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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 두드리며밤새술 한 잔 따르고 받고동트는 아침보글보글북엇국 익는 소리후루루한 수저 뜨고서랍에 넣어 두고백 일 뒤 꺼내어다시 간 보는말간 시 한 줄△한 편의 시는 시인의 고통으로 피어난다. 온몸의 전율로 원고지를 메꾼다. 내면의 아픔으로 시를 세상에 내놓는다. 매를 맞는 명태를 생각한다. 술 맛과 북엇국 맛을 위하여 명태는 얼마나 몸을 뒤틀고 있을까? 백 일 뒤 원고지에서 추락하지 않기 위하여 시는 서로를 부둥켜 안고 있을거다. 서랍으로 들어갈 시에게 술 한 잔 권하고싶다. 시인이 완성된 시를 읽고 무릎을 칠 때 명태의 상처는 화들짝 꽃으로 피어나리라. 이소애 시인
물빛은 무슨 색일까하늘 아래 물은 하늘색이고산 아래 물은 산색이네들 아래 물은 들색이고나무 아래 물은 나무색인데임의 마음 비춘 물은 무슨 색일까강물은 대답 대신 물안개만 피우네△두 손 오므려 전주천 강물을 가득 떠서 해당화 꽃잎에 적셔 보았다. 다홍색으로 물빛은 옷을 입는다. 찔레꽃은 하얀 물빛이다. 만일, 만일 내 마음이 붉은 표정이라면 물빛은 나의 존재를 무지개 색깔로 비출 것이다. 행복하니까. 사랑이 식을 때 무지개는 어떤 색을 마지막으로 간직하고있을까? 슬픔과 기쁨을 모두 껴안아 줄 포근한 물빛이면 좋겠다. 이소애 시인
커다란 종이컵에 그리움을 가득 담아정겨운 얼굴을 기다린다.풍경을 그려가는 시침은 돌아가고눈길은 출입문으로두 손은 찻잔으로지친 시간을 마시려는데뭇 시선들이 따갑구나.그리움에 그려진 목소리란커피 잔이 텅 빈 이런 맛이던가.△시를 읽다가 눈과 가슴이 막막해진다. 광활한 벌판에서 나 혼자 터벅터벅 걸을 때처럼 공허하다. 커피 잔에 일렁이는 그리움은 작은 폭풍이리라. 기다리는 사람의 목소리와 얼굴과 옛 추억이 출입문을 드나드는 시선을 따갑게 만든다. 기다리면 오는걸까? 밤새도록 기다리면 그리움이 채워지는 사람일까? 울컥 치밀어 오르는 그리움을 잊어 본다. 이소애 시인
철길에 폭우가 쏟아지면열차는 잠수함이 된다역은 섬처럼 아득히 떠 있고세상의 모든 철길은 지워져 버리지만내게 늘 종착역이었던 그대아무 것도 갖지 못한 중량으로도다만 사랑만 싣고촉수로만 더듬어 그대에게 간다사랑에도 비가 필요하다△아무렴요. 사랑에 비가 필요하구말구요. 폭우는 폭우대로, 실비는 실비대로 사랑까지의 아득한 거리를 단번에 건너가게 하는 힘이 있지요. 폭우 쏟아지는 철길을 은밀한 촉수로 더듬어 나가는 기차의 방향계가 가늘게 떨리는 건 무뚝뚝한 기관사가 슬며시 추억의 깊은 주머니 속을 더듬기 때문이겠지요. 김제김영 시인
씨앗이 싹을 틔우기 전뿌리는 껍질을 뚫고 나와 처음하늘과 맞절을 한다금강 발원지 봉황이 떴다는뜬봉샘 아래 물뿌랭이 마을금강을 도도하게 꽃피우고 살찌운물 뿌리가이 마을 뒷산에 박혀 있다살아서 죽고죽어서 살은물뿌랭이 마을에서세상 모든 것의 처음을 생각한다△물의 뿌리가 뒷산에서 선정에 들었다. 봉황이 물고 날아오른 물 뿌리의 궤적은 굽이굽이 강물이 되어 흘렀다. 강을 따라 싹이 트고 싹이 열매를 데려오고, 열매는 온 산하를 살찌우고, 다시 뿌리로 돌아갔으리라. 뿌리 아래 가난한 마을도 봉황이 첫 날개 치는 소리에 첫새벽이 설레었으리라. ·김제김영 시인
△나도 무섭다, 목숨을 아끼지 않고 피어 난 시들을 감상하는 일이.행여 잘못 읽었을 까, 행여 본령을 벗어났을까, 행여 알곡은 버리고 쭉정이만 담아냈을까, 늘 서성인다. 아름답지만 무서운 시 앞에서. 김제김영 시인한겨울 꽁꽁 언 땅 속에서인고를 거듭하다봄에 싹을 틔워 피는 꽃이다땅 속 깊이 숨어애벌레로 번데기로껍질을 몇 번씩 벗어던지는호랑나비다파도가 수만 번 갈고 닦아형형색색 빛을 내는 조약돌이다잔잔한 가지 끝을 희롱하는 바람이다탐욕의 과시를 제거하는 살인자이다시는 아름답지만 때로 무섭다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던수많은 시들이 그랬듯이△나도 무섭다, 목숨을 아끼지 않고 피어 난 시들을 감상하는 일이.행여 잘못 읽었을 까, 행여 본령을 벗어났을까, 행여 알곡은 버리고 쭉정이만 담아냈을까, 늘 서성인다. 아름답지만 무서운 시 앞에서. 김제김영 시인
