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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죽을 결심으로 살려고 노력하면…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이곳 저곳에서 끔찍한 자살 소식이 꼬리를 물고 들려온다.재벌 총수, 학생, 연예인, 직장인, 주부 등 계층도 다양하다.어찌 보면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이 기막힌 소식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자살이란 희망을 상실한 인간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길이다. 그런데, 이것이 늘어나고 있다는 말은 다시 말해 우리 사회가 점점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하루에 36명이나 목숨 끊어2001년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자그마치 1만 2,277명이었고, 지난 해에는 1만 3,055명이라고 한다. 이것은 하루에 평균 36명, 1시간당 1.5명의 우리 이웃들이 이 극단적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올해도 자살자는 지난 7월말까지 벌써 6천 명이 넘었다는 집계가 나와 있다. 더구나 얼마 전 30대 주부가 두 딸과 아들을 아파트에서 떨어뜨린 후 자신도 몸을 던져 자살한 소식은 우리 모두를 전율케 하고도 남음이 있다.그런데, 보통 자살 기도자는 자살자의 7~10배라는 연구발표가 있다. 그렇다면 1년에 최소 9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살을 기도하고 있다는 셈이 된다.여기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자.사회학자들은 자살을 '이타적 자살'과 '이기적 자살',그리고 일종의 일탈행위에 속하는 '아노미적 자살'로 분류한다.'프로이드'같은 심리학자는 자살을 '본능적인 충동'으로 설명했고, 생물학자들은 '유전적 요인'이라 주장하기도 한다.우리 나라의 경우, 자살의 원인으로는 애정문제, 경제문제, 복잡한 가정문제, 건강문제, 능력부족에 대한 절망감이나 죄책감등의 개인문제등이 주류를 이뤄 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빈곤을 이유로한 자살이 늘어나고 있어 점차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의 문제로 번지는 것 같아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자중자애가 효도의 근본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아쉽게도 근본적으로 뽀족한 대책은 없어 보인다.그러나, 우리의 전통사상에 견주어 한번 깊이 생각해 볼 여지는 있다.옛 성현들은 "자중자애(自重自愛)가 효도의 근본이라고 했다. 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중히 여기라는 뜻이다. 이것은 또한 공자께서 말씀하신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몸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므로 머리카락 하나 피부 한 곳이라도 절대로 함부로 다뤄서는 안된다는 말이다.인간의 존재는 탄생으로부터 많은 축복과 은혜를 받아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다. 태어나서 성장하고, 교육받고,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까지 은혜 아닌 것이 없다. 특히 부모의 은혜는 이 세상에서 그 깊이와 넓이를 견줄 것이 없다.이토록 각별한 부모의 은혜를 저버리고 배신하는 행위에 있어서 자살 만큼 최악인 것이 또 있을까?자식을 앞세우고, 그 비통함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할 부모의 입장을 한번만 더 깊이 생각한다면, 자살의 충동은 이겨낼 수도 있지 않을까?'베토벤'은 음악가로서는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귀머거리가 되었을 때, 자살을 결심했다. 그러나, 준비한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기 직전에 섬광처럼 떠오르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죽을 결심으로 살려고 노력하면, 이 세상에 이루지 못할 일이 있을까?우리 다함께 깊이 음미해 볼 말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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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8.19 23:02

[새벽메아리] 문화인의 조건

언젠가 신문지상을 통해 한 일본인 상사원이 ?맞아 죽을 각오로 ?한국인의 삶의 방식을 질타한 일이 있다.그때 그 일본인은 한국인들이 선진국 발돋움의 열망 하에 첨단 공산품 생산능력을 갖추는 일에 만 오로지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상황을 보고 ?손톱 밑에 비접 든지만 알고 염통 곪는 줄은 모른다?는 한국속담을 인용 그 일에 더해 교통질서나 행락 질서 등 하찮은 생활문화의 법규를 제대로 잘 지키면서 그런 바탕 위에 자발적으로 서로 양보하는 삶의 격을 높일줄 아는 일이 우선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따끔하게 상기시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일이 생각난다.선진국이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일컫는 것이다. 거기엔 문화생활을 통해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의 여유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넉넉함이 일상화된 곳이라고 하였다.문화와 예술이 고작 경제성장시대에 그것을 증거 해주는 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겼던 세월이 엊그제 같았는데 시대발전의 사조는 지금 우리들에게 문명의 발전된 결실과 아울러 생활문화의 철저한 이행을 동시에 촉구하는 급박한 상황변화를 초래케 하여 어리둥절한 현실을 맛보게 하고 있다.문화는 여러 사람이 함께 삶을 이룩해 가려는 뜻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사람이 없다면 그 존재가치마저 없는 것처럼 문화는 우리 인간만의 전유물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은 문화를 이루며 살려고 하는 것일까.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발전된 사고 의식이 있어 미래의 삶을 보다 낫게 하려는 뜻을 지니고 사는 까닭일 것이다.다른 짐승들은 항상 같은 방법대로 살다가 죽지만 미래를 생각하고 그것을 지향해 가는 동물은 우리 인간 밖에 없기 때문이다.사람에게는 미래 지향의 소망이 있는 까닭에 서로 함께 나누며 누리는 삶의 세계이지 소유되는 대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문화는 서로 함께 산다는 뜻을 사람에게 요구하며 이와 같은 문화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려는 사람을 문화인이라 부르고 문화인에게는 서로 이해하고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의식이 항상 충만해 있어 나보다 먼저 남을 생각해서 행동할 줄 아는 배려하는 마음이 스스로 우러나 남을 존중하고 나를 살피는 겸손한 마음가짐이 우선해야 하는 것이다.또한 문화인은 베푸는 마음이 넉넉해야 한다. 돈이 많고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쉬운 삶속에서도 나누어 먹을 줄 아는 마음씨가 더 훈훈하고 감동적인 법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더 가볍다는 이치를 몸소 실천하는 사람은 어느 부자보다 더 넉넉한 사람이다. 남몰래 서로 행복한 삶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드러나지 않게 기꺼이 봉사하고 헌신하기를 즐거워 하는 당사자를 일컫는 것이다. 무슨 대가를 바라고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 아무런 구김살 없이 어느 누구와도 어울려 살려고 길을 트는 사람이 곧 참다운 문화인인 것이다. 아무리 유명인사거나 부자라 하더라도 배려하는 의식이 결여된 사람은 문화인이 될 수 없다. 나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하고 내 가족일 소중한 것이 아니라 이웃도 역시 소중함을 깨닫고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문화인의 도리인 것이다.그 동안 우리나라는 우여곡절이 많았던 5천년의 역사 속에서 토속 신앙을 비롯한 불교 유교를 이어오는 민족 신앙과 민족사상의 바탕 위에 그대로 우리만의 고유한 민족 정기와 민족 문화를 지켜 왔었다. 그 결실은 인간관계에서 공손하며 삼가 하는 말과 몸가짐의 예의를 마음의 중심으로 무장하였으며 결백하고 정직하며, 부끄러움을 아는 염치를 행동 철학으로 신봉하는 민족혼이 있어서 동방예의지국의 윤리와 도덕을 민족정신의 근본으로 정립하였기에 큰 흔들림 없이 지탱해 왔었으나 시대의 변천에 따라 서구 문물이 물밀 듯이 밀어닥치면서 우리나라는 도덕이라고 하는 자정능력의 정화제를 잃은 사회가 되어 악의 유혹과 번성이 팽배해 지면서 바람이 불면 쏠리고 물결이치면 출렁이는 실로 자주의식이 망각된 현실로 전략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거짓말을 밥 먹 듯 하는 정치인이 늘어났는가 하면 남을 사기치는 소위 사업가들이 판을 치고 남녀를 불문하고 강도행각이 성행하며 심지어는 남의 작품을 표절하는 사이비 작가들이 백주 대낮을 활보하는 몰염치한 파국에 이르고 말아 가히 반 문화인의 천국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천우신조의 조화인지는 몰라도 요즈음 들어 우리 주변에는 있는 자 들이나 과시하며 방자하게 사는 사람들보다도 오히려 어려운 서민 대중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나서서 외로운 이웃이나 불우한 사람들을 찾아 손이 되고 발이 되어 위로하고 돌봐주는 사례가 늘어나고 공익이나 사회 질서 등의 생활문화 쪽에도 방만한 규모의 참여자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는 하늘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고 하는 방중이 되고 있는 듯 싶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이른바 문화인의 이상형이라 할 수 있는 '군자가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는 공자의 주장이 하루 속히 현실화되길 학수고대하면서 이 글을 맺는다./고창문화원장 이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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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8.12 23:02

