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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독선의 정치 포용의 정치

최근 내가 읽은 책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을 꼽아 보라고 한다면 단연코 "예수는 없다(현암사 간)"가 그 첫 번째이다. 캐나다에서 비교종교학을 가르치고 있는 오강남 교수가 쓴 이 책은 그 도발적인 제목만큼이나, 독자가 기독교 신자이건 아니건 간에 우리가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종교는 '예수 자신의 가르침'인가, 아니면 '예수에 관한 서구 신학자들의 가르침'인가? 우리가 지금 따르고자 하는 것은 '예수의 말씀'인가, 아니면 '예수를 대리한 교회의 말씀'인가? 다른 나라에서도 성경을 하늘에서 뚝 떨어진 책으로 여기고 그 신화적 어구 하나 하나를 신의 음성으로 생각하며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중세적 종교관을 유지하고 있는가?하지만 내가 이 책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신학적 논쟁이 아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기본 바탕에는 주류(主流) 종교로 자리잡은 한국 기독교의 맹목적 신앙과 배타주의적 자세, 그리고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는 한국 교회의 성장 제일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있다.지난 1992년에 고(故) 변선환 박사가 한국에 팽배한 기독교 배타주의를 비판하고 종교 다원주의를 선창하다가 신학교 학장직은 물론 목사직까지 박탈당한 사례가 있었다. 그 이후 1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이 책에 대한 반응은 한국 기독교계와 신자들이 얼마나 성숙했는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척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최근 서구 신학계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종교간의 대화를 강조하고 있고 종교다원주의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굳이 1961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혁명적 선언을 언급하지 않는다 해도, 단군상을 훼손하고 절에 불을 지르는 모습이 아니라 추기경이 사찰을 방문해 법문을 하고 스님이 성당에 초청돼 강론을 하는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구원(救援)을 보게 되는 것이다.이러한 '다원주의'와 '포용의 철학'은 비단 종교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와 사회의 영역에서 더욱 절실하다. 그만큼 우리 사회 곳곳이 맹목적이고 배타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는 반증이다.아직도 가정의 중심은 남성이어야 한다고 믿는 남성 근본주의자, 아직도 냉전시대의 논리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이념 근본주의자, 세상은 오직 시장의 원리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고 믿는 시장 근본주의자, 과거의 것을 모두 부정하며 자신들에 의해서만 세상이 개조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개혁 지상주의자 등 수많은 근본주의자가 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열린 사회가 되려면 이러한 근본주의적 독선부터 청산돼야 할 것이다.김대중 정권의 마감이 채 1년 반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권을 포함하여 사회 각층에는 증오와 적대, 충돌과 혼미의 자욱한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다. 여야도, 재계도, 학계도, 노동계도, 교육계도, 언론계도 심지어 관료사회도 "이번 정권만 끝나면 두고 봐라", "죽지 않으려면 재집권해야 한다"는 피해의식과 적대의식이 널리 퍼져 있는 듯하다. 내년 5월과 12월에 전국적인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어 한국사회 내부의 편가름적대의식은 더 깊어질 가능성이 있다.이럴 때일수록 포용의 정치가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그리고 자기 주장의 상대성을 인정하고 상호공존을 모색할 줄 아는 탄력적인 리더십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 이 탄력적인 리더십은 자신의 세력이 자신을 비판하는 세력보다 항상 절대적으로 강하지 않다는 겸손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왕준 (인천 사랑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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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9.26 23:02

[새벽메아리] 함께 가야만 하는 길

지난 주 토요일, 길을 걷다가 쌀값 보장과 개방 농정 철폐 및 정부의 중장기 쌀 대책 철회를 요구하며 거리를 행진하는 농민들의 행렬을 만났다. 그 중의 한 농민 가족이 나를 보더니 대열에서 빠져 나와 인사를 했다. 부안에서 쌀 농사를 하는 가족이었다. 동참하지 못하는 데에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느끼며 나도 인사를 했다.작년 12월에 배추값 폭락에 분노하는 농민들을 보고 가슴이 아팠는데, 이번에 또 절망에 빠진 그들을 보니 가슴이 저려 온다.100여 년 전 동학농민혁명 때 그들은 생존을 위해 학정에 항거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1930년대에 씌어진 소설 '상록수'를 보면 그 당시의 농업환경 역시 매우 열악했음을 엿볼 수가 있다.경제는 현재 그때보다 엄청난 수준으로 발전했지만 그에 비해 농촌환경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지난 30년간은 쌀이 모자라는 상태였는데도 정부는 저미가(低米價) 정책으로 농민들을 저소득층으로 내몰았고, 이제는 풍년이 들었는데도 쌀이 남아돈다는 이유로 그들을 벼랑 끝에 서게 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이후 농산물 개방이 확정되면서 농촌은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 쌀을 전면 개방하는 시기가 되면 상황은 지금보다 더 절망적이리라. 1991년 소련이 붕괴되었을 때, 쿠바는 큰 타격을 받았다. 미국의 경제봉쇄정책으로 그러잖아도 어려움을 겪고있던 터에, 소련이 무너지니 그 동안 소련에서 들여오던 화학비료, 농약, 트랙터나 기계부품 등의 공급이 중단되었고, 게다가 식량의 60%를 수입에 의존해오다가 막히게 되니 그야말로 식량위기라는 비상사태에 돌입하게 되었다. 그들은 특별시기라는 이름으로 식량자급을 최우선 과제로 하는 농업의 대전환을 도모하게 되었다. 그들은 맨손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즉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법으로 짓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1980년대부터 그들은 이미 비료와 농약에 의존한 대규모 농업이 병충해 발생, 수질오염, 토양의 굳어짐, 토양침식, 생산감소, 환경오염 등의 피해를 초래한다는 문제점을 깨닫고 연구를 해오던 터였으므로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는 작업은 쉬웠을 것이다. 그들은 마침내 식량자급에 성공했으며, 이로 인해 쿠바의 유기농조직인 GAO는 스웨덴 의회에서 수여하는 '바른생활상'(대안적 노벨상이라고 함)을 받음으로써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았고, 21세기의 새로운 모델로 우뚝 서게 되었다. 우리 농민들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늘 악순환으로 되풀이되고 있는 이 상황에서 더 이상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정부에서 강한 의지를 가지고 농민의 생존권을 보장해주는 대책을 적극 세워야겠지만, 농민들도 정부에만 의존하지 말고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금 풍년이 들어서 쌀이 남아돈다고 하지만 농약과 비료를 치지 않은 유기농쌀은 전국적으로 모자라는 형편이다. 유기농업으로 전환을 한다면 수입쌀과도 차별성이 있고, 가격도 어느 정도 보장받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땅과 물 등 환경을 살려 우리 국민과 후손들에게 건강한 삶터를 물려줄 수 있으니 얼마나 떳떳하고 흐뭇한 일이랴. 이 길은 농민만이 걷는 길이 아니라 온 국민이 힘을 합해 함께 가야만 하는 길이다./ 이덕자 (전주 한울생활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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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9.19 23:02

[새벽메아리] 소용돌이 정국과 명현현상(瞑眩現狀)

