고, 모르는 사이 내 사진이 찍혀 돌아다녔다. 엄마는 내 팔을 붙잡고 울면서 나를 때렸다. 뭐가 자랑이냐고, 그걸 왜 보여주냐며 나를 혼냈다. 집 앞에는 카메라를 든 어른들이 나를 찍으려고 애썼다. 학부모들은 나를 전염병이 걸린 사람처럼 학교 밖으로 쫓아내자고 회의를 했다. 텔레비전에선 나를 괴물 아이라고 소개했다. 아, 나는 영웅이 아니라 괴물이었구나. 방에서 나와 거실로 향했다. 거실에 있는 가위를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세면대에 올라가 옷을 벗고 그 괴물의 증표를 잘라냈다. 아무리 잘라도 끝에 남아있는 것까지는 자르기가 힘들었다. 가위를 던지고 손으로 벅벅 긁었다. 긁어도, 잡아 당겨봐도 사라지지 않았다. 너는 절대 괴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듯이. 피가 새어 나왔다. 피가 초록색의 잎을 빨갛게 적셔갔다. 엄마가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화장실 안에 엄마의 울음소리와 나의 고함이 한 데 섞여 울려지고 있다. 전교생이 30명도 채 되지 않는 곳에 전학을 갔다. 만화방, 오락실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시골 동네였다. 6학년은 나까지 총 다섯 명이었다. 전학 첫날 선생님 손을 잡고 반으로 걸어갔다. 바닥만 보고 걷다 보니, 어느새 반 앞에 도착해있었다. 교실에 들어서도 나는 바닥만 보았다. 서울에서 전학 온 아이라고 말한 뒤 선생님은 자기소개를 시켰다. 그냥 대충 고개를 숙이고 이름을 말했다. 잠깐의 정적 뒤 박수 소리가 들렸다. 창가 빈자리에 앉았다. 종례시간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앞으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다음 날, 운동장에서 얼핏 어제 반에서 봤던 애 중 하나와 마주쳤다.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가던 발걸음을 반대편으로 돌렸다. 심장 소리가 귓가에 쿵쿵 울렸다. 뛰면 뛸수록 심장 소리가 더 커졌다. 숨이 차올라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숨을 크게 들이쉬니 특유의 짠 향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바다가 있었다. 심장 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파도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실내화 가방을 대충 모래사장에 던지고 그 위에 앉았다. 불안함에 요동치는 내 마음과 달리 파도는 점점 고요를 되찾았다. 엄마한테 지금쯤이면 전화가 갔으려나. 내가 없어진 건 아무도 모르겠지. 이제 어떡해야 하지. 왜 나는 괴물이 되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불안한 생각들이 이어졌다. 머리를 잔뜩 굴리고 있을 때 뒤에서 누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내가 있는 쪽과 점점 가까워져 고개를 들었다. 왜 나보고 도망쳐? 아까 운동장에서 봤던 그 애였다. 나도 모르게 몸이 뒤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런 나를 보고도 그 애는 평화로운 표정으로 내 옆에 앉았다. 왜 나를 뒤 따라온 건지 궁금한 것보다 그냥 무서운 감정이 들었다. 옆을 힐끔 봤는데 그 애는 바다에만 시선을 두었다. 아무 말도 오가지 않는 그 애와 나 사이엔 기러기 소리, 파도 소리가 전부였다. 나 너 알아. TV에서 봤어. 그 애가 정적을 뚫고 말을 했다. 갑자기 들려온 말에 나도 모르게 어쩌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애가 그제야 나에게 시선을 두었다. 그 애의 눈엔 벌겋게 변해버린 내가 담겨 있을 것 같았다. 몇 겹을 껴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괴물의 증표가 옷을 뚫고 튀어나올까 무서워 손으로 가렸다. 잔뜩 웅크린 나와 달리 그 애는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다. 소매를 걷더니 이내 눈앞으로 그 애의 팔이 다가왔다. 이것 봐. 멋지지 않아? 그 애의 팔엔 검은색의 반점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눈이 찌푸려질 모습이었는데 그 애는 자랑이라도 된다는 듯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만져보지 않겠냐고 그 애가 제안했다. 뭐에 홀린 듯이 손을 그 애의 팔에 갖다 댔다. 보기와 달리 피부가 훨씬 매끈거렸다. 그 애가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이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거야. 엄마가 그랬어. 내가 사랑해줄수록 더 예뻐질 거라고. 너한테 생긴 것도 마찬가지일 거야. 지금도 예쁘겠지만 네가 사랑해주면 사랑해줄수록 더 빛날 거야. 처음으로 누군가가 가슴에 생긴 것을 예쁘다고 말해 주었다. 왼쪽 가슴이 뜨겁고 간질거렸다. 마치 처음 잔디가 폈을 때처럼. 금방이라도 그 속에서 해바라기가, 장미가 예쁘게 피어날 것 같았다. 그 애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학교에 가자고. 아마 다들 기다릴 거라고 말해 주었다. 내민 손을 붙잡았다. 우리의 손 사이에 있는 모래가 서걱거렸다. /전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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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1 11:39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시] 유수진

유수진 작가 수변길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잔잔한 물결 위로 불빛들이 도착하고 있습니다. 어룽어룽 빛들이 물결 따라 흔들렸습니다. 징검다리로 올라서니 수변길에서 보던 빛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빛들은 조금 옆으로 자리를 옮겨 제 몸을 다해 점멸하고 있습니다. 징검다리를 하나씩 건널 때마다 빛들이 자리를 옮깁니다. 이쪽과 저쪽을 다니며 수면 위에서 반짝이는 빛들을 오래 봤습니다. 집 쪽으로 고개를 돌려 전등을 환하게 켜둔 방을 헤아렸습니다. 아파트엔 불 켜진 방이 많았습니다. 저기 어디 내 방에도 불이 켜졌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따스해졌습니다. 밤 기온이 영하라는데 콧속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달았습니다. 불이 환한 창문들 사이로 듬성듬성 아직 빛이 귀가하지 않은 방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수변길을 오래 걸었습니다. 