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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33) 역사의식에 바탕을 둔 들(野)의 시인, 이병훈

이병훈 시인. 시인 이병훈은 1925년 4월 15일 군산시 옥산면 당북리에서 태어났다. 옥산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옥구 상촌에 있는 염의서원에서 한학을 공부하였다. 일제 강점기와 6.25의 참상을 겪으며 근현대사를 맨몸으로 지켜왔다. 1950년부터 군산민보사 기자로 활동하다가 6.25 전쟁 때는 종군기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 후 삼남일보 사회부장을 거쳐 금강일보 논설위원을 역임하면서 문학계 인사들과 폭넓게 교우하면서 문학에 정진하였다. 시인은 군산문학회 뿐만 아니라, 대전 호서문학회와 솜리문학회 동인으로도 활동하면서 시화전 및 앤솔로지 발간 등을 꾸준히 하였으며, 1959년 4월 신석정 시인의 추천으로 [자유문학]을 통해 등단하였다. 1970년 첫 시집 『단층』을 발표하였고 뒤이어 『하포길』(1981), 『어느 흉년에』(1982), 『멀미』(1983), 장편서사시 『녹두장군』(1991), 『포격당한 새』(1994), 『참으로 좋은 날은 땅에 살다가』(1997), 『물이 새는 지구』(2001) 등 시집 17권, 연작시 「소리」(조선문학, 60편), 「나무새」(문학세계,60편), 「휴전선의 억새」(자유문학,60편) 등을 발표하였고, 수필집 『글썽거리는 서경』(1999)을 내는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오랫동안 시인과 함께 문학의 길을 걸어온 군산의 이복웅 시인은 시인의 초기 시는 고은, 정양, 정렬, 이복웅 등과 함께 민족문학작가회의 태동을 주도할 만큼 현실 참여적이고 저항적이었다고 하였다. 이런 연유로 이병훈 시인을 포함한 이들은 관계기관의 지속적인 감시를 받았다. 한때 군산을 방문한 고은 시인과 기념사진을 찍은 일이 있는데, 그 사진에는 불멸의 우정이라는 글씨를 새겨 넣을 만큼 그들은 나이를 떠나 막역한 문우로 늘 함께했다. 그러나 이후 이병훈의 시는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한국 농촌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드러냄으로써 들[野]의 문학을 새롭게 정립하였다.고 했다. 원형갑은 시인을 생각하면 군산의 토요동인회를 떠올리게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에서 내려온 송기원을 좌장으로 하여 정연길, 김동빈, 고은, 신석정 등이 참여하였으며 여류시인 정윤봉 시인의 집에서 첫 모임을 했는데, 이병훈 시인은 남달리 엉성하게 비썩 말라 눈만 뻥그레한 모습이었다고 회고하였다. 그는 시인으로서 밖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로 그를 기억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늘 조용하고 말이 없었으며 때로는 어색한 듯, 때로는 놀란 듯, 때로는 민망하고 시름겨운 듯 가붓이 웃음을 머금고 가끔은 뒷전에 앉아 소리도 없이 훌쩍 떠나는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그 후 토요동인회 회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송기원은 서울로 돌아갔고, 고은도 떠났다. 정윤봉도 군산을 떠났지만, 이병훈은 신문사 일을 하면서 군산에 자리잡고 동구 밖 느티나무처럼 고향을 지켰다. 이런 시인을 두고 원형갑은 고향과 시인은 뿌리와 잎새라고 할 만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사이라고 했다. 시인은 고향을 사유하는 사람이며,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사람들에게 고향의 말씨를 불어넣어 주는 사람이고자 했다. 그의 말대로 그는 평생 고향 군산을 사유하였으며 군산의 말씨를 지키는 말지기였다. 다음 시는 그런 시인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시다. 쉰 넘은 나약한 시인 난 해와 내기하면서 해로하는 농사꾼의 이름으로 겨우겨우 얻은 얼마간의 낱말 소출을 저낸다. 낱단으로 묶여 들어온 아지랑이의 곡식이여 눈썹 아래 지적거리는 이슬의 열매며 꺼끄레기가 까실거리는 햇빛의 소출을 모두 훑어서 저낸다. 멍석 위에 쌓이는 낱말들이다. 목을 길게 뽑고 오직 작게 다진 것 최종 최초의 맺음으로 남은 것 다시 흙으로 돌아가기만을 자청하는 낱말들이다. 난 머리가 흰 낱말을 저낸다. 앞뒤 마당 큰방 아랫방 빈채로 열어놓고 하늘과 내기하는 농사꾼의 이름으로 -이병훈의 시 「멀미 16」 전문 시인은 세 번째 시집 『멀미』(한국문학사,1983)에서 자신의 시 쓰기에 대하여 시 행위 그것은 특수하지 않고 시인도 특수하지 않다. 평범한 일상의 행위에 속한다. 평범한 일상을 인간답게 노래하려는 행위이고 그 행위자에 불과하다.라고 밝히면서 시인에게는 시 쓰는 일 자체가 생존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1948년 당시 군산문학회 동인으로 박희선씨 등과 더불어 모임을 하고 작품 비평회를 등을 갖는 등 군산지역 문학동인의 근간을 마련하였으며, 이후 언론사 논설위원, 문인협회 군산지부장, 예총 군산지부장, 군산 문화원장 등을 역임했다. 또 1973년 제14회 전라북도 문화상(문학부문)수상 이후 군산시민의 장 문화상(1976), 제1회 모악 문학상(1993), 제1회 신석정 촛불문학상(2007)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향아 시인은 「이병훈의 시 세계」라는 글에서 시인이 죽음이나 사후를 바라보는 시선은 담담하다. 두렵다고 거부하지도 슬프다고 회피하지 않는다. 살아서 이루지 못했던 소망을 사후의 세계에서 성취하려고 다짐하지도 않으며 부활이나 환생의 꿈도 꾸지 않는다. 시인이 인정하는 혼백의 세계는 백지와 같은 공간이다. 그의 혼백이 부유하는 공간에는 극락도 천당도 없고 연옥도 지옥도 없으며, 혼백은 무엇을 저항하거나 도모하지 않는다. 그는 죽음이나 혼백을 내걸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구속에서 자유롭다라고 하였다. 단 한 줄 시라도 전할까 하여 먼저 간 병권 형에게 띄운 편지가 되돌아왔다. 날짜와 시간이 지워져 있었다. 사연마다 고스란히 지워져 백지로 돌아왔다. 저승은 그저 비어있는 곳인가 보다. -이병훈 시「소인(消印)」 전문 시인의 시는 인생의 순리를 다루듯 자연스러운 언어 구사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담담한 어조로 그려내면서도 아프게 노래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언제나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다. 우직하게 고향을 지키며 문학의 향기를 피워낼 줄 알았던 시인 이병훈, 그의 육신은 이 땅을 떠났지만, 그가 우리 문단을 지키며 보여준 행보는 우리 문학사에 하나의 지표로 남게 되었다. 시인의 고향 후배인 고은 시인은 이병훈 시인을 늘 얼굴이 붉은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술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붉었지만, 평소에도 얼굴이 불그스레했던 그를 보고 한 말이다. 고은 시인은 『만인보』(제7권)에서 이병훈 시인을 삭막한데 지키고 살며 모진 소리 하나 내본 적 없는 시인이라고 하였다. 다 떠나버렸는데 군산항 그 삭막한 데 지키고 사는 시인 이병훈 환갑 진갑 훨씬 넘어서도 조촐히 청춘이어서 어디로 떠날 줄 모르는 시인 이병훈 군산항 가엔 반드시 그가 있다. 모진 소리 하나 내본 입 아니어서 그 입은 싱겁다 그 눈도 싱겁다 그 코도 느릿느릿 낼까 싱겁다. 그러나 그 마음속 깊이 옥산 들 눈보라 들어차 있어 춥구나 옷깃 여미어라 -고은 시 「이병훈 」 전문 이병훈 시인은 신석정 시인이 특별히 아꼈던 제자이다. 시인은 언제나 석정 시인 가까이에서 그를 닮고자 했다. 신석정 시인의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하였고, 초기의 석정 제자들과 함께 석정 문학을 전파하고 기리는 데 앞장섰으며, 석정문학회 초대회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스승인 신석정을 제재로 하여 여기저기에 발표한 70여 편을 시를 모아 신석정추도연작시집 『변산 골짝에 이는 바람』(부안문화원, 2000)을 내기도 했다. 이 시집은 신석정의 시 정신의 해명에서부터 1974년 작고할 때까지의 생애를 여러 관점에서 조명하는 산문이 아닌 시라는 양식을 통해서 이룩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특별하다. 시인이 석정을 만나 시인의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기꺼워하는 모습도 잘 드러나 있다. 이 시집에는 신석정의 어조, 냄새, 모습, 행동은 물론 스승이 안고 살았던 감성, 정서, 따뜻한 애정, 손길, 그 모든 것들이 어느만치는 시인의 여러 곳에 스며 시인을 오늘의 실상으로 살아 있게 한 것이라고 하였다. 시인은 2009년 2월 15일 숙환으로 작고하였으며, 시인의 영결식은 전북 문단 역사상 최초로 전북문인장으로 많은 문인의 애도 속에서 치러졌으며, 이때 장례위원장은 이동희 시인이, 집행위원장은 군산의 이복웅 시인아 맡았다. /송일섭 전북문학관 학예사