[새벽메아리] 피서지에서 생긴 두 가지 일

지루한 장마에 이어 불볕더위가 계속되면서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사람들이 떠난다. 유명피서지 국도를 비롯해 고속도로에서 차들이 거북이 걸음을 한다. 필자도 3일간의 휴가를 얻어 부안 위도와 지리산 피아골로 피서를 다녀왔다. 부안 곳곳에는 핵폐기장을 반대하는 노란 깃발 일색이다. 상점마다, 가로등, 전봇대, 부안의 차들은 모두가 깃발 하나쯤은 꽂아 있다. 위도를 향한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격포와 위도사이 잔잔한 바다에서 전날 200여대의 해상시위대의 목소리를 듣는 듯 하다.현지주민이 파란색 수건을 흔들며 환영했다는 방파제가 보인다. 지역에서 사신지 60년이 넘었다는 촌노(村老)를 만나면서 위도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부안의 김종규 군수를 호되게 혼낸다. '모가지가 짤린다고 하더래도 하지 말 것은 하지 말았어야지' '종규, 지가 무슨 힘이 있것는가, 윗놈들이 갖은 협박을 해 댔사니 어쩔 수 없이 했것지, 그래도 종규가 그러면 안되지, 이제 와서 무슨 주민투표여, 넋빠진 놈' 대통령에게도 한 말씀하신다.'노태우, 김영삼, 김대중도 못한 짓을 노 머시기가 저지르고 있다' 'X선, 선, 내가 원자에 대해서는 군부대에서 있어서 잘 알고 있는 데 (내가 이야기 하면) 하루밤도 모자랄 거여. 우랴눔, 플로튜늄 그것이 머신디, 글도 우리 때는 괜찮것지만 우리 손자, 손녀 때는 문제가 되는게 방사능인데, 체르노빌 그것은 원자 폭탄이 터진 것이나 마찬가지여' '위도 사람들도 먼가를 알고 해야지, 3억이네 5억이네 준다고 헌게 다--- 찬성이네, 내가 이야기하면 죽일놈 되고, 낼모레 죽을 사람이 먼 얘기를 하면 들어 준가? 가만이 있어야제'60년지기 친구와 10년만에 만남에서 30분 동안 토해낸 것은 핵폐기장의 위도 유치 문제이다. 12리까지 있는 위도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한데 모으는데는 쉽지 않다고 하시면서 점심이나 먹자고 한다. 위도는 지금도 도로를 내고 개발이 한창이다. 해수욕장 안쪽으로는 공원조성과 조경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작년부터 했다고 하는데, 군수가 취임하고 시작한 공사라고 한다. 시멘트 계단을 위장하려는 듯 인조잔디가 덮여있지만 서해바다를 담고 있는 오목한 해수욕장의 경관을 해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다.훼리호 사건이 발생한지 꼭 10주년이 되는 올 해 위도는 파금장항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령비'가 묵묵히 역사를 지켜보는 듯 하다. 위도를 떠나는 마지막 배에서 바라본 해넘이는 온통 붉은 색이었다가 어느새 '핵폐기장 반대'의 깃발처럼 노란색으로 바뀌고 있다. 이튿날 아침, 오토캠핑을 한다는 지리산 피아골로 향했다. 다행히 일찍 도착한 선배님들이 자리를 확보해 캠핑을 할 수 있었지 매표소 근처에 있는 오토캠핑장은 아침부터 만원사례를 이뤘다고 한다. 입장료, 문화재 관람료로 2,600원을 내고 공원에 들어섰고 해질 무렵이 되자 관리소원들이 차량과 텐트의 크기에 따라 이용료를 받고 있다.주차료 4,000원, 캠핑장 사용료 4,500원을 받아간다. 국립공원내에서 캠핑을 처음 하는 사람은 '왠 사용료냐'고 반박하지만 눈에 띄게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은 없다.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꼭지가 세 개밖에 없는 취사대를 사용할 때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유일한 취사대는 이용객을 수용하지 못해 줄을 서게 하고, 키가 큰 사람도 이용하기 힘든 높고 좁은 식수대는 더위보다 짜증을 더하게 한다. 관리사무소원들이 직접 캠핑체험을 한다면 바로 느낄 수 있고 시정될 수 있을 것이다. 공중화장실은 깨끗한 편이지만 두 개의 세면대중 하나는 고장으로 사용할 수 없다. 그리고 주변에 공중샤워실이 갖추어지지 않아 여성들의 불편이 말이 아니다. 여기서 따져봐야 할 문제가 있다. 지리산 오토캠핑장 이용료는 똑같다. 그런데 편익시설에서 차이가 난다면 시설이 열악한 특정지역을 찾는 이들은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것 아닌가? 균등한 시설로써 이용료를 균등하게 받는 게 상식적인 것 아닐까? 관리사무소원들도 이런 점을 인지하고 있는지 궁금하다.이용객들의 불평등한 대우를 개선하기보다는 어느 지역은 편익시설이 잘 되어있고 어느 지역은 부족하다는 점을 알고 있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자연에서의 평등을 배워야 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계곡에서의 취사행위를 하지 않고 자신들이 가져온 음식물과 쓰레기를 청소하는 성숙한 시민들의 모습, 물놀이에 지체부자유인 7살 자식과 동반한 한 부모의 극진한 사랑은 피아골에서 피서를 더욱 기쁘게 했다.그러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것일까? 민족의 영산 지리산 한 자락인 피아골에서의 느꼈던 우리 일상의 불평등함의 연속은 피서의 뒷맛을 씁쓸하게 한다. /염경형(전주시민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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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8.05 23:02

[새벽메아리] 안타까운 자살은 이제 그만

최근 연이어 보도되는 자살 행동들이 마음을 아프게한다.경제적 어려움과 대학내 구조적.제도적 문제를 비관한 대학강사의 자살,군대내의 성폭행과 구타를 비관한 사병의 자살,성형수술 후유증으로 자살 사이트에서 만난 여성들끼리의 동반자살,카드빛 연체자의 자살,생활고를 못견딘 주부의 자녀와의 동반자살,명문대에 입학하고도 적응을 못한 대학생의 자살,폭력부모의 폭력을 피해 위탁보호된 아동이 부모에게 돌아가기가 두려워 선택한 자살등 모두 보는이의 마음을 안타깝게한다.어느 사건이나 들어가보면 사정이 있고 안타깝다.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하루 평균 19명이 자살한다고한다.OECD 30개 가입국중에서 자살률이 5위라고한다.성인뿐만 아니라 청소년 아동의 자살률이 증가되는 것은 뭔가 대책이 필요함을 시사한다.과연 자살이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혹자는 죽을 용기로 더 열심히 살았으면....하는 바램을 한다. 또 다른사람은 오죽했으면 죽었겠는가?라고 말하기도한다.우리가 당사자가 아닌이상 그들의 절절한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자살행동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에밀 뒤루껭'에 의하면 아노미적 자살유형이 있다. 아노미란 실직,파산,사랑하는사람과의 이별등 생활규범이 갑자기 무너져 버리는 무규범 상태를 의미한다.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은 자기가 처해진 여러 상황이 도저히 못견딜 정도인 공황상태,무규범상태로 지각하여 어찌할 수 없어 혹은 도피,해결의 방법으로 자살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전문가들은 민생안정,사회갈등해소,사회구조개혁,사회안전망의 구축등 사회정책을 강화하면 자살률이 낮아질거라고 기대한다.참여연대 사회복지 위원회에서는 최근의 생활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정신의학자들은 자살의 주요원인은 사회적 문제가 아닌 정신적.개인적문제라고 지적한다.요즘 성인이나 아이들은 그다지 친구가 없어도 살아간다고한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있어도 심심하지않고 즐길 수 있다. 학교에 가서도 모든 친구들이 입시 경쟁자로 자리매김된다. 학교나 직장 가정에서 대인관계를 하고 사는 것이 아니고 대사물 관계를 하며 지낸다.이런 환경이 사람끼리 부대끼고 사는법 친근한 유대관계하는법을 앗아가는 계기를 만들어 사람속에서 사는법을 알지 못하도록한다. 사람은 교육에 의해 변화 될 수 있다.어릴때부터 생명의 소중함,더불어 같이 사는법,나누고 베풀며 사는법,취약하고 어려운 절대 약자들을 돋아주는 법을 교육받아야한다.약육강식,적자생존의 원리는 동물세계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우리 사람은 서로 서로 나누고 지켜주고 살펴주고 돋아주며 살아야한다. 그래야 적어도 동물과 차별화되는 것이 아닌가?심리학에 '자아강건성'의 개념이 있다.자살충동은 그저 죽겠다는 충동이 아니라 죽고 싶은 것과 동시에 살고 싶은 욕망사이의 과정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의미한다고한다. 이 갈등을 이겨내는 힘을 자아강건성이라고한다. 자살한 사람도 다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진자들이었다.살다보면 누구나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어려움에 직면해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 자신을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는 정신의 자주력이 함양되야할 것이다. 최근의 자살보도를 접하면서 사회적안전장치 구축도 보강되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건강가정 육성법 제정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개개인의 정신력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제도권의 학교에서나 가정,사회교육에서도 교육에 의한 정신훈련으로 자신을 강하게 방어.무장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 정신의 자주력,자아강건성이 아닌가 싶다./문영소(전북일보 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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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7.29 23:02

[새벽메아리] 21세기와 여성의 역할

"世上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 00女大!"이것은 서울의 유명한 모 여자대학이 학교를 홍보하기 위해서 내놓은 캐치프레이즈 중의 하나다.여성의 역할이 강조되고, 사회진출이 봇물 터지듯 늘어나고 있는 요즘, 이 홍보 문구처럼 실감나게 미래를 예견한 말도 없으리라.그렇다. 이제부터 펼쳐질 세상은 정말로 여성들의 時代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는 힘과 권력 등을 앞세우던 과학의 시대였다. 그러나 21세기는 바야흐로 소프트(soft)한 것들이 힘을 발하는 지식정보화의 시대이다. 또한 인간의 삶의 질을 최우선으로 하는 문화와 예술의 시대가 될 것이라 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예상하고 있다.이때 제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부드러움]이다. 다시 말해 [유연함]과 [섬세함], 그리고 [아름다움]의 감성이야말로 21세기를 특징지을 수 있는 대표적 성향이다. 결국 이 모든 특징을 고루 갖춘 것은 남성이 아니고 바로 여성이다.여성의 사회진출 두드러져더구나 최근에는 전통적인 여성상을 탈피한 소위 '워커홀릭(workaholic : 일벌레)'이라 불리는 맹렬 여성들의 성공적인 사회진출도 놀랄 만큼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김영사, 월간디자인, 푸른숲, 사계절, 이레출판, 작가정신 등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국내 굴지의 출판사들이다. 이들 출판사를 이끌고 있는 사령탑은 모두 여성들이다. 이쯤 되면 한국 출판업계를 여성들이 선도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우리나라에서 올해에 임용될 예비판사 중 절반이 여성이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학사 학위 소지자의 55%가 여성이고, 의대, 법대생의 절반이 여성이며, 미국 기업내의 최고 경영자중 ⅓이 또한 여성이라고 하며, 아내가 남편보다 고수익을 올리는 경우도 에 달한다고 한다.그러고 보면 "21세기 국가경쟁력은 이제 여성들의 능력에 달려있다"고 했던 클린턴 전 美대통령의 말이 현실감 있게 들리지 않는가?그런데, 이러한 추세에도 불구하고 세계 곳곳에서는 아직도 여성들의 수난이 지속되고 있다. 인도에서는 지참금이 적다는 이유로 매년 수많은 여성들이 결혼 후 살해되고 있다.아프리카의 [수단], [소말리아], [말리]등과 [나이지리아] 주변 이슬람교도 중심국가에서는 여성이 性을 통한 쾌락을 느끼면 안된다는 이유로 '할레'라 불리는 여성 성기의 일부를 절제하는 의식이 지금도 자행되고 있다.러시아를 포함한 동유럽 여성들의 삶의 질과 지위는 공산주의 붕괴 이후 더욱 나빠져서, 심지어는 많은 인터걸들이 우리나라 서비스업에까지 진출하고 있다.여성적 매력이 진정한 힘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수난을 딛고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은 세계적으로 더욱 강조되고 있다.우리 나라에서도 재산의 부부 공동명의화, 가사노동의 분담, 호주제의 폐지 등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그럼, 과연 21세기에 걸맞는 여성의 역할은 무엇일까?그것은 바로 여성들이 더욱 깨어나는 것이다.그래서 일과 자아성취에 과감히 도전하는 것이다. 여성은 '부엌데기'가 아니고 가정을 운영하는 '매니저'임을 자각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또한 누구의 딸, 누구의 부인, 누구의 엄마로 만족하지 말고 자기 이름 석 자를 자신 있게 내걸고, 남성과의 당당한 동반자로 사는 일이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여성은 여성적일 때, 다시 말해 터프한 중성적 이미지보다는 여성다운 매력을 가꾸는데 적극적인 여성이 눈에 띠고 신뢰받으며, 선망의 대상이 된다는 평범한 사실이다. 부드러움이 세상을 바꾸는 진정한 힘인 것이다./윤산학(경기대 총무처장겸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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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7.22 23:02