가끔 질문을 받습니다. 글을 왜 쓰냐고, 시를 왜 쓰냐고. 그럴 때마다 막막하고 난감합니다. 왜 쓰는지 아무리 머릿속을 뒤져도 답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쪽엔 흰 종이를 펼쳐 둔 채 다른 쪽에 한글파일 화면을 열어 두었습니다. 답을 찾아가는 일을 계속하겠습니다. 귀가를 기다리는 창문들에 관심을 두겠습니다. 수면 위에서 점멸하는 별의 끝을 잡고 풀어가겠습니다. 여정의 길목마다에서 스위치를 찾겠습니다. 스위치를 딸깍, 올리는 일을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어수룩한 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전북일보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 고향, 엄마 보고 싶어요. 아버지, 당신의 등을 존경합니다. 아들아, 딸아, 사랑한다. 남편에게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유수진 작가는 대전 출생으로 이화여대 독어독문과, 동 대학원 독어독문과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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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1 11:31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시]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사유의 깊이가 돋보여

(왼) 허형만 시인 / (오) 김영 시인 예심을 거쳐 본심에 열한 분의 작품이 올라왔다. (응모자의 인적 사항이 없이 응모 번호만 응모작 맨 앞에 적혀서 보내왔다). 심사위원들은 코로나19로 만나지는 못하고 각자 좋은 작품을 뽑기 위해 숙독을 하고 다시 각각 세 분의 작품으로 압축했다. 본심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없는 것은 없다」 외 2편, 「흙냄새 향수」 외 4편, 「저녁의 집」 외 3편이었다. 마지막까지 논의된 세 분의 작품들은 모두 소위 신춘문예 풍조에 물들지 않고 자신들만의 목소리로 시의 위의와 진정성을 지키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먼저 「없는 것은 없다」 외 2편의 작품은 대담한 언어 구사와 상상력이 돋보였다. 그러나 언어를 부리는 기교가 겉으로 너무 드러나면 소통과 감동에서 약간 멀어진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비록 오타였다 하더라도 맡겨를 맞겨로 쓴 실수는 마지막 퇴고나 맞춤법에 신경을 쓰지 않았구나 하는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 「흙냄새 향수」 외 4편에서는 시적 진술과 이미지를 이끌어가는 힘이 좋았다. 그러나 일상을 읽는 독법이 평이함으로써 참신한 감각, 즉 신선미가 떨어진 듯하여 아쉬웠다. 「저녁의 집」 외 3편은 요즘처럼 세상이 코로나19로 어수선할 때 너무나 소중해진 당연한 일상을 따뜻하게 보듬고 위로가 되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차분하면서도 치열한 시적 사유와 언어를 다루는 능력이 돋보인다. 동시에 다른 응모작들도 고른 수준을 견지함으로써 앞으로 좋은 시인이 되리라는 믿음을 주었다. 그러기에 심사위원들은 「저녁의 집」을 최종 당선작으로 결정하자는 의견이 서로 일치했다.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허형만 시인, 김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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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1 11:31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소설] 황지호

황지호 작가 그날 모악산 산행이 떠오릅니다. 안개가 진했던 늦가을이었습니다. 안개는 곧 는개로 변해 나아갈 길을 자주 확인해야 했습니다. 익숙한 길이었으나 불안감이 밀려왔고, 불안감은 두려움에 닿았습니다. 정상을 넘기 위해 서둘러 걸음을 옮겼습니다. 오래 걸었으나 정상은 나오지 않았고 도착한 곳은 낯선 마을이었습니다. 길을 잃었던 것이지요. 갈림길에서 방향을 틀었나 봅니다. 자주 다니던 산이니 길을 잃기 쉽지 않은데, 스스로 의지를 꺾고 벗어났을 겁니다. 제 글의 행로, 삶의 행적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막연했고, 두려웠으며, 회피했습니다. 당선 통보를 받으니 길에서 벗어나 낯선 것을 기웃거렸던 순간들, 새로운 길을 걸어본 경험들이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사람들 삶 속에 결이 비슷한 감정과 인식의 강물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경험한 것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심사위원님들의 선택은 그럭저럭 걸을 준비가 되었으니 이제 산행을 시작해보라는 권유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시 산 들머리에 섰습니다. 문장의 능선에서 세상과 역사, 사람들의 삶과 내면을 오래 바라보겠습니다. 글을 가르쳐 주신 이희중 선생님, 강준만 교수님, 세상을 보는 관점을 갖게 해주신 변주승 교수님,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주신 이강식 선생님, 제 삶과 글의 첫 독자인 윤공 스님과 마지막 독자인 아내 윤은영 님 감사합니다. 서울장흥 식구들과 재선이를 비롯한 친구들, 물빛학원 동료들과 제자들, 흐름출판사 한명수 사장님 감사합니다. 황원지와 황정현에게도 감사와 사랑을 드립니다. *황지호 작가는 전북 장수군 장수읍 동촌리에서 태어나 자랐다. 우수출판콘텐츠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됐고 <월간 전원생활>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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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1 11:09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소설] 귀가(歸家) - 황지호