  • 문학·출판
  • 기고
  • 2020.09.23 16:04

제7회 석정시문학상 ‘이운룡 시인’ 선정

이운룡 시인과 김영 시인. 신석정기념사업회(이사장 윤석정)가 주관하고 부안군이 후원하는 제7회 석정시문학상의 수상자로 진안 출신의 이운룡 시인이 선정됐다. 함께 시상하는 석정시촛불문학상에는 김제예총 회장으로 있는 김영 시인이 선정됐다. 올해로 7회째를 맞는 석정시문학상은 한국 근현대 문학사의 중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신석정 시인의 고결한 인품과 시 정신의 유업을 계승하기 위해 제정됐다. 대한민국 문인으로 문학적 성과가 지대하며 발표된 작품에 대한 평가가 높은 시인을 종합적으로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올해 심사위원단은 이향아 위원장을 필두로 김종, 김주완, 복효근, 조미애 시인이 참여했다. 지난 19일 전북예총회장실에서 심사를 진행했다. 심사위원들은 석정시문학상 심사평으로 이운룡 시인은 문학을 천명으로 받아들여 반세기가 넘는 시의 길을 한결같은 열정으로 매진해왔으며 현재도 그 속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문학교육자로서 그는 외곬의 삶에 근면한 농부의 자세로 임해왔다고 밝히며 그의 구도적 정신과 지속적인 자세, 밀도 있는 작품의 가치는 석정시문학상 수상자로서 매우 적절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와 한국현대시인협회 고문으로 있는 이 시인은 전북문인협회장과 표현문학회장, 전북문학관장을 역임하며 문단의 토양을 가꾸는 일에 앞장서왔다. 이운룡 시인은 수상소감으로 한국문단의 큰별 신석정 선생님은 내가 시의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부터 흠모하는 큰별이었으며 우렁우렁한 목소리와 시인의 풍모는 언제나 내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며 이번 수상은 신 선생님이 점지해 주는 상이라고 생각해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더불어 올해 석정촛불시문학상에는 111명이 시 550편을 응모했으며, 최종 본심에는 10명의 시 50편이 올랐다. 김영 시인은 대표작 바람 관(棺)을 통해 수상자로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김영 시인은 사고의 깊이와 언어 조사력이 매우 탁월하다. 시 바람 관(棺)은 그가 얼마나 시업에 열심히 정진해왔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에 김영 시인은 이번 수상은 제게 시를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자만심도 버리고 시가 세상의 어둠을 밝힌다는 음도 버리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한다며 세월이 갈수록 더욱 빛나는 석정 선생님의 섬세한 언어 감각과 공동체적인 문제의식을 본받으려고 노력하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제7회 석정시문학상과 석정촛불시문학상 시상식은 오는 10월 17일 오후 3시 부안석정문학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 문학·출판
  • 김태경
  • 2020.09.22 17:37

2020 대한민국 초등학생 손글씨 공모전 대상에 강은서 ‘민들레 아빠’

혼불기념사업회와 최명희문학관, 전북일보사가 주최주관하고 전라북도와 전라북도교육청이 후원하는 2020 대한민국 초등학생 손글씨 공모전에서 강은서(동탄목동초 6년) 학생의 민들레 아빠가 대상(전라북도교육감상)을 받았다. 올해 손글씨 공모전에는 전국 125개 학교(전북 39개교)에서 1246명의 학생이 1320편의 작품을 응모했다. 그 결과 강은서 학생이 대상을 차지했으며, 이시윤(전주북초 6년)최서율(익산 오산남초 5년)황다연(구미 형곡초 3년) 학생이 최우수상을 받는 등 134명의 학생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작고, 나약해 보이는 민들레는 바닥에 붙어있는 꽃이라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화려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민들레는 꽃을 피우고, 홀씨를 날려 보내는 자기의 역할을 충실히 하며,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려고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꿋꿋하게 아빠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가족에게 기쁨을 주려고 하는 우리 아빠도 그런 것 같다. (강은서의 민들레 아빠中) 올해 응모작의 특징 중 하나는 코로나19와 관련한 일기와 편지가 많았다는 점을 꼽았다. 학교에 못 가고, 밖에서 놀지도 못 하고, 선생님친구친척을 만나지 못하고, 아픈 가족의 문병도 갈 수 없는 현실에 아쉬워하는 어린이들의 맑고 순수한 생각이 원고에 가득 녹아 있었다는 설명이다.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애쓰는 의료진에 대한 고마움도 손글씨에 담겼다. 고학년 학생들은 인간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갈등하는 사춘기 특유의 감성이 담긴 글을 많이 써서 응모했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되짚고 미래를 준비하며 희망을 찾는 내용의 글도 많았다. 심사는 고형숙(화가), 김근혜(동화작가), 김도수(시인), 김순정(전주대학교 연구원), 김영주(수필가동화작가) 등 각계 전문가 십여 명이 이틀간 진행했다. 심사위원들은 정성 어린 글과 그림에 담긴 아이들 특유의 천진난만함과 솔직함, 상상력을 만날 수 있었다며아이들은 자기가 글로 전하고 싶은 바를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일관되게 끌고 가는 힘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대한민국 초등학생 손글씨 공모전은 평생 만년필 쓰기를 고집했던 소설가 최명희(19471998)의 삶과 문학 열정을 통해 우리말과 우리글의 소중함을 느끼고, 손으로 쓴 편지와 일기로 한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에 관심을 두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마련됐다. 올해까지 14년간 이어지며 4만4000여 편의 작품이 출품되면서 전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최고의 글쓰기 공모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올해 수상 작품은 오는 11월부터 포털사이트 다음과 네이버의 손글씨 블로그 및 카페에서 감상할 수 있다. 우수 작품은 최명희문학관 마당에서 전시된다.