뒤안길 장독대에정화수 떠놓고연신 허리를 굽혀가며 두 손으로달빛을 둥글게 비벼 내렸다굽은 허리 펴지 못할 때쯤무뎌진 어머니 손독방에서 홀로퍼렇게 녹이 슬었다△어머니 입원하신 후에야 작고 낮은 책상 위에 너덜거리는 성경책 보았다. 그 옆에 구불구불한 글씨로 성경을 베끼던 공책을 보았다. 볼펜 잉크는 여기저기서 파랗게 번지고 있었고, 어머니도 홀로 퍼렇게 녹이 슬어 이제는 거동이 힘들게 되었다. 평생을 비손해 내린 달빛이 창호문 밖에서 글썽거리는 밤이었다. 김제김영 시인
꽃 속에 앉아빗질 자국 가지런한 내 몸에 이슬비가 놀러 오면 먼 나라의몸피 하얀 자작나무 이야기를 졸라야지나는 괜히 눈가가 촉촉해질 거야물푸레나무를 푸르게 받아쓰는시냇물도 아는 체 해야지부엌으로 가서 노을 같은 꽃잎두어 개를 느긋하게 구워양떼구름에게도 하나 건네줘야지우편배달원 나비가 암술에게때를 알려주면얼른 꽃잎 대문 지그려주고나도 씨방에 들어가 자올자올공짜로 잠들어야지△‘씨방에 들어가 자올자올/ 공짜로 잠들어야지’ 꽃 속에 공짜로 잠드는 이는 누구일까? 빗질 자국 가지런한 화자의 몸에 이슬비가 되어 놀러가고 싶다. 시냇물도 양떼구름에게도 화자의 마음을 건네 줄 우편배달원이 될까보다. 꽃잎 대문 지그려줄 시인을 불러 본다. 눈가가 촉촉해지도록 꽃 속에 앉아서 불러보련다. 이소애 시인
새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꽃봉오리가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언 땅을 뚫고 나오는 저 생명의 소리를 들어보라!자연은 어김이 없다자연은 거짓이 없다자연은 순리이고 섭리이다자연은 생명의 순환이고 우주의 질서이다봄은 어머니의 산고를 치른 인내 속에서새 생명의 탄생과 성장,또 다른 세계로의 죽음을 잉태한다달라진 바람의 기운 따뜻한 햇볕의 내림아!나에게 인도할 새로운 세계가 어떨는지?새벽에 잠 못 이루고 그리운 임에게봄소식 띄워본다.△봄이 오는 소리를 들어 보았는가. 없는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소리는 어떻게 가슴을 파고들까. 잠 못 이루고 임께 봄소식을 띄우는 소리는 그리움의 파장이다. 울림이다. 생각의 파도를 넘나들며 슬픔과 고통은 우주의 질서에 순명한다. 누군가에게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를 오선지에 담아 보내고 싶은 봄이 설렌다. 이소애 시인
온 천지에 비단 깔고무슨 생각을마른 가슴에 불 지르나얼핏 내미는 속살을 보면 순정 싱그러이 울렁거리네.향기 내뱉는 풋사랑아어쩌자고 한꺼번에 다 주려하나못다 피면 한이 되고 끊자니 연이 너무 깊구나 아서라 못 참겠다 너에게 빠져 죽어도 좋다미치겠다 이 절서야.△ ‘순정’이라는 두 글자에 내 마음도 울렁거린다. ‘풋사랑’이라니요. 마른 가슴에 불 지르는 봄이 휘어진 등뼈를 곧추세우는구나. 들뜬 사랑이면 어쩌랴. 봄이 살랑살랑 나를 꼬드기니 진달래꽃물에 입술이 빨개지도록 질서를 무너뜨리고 싶다, 인연이 너무 깊어 참지 못하는 그리움 하나. 봄인 거지. 이소애 시인
