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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전주세계소리축제 리뷰]우리 소리의 오래된 첨단, 국창 신영희·조상현을 만나다

소리가 흔해진 시대다. 거리를 다녀보면 저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다. 심지어 노이즈 캔슬링, 그러니까 내가 듣기 싫은 소리는 차단해 버린다. 오롯이 듣고 싶은 것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어떤 소리는 결코 캔슬(무효화)될 수 없다. 차고 넘쳐서가 아니다. 되레 희소해서 그렇다. 실은 소리가 소리 위에 집을 지어서인 까닭이다. 일차원적/일회성 청각 자극을 넘어서, 스스로 세월의 더께를 이고 시대의 풍파를 견뎌 끝내 3차원의 건축학적 랜드마크가 돼버린 소리라서 그러하다. 지난달 18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열린 2024 전주세계소리축제 폐막공연, ‘조상현&신영희의 빅쇼’에서 시간과 소리로 건축된 두 개의 오벨리스크를 만났다. 우리 현대사를 수놓은 그 둘이 나란히 오똑 선 모습을 관람할 수 있어 드물고 귀한 무대였다. 국창의 반열까지 오른 명창 조상현과 신영희. 두 사람은 각각 87세, 82세다. 그들의 소리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공연 전부터 모악당 주변을 서성이는 1000여 명의 관객들은 표정에서, 일행과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에서 모두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은 날짜 타이밍도 시쳇말로 죽여줬다. 1995년 KBS TV ‘빅쇼’에서 두 사람이 ‘소리로 한 세상’이란 제목 아래 전 국민 앞에 절창을 함께 쏟았던 것이 바로 8월 18일. 그러니까 그로부터 정확히 29년째 되는 날, ‘빅쇼’라는 타이틀 아래 두 국창이 맞닥뜨린 것이다. 두 사람은 지난해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각각 완창 판소리를 들려준 바 있다. 그래서 이날 무대는 어떤 구성일지가 첫째 관심사였다. 막이 열리고 마주한 이날 공연은 ‘빅 쇼’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그 형식은 음악극에 가까웠다. 박상후 지휘의 KBS국악관현악단이 받치는 가운데 전북의 젊은 소리꾼 10인이 무대 전면에 나섰다. 조상현, 신영희의 인생사를 아니리로 구성해 풀어냈는데, 휴대전화 쇼트폼 세대도 지루하지 않게 쉴 새 없이 주고받는 대사로 엮었다. 빠른 전개가 돋보였다. 두 국창은 각각 스스로 작사, 작창을 해 우리 소리의 신(新-)고전이 돼버린 ‘흥타령’과 ‘사철가’를 부르며 느긋하게 등장했다. ‘빗소리도 임의 소리 바람소리도 임의 소리…’ 하며 임을 그리고, ‘봄은 찾어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하며 인생무상을 한탄하는 그 소리가 원곡자의 입에서 터져나올 때 객석에서도 낮은 탄성이 함께 터졌다. 중반부에 마련된 흥보가 한 대목은 1970, 80년대 TV 출연으로 안방극장까지 사로잡았던 준(準-)희극인으로서 두 사람의 풍모도 엿보게 해줬다. 마당쇠 신영희에게 글 가르쳐주려다 되레 당하는 놀부 조상현의 티키타카와 케미스트리에 객석이 남녀노소 흥겹게 들썩였다. 국악인이자 불세출의 국악 소재 영화 ‘서편제’의 주인공이기도 한 오정해가 사회를 맡은 중반부 토크는 짧지만 여운이 길었다. 일단 열연, 열창의 안부를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힘들어 죽겄소~”(조상현)와 “쓰러지기 직전요~”(신영희)로 화답하며 너스레를 떤 두 사람. 이어지는 음악 철학이 촌철살인이다. 사철가의 작창 배경을 묻자 “인거유흔(人去遺痕·사람이 한 번 가도 흔적은 영원히 남는다)”을 내놓은 조 명창. 신 명창은 국악 세계화에 대해 “우리 것은 역사의 한 페이지예요. 없어서도 안 되고, 없을 수도 없어요. 소리 축제는 영구히 하도록 여러분들이 도와주세요” 하고 목 놓았다. 간간이 무대 뒤 스크린으로 투사된 두 사람의 TV 출연 모습과 소싯적 사진은 객석에 흐뭇하고 잔잔한 웃음의 파문을 일으켰다. 젊은 소리꾼들의 패기 넘치는 스토리텔링과 KBS국악관현악단의 웅장한 연주 모두 돋보였다. 마지막 한 판은 가히 ‘폭발’이었다. 특히 조상현 명창의 심청가 중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은 빙의한 듯한 열연, 활화산 같은 절창에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다. 세계 어느 디바와 디보가 80대에 두 사람만 한 사자후를 뿜어내랴. 세월이 더께가 되고 도리어 갑옷이 되는 우리 소리의 신비함이 이날 전주 고을에 현현한 것이다. 8월 초, 멀리 프랑스에서 열린 파리올림픽 태권도 남자 58kg급 결승전 직전. 대한민국의 박태준 선수는 서두에 언급한 저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태연자약 노래 한 곡을 듣고 있었다. 요즘 인기 높은 아이돌 밴드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란 노래다. 아제르바이잔 선수를 꺾고 끝내 금메달을 목에 건 박 선수는 경기 전 노래 들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만들고 싶어서 (그 노래를) 들었는데, 정말 그렇게 됐다.” ‘빅쇼’의 초반, 젊은 소리꾼들의 아니리 가운데 귓전에서 좀체 떨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 “자네들, 혹시 그거 아는가. 한자에는 소리 ‘성’자가 있고, 노래 ‘가’자가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는 왜 우리가 부르는 것을 노래라 하지 않고 소리라고 하는지를. 노래는 사람에서 나오지만 소리는 자연에서 나오기 때문이지. (중략) 소리를 잘하는 것은 결국 이 자연의 소리를 따라야 한다는 사실. 그것은 곧 소리꾼의 사명이다.” 후배들의 입을 빌어 전달됐지만 사실 이는 다름 아닌 조상현 명창이 공연 준비 기간 내내 스태프와 출연진에게 여러 번 강조했던 경구(警句)이자 당신 음악 세계의 철칙과 같은 것이다. 조상현과 신영희, 두 사람의 소리는 과연 랜드마크이되 회색 콩크리트의 구조물이 아니었다. 웅대한 자연의 배경과 하나가 된 듯했다. 한 페이지가 아니라 여덟 폭의 병풍이, 세월 따라 접고 접은 팔순의 ‘폴더블 디스플레이’가 돼있었다. 우리 소리의 정전(正傳)이 무엇인지, 정점(頂點)은 어디인지가 궁금할 때 향후 언제든 펼쳐볼 수 있는, 오래된 첨단으로 꽃 피어 있었다. 임희윤 음악평론가는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국립국악원 운영자문위원. 전 헤럴드경제,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KBS 1라디오 ‘오늘 밤 1라디오’, 국악방송 ‘창호에 드린 햇살’ 등에 매주 출연해 음악 이야기를 한다. 저서로 ‘예술기’ ‘망작들’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공저) 등이 있다. 티빙 ‘케이팝 제너레이션’, SBS프리미엄 ‘교양이를 부탁해’ 전문가 출연. @heeyun_lim

