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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백의 一日五話] 여간첩 마다 하리 총살형

《7뤌 24일》①감격한 마음과 무거운 책임 느껴우리나라 초대 정·부통령이 취임한 날은 1948년 7월 24일이다. 이날 국회의사당에서 취임식을 갖은 이승만 대통령은 “감격한 마음과 감당키 어려운 책무를 느낀다”고 했고, 80세 고령의 부통령 이시영은 나 개인의 영예보다 조국독립에 감격할 뿐이라면서 흘러내리는 눈물로 취임사도 제대로 못했다.②수나라, 50만대군 섬멸고구려 때 수나라의 양제군사가 쳐들어 왔을 때 명장 을지문덕은 우중문과 우문술의 부대 30만 대군을 맞아 교묘한 작전으로 살수(청천강)에 유도, 일대 섬멸작전을 전개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그날이 612년의 오늘이었다. 살수대첩은 우리 전쟁사상 가장 큰 승리이다.③여간첩 마다 하리 총살형1917년의 오늘, 프랑스 파리의 법정에 상오 11시경 한 여인이 나타났다. 몹시 짧은 드레스에 삼각모는 머리에 삐쭉이 얹혀 있었다. 이 여인은 독일의 스파이로 유명한 마다 하리였다. 그녀는 고급 창녀로서 많은 국가 요인을 농락하며, 비밀리에 정보를 수집했었다. 결국 총살형으로 생을 마감했다.④‘삼총사’ 듀마 탄생‘삼총사’의 작자 프랑스의 듀마는 장군의 아들로 1802년 오늘 탄생했다. 그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파리로 나와 필경생활을 했다. 그의 작품은 분방한 상상력과 파란만장한 줄거리로 인기가 높았다. 290여 편의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⑤독일 작곡가 바하 서거독일의 작곡가 바하는 근대음악의 조상이라고도 불린다. 그는 독일의 고유음악을 중심으로 프랑스의 신경향을 수득하여 약 10년간 바이마르 궁전 악장, 또는 교회의 합창지도자로 지냈다. 그의 주요작곡으로 ‘대미사곡’ ‘마테수난곡’을 비롯, 협주곡도 많다. 그는 1750년 오늘 65세로 세상을 떠났다.

  • 지역일반
  • 전북일보
  • 2006.07.24 23:02

[오목대] '고스톱' 비가(悲歌)

무엇이 시나브로 고스톱 열풍을 잠재웠는지 모르겠으나 산업사회가 한창이던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우리는 '고스톱을 모르면 간첩'이라 할만큼 고스톱 문화에 푹 빠져 살았다. 음식점이든 야유회 자리든 사람 셋만 모이면 고스톱판이요, 여관이나 가정집 심지어 사무실에서까지 시도때도 없이 '고' '스톱' 소리가 울려퍼졌으니, 미상불 '고스톱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만도 했다.그렇다고 고스톱을 꼭 사행성 놀음 정도의 저급한 놀이 문화로 몰아붙여야 하는가. 아니다. 도박으로만 발전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오락도 흔치가 않다. 한손으로 화투짝을 움켜쥐고 보일듯 말듯 살짝 쪼여 보는 박진감에다 남이 싸놓은 패 쓸어먹고 쓰리고를 부르는 맛이란... 어느 오락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도박과 오락은 백지장 한장 차이로 경계선을 넘나든다지만 '본전 생각이 나면 도박'이고 '그저 재밌게 잘놀았다고 생각하면 오락'이라지 않던가.고스톱을 치다보면 엉뚱하게 인생살이에 참고가 될만한 교훈을 얻게 되는 수도 있다. 순간의 실수가 큰 결과를 초래한다는 '낙장불입' 사소한 것도 소홀히 하면 안된다는 '피바가지' 무모한 모험은 금물이라는 '독바가지' 현명한 판단력이 있어야 살아남는다는 '쇼당' 등등.. 금과옥조와 같은 교훈이 넘쳐나다. 또 '2등은 소용없다' '열받으면 진다' '강적은 피하는게 상책' '자리 탓 하지 마라'와 같은 고스톱 손자병법 21가지도 새겨들을 만하다.뿐만 아니다. 고스톱은 정치인과 사회현상을 신랄하게 풍자하여 서민들을 대리만족시켜주는 묘미도 있다. 싹쓸이를 하면 상대방 패를 아무 것이나 가져오는 '전두환 고스톱'에 5 2 8 열끗을 먹으면 져도 돈을 내지 않는 '오리발 고스톱'까지 별별 규칙을 다 만들어 고스톱을 한 차원 높은 놀이문화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엊그제 전주지법에서 점당 백원짜리 고스톱을 친 농민이 7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그는 도박전과가 없는 초범이었다. 법이 준엄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판결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몇 억원씩 판돈을 걸고 내기골프를 친 통 큰 부자들에게는 도박인가 아닌가를 놓고 고민하면서 단돈 백원짜리 오락사범(?)에게는 추상 같은 법의 잣대를 들이대다니 죽은 공자님도 벌떡 일어날 일이다. 요즘 백원짜리 동전은 유치원생도 줍지 않는다는데.