때죽나무 꽃들을 보라꽃이 얼굴을 돌려 표정을 잡는 것은계절 뒤에 매달릴 열매의 방향이다겸손 아니다하늘을 향한 해바라기 씨앗 하나하나 태양의 태를 품을 것이다꽃이 그 봉오리를 세울 때밤 깊도록 수런거리는 소리는열매의 내일이다화려한 자태와 향기순간아니다생애 단 한 번 피워 올리는 평생의 사랑이 한 송이 꽃의 표정이다.△‘씨앗 하나하나 태양의 태를 품을 것이다’라는 시어에 숨이 잠시 멈춘다. 그리고 나 혼자만의 기쁨에 무릎을 친다. 시를 접하는 자만이 누리는 행복이다. 한 송이 꽃은 평생의 사랑이 스민 화려한 자태라고 하니, 눈 딱 감고 꽃에 대한 오해를 풀기로 한다. 아파트 숲을 비집고 노랗게 핀 산수유. 빨간 열매를 상상하며 꽃에 대한 표정을 잡아본다. 이소애 시인
출가하신 어머니,쪽 지던 머리를 깎이우고푸른 승복을 입으셨다.수계도 법명도 없는 몇 달의 행자생활로벌써 경지에 이르셨는가.기억을 버린 깊은 불심에핏줄을 알아보지 못하는 눈길이자식의 이마 너머 먼 산으로 비껴나간다.접견실을 나가 눈썹을 말리는 남편과휠체어 사이를 열대어처럼 휘젓는 아이들얼룩덜룩 순서 없던 추억마저 표백시키며삶의 끝이 요양병원 말뚝에 매인어머님은 한사코 묵언수행 중이신데,팔십 평생, 인생대장경을 주름으로 새긴 채환자복을 맞춰 입은 반신불수의 노인들이다르고도 같은 만불의 형상으로 보인다.공양미도 못되는 초코파이와요구르트 몇 줄 내려놓고 돌아오는 길,백미러 속에서물에 잠긴 절간이 점점 멀어진다.……△물속에 지은 절간 하나 소슬하시다. 부스러지기 잘하는 초코파이는 한가운데 달보드레한 마시멜로 덕분에 하나로 응집할 수 있다. 어머니는 성정이 달라 부스러지기 잘하는 자식들에게 마시멜로처럼 포근한 중심이 평생 되어 주셨다. 말을 삼켜버린 어머니의 기억도 열대어 같은 손주들 재롱에 잠깐 푸르게 반짝였으리라. 떠나는 신도의 뒷모습이 한없이 안쓰러운 어머니, 만불사 처마 밑에 풍경처럼 매달려서 그렁그렁 온몸이 흔들렸으리라. 김영 시인
내 집을 찾아오신 당신을 보았다요사이 몇 날을거친 모래 잠에 빠진나에게아득히 당도하신 당신을 보았다자란자란 모래밭을 적시는 강물소리인 듯엽렵한 사람이 되라 하시던어머니 말씀소청하게 차려입은 당신을 보았다귀 얇고 어리석어내 집은 늘상안으로만 밀물졌거니초가을 볕,등줄기에 화창하게 빛들인 당신을 보았다.△자란자란 모래밭 길에 넓은 치마 끌며 걸어오신 어머니는 거친 잠에 빠진 시인을 아늑하게 보듬었으리. 아득한 길을 걸어, 꿈길을 걸어, 지상과 하늘의 길을 다 걸어, 자식의 잠 곁에 당도하신 어머니. 안으로만 밀물지던 자식의 생에 초가을 따사한 볕 한 줌 놓아주리. 사납게 젖어 있던 뜨락에 맑고 따뜻한 햇볕을 가득 몰고 오시리. 모래잠이 모처럼 산뜻해지리. 김영 시인
나무가 흔들린다나무란 나무가모두 흔들리는 바람 많은 퇴근길저 혼자 흔들리지 않으려고발버둥도 쳐 보지만모두 다 흔들리는 저 속에서저 혼자 흔들리지 않고사는 일이 무슨 대수라고…그래도 흔들리지 않으려고바라보다가끝내는 바람이 되는날주막에 드는 날창문을 넘어오는웃음소리는창 밖에흔들리는 나무들△우리는 흔들리지 말라고 배운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신념은 없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지 말자. 그냥 흔들리다가 바람이 되자. 사는 것이 대수냐고 묻지 마라. 세상에는 대수 아닌 것들이 대다수다. 내 안에 허망한 바람이 한 자루일 때 주막에 가자. 흔들리는 바람 자루들이 여기저기서 불콰하게 젖어 있을 것이다. 나는 세상의 대다수 중 하나라는 것을 인정하면 술맛이 더 좋다. 김영 시인
한 보자기의 눈물을 싸서 뿌리면열 보자기의 별들이 떨어지던 소년의 언덕에도오늘밤 함박눈이 내리겠지첫사랑이 가끔은 나를 부르는허리 굽은 소나무가 바라보는고향의 언덕에서겨울 기침을 하며 나는 서있다군데군데 이어진 꿈 조각들이 아직 남은 나를 조용히 흔드는 밤멀리서 찾아온 함박눈이 별들을 한마당이나 데려왔다△겨울 언덕에 서서 함박눈을 맞는 소년이 있다. 글썽이는 눈물 너머 쏟아지는 별을 보는 소년이 있다. 아직 다 이루지 못했지만 군데군데 완성되어가는 꿈의 조각보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추억 속의 소년이 있다. 함박눈 내리는 밤에는 별이 뜨지 않는다고 말하지 마라. 꿈을 짚어보는 소년의 시간 속 별들은 언제든 쏟아질 것이다. 시인 김영