  • 문학·출판
  • 김태경
  • 2020.09.21 17:34

전북시인상에 김계식 시인, 전북시문학상 정연정 시인

김계식 시인과 정연정 시인. 제21회 전북시인상에 김계식(81) 시인이 선정됐다. 또 올해 처음으로 실시한 제1회 전북시문학상에는 정연정(56여) 시인이 수상했다. 전북시인협회(회장 김현조)는 제21회 전북시인상에 김계식 시인과 제1회 전북시문학상에 정연정 시인을 2020년도 수상자로 각각 선정 발표했다. 전북시인상과 전북시문학상 본심을 맡은 이동희 심사위원장은 심사평을 통해 전북시인상을 받게 된 김계식 시인에 대해 치열한 창작 정신을 발휘하여 지금까지 스물다섯 권의 시집을 출간하였으며 전북 시문학의 텃밭을 풍성하게 했다며 지역사회 문학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예향으로써 위상을 정립하는데 이바지한 공로가 인정되어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김계식 수상자는 전북시인상 수상자로서의 책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김계식 시인은 정읍에서 출생해 2002년 창조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돌부처의 푸념>외 24권을 출간했으며, 전북PEN 작촌문학상과 전북문학상, 교원문학상을 수상했다. 올해 처음 제정된 전북시문학상은 전북시인협회가 발간하는 연간 사화집 <시의 땅> 22집에 수록된 회원의 신작에서 뽑았다. 이번 <시의 땅>22집에 수록된 회원작품은 모두 260여 편이었다. 예심 12차에서 최종 본심에 오른 10편 가운데 최우수작 1편을 선정 수상자를 확정했다. 수상작 정연정 시인의 시 <슬픔을 이해하는 방법>은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방법에 대하여 효과적인 진술의 간결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정연정 수상자는 글을 쓴다는 것은 깎아지른 절벽 앞에 마주 서는 운명이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정 시인은 전남 담양에서 출생하여 2012년 <문학공간>으로 등단했다. 한국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 전북시인협회 등에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 <말줄임표로 왔던 그날>이 있다. 시상식은 오는 11월 중 개최할 예정이며, 구체적인 일정은 코로나19로 인해 확정하지 않았다.