'태조 왕건'이라는 T.V. 프로에서 견훤의 아비로 나온 '아자개'란 인물이 있다. 베테랑 연기자 김성겸씨의 코믹한 연기로 관심을 모았는데, 그가 암으로 추정되는 병을 얻고 고생하는 것을 안 고려에서 백제보다 먼저 '명약'을 보내 그를 병에서 구해낸다.병이 낫기 직전에 병이 더욱 악화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놀란 가족들에게 의사는 표정이 밝아지면서 '명현현상(瞑眩現狀)'이라고 하며 축하하는 장면이 방영된 적이 있다.친구 한의사에게 '명현현상'에 대하여 물어 보았더니 "환자에게 투약하여 치유되어 가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일시적으로 병세가 격화되었다가 결과적으로 완쾌되는 현상"이라고 설명을 해 주었다.현재 우리나라는 어느 때보다도 심한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그 혼란의 정도는 더욱 심한 것이 사실이다. 취임 초기 IMF경제위기 탈출 국면에서 재벌과의 일전이 벌어지더니 이어진 노동계와의 불화, 의약분업을 둘러싼 혼란, 그리고 언론사 사주의 세금 포탈 건 등 비리로 인한 구속을 둘러싼 공방, 거기에 최근에는 통일정책과 관련해서 반공 수구진영과의 이념 논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김대중 정부로 50년 만에 정권교체가 된 이후 3년 반의 세월은 일부에서 '남한 사회는 전쟁 중'이라는 진단이 나올 만큼 사회의 병세가 격화되고 있다. 수구세력의 대표적 언론인 김대중 조선일보 주필은 9월 7일에 쓴 칼럼에서 "지금 김대중 대통령은 마치 전장에 나선 전사(戰士)같은 분위기를 준다. 그의 주변 사방이싸움판이다"라고 하여 현 정국 혼란의 원인을 김대중 대통령의 전투성에 혐의를 두어 묘사하고 있다. 과연 이것이 본질일까? 내가 보기에는 아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중병을 앓고 있다. 그것은 분단 병이고, 친일파를 일소하지 못한 사대주의 병이고, 몇 사람에게 권력과 부가 독점되는 독재 병이며, 불평등 병이다. 분단 병으로 인해 사물을 균형 있게 보지 못하고 한쪽 방향으로만 보는 사시(斜視)현상이 생겼고, 사대주의 병으로 인해 내국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자신감을 잃어버린 '민족 허무주의'증세가 나타난다. 이러한 고약한 병균들이 국민들 전체를 감염시켜 눈치보기 증세, 복지부동 증세가 심각하고, 국민들의 소심증이 병의 악순환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병의 원인인 병원균을 친일세력의 잔재인 사대주의자들, 군사독재정권의 잔재들, 이들과 손잡고 서민들의 피와 땀을 담보로 부를 독점한 재벌들, 이들의 앵무새 역할을 하면서 최근엔 이 병원균들의 배양액 노릇까지 하는 일부'수구 언론'들이라고 본다. 이들이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온통 우리 사회 내부에 암세포를 증가시켜가고 있었던 것이다.이를 안타까워하는 수많은 선각자들이 우리 사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투약(投藥)을 해왔다. 구한말의 동학 혁명의 불길, 일제시대의 죽음을 불사한 독립운동가, 분단을 막아 보려다 암살 당한 해방정국의 애국지사들, 4.19혁명, 5.16이후 지금까지 군사독재에 대항한 민주화 운동가들, 문익환 목사 등의 수많은 통일운동가들, 민중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젊음을 불사르고 있는 민중운동가들이 바로 우리사회의 명약(名藥)들이다. 이 노력들의 결과로 김대중 대통령을 앞세운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구한말 이후 한 세기 동안의 투병(鬪病)과정을 승리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사회의 병 증세에 대한 치료의 가닥은 잡았다. 작금의 혼란은 역사의 혼을 모은 '명약'을 우리사회에 투여한 결과 죽어 가는 병원균들의 마지막 저항일 뿐이다. 아자개의 '명현현상'이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작금의 소용돌이 정국은 우리사회가 건강한 세상이 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시적인 격화 증세로 확신한다. 이제 우리 모두는 지금 시기를 견뎌낼 체력을 길러야 한다. 죽어 가는 병균들의 마지막 저항에 같이 몰락하지 않고, 혼란 이후에 올 통일 세상, 민주세상, 평등세상의 건강함을 만끽하기 위해서 말이다. / 양진규 (목사. 전북기독교사회복지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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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9.12 23:02

[새벽메아리] 21세기 한국형 마녀사냥

2002년은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가 연이어 치러지는 선거의 해이다.대화와 협력의 정치는 실종되고 정쟁과 대립은 격화될 것이다. 또한 지방선거는 대통령선거의 전초전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대화와 교류를 통해 평화공존체계를 정착해나가는데 기여 하고자 진행된 민간통일운동 단체들의 8.15평양통일축전 행사참여와 관련하여 일어난 일부의 행동을 빌미로 수구보수언론과 일부 정치권은 집단의 이익에 혈안이 되어 양극화를 조장하는 것으로 이미 전초전을 시작하고 있다.수구보수언론들은 탈세혐의가 드러남으로 해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로 8.15평양통일축전 참가자들 중 일부가 나라라도 팔아 먹고 온 양 연일 확대, 과장보도를 지속하고 있다.우리는 선거 때마다 지역감정과 분단구조를 재생산해내는 수구보수언론과 정치권의 무자비한 위력 앞에 절망해왔다. 그러나 차별, 적대감등 극단을 조성하는 것으로 재생산해 온 남한 내 지배세력과 언론의 메카니즘에 비판적 시각을 형성하게 되었다. 카톨릭 신학자 로버트 슈라이터 (R.Schreiter)는 어떤 사람이나 집단을 '타자화'하여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7가지 방식 중 첫 번째로 '악마화'를 들고 있다. 어떤 대상을 두려운 존재로 만들어 가능한 제거해야 한다는 선전으로 미국정부와 언론이 사담 후세인이나 쿠바의 카스트로를 세계평화질서를 해치는 악마로 묘사하는 것이나, 얼마전까지 남한의 지배세력과 수구보수언론이 북한의 길일성. 김정일 부자를 악마화하던 것들을 말한다. 중세시대의 마녀사냥은 이러한 방식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적의 이미지나 원수의 모습을 생산해 냄으로써 차이를 차별로 정당화 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이 준 남한 내 충격은 우리사회가 그 동안 얼마나 왜곡된 적대감속에서 북한을 바라보았는지를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현재 일부정치권과 수구보수언론은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이라는 전 민족적 과제를 자신들의 이해 실현을 위해 악마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최근 대표적 사례는 통일부장관 해임안 가결이다. 이미 실효성이 상실된 좌우이념 논쟁, 통일과 반 통일 , 지역주의 등을 다시금 집단의 이익을 위해 역사 앞에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한과 남북불가침조약이 체결되고 남북평화 공존의 길이 열리면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이 무너질 것이라는 현실적인 두려움으로 19세기식 마녀사냥을 이해를 같이하는 세력들을 규합해서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관계의 진전을 가로막고 평화체계정착을 방해하는 이들 세력들의 통일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햇볕정책을 흔들림 없이 지속해 나가야 하며 무엇보다도 앞서있는 민족적 과제인 통일을 이루어나가는 걸음을 멈춰서는 안된다.또한 많은 인내의 시간이 걸리는 통일 과정에 다양한 방식의 저항이 예상되지만 지금처럼 편향으로 양극화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금번의 문제해결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공론문화를 정착하는 계기로 만들고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인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평화를 정착시켜나가야 한다. 서로 다른 역사적 경험들과 그로 인해 형성된 심성과 가치관 그리고 삶의 방식에서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노력과 함께 진정한 내적 통합을 달성하는 일이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다. / 김금옥 (전북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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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9.05 23:02

[새벽메아리] 권력을 소비할 줄 아는 지도자

브라질 남부에 있는 쿠리티바라는 도시가 화제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지난 91년 '지구에서 환경적으로 가장 올바르게 사는 도시'로 선정했는가 하면, 세계에서 가장 현명한 도시, 꿈의 도시, 희망의 도시, 미래의 도시 등 최상급의 수식어들이 붙는 도시다. 유엔환경계획이 주는 상을 비롯해 수없이 많은 상도 수상했다. 어떤 도시이기에 전세계가 이런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쿠리티바시는 그 면적이나 인구 등 외형적인 규모에서는 광주와 비슷하다. 그러나 훨씬 적은 예산을 쓰면서도 교통, 환경, 빈민 등 모든 문제에서 광주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살기 좋은 도시이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도시병'에 걸린 여느 제3세계 도시들과 다를 바 없었던 이 도시를 구한 주인공은 71년 34세의 나이로 시장에 취임한 건축가 출신 자이미 레르너이다. 이 사람은 3차례 시장을 지낸 후 지금은 파라나주 주지사로 일하고 있는데, 유력한 차기 브라질 대통령 후보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레르너가 내건 개조의 모토는 간단했다. 저비용과 검소와 단순함, 그리고 속도였으니 말이다. 그는 브라질에서 "쉽고 간단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창조적인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의 개혁에도 '당연히' 반발이 따랐었다. 반대파는 그를 사회주의자로 몰아붙였고, 가두시위에 나서는 상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정책이 하나하나 결실을 맺으면서 반대파들의 목소리는 잦아들었고, 그를 강력히 반대했던 후임 시장조차 결국은 그의 정책을 그대로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지금 온 세계는 한 사람의 탁월한 리더가 세상을 얼마나 크게 바꿀 수 있는지 경탄하고 있다. 물론 현장에서 뛴 관료들과 그 리더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시민들에게도 찬사가 쏟아지고 있지만, 변화의 근본은 역시 리더십에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작년 말 한국민 사이에 개혁의 초심이 사라졌다는 주한 미 대사의 지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시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내부 문제를 다시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집권세력이 허약한데 비해 고강도 개혁이 남발하니 힘에 부칠 수밖에 없어 몸살을 앓는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집권세력의 의지대로 정국을 운용해 나가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지지세력의 저변이 넓고 튼튼해야 한다. 그러나 현정권은 소수정권이고 가용 인재범위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혁정책 역시도 준비된 역량을 집중해서 제한적으로, 실용적으로 짜고 집행해야 했다. 학자들은 기존 관료체제의 틀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새롭게 일부 관료를 수혈하는 정책은 결국 내부의 갈등과 알력에 의해 약체 행정부를 낳는다고 한다. 각종 정책 입안과 집행은 혼란을 겪게 되고 정치적 행정적 비밀 유지도 어렵게 됨에 따라 정보체계도 흔들리게 되며, 그 결과는 치고 받는 스캔들 정치의 연속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위기에 처한 한국 사회는 다시 새로운 리더십을 기다리고 있다. 리더십을 위한 조건은 많겠지만, 가장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는 지도자가 매력적이어야 한다. 여기서 매력적인 지도자란 권력을 생산(집권)할 뿐 아니라 권력을 소비(국가경영)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정치인이 집권 개념만 있다면 이는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할 뿐이다. 손에 잡힐 것 같은 생생한 비전을 갈고 닦아, 권력을 잡으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하겠다는 소비전략을 갖춘 리더가 진정 매력적인 지도자이다. 변화하는 환경에 자신을 유연하게 적응시키는 개방성과, 답이 없는 명분싸움 대신 주어진 문제해결을 위해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실용주의적 면모를 갖춘 그런 지도자가 그립다. / 이왕준 (인천사랑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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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8.29 23:02

