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2-22 18:35 (Mo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새벽메아리

[새벽메아리] '핵폐기장과 국민참여'

지난 9월 24일 박주현 국민참여수석은 전북의 시민단체와의 간담회를 개최했다. 시민사회단체와 직능단체 현장탐방시리즈의 일환으로 실시되는 간담회는 전북지역을 처음 방문해 현장의 목소리청취, 제안수렴, 국정에 대한 공유를 위해 마련한 자리라고 소개했다. 박주현 수석은 고향이 전북인 만큼 전북의 사안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고 국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했으며 자신도 시민운동가 출신임을 강조하며 많은 제안을 요구했다.하지만 전북에는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있지만 이날 참석한 시민단체와 시민운동가들은 몇몇 단체에 국한되어 있어 시민단체와 간담회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코드가 맞는 사람'만을 초대해서인지 아니면 노무현 정부에 대한 단체들의 반감이 작용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참여정부에 대한 곱지 않은 기류는 감지할 수 있었다.이날 간담회의 주요 의제는 역시 가장 큰 현안인 핵폐기장 문제였다. 벼르기나 한 것처럼 60여분의 시간으로 제한된 간담회 내내 부안 핵폐기장의 부지선정과정에서 비민주성, 군민들에 대한 공권력의 탄압과정, 부안 군민의 요구사항을 전달 할 때마다 청문회를 연상케 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박주현 수석은 새만금과 핵폐기장의 문제를 연계시키면서 전북도민의 명분과 실리가 차이가 있어 혼란스럽다고 토로했다. 핵폐기장 문제에 대한 어떠한 원칙도 해결방안도 제시하지 않고 다음 일정 관계로 자리를 떴다.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참석했지만 참여수석의 답변과 태도를 보면서 더욱 절망감을 안고 간다'며 긴 한숨을 내쉬는 고창의 한 활동가의 모습은 이날 간담회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이날 제5차 참여정부 인사혁신 지역순회 토론회를 전후로 한 기자간담회에서 박주현 수석은 핵폐기장 문제를 청와대가 직접 챙기고 주민과의 직접적인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참여기획비서관을 현지에 수시로 보내 핵반대대책위원회와 주민들을 접촉해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일말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마지막으로 '안전성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밝힌 대목은 여전히 핵폐기장 추진을 강행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는 부안 핵폐기장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핵폐기장 문제의 해결을 어둡게 하는 발언이다.당일 녹색연합과 한나라당 김성조 국회의원은 공동보도자료를 통해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지난해 KAIST 등에 사용후 핵연료의 저장방식에 관한 연구용역을 주었다가 연구결과를 조작 은폐한 사실을 밝혔다. 또한 한수원의 구미에 맞게 조작할 것을 용역을 맡은 연구진에게 종용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한수원은 이런 자료를 5, 6월 경 청와대에도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7월 산자부가 부지를 선정하고 청와대가 이를 승인하는 과정에서 정보왜곡이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국민참여수석실 소개자료의 창구의 의의로 '부당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별달리 방법이 없어서 그냥 참고 넘어갔던 문제들을 국민이 직접 참여해서 해결해나간다는 의미'라고 밝히고 있다. 부안의 핵폐기장 부지선정과정은 지역주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한수원의 연출과 산자부 감독, 청와대의 후원으로 일방적으로 추진되었다. 이보다 부당하고 불합리한 경우가 어디 있는가? 군민들에게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촛불을 들고 부당성을 주장하고 호소할 뿐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인 군민이 직접 참여해서 해결해 나가기 위해 60일이 넘는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놓고 볼 때 청와대가 대화를 통해 핵폐기장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핵반대대책위원회가 제시한 해결방안을 겸허이 수용하는 자세를 갖아야 할 것이다. 이 일에 국민참여수석실이 진정한 자기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염경형(전주시민회 사무국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3.09.30 23:02

[새벽메아리] 기부문화 정착을 위하여

매미가 휩쓸고 간 흔적의 상처가 너무 깊다.실의에 빠진 이재민들을 일으켜 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기부문화에 대한 생각이 난다.최근 보도에 의하면 각계각층의 성금이 취합되는 '재해구호협회'에 사흘만에 415억여원의 성금이 모아졌다고한다. 이것은 작년 태풍 루사때의 두배가 넘는 금액이라고한다.우리 나라 사람들은 정이 많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천재지변의 재난을 당하거나,강도 질병,빈핍의 경우를 당했을때도 마을 부락 단위의 약자를 돕는 환난상휼 정신의 상호부조활동이 있었다.조선시대의 품앗이,두레,계,향약등의 마을 부락단위의 부조활동이 우리 나라의 기부문화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조선시대의 향약은 법으로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치규약이기때문에 자율성에 의존한다.그래서 더 값진 것이라 생각된다.우리의 기부활동(Philanthropy)을 건강하게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기부문화의 꽃을 피운 미국의 경우를 참고해야할 것이다. 미국에서 기부문화가 정착될 수 있었던 것은 카네기,록펠러,포드와 같은 기업인이 자신의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공익활동에 앞장섰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뒤를 이어 빌게이츠,조지소로우,웨런버핏과 그 뒤의 실리콘 벨리에서 성공한20-30대의 벤처기업가들이 바톤을 잇는 기부체계의 족보가 뚜렷한 큰 기부자들이다. 최근 록펠러재단에서는 '기부활동에 대한 위크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기부활동 경험이 풍부한 선배기업가가 IT와 금융벤처부분에서 성공한 실리콘벨리의 젊은 기업가들을 대상으로 기부활동을 학습시키는 프로그램이다. 학습에 의한 동기유발 발상도 좋지만 제도적으로 개인은 50%,기업은 10%라는 큰 세제혜택과 같은 정책은 기부활동을 활성화시키는 계기도 될 것이다.현재 미국에는 수십만개의 NGO와 4만여개의 재단이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의 운영은 개인 기부금증여자들이 기부함으로써 이루어진다.'자선연보'에 따르면 기부자들이 인터넷을통해 기부한 액수가 2003년 현재 9천6백만달러 이상이라고 한다.우리 나라에서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아름다운재단,한국여성재단,아이들과미래등의 전문적 모금기관이 설립 되었다.이러한 기관의 보고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아직은 천재지변의 재난이라든가 불우이웃을 도울때만 기부하는 비정기적 기부자들이 많다고 한다. 앞으로는 평소에 정기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기부하는 풍토가 조성되야할 것이다. 전문 모금기관에서는 기부문화 정착을 위해 0.1%월급나누기, 유산1%나누기, 희망의 동전모으기, e-mail뱅킹기부, 헨드폰기부, ARS등 일상에서 온 국민이 쉽게 기부에 접근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시행하고 있음은 반가운 일이다.건전한 기부문화 정착을 위해서는 위와 같은 전문모금기관들의 활동이 투명하게 운영되고 시스템 운영의 정보를 기부자들에게 다시 피드백 시켜줘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나의 기부가 제대로 쓰여졌다는 것을 믿고 지속적으로 기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노블레스 오블레제(Noblesse Oblige)라는 프랑스 격언이 있다. 기부는 지도자나 부자들만 하는 것이 아니지만 사회지도층의 명예를 지닌자들이 도덕적 의무나 책임을 더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개인과 기업 기부자들의 공덕을 사회적으로 드러내주는 것도 세제혜택과 같은 제도도 기부문화를 정착시키는 촉진제가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정신과 물질과 육신으로 이웃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새겨봤으면 한다. You can change! We can cange!/문영소(중앙대 강사)

  • 오피니언
  • 기타
  • 2003.09.23 23:02

[새벽메아리] 해외이민, 꼼꼼히 따져보자

요즘 유행한다는 사오정과 오륙도란 우스갯소리의 뜻을 알고 나서 고개를 끄덕인 사람이 많을 것이다. '45세면 정년이고, 56세까지 직장에 다니고 있으면 도둑놈'이라는 사회적 추세를 빗댄 말이다.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문제의 심각성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통계에 의하면, 지난 20세기에 인간의 수명은 30년 넘게 증가했다고 한다. 그것은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위생환경이 개선됨에 따라 유아기와 청년기의 사망률이 극적으로 낮아지고, 환자들의 생존율은 크게 높아진데 기인한다.요즘, 환갑(60세)잔치는 낯뜨거워 못하고 대신 부부여행이나, 조촐한 가족모임으로 대신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늘어난 수명 때문이다.그러다 보니, 50대는 물론이고, 60대까지도 정상적인 근로가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한참 일할 40대에 직장에서 등을 떠밀린 사람들은 그 다음부터는 무엇을 해야할지 앞이 깜깜할 것이다.성공의 기회도 부의 차이에 따라최근 여론 조사를 보면, 우리 국민들의 한달 평균 생활비는 167만원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이중 자녀들의 사교육비에 들어가는 돈은 평균 60만 5천 원으로 가계생활비의 36.2%나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공교육이 무너진 상태에서는 빈부의 격차에 따라 사교육비 지출의 격차도 커지고, 이것이 실력의 격차로 연결된다는데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성공의 기회도 이제는 부의 다과(多寡)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얼마 전, 한 TV홈쇼핑에서는 이례적으로 [캐나다 이민상품]을 팔았다. 두 번의 판매를 통해 놀랍게도 3,000여 명이 신청했고, 판매액만도 600억 원이나 되어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런데 문제는 신청자 중에서 고학력의 30대 이민 신청자가 절반을 넘는다는데 있다. 왜 이 땅에 젊은 30대들이 조국을 등지고 해외이민을 선택하는 것일까?그들은 필자가 앞에서 거론한 '극심한 경쟁에 따른 불확실한 미래, 가계빈곤을 부르는 사교육비의 부담, 나날이 폭등을 거듭하는 집값, 부정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국내 정치상황' 등을 중요한 이유로 들었다.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꼭 한번 집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과연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캐나다란 나라가 정말로 누구에게나 살기 좋고 행복을 보장하는 파라다이스와 같은 곳일까?역 이민 숫자 점차 늘어나외교통상부 통계에 따르면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가 현지 적응에 실패하고, 한국으로 되돌아온 역 이민자의 숫자가 2000년 9,295명, 2001년 5,696명, 2002년에는 5,923명이나 된다고 한다.또한 인터넷 역 이민 관련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캐나다 이민의 불합리성과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글들이 넘쳐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을 종합해 보면, 캐나다는 인구가 적고, 실업률이 높은데다(7.7%), 스몰 비즈니스가 발달되어 있지 않아 생업터전 마련이 어렵다는 것이다.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대학 내에 어학교육원에는 12명의 영어권 5개국 출신 외국인 강사가 있는데, 그중 6명이 캐나다에서 온 젊은이들이다. 그들에게 한국에 온 이유를 물으면 대답은 거의 비슷하다. '캐나다에선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사정이 이러한데도 최근의 우리 국민들의 해외이민 열풍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그것은 지난 6일부터 7일까지 COEX에서 열린 해외이민박람회장에 1만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그렇다면 정부는 이 땅을 떠나고 싶다는 집단적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사람들을 그대로 두고만 봐야 하는 것일까?아니다. 요즘처럼 모든 계층마다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리더십이 상실된 듯한 혼란상이 계속된다면 이민 열기는 더욱 거세어질 것이다.우리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안정된 삶이고, 국가정책에서 가장 우선순위를 둬야 할 것도 국민의 생이다.정부는 하루빨리 국가시스템을 확고하게 바로잡아 불안하고 불확실한 나라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을 떠나려하는 사람들도 조금만 더 냉정을 되찾고 꼼꼼히 따져보도록 하자.해외 이민, 충동만으로 선택해서는 안될 일이다.

