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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외국인근로자 의료보장 시급

만약 누가 내게 최근 맡고 있는 일 중에서 가장 보람있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외국인노동자 의료공제회 활동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우리 나라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지난해에 50만 명을 넘어섰다. 작년 법무부 발표에 따르더라도 그 중 20만명 이상이 불법체류자이며, 이들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기피하는 전형적인 3D 업종에 종사하면서 저임금과 열악한 근로환경 속에서도 '코리안 드림'을 일궈가고 있다.자본에 국경이 없는 세계화의 시대에, 노동시장 역시 국경이 있을 수 없으며 시장논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명제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외국인 노동자를 수입하여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하면서도 이들에 대한 신분적, 법적 보장 조치는 전혀 취하지 않고 있다.이들 불법체류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매우 크지만, 실제로 외국인노동자들을 만나보면 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임금체불이나 열악한 근로환경이 아니다. 자신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고 저개발 국가에서 수입된 값싼 노동력, 즉 뭔가 우리보다 저급한 족속으로 취급하는 데 대한 모멸감이고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에서 오는 불안감과 정체성 상실이 더 큰 고통인 것이다. 나의 사촌 형님 중 한 분은 60년대 후반 독일로의 인력송출이 한창일 때 광부로 들어가, 지금은 다른 일에 종사하고 있지만, 아직 그곳에서 살고 있다. 형수도 당시 취업을 위해 독일로 온 간호사였고, 이들 부부의 두 자녀는 현재 베를린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사촌형님을 만나기 위해 내가 10년 전쯤 독일을 방문했을 때, 그곳의 교민들에게 60년대 말과 70년대 초 독일로 이주한 한국인 노동자들이 3D 업종에 종사하면서 느꼈던 그 고통과 외로움에 대해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 학살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독일 사람들은 그 죄과를 보상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이방의 노동자들에게 자국 노동자와 동일한 대우를 해 주었다. 물론 의료혜택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어떤가? 과연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그렇게 잘 살게 되어서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외국에 이주한 노동자로 나가 외화벌이를 하였던 과거를 잊고 이제는 이 나라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학대하거나 착취한단 말인가? 이는 정말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세계화의 구호가 소리높이 외쳐지고 영어를 잘하는 것이 생존의 본질처럼 추앙받는 시절에, 나는 그 세계화의 출발이 이 나라에 들어 온 외국인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생존권 문제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야 한다고 생각한다.더욱이 사람이 아프거나 중병에 걸리는 것을 어찌 사람의 뜻으로 통제할 수 있겠는가? 전장에서도 부상자는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는 것이 의료의 본질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 들어 온 이들 외국인노동자, 특히 불법체류자들은 완전히 의료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고,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이들에게 병원의 문턱은 너무나 높다. 외국인노동자 의료공제회는 이러한 현실을 자력으로 타개하기 위해 지난 1999년 9월에 출범했다. 현재 뜻을 같이한 300여 협력 의료기관이 참여하고 있고, 5000여명의 불법체류 노동자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있다. 공제회는 외부의 후원금과 조합원들이 매달 5000원씩 내는 회비로 입원 및 외래 환자에게 재정 지원을 하고, 외국인노동자에게 병원의 문턱을 낮춰주는 일을 하고 있지만, 궁극적 해결을 위해서는 이들의 신분적 조건을 바꿈으로서 사회적 차원에서 인권을 보장할 국가적인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언제까지 지금처럼 불법적 영역에 방치한 채 민간에서 알아서 책임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 이왕준 (인천 사랑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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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6.06 23:02