[새벽메아리] 현미 이야기

"엄마, 날씨가 진짜 장난이 아니에요." 아들아이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옷부터 벗어 던지면서 투덜댄다. 입추가 지나고 가을이 오는 듯하더니 다시 여름이 오는 듯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나는 헉헉거리는 아이에게 대답했다. "이야, 엄마는 기분이 참 좋다. 이 뙤약볕에 논에 있는 곡식이 영글 것을 생각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우리를 먹여 살릴 식량이 잘 익는다는데 이까짓 더위쯤 못 견디겠냐. 오히려 즐거워서 노래가 나온다."한울 생협에서 농민들과 직거래활동을 하면서부터 나는 날씨와 농사를 연관짓는 버릇이 생겼다. 요즘의 따가운 햇볕을 보면서 풍년을 예감해 본다.오늘은 수수께끼부터 풀고 나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나는 기를 늘리며 속을 덥게 하고 위장기능을 좋게 하며, 내장을 보호하고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하며, 장과 위에 이익이 되고 귀를 밝게 하고 눈을 맑게 하며, 혈맥을 통하게 하고 오장의 기운을 고르게 하며, 안색을 좋게 하는 약효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동의보감에 씌어 있는 이것은 몸의 기능이 좋아지고 원기를 북돋워주는 만병통치의 음식인 것 같다. 짐작하겠지만 이 수수께끼의 답은 바로 우리의 주식인 쌀이다.한울 생협의 생산자들이 소비자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현미를 먹으라는 것이다. 자기들이 땀흘려 농사지은 쌀의 영양가를 소비자들이 다 깎아 버리고 먹는 것이 안타깝다고 한다. 하얀 쌀을 백미(白米)라 한다. 이 흰 백(白)과 쌀 미(米)라는 한자를 합하면 粕(찌꺼기 박)이 된다. 그러니까 흰쌀은 찌꺼기라는 뜻이다. 쌀의 영양가를 분석해보면 쌀눈에 영양분의 65%, 쌀겨에 30%, 흰쌀에 5%가 들어있다고 한다. 생산자는 말한다. 겨우 5%의 영양분을 먹자고 농부들을 1년 내내 애를 쓰게 하고 빚더미에 오르게 하는 것이 속상하다고. 현미에 관한 자료들을 뒤져보았다. '현미는 씨눈에는 노화를 방지하는 토코페롤이 많이 들어 있고, 겉껍질에는 섬유소가 많아 숙변을 제거한다. 백미는 죽어있는 쌀이고 현미는 살아있는 쌀이다. 백미는 땅에 심으면 썩지만 현미는 3년간 보관한 뒤 땅에 심어도 싹이 난다. 우리 몸을 지탱하는 각종 영양소가 듬뿍 들어있으며, 단백질이나 지방, 비타민, 미네랄, 철분 등의 함유량이 백미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풍부히 포함되어 있다.' 요즘 쌀소비가 줄어드는 실정이라는데, 이 자료를 보니 생명의 기운을 받고 싶다면 현미로 밥을 지어먹는 길이 가장 빠르지 않을까 싶다.생산자는 거듭 강조한다. "현미밥을 먹을 땐 꼭꼭 씹어야 하니까 좌뇌, 우뇌가 골고루 발달하고 분별력이 정확해집니다. 병든 음식을 산처럼 먹었을 때 생기는 병이 바로 癌(암)인데 현미를 먹으면 자연치유력이 강해져서 병도 예방할 수 있고, 영양소가 풍부해서 적게 먹어도 되니, 부족한 식량난도 해결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인 셈이지요. 농사는 농민만 하는 게 아녜요. 현미만 먹어주어도 반은 농사를 하는 셈이랍니다."오늘도 이 뙤약볕에서 생명농업에 여념이 없는 생산자들을 생각하면 뜨거운 태양열이 상쾌하게만 느껴진다. / 이덕자 (전주 한올생활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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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8.22 23:02

[새벽메아리] 분단의 시대에 통일을 읽는다

어떤 이들은 지금의 시기를 구한말(舊韓末)에 비유하면서 세계화 시대 조국의 운명을 걱정하는 우국(憂國)의 한숨을 쉰다. 아마 그들은 구한말 열강들에 의해 자행된 정치적 혼란과 뒤이은 망국(亡國)의 역사를 상기하며 작금의 상황을 비극적 전조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하지만 난 아니다. 난 우리 한반도의 운명에 대해서 한없이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나는 지금 시기가 망국을 앞둔 시기가 아닌 '광복'을 코앞에 둔 일제 말(日帝末)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3일제가 태평양전쟁에 열을 올리고 있을 1940년대 즈음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일제가 얼마나 갈 것인가를 놓고 논쟁을 했다한다. 100년, 혹은 300년을 간다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이는 확실히는 모르나 우리가 살아 있을 때까지는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또 다른 사람들은 3년, 또는 5년 안에 해방이 온다고 주장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이미 해방은 와있다고 했다. 각자의 이러한 정세 판단에 따라 전자의 사람들은 독립운동 전선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친일의 길로 걸어 들어갔고 소수의 자각한 사람들만이 다가올 해방을 준비하며 힘을 길렀다.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떤 이는 통일을 빨라야 30년 후라고 보기도 하고 그보다 더 길게 잡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자각한 소수는 통일은 3년 안에, 아니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통일에 대해 낙관적인 사람들이 분석의 포인트로 삼는 것은 북한 당국과 미국과의 '국교수립'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근거로는 1994년 미국과 북한간의 '제네바 협정' 이후에 미국과 북한의 관계는 핵 사찰 공방과 광명성 1호 발사 등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북미 수교'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미국의 페리 장관이 북한에 다녀온 후 소위 '페리 프로세스'에 의해 2000년 10월의 '조미 공동성명'이 발표됐는데 그 내용은 625전쟁 이후 반세기동안 지속되어 온 양국간의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호혜 평등에 입각한 새로운 친선관계를 수립하기로 합의한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 이후 미국의 정권이 부시로 바뀌면서 협상의 진전이 난항을 겪고 있지만, 이는 '수교'라는 대세로 가기 위한 여러 정지 작업 중의 일부라는 것이 북?미 수교에 낙관적인 사람들의 분석이다. 우연인지, 낙관적 분석에 의해서인지 7월 18일에 '주한미군 기지와 훈련장의 축소반환' 결정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었고, 대북 강경책으로 일관하고 있던 부시가 북한에 무조건적인 대화를 요구하고 나서고 있다. 만약 이 분석이 맞아서 북한과 미국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한반도 내에 '평화협정'을 체결하며 나아가 '주한 미군이 철수'하거나 지위를 변경하고 '국교 수립'이 현실화되면 한반도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50여년 동안 지난하게 이어지던 남북 간 적대관계가 해소되는 것은 물론 적대적이고 폭력적인 해결방식이 아닌, 양측의 특성을 인정하는 평화적 해결 방식인 '국가연합제 통일'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 방안에 대한 실천이 현실화될 것이다. 오동잎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온 천지에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 듯이 국제정세의 징조를 보고 통일의 기운이 한반도에 퍼짐을 읽을 수 있다.56년전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전 민족적인 자각과 준비로 맞지 못한 결과가 전쟁과 분단이었고, 그 결과가 초래한 민중의 고통은 죽음보다 더한 것이었다. 이제 눈앞에 와있는 통일을 읽고 준비하는 것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식민의 시대에 해방'을 보고 '독재의 시대에 민주'의 싹을 키운 선배 선지자(先知者)들의 기상이 '분단의 시대에 통일'을 읽고 준비하는 선각자들을 '지금부르고 있다./ 양진규 (전북 기독교사회복지 연구소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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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8.15 23:02