  • 오피니언
  • 기타
  • 2003.09.16 23:02

[새벽메아리] 문화의 힘

비록 암흑과 공포의 터널이 아니드래도 만약 우리 인류에게 문화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들의 삶은 어떤 현장이 되었을까? 무릇 다른 동물 동물들의 세계가 궁금하게 비유되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정말 저주스럽고 초조와 불안 속에 더욱이나 밤이 되면 얼마나 두려워 했을까하는 비약된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 오르는 상상의 나래를 펴 보이다가 이내 가슴이 터져 날것만 같아 고개를 젓고 말 것이다.그렇다면 문화란 무엇인가. 인간을 특징짓는 경우가 여러 가지 있지만 만물의 영장임을 일깨워주는 척도로서 가장 근본을 이루는 게 문화인 것이다.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먹고사는 차원에 정체되지 않고 정신적인 계발을 추구하는 존재로서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영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는 그의 저서「원시문화」에서 문화는 지식?신앙?예술?도덕?법률?관습 등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라고 정의하고 그렇게 규정된 문화는 인간에 의해서만 소유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문화를 구성하는 요소에는 언어?관념?신앙?관습?규범?제도?기술?예술?의례 등이 있다고 하였다. 보편적으로 생각할 때 문화의 존재와 그 활용은 인간고유의 능력 다시 말해 상징적 사고의 능력에서 기인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학술적인 차원을 비켜 현실적으로 일상적인 의미부여 속의 문화의 구조를 보면 수직적으로는 귀족문화와 서민문화 그리고 엘리트문화와 대중문화로 대칭 되고 수평적으로는 전통문화와 외래문화 그리고 지역문화와 중앙문화로 대칭 해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문화에 대한 개념도 협의의 예술 및 정신적 산물에서부터 광의의 상징체계 혹은 생활양식으로 인식되고 문화에 대한 새로운 징후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문화는 세태의 변화에 따라 전래의 고정관념을 깨고 배부른 자와 유한계급의 전유물이 아니라 생활 그 자체가 되어 생활문화 화되어가고 있다.요즈음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가 무너지고 장르간에 구분이 애매 모호해지면서 서로 다른 문화가 뒤섞여 새로운 문화가 창출되고 있는 판국이다.눈을 뜨고 둘러보면 과시문화의 질풍노도의 시대라고 할 만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나타나는 퓨전문화가 대중적 관심을 끌고있는 가운데 마치 이율배반적인 것처럼 보였던 문화와 경제의 공존시대가 열려지고 있는 것이다.특히 요새 문화의 진전은 우리들이 기본생계에 찌들려 한눈을 팔고 있는 사이에 훌쩍 뛰어 넘어와 경제학에서 말하는 3대요소인 토지?노동?자본이상의 주요한 자본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에 대한 여태까지의 원칙론 적인 관념을 깨끗이 뒤엎고 있는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다.우리가 옛것을 알려고 하는 것은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새것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그동안 우리는 인지가 깨어 세상이 열리고 생활이 보다 편리하게 되는 일을 문화라 믿고 거기엔 진리가 열리고 발전향상 하려는 인간의 정신적 활동이 또한 참된 문화임을 의식하면서 안일하게 명실상부한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중앙과 지방의 문화격차가 적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등 선진국들은 모처럼 만에 다듬어진 우리들의 값진 의욕을 훨씬 앞질러가서 문화와 관광이 국가경쟁력의 원천이 됨을 꽤나 일찍이 간파하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산업으로 규정짓고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그들은 이미 문화의 힘을 통해서 국가경영의 새로운 지표를 구축하고 모두가 함께 나누는 따뜻한 문화시대를 열어 가는 것을 국가정책의 우선순위로 꼽아놓고 있는 것이다.문화에 대한 의식과 투자가 없는 곳에서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곳이 결코 아니라는 문화교훈이 있다. 제아무리 편리한 생활여건이 갖추워 졌다해도 문화가 없다면 무의미한 삶이 아닐 수 없다.우리 전북은 타지역에 비해 남다른 역사와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유망한 문화산업의 원천을 다듬어 내기엔 너무도 옹색한 편이다.도민전체가 유기적인 혼연일체가 되어 자발적으로 연대하는 응집력이 너무도 빈약한 것이다. 장소판촉론이란 지역발전의 최신이론에 따르면 관계자산이라 하지 않는가 이는 조직적인 제도 자산과는 대조가 되는바 이를테면 옆집에 불이 난 경우 비상연락망이나 동장이 방송을 해서 불을 끄러 가는 경우는 조직화된 제도자산에 의한 행동이고 그렇지 않고 이웃이기에 자발적으로 불을 끄러 가는 경우는 비공식적인 관계자산의 덕분인 것이다. 지역이 제대로 발전하려면 돈으로 거래되지 않는 상호의존성이 특징인 관계자산의 넉넉함이 우선되어야 한다. 같은 전라도이지만 우리전북은 남도에 비할 바가 못된다. 결국 문제는 사람이고 그 해법도 사람이 열쇠다. 관계자산을 만드는 것도 사람의 태도와 능력에 달렸다. 거도적인 캠페인이 우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창문화원장 이 기 화

  • 오피니언
  • 기타
  • 2003.09.09 23:02

[새벽메아리] 전주시 용적률 완화 문제있다.

전주시 일반주거지역 용적률 완화와 강화를 놓고 전주시의회와 전주시가 대립하고 있다. 몇몇 시민단체는 완화에 반대입장을 갖고 본회의가 열리는 전주시의회에 항의 시위를 하고 상임위원회을 방문해 완화결정에 대한 취소를 요청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북의 언론도 입장이 서로 분분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되고 있는 용적률은 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물 연면적의 비율을 말한다. 만약 100평의 대지에 용적률이 200%의 3층 건물을 짓는다고 가정하면 1,2,3층의 바닥면적을 합친 건물 연면적은 200평까지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용적률 또한 건축법에서 정한 최대한도 범위 내에서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로 세부기준을 정하고 있으며 전주시의 경우 '도시계획조례'에 명시하고 있다. 전주시는 쾌적한 생활환경 유지와 무분별한 난개발을 방지하기 위해 기존 용적률을 유지하고 공동주택관련 재건축시 용적률에 대하여 부분적 완화방향으로 도시계획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전주시의회 도시건설위원회가 사유재산권 침해와 지역발전 역행, 타도시와 형평성 등을 이유로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50%로 완화하는 내용의 수정안을 12명 의원이 만장일치로 결정해 본회에 상정하는 등 독자적인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상임위원회에서 통과된 안건이 본회를 통과하지 못한 사례가 없기 때문에 수정안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전주시의회의 결정이 다양한 비판을 받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물론 우리사회에서 사유재산이 부당하게 침해받아서는 안될 것이다. 소수자라도 이들의 이익을 보장하려는 사회가 건강한 시민사회일 것이다. 하지만 공중의 이익과 사유재산권행사가 충돌되었을 때 명백한 부당한 침해가 아니라면 공중의 이익이 우선한다는 사례들은 많이 찾아 볼 수 있다.전주시 일반주거지역의 용적률은 전주시와 규모가 유사한 청주, 춘천, 창원시와 비교하면 20~70% 정도 높은 실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수치상의 비교가 용적률을 완화해야 할 정당한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도시기반시설과 자연환경, 교통, 인구와 주택밀도 등 도시환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는 용적률완화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전주시의 경우 현재의 용적률로도 기반시설이 뒤따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한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해 할 것이다. 특히 전주시의회가 비판을 넘어 비난을 받는 이유는 시민들의 폭넓은 의견 수렴 절차를 무시하고 특정집단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대변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의견수렴 방법에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방법에서부터 공청회를 비롯한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전문가와 시민단체, 지역주민, 행정과 관련업계가 두루 참석하는 토론회를 통해 여론을 수렴하고 의사결정에 반영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전주시의회가 주최하고 도시건설위원회가 주관한 '건폐율 및 용적율 적용 시민대토론회'에는 건축협회를 비롯한 건설관련업자의 요구를 들어줬을 뿐 폭넓은 의견 수렴의 절차로서 토론회가 아니었다. 건축관련업자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장이었고 개발지향적 조례제정을 위한 명분 쌓기용 토론회였던 것이다. 또한 전주시의회의는 도시계획조례의 기본방향에 위배되는 결정으로 조례를 제정하는 의회 스스로가 조례제정의 이유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도시계획조례의 기본방향은 조례 제2조에 '도시기능간의 조화, 환경 친화적 도시 개발, 쾌적한 생활환경조성, 도시산업경제 활성화 및 도시미관 증진을 지향한다'로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도시 전체간의 기능과 쾌적한 생활환경 조성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계획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개발지향적으로 개정해 오히려 생활환경을 악화시킨다면 근본 방향을 훼손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번 개정에서 주거지역 70m 밖에 있는 상업지역에 술집과 같은 위락시설까지 들어오게 하고 있어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이번 전주시의회의 개발지향적 조례 개정은 이미 예측할 수 있었다. 상반기 그린벨트 해제를 위해 삭발과 결의문을 채택하였고, 보전가치가 높은 자연경관을 보전하는 조례제정에 두 번씩 부결시키는 현 전주시의회의의 행태는 이번 개정의 서막이었다. 이번 결정은 최근의 국토정책이 선(先)계획, 후(後)개발을 지향하고 체계적인 개발을 유도하고 있다는 큰 흐름에도 뒤처지는 결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따라서 전주시의회 결정은 재검토되어야 하며 이제라도 각계전문가와 시민단체, 시민들의 종합적인 의견을 청취하고 중장기적인 도시개발의 계획을 수립하여 체계적인 개발을 통해 쾌적한 생활환경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염경형(전주시민회 사무국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3.09.02 23:02

