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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조폭과 감동의 미학

영화 친구의 대성공에 이어 조폭마누라가 깡패 직업(?)을 가진 여자 주인공을 내세워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였다. 내친 김에 조폭 소재의 영화는 학교(화산고)로 사찰(달마야 놀자)로 장소를 옮겨가며 극장가를 달구고 있다.이들 영화들은 우리 사회의 극소수이자 암적인 존재라 할 조폭들을 양지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것에 고무되었을까? 정치권에 피어오르는 때아닌 조폭 연계 의혹이 신문에 오르내린다.친구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사람이 꽤 많다. 특히 장동건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말이다.사람들은 왜 조폭영화에 몰리는가? 사람들은 왜 폭력에 열광하고 싸움을 말리기보다 싸움 그 자체에 구경꾼으로 몰려드는가?영화는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볼 때 조폭 친구가 하나도 없는 나는 조폭 소재 영화에 사람이 몰리는 것을 의아해하지만 주변에서는 조폭적 행태를 흔하게 목격하게 된다.혹자는 영화는 특이한 것을 다루어야 대중의 관심을 끈다고 하지만 우리에게 특이하다고 할 이란과 인도의 영화가 별 인기가 없는 걸 보면 이건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은 오히려 영화에서 자기와 비슷한 것, 자기 사는 시대의 모습을 보면서 공감하는 것이다.시선을 돌려보자지난 보궐선거를 앞두고 신문과 방송들은 앞다투어 각종 의혹사건을 둘러싼 여야 대변인 설전을 머리기사로 장식했다. 폭로전에 가세하여 한 건 올린 의원에게는 기자들이 몰려들고 마땅히 선거의 뜨거운 이슈가 되어야 할 어려운 경제 문제와 각종 정책 현안들에 대한 해법을 내놓는 정치인은 찾아볼 수 없고 설사 거론한다 하더라도 카메라 세례를 받지 못한다.언론은 가십거리를 키우고 확인되지 않은 것을 기사화하는데 열을 올리고 문제가 생기면 아니면 말고 해버리면 그만이다. 연일 벌어지는 난장판이라고 할 만한 권력 쟁탈전, 여기에 끼어 함께 가는 세력들우리는 이렇게 조폭적 행태가 관심을 끄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그럼 진짜 감동은 어디에서?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은 맑은 가을하늘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는 한 순수한 인간의 영혼이 518 광주 진압군 가해자로, 잔혹한 정보과 형사로 변신해가면서 파멸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나간다. 바람난 아내, 배신한 동업자 친구, 그를 파산으로 내몬 주식투로 만신창이간 된 주인공에게 돌아가고 싶은 과거는 더 이상 없으며 그에게 남은 선택은 맑은 가을하늘을 바라보며 철길에서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이다. 좀체 화면을 보면서 감동을 느껴 보지 못한 나는 설경구가 수배학생을 잡기 위해 잠복한 군산의 어느 허름한 까페 여인과 하룻밤을 지내는 장면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이 영화는 많은 평단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을 모으는 데는 실패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조폭마누라가 15세 관람가인데 비해 박하사탕은 18세 관람가였다는 것이다. 깡패영화는 봐도 괜찮고 리얼리즘에 입각한 진지한 영화는 청소년들에게 맞지 않다는 훌륭하신 어르신들의 판단이다.TV가요순위 프로그램은 앞으로 엎어졌다 뒤로 넘어졌다 하는 10대 댄스가수들이 점령한지 오래이며 무대에는 현란한 반주에 맞춰 입만 벙긋하는 붕어가수들이 판을 친다. 아이들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어른들은 아이들이 버릇이 없어졌다고 혀를 찬다.나는 할리우드 영화 모두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할리우드에는 훌륭한 영화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들 눈 앞에는 흥행을 앞세운 저급영화들만이 즐비하며 이것을 모방하는 한국영화들이 뒤를 잇는다.감동을 권하지 않는 사회, 감동을 엉뚱한 곳에서 느끼는 사람들 속에서 오늘도 감동을 찾기 위해 헤맨다.오늘 하루 생활에서 감동을 맛보지 못한 나는, 늦은 밤 케이블TV 채널을 하릴없이 이리저리 돌려보다 끝내 마땅한 감동꺼리를 못 찾고 잠자리에 든다./ 김성주 (시민행동21 뉴미디어센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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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11.21 23:02

[새벽메아리]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성철 스님이 종정에 추대된 후 최초의 법문이 최근 언론에 재인용되어 관심 있게 읽었다. 필자는 불교에 대해서는 성철스님 이름 정도나 알 정도로 문외한이지만, 그 분의 질책에 대해 공감하는 바가 많았다. "부처님을 팔아 자기의 생계수단으로 삼는 사람은 부처님 제자도 아니요, 승려도 아니요, 다 도둑이다"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불법(佛法) 만나기 어렵다. 그럼에도 다행히 사람 몸 받고 승려 되었으니 중생제도는 못할망정 도둑이 되어서야 되겠나, 만약 부처님을 팔아서 먹고사는 그 사람을 도적이다 한다면 그런 사람이 사는 처소는 도둑의 소굴이다 할 것이다""우리자신이 도둑 되는 것은 나의 업이라 지옥에 간다 할지라도 달게 받겠지만 부처님까지 도둑 앞잡이로 만들면 안 된다"물론 이 법문이 공개되자 전국의 주지로부터 항의가 빗발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벌써 몇 십년 전 얘기이니 이제는 과거 일이고 지금은 모든 승려들이 중생구도에 전념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속세 즉 대다수 국민들이 사는 현실이 어떠한 가이다. 내각제가 소신이라며 어떤 위협에도 맞서 싸우겠다던 두 명의 의원이 슬그머니 대통령제가 당 강령인 정당에 한마디 과정 설명 없이 입당하는 모습에서 우리 국민들은 무엇을 배우고 있을 것인가?대통령의 아들이 우연이지만 검찰의 고위 간부와 조폭 두목과 한 자리에서 휴가를 보낸다면 우리 현실에서 도대체 어느 검찰이 조폭을 재량 껏 수사할 할 수 있단 말인가?보궐선거 직전에는 총재가 앞장서서 여당이 모든 악의 근원인양 공격하더니 선거 결과가 좋게 나오니 모든 걸 용서한 듯, 이제는 민생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면서 의혹을 제기하던 사안에 대해 한마디 설명도 없으니 정의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울 뿐이다.사람 몸 얻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렵듯이 사람으로 태어나 나라 일까지 맡은 것은 고맙고 분에 겨운 일임에도, 너무나도 실망스러운 모습만을 보여주는 정치권에서 한번쯤은 되새겨 보아야할 큰스님의 질책이 아닌가 싶다.주술에라도 걸린 양 경제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신념으로 국민들을 희생하고 있는데 경제인들은 기술개발이나 혁신에는 관심 없고 탈세나 돈 빼 돌리는 데나 관심 갖지 않았는지 뒤돌아보아야 한다. 기사로써 말 해야할 언론인들은 기사보다는 또 다른 능력으로 자신의 권한을 확대하지 않았는지, 강한 자에 약하고 약한 자에 강한 것이 관행이 되어온 사정기관들은 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많은 문제에 의견을 내고 있는 시민단체들도 내실이 갖추어졌는지 점검해볼 일이다. 어떤 조직에 속하든 어떤 역할을 하던 그 조직의 목적과 기능에 충실하지 않고 이익에 관심을 갖는 다면, 부처나 팔아서 먹고사는 사람들이 있는 곳을 도둑의 소굴이라 했듯이 그 사람들이 속해 있는 조직은 국민의 눈에 도둑의 소굴로 보일 것이다. 국민들의 이런 불신에 힘있는 사람들은 온갖 감언이설로 변명하고 설득하려 한다. 그러나 국민들 믿고 주요한 직책을 맡겼더니 국민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만 챙긴다면 어찌 되겠는가? 자신의 이익 챙기기다가 잘못되면 자신의 업이라 책임지면 되겠지만 믿고 맡긴 국민들은 처지는 어떻게 될 것인가?국민에게 한 번 신뢰를 잃으면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성철스님의 질책이 아니더라도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에 고마워하면서 더욱 욕심을 내는 것보다 역할의 기능에 충실할 때 정상적인 사회가 만들어 질 것이다. / 최형재 (전북시민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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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11.14 23:02