[새벽메아리] 아이들에게 건강한 미래를

요즘 학교급식사고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급식을 하는 학교가 늘어나면서 매년 사고건수가 증가하고 있는데, 작년에는 학교급식으로 인한 식중독 환자가 전체 식중독 환자의 66%를 차지했다고 한다. 학교급식을 시작한 목적은 청소년들에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골고루 먹여서 건강하게 자라게 하고, 학부모들에게 도시락을 싸는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의 실태를 보면 오히려 학생들의 건강을 해치는 것이 학교급식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식중독사고가 나지 않았다고 해도 급식 때에 아이들에게 먹이는 음식재료는 질이 좋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급식을 먹는 학생들에게 주로 어떤 반찬이 나오느냐고 물으면 햄이나 소시지, 어묵 등 인스턴트 식품이나 냉동식품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시중에서 처리하기 힘든 재료를 해결하는 곳이 학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이나 값싼 수입농산물 등 질 낮은 식품이 학교급식으로 쓰이고 있다. 한창 크는 우리 아이들의 건강이 참으로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햄이나 소시지 같은 인스턴트 식품은 요즘 아이들이 선호하는 음식인데다 조리하기 쉽기 때문에 반찬으로 자주 쓰이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에는 각종 첨가제와 방부제, 발색제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첨가물들은 체내에서 다른 물질과 결합하여 발암성 물질로 변한다는 논란이 있으며, 특히 어린아이들에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산만하고 정서불안정한 아이들과 공격적인 아이들이 늘어나는 것이 식생활과 관련이 있다는 보고도 있다. 값싼 수입농산물은 농약으로 찌들어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농약은 건강을 해치는 주물질이다. 발암성 물질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신경세포를 교란하여 자살 충동까지 일으키게 한다. 요즘 남자들의 정자수가 줄고, 다섯 살 어린이가 생리를 하고 스무 살 처녀가 폐경이 되는 원인도 다 이 농약성분 때문이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이다. 이들이 건강하게 자라야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사회를 올바르게 이끌어 나갈 수 있다. 아이들을 오염된 먹거리 환경에서 자라게 하는 것은 먹을거리에 대한 어른들의 안이한 태도나 무관심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우리의 미래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태도이다.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아이들에겐 먹을거리의 질이 대단히 중요하다. 가능하면 농약을 치지 않은 유기농산물을 먹이고, 여의치 않으면 저농약 농산물을 먹이도록 해야 한다. 물론 가격이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싼 과외나 비싼 옷, 비싼 외식에 돈을 들이는 것보다 아이들의 건강한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 더 확실하고 보람있는 일이 아닐까. 요즘 먹을거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유기농산물로 급식을 하는 유치원이 있다. 이런 깨달음이 유치원에서부터 전체학교로 확산되어 우리 아이들에게 건강한 미래를 물려줄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 이덕자 (전주한울생활협동조합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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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5.30 23:02

[새벽메아리]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

저널리스트를 지향하는 한 사람으로서 내 나름의 저널리즘과 저널리스트의 역할에 대한 견해를 학자와의 관계 속에서 말해보고자 한다. 저널리즘(journalism)의 의미는 협소하게는 정기적인 출판물을 통하여 시사적인 정보와 의견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활동을 가리키고 넓게는 모든 매체와 방법을 동원하여 대중전달 활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저널리스트는 이러한 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그럼 학자는 무엇인가? 학자는 학문으로 밥을 먹고사는 사람, 즉 직업적으로 학문을 하는 사람이다. 학자는 무엇으로 인정받는가? 직업적 학자를 인정하는 것은 대중이 아니라 자기 분야의 동류 학자들이다. 학자들 세계를 곁눈질해서 본 나의 눈에는, 학자는 이들 학자 동무(同務, peer)집단에 의해 학위를 받고, 채용되고, 권위가 정해지고 자원과 권력이 배분되는 것으로 보인다. 학자는 철저히 자기 집단에 의해 발탁과정과 성장?쇠락이 결정되는 것이다. 나는 석사과정의 세미나에서, 선배학자인 교수와 예비학자인 동료들에게 단어나 수식 하나에서부터 주장의 근거가 합당한가와 주장하는 주제의 가치에 이르기까지 수정되고 철저히 해부 당하는 경험을 하면서, 이 소심하고 지겨운 과정을 직업으로 삼을 것인가에 대한 심한 회의를 하였다. 이 과정을 견딜 능력이 없거나 의지가 없는 사람은 학문의 길을 갈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직업적 학자가 될 능력이나 의지가 없다 하더라도 지적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비학술적 잡지나 신문 등에 글을 쓰고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펼친다. 이들을 학자들과 구분하여 "저널리스트"라 총칭하면 어떨까? 저널리스트들은 동류학자들의 엄격한 비평(review)과정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훨씬 광범위한 이야기를 훨씬 적은 증거들을 가지고 주장할 수 있다. 좋은 저널리스트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가령 내가 기독교나 사회복지와 관련된 글을 썼는데 그 글이 일반독자들이 볼 때 이해가 잘 가는 글이고, 신학자나 사회복지학자들이 보기에도 맞는 소리가 많으면 좋은 저널리즘이다. 따라서 좋은 저널리스트는 관련 분야의 학자들의 논의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고 이를 대중적으로 가공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훌륭한 저널리스트의 역할은 훌륭한 학자의 역할에 비해 부족하지 않다. 훌륭한 학문을 잘 정리해 대중적 언어로 알려주는 저널리스트가 없다면 학문과 대중의 일상의 연결고리가 없어져서 학문의 현실성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또 저널리스트는 어려운 학문을 대중에게 전해주는 역할로 그치지 않는다. 어쩌면 학문의 엄밀성 때문에 소심해진 학자들이 못하는 큰 질문이나, 시의 적절한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일을 저널리즘이 해야 한다. 학자는 학자를 대상으로 일하고, 저널리스트는 학자와 대중을 향해 글을 쓴다.종종 교수의 직함을 갖고 학자인양 하면서 학자들을 향해 일을 하지 않고 대중에게 지식으로 군림하려는 사람들을 본다. 자신도 잘 모르는 전문용어로 대중을 주눅들게 하고 허세로 권위를 유지하려는 이들이다. 이들이 빨리 학자로서의 한계를 인정하고 저널리스트로 전향하면 역할이 있거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뛰어난 저널리스트들에 의해 해부되어 망신당하는 결과가 우려된다. 좋은 학자와 저널리스트, 그리고 혹세무민(惑世誣民)을 구분하는 훌륭한 대중이 있는 한 거짓 학자, 나쁜 저널리스트가 '세상을 미혹하고 대중을 업신여기는' 죄를 더 이상 짓지는 못할 것이다.양진규 소장(전북기독교사회복지연구소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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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5.23 23:02