[새벽메아리] 최여겸의 순교지는 보존돼야

주자학에 찌들 리고 공리공론에 병들어 있던 1784년 봄 조선왕조의 민중들에게 들려온 까치소리는 당시 북경사신행차에 따라갔다가 하느님의 종이 되어 돌아온 이승훈의 복음이었다.그때 짓눌리고 부대끼며 내일이 없이 살아온 민중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일깨워 준 이른바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들여온 천주교의 새 복음은 우리 전북지방에도 당시 호남의 대부호였던 유항검이 복음의 사도가 되면서 그 서막을 열었는데 1791년 진상땅의 선비 윤지충이 모친상을 당해 유교적 제사를 배척하고 천주교신앙을 고집하다가 전주남문 밖에서 외종 4촌인 권상연과 함께 이나라 최초의 순교자가 되면서 이 후 박해 때마다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이 지방 교회(성당)은 밟혀도 베어도 죽지 않는 잡초처럼 되살아 나곤하였다.1801년 6월 정조가 승하하고 순조가 등극하면서 천주교의 지도자들은 칼바람이 일어 잡혀서 순교하거나 나약하여 배교하는 참혹한 박해를 당하였다.특히 전라도 지방은 너무도 처절하게 이뤄져 유항검을 비롯한 천주교 신도의 중심인물 2백여 명이 체포되어 의금부로 압송되었다.이들은 형조와 의금부에서 사교를 믿고 서학인 들을 불러들여 나라를 위태롭게 한 대역부도 죄인으로 몰려 전라감영으로 이송되어 각기 자기가 사는 고을에서 처형시킴으로서 사학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일벌백계의 표본을 삼았던 것이다.윤지충은 고산 윤선도의 6대손으로 고종4촌인 정약전, 약용 형제들과의 교류를 통해 명례방의 김범우와 알게 되어 천주교 입문 서적을 입수하여 그에게서 전교를 받아 입교하게 되었는데 윤지충의 「공술기」에 의하면 무장 사람 최여겸이 찾아와 교리를 배웠다고 하였다. 그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운 최여겸은 충청도 한산으로 장가를 들었는데 여기서 충청도의 사도인 이존창을 만나게 되어 그에게서 다시 교리를 배우고 영세를 받고 독실한 신앙인이 되어 고향에 돌아왔다.그 후 최여겸은 고향에서 열렬히 전교하여 그가 입교시킨 사람은 문헌으로 알 수 있는 사람만 28명이나 되며 무장에 사는 조카 최수천, 최일안 함평의 남중만 흥덕의 김처당 영광고을 양반으로 그의 제자인 이화백등 많은 사람을 입교시켜 그는 전라도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 중의 한사람으로 활약하다가 1801년 7월19일 고향인 무장 개갑장터에서 순교하였다. 순조실록의 순조1년 7월13일 정해조에 보면?호남의 한정흠, 최여겸, 노복 천애 등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여 그릇된 방면으로 인도하고 독실하게 믿으며 따라붙어 익혀서 십계명을 버리기 곤란하고 한번 죽음을 답갑게 받는다고 말하고 있으니 아울러 다시 자백을 받은뒤 전주 감영으로 압송하여 각각 그 고을에서 사형에 처하소서? 이렇게 해서 최여겸 등 세 사람에게 사형이 선고 되었다.「무장 최여겸의 결안초(結案招)」를 보면 그는「처음에는 윤지충을 따라 사설(천주교리)에 마음이 쏠렸고 마지막에는 이존창을 따라 독실히 믿고 익히면서 터무니없는 말로 남을 속여 미혹시켰으며 널리 남녀를 가르치고 종당에는 자신을 망치고 남들까지 그르쳤으니 만 번 죽여도 애석함이 없다.....(운운)」고 되어 있다.여기에서 도리 켜 볼 때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 권상연 등의 사적이 행정구획 변경으로 이미 충남으로 이적된 점을 감안하면 1801년 신유박해 때의 순교자중 호남의 사도 유항검이 그해 9월17일 유중철(요한)이 10월9일 유요한과 동정부부인 이순이(루갈다)가 12월28일 순교한 한 사실과 비유할 때 최여겸은 한정흠, 김천애와 함께 전북지방에서는 최초의 순교자가 되는 셈이다.여기에서 최여겸의 사적은 몇 년 전에 필자가 향토사를 정리하기 위해 서울 명동성당에 있는 한국천주교회사 자료실에서 문헌에 의한 확실한 근거 자료를 뽑아와 천주교회 당국과 지역신문 등에 밝혀 놓은 적이 있다.순수한 신앙적인 성지계발이 아니더라도 지방화시대에 걸맞는 지역문화 관광자원을 발굴하는 차원에서라도 최여겸의 순교지는 우리시대에 꼭 챙겨져야 할 명제가 아닌가 싶다.그런데 얼마 전에 들은 얘기로는 우리지역의 최초의 신유박해 최여겸의 순교지인 무장 개갑장터가 아직도 사적지로 지정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두고 안타까운 감회를 접어 보면서 이렇게 메아리쳐 보는 것이다./이 기 화(고창문화원장)===================================李 起 華 프로필고창문화원장(현)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전북지회장(현)한국문인협회 회원(현)전라북도 문화재 전문위원 역임전국문화원 연합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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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7.15 23:02

[새벽메아리] '공론장'형성과 확대

최근 <지구를 지켜라>라는 영화가 우리 관심을 끌고있다. 대중들로부터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던 영화다. 나는 이 영화의 제목을 보면서 '참 싱겁구나' 생각을 했는데, 곱씹어볼수록 작금의 전라북도 상황과 절묘하게 떨어지면서 '전북을 지켜라'라는 단어가 떠오른다.「전북을 지켜라!」이 말을 듣는 순간,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전북을 지키는 방법'양성자 가속기와 함께 최첨단 산업의 메카로 가는 전북' '새만금만이 전북의 살 길'이라며 보여준 삭발 궐기시위, 'RT산업의 메카, 핵폐기물처리장을 전북에' '전주권 그린벨트 해제 삭발'. 2003년 지금까지 전라북도는 이렇게 전북을 지켜냈다. 2003년의 절반을, 아니 지금까지도 전라북도는 현안사업의 지속추진과 신규사업의 유치만이 전북을 지키고, 전북의 밝은 미래를 앞당길 것이라고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또한 개발과 성장만이 전북을 지켜낼 수 있다고, 200%이상 믿어 의심치 않는 신념과 의지로 똘똘 뭉친 '전북을 지키는 집단'이 형성된 시기가 바로 2003년 상반기다. 개발과 성장만이 전북을 지킬 수 있다는 신념 속에 개인과 집단이 이미 소유한 행정력과 물리력을 총동원하는 전북의 권력집단들! 과연 이들이 전북을 지켜내고, 앞으로도 지켜낼 수 있을까?이즈음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해보자. 개발과 성장도 필요하지만 21세기 시민사회에서 전라북도를 지켜낼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공론장'의 형성과 확대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에서 돈과 권력의 논리로 환원되지 않는 시민사회의 문법을 잘 보여주는 것이 「공론장」이다.이 공론장은 의견의 자유로운 교환과 토론을 통해 공적 의지가 형성돼 민주적으로 이뤄지며, 시민사회 형성의 핵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물론 인터넷의 발전으로 종래의 공론장과 구별되는 사이버공론장이 새롭게 형성됐고, 정치적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하지만 사이버공론장은 현실공간에서의 공론장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하느냐에 따라 시민사회 공론장으로서의 가치를 갖고 현실공론자와 역할을 나눌 수 있다. 왜냐하면 사이버공간에서 이뤄지는 공론은 말 그대로 가상공간에서 벌어지는 것이며, 이 공론이 현실화되는 곳은 엄연히 오프라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송매체와 인쇄매체에 의존하는 현실공간에서의 공론장은 방송과 인쇄매체의 민주주의 성숙도에 의해 형성, 발전, 심화될 것이다.한편 성장단계에 있는 지방자치는 주민의 참여공간을 확대하고, 지방정부와 시민사회(시민단체)의 거버넌스(governance)체제로 나타난다. 참여와 자치의 시대를 넘어 분권의 시대에는 거버넌스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확대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민선3기 더욱 중요한 과제의 하나다. 이를 위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교환되고, 공적 의제를 형성하는 시민사회 공론장의 확장과 발전은 필수적이다.그러나 2003년 전북은 권력과 물리력을 동원한 집단과 자발적 참여라는 가면을 쓴 동원집단의 총궐기 형태의 통치체제를 마련했다. 또한 철저히 지배집단의 의사를 대변하는 방송과 인쇄매체에 의존하는 공론장에서는 소수집단의 의견이 자유롭게 발현될 수 없었고, 지배집단의 이익에 반하는 의견의 교환가치는 전북의 권력집단에 위해하기 때문에 철저히 시민사회로부터 고립시키거나 막대한 물리력을 동원해 분쇄시켜 나가고 있다.결국 이러한 행동은 전라북도 시민사회 형성과 이를 지켜낼 수 있는 공론장을 상실시키고 있다. 공론장이 형성되지 못하는 사회는 건강한 시민사회의 형성도 지역사회 발전을 기대할 수 없으며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는 사회로 전락할 것이다.획일적 의견 경계해야이제 전북에 획일적인 의견과 기존 기득권 지배권력집단만의 이해가 관철되는 사회를 극복해야만 한다. 전북을 지켜내고, 궁극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공론의 장이 필요한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시민사회를 선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시민단체들이 자기 성찰과 더불어 공론장 만들기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시민단체가 갖고 있는 역동성과 건강서을 공론장이라는 현장에서 발휘해야한다. 방송매체와 인쇄매체에 너무 의존해서도 안되겠지만, 방송과 인쇄매체가 제자리를 찾도록 감시, 견제하는 역할을 강화하는 것도 요구된다.한편 전북을 지켜낸다고 과신하고, 돈과 힘으로 지역사회를 이끌어 가는 집단에게 '자기 성찰'을 강력하게 제기하는 선진 지식인의 역할도 기대하는 바이다. 2003년 「전북을 지켜라!」그것은 공론장을 통해 가능하다./염경형(전주시민회 사무국장)*염경형씨는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을 수료하고, 현재광주고법전주부유치추진위 사무처장과전북수돗물불소화추진위 사무국장, 그리고 94년부터 전주시민화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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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7.08 23:02

