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1-06 21:31 (Thu)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새벽메아리

[새벽메아리]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일까? 어떤 이는 지는 해를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느낄 것이며, 어떤 이는 잘 다듬어진 여인의 모습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낄 것이다.나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가 느끼는 감동으로부터 온다고 믿는다.사탕 한 개의 감동굉장히 오래된 일이지만 생생하게 살아오는 아름다운 기억이 하나 있다. 85년 나는 영등포교도소에 있었다. 반듯이 누워 발을 뻗으면 겨우 한뼘 정도의 여유가 남는 0.7평짜리 독방생활이 지리하게 계속되던 어느 날 나는 솔깃한 제안 하나를 받았다.한글을 모르는 소년수에게 한글을 깨치게 해달라는 것이다. 국민학교 의무교육이 실시되고 있고 세계에서 문맹율이 가장 낮다는 우리나라에 자기 이름 석자 못쓰는 사람이 있다는게 믿기지 않아 호기심도 생기고 오랜 독방생활로 사람의 향기가 그립기도 하여 선뜻 승낙하였다.내가 가르칠 아이는 15살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자그만한 키, 왜소한 체구에 벌써 감옥에 6번째 들어왔다. 내가 가르칠 교재는 없었고 볼펜조차 지급해주지 않는 환경에서 판판한 프라스틱 판에 버터를 바르고(사실 안티프라민이 성능이 훨씬 좋다) 그 위에 비닐을 씌운 판을 종이대신 사용하고 볼펜대신 나무젓가락을 사용했다.한글공부는 고작해야 요즘 유치원 아이들이 하는 1,2,3 숫자 쓰기와 가나다라를 반복해서 쓰는 정도였다. 뭐 가르친다고 할만한 것도 없었지만 소년은 매우 열심이었다. 이윽고 몇일 후 아이는 자기 손으로 자기 이름을 써서 나에게 보여주었다.그때 너무나 기뻐하던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 후 소년은 하루에 한 번 있는 운동시간에 내 방 앞을 지날 때 마다 반갑게 인사를 하며 지나갔다. 그러나 우리의 만남은 오래가지 않았다. 소년은 이미 형이 확정되어 다른 교도소로 이감을 가게 되었다.이감가는날 소년은 매우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고맙다는 인사로 나에게 사탕 하나를 주고 갔다. 나는 이 사탕을 오랫동안 먹을 수 없었다. 소년은 고아라 면회오는 사람도 없었으니 같은 방의 다른 사람이 준 사탕을 아껴두었다가 주고 간 것이다. 나는 그에게 아무 것도 주지 못했다. 대신 나는 이런 아이들을 전과자로 만들어버리는 세상과의 대결을 맹세했다.올해 설 덕담으로는 TV CF에서 시작된 부자되세요라는 말을 복 많이 받으세요보다 더 많이 들었다. 이 때 참 어색하여 뭐 부자까지는그냥하고 어정쩡하게 답하게 된다. 부자가 되려는 사람의 욕망을 솔직히 표현하고 있기는 하지만 한 해 소원이 부자가 되는 거는 어쩐지 씁쓸하다.선거를 앞두고는 후보들이 앞다투어 CEO대통령, CEO도지사를 표방하는 데 열을 올린다. 과연 기업조직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가 정신이 모두를 잘 살게 해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정주영을 대통령으로 뽑았어야 했다.아름다운 바보들의 행진남들은 받고서도 안 받았다고 시치미를 떼다가 증거를 내밀면 탄압이라고 강변하는데 스스로 나도 떳떳지 않은 돈을 받았노라고 고백하는 바보가 있다. 남들은 모두 아니라고 하는데 자기 혼자 옳다고 믿으며 불나방처럼 무모하게 뛰어드는 바보도 있다.사탕을 전해 준 소년수의 거친 손길, 스스로를 끊임없이 개혁하고 변화시키려는 이런 아름다운 바보들을 아름다움 속에 집어넣고 싶다.아름다운 세상이 싸움으로만 이루어지진 않겠지만 나는 많은 사람의 땀과 희생을 통해 차츰 이루어져가리라 굳게 믿는다.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만큼 우리는 그것에 한걸음 다가가게 된다. 아름다운 바보들의 행진이 계속되길 바란다./ 김성주 (시민행동 21 뉴미디어센터소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2.03.20 23:02

[새벽메아리] 언론.시민단체 어깨 무겁다

2002년은 양대선거가 치러지는 선거의 해이다. 6월에는 지방선거가 있고, 12월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 현재 각 정당들은 양대선거에 출마할 후보자 선정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고 언론은 이 사실을 빠짐없이 보도하고 있다. 우리 지역에서도 지방선거와 관련, 많은 지면과 시간을 할애해 유권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반면 선거관련 여론조사를 실시해 선거법을 위반해 가면서 편파적으로 보도한 언론사 간부가 고발당하기도 하고 전현직 언론인들이 후보진영에 앞다투어 합류하고 있다.지역 시민단체들도 지난 총선에서 단일한 대오를 형성해 낙천낙선운동을 전개하던 것과는 달리 단체 특성에 맞는 다양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부른다. 유권자인 국민이 자신을 대신해서 정치를 해 나갈 대표자를 뽑는 합법적인 절차이기 때문이다. 선거가 잘 돼야 국민이 편안하고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 그럼에도 선거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이미지는 좋지 않다. 선거 때마다 약방의 감초 마냥 불법, 타락, 금전살포 같은 부정선거가 이루어졌고 후유증을 앓아왔다. 심지어 대의정치에 충실해야 할 당선자들은 마치 권력을 위임받은 양 국민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만의 잔치를 벌여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는 실정이다.선거문화를 바꾸어야 정치문화를 바꿀 수 있고 이를 통해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으며 잃어버린 유권자의 주권도 되찾아 올 수 있다. 이를 위해 각 정당과 정치인, 선관위 등이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지만 이런 움직임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매개체는 역시 언론이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의 관심을 끌게 하는 것이 시민단체이다. 따라서 양대 선거에서 언론과 시민단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선거는 국민의 다양한 정치적 의견들이 표출되고 상이한 의견들이 대립논쟁하는 구도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논쟁을 거칠 때 민주적인 의견이 다듬어지기 때문이다.비슷한 색깔의 후보자들이 대결하는 인물싸움의 장이 아니라 후보자의 다양한 사상과 차별적인 정책이 부딪치는 장이 되어야 하고, 유권자는 학연지연혈연 등 원시적인 방법에 의한 선택이 아니라 차별적인 정책이나 사상을 비교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후보에게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선거에서 중요한 것은 선거가 정치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유권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누가 당선될까로 관심을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선거의 중요성과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를 토론해가는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성숙한 문화를 만들어갈 의무가 언론에 있다.언론사 출신이 후보진영에 합류하고 언론사는 전관예우에 따라 한 줄이라고 더 보도해주고, 그 결과에 따라 공과가 평가된다면 이는 '신 관언유착'이며 정치문화 발전에 장애가 될 것이다. 칼보다 강하다는 펜의 힘을 가진 언론에서 권력을 가지고도 해결하지 못했던 후진적 정치문화를 바꾸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보도에 임한다면 언론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높아갈 것이다.시민단체 또한 정치선거문화 개선에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 유권자 교실을 개설해 유권자의 권리와 의무, 선거법 등을 중심으로 교육해서 선거 관련 자원봉사를 할 수 있고 선거 이후에는 의정감시 역할도 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시민운동의 저변을 확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공청회나 토론회, 공약평가, 정책제시 등 초보적인 것에서부터 생활정치 변화를 위해 직접참여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후보자들을 비교하면서 합법적인 틀 내에서 낙선운동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아무튼 올해 양대 선거에 언론과 시민단체의 역할에 거는 국민적 기대는 크다 하겠다./ 최형재 (전북시민운동연합 사무처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2.03.13 23:02