[새벽메아리] 국민 깔보는 딴나라당

요즈음 뉴스와 신문을 보는 것은 짜증스럽다 못해 치욕적이다.한나라당의 사회개혁과 통일로 가는 길에 딴지 걸기는 오로지 내년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해야겠다는 목적 하나로 최악으로 달려가고 있다.족벌언론 세무조사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다 그들 언론들의 엄청난 탈법과 탈세 진실을 가리고 힘과 결탁하여 그들의 부정적 힘을 강화하는 역할을 해온 사실이 구체적인 증거들로 나타나자 연일 언론탄압이라며 거품을 물고 있다. 또한 5공 시절 9시 땡전뉴스의 주인공 하순봉 의원을 통한 시민사회단체 정권 홍위병 발언, 김만제 의장의 사회주의 발언 등 앞뒤를 안 가리는 작태는 눈뜨고는 못 봐 줄 일이며 뛰다 죽을 노릇이다. 싸움을 하면서 싸우게 된 사연은 어디로 갔는지 없어지고 인신공격이나 가족 심지어 조상까지 들먹이며 감정을 비약하고 싸움을 불미스럽게 이끌어 다른 쪽으로 전이시키고 자신의 잘못을 무마해보겠다는 형국이다. 이 얼마나 국민들을 깔보는 처사란 말인가? 변화의 시대에 국민적 열망으로 진행중인 언론개혁을 저지하려는 한나라당과 이회창총재의 투쟁은 참으로 안쓰럽기(?) 조차하다. 스스로 자신들의 존재 기반이 족벌언론에 있음을 자인하면서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저해하는 모든 관행적 부패구조를 만들어온 장본인들이 바로 족벌언론들과 한나라당 자신이었음을 희한한 방식으로 세상에 고백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족벌언론들과 한나라당이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그동안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잘못으로 인한 사회적 상처를 치유하고 진실을 회복하는 것까지를 포함하여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으로 여당과 함께 언론개혁을 달성해 나가야 한다. 사회적 갈등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서 보다나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민주사회의 동력이 되기도 하고 불균형과 배타적 경쟁을 강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관용과 타인에 대한 배려, 사회적 인권개념이 취약한 우리사회에서 권력과 부의 불균형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민주적인 제도와 사회구조를 만들어나감으로써 사회정의를 회복하는 과정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러한 정의회복의 과정에 있는 우리사회는 힘의 불균형에서 오는 사회구성원간의 분열을 통합해 나갈 수 있는 협력적 정치지도력이 필요하다.이러한 시점에서 집단이기주의에 사로잡혀 목적 달성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고 혼란스럽게하는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는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지도력을 발휘 할 수 없다. 정책적 대안과 사회통합의 비전을 가지고 국민적 지지로 대통령이 되기보다 족벌언론을 비호하고 역사적 필연인 통일을 음해하면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발상으로 막가는 한나라당은 국민을 무시하는 딴나라당임이 분명하다. 한나라당이 이회창 총재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정권을 획득하려는 목적으로 족벌언론을 끌어안고 온갖 비약과 갖다 붙이기식 억지를 부리고 있슴에 걸려들지 말일이다.그러나 분통 터지는 것은 오늘도 우리는 족벌신문들을 통해 편파적이고 왜곡된 세상의 소식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다.정말이지 이런 세상이 싫은 사람들은 세상을 바꾸는 일에 함께 해야만 한다.더이상 주권을 유린당하고 자존심과 명예를 훼손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세상이 마음에 안드는 모든 사람들은 모여서 족벌언론의 대표주자 조선일보 구독반대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 세상을 바꿔나가자./ 김금옥 (전북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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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8.08 23:02

[새벽메아리] 송판을 구멍내는 리더십

정치란 열정과 판단력이라는 두 연장을 가지고 송판에 못으로 구멍을 내는 일이다.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이자 작가이자 명연설가로, 이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이름을 전하고 있는 세네카가 말하는 정치다. 짧은 문장이지만 곱씹을수록 탄복하지 않을 수 없는 절창(絶唱)이다. 정치에 필요한 연장들은 물론 열정과 판단력 외에도 많이 있다. 지식도 있어야 할 것이고 인덕도 있어야 하며, 건강한 신체나 적당한(?) 재물도 필요할 것이다. 때로는 간교한 책략을 써야만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네카는 열정과 판단력을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덕목으로 꼽았다. 못을 박는다가 아니라 못으로 구멍을 낸다는 표현도 절묘하다. 비교적 무른 것이 송판이라지만, 못을 이용하여 나무판자에 구멍을 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작정 세게 내리쳐서는 못이 송판에 박혀 움직일 수 없게 될 것이고, 더 큰 힘을 가했다가는 송판이 쩍 갈라져 버리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니 말이다. 세네카가 말하는 열정은 어쩌면 끈기와 일맥상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네카 관점에서 보면 한국정치는 열정도 없고 판단력도 부족하다. 핵심 연장도 없이 못질하는 시늉만 내는 어설픈 사이비판이다. 정치인이 최고의 불신 대상이 되고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는 동네북이 된 지도 오래다. IMF위기의 광풍과 한파에 시달리며 온 나라와 국민이 개혁에 매진할 때, 아랑곳하지 않고 방탄국회다 야당탄압이다 하며 이전투구 정쟁만 벌이던 자들이다. 이런 정치 덕분에 우리는 다시 위기의 파도가 몰려드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열정과 판단력이 결여된 정치가 나라와 국민을 위기로 몰아가는 셈이다. 이런 무능한 정치에 한국號의 조타를 맡길 수밖에 없는 우리 자신이 서글플 뿐이니, 실로 정치의 위기, 국가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한걸음 더 들어가면, 정치의 위기는 리더십의 위기다. IMF위기의 진정한 교훈 가운데 하나는 지도자의 중요성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다. 지도자를 잘못 뽑으면 나라와 국민이 쪽박 찰 수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몸으로 체험한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금을 통틀어 탁월한 지도자들은 국가와 민족과 국민을 현실 위에서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구사했다. 고상한 이상주의에 도취되지도 않고, 지도자 개인의 취향에 치우치지도 않았다. 오로지 한 길, 국가를 위하고 국민을 위하는 길로 나갔을 뿐이다. 문제는 그 길이 어느 길인지를 모를 때 발생한다. 어느 지도자나 다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길이라며 앞서 갔지만, 대개는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갔다. 협곡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거나 미로에 빠져 길을 잃고, 아니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이들도 많았다. 역사는 이들을 실패한 리더십이라 부른다. 리더십의 위기는 성공한 리더십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낳는다. 지금 우리에게 팽배한 바람 가운데 하나가 성공한 정치, 성공한 대통령, 성공한 리더십에 대한 갈망이 아닐까. 그것이 정치든 아니면 경제나 비정치 영역이든 관계없다. 어느 분야에서든, 국가와 국민을 살리는 길로 이끄는 리더십이면 된다. 다시 세네카로 돌아가면, 송판을 깨뜨리거나 못을 휘어버리지 않은 채 송판에 구멍을 낼 수 있는, 그런 리더십을 만들어내야 한다. 성공한 리더십의 부재야말로 우리가 처한 가장 본질적인 위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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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8.01 23:02

[새벽 메아리] 세상을 바꾸는 작은 실천

전주 한울 생협에서는 지난 두 달 동안 생명학교를 운영했다. 환경호르몬의 정체, 유전자 조작식품 바로 알기, 농촌에 가서 농사체험하기 등 10주에 걸쳐 진행된 이 프로그램의 마지막 시간은 '세상을 바꾸는 작은 실천'이라는 제목아래 참가자 각자가 실천사례를 발표하는 시간이었다.사례가 없어 지루하게 진행될까 걱정했는데 예정된 시간을 훨씬 넘겨서 얘기를 끊어야 할 정도로 열띤 시간이었다. 심한 가뭄을 겪은 뒤라 그런지 물을 아껴쓰는 실천사례가 많았다. 한 아기의 엄마는 아침에 일어나면 변기의 물을 아끼기 위해 세 식구가 한곳에 소변을 본 뒤에 물을 내린다고 하였다. 이외에도 설거지할 때 물을 받아놓고 하는 사례, 화장실 청소할 때 물과 세제로 씻어내는 대신에 걸레나 수건으로 닦아내는 사례, 목욕한 물을 변기의 물로 이용하는 사례, 설거지 물을 줄이기 위해 반찬그릇을 남은 밥으로 깨끗이 닦아먹는 사례 등 특별한 방법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실천하고 있는 좋은 방법들이 많았다. 물절약의 방법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들 바지를 기워 입히고 도시락을 꼭 싸준다는 조합원도 있었고, 재활용을 철저하게 하는 조합원, 비닐 봉지를 깨끗이 씻어서 여러 번 사용하는 조합원, 음식쓰레기를 퇴비로 만들어 쓰는 조합원 등 예쁜 행동으로 인해 얼굴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조합원들이 많았다. 그 중에 제일 칭찬을 많이 받은 사례는 골목길의 쓰레기를 주워 남에게 좀더 기분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한 조합원의 실천이었다. 그녀는 매주 토요일마다 집에서부터 아이의 학교까지 청소부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골목길의 쓰레기를 줍는다고 했다. 집게와 빈 쓰레기 봉투를 들고 한 시간 남짓 한바퀴 돌아오면 비닐봉투가 꽉 찬다고 했다. 함께 자리를 했던 한 생산자는 오히려 부끄럽다고 했다. 도시 사람들이 이렇게 실천하고 있는데, 자기들은 지하수를 마음놓고 쓴 것 같아 반성이 된다고 했다. 정말 생각해보면 보통문제가 아니다. 지표에 있던 물이 땅밑으로 흘러들어가서 지하수로 있다가, 땅위로 올라오려면 150년이 걸린다고 한다. 물은 어디서 새롭게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옛부터 있던 물이 땅속으로 땅위로 하늘로 순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물질이 마찬가지다. 지구상에 그 어떤 물건도 세상에 없는 새로운 물질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원래부터 있던 자원의 모양을 변형하는 것일 뿐이다. 즉 순환하는 것일 뿐이다. 이 순환의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물건이 수명을 다해서 자연으로 되돌아갈 때는 어떤 상태인가. 물건들이 각종 오염물질로 변해 있어서 제대로 순환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연에 치명적인 상처만 입히는 실정이 아닌가. 심지어는 사람도 농약과 방부제로 오염된 먹거리 때문에 죽은 후에도 썩지 않아 자연스럽게 흙으로 돌아가지도 못한다고 한다. 결국 순환의 이치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일방적인 착취와 훼손으로 악순환만 되풀이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세상에 가장 큰 공헌을 하는 사람은 자연훼손을 덜하고 쓰레기를 제일 조금 버리고 가는 사람이 아닐는지.나의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생활하고 있는 조합원들을 보면서 아직은 희망이 넘치는 세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이덕자 (전주 한울 생활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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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7.25 23:02

