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또 하나의 문화공간, 미술관
사시사철 늘 정겨운 모악산 자락. 봄이면 산나물의 소박한 향긋함을 품고, 여름이면 초록빛 나무들을 안고,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겨울에는 하얗게 변해버린 세상 위에서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낼 새로운 공간.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1068-7번지. 모악산 관광단지 안의 새 주소, 9월 개관을 준비 중인 전북도립미술관이다. 도심에서 떨어져 있지만 좋은 작품을 만나는 행운이 있고, 등산화의 흙발로 찾아도 좋을 여유로움과 휴식을 덤으로 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굳이 거리를 탓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또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찾아오는 미술관은 우리에게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새싹 움트는 봄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전북도립미술관을 살짝 엿보았다. '아무때고 미술관에 가면 좋은 작품이 있다?!'. 정기적으로 새롭게 단장되는 상설전시와 테마가 있는 기획전 등은 도립미술관이 제자리를 잡기위해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미술관들은 고고미술관의 성격이 짙다. 심지어는 '값비싼 고물 집합소'라는 비꼬는 소리를 들을 정도. 이런 현실에서 대중적인 요소들과의 결합·같은 것도 특별하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획 등은 미술관의 경쟁력을 가름하는 중요한 비법이다.이제 미술관도 고상하게 팔짱을 끼고있던 시대는 지났다. 관람객들을 끌어모으는 데 팔을 걷어붙여야 하는 시대, 사람들은 또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미술관을 바라본다.최근들어 국·공립미술관들이 미술관련 이론교육·실기강습·어린이 미술관 등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폭넓게 열고, 미술관 가꾸기 아이디어를 공모하고 햇볕 좋은 날이면 어김없이 미술관 뜨락에서 여러 문화행사를 연다. 사람들의 발걸음을 끊임없이 이어내기 위한 노력이다. 이론교육으로 작품 감상의 눈을 높여주고, 직접 붓을 들고 미술 속으로 풍덩 빠지게 한다면 장기적으로 미술가와 일반인 모두 공생하는 길이다.전문가들은 도립미술관 개관을 앞둔 지금, '지역예술을 위한 문화공간'이라는 희망이나 '알맹이 없는 미술관'이라는 비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지만, 미술관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공간으로 바로 설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훨씬 시급한 일이라고 지적한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는 주문이다.우선 꼽는 과제는 거리감을 없애는 것. 오다가다 들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특별히 마음 먹어야만 찾을 수 있는 공간이라면,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는 특단의 환경이 조성되거나 매력적인 유인책(?)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조언이다. 박제화된 미술관이 아닌, 살아숨쉬는 미술관. 그렇기 위해서는 관람객도 함께 변해야 한다. 미술관의 높은 천장 아래서 혹은 무엇을 표현한 건지 알 수 없는 그림 앞에서 괜시리 주눅 들 필요는 없다. 도민들은 미술관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만으로 산책하듯 그림들 사이를 거닐면 된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자꾸만 가고 싶고, 돌아오는 길에는 기쁨과 여유를 한가득 채워올 수 있는 미술관. 가을이 오면 찾아올, 도민들의 발걸음으로 더욱 단단하고 견고해질 전북도립미술관이 기다려지는 이유다.4월 완공 앞둔 전북도립미술관99년 문화관광부의 1도1미술관 정책이 발표됐다. '끼워넣기 식'이라는 곱지못한 시선과 '문화의 향유기회 확대'라는 달콤한 말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이, 2001년 12월 전북도립미술관이 첫삽을 떴다.모악산 관광단지 내 2천88평 부지에 터를 잡은 도립미술관은 지하 1층·지상 2층으로 5개의 전시실과 야외조각장을 갖추고 있다. 현재 공정률 95%. 4월 초 완공, 9월 개관을 앞두고 있다.전북지역의 유일한 공립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의 첫 전시는 기획전이 될 전망이다. 상당량의 작품이 확보되지 않은 미술관 초기, 상설전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러 장르에서 현대미술의 다양한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열린 체제의 종합미술관을 준비하는 도립미술관은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해내겠다는 포부다. 도내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작품수집심의위원회와 운영자문위원회을 구성해 미술관을 꾸려갈 생각이다. 그러나 도립미술관 준비과정을 보아온 이들의 우려의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다. 미술관의 특성상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고려하며 공사가 진행됐어야 하지만, 사실상 도립미술관은 전시를 위한 공간적 배려없이 설계됐었다. '건물부터 짓고보자는 식'이다보니 반사율이 높은 대리석을 미술관 바닥에 깔거나 작품반입구를 좁게 하는 등 미술관의 현실과 감각을 읽지 못한 공사가 진행됐었다. 지난해 3월 광주시립미술관 김종주씨를 학예연구사로 맞아 뒤늦게서야 이를 수정했다. 항온·항습에 유의해야 하는 작품 보관을 위한 수장고는 장기적으로 미술관 운영에 있어 중요하다. 그러나 2·3백여평에 이르는 다른 미술관에 비하면 도립미술관은 1백20평으로 절반 수준이다. 소장품을 한 점도 확보하지 않은 채 개관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큰 걱정거리는 개관전시를 위한 작가선정이다. 개관전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작가들의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할 것은 뻔한 일이다.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이를 토대로 작가들과 충분한 대화를 거친다면 원만하게 준비되겠지만, 개관을 6개월여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도립미술관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지 못했다. 전라북도는 "조만간 관장이 선임되면 독립사업소의 조직을 갖추고, 구체적인 계획과 그에 따른 예산을 세우겠다”고 설명하지만, 미술관 프로그램의 실질적인 기획을 담당할 학예팀을 먼저 투입시켜 부지런히 준비를 해왔던 부산광역시립미술관의 사례는 좋은 본보기다."전시·수집·보존·연구·교육의 역할을 수행하며, 타 미술관과 차별성을 두겠다”는 김종주 학예연구사는 "전시는 물론, 미술에 대한 이론 및 실기강좌, 어린이 미술관, 미술관 영화상영 등 미술관 문화학교와 다양한 사회교육을 기본 줄기로 관장 선임 후 이를 보충·보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