[새벽메아리] 정신분열 없는 세상

지난해 9월 군산 매매춘 집결지인 대명동의 화재사건으로 매매춘 여성 5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에 전국의 주요여성, 시민사회단체가 공동으로 이사건과 관련하여 시 공무원, 경찰관계자, 포주 등 관련자와 책임자들을 고발하였다.이 사건은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아무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매매춘 문제의 해결을 우리사회가 해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었다. 또한 매매춘 문제는 여성의 인권문제라는 인식의 확산으로 전국의 여성, 종교, 시민단체들은 군산화재사건을 계기로 매매춘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정책적 대안을 만들어내고자 공동 고발한 것이었다.그러나 검찰은 7개여월 만에 각하처분을 내렸다. 인신매매와 노예매춘의 실상을 드러내고 사회적인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었던 사건의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을 통해 매매춘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 가고자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망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는 검찰의 조사결과는 매매춘 문제를 더욱 정상화해나가게 하는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이에 공동고발단체들은 지난 5월 8일 항고하였다. .매매춘 문제는 매매춘여성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매매춘 뒤에는 매매춘 조직이 있고, 매춘을 강요하기 위한 폭력이 있다. 매매춘이 폭력을 동반하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이를 통한 경제적 이득 때문이다.매매춘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범죄로 다스리는 우리나라에서 매매춘을 통해 부당한 이익을 얻는 세력들은 관계기관의 단속의 대상이 된다. 이를 한 장소에서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는 단속기관과의 유착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우리는 법과 현실의 이중구조속에서 가치관의 혼란을 겪을 때가 종종있다. 매매춘 문제는 그중의 하나이다.우리사회는 법으로 매매춘을 금지하고 있지만 현실에서의 매매춘은 인정하고 있다. 때문에 매매춘이 불법인지 아는 사람들은 적고, 불법을 행하고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하는 속에서 군산사건의 올바른 수사와 관련자들의 처벌은 우리사회가 법과 현실의 이중구조로 인해 단속대상과 기관의 유착으로 비리와 부정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사회적 문제해결의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우리는 일관성이 없는 가치기준을 가진 사람들을 정신분열환자라고 부른다. 우리사회는 집단적으로 곳곳에서 정신분열의 모습을 보이고있지만 여성에 대한 입장만큼 많은 분열증세를 드러내는 곳을 없을 것이다.여성의 인권이 존중 되지않는 이러한 이분법적 성규범은 남성의 외도와 매매춘을 필요악으로 기정 사실화 했다. 성관계는 이성관계와 사회관계의 성격을 가름해주는 기본적인 인간관계이다. 또한 정신과육체 이성과 감성의 결합이 얼마나 조화되는지를 보여주는 기본이다. 상대방에 대한 기본존중과 배려 동시에 자신의 자존과 인격에 대한 존중을 포함한다.때문에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은 인권과 민주적시민권의 일환으로 자리매김 해져야하며 남성의 성적특권은 가부장적 문화권력의 하나로 폐지되어야하는 인권운동의 과제이다.이러한 운동은 여성의 권익신장만이 아니라 보살핌과 나눔이라는 여성주의적 사회관계를 확산하고 세상의 모든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이중적이고 분열적인 의식을 개선하고 법과 현실의 괴리를 좁혀내는 대안적생활양식을 만들어나가고 확산해나갈 의식개선운동이 필요하다.우리모두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와 행동을 일치시키고 일관되게 적용해 나갈 수 있는 정신분열없는 세상에 살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 김금옥 (전북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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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5.16 23:02