[새벽메아리] 지금의 위기 발전의 기회로

언젠가 어느 기업인이 자신의 성공은 불우한 환경덕이라고 말한 것을 들은적이 있다.언뜻 듣기에 불우한 환경 때문에 성공했다고? 귀를 의심했다.그 기업인은 어릴 때 부모를 다 잃고,태어날때부터 몸이 약했고,부모도 없고 가난한 환경 때문에 학교도 다닐수 없어 배움도 없었다는 것이다.어려운 환경이 사람을 좌절하게 만들고 포기하게 하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위험,어려움을 극복하게하는 도전정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고행프로그램 참가시키는 이유그 기업인은 본인이 처해진 열악한 환경이 자신을 노력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자신이 불우한 환경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노력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러한 환경을 극복하지 않았다면 사회에서 낙오되고 살아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요즘 우리 사회는 보는이에 따라서 많이 혼란스럽고 방향이 없는 듯 보인다.철도노조가 파행운행을 하고,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물류대란이 생겨 수출에 차질이 생기고, 특검후유증으로 여.야가 첨예한 대립을 하고, 어린이나 여성을 유괴 납치하는 몰염치한 강력범죄가 사회면을 채우고, 새만금 문제등 모든 문제들이 매끄럽게 풀리질 못하고 있다.며칠전 김수환 추기경은 지금의 한국실정을 '망망대해에서 태풍을 만난 배'와 같다고 비유했다. 국가의 원로가 현시국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렇게까지 말을 했을까싶다.대힌민국이라는 배에 탄 우리 국민이 느끼는 두려움,무서움은 거의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선장은 승객이 출렁 거리지 않고 멀미나지 않도록 승객을 안정시키고 방향을 잘 잡아 안전한 운항으로 목적지에 도착을 시켜야할 것이다.야생화가 아름다운 것은 노지에 노출되어 갖은 풍상을 이겨내고 살아난 결과일 것이다.사람도 혼란,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면 건강하게 자랄 수 없을 것이다.우리가 가정에서도 아이들을 키울 때 요즘 아이들은 너무 물자가 풍요롭고 아쉬울 것도 없고 부족한 것도 없어서 나약하게 큰다는 것이 문제라고한다.그래서 아동학자들은 아이를 강하게 키우려면 부족함, 결핍을 체험하게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여름방학이 되면 어린이들에게 고행 프로그램에 참가시킨다는 학부모가 느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주변을 돌아보면 감사할일이 많다. 저소득층의 자녀들을 무상으로 숙제지도와 부족한 학과지도와 공동체 생활을 통해 타인과 관계하는법과 마음사용하는 법을 교육해주는 시민단체도 있고 장애인 부모회에서 초등장애아동들을 데리고 방과후 세상나들이하는 프로그램으로 대학을 견학시키고 백화점과 은행 패스트푸드점등의 시내를 체험한다는 훈훈한 얘기도 있고, 어느 대학의 의료봉사대는 국경을 초월하여 아프리카의 열악한 의료서비스 사업에 의료봉사를 하고 치료에서 소외되는 빈곤계층을 위해 봉사하고 있음은 진정 이웃을 사회를 인류를 위한 훈훈한 따뜻한 뉴스이다.조금씩 양보하고 나눠야몇 년전 IMF때보다 경제적으로 더 힘들게 느끼는 국민이 많다고한다.철도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는것도 나름대로 분명한 이유가 있겠지만 지금 우리나라에는 실업을 하여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구직자들을 생각한다면 조금씩 양보하고 이웃과 나눌줄아는 너그럽고 따뜻한 마음이 필요한 시기이다.어렵겠지만 우리 국민도 힘든 환경을 원망만 하지말고 성장,발전의 기회를 준 찬스라고 감사한 마음으로 돌리고 곳곳에 노출되어 있는 위험,혼란,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해 낼 수 있는 힘과 마음가짐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그렇듯 국가도 건강하고 강한 국가로 바로 서기 위해서는 지금의 혼란, 위험,어려움을 공부거리로 체험하여 발전 성숙의 기회로 삼았으면하는 소박한 마음을 가져 본다./문영소(정읍시 행정개혁위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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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7.01 23:02

[새벽메아리] 양심적으로 일하면 손해?

'집안 망하려면 송사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소송을 하는데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또 소송을 하게 되면 상대방과 원한이 사무칠 정도로 감정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송은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보아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비로소 할 수 있는 일이다.처음 광주에서 변호사 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교통사고 피해자 가족이 보험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하겠다며 찾아왔다. 사고 경위와 피해 정도를 듣고 피해자가 받을 수 있는 금액을 계산해 보았더니 보험회사에서 제시한 금액과 몇 백 만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합의가 낫겠다고 말했더니변호사 입장에서는 소송을 하겠다고 찾아온 사람에게는 특별한 설명을 할 필요 없이 착수금을 받고 소송을 시작하면 된다. 게다가 교통사고 사건은 경찰에서 사건 조사까지 다 마친 경우이기 때문에 입증에 특별한 어려움이 없는 편이라 변호사들이 선호하는 사건 중의 하나이다. 또 보험회사를 상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송이 끝나고 난 후 성공 보수를 받는 것도 어렵지 않다.그러나 위 사례의 경우에는 보험회사에서 제시한 금액이 상당히 고액이라 소송을 하더라도 오히려 시간과 비용 면에서 손해일 것 같아 변호사 비용과 소송비용이 어느 정도 들고 시간이 얼마나 걸리니 그 정도 금액이면 소송을 하는 것보다는 보험회사에서 제시한 돈을 받고 합의를 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당사자는 양심적인 변호사를 만났다고 고마워하기는커녕 많은 돈을 받을 자신이 없어 소송을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냐며 오히려 나를 비난하는 투로 말을 하는 것이었다.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전주에서도 위와 유사한 일이 몇 번 있었다. 소송을 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을 하였지만 결국 다른 변호사를 선임하여 소송을 하는 것도 보았고, 다른 사무실에 가서 이상한 변호사라며 욕을 하였다는 이야기도 들어 보았다.한의원을 하고 있는 오빠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하였더니 자신도 비슷한 경험이 많이 있었다고 하였다. 보약을 지어 달라며 찾아온 사람을 진찰해 보았더니 비싼 녹용이 들어 있는 보약보다는 그보다 저렴한 녹각이나 다른 한약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 그러한 이야기를 하면 크게 실망을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단다.그건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에 대한 연민이 있기 때문에 한의원에 찾아올 때는 한의사가 자신의 건강에 대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적절하게 걱정을 해 주며 비싼 약을 권하기를 오히려 바라며 찾아오기 때문이라나.상황 맞춰 무엇이 최선인지 고려그러면서 변호사 사무실에 찾아올 정도가 되면 상대방과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소송을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선임을 해서 양심적으로 일을 처리해주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였다.그 뒤로는 사무실에 상담을 하러 온 사람들이 진실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애를 썼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담을 하러 우리 사무실에 찾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무실 몇 군데를 거친 경우가 많아 사건에 대해서도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도 내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결국 의뢰인의 진심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상황에서 무엇이 최선인가를 판단하려 애를 써보려 한다. 그것이 법률이라는 전문 지식을 가진 변호사들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황인경(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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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6.24 23:02

[새벽메아리] 외경과 연민 가슴에 안고

눈에 보여 지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말이나 글, 때로 눈빛으로라도 여러 사람이 한 사람 "죽이기(?)"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숱하게 보아왔다.그 때 그 순간 나름대로의 합당한 이유와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워 마땅히 "죽어줘야 할 존재"로 규정하고 합법적으로 포장해서 한 개인의 삶을, 한 집단이나 국가의 삶을 잔인하게 짓밟고 유린하면서도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하나의 흐름"으로 여기면서 살아가게끔 하는 그 분위기와 여건 속에 우리는 실제로 당하는 피해자의 모습으로, 때로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로, 때로 침묵하는 방관자의 모습으로 서있을 때가 많은 것이다.언론매체의 역기능 다룬 영화"지구촌 생중계"란 말이 너무나 당연한 일상용어로 정착하면서 이제는 먼 나라의 살벌한 전쟁도 안방에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환경 속에서 우리는 오늘날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가를 실감한다.또한 이제 어지간한 사건을 보아도 별로 흥미를 못 느끼는 우리에게 보다 더 쇼킹하고 보다 더 신기하고 보다 더 엽기적인 가십거리를 제공하려는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눈물겨운 노력(?) 속에서 과연 이러한 현실이 항상 좋기만 한 것인가? 정말 바람직한 것인가?"우리 모두가 그를 죽였다."_영화 "MAD CITY"의 마지막 대사이다. 지난 2000년도에 개봉한 영화 "매드 시티(Mad City)"는 그러한 매스 커뮤니케이션 환경 속에 살아가는 우리가 과연 행복한가를 진지하게 묻는 영화 중의 하나이다. 한때 방송국의 인기기자였던 맥스라고 하는 사람은 메인 앵커와의 불화로 지방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었다.그러나 그는 늘 본사로 돌아가길 희망하며 특종을 노리고 있지만, 지방 방송국에서는 그에게 평범하고도 시시한 기사만을 다룰 것을 요구할 뿐이다.그러다가 어느 날 그는 한 지방 박물관의 예산 감축 소식이나 취재하라는 지시에 박물관으로 갔다가 예기치 못한 사건을 취재하게 된다. 예산 감축 때문에 해고당한 그 곳 박물관 경비원 샘이라는 사람이 박물관 관장을 찾아와 "다시 한번 고용해 달라"고 애원하다가 거절당하자 겁을 주려는 마음으로 총을 꺼내게 되는데, 그 순간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총이 발사되어 다른 경비원이 총에 맞게 되는 불운한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설상가상으로 총소리를 들은 경찰이 출동하게 되자, 샘은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박물관을 견학하던 어린이들을 위협하는 인질범이 되어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이 된다. 마침 그 자리에 있었던 맥스도 기회다 싶어 이 광경을 TV로 생중계를 하게 된다.또한 맥스의 유도로 샘은 치밀한 인질범으로 둔갑하며, 언론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건을 유도 하게 된다. 결국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너무 커져버린 상황을 견디다 못해 샘은 스스로 자살하게 되는 것으로 이 영화는 결말을 맺는다.이 영화 속에서 인질범으로 몰린 샘은 원래 그렇게 악한 인간은 아닐뿐더러 그는 단지 해직에 대한 불만을 터뜨린 것이었지만 상황은 좋지 않게 전개되고, 그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시청률을 올리려는 방송인들의 비열한 모습을 이 영화 속에는 그려지고 있다.그리고 그 종말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다. 그의 죽음은, 그렇게 미쳐가는 도시에서, "우리 모두가 그를 죽였다 (We all killed him)" 라고 절규하는 맥스의 목소리가 변명처럼 들린다. "다 죽이고 나서 죽이는 맛을 본 산 자들이 하는 구차한 변명"인 것이다.이 영화는 언론매체에 의해서 한 사람이 어떻게 왜곡되고 파괴되어 가는지 보여주면서, 그러한 현실이 단지 영화 속의 가상현실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불행한 사실임을 일깨워줍니다.매체 종사자들 진정한 보람은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역기능을 부각시키려는 의도 때문이 아니다. 커뮤니케이션 매체 종사자들이 그들을 그들이게끔 하는 그 힘,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그들 자신을 진정으로 감동하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그 보람과 의미가 무엇인가를 묻고 싶은 것이다.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볼 때, 세상이 자신에게 좀 더 공평하고 존중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다른 이들도 그러한 당신들과 다를 바가 없는 연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에 경의를 표해주기를 바랄 뿐이다.하늘(=신)에 대한 외경(畏敬)과 인간의 대한 연민(憐憫)을 가슴에 안고서 자신들의 일에 성실할 때, 진정한 보람과 기쁨이 있을 것이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분들에게 종교적인 경건함을 가지고 존경과 사랑으로 무릎을 꿇는다./서석희(천주교 전주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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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6.17 23:02