[새벽메아리] 쌀, 모두가 함께 지켜야할 몫

쌀 때문에 전국이 난리다. 농민들은 쌀 생산비를 요구하며 나락을 야적하고 농성과 집회를 연이어 벌이고 있으나, 정부와 농협중앙회는 특별한 대책 없이 뒷짐만 지고 수수방관하며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지역 농협과 지자체가 나서서 농민들이 요구하는 가격을 일부 보전해주고는 있으나 이는 농협의 자체매입물량에 한정되어 있어 나머지 물량을 팔지 못하고 있는 농민들의 한숨이 여간 힘겨워 보이질 않는다. 몇 차례 정부가 대책을 내놓았으나 현재 산지 쌀값은 오히려 작년보다. 1만5천원에서 2만원 가까이 떨어진 14만원선에서 거래가 되고 있는 실정이니 연말에 갚아야 할 각 종 자금의 원금과 이자를 제대로 갚을 수 있을지 그저 막막하기만 할 따름이다.농사꾼의 한사람으로서 쌀값 몇 푼이 문제가 아니라 5천년 동안 이 민족을 지켜온 쌀이 무시당하고 푸대접 당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밥은 하늘이라 했건만 요즘에야 어디 쌀이 하늘 대접을 받는가? 배고픈 시절에야 정말 쌀 한 톨도 하늘같이 여겼건만 먹을 것이 풍부한 요즘에야 밥보다 인스턴트 식품을 더욱 선호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정부에서도 이제는 값이 싼 외국의 쌀로 대체하고 그 대신 공산품 수출을 늘리는 것이 더 경제적으로 이익이라는 단세포적인 정책으로 농민과 국민을 현혹하려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현재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도 꼼꼼히 살펴보면 결국 쌀값을 더욱 떨어뜨려 경쟁력(정말 표현하기 싫은 말이지만) 없는 농민들은 쌀농사를 포기하고, 그대신 쌀시장 개방을 수용하여 공산품 수출을 늘려보자는 것 아닌가? 그러나 세상 어디에 자기나라 국민의 식량을 남의 손에 의존하려는 나라가 있는가? 쌀은 경쟁력을 떠나서 이 민족의 주권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보루가 아닌가? 더구나 쌀 농사를 통한 홍수예방과 환경보전 기능 등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연 간 11조 3천억 원이 넘는다는데 결국 그만큼의 국민의 세금부담을 대신 지고 있는 우리농업에 대해 국민 모두가 이해를 같이해야 하지 않을까쌀 생산비를 보장해 달라는 농민들의 절절한 울부짖음을 집단이기주의 쯤으로 보아서는 안된다.쌀농사의 포기는 연이어 우리 농업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우리 민족의 식량주권을 남의 나라 손에 넘겨주는 무서운 재앙을 예고하는 것이다. 우리의 식량생산 기반이 무너진다면 미국을 비롯한 농산물 수출국들은 식량을 무기로 우리의 경제와 주권을 통째로 먹으려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쌀을 비교우위에 입각한 경제적 논리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정부는 쌀값을 시장기능에 맡기겠다는 발상을 버리고 식량자급을 위한 장기적(통일까지도 고려한) 생산기반 확보와 쌀 수급대책을 마련하고 쌀 생산농가의 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확실한 정책을 내와야 한다. 아울러 쌀을 지키려는 노력은 농민들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여기에는 식량에 대한 중요성과 농민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전체 국민이 함께 노력할 때만이 우리의 쌀을 지켜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김용호 (전국농민회 전북도연맹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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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11.07 23:02

[새벽메아리] 같으면서도 다른말, 아내의 '이혼' 남편의 '이혼'

다음은 얼마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TV 일일드라마의 한 장면이다.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남편, 경제적 수입도 충분하고, 아내에게 늘 존대말을 하는 등 매사에 가정적이어서 가장으로, 그리고 남편으로 모범적인 한 남자와 귀엽고 상냥하며 남편과 자녀들에게 예쁘게 어리광을 부리는, 약간은 푼수끼를 갖고 있는 아내(모든 TV 드라마에서 완벽한 남편의 아내는 늘 순진한, 그러나 푼수끼 다분한 여성이 아내로 등장한다).이들이 부부싸움을 하고 있다. 누구나 원하는 이상적인 가정을 이룬 두 사람인 만큼 이 싸움의 결과가 어찌 될지 시청자들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지만 그래도 제법 긴장과 갈등을 고조하고 있다. 마침내 이들 부부는 서로에게 이혼을 선언했다.아내는 남편에게, 그리고 남편은 아내에게 각각 이혼을 거론하며 상대를 몰아세우는데 이들이 정말 이혼을 하리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이들은 정말로 이혼하겠다는 생각보다 '이혼'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각자의 요구사항을 상대방에게 전달한 것이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이들이 상대에게 전달하려는 의사는 무엇이며 어떤 결과를 바라고 있을까?먼저, 아내의 경우를 짐작해보자. 아내는 남편에게 '이혼하자'라는 말을 통하여 남편에게 자신이 무척 화가 나 있음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일게다. 그리고 남편이 자신의 화났음을 이해하고 달래주기를 원하고 있다. 왜냐하면 남편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과 헤어지고 싶지 않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결국 아내는 '이혼'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남편이 자신을 여전히 사랑한다는 사실을 확인받는 것이 목적이다.그렇다면 남편의 경우는 어떠한가? 남편 역시 진정으로 이혼을 원한다기 보다는 자신이 화가 나 있음을 아내에게 전달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이 사용하는 '이혼'이라는 단어는 아내에게는 협박과 위협으로 작용한다. 특히 직업을 가진 아내보다는 전업 주부인 아내에게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남편의 '이혼하자'는 아내를 확실하게 지배하고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사랑의 확인보다는 아내의 복종을 얻어내려는 행동이 된다.이러한 해석이 지나친 것이라 믿는다면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자. 만약 남편과 아내가 이혼을 하게 된다면 두 사람은 무엇을 잃게 되는가? 먼저 두 사람 모두 자신에게 정서적 안정을 제공해주던 가정을 잃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남편의 경우 사회적 명예나 자존심이 약간 훼손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아내의 경우는 어떠한가? 사회경제적 활동에의 참여가 원천적으로 봉쇄된 아내는 그동안 남편의 사회경제적 활동에 의존하여 누려 왔던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지위를 동시에 잃게 되며 이혼녀라는 이름에 따르는 사회의 싸늘한 편견에 시달려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이혼은 여성에게는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다. 따라서 부부싸움 중에 서로에게 내뱉듯 사용하는 '이혼'이라는 단어는 그 의미가 같으면서도 매우 다른, 사회적 의미를 포괄하고 있으며 우리 사회가 얼마나 여성에게는 불리한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문윤걸 (문화비평가.문화저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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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10.31 23:02

[새벽메아리] 다시 美國을 생각한다

이번 미국 비행기 자살 테러를 TV로 지켜본 사람들은 항상 과장이 넘쳐나는 헐리웃 영화 속 픽션보다 더 충격적인 현실의 광경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위급한 순간에 테러범을 제압하는 주인공들이 나오는 영화와 달리 현실에선 영웅도 나오지 않는다. 한 편에선 영화가 테러범들을 가르쳤다는 소리가 나오지만 그것은 폭력 비디오가 폭력배들을 낳았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자본에 의한 세계화를 상징하는 뉴욕의 국제무역센터빌딩과 군사 심장부 워싱턴 국방성이 공격 당한 것은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대한 정면 공격으로 보인다.테러 직후 부시 대통령은 미국의 자유가 공격당했다. 위대한 미국을 위해 싸우자'면서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밝은 자유와 기회의 빛이어서 공격의 목표가 됐다고 주장했다.미국은 아프칸에 대한 폭격을 개시하면서 테러에 대한 21세기 새로운 전쟁을 선포하였다.전쟁은 갑자기 시작되지 않는다.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 패배로 인도차이나에서의 식민지배를 포기한 프랑스를 대신하여 그 자리를 물려받은 미국은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분할된 남베트남에서 고딘디엠을 내세워 친미반공정권을 세운다. 북베트남의 세력 확장에 시달려오던 미국은 1964년 미군함 매독스호가 북베트남으로부터 공격받은 통킹만 사건이후 들끓는 여론을 바탕으로 이듬해인 65년 북베트남에 대한 전면 폭격을 실시하고 본격적으로 베트남전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 전쟁에서 미국은 태평양전쟁때보다 더 많은 900만톤의 폭탄을 작은 나라 베트남에 퍼붓고도 가장 쓰라린 패배를 맛보게 된다.20세기 미국의 가장 강력한 적이었던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몰락한 이후 미국은 새로운 전쟁에 직면하고 있다. 이번 전쟁은 미국이 자국 영토 밖에서 치러왔던 20세기 전쟁들과 달리 미본토 심장부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번 사태로 미국인이 겪는 공포는 역사상 처음 있는 것이다. 전쟁이 단지 버튼 누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 위로 떨어지는 폭탄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아무 죄 없이 죽어가는 민간인이 얼마나 불쌍한지 깨닫게 될 것이다.미국은 보복 공격을 하기 전에 증오로 가득 찬 자살 테러가 왜 미국인에게 자행되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지금 미국이 겪고 있는 고통은 과거 80년 동안 이슬람이 겪은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는 라덴의 주장과 쿠웨이트를 침공한 대가로 엄청난 보복 공격을 당해 수십만의 어린이들이 굶거나 병들어 죽어가는 불량국가 이라크 사람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이해하지 않는다면 대답은 항상 전쟁일 것이다 미국은 과거 베트남전에서 5만명의 미국 병사들을 잃고 나서야 그 전쟁에서 손을 뗐다. 이제 머나먼 이국 땅이 아닌 본토 심장부에서 수천 명의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된 이번 테러에 대한 대응에서 미국은 과거로부터 소중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테러는 단지 공포를 낳음으로써 상대방을 일시적으로 위축시킬 뿐이다. 공포는 신념에 입각한 진정한 용기에는 효과가 없다. 한국에서의 공포정치도 수많은 용기 앞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상상을 초월하는 테러에 대항해 전쟁 수준의 보복을 가하는 것은 또 다른 참혹한 테러를 불러올 뿐, 테러의 원인 제거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미국의 세계 전략에 따른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과 아랍세계에 대한 적대 정책이 포기되지 않는 한 어떤 보복 폭격도 새로운 테러를 막지 못할 것이다.미국 지도자들이 이것을 깨닫고 진정한 평화를 얻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김성주 (시민행동21 뉴미디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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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10.17 23:02