[새벽메아리] 추악한 현대 올림픽

이번 솔트레이크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은 한마디로 현대 스포츠가 얼마나 추악하게 변질되었는가를 실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 올림픽은 더 이상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순수한 열정을 가진 스포츠 제전이 아닌 게 분명하다.올림픽은 스포츠를 통해 세계인의 화합을 이루어내겠다는 이상을 가지고 있다 하나 이제 그 이상을 실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올림픽이 새로운 분쟁을 일으키고 조그마한 갈등의 틈바구니를 더욱 크게 헤집어 놓고 있다.그래서 이제 올림픽의 역사는 고대 올림픽에서 근대 올림픽으로 발전해 온 단계를 지나 현대 올림픽(?)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를테면 올림픽의 역사는 제우스신에게 바치는 그리스인들의 정성어린 제전행사로 종교, 예술, 군사훈련 등이 삼위일체를 이룬 헬레니즘 문화의 화려하고도 찬란한 결정체였던 고대 올림픽의 시대를 지나서, 올림픽이라는 스포츠 제전을 통하여 세계 각국 청소년들의 상호 이해와 우정을 다지고 세계평화를 이룩하려 했던 프랑스의 피에르드 쿠베르탱 남작(1863-1937)의 강렬한 집념에 의해 탄생한 근대 올림픽을 넘어서, 이제 상업적인 이해와 탐욕에 물들어 진정한 스포츠 정신은 사라지고 오직 국가간 치열한 경쟁과 이에 따른 승리와 패배의 선명한 자욱만을 중시하는 현대 올림픽의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근대 올림픽 초기를 다룬 유명한 영화 '불의 전차'를 보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버릴 수 없어 일요일 경기를 포기하는 유대인 이야기 등 아마츄어리즘의 올림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현대 올림픽에서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는 갈수록 사라지고 승리만을 숭배하고 승리자들에 대한 경배와 찬양만이 무성할 뿐이다. 무엇이 현대 올림픽을 이렇게 변질시키고 있나. 그 이유는 먼저 올림픽이 개인들의 잔치가 아니라 국가들의 잔치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개인들의 잔치였던 올림픽이 제국주의와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우수한 국민을 가진 건강한 국가들의 상징이 된 것이다. 올림픽은 치열한 국가간 경쟁의 장이 되었다. 이 장에서 승리하기 위해 국가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개인을 발굴하고 이들을 집중 육성하는 엘리트 스포츠에 몰두하며 스포츠 엘리트들을 국가의 상징으로 만들고 있다. 국가의 상징으로 부각된 스포츠 엘리트들은 또 한편으로는 국민 통합과 애국심을 이끌어내는 표상이 되고 있다. 이제 스포츠는 건강한 국가의 상징을 넘어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도구로서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스포츠와 자본주의의 추잡한 결합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스포츠는 자본의 축적을 위한 매우 중요한 상품인 동시에 시장으로 기능한다. 영화나 음악과 같은 대중문화에서 자본의 원활한 축적을 도와주는 스타 시스템이 스포츠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 스포츠 스타가 탄생하고 이들을 통해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이른바 스포츠 마케팅 전략의 탄생 때문이다. 즉 스포츠 마케팅 전략상 위대한 스포츠 영웅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이번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연이은 잘못된 판정과 또 어떻게 해서라도 메달만 목에 걸면 된다는 일부 선수들의 추잡한 반칙행위들을 보면서 인간 세계에 더 이상 페어 플레이가 자리할 수 있는 곳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마저 생겨났다. 그래서 이 기회에 스포츠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보다 냉정하고 차분하게 되돌아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특히 월드컵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는 더욱 그렇다. / 문윤걸 (문화평론가)

  • 오피니언
  • 기타
  • 2002.02.27 23:02

[새벽메아리] 국민참여경선에 부쳐

아직은 좀 이른 듯 하지만 민주당내 대선 후보들의 TV토론을 가끔 보게 된다. 주변의 관심이야 그리 높지 않지만 후보의 태도는 매우 진지해 보인다. 국민참여경선제가 비록 특정정당에서 시작되긴 했지만 한국 정치사의 흐름을 바꿀 획기적 사건이라 평하는데 인색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기대한만큼 큰 관심 속에 치루어지지 못하는 아쉬임이 있지만지금은 아주 옛날처럼 보이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과거로 기억되는 선거 방식이 있었다. 80년 광주민중항쟁을 피로써 진압한 전두환이 그 해 8월, 최규하를 밀어내고 직접 대통령 자리에 앉기 위해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감행했다. 이때 결과가 2525명 투표에 2524명 찬성이었다. 왜 한 명은 뺐을까? 궁금해서 좀 더 거슬러가 보면 9대때 박정희는 100% 지지로 당선이 되었다. 100%는 공산당식이라고 비난해왔으니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하기야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똑 같은 생각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면 100% 나오는 건 너무 당연하다.이런 간접선거는 박정희가 국민들이 직접 뽑는 71년 7대 대통령선거에서 DJ에게 겨우 이긴 후(실제로는 졌다는 게 정설), 72년 10월 유신에서 도입한 이후 국민의 힘으로 87년 되찾을때까지 15년이나 지속되었다. 87년 6월 항쟁이 시작된 6월 10일은 장충체육관에서 당시 집권당인 민정당에서 노태우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는 대의원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얼핏 보면 정당의 후보 선출을 시비한다는게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당연히 축제가 되어야할 날을 온통 최루탄으로 범벅이 되게 하는 것이 이날 시위의 주목적이었다. 대회 장소 주변에 전경들을 배치하여 대의원외에는 아무도 얼씬 못하게 하고 비난 속에 치러지는 후보선출과정과 국민의 관심과 기대속에 축제처럼 치루어지는 것 중 선택하라면 어느 쪽을 택할까? 결국 6.29선언으로 직선제를 수용함으로써 긴 싸움은 일단락을 지었다. 대통령선거야 직선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정당의 후보자 선출과정은 당 안에서의 행사에 그쳤으며 당선 가능성이 불확실한 후보의 뛰처나가기는 여전히 계속되었다.이번 민주당의 국민참여경선제 도입은 이런 면에서 한국의 민주주의와 정당의 발달과정에서 진일보한 것이다.TV와 신문들이 후보 인터뷰를 앞다투어 실지만 주변에서 느끼는 온도는 뜨겁지 않다. 여전히 정국은 게이트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모처럼 열린 국회는 극한적인 비방, 폭로전으로 얼룩지고 있다. 새로운 정치를 기대했던 국민들은 다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게 된다. 일반 국민들의 참여가 높지 않다면 좋은 제도도 후보들간의 조직 대결 양상으로 나갈 수 밖에 없다. 후보들 역시 여론에 기대기보다 좀 더 확실한 한 표를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쓸 수 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번 국민참여경선제는 이미 한나라당이나 민주노동당 등 다른 당에게도 확대되어 나가고 있다. 노동운동의 메카로 불리는 울산에서는 민주노동당의 시장 후보 선출을 민주노총과 함께 치르기로 했다. 이제 어느 정치 세력도 자신을 개방하지 않고서는 일반 국민들을 참여시키지 않고서는 선거의 승리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매우 취약한 한국에서의 정당의 뿌리가 대중 속에 자리잡을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 민주당의 시도가 찻잔 속의 태풍이 되지 않으려면 민주당 스스로 체화된 변화의 모습을 보여야 하며, 주인인 유권자의 관심과 참여가 성패를 가르게 될 것이다./ 김성주 (시민행동21 뉴미디어센터소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2.02.20 23:02

[새벽메아리] '한국식' 농업정책 세워라

새해를 맞았지만 미증유의 쌀값폭락에 따른 농가경제의 침체가 농촌을 무겁게 내리 누르면서 새해다운 활력을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작년 추석 무렵부터 백가쟁명식으로 제기된 농가경제 위기에 대한 원인분석과 다양한 해결방안들은 허기진 농민들에게 약간의 위로는 되었을망정 , 근본적 대책마련이라는 명제에는 아직 너무도 동떨어져 있을 뿐이다. 원인분석과 대안제시를 넘어서 이를 사회적으로 합의해내고 국가정책에 반영시켜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고작 금년 예산에 논농업직불금을 ha당 50만원으로 늘리는 정도의 땜질식 방책만으로 그쳤고, 농민들을 향해 고품질 쌀생산에 주력하자는 캠페인성 구호만을 되풀이 외칠 뿐이었다. 농림부는 '쌀산업발전 중장기대책'을 검토하여 금년 3월 말까지 최종 확정한다고 발표하였다(12.26). 여론의 호된 질타에 못이겨 뒤늦게나마 허둥대는 농림부의 태도가 마땅치는 않지만, 기본방향을 수립하는 데 꼭 참고되어야 할 몇가지 조언을 드리고자 한다. 첫째, '경쟁력 강화'라는 헛된 미신을 버려라. 국내 쌀값이 미국, 중국에 비해 4-6배 비싸다고 한다. 단위면적당 수확량은 세계 최고수준이지만 쌀생산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땅값이 비싸기 때문이다(미국은 평당 약 700원, 한국은 약 3만원 대). 따라서 한국농민들이 아무리 뼈를 깎는 생산비 절감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다. 얘기가 이쯤되면, 경쟁력 없는 농업은 포기하고 잘 나가고 있는 첨단산업 중심으로 가자는 이른바 '비교우위론'이 들먹여질 수 있다. 하지만 비교우위론의 태생지인 영국이 이를 이미 1940년대에 무덤에 묻어버렸고, 정반대 방향의 농업투자를 통해 유럽 최대의 밀수출국이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현재 주요 농산물 수출국들과 한국을 비교하면 헤비급 권투선수와 중학생의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중학생 수준에 맞는 경쟁력 강화의 목표치를 벗어나는 순간, 그 믿음은 헛된 미신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둘째, 부족한 국가재정 타령은 이제 제발 그만하라. 미국 연방정부는 국채발행액의 이자상환을 위해서 연간 1,500억 달러(미 국방예산의 절반)를 지출할 정도로 막대한 빚을 지고 있다. 일본도 국가채무가 2조 달러(약 2,600조원)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나라는 국내 농업지원예산을 최근 오히려 늘려왔다. 유럽이 2차대전 후 미국이 무상으로 제공하는 잉여농산물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면서 국내농업을 육성하고자 노력했을 때, 전쟁의 폐허 속에서 과연 국가재정이 넉넉하였겠는가? 재벌들의 빚잔치에 펑펑 쓰여졌던 IMF 당시의 공적자금처럼 농촌에도 쓰라는 얘기가 아니다. 국내농업을 지키고자 하는 최소한의 의지가 있다면 농업, 농민을 사랑한다는 빈 말이 아니라 구체적 예산집행을 통해 표현하라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IMF당시 귀농했던 분들 중 70%가 다시 이농할 수밖에 없었겠는가? 도시 노동자의 평균 소득에 비해 농민들의 소득 수준이 80%까지 떨어졌다는 작년 말 통계청의 발표처럼, 지금 농촌은 더 이상 내려설 곳이 없는 빈사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농민들에게 해줄 것만 요구하지 말고 농민들도 적극적인 자구책을 강구하고 더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이런 분들에게는 앞으로 다가올한참 휴가철일 7월말 어느 휴일 저녁의 TV뉴스 시청을 권하고 싶다. "더위에 지친 시민들이 인근 계곡을 찾아 땀을 식히고.......찜통같은 더위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은 탐스러운 결실을 기대하며 휴일도 잊은 채 논과 밭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이상 휴일표정 스케치였습니다"/ 김용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 의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2.02.06 23:02