  • 전시·공연
  • 기고
  • 2024.09.08 16:11

[안성덕 시인의 '풍경']책방

책방에 갔습니다.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경원동 책방엘 갔습니다. 썰렁했습니다, 종이 냄새에 잉크 냄새만 상큼했습니다. 깨끗이 빨아 빨랫줄에 널어 햇볕과 바람에 말려 개켜 놓은 옷가지인 듯, 새물내가 아니 새 책 내가 내내 코끝에 맴돌았습니다. 현대인들은 눈코 뜰 새 없습니다. ‘빨리빨리’, 재촉하며 건너온 산업화시대 관성 때문입니다. 차분히 앉아있을 틈이라곤 없습니다. 도통 책 한 장 넘길 겨를이 없습니다. 세상이, 세월이 가만 놔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인 우리는 너나없이 스마트폰만 손에 쥐고 있습니다. 길고 재미없는 것들은, 숙제처럼 읽어야 할 것들은 컴퓨터가 척척 요약해 줍니다. 그러니 밤새워 톨스토이와 백석을 읽을 일이 없는 것이겠지요. 세상 듣기 좋은 소리 셋은, 내 새끼 책 읽는 소리요, 빈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요, 마른 논에 물들어 가는 소리라 했습니다.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 두보(杜甫)의 시구던가요? 조선 선비 장혼(張混)은 “다섯 수레의 책도 돌돌 말면 가슴속 심장 안에 간직해 둘 수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아! 그런데 저물도록 책방 구석에 쪼그려 앉아 만화책을 훔쳐 읽던 그 소년은 어디로 갔을까요?

  • 문화일반
  • 기고
  • 2024.09.07 08:00

'예술의 줄기, 전승공예의 정수'를 마주하다…전북전승공예연구회 작품전

제28회 전라북도특별자치도 전승공예연구회 작품전이 10일부터 열흘간 한국전통문화전당 4층 기획전시실에서 ‘예맥(藝脈) : 예술의 줄기, 전승공예의 정수’ 를 주제로 펼쳐진다. 전북전승공예연구회(회장 김동식·국가무형유산보유자 선자장)는 선조들의 전통공예 유산과 기능을 보전하고 온전히 전승하고자 1996년 10명의 전통공예 장인들이 뭉쳐 설립한 단체이다. 현재는 국가무형유산과 문화재, 보유자, 명인 등 공예작가 2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자수, 한지, 부채, 나전칠기, 전통매듭, 궁중의상, 백자, 청자, 옹기, 가구, 창호, 옻칠 , 지우산, 탱화, 칠보, 악기, 목조각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이 선정한 30여 점의 작품이 공개될 예정이다. 전시 테마인 ‘예맥(藝脈)’에서 알 수 있듯 예술의 줄기인 전승공예의 정수를 만날 수 있으며, 숙련된 오랜 노하우로 만들어진 장인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다른 전시와 달리 이번 작품전은 ‘전시’와 함께 ‘시연+체험’이라는 두 가지 큰 틀의 연계전시 형태로 진행된다. 전당에서 열리는 1차 전시는 작품 감상 위주로 이뤄진다면 오는 23일부터 10월 7일까지 임실한옥 예술공감에서 펼쳐지는 2차 전시에서는 시연과 체험행사를 중심으로 진행한다. 이를 위해 연구회는 1주차인 28일 오후 2시 김동식(선자장) 장인의 시연을 시작으로 박순자(침선), 김대성(부채) 장인의 체험, 29일에는 김선자(매듭장), 김정화(칠보) 장인의 시연, 권원덕(소목) 작가의 체험을 각각 진행키로 했다. 또 2주차인 10월 5일 오후 2시에는 김종연(목조각장), 강의석(청자) 이수자의 시연, 윤성호(지우산), 전경례(자수) 이수자의 체험, 6일에는 한경치(합죽선), 안시성(옹기장) 장인의 시연, 장정희(침선) 이수자의 체험이 각각 추진될 예정이다. 연구회 권원덕 사무국장은 “우리의 전통공예 줄기 즉, 정수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전시를 준비했다”며 “전시 작품들이 한옥이란 실체적인 공간에서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보여주고자 ‘시연과 체험’이란 구성을 통해 관객과의 접근성을 높였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4.09.06 18:32