[새벽메아리] 세상이 바뀌면 질병도 달라진다

요즘 응급실 당직을 서 보면, 응급실을 찾는 환자의 유형이 겨우 수년 전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있음을 체감한다. 피를 토하는 환자나 위 천공으로 복막염이 생긴 환자는 예전에는 비교적 흔했지만, 지금은 만나기 어려울 정도다. 팔다리가 잘리거나 뼈가 심하게 부러진 환자도 확실히 줄었다.그만큼 외상이나 급성기 질환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인데, 그 이유는 생각 외로 간단하다. 우선 신약개발 등 의학기술이 발전했고, 병원 문턱이 낮아지면서 조기에 진단 및 치료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큰 교통사고가 줄고, 다른 대형사고가 적어서 외상 환자도 줄어들고 있다. 경찰이 안전띠 단속만 열심히 해도 교통사고 환자가 줄어드는 것은 농담이 아니라 진실이다. 앞으로 운전중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면 더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환자가 늘어난 질병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뇌졸중과 심근경색이다. 이것은 소위 '선진국형' 질병 패턴으로, 우리 나라가 발전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여전히 위암이 암 가운데 가장 많기는 하지만, 부동의 1위였던 과거와는 달리 폐암과 대장암의 발생빈도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우리는 세상이 변하면 질병도 변하고 그에 따라 의료도 변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를 따라 잡지 못하면 의사들도 괴롭고 정부는 한심해지고 국민들은 헤매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첫째, 노인인구의 증가는 이 변화의 핵심이다. 이미 우리 나라도 작년 기준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7%를 넘어섬으로서 고령화 사회로 공식적으로 진입했다. 20년 후에는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할 전망인데, 이는 선진국에 비해서도 더 급속한 노령화다. 이것은 이미 여러 현상을 낳고 있는데, 65세 이상 노인 중 8.3%가 치매에 걸려 있으니 이 치료 및 간호 비용은 매우 만만치 않은 것이다. 한 사람이 죽기 전 3개월 동안 쓰는 의료비가 평생 쓰는 의료비의 1/3이라는 보고가 있다. 노인인구의 증가는 최근 쟁점이 된 보험재정 파탄의 실제적 제1요인이다. 일본이 실시하고 있는 개호(介護)보험과 같은 새로운 제도적 틀을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둘째, 급성질환이 줄고 만성질환이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고혈압, 당뇨병 등 병원에서 치료받는다는 개념보다는 환자 스스로가 건강을 관리하고 질병의 진행을 막지 않으면 다스릴 수 없는 질병이 주가 된 것이다. 앞으로 의사는 치료의 보조자이고 환자 스스로가 치료자로 나서게 된다. 따라서 병원도 변해야 한다.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를 격리해서 치료하는 패턴이 아니라 거꾸로 병원 밖으로 나가 환자를 방문하고 교육하고 일상을 관리하는 패턴으로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병원의 외형적 틀이 변하는 만큼 의사들의 인식 변환도 필요하다.패러다임의 변화는 단지 의료보험 재정파탄이나 의약분업과 같은 단기적인 제도적 변화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변하고 있고 질병이 바뀌고 사람이 사는 방식이 달라지는 만큼, 병원도 달라져야 하고 의사들의 생각도 변화해야 하고 환자들의 태도도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전환기에 놓여 있다. / 이왕준 (인천 사랑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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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7.04 23:02

[새벽 메아리] 제철음식을 먹어야 하는 까닭은

저는 토마토입니다. 혹시 제가 어느 철에 나오는 농산물인지 아시나요? 여러분들은 사시사철 먹을 수 있으니 제 생일이 언제인지는 관심이 없으시겠지요. 저는 여름철에 난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제철에 나면 괄시를 받아요. 참 슬픈 일이랍니다. 요즘은 사람이나 과일이나 철을 모르는 것 같아요. 이른봄에 여름 참외가 노랗게 시장바닥에 쌓여 있는가 하면 한겨울에 빨간 딸기가 손님들을 부르고 있어요. 사람들은 딸기가 봄에 나고 참외와 수박이 여름에 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욕구를 참고 기다리지 못해 미리미리 앞당기고 싶어하지요. 아이들 교육도 마찬가지지요. 요즘 영재교육에 관심을 가지는 부모들이 영재교육은 태어나자마자 시켜야 한다고 생각해 생후 6개월의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킨다면서요. 현재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학원이나 과외를 통해 몇 개 학년의 과정을 건너뛰어 미리미리 앞서가는 학습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어디 농산물이나 교육만 그런가요? 사회의 전반적인 추세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잖아요. 빠르지 않으면 소외되고 속전속결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진다고들 생각하지요. 이런 흐름에 뒤질세라 음식문화도 점점 속성화 되어가고 있지요. 인스턴트 식품이나 패스트푸드가 그렇지요. 주문만 하면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바로 먹을 수 있어 참 편리하지요. 배달음식도 최대한 빨라야 소비자들이 좋아하구요. 이젠 몇 분 안에 배달되지 않으면 돈을 받지 않는다고 큰소리치는 음식점도 생겼다고 하더군요. 갈수록 참을성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생각해보세요. 여러분들이 빨리빨리를 외치는 것이 무엇 때문인가.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지요, 뭐. 간단히 말하자면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닌가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여러분들은 먹고살기 위해서 먹는 것을 마구 소홀히 하는 것 같아요. 제철이 되면 자연스럽게 크는 것을, 자랄 조건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억지로 자라게 하려니 비료와 농약, 성장호르몬을 더 많이 치지 않으면 안되겠지요. 게다가 햇빛을 많이 받아야 하는데 계절을 앞서 하우스에서 크게 되니 햇빛 대신 전등불빛이라도 받아야 자랄 수 있잖아요. 그러니 아까운 에너지만 소비되지요. 영양가도 더 없어요. 제맛도 나지 않구요. 언제나 맛볼 수 있으니 새로운 맛을 느끼는 감각도 둔하게 되지요. 참는 힘도 없어져요. 그러니 계절에 앞선 음식을 너무 좋아하지 않는 것이 훨씬 좋아요.식물들은 씨앗 하나를 싹틔우기 위해 온 우주의 기를 다 동원한답니다. 제철에 나오는 음식을 먹어야 농약을 덜 친 것을 먹을 수 있고, 그 철에 맞는 하늘과 땅의 기를 받아 한 계절을 잘 지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답니다. 그것이 바로 신토불이라는 것이지요. 자기가 살고있는 땅에서 난 제철음식을 먹어야 올바른 몸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요즘 철없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철없는 음식만 먹고살아서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무리 빨르게 움직여야 살아갈 수 있는 사회라고 하지만 우리 조상들의 느긋한 마음을 이어받아 철든 음식으로 철든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군요. /전주 한울 생활협동조합 이사장 이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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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6.27 23:02