[새벽메아리] 적조 녹조 그리고 정치환경

바닷물과 저수지 등에서 조류의 이상증식에 의한 물빛의 변화가 해당증식 조류의 체색을 따서 붉으냐, 푸르냐에 따라 적조나 녹조라고 한다.지난여름 적조는 남해안 여수 일대에서 발생해 부산을 거쳐 동해쪽으로 이동해 강릉까지 북상해 적조주의보를 발령하는 등 법석을 떨었지만 수산업에 엄청난 피해를 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전북도민의 식수원인 용담댐은 담수가 이루어진지 채 1년도 안된 지금, 녹조현상으로 도민의 가슴을 조아리게 하고 있다.기본적으로 적조, 녹조현상은 생물들이 변화된 환경에 맞춰 반응하는 현상으로 자연현상이다. 문제는 변화된 환경을 인간이 제공한다는 점이다. 적조, 녹조 피해가 발생하면 양식장 등의 피해가 금액으로 환산되어 보도되기 때문에 적조가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자연의 폭력으로 인식되기 쉽지만 인재의 혐의가 더 크다. 인과 질소 등 육지의 하수나 쓰레기에서 나온 영양염류가 정화 처리되지 않고 저수지 나 바다로 흘러들 경우 이들 영양물질들로 물이 부영영화 되어 플랑크톤 번식의 한 조건인 풍부한 먹이를 제공하게 되는데, 이 원인을 인간이 제공하고 있다. 이것이 해수 온도 상승 시점과 만나면 적조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뒤늦게 황토살균, 전해수-황토살균 등 부산을 떨지만 이는 효과적인 제거방법이 아니며, 적조나 녹조가 발생되지 않도록 육지에서 환경오염을 얼마나 줄이는가가 중요한 변수이다. 즉 과도한 비료사용과 농약살포, 정화되지 않은 생활하수와 공장폐수를 얼마나 육지에서 효과적으로 처리하느냐에 따라 적조 발생은 좌우되는 것이다. 적조나 녹조 못지 않게 우리 국민들의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것은 정치에서 나타나는 적조현상이다. 들려보는 소식마다 푹음 다음날 속 쓰리고 머리 아픈 듯한 느낌이다. 역할이 끝났고, 또 끝나야할 YS와 JP는 심야에 만나 국민은 안중에 없고, 둘만을 위한 진로를 논의했다는 소식이 그렇다. 언론사 세무조사를 서슬 퍼렇게 이끌었던 국세청장이 비리의혹으로 장관직에서 물러나고, 국세청에서 고발 내용을 공명정대하게 수사해야할 검찰은 위아래를 막론하고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민생법안을 처리해야 할 국회는 과거의 비디오 테이프를 틀어 놓듯 여전히 정쟁만 일삼고 있다. 오늘의 정치환경에 우리 국민은 육지와 바다에서 동시에 적조와 녹조를 겪고 있는 느낌이다. 지난해 국민의 지지속에 진행된 총선연대의 낙선운동은 불법판정을 받고, 제도를 바꾸라고 요구하면 여야의 당리당략에 막히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오염된 정치환경에 황토살균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무릇 모든 결과는 원인이 있다. 정치환경 오염에도 반드시 원인이 있을 것이다. 색깔만 보고 찍었거나, 과대 포장된 홍보에 속아 찍었거나, 출신지역, 학교, 혈연에 의해 자기이익만을 고려해 투표한 결과가 정치오염의 원인이 아닐까?별생각 없이 버렸던 하수와 폐수가 적조의 원인이 되듯, 신중한 판단 없는 선택은 오염된 정치권만을 양산할 것이다. / 최형재 (전북시민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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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10.10 23:02

[새벽메아리] 독선의 정치 포용의 정치

최근 내가 읽은 책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을 꼽아 보라고 한다면 단연코 "예수는 없다(현암사 간)"가 그 첫 번째이다. 캐나다에서 비교종교학을 가르치고 있는 오강남 교수가 쓴 이 책은 그 도발적인 제목만큼이나, 독자가 기독교 신자이건 아니건 간에 우리가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종교는 '예수 자신의 가르침'인가, 아니면 '예수에 관한 서구 신학자들의 가르침'인가? 우리가 지금 따르고자 하는 것은 '예수의 말씀'인가, 아니면 '예수를 대리한 교회의 말씀'인가? 다른 나라에서도 성경을 하늘에서 뚝 떨어진 책으로 여기고 그 신화적 어구 하나 하나를 신의 음성으로 생각하며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중세적 종교관을 유지하고 있는가?하지만 내가 이 책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신학적 논쟁이 아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기본 바탕에는 주류(主流) 종교로 자리잡은 한국 기독교의 맹목적 신앙과 배타주의적 자세, 그리고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는 한국 교회의 성장 제일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있다.지난 1992년에 고(故) 변선환 박사가 한국에 팽배한 기독교 배타주의를 비판하고 종교 다원주의를 선창하다가 신학교 학장직은 물론 목사직까지 박탈당한 사례가 있었다. 그 이후 1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이 책에 대한 반응은 한국 기독교계와 신자들이 얼마나 성숙했는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척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최근 서구 신학계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종교간의 대화를 강조하고 있고 종교다원주의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굳이 1961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혁명적 선언을 언급하지 않는다 해도, 단군상을 훼손하고 절에 불을 지르는 모습이 아니라 추기경이 사찰을 방문해 법문을 하고 스님이 성당에 초청돼 강론을 하는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구원(救援)을 보게 되는 것이다.이러한 '다원주의'와 '포용의 철학'은 비단 종교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와 사회의 영역에서 더욱 절실하다. 그만큼 우리 사회 곳곳이 맹목적이고 배타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는 반증이다.아직도 가정의 중심은 남성이어야 한다고 믿는 남성 근본주의자, 아직도 냉전시대의 논리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이념 근본주의자, 세상은 오직 시장의 원리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고 믿는 시장 근본주의자, 과거의 것을 모두 부정하며 자신들에 의해서만 세상이 개조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개혁 지상주의자 등 수많은 근본주의자가 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열린 사회가 되려면 이러한 근본주의적 독선부터 청산돼야 할 것이다.김대중 정권의 마감이 채 1년 반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권을 포함하여 사회 각층에는 증오와 적대, 충돌과 혼미의 자욱한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다. 여야도, 재계도, 학계도, 노동계도, 교육계도, 언론계도 심지어 관료사회도 "이번 정권만 끝나면 두고 봐라", "죽지 않으려면 재집권해야 한다"는 피해의식과 적대의식이 널리 퍼져 있는 듯하다. 내년 5월과 12월에 전국적인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어 한국사회 내부의 편가름적대의식은 더 깊어질 가능성이 있다.이럴 때일수록 포용의 정치가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그리고 자기 주장의 상대성을 인정하고 상호공존을 모색할 줄 아는 탄력적인 리더십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 이 탄력적인 리더십은 자신의 세력이 자신을 비판하는 세력보다 항상 절대적으로 강하지 않다는 겸손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왕준 (인천 사랑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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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9.26 23:02