[새벽메아리] 느슨해진 마음 다시 조여잡자

여름 끝이다.늦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고 집중 폭우는 우리 인간에게 자연.환경에 대한 경외심이 생기게끔 경고하는 듯한 기분이 들게한다.개인적인 일로 베이징에 4박5일간 다녀왔다. 한국기업의 지사장을 만났는데 모두 한국 노조원들의 파업을 우려하고 중국인을 볼 면목이 없다는 것이다.현대자동차의 베이징공장에서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대비하여 하루에 엄청난 수량의 소나타가 생산되고 있는데 지금 한국 본사에서 노조원의 파업으로 인해 부품이 오지 않아 생산라인이 쉬고 있다는 것이다. 몇 기업의 노조원들이야 속깊은 사정이 있어 파업을 한다고 하겠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럴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 한국 사람들 정신차려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혹자는 우리 나라의 지금 경제 상황이 IMF시기보다 더 불황으로 체감한다고 말한다.이럴때일수록 나개인보다 지역과 국가입장으로 생각하여 조금씩 양보해야할 것이다. 베이징의 중국인민들은 일자리를 찾느라 분주하다. 어느 경제무역대학4학년 여학생은 "한국도 대학 졸업후 취업이 힘들다고 들었는데 우리 중국도 마찬가지다고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걱정이 태산인 것을 듣고 왔다.최근 우리 나라도 대학 휴학생이 55만4천명이란다.10명당 3명꼴이 휴학을 한 상태이다. 아마도 대학 졸업후 불확실한 진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래도 신분이 확실한 대학생으로서의 적을 걸어두고 있다고 보는 해석이 적절할 것이다.그런점에서 본다면 직장을 가진 사람들은 분명 축복 받은자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주5일제 근무에 대해 찬성과 반대의견이 팽팽하지만 아마도 주5일제 근무는 증가될 것이다.이에따라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휴일,여가 활용 방안이 모색되야 할 것이다. 휴가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해야하고 여가 프로그램개발이 필요하다.최근 신한은행이 주5일제 시행1년을 맞이하여 직원4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것을 보면 가족과함께 여행과 휴식을 취한 경우가 반절이 넘고 25%정도는 자기계발을 위해 시간을 투자한것으로 답했다. 또한 늘어난 여가 휴일로 인해 70%이상이 소비지출이 늘었다고 하는데 가정경제의 올바른 운용을 위해서도 계획된 여가문화가 형성되야 할 것이다.광고카피에서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것을 봤다. 사람들은 어디로 떠나거나 아니면 집에 있으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휴식을 치루고 다시 일터로 되돌아왔다.휴가는 분명 열심히 일한 사람들의 에너지 재충전의 의미가 있을진데 쉬고나니 더욱 피곤해지는 것은 웬 연고인가? 우리는 휴가를 통해 개인의 건강,체력증진을 도모해야하고 심리적 정서적 안정을 꾀해야하고 원활한 인간관계 기법을 체득하고 다양한 생활양식에 적응하고 삶의 질을 풍요롭게하는 방법을 배워야한다.그런데 아마도 휴가를 보내는 기술이 부족해서 더 피곤함을 느꼈을 것이다.휴가의 효용성은 개인적 의의 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사회 전체의 질적향상에도 기여를 해야할 것이다. 휴가를 통해 국민 전체의 건강과 체력이 증진되고 자연과의 접촉을 통해 환경개선을 도모하고 여가산업을 통해 경제활동영역을 확충하고 신체장애자나 생활어르신들의 좌절된 의욕을 회복시켜주고 심리적 영양소를 공급하는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사회복지를 실현해야할 것이다.우리는 일할때와 쉬고 놀때의 속도조절을 해야한다. 외부의 변화 감지력이 필요하고 대처하는데 속도의 느림과 빠름이 필요하다. 이제는 느슨해진 몸과 마음을 다시 조여잡아야할 때이다.어느 우리도 열심히 일할때 일하고 쉴때도 열심히 쉴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하는 법을 체득하고,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조금씩 양보하며 나누는 마음을 가져봤으면한다.

  • 오피니언
  • 기타
  • 2003.08.26 23:02

[새벽메아리] 죽을 결심으로 살려고 노력하면…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이곳 저곳에서 끔찍한 자살 소식이 꼬리를 물고 들려온다.재벌 총수, 학생, 연예인, 직장인, 주부 등 계층도 다양하다.어찌 보면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이 기막힌 소식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자살이란 희망을 상실한 인간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길이다. 그런데, 이것이 늘어나고 있다는 말은 다시 말해 우리 사회가 점점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하루에 36명이나 목숨 끊어2001년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자그마치 1만 2,277명이었고, 지난 해에는 1만 3,055명이라고 한다. 이것은 하루에 평균 36명, 1시간당 1.5명의 우리 이웃들이 이 극단적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올해도 자살자는 지난 7월말까지 벌써 6천 명이 넘었다는 집계가 나와 있다. 더구나 얼마 전 30대 주부가 두 딸과 아들을 아파트에서 떨어뜨린 후 자신도 몸을 던져 자살한 소식은 우리 모두를 전율케 하고도 남음이 있다.그런데, 보통 자살 기도자는 자살자의 7~10배라는 연구발표가 있다. 그렇다면 1년에 최소 9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살을 기도하고 있다는 셈이 된다.여기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자.사회학자들은 자살을 '이타적 자살'과 '이기적 자살',그리고 일종의 일탈행위에 속하는 '아노미적 자살'로 분류한다.'프로이드'같은 심리학자는 자살을 '본능적인 충동'으로 설명했고, 생물학자들은 '유전적 요인'이라 주장하기도 한다.우리 나라의 경우, 자살의 원인으로는 애정문제, 경제문제, 복잡한 가정문제, 건강문제, 능력부족에 대한 절망감이나 죄책감등의 개인문제등이 주류를 이뤄 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빈곤을 이유로한 자살이 늘어나고 있어 점차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의 문제로 번지는 것 같아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자중자애가 효도의 근본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아쉽게도 근본적으로 뽀족한 대책은 없어 보인다.그러나, 우리의 전통사상에 견주어 한번 깊이 생각해 볼 여지는 있다.옛 성현들은 "자중자애(自重自愛)가 효도의 근본이라고 했다. 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중히 여기라는 뜻이다. 이것은 또한 공자께서 말씀하신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몸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므로 머리카락 하나 피부 한 곳이라도 절대로 함부로 다뤄서는 안된다는 말이다.인간의 존재는 탄생으로부터 많은 축복과 은혜를 받아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다. 태어나서 성장하고, 교육받고,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까지 은혜 아닌 것이 없다. 특히 부모의 은혜는 이 세상에서 그 깊이와 넓이를 견줄 것이 없다.이토록 각별한 부모의 은혜를 저버리고 배신하는 행위에 있어서 자살 만큼 최악인 것이 또 있을까?자식을 앞세우고, 그 비통함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할 부모의 입장을 한번만 더 깊이 생각한다면, 자살의 충동은 이겨낼 수도 있지 않을까?'베토벤'은 음악가로서는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귀머거리가 되었을 때, 자살을 결심했다. 그러나, 준비한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기 직전에 섬광처럼 떠오르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죽을 결심으로 살려고 노력하면, 이 세상에 이루지 못할 일이 있을까?우리 다함께 깊이 음미해 볼 말이 아닐까 한다.

  • 오피니언
  • 기타
  • 2003.08.19 23:02

[새벽메아리] 문화인의 조건

언젠가 신문지상을 통해 한 일본인 상사원이 ?맞아 죽을 각오로 ?한국인의 삶의 방식을 질타한 일이 있다.그때 그 일본인은 한국인들이 선진국 발돋움의 열망 하에 첨단 공산품 생산능력을 갖추는 일에 만 오로지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상황을 보고 ?손톱 밑에 비접 든지만 알고 염통 곪는 줄은 모른다?는 한국속담을 인용 그 일에 더해 교통질서나 행락 질서 등 하찮은 생활문화의 법규를 제대로 잘 지키면서 그런 바탕 위에 자발적으로 서로 양보하는 삶의 격을 높일줄 아는 일이 우선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따끔하게 상기시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일이 생각난다.선진국이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일컫는 것이다. 거기엔 문화생활을 통해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의 여유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넉넉함이 일상화된 곳이라고 하였다.문화와 예술이 고작 경제성장시대에 그것을 증거 해주는 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겼던 세월이 엊그제 같았는데 시대발전의 사조는 지금 우리들에게 문명의 발전된 결실과 아울러 생활문화의 철저한 이행을 동시에 촉구하는 급박한 상황변화를 초래케 하여 어리둥절한 현실을 맛보게 하고 있다.문화는 여러 사람이 함께 삶을 이룩해 가려는 뜻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사람이 없다면 그 존재가치마저 없는 것처럼 문화는 우리 인간만의 전유물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은 문화를 이루며 살려고 하는 것일까.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발전된 사고 의식이 있어 미래의 삶을 보다 낫게 하려는 뜻을 지니고 사는 까닭일 것이다.다른 짐승들은 항상 같은 방법대로 살다가 죽지만 미래를 생각하고 그것을 지향해 가는 동물은 우리 인간 밖에 없기 때문이다.사람에게는 미래 지향의 소망이 있는 까닭에 서로 함께 나누며 누리는 삶의 세계이지 소유되는 대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문화는 서로 함께 산다는 뜻을 사람에게 요구하며 이와 같은 문화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려는 사람을 문화인이라 부르고 문화인에게는 서로 이해하고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의식이 항상 충만해 있어 나보다 먼저 남을 생각해서 행동할 줄 아는 배려하는 마음이 스스로 우러나 남을 존중하고 나를 살피는 겸손한 마음가짐이 우선해야 하는 것이다.또한 문화인은 베푸는 마음이 넉넉해야 한다. 돈이 많고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쉬운 삶속에서도 나누어 먹을 줄 아는 마음씨가 더 훈훈하고 감동적인 법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더 가볍다는 이치를 몸소 실천하는 사람은 어느 부자보다 더 넉넉한 사람이다. 남몰래 서로 행복한 삶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드러나지 않게 기꺼이 봉사하고 헌신하기를 즐거워 하는 당사자를 일컫는 것이다. 무슨 대가를 바라고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 아무런 구김살 없이 어느 누구와도 어울려 살려고 길을 트는 사람이 곧 참다운 문화인인 것이다. 아무리 유명인사거나 부자라 하더라도 배려하는 의식이 결여된 사람은 문화인이 될 수 없다. 나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하고 내 가족일 소중한 것이 아니라 이웃도 역시 소중함을 깨닫고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문화인의 도리인 것이다.그 동안 우리나라는 우여곡절이 많았던 5천년의 역사 속에서 토속 신앙을 비롯한 불교 유교를 이어오는 민족 신앙과 민족사상의 바탕 위에 그대로 우리만의 고유한 민족 정기와 민족 문화를 지켜 왔었다. 그 결실은 인간관계에서 공손하며 삼가 하는 말과 몸가짐의 예의를 마음의 중심으로 무장하였으며 결백하고 정직하며, 부끄러움을 아는 염치를 행동 철학으로 신봉하는 민족혼이 있어서 동방예의지국의 윤리와 도덕을 민족정신의 근본으로 정립하였기에 큰 흔들림 없이 지탱해 왔었으나 시대의 변천에 따라 서구 문물이 물밀 듯이 밀어닥치면서 우리나라는 도덕이라고 하는 자정능력의 정화제를 잃은 사회가 되어 악의 유혹과 번성이 팽배해 지면서 바람이 불면 쏠리고 물결이치면 출렁이는 실로 자주의식이 망각된 현실로 전략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거짓말을 밥 먹 듯 하는 정치인이 늘어났는가 하면 남을 사기치는 소위 사업가들이 판을 치고 남녀를 불문하고 강도행각이 성행하며 심지어는 남의 작품을 표절하는 사이비 작가들이 백주 대낮을 활보하는 몰염치한 파국에 이르고 말아 가히 반 문화인의 천국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천우신조의 조화인지는 몰라도 요즈음 들어 우리 주변에는 있는 자 들이나 과시하며 방자하게 사는 사람들보다도 오히려 어려운 서민 대중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나서서 외로운 이웃이나 불우한 사람들을 찾아 손이 되고 발이 되어 위로하고 돌봐주는 사례가 늘어나고 공익이나 사회 질서 등의 생활문화 쪽에도 방만한 규모의 참여자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는 하늘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고 하는 방중이 되고 있는 듯 싶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이른바 문화인의 이상형이라 할 수 있는 '군자가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는 공자의 주장이 하루 속히 현실화되길 학수고대하면서 이 글을 맺는다./고창문화원장 이기화