집이 죽어가고 있었다. 평고대 안쪽으로 쏟아진 기와는 기단과 마루에서 파편이 되었다. 기와가 밀린 곳은 보토와 진새, 앙토가 드러났고 그 흙에 의지해 민들레가 자라고 있었다. 뿌리가 암세포처럼 서까래 골수에 파고들었을 것만 같았다. 상한 서까래 마구리는 아귀의 이빨처럼 날카로웠고 추녀는 갓이 상한 버섯처럼 추레했다. 찬바람을 막기 위해 설치한 덧문과 덧문에 남아 있는 삭은 보온 비닐들이 집의 음습함을 더했다. 황토미장을 한 벽도 무너진 지 오래였다. 미장한 흙이 떨어지며 드러난 중깃과 눌외, 설외가 핏줄처럼 보였다. 황토와 범벅 돼 흘러내린 빗물이 피고름 같았다. 기둥을 타고 흘러내린 그것을 주춧돌이 농반처럼 받았다. 밤이 되면 무서운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집이 흐느껴 울 것만 같았다. 드레싱은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피부암 전이를 막기 위해 절단한 그녀 다리는 치료되지 않았다. 피부암이 전이된 것인지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조직검사를 하자는 요청에 담당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미 내려놓은 듯했다. 깨끗한 임종을 위해 절단한 부위의 상처라도 낫길 바랐지만 수습되지 않았다. 소독할 때마다 핏줄과 살들이 너덜거렸고 상처와 상관없는 근육이 바들거렸다. 그녀의 긴 비명이 병동을 오래 침묵하게 했다. 몇 번의 드레싱 이후 이식한 살이 떨어져 나갔다. 소독 접시로 그것이 떨어지자 담당의가 질끈 눈을 감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뼈와 근육 사이가 벌어졌다. 이격을 봉합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회진을 할 때마다 새살이 돋았냐고 순하게 묻던 그녀가 퇴원을 하라는 의사의 말에 사납게 변했다. 처음에는 비명을 참아 보겠노라고 했다. 암이 전이된 것이면 위쪽을 한 번 더 절단하자고 했다. 퇴원이 임종을 준비하라는 말인 것을 안 그녀는 분노와 원망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분노와 원망 사이에 의사는 희망을 심어 주지 않았다. 담담히 남은 생을 정리하라고 했다. 의사의 담담함이 죽음을 더 바투 다가오게 했다. 부엌문 하방과 둔테를 바라보았다. 하방은 반달처럼 굽었고 둔테는 우물처럼 깊었다. 옛 목수는 하방을 자귀로 다듬고 끌질을 더해 둔테를 만들었다. 곡률이 큰 월방문턱이었으나 턱이 닳았고, 세월과 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둔테는 깨져 있었다. 비스듬히 걸린 부엌 판문을 당겼다. 부엌이 깊숙한 곳까지 햇살을 받아들였다. 고개를 들어 천장 상부 구조를 바라봤다. 좌측 대들보와 우측 평주를 휘어진 충량으로 연결하고 전후면 도리를 연결하는 멍에를 충량 위에 가로질러 걸었다. 그 위 외기 도리에 추녀와 서까래를 걸었다. 충량과 멍에의 곡선이 은은했고 모를 접어 순해 보였다. 손대패로 다듬은 서까래의 살결이 매끄러울 듯 했다. 겉은, 고통스럽게 죽어 가고 있었지만 속은 아직도 여리고 순한 집이었다. 부엌과 안방을 연결하는 눈꼽재기창은 그대로였으나, 그 아래 부뚜막에 걸려 있던 암수 솥은 사라지고 없었다. 오래 비어 있던 집이니 고물상들이 남겨 놓을 리 없었다. 솥을 잃은 부뚜막은 무너졌고, 쌀뒤주는 사라져 빈자리에 먼지가 앉았다. 솔가리는 숨이 죽었고, 섶은 삭아 땔감답지 못했다. 석유곤로와 사기그릇들이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 사이에 놓인 한쪽 술날이 닳은 놋숟가락 하나를 집어 들었다. 유리를 만진 듯 차가웠다. 손가락으로 입술을 만들어 술잎을 천천히 쓸었다. 파란 녹이 더 진하게 드러났다. 놋숟가락을 작업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부엌방 홑겹 대살문 너머로 작은 항아리 몇 개가 보였다. 항아리에 소분된 간장과 된장을 고물상도 차마 내쏟지 못한 듯했다. 간장과 된장은 이미 오래전 발효의 끝에 다다랐을 것이다. 정맥주사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자 그녀가 감나무 새순이 돋았냐고 물었다. 그즈음이라고 답했다. 정월에 담은 간장을 갈라야 하니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고 했다. 집에 돌아가면 감나무 새순이 돋기 전에 간장을 가르고 새순이 피면 못자리를 준비하자고 했다. 논두렁이 미끄러울 텐데 한쪽 다리가 없어 걱정이라고 했다. 오디새가 울기 전 밭갈이를 마치고 접동새가 울면 외를 심자고 했다. 감꽃이 피면 논두렁에 서리태를 심고, 감꽃이 질 때쯤 메주콩을 심자고 했다. 뻐꾸기가 울면 참깨를 심고, 고추잠자리가 날면 김장 배추를 심자고 했다. 눈 오기 전에 모은 솔가리가 불땀이 좋은데 산비탈에서 갈퀴질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녀가 첫눈이 내린 날 아침, 햇빛이 문고리에 걸릴 무렵 그를 낳았다고 말했다. 생일날 국수를 삶아 주고 싶으니 그만 집에 돌아가자고 했다. 회진을 도는 담당의에게 퇴원하겠다고 말했다. 의사가 몇 올 남지 않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부엌에서 나와 툇마루를 바라보았다. 여모귀틀 하단 곡선은 초봄의 들판을 닮았고 마루청판 상부 풍화된 나이테는 밭이랑을 닮았다. 밭이랑은 소를 부려 골을 탄 듯 굽었고 새 보습을 끼운 듯 고랑이 깊었다. 이랑과 고랑에 먼지가 쌓여 마루의 봄 흙 같던 검은 윤기가 남아 있지 않았다. 마루청판 하부에 옛 목수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무 연질을 부드럽게 떠낸 자귀 자국이 완연했다. 마루청판과 귀틀, 부엌 월방과 둔테를 다듬은 자귀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의 스승은 목수 일을 배우겠다는 사람이 오면 자귀질만 반년 넘게 시켰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나무의 성질을 깨닫게 하려는 뜻인 줄 알겠으나 견디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스승은 죽기 직전, 남은 목수들에게 자기가 죽거든 묵은 집을 고치거나 이축하라는 이야기를 했다. 돈이 되지 않는다고 일을 물리지 말라 했다. 목수에게는 묵은 집보다 좋은 스승이 없다고 했다. 묵은 집을 열어 보면 옛 장부법, 직재와 곡재를 다루는 정석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집을 감싸는 바람 길과 집 속으로 스며들어오는 물길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성정이 다른 재료를 버무려 공간을 짓는 방법과 그 공간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외기를 어떻게 이어 주는지, 혹은 피해가게 하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집이 늙어 가는 흐름과, 어디부터 상하고 아프기 시작하는지, 집과 사람이 어떻게 의지하고 서로를 품어 주는지 엿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집이 사람으로 보일 때에야 비로소 도편수가 된다는 말을 남겼다. 오래된 옛집은 허리가 굽은 노인으로, 반듯하고 고졸한 집은 선비로, 산속 암자는 초연한 노승으로 보여야 한다. 양반인 것 같지만 격 없이 화려하게 지어 기생인 집이 있고, 비루한 객처럼 보이지만 그 속은 준엄한 어사의 품위를 갖춘 집이 있다. 