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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덕성여자대학교 이사장 이종훈 - 촌티 고교생

전쟁 중에 증조부모 모두 돌아가시고 숙부들은 결혼하여 분가하고 고모들도 출가하여 식구들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동생들이 계속 태어나 대가족은 계속되었다. 증조부와 조부 그리고 아버지 모두 전형적인 농촌의 선비셨으며, 어렸을 때 증조부의 서당과 향교에서 백일장을 여는 것을 본적도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나로 하여금 직업의식을 약하게 만들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장래 희망도 별로 없어서 공부하다 자연스럽게 대학교수가 돼 학자의 길을 가게 된 것 같으며, 집사람도 그런 인연으로 선택하게 됐다. 아들과 두 딸도 모두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대학인이 되었다.중학교와 다른 고등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에 모두 생소하고 친구도 전혀 없어 학교생활은 재미도 없었다.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식으로 기차통학을 반복하였다. 전쟁 중이라 경제적인 여유도 점점 없어졌고 학교 내에서의 생활도 촌티를 벗어나지 못하는 전형적인 샛님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젊은 청년이 무엇이 두려워서 자신의 비전과 야망 하나 키우지 못했는지 후회도 된다. 스스로 그때의 내 자신을 평가한다면 유능하지도 못하고 현명하지도 못한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렇다고 무능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어리석은 모습이었다.특히 고등학교 때는 이방인 신세가 되어 의욕도 없어졌고, 더욱이 담임선생님들과도 각별하지 못하여 무미건조한 학교생활을 했을 뿐이다. 다행스럽다면, 특별히 영어를 잘한 것도 아니었는데 아주 엄격하셨던 정락선 영어 선생님으로부터는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분을 찾아뵙는 스승으로 기쁘게 모시고 있다.3학년이 되어서도 장래의 희망과 대학의 전공분야를 정하지 못했는데 경제과목에 취미가 생겨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흔히 접하는 회사나 은행 그리고 금융조합이 무엇인지 잘 몰랐는데, 경제과목을 통해서 비로소 그 역할을 짐작하게 되었고, 궁금했던 사회물정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산업과 직업과 직종도 알게 되었으며, 이것이 바로 세상을 알게 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경제공부에 취미를 갖게 되었다.초등학교 때나 중학교 때는 지리과목을 좋아했다. 농촌마을이 생활의 전부였던 나는 지리과목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고 그러면서 스스로 탐구도 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 이미 서울지도에 관심이 있었는데, 군산·이리·전주 등 두 글자의 지명과는 달리 서울의 영등포·노량진·이태원 등 세 글자로 된 지명도 신기하게 생각되었다. 일본·중국은 물론이고 세계지도를 그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신기하지만 거기에서 큰 의미를 느끼지를 못했는데, 경제과목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무언가 큰 뜻을 알게 되는 것 같아서 좋아했다. 그래서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조부께서는 ‘어떻게 먹고살기 위해 상과대학을 가느냐!’는 것이었다. 남자가 큰 뜻을 가지고 법과대학에 가라고 강조하셨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의식이 강하셨지만, 나는 직업으로서의 법관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고 그때 권력에 대한 저항도 있었던 터였다. 결국 대학입시공부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실력이 부족하여 소위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대신 때마침 이리에 피란 내려온 중앙대학교의 분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 지역일반
  • 전북일보
  • 2006.07.31 23:02