  • 오피니언
  • 기타
  • 2003.08.12 23:02

[새벽메아리] 피서지에서 생긴 두 가지 일

지루한 장마에 이어 불볕더위가 계속되면서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사람들이 떠난다. 유명피서지 국도를 비롯해 고속도로에서 차들이 거북이 걸음을 한다. 필자도 3일간의 휴가를 얻어 부안 위도와 지리산 피아골로 피서를 다녀왔다. 부안 곳곳에는 핵폐기장을 반대하는 노란 깃발 일색이다. 상점마다, 가로등, 전봇대, 부안의 차들은 모두가 깃발 하나쯤은 꽂아 있다. 위도를 향한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격포와 위도사이 잔잔한 바다에서 전날 200여대의 해상시위대의 목소리를 듣는 듯 하다.현지주민이 파란색 수건을 흔들며 환영했다는 방파제가 보인다. 지역에서 사신지 60년이 넘었다는 촌노(村老)를 만나면서 위도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부안의 김종규 군수를 호되게 혼낸다. '모가지가 짤린다고 하더래도 하지 말 것은 하지 말았어야지' '종규, 지가 무슨 힘이 있것는가, 윗놈들이 갖은 협박을 해 댔사니 어쩔 수 없이 했것지, 그래도 종규가 그러면 안되지, 이제 와서 무슨 주민투표여, 넋빠진 놈' 대통령에게도 한 말씀하신다.'노태우, 김영삼, 김대중도 못한 짓을 노 머시기가 저지르고 있다' 'X선, 선, 내가 원자에 대해서는 군부대에서 있어서 잘 알고 있는 데 (내가 이야기 하면) 하루밤도 모자랄 거여. 우랴눔, 플로튜늄 그것이 머신디, 글도 우리 때는 괜찮것지만 우리 손자, 손녀 때는 문제가 되는게 방사능인데, 체르노빌 그것은 원자 폭탄이 터진 것이나 마찬가지여' '위도 사람들도 먼가를 알고 해야지, 3억이네 5억이네 준다고 헌게 다--- 찬성이네, 내가 이야기하면 죽일놈 되고, 낼모레 죽을 사람이 먼 얘기를 하면 들어 준가? 가만이 있어야제'60년지기 친구와 10년만에 만남에서 30분 동안 토해낸 것은 핵폐기장의 위도 유치 문제이다. 12리까지 있는 위도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한데 모으는데는 쉽지 않다고 하시면서 점심이나 먹자고 한다. 위도는 지금도 도로를 내고 개발이 한창이다. 해수욕장 안쪽으로는 공원조성과 조경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작년부터 했다고 하는데, 군수가 취임하고 시작한 공사라고 한다. 시멘트 계단을 위장하려는 듯 인조잔디가 덮여있지만 서해바다를 담고 있는 오목한 해수욕장의 경관을 해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다.훼리호 사건이 발생한지 꼭 10주년이 되는 올 해 위도는 파금장항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령비'가 묵묵히 역사를 지켜보는 듯 하다. 위도를 떠나는 마지막 배에서 바라본 해넘이는 온통 붉은 색이었다가 어느새 '핵폐기장 반대'의 깃발처럼 노란색으로 바뀌고 있다. 이튿날 아침, 오토캠핑을 한다는 지리산 피아골로 향했다. 다행히 일찍 도착한 선배님들이 자리를 확보해 캠핑을 할 수 있었지 매표소 근처에 있는 오토캠핑장은 아침부터 만원사례를 이뤘다고 한다. 입장료, 문화재 관람료로 2,600원을 내고 공원에 들어섰고 해질 무렵이 되자 관리소원들이 차량과 텐트의 크기에 따라 이용료를 받고 있다.주차료 4,000원, 캠핑장 사용료 4,500원을 받아간다. 국립공원내에서 캠핑을 처음 하는 사람은 '왠 사용료냐'고 반박하지만 눈에 띄게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은 없다.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꼭지가 세 개밖에 없는 취사대를 사용할 때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유일한 취사대는 이용객을 수용하지 못해 줄을 서게 하고, 키가 큰 사람도 이용하기 힘든 높고 좁은 식수대는 더위보다 짜증을 더하게 한다. 관리사무소원들이 직접 캠핑체험을 한다면 바로 느낄 수 있고 시정될 수 있을 것이다. 공중화장실은 깨끗한 편이지만 두 개의 세면대중 하나는 고장으로 사용할 수 없다. 그리고 주변에 공중샤워실이 갖추어지지 않아 여성들의 불편이 말이 아니다. 여기서 따져봐야 할 문제가 있다. 지리산 오토캠핑장 이용료는 똑같다. 그런데 편익시설에서 차이가 난다면 시설이 열악한 특정지역을 찾는 이들은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것 아닌가? 균등한 시설로써 이용료를 균등하게 받는 게 상식적인 것 아닐까? 관리사무소원들도 이런 점을 인지하고 있는지 궁금하다.이용객들의 불평등한 대우를 개선하기보다는 어느 지역은 편익시설이 잘 되어있고 어느 지역은 부족하다는 점을 알고 있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자연에서의 평등을 배워야 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계곡에서의 취사행위를 하지 않고 자신들이 가져온 음식물과 쓰레기를 청소하는 성숙한 시민들의 모습, 물놀이에 지체부자유인 7살 자식과 동반한 한 부모의 극진한 사랑은 피아골에서 피서를 더욱 기쁘게 했다.그러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것일까? 민족의 영산 지리산 한 자락인 피아골에서의 느꼈던 우리 일상의 불평등함의 연속은 피서의 뒷맛을 씁쓸하게 한다. /염경형(전주시민회 사무국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3.08.05 23:02

[새벽메아리] 안타까운 자살은 이제 그만

최근 연이어 보도되는 자살 행동들이 마음을 아프게한다.경제적 어려움과 대학내 구조적.제도적 문제를 비관한 대학강사의 자살,군대내의 성폭행과 구타를 비관한 사병의 자살,성형수술 후유증으로 자살 사이트에서 만난 여성들끼리의 동반자살,카드빛 연체자의 자살,생활고를 못견딘 주부의 자녀와의 동반자살,명문대에 입학하고도 적응을 못한 대학생의 자살,폭력부모의 폭력을 피해 위탁보호된 아동이 부모에게 돌아가기가 두려워 선택한 자살등 모두 보는이의 마음을 안타깝게한다.어느 사건이나 들어가보면 사정이 있고 안타깝다.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하루 평균 19명이 자살한다고한다.OECD 30개 가입국중에서 자살률이 5위라고한다.성인뿐만 아니라 청소년 아동의 자살률이 증가되는 것은 뭔가 대책이 필요함을 시사한다.과연 자살이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혹자는 죽을 용기로 더 열심히 살았으면....하는 바램을 한다. 또 다른사람은 오죽했으면 죽었겠는가?라고 말하기도한다.우리가 당사자가 아닌이상 그들의 절절한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자살행동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에밀 뒤루껭'에 의하면 아노미적 자살유형이 있다. 아노미란 실직,파산,사랑하는사람과의 이별등 생활규범이 갑자기 무너져 버리는 무규범 상태를 의미한다.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은 자기가 처해진 여러 상황이 도저히 못견딜 정도인 공황상태,무규범상태로 지각하여 어찌할 수 없어 혹은 도피,해결의 방법으로 자살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전문가들은 민생안정,사회갈등해소,사회구조개혁,사회안전망의 구축등 사회정책을 강화하면 자살률이 낮아질거라고 기대한다.참여연대 사회복지 위원회에서는 최근의 생활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정신의학자들은 자살의 주요원인은 사회적 문제가 아닌 정신적.개인적문제라고 지적한다.요즘 성인이나 아이들은 그다지 친구가 없어도 살아간다고한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있어도 심심하지않고 즐길 수 있다. 학교에 가서도 모든 친구들이 입시 경쟁자로 자리매김된다. 학교나 직장 가정에서 대인관계를 하고 사는 것이 아니고 대사물 관계를 하며 지낸다.이런 환경이 사람끼리 부대끼고 사는법 친근한 유대관계하는법을 앗아가는 계기를 만들어 사람속에서 사는법을 알지 못하도록한다. 사람은 교육에 의해 변화 될 수 있다.어릴때부터 생명의 소중함,더불어 같이 사는법,나누고 베풀며 사는법,취약하고 어려운 절대 약자들을 돋아주는 법을 교육받아야한다.약육강식,적자생존의 원리는 동물세계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우리 사람은 서로 서로 나누고 지켜주고 살펴주고 돋아주며 살아야한다. 그래야 적어도 동물과 차별화되는 것이 아닌가?심리학에 '자아강건성'의 개념이 있다.자살충동은 그저 죽겠다는 충동이 아니라 죽고 싶은 것과 동시에 살고 싶은 욕망사이의 과정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의미한다고한다. 이 갈등을 이겨내는 힘을 자아강건성이라고한다. 자살한 사람도 다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진자들이었다.살다보면 누구나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어려움에 직면해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 자신을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는 정신의 자주력이 함양되야할 것이다. 최근의 자살보도를 접하면서 사회적안전장치 구축도 보강되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건강가정 육성법 제정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개개인의 정신력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제도권의 학교에서나 가정,사회교육에서도 교육에 의한 정신훈련으로 자신을 강하게 방어.무장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 정신의 자주력,자아강건성이 아닌가 싶다./문영소(전북일보 독자위원)