[새벽메아리] 어버이날과 종합검진

해마다 돌아오는 어버이날이지만, 내게는 올 어버이날이 더욱 특별한 감회로 다가왔다. 바로 지난달에 아버님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따로 떨어져 생활한 지 이십 년 가까이 되었지만 늘 든든한 후원자로 마음속에 계셨던 분을, 이제는 정말로 마음속으로만 그려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다시 가슴이 콱 막히는 듯한 느낌이다. '나무는 고요하게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이 부모를 잘 모시려고 하니 이미 떠나고 안 계신다'는 옛말이 새삼 떠오른다.아버님은 그야말로 창졸간에 고인이 되셨다. 오랫동안 병상에서 고통받다 떠나는 많은 분들에 비하면 차라리 그게 낫지 않느냐는 위로를 많이 받았지만, 평소에 건강관리에 조금만 더 신경을 쓰셨더라면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나의 아버님은 의사로서 평생 진료만 열심히 하신 분이고, 나 또한 그런 아버님의 영향으로 의사가 되었다. 언제나 환자들에게 지속적 건강관리가 중요하다고 열심히 설명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의사이지만, 의사들의 평균수명은 다른 직업군에 비해 오히려 낮은 편이다.업무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커서일 수도 있지만, 질병이나 죽음과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건강 문제를 기피하는 경향 때문이기도 하다. 알면 알수록 두려움도 커지는 법이기에.부모님의 건강과 장수를 바라는 자식들의 마음은 다 똑같지만, 마음과는 달리 평소에 세심하게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도 똑같다. 특히 먼 곳에서 따로 생활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런데, 그래서인지 어버이날이나 생신 등의 시기에 '효도선물'로 흔히 선택되는 것이 종합검진상품권이다. 하지만, 이 종합검진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갖고 있어 몇 마디 하고자 한다.종합검진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얼마 후 어떤 질병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많은 환자들은 종합검진 결과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불만을 갖기도 하고, 심지어 진단이 틀렸다고 다른 병원에 가서 다시 진료를 받기도 한다. 이런 것은 모두 종합검진에 대한 과도한 믿음 때문에 일어나는 오해의 결과이다.이름에 '종합'이라는 말이 들어 있어 그렇겠지만 종합검진이 '모든' 질병의 유무를 검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은 큰 잘못이다. 종류에 따라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종합검진은 가장 흔한 질병 몇 가지에 대한 검사일 뿐이다. 사람이 걸릴 수 있는 수없이 많은 질병들 중에서 종합검진에 포함된 검사항목들만으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 질병이 훨씬 많다는 말이다.차라리 종합검진보다는 집 근처에 있는 동네의원이라도 꾸준히 다니면서 의사와 자주 상담하고,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검사들만 시행하는 것이 비용은 더 적게 들고 효과는 더 크다. 아주 많은 질병들은 사소한 증상에서부터 시작한다. 특히 연세가 높은 분들의 경우는 더 그렇기 때문에 작은 증상이 생겼을 때 병을 '키우지' 말고 가까운 의료기관을 찾는 것이 좋다.물론 어르신들은 사소한 이상이 있다고 해도 병원에 가는 일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이 부모와의 대화를 늘리는 것이다. 부모 자식 사이의 대화가 많을수록 부모가 어떤 증상을 갖고 있는지 알게 될 기회도 많아지고, 초기에 질병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도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다.어버이날에 종합검진상품권을 선물하는 것으로 자식의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나중에 큰 후회를 남길 가능성이 크다. / 이왕준 (인천사랑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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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5.09 23:02