  • 지역일반
  • 전북일보
  • 2006.07.24 23:02

"문화향기 지역에도 피어나야..." 연극인 최종원씨

30년 이상 연극무대를 중심으로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종횡무진해온 최종원씨(56)가 군산시민들에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힘들었던 연극무대의 생활과 자녀교육 등으로 시작된 그의 이야기는 스크린쿼터 문제와 대통령선거운동에 참여한 뒷얘기들로 그동안의 삶을 풀어놓았다. 그런가하면 인구 26만명의 군산시에 제대로된 문화예술공간이 없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라며 일침을 놓기도 했다. 연극인 최종원씨가 20일 오후 군산시청 대강당에서 제6기 군산시민자치대학 상반기 마지막 강좌 특강에 나섰다.‘연극과 인생’을 주제로한 이날 특강에서 문화예술계 활동을 통해 조금이나마 국민들을 위해 ‘울며 웃기며’ 살아온 삶에 보람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두 자녀의 대학진학문제에 대한 경험과 올해 아흔여덟이 된 노모에 대한 이야기로 자녀문제와 어르신을 공경하는 일에 대해 애정과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화제는 현재 진행중인 한미FTA와 관련해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 문제를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그는 “한편당 1000억원을 쏟아붓는 헐리우드영화와 맞서기에는 우리영화의 수준과 규모는 여전히 취약하다”며 “우리 영화계와 국민의 입장에선 협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문화의 중요성을 얘기하면서 제대로 문화정책을 이끌지 못하는 현 정부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그는 “현 정부에서는 ‘문화’는 없다”며 “문화예술계가 바라는 내용을 듣거나 전하는 통로조차도 없다”고 아쉬워했다. 또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문화와의 접목이 절실하다”며 “몇해전 군산을 찾았을 때도 문화예술회관이 없는데 놀랐는데, 여전히 갖춰지지 않은 것에 놀랐다”고 말했다.최씨는 “시민들의 행복을 위한 길, 시민들이 문화향기를 느낄 수 있는 지역문화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KBS 드라마 서울 1945에 출연, 개성있는 연기로 사랑받고 있는 최씨는 영화 ‘영원한 제국’(1995)으로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고, KBS 연기대상 남자조연상을 수상한 바있다.