[새벽메아리] 함께 가야만 하는 길

지난 주 토요일, 길을 걷다가 쌀값 보장과 개방 농정 철폐 및 정부의 중장기 쌀 대책 철회를 요구하며 거리를 행진하는 농민들의 행렬을 만났다. 그 중의 한 농민 가족이 나를 보더니 대열에서 빠져 나와 인사를 했다. 부안에서 쌀 농사를 하는 가족이었다. 동참하지 못하는 데에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느끼며 나도 인사를 했다.작년 12월에 배추값 폭락에 분노하는 농민들을 보고 가슴이 아팠는데, 이번에 또 절망에 빠진 그들을 보니 가슴이 저려 온다.100여 년 전 동학농민혁명 때 그들은 생존을 위해 학정에 항거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1930년대에 씌어진 소설 '상록수'를 보면 그 당시의 농업환경 역시 매우 열악했음을 엿볼 수가 있다.경제는 현재 그때보다 엄청난 수준으로 발전했지만 그에 비해 농촌환경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지난 30년간은 쌀이 모자라는 상태였는데도 정부는 저미가(低米價) 정책으로 농민들을 저소득층으로 내몰았고, 이제는 풍년이 들었는데도 쌀이 남아돈다는 이유로 그들을 벼랑 끝에 서게 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이후 농산물 개방이 확정되면서 농촌은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 쌀을 전면 개방하는 시기가 되면 상황은 지금보다 더 절망적이리라. 1991년 소련이 붕괴되었을 때, 쿠바는 큰 타격을 받았다. 미국의 경제봉쇄정책으로 그러잖아도 어려움을 겪고있던 터에, 소련이 무너지니 그 동안 소련에서 들여오던 화학비료, 농약, 트랙터나 기계부품 등의 공급이 중단되었고, 게다가 식량의 60%를 수입에 의존해오다가 막히게 되니 그야말로 식량위기라는 비상사태에 돌입하게 되었다. 그들은 특별시기라는 이름으로 식량자급을 최우선 과제로 하는 농업의 대전환을 도모하게 되었다. 그들은 맨손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즉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법으로 짓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1980년대부터 그들은 이미 비료와 농약에 의존한 대규모 농업이 병충해 발생, 수질오염, 토양의 굳어짐, 토양침식, 생산감소, 환경오염 등의 피해를 초래한다는 문제점을 깨닫고 연구를 해오던 터였으므로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는 작업은 쉬웠을 것이다. 그들은 마침내 식량자급에 성공했으며, 이로 인해 쿠바의 유기농조직인 GAO는 스웨덴 의회에서 수여하는 '바른생활상'(대안적 노벨상이라고 함)을 받음으로써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았고, 21세기의 새로운 모델로 우뚝 서게 되었다. 우리 농민들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늘 악순환으로 되풀이되고 있는 이 상황에서 더 이상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정부에서 강한 의지를 가지고 농민의 생존권을 보장해주는 대책을 적극 세워야겠지만, 농민들도 정부에만 의존하지 말고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금 풍년이 들어서 쌀이 남아돈다고 하지만 농약과 비료를 치지 않은 유기농쌀은 전국적으로 모자라는 형편이다. 유기농업으로 전환을 한다면 수입쌀과도 차별성이 있고, 가격도 어느 정도 보장받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땅과 물 등 환경을 살려 우리 국민과 후손들에게 건강한 삶터를 물려줄 수 있으니 얼마나 떳떳하고 흐뭇한 일이랴. 이 길은 농민만이 걷는 길이 아니라 온 국민이 힘을 합해 함께 가야만 하는 길이다./ 이덕자 (전주 한울생활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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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9.19 23:02

[새벽메아리] 소용돌이 정국과 명현현상(瞑眩現狀)

'태조 왕건'이라는 T.V. 프로에서 견훤의 아비로 나온 '아자개'란 인물이 있다. 베테랑 연기자 김성겸씨의 코믹한 연기로 관심을 모았는데, 그가 암으로 추정되는 병을 얻고 고생하는 것을 안 고려에서 백제보다 먼저 '명약'을 보내 그를 병에서 구해낸다.병이 낫기 직전에 병이 더욱 악화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놀란 가족들에게 의사는 표정이 밝아지면서 '명현현상(瞑眩現狀)'이라고 하며 축하하는 장면이 방영된 적이 있다.친구 한의사에게 '명현현상'에 대하여 물어 보았더니 "환자에게 투약하여 치유되어 가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일시적으로 병세가 격화되었다가 결과적으로 완쾌되는 현상"이라고 설명을 해 주었다.현재 우리나라는 어느 때보다도 심한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그 혼란의 정도는 더욱 심한 것이 사실이다. 취임 초기 IMF경제위기 탈출 국면에서 재벌과의 일전이 벌어지더니 이어진 노동계와의 불화, 의약분업을 둘러싼 혼란, 그리고 언론사 사주의 세금 포탈 건 등 비리로 인한 구속을 둘러싼 공방, 거기에 최근에는 통일정책과 관련해서 반공 수구진영과의 이념 논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김대중 정부로 50년 만에 정권교체가 된 이후 3년 반의 세월은 일부에서 '남한 사회는 전쟁 중'이라는 진단이 나올 만큼 사회의 병세가 격화되고 있다. 수구세력의 대표적 언론인 김대중 조선일보 주필은 9월 7일에 쓴 칼럼에서 "지금 김대중 대통령은 마치 전장에 나선 전사(戰士)같은 분위기를 준다. 그의 주변 사방이싸움판이다"라고 하여 현 정국 혼란의 원인을 김대중 대통령의 전투성에 혐의를 두어 묘사하고 있다. 과연 이것이 본질일까? 내가 보기에는 아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중병을 앓고 있다. 그것은 분단 병이고, 친일파를 일소하지 못한 사대주의 병이고, 몇 사람에게 권력과 부가 독점되는 독재 병이며, 불평등 병이다. 분단 병으로 인해 사물을 균형 있게 보지 못하고 한쪽 방향으로만 보는 사시(斜視)현상이 생겼고, 사대주의 병으로 인해 내국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자신감을 잃어버린 '민족 허무주의'증세가 나타난다. 이러한 고약한 병균들이 국민들 전체를 감염시켜 눈치보기 증세, 복지부동 증세가 심각하고, 국민들의 소심증이 병의 악순환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병의 원인인 병원균을 친일세력의 잔재인 사대주의자들, 군사독재정권의 잔재들, 이들과 손잡고 서민들의 피와 땀을 담보로 부를 독점한 재벌들, 이들의 앵무새 역할을 하면서 최근엔 이 병원균들의 배양액 노릇까지 하는 일부'수구 언론'들이라고 본다. 이들이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온통 우리 사회 내부에 암세포를 증가시켜가고 있었던 것이다.이를 안타까워하는 수많은 선각자들이 우리 사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투약(投藥)을 해왔다. 구한말의 동학 혁명의 불길, 일제시대의 죽음을 불사한 독립운동가, 분단을 막아 보려다 암살 당한 해방정국의 애국지사들, 4.19혁명, 5.16이후 지금까지 군사독재에 대항한 민주화 운동가들, 문익환 목사 등의 수많은 통일운동가들, 민중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젊음을 불사르고 있는 민중운동가들이 바로 우리사회의 명약(名藥)들이다. 이 노력들의 결과로 김대중 대통령을 앞세운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구한말 이후 한 세기 동안의 투병(鬪病)과정을 승리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사회의 병 증세에 대한 치료의 가닥은 잡았다. 작금의 혼란은 역사의 혼을 모은 '명약'을 우리사회에 투여한 결과 죽어 가는 병원균들의 마지막 저항일 뿐이다. 아자개의 '명현현상'이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작금의 소용돌이 정국은 우리사회가 건강한 세상이 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시적인 격화 증세로 확신한다. 이제 우리 모두는 지금 시기를 견뎌낼 체력을 길러야 한다. 죽어 가는 병균들의 마지막 저항에 같이 몰락하지 않고, 혼란 이후에 올 통일 세상, 민주세상, 평등세상의 건강함을 만끽하기 위해서 말이다. / 양진규 (목사. 전북기독교사회복지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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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9.12 23:02

[새벽메아리] 21세기 한국형 마녀사냥

2002년은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가 연이어 치러지는 선거의 해이다.대화와 협력의 정치는 실종되고 정쟁과 대립은 격화될 것이다. 또한 지방선거는 대통령선거의 전초전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대화와 교류를 통해 평화공존체계를 정착해나가는데 기여 하고자 진행된 민간통일운동 단체들의 8.15평양통일축전 행사참여와 관련하여 일어난 일부의 행동을 빌미로 수구보수언론과 일부 정치권은 집단의 이익에 혈안이 되어 양극화를 조장하는 것으로 이미 전초전을 시작하고 있다.수구보수언론들은 탈세혐의가 드러남으로 해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로 8.15평양통일축전 참가자들 중 일부가 나라라도 팔아 먹고 온 양 연일 확대, 과장보도를 지속하고 있다.우리는 선거 때마다 지역감정과 분단구조를 재생산해내는 수구보수언론과 정치권의 무자비한 위력 앞에 절망해왔다. 그러나 차별, 적대감등 극단을 조성하는 것으로 재생산해 온 남한 내 지배세력과 언론의 메카니즘에 비판적 시각을 형성하게 되었다. 카톨릭 신학자 로버트 슈라이터 (R.Schreiter)는 어떤 사람이나 집단을 '타자화'하여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7가지 방식 중 첫 번째로 '악마화'를 들고 있다. 어떤 대상을 두려운 존재로 만들어 가능한 제거해야 한다는 선전으로 미국정부와 언론이 사담 후세인이나 쿠바의 카스트로를 세계평화질서를 해치는 악마로 묘사하는 것이나, 얼마전까지 남한의 지배세력과 수구보수언론이 북한의 길일성. 김정일 부자를 악마화하던 것들을 말한다. 중세시대의 마녀사냥은 이러한 방식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적의 이미지나 원수의 모습을 생산해 냄으로써 차이를 차별로 정당화 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이 준 남한 내 충격은 우리사회가 그 동안 얼마나 왜곡된 적대감속에서 북한을 바라보았는지를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현재 일부정치권과 수구보수언론은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이라는 전 민족적 과제를 자신들의 이해 실현을 위해 악마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최근 대표적 사례는 통일부장관 해임안 가결이다. 이미 실효성이 상실된 좌우이념 논쟁, 통일과 반 통일 , 지역주의 등을 다시금 집단의 이익을 위해 역사 앞에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한과 남북불가침조약이 체결되고 남북평화 공존의 길이 열리면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이 무너질 것이라는 현실적인 두려움으로 19세기식 마녀사냥을 이해를 같이하는 세력들을 규합해서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관계의 진전을 가로막고 평화체계정착을 방해하는 이들 세력들의 통일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햇볕정책을 흔들림 없이 지속해 나가야 하며 무엇보다도 앞서있는 민족적 과제인 통일을 이루어나가는 걸음을 멈춰서는 안된다.또한 많은 인내의 시간이 걸리는 통일 과정에 다양한 방식의 저항이 예상되지만 지금처럼 편향으로 양극화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금번의 문제해결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공론문화를 정착하는 계기로 만들고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인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평화를 정착시켜나가야 한다. 서로 다른 역사적 경험들과 그로 인해 형성된 심성과 가치관 그리고 삶의 방식에서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노력과 함께 진정한 내적 통합을 달성하는 일이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다. / 김금옥 (전북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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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9.05 23:02