  • 문학·출판
  • 최정규
  • 2020.09.17 16:51

[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32) 고향 사두봉에 얹힌 진을주 시인의 그리움

진을주 시인 진을주 시인은 1927년 10월 3일 전북 고창군 상하면 송곡리 69번지 송림산 아래 봉감마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을주(乙澍)이고 호는 자회(紫回)다. 1954년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63년 김현승 시인의 추천으로 「부활절도 지나버린 날」을 『현대문학』에 발표하였으며, 1966년 『문학춘추』에 「교향악」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문학의 길을 걸었다. 시인은 대학 졸업 후, 전라북도 도청 공보실에서 근무한 바 있으며, 상경하여 대한교련의 새한신문사 총무국장과 출판국장을 역임하면서, 문학 활동에 매우 열정적이었다. 시인의 문단 경력은 다양하면서도 화려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월간 『문예사조』의 기획실장, 한국자유시인협회 부회장,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 도서출판 을원 편집 및 제작 담당 상임고문, 21민족문학회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감사, 월간 『문학21』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1997년에는 『세기문학』을 창간하였고, 1998년에는 『지구문학』을 재창간하여 편집 및 상임고문을 맡으면서 많은 문학 지망생들에게 작품 발표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우리나라 문학의 저변확대에 기여하였다. 시인은 그간의 공로로 한국자유시인상, 청녹두문학상, 한국문학상, 세계시가야금관왕관상, 예총예술문화공로상, 한국민족문학상 대상 등을 수상했다. 시인은 1966년 첫 시집 『가로수』를 비롯해서 『슬픈 눈짓』, 『사두봉 신화』, 『그대의 분홍빛 손톱은』, 『부활절도 지나버린 날』, 『그믐달』, 『호수공원』 등 일곱 권을 상재하였다. 그 중 『사두봉 신화』는 연작시집으로 그의 고향에 전해오는 이야기를 토대로 신화적 숨결을 그려냈다. 그리고 신작 1인집으로 『M1조준』 등 네 권을 발간하여 우리 문단의 화제가 되기도 하였으며, 유고시집으로는 『송림산 휘파람』이 있다. 시인의 문학에 대하여 계간 『해동문학』 발행인 정광수 시인은, 70년대 진을주의 시 세계는 모더니즘적 수법의 수련을 거친 인생에 대해 참신하고 투명한 인식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종은은 「자회(紫回) 진을주 시인의 생애와 문학」에서 그의 문학적 특징을 이렇게 정리한 바 있다. 시인의 시는 모더니즘 수법의 수련을 거쳐 인생과 자연에 대한 투명한 인식을 보여주면서 평생을 고고하게 선비정신으로 일관하였으며, 천성적인 인간미가 돋보이는 삶은 작품 속에서 일관된 시 정신으로 표출되고 있다. 시 정신과 더불어 인생, 자연, 허무 슬픔 등이 투명한 인식 속에 자리 잡혀 그 참신성이 돋보이며 삶의 의미와 리얼리티가 잘 드러난다. 또한, 변화와 갈등이라는 동일성을 교직(交織)해서 시어가 세련되고 감각정 서정성이 풍부하다. 또한, 명상적 정관적 자세가 돋보이며 절제된 언어미학이 잘 드러난다. 고 했다. 시인은 이렇듯 많은 작품을 쓰면서도 자신의 시적 역량을 키우는데 남달랐다. 그는 훤칠한 키에 신사풍의 용모로 언제나 유행에 어울리는 패션을 즐겨 입은 멋쟁이 시인이었으며, 다정다감하여 동료와 후배 문인들로부터 인기가 매우 높았다. 시인은 누구와도 잘 어울렸고 늘 자애로운 낯빛으로 함께 했다. 특히 『지구문학』을 통해서 많은 제자를 배출하였다. 노년에는 일산 호수공원의 새 소리와 아름다운 꽃에 심취하여 생활하다가 2011년 2월 14일 숙환으로 세상과 하직하였다. 최승범 교수는 그의 부음을 듣고 「벗은 가고」라는 시조를 통해서 그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한 마음을 표현한 바 있다. 허물 따로 없었지 윗목도 아랫목도 없었지 고스톱 멤버인 양 밤참도 챙기라 했지 눈 감자 허탈한 굽이굽이 허허로울 뿐이네 그의 후배인 이기반 교수도 「가시다니 그게 웬 말이오」란 글을 통하여 시인에 대한 그림움을 애틋하게 표현한 바 있다. 전라북도문학관 진을주 시인 전시관에는 두툼한 친필 노트 한 권이 놓여 있다. 이 노트 첫 장에는 정성을 들인 필체로 진을주 자필 시 모음이라고 쓰여 있다. 사두봉 얘기라는 큰 제목 아래에 사두의 아침이라는 소제목의 시 서른다섯 편이 쓰여 있다. 이는 시인의 시집 『사두봉신화』의 원고인데, 시편 하나하나가 흐트러짐 없이 단아한 필체로 쓰여 있다. 이 외에도 시인이 평소에 쓰고 다녔던 모자와 만년필 등 시인의 손때가 묻은 유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를 보면 시인이 얼마나 정갈하게 살아왔는가를 느낄 수 있다. 내 눈물로는 채울 수 없는 텅 빈 항아리 놔 두소 돌팔매질 보고 빙그레 웃는 속마음 조금만 더 있다가 내가 찾아가 묻힐 항아리 -진을주 「빈 항아리」 중에서 이 시는 2007년 『지구문학』 겨을호에 발표된 시다. 그는 일단 빈 항아리를 설정해 놓고 그것을 채우는 방법을 생각했는데, 그것은 물 몇 바가지로 채워질 그런 흔한 항아리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바로 눈물을 끌어들인다. 그리고는 눈물로도 채울 수 없는 공간을 결국 자신의 몸을 던져 채우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 짧은 시에서 보듯 비어 있는 것을 억지로 채우려 하지 않고, 온 몸을 던져 그것을 채우려는 모습에서 시인의 삶이 어떠하였는가를 가늠하게 한다. 갑사댕기빛 동백기름 지문도 고요로이 치마폭무늬 꽃그늘 수줍어 흐르고 꼭 여심같은 깊이여! -진을주 시 「항아리」 전문 시인의 『사두봉 신화』는 1987년 10월에 발간한 시집이다. 고향인 고창 무장의 영산(寧山) 사두봉 주변에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귀신 이야기를 시로 형상화했다. 이 시집에 실린 총 61편의 시는 모두가 다른 이야기이지만, 그 이야기들은 우리들의 귀에 익숙한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시인은 『사두봉 신화』의 서문에서 신화에 담긴 지혜는 고장의 생산적인 지혜가 되었으며, 이를 통하여 고향 사람들이 어떤 가치의식과 삶의 감정으로 수천 년간의 공동생활을 영위해 왔으며 어떻게 문화가 발전해 왔는가를 지켜보고자 했다. 