한계를 넘은 기적의 무대⋯장애인 앙상블 연주단 느루걸음 ‘동행’

장애의 한계를 넘어 기적을 공연하는 연주단체 ‘느루걸음’이 오는 7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을 감동의 선율로 물들인다. 느루걸음은 ‘한꺼번에 몰아치지 않고 천천히 오래도록 걷는다’의 뜻의 용어이면서, 지난 2022년 첫걸음을 뗀 장애인 앙상블 연주단의 이름이기도 하다. 전주시 장애 유형별 맞춤형 직무 개발을 위한 일자리 활성화 시범 사업으로 지난 2022년 모인 이들은 장애인 연주자와 발을 맞춰 활동하고 있는 연주단체다. 장애인 연주자들의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돕고 전문 연주단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등 장애인식 개선을 위한 다채로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단체는 7일 오후 5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명인홀에서 ‘동행’을 공연한다. 전석 무료. 다양한 음악 서비스 활동을 통해 단원들 간의 부족함을 채우고 나누며 활동하고 있는 이들의 공연은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의 기획공연 ‘스타시리즈’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앞서 소리전당은 코로나19로 침체된 지역 예술계에 순수예술 장르의 활성화를 위해 지역 아티스트들의 공연예술 활동 발돋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올해로 4년째를 맞은 스타시리즈의 열두 번째 무대로 진행될 이번 공연은 모두가 아름다운 선율을 오래도록 연주하자는 의미를 담아 ‘동행’이라는 주제로 펼쳐진다. 이날 무대에 오르는 13명의 느루걸음 단원은 안경일 지휘자와 함께 약 1시간 동안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하모니를 선사할 예정이다. 이들은 세르비아의 이발사, 헝가리무곡, 카르멘의 서곡과 같은 친숙한 클래식 음악으로 정통 클래식의 맥을 잇는다. 여기에 ‘시네마 천국’, ‘스타워즈’, ‘캐리비안 해적’ 등 유명 영화 OST와 더불어 K-POP 음악 등의 프로그램을 구성해 대중성까지 갖춰낼 계획이다. 서현석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대표는 "이번 무대를 계기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성장하고 예술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기획 공연을 통해 전북 지역예술인들의 산실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자세한 사항은 소리전당 홈페이지를 참조하거나 전화(063-270-8000)로 문의하면 된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4.09.05 17:21

문 너머 사계절 풍경이 펼쳐지다…조화영 '문門(THINKING)'

사계절 풍경이 문(門) 너머로 펼쳐진다. 푸르고, 파랗고, 노랗다가 이내 붉어진다. 캔버스에 올라앉은 색이 물결치듯 일렁인다. 색은 제각각이지만, 분리되지 않고 서로 얽혀들어 한 폭의 작품이 됐다. 서양화가 조화영 작가가 ‘문(門)’을 주제로 다음 달 31일까지 삼례문화예술촌 제3전시관에서 전시회를 연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문과 창문을 메타포로 5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내부와 외부의 연결 도구인 문을 단순히 물리적 장벽으로 바라보지 않고 의식과 욕망이 결합되고, 일상과 시간 속에서 내재하고 있는 상징성으로 발현해 표현했다. 무엇보다 작가가 문을 향하고, 문을 바라보면서 생각한 단상들과 문에 대한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독특하게 해석해 비현실적인 인상을 자아낸다. 전시 제목 ‘문門(THINKING)’은 작가의 인문학적 깊이를 웅변한다. 그는 공적이며 사적이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내부와 외부와의 연결 도구 ‘문’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거쳐가는 단계이자 과정으로 사유를 확장한다. 조 작가는 전시 작품들에 대해 “평소 앙리 마티스를 좋아한다. 창문에 대한 해석과 표현을 캔버스에 담았다”며 “시간과 시간 사이, 공간과 공간 사이를 반영하는 감각, 감수성, 축적된 시간들을 문을 통해 비유적으로 표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남대 일반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한 작가는 부산, 전주, 광주, 미국, 프랑스 등에서 활발히 작품 활동을 펼쳐왔다. 전주문화재단 도시갤러리 작가 공모, 전주시 이동형 꽃심 갤러리 공모 등에 선정된 바 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와 전북미술협회 회원이며 문화예술교육사로 활동하고 있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4.09.05 17:21

[2024 전주세계소리축제 리뷰]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공연 '잡색X'