[새벽메아리] 권력을 소비할 줄 아는 지도자

브라질 남부에 있는 쿠리티바라는 도시가 화제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지난 91년 '지구에서 환경적으로 가장 올바르게 사는 도시'로 선정했는가 하면, 세계에서 가장 현명한 도시, 꿈의 도시, 희망의 도시, 미래의 도시 등 최상급의 수식어들이 붙는 도시다. 유엔환경계획이 주는 상을 비롯해 수없이 많은 상도 수상했다. 어떤 도시이기에 전세계가 이런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쿠리티바시는 그 면적이나 인구 등 외형적인 규모에서는 광주와 비슷하다. 그러나 훨씬 적은 예산을 쓰면서도 교통, 환경, 빈민 등 모든 문제에서 광주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살기 좋은 도시이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도시병'에 걸린 여느 제3세계 도시들과 다를 바 없었던 이 도시를 구한 주인공은 71년 34세의 나이로 시장에 취임한 건축가 출신 자이미 레르너이다. 이 사람은 3차례 시장을 지낸 후 지금은 파라나주 주지사로 일하고 있는데, 유력한 차기 브라질 대통령 후보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레르너가 내건 개조의 모토는 간단했다. 저비용과 검소와 단순함, 그리고 속도였으니 말이다. 그는 브라질에서 "쉽고 간단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창조적인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의 개혁에도 '당연히' 반발이 따랐었다. 반대파는 그를 사회주의자로 몰아붙였고, 가두시위에 나서는 상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정책이 하나하나 결실을 맺으면서 반대파들의 목소리는 잦아들었고, 그를 강력히 반대했던 후임 시장조차 결국은 그의 정책을 그대로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지금 온 세계는 한 사람의 탁월한 리더가 세상을 얼마나 크게 바꿀 수 있는지 경탄하고 있다. 물론 현장에서 뛴 관료들과 그 리더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시민들에게도 찬사가 쏟아지고 있지만, 변화의 근본은 역시 리더십에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작년 말 한국민 사이에 개혁의 초심이 사라졌다는 주한 미 대사의 지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시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내부 문제를 다시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집권세력이 허약한데 비해 고강도 개혁이 남발하니 힘에 부칠 수밖에 없어 몸살을 앓는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집권세력의 의지대로 정국을 운용해 나가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지지세력의 저변이 넓고 튼튼해야 한다. 그러나 현정권은 소수정권이고 가용 인재범위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혁정책 역시도 준비된 역량을 집중해서 제한적으로, 실용적으로 짜고 집행해야 했다. 학자들은 기존 관료체제의 틀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새롭게 일부 관료를 수혈하는 정책은 결국 내부의 갈등과 알력에 의해 약체 행정부를 낳는다고 한다. 각종 정책 입안과 집행은 혼란을 겪게 되고 정치적 행정적 비밀 유지도 어렵게 됨에 따라 정보체계도 흔들리게 되며, 그 결과는 치고 받는 스캔들 정치의 연속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위기에 처한 한국 사회는 다시 새로운 리더십을 기다리고 있다. 리더십을 위한 조건은 많겠지만, 가장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는 지도자가 매력적이어야 한다. 여기서 매력적인 지도자란 권력을 생산(집권)할 뿐 아니라 권력을 소비(국가경영)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정치인이 집권 개념만 있다면 이는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할 뿐이다. 손에 잡힐 것 같은 생생한 비전을 갈고 닦아, 권력을 잡으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하겠다는 소비전략을 갖춘 리더가 진정 매력적인 지도자이다. 변화하는 환경에 자신을 유연하게 적응시키는 개방성과, 답이 없는 명분싸움 대신 주어진 문제해결을 위해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실용주의적 면모를 갖춘 그런 지도자가 그립다. / 이왕준 (인천사랑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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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8.29 23:02

[새벽메아리] 현미 이야기

"엄마, 날씨가 진짜 장난이 아니에요." 아들아이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옷부터 벗어 던지면서 투덜댄다. 입추가 지나고 가을이 오는 듯하더니 다시 여름이 오는 듯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나는 헉헉거리는 아이에게 대답했다. "이야, 엄마는 기분이 참 좋다. 이 뙤약볕에 논에 있는 곡식이 영글 것을 생각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우리를 먹여 살릴 식량이 잘 익는다는데 이까짓 더위쯤 못 견디겠냐. 오히려 즐거워서 노래가 나온다."한울 생협에서 농민들과 직거래활동을 하면서부터 나는 날씨와 농사를 연관짓는 버릇이 생겼다. 요즘의 따가운 햇볕을 보면서 풍년을 예감해 본다.오늘은 수수께끼부터 풀고 나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나는 기를 늘리며 속을 덥게 하고 위장기능을 좋게 하며, 내장을 보호하고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하며, 장과 위에 이익이 되고 귀를 밝게 하고 눈을 맑게 하며, 혈맥을 통하게 하고 오장의 기운을 고르게 하며, 안색을 좋게 하는 약효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동의보감에 씌어 있는 이것은 몸의 기능이 좋아지고 원기를 북돋워주는 만병통치의 음식인 것 같다. 짐작하겠지만 이 수수께끼의 답은 바로 우리의 주식인 쌀이다.한울 생협의 생산자들이 소비자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현미를 먹으라는 것이다. 자기들이 땀흘려 농사지은 쌀의 영양가를 소비자들이 다 깎아 버리고 먹는 것이 안타깝다고 한다. 하얀 쌀을 백미(白米)라 한다. 이 흰 백(白)과 쌀 미(米)라는 한자를 합하면 粕(찌꺼기 박)이 된다. 그러니까 흰쌀은 찌꺼기라는 뜻이다. 쌀의 영양가를 분석해보면 쌀눈에 영양분의 65%, 쌀겨에 30%, 흰쌀에 5%가 들어있다고 한다. 생산자는 말한다. 겨우 5%의 영양분을 먹자고 농부들을 1년 내내 애를 쓰게 하고 빚더미에 오르게 하는 것이 속상하다고. 현미에 관한 자료들을 뒤져보았다. '현미는 씨눈에는 노화를 방지하는 토코페롤이 많이 들어 있고, 겉껍질에는 섬유소가 많아 숙변을 제거한다. 백미는 죽어있는 쌀이고 현미는 살아있는 쌀이다. 백미는 땅에 심으면 썩지만 현미는 3년간 보관한 뒤 땅에 심어도 싹이 난다. 우리 몸을 지탱하는 각종 영양소가 듬뿍 들어있으며, 단백질이나 지방, 비타민, 미네랄, 철분 등의 함유량이 백미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풍부히 포함되어 있다.' 요즘 쌀소비가 줄어드는 실정이라는데, 이 자료를 보니 생명의 기운을 받고 싶다면 현미로 밥을 지어먹는 길이 가장 빠르지 않을까 싶다.생산자는 거듭 강조한다. "현미밥을 먹을 땐 꼭꼭 씹어야 하니까 좌뇌, 우뇌가 골고루 발달하고 분별력이 정확해집니다. 병든 음식을 산처럼 먹었을 때 생기는 병이 바로 癌(암)인데 현미를 먹으면 자연치유력이 강해져서 병도 예방할 수 있고, 영양소가 풍부해서 적게 먹어도 되니, 부족한 식량난도 해결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인 셈이지요. 농사는 농민만 하는 게 아녜요. 현미만 먹어주어도 반은 농사를 하는 셈이랍니다."오늘도 이 뙤약볕에서 생명농업에 여념이 없는 생산자들을 생각하면 뜨거운 태양열이 상쾌하게만 느껴진다. / 이덕자 (전주 한올생활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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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8.22 23:02