  • 지역일반
  • 이성각
  • 2006.07.21 23:02

이미영교사·박용성교수 도교육위 출마 선언

이미영 전북청소년교육문화원 이사장(완주 고산고 교사)과 박용성 군산대 교수가 20일 도교육위원 출마를 선언했다.이 이사장은 이날 오전 도교육청 기자실에서 간담회를 갖고 “능력과 열정이 없는 사람들이 전북교육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도록 방관해서는 안되며, 이제는 발로 뛰며 실천으로 일관해온 건강한 일꾼이 나서서 역할과 책임을 맡아야 한다”면서 “전북교육의 밝은 미래를 꿈꾸는 수 많은 학생, 학부모, 교사, 시민사회의 염원을 등에 업고 제5대 교육위원 선거에 나선다”고 밝혔다.김송희 덕진초등 교장과 함께 여성 후보로 출마하는 이 교사는 “교사로 첫 걸음을 시작하면서 교사의 사명감을 한 순간도 소홀히 한 적이 없으며 2번의 해직과 복직, 전교조 전북지부장, 교육감 선거 출마, 사단법인 전북청소년교육문화원 설립 등 항상 전북교육의 한 복판에 서있었다”면서 “전북교육 발전에 대한 학부모와 교육가족의 염원을 이루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박용성 군산대 교수도 이날 오전 도교육청에서 가진 기자간담에서 “교육위원은 어느 누구보다 교육에 관한 전문적 지식과 청렴하고 올곧은 성품을 지닌 인격과 자질을 겸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들고 “초등교사로 시작해 중·고교를 거쳐 대학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제4대 교육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교육현장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교육위원이라는 평을 들었다”면서 7·31 교육위원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박 교수는 “교육위원 재직시절 농어촌 지역의 교육진흥과 교원들의 처우개선 및 사기진작을 위해 노력했지만 우리 지역에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크고 작은 교육문제들이 산적해 있다”면서 “그 동안의 교육경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주민과 교원의 소리에 귀 기울여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소신과 열정있는 교육위원이 되겠다”고 말했다.

  • 지역일반
  • 강인석
  • 2006.07.21 23:02

"다양한 여가활동 위해 프로그램 개발"

“고령화사회를 맞아 어르신들에게 다양한 여가 생활을 권장하고 효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이번 행사를 마련했습니다”제1회 전북실버문화축제를 주도한 남궁단 한국노인복지관협회 전북지회장(52).“도내 노인인구가 전북지역 전체인구의 12%인 23만명에 달해 전국 7.7%과 비교할 때 전북은 타지역에 비해 인구 고령화가 심각한 실정입니다. 이 같은 현실에서 이번 행사는 노인들의 안락한 노후생활을 위한 건강 증진과 건전한 여가활동을 위한 실버문화 창출의 새 전기를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남궁 지회장은 최근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노인문제에 대해 “젊었을 때는 시간과 경제적 이유때문에 건강이나 여가생활을 챙기지 못했고 노년이 돼서는 사회의 주변인으로 밀려나 무의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노인들이 상당수에 달한다”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긍심을 갖는게 건강한 노후생활을 보낼 수 있는 비결이다”고 말했다.군산노인종합복지관장을 겸임하고 있는 남궁 지회장은 “현재 도내 10곳의 노인복지관에서 3만여명의 노인들이 다양한 사회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삶의 활기를 되찾고 있다”며 “한문이나 외국어, 국악 등 전문성을 지닌 노인들은 복지관과 연계된 유관기관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하는 등 제2의 인생을 즐기고 있다”고 설명했다.이날 행사에서 갖가지 솜씨를 뽐낸 노인들은 대부분 노인복지관 교육프로그램 수강생들로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선보이며 신명난 하루를 보냈다.남궁 지회장은 “건강한 노후를 위한 생산적 여가활동을 위해 보다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힘쓸 계획이다”며 “앞으로 노인복지에 대한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를 구해 전북실버문화축제가 실버세대만의 축제가 아닌 도민 모두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행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굳은 의지를 보였다.