[새벽메아리] 작은 힘이 큰 물결로

전주의 소비자들이 부안 변산의 유기농업 생산자들과 인연을 맺게 된 때는 10년 전 이른봄이었다. 그 당시 그들은 8년이 넘게 유기농업을 했는데 판로가 없어서 배추밭을 뒤엎었다고 했다. 그 말에 우리 소비자들은 마음이 아팠다.그래서 바른 농사를 짓는 이들을 살리는 데 힘을 모으기로 마음을 먹었다. 여덟 가구가 함께 하는 이 농부들은 농약, 비료, 제초제를 전혀 쓰지 않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해내는 농사를 짓고 있었다. 남들보다 몇 배의 힘을 들이면서 농사를 짓는데, 생활은 아주 힘드는 형편이었다.나는 솔직히 이 생산자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돈 많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몸에 좋은 유기농산물을 찾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 이 세상에 모든 것이 오염되어 있는데 혼자만 청정한 것을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이 문명사회가 그렇게 흘러가면 흘러가는 대로 따르는 것이 순리이지, 혼자만, 더군다나 값비싼 무공해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것 자체가 이기적인 태도가 아닌가 생각했다.그러나 생산자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도 유기농업을 하는 이유와 농약비료오염으로 인한 피해사례를 접하면서, 우리 모두가 함께 건강하게 살고 후손들에게 건강한 땅을 물려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좀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그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삶의 태도가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우선 몇 가지 농산물이라도 소비자생산자가 직거래를 해보기로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구역별로 공동나눔을 시작하였다. 5가구 이상이 모여 함께 주문하고 함께 먹을거리를 받아 나누었다. 그리고 어린이 자연학교, 봉사활동, 가족모임행사 등을 통해서 소비자와 생산자는 한가족이 되어갔다. 처음엔 십여 가정이었던 소비자 회원수가 점차 늘기 시작했고 생명농업을 하겠다는 생산자도 늘어났다.생산자들의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고 살아있는 땅도 조금씩 늘어났다. 소비자들은 온힘을 다해 봉사하며 알뜰하게 공동체를 꾸린 결과 얼마간의 돈을 적립할 수 있었다. 그 돈에다 회원들의 매장마련을 위한 특별출자금을 모아서 마침내 소망이었던 직매장을 열게 되었다. 한울공동체가 창립된 지 9년만의 일이었다.그로부터 1년 5개월 후인 지난 2월, 한울공동체는 생활협동조합으로 재탄생하였다. 생활협동조합은 말 그대로 생활에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하여 조합원들이 서로의 힘을 모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자발적인 공동체이다. 조합원들 스스로 투자하고 이용하며 운영하는 이 공동체에서 지향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첫째는 바른 농사를 짓는 생산자와 함께 참먹을거리 생산을 통해서 환경과 생태계 보호에 앞장서는 일이다. 둘째는 수입농산물의 홍수 속에서 우리의 농촌과 농민을 살리며, 셋째는 이웃과 협동하는 공동체문화를 형성하여 보다 인간다운,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도록 힘쓰는 일이다.지금은 조그맣고 약해 보이지만 한사람 한사람의 작은 힘들이 모인다면 큰 물결이 되어 이 땅의 모든 생명을 지키고 가꿀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덕자 (전주 한울 생활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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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5.02 23:02