[새벽메아리] 분단의 시대에 통일을 읽는다

어떤 이들은 지금의 시기를 구한말(舊韓末)에 비유하면서 세계화 시대 조국의 운명을 걱정하는 우국(憂國)의 한숨을 쉰다. 아마 그들은 구한말 열강들에 의해 자행된 정치적 혼란과 뒤이은 망국(亡國)의 역사를 상기하며 작금의 상황을 비극적 전조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하지만 난 아니다. 난 우리 한반도의 운명에 대해서 한없이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나는 지금 시기가 망국을 앞둔 시기가 아닌 '광복'을 코앞에 둔 일제 말(日帝末)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3일제가 태평양전쟁에 열을 올리고 있을 1940년대 즈음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일제가 얼마나 갈 것인가를 놓고 논쟁을 했다한다. 100년, 혹은 300년을 간다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이는 확실히는 모르나 우리가 살아 있을 때까지는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또 다른 사람들은 3년, 또는 5년 안에 해방이 온다고 주장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이미 해방은 와있다고 했다. 각자의 이러한 정세 판단에 따라 전자의 사람들은 독립운동 전선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친일의 길로 걸어 들어갔고 소수의 자각한 사람들만이 다가올 해방을 준비하며 힘을 길렀다.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떤 이는 통일을 빨라야 30년 후라고 보기도 하고 그보다 더 길게 잡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자각한 소수는 통일은 3년 안에, 아니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통일에 대해 낙관적인 사람들이 분석의 포인트로 삼는 것은 북한 당국과 미국과의 '국교수립'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근거로는 1994년 미국과 북한간의 '제네바 협정' 이후에 미국과 북한의 관계는 핵 사찰 공방과 광명성 1호 발사 등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북미 수교'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미국의 페리 장관이 북한에 다녀온 후 소위 '페리 프로세스'에 의해 2000년 10월의 '조미 공동성명'이 발표됐는데 그 내용은 625전쟁 이후 반세기동안 지속되어 온 양국간의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호혜 평등에 입각한 새로운 친선관계를 수립하기로 합의한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 이후 미국의 정권이 부시로 바뀌면서 협상의 진전이 난항을 겪고 있지만, 이는 '수교'라는 대세로 가기 위한 여러 정지 작업 중의 일부라는 것이 북?미 수교에 낙관적인 사람들의 분석이다. 우연인지, 낙관적 분석에 의해서인지 7월 18일에 '주한미군 기지와 훈련장의 축소반환' 결정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었고, 대북 강경책으로 일관하고 있던 부시가 북한에 무조건적인 대화를 요구하고 나서고 있다. 만약 이 분석이 맞아서 북한과 미국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한반도 내에 '평화협정'을 체결하며 나아가 '주한 미군이 철수'하거나 지위를 변경하고 '국교 수립'이 현실화되면 한반도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50여년 동안 지난하게 이어지던 남북 간 적대관계가 해소되는 것은 물론 적대적이고 폭력적인 해결방식이 아닌, 양측의 특성을 인정하는 평화적 해결 방식인 '국가연합제 통일'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 방안에 대한 실천이 현실화될 것이다. 오동잎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온 천지에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 듯이 국제정세의 징조를 보고 통일의 기운이 한반도에 퍼짐을 읽을 수 있다.56년전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전 민족적인 자각과 준비로 맞지 못한 결과가 전쟁과 분단이었고, 그 결과가 초래한 민중의 고통은 죽음보다 더한 것이었다. 이제 눈앞에 와있는 통일을 읽고 준비하는 것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식민의 시대에 해방'을 보고 '독재의 시대에 민주'의 싹을 키운 선배 선지자(先知者)들의 기상이 '분단의 시대에 통일'을 읽고 준비하는 선각자들을 '지금부르고 있다./ 양진규 (전북 기독교사회복지 연구소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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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8.15 23:02

[새벽메아리] 국민 깔보는 딴나라당

요즈음 뉴스와 신문을 보는 것은 짜증스럽다 못해 치욕적이다.한나라당의 사회개혁과 통일로 가는 길에 딴지 걸기는 오로지 내년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해야겠다는 목적 하나로 최악으로 달려가고 있다.족벌언론 세무조사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다 그들 언론들의 엄청난 탈법과 탈세 진실을 가리고 힘과 결탁하여 그들의 부정적 힘을 강화하는 역할을 해온 사실이 구체적인 증거들로 나타나자 연일 언론탄압이라며 거품을 물고 있다. 또한 5공 시절 9시 땡전뉴스의 주인공 하순봉 의원을 통한 시민사회단체 정권 홍위병 발언, 김만제 의장의 사회주의 발언 등 앞뒤를 안 가리는 작태는 눈뜨고는 못 봐 줄 일이며 뛰다 죽을 노릇이다. 싸움을 하면서 싸우게 된 사연은 어디로 갔는지 없어지고 인신공격이나 가족 심지어 조상까지 들먹이며 감정을 비약하고 싸움을 불미스럽게 이끌어 다른 쪽으로 전이시키고 자신의 잘못을 무마해보겠다는 형국이다. 이 얼마나 국민들을 깔보는 처사란 말인가? 변화의 시대에 국민적 열망으로 진행중인 언론개혁을 저지하려는 한나라당과 이회창총재의 투쟁은 참으로 안쓰럽기(?) 조차하다. 스스로 자신들의 존재 기반이 족벌언론에 있음을 자인하면서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저해하는 모든 관행적 부패구조를 만들어온 장본인들이 바로 족벌언론들과 한나라당 자신이었음을 희한한 방식으로 세상에 고백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족벌언론들과 한나라당이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그동안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잘못으로 인한 사회적 상처를 치유하고 진실을 회복하는 것까지를 포함하여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으로 여당과 함께 언론개혁을 달성해 나가야 한다. 사회적 갈등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서 보다나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민주사회의 동력이 되기도 하고 불균형과 배타적 경쟁을 강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관용과 타인에 대한 배려, 사회적 인권개념이 취약한 우리사회에서 권력과 부의 불균형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민주적인 제도와 사회구조를 만들어나감으로써 사회정의를 회복하는 과정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러한 정의회복의 과정에 있는 우리사회는 힘의 불균형에서 오는 사회구성원간의 분열을 통합해 나갈 수 있는 협력적 정치지도력이 필요하다.이러한 시점에서 집단이기주의에 사로잡혀 목적 달성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고 혼란스럽게하는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는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지도력을 발휘 할 수 없다. 정책적 대안과 사회통합의 비전을 가지고 국민적 지지로 대통령이 되기보다 족벌언론을 비호하고 역사적 필연인 통일을 음해하면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발상으로 막가는 한나라당은 국민을 무시하는 딴나라당임이 분명하다. 한나라당이 이회창 총재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정권을 획득하려는 목적으로 족벌언론을 끌어안고 온갖 비약과 갖다 붙이기식 억지를 부리고 있슴에 걸려들지 말일이다.그러나 분통 터지는 것은 오늘도 우리는 족벌신문들을 통해 편파적이고 왜곡된 세상의 소식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다.정말이지 이런 세상이 싫은 사람들은 세상을 바꾸는 일에 함께 해야만 한다.더이상 주권을 유린당하고 자존심과 명예를 훼손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세상이 마음에 안드는 모든 사람들은 모여서 족벌언론의 대표주자 조선일보 구독반대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 세상을 바꿔나가자./ 김금옥 (전북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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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8.08 23:02

[새벽메아리] 송판을 구멍내는 리더십

정치란 열정과 판단력이라는 두 연장을 가지고 송판에 못으로 구멍을 내는 일이다.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이자 작가이자 명연설가로, 이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이름을 전하고 있는 세네카가 말하는 정치다. 짧은 문장이지만 곱씹을수록 탄복하지 않을 수 없는 절창(絶唱)이다. 정치에 필요한 연장들은 물론 열정과 판단력 외에도 많이 있다. 지식도 있어야 할 것이고 인덕도 있어야 하며, 건강한 신체나 적당한(?) 재물도 필요할 것이다. 때로는 간교한 책략을 써야만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네카는 열정과 판단력을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덕목으로 꼽았다. 못을 박는다가 아니라 못으로 구멍을 낸다는 표현도 절묘하다. 비교적 무른 것이 송판이라지만, 못을 이용하여 나무판자에 구멍을 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작정 세게 내리쳐서는 못이 송판에 박혀 움직일 수 없게 될 것이고, 더 큰 힘을 가했다가는 송판이 쩍 갈라져 버리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니 말이다. 세네카가 말하는 열정은 어쩌면 끈기와 일맥상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네카 관점에서 보면 한국정치는 열정도 없고 판단력도 부족하다. 핵심 연장도 없이 못질하는 시늉만 내는 어설픈 사이비판이다. 정치인이 최고의 불신 대상이 되고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는 동네북이 된 지도 오래다. IMF위기의 광풍과 한파에 시달리며 온 나라와 국민이 개혁에 매진할 때, 아랑곳하지 않고 방탄국회다 야당탄압이다 하며 이전투구 정쟁만 벌이던 자들이다. 이런 정치 덕분에 우리는 다시 위기의 파도가 몰려드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열정과 판단력이 결여된 정치가 나라와 국민을 위기로 몰아가는 셈이다. 이런 무능한 정치에 한국號의 조타를 맡길 수밖에 없는 우리 자신이 서글플 뿐이니, 실로 정치의 위기, 국가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한걸음 더 들어가면, 정치의 위기는 리더십의 위기다. IMF위기의 진정한 교훈 가운데 하나는 지도자의 중요성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다. 지도자를 잘못 뽑으면 나라와 국민이 쪽박 찰 수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몸으로 체험한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금을 통틀어 탁월한 지도자들은 국가와 민족과 국민을 현실 위에서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구사했다. 고상한 이상주의에 도취되지도 않고, 지도자 개인의 취향에 치우치지도 않았다. 오로지 한 길, 국가를 위하고 국민을 위하는 길로 나갔을 뿐이다. 문제는 그 길이 어느 길인지를 모를 때 발생한다. 어느 지도자나 다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길이라며 앞서 갔지만, 대개는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갔다. 협곡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거나 미로에 빠져 길을 잃고, 아니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이들도 많았다. 역사는 이들을 실패한 리더십이라 부른다. 리더십의 위기는 성공한 리더십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낳는다. 지금 우리에게 팽배한 바람 가운데 하나가 성공한 정치, 성공한 대통령, 성공한 리더십에 대한 갈망이 아닐까. 그것이 정치든 아니면 경제나 비정치 영역이든 관계없다. 어느 분야에서든, 국가와 국민을 살리는 길로 이끄는 리더십이면 된다. 다시 세네카로 돌아가면, 송판을 깨뜨리거나 못을 휘어버리지 않은 채 송판에 구멍을 낼 수 있는, 그런 리더십을 만들어내야 한다. 성공한 리더십의 부재야말로 우리가 처한 가장 본질적인 위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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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8.01 23:02