사건명: 20240814-잡색X <잡색X>는 2024년 8월 14일 밤에 명백한 ‘사건’으로 출현(出現)했고, 나와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공동의 기억이자 유의미한 대상이 되었다. 이 사실이 어떤 결과나 해석보다 가장 중요하다. 작금의 전통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놀라운 문제 제기 도입부는 마치 전쟁 게임 속 판타지(fantasy) 현실 속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관객석에서 보이는 전방은 새까만 컴퓨터 창(窓)이 되고, 무대 위 인물들은 감시자의 눈을 연상케 하는 철 구조물을 배경으로 두고 서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유저(User)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언어대로 움직였다. 부족 간 전쟁이 있고, 적장이 죽고, 마을 부족의 우두머리[상쇠]가 배 혹은 철탑, 상여로도 해석될 수 있는 구조물 앞에서 적장의 넋을 달래는 의례를 행한다. 연출은 풍물굿의 전통적인 의식(儀式) 행위를 활용하되, 맥락은 제거하고 뼈대 요소만 서사 전개 곳곳에 나누어 이용했다. 제2막에서는 암흑 속에 익숙한 물체[세탁기]가 등장하고, 그 안에서 흰빛의 생명들이 연이어 토해졌다. 밖으로 나온 존재들이 눈먼 이들처럼 바닥을 뒹굴고, 기고, 웅크리며, 좀처럼 딛고 서지 못하는 모습일 때, 내 체온이 내려갔다. 체온 하강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경계심과 긴장감과 불편함에 대한 신체 반응이다. 마침내 그 한낱 여린 것들이 하나둘 손을 잡기 시작하고, 일어서고, 큰 하나가 되어 생기발랄해졌다. 비로소 나도 고른 숨을 내쉬었고, 뭉클한 가슴 통증을 즐기는 데까지 나아갔다. 만약 이런 내 반응이 관객의 반응 시퀀스(response sequence)까지 계산한 결과라면 경외감을 표하고 싶다. 무엇보다 필자가 크게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작품 곳곳에서 전통의 본질은 모른 채 표피에만 집착하고 신성화하는 낡은 전통 의식(意識)과 태도를 향해 날리는 문제 제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 목적은 다행히 ‘반항이 아닌 살리고자 하는 열망’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공간이 바뀌어도(당산나무 대신 철탑 앞의 제의 장면), 인성과 사회성이 변해도(부족 화합이 아닌 대립과 죽음 장면), 인권에 대한 존중과 위로와 해원(解冤)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이 연신 들렸다. 연출은 이전 마을공동체에서 비롯한 풍물굿의 문화 핵심이 그랬고, 여전히 유효함을 힘있게 말하고자 상상력의 최대치를 짜가며 고심했던 게 아닐까? 날것의 풍물굿을 주인공으로 한 키치 스타일(Kitsch style) 다큐멘터리 <잡색X>는 박제(剝製)가 아닌 날것의 풍물굿을 주인공으로 삼은 키치한 단편 사실극 영화였다. 필자는 적어도 이 문장 이상으로는 <잡색X>의 독보적인 특질을 집약해서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미학에서 정리하는 키치는 ‘예술이 되지 못한 것’, ‘모조품’, ‘싸구려 문화상품’ 등으로, 주로 대상에 대한 부정적인 평을 내리는 말이다. 그러나 ‘작정하고 키치’를 내세운 연출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결과적 키치가 아닌, 키치를 이용해 작품의 예술적 의도를 완성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잡색X>의 키치함을 ‘작정한’ 것으로 해석한다. 강렬한 날 것의 냄새, 그 대체 불가능한 아우라(Aura)를 가져온 것은 풍물굿의 플래그십(flagship)이라 할 수 있는 임실필봉농악 깃발과 치배,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함께 구성한 퍼레이드와 재능기놀음 막(幕)이다. 쇠잽이, 자전거동호회 무리, 장구잽이, 해녀 무리, 북잽이, 교복입은 십대 무리, 징잽이, 실버 세대, 열두발 상모잽이, 의사와 간호사들, 할미, 공놀이 하는 아이와 그 가족, 대포수 등등 온갖 인생을 사는 생활인들이 잡색X가 되어 무대를 휘저었다. ‘잡색X’는 무한수였다. 어디에나 있었고, 앞으로 무수히 있을 것이며, 그들이 있는 공간은 무한(無限)·무궁(無窮)이다! 이 클라이맥스로 전막(前幕)에서 돌연 천공이 열리고, 우주인 잡색X들이 행성을 떠돌고, 천체에 있어야 할 별자리가 바닥 아래로 내렸던 맥락을 이제야 비로소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잡색X>는 현대적 얼굴을 한 판굿 역시 풍물굿은 생활 주체들의 예술적 놀이일 때 제맛이다. 풍물굿 잽이는 자신을 포함한 다수의 생활인을 위해 공연하고, 공동체문화로서의 풍물굿 자리는 생활인들의 인생을 떠받치는 ‘뒷것’이 맞다. 이 면에서 2024년 8월 14일에 첫 출현한 <잡색X>는 분명 ‘현대적 얼굴을 한 풍물굿’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충분히 오늘 풍물굿의 잡색X가 될 권리와 자질이 있다! 양옥경 전북대 학술연구교수 국립국악고와 한양대 국악과에서 국악 기악을 전공했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음악학 전공으로 문학석사와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전북대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한국전통문화대학교·전북대에 출강하고 있다. 장애인문화예술원(이음) 심의위원, 한국공연문화학회·한국민요학회·한국풍물굿학회·한국음악사학회·한국국악학회의 임원 및 정회원 소속으로 학술 활동을 하고 있다.

  • 전시·공연
  • 기고
  • 2024.09.05 17:21

전주문화재단, AI 국악 크로스오버 작곡 공모전 2차 전문가 심사

전주문화재단은 최근 AI 국악 크로스오버 작곡 공모전의 2차 전문가 심사를 진행해 최종 심사에 오를 4개 곡을 선정했다고 5일 밝혔다. 전주문화재단이 ‘대한민국 문화도시 조성사업’ 예비사업의 일환으로 진행 중인 ‘다이브 투 퓨전: 더 비기닝(DIVE TO FUSION: THE BEGINNING)’ AI 국악 크로스오버 작곡 공모전 2차 전문가 심사가 지난 4일 열렸다. 이날 심사위원으로는 윤일상 작곡가와 전 씽씽밴드 멤버이자 무형문화재 57호 경기민요 이수자인 이희문 국악인, 장서윤 소리꾼, ‘소리의 탄생’을 연출한 박규현 전주MBC PD가 참여했다. 이번 심사는 전국 공모전에 출품된 116곡 중 지난 1차 심사를 통해 선발된 26개 곡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그중 4개 곡이 선정됐다. 선정된 작품은 참가신청서와 AI 작업기 등 서류를 통해 창작성·대중성·목적성 등을 기반으로 평가됐다. 최종 심사를 위해 선정된 4곡은 오는 7일 팔복예술공장에서 열릴 청중평가 대상 곡으로 청중평가단의 심사를 받게 된다. 시민 100인의 선택을 받은 대상작은 9일 전주문화재단 누리집을 통해 발표되며 미래문화축제 ‘팔복: The Beginning’의 CM송이자 문화도시 전주를 대표할 곡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최락기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반영돼 더 신뢰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다이브 두 퓨전 공모전은 퓨전국악 분위기를 AI 작곡 플랫폼이 얼만큼 구현하는지 실험해 보는 장이었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4.09.05 17:21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성장 동화, ’거짓말을 팝니다‘ 발간