[새벽메아리] 이제는 관리된 성장이 필요하다

모든 그릇이 그러하듯이, 밑이 빠지지 않은 그릇이라면 그 그릇이 담을 수 있는 물적 한계, 즉 용량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도시도 마찬가지이다. 도시가 그 시대를 담는 그릇으로 표현되듯이 도시 역시 그 도시마다 담을 수 있는 능력, 용량이 있다.구체적으로는 개발 가능한 토지자원의 면적, 공급 가능한 수자원의 양과 질,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상수관망의 규모, 자동차의 흐름을 수용할 수 있는 도로의 폭,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수용 가능한 인구규모 등이 그것이다.대표적인 부작용 '난개발'우리가 그릇이 지니고 있는 용량을 벗어나 과도하게 담고자 할 때 그 그릇은 깨어져 버리거나 넘쳐흐르듯이, 도시 역시 그 도시가 지니고 있는 용량을 벗어나 담고자 할 때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하며, 그 중의 하나가 난(亂)개발이다.그리고 지난 40여 년간 우리의 도시공간 - 국토공간도 마찬가지임 - 에서 나타난 여러 부작용 중에 대표적인 현상 또한 난 개발이다. 바꾸어 말하면, 도시라는 그릇이 지니고 있는 능력의 한계에 대한 고려 없이 무작정 담고자 하였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즉, 각 도시가 지니고 있는 용량을 고려하지 않은, 개발일변도의 '관리되지 않은 성장'이었다는 것이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종래의 '관리되지 않은 성장'에서, 각 도시가 지니고 있는 용량을 고려하면서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관리된 성장'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즉, 개발로부터 보전되어야 할 토지를 이용한다든지, 도시의 무계획적인 외연적 확산과 같은 잘못된 방향으로 토지를 이용하는 것을 방지하면서, 변화하는 도시활동을 담아 내도록 그 그릇의 크기를 계속 키워 나아가되 그 용량을 넘어서는 도시활동의 팽창이 일어나지 않도록 성장의 정도와 시간을 조절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최근 전주권 그린벨트(법적 용어로는 '개발제한구역' 임)해제 후의 토지이용문제와 관련하여 전주시와 환경부간에 첨예한 대립이 있었으며, 환경부의 태도에 분노한 전주시의회 의원들의 삭발사태까지 발생하였다.필자 역시 그린벨트를 해제하게 된 근본적인 의미를 생각해 볼 때 환경부의 처사는 매우 이해하기 어려우며,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환경부의 불편한 심기를 전주권 그린벨트해제문제에 표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씁쓸하기도 하다.한편 건설교통부에서 지침으로 정한 그린벨트해제 후의 용도지역 지정에 있어, 개발이 극히 통제되는 보전녹지지역 및 생산녹지지역의 비율과 상대적으로 개발이 쉬운 자연녹지지역의 비율을 60% 대 40%로 수준으로 하라는 것 역시 다소 어리둥절하게 한다. 자연녹지, 생산녹지, 보전녹지의 지정기준을 정하면 그만이지 이것을 굳이 6 : 4라는 비율을 지정할 것을 규제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서이다.성장의 속도-시간 조절을그러나, 이러한 환경부나 건교부의 태도에 대해 한 가지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까지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 보여 준 행태 - 특히 민선자치시대 이후 - 에 대한 우려로써, 보전보다는 개발을 우선하는, 관리되지 않은 성장을 걱정하는 것이라는 점이다.따라서 전주시는 이러한 우려와 걱정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도 그린벨트에서 해제되어 자연녹지지역으로 지정되는 지역은 물론 도시 전체를 하나의 그릇으로 인식하고 그릇의 크기에 따라 성장의 속도와 시간을 조절하는 '관리된 성장'을 추구하여야 할 것임을 이 기회를 빌어 강조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의 필요성은 비단 전주시만의 몫이 아님도 아울러 역설하고 싶다./이양재(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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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6.10 23:02

[새벽메아리] 전북발전 합의로 '실익' 최대화

전북이 뜨겁다. 세 번 육신을 던지고 한 번 영혼의 바닥을 만난다는 삼보일배의 진기한 풍경 반대편에 새만금 중지는 '전북홀대'라며 목청을 높이는 애향운동의 대열이 이어진다. 양성자가속기-방폐장 유치 찬반의 뜨거운 대치선에 전주권 그린벨트 해제를 위한 시의원들의 '삭발투쟁'이 보태지면서 지난 한달 여는 전북과 전국을 연결하는 이슈들에 몸이 달궈진 채 정신 없이 지나온 것 같다.'현안' 한발자국 물러서 바라보면이 모든 논쟁과 대치의 한 복판에 낙후된 전북의 현실이 있다. 오랜 개발소외에 붕괴된 농업이 더해지면서 2백만 인구도 무너져 내린 전북의 낙후가 계량화된 지수로 제시될 때 그 누구도 전북발전을 위한 '개발' 유치의 절박한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환경, 미래의 가치 어쩌고 하는 배부른 소리 할 것 없이 정부예산을 어떤 식으로든 끌어와야 전북이 발전할 수 있다는 단선논리가 전북도민을 사로잡는데는 이런 현실의 블랙홀이 자리잡고 있다.그런데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지점을 전북 바깥 쪽으로 한발자국만 옮겨놓고 보면 또 다른 관점에서 이 논쟁들을 바라보게 된다.전북지역 주민들 일부에게 새만금과 전주권 그린벨트 문제 해결에 가장 큰 걸림돌로 '공인'되고 있는 환경부의 항변을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번 들어보자. 새만금에 대한 근원적 찬반논쟁을 떠나서 새만금 자체의 성공을 위해서도 새만금호로 유입되는 각종 오염물질을 최소화시켜야만 하고 이를 위해서 전주권 그린벨트를 보전녹지로 묶어둘 수 밖에 없다는 환경부의 주장은 그 자체로 거부하기 어려운 진실성을 담고 있다.그렇다고 전주시 입장에서는 거도적으로 지지운동을 벌이고 있는 새만금사업을 반대하기도 어렵다. "새만금은 새만금이고" 다른 지역사람들, 특히 정부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모순된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전주권 그린벨트 주민들의 절박한 요청이 현실적으로 반영되려면 새만금 사업이 다른 방향으로 조정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이 냉정한 객관현실이다. 전북지역 시민사회단체와 교수들의 새만금 대안에는 이런 이중적 고민이 담겨 있다.지금까지 진행된 방조제 공사를 무로 돌리지 않고 최대한 활용하는 대안적 개발방법을 찾되 새만금호와 간척지 확보를 상당 부분 포기함으로써 환경생태적 가치와 지역개발의 절박한 요구를 함께 수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대안 찾기는 아직 반향이 적다.전북도를 비롯한 새만금 절대추진론자들은 어떤 형태의 우회나 축소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에서 한 발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새만금을 둘러싼 중앙부처와 국회 등 정책결정권자의 변화 조짐을 오로지 지역간 대립, 반대론자들의 개입과 음모로만 몰아부칠 뿐 전북지역의 '실익'을 중심으로 정치적 힘을 모아낼 생각과 실천이 없는 것이다.치켜올린 손을 내리고 꼼꼼하게 한 번 따져보자. 환경문제는 둘째로 접어두기로 하자. 농림부 주관의 간척사업 진행과정에서 전라북도는 정부안 어느 곳에서도 확정된 적 없는 복합산업단지 등 '꿈의 전북'을 주민들에게 주입하면서 전북을 살릴 '유일한' 안으로 새만금을 자리잡게 하는데는 성공했다.그런데 전라북도의 무책임한 선전공세를 뒷받침할 아무런 정치적 보장이 없는 판에 애초 사업목적인 대규모 농지 조성의 타당성은 중앙정부 차원에서부터 의심 받고 있다. 전북이 꿈꾸는 서해안중심지-동북아물류기지-대중국교역의 중심창구 구상은 당장 인천, 평택을 비롯해 다른 지역과 충돌한다.다른 지역 정치권의 견제 등 모든 정치적 난제를 통과한다 하더라도 현재의 준비 정도로 보아 10년 이상을 기다려야 가능한 구상이기 때문에 급변하는 동북아 정치경제 흐름에 맞추어내기 어렵다는 결정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 지난한 첩첩산중을 뚫고 나갈 정치적 명분이 전국적 판도에서 보면 취약하다는 것이다.정치적 명분서 주도권 확보해야이런 정황에서 전북발전을 공통분모로 현재의 대결구도를 '역발상'해보면 어떨까. 반대론자들의 투쟁 덕분에 새만금은 세계적인 생태환경의 명소가 되었다. 부러 돈을 퍼주고 홍보해야 할 관광자원의 브랜드 인지도를 극히 적은 비용으로 확보한 조건에서 새만금을 농지에서 생태환경의 보고로 재조명하게 하는 것이다.방조제를 환경과 개발이 중간지점에서 타협한 기념비적 건축물로 위치 지우고 군산 인근 새만금개발구역 상단 부분을 신항과 연계되는 부분개발지역으로 확정, 조기에 집중 투자한다. 새만금 전체를 개발하는 문제로 지금 같은 환경논쟁을 거듭하는 구도보다 현재의 대결구도를 지양하여 정치적 명분에서 전북지역이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이 길은 진정 현실적으로 이루기 어려운 일일까.지역사회의 합의를 먼저 끌어내 중앙부처를 압박하는 역발상, 현실을 바탕으로 실익을 최대화하는 열린 정치력이 어느 때보다 아쉽다./이광철(개혁국민정당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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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6.03 23:02