[새벽 메아리] 세상을 바꾸는 작은 실천

전주 한울 생협에서는 지난 두 달 동안 생명학교를 운영했다. 환경호르몬의 정체, 유전자 조작식품 바로 알기, 농촌에 가서 농사체험하기 등 10주에 걸쳐 진행된 이 프로그램의 마지막 시간은 '세상을 바꾸는 작은 실천'이라는 제목아래 참가자 각자가 실천사례를 발표하는 시간이었다.사례가 없어 지루하게 진행될까 걱정했는데 예정된 시간을 훨씬 넘겨서 얘기를 끊어야 할 정도로 열띤 시간이었다. 심한 가뭄을 겪은 뒤라 그런지 물을 아껴쓰는 실천사례가 많았다. 한 아기의 엄마는 아침에 일어나면 변기의 물을 아끼기 위해 세 식구가 한곳에 소변을 본 뒤에 물을 내린다고 하였다. 이외에도 설거지할 때 물을 받아놓고 하는 사례, 화장실 청소할 때 물과 세제로 씻어내는 대신에 걸레나 수건으로 닦아내는 사례, 목욕한 물을 변기의 물로 이용하는 사례, 설거지 물을 줄이기 위해 반찬그릇을 남은 밥으로 깨끗이 닦아먹는 사례 등 특별한 방법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실천하고 있는 좋은 방법들이 많았다. 물절약의 방법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들 바지를 기워 입히고 도시락을 꼭 싸준다는 조합원도 있었고, 재활용을 철저하게 하는 조합원, 비닐 봉지를 깨끗이 씻어서 여러 번 사용하는 조합원, 음식쓰레기를 퇴비로 만들어 쓰는 조합원 등 예쁜 행동으로 인해 얼굴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조합원들이 많았다. 그 중에 제일 칭찬을 많이 받은 사례는 골목길의 쓰레기를 주워 남에게 좀더 기분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한 조합원의 실천이었다. 그녀는 매주 토요일마다 집에서부터 아이의 학교까지 청소부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골목길의 쓰레기를 줍는다고 했다. 집게와 빈 쓰레기 봉투를 들고 한 시간 남짓 한바퀴 돌아오면 비닐봉투가 꽉 찬다고 했다. 함께 자리를 했던 한 생산자는 오히려 부끄럽다고 했다. 도시 사람들이 이렇게 실천하고 있는데, 자기들은 지하수를 마음놓고 쓴 것 같아 반성이 된다고 했다. 정말 생각해보면 보통문제가 아니다. 지표에 있던 물이 땅밑으로 흘러들어가서 지하수로 있다가, 땅위로 올라오려면 150년이 걸린다고 한다. 물은 어디서 새롭게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옛부터 있던 물이 땅속으로 땅위로 하늘로 순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물질이 마찬가지다. 지구상에 그 어떤 물건도 세상에 없는 새로운 물질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원래부터 있던 자원의 모양을 변형하는 것일 뿐이다. 즉 순환하는 것일 뿐이다. 이 순환의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물건이 수명을 다해서 자연으로 되돌아갈 때는 어떤 상태인가. 물건들이 각종 오염물질로 변해 있어서 제대로 순환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연에 치명적인 상처만 입히는 실정이 아닌가. 심지어는 사람도 농약과 방부제로 오염된 먹거리 때문에 죽은 후에도 썩지 않아 자연스럽게 흙으로 돌아가지도 못한다고 한다. 결국 순환의 이치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일방적인 착취와 훼손으로 악순환만 되풀이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세상에 가장 큰 공헌을 하는 사람은 자연훼손을 덜하고 쓰레기를 제일 조금 버리고 가는 사람이 아닐는지.나의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생활하고 있는 조합원들을 보면서 아직은 희망이 넘치는 세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이덕자 (전주 한울 생활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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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7.25 23:02

[새벽메아리] 세상이 바뀌면 질병도 달라진다

요즘 응급실 당직을 서 보면, 응급실을 찾는 환자의 유형이 겨우 수년 전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있음을 체감한다. 피를 토하는 환자나 위 천공으로 복막염이 생긴 환자는 예전에는 비교적 흔했지만, 지금은 만나기 어려울 정도다. 팔다리가 잘리거나 뼈가 심하게 부러진 환자도 확실히 줄었다.그만큼 외상이나 급성기 질환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인데, 그 이유는 생각 외로 간단하다. 우선 신약개발 등 의학기술이 발전했고, 병원 문턱이 낮아지면서 조기에 진단 및 치료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큰 교통사고가 줄고, 다른 대형사고가 적어서 외상 환자도 줄어들고 있다. 경찰이 안전띠 단속만 열심히 해도 교통사고 환자가 줄어드는 것은 농담이 아니라 진실이다. 앞으로 운전중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면 더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환자가 늘어난 질병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뇌졸중과 심근경색이다. 이것은 소위 '선진국형' 질병 패턴으로, 우리 나라가 발전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여전히 위암이 암 가운데 가장 많기는 하지만, 부동의 1위였던 과거와는 달리 폐암과 대장암의 발생빈도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우리는 세상이 변하면 질병도 변하고 그에 따라 의료도 변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를 따라 잡지 못하면 의사들도 괴롭고 정부는 한심해지고 국민들은 헤매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첫째, 노인인구의 증가는 이 변화의 핵심이다. 이미 우리 나라도 작년 기준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7%를 넘어섬으로서 고령화 사회로 공식적으로 진입했다. 20년 후에는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할 전망인데, 이는 선진국에 비해서도 더 급속한 노령화다. 이것은 이미 여러 현상을 낳고 있는데, 65세 이상 노인 중 8.3%가 치매에 걸려 있으니 이 치료 및 간호 비용은 매우 만만치 않은 것이다. 한 사람이 죽기 전 3개월 동안 쓰는 의료비가 평생 쓰는 의료비의 1/3이라는 보고가 있다. 노인인구의 증가는 최근 쟁점이 된 보험재정 파탄의 실제적 제1요인이다. 일본이 실시하고 있는 개호(介護)보험과 같은 새로운 제도적 틀을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둘째, 급성질환이 줄고 만성질환이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고혈압, 당뇨병 등 병원에서 치료받는다는 개념보다는 환자 스스로가 건강을 관리하고 질병의 진행을 막지 않으면 다스릴 수 없는 질병이 주가 된 것이다. 앞으로 의사는 치료의 보조자이고 환자 스스로가 치료자로 나서게 된다. 따라서 병원도 변해야 한다.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를 격리해서 치료하는 패턴이 아니라 거꾸로 병원 밖으로 나가 환자를 방문하고 교육하고 일상을 관리하는 패턴으로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병원의 외형적 틀이 변하는 만큼 의사들의 인식 변환도 필요하다.패러다임의 변화는 단지 의료보험 재정파탄이나 의약분업과 같은 단기적인 제도적 변화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변하고 있고 질병이 바뀌고 사람이 사는 방식이 달라지는 만큼, 병원도 달라져야 하고 의사들의 생각도 변화해야 하고 환자들의 태도도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전환기에 놓여 있다. / 이왕준 (인천 사랑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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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7.04 23:02