[새벽메아리]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치면

우리 나라는 지금 곳곳에서 이해 집단과 정부 또는 이해 당사자간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고 수많은 주장들이 제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혹자들은 이 현상을 혼란으로 보고 집단이기주의나 지역이기주의 정도로 비판하며 집단적 욕구 분출을 개탄하기도 한다.그러나 이러한 현상들은 우리 사회에 부정적 영향만을 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과정은 각자의 욕구들을 어떻게 조율하고, 만족시킬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규칙(Rule)을 합의하는 능력을 키우는 훈련의 장을 제공할 것이다. 최근 노동계와 의료계, 사회복지계의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건강보험 재정파탄에 대한 논의도 사회적 룰의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진행될 것을 기대한다.건강보험공단의 재정이 악화되어 2001년도 재정적자 예상액이 무려 4조 정도가 되어서 보험료 지급 불능 사태가 예상된다는 공단 측의 발표가 있었다. 재정적자의 원인은 의약분업 실시를 전후해서 보험공단의 진료비 지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그리고 지출증가 이유는 건강보험 가입자 증가, 조제료?처방료 등 보험급여 범위의 증가, 노인인구의 증가 등 의료이용량의 확대, 의료기관에 지불되는 보험수가의 인상 등 복합적 요인이 있다. 이 중 진료비 지출 증가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99년 11월부터 2001년 1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단행된 44%(복리계산)의 급격한 '보험 수가 인상'으로 보여진다.그 증거로 수가 인상에 의한 진료비 증가가 전체 진료비 증가액의 약 41%와 올해 적자 예상액의 45.8%를 차지한다는 정부측 자료를 제시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원인을 밝혀내고 그에 근거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진료비를 공단으로부터 받지 못한 의사들이 환자에게 진료비 전액을 요구하고, 환자는 보험료 납부를 거부하여 현 의료보장체계의 완전한 붕괴를 가져오는 불행한 시나리오가 현실화 될 수도 있다.보험재정 파탄에 대한 대책은 '보험재정의 확충'과 '의료비 지출의 절감' 두 가지로 비교적 단순하게 제시할 수 있다. 다만 재정의 확충 방법이 보험료 인상이 아닌 사회보장예산의 증액으로, 의료비 지출 절감책도 의료 수가의 재조정을 핵심으로 한 소비자 중심의 해법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한다.의료를 비롯한 교육, 복지 등은 공공성이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다. 현재 30%에도 못 미치는 보험재정의 국가 분담율을 김대중 대통령의 공약대로 50% 수준으로 올리고 수가재조정, 진찰료와 처방료 통합 등 단기적인 대안과 함께 우리 나라 의료제도의 비효율성을 제거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안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반면에 정부 일각에서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는 민간의료보험제도, 일부본인부담제, 의료저축제도 등의 도입시도와 건강보험 재정적자를 빌미로 한 의약분업에 대한 회의론, 의보통합 백지화론 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를 문제삼아 애써서 도입한 바람직한 제도를 훼손하고 현 의료보장체계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퇴행적이고 위험스런 발상이다.우리는 의약분업과 의보통합 과정에서 많은 것을 잃었다. 의사와 정부, 의사와 국민, 정부와 국민간의 오해와 불신의 벽이 두터워 졌다. 보험 재정파탄의 원인을 밝혀내고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은 이 크나큰 손실을 보상하는 사회보장 확대의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건강보험 재정 파탄 위기를 단기적이고 미봉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는 것은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우를 범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 양진규 소장(전북기독교사회복지연구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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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4.25 23:02

[새벽메아리] 갈등의 시대 관용정신을 배우자

우리는 지금 갈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과거 너와 나 사이에 존재했던 갈등은 이제 웹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동시다발적으로 복잡화 그룹화 되어가고 있다.개개인, 그룹, 조직, 공동체, 국가 사이에서 가치, 필요, 이해, 의도를 둘러 싼 강한 불일치와 충돌하거나, 기본필요가 충족되지 않거나 개인이나 그룹이 다른 개인이나 그룹의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간섭하거나 방해 할 때 발생하는 갈등부터 자원과 권력 분배에 따른 갈등까지를 포함하여 참으로 다양한 갈등 속에 놓여있다.개개인이 당면하고 있는 갈등을 제외하고라도 지역 개발과 관련된 환경분쟁과 정리해고와 관련된 생존권 분쟁, 의약분업과 같은 공공분쟁,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미국의 부시정권의 강경한 한반도 정책 등이 빚어낸 국가분쟁, 국제분쟁 등 다양한 원인으로 도저히 양립 할 수 없을 것 같은 갈등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우리사회는 이제 산업화, 민주화, 지방자치제의 시행, 시민사회 형성 등으로 갈등과 분쟁의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갈등이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우리사회는 갈등상황에 폭력적인 힘에 의한 해결방식을 채택해 왔다. 힘에 의한 해결방식은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것으로 함께 공존 할 수 없으며 평화를 깨는 비민주적인 방식이다.우리사회는 평화와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 이제 새로운 갈등해결방식을 만들어 나가야한다. 그러나 여전히 힘에 의한 폭력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민주화로 인해 협상 등 새로운 갈등해결 양상이 시도되고 있지만 여전히 힘에 의한 폭력적인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갈등의 시대에 존중받으며 함께 발전하고 성장해 나가기 위해 관용정신을 배워야한다. 21세기 세계는 평화와 인권을 중요한 가치로 지켜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여있다.상대방을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인식 할 수 있었던 투쟁의 시대에서 상대방의 실익을 지켜주지 않고 자신의 안녕과 실익을 보장할 수 없는 갈등의 시대를 맞이 하고있다. 이에 유엔은 1995년을 세계관용의 해로 선포했었다. 관용정신이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의 원리가 되기 때문이다. 갈등의 시대와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사회통합과 민주적인 발전을 위해 관용정신을 배워나가야 한다.어떤 대상에 대해 싫어하고 반대하지만 용납하거나 적어도 부정적 행위를 자발적으로 중지하는 실천인 관용정신은 인권, 평등, 평화의 사회로 가기 위한 작은 출발이 되며, 다름을 다름으로 볼 뿐 틀린 것으로 보지 않으려는 태도, 다름과 옳음의 개념을 제대로 아는 사회적 덕목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개인들간의 이해가 충돌하면서 상대적 가치들이 공존 할 수 있는 다원주위사회는 이러한 관용정신으로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옛말처럼 우리사회가 겪고있는 갈등을 새로운 사회의 시작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모두 노력해야한다. 관용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 연대와 참여는 참으로 중요한 실천방식이 되고있다.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갈등을 양립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서로의 실익을 보장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갈등당사자들이 해결과정에 직접 참여해야한다. 갈등해결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정에 따라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김금옥 (전북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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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4.18 23:02