[새벽메아리] 춤의 사회학

춤이 넘쳐나고 있다. 라틴댄스, 재즈댄스, 살사, 힙합, 볼룸댄스, 스포츠댄스 등이 일상적 용어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며, 그동안 춤을 독점해 온 청소년뿐만 아니라 춤과는 거리가 멀어보이고 춤이라면 불륜을 연상케하는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들도 떳떳하게 춤에 열광하고 있다. 춤바람이 불고 있다. 에어로빅으로 시작해 DDR이라는 혁명적 기계가 불씨를 지피고 백화점이나 사회교육원의 문화강좌에 댄스 교실이 인기를 모으더니, 마침내 시내 곳곳에 각종 댄스학원들이 속속 문을 열고, 인터넷에서도 자신의 춤 솜씨를 뽐내며 동영상 파일로 춤 실력을 겨루는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갑자기 사람들은 왜 춤에 열광하는가? 춤이란 단순한 몸의 움직임만은 아니다. 그 몸 동작 하나하나에는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래서 춤은 어떤 메시지를 역동적인 에너지가 담겨진 몸의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언어소통방식이며 의사소통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춤은 인간 상호간에는 물론 자연이나 우주 또는 초자연적 힘과의 의사소통을 위해서 사용되기도 한다. 무당의 춤이나 주술가의 춤이 그러하고, 사랑하는 두 남녀가 함께 어울려 추는 춤이 그러하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적 활동만을 중시하고 몸을 통한 어떤 행위도 그 가치를 인정해 오지 않은 우리 사회의 통상적인 신념은 몸의 움직임으로 이루어지는 춤을 때로는 매우 경박한 행위로, 때로는 매우 음란한 행위로 취급하였다. 그 결과 춤은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고 어둡고 음침한 곳으로 숨어들어 은밀한 행위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지금 불고 있는 '춤바람'은 '춤'과 그것을 담아내는 '몸'이 다시 본래의 기능과 의미를 회복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또 한편으로 춤은 다른 어떤 표현방식보다도 가장 역동적인 방식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는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최근 문화적 흐름이 바로 개인기를 중시하는 '자기 과시 또는 드러냄'인데 이는 보통 '튄다'라는 말로 대변된다. 이 '튄다'는 것이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던 시대에서 이제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는 시대로 변화해 왔고 이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드러냄'을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적 배경이 춤열풍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춤 열풍은 춤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시대의 새로운 의사소통방식으로 춤의 의미를 회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지금의 춤 열풍을 이렇게 긍정적으로만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늘날 춤의 열풍의 선도에는 청소년이 서 있다. '청소년과 춤'이라는 조합에서 부각되는 것은 바로 '젊음'이라는 문화적 코드이다. '젊음'이라는 문화적 코드가 부각될수록 젊음은 보다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 되고, 생물학적으로 젊지 않은 사람들은 이 자본을 획득하기에 애쓰지만 더욱 주변화되고 말 것이다. 결국 춤과 젊음이 한 몸이 되는 것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 문화산업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춤의 상품화, 춤의 즉물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라틴댄스나 재즈댄스 등이 문화적 취향의 차이가 아니라 문화적 계급의 차이를 부각하면서 춤의 유행이 또 하나의 문화귀족을 창출하고 있다. 또 춤이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는 상품화 광고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이는 문화적예술적 표현이나 삶으로서의 춤이 아닌 상품화된 행위로 춤을 전락시키고 현대인의 속물적 취향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는다. 이처럼 춤이 육체와 젊음을 문화자본화하는 현대문화의 특성을 더욱 강조하는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을 경계하는 것이 진정한 '춤'을 위한 조건이 될 것이다. / 문윤걸 (전북대 사회학과 강사)

  • 오피니언
  • 기타
  • 2002.01.23 23:02

[새벽메아리] 클린턴과 한국정치

클린턴은 1978년 32세라는 약관의 나이에 미국 아칸소주 주지사로 당선되었다. 지난 40년간의 미국 역사상 가장 젊은 주지사라는 기록도 남겼다.재선에 실패한 후 다시 도전하여 다섯 번째 주지사임기를 마친 클린턴은 1992년 46세라는 젊은 나이에 미합중국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침체에 빠진 미국경제를 되살린 업적으로 무난히 재선을 한 후 2000년 퇴임하였다.만약 클린턴이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도 그와같은 눈부신 정치적성공을 거두었을까? 워낙 정치적집념이 강하고 정치적네트워크연결에 탁월한 클린턴인지라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풍토에 적응하려고 접근방식을 180도 달리 하였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입고 좌절했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클린턴의 정치적 성공은 미국의 예비선거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겨우 18살의 촉망받는 젊은이로 바깥 세상에 뛰어들었던 클린턴은 9년이 지난 27살에 고향 아칸소주에 돌아왔다. 조지타운대학, 옥스퍼드대학, 예일대학등에서 학업을 마친 그가 1973년 가을 아칸소주 대학교 법과대학 조교수로 임용되었기 때문이다. 다음해 클린턴은 자신을 포함하여 모두 4명이 경쟁에 나선 민주당하원의원 예비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켜 쉽게 압승하켰다. 압승의 이유는 클린턴의 조직관리 능력과 정열이 다른 후보자들의 지역적 기반을 능가한 데 있었지만, 더 결정적인 이유는 당시 공하당 출신 하원의원인 햄머슈미트가 1966년 하원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후 한번도 민주당으로부터 도전다운 도전을 받지 않은 만큼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어 민주당에서는 강력한 입지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클린턴은 예상밖의 선전을 하여 강적 햄머슈미트에 맞서 2퍼센트의 차이까지 따라잡았다. 그 결과는 햄머슈미터에 대한 그때까지 민주당의 도전중 최고성적이었고 클린턴은 아칸소 민주당의 가장 촉망받는 존재가 되었다. 그후 승승장구한 클린턴은 1976년 민주당 검찰총장예비선거에서 압승하고 공화당이 후보를 내지 않아 쉽게 검찰총장에 당선되었고 2년후인 1978년에는 민주당주지사 예비선거와 주지사 본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하였다.그러나 정당이 1인지배체제하에 있고 지역주의투표행태가 횡행하는 한국에서는 어림도 없은 이야기이다. 자질이 뛰어난 정치신인이라 하더라도 공청권을 장악한 총재나 그 대리인과 선이 닿지 않은 한 당의 공천을 받기는 어렵다. 그러나 천상 천하 1인인 공천권자와의 줄이 혈연이나 지연, 학연 아니면 막대한 공천헌금일턴데 성실함과 진지함이 유일한 연줄인 정치신인들에게는 애당초 가능성이 없는 얘기다. 그렇다고 불의한 정치현실을 바꾸겠다고 무소속으로 출마해다가는 지역주의라는 함정에 빠져 풍차에 돌진하는 돈기호테 취급받기 쉽상이다.다행히 집권여당이 올해 대선후보선거는 국민경선제라는 사실상의 예비선거제를 도입하고 국회의원을 비롯한 각종 공직후보자는 당원대회에서 선출하겠다는 결정을 하였다. 선거때마다 당을 바꾸고 정치개혁이라는 화두를 들고 나왔던 정당이라 액면 그대로 믿어지진 않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국에서도 클린턴같은 정치인이 나올 수 풍토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 진봉헌 (전주지방변호사회 부회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2.01.21 23:02

[새벽메아리] ‘게이트’와 '스캔들'