[새벽 메아리] 제철음식을 먹어야 하는 까닭은

저는 토마토입니다. 혹시 제가 어느 철에 나오는 농산물인지 아시나요? 여러분들은 사시사철 먹을 수 있으니 제 생일이 언제인지는 관심이 없으시겠지요. 저는 여름철에 난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제철에 나면 괄시를 받아요. 참 슬픈 일이랍니다. 요즘은 사람이나 과일이나 철을 모르는 것 같아요. 이른봄에 여름 참외가 노랗게 시장바닥에 쌓여 있는가 하면 한겨울에 빨간 딸기가 손님들을 부르고 있어요. 사람들은 딸기가 봄에 나고 참외와 수박이 여름에 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욕구를 참고 기다리지 못해 미리미리 앞당기고 싶어하지요. 아이들 교육도 마찬가지지요. 요즘 영재교육에 관심을 가지는 부모들이 영재교육은 태어나자마자 시켜야 한다고 생각해 생후 6개월의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킨다면서요. 현재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학원이나 과외를 통해 몇 개 학년의 과정을 건너뛰어 미리미리 앞서가는 학습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어디 농산물이나 교육만 그런가요? 사회의 전반적인 추세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잖아요. 빠르지 않으면 소외되고 속전속결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진다고들 생각하지요. 이런 흐름에 뒤질세라 음식문화도 점점 속성화 되어가고 있지요. 인스턴트 식품이나 패스트푸드가 그렇지요. 주문만 하면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바로 먹을 수 있어 참 편리하지요. 배달음식도 최대한 빨라야 소비자들이 좋아하구요. 이젠 몇 분 안에 배달되지 않으면 돈을 받지 않는다고 큰소리치는 음식점도 생겼다고 하더군요. 갈수록 참을성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생각해보세요. 여러분들이 빨리빨리를 외치는 것이 무엇 때문인가.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지요, 뭐. 간단히 말하자면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닌가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여러분들은 먹고살기 위해서 먹는 것을 마구 소홀히 하는 것 같아요. 제철이 되면 자연스럽게 크는 것을, 자랄 조건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억지로 자라게 하려니 비료와 농약, 성장호르몬을 더 많이 치지 않으면 안되겠지요. 게다가 햇빛을 많이 받아야 하는데 계절을 앞서 하우스에서 크게 되니 햇빛 대신 전등불빛이라도 받아야 자랄 수 있잖아요. 그러니 아까운 에너지만 소비되지요. 영양가도 더 없어요. 제맛도 나지 않구요. 언제나 맛볼 수 있으니 새로운 맛을 느끼는 감각도 둔하게 되지요. 참는 힘도 없어져요. 그러니 계절에 앞선 음식을 너무 좋아하지 않는 것이 훨씬 좋아요.식물들은 씨앗 하나를 싹틔우기 위해 온 우주의 기를 다 동원한답니다. 제철에 나오는 음식을 먹어야 농약을 덜 친 것을 먹을 수 있고, 그 철에 맞는 하늘과 땅의 기를 받아 한 계절을 잘 지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답니다. 그것이 바로 신토불이라는 것이지요. 자기가 살고있는 땅에서 난 제철음식을 먹어야 올바른 몸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요즘 철없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철없는 음식만 먹고살아서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무리 빨르게 움직여야 살아갈 수 있는 사회라고 하지만 우리 조상들의 느긋한 마음을 이어받아 철든 음식으로 철든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군요. /전주 한울 생활협동조합 이사장 이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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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6.27 23:02

[새벽메아리] 공든 탑이 무너지고 있다

기독교 방송(CBS)이 9개월째 정상적인 방송을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언론사상 최장의 파업 기록은 갱신한 지 이미 오래고 곧 세계 신기록이 세워질지도 모를 판국이다. 이 부끄러운 기록을 세우고 있는 당사자는 CBS 노조와 CBS 권호경 사장을 비롯한 재단 이사회이다. 재단 이사들을 기독교계 주요 교단들이 파견하고 있으니 넓게 보면 기독교계 전체가 당사자이다. 파업의 원인도 임금협상과 단체협약으로 명분을 삼았으나 이미 작금의 쟁점은 사장 퇴진과 재단 개혁이 중심이 되었다. 나아가 CBS사태는 교계 정치의 핵심을 건드리고 있다는 조심스런 진단도 나오고 있다(한겨레21 6.13). 이제 CBS 사태는 교계의 테두리를 넘어서 국회 문화 관광위원회, 방송위원회에서 다루어져 전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또한 120여개국에 40여만의 회원을 가입시키고 있는 국제기자연맹(IFJ)의 제24차 서울 총회에서는 CBS 파업사태가 다루어져 CBS 노동조합의 파업에 연대를 표명하고 모금을 했으며, 각국에 돌아가 지원 방법을 논의하기로 했다니 이제 기독교 방송의 파업사태는 세계적 뉴스가 되게 생겼다. 참으로 국제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지난 18일(월)부터 200명 전 조합원이 단식 기도회에 돌입했다. 여기에는 주조정실의 엔지니어들까지 합세하여 방송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전망이다. CBS가 어떤 방송인가? 암울한 독재정권 시절 온 국민을 대상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던 CBS는 80년 언론통폐합 조처로 보도기능을 빼앗긴 뒤에도 자기 색깔을 잃지 않고 끈질기게 버텨낸 유일한 매체였다. 87년 10월, 7년간 중단했던 뉴스의 재개를 알리던 CBS 아나운서의 떨리는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CBS는 단순한 방송이 아니라 한국 민주화의 굴곡을 고스란히 함께 겪은 한국 현대사의 증인이다. 이런 연고로 연초부터 'CBS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C사모)'가 전국적으로 발족하여 파업사태에 대한 공동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언론사들이 파업을 경험했지만 'K사모'나 'M사모'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CBS는 노조나 이사회, 기독교계만의 것이 이미 아니다.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국민 방송국이다. 본래 CBS는 자본주의의 전통적인 노사간의 갈등이 없는 방송국이다. 박봉에도 자랑스런 CBS의 한 식구라는 자부심으로,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데 언론인으로 한몫을 한다는 신앙의 동지의식으로 노사가 하나였다. 회사내의 단결과 교계의 뒷받침으로, 그리고 기독교인을 비롯한 청취자들의 지지와 헌금으로 그 어두운 시대의 등불 역할을 당당히 해온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CBS가 자중지란(自中之亂)으로 공든 탑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이 불행한 사태는 막아야 한다. 다행히 권사장이 속한 교단의 총회장과 연합 기관인 KNCC 현 회장을 겸하고 있는 김경식 목사님이 중재를 자임했고 노조는 그 분에게 백지 위임장을 제출한 상태이다. 이제 재단 이사회와 교계 어른들이 대답을 해야 할 시점이다. 교계의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 주어야 할 때이다. 필자를 포함한 기독교인과 청취자들은 이 과정을 기도하며 지켜볼 것이다. CBS의 공든 탑 뿐 아니라, 수 십년간 감옥과 고문을 이겨내고 쌓아온 민주화 운동 지도자로서의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그분들의 신앙과 능력이 우리의 기대를 버리지 않기를 빈다. / 양진규 (전북기독교 사회, 복지연구소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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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6.20 23:02

[새벽메아리] 6월, 다시 희망을 만들자

우리는 1987년 6월 이후부터 해마다 6월이 오면 민주화를 위해 외치던 거리의 행진을 기억한다. 1987년 6월 독재타도를 위한 함성의 물결을 따라 나서지 않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 누구라 할 것도 없이 관통로, 팔달로 그리고 전국의 도시 어디에도 사람들로 가득 했었다. 우리는 6월 그 소중한 정치적 경험을 청년시기에 맞이한 사람들을 386세대라 칭하고 희망을 걸어주기도 하였다. 우리여성들이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을 만나서도 출산의 고통과 기쁨을 공유하면서 금새 친해지는 모습, 그리고 남성들이 군대얘기를 하면서 느끼는 연대감처럼 6월 민주 대항쟁의 경험도 사람들에게 공통적 경험이주는 연대감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우리사회의 성숙하고 합리적인 발전을 위한 사회 구성원들의 통합에 공통의 정치적 경험이 기여 할 것이라는 사회적 기대를 반영 한 것이다.지금도 그 시절의 친구나 동료들을 만나면 한동안 거리에서의 무용담과 독재의 역사를 민주의 역사로 바꿔내는 현장의 한복판에 자신이 함께 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야기를 많이듣게 된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도 모르게 계속되는 흥분과 자랑도 잠시 세상을 향한 한숨과 정치에 대한 환멸로 금새 주제가 바꿔지기 일쑤다.여전히 세상이 바뀌어도 정치권력의 부패지수는 낮아 질 줄 모르고 빈부의 격차는 심화되고 공익적 가치보다 집단적 이익에 자신들의 힘과 권위를 활용하는 모습들에 대한 비판이 이어진다. 무엇보다도 정치가 썩었다고 한탄하고 외면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부패한 정치는 누가 만들었는가?정치는 시대정신의 산물이다. 정치는 우리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부패한 정치는 우리사회의 공기가 통하지 않고 음습한 곳에서 피어나는 곰팡이로 그들 곰팡이가 피어날 수 있는 조건은 우리들 스스로가 만들었다. 이들 부패한 곰팡이가 피어나지 않도록 햇볕과 신선한 공기를 넣어주어야 한다. 그 일은 바로 시민의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箚?열변을 토하던 어느 선배님의 말이 다시 6월 세상에 희망을 만들어 나가는데 필요한 것 같다. 87년 6월 민주대 항쟁의 열린공간은 당시의 정치권, 재야 운동권 그리고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민주쟁취라는 하나의 과제를 중심으로 뭉쳤기 때문에 가능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환경적으로 수많은 문제들을 지니고 있다. 이제 어려운 시기에 다시 맞이하는 6월에 평화적 통일과 산적해있는 사회개혁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의 힘과 지혜가 모아져야 한다. 6월의 민주적이고 참여하는 시민정신은 자발적인 대중조직들로 모아져 시민사회운동단체들로 건설되는 성과를 낳기도 하였다. 이제 이들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의 내용을 강화하고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많은 참여가 필요한 때이다.우리 사회가 비록 개개인의 삶을 보장해줄 복지제도가 낙후함으로 인해 보다 고상한 이념을 위한 활동에 함께 참여하게 하는 것을 가로막고는 있지만, 많은 사람들의 염원과 힘을 모아 싸워서 소중한 것을 얻었던 87년 6월의 경험을 기억하며, 음습한 곳에 햇볕으로 밀폐된 곳에 신선한 공기를 넣어 줄 행렬이 되어 건강하게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운동단체에 참여로 이어지기를 희망해본다. / 김금옥 (전북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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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6.1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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