[새벽메아리] 의료대란의 값진 교훈

의료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지난해 의료대란이 벌어졌을 때만 해도 지금보다는 덜 중요한 문제로 여겨졌지만, 의료보험 재정파탄 문제가 불거지고 국민의 의료보험료 및 의료비 부담이 대폭 늘어나게 된 근래에 와서는 갑자기 그 중요성이 커진 것처럼 보인다.정말 의약분업의 실시가 이 사태의 주범이고 과도한 수가인상이 공범일까? 의약분업이 실시되지 않았다거나 의사들이 파업을 벌이지 않았다면, 우리의 의료 시스템이 지금도 아무런 문제없이 건재했을까?의료 문제가 전사회적 골칫거리가 되는 일은 1990년대 들어서 매우 많은 선진국들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났다. 인구의 노령화, 첨단 의학의 발달, 만성 질환의 증가 등의 요인으로 인해 국가 전체의 의료비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의료 부문을 포함하여 복지 부문 전체의 지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나라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지출을 줄이면서도혜택을 줄이지 않는 방법을 찾기 위한 묘수를 찾기 위해 애썼다.의료가 사실상 시장에 맡겨져 있는 대표적인 나라 미국에서는 클린턴 대통령 재임시 사회주의적 성향의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실패했고, 우리 나라처럼 국가가 의료보험을 관리하던 여러 나라들은 전면적, 혹은 부분적으로 사회보험을 민간기업으로 이양했다. 복지혜택의 전면적 축소가 진행된 나라도 있고, 복지제도의 내부조정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는 쪽으로 개혁을 진행한 나라도 있다.의료보험 재정적자는 수많은 나라들이 이미 겪은 일이며, 또한 우리 나라의 재정적자도 수년 전부터 충분히 예견되어 오던 일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 1999년에 이미 2001년에는 2조원 이상, 2004년에는 3조5천억원 이상의 재정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문제의 핵심은 의약분업이 아니라는 것이다.의약분업이 의료개혁의 일환이며 선진적인 제도라는 사실에는 누구도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의료개혁을 위해 필요한 과제는 그것 말고도 매우 많은데, 현 정부가 무리해서라도 의약분업을 강행하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의약분업을 통해 예상되는 재정적자를 줄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재정적자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가 오히려 재정적자를 부추기는 예기치 못한 악결과를 낳았을 뿐이다.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의약분업을 통한 의료제도의 개혁이 픗?로 귀결되어 가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목표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설정된 목표를 실현할 정책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목표를 설정하기만 했을 뿐,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실무는 모두 관료들에 손에 맡겨졌다. 정책을 세밀하게 기획하고, 부작용에 대비하고, 지지자를 격려하고, 저항집단을 설득 혹은 무력화시키고, 예기치 않은 결과가 생겼을 때 민첩하게 대응하는 사람은 정치인과 관료 중 어느 쪽에도 존재하지 않았다.현실을 무시한 몇몇 이론가의 논리를 철석같이 믿고 밀어붙였으나, 일이 이론대로 되지 않자 허둥대기만 했다. 눈앞에 보이는 하나의 구멍을 막으면 다른 곳에 더 큰 구멍이 생기고, 그 구멍을 막기 위해 달려가는 사이에 또 다른 곳에 균열이 생기는 꼴이 된 것이다.현 정권은 잇단 개혁실패로 점차 허물어져가고 있다. 개혁을 구상하는 머리는 있었으되 그 구상을 현실화시킬 손발이 없었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이것은 현 정권만의 한계라기보다는 나라 전체의 한계일 수밖에 없다. 단견으로 새로운 땜질처방을 낸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실패의 원인과 현재의 상황을 국민 앞에 솔직하게 털어놓고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해야만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제2막에 접어든 의료대란의 교훈을 현 정부는 다른 부문에 적용되는개혁정치의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왕준 (청년의사신문 발행인, 인천사랑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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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4.11 23:02