  • 오피니언
  • 기타
  • 2003.07.29 23:02

[새벽메아리] 21세기와 여성의 역할

"世上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 00女大!"이것은 서울의 유명한 모 여자대학이 학교를 홍보하기 위해서 내놓은 캐치프레이즈 중의 하나다.여성의 역할이 강조되고, 사회진출이 봇물 터지듯 늘어나고 있는 요즘, 이 홍보 문구처럼 실감나게 미래를 예견한 말도 없으리라.그렇다. 이제부터 펼쳐질 세상은 정말로 여성들의 時代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는 힘과 권력 등을 앞세우던 과학의 시대였다. 그러나 21세기는 바야흐로 소프트(soft)한 것들이 힘을 발하는 지식정보화의 시대이다. 또한 인간의 삶의 질을 최우선으로 하는 문화와 예술의 시대가 될 것이라 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예상하고 있다.이때 제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부드러움]이다. 다시 말해 [유연함]과 [섬세함], 그리고 [아름다움]의 감성이야말로 21세기를 특징지을 수 있는 대표적 성향이다. 결국 이 모든 특징을 고루 갖춘 것은 남성이 아니고 바로 여성이다.여성의 사회진출 두드러져더구나 최근에는 전통적인 여성상을 탈피한 소위 '워커홀릭(workaholic : 일벌레)'이라 불리는 맹렬 여성들의 성공적인 사회진출도 놀랄 만큼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김영사, 월간디자인, 푸른숲, 사계절, 이레출판, 작가정신 등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국내 굴지의 출판사들이다. 이들 출판사를 이끌고 있는 사령탑은 모두 여성들이다. 이쯤 되면 한국 출판업계를 여성들이 선도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우리나라에서 올해에 임용될 예비판사 중 절반이 여성이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학사 학위 소지자의 55%가 여성이고, 의대, 법대생의 절반이 여성이며, 미국 기업내의 최고 경영자중 ⅓이 또한 여성이라고 하며, 아내가 남편보다 고수익을 올리는 경우도 에 달한다고 한다.그러고 보면 "21세기 국가경쟁력은 이제 여성들의 능력에 달려있다"고 했던 클린턴 전 美대통령의 말이 현실감 있게 들리지 않는가?그런데, 이러한 추세에도 불구하고 세계 곳곳에서는 아직도 여성들의 수난이 지속되고 있다. 인도에서는 지참금이 적다는 이유로 매년 수많은 여성들이 결혼 후 살해되고 있다.아프리카의 [수단], [소말리아], [말리]등과 [나이지리아] 주변 이슬람교도 중심국가에서는 여성이 性을 통한 쾌락을 느끼면 안된다는 이유로 '할레'라 불리는 여성 성기의 일부를 절제하는 의식이 지금도 자행되고 있다.러시아를 포함한 동유럽 여성들의 삶의 질과 지위는 공산주의 붕괴 이후 더욱 나빠져서, 심지어는 많은 인터걸들이 우리나라 서비스업에까지 진출하고 있다.여성적 매력이 진정한 힘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수난을 딛고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은 세계적으로 더욱 강조되고 있다.우리 나라에서도 재산의 부부 공동명의화, 가사노동의 분담, 호주제의 폐지 등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그럼, 과연 21세기에 걸맞는 여성의 역할은 무엇일까?그것은 바로 여성들이 더욱 깨어나는 것이다.그래서 일과 자아성취에 과감히 도전하는 것이다. 여성은 '부엌데기'가 아니고 가정을 운영하는 '매니저'임을 자각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또한 누구의 딸, 누구의 부인, 누구의 엄마로 만족하지 말고 자기 이름 석 자를 자신 있게 내걸고, 남성과의 당당한 동반자로 사는 일이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여성은 여성적일 때, 다시 말해 터프한 중성적 이미지보다는 여성다운 매력을 가꾸는데 적극적인 여성이 눈에 띠고 신뢰받으며, 선망의 대상이 된다는 평범한 사실이다. 부드러움이 세상을 바꾸는 진정한 힘인 것이다./윤산학(경기대 총무처장겸 홍보실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3.07.22 23:02

[새벽메아리] 최여겸의 순교지는 보존돼야

주자학에 찌들 리고 공리공론에 병들어 있던 1784년 봄 조선왕조의 민중들에게 들려온 까치소리는 당시 북경사신행차에 따라갔다가 하느님의 종이 되어 돌아온 이승훈의 복음이었다.그때 짓눌리고 부대끼며 내일이 없이 살아온 민중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일깨워 준 이른바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들여온 천주교의 새 복음은 우리 전북지방에도 당시 호남의 대부호였던 유항검이 복음의 사도가 되면서 그 서막을 열었는데 1791년 진상땅의 선비 윤지충이 모친상을 당해 유교적 제사를 배척하고 천주교신앙을 고집하다가 전주남문 밖에서 외종 4촌인 권상연과 함께 이나라 최초의 순교자가 되면서 이 후 박해 때마다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이 지방 교회(성당)은 밟혀도 베어도 죽지 않는 잡초처럼 되살아 나곤하였다.1801년 6월 정조가 승하하고 순조가 등극하면서 천주교의 지도자들은 칼바람이 일어 잡혀서 순교하거나 나약하여 배교하는 참혹한 박해를 당하였다.특히 전라도 지방은 너무도 처절하게 이뤄져 유항검을 비롯한 천주교 신도의 중심인물 2백여 명이 체포되어 의금부로 압송되었다.이들은 형조와 의금부에서 사교를 믿고 서학인 들을 불러들여 나라를 위태롭게 한 대역부도 죄인으로 몰려 전라감영으로 이송되어 각기 자기가 사는 고을에서 처형시킴으로서 사학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일벌백계의 표본을 삼았던 것이다.윤지충은 고산 윤선도의 6대손으로 고종4촌인 정약전, 약용 형제들과의 교류를 통해 명례방의 김범우와 알게 되어 천주교 입문 서적을 입수하여 그에게서 전교를 받아 입교하게 되었는데 윤지충의 「공술기」에 의하면 무장 사람 최여겸이 찾아와 교리를 배웠다고 하였다. 그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운 최여겸은 충청도 한산으로 장가를 들었는데 여기서 충청도의 사도인 이존창을 만나게 되어 그에게서 다시 교리를 배우고 영세를 받고 독실한 신앙인이 되어 고향에 돌아왔다.그 후 최여겸은 고향에서 열렬히 전교하여 그가 입교시킨 사람은 문헌으로 알 수 있는 사람만 28명이나 되며 무장에 사는 조카 최수천, 최일안 함평의 남중만 흥덕의 김처당 영광고을 양반으로 그의 제자인 이화백등 많은 사람을 입교시켜 그는 전라도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 중의 한사람으로 활약하다가 1801년 7월19일 고향인 무장 개갑장터에서 순교하였다. 순조실록의 순조1년 7월13일 정해조에 보면?호남의 한정흠, 최여겸, 노복 천애 등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여 그릇된 방면으로 인도하고 독실하게 믿으며 따라붙어 익혀서 십계명을 버리기 곤란하고 한번 죽음을 답갑게 받는다고 말하고 있으니 아울러 다시 자백을 받은뒤 전주 감영으로 압송하여 각각 그 고을에서 사형에 처하소서? 이렇게 해서 최여겸 등 세 사람에게 사형이 선고 되었다.「무장 최여겸의 결안초(結案招)」를 보면 그는「처음에는 윤지충을 따라 사설(천주교리)에 마음이 쏠렸고 마지막에는 이존창을 따라 독실히 믿고 익히면서 터무니없는 말로 남을 속여 미혹시켰으며 널리 남녀를 가르치고 종당에는 자신을 망치고 남들까지 그르쳤으니 만 번 죽여도 애석함이 없다.....(운운)」고 되어 있다.여기에서 도리 켜 볼 때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 권상연 등의 사적이 행정구획 변경으로 이미 충남으로 이적된 점을 감안하면 1801년 신유박해 때의 순교자중 호남의 사도 유항검이 그해 9월17일 유중철(요한)이 10월9일 유요한과 동정부부인 이순이(루갈다)가 12월28일 순교한 한 사실과 비유할 때 최여겸은 한정흠, 김천애와 함께 전북지방에서는 최초의 순교자가 되는 셈이다.여기에서 최여겸의 사적은 몇 년 전에 필자가 향토사를 정리하기 위해 서울 명동성당에 있는 한국천주교회사 자료실에서 문헌에 의한 확실한 근거 자료를 뽑아와 천주교회 당국과 지역신문 등에 밝혀 놓은 적이 있다.순수한 신앙적인 성지계발이 아니더라도 지방화시대에 걸맞는 지역문화 관광자원을 발굴하는 차원에서라도 최여겸의 순교지는 우리시대에 꼭 챙겨져야 할 명제가 아닌가 싶다.그런데 얼마 전에 들은 얘기로는 우리지역의 최초의 신유박해 최여겸의 순교지인 무장 개갑장터가 아직도 사적지로 지정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두고 안타까운 감회를 접어 보면서 이렇게 메아리쳐 보는 것이다./이 기 화(고창문화원장)===================================李 起 華 프로필고창문화원장(현)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전북지회장(현)한국문인협회 회원(현)전라북도 문화재 전문위원 역임전국문화원 연합회 부회장 역임