햇살 편 소용돌이 속 불구를 타고 비바람 몰아 사비약 내린 사두(蛇頭) 고리포 발치에 두고 반고갯재 스친 길 (중략) 앞지락 비밀 열리고 고집스런 깊은 정절(貞節) 공포로운 침묵으로 발 모둔 육지 노령산맥 맥박 타고 쏜살처럼 미래가 열리는 아침이여 -진을주 『사두봉 神話』의 「사두봉의 아침」 중에서 2011년 2월 14일 시인은 정둔 세상을 떠났지만, 어쩌면 시인은 우리 곁에서 한 발도 움직이지 못하였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의 동료, 선후배들의 그를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인의 서거 이후 한 달쯤 되었을 때 성춘복(제21대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신세훈(제22, 23대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등이 중심이 되어 전을주 시비건립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그해 시인의 고향 전북 고창군 상하면 송곡리 송림산 자락에 시비가 세워졌다. 또한, 함흥근 시인 등이 중심이 되어 진을주문학상을 제정하여 서거 이듬해인 2012년 12월 13일부터 수상자를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제1회 진을주문학상은 추영수 시인이 받았다. 시인의 배우자 김시원 씨는 화가이며 서예가이고, 또한 수필가이다. 시인이 세상을 떠난 이후 부군의 위업을 이어받아 현재 『지구문학』 발행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자녀로는 큰아들 동준(사업가), 큰딸 경님(아동문학가), 작은 딸 인욱(프리랜서)이 있다. 시인의 며느리 김여림도 수필을 쓰고 있다고 한다. 또한 시인의 장조카 진동규 시인은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과 전북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우리나라 문학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바 있다. 그러고 보면 시인의 일가(一家)는 명망 있는 예술가의 집안을 이루고 있다. 오늘도 그의 고향에는 시인의 휘파람 소리가 들리고 있다. 휘파람 소리 귀신 같이 알아낸 송림산의 봄 능선마다 허리끈이 풀렸네 내 동갑 박득배는 휘파람 사이사이 낫자루로 지겟다리 장단 맞추고 나는 지겟가지에 용케도 깨갱발 쳤지 하늘은 봄을 낳은 산후의 고통 보릿고개 미역 국물 빛 울음 반 웃음 반이었어 휘파람 소리는 황장목 솔바람에 송진을 먹였네. -진을주 「송림산 휘파람」 고향마을 시비에 새긴 시 /송일섭 전북문학관 학예사

  • 문학·출판
  • 기고
  • 2020.09.17 16:20

제10회 신무군산문학상 대상에 윤규열 소설 ‘이 시대의 마지막 비상구’

윤규열 소설가와 전병조 시인. ㈔한국문인협회 군산지부(회장 신성호)가 주최하고 동우문화재단(이사장 김동수)이 후원하는 2020년도 제10회 신무군산문학상의 대상으로 윤규열 소설가의 소설 이 시대의 마지막 비상구가 선정됐다. 더불어 군산지역의 문인에게 수여하는 본상은 시 부문의 전병조 시인의 회귀하는 늪에게 돌아갔다. 심사위원들은 대상 심사평으로 윤규열 소설가의 이 시대의 마지막 비상구는 제목에서부터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냈고 이 시대의 삶을 부조리한 세계와 불합리한 현실에서의 분투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본상 수상작 회귀하는 늪에 대해서는 가혹한 현실을 바투며 살아가는 어촌 서민들의 삶의 풍정을 연민의 시선으로 포착하여 가녀린 슬픔의 서정으로 형상화 하는데 성공하고 있다고 평했다. 제10회 신무군산문학상 수상작 총평으로는 대상과 본상 모두 세계와 현실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치열한 응시가 돋보인다. 당대 현실의 음울한 풍경 제시를 통해 삶의 조건에 대한 성찰과 미래의 혁신에 대한 비전을 환기한다. 이는 문학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본분과 사명에 충실한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제10회 신무군산문학상 시상식은 오는 12월에 열릴 2020년도 군산문인의 밤 행사에서 진행할 계획이다.

  • 문학·출판
  • 김태경
  • 2020.09.16 17:08

‘열린시문학회 30주년’…시와 함께 여행하는 아름다운 삶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은 열린시문학회가 회원들과 함께 시와 함께 하는 아름다운 삶을 나눴다. 지난 10일 오전 11시 국립무형유산원 책마루에서는 열린시문학회 창립 30주년 기념행사와 함께제26회 열린시문학상 시상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아름다운 삶, 시와 함께 여행하다라는 주제에 걸맞게 제26회 열린시문학상 수상자인 김홍부 시인과 열린시문학회의 발전을 기원하는 이들이 참여했다. 이재숙 열린시문학상 운영위원장은 심사위원인 김현조 시인을 대신해 심사평을 발표했다. 이 운영위원장은 김홍부 시인의 시집 <바람이고 싶다>에는 놀라운 감수성은 물론 시를 통해 우리 사회를 밝게 비추고 싶어 꾸준히 노력하는 노신사의 예술혼과 품위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 자세야말로 가히 순수하면서도 진지함이 소망과 희망을 주는 모범적인 시인이라고 심사평을 대독했다. 김홍부 시인은 아직도 부족하고 시문학의 지난한 길이 남았는데 이 상을 계기로 더욱 열심히 살겠다. 특히 열린시문학회 회원들께 감사드린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윤석정 전북일보사장은 열린시문학회 행사에 20여년을 참석하고 있다. 제게 처음 문학을 알게해 준 고향집 처럼 느껴진다며 덕분에 14년 전 바다문학상을 제정하고 이어서 석정문학회와 석정문학상이 계속 해서 탄생할 수 있었다고 격려했다. 열린시문학회 관계자는 이번 행사는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현 회원들 중심으로 조촐하게 치렀다며 푸근한 정이 느껴지는 이번 만남을 계기로 많은 회원들이 문학 사랑에 더욱 정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문학·출판
  • 김태경
  • 2020.09.13 16:36