[새벽메아리] 있어야 할 권위마저 무너진다면

민주화가 진행됨에 따라 권위주의가 청산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면서 권위적, 권위주의적인 것은 모두 배격되어야 하는 것이 절대 진리인 양 되어 버렸다. 그에 따라 어떤 권위도 모두 구태의연한 것으로, 권위를 말하는 사람은 모두 구시대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것으로 치부하면서 어떤 직역, 어떤 사람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그러나 권위란 사전적으로 '다른 사람이 신뢰할 만한 뛰어난 지식이나 기술'을 의미하는 것에 불과하며, 그 단어 자체에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는 않다.위증때문에 오판, 권위 무너져몇 달 전 전주지방법원 형사법정에서 판결 선고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재판장을 향해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여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이 있었다. 물론 그 사람은 평범한 시민이 아닌 조직폭력배였지만, 이미 법정이나 재판장의 권위는 예전과 달리 존중되고 있지는 않은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재판장이 법정에 들어오면 법정이 개정되는데, 그 때 법정의 경위는 법정 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리에서 일어서도록 하고 재판장이 자리에 앉으면 그 때서야 사람들에게 자리에 앉도록 한다. 그리고 변호사들은 대부분 법정에 들어오거나 나갈 때 재판장을 향하여 가벼운 목례를 한다.권위주의가 청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행동부터 없어져야 한다고 할지도 모른다. 필자 또한 처음 변호사가 되어 법정에 드나들면서 재판장을 향해 목례를 하는 것이 너무 어색하여 간혹 이를 생략하거나, 얼렁뚱땅 하는 둥 마는 둥 하기도 하였다.그러나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지 4년째가 되어 가는 지금에는 오히려 처음에 비해 더욱 열심히 재판장을 향해 목례를 한다. 갈수록 법정이나 재판장의 권위가 인정되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법정이나 재판장의 권위는 판결의 신뢰와 존중이라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다른 직역의 권위보다 훨씬 중요하다.그런데 법조계의 권위가 무너진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법조계에 있는 사람들이 비난받을 행동을 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겠지만, 그보다도 검사의 결정이나 판사의 판결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 생각한다.재판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면 대부분 경험해본 일이겠지만, 위증을 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경찰서나 검찰청에 참고인으로 출석하여, 또는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서 선서를 하고도 자신의 말이 사실과 다름을 알면서도 거짓을 말하는 것이다.사건의 실체(진실)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당사자들의 말만을 듣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검사나 판사들은 참고인이나 증인이 거짓을 말하는 것도 모르고 결국 잘못된 판단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도 일반인들은 검사나 판사가 상대방으로부터 청탁을 받았느니, 돈을 받았음에 틀림없느니 하며 검사나 판사를 원망한다.혼란스러운 사회, 권위 바로서야이처럼 위증으로 인한 오판이 법정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무너진 법정의 권위로 인하여 태연히 위증을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요즘처럼 혼란스러운 사회일수록 가정 내에서 부모의 권위가, 학교에서 선생님의 권위가, 직장에서 상사의 권위가, 그리고 법정에서 재판장의 권위가 서야 사회가 바로잡힐 것이다. 물론 존중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존중받을 행동을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황은경(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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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5.27 23:02

[새벽메아리] 사랑의 방정식

"내게 시간이 허락된다면 나는 나의 문제와 내 병을 내 스스로 고칠 자신이 있어."작년 초에 개봉되었던 영화 "Beautiful Mind"의 주인공 존 내쉬가 그의 아내와 그의 치료를 맡은 의사에게 말하는 장면이다. 대학생 때 이미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 이론을 뒤집으며 학계를 놀라게 하고 연속되는 출세의 행진으로 어린 나이에 미국 최고 암호전문가가 된 그는 뜻하지 않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수-논리로 풀수없는 걸 찾았다"바로 그것은 자신은 천재라는 사실, 그러기에 항상 뭔가 달라야 된다는 그의 강박관념이 '자신이 세계를 구하는 일을 하고 있다.'라는 과대망상증과 정신분열증에 걸리게 된 것이다.처음에는 그런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결국은 그동안의 정황과 그 결과로 자신도 인정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이 '고장이 나 있다.'라는 것을 수긍하는 순간에도 그는 자신의 병이 어디서부터 고장 나 있는지를 그가 신봉하는 수의 논리로 풀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합니다.그도 그럴 만큼 그는 '사물에 가치를 매기길 좋아하고 행운을 믿지 않는다.'는 그의 신념이 자신을 성공시켰다는 듯이 그로 인해 비롯된 자신의 병도 고칠 수 있다고 항변하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담당의사는 책상을 치면서 바로 그런 생각과 머리로부터 병이 비롯된다고 정확하게 지적해 준다.자신의 능력만이 자신을 세워줄 수 있는 토대라고 생각했던 그의 자신감이 전에는 천재이기에 과연 그럴 수 있다고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지만, 이미 삼각한 병에 걸려있는 그의 모습에서 비롯되는 그의 말 속에는 스스로 자신을 들어올리는 신의 위치에 서려다 그 정반대의 나락으로 떨어진 초라한 인간의 모습으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어쩌면 사물의 가치를 매기기 좋아한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그 자신마저도 가치를 그렇게 매겨왔던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최고의 가치를 매겼다가, 최하의 가치를 매겨야 되는 그 심정은 어떠할까? 적어도 거기에서 그는 냉정할 수가 없었고, 거기에서 외로움과 슬픔 속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2.자신의 모든 것을 자신의 능력의 토대 위에 세웠던 존 내쉬의 자력신앙, 그래서 비참한 외로움과 고독에 빠진 그에게 유일하게 그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아내 알리샤는 다가가 이렇게 말한다. "뭐가 현실인지 알고 싶어?" 그리고 그의 손을 그녀의 가슴으로 끌어당기며 "이 느낌, 이것이 바로 현실이야. 당신이 꿈에서 깨어나는 지름길은 어쩌면 거기-남편의 머리를 가리키며-가 아닌 여기-자신의 가슴에 손을 남편의 손을 얹으며-에 있어. 나는 기적을 믿어."라고 말한다.결국 그런 아내의 항구한 노력에 의해서 존 내쉬는 그의 병으로부터 벗어나서 훗날에 경제학자로서 최고의 영예인 노벨경제학상을 받게 된 것이다.수상식에서 그는 젊은 날의 모습을 상기하면서 이렇게 연설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수의 논리를 믿어왔습니다. 수에 의해서 모든 것을 분석하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진정한 논리입니까? 그러나 저는 이제 와서 수나 논리로 풀 수 없는 신비한 사랑의 방정식을 찾았다"면서 그는 모든 영광을, 그리고 그가 살아있는 이유를 그의 아내의 사랑 안에서 찾았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머리가 아닌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그래서 약간은 더듬거리는 말로 그의 아내에게 "당신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요, 내가 살아가는 이유"라고 고백한 것이다.급변하는 세상, 진정 필요한 것은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어제와는 현저히 다르게 느껴질 정도로 그 발전의 속도를 늦추지 않는 현실,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만큼 이제 인간은 신의 영역이라고 하는 신성한 곳까지도 점령해 나간다는 자신감과 거기서 비롯되는 실험정신 속에 우리가 진정 얻어가는 것은 무엇이고 잃는 것은 무엇일까?기적과 행운을 믿는 것은 나약한 자들의 '지푸라기 잡는 심정'일 뿐 이제 신의 영역은 앞으로 분석되어져야 할 과제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 분위기 속에 우리 안에 자리를 잡는 것은 젊은 날 존 내쉬의 오만과 객기가 아닐까? 그러면서 우리의 내면은 행복한가? 나날이 발전해 나가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존 내쉬가 깨달았던 "사랑의 방정식"이 아닐까?/서석희(신부, 가톨릭 전주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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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5.20 23:02

[새벽메아리] 근무시간 단축따른 충격 준비됐나

얼마 전, 주5일 근무제에 대해 글을 쓴 필자에게 평소 알고 지내는 원로 한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분의 말씀요지는 왜 '주5일 근무제'이냐?, 휴무일의 증가에 의미를 둔 '주휴(週休) 2일제'라고 하면 안 되느냐는 것이었다.이에 대해 필자는 매우 흥미로운 발상이지만, 실제 '주5일 근무제'와 '주휴 2일제' 모두 정확한 표현이 아니며, 정확하게는 '근로시간의 단축'이라고 말씀드린바 있다.근무일수 축소 더 큰 의미부여즉, 외환위기이후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를 통한 고용안정을 위해「노동기준법」제49조 제1항에서 정하고 있는 법정 근무시간을 현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하고자 하는 것이지, 근무일수를 일주일에 5일로 법제화하거나 휴무일수를 일주일에 2일로 법제화하자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다만, 근로기준법 제49조 제2항의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하루 최장 8시간의 근무를 전제로 할 때 일주간 40시간이라는 근무시간은 자연히 주5일 근무제가 되기 쉬운 까닭에 '주5일 근무제'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시각은 정확한 의미인 근로시간의 단축보다는 근무일수축소의 가능성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하였다.그리고, 저공(狙公)의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속담을 인용,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같은 7곱 개의 도토리라도 아침에 3개 주고 저녁에 4개 주는 것보다 아침에 4개 주고 저녁에 3개 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면 굳이 마다할 필요가 없듯이, 휴뮤일증가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주휴 2일제'라는 용어도 공식화된 제도적 용어로 사용하기는 어려울지는 몰라도 굳이 거부할 필요는 없다고 하였다.미국시민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단어중의 하나가 'TGIF(Thank God it's Friday')이다 - 유명한 미국의 레스토랑인 TGIF도 이 TGIF를 모방한 것임. 다만 G.가 'God'이 아니라 'Goodness'임-. 우리말로 표현한다면 "고마워라 금요일이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근무의 마침을 고마워하는 것인지, 휴일의 시작을 즐거워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의 생활에도 곧 이 'TGIF!'라는 외침이 일상화될 것임이 분명하다. 작금의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여가관련 상품의 판매액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최근의 언론보도는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그러나, 필자가 본 지면을 빌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의미를 올바르게 전달할 수 있는 정확한 용어의 사용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변화가 가져올 사회적 충격을 예측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에 관심을 갖는 것이라는 점이다.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지금으로부터 21년 전, 해방 후 37년간이나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여 온 '야간통행금지의 해제'가 얼마나 많은 사회적 변화를 가져 왔으며, 또한 야간통행금지의 해제가 가져 올 사회적 변화에 대처하지 못함으로 해서 발생한 많은 사회적 혼란 - 하나의 예로서 유흥업소를 중심으로 한 퇴폐향락적인 심야문화의 - 도 기억할 것이다.야간 통금해제보다 더 큰 변화법정 근로시간의 단축과 이에 따른 근무일수의 축소는 21년 전의 야간통행금지의 해제가 가져 온 사회적 변화보다도 훨씬 큰 폭발력을 지니고 있음이 틀림없다. 필자가 관심을 갖는 도시공간변화와 관련하여서도 원거리 교통의 확대, 주거공간과 업무공간의 집중과 교외지역의 발달, 쇼핑의 원거리화와 주말에의 집중, 교외지역으로의 업무공간 이전 등의 변화가 예견된다.더욱 큰 문제는 근무시간의 단축이 가져올 부정적인 영향이다.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간의 삶의 질의 격차확대, 사교육비의 증가와 청소년의 탈선우려, 가족해체 등 탈 가족주의의 확대 등이 그것이다.이제 주5일 근무제 내지 주휴 2일제의 전면적 실시와 함께 TGIF가 우리의 생활철학으로 자리잡게 될 날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점에 있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변화가 가져올 사회적 충격에 대한 준비, 특히 부정적인 영향에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찾는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뛰기 전에 살펴 보라!/이양재(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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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5.13 23:02