  • 오피니언
  • 기타
  • 2003.07.15 23:02

[새벽메아리] '공론장'형성과 확대

최근 <지구를 지켜라>라는 영화가 우리 관심을 끌고있다. 대중들로부터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던 영화다. 나는 이 영화의 제목을 보면서 '참 싱겁구나' 생각을 했는데, 곱씹어볼수록 작금의 전라북도 상황과 절묘하게 떨어지면서 '전북을 지켜라'라는 단어가 떠오른다.「전북을 지켜라!」이 말을 듣는 순간,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전북을 지키는 방법'양성자 가속기와 함께 최첨단 산업의 메카로 가는 전북' '새만금만이 전북의 살 길'이라며 보여준 삭발 궐기시위, 'RT산업의 메카, 핵폐기물처리장을 전북에' '전주권 그린벨트 해제 삭발'. 2003년 지금까지 전라북도는 이렇게 전북을 지켜냈다. 2003년의 절반을, 아니 지금까지도 전라북도는 현안사업의 지속추진과 신규사업의 유치만이 전북을 지키고, 전북의 밝은 미래를 앞당길 것이라고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또한 개발과 성장만이 전북을 지켜낼 수 있다고, 200%이상 믿어 의심치 않는 신념과 의지로 똘똘 뭉친 '전북을 지키는 집단'이 형성된 시기가 바로 2003년 상반기다. 개발과 성장만이 전북을 지킬 수 있다는 신념 속에 개인과 집단이 이미 소유한 행정력과 물리력을 총동원하는 전북의 권력집단들! 과연 이들이 전북을 지켜내고, 앞으로도 지켜낼 수 있을까?이즈음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해보자. 개발과 성장도 필요하지만 21세기 시민사회에서 전라북도를 지켜낼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공론장'의 형성과 확대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에서 돈과 권력의 논리로 환원되지 않는 시민사회의 문법을 잘 보여주는 것이 「공론장」이다.이 공론장은 의견의 자유로운 교환과 토론을 통해 공적 의지가 형성돼 민주적으로 이뤄지며, 시민사회 형성의 핵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물론 인터넷의 발전으로 종래의 공론장과 구별되는 사이버공론장이 새롭게 형성됐고, 정치적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하지만 사이버공론장은 현실공간에서의 공론장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하느냐에 따라 시민사회 공론장으로서의 가치를 갖고 현실공론자와 역할을 나눌 수 있다. 왜냐하면 사이버공간에서 이뤄지는 공론은 말 그대로 가상공간에서 벌어지는 것이며, 이 공론이 현실화되는 곳은 엄연히 오프라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송매체와 인쇄매체에 의존하는 현실공간에서의 공론장은 방송과 인쇄매체의 민주주의 성숙도에 의해 형성, 발전, 심화될 것이다.한편 성장단계에 있는 지방자치는 주민의 참여공간을 확대하고, 지방정부와 시민사회(시민단체)의 거버넌스(governance)체제로 나타난다. 참여와 자치의 시대를 넘어 분권의 시대에는 거버넌스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확대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민선3기 더욱 중요한 과제의 하나다. 이를 위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교환되고, 공적 의제를 형성하는 시민사회 공론장의 확장과 발전은 필수적이다.그러나 2003년 전북은 권력과 물리력을 동원한 집단과 자발적 참여라는 가면을 쓴 동원집단의 총궐기 형태의 통치체제를 마련했다. 또한 철저히 지배집단의 의사를 대변하는 방송과 인쇄매체에 의존하는 공론장에서는 소수집단의 의견이 자유롭게 발현될 수 없었고, 지배집단의 이익에 반하는 의견의 교환가치는 전북의 권력집단에 위해하기 때문에 철저히 시민사회로부터 고립시키거나 막대한 물리력을 동원해 분쇄시켜 나가고 있다.결국 이러한 행동은 전라북도 시민사회 형성과 이를 지켜낼 수 있는 공론장을 상실시키고 있다. 공론장이 형성되지 못하는 사회는 건강한 시민사회의 형성도 지역사회 발전을 기대할 수 없으며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는 사회로 전락할 것이다.획일적 의견 경계해야이제 전북에 획일적인 의견과 기존 기득권 지배권력집단만의 이해가 관철되는 사회를 극복해야만 한다. 전북을 지켜내고, 궁극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공론의 장이 필요한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시민사회를 선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시민단체들이 자기 성찰과 더불어 공론장 만들기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시민단체가 갖고 있는 역동성과 건강서을 공론장이라는 현장에서 발휘해야한다. 방송매체와 인쇄매체에 너무 의존해서도 안되겠지만, 방송과 인쇄매체가 제자리를 찾도록 감시, 견제하는 역할을 강화하는 것도 요구된다.한편 전북을 지켜낸다고 과신하고, 돈과 힘으로 지역사회를 이끌어 가는 집단에게 '자기 성찰'을 강력하게 제기하는 선진 지식인의 역할도 기대하는 바이다. 2003년 「전북을 지켜라!」그것은 공론장을 통해 가능하다./염경형(전주시민회 사무국장)*염경형씨는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을 수료하고, 현재광주고법전주부유치추진위 사무처장과전북수돗물불소화추진위 사무국장, 그리고 94년부터 전주시민화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 오피니언
  • 기타
  • 2003.07.08 23:02

[새벽메아리] 지금의 위기 발전의 기회로

언젠가 어느 기업인이 자신의 성공은 불우한 환경덕이라고 말한 것을 들은적이 있다.언뜻 듣기에 불우한 환경 때문에 성공했다고? 귀를 의심했다.그 기업인은 어릴 때 부모를 다 잃고,태어날때부터 몸이 약했고,부모도 없고 가난한 환경 때문에 학교도 다닐수 없어 배움도 없었다는 것이다.어려운 환경이 사람을 좌절하게 만들고 포기하게 하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위험,어려움을 극복하게하는 도전정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고행프로그램 참가시키는 이유그 기업인은 본인이 처해진 열악한 환경이 자신을 노력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자신이 불우한 환경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노력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러한 환경을 극복하지 않았다면 사회에서 낙오되고 살아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요즘 우리 사회는 보는이에 따라서 많이 혼란스럽고 방향이 없는 듯 보인다.철도노조가 파행운행을 하고,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물류대란이 생겨 수출에 차질이 생기고, 특검후유증으로 여.야가 첨예한 대립을 하고, 어린이나 여성을 유괴 납치하는 몰염치한 강력범죄가 사회면을 채우고, 새만금 문제등 모든 문제들이 매끄럽게 풀리질 못하고 있다.며칠전 김수환 추기경은 지금의 한국실정을 '망망대해에서 태풍을 만난 배'와 같다고 비유했다. 국가의 원로가 현시국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렇게까지 말을 했을까싶다.대힌민국이라는 배에 탄 우리 국민이 느끼는 두려움,무서움은 거의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선장은 승객이 출렁 거리지 않고 멀미나지 않도록 승객을 안정시키고 방향을 잘 잡아 안전한 운항으로 목적지에 도착을 시켜야할 것이다.야생화가 아름다운 것은 노지에 노출되어 갖은 풍상을 이겨내고 살아난 결과일 것이다.사람도 혼란,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면 건강하게 자랄 수 없을 것이다.우리가 가정에서도 아이들을 키울 때 요즘 아이들은 너무 물자가 풍요롭고 아쉬울 것도 없고 부족한 것도 없어서 나약하게 큰다는 것이 문제라고한다.그래서 아동학자들은 아이를 강하게 키우려면 부족함, 결핍을 체험하게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여름방학이 되면 어린이들에게 고행 프로그램에 참가시킨다는 학부모가 느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주변을 돌아보면 감사할일이 많다. 저소득층의 자녀들을 무상으로 숙제지도와 부족한 학과지도와 공동체 생활을 통해 타인과 관계하는법과 마음사용하는 법을 교육해주는 시민단체도 있고 장애인 부모회에서 초등장애아동들을 데리고 방과후 세상나들이하는 프로그램으로 대학을 견학시키고 백화점과 은행 패스트푸드점등의 시내를 체험한다는 훈훈한 얘기도 있고, 어느 대학의 의료봉사대는 국경을 초월하여 아프리카의 열악한 의료서비스 사업에 의료봉사를 하고 치료에서 소외되는 빈곤계층을 위해 봉사하고 있음은 진정 이웃을 사회를 인류를 위한 훈훈한 따뜻한 뉴스이다.조금씩 양보하고 나눠야몇 년전 IMF때보다 경제적으로 더 힘들게 느끼는 국민이 많다고한다.철도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는것도 나름대로 분명한 이유가 있겠지만 지금 우리나라에는 실업을 하여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구직자들을 생각한다면 조금씩 양보하고 이웃과 나눌줄아는 너그럽고 따뜻한 마음이 필요한 시기이다.어렵겠지만 우리 국민도 힘든 환경을 원망만 하지말고 성장,발전의 기회를 준 찬스라고 감사한 마음으로 돌리고 곳곳에 노출되어 있는 위험,혼란,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해 낼 수 있는 힘과 마음가짐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그렇듯 국가도 건강하고 강한 국가로 바로 서기 위해서는 지금의 혼란, 위험,어려움을 공부거리로 체험하여 발전 성숙의 기회로 삼았으면하는 소박한 마음을 가져 본다./문영소(정읍시 행정개혁위 부위원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3.07.01 23:02

[새벽메아리] 양심적으로 일하면 손해?

'집안 망하려면 송사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소송을 하는데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또 소송을 하게 되면 상대방과 원한이 사무칠 정도로 감정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송은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보아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비로소 할 수 있는 일이다.처음 광주에서 변호사 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교통사고 피해자 가족이 보험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하겠다며 찾아왔다. 사고 경위와 피해 정도를 듣고 피해자가 받을 수 있는 금액을 계산해 보았더니 보험회사에서 제시한 금액과 몇 백 만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합의가 낫겠다고 말했더니변호사 입장에서는 소송을 하겠다고 찾아온 사람에게는 특별한 설명을 할 필요 없이 착수금을 받고 소송을 시작하면 된다. 게다가 교통사고 사건은 경찰에서 사건 조사까지 다 마친 경우이기 때문에 입증에 특별한 어려움이 없는 편이라 변호사들이 선호하는 사건 중의 하나이다. 또 보험회사를 상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송이 끝나고 난 후 성공 보수를 받는 것도 어렵지 않다.그러나 위 사례의 경우에는 보험회사에서 제시한 금액이 상당히 고액이라 소송을 하더라도 오히려 시간과 비용 면에서 손해일 것 같아 변호사 비용과 소송비용이 어느 정도 들고 시간이 얼마나 걸리니 그 정도 금액이면 소송을 하는 것보다는 보험회사에서 제시한 돈을 받고 합의를 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당사자는 양심적인 변호사를 만났다고 고마워하기는커녕 많은 돈을 받을 자신이 없어 소송을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냐며 오히려 나를 비난하는 투로 말을 하는 것이었다.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전주에서도 위와 유사한 일이 몇 번 있었다. 소송을 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을 하였지만 결국 다른 변호사를 선임하여 소송을 하는 것도 보았고, 다른 사무실에 가서 이상한 변호사라며 욕을 하였다는 이야기도 들어 보았다.한의원을 하고 있는 오빠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하였더니 자신도 비슷한 경험이 많이 있었다고 하였다. 보약을 지어 달라며 찾아온 사람을 진찰해 보았더니 비싼 녹용이 들어 있는 보약보다는 그보다 저렴한 녹각이나 다른 한약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 그러한 이야기를 하면 크게 실망을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단다.그건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에 대한 연민이 있기 때문에 한의원에 찾아올 때는 한의사가 자신의 건강에 대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적절하게 걱정을 해 주며 비싼 약을 권하기를 오히려 바라며 찾아오기 때문이라나.상황 맞춰 무엇이 최선인지 고려그러면서 변호사 사무실에 찾아올 정도가 되면 상대방과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소송을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선임을 해서 양심적으로 일을 처리해주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였다.그 뒤로는 사무실에 상담을 하러 온 사람들이 진실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애를 썼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담을 하러 우리 사무실에 찾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무실 몇 군데를 거친 경우가 많아 사건에 대해서도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도 내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결국 의뢰인의 진심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상황에서 무엇이 최선인가를 판단하려 애를 써보려 한다. 그것이 법률이라는 전문 지식을 가진 변호사들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황인경(변호사)