[신간] ‘사랑이 스테이크라니’ 단편소설

2016년 <문학사상>과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고요한 씨가 첫 소설집 <사랑이 스테이크라니>을 냈다(&앤드). 표제작인 사랑이 스테이크라니는 아이를 원하지만 불임인 남편이 대리부를 고용해 아내를 임신시키는 다소 충격적인 내용의 이야기다. 고요한 작가는 터부시되는 상상력과 다채로운 이야기를 통해 현대인의 감추고 싶은 욕망을 개성있는 문체로 풀어냈다. 아이에 대한 집착으로 대리부를 고용해 아내와의 잠자리를 계획한 남편이 있다. 아내는 치욕스럽게 생각하면서도 아이를 너무나 원했기 때문에 남편이 고용한 남자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국면을 맞는다. 아내가 아이보다 남자를 원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우월한 2세의 유전자만을 희망했던 남편이 이제 원하는 것은 아내의 사랑뿐이다. 작가는 블랙유머같은 부부의 세계를 풀어내고 우리가 정말 사랑한 것은 무었이었나?는 냉정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또다른 단편 종이비행기는 세계적인 문학 저널 <애심토트>에 번역해 소개됐다. 번역해 소개한 역자 브루스 풀턴과 윤주찬은 그의 작품이 무섭도록 아름답고 잔인하게 슬픈 세계를 그렸다고 평하고 있다. 현재 소설은 네이버 포스트넥서스도 연재중이다. 고 작가는 진안에서 태어나 원광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 문학·출판
  • 백세종
  • 2020.09.09 17:25

[신간] 역사이론은 무엇이고, 사상가들은 무엇을 주장했는가

역사가는 자신을 숨기고 사실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독일의 대표역사학자인 랑케(1795~1886)와 영국의 역사학자인 E.H 카(1892~1982)의 대표적인 말이다. 랑케는 실증주의를 표방했지만, 랑케는 관념론으로서의 역사를 주장한 인물이기도 하다. 서양에서 다양한 역사관이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이런 서양의 역사이론의 변화와 사상가들의 생각을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 발간됐다. 이규하 전북대 명예교수의 <역사이론과 그 대표적 사상가들>(인간과문학사). 저자는 우리 인간생활과 역사에 대한 저명한 세계 석학들의 까다롭고 심오한 사고들을 중심으로 이번 책에 기술했다. 특히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책인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넘어 과연 역사가 무엇인가에 대해 다양한 사상가들(역사학자철학자신학자문인들)의 견해를 담아 더욱 넓고 깊게 연구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난해하지만 독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고 실제 경험을 통해서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도록 내용을 수록하였다. 책은 1부 역사란 무엇인가, 2부 석학들의 역사에 대한 심오한 이해와 해석, 3부저명한 사상가들의 역사 해석 등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는 지식인의 사치로서의 역사가 아니라는 설명과 함께 역사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기 쉽게 설명하며 그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2부 석학들의 역사에 대한 심오한 이해와 해석에서는 시대에 따른 역사관의 변화를 통한 정치경제문화사상종교의 면에서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구분 방법론을 제시한다. 3부 저명한 사상가들의 역사해석에서는 고대 역사학자인 소크라테스부터 마르틴 루터까지의 시대별 사상가들의 핵심 이론등을 설명한다. 이규하 교수는 이 책은 역사전공자들과 지식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기도 하지만 가장 난해한 책으로 느낄 수 있다면서 오랜기간 연구해온 서양의 사상가들에 대해 심층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책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 1958년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한후 1964년 전북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독일 현대사 연구소, 베를린자유대학교, 본대학교, 프랑스 스틀라스붑르크대학교 연구원을 역임했다. 전북사학회장, 전북대 인문학연구소장을 지냈으며 현재 전북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 문학·출판
  • 최정규
  • 2020.09.09 17:25

[신간] 40년 ‘말 전문가’의 조언, 미러링 스피치

어떻게 하면 말을 잘 할 수 있을까. 말을 잘 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말에 대해 고민하는 공통된 생각이다. 이런 사람들을 위한 40년 말 전문가의 조언이 담긴 책이 발간됐다. <미러링 스피치>(미다스북스). 이 책의 작가는 이재호 전 KBS전주방송국 9시 뉴스 앵커를 지낸 이재호씨다. 이 전 앵커는 40여년 간 말을 직업으로 세상과 맞서는 무기로 삼으며 평생을 살아온 말 전문가다. 그가 40년간 오랜 연구와 수많은 사람들의 대화법을 관찰해 얻은 결론은 세상에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아직 자기 안에 있는 거울 뉴런의 힘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거울 뉴런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기만 해도 자신이 그 행동을 직접 할 때와 똑같은 활성을 나타내는 신경세포다. 인간은 그 세포의 작용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감정을 따르는 경향이 있는데 공감 본능이다고 표현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소통하는 미러링 대화법을 3단계로 나눠 설명한다. 무엇보다 경청 훈련이 먼저이고, 듣기에도 기술이 있다. 특히 비언어적 신호에 주목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밖에도 메모하며 듣기, 반응하기, 질문하기, 상대방의 말을 미러링하기가 잘 듣는데 도움이 된다고 하고 있다. 말투와 억양, 적절한 포즈, 품격있는 말 등 저자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체계화한 조언도 조목조목 소개돼 있다. 상대방의 눈높이에 언어를 맞춰라, 상대방이 어떤 존재인지 파악하라, 몸이 말하는 신호를 주시하라, 긍정의 언어로 말하라, 맞장구 쳐라, 좋은 질문으로 말을 대신하라 등 미러링 대화법 시크릿 10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1980년 KBS한국방송 취재기자로 입사, 전주방송총국의 9시뉴스 앵커로 다년간 활약하고 취재부장과 보도제작부장, 보도국장을 역임했다. KBS 본사에서 보도특집을 제작하고 통일부 차장을 거쳐 전문기자로 활동했다.