요즘 하루는 ‘게이트’로 시작해서 ‘게이트’로 지는 것 같다. 아침에 눈뜨면 ‘무슨 게이트’에 연루된 새로운 사람들의 이름이 떠오른다. ‘문’ 하나를 열면 또 다른 ‘문’이 계속해서 나타나 끝을 알 수 없다. ‘게이트’란 말은 공화당 닉슨을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도청사건에서 유래한 바, 원래 ‘스캔들’이나 ‘추문’으로 불리는 게 적합할진대 권력형 스캔들에 ‘게이트’라는 이름을 붙여 부르고 있다.이번의 게이트들은 새로운 시대적 특징을 띄고 있다. 과거의 비리 의혹들은 대개 재벌과 관료, 정치집단 사이에 주로 발생했지만 이번의 사건들은 벤처기업을 끼고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과거의 강남 개발 붐을 틈타 부동산으로 돈을 벌어 들인 과거 졸부들과 달리 벤처열풍에 따라 급격히 부를 축적한 신흥 벤처 졸부들과 권력기관, 금융기관, 언론기관들이 벌이는 신종수법이다. 나는 누가 얼마를 받고 댓가성으로 어떤 위법을 행사했는 지엔 별 관심이 없다. 그건 검찰이 밝혀낼 일 뿐이다. 다만 왜 이런 추문들이 시작되었고 언제까지 진행될 지가 궁금하다.올해의 대통령기자회견을 보는 느낌은 수많은 ‘게이트’로 얼룩진 정권의 피로를 보는 듯했다. 외환위기를 비교적 순조롭게 넘기고 그다지 비관적이지 않은 경제상황에 놓여 있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쉬어 버린 목소리로 연신 죄송과 사과를 반복해야 하는 현주소가 몹시 씁쓸하다. 뒤늦게 정실인사를 하지 않고 불퇴전의 각오로 비리척결을 외치지만 왠지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금부터 4년전, 50년만의 새로운 정권의 탄생을 몹시도 기뻐했던 사람들은 권력이란 결국 똑 같은 것이라는 냉소적인 반응에 할 말을 잃는다.새로운 정권의 등장을 한 정권에서 다른 정권으로 넘어가는 것으로, 영남에서 호남으로 권력의 중심이 옮겨가는 것으로 이해하는 자들은 정권교체의 참된 의미를 모른 채 자신들도 그 자리에 앉아 볼 기회가 생기는 정도로 이해했을 지 모른다. 여전히 소수파 정권에 불과한 이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망각한 채 너무도 빨리 권력을 유지하는 것보다 권력을 누리는 쪽을 선택했는지 모른다. 권력에서 조금(!) 소외되었던 이들은 새로운 정권의 탄생을 적극 반기고 권력의 중심부로 재빠르게 진입했다. 단지 출신지역이 같다는 이유로 출신교가 같다는 이유로 믿을 만한 우리 편으로 둔갑하여 정권 교체의 꿀 맛을 누려왔다. 나는 이들을 각종 추문의 진원지로 의심한다. 이제 이들에 의해 권력의 한 귀퉁이가 무너지고 있고 이들은 벌써 새롭게 살 길을 모색하고 있을 지 모른다. 서로간에 암투를 벌이고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다음 정권에 보험이라도 들려고 안달이 날 지도 모른다. 일찌감치 괜찮은 우리 편을 만들어 놓지 못한 DJ는 때늦은 후회를 해보지만 사태가 호전될 기미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사실 따져보면 과거 정권의 대형 비리들에 비하면 지금의 것들은 작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권교체의 참된 의미를 안다면 여러 게이트들이 더 가혹하게 폭로되어 오히려 이번 기회에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사익을 채우려는 오랜 관행을 멈출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권력에 취한 자들의 추한 이야기가 언제까지 계속 오르내릴까?/ 김성주 (시민행동21 뉴미디어센터 소장)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02.01.16 23:02

[새벽메아리] 희망을 찾기위한 도전

기차표 구입을 위해 매표소 앞에 한 사람이 줄을 섰다. 서서히 자신의 순서가 돌아오는데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입석 두 장' 다음은 잘 들리게 '입석 두 장' 바로 앞사람이 분명한 어조로 '입석 두 장'을 달라며 계산을 한다. 자기 차례가 돌아온 그 사람은 물론 입석표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돌아 나오는데 바로 뒷사람이 좌석표 있으면 달라고 한다. 매표원은 좌석표를 내 주었다.깜짝 놀라 되돌아서서 좌석표도 있었느냐고 묻자 '네'라는 대답이 무심하게 들려왔다. 다시 좌석표로 바꾸려 했지만 줄을 지어 서 있는 뒷사람들에 밀려 행동에 나서지는 못하고 입석표 구입에 만족해야 했다.살다보면 이런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올해는 지방자치 일꾼을 뽑는 선거, 월드컵, 아시안게임, 대통령선거 등 큼직큼직한 행사들이 줄을 지어 있어 어떻게 지냈는지도 모르게 들떠서 지나가고 말 것이다.이런 속에서 작년에도 그랬으니까, 다른 사람도 그랬으니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관념에서 벗어나 좌석표가 있느냐고 물을 수 있는 꼼꼼함과 도전정신을 가지고 희망 찾기에 나서야 한다.국정홍보처가 얼마 전 전문조사기관에 의뢰해서 20세이상 성인 천 오 백 명을 대상으로 의식조사를 한 결과 정당-국회-검찰-경찰-대기업-공무원-법원-언론기관 순으로 불신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조직인 동시에 가장 공정하고 신뢰받아야할 조직들이 '불신 받는 집단' 선두(先頭)를 놓고 경쟁하고 있으니 우리 국민은 참으로 불행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불신 받고 있는 집단들이 우리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집단으로 뒤바뀌는 희망을 우리는 도전정신과 꼼꼼함으로 현실화 시켜야 한다. 아직도 현실은 희망을 찾기에는 답답하다.여론조사에서 가장 불신한다고 해놓고도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불신한다고 하는 기관에 잘 보이려고 노력한다. 아니 그곳에 밉보이면 끝장이라고 생각하는지 처절하게 노력한다. 그들이 있는 곳에는 사람이 모이고 그들이 식사하는 곳에는 누군가에 의해 계산이 마쳐져 있다. 그러니 그들은 무엇을 잘 못했고 왜 불신 받고 있는지 깨닫지를 못한다. 당연히 반성이니 불신이니 하는 말은 딴 세상 얘기가 되어 버린다.새해 각오가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주술에 걸려 벌써 해이해졌을 시점에 희망을 찾기 위해 다시 한 번 다져보면 어떨까 싶다.364일 정치개혁을 외치고 비판하다가 투표 당일 날은 고향사람, 동문, 친인척,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을 찍는다면 정치개혁은 요원할 것이다. 검찰, 경찰, 법원이 불신 받는 이유는 공평하지 못한 조사와 처벌에 있다 많은 서민들은 보복이 두려워 감히(?) 하소연하지도 못한다. 이제는 하소연해야 한다. 내가 하소연하면 다음 사람은 똑같이 억울한 일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렇게 작년까지는 아니 이제까지는 그냥 넘어갔던 일, 눈감고 우리지역사람 찍었던 일을 반복하지 않는 것, 그래서 새롭게 달라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앞사람 따라 입석만 외치는 사람은 여행기간 내내 서 있어야하고 혹시 빈자리가 생겨 앉으려해도 온갖 눈치가 보인다.꼼꼼하게 좌석을 챙긴 사람은 편안한 여행이 보장된다. 지방선거 한번 잘하면 4년이 편안하고 대선 한 번 잘하면 5년이 편할 뿐 아니라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민주화 과정을 계승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모두 공익적인 일에 한가지씩 실천항목을 정해 작은일부터 시작하자. 희망을 찾기 위해 도전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최형재 (전북시민운동연합 사무처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2.01.09 23:02

[새벽메아리] 2001 지역문화의 해를 마감하며

벌써 2001년의 끝에 서 있다. 하지만 2001년이 정부가 정한 '지역문화의 해'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얼마전 '지역문화의 해'를 결산하는 모임이 서울에서 있었다.이 자리에는 각 지역의 문화현장에서 활동하는 100여명의 문화활동가들과 담당 공무원들이 참석, 열띤 사례발표와 토론을 펼쳤는데 저마다 지역의 문화를 꽃피우는 일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토로하였다.인구가 적은 농촌지역에서는 전문 문화인력의 부족으로 담당 공무원 홀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업무의 과중함을, 또 농촌지역일수록 향토 유물이나 사적지가 많이 산재해 있는데 예산이 태부족한 탓에 기초적인 자료정리마저 하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을, 도시지역은 지역의 문화적 성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지역 축제들의 남발을, 또 지역의 대형문화행사에 '점령군'처럼 왔다가 갈등만 일으키고 돌아가는 서울 문화 전문가들의 오만함을, 또 지역주민들의 손에 의해 직접 만들어지는 지역문화에 대한 관의 소홀한 대우 등 수많은 문제들이 탁자위에 펼쳐졌다. 어느 것 하나 공감되지 않는 얘기가 없었으나 모두의 적극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바로 우리의 지역문화가 서울의 문화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특히 인천 등 수도권 지역과 부산 등 대도시 지역의 문화활동가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더욱 민감하였다. 사실 돌이켜보면 지역에서의 삶과 문화가 강력한 중앙집권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는 이미 우리의 자연스러운 삶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매일 저녁, 퇴근길 라디오를 통해 서울의 교통상황에 대해 소상히 듣는다. 전주에서, 그리고 각 지방에서 퇴근을 서두르는 우리가 왜 서울의 상세한 교통정보를 들어야만 하는가. 하지만 공공의 전파가 서울에 집중되는 이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당연한 일로 여겨지고 있다. 또 우리는 신문을 통해 서울에 있는 백화점들의 세일 광고를 흔히 접하게 된다. 또 사투리를 쓰면 촌놈 취급받기 일쑤이고, 학교에서는 기어이 서울의 보통사람을 기준으로 하는 이른바 표준말을 가르치고야 만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이 서울 사람들을 기준으로 통일되고 있는 판에 지역의 삶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문화가 온존할 수 있겠는가? 서울에서의 삶과 문화가 전국민의 표준적 삶과 문화로 인식되는 현실에서 지역의 특색을 보존하자는 노력은 자칫하면 시대착오적 발상이나 분열주의자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우리가 두발을 딛고 사는 지역은 각 지역마다 자연적 환경도, 그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도, 이웃과 맺는 공동체 네트워크의 규범도, 그 과정에서 축적된 역사와 문화도 서로 다르다. 따라서 어느 한 지역의 문화가 표준적 삶이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지역의 주민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서 스스로 이야기하고, 스스로 구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역문화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역문화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서로의 존재가치를 이해하게 된다. 이제 며칠후면 지역문화를 위해 정부가 주도하는 사업들은 종결되고 '지역문화의 해'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정부가 '지역문화의 해'를 선정하건 말건 지역문화는 이전에도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바람직한 지역문화를 위한 지역주민의 노력도 계속될 것이다. / 문윤걸 (문화평론가)