  • 오피니언
  • 기타
  • 2003.06.24 23:02

[새벽메아리] 외경과 연민 가슴에 안고

눈에 보여 지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말이나 글, 때로 눈빛으로라도 여러 사람이 한 사람 "죽이기(?)"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숱하게 보아왔다.그 때 그 순간 나름대로의 합당한 이유와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워 마땅히 "죽어줘야 할 존재"로 규정하고 합법적으로 포장해서 한 개인의 삶을, 한 집단이나 국가의 삶을 잔인하게 짓밟고 유린하면서도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하나의 흐름"으로 여기면서 살아가게끔 하는 그 분위기와 여건 속에 우리는 실제로 당하는 피해자의 모습으로, 때로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로, 때로 침묵하는 방관자의 모습으로 서있을 때가 많은 것이다.언론매체의 역기능 다룬 영화"지구촌 생중계"란 말이 너무나 당연한 일상용어로 정착하면서 이제는 먼 나라의 살벌한 전쟁도 안방에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환경 속에서 우리는 오늘날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가를 실감한다.또한 이제 어지간한 사건을 보아도 별로 흥미를 못 느끼는 우리에게 보다 더 쇼킹하고 보다 더 신기하고 보다 더 엽기적인 가십거리를 제공하려는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눈물겨운 노력(?) 속에서 과연 이러한 현실이 항상 좋기만 한 것인가? 정말 바람직한 것인가?"우리 모두가 그를 죽였다."_영화 "MAD CITY"의 마지막 대사이다. 지난 2000년도에 개봉한 영화 "매드 시티(Mad City)"는 그러한 매스 커뮤니케이션 환경 속에 살아가는 우리가 과연 행복한가를 진지하게 묻는 영화 중의 하나이다. 한때 방송국의 인기기자였던 맥스라고 하는 사람은 메인 앵커와의 불화로 지방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었다.그러나 그는 늘 본사로 돌아가길 희망하며 특종을 노리고 있지만, 지방 방송국에서는 그에게 평범하고도 시시한 기사만을 다룰 것을 요구할 뿐이다.그러다가 어느 날 그는 한 지방 박물관의 예산 감축 소식이나 취재하라는 지시에 박물관으로 갔다가 예기치 못한 사건을 취재하게 된다. 예산 감축 때문에 해고당한 그 곳 박물관 경비원 샘이라는 사람이 박물관 관장을 찾아와 "다시 한번 고용해 달라"고 애원하다가 거절당하자 겁을 주려는 마음으로 총을 꺼내게 되는데, 그 순간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총이 발사되어 다른 경비원이 총에 맞게 되는 불운한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설상가상으로 총소리를 들은 경찰이 출동하게 되자, 샘은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박물관을 견학하던 어린이들을 위협하는 인질범이 되어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이 된다. 마침 그 자리에 있었던 맥스도 기회다 싶어 이 광경을 TV로 생중계를 하게 된다.또한 맥스의 유도로 샘은 치밀한 인질범으로 둔갑하며, 언론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건을 유도 하게 된다. 결국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너무 커져버린 상황을 견디다 못해 샘은 스스로 자살하게 되는 것으로 이 영화는 결말을 맺는다.이 영화 속에서 인질범으로 몰린 샘은 원래 그렇게 악한 인간은 아닐뿐더러 그는 단지 해직에 대한 불만을 터뜨린 것이었지만 상황은 좋지 않게 전개되고, 그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시청률을 올리려는 방송인들의 비열한 모습을 이 영화 속에는 그려지고 있다.그리고 그 종말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다. 그의 죽음은, 그렇게 미쳐가는 도시에서, "우리 모두가 그를 죽였다 (We all killed him)" 라고 절규하는 맥스의 목소리가 변명처럼 들린다. "다 죽이고 나서 죽이는 맛을 본 산 자들이 하는 구차한 변명"인 것이다.이 영화는 언론매체에 의해서 한 사람이 어떻게 왜곡되고 파괴되어 가는지 보여주면서, 그러한 현실이 단지 영화 속의 가상현실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불행한 사실임을 일깨워줍니다.매체 종사자들 진정한 보람은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역기능을 부각시키려는 의도 때문이 아니다. 커뮤니케이션 매체 종사자들이 그들을 그들이게끔 하는 그 힘,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그들 자신을 진정으로 감동하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그 보람과 의미가 무엇인가를 묻고 싶은 것이다.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볼 때, 세상이 자신에게 좀 더 공평하고 존중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다른 이들도 그러한 당신들과 다를 바가 없는 연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에 경의를 표해주기를 바랄 뿐이다.하늘(=신)에 대한 외경(畏敬)과 인간의 대한 연민(憐憫)을 가슴에 안고서 자신들의 일에 성실할 때, 진정한 보람과 기쁨이 있을 것이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분들에게 종교적인 경건함을 가지고 존경과 사랑으로 무릎을 꿇는다./서석희(천주교 전주교구 홍보국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3.06.17 23:02

[새벽메아리] 이제는 관리된 성장이 필요하다

모든 그릇이 그러하듯이, 밑이 빠지지 않은 그릇이라면 그 그릇이 담을 수 있는 물적 한계, 즉 용량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도시도 마찬가지이다. 도시가 그 시대를 담는 그릇으로 표현되듯이 도시 역시 그 도시마다 담을 수 있는 능력, 용량이 있다.구체적으로는 개발 가능한 토지자원의 면적, 공급 가능한 수자원의 양과 질,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상수관망의 규모, 자동차의 흐름을 수용할 수 있는 도로의 폭,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수용 가능한 인구규모 등이 그것이다.대표적인 부작용 '난개발'우리가 그릇이 지니고 있는 용량을 벗어나 과도하게 담고자 할 때 그 그릇은 깨어져 버리거나 넘쳐흐르듯이, 도시 역시 그 도시가 지니고 있는 용량을 벗어나 담고자 할 때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하며, 그 중의 하나가 난(亂)개발이다.그리고 지난 40여 년간 우리의 도시공간 - 국토공간도 마찬가지임 - 에서 나타난 여러 부작용 중에 대표적인 현상 또한 난 개발이다. 바꾸어 말하면, 도시라는 그릇이 지니고 있는 능력의 한계에 대한 고려 없이 무작정 담고자 하였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즉, 각 도시가 지니고 있는 용량을 고려하지 않은, 개발일변도의 '관리되지 않은 성장'이었다는 것이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종래의 '관리되지 않은 성장'에서, 각 도시가 지니고 있는 용량을 고려하면서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관리된 성장'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즉, 개발로부터 보전되어야 할 토지를 이용한다든지, 도시의 무계획적인 외연적 확산과 같은 잘못된 방향으로 토지를 이용하는 것을 방지하면서, 변화하는 도시활동을 담아 내도록 그 그릇의 크기를 계속 키워 나아가되 그 용량을 넘어서는 도시활동의 팽창이 일어나지 않도록 성장의 정도와 시간을 조절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최근 전주권 그린벨트(법적 용어로는 '개발제한구역' 임)해제 후의 토지이용문제와 관련하여 전주시와 환경부간에 첨예한 대립이 있었으며, 환경부의 태도에 분노한 전주시의회 의원들의 삭발사태까지 발생하였다.필자 역시 그린벨트를 해제하게 된 근본적인 의미를 생각해 볼 때 환경부의 처사는 매우 이해하기 어려우며,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환경부의 불편한 심기를 전주권 그린벨트해제문제에 표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씁쓸하기도 하다.한편 건설교통부에서 지침으로 정한 그린벨트해제 후의 용도지역 지정에 있어, 개발이 극히 통제되는 보전녹지지역 및 생산녹지지역의 비율과 상대적으로 개발이 쉬운 자연녹지지역의 비율을 60% 대 40%로 수준으로 하라는 것 역시 다소 어리둥절하게 한다. 자연녹지, 생산녹지, 보전녹지의 지정기준을 정하면 그만이지 이것을 굳이 6 : 4라는 비율을 지정할 것을 규제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서이다.성장의 속도-시간 조절을그러나, 이러한 환경부나 건교부의 태도에 대해 한 가지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까지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 보여 준 행태 - 특히 민선자치시대 이후 - 에 대한 우려로써, 보전보다는 개발을 우선하는, 관리되지 않은 성장을 걱정하는 것이라는 점이다.따라서 전주시는 이러한 우려와 걱정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도 그린벨트에서 해제되어 자연녹지지역으로 지정되는 지역은 물론 도시 전체를 하나의 그릇으로 인식하고 그릇의 크기에 따라 성장의 속도와 시간을 조절하는 '관리된 성장'을 추구하여야 할 것임을 이 기회를 빌어 강조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의 필요성은 비단 전주시만의 몫이 아님도 아울러 역설하고 싶다./이양재(원광대 교수)