[이치백의 一日五話] 이준열사 헤이그서 순국

《7월 31일》①이준 선생 ‘분사’로1907년 헤이그에서 열린 세계평화회의에 고종의 밀서를 휴대하고 참석하려다가 일제의 방해로 거절당한 일이 있었다. 그러자 이준 열사는 7월 14일 현지에서 돌연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되자 세상에서는 할복으로 순국했다고 전해져 왔다. 이에 1957년 7월 31일, 당국에서 ‘분사’로 결론을 내렸다.②진보당 조봉암 당수 처형진보당 당수로서 북한의 남파간첩 양명산에게서 정치자금 수령 및 무기불법 소지혐의 등으로 대법원 판결에서 사형이 선고된 조봉암이 1959년 7월 31일 처형되었다. 이 사건은 서울지법의 판결에서 공작금 수령은 무죄이고, 다만 무기불법소지로 5년형이 선고 되었었다.③매국역적 ‘합방’ 모의구한말의 매국여적 이완용?송병준?박제순?조중현 등 소위 대신급들이 1910년 7월 31일 비밀리에 모임을 갖고 한일합방 문제에 대해 모의를 했다. 이자들은 일찍부터 일제의 주구가 되어, 왜놈들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던 자들로써, 이날 한일합방의 촉진책을 논의했던 것이다.④에디슨, 축음기 발명미국의 발명왕 에디슨이 1876년 7월 31일, 축음기를 발명했다. 학교교육이라고는 3개월밖에 받은 일이 없으나 어머니 지도로 공부한 그는 이 외에도 전등·영사기·축전지·투표기록장치·시세통보기 등 무려 1천여 종의 발명특허를 얻었다. 1847년 2월 7일 출생한 그는 1931년 10월 18일 84세에 세상을 떠났다.⑤칠 석오늘은 음력 7월 초이렛날로 칠석. 이날엔 은하 동쪽의 견우와 서쪽의 직녀가 오작교에서 1년에 딱 한번 만나는 날이라고 전해 온다. 또 이날 여인네들은 ‘걸교’라 하여 견우와 직녀에게 길쌈과 바느질을 잘하게 해달라고 빌기도 했고, 책을 볕에 쬐이고 통풍시키는 ‘폭서’도 했다.

  • 지역일반
  • 전북일보
  • 2006.07.31 23:02

[딱따구리] 문화향기 흐르는 군산을

‘오늘 와보니 몇년전과 달라진게 없이 여전하더라. 인구 26만명에 제대로 된 공연장 하나 없다니…’. 며칠전 군산시의 초청특강에 초청된 연극인 최종원씨의 말이다. ‘폼나는 공연장도 좋지만, 공연장을 채울 수 있는 예술단체에 대한 관심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군산지역에서 10년 가까이 연극판을 지켜온 한 연극인의 하소연이다. 사실 공연장이라기 보단 민방위교육장으로 어울릴만한 시민문화회관도, 지역문화예술에 대한 무관심도 모두 문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군산의 ‘척박한 문화환경’에 시민들의 무감각에 있다. 시장선거를 앞두고 문화예술단체도, 후보들도 한결같이 공약제안과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때 뿐이었다. 아마도 이전 시장선거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문화환경에 대한 시민들의 무감각은 단체장으로 하여금 ‘지역문화가 곧 자산’이라는 인식을 흐리게 만든다. 군산은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신임 시장은 ‘50만 국제관광기업도시 군산건설’를 임기 목표로 세웠다. 새만금 관광을 구도심과 연계해 연간 50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군산의 근현대 생활사를 새롭게 재구성해보려는 시도인 ‘해망동 공공미술 프로젝트’ 역시 맥을 같이 한다. 또 새만금 효과와 군산지역에 산재해있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연계활용할 경우 불가능한 계획은 아닌 것같다.그러나 도시 관광은 문화적 토양과 향기가 어우러질 때 가능하다. 단순한 ‘보는 관광’이 아니라, 향기를 느끼는 관광이 돼야 한다. 특히 문화적 향기는 ‘관광용’이 아니라 시민들의 ‘삶의 질’차원에서도 꼭 필요한 요소다. ‘50만명 국제도시’에 문화가 없다면 졸부의 서재에 꽂힌 장식용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다를 게 없다.