같은 촌부라 하더라도 사임당 같은 집이, 용부의 부족한 심성이 드러나는 집이 있다. 폐가가 되었을 때도 무관의 기품 드러나는 집이 있고, 인색하고 옹졸한 성품이 드러나며 볼품없어지는 상인의 집이 있다. 본채는 번듯하지만 아래채는 남루한 집이 있고, 부족한 본채지만 아래채와 의지하며 조화로운 집터를 만들어 가는 집이 있다. 말은 없지만 속정이 깊어 기대고 싶은 집이 있고, 치장은 화려하나 내용이 없어 오래 머물 수 없는 집이 있다고 했다. 도편수는 산파와 같아 새로운 집의 탄생을 돕기도 하지만, 의사와 같아 아픈 집을 낫게 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허리가 굽은 노인에게는 지팡이를 깎아 주고, 격 없는 기생집에는 회화나무를 심어 주고, 비루한 객에게는 밥 한 끼 대접해야 한다. 인색한 상인 집에는 마루를 만들어 주며, 남루한 집은 미장보다 지붕을 고쳐 주고, 조화가 깨진 집은 담을 쌓아 주어야 한다. 자식을 가르쳐 용부를 돕고, 올곧은 뼈대를 갖춘 집은 좋은 터를 잡아 이축해 주라고 했다. 혹여 그럴 수 없는 집이라면, 주인이 이미 속굉을 확인한 집이거든 정성을 다해 염습을 해주라 했다. 염장이가 되어 시충이 나오더라도 진맥하듯 시신을 닦고, 가죽같은 빈 몸, 피고름 담긴 육신이라 생각하지 말고 성심을 다해 염을 하라고 했다. 시신이 허리를 세우듯 집이 목수를 섬뜩하게 하더라도 시취에서 살아 있을 때의 사연을 맡겠다는 마음으로 습을 하라고 했다. 조각난 수장재, 부러진 보머리라도 함부로 버리지 말고 화장을 하되 그 마지막 육신으로 어느 집 행랑채 한 번 따뜻하게 데울 기회를 만들어 주라고 했다. 화장이 끝나면 재는 부추 밭에 뿌리고 좋은 날을 골라 부추를 거둬 막걸리 한 잔 하되 첫 잔은 반드시 고수레를 하라 했다. 그리고 잊으라 했다. 은하수 같은 부추 꽃이 발목을 잡아도 집과의 인연은 이미 끝난 것이라 생각하고 등을 보이라 했다. 배 목수가 집을 철거할 일꾼들과 함께 마당에 들어서며 그의 분위기를 살폈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왔다. 등에 업혀 마당을 지날 때 지붕 용마루 복문이 쓰러졌으니 세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툇마루에 내려놓자 비닐 덧문을 걷지 그랬냐며 나직하게 나무랐다. 마루에 앉은 그녀가 툇보를 올려다보며 여전히 곱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는 집 치울 일이 걱정이라 했다. 그녀는 때가 되면 참나무 껍질을 벗겨 굴피담을 보수했고, 그 곁에 인동과 나팔꽃을 심었다. 마루는 마른걸레만으로 검은 윤을 냈고 아침마다 마당 비질을 했다. 가을걷이를 앞두고는 흙을 이겨 마당들이기를 했다. 좋은 흙을 따로 선별해 바람벽 틈을 메웠고 남은 흙으로 부뚜막과 한데부엌을 보수했다. 그녀가 집이었고 집이 곧 그녀였다. 개숫물도 마당에 함부로 쏟는 일이 없었다. 윗물은 다시 썼고 아랫물은 거름에 더했다. 바람이 불면 처마 끝에 매단 시래기를 뒤집었고, 구름이 들면 수채를 확인했다. 겨울이 오기 전 마루에 덧문을 달았고, 봄이 되면 걷었다. 같은 날 세살문에 창호지를 발랐다. 봄에는 꽃잎을, 가을에는 낙엽을 포개 넣었다. 외양간 옆에는 손수 막을 짓고 토끼를 키웠다. 토끼가 새끼를 보면 동물도 사람도 주변 왕래를 금했다. 개가 해산을 하면 왼새끼로 꼰 금줄을 대문에 치고 돌아와 어미 개 곁에 앉아 어떤 말들을 주고받았다. 곧 미역국을 끓여 오래 쓴 해산 바가지에 담아 어미 개에게 먹였다. 삼칠일이 지나면 금줄을 걷었고 그때서야 강아지를 안았다. 마당은 암탉과 그 새끼들의 터전이었는데 평화롭게 노니는 병아리를 좋아해 고양이만은 키우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의 집에 사는 것들을 죽여 양식으로 삼는 일이 없었다. 가축은 그저 키우는 것이었을 뿐 그 숨과 몸을 거두어 먹이로 삼지 않았다. 마당을 둘러보는 그녀에게 장날 강아지라도 한 마리 사 오겠다고 하자, 그녀가 이제괜찮다고 답했다. 기단에 서서 안방 문을 바라보았다. 창호지가 드문드문 삭았으나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툇마루에 올라 안방 문 앞에 서자 무너진 외양간을 살펴보던 배 목수가 그를 넌지시 바라보았다. 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를 잡았으나 힘이 맥없이 풀렸다. 추레하게 서 있으니 배 목수가 다가왔다. 배 목수가 안방 문고리를 잡은 그의 손을 슬며시 놓게 헸다. 대목수가 집과 나무 기세에 눌리거나 장척이 부러지면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 배웠다. 집 기세에 눌린 목수는 드잡이를 멈추고, 나무 기세를 이기지 못한 먹잡이는 먹통을 잠시 놓아야 하며, 장척이 부러진 도편수는 현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배웠다. 오늘은 목수로 온 것이 아니라 생각했지만 문을 열 수도, 벗어날 수도 없었다. 배 목수가 안방 옆 마루방 문을 열고는 그를 살짝 끌어 안방으로부터 벗어나게 했다. 마루방은 연등천장이라 서까래와 대들보가 곧바로 보였다. 필요한 곳만 적당하게 다듬은 대들보였다. 옛 목수가 남겨 놓은 치장먹줄이 선명했다. 도리와 도리, 인방과 인방 사이에 많은 시렁이 걸려 있었다. 채반을 걸어 누에를 키우고 꽃 열매와 뿌리를 말리던 시렁이었다. 칸 전체 바닥에 깔린 마루청판은 틈조차 벌어지지 않았다. 마루 막장을 보기 위해 고개를 숙이자 냄새가 났다. 집도 사람도 육신의 허물을 벗을 때는 냄새가 나는 법. 상처에서 진물과 피고름, 냄새가 계속 흘렀다. 거즈를 떼면 살점이 묻어 나왔다. 죽은 살이 죽어 가는 살을 부여잡았다. 붕대를 동여맬 수 없었다. 이팝나무 꽃잎 같은 구더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녀는 여간해서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욕창이 위험해 움직여야 한다고 말하니, 이 방 바닥에 어떻게 냄새와 얼룩을 남기겠냐고 했다. 때가 되면 그녀는 껍질이 연한 솔방울을 구해왔다. 그것들을 방바닥에 촘촘히 깔고 오래 불을 때 바닥에 송진을 먹였다. 송진 위에 은행잎을 곱게 갈아 뿌리고 굳기를 기다렸다. 그 과정을 몇 번쯤 반복했고 마지막엔 바닥을 사발로 밀고 마른걸레로 문질러 윤을 냈다. 송진 향은 방 안에 오래 머물렀고, 은행잎은 벌레를 막았다. 그 온화하고 담박한 방에서 그녀는 그를 팔베개로 재웠다. 그녀를 위해 의료용 중고 침대를 사 왔다. 침대 시트를 갈 때마다 그녀는 두 팔로 그의 목을 꼭 감싸 안았다. 그는 그를 위해 시트를 자주 갈았다. 배 목수가 일을 시작하자며 일꾼들에게 마당의 잡목이며 풀부터 정리하라고 지시했다. 마루방 문을 열어 놓고 기단으로 내려와 집 왼편을 돌아 뒤뜰로 갔다. 풀과 잡목으로 뒤덮인 뒤뜰은 버덩과 다름없었다. 배 목수가 일꾼들에게 낫을 받아와 길을 냈다. 장독대의 항아리, 뒤뜰 툇마루, 작두샘 손잡이가 남아 있지 않았다. 버선본을 뒤집어 햇빛을 되쏘아 노래기와 지네를 쫓았던 장독대엔 개망초가 무리지어 자라고 있었다. 새벽녘 잠이 깨 소쩍새 소리를 들었을 뒤안 툇마루에는 동바리만 남아 있었고, 손잡이는 사라지고 몸만 남은 작두샘은 이제 그만 쓰러지고 싶은 듯했다. 