강물이 꼼작 않는 날생각이 꽁꽁 얼었다건드리면 칼날처럼 쫘악 쪼개질 터이런 날, 동네 마트 앞 골목 행복발전소에서 에너지를 얻는다울분이 폭발하는 힘으로 세상을 돌리는 곳이다시퍼런 면도날에 목숨을 맡긴 채시커먼 천장에 매달린 거미를 본다거꾸로 간당간당 사는 묘기를 배운다빨강 파랑 흰색 표시등이 있는 발전소는 귀이개로 간지럼 꽃피우는 이발사가 있다날선 가위로 신뢰를 다듬고 비누거품으로 분노를 씻어버린다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심장박동 소리로 녹아드는 강물인가,강이 봄을 업고 발전소 문을 연다.△가족들은 왔다가고 쓸쓸한 그림자만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왁자지껄했던 웃음소리는 온데간데없고 울분이 폭발할 것 같아, 아예 강물은 눈 딱 감고 꽁꽁 얼었나보다. 가족들을 만날 흥분으로 찾아갔던 이발소. 어쩜 천장에서 곡예사처럼 간당간당 위태롭게 사는 거미의 삶이 부럽기도 하다. 봄은 오고 있다. 시인 이소애
요즈음 세태를 보면 자기 자리 하나 차지하기 위해 일생을 보내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사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어린이집 자리 차지부터 유치원과 학교 그리고 직장, 심지어 노인 복지관까지 한자리 차지하기가 그리 녹록치 않다.총선을 앞두고 한자리 차지하기 위하여 애쓰거나 자기 자리 빼앗기지 않으려고 눈 부라리는 사람들을 보면 연민의 정을 금할 수 없다. 북한에서는 수소폭탄시험에 성공했다고 발표를 해도, 어린이집 보육이 중단 된다고 해도, 그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의사당에 한자리 차지하려는 생각에 함몰되어 민족의 앞날이나 세계 속 대한민국의 위상 같은 큰 틀의 정치는 밑그림조차 그리는 사람이 없어 보인다.며칠 전 기차여행을 다녀왔다. 티켓 하나로 3일 동안 새마을호 이하 열차를 몇 번이고 갈아탈 수 있어 떠돌기 좋아하는 나에게는 알맞은 나들이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좌석까지 보장 해 주지는 않았다. 눈치껏 빈자리를 찾아서 앉아 가다 주인이 나타나면 내주어야 한다. 정차 역에서 기차가 서면 플랫폼 승객수를 보면 불안해 진다. 또 승객이 올라와 내가 앉은 자리의 좌석번호를 확인 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게 된다. 그러다가 기차가 출발하면 아직은 내 자리로구나 하고 안도 한다. 그러나 엉뚱한 칸에 올라탔다 늦게 자기 자리를 찾아오는 사람도 있으니 안심할 수만은 없다.동 대구에서 조치원까지 세 번을 옮겨 앉고도 1시간 정도를 입석으로 이동했다. 염치없게도 슬슬 짜증이 났다. 서서 가니 열차 내 전 좌석이 보였다. 쪼바서 우짜까 걱정 마세요 아이들이라 괜찮아요. 두 아이를 데리고 여행하는 젊은 엄마와 팔순의 어르신 이야기 소리다. 먼저 앉아 있는 어르신에게 자기 자리를 양보하고 아이들과 비좁게 앉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이 서서 가니 보였다.조치원에서 내려 여수행 열차로 갈아타고 3번 칸으로 갔다. 무궁화호는 3번 칸에 장애인석을 마련하고 있어 좌석이 없는 빈 공간이 있다. 예상 한 대로 빈자리는 없고 장애인 석 뒤편에 대학생 같은 젊은이가 열차 바닥에 앉아 있었다. 나도 반대편 바닥에 무릎 담요를 깔고 신발을 벗고 앉았다. 꼬리뼈 부근에 열차 바퀴의 진동이 전해져 왔다. 