  • 오피니언
  • 기타
  • 2001.12.26 23:02

[새벽메아리] 디지털 시대의 명암

요즘 초등학교 다니는 딸 아이가 자주 부르는 디지몬 어드벤처라는 일본 애니메이션 노래를 듣다 보면 환상의 디지털세상 어쩌고 하는 부분이 나온다. 아이들 노랫말에 디지털 세상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게 신기해서 무슨 뜻인지 물어보니 고개를 가로 젓는다.하기야 디지털의 뜻을 알 리도 없겠지만 특별히 이해해야 할 어려울 말도 아닐 것이다. 이 세대들은 디지털 시대를 이미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많은 어른들이 디지털 시대에 대한 부적응에 따라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에 시달리고 있겠지만.디지털은 모든 현상을 0과 1의 숫자 조합으로 표현한다. 바늘 달린 시계가 아날로그 방식이라면 숫자로 표시되는 전자시계는 디지털 방식이다. 바늘 시계는 연속적인 초침의 움직임으로 시간을 표현하므로 시간을 물으면 몇 시쯤이다라고 답하겠지만 디지털시계는 몇 시 몇 분이라고 정확하게 답하게 된다. 이처럼 아날로그가 쯤, 가량 등 근사치를 표현하지만 디지털은 하나의 답을 제시한다.이런 디지털의 특성 때문에 우리는 애매모호한 것들을 보다 분명하게 구분 짓게 된다. 요즘이야 바늘이 돌아가면서 소리를 내는 LP음반을 듣는 사람이 별로 없겠지만 약간의 잡음도 포함하여 적당히 자연적인 소리를 만들어내는 LP에 비해 CD나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되는 MP3 음악은 어떤 이질적인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담고자 하는 소리만 실리게 된다.TV에도 고화질 쌍방향 디지털TV가 등장하여 바보상자의 오명을 벗으려 하고 촬영-현상-인화-스캐닝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필름 카메라 대신 한 번의 촬영으로 원하는 사진을 얻어내는 디지털카메라가 사진 애호가들에게 사랑을 받게 된 지 오래다. 디지털 정보기기의 등장으로 과거에 거대한 조직의 거대 시스템이 담당했던 업무를 한 사람이 개인 PC를 갖고도 거뜬히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책을 만들어낸다거나 비디오를 편집하는 일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손을 거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이런 디지털 세상의 변화의 중심에는 항상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전이 서있다. 정보기술과 통신기술의 발전이야말로 새로운 기술혁명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가 깊어갈수록 과거에 대한 향수도 깊어지고 그에 따라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시름도 깊어진다. 얼마 전 도장 새기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이 전자결재와 싸인문화의 유행으로 도장 새길 일감이 적어진 데 실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사실이 그랬을지는 모르지만 디지털 시대의 변화에 따라 몰락하는 분야가 분명 있으리라.한 때 이상주의자들이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를 갈망했듯 사람들은 인간의 얼굴을 가진 디지털 시대를 원하고 있는지 모른다.디지털 시대가 사람들에게 좀 더 빠르게 판단하고, 정확하게 행동할 것을 요구함에 따라 개인의 지적 능력의 차이에 따른 심각한 불균형이 발생하며 양극화가 심화된다.사람들은 디지털혁명이 가져다 주는 일상생활의 편리함과 시간, 비용의 절감 혜택을 누리는 한편 빛의 속도로 사고하고 행동할 것을 끊임없이 강요당한다. 이래서 우리는 편리하지만 편하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어찌하랴! 원고지에 직접 손으로 글을 써야만 좋은 글이 생각난다는 작가도 두 손가락 세워 두드려야 하는 자판에 항복한지 오래고, 잡음이 있어 오히려 좋다는 LP음반 애호가도 보관이 편리하고 깨끗한 음질을 유지하는 CD에 길들여진 지 오래다. 과거로 되돌아가기는 커녕,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조차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의 환상적인 디지털 세상의 찬미에 주눅들어야 하는 것을나도 가끔 탈출을 꿈꾸지만 겨우 잠시 도망갔다 되돌아올 뿐이다./ 김성주 (시민행동21 뉴미디어센터 소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1.12.19 23:02

[새벽메아리] 결식아동과 공적자금

달력이 달랑 한 장 남았다. 지갑의 두께도 한 장 달력만큼 얇다.지갑의 무게도 모르면서 여기저기서 송년 모임에 참석하라는 안내장은 계속된다. 연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해놓은 일없이 나이만 한 살 더 먹는구나 싶다.이렇게 다가오는 연말에 가슴을 저리는 소식이 들려온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대부분은 방학을 손꼽아 기다리는데 몇몇 아이들은 점심걱정 때문에 방학이 무섭다고 한다. 학교에 나갈때는 급식을 통해 점심은 해결되었는데 방학이 되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여러 단체들과 뜻 있는 개인들이 주머니를 털어 가며 노력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단다. 이웃돕기 성금을 모금하고 관리하고 배분하는 공동모금회에서 성금을 배분하는 심사위원으로 2년간 일한 적이 있다.이 때 가장 큰 고민은 한정된 예산때문에 수 백군데 사회복지 시설에서 올라온 사업계획을 다 지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금된 돈을 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해서 배분하는 것이 옳지만 한정된 예산이라는 굴레가 심사의 열정을 식게 했던 기억이 난다.사업계획서 대부분은 꼭 필요한 사업이고 또 지원이 없으면 하기 힘든 사업이다. 경노회관 보일러 설치, 재가 장애인을 위한 이동 목욕탕, 커 가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 가정 폭력을 당하는 여성들의 피난처.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보호 없이 내 팽 겨 쳐져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각양각색의 사업들이 제출된다.몇 백만 원만 지원해 주면 열과 성을 다해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결의가 계획서 곳곳에 베어있다. 사실 이런 문제는 공동모금회에서 해결할 일이 아니라 정부차원에서 사회 보장제도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이러한 지적에 정부의 대답은 "예산이 없다"는 것이다.공적 자금 횡령 뉴스를 들으며 정말 예산이 없어서 인지 정부가 돈을 잘못 써서인지 고민이 생긴다. 감사원 감사 결과 한 두 푼도 아니고 약 18조원의 공적 자금이 횡령되거나 부당 지출되었단다.약 6개월 정도에 걸쳐 진행한 감사에서 공적자금을 받은 금융기관의 임직원과 부실채권을 금융기관에 떠넘긴 부실기업의 소유주가 빼돌린 재산이 7조원이 넘고 정부가 판단 잘못으로 과다하게 투입한 공적 자금이 11조원이 넘는다는 것이다.경제 파탄을 수습한다는 명분으로 국민의 세금을 투입했는데 이 돈을 경제살리는데 사용한 것이 아니라 횡령이나 부당지원 이라니, 이것은 불법을 넘어 허리띠를 졸라맸던 국민에 대한 사기이고 모독이 아닐 수 없다.공적 자금 총액 150조원의 12%가 넘는 18조원의 돈이 부당하게 처리되었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 보이는 것도 또한 이해 할 수 없다. 공적 자금 18조원은 국민 1인당 40만원이 넘는 거액이다.아무튼 이렇게 엄청난 돈이 횡령되고 부당하게 지출되면서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걸 보면 예산이 없는 것은 아닌가 보다.큰돈은 물 쓰듯이 풍덩 풍덩 써대고, 꼭 필요한 정도를 넘어 생존에 필요한 돈은 예산이 없다고 하니 국민들은 분노를 넘어 좌절하게 되는 것이고 희망이 없어지는 것이다.예산이 없다며 고개를 가로 저을 일이 아니라 적절한 예산 배분을 통해 모든 국민이 고른 혜택을 보도록 국가 운영 전략을 다시 짜야 할 것이다.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안타까운 현상을 쓰게 되니 씁쓸하지만 한 장 남은 달력을 뜯어 낼 때 지금까지 잘못된 정책관행 등을 같이 뜯어내 버리고 새해에는 책임지는 정책을 통해 국민 모두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그려본다./ 최형재 (전주시민운동연합 사무처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1.12.12 23:02