[새벽메아리] 공든 탑이 무너지고 있다

기독교 방송(CBS)이 9개월째 정상적인 방송을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언론사상 최장의 파업 기록은 갱신한 지 이미 오래고 곧 세계 신기록이 세워질지도 모를 판국이다. 이 부끄러운 기록을 세우고 있는 당사자는 CBS 노조와 CBS 권호경 사장을 비롯한 재단 이사회이다. 재단 이사들을 기독교계 주요 교단들이 파견하고 있으니 넓게 보면 기독교계 전체가 당사자이다. 파업의 원인도 임금협상과 단체협약으로 명분을 삼았으나 이미 작금의 쟁점은 사장 퇴진과 재단 개혁이 중심이 되었다. 나아가 CBS사태는 교계 정치의 핵심을 건드리고 있다는 조심스런 진단도 나오고 있다(한겨레21 6.13). 이제 CBS 사태는 교계의 테두리를 넘어서 국회 문화 관광위원회, 방송위원회에서 다루어져 전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또한 120여개국에 40여만의 회원을 가입시키고 있는 국제기자연맹(IFJ)의 제24차 서울 총회에서는 CBS 파업사태가 다루어져 CBS 노동조합의 파업에 연대를 표명하고 모금을 했으며, 각국에 돌아가 지원 방법을 논의하기로 했다니 이제 기독교 방송의 파업사태는 세계적 뉴스가 되게 생겼다. 참으로 국제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지난 18일(월)부터 200명 전 조합원이 단식 기도회에 돌입했다. 여기에는 주조정실의 엔지니어들까지 합세하여 방송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전망이다. CBS가 어떤 방송인가? 암울한 독재정권 시절 온 국민을 대상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던 CBS는 80년 언론통폐합 조처로 보도기능을 빼앗긴 뒤에도 자기 색깔을 잃지 않고 끈질기게 버텨낸 유일한 매체였다. 87년 10월, 7년간 중단했던 뉴스의 재개를 알리던 CBS 아나운서의 떨리는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CBS는 단순한 방송이 아니라 한국 민주화의 굴곡을 고스란히 함께 겪은 한국 현대사의 증인이다. 이런 연고로 연초부터 'CBS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C사모)'가 전국적으로 발족하여 파업사태에 대한 공동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언론사들이 파업을 경험했지만 'K사모'나 'M사모'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CBS는 노조나 이사회, 기독교계만의 것이 이미 아니다.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국민 방송국이다. 본래 CBS는 자본주의의 전통적인 노사간의 갈등이 없는 방송국이다. 박봉에도 자랑스런 CBS의 한 식구라는 자부심으로,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데 언론인으로 한몫을 한다는 신앙의 동지의식으로 노사가 하나였다. 회사내의 단결과 교계의 뒷받침으로, 그리고 기독교인을 비롯한 청취자들의 지지와 헌금으로 그 어두운 시대의 등불 역할을 당당히 해온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CBS가 자중지란(自中之亂)으로 공든 탑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이 불행한 사태는 막아야 한다. 다행히 권사장이 속한 교단의 총회장과 연합 기관인 KNCC 현 회장을 겸하고 있는 김경식 목사님이 중재를 자임했고 노조는 그 분에게 백지 위임장을 제출한 상태이다. 이제 재단 이사회와 교계 어른들이 대답을 해야 할 시점이다. 교계의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 주어야 할 때이다. 필자를 포함한 기독교인과 청취자들은 이 과정을 기도하며 지켜볼 것이다. CBS의 공든 탑 뿐 아니라, 수 십년간 감옥과 고문을 이겨내고 쌓아온 민주화 운동 지도자로서의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그분들의 신앙과 능력이 우리의 기대를 버리지 않기를 빈다. / 양진규 (전북기독교 사회, 복지연구소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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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6.20 23:02

[새벽메아리] 6월, 다시 희망을 만들자

우리는 1987년 6월 이후부터 해마다 6월이 오면 민주화를 위해 외치던 거리의 행진을 기억한다. 1987년 6월 독재타도를 위한 함성의 물결을 따라 나서지 않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 누구라 할 것도 없이 관통로, 팔달로 그리고 전국의 도시 어디에도 사람들로 가득 했었다. 우리는 6월 그 소중한 정치적 경험을 청년시기에 맞이한 사람들을 386세대라 칭하고 희망을 걸어주기도 하였다. 우리여성들이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을 만나서도 출산의 고통과 기쁨을 공유하면서 금새 친해지는 모습, 그리고 남성들이 군대얘기를 하면서 느끼는 연대감처럼 6월 민주 대항쟁의 경험도 사람들에게 공통적 경험이주는 연대감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우리사회의 성숙하고 합리적인 발전을 위한 사회 구성원들의 통합에 공통의 정치적 경험이 기여 할 것이라는 사회적 기대를 반영 한 것이다.지금도 그 시절의 친구나 동료들을 만나면 한동안 거리에서의 무용담과 독재의 역사를 민주의 역사로 바꿔내는 현장의 한복판에 자신이 함께 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야기를 많이듣게 된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도 모르게 계속되는 흥분과 자랑도 잠시 세상을 향한 한숨과 정치에 대한 환멸로 금새 주제가 바꿔지기 일쑤다.여전히 세상이 바뀌어도 정치권력의 부패지수는 낮아 질 줄 모르고 빈부의 격차는 심화되고 공익적 가치보다 집단적 이익에 자신들의 힘과 권위를 활용하는 모습들에 대한 비판이 이어진다. 무엇보다도 정치가 썩었다고 한탄하고 외면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부패한 정치는 누가 만들었는가?정치는 시대정신의 산물이다. 정치는 우리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부패한 정치는 우리사회의 공기가 통하지 않고 음습한 곳에서 피어나는 곰팡이로 그들 곰팡이가 피어날 수 있는 조건은 우리들 스스로가 만들었다. 이들 부패한 곰팡이가 피어나지 않도록 햇볕과 신선한 공기를 넣어주어야 한다. 그 일은 바로 시민의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箚?열변을 토하던 어느 선배님의 말이 다시 6월 세상에 희망을 만들어 나가는데 필요한 것 같다. 87년 6월 민주대 항쟁의 열린공간은 당시의 정치권, 재야 운동권 그리고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민주쟁취라는 하나의 과제를 중심으로 뭉쳤기 때문에 가능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환경적으로 수많은 문제들을 지니고 있다. 이제 어려운 시기에 다시 맞이하는 6월에 평화적 통일과 산적해있는 사회개혁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의 힘과 지혜가 모아져야 한다. 6월의 민주적이고 참여하는 시민정신은 자발적인 대중조직들로 모아져 시민사회운동단체들로 건설되는 성과를 낳기도 하였다. 이제 이들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의 내용을 강화하고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많은 참여가 필요한 때이다.우리 사회가 비록 개개인의 삶을 보장해줄 복지제도가 낙후함으로 인해 보다 고상한 이념을 위한 활동에 함께 참여하게 하는 것을 가로막고는 있지만, 많은 사람들의 염원과 힘을 모아 싸워서 소중한 것을 얻었던 87년 6월의 경험을 기억하며, 음습한 곳에 햇볕으로 밀폐된 곳에 신선한 공기를 넣어 줄 행렬이 되어 건강하게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운동단체에 참여로 이어지기를 희망해본다. / 김금옥 (전북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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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6.13 23:02

[새벽메아리] 외국인근로자 의료보장 시급

만약 누가 내게 최근 맡고 있는 일 중에서 가장 보람있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외국인노동자 의료공제회 활동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우리 나라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지난해에 50만 명을 넘어섰다. 작년 법무부 발표에 따르더라도 그 중 20만명 이상이 불법체류자이며, 이들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기피하는 전형적인 3D 업종에 종사하면서 저임금과 열악한 근로환경 속에서도 '코리안 드림'을 일궈가고 있다.자본에 국경이 없는 세계화의 시대에, 노동시장 역시 국경이 있을 수 없으며 시장논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명제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외국인 노동자를 수입하여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하면서도 이들에 대한 신분적, 법적 보장 조치는 전혀 취하지 않고 있다.이들 불법체류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매우 크지만, 실제로 외국인노동자들을 만나보면 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임금체불이나 열악한 근로환경이 아니다. 자신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고 저개발 국가에서 수입된 값싼 노동력, 즉 뭔가 우리보다 저급한 족속으로 취급하는 데 대한 모멸감이고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에서 오는 불안감과 정체성 상실이 더 큰 고통인 것이다. 나의 사촌 형님 중 한 분은 60년대 후반 독일로의 인력송출이 한창일 때 광부로 들어가, 지금은 다른 일에 종사하고 있지만, 아직 그곳에서 살고 있다. 형수도 당시 취업을 위해 독일로 온 간호사였고, 이들 부부의 두 자녀는 현재 베를린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사촌형님을 만나기 위해 내가 10년 전쯤 독일을 방문했을 때, 그곳의 교민들에게 60년대 말과 70년대 초 독일로 이주한 한국인 노동자들이 3D 업종에 종사하면서 느꼈던 그 고통과 외로움에 대해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 학살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독일 사람들은 그 죄과를 보상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이방의 노동자들에게 자국 노동자와 동일한 대우를 해 주었다. 물론 의료혜택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어떤가? 과연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그렇게 잘 살게 되어서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외국에 이주한 노동자로 나가 외화벌이를 하였던 과거를 잊고 이제는 이 나라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학대하거나 착취한단 말인가? 이는 정말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세계화의 구호가 소리높이 외쳐지고 영어를 잘하는 것이 생존의 본질처럼 추앙받는 시절에, 나는 그 세계화의 출발이 이 나라에 들어 온 외국인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생존권 문제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야 한다고 생각한다.더욱이 사람이 아프거나 중병에 걸리는 것을 어찌 사람의 뜻으로 통제할 수 있겠는가? 전장에서도 부상자는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는 것이 의료의 본질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 들어 온 이들 외국인노동자, 특히 불법체류자들은 완전히 의료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고,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이들에게 병원의 문턱은 너무나 높다. 외국인노동자 의료공제회는 이러한 현실을 자력으로 타개하기 위해 지난 1999년 9월에 출범했다. 현재 뜻을 같이한 300여 협력 의료기관이 참여하고 있고, 5000여명의 불법체류 노동자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있다. 공제회는 외부의 후원금과 조합원들이 매달 5000원씩 내는 회비로 입원 및 외래 환자에게 재정 지원을 하고, 외국인노동자에게 병원의 문턱을 낮춰주는 일을 하고 있지만, 궁극적 해결을 위해서는 이들의 신분적 조건을 바꿈으로서 사회적 차원에서 인권을 보장할 국가적인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언제까지 지금처럼 불법적 영역에 방치한 채 민간에서 알아서 책임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 이왕준 (인천 사랑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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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6.06 23:02