  • 지역일반
  • 강현규
  • 2006.07.21 23:02

[이치백의 一日五話] 세계 최고 추위 영하 89.2도

《7월 21일》①남극은 가장 추운 곳7월 1일은 세계 사상 가장 낮은 기온을 기록한 날이다. 1983년 오늘, 남극의 보스톡 지역에서는 놀랍게도 영하 89.2도가 관측되었던 것이다. 이 보스톡은 남극의 북부 해안선에서 1500㎞ 가량의 내륙에 위치하고 있으며, 표고는 3,000m이다. 겨울엔 태양을 볼 수 없다. ②미국 개입 새 수령으로9년간에 걸쳐 프랑스군 9만 5,000명과 베트남인 13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종결된 것은 1954년의 오늘이었다. 당시 프랑스군의 거점 디엔비엔푸가 56일간의 사투 끝에 함락되자 프랑스 측에서 휴전회담에 응했던 것이다. 그런데 1956년 미국이 개입, 새로운 수렁으로 빠져들었다.③세계 첫 여성수상 탄생국민의 준엄한 심판은 내려졌다. 야자수 기름에 불을 밝히고는 눈물을 흘리며, 죽은 남편의 초상 앞에 무릎을 끊었다. 그녀는 목메인 소리로 “여보! 나는 오늘 스리랑카 자유당의 총재가 되었고, 내각수상까지 되었소” 라고 보고했다. 반다라나이케는 1960년 오늘, 세계 첫 여성 수상이 된 것이다.④스페인 무적함대 대패스페인의 필리페 2세의 명에 의해 영국 본토를 노리는 124척의 함대가 플리머드항 앞바다에 나타난 것은 1588년 7월 19일이었는데 이틀 후인 21일, 마침내 역사적인 대 해전이 벌어졌다. 8척의 소형 영국 선은 정확한 포격으로 본때를 보였다. 스페인의 무적함대는 대패했다.⑤전주시 확장 계획 반대오늘날 전주시의 중심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태평,진북동을 비롯, 인후,화산,노송동은 당초 왼주군 이동면이었다. 그것을 1929년 전주읍에서 확장계획으로 편입하려하자, 1929년의 오늘, 이동면에서는 진북사에 모여 면민대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그 후 이동면은 전체가 완전히 편입되었다.《7월 22일》①황윤길 일행 일본 도착임진왜란 직전, 일본의 풍신수길의 우리나라 침략여부를 살피기 위해 떠난 황윤길,김성일이 1590년 오늘 일본에 도착했다. 이듬해 돌아온 정사인 서인 황윤길은 침략해올 것이라고 보고 한데에 반해 동인 김성일은 그와는 정반대의 견해를 주장했다. 그러나 1년 후 왜놈들은 침략해 왔다. ②톨스토이 집에 큰 불톨스토이 하면 제정 러시아의 대문호로 유명하다. 비록 노벨문학상은 받은바 없지만 그의 작품 ‘전쟁과 평화’와 ‘부활’은 세계적인 명작이다. 지독한 악처 밑에서 고생도 했다는 그의 집에 1910년의 오늘 큰 불이 일어났다. 그로 인해 많은 원고가 불타버렸다.③유전학자 멘델 탄생유전학자인 멘델은 1822년 오늘, 오스트리아의 한 시골에서 태어났다. 그는 수도원에서 수습시절부터 농업을 공부하여 정원에서 완두콩의 교잡육종(交雜育種)의 실험에 성공, 유전이 일정한 법칙에 따른다는 것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 당시는 인정을 못 받고 30년 후에야 주목을 받았다.④단엽기로 첫 세계 1주미국의 비행사 헤이리?H?포스트는 단엽 비행기를 이용, 세계 1주 비행에 성공했다. 1933년 오늘, 단독으로 뉴욕을 출발하여 베르린→모스코바→에드먼턴까지를 세계에서 최초로 비행했다. 소요 시간은 186시간 49분이 걸렸다. 날짜로 다시 계산하면 7일 18시간 49분이다.⑤박인수에 1심서 무죄한국전쟁 직후, 사회풍기가 혼란하던 때 댄스가 유행했다. 당시 박인수라는 댄스의 명인이 나타나 그를 거쳐 간 여인이 70여명이나 되었다. 검찰에서는 그를 혼인빙자 간음죄로 기소했다. 그러나 1955년 오늘, 1심에서 권순영 판사는 “법은 어디까지나 건전한 정조만을 보호 한다”고 무죄를 선고했다.《7월 23일》①소파 방정환 서거우리나라에서 어린이 운동을 처음 시작한 소파 방정환은 1931년의 오늘, 32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어린이 운동을 시작한 것은 1921년 일본 유학시절부터였다. 당시 그는 천도교 소년회를 조직, 어린이 헌장을 만들었으며, ‘어린이 날’을 제정하여 모범어린이에게 시상도 했다.②난파 노래비 복원수원 팔달공원에 세워진 홍 난파의 노래비가 너무도 훼손되어 1974년 오늘 복원되었다. 당초 난파 노래비는 1968년 10월, ‘고향의 봄’ 작곡 70주년을 맞아 새싹회와 수원시민 및 학생들의 성금에 의해 세웠던 것이다. 그런데 흉상 등이 도난당했었다.③‘홍도야 우지마라’ 초연한 때, 연극으로, 노래로 유명했던 ‘홍도야 우지마라’의 원작명은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이다. 원작자는 문예봉의 남편 임선규(강경상고 출신)였고, 주연은 황철과 차홍녀였다. 연극으로 첫 공연한 것은 1936년의 오늘, 서울 서대문의 동양극장에서였다. ④무단정치 원흉 착임우리나라에서 일제가 최초로 소위 무단정치를 감행한 자는 테라우치(寺內正毅)였다. 육군대장 출신인 그는 이등박문에 이어 1910년 오늘, 2대 통감으로 오면서 일본군 사령관 하세가와(長谷川好道), 헌병사령관 아카시(明石元二郞)와 더불어 무자비한 무단?철권정치를 전개했다.⑤대 서24절기의 하나인 대서는 대체로 7월 23~24일경이다. 음력으로는 6월이다. 태양의 황경이 120도에 도달할 때, 장마가 걷히고 본격적인 불볕더위가 시작된다. 날마다 태양은 대지를 달구고, 매미는 지겹도록 울어댄다. 사방 어딜 보나 푸르름으로 가득하다.