[새벽메아리] 이런 생산자들을 아시나요

유홍준 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2"에는 정농회의 젊은 농사꾼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는데, 부안 변산은 땅의 생명을 지키는 유기농업 생산자들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 답사길이 된다는 내용이다.요즘은 농토에서 지렁이나 무당벌레나 달팽이 등의 벌레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부안 정농회 농부들의 땅에는 각종 벌레들이 바글바글 바쁘게, 주인과 더불어 농사일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요즘엔 보기 힘든, 살아있는 공생공존의 땅임을 실감할 수 있다. 땅을 살리기 위해서 그들이 농사짓는 방법은 농약도 뿌리지 않고 화학비료도 쓰지 않는 유기농업이다.그들은 그 흔한 제초제도 뿌리지 않는다. 그리고는 손으로 일일이 뽑아주며 풀과 씨름을 한다. 제초제 한 줌만 뿌리면 좀더 쉽고 편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을 텐데, 왜 그들은 어리석은 일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일까?제초제의 성분 중 다이옥신은 1㎍(100만분의 1g)으로 사람 2만명을 죽일 수 있는 독성분으로 각종 암을 유발하고 기형아를 낳게 하는 원인이 된다. 이 물질은 사람 몸으로 들어가면 지방에 축적되어 죽을 때까지 빠져나가지 않으며, 엄마젖을 통해서 아기에게 물려줄 때에만 빠져나갈 수 있다. 농약과 화학비료 역시 우리 몸을 병들게 하는 독소로 그 위험성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뿐만 아니라 이 물질들은 땅을 황폐하게 만들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들이다. 이들은 비에 씻겨 지하수로 흘러 들어가고, 강과 바다로 흘러가고, 먹이사슬로 연결이 된다. 식물에 뿌려진 약성분은 그것을 먹고 자란 동물들 속에 축적되어 우리가 먹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 등 먹을거리 전체를 오염시킨다. 결국 인류의 생존자체를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인간이 농약과 비료를 만들어 농사를 하기 시작한 이유는 보다 더 많이 생산하여 인간만이 더 잘 살겠다는 이기적인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생태계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에게 피해로 돌아오고 있다. 요즘 공포에 떨게 하는 광우병도 초식동물에게 먹이가 없어서가 아니라 빨리 키우기 위해서 동물성사료를 먹인 결과물이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면서까지 인간의 욕심을 채우려다 생긴 병이다.이 생산자들이 엄청난 노동력을 감수하면서 유기농업을 하는 이유는 바로 자연 속에서 이 땅의 모든 생명을 지키고 함께 존재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속적인 욕망과 물질을 꿈꾸지 않고, 생명을 나누고, 삶을 나누고 싶어한다. 그런 삶의 결과가 가난이라면 그것도 달고 행복하게 생각하며 살고자 한다.이제 유기농사는 그들에게 단순한 생활의 방편이 아니라 삶을 나누고 살리는 생활의 철학이 되었다. 요즘 그들은 한 단계 더 나아가 땅속의 미생물마저도 다치지 않게 하려고 무경운(땅을 뒤집거나 부수지 않고 그 상태로 놔둠), 무비닐로 하는 농사를 시도하고 있다.세상 한 구석에서 세상을 바꾸는 일에, 조용하면서도 옹골차게 실천하는 이런 생산자들이 있는 부안은 진주와도 같이 귀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이덕자 (전주 한울생활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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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4.0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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