[새벽메아리] 아이들에게 건강한 미래를

요즘 학교급식사고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급식을 하는 학교가 늘어나면서 매년 사고건수가 증가하고 있는데, 작년에는 학교급식으로 인한 식중독 환자가 전체 식중독 환자의 66%를 차지했다고 한다. 학교급식을 시작한 목적은 청소년들에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골고루 먹여서 건강하게 자라게 하고, 학부모들에게 도시락을 싸는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의 실태를 보면 오히려 학생들의 건강을 해치는 것이 학교급식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식중독사고가 나지 않았다고 해도 급식 때에 아이들에게 먹이는 음식재료는 질이 좋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급식을 먹는 학생들에게 주로 어떤 반찬이 나오느냐고 물으면 햄이나 소시지, 어묵 등 인스턴트 식품이나 냉동식품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시중에서 처리하기 힘든 재료를 해결하는 곳이 학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이나 값싼 수입농산물 등 질 낮은 식품이 학교급식으로 쓰이고 있다. 한창 크는 우리 아이들의 건강이 참으로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햄이나 소시지 같은 인스턴트 식품은 요즘 아이들이 선호하는 음식인데다 조리하기 쉽기 때문에 반찬으로 자주 쓰이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에는 각종 첨가제와 방부제, 발색제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첨가물들은 체내에서 다른 물질과 결합하여 발암성 물질로 변한다는 논란이 있으며, 특히 어린아이들에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산만하고 정서불안정한 아이들과 공격적인 아이들이 늘어나는 것이 식생활과 관련이 있다는 보고도 있다. 값싼 수입농산물은 농약으로 찌들어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농약은 건강을 해치는 주물질이다. 발암성 물질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신경세포를 교란하여 자살 충동까지 일으키게 한다. 요즘 남자들의 정자수가 줄고, 다섯 살 어린이가 생리를 하고 스무 살 처녀가 폐경이 되는 원인도 다 이 농약성분 때문이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이다. 이들이 건강하게 자라야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사회를 올바르게 이끌어 나갈 수 있다. 아이들을 오염된 먹거리 환경에서 자라게 하는 것은 먹을거리에 대한 어른들의 안이한 태도나 무관심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우리의 미래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태도이다.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아이들에겐 먹을거리의 질이 대단히 중요하다. 가능하면 농약을 치지 않은 유기농산물을 먹이고, 여의치 않으면 저농약 농산물을 먹이도록 해야 한다. 물론 가격이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싼 과외나 비싼 옷, 비싼 외식에 돈을 들이는 것보다 아이들의 건강한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 더 확실하고 보람있는 일이 아닐까. 요즘 먹을거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유기농산물로 급식을 하는 유치원이 있다. 이런 깨달음이 유치원에서부터 전체학교로 확산되어 우리 아이들에게 건강한 미래를 물려줄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 이덕자 (전주한울생활협동조합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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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5.30 23:02

[새벽메아리]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

저널리스트를 지향하는 한 사람으로서 내 나름의 저널리즘과 저널리스트의 역할에 대한 견해를 학자와의 관계 속에서 말해보고자 한다. 저널리즘(journalism)의 의미는 협소하게는 정기적인 출판물을 통하여 시사적인 정보와 의견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활동을 가리키고 넓게는 모든 매체와 방법을 동원하여 대중전달 활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저널리스트는 이러한 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그럼 학자는 무엇인가? 학자는 학문으로 밥을 먹고사는 사람, 즉 직업적으로 학문을 하는 사람이다. 학자는 무엇으로 인정받는가? 직업적 학자를 인정하는 것은 대중이 아니라 자기 분야의 동류 학자들이다. 학자들 세계를 곁눈질해서 본 나의 눈에는, 학자는 이들 학자 동무(同務, peer)집단에 의해 학위를 받고, 채용되고, 권위가 정해지고 자원과 권력이 배분되는 것으로 보인다. 학자는 철저히 자기 집단에 의해 발탁과정과 성장?쇠락이 결정되는 것이다. 나는 석사과정의 세미나에서, 선배학자인 교수와 예비학자인 동료들에게 단어나 수식 하나에서부터 주장의 근거가 합당한가와 주장하는 주제의 가치에 이르기까지 수정되고 철저히 해부 당하는 경험을 하면서, 이 소심하고 지겨운 과정을 직업으로 삼을 것인가에 대한 심한 회의를 하였다. 이 과정을 견딜 능력이 없거나 의지가 없는 사람은 학문의 길을 갈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직업적 학자가 될 능력이나 의지가 없다 하더라도 지적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비학술적 잡지나 신문 등에 글을 쓰고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펼친다. 이들을 학자들과 구분하여 "저널리스트"라 총칭하면 어떨까? 저널리스트들은 동류학자들의 엄격한 비평(review)과정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훨씬 광범위한 이야기를 훨씬 적은 증거들을 가지고 주장할 수 있다. 좋은 저널리스트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가령 내가 기독교나 사회복지와 관련된 글을 썼는데 그 글이 일반독자들이 볼 때 이해가 잘 가는 글이고, 신학자나 사회복지학자들이 보기에도 맞는 소리가 많으면 좋은 저널리즘이다. 따라서 좋은 저널리스트는 관련 분야의 학자들의 논의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고 이를 대중적으로 가공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훌륭한 저널리스트의 역할은 훌륭한 학자의 역할에 비해 부족하지 않다. 훌륭한 학문을 잘 정리해 대중적 언어로 알려주는 저널리스트가 없다면 학문과 대중의 일상의 연결고리가 없어져서 학문의 현실성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또 저널리스트는 어려운 학문을 대중에게 전해주는 역할로 그치지 않는다. 어쩌면 학문의 엄밀성 때문에 소심해진 학자들이 못하는 큰 질문이나, 시의 적절한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일을 저널리즘이 해야 한다. 학자는 학자를 대상으로 일하고, 저널리스트는 학자와 대중을 향해 글을 쓴다.종종 교수의 직함을 갖고 학자인양 하면서 학자들을 향해 일을 하지 않고 대중에게 지식으로 군림하려는 사람들을 본다. 자신도 잘 모르는 전문용어로 대중을 주눅들게 하고 허세로 권위를 유지하려는 이들이다. 이들이 빨리 학자로서의 한계를 인정하고 저널리스트로 전향하면 역할이 있거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뛰어난 저널리스트들에 의해 해부되어 망신당하는 결과가 우려된다. 좋은 학자와 저널리스트, 그리고 혹세무민(惑世誣民)을 구분하는 훌륭한 대중이 있는 한 거짓 학자, 나쁜 저널리스트가 '세상을 미혹하고 대중을 업신여기는' 죄를 더 이상 짓지는 못할 것이다.양진규 소장(전북기독교사회복지연구소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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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5.23 23:02