사라진 것들은 고물상을 통해 도시 어딘가로 팔려 나갔을 것이다. 초봄엔 머위를, 늦봄엔 죽순을 거두었던 대숲은 어지러웠고, 대숲과 채전 사이 굴뚝은 담쟁이넝쿨로 덮여 있었다. 굴뚝에 올라 담쟁이넝쿨을 걷어내는 배 목수를 향해 그럴 필요가 있겠냐고 말했다. 배 목수는 비록 무너뜨리더라도 굴뚝을 이렇게 놔 둘 수는 없는 법이라고 말했다. 아궁이가 입이고 구들이 자궁이라면 굴뚝은 여근이나 유두쯤 된다. 아이를 낳는 여근인 탓에 묵은 집이라 하더라도 산월에는 구들이나 굴뚝을 수리하지 않았다. 난산일 때 지아비는 굴뚝 덮개를 열고 키로 부치고 시어머니는 치성을 드리라 조언했다. 온 집안사람이 산모를 위해 굴뚝에 모여 마음을 쏟으라 말해 주곤 했다. 넝쿨을 제거한 배 목수가 조심스럽게 굴뚝을 내려왔다. 목욕이 어려워 그녀의 몸을 자주 닦아 주었다. 손가락에 눌렸던 살이 다시 회복되는데 오래 걸렸다. 핏기 없는 피부라 저승꽃이 선명했고 겨드랑이를 닦아도 간지러워하지 않았다. 쪼그라진 젖을 닦을 때면 고개를 돌렸고 사타구니를 닦을 때면 몸을 비틀었다. 그럴 때면 계모 아니냐고 농담을 했다. 여기에서 내가 태어났고 이 젖으로 나를 키우지 않았냐고 말했다. 머뭇거리던 그녀가 그를 낳고 며칠 후 먹은 매운 김치 탓에 갓난애 입이 불켰다고 말했다. 그 뒤로 젖을 땔 때까지 그녀는 김치뿐만 아니라 생선이나 맵고 짠 것을 먹지 않았다고 했다. 무얼 먹고 살았느냐 하니 조용하던 그녀가 봄 산엔 찔레도 있고, 진달래도 있고. 꽃이 있지 않느냐고 했다. 그 꽃으로 그를 키웠고 그녀가 살았다고 했다. 산에서 돌아온 그녀는 그에게 젖을 먹이기 전 매번 몸을 씻었다. 꽃을 만진 손으로 아이 입에 젖을 물리기 싫었다. 늘 작두샘에서 냉수를 퍼 올려 몸에 쏟고 뒤뜰 툇마루에 앉아 젖을 먹였다. 배가 고파도, 한기가 들어도 냉수 쏟는 일이 먼저였다. 그는 물수건을 자신의 체온으로 데워 그녀의 몸을 닦았다. 집 주변을 정리한 일꾼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배 목수가 주변 정리가 끝났으니 고유제와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안방 문을 열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곧 트럭에서 음식을 가져와 기단 위에 펼쳤다. 배 목수 아내가 준비해 준 음식들은 풍성하고 정갈했다. 준비를 마친 배 목수가 안방에 인사를 드리지 않고 집에 손을 댈 수는 없으니 더 늦기 전에 들여다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가 툇마루에 올라가 안방 문고리를 잡았다. 배목수와 일꾼들도 툇마루에 올라섰다. 배 목수가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일꾼들과 함께 기단 아래 마당으로 내려갔다. 담배를 물고 먼 산을 보고 있었지만 배 목수 마음은 문고리를 잡은 그의 손에 묶여 있었다. 그가 문고리를 잡고 천천히 당겼다. 쉽게 열리지 않았다. 문에 매달린 그의 모습을 배 목수가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그를 도우려 걸음을 옮기는 일꾼을 배 목수가 잡았다. 곧 문이 열리고 그가 안방을 들여다보다가 문설주에 손을 기댔다. 일꾼들이 기단에 올라 안방은 바라보았다. 그곳에 무덤이 있었다. 구들 고래를 구덩이 삼아 시신을 안치하고 그 위에 굄돌과 구들장을 쌓은 뒤 재와 흙을 덮어 봉분을 만든 묵은 무덤이 드러났다. 일꾼들이 수런거렸다. 누군가가 집이 상여였던 셈이라고 말했다. 헐거워진 고막이벽으로 바람이 들어와 봉분의 흙이 개자리로 쓸렸다. 쌓은 구들장과 굄돌이 언뜻언뜻 보였다. 집의 자궁인 고래와 구들이 무덤 노릇을 했지만 따뜻하지도 포근하지도 않았을 것만 같았다. 산 자의 죽어 가는 집이 죽은 자의 살아 있는 집을 덮고 있었다. 어둡고 답답했을 것만 같았다. 안방의 온기를 기억하는 무덤 주인에게 그늘진 무덤은 형벌과 같았을 것이다. 배 목수가 마루로 올라와 배목걸쇠를 풀고 안방을 훤히 열었다. 습기와 냉기가 한숨처럼 마루로 쏟아졌다. 그녀를 위해 진통제 투여량을 늘렸다. 그녀의 감각이 그녀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기억은 뒤섞였고 시간은 토막 났다. 상처가 간지러우니 새살이 돋는가보다고 말했다. 바람에서 비 냄새가 난다고 했다. 먼 곳에서 오래된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풀을 먹이게 교복을 벗으라 했다. 새 운동화를 사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작설 같은 손톱을 깎아 주었던 아침을 그리워했고, 품앗이에서 남겨 온 사탕이 늘 녹아 서운했다고 했다. 남편이 죽었던 새벽에 함박눈이 내렸다고 했다. 그이가 마지막 숨을 내쉬었는지 들이쉬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가 다녀오는 시간은 멀었고 공간은 넓어 불분명했다. 진통제 양을 줄이자 그녀의 감각이 살아났다. 잠을 이루지 못했고 헛구역질을 했다. 감정과 상관없이 눈물을 흘렸고, 의지와 상관없이 동공이 확대되었다. 동짓달 홑적삼만 입은 듯 몸을 떨었다. 매순간 모진 고통이 그녀 몸속에 머물렀다. 다시 진통제 투여량을 늘렸다. 진통제가 빠르게 소모되었다. 배 목수가 고유제를 지내며 성주신을 시작으로 가신들의 이름을 호명했고 배웅했다. 따로 상을 차려 무덤 주인을 위한 제를 지냈다. 주춧돌과 무덤에 술을 뿌렸고 음식을 땅에 묻었다. 종이를 태워 토지신에게 매지권을 환매하며 고유제를 마쳤다. 남은 음식을 일꾼들과 나눠 먹고 일을 시작했다. 배 목수가 집을 짓는 역순대로 하부 벽을 해체하고 수장재부터 분리하자고 했다. 지붕이 위태로워 상부 구조 먼저 해체하고 하부 구조로 내려오자고 했다. 배 목수가 수긍하며 일꾼 먼저 지붕에 올라 복문으로 사용된 수키와 두 장을 들고 내려왔다. 수키와 표면에 무명천 자국이 선명했다. 일꾼들이 기와를 해체해 마당으로 내리면 배 목수가 집 주변 경계에 쌓았다. 그는 목재에 주기를 먹였다. 정면을 기준으로 기둥에 번호를 썼고, 기둥 번호를 기준으로 부재와 수장재에 이름과 번호를 기록했다. 배 목수가 옮길 집이 아닌데 그럴 필요가 있겠냐고 물었다. 그가 목재들을 손바닥으로 천천히 쓸어 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기와를 모두 내리니 보토와 앙토 등 집의 속살이 온전히 드러났다. 모난 괭이로 살을 걷어내는 세골을 시작했다. 홍진이 바람을 타고 먼 곳으로 날아갔다. 일꾼들이 세골한 흙을 아래로 떨구었다. 안방 상부 고미반자가 흙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흙과 함께 밝은 빛이 무덤으로 쏟아졌다. 배 목수가 일꾼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는 그에게 먼 곳의 소리처럼 들렸다. 뼈를 드러낸 서까래에는 철물이 귀했던 시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연침과 연침 구멍이었다. 서까래에 구멍을 뚫고 싸리나무 연침으로 꿸대를 꽂아 모든 서까래를 한 몸으로 연결했다. 그가 연침을 낫으로 잘랐다. 집을 이루던 음양의 첫 고리가 풀렸다. 