[새벽메아리] 일 못하는 머슴이 주인 구박

쌀값하락으로 농민들의 위기의식이 고조되면서 연일 농민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전북지역의 경우 산지 쌀값이 지난해 보다 80Kg한가마당 약 2만원씩 하락해 쌀 위주의 농업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전북지역 농민들에게 급격한 소득감소를 가져왔다.더구나 WTO뉴라운드 협상에 따라 쌀전망이 불투명하고 가격도 해마다 하락할 것으로 예측하는 보고들이 속속 전해지면서 그야말로 농민들의 불안심리는 그 어느해 보다 심화되고 있다.이런 지경임에도 정부의 정책이나 관료들의 발언은 농민들의 요구나 농민단체의 정책대안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는데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따라서 쌀대란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여기서 우리 모두는 현사태의 본질을 짚어 봐야 한다. 우선 쌀문제의 대두가 정부나 관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농민들이 변해야 해결되는 문제이고 문제의 발단이 일부나마 농민들에게 있다는 것인지 냉철히 짚어야 한다. 필자는 이런 주장에 대해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다른 작목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농민들은 특유의 근면성실함으로 허리띠를 졸라메며 보릿고개를 이겨왔고 국민의 주식인 쌀을 자급했다. 쌀의 자급과 안정적인 생산 구축이야말로 국가적으로 가장 기초적인 목표였고 이 목표에 농민들은 너무나 충실했다. 농민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쌀자급을 이루는 것이었고 증산을 통해 국민에게 안정적인 식량을 공급하는 일이었다. 우리농민들은 이런 목표에 110% 초과 달성까지 했다. 생산은 농민들의 몫이었지만 쌀농업의 정책을 제시하고 가격을 지지하거나 소용돌이치는 국제협상에서 쌀을 지키는 일은 정부와 정치권, 관료와 국민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지금 대다수 국민들이 농민들의 노고를 인정하고 쌀을 지켜야 한다고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정치권, 관료들은 전면적인 시장개방에 내맡기려 하고 농민들이 알아서 경쟁력을 갖추라고 하고 있다. 이러니 요즘 농민들은 일 못하는 머슴이 주인을 구박하는 격이라고 말하고 있다. 최근에 발표한 정부정책이나 관료들의 발언은 쌀농업을 포기하는 것들이라는 농민들의 시각이 지배적이다. 갑자기 증산정책을 포기할 것처럼 하고 추곡수매가를 45%인하해야 한다고 하는가하면 WTO뉴라운드협상에서 쌀을 관세화해 수입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발표하는 것은 농민들의 사기를 꺽는 일이고 사대주의적 협상 자세를 견지하겠다는 것이다. 비료가격을 인상해 친환경농업을 유도하겠다는 발상도 현실을 도외시한 발표였다. 이제 쌀농업에 있어 더 이상의 정책혼선이나 실수는 쌀농업을 비롯해 우리농업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게 할 것이다. 따라서 국민적 힘을 결집해 쌀농업을 지킬 수 있는 구체적 대안들을 농민들과 함께 만들어야 한다. 먼저 올해 쌀값폭락에 대한 대책을 시급히 수립해야 한다. 농민들의 요구는 올해처럼 쌀값폭락이 계속되면 그 충격을 감당할 수 없어 쌀농업 포기로 직결될 위험이 있으므로 급격한 쌀값폭락을 막고 농가소득을 어느정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차액보전에 대해 중앙정부와 전북도가 매듭을 풀어 시군자치단체가 눈치보지 않고 차액보전을 하도록 해야 한다. 8%이상의 계절진폭 허용이나 공매중단 등도 받아들여 급격한 폭락을 막아내야 한다. 이런 조치들을 통해 현재 농민단체나 농협 등 농업계와 정부의 대립구도를 해소하고 범농업계가 국민적 힘을 결집해 WTO뉴라운드 협상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쌀재협상은 관세화 예외 조치를 인정받으면서 시장접근 물량을 UR협상처럼 4% 이내로 묶도록 확고한 협상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서 국내에서는 추곡수매 등 가격지지 기조를 유지하면서 축소되는 보조를 전액 소득지지로 흡수해 큰 틀에서 농가소득이 감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농가의 금리부담을 완화시키기 위해 모든 농업정책 자금의 금리를 3%이내 10년이상 장기 상환으로 하고 농협의 상호금융도 8% 이내로 묶는 과감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 김용호 (전농전북도연맹 의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1.12.05 23:02

[새벽메아리] 제기능 상실한 예술교육

내가 사는 아파트 주변에는 피아노 학원이 4개, 미술학원이 2개 있다. 그리고 집에서 개인 레슨을 하는 개인 선생님도 몇 분 있다. 또 가끔 베란다 밖을 내다보고 있노라면 무슨 학원, 무슨 교습소라는 활자를 크게 단 승합차들이 쉼없이 드나들며 제 몸뚱이보다도 더 큰 책가방을 든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태워 부지런히 떠나곤 한다.바야흐로 예술교육의 시대이다. 어느 집 아이건 음악학원이나 미술학원 하나쯤 다니지 않는 아이가 없다 하니 이 땅에 예술이 꽃피울 날도 멀지 않았나 보다는 기대를 할 법도 하다. 하지만 이런 기대가 무망한 것임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이 땅의 예술 교육 열풍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이런 열풍이 이 땅을 아름다운 예술이 숨쉬는 땅으로 만들지 못했음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예술 교육은 근본적으로 아름다움에 대한 교육이다. 무엇이 아름다운 것이며, 아름다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이해함으로써 그 삶이 늘 아름답기를 기대하는 것이 예술 교육의 목적일 것이다.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탐욕으로 물든 인간성이 극에 달해 있는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아름다움에 대해 갈망하고 아름다움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야말로 그 얼마나 아름다운것인가? 이런 노력이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그러나 오늘의 예술교육이 이런 희망을 실현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할 수 없다. 무엇이 예술교육을 이렇게 허망한 것으로 만들었을까? 우리의 예술 교육은 더 이상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교육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데 그 원인이 있다.언젠가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한 선생님의 고민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아는 한 매우 훌륭한 교육관을 가진 그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손가락 테크닉만을 강조하다 보면 아이들은 금세 싫증을 느끼고 결국은 음악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자신을 피곤하게 하는 매우 귀찮은 것으로 여기고 만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런 저런 재미나는 음악이야기를 들려주고, 가끔은 피아노 대신 다른 음악놀이도 하다 보니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은 대부분 교육 진도가 느리다고 말한다. 그런데 학부형들은 다른 학원에서 레슨받는 아이들에 비해 우리 아이는 왜 진도가 더디냐하면서 항의하기 일쑤란다. 그래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토로하였다. 또 어떤 경우는 이제 아이가 피아노에 막 재미를 붙여 가는가 싶으면 학부형이 요즘은 악기를 두 개는 해야 된다는데...라며 상담을 해온다고 한다. 그럴 때면 음악은 즐기는 것이지 과시하거나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쏘아붙이고 싶지만 그러질 못한다며 자책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예술교육을 받는 자녀가 예술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 되길 기대하면서도 그것의 척도를 자녀가 어떤 기량을 얼마나 잘 습득했는가로 삼고 있다. 체르니 30번을 배우는 아이가 바이엘 상권을 배우는 아이보다 훨씬 더 예술적 아름다움을 즐기며 이해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다 보니 예술교육도 예술적 기량의 습득을 다루는 스피드 경쟁이 되고 있다. 이런 부모의 과도한 조급함과 과시욕, 그리고 괜한 이웃 아이와의 경쟁심리가 아이들에게 예술을 즐기며 사랑하게 하지 못하고 예술 교육을 또 하나의 지겨운 과외공부로 만들고 있다.현대사회에서 예술이 갖는 기능은 매우 중요하다.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그것을 사랑하며 즐기는 사람들의 사회, 이런 사회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예술 교육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문윤걸 (문화비평가)

  • 오피니언
  • 기타
  • 2001.11.28 23:02

[새벽메아리] 조폭과 감동의 미학

영화 친구의 대성공에 이어 조폭마누라가 깡패 직업(?)을 가진 여자 주인공을 내세워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였다. 내친 김에 조폭 소재의 영화는 학교(화산고)로 사찰(달마야 놀자)로 장소를 옮겨가며 극장가를 달구고 있다.이들 영화들은 우리 사회의 극소수이자 암적인 존재라 할 조폭들을 양지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것에 고무되었을까? 정치권에 피어오르는 때아닌 조폭 연계 의혹이 신문에 오르내린다.친구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사람이 꽤 많다. 특히 장동건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말이다.사람들은 왜 조폭영화에 몰리는가? 사람들은 왜 폭력에 열광하고 싸움을 말리기보다 싸움 그 자체에 구경꾼으로 몰려드는가?영화는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볼 때 조폭 친구가 하나도 없는 나는 조폭 소재 영화에 사람이 몰리는 것을 의아해하지만 주변에서는 조폭적 행태를 흔하게 목격하게 된다.혹자는 영화는 특이한 것을 다루어야 대중의 관심을 끈다고 하지만 우리에게 특이하다고 할 이란과 인도의 영화가 별 인기가 없는 걸 보면 이건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은 오히려 영화에서 자기와 비슷한 것, 자기 사는 시대의 모습을 보면서 공감하는 것이다.시선을 돌려보자지난 보궐선거를 앞두고 신문과 방송들은 앞다투어 각종 의혹사건을 둘러싼 여야 대변인 설전을 머리기사로 장식했다. 폭로전에 가세하여 한 건 올린 의원에게는 기자들이 몰려들고 마땅히 선거의 뜨거운 이슈가 되어야 할 어려운 경제 문제와 각종 정책 현안들에 대한 해법을 내놓는 정치인은 찾아볼 수 없고 설사 거론한다 하더라도 카메라 세례를 받지 못한다.언론은 가십거리를 키우고 확인되지 않은 것을 기사화하는데 열을 올리고 문제가 생기면 아니면 말고 해버리면 그만이다. 연일 벌어지는 난장판이라고 할 만한 권력 쟁탈전, 여기에 끼어 함께 가는 세력들우리는 이렇게 조폭적 행태가 관심을 끄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그럼 진짜 감동은 어디에서?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은 맑은 가을하늘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는 한 순수한 인간의 영혼이 518 광주 진압군 가해자로, 잔혹한 정보과 형사로 변신해가면서 파멸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나간다. 바람난 아내, 배신한 동업자 친구, 그를 파산으로 내몬 주식투로 만신창이간 된 주인공에게 돌아가고 싶은 과거는 더 이상 없으며 그에게 남은 선택은 맑은 가을하늘을 바라보며 철길에서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이다. 좀체 화면을 보면서 감동을 느껴 보지 못한 나는 설경구가 수배학생을 잡기 위해 잠복한 군산의 어느 허름한 까페 여인과 하룻밤을 지내는 장면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이 영화는 많은 평단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을 모으는 데는 실패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조폭마누라가 15세 관람가인데 비해 박하사탕은 18세 관람가였다는 것이다. 깡패영화는 봐도 괜찮고 리얼리즘에 입각한 진지한 영화는 청소년들에게 맞지 않다는 훌륭하신 어르신들의 판단이다.TV가요순위 프로그램은 앞으로 엎어졌다 뒤로 넘어졌다 하는 10대 댄스가수들이 점령한지 오래이며 무대에는 현란한 반주에 맞춰 입만 벙긋하는 붕어가수들이 판을 친다. 아이들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어른들은 아이들이 버릇이 없어졌다고 혀를 찬다.나는 할리우드 영화 모두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할리우드에는 훌륭한 영화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들 눈 앞에는 흥행을 앞세운 저급영화들만이 즐비하며 이것을 모방하는 한국영화들이 뒤를 잇는다.감동을 권하지 않는 사회, 감동을 엉뚱한 곳에서 느끼는 사람들 속에서 오늘도 감동을 찾기 위해 헤맨다.오늘 하루 생활에서 감동을 맛보지 못한 나는, 늦은 밤 케이블TV 채널을 하릴없이 이리저리 돌려보다 끝내 마땅한 감동꺼리를 못 찾고 잠자리에 든다./ 김성주 (시민행동21 뉴미디어센터소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1.11.21 23:02