[새벽메아리] "개혁세력의 통합, 정치판을 바꿔라"

선거판이란 말이 있다. 정치판, 난장판처럼 보통 '판'이란 말을 갖다 붙이면 긍정 보다는 부정의 의미가 강하게 배어 나와 입에 담기가 거북스러운 탓에 애써 피하는 말 중에 하나다.바로 그 '판'의 한복판 소용돌이에서 수 주일을 있다 빠져나오니 세상살이가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개혁국민정당 지도부의 한 사람으로 유시민 후보와 함께 고양시 덕양갑 일원을 샅샅이 누비고 다니면서 우리 정치현실의 현주소에 대해 다시 자문하게 됐다. 25% 안팎의 역대 유례 없는 낮은 투표율이 보여주듯 우리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냉소와 비판은 '한 표'를 청하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거리에서, 생활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시민들은 "열심히 하겠다" "정말 깨끗하게 하겠다"고 고개 숙이며 말씀드려도 "선거에 나와서는 다 그렇게 말한다" "당선되고 나면 하는 짓이 다 똑같다"며 손사래를 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선거 현장에서는 우리 사회의 갈등구조를 알몸 그대로 보게 된다. 어느 선거에나 단골메뉴인 '토박이' 논쟁, 호남향우회, 영남향우회 줄줄이 이어지는 지역 연고와 아파트 평수로 표현되는 계층간의 미묘한 대립, 더 많은 예산과 도로를 요구하는 주민의 요구와 한정되어 있는 국가-자치단체 재원 사이에서 언제나 붕 떠있기 마련인 공약들. 복잡하게 얽힌 여러 연줄망과 '한다 하는' 사회세력들이 총출동하는 이 격전장에서는 한치 앞을 분간하기가 어렵다. 겉으로 확연하게 드러나는 유권자들의 냉소에 비해 그렇게 밑바닥 승부의 열기는 뜨거웠다. 국회의원 단 1석에, 창당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신생 미니정당인 개혁당이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이라는 것이 민심인 데 선거운동원들의 열정과는 달리 모두들 문을 닫아 건 아파트 밀집구역에선 어디 하소연할 데 조차 없다는 것이 우리를 절망하게 하곤 했다. 꽉 막힌 답답함을 한 번씩 뚫어준 것은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자원봉사자들, 지지자들이었다. 자기 스스로 돈을 들이고 생활인으로 쪼개기 힘든 귀한 시간을 바쳐가며 거리에서 율동과 구호를 자청하는 이들을 보면서 피곤에 지친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악수를 받아주는 유권자들의 손은 따뜻해졌다. 문제는 투표율이었다. 서울에 직장을 둔 유권자들이 대부분인 고양시의 특성상 투표가 시작되는 6시부터 출근전쟁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렀잖아도 보궐선거라면 낮은 투표율이 뻔한데 거기에 휴일이 아닌 평일. 출근에 목을 매고 사는 보통 서민들이 투표소로 발을 돌릴 리 만무했다. '명예로운 지각하기운동'을 주창해봤지만 선거 당일 한산한 투표소를 바라보면서 조직과 자금, 지역내 인지도에서 열세인 우리 후보의 패배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듯 했다.그런데 기적처럼 사상 유례없는 그 낮은 투표율에서도 유시민 후보가 여유있게 승리한 것이다. 조직적인 연고표가 승부를 좌우한다는 보궐선거의 철칙을 깨뜨린 덕양갑 개표결과를 보면서, 나는 이제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정치개혁의 큰 강물이 우리 앞에 도도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인지도와 지지도가 경쟁후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현실에서 상대 후보는 화려한 국회의원 경험에 20년간 관리해 온 지구당 조직을 자랑하며 승리를 장담했는데 돈으로 움직이는 낡은 지구당 조직 대신 마음과 마음을 잇는 자발적 네트워크가 펼친 '즐겁고 유쾌한' 선거운동이 이긴 것은 지난 대선 결과에 이어 이제 더 이상 낡은 '정치판'의 시대가 재연될 수 없다는 확인도장일 것이다. 민심은 분명했다. 정치권 전체를 바꾸라는 것이다. 수십 년 지속되어온 지긋지긋한 지역주의 정치질서를 갈아엎고 정책과 노선에 따라 건전하고 합리적으로 경쟁하는 정당구도를 만들어 유권자의 선택을 받으라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심코 오고가는 고양시 덕양구청 앞마당 한 켠에서, 나는 몸 안을 가득 채우는 늦봄의 생명력을 받아들이는 나무의 자세로 최대한 몸을 펼치고 한껏 기지개를 켰다./이광철(개혁국민정당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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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4.29 23:02

[새벽메아리] 무엇이 진정한 부모 역할인가

1. 얼마전에 개봉된 '아이 앰 샘(I Am Sam)'이라는 영화의 내용이다. 커피전문점에서 일하는 샘이라고 하는 사람은 7살의 지능을 가진 정신지체 장애인이다. 떠돌이 여자에게 지낼곳을 제공했던 셈은 그녀 사이에서 너무나도 예쁜 딸 루시를 얻지만 퇴원하자마자 도망간 루시의 엄마 덕에 홀아비가 되면서부터 그의 눈물겨운 양육기가 시작이 된다.시도 때도 없이 보채며 울어대는 루시 때문에 샘은 힘들기도 하지만 루시가 점점 자라면서 샘과 딸 루시의 하루하루는 행복하게 진행되고 이들 부녀에게 부족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샘은 루시를 최선을 다해 돌보고, 일을 하면서도 함께 공원에 놀러가는 것과 잠자기 전 딸에게 책 읽어주는 것을 빼먹지 않는 성실한 한 아빠의 역할을 한다.아동복지는 사랑으로만 보장그러나 루시가 샘의 지능과 똑같은 7살이 되면서부터 문제가 생기게 된다.이때부터 이 영화는 묘하게도 어린애 같은 어른과 어른 같은 어린애가 그들의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지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샘이 다른 아빠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루시는 어린애 답지 않게 중요한 것은 아빠가 자기와 함께 있어주는 거라면서 아빠를 위로할 뿐 아니라 아빠의 지능을 추월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학교 수업을 게을리 하게 된다.그러나 학교와 사회복지기관에서는 샘에게 양육능력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강제로 샘으로부터 루시를 빼앗아 양부모에게 입양하고, 샘에게는 단지 주 2회의 면회만이 허용된다. 말하자면 지적 능력의 부족은 아이를 키울수 없다는 그들의 결론이었던 것이다.2. 한편 샘은 양육권을 되찾기 위해 변호사를 구하게 되고, 마침내 이기적인 여성변호사 리타가 샘을 동정해서가 아니라 동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무료로 샘의 사건을 맡게 된다. 그렇게 시작한 변호였지만, 리타라고 하는 이 여성변호사는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으려는 샘과 그의 딸 루시의 눈물겨운 노력을 보면서 오히려 자신의 문제를 풀게 된다. 즉 변호사 리타는 자타가 공인하는 지적인 어머니이자 아내이며, 물질적 풍요를 보장할 만큼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그녀는 바쁜 일과로 아들과 소통하는 법을 잊었고 남편은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게 된다. 결국 이 영화는 묘하게도 우둔한 샘의 가정과 지적인 리타의 두 가정의 대비를 통하여 아동의 복지는 부모의 물질적 풍요나 지적인 능력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사랑에서 보장된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다. 또한 이 영화는 '때로 갖고 싶은 것, 더 원하는 것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사랑이다'라는 루시의 뭉클한 말을 통해 무엇이 진정한 가족의 의미인가를 관객들에게 묻는다.즉 사랑으로 굳게 맺어진 샘과 루시와의 관계와 아들에게 물질적인 풍요만을 안겨주는 변호사 리타의 아들 윌리와의 관계를 대비시켜 많이 배웠다고, 많이 가졌다고 행복이 비례해서 커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법원은 루시의 동겨양육권을 양부모에게 주지만 양부모는 샘과 루시 부녀간의 애정에 감복해 딸을 샘에게 돌려주면서 이 영화는 그 막을 내린다.진정한 가족의 의미 제기3. 사실 이 영화는 처음에, 딸보다 정신연령이 낮은 장애인 아빠가 딸을 제대로 키울 수 있는가하는 질문을 관객들에게 툭 던져놓지만, 사실상 이 영화가 근본적으로 집착하는 것은 장애, 비장애를 떠나 '누가 진정한 부모이여 가족인가'에 대한 물음을 마지막까지 보여주고 있다.장애를 가진 샘은 겉보기에는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없는 듯 인식되지만, 실상 샘은 비장애인 부모들이 늘상 하는 '어떻게 하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라는 한결같은 고민과 늘 딸과 함께 있으려는 사랑과 애정을 통해, 다른 아버지들에 비해 양육능력이 뛰어 나지는 못하지만, 그가 좋은 아버지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필자가 이 한편의 영화를 소개하는 이유는 자녀교육때문에 '무엇이 진정한 부모의 역할인가'를 고민하는 우리시대의 부모들에게 하나의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서석희(전주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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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4.22 23:02