우리는 살면서 자의든 타의든 조금씩 거짓말을 한다. 선의로 하는 거짓말은 상황을 부드럽게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작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한 거짓말이 엄청난 공포와 불안을 몰고 오기도 한다. 이처럼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내뱉었지만, 결코 작지 않은 책임의 무게를 가져오는 거짓말에 대해 다룬 동화집이 세상에 나왔다. 김자연 아동문학가가 신작 <거짓말을 팝니다>(보랏빛소 어린이)를 펴낸 것. 김 아동문학가는 이번 책에서 ‘핸드폰 요금 폭탄’이라는 뜻하지 않는 사건을 통해 요즈음 아이들이 겪는 거짓말의 실상과 고통에 집중한다. 동화 속 사건은 주인공 아인이의 집에 걸려 온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된다. 아인이가 절친 수연의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는 바람에 수연의 핸드폰 요금이 100만 원이나 나왔다는 거짓 소식이었다. 부모님의 꾸중이 무서웠던 수연은 아인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씌웠고, 아인이의 가족들 역시 아인이를 쉽게 믿어주지 않으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또 이번 책에는 거짓말을 한 아이의 초조한 심리를 잘 표현해 내고 있는 박현주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도 수록돼 어린 독자들의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실제 박 일러스트레이터는 ‘내’ 속에 있는 수 많은 나의 모습, 그로 인해 고통을 받는 마음, 그러나 결국 가족과 친구의 품에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까지 다채롭게 묘사해 낸다. 작가는 “최근 자녀의 반복되는 거짓말을 걱정하는 부모님과 거짓말을 했다가 들킬까 봐 불안해하는 아이를 만났다”며 “그러면서 부모님께 혼나는 게 무서워 거짓말을 했던 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돼, 이 책의 주인공을 통해 거짓말의 무게와 힘든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 싶었다”고 말하며 이야기가 탄생하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부모님께 야단맞지 않으려고 한 거짓말이 나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만드는지, 거짓말을 했다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이들이 스스로 느끼게 하고 싶었다”며 “이 동화가 그런 아이들에게 숨구멍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자연 아동문학가는 김제 출신으로 지난 1985년 안동문학평론 신인문학상과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전북아동문학상과 방정환문학상을 받았으며, 주요 작품집으로는 <초코파이>, <피자의 힘>, <수상한 김치 똥>, <항아리의 노래> 등이 있다. 작가는 현재 도와 잡지 <동화마중>의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일하고 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4.09.04 17:35

삶의 애환 담은 80편의 詩…허혜숙 시집 ‘너울춤’

삶의 애환을 시로 노래하는 허혜숙 시인(70)이 생애 첫 시집 <너울춤>(조선문학사)을 출간했다. 80여 편의 시가 수록된 이번 시집에는 희망과 빛, 사랑과 행복, 그리움과 같은 묵시적 이미지의 시어들이 돋보인다. 특히 시인은 희망을 여러 모습으로 형상화하고, 희망의 양면성과 양극화를 포착해낸다. “아름다운 세상 잠시 허공 위에 띄우고/그땐 그랬지 지난 추억 소환하고/미움이 사랑으로 변하니/슬픔이 기쁨으로 변하더라//가는 길 끝자락에는/가끔은 아름다운 꽃길도 걷고/가끔은 울퉁불퉁 자갈길도 걸으며/마른 땅 같은 삶이면 어떠랴/소용돌이치는 물결 같으면 어떠랴/가는 길 끝자락에는/마중 나올 희망이란 님이 있는데”(‘가는 길 끝자락에는’ 일부) 허 시인에게 있어서의 희망은 ‘마중 나올 님’처럼 긍정적 이미지로서의 선과 등가성을 갖는 대상으로 형상화한다. 문제는 이러한 희망이 시인이 실현하고, 실현되기를 열망하는 성취욕의 적극적 추구와는 달리 그 근저에는 희망에 대칭되는 ‘절망’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박진환 문학평론가는 시집 평설에서 “시인의 묵시적 이미지들은 반대 개념인 악마적 이미지의 선행에서 시를 출발시켜 묵시적 이미지로 승화시킨다”며 “희망에 대응했을 때는 절망이 되고, 빛에 대응시켰을 때는 어둠이, 사랑에 대응시켰을 때는 미움이나 증오 같은 것들로 대체된다”고 설명했다. 시인은 경기도 용인 출생으로 계간 시학에 당선돼 시인으로 등단했다. 경북 봉화문협에서 활동했으며, 마로니에 전국 여성 백일장 입상 경력을 갖고 있다. 허 시인은 “10여 년간 응모했던 많은 습작물이 책으로 출간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얻은 기분”이라며 “앞으로도 둔탁한 노래를 계속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4.09.04 17:34