  • 지역일반
  • 전북일보
  • 2006.07.21 23:02

[JJAN 독자세상] 아버지의 뜨거운 눈물

안녕하세요? 첫째 딸 은영이예요. 아버지께 이렇게나마 편지로써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 제 마음이 뿌듯함을 느낍니다.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난 지 어언 22년. 제가 부쩍 커버린 만큼 아버지께도 세월의 흔적이 엿보여 마음 한 구석이 아련하게 젖어들 때가 많아요. 제가 어렸을 적 아버지의 어깨는 올라 갈 수 없을 만큼 무척이나 크고 높은 산이었지만, 지금은 왜 그리도 좁아 보이는지…. 아버지, 어머니. 저는 부족하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답니다. 어린 시절에 철없이 행동했던 제 모습 하나하나를 되돌아보기도 하구요. 아버지가 옳은 길로 인도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전 없을 거예요. 아버지가 부끄러워 했을 때는 정말 도망치고 싶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제 자신이 부끄러웠던 것이었어요. 좋은 것, 좋은 옷 사달라고 말 한마디만 하여도 아버지는 아무말 없이 사주셨죠. 지금도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생각하시고 농담을 건네시고, 말없이 웃어주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따뜻한 사랑을 느껴요.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해줄 수 있지만, 자식은 부모에게 모든 것을 해 줄 수 없다는 말을 항상 새기면서 살고 있어요. 언젠가 아버지의 뜨거운 첫 눈물을 보았을 때, 제 자신이 그렇게 싫었던 적이 없었고,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 들어서 도무지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항상 웃으시지만 아버지의 속마음은 울고 있을 때도 있었구나, 나는 어디서든 눈물을 보일 수 있지만 ‘아버지’란 존재는 울 수 없기에 슬픈 사람이구나. 그런 생각이 드니까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이제 아버지 얼굴에 환한 웃음꽃 피워드리는 그런 딸이 되고 싶습니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저에게 술자리를 허락하셨죠. 그때 아버지는 저에게 “딸에게 기대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 아버지의 쓸쓸함을 알아차리고 가슴이 아파서 혼났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존재하기에 제가, 그리고 우리 가족이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너무 행복합니다. 지금은 큰 딸인 제가 기대만큼 해 드리지 못해 죄송하지만, 전 그래도 확신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나약하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도전하고 성공하는 그 날까지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꼭 아버지, 어머니 얼굴에서 환한 빛이 솟아나게 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저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였지만, 저는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꼭 대접받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게 저의 좌우명이지요. 전 항상 저의 좌우명을 새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뒷동산의 바위처럼, 때로는 시골의 느티나무처럼 큰 키를 가진 제 마음속의 영원한 존재이십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나의 어머니 아버지. 2006년 7월 19일사랑하는 큰 딸 은영이 올림 /송은영(전주대학교 3학년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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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06.07.2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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