  • 문학·출판
  • 최정규
  • 2020.09.09 17:25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경옥 동화작가 - 김근혜 동화 '제롬랜드의 비밀'

오래 전, <호모 루덴스>라는 놀이하는 인간을 다룬 책이 있었다. 이 책에서 인간은 놀이에서 지금의 문명을 이루어냈다고 했다. 우리가 흔히 놀이는 시간의 소비쯤으로 여기지만 사실 예술과 스포츠, 과학까지도 놀이적 성격을 띤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른도 아이도 놀이를 잊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놀이를 빼앗긴 우리 아이들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얼마 전, 김근혜 동화작가의 첫 장편동화가 나왔다. 등단 후, 몇 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선보인 책이라서 소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마음껏 풀어놓았다. 제롬랜드라는 공간이 가지는 선명성 때문에 제목부터 시선을 끌었다. 또한, 가상세계를 하나하나 만들어 수많은 몬스터를 탄생시키고, 그 과정에서 인물들의 우정과 자신들의 일상을 기억하며 제롬랜드를 빠져나오게 하기 까지, 창작 과정의 수고스러움이 눈에 선했다. <제롬랜드의 비밀>은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지는 게임과 관련한 동화다. 주인공과 친구들이 게임 세상에서 돌아오지 않는 친구를 찾아 나선다. 친구를 찾기까지 많은 가상공간 속에서 몬스터들과 대항하며 결국 친구인 찬서를 찾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다. 게임은 지나치지만 않다면 집중력이나 판단력, 순발력까지 키워준다. 하지만 게임은 한 번 잡으면 놓을 줄 모르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함정이다. 놀이를 할 수 없는 아이들이 선택한 게임, 하지만 그 대가가 혹독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게임을 무한대로 할 수 있다는 유혹으로 시작된 것이다. 작가는 아이들이 쉽게 유혹에 빠지기도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도 보여줬다. 하지만 지금처럼 학교에서 학원으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면 아이들은 언제든 다시 게임의 유혹에 빠져 일상을 탈출하고픈 생각이 들 것이다. 끊임없이 솟구치는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가 게임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곳은 새로운 자극이 함께 하고 단순하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짜릿함과 박진감, 생동감이 있다. 이처럼 가상공간은 모험을 제공한다. 아이들이 밖에서 놀 수 있는 것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에 대리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고, 어른들이 관여하지 않는 자신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은밀한 곳이기도 하다. 놀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모험과 이야기가 게임에는 가득하다. 그러니 어찌 게임을 멀리하겠는가!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눈만 뜨면 골목길을 누비던 아이들이 많았다. 지금은 환경도 시설도 좋은 놀이터가 많지만 빈 공간으로 남아 있고, 아이들은 모두 경쟁으로 몰려 학원을 전전하고 있다. 아이들이 게임에 빠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지금 기성세대들이 맘껏 누렸던 것처럼 고무줄놀이, 술래잡기,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등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 놀다보면 하루가 너무나 짧을 만큼 노는 것만을 위한 시간을 확보해 주지 않는 한 게임의 유혹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작가는 <제롬랜드의 비밀>을 통해 아이들이 가상세계가 아니라 현실에서 맘껏 놀 수 있는 세상의 필요성에 대해 화두를 던졌다. 잊힌 기억은 온몸으로 느낄 때 되살아 나!라는 주인공의 말처럼 이 땅의 아이들이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놀이의 장을 펼쳐야할 때이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0.09.09 16:58

[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31) 맑아서 불온했던, 날망의 소나무 시인 이광웅

이광웅 시인. 이광웅 시인은 1940년 익산에서 가난한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얼굴이 유독 희고 목이 길었던 시인은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했고, 명문고인 남성고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사유가 깊고 감수성이 뛰어나서 글쓰기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소설과 시, 수필 등을 써서 많은 상을 받기도 하면서 문학에 두각을 나타냈다. 고등학교 재학 중에 외국의 고전을 원서로 죽죽 읽을 만큼 외국어 실력도 뛰어났다. 시인은 좋아하는 선배를 따라 외국어대학교 불문학과로 진학했다. 그러나 한 학기를 마쳤을 때 건강이 나빠지고 집안 형편도 어려워져서 중도에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야 했다. 대학을 그만두고 방황하면서도 그는 틈틈이 시를 썼다. 그때 그의 독자는 시인의 누이동생들이었다고 한다. 언뜻 보면 방황의 시간이었지만, 시인은 이 시기를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신석정 선생을 만나서 문학적 깊이를 채워나갔다. 석정 선생의 권유로 전북대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또 중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잡지사 교정 일도 하고 시도 쓰면서 세월을 보냈다.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항식 교수는 시인의 재능을 살리고자 원광대학교에 문예장학생제도를 마련하였고, 그를 첫 대상자로 받아들였다. 그러고 보니 시인이 1959년 외국어대학교에 입학한 이래 12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게 된 것이었다. 그는 1967년 유치환과 1974년 신석정의 추천으로 시인으로 등단했다. 대학 졸업 후 원광여고를 거쳐 1976년부터는 군산제일고등학교에서 국어과 교사로 근무했다. 시인은 당시 문단에 풍미하던 모더니즘에 심취하면서 자연스럽게 역사와 현실을 올바로 보고자 하였다. 그런 어느 날 시인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1982년 겨울 늦은 저녁, 군산경찰서로 다급한 전화가 한 통화가 왔다. 버스 승객 중에 누군가 불온 유인물을 놓고 내렸다는 것이다. 버스 안내원은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나라 같은 구절을 보고 신고한 것, 군산경찰서에서 내사한 결과, 술에 취한 이광웅의 제자가 선생님에게서 빌려온 오장환의 시집 『병든 서울』의 필사본을 깜박 두고 내렸다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바로 비극의 시작이 되고 말았다. 군산제일고 교사 5명이 영장도 없이 체포되어 온 것이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 사회의 비판을 억누르기 위해 <오송회 사건>을 본보기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경찰이 공소장에 제시한 불법 서적은 오장환의『병든 서울』, 이영희의『전환시대의 논리』 등이었고, 북한의 교육제도와 순수한 우리말 보존을 평가한 것은 고무찬양죄가 되었다. 단지, 월북작가의 시집을 돌려 봤다는 이유로 이광웅, 박정석, 전성원, 이옥렬, 황윤태, 강상기, 채규구, 엄택수와 조성용 등 군산제일고 교사 9명이 구속되면서 시인은 조작된 공안 사건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것이다. 교사 다섯 명이 소나무 아래에서 모였다 하여 그 유명한 오송회 사건이 된 것이다. 처음에는 다섯 명의 남성고(南星高) 출신 선생님이라 하여 오성회(五星會)로 몰아가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한 분이 다른 학교 출신이어서 성(星)자를 못 쓰고, 대신 소나무 송(松)자로 썼다는 웃지 못할 비사도 전하고 있다. 시인은 용공 사회주의 건설을 기도한 주동자로 조작되어 7년 형을 선고받았고 복역하다가 1987년 6.29선언 이후 4년 8개월 만에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감옥에 있을 당시 시인은 필기도구조차 빼앗긴 상태여서 단 한 줄의 글도 쓰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운동장에서 주워 온 못을 날카롭게 갈아서 우유 곽에다 시를 쓰고, 책 표지를 뜯어 그 위에 붙여 놓은 방법으로 그 시편들의 생명을 지켰다. 그렇게 해서 빛을 본 것이 두 번째 시집 『목숨을 걸고』(창작과비평사, 1989)에 실려 있는 <바깥의 노래>, <바람의 손길>, <햇빛 한참> 등이다. 시인은 당시 감옥에 갇혀 있는 자신의 무력함을 이렇게 노래하기도 했다. 바람이 부네 마파람 바깥 세계로부터의 무슨 전령이나 되듯이 개구리 울음소리 아득히 이 바람결에 실려 오네. <중략> 여수도 무기수도 수갑 찬 사형수도 어느 누구도 이곳에서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와 왜 어떻게 감옥 안에 흐르며 머무는지 손에 잡힐 듯이 말할 수 있을 거네 바람이 부네 세계에서 가장 넓고 부드러운 바람 감옥의 바람 -이광웅의 시 「바람의 손길」의 일부 시인은 1988년 8월 군산 서흥중학교에 복직되었지만, 다시 해직교사가 되었다. 그 이유는 참교육을 부르짖었던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것이었다. 이 무렵 시인은 두 번째 시집 『목숨을 걸고』(창작과비평사, 1989)를 펴냈다. 이 시집에는 옥중생활의 고단함과 통일과 민주에의 열망, 출소 후의 낙수 같은 시, 교사로서의 애환, 그리고 초기 시편들이 수록되었고, 또한 문익환 목사의 서문과 김용택 시인의 발문도 실려 있다. 문익환 목사는 당신의 자상한 마음으로 골라낸 몇 마디 안 되는 말에서 울려오는 가락만으로 우리는 당신의 믿음, 당신의 사랑, 당신의 바람이 얼마나 아픈 것인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군요라고 했다. 극도의 절제된 언어로 무지막지한 고문과 억울한 철창생활을 담담하게 그려놓은 것에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다면서 이 시집을 이렇게 평가하였다. 생명은 거룩하여라. 그래서 우리는 모든 생명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머리를 숙일밖에. 철창을 통해서 흘러든 햇빛얼어 곱은 두 손에 받아 든 햇빛 김용택 시인도 그의 시편을 꼼꼼하게 독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늘 깨어 있는 모습으로 이 땅의 민주화와 민족의 자주화, 그리고 조국 통일을 이루는 날까지 시를 쓸 것이라고 다짐했던 시인을 서해 바다와 그리고 군옥벌이 한눈에 내려다보는 월명공원 날망에 선 한 그루 소나무로 비유하기도 했다. 시인은 우리에게 세 권의 시집을 남겼다. 첫 시집은 1985년에 펴낸 시집은 『대밭』(풀빛, 1985)이다. 이 시집은 시인이 감옥살이할 때 누이동생이 펴냈다고 하는데, 맨 뒷장에는 이런 말이 씌어 있다. 이 시집은 한 결결한 정신의 감동적인 변모의 기록이며, 동시에 내면 서정의 모더니즘에서 민중해방의 리얼리즘으로 나아가는 우리 민족 문학의 한 극적인 승리의 기록이다. 당시 시인과 함께 해직교사였던 도종환 시인(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현 국회의원)은 시인 이광웅을 이렇게 회상하였다. 그대는 이 땅의 맑은 풀잎이었다가 허리에 도끼날이 박힌 상처받은 소나무이었다가 그대는 별자리에서 쫓겨난 착한 별이었다가 견결한 향기로 시드는 가을 들판 마른 쑥잎으로 앉아 있다가 그대는 진흙도 물벌레도 다 와서 살게 하는 고운 호수였다가 천둥번개도 눈보라도 다 품어주는 저녁 하늘이었다가 그대는 지금 갈기갈기 소나기로 내려앉은 슬픔 쏟아지며 쏟아지며 온 세상을 다 적시는 눈물의 빗줄기. -도종환의 시 <이광웅 시인> 전문- 시인은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전북민족문학인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하였고, 도종환, 안도현 등의 후배 시인들과 좋은 시인 선생님이 되기를 꿈 꾸었고, 한때는 교육문예창작회의 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시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전교조운동에 참여하였다 하여 또 해직의 아픔을 당해야 했다. 그 후 전주 한샘학원에서 강사를 하기도 했지만, 1992년에는 아예 서울로 올라가서 창작에만 전념했다. 그런데 그 무렵 시인은 암이라는 새로운 복병을 만나 육신은 암에 의해서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던 것, 암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세 번째 시집 『수선화』(두리, 1992)를 출간했다. 그 후 며칠 지나지 않은 12월 22일, 시인은 52세의 젊은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시인이 세상을 떠난 6년 뒤, 1998년 그를 기억하는 분들이 금강하구둑이 내려다보이는 곳에다 시비를 세웠다. 언제나 바닷바람을 맞고 서 있는 이 시비에는 시인의 대표시 「목숨을 걸고」가 행인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있다. 이땅에서 진짜 술꾼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술을 마셔야 한다. 이 땅에서 참된 연애를 하려거든 목숨을 걸고 연애를 해야 한다. 이 땅에서 좋은 선생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교단에 서야 한다. 뭐든지 진짜가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목숨을 걸고 -이광웅 시집 『목숨을 걸고』(창작과비평사, 1989)- /송일섭 전북문학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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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09 16:34