20여 가지 난치병 이겨낸 박중곤 저자, '스무 가지 난치병의 고개를 넘다' 출간

60년간 스무 가지 난치병에 시달리며, 수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겨온 박중곤 씨가 <스무 가지 난치병의 고개를 넘다>(꿈과희망)를 펴냈다. 저자인 박 씨는 1959년 생으로 그의 나이 세 살 무렵 소아마비를 시작으로 60여 년의 세월을 심근경색증, 뇌전증, 중증 천식 등 20여 가지 난치병과 싸워 이겨낸 사람이다. 그러한 그가 본인이 직접 겪은 20가지 이상의 난치병과 장애를 기적적으로 극복하고 건강한 모습을 되찾은 투병의 기록을 소개한다. 책은 ‘제1장 내 별에 떨어진 운석’, ‘제2장 시지프스의 바위’, ‘제3장 밥상을 약상(藥床)으로’, ‘제4장 진동요법과 자율치료법’, ‘제5장 원초적 질서 한가운데로’ 등 총 5장으로 구성돼, 인간 승리의 기록을 담고 있다. 박 씨는 머리말을 통해 “자신의 질병 경험을 드러내는 것은 치부를 노출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당초 이 책을 펴내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라며 “그런데 20가지 난치병 경험이 많은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위의 격려가 있었고, 그에 힘입어 이렇게 책을 출판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갖가지 난치병에서 탈출한 내 간난신고의 궤적이 이 땅의 환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바친다”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 출생인 박 씨는 현재 자신의 투병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난치병 환자의 치료를 돕고 있다. 저서로는 <기적의 마음 의술 자율치료법>, <난치병 다스리는 진동요법>, <녹색갈증>, <약이 되는 우리 음식 순례> 등이 있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4.09.04 17:3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아현 소설가-이보현 '오늘 또 미가옥'

아, 이 마음을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정확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사랑인 것이 분명하다. 난데없이 사랑 고백을 하는 대상은 콩나물이다. 나는 콩나물이 정말 좋다. 콩나물과 관련된 이야기도 좋아하고, 수없이 많은 콩나물을 이용한 레시피도 즐겨 따라 했다. 너무나 좋아해서 나와 콩나물을 다룬 이야기를 101가지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중에서도 상당수는 콩나물국밥과 관련된 이야기일 것이다. 해산물을 먹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면 전주를 방문하는 모든 손님에게 콩나물국밥을 선보였다. 누구 하나 실망하게 한 적 없이 늘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고, 콩나물국밥 가게에서라면 얼마든지 콩나물 이야기를 실컷 할 수 있어 즐거웠다. 이런 이야기만 대충 세더라도 50가지는 될 것이다. 무엇보다 전주 사람이라면 저마다 가슴에 품은 콩나물국밥 한 그릇은 가지고 있기 마련 아닌가. 그래서 막연하게 누군가는 콩나물을 지독하게 사랑한 이야기를 쓴 것이 있지 않을까 언제나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 그러다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다. 이보현의 『오늘 또 미가옥』이었다. 이 책은 저자가 오랫동안 콩나물국밥을 사랑하며 쓴 기록의 모음이다. 콩나물국밥에 대한 사랑은 나도 넘치게 갖고 있었기 때문에 반가운 마음 반, 기세등등한 마음 반을 가지고 책을 폈다. “미가옥의 콩나물국밥을 사랑한다. 너무 사랑해서 맨날 맨날 가고 싶다. 너무 사랑해서 매일 매일 먹고 싶다. 너무 사랑해서 계속 계속 이야기하고 싶다.” (『오늘 또 미가옥』 中) 책의 서문부터 저자의 두서없는 사랑 고백이 시작된다. 가장 사랑했던 가게가 사라졌기 때문에 이 책에 등장하는 것은 저자의 추억 속 공간이다. 그래서 그는 책 속에서 그곳을 미가옥 사랑점이라고 부른다. 엄청난 기세의 사랑 고백에 나는 초장부터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도 콩나물국밥을 사랑한다고 말해왔지만, 나의 사랑은 이 정도로 절절한 고백은 아니었던 것 같다. 비단 콩나물국밥을 향한 사랑 고백과 찬가로만 가득 찬 글은 아니다. 콩나물국밥 사랑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되고 확장된다. 엄마가 해주던 어릴 적 떡국 이야기, 사랑점의 사장님과 종업원 간의 미묘한 관계, 콩나물국밥을 좋아하지 않는 친구와의 일, 전주의 수많은 콩나물국밥 가게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콩나물국밥을 먹어보겠다는 포부까지. 저자의 말을 따라 콩나물국밥을 떠올리며 침을 삼키다 보면 어느새 그의 주변을 빼곡하게 둘러보게 된다. 사랑하는 일을 이렇게나 꼼꼼하고 치열하게 기록해 본 적 있는가 하면 쉽사리 대답하기 어렵다. ‘좋다’ ‘굉장하다’ 말만 늘어놓았을 뿐, 그것을 세계의 중심에 두고 주변을 둘러본 적은 없었다. “계속 콩나물국밥을 생각하고, 먹고, 이야기할 테니 ‘오늘은 어디에서 콩나물국밥을 먹을까’를 언젠가 쓰겠다고 다짐한다. 그때까지 세상의 콩나물국밥을 마음껏 사랑하겠다.” (『오늘 또 미가옥』 中) 나의 콩나물국밥 세계는 한없이 좁고 보수적이었다. 나만의 사랑점을 두고 다른 가게로 눈을 돌려볼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나의 세계를 넓혀볼 참이다. 이 세상의 모든 콩나물국밥을 먹기 위해서! 최아현 소설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아침대화>로 등단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4.09.04 17:24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동학농민혁명연구소,' 동학농민혁명 신국역총서 16' 발간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동학농민혁명연구소(소장 신영우)는 동학농민혁명 관련 일본 자료 '비서류찬 조선교섭자료(祕書類纂朝鮮交涉資料)', '일청전쟁 기간의 제국 주차부대의 행동(日淸戰役間ニ於ケル帝國駐箚部隊ノ行動)', '내란실기 조선사건(內亂實記朝鮮事件)', '조선폭동실기(朝鮮暴動實記)', '동아선각지사기전(東亞先覺志士記傳)'을 번역하고 이를 입력문과 함께 엮어 '동학농민혁명 신국역총서 16'을 발간했다. 동학농민혁명연구소에 따르면 이 자료들에는 1894년 당시 일본의 조선정책과 일본군의 한반도 내에서의 활동은 물론 이에 저항한 동학농민군의 봉기와 활동상이 일본의 시각에서 기록되어 있다. 특히 이 자료들에서 일본 정부뿐만 아니라 일본 군부와 민간, 재야에서도 동학농민군의 활동에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비서류찬 조선교섭자료'는 1894년 내각 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의 조선 교섭과 관련한 비망록이며, '일청전쟁 기간의 제국 주차부대의 행동'은 조선주차군사령부가 작성한 '조선주차군역사'에 수록된 조선주차군 창설 이전 일본군이 청일전쟁 기간 조선 내에서 활동한 기록이다. '내란실기 조선 사건'과 '조선폭동실기'는 1894년 전후 시기 수많은 일본 내 상업출판사에서 간행된 청일전쟁과 동학농민혁명 관련 서적 중 동학농민군 활동 내용을 수록한 자료이다. '동아선각지사기전'은 일본 낭인 그룹인 흑룡회에서 발간한 조선 및 대륙 낭인들의 활동 내용 중 동학농민군과 관련한 부분만을 발췌한 것이다. 신영우 소장은 “동학농민혁명 및 청일전쟁 130주년을 맞이하여 추진한 동학농민혁명 관련 일본 자료의 번역 및 발간을 통해 동학농민혁명 및 청일전쟁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동학농민혁명 신국역총서 16'은 ‘동학농민혁명 사료아카이브(www.e-donghak.or.kr)’에서 누구나 볼 수 있다.