집을 이루던 목재들의 교감은 단절되었고, 나무의 교접으로 만들어낸 공간이 해체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급히 병원에 다녀와야겠다고 말했다. 그녀가 진통제 때문이냐고 묻고는 이제 그만 서방님 곁으로 떠나면 안 되겠냐고 말했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고 그녀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바닥이 그의 손등을 덮었고, 곧 그녀의 가냘픈 손가락들이 그의 엄지와 검지 사이로 들어왔다. 그의 손이 그녀의 손가락을 살며시 움켜잡았다. 잠시 후 그녀가 그의 손으로부터 그녀의 손을 거두어 갔다. 두 손끝이 떨어지는 찰나는 길고 느렸다. 그녀가 거둔 손으로 안방 벽장을 가리켰다. 벽장 안쪽 오른쪽 끝 벽지를 걷어내면 고미반자 위 고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고물 구석에 짚으로 덮어놓은 도자기가 있으니 그것을 가져오라고 했다. 도자기에는 아편이 들어 있었다. 홀로되어 유복자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이 이 아편 때문이었다고 했다. 이 집을 건사할 수 있었던 것이 이 꽃, 앵속 때문이라고 했다. 늦봄이 되면 그녀는 그를 포대기로 엎고 산으로 향했다. 노을을 등지고 몰래 심어 놓은 꽃을 찾아다녔다. 뒤뜰 대나무를 잘라 죽침을 만들어 양귀비 열매에 침을 놓으면 침선을 따라 하얀 진이 베어 나왔다. 양귀비 유두에서 배어 나오는 그 젖으로 그녀와 그가 살았다. 그 젖을 엿처럼 고아 도자기에 보관했다. 날품을 팔아서는 감당할 수 없었던 끼니를 그것을 팔아 해결했다. 복통과 하리를 앓는 사람에게는 열매를, 해열제를 찾는 사람에게 뿌리를 주었다. 양지가 아닌 방안 그늘에서 말린 것이라 사름들은 제값을 치르지 않았다. 해수를 다스리고 염폐에 쓰려는 사람은 적은 양의 아편을 사갔지만, 눈이 이미 초점을 잃은 사람들은 많은 양을 사 갔다. 그녀는 양귀비를 심고 아편을 거두는 것보다 그것을 사러 오는 사람이 더 두려웠다. 두 목숨을 연명할 논과 밭을 마련한 후로 그녀는 더 이상 꽃을 키우지 않았다. 다만 언젠가를 위해 얼마의 아편을 남겨 놓았다. 그녀가 그 남은 아편을 뜨거운 물에 개어 달라고 했다. 강다리로 연결된 추녀를 내리고 종도리를 분리했다. 동자주를 내리고 대들보 위에 올라섰다. 바람벽을 보수한 흔적이 보였다. 목재와 이격된 벽을 진흙으로 발랐다. 흙을 바른 자리에 손가락 흔적이 남아 있었다. 도리를 타고 그곳으로 건너갔다. 엉겅퀴 같은 손가락이 지나간 길을 그의 손가락이 천천히 따라갔다. 두 손끝이 시간과 공간을 건너 잠시 겹쳤다. 기둥이 사개맞춤으로 똬리를 틀어 수평 부재를 떠받쳤다. 도리는 주먹장으로 결구되었고, 툇보는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치목돼 대들보 밑에서 부재들과 결합돼 있었다. 충량도 마찬가지였다. 충량과 툇보 뒤는 대들보 무게로 눌렀고, 앞은 처마도리와 서까래로 눌러 움직일 수 없었다. 단단히 맞춤된 집이었다. 목재들을 분리하기가, 인연을 끊기가 쉽지 않았다. 힘들게 연장을 넣어 부재들의 오래된 맞춤과 이음을 풀었다. 연장을 움직일 때마다 집에서 슬픈 소리가 났다. 집이 아파하는 듯 했다. 받을장과 덮을장을 구분해 도리를 기둥으로부터 분리했다. 드러난 대들보 목이 얇았다. 대들보를 내릴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배 목수가 상량문이 있는 것 같다며 그를 불렀다. 마룻대 상부 종도리와 맞닿은 부분에 홈을 파고 상량문을 넣은 뒤 정교하게 조각한 덮개로 덮었다. 덮개를 열고 상량문을 꺼냈다. 숭정으로 시작하는 상량문에는 초석을 놓은 안초일, 기둥을 세운 입주일, 마룻대를 올린 상량일을 기록했고 끝에는 상량 사주를 부기했다. 안초일은 집이 잉태된 날이고, 입주일은 뼈가 생긴 날이며 상량일은 집이 생명을 얻은 날이다. 그가 상량문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집의 영혼을 그가 거두었다. 그녀가 방이 싸늘하니 군불을 때 줄 수 없겠냐고 했다. 솔가리와 마른 섶을 불쏘시게 삼아 아궁이를 말리고 장작을 밀어 넣어 방을 따뜻하게 했다. 솥을 씻어 물을 앉히고 돌아오니 그녀가 옷을 갈아입혀 달라고 했다. 다리가 없어 북망산에 오르기 힘드니 아무래도 서방님이 마중을 나올 것 같다고 했다. 자색 치마와 연분홍 저고리가 좋겠다고 했다. 보자기에 싸인 색이 바랜 한복을 꺼내 그녀에게 입혔다. 앙상하게 마른 그녀의 두 팔이 그의 목을 오래 감싸 안았다. 그녀가 침대를 치우고 방바닥에 눕혀 달라고 했다. 누운 그녀가 방바닥을 손으로 쓸며 아편이 담긴 도자기를 바라보았다. 그가 그럴 수 없다고 눈빛으로 말했다. 그녀가 희미하게 웃으며 아픔을 덜어 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단단하게 굳은 아편에 물을 조금 붓고 솥 안에서 중탕을 했다. 잘 녹지 않았다. 놋숟가락을 집어 천천히 아편을 저었다.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도자기를 꺼내 마당에 던져 깨뜨리고 싶었지만, 아편을 녹이는 손이 멈춰지지 않았다. 안방과 부엌 사이 눈꼽재기창 너머에서 그녀가 미안하다고 말했다. 여러 말들이 오고갔으나 남은 것은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녀가 마지막 힘을 다해 아편 물을 마셨다. 말끔히 마시고 고개를 숙여 목젖을 막았다. 편안하고 간결한 죽음이 아니었다. 죽어가는 그녀는 마디 없는 소리로 아픔을 표현했다. 몸으로부터 영혼이 분리되는 소리를 그는 마루에 앉아 들었다. 밤새 소쩍새가 울며 그녀의 영혼을 거두어 갔다. 보머리를 들어 올려 결구를 헐겁게 했다. 한쪽은 배 목수가, 한쪽은 그가 주축이 되어 대들보를 들어 올렸다. 기둥으로부터 대들보를 분리하고 상인방 위에 올린 뒤 한쪽씩 바닥으로 내렸다. 대들보가 내려오자 집 내부 공간과 하늘이 하나가 되었다. 공간이 사라지며 망자의 무덤을 억눌렀던 질곡의 사슬이 풀렸다. 도리와 보아지 장여를 수거하고, 기둥과 기둥 사이 인방재를 분리했다. 상부 인방재를 들어 올리고 벽체와 인방재를 이격시킨 후 벽을 밀었다. 벽이, 집의 살들이 먼지와 함께 땅으로 되돌아갔다. 마지막 기둥을 수거했다. 집을 지탱했던 기둥을 주춧돌로부터 분리했다. 십반먹이 드러나며 주춧돌도 더 이상 생명의 씨앗이 되지 못했다. 기둥이 사라지자 집이 소멸되었다. 삶의 행복과 고통, 열망과 분노, 희열과 애증, 희망과 좌절을 담았던 집이 사라졌다. 집과 관련된 인연도 사연도 삶도 멸각되었다. 아니 더 넓은 곳으로 연하게 퍼져 나갔다. 해체된 집의 모든 뼈들을 마당 가운데에 얼기설기 쌓아 놓고 일꾼들을 보냈다. 배 목수와 그가 마지막 집, 무덤 개장을 시작했다. 그가 세한의 나무처럼 떨던 몸을 멈추고 마루에서 일어나 안방 문을 열었다.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길게 뻗은 오른 손에 얼굴을 얹고 그녀가 죽어 있었다. 안방도 그녀의 몸도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가 그녀의 웅크린 몸을 반듯이 펴고 팔을 구부리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우두둑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그녀를 안아 마루방에 옮기고 안방 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그녀가 송진을 먹이고 윤을 낸 방바닥을 모난 괭이로 파냈다. 