[새벽메아리] 정신분열 없는 세상

지난해 9월 군산 매매춘 집결지인 대명동의 화재사건으로 매매춘 여성 5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에 전국의 주요여성, 시민사회단체가 공동으로 이사건과 관련하여 시 공무원, 경찰관계자, 포주 등 관련자와 책임자들을 고발하였다.이 사건은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아무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매매춘 문제의 해결을 우리사회가 해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었다. 또한 매매춘 문제는 여성의 인권문제라는 인식의 확산으로 전국의 여성, 종교, 시민단체들은 군산화재사건을 계기로 매매춘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정책적 대안을 만들어내고자 공동 고발한 것이었다.그러나 검찰은 7개여월 만에 각하처분을 내렸다. 인신매매와 노예매춘의 실상을 드러내고 사회적인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었던 사건의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을 통해 매매춘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 가고자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망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는 검찰의 조사결과는 매매춘 문제를 더욱 정상화해나가게 하는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이에 공동고발단체들은 지난 5월 8일 항고하였다. .매매춘 문제는 매매춘여성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매매춘 뒤에는 매매춘 조직이 있고, 매춘을 강요하기 위한 폭력이 있다. 매매춘이 폭력을 동반하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이를 통한 경제적 이득 때문이다.매매춘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범죄로 다스리는 우리나라에서 매매춘을 통해 부당한 이익을 얻는 세력들은 관계기관의 단속의 대상이 된다. 이를 한 장소에서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는 단속기관과의 유착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우리는 법과 현실의 이중구조속에서 가치관의 혼란을 겪을 때가 종종있다. 매매춘 문제는 그중의 하나이다.우리사회는 법으로 매매춘을 금지하고 있지만 현실에서의 매매춘은 인정하고 있다. 때문에 매매춘이 불법인지 아는 사람들은 적고, 불법을 행하고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하는 속에서 군산사건의 올바른 수사와 관련자들의 처벌은 우리사회가 법과 현실의 이중구조로 인해 단속대상과 기관의 유착으로 비리와 부정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사회적 문제해결의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우리는 일관성이 없는 가치기준을 가진 사람들을 정신분열환자라고 부른다. 우리사회는 집단적으로 곳곳에서 정신분열의 모습을 보이고있지만 여성에 대한 입장만큼 많은 분열증세를 드러내는 곳을 없을 것이다.여성의 인권이 존중 되지않는 이러한 이분법적 성규범은 남성의 외도와 매매춘을 필요악으로 기정 사실화 했다. 성관계는 이성관계와 사회관계의 성격을 가름해주는 기본적인 인간관계이다. 또한 정신과육체 이성과 감성의 결합이 얼마나 조화되는지를 보여주는 기본이다. 상대방에 대한 기본존중과 배려 동시에 자신의 자존과 인격에 대한 존중을 포함한다.때문에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은 인권과 민주적시민권의 일환으로 자리매김 해져야하며 남성의 성적특권은 가부장적 문화권력의 하나로 폐지되어야하는 인권운동의 과제이다.이러한 운동은 여성의 권익신장만이 아니라 보살핌과 나눔이라는 여성주의적 사회관계를 확산하고 세상의 모든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이중적이고 분열적인 의식을 개선하고 법과 현실의 괴리를 좁혀내는 대안적생활양식을 만들어나가고 확산해나갈 의식개선운동이 필요하다.우리모두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와 행동을 일치시키고 일관되게 적용해 나갈 수 있는 정신분열없는 세상에 살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 김금옥 (전북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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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5.16 23:02

[새벽메아리] 어버이날과 종합검진

해마다 돌아오는 어버이날이지만, 내게는 올 어버이날이 더욱 특별한 감회로 다가왔다. 바로 지난달에 아버님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따로 떨어져 생활한 지 이십 년 가까이 되었지만 늘 든든한 후원자로 마음속에 계셨던 분을, 이제는 정말로 마음속으로만 그려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다시 가슴이 콱 막히는 듯한 느낌이다. '나무는 고요하게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이 부모를 잘 모시려고 하니 이미 떠나고 안 계신다'는 옛말이 새삼 떠오른다.아버님은 그야말로 창졸간에 고인이 되셨다. 오랫동안 병상에서 고통받다 떠나는 많은 분들에 비하면 차라리 그게 낫지 않느냐는 위로를 많이 받았지만, 평소에 건강관리에 조금만 더 신경을 쓰셨더라면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나의 아버님은 의사로서 평생 진료만 열심히 하신 분이고, 나 또한 그런 아버님의 영향으로 의사가 되었다. 언제나 환자들에게 지속적 건강관리가 중요하다고 열심히 설명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의사이지만, 의사들의 평균수명은 다른 직업군에 비해 오히려 낮은 편이다.업무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커서일 수도 있지만, 질병이나 죽음과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건강 문제를 기피하는 경향 때문이기도 하다. 알면 알수록 두려움도 커지는 법이기에.부모님의 건강과 장수를 바라는 자식들의 마음은 다 똑같지만, 마음과는 달리 평소에 세심하게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도 똑같다. 특히 먼 곳에서 따로 생활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런데, 그래서인지 어버이날이나 생신 등의 시기에 '효도선물'로 흔히 선택되는 것이 종합검진상품권이다. 하지만, 이 종합검진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갖고 있어 몇 마디 하고자 한다.종합검진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얼마 후 어떤 질병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많은 환자들은 종합검진 결과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불만을 갖기도 하고, 심지어 진단이 틀렸다고 다른 병원에 가서 다시 진료를 받기도 한다. 이런 것은 모두 종합검진에 대한 과도한 믿음 때문에 일어나는 오해의 결과이다.이름에 '종합'이라는 말이 들어 있어 그렇겠지만 종합검진이 '모든' 질병의 유무를 검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은 큰 잘못이다. 종류에 따라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종합검진은 가장 흔한 질병 몇 가지에 대한 검사일 뿐이다. 사람이 걸릴 수 있는 수없이 많은 질병들 중에서 종합검진에 포함된 검사항목들만으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 질병이 훨씬 많다는 말이다.차라리 종합검진보다는 집 근처에 있는 동네의원이라도 꾸준히 다니면서 의사와 자주 상담하고,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검사들만 시행하는 것이 비용은 더 적게 들고 효과는 더 크다. 아주 많은 질병들은 사소한 증상에서부터 시작한다. 특히 연세가 높은 분들의 경우는 더 그렇기 때문에 작은 증상이 생겼을 때 병을 '키우지' 말고 가까운 의료기관을 찾는 것이 좋다.물론 어르신들은 사소한 이상이 있다고 해도 병원에 가는 일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이 부모와의 대화를 늘리는 것이다. 부모 자식 사이의 대화가 많을수록 부모가 어떤 증상을 갖고 있는지 알게 될 기회도 많아지고, 초기에 질병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도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다.어버이날에 종합검진상품권을 선물하는 것으로 자식의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나중에 큰 후회를 남길 가능성이 크다. / 이왕준 (인천사랑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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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5.09 23:02

[새벽메아리] 작은 힘이 큰 물결로

전주의 소비자들이 부안 변산의 유기농업 생산자들과 인연을 맺게 된 때는 10년 전 이른봄이었다. 그 당시 그들은 8년이 넘게 유기농업을 했는데 판로가 없어서 배추밭을 뒤엎었다고 했다. 그 말에 우리 소비자들은 마음이 아팠다.그래서 바른 농사를 짓는 이들을 살리는 데 힘을 모으기로 마음을 먹었다. 여덟 가구가 함께 하는 이 농부들은 농약, 비료, 제초제를 전혀 쓰지 않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해내는 농사를 짓고 있었다. 남들보다 몇 배의 힘을 들이면서 농사를 짓는데, 생활은 아주 힘드는 형편이었다.나는 솔직히 이 생산자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돈 많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몸에 좋은 유기농산물을 찾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 이 세상에 모든 것이 오염되어 있는데 혼자만 청정한 것을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이 문명사회가 그렇게 흘러가면 흘러가는 대로 따르는 것이 순리이지, 혼자만, 더군다나 값비싼 무공해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것 자체가 이기적인 태도가 아닌가 생각했다.그러나 생산자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도 유기농업을 하는 이유와 농약비료오염으로 인한 피해사례를 접하면서, 우리 모두가 함께 건강하게 살고 후손들에게 건강한 땅을 물려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좀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그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삶의 태도가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우선 몇 가지 농산물이라도 소비자생산자가 직거래를 해보기로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구역별로 공동나눔을 시작하였다. 5가구 이상이 모여 함께 주문하고 함께 먹을거리를 받아 나누었다. 그리고 어린이 자연학교, 봉사활동, 가족모임행사 등을 통해서 소비자와 생산자는 한가족이 되어갔다. 처음엔 십여 가정이었던 소비자 회원수가 점차 늘기 시작했고 생명농업을 하겠다는 생산자도 늘어났다.생산자들의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고 살아있는 땅도 조금씩 늘어났다. 소비자들은 온힘을 다해 봉사하며 알뜰하게 공동체를 꾸린 결과 얼마간의 돈을 적립할 수 있었다. 그 돈에다 회원들의 매장마련을 위한 특별출자금을 모아서 마침내 소망이었던 직매장을 열게 되었다. 한울공동체가 창립된 지 9년만의 일이었다.그로부터 1년 5개월 후인 지난 2월, 한울공동체는 생활협동조합으로 재탄생하였다. 생활협동조합은 말 그대로 생활에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하여 조합원들이 서로의 힘을 모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자발적인 공동체이다. 조합원들 스스로 투자하고 이용하며 운영하는 이 공동체에서 지향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첫째는 바른 농사를 짓는 생산자와 함께 참먹을거리 생산을 통해서 환경과 생태계 보호에 앞장서는 일이다. 둘째는 수입농산물의 홍수 속에서 우리의 농촌과 농민을 살리며, 셋째는 이웃과 협동하는 공동체문화를 형성하여 보다 인간다운,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도록 힘쓰는 일이다.지금은 조그맣고 약해 보이지만 한사람 한사람의 작은 힘들이 모인다면 큰 물결이 되어 이 땅의 모든 생명을 지키고 가꿀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덕자 (전주 한울 생활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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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5.0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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