  • 문학·출판
  • 임장훈
  • 2024.09.04 16:24

초가을 전북 미술 전시회로 물들다

초가을 전국이 거대한 미술 물결로 뒤덮였다. 부산과 광주에서 열리는 비엔날레와 세계적 규모의 미술품 장터 프리즈 등 전국 곳곳에서 대형 전시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북에서도 관람객들의 오감을 만족시킬 미술전시회가 잇달아 열리며 짜릿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유휴열 미술관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는 3인의 시선’ 전주, 제주, 서울, 용인 등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남성희, 이효문, 이홍규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유휴열 미술관은 29일까지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는 3인의 시선’전시회를 연다. 남성희·이홍규 작가는 산과 들녘 등 자연의 모습을, 이효문 작가는 인간의 원시적 생명력을 화면에 담아냈다. 남 작가는 산, 들녘, 과수원 등 아름답고 평온한 풍경을 바탕에 황토를 바르고 그 위에 색채가 스며드는 독특한 방식으로 구현한다. 종전의 채색화가 갖는 표현의 한계를 넘어서 종이 위에 번져나가는 풍경과 작은집들은 마치 동화 속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작가는 자연의 모습을 절제된 빛과 색채로 표현해 자유롭고 감각적인 작품세계를 구현했다. 일상의 풍경과 이야기를 흑백의 단색조로 풀어낸 작품은 뚜렷한 입체감으로 강한 인상을 풍긴다. 평생 주제인 인간의 원시적 생명력을 나무로 표현한 이 작가는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작품을 빚어냈다. 복잡하고 화려함 대신 재료 본연의 질감을 그대로 살려 절제미가 돋보인다. △기린미술관, 천칠봉·천광호 부자 초대전 천칠봉·천광호 부자 초대전이 9월 13일부터 10월 15일까지 전주 기린미술관에서 열린다. 40년 전 작고한 천칠봉 화가의 작품 40점과 그의 아들이자 민중미술가로 활동하는 천광호 작가 작품 30점이 전시된다. 전주 출생인 천칠봉 화가는 민족기록화 다수를 제작했고 프랑스 스케치 여행을 하는 등 일생을 구상화가로 지냈다. 작품 대부분이 한국의 설경산수를 그린 풍경화로 자연에 대한 미화 없이 존재 그대로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천광호 작가는 미술의 사회적 역할과 시대정신에 주목해 공공미술, 조형물 제작 등의 작품 활동을 펼쳐왔다. △사진인문연구회 백인백색, ‘산천초목, 경계를 넘다’ 사진인문연구회 백인백색에서 열한 번째 기획시리즈 ‘산천초목, 경계를 넘다’ 기획전을 5일부터 15일까지 사진공간 눈에서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동안 풍경사진의 주요 소재였던 산(山) 천(川) 목(木)을 중심으로 찍은 풍경 사진을 전시하지 않는다. 기존 예술 작품의 형식을 완전히 탈피한 작품을 초대해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고자 했다. 전시에 참여한 곽풍영과 허성철 작가는 매체를 결합해 미디어 매체의 특성을 극대화했다. 곽진영 이선종 작가는 소재의 확장성을 꾀해 심도 깊고 입체적인 작품을 보여준다. 두 작가는 풍경 사진의 소재를 자연 생태의 의미로 넓혀 자연의 의미와 사진 매체의 복합적 성질을 포착해 낸다. 차경희 김미경 작가는 짧은 시와 영상 장르의 혼성을 시도해 인간의 내면과 교감 관계를 유추한다. 기획전시 '산천초목, 경계를 넘다' 작가와의 대화는 7일 오후 4시 사진공간 눈에서 열린다. 또 전시 연계 문화예술 아카데미 '스크린 사회에서의 사진과 영화'는 10일 오전 10시에 같은 공간에서 진행된다. 임민수 사진가의 강의로 진행되며 선착순 20명을 대상으로 한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4.09.03 17:29