[새벽메아리]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성철 스님이 종정에 추대된 후 최초의 법문이 최근 언론에 재인용되어 관심 있게 읽었다. 필자는 불교에 대해서는 성철스님 이름 정도나 알 정도로 문외한이지만, 그 분의 질책에 대해 공감하는 바가 많았다. "부처님을 팔아 자기의 생계수단으로 삼는 사람은 부처님 제자도 아니요, 승려도 아니요, 다 도둑이다"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불법(佛法) 만나기 어렵다. 그럼에도 다행히 사람 몸 받고 승려 되었으니 중생제도는 못할망정 도둑이 되어서야 되겠나, 만약 부처님을 팔아서 먹고사는 그 사람을 도적이다 한다면 그런 사람이 사는 처소는 도둑의 소굴이다 할 것이다""우리자신이 도둑 되는 것은 나의 업이라 지옥에 간다 할지라도 달게 받겠지만 부처님까지 도둑 앞잡이로 만들면 안 된다"물론 이 법문이 공개되자 전국의 주지로부터 항의가 빗발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벌써 몇 십년 전 얘기이니 이제는 과거 일이고 지금은 모든 승려들이 중생구도에 전념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속세 즉 대다수 국민들이 사는 현실이 어떠한 가이다. 내각제가 소신이라며 어떤 위협에도 맞서 싸우겠다던 두 명의 의원이 슬그머니 대통령제가 당 강령인 정당에 한마디 과정 설명 없이 입당하는 모습에서 우리 국민들은 무엇을 배우고 있을 것인가?대통령의 아들이 우연이지만 검찰의 고위 간부와 조폭 두목과 한 자리에서 휴가를 보낸다면 우리 현실에서 도대체 어느 검찰이 조폭을 재량 껏 수사할 할 수 있단 말인가?보궐선거 직전에는 총재가 앞장서서 여당이 모든 악의 근원인양 공격하더니 선거 결과가 좋게 나오니 모든 걸 용서한 듯, 이제는 민생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면서 의혹을 제기하던 사안에 대해 한마디 설명도 없으니 정의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울 뿐이다.사람 몸 얻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렵듯이 사람으로 태어나 나라 일까지 맡은 것은 고맙고 분에 겨운 일임에도, 너무나도 실망스러운 모습만을 보여주는 정치권에서 한번쯤은 되새겨 보아야할 큰스님의 질책이 아닌가 싶다.주술에라도 걸린 양 경제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신념으로 국민들을 희생하고 있는데 경제인들은 기술개발이나 혁신에는 관심 없고 탈세나 돈 빼 돌리는 데나 관심 갖지 않았는지 뒤돌아보아야 한다. 기사로써 말 해야할 언론인들은 기사보다는 또 다른 능력으로 자신의 권한을 확대하지 않았는지, 강한 자에 약하고 약한 자에 강한 것이 관행이 되어온 사정기관들은 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많은 문제에 의견을 내고 있는 시민단체들도 내실이 갖추어졌는지 점검해볼 일이다. 어떤 조직에 속하든 어떤 역할을 하던 그 조직의 목적과 기능에 충실하지 않고 이익에 관심을 갖는 다면, 부처나 팔아서 먹고사는 사람들이 있는 곳을 도둑의 소굴이라 했듯이 그 사람들이 속해 있는 조직은 국민의 눈에 도둑의 소굴로 보일 것이다. 국민들의 이런 불신에 힘있는 사람들은 온갖 감언이설로 변명하고 설득하려 한다. 그러나 국민들 믿고 주요한 직책을 맡겼더니 국민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만 챙긴다면 어찌 되겠는가? 자신의 이익 챙기기다가 잘못되면 자신의 업이라 책임지면 되겠지만 믿고 맡긴 국민들은 처지는 어떻게 될 것인가?국민에게 한 번 신뢰를 잃으면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성철스님의 질책이 아니더라도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에 고마워하면서 더욱 욕심을 내는 것보다 역할의 기능에 충실할 때 정상적인 사회가 만들어 질 것이다. / 최형재 (전북시민운동연합 사무처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1.11.14 23:02

[새벽메아리] 쌀, 모두가 함께 지켜야할 몫

쌀 때문에 전국이 난리다. 농민들은 쌀 생산비를 요구하며 나락을 야적하고 농성과 집회를 연이어 벌이고 있으나, 정부와 농협중앙회는 특별한 대책 없이 뒷짐만 지고 수수방관하며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지역 농협과 지자체가 나서서 농민들이 요구하는 가격을 일부 보전해주고는 있으나 이는 농협의 자체매입물량에 한정되어 있어 나머지 물량을 팔지 못하고 있는 농민들의 한숨이 여간 힘겨워 보이질 않는다. 몇 차례 정부가 대책을 내놓았으나 현재 산지 쌀값은 오히려 작년보다. 1만5천원에서 2만원 가까이 떨어진 14만원선에서 거래가 되고 있는 실정이니 연말에 갚아야 할 각 종 자금의 원금과 이자를 제대로 갚을 수 있을지 그저 막막하기만 할 따름이다.농사꾼의 한사람으로서 쌀값 몇 푼이 문제가 아니라 5천년 동안 이 민족을 지켜온 쌀이 무시당하고 푸대접 당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밥은 하늘이라 했건만 요즘에야 어디 쌀이 하늘 대접을 받는가? 배고픈 시절에야 정말 쌀 한 톨도 하늘같이 여겼건만 먹을 것이 풍부한 요즘에야 밥보다 인스턴트 식품을 더욱 선호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정부에서도 이제는 값이 싼 외국의 쌀로 대체하고 그 대신 공산품 수출을 늘리는 것이 더 경제적으로 이익이라는 단세포적인 정책으로 농민과 국민을 현혹하려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현재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도 꼼꼼히 살펴보면 결국 쌀값을 더욱 떨어뜨려 경쟁력(정말 표현하기 싫은 말이지만) 없는 농민들은 쌀농사를 포기하고, 그대신 쌀시장 개방을 수용하여 공산품 수출을 늘려보자는 것 아닌가? 그러나 세상 어디에 자기나라 국민의 식량을 남의 손에 의존하려는 나라가 있는가? 쌀은 경쟁력을 떠나서 이 민족의 주권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보루가 아닌가? 더구나 쌀 농사를 통한 홍수예방과 환경보전 기능 등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연 간 11조 3천억 원이 넘는다는데 결국 그만큼의 국민의 세금부담을 대신 지고 있는 우리농업에 대해 국민 모두가 이해를 같이해야 하지 않을까쌀 생산비를 보장해 달라는 농민들의 절절한 울부짖음을 집단이기주의 쯤으로 보아서는 안된다.쌀농사의 포기는 연이어 우리 농업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우리 민족의 식량주권을 남의 나라 손에 넘겨주는 무서운 재앙을 예고하는 것이다. 우리의 식량생산 기반이 무너진다면 미국을 비롯한 농산물 수출국들은 식량을 무기로 우리의 경제와 주권을 통째로 먹으려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쌀을 비교우위에 입각한 경제적 논리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정부는 쌀값을 시장기능에 맡기겠다는 발상을 버리고 식량자급을 위한 장기적(통일까지도 고려한) 생산기반 확보와 쌀 수급대책을 마련하고 쌀 생산농가의 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확실한 정책을 내와야 한다. 아울러 쌀을 지키려는 노력은 농민들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여기에는 식량에 대한 중요성과 농민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전체 국민이 함께 노력할 때만이 우리의 쌀을 지켜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김용호 (전국농민회 전북도연맹의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1.11.07 23:02

[새벽메아리] 같으면서도 다른말, 아내의 '이혼' 남편의 '이혼'