  • 오피니언
  • 기타
  • 2003.06.10 23:02

[새벽메아리] 전북발전 합의로 '실익' 최대화

전북이 뜨겁다. 세 번 육신을 던지고 한 번 영혼의 바닥을 만난다는 삼보일배의 진기한 풍경 반대편에 새만금 중지는 '전북홀대'라며 목청을 높이는 애향운동의 대열이 이어진다. 양성자가속기-방폐장 유치 찬반의 뜨거운 대치선에 전주권 그린벨트 해제를 위한 시의원들의 '삭발투쟁'이 보태지면서 지난 한달 여는 전북과 전국을 연결하는 이슈들에 몸이 달궈진 채 정신 없이 지나온 것 같다.'현안' 한발자국 물러서 바라보면이 모든 논쟁과 대치의 한 복판에 낙후된 전북의 현실이 있다. 오랜 개발소외에 붕괴된 농업이 더해지면서 2백만 인구도 무너져 내린 전북의 낙후가 계량화된 지수로 제시될 때 그 누구도 전북발전을 위한 '개발' 유치의 절박한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환경, 미래의 가치 어쩌고 하는 배부른 소리 할 것 없이 정부예산을 어떤 식으로든 끌어와야 전북이 발전할 수 있다는 단선논리가 전북도민을 사로잡는데는 이런 현실의 블랙홀이 자리잡고 있다.그런데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지점을 전북 바깥 쪽으로 한발자국만 옮겨놓고 보면 또 다른 관점에서 이 논쟁들을 바라보게 된다.전북지역 주민들 일부에게 새만금과 전주권 그린벨트 문제 해결에 가장 큰 걸림돌로 '공인'되고 있는 환경부의 항변을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번 들어보자. 새만금에 대한 근원적 찬반논쟁을 떠나서 새만금 자체의 성공을 위해서도 새만금호로 유입되는 각종 오염물질을 최소화시켜야만 하고 이를 위해서 전주권 그린벨트를 보전녹지로 묶어둘 수 밖에 없다는 환경부의 주장은 그 자체로 거부하기 어려운 진실성을 담고 있다.그렇다고 전주시 입장에서는 거도적으로 지지운동을 벌이고 있는 새만금사업을 반대하기도 어렵다. "새만금은 새만금이고" 다른 지역사람들, 특히 정부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모순된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전주권 그린벨트 주민들의 절박한 요청이 현실적으로 반영되려면 새만금 사업이 다른 방향으로 조정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이 냉정한 객관현실이다. 전북지역 시민사회단체와 교수들의 새만금 대안에는 이런 이중적 고민이 담겨 있다.지금까지 진행된 방조제 공사를 무로 돌리지 않고 최대한 활용하는 대안적 개발방법을 찾되 새만금호와 간척지 확보를 상당 부분 포기함으로써 환경생태적 가치와 지역개발의 절박한 요구를 함께 수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대안 찾기는 아직 반향이 적다.전북도를 비롯한 새만금 절대추진론자들은 어떤 형태의 우회나 축소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에서 한 발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새만금을 둘러싼 중앙부처와 국회 등 정책결정권자의 변화 조짐을 오로지 지역간 대립, 반대론자들의 개입과 음모로만 몰아부칠 뿐 전북지역의 '실익'을 중심으로 정치적 힘을 모아낼 생각과 실천이 없는 것이다.치켜올린 손을 내리고 꼼꼼하게 한 번 따져보자. 환경문제는 둘째로 접어두기로 하자. 농림부 주관의 간척사업 진행과정에서 전라북도는 정부안 어느 곳에서도 확정된 적 없는 복합산업단지 등 '꿈의 전북'을 주민들에게 주입하면서 전북을 살릴 '유일한' 안으로 새만금을 자리잡게 하는데는 성공했다.그런데 전라북도의 무책임한 선전공세를 뒷받침할 아무런 정치적 보장이 없는 판에 애초 사업목적인 대규모 농지 조성의 타당성은 중앙정부 차원에서부터 의심 받고 있다. 전북이 꿈꾸는 서해안중심지-동북아물류기지-대중국교역의 중심창구 구상은 당장 인천, 평택을 비롯해 다른 지역과 충돌한다.다른 지역 정치권의 견제 등 모든 정치적 난제를 통과한다 하더라도 현재의 준비 정도로 보아 10년 이상을 기다려야 가능한 구상이기 때문에 급변하는 동북아 정치경제 흐름에 맞추어내기 어렵다는 결정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 지난한 첩첩산중을 뚫고 나갈 정치적 명분이 전국적 판도에서 보면 취약하다는 것이다.정치적 명분서 주도권 확보해야이런 정황에서 전북발전을 공통분모로 현재의 대결구도를 '역발상'해보면 어떨까. 반대론자들의 투쟁 덕분에 새만금은 세계적인 생태환경의 명소가 되었다. 부러 돈을 퍼주고 홍보해야 할 관광자원의 브랜드 인지도를 극히 적은 비용으로 확보한 조건에서 새만금을 농지에서 생태환경의 보고로 재조명하게 하는 것이다.방조제를 환경과 개발이 중간지점에서 타협한 기념비적 건축물로 위치 지우고 군산 인근 새만금개발구역 상단 부분을 신항과 연계되는 부분개발지역으로 확정, 조기에 집중 투자한다. 새만금 전체를 개발하는 문제로 지금 같은 환경논쟁을 거듭하는 구도보다 현재의 대결구도를 지양하여 정치적 명분에서 전북지역이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이 길은 진정 현실적으로 이루기 어려운 일일까.지역사회의 합의를 먼저 끌어내 중앙부처를 압박하는 역발상, 현실을 바탕으로 실익을 최대화하는 열린 정치력이 어느 때보다 아쉽다./이광철(개혁국민정당 집행위원)

  • 오피니언
  • 기타
  • 2003.06.03 23:02

[새벽메아리] 있어야 할 권위마저 무너진다면

민주화가 진행됨에 따라 권위주의가 청산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면서 권위적, 권위주의적인 것은 모두 배격되어야 하는 것이 절대 진리인 양 되어 버렸다. 그에 따라 어떤 권위도 모두 구태의연한 것으로, 권위를 말하는 사람은 모두 구시대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것으로 치부하면서 어떤 직역, 어떤 사람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그러나 권위란 사전적으로 '다른 사람이 신뢰할 만한 뛰어난 지식이나 기술'을 의미하는 것에 불과하며, 그 단어 자체에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는 않다.위증때문에 오판, 권위 무너져몇 달 전 전주지방법원 형사법정에서 판결 선고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재판장을 향해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여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이 있었다. 물론 그 사람은 평범한 시민이 아닌 조직폭력배였지만, 이미 법정이나 재판장의 권위는 예전과 달리 존중되고 있지는 않은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재판장이 법정에 들어오면 법정이 개정되는데, 그 때 법정의 경위는 법정 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리에서 일어서도록 하고 재판장이 자리에 앉으면 그 때서야 사람들에게 자리에 앉도록 한다. 그리고 변호사들은 대부분 법정에 들어오거나 나갈 때 재판장을 향하여 가벼운 목례를 한다.권위주의가 청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행동부터 없어져야 한다고 할지도 모른다. 필자 또한 처음 변호사가 되어 법정에 드나들면서 재판장을 향해 목례를 하는 것이 너무 어색하여 간혹 이를 생략하거나, 얼렁뚱땅 하는 둥 마는 둥 하기도 하였다.그러나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지 4년째가 되어 가는 지금에는 오히려 처음에 비해 더욱 열심히 재판장을 향해 목례를 한다. 갈수록 법정이나 재판장의 권위가 인정되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법정이나 재판장의 권위는 판결의 신뢰와 존중이라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다른 직역의 권위보다 훨씬 중요하다.그런데 법조계의 권위가 무너진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법조계에 있는 사람들이 비난받을 행동을 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겠지만, 그보다도 검사의 결정이나 판사의 판결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 생각한다.재판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면 대부분 경험해본 일이겠지만, 위증을 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경찰서나 검찰청에 참고인으로 출석하여, 또는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서 선서를 하고도 자신의 말이 사실과 다름을 알면서도 거짓을 말하는 것이다.사건의 실체(진실)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당사자들의 말만을 듣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검사나 판사들은 참고인이나 증인이 거짓을 말하는 것도 모르고 결국 잘못된 판단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도 일반인들은 검사나 판사가 상대방으로부터 청탁을 받았느니, 돈을 받았음에 틀림없느니 하며 검사나 판사를 원망한다.혼란스러운 사회, 권위 바로서야이처럼 위증으로 인한 오판이 법정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무너진 법정의 권위로 인하여 태연히 위증을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요즘처럼 혼란스러운 사회일수록 가정 내에서 부모의 권위가, 학교에서 선생님의 권위가, 직장에서 상사의 권위가, 그리고 법정에서 재판장의 권위가 서야 사회가 바로잡힐 것이다. 물론 존중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존중받을 행동을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황은경(변호사)

  • 오피니언
  • 기타
  • 2003.05.27 23:02

[새벽메아리] 사랑의 방정식

"내게 시간이 허락된다면 나는 나의 문제와 내 병을 내 스스로 고칠 자신이 있어."작년 초에 개봉되었던 영화 "Beautiful Mind"의 주인공 존 내쉬가 그의 아내와 그의 치료를 맡은 의사에게 말하는 장면이다. 대학생 때 이미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 이론을 뒤집으며 학계를 놀라게 하고 연속되는 출세의 행진으로 어린 나이에 미국 최고 암호전문가가 된 그는 뜻하지 않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수-논리로 풀수없는 걸 찾았다"바로 그것은 자신은 천재라는 사실, 그러기에 항상 뭔가 달라야 된다는 그의 강박관념이 '자신이 세계를 구하는 일을 하고 있다.'라는 과대망상증과 정신분열증에 걸리게 된 것이다.처음에는 그런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결국은 그동안의 정황과 그 결과로 자신도 인정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이 '고장이 나 있다.'라는 것을 수긍하는 순간에도 그는 자신의 병이 어디서부터 고장 나 있는지를 그가 신봉하는 수의 논리로 풀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합니다.그도 그럴 만큼 그는 '사물에 가치를 매기길 좋아하고 행운을 믿지 않는다.'는 그의 신념이 자신을 성공시켰다는 듯이 그로 인해 비롯된 자신의 병도 고칠 수 있다고 항변하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담당의사는 책상을 치면서 바로 그런 생각과 머리로부터 병이 비롯된다고 정확하게 지적해 준다.자신의 능력만이 자신을 세워줄 수 있는 토대라고 생각했던 그의 자신감이 전에는 천재이기에 과연 그럴 수 있다고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지만, 이미 삼각한 병에 걸려있는 그의 모습에서 비롯되는 그의 말 속에는 스스로 자신을 들어올리는 신의 위치에 서려다 그 정반대의 나락으로 떨어진 초라한 인간의 모습으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어쩌면 사물의 가치를 매기기 좋아한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그 자신마저도 가치를 그렇게 매겨왔던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최고의 가치를 매겼다가, 최하의 가치를 매겨야 되는 그 심정은 어떠할까? 적어도 거기에서 그는 냉정할 수가 없었고, 거기에서 외로움과 슬픔 속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2.자신의 모든 것을 자신의 능력의 토대 위에 세웠던 존 내쉬의 자력신앙, 그래서 비참한 외로움과 고독에 빠진 그에게 유일하게 그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아내 알리샤는 다가가 이렇게 말한다. "뭐가 현실인지 알고 싶어?" 그리고 그의 손을 그녀의 가슴으로 끌어당기며 "이 느낌, 이것이 바로 현실이야. 당신이 꿈에서 깨어나는 지름길은 어쩌면 거기-남편의 머리를 가리키며-가 아닌 여기-자신의 가슴에 손을 남편의 손을 얹으며-에 있어. 나는 기적을 믿어."라고 말한다.결국 그런 아내의 항구한 노력에 의해서 존 내쉬는 그의 병으로부터 벗어나서 훗날에 경제학자로서 최고의 영예인 노벨경제학상을 받게 된 것이다.수상식에서 그는 젊은 날의 모습을 상기하면서 이렇게 연설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수의 논리를 믿어왔습니다. 수에 의해서 모든 것을 분석하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진정한 논리입니까? 그러나 저는 이제 와서 수나 논리로 풀 수 없는 신비한 사랑의 방정식을 찾았다"면서 그는 모든 영광을, 그리고 그가 살아있는 이유를 그의 아내의 사랑 안에서 찾았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머리가 아닌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그래서 약간은 더듬거리는 말로 그의 아내에게 "당신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요, 내가 살아가는 이유"라고 고백한 것이다.급변하는 세상, 진정 필요한 것은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어제와는 현저히 다르게 느껴질 정도로 그 발전의 속도를 늦추지 않는 현실,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만큼 이제 인간은 신의 영역이라고 하는 신성한 곳까지도 점령해 나간다는 자신감과 거기서 비롯되는 실험정신 속에 우리가 진정 얻어가는 것은 무엇이고 잃는 것은 무엇일까?기적과 행운을 믿는 것은 나약한 자들의 '지푸라기 잡는 심정'일 뿐 이제 신의 영역은 앞으로 분석되어져야 할 과제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 분위기 속에 우리 안에 자리를 잡는 것은 젊은 날 존 내쉬의 오만과 객기가 아닐까? 그러면서 우리의 내면은 행복한가? 나날이 발전해 나가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존 내쉬가 깨달았던 "사랑의 방정식"이 아닐까?/서석희(신부, 가톨릭 전주교구 홍보국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3.05.20 23:02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