제12회 중산문학상에 송희 시인 선정

제12회 중산문학상 수상자로 송희 시인(67)이 선정됐다. 중산문학상운영위원회(위원장 이재숙)는 송희 시인을 올해 중산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3일 밝혔다. 시상식은 오는 10월 9일 오후 5시 바울센터 그레이스 홀에서 열린다. 중산문학상은 한국문학 융성을 위해 노력해 온 문인을 대상으로 작품성, 한국문학 발전 등에 기여한 문인을 찾아 수여하는 상이다. 지난 2012년 중산문학상을 제정한 고 이운룡 박사의 높은 뜻을 기리고 한국문학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11년간 수상자를 꾸준히 선정해왔다. 심사위원을 맡은 김남곤·소재호 시인은 “중산 문학상은 자연과 인간의 존엄성을 문학 작품으로 구현, 문학 사회적 위상, 작품성,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찾아서 장르 관계없이 모든 문인을 대상으로 수상자를 선정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올해 수상자로 선정된 송희 시인에 대해 "그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깊은 지성미와 명상적 안정감, 친화력은 사람들의 문학적 욕구와 심리적 안정을 충족시키고 문학사적으로도 활발한 참여와 봉사로 큰 족적을 남긴 작가"라고 덧붙였다. 제12회 중산문학상 수상자인 송희 시인은 2004년 전북시인상, 2009년 전북문학상, 2023년 전주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시집 <탱가시로 묻다> <설레인다 나는, 썩음에 대해> <고래심을 당겨봤니>, 명상집 <사랑한다 아가야>, 명상에세이 <내 마음과 연애하> 등이 있다. 시인은 전북시인협회장, 전북문인협 부회장, 전북문관광재단 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전북 불교문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4.09.03 17:28

국립전주박물관, 스물여덟 번째 '가을날의 뜨락음악회'

국립전주박물관(관장 박경도)이 7일 오후 7시 박물관 옥외뜨락에서 스물여덟 번째 '가을날의 뜨락음악회'를 연다. 이번 음악회는 클래식기타 연주자 김우재와 바이올린 연주자 백사론이 함께하는 듀오와 다섯 연주자가 각기 다른 목관악기로 만난 룩스 목관 앙상블 등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연주자들이 무대를 채운다. 깊은 음색으로 청중을 사로잡는 김우재·백사론 듀오는 슈베르트, 파가니니, 피아졸라 등 클래식을 대표하는 작곡가들의 작품을 준비했다. 룩스 목관앙상블은 오보에 연주자 손연지, 플루트 김정현, 바순 이준철, 호른 최하영, 클라리넷 김종철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여름의 끝자락과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연주곡을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아름다운 화음과 목관 악기만의 선율을 감상할 수 있도록 춤곡과 영화음악 위주의 곡들을 연주할 계획이다. 국립전주박물관과 사회적기업 마당이 공동으로 기획한 '가을날의 뜨락음악회'는 시민과 함께하는 공연, 일상 속에서 즐기는 공연, 지역문화에 기반을 둔 공연을 지향하고 있다. 평소 접하기 어려운 국악앙상블과 클래식, 재즈, 현대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들을 선보여 문화 향유 기회를 넓히고 있다. 특히 시민들의 후원금을 통해 이웃과 함께 만드는 음악회로서 더욱 의미가 크다. 초가을 낭만적인 뜨락의 정취와 음악이 함께하는 '가을날의 뜨락음악회'는 무료로 진행되며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다.

  • 문화일반
  • 박은
  • 2024.09.03 17:28

선선한 가을 저녁 즐기는 신명나는 우리가락… 전주대사습청 수요상설공연 시작

우리 전통예술의 역사와 명맥을 잇는 전주대사습청이 천고마비의 계절을 맞아 신명 나는 전통예술공연 축제를 펼친다. 전주대사습청이 4일부터 11월 1일까지 전국에서 활동하는 전통예술인과 합심해 ‘2024 수요상설공연’ 하반기 공연을 화려하게 꾸민다. 앞서 전주대사습청은 지난 3월부터 수요상설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총 7주 동안 진행될 하반기 공연은 각기 다른 주제로 매주 수요일 오후 5시 전주대사습청 야외무대와 만악당에서 펼쳐진다. 먼저 4일 수요상설 하반기 공연의 첫 포문을 열 공연은 국립민속국악원 창극단 단원 김정훈의 조상현바디 강산제 심청가 무대다. 이날 김 명창은 황후가 된 심청이 부친에게 편지를 쓰는 추월만정 대목부터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을 통해, 절절한 성음과 터질 듯한 설움의 감정을 그려낼 예정이다. 11일에는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관현악단 조인경 단원이 무대에 올라 유태겸·김정훈·소리꾼 등과 조정가연(祚打歌宴)을 선보인다. 이어 본격적인 가을을 알리는 10월과 11월 프로그램에서는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호남산조춤 이수자 정도겸의 추화지무(10월 2일), 제47회 전주대사습놀이전국대회 장원 수상자 이우영의 무궁무진(10월 23일), 국가무형유산 승무 이수자 민성희 연 무용단의 무담(10월 30일),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호남살풀이 이수자 강혜숙의 정중동의 미(11월 1일), 등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는 전통예술인이 춤사위를 통해 우리 전통 ‘춤’에 집중한다. 더불어 공모를 통해 선정된 21개 예술단체가 매주 토요일 상설공연을 선보이고, 전주대사습놀이 장원자들의 무대인 ‘장원자 백일장’은 10월 15일, ‘동초소리 ‘뎐’은 10월 18일 예정됐다. 유영수 전주대사습청 관장은 “대한민국 전통문화 중심도시 전주의 문화브랜드로서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으로서 세계 속의 전주 문화를 알리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전주대사습청은 원형 그대로의 전통예술이 후세까지 그 명맥을 이어 나가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4.09.03 17:27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