다음은 얼마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TV 일일드라마의 한 장면이다.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남편, 경제적 수입도 충분하고, 아내에게 늘 존대말을 하는 등 매사에 가정적이어서 가장으로, 그리고 남편으로 모범적인 한 남자와 귀엽고 상냥하며 남편과 자녀들에게 예쁘게 어리광을 부리는, 약간은 푼수끼를 갖고 있는 아내(모든 TV 드라마에서 완벽한 남편의 아내는 늘 순진한, 그러나 푼수끼 다분한 여성이 아내로 등장한다).이들이 부부싸움을 하고 있다. 누구나 원하는 이상적인 가정을 이룬 두 사람인 만큼 이 싸움의 결과가 어찌 될지 시청자들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지만 그래도 제법 긴장과 갈등을 고조하고 있다. 마침내 이들 부부는 서로에게 이혼을 선언했다.아내는 남편에게, 그리고 남편은 아내에게 각각 이혼을 거론하며 상대를 몰아세우는데 이들이 정말 이혼을 하리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이들은 정말로 이혼하겠다는 생각보다 '이혼'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각자의 요구사항을 상대방에게 전달한 것이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이들이 상대에게 전달하려는 의사는 무엇이며 어떤 결과를 바라고 있을까?먼저, 아내의 경우를 짐작해보자. 아내는 남편에게 '이혼하자'라는 말을 통하여 남편에게 자신이 무척 화가 나 있음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일게다. 그리고 남편이 자신의 화났음을 이해하고 달래주기를 원하고 있다. 왜냐하면 남편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과 헤어지고 싶지 않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결국 아내는 '이혼'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남편이 자신을 여전히 사랑한다는 사실을 확인받는 것이 목적이다.그렇다면 남편의 경우는 어떠한가? 남편 역시 진정으로 이혼을 원한다기 보다는 자신이 화가 나 있음을 아내에게 전달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이 사용하는 '이혼'이라는 단어는 아내에게는 협박과 위협으로 작용한다. 특히 직업을 가진 아내보다는 전업 주부인 아내에게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남편의 '이혼하자'는 아내를 확실하게 지배하고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사랑의 확인보다는 아내의 복종을 얻어내려는 행동이 된다.이러한 해석이 지나친 것이라 믿는다면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자. 만약 남편과 아내가 이혼을 하게 된다면 두 사람은 무엇을 잃게 되는가? 먼저 두 사람 모두 자신에게 정서적 안정을 제공해주던 가정을 잃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남편의 경우 사회적 명예나 자존심이 약간 훼손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아내의 경우는 어떠한가? 사회경제적 활동에의 참여가 원천적으로 봉쇄된 아내는 그동안 남편의 사회경제적 활동에 의존하여 누려 왔던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지위를 동시에 잃게 되며 이혼녀라는 이름에 따르는 사회의 싸늘한 편견에 시달려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이혼은 여성에게는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다. 따라서 부부싸움 중에 서로에게 내뱉듯 사용하는 '이혼'이라는 단어는 그 의미가 같으면서도 매우 다른, 사회적 의미를 포괄하고 있으며 우리 사회가 얼마나 여성에게는 불리한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문윤걸 (문화비평가.문화저널편집위원)

  • 오피니언
  • 기타
  • 2001.10.31 23:02

[새벽메아리] 다시 美國을 생각한다

이번 미국 비행기 자살 테러를 TV로 지켜본 사람들은 항상 과장이 넘쳐나는 헐리웃 영화 속 픽션보다 더 충격적인 현실의 광경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위급한 순간에 테러범을 제압하는 주인공들이 나오는 영화와 달리 현실에선 영웅도 나오지 않는다. 한 편에선 영화가 테러범들을 가르쳤다는 소리가 나오지만 그것은 폭력 비디오가 폭력배들을 낳았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자본에 의한 세계화를 상징하는 뉴욕의 국제무역센터빌딩과 군사 심장부 워싱턴 국방성이 공격 당한 것은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대한 정면 공격으로 보인다.테러 직후 부시 대통령은 미국의 자유가 공격당했다. 위대한 미국을 위해 싸우자'면서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밝은 자유와 기회의 빛이어서 공격의 목표가 됐다고 주장했다.미국은 아프칸에 대한 폭격을 개시하면서 테러에 대한 21세기 새로운 전쟁을 선포하였다.전쟁은 갑자기 시작되지 않는다.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 패배로 인도차이나에서의 식민지배를 포기한 프랑스를 대신하여 그 자리를 물려받은 미국은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분할된 남베트남에서 고딘디엠을 내세워 친미반공정권을 세운다. 북베트남의 세력 확장에 시달려오던 미국은 1964년 미군함 매독스호가 북베트남으로부터 공격받은 통킹만 사건이후 들끓는 여론을 바탕으로 이듬해인 65년 북베트남에 대한 전면 폭격을 실시하고 본격적으로 베트남전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 전쟁에서 미국은 태평양전쟁때보다 더 많은 900만톤의 폭탄을 작은 나라 베트남에 퍼붓고도 가장 쓰라린 패배를 맛보게 된다.20세기 미국의 가장 강력한 적이었던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몰락한 이후 미국은 새로운 전쟁에 직면하고 있다. 이번 전쟁은 미국이 자국 영토 밖에서 치러왔던 20세기 전쟁들과 달리 미본토 심장부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번 사태로 미국인이 겪는 공포는 역사상 처음 있는 것이다. 전쟁이 단지 버튼 누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 위로 떨어지는 폭탄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아무 죄 없이 죽어가는 민간인이 얼마나 불쌍한지 깨닫게 될 것이다.미국은 보복 공격을 하기 전에 증오로 가득 찬 자살 테러가 왜 미국인에게 자행되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지금 미국이 겪고 있는 고통은 과거 80년 동안 이슬람이 겪은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는 라덴의 주장과 쿠웨이트를 침공한 대가로 엄청난 보복 공격을 당해 수십만의 어린이들이 굶거나 병들어 죽어가는 불량국가 이라크 사람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이해하지 않는다면 대답은 항상 전쟁일 것이다 미국은 과거 베트남전에서 5만명의 미국 병사들을 잃고 나서야 그 전쟁에서 손을 뗐다. 이제 머나먼 이국 땅이 아닌 본토 심장부에서 수천 명의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된 이번 테러에 대한 대응에서 미국은 과거로부터 소중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테러는 단지 공포를 낳음으로써 상대방을 일시적으로 위축시킬 뿐이다. 공포는 신념에 입각한 진정한 용기에는 효과가 없다. 한국에서의 공포정치도 수많은 용기 앞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상상을 초월하는 테러에 대항해 전쟁 수준의 보복을 가하는 것은 또 다른 참혹한 테러를 불러올 뿐, 테러의 원인 제거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미국의 세계 전략에 따른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과 아랍세계에 대한 적대 정책이 포기되지 않는 한 어떤 보복 폭격도 새로운 테러를 막지 못할 것이다.미국 지도자들이 이것을 깨닫고 진정한 평화를 얻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김성주 (시민행동21 뉴미디어센터 소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1.10.17 23:02

[새벽메아리] 적조 녹조 그리고 정치환경

바닷물과 저수지 등에서 조류의 이상증식에 의한 물빛의 변화가 해당증식 조류의 체색을 따서 붉으냐, 푸르냐에 따라 적조나 녹조라고 한다.지난여름 적조는 남해안 여수 일대에서 발생해 부산을 거쳐 동해쪽으로 이동해 강릉까지 북상해 적조주의보를 발령하는 등 법석을 떨었지만 수산업에 엄청난 피해를 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전북도민의 식수원인 용담댐은 담수가 이루어진지 채 1년도 안된 지금, 녹조현상으로 도민의 가슴을 조아리게 하고 있다.기본적으로 적조, 녹조현상은 생물들이 변화된 환경에 맞춰 반응하는 현상으로 자연현상이다. 문제는 변화된 환경을 인간이 제공한다는 점이다. 적조, 녹조 피해가 발생하면 양식장 등의 피해가 금액으로 환산되어 보도되기 때문에 적조가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자연의 폭력으로 인식되기 쉽지만 인재의 혐의가 더 크다. 인과 질소 등 육지의 하수나 쓰레기에서 나온 영양염류가 정화 처리되지 않고 저수지 나 바다로 흘러들 경우 이들 영양물질들로 물이 부영영화 되어 플랑크톤 번식의 한 조건인 풍부한 먹이를 제공하게 되는데, 이 원인을 인간이 제공하고 있다. 이것이 해수 온도 상승 시점과 만나면 적조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뒤늦게 황토살균, 전해수-황토살균 등 부산을 떨지만 이는 효과적인 제거방법이 아니며, 적조나 녹조가 발생되지 않도록 육지에서 환경오염을 얼마나 줄이는가가 중요한 변수이다. 즉 과도한 비료사용과 농약살포, 정화되지 않은 생활하수와 공장폐수를 얼마나 육지에서 효과적으로 처리하느냐에 따라 적조 발생은 좌우되는 것이다. 적조나 녹조 못지 않게 우리 국민들의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것은 정치에서 나타나는 적조현상이다. 들려보는 소식마다 푹음 다음날 속 쓰리고 머리 아픈 듯한 느낌이다. 역할이 끝났고, 또 끝나야할 YS와 JP는 심야에 만나 국민은 안중에 없고, 둘만을 위한 진로를 논의했다는 소식이 그렇다. 언론사 세무조사를 서슬 퍼렇게 이끌었던 국세청장이 비리의혹으로 장관직에서 물러나고, 국세청에서 고발 내용을 공명정대하게 수사해야할 검찰은 위아래를 막론하고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민생법안을 처리해야 할 국회는 과거의 비디오 테이프를 틀어 놓듯 여전히 정쟁만 일삼고 있다. 오늘의 정치환경에 우리 국민은 육지와 바다에서 동시에 적조와 녹조를 겪고 있는 느낌이다. 지난해 국민의 지지속에 진행된 총선연대의 낙선운동은 불법판정을 받고, 제도를 바꾸라고 요구하면 여야의 당리당략에 막히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오염된 정치환경에 황토살균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무릇 모든 결과는 원인이 있다. 정치환경 오염에도 반드시 원인이 있을 것이다. 색깔만 보고 찍었거나, 과대 포장된 홍보에 속아 찍었거나, 출신지역, 학교, 혈연에 의해 자기이익만을 고려해 투표한 결과가 정치오염의 원인이 아닐까?별생각 없이 버렸던 하수와 폐수가 적조의 원인이 되듯, 신중한 판단 없는 선택은 오염된 정치권만을 양산할 것이다. / 최형재 (전북시민운동연합 사무처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1.10.10 23:02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