[제14회 바다문학상 당선작 본상] 오빠의 바다 - 박미림

박미림 집 나간 오빠가 돌아왔다. 거지 행색을 하고. 달포만이었다. 초상집처럼 울고불고 전국을 찾아 나서곤 하던 가족들은 일시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그의 몰골에 할 말을 잃었다. 가난하지만 아들만큼은 온 정성을 다해 키우셨던 부모님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유독 수재(秀才)였던 아들이었다. 내게도 오빠의 초라한 귀가는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었다. 하늘같이 우러러 보이던, 우리 집의 우상이었던. 모범생 오빠, 그의 가출은 연유가 있었다. 난, 한 참 만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고등학생이 된 어느 날부터 그는 모든 걸 포기한 인생 같았다. 짜증을 내고, 무단결석을 하고, 친구들을 불러모아 술판을 벌이고, 온종일 기타를 두드리며 고성방가를 불렀다. 그러다가 급기야 호된 꾸지람을 받은 날, 기다렸다는 듯, 집을 나가버렸던 거였다. 난 오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변해버린 오빠가 섭섭하고 미웠었다. 70년대는 연좌제가 무시무시하던 시절이었다. 우리에겐 얼굴도 모르는 큰아버지가 계셨다. 보도연맹 서기로 일했다는. 6.25가 발발하기 직전, 그가 영문도 모른 채 불려 나가 한밤중에 주검으로 돌아왔다는 소문은, 늘 우리 일가친척을 주눅 들게 했다. 그 끔찍한 사연은 쉬쉬해야만 했던 우리 집의 불행한 가족사였다. 함부로 꿈꿀 수 있는 자유를 앗아갔다. 그로 인해 판검사를 꿈꾸던 삼촌도, 공무원을 원했던 사촌들도 모두 꿈을 접어야 했음을 오빠는 뼈아프게 새기고 있었던 것이다. 연좌제가 걸려있는 가족들에게 똑똑하다는 건, 어쩌면 형벌이었을 거다. 공부한 들 뭘 해,난 희망이 없어,죽고 싶어.오빠가 집을 나가고 난 뒤 이곳저곳 낙서장에는 자신과 시절을 비관하는 글들로 빼곡했었다. 그러니 집을 나간 오빠가 달포 넘어서까지 돌아오지 않았을 때 가족들은 모두 불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제발 살아있기나 해라.그래, 희망이 없는 젊음이란, 이해하고도 남지. 전화도 없던 시절이었다. 온 가족이 단서를 찾느라 책을 뒤지고 친구들을 수소문하고 속을 태우다 그만 지쳐갈 즈음이었다. 그날도 가족들은 눈이 퉁퉁 붓도록 울던 중이었을 거다. 오빠가 돌아왔다. 나는 눈을 의심했다. 마루 끝에 선 저 사람, 옥수수수염 같은 머리카락, 엉클어진 수염, 퀭한 눈, 낯설었다. 저 이가 정녕 내가 아는 우리 오빠란 말인가? 하지만 어색하다거나 반가운 인사를 나눌 새도 없었다. 그는 쓰러져 시체처럼 자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애벌레가 허물을 벗듯 그는 푸르르 깨어났다. 바다 냄새가 났다. 그가 말문을 열었을 때. 죽음 근처에서 헤매던 냄새라곤 믿어지지 않았다. 바다를 한껏 껴안고 돌아온 것만 같았다. 실제로 그는 죽기 위해 생의 끝인 양 바다를 향해 달렸다고 한다. 충청북도 보은 땅, 자신을 태어나게도 했거니와 자신의 삶을 저당잡은 고향을, 가족을, 등지고만 싶었다고 했다. 그리하여 완전한 반대 방향인 바다로 바다로 향해 끝없이 달렸다고 했다. 충청도에서 부산으로, 다시 목포로, 죽고자 찾아 나선 바다였다. 그가 죽기 위해 바다 앞에 설 때마다 이상하리만치, 파도 소리에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안돼, 아들아! 그건 안돼. 바다는 죽고자한 마음들을 흔들어 일으켜 주었을 것이다. 아픔을 토닥토닥 안아주고, 흔들리며 살아온 제 생을 일러주기도 했을 것이다. 그때 문득 파도의 하얀 포말처럼 다가온 사람. 하얀 제복의 대학생이었다. 해양대학. 눈이 부셨다고 했던가? 가슴이 뛰었다고 했던가? 희망처럼 무엇이 번쩍 솟아올랐다고도 했다. 그래 바다와 함께 살자. 파도 너머엔 빛이 있을 것이다! 돌아가자. 다시 돌아가 시작할 것이다. 얼마나 흔들리고 흔들렸던 것일까? 깨어난 그에게 단단한 각오가 보였다. 오빠는 머리를 깎고 독서실로 향했다. 고등학교 1학년을 채 마치지도 않았던 그였다. 그가 불과 1년 남짓, 급기야 검정고시를 거쳐 목표한 대학을 입학하고 무사히 졸업까지 했다. 순탄치는 않았지만, 무사히 외항선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엄마는 늘 부뚜막에 바다를 모셔 놓고 사셨다. 그것은 어머니의 조왕신이자 포세이돈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추운 겨울 부뚜막에 떠 놓았던 조왕보시기 정화수가 얼었다고 야야, 오빠에게 좋은 일이 있을랑갑다. 이것 좀 봐라. 돛을 단 배.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정화수 보시기의 물은 배처럼 얼어있다. 가운데가 볼록 치솟아 정말 바다 위에 돛배 같았다. 나는 웃지 않았다. 굳이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 과학 사전을 찾아보거나 의심하지 않았다. 엄마의 상상이 옳다고 무조건 믿고 싶었다. 사방 바다를 만날 수도 없는 충청도 산골에서 우리 엄마는 부뚜막에 날마다 바다를 모셔 놓았던 거다. 세상의 수많은 생명을 품을 줄 아는 바다, 흔들릴수록 더 아름답게 반짝이는 바다, 엄마의 부뚜막이 그 바다가 아니라고 누가 우길 수 있겠는가? 오빠의 하얀 제복은 우리 가족은 물론 마을의 설렘이었다. 대학생도 귀한 오지 마을, 오빠가 오는 날이면 이웃 마을 언니들까지 괜히 우리 집 앞을 서성대곤 했다. 그런 오빠가 다녀갈 때마다 나는 말로만 듣던 먼 바다 이야기를 하나씩 알아갔다. 바닷가에도 바지락이며 조개 농사를 짓는 어촌이 있다는 것도, 태평양 한가운데엔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밀려와 진짜 배를 넘기도 한다는 것도, 그 파도를 헤치며 오늘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멋진 바다 사나이들이 있다는 것도. 나에겐 모두 처음 듣는 특별한 세상 이야기였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어렵던 시절 우리 가족을 일으켜 준 바다의 신은 누구였던가? 용왕인가? 엄마의 부뚜막 조왕신인가? 황금 갈기를 휘날리며 바다를 달린다는 포세이돈인가?그때 오빠가 잘못되었더라면?바다가 그를 안아주지 않았다면? 끔찍한 일이다. 우리 가족은 또다시 풍비박산이 났을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물려 흔들리고 떠밀려가던 우리 가족을 포근하게 껴안아 준 바다. 그러기에 나는 바다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포기할 뻔했던 오빠의 젊음을 토닥여 주고 일평생 안아 준 바다. 망망대해 가도 가도 끝없던 바다 위에서 꿋꿋이 견디며 가족들을 위해 희생해 온 오빠. 그의 고독한 삶을 존경하는 만큼 나는 바다를 흠모한다. 전화가 왔다. 바다와 평생을 산, 갓 퇴직한 오빠의 초대 전화다. 동생아, 우리 이사한 집에 놀러 올래? 거실에서 바다가 보여. 나는 눈물이 났다. 오빠는 언제까지나 바다와 함께 살고 싶은가보다. 보은(報恩)이리라. 절망이었을 때 그를 안아준 바다에 대한. 수화기 너머엔 바다가 있다. 작은 배 한 척 노을 속 바다 위에 평화롭게 떠 갈 것이다. 일출이 눈부시다면 일몰은 아름답다 했던가? 오빠의 해넘이 풍경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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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08 17:12

혼불만민낭독회, 8일부터 온·오프라인으로

최명희문학관(관장 최기우)의 혼불만민낭독회가 8일부터 30일까지 온오프라인으로 펼쳐진다. 낭독회는 소리 내 읽으면 자연스레 운율이 담겨 한 편의 시가 되고, 판소리가 되는 소설 <혼불>의 특성을 살려 애독자와 문화예술인이 소설의 문장을 쓰고 읽으며 좋은 글로 속을 채우고 마음을 달래는 시간이다. 2017년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한국문학관협회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으로 매년 가을에 열리고 있다. 소설 <혼불>, 100인이 읽고 쓰다를 주제로 열리는 올해 낭독회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주간(9월11월)에 맞춰 기간을 확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온오프라인이 결합한 형태로 독자와 만난다. 온라인 행사는 SNS로 진행한다.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소설 <혼불>의 문장(문단)을 골라 직접 쓴 뒤 글과 얼굴이 보이게 찍은 사진이나 낭독 영상을 페이스북 등에 태그와 함께 게시한 후, 신청서와 사진(영상)을 첨부해 20일까지 메일(jeonjuhonbul@empas.com)로 접수하면 된다. 오프라인 행사는 30일까지 최명희문학관을 방문한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다. 문학관을 배경으로 <혼불> 속 문장을 직접 쓰고 읽는 모습을 촬영해 제출하면 된다. 참가자 중 추첨을 통해 전라북도 공예인들의 예술작품을 선물로 제공한다. 최기우 관장은 언어는 정신의 지문(指紋)이라고 강조한 최명희는 소설 <혼불>이 낱말과 문장 낱낱의 단위로도 충분히 독립된 작품을 이뤄 감동을 선사하기를 희망했다면서 책을 펼치며 단정하고 우아하며 아름답고 정확한 모국어의 뼈와 살, 그리고 우리말과 우리 혼의 무늬를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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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정규
  • 2020.09.06 15:44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