방통미장을 걷어내고 구장들 위의 모래와 자갈, 새침한 흙을 걷어냈다. 구들장을 들어내 한쪽에 쌓았다. 고래에 쌓인 재를 긁어내고 고래둑 일부를 무너뜨려 그녀가 누울 자리를 만들었다. 그녀를 마루방에서 안아 올렸다. 굳은 그녀의 몸은 더 이상 그를 감싸 안아주지 않았다. 그녀를 구들바닥에 눕히고 그녀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쓸어 주었다. 고래둑 위에 이맛돌과 구들장을 올려 그녀의 관을 만들었다. 염습도 보공도 없었다. 구들장과 굄돌을 가져와 쌓고 흙을 덮어 집의 자궁에 그녀의 유택을 만들었다. 그는 그 길로 집을 떠났다. 목수가 되어 자귀질을 배우고 먹통을 잡았다. 대나무 칼로 먹줄을 긋고 끌질을 했다. 산파와 의사, 염장이 노릇을 하며 멀리로 멀리로 맴돌았다. 고미반자 잔해를 걷어내고 무덤을 개장했다. 봉분을 이루었던 흙과 구들장, 굄돌을 걷어내고 배 목수가 관 덮개로 쓰인 이맛돌과 구들장을 들어냈다.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자색 치마와 연분홍 저고리는 삭아 없어지고 그녀의 웅크린 유골만 남아 있었다. 길게 뻗은 팔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듯 했다. 유골의 어두운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배 목수가 말없이 유골을 수습했다. 유골은 여전히 한쪽 다리가 없었고 살이 잘 삭아 세골이 필요 없었다. 그녀를 하얀 종이에 싸서 함에 담아 그에게 건넸다. 그가 그녀의 유골함을 들고 마당으로 갔다. 쌓아 놓은 집의 유골들 사이에 그녀의 유골함을 앉혔다. 유골함 위에 상량문을 올리고 주머니에서 놋숟가락을 꺼내 눌렀다. 배 목수가 바닥에 깔린 솔가리와 마른 섶에 불을 붙였다. 집과 집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노을에 닿을 듯 집들은 무섭게 타올라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그가 불꽃 끝 먼 하늘을 오래 바라보았다. 하얀 재가 그의 어깨 위에 소복이 내려앉았다. /황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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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1 11:09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소설] 현실과 자의식(自意識) 소설

(왼) 유현종 소설가 / (오) 정종명 소설가 예선을 거쳐 본심에 넘어 온 작품은 모두 7편이었다. 그런데 7편의 작품이 갖는 공통점은 자의식의 어두운 그림자와 시니시즘(냉소주의)의 자기 고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수수>는 직장과 모순된 현실의 스트레스를 위로해주는 건 수수한 한 가닥 바람 소리였다는 게 처량하다. 말라비틀어져 더 이상 나올 수 없는 치약을 명예퇴직을 강요당한 주인공의 모습과 몽타즈하여 그리고 있는 <치약의 내일>은 기약 없는 그의 내일을 잘 그려내고 있다. <죽은 고양이를 위한 연금술>은 너무 관념적인 이야기의 전개들이 조작적이고 <이누이트의 추모법> 또한 관념소설이며 지나친 감상주의와 염세주의가 거슬린다. <마지막 화>는 끝이 훤히 보이는 가족 복수극이라는데 문제가 있고 <리치먼드 초콜릿>은 산뜻한 감각적 감성이 두드러져 보이며 문장이나 표현들이 아주 유려한 반면 통속적인 스토리가 진부하다. 마지막 남은 작품 <귀가(歸家)>. 귀가는 바로 흙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격있게 건축된 전통 한옥 기와집이 수명을 다해 임종을 맞이하고 있다. 그 집 안주인도 암에 걸려 집과 함께 임종을 맞이하고 있다. 흙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을 겪어내는 집과 안주인의 임종 모습이 교직(交織)된다. 문제는 한옥건축물의 각종 용어가 나열되어 해독불가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철저한 자료조사로 작품을 쓰는 건 좋으나 확고한 스토리나 리얼리티가 없이 해설 없는 전문용어로 시종일관 나열하면 작품에서 감동을 얻을 수 없다. 이런 단점을 안고는 있지만 이만하면 작가적 역량이 탁월하여 장차 좋은 작품을 쓸 수 있겠다 싶어 당선작으로 정했다. 정진을 바란다. /유현종 소설가, 정종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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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1 11:09

[2020 전북문화계 결산] ④ 문학·출판

올해 전북지역 문학출판계에는 코로나19로 인한다양한 시도와 변화들이 있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공공도서관이 장기간 문을 닫으면서 도서관들은 독서 활동에 불편을 겪는 시민들을 위한 북드라이브스루 방식을 도입해 시행했다. 비대면 사회가 만들어낸 새로운 흐름이었다. 전주독서대전이 사상 첫 온라인 개최를 결정하는 등 온라인 플랫폼 활용도 두드러진 변화였다. 정부의 도서정가제 개정 움직임은 전북을 비롯한 전국 동네책방의 거센 반발을 샀다. 결국 정부는 도서정가제를 큰 틀에서 유지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도내 문단은 다수 문학단체장이 바뀌며 새로운 기류를 형성했다. 특히 전북문인협회는 김영 시인이 당선되며 전북문인협회 창립 역사상 첫 여성 회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 코로나19에 도서관 비대면, 독서대전 온라인 적극 활용 코로나19 확산으로 임시 휴관이 장기화되자 공공도서관은 도서대출예약서비스, 무인예약대출기 등 비대면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시민들의 독서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도내 시립군립도서관들은 자동차에 탄 채책을 빌리는 북드라이브스루 서비스를 도입해 호응을 얻었다. 이용자간접촉을 최소화하면서 불편 없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드라이브스루는 코로나19 시대에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됐다. 올해 전주독서대전은 사상 처음 온라인으로 치러졌다. 전주시는 온오프라인 병행 개최를 계획했으나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전면 온라인으로만 행사를 진행했다. 이에 따라 개폐막식과 북마켓 등 체험 부스를 운영하지 않고 프로그램도 축소했다. 