[새벽메아리] 이라크 파병 과연 옳은 일인가

우리나라 헌법 제5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를, 그리고 헌법 전문은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한다'를 각 규정하고 있다.또 대통령은 취임 후 국회에서 '헌법을 준수'할 것을 선서해야 하며, 노무현 대통령도 이와 같은 선서를 한 바 있다. 만약 대통령이 그 직무수행에 있어서 헌법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헌법 제65조 제1항). 하지만 우리의 국회는 결국 정부의 이라크전 파병안을 통과시켰다.명분보다 힘이 국제정치 좌우노무현 대통령은 4. 2. 국회에서 이라크전 파병과 관련하여 '국민과 일부 국회의원들이 이번 전쟁에 파병을 반대하는 이유는 우리가 파병을 할 경우 미국이 장차 북한을 공격하려 할 때 이를 반대할 명분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명분도 중요하지만 아직은 명분보다 현실의 힘이 국제정치를 좌우하고 있다'라는 취지의 국정연설을 한 바 있다.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하여 예로부터 많은 침략을 받아왔는데, 특히 일본에 의한 35년 간의 침략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래서 일본 문화의 국내 유입 장벽이 최근에는 많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시간의 흐름도 정서적으로 상당한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풀어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반대로 우리가 베트남에 파병을 한 것으로 인해 30년이 지난 아직까지 그 후유증과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물론 베트남전 파병과 이라크전 파병 문제는 명확히 다른 문제라고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을 줄로 안다. 베트남전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지만, 이라크전은 미국에 의한 북한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한 좀 더 거국적인 안목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라고 말이다.노무현 대통령은 이라크전 파병 문제를 결정하기 전에 미국의 부시대통령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는데, 그 때 북한 문제에 대한 어떤 언질을 받았을 것이라고 얘기되어진다.미국의 약속 믿을 수 있나그러나 미국의 약속을 믿는가.미국의 이라크와의 전쟁에 적극 협력한 영국도 전쟁 후 복구사업에서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얻을 것을 예상하였을 테고, 그것이 참전을 하는데 상당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막대한 이권이 걸린 전후 복구사업의 대부분은 미국 기업이 맡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최근에 밝혀진 내용이지만 미국은 1994년에 우리나라에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북한을 침공할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물론 미국은 계속하여 '이라크와 북한은 다르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 관점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다.어찌 되었든 우리가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기 전에 이라크전이 생각보다 일찍 종결되는 듯한 분위기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라크에 파병을 하기로 했던 것을 세계는 잊지 않을 것이다./황은경(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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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4.15 23:02

[새벽메아리] 장미 빛 환상 '새만금 바다도시 안'

'새만금 신구상'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기본의중이 어느 정도 밝혀 진 가운데 새만금 사업과 관련하여 또 다시 소모적 논쟁이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다.더구나 이러한 와중에서 김석철 교수의『새만금 바다도시 안』이 구름 속에 나타난 한줄기 햇빛처럼, 새만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인 것처럼 회자되고 있어 마음이 더욱 무겁다.새만금 사업이 친 환경적이며, 지속 가능한 개발이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리고, 고군산군도와 호남평야의 도시들이 어우러진 새만금이 세계적 문화관광의 도시인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갖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뿌듯하다.불가능한 대안 거론 안됐으면그러나 실현 가능한 꿈과 실현 불가능한 환상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그것은 실현 불가능한 환상에 사로잡혀 국론과 시간을 낭비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필자가『새만금 바다도시 안』을 실현 불가능한 장비 빛 환상이라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임을 밝히면서,『새만금 바다도시 안』이 또 다시 새만금의 대안으로 거론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첫째,『새만금 바다도시 안』이 모델로 하고 있는 베네치아는 밀물 때와 썰물 때의 조위차가 0.7m1.0m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는 새만금의 경우는 6m7m로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밀물 때를 대비하여 지은 집과 건물들이 썰물 때는 어떠한 모습을 보일지 상상해 보라!둘째,『새만금 바다도시 안』은 현재의 상태에서 방조제공사를 중지하고 개방구간은 대형선박이 드나들 수 있는 통로로 사용하자고 제안하고 있으나, 현재의 상태로는 선박이 드나들기에 매우 위험하다는 점이다.항만 입출항 시 선박조정이 가능한 항로유속은 2m3m/sec이내 이어야하나, 현재 새만금 방조제의 개방구간(미시공구간 3군데)의 유속은 4m5m/sec(베네치아의 4배5배)로 매우 빨라 위험할 뿐만 아니라, 밀물과 썰물 시 추가되는 유속을 생각하면 선박의 접안 또는 출항이 불가능하다. 선박통행이 매우 어렵고, 더구나 바닷물이 빠진 후에는 갯벌이 형성되어 선박운항을 중지하여야 하는 바다도시가 어디에 있겠는가?셋째, 바다도시의 건설 및 유지에 천문학적 비용과 엄청난 시간이 소모된다는 사실이다.천문학적 비용 필요해위에서 언급한 입지적 결함에도 불구하고『새만금 바다도시 안』을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태풍과 해일 등으로부터 안전한 도시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대조위 이상(약 8m이상)으로 갯벌을 매립하여야 하며, 이에 따른 엄청난 양의 토석 및 비용이 요구된다.그리고, 상하수도 등 도시기반조성을 위한 비용, 바다도시의 건설비, 현재까지 축조된 방조제의 보강 및 유지관리를 위한 비용 등을 고려한다면 거의 천문학적 규모의 비용이 소요될 것이다. 경제적 타당성이 뒷받침되지 못한 계획은 단순한 그림에 불과할 뿐이다.이 외에도 『새만금 바다도시 안』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은 많다. 결국『새만금 바다도시 안』은 적어도 새만금 지역에서만큼은 실현하기 어려운, 너무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장미 빛 환상'이라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이양재(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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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4.01 23:02

[새벽메아리] 다시 거리에 서서

이라크 침공 이틀째인 21일 밤(현지시각) 미국이 대규모 공습인 충격과 공포 작전을 시작하면서 바그다드 중심부는 화염과 연기에 휩싸였다. 수천 발의 대형폭탄이 인류 문명의 발상지인 바그다드를 잿더미로 만들어가고 있는 현장을 생중계로 보면서 불끈 주먹이 쥐어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 스위스 지부는 충격과 공포 작전은 제네바협약과 국제형사법원 설립조약에 규정된 전쟁범죄를 구성하기 때문에 유엔과 국제사회는 이를 즉각 중지하도록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바그다드 전역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폭격은 전쟁 당사자들이 민간인이 생존을 위해 의지하는 기간시설을 공격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한 국제인도법의 기본원칙을 훼손하고 있으며 민간인들에게 공포를 확산시킬 목적으로 무차별적인 공격 또는 행위를 자행하는 것도 불법이라는 것이다.美패권전략 우리터전 겨냥미국이 그동안 경고해온 대규모 공습의 시점인 A(Aerial)-데이. 바그다드 곳곳에서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화염이 치솟고 있는데도 이라크군은 간헐적으로 방공포를 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하고 있다. 12년 전에 입은 타격 탓도 있지만 최근 사찰활동을 통해 거의 무장해제를 당한 탓이다. 유엔의 이름을 빌려 사찰활동 명목으로 무장을 해제해놓은 뒤 무방비 상태의 이라크를 초토화시키고 있는 이 기만극이 오늘 국제사회의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미국이 원하는 국제질서를 짜는 첫 단추로 보고 있다. 예방전, 중동의 재편, 새로운 동맹체 건설 등으로 대표되는 신보수주의 개념에 따라 미국은 신 냉전후 질서의 중심에 서서 이제 거추장스러워진 각종 국제기구나 조약의 부담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길 원하는 것이다. 유엔의 의사절차와 각국의 비난을 비웃음으로 넘기며 이라크 침공을 감행한 미국의 이런 이런 신보수주의 움직임은 이미 그 전부터 감지돼왔다.부시의 집권 후 미국은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교토의정서 거부, 미-러 탄도탄 요격미사일 조약 철회 등을 통해 미국패권주의의 위세를 과시해왔던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 내놓은 개념으로, 이라크, 이란, 북한 등 이른바 깡패국가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의 안전을 지키는 방위의 중심축으로 설정된 예방전쟁은 이라크에서 충분한 실험을 거친 후 한반도에 가장 먼저 상륙할 가능성이 높다. 오늘은 이라크에서, 내일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반대한다는 시민사회단체의 주장은 미국의 이런 패권전략이 바로 우리 터전을 겨냥하고 있는 현실을 정확하게 지적한 것이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22일 보도에서 (이라크에서) 미국의 성공은 강경파들의 목소리를 커지게 가능성이 있는 반면 북한에서는 (미국의) 선제공격에 대한 두려움과 핵무기 개발론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노무현 정부의 파병 결정은 이런 조건에서 미국의 협력으로 한반도 위기를 예방한다는, 희망 섞인 기대를 넘어 정반대의 위험한 결론으로 직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국민의 여론으로 철회되어야 한다. 22일은 전세계에서 반전 시위의 물결이 몰아친 날이기도 하다. 개전 사흘째인 22일 미국과 유럽 주요 도시는 물론 아시아와 아랍권, 남미 및 호주, 뉴질랜드 등 5대양 6대주에서 수백만명의 반전 외침이 메아리쳤다. 뉴옥의 한 반전시위 참가자는 당신이 정말로 충격과 공포를 보여주길 원한다면 사랑과 정의를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할리우드 인근에서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CNN : 어린이는 죽고 당신은 부유해진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고 CNN의 친미성향 보도태도를 성토했다고 한다. 프랑스처럼 수십 만은 아니었지만 우리도 여러 도시에서 반전시위가 있었다. 주변의 선한 이웃들과 함께 팔달로 한 켠을 전쟁반대, 파병반대를 외치며 걸으면서 그 번잡한 거리의 한 복판에서 이내 기도하는 심정이 되었다. 제발, 더 이상의 무고한 희생이 없도록 하느님, 알라신이여. 이 전쟁을 주도하는 자들의 머리 속에 사랑과 회개의 대폭발을 일으켜서 지금 움켜쥐고 있는 파괴의 무기를 내려놓도록 당신의 전능한 힘을 보여주소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평화의 대열에 함께 할 수 있도록 화해와 용서의 핵폭발을 일으키소서. 흔들리며 기도하며 나는 그렇게 팔달로를 걸었다. /이광철(개혁국민정당 집행위원, 전북실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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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3.2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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