가부좌를 틀고 깊은 호흡을 하면서 생각했다. 누가 뭐래도 이 자리는 내 자리다. 좌석권을 사지 않은 나에게 합당한 곳이고 더 내려갈 곳이 없으니 더욱 그렇다. 새로 타는 승객 눈치 보랴 옆 좌석 승객 기색 살피랴 빈자리 앉아가는 승객을 의심의 눈으로 보는 승무원에게 눈 맞추며 좌불안석하던 것이 좌석 하나 포기하니 이리도 편한 것을- 염치없는 짜증도 가라앉고 마음이 평온해지니 다시 떠도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돌아 갈 수 있었다.국회의사당에 내 자리가 꼭 있어야 한다는 사람들에게 열차 바닥에 앉아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사람들은 열차를 공짜로 이용하니 염치가 있다면 한번쯤은 나와 같이 티켓을 구입해 삶의 여행을 떠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럴 기회도 마음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겠지만.△조흥만씨는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했으며, 〈덕진문학〉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주 덕진노인복지관에서 방송을 하고 있다.
아픈 사연도 추억은 아름답지지천명의 길이 나를 옛집으로 데리고 갔네무거운 정적 몇 겹 둘러친 울타리 너머검정고무신 한 켤레가 기다리고 있었네그 동안 무슨 수상쩍은 일 있었는지정지문은 입을 꽉 다물고졸음에 겨운 시간이 눈비비고 있는 작은방에선구구단을 외고 일기를 쓰는 유년의 밀봉된 꿈이꾀죄죄하니 횃대에 걸려 있었네그걸 못 보게 눈에선 모래알이 서걱거리고달빛이 집안에 가득 찼을 때서까래 낮은 안쪽에선 아버지 기침소리가 들려왔네야윈 달그림자 서성이던 어린 발자국들이서럽게 나를 따라붙어 칭얼거렸네.△아버지 두루마기와 어머니 비로드치마가 걸린 옛집에 가고 싶다. 대나무 막대를 잘라 양쪽 끝에 끈을 매어 벽에 달아매어둔 횃대를 떠올린다. 토방에는 삐뚤뻬뚤 식구들의 고무신이 오빠가 소리 내어 외우고 있는 구구단을 듣고 있을, 그 집에 지천명의 화자가 간다. 명절이면 유년의 꿈이 밀봉된 고향집이 그립다. / 시인 이소애
겨울눈 내린 아침흰 구름하얀 산구름과 산을분별하기 힘든데물 속하얗게 언 삭풍朔風아프게 휜초승달의 등이시리게 희다△병신년 정월 초하루도 얼마 남지 않았다. 서쪽 하늘에서 낮게 뜨는 초승달을 떠올리며 나목의 눈꽃을 본다. 나뭇가지가 초승달처럼 휘어진 것은 생의 무게 때문이리. 구름과 산을 분별하기 힘든 시력도 칼바람이 시린 등을 할퀴고 지나간 충격 때문이리. 설날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눈 내린 아침에 현관에 걸어 둘 복조리를 생각한다. 시인 이소애
둥글다완성이며 시작이다가벼움까지 더했으니어디로든 떠날 수 있겠다무거운 맘으로 나선 길깃털로 감싸인 충만함을 만난다훅 바람이 불면 홀연 떠날 가벼움이건만파란 하늘을 어깨 위에 얹고 당당하기만 하다구원을 향한 신념이라면반사되는 한 줌 햇빛을 모아서도 꽃을 피운다그러하므로두려움 없이 떠날 수 있겠다파견을 목전에 둔 은빛 성자민들레 꽃씨△하하하, 가볍다, 그러고 깊다. 파견을 목전에 둔 성자는 먼저 파경으로 떠날 준비를 하리. 하늘거리는 어깨엔 파란 하늘도 당차게 짊어지리. 완성의 가벼움을 맛본 사람은 다시 시작할 힘도 얻으리. 이런 저런 인연으로 제 스스로를 옭아매지 않으며, 오직 햇빛 한 줌을 고마워하리, 바위산을 넘어오는 바람 한 줄기에 깊이 감사하리. 김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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