이외 열린시문학회 등 문학모임들도 실시간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수업으로 코로나19 속 문학 활동을 이어갔다. △ 다수 문학단체 새 인물 전북문인협회 첫 여성 회장 탄생 올해 도내 문학단체들은 새로운 수장을 맞이하고 변화를 모색했다. 전북작가회의는 이병초 시인, 전북시인협회는 김현조 시인, 전북아동문학회는 박예분 아동문학가, 전주문인협회는 유대준 시인, 전북수필과비평작가회의는 신영규 수필가가 회장에 당선됐다. 특히 전북문인협회는 김영 시인이 단독 접수해 무투표 당선이 확정됐는데, 이는 전북문인협회 59년 역사상 첫 여성 회장 당선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 정부 도서정가제 개정 움직임 논란 동네책방 거센 반발 올해 도서정가제 개정을 두고 논란이 거셌다. 정부가 11월 도서정가제 검토 시한을 앞두고 도서정가제와 관련한 개정 법률안을 예고하면서 전북을 비롯한 전국 동네책방의 반발에 부딪힌 것이다. 동네책방은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의 경쟁이 심화한 가운데 도서정가제마저 폐지될 경우 동네책방이 고사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결국 정부는 도서정가제를 큰 틀에서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정가의 15% 이내에서 할인을 제공하는 등 현행 제도를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근본적으로 이번 논란은 전자출판물 성장 등 출판생태계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도서정가제는 3년 주기로 타당성을 검토하는 만큼, 향후 전자출판물 도서정가제 적용 방안은 과제로 남게 됐다. <끝>

  • 문학·출판
  • 문민주
  • 2020.12.30 18:1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영주 작가 - 박수서 시인 <슬픔에도 주량이 있다면>

종종 제목이나 겉표지에 낚여 덜컥 사버릴 때가 있다. 책 펼치자마다 아뿔사! 낚였군.해도 이미 내 손에 책이 온 후. 후회막급해도 소용없고, 책표지 뒷장 바코드 아래 책값을 두고두고 째려본 들 어쩌겠는가! 그 충동에 구입한 시집이 있었다. 『슬픔에도 주량이 있다면』은 한 치의 주저도 없이 사게 만들었다. 그리고 시집을 펴고 한 일은 목차를 보고 시를 찾았다. 목차 어디에도 없었다. 책을 잡으면 끝장을 보기도 전에 잠이 몰려오는 나를 단 한번에 온읽기를 시켜버렸다. 아주 고단수가 따로 없다. 처음에는 안 보이는 게 약이 올라 읽다, 나중에는 오기로 읽었다. 어쩜 그 말이 그 말인 셈이지만. 콩나물 국밥에 다진 청양고추 넣어 말아버린 것을 어쨌든 찾았다. 나중에 들은 후문이지만, 출판사 대표가 제안해 나온 제목이란다. 박수서 시는 『슬픔에도 주량이 있다면』처럼 기막힌 시어들이 숨어있다. 시인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어느 날 하루는 박 시인이 철 한 수저를 먹었는지 뜬금없이 내게 물었다. 형, 나하고 친해서 사람들한테 욕먹지? 난 망설임 없이 냅다 대답했다. 그래! 박수서는 별종 중에 별종이다. 나는 곁에 별종 하나 있는 게 좋다. 뽕작시의 선두주자, 자칭 삼류시인, 고독한 미식가를 사랑하는 고독한 미식가다. 어찌 보면 시인이 만든 한 장르이다. 사뭇 기괴한 물건이 따로 없지만 이 별종이 나는 좋다. 서문에 일출을 보러갔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라면 한 그릇 먹었더니 해가 중천에 떴더라 하면서 그렇게 한눈팔다 시를 잃었다고 말한다. 박수서는 어쩌면 인생에 서 먹을 라면 한 그릇이 너무 많은지 모른다. 그래서 매일 삶이란 무엇이냐?하며 징징거린다. 그런 식으로 시를 갈급하고 있다는 속마음을 둘러대는지 모른다. 『빈집』을 보면 박수서 자신을 보는 것 같다. 시를 못 쓰고 막걸리를 마실까, 소주를 마실까 고민할 때면 빈집처럼 부산해진다. 정신을 빼놓는다. 박수서 시인은 시 쓸 때는 세상 진중하다. 나는 가끔 몸살 난 박수서를 보면 쌍화탕 한 병 주듯 시 써라! 한다. 시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익어갈지 감나무에게 감히 물을 수 있었을까! 자신이 덜 익었음을 진정으로 깨닫고 가기 쉽겠는가? 『거미』시를 읽고 누군가 말했다. 기죽고 힘들어하지 마시게나. 다 보기 나름이라네. 요즘은 매일 위기와 동거하는 세상 같다. 다들 힘내자는 말 대신『거미』의 시구로 마무리 하련다. 죽지 못하고 끝까지 줄 위에서 버티는 것은 스스로 거미줄을 먹어치울망정 세상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0.12.30 18:14

[신간] 국명자 작가 <차표끊다 먼먼 그리운 역을향하여> 발간

폭설보다 더 큰 위력으로 몰려오는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따뜻한 위로가 될 글감들을 찾게 하면서 설레이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해준 고향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차표끊다. 먼 먼 그리운 역을 향하여 中> 고창출신 국명자 작가가 수필집 <차표끊다. 먼 먼 그리운 역을 향하여>(신아출판사)를 펴냈다. 책에는 국 작가가 도시를 떠나 마음이 편안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겼다. 이 책에서 작가는 고향을 가난하고 불편했으며, 심심하기만 했었던 곳으로 칭한다. 하지만 우리들 옆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더 크고, 너그럽고, 따뜻한 무언인가로 감싸 안아주는 곳이라고도 설명하고 있다. 즉 어린시절 가난과 고단함을 준 곳이지만 지금은 그런 고향이 그립고, 따뜻함이 더 큰 곳으로 표현한 것이다. 작가는 눈길에 닿았던 정다운 모든 것들과 미소 나눴던 모든 사람들과 가슴 저리게 펑펑울 게했던 곳이 고향이라며 그런 고향이 그리웠고 그곳으로 달려갔더니 무너져내리던 나를 다시 불끈 일으켜 세워주고 있다고 고향의 그리움을 설명하고 있다. 고향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작가는 남편이 떠난 뒤 삼년 간 외로이 홀로 써왔던 작품 12편도 이 책에 담았다. 국 작가는 무엇이건 주어진 대로 감사하면서 살면 괜찮은 삶이 될 것이라며 늘 위로해주고 살 길을 터주셨던 그분을 뵈울 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창 출생으로 1983년 한국수필로 등단해 전북수필 창립회원, 표현 동인으로 활동했다. 제3회 전북수필문학상(1990), 표현문학상(1993), 제7회 전북문학상(1995)을 수상했다. 부부칼럼 에세이집 <따갑게 미소롭게>,<내 모습 이대로>, <다시 만나기 위하여> 등의 수필집이 있다.

  • 문학·출판
  • 최정규
  • 2020.12.3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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