  • 지역일반
  • 이성각
  • 2006.07.31 23:02

[발언대] 용담댐 수질보전에 주민 앞장서야

태풍 “에위니아”가 한반도를 강타하고 기상이변에 따른 집중호우로 인명 및 재산피해와 더불어 많은 이재민들이 고통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댐을 관리하는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이번 물난리중에도 전북 북부지역은 타지역보다 집중호우가 적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용담다목적댐을 관리하는 책임자로서 매일 직원들과 함께 밤을 새우며 긴장속에서 저수지 운영관리를 하고 장마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남다른 감회를 느낀다. 용담댐은 전북지역의 생활 및 공업용수공급과 금강하류의 하천유지 용수를 공급함과 더불어 1억37백만톤의 홍수를 조절하는 다목적댐이다. 이달 15일이후 태풍“에위니아”로 총 446mm비가 내려 댐으로 3억 5천만톤의 홍수가 밀려왔으나 전량 저수지에 가두어 수문방류를 하지 않음으로써 댐하류 수위를 2m 저하시켜 홍수피해를 크게 줄였으며 내년 전북권의 안정적인 용수공급도 일시에 해결하게 되었다. 한편 이번 집중호우로 댐상류하천과 농경지, 산림등에 산재되어 있는 오염물질의 다량유입으로 본격적인 더위와 함께 수질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부유물을 조기에 수거함으로써 수질오염을 최소화하고 조류발생저감약품(PAC, 황토등)살포, 조류조사횟수 강화등의 실용적인 대책과 더불어 유역내 오염행위에 대한 계도와 저수지 주변 환경특별점검을 강화해야 한다.그러나 댐저수지내 수질오염을 근본적으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저수지상류의 철저한 하수처리와 축산분뇨관리, 농경지 비료유출방지 대책등을 지자체와 함께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아울러 부유쓰레기는 쓰레기 발생을 줄이는 일이 최선이므로 휴가철 쓰레기 되가져가기, 저수지주변에 생활쓰레기 조기수거 A2캠페인등을 전개하면서 저수지 수질보전에 대한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할 것이다./김원택(수자원공사 용담댐관리단장)

  • 지역일반
  • 전북일보
  • 2006.07.31 23:02

[시론] 시작도 끝도 경제다 - 김준규

김 완주 전북 도지사는 도정의 알파와 오메가를 ‘경제 살리기’로 정하고 대장정을 시작 하였다. 취임식에서는 ‘중국시장개척단’을 파송하더니, 행사가 끝난 후 군산항을 시찰함으로써 그의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군산항이 5위권에 있을 때 전주는 7대 도시의 위상을 뽐냈으나 군산항이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과정에서 전북의 수도인 전주 또한 15권 도시로 추락 했다. 유럽인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속담 중에 “돈이 없으면 음악도 없다 Ka Geld Ka Music" 란 말이 있다. 우리 전북이 예향의 고장으로 명맥을 유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조와 일제시대에 농도로서 타도보다 먹고사는데 어려움이 없었던 덕분 이었다. 그러나 산업화에 뒤처지면서 인구는 180만으로 줄고 지역 총 생산고(GDP)는 전국대비 2 퍼센트에도 못 미치고 있는 지금의 형편에서는 예향 이라는 자부심마저 전남-광주에 빼앗기고 있다.지금 180만 도민이 떨쳐 일어나 경제를 살리지 않으면 경제학자 넉시(R. Nurkse)가 주장하는 ‘빈곤의 악순환구조’가 우리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참여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지방분권, 혁신’정책이 정착되기도 전에 ‘대 수도권론’이 본격화 되면서 오히려 지방경제가 위축되는 현상은 우리 전북을 더 긴장 시키고 있다. 전북경제를 살리는 일에는 정파가 있을 수 없고, 오직 ‘전라북도당’ 만이 있다는 김 지사의 절박한 외침이 도민을 하나로 묶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서양의 손자라 일컬어지는 프러시아제국의 몰트케 원수는 나라가 융성 하려면 네 가지의 G 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첫째는 돈(Geld) 둘째는 창의(Gedanken) 셋째로는 인내(Geduld) 넷째 행운(Gluck)다. 우리 전북이 돈은 없지만 ‘창의력’과 ‘인내심’ 신의 도우심을 구하는 높은 ‘종교심’을 잘 활용해 볼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와 일부 환경단체가 의구심을 갖고 있는 새만금 사업도 생각을 잘 해보면 국가를 먹여 살리는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들이 관변 연구단체에 용역을 주어서 만들어 내는 논리로는 세계와 경쟁하는데 한계가 있다. 지금도 새만금 내부용역을 자신 있게 공개 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이번 기회에 삼성 경제 연구소, 삼성 환경연구소와 같은 정상급 연구소들을 전북의 싱크 탱크로 활용하여 세계적인 연구 결과들을 전북발전에 직접 활용하는 방법을 제안 해본다. 전북경제가 살려면 무엇보다도 전주시와 전주시민들의 경제에 대한 인식전환이 우선 되어야 한다. 비빔밥. 한옥, 합죽선이 전주를 먹여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지식기반, 연구도시로 발전하여 교육도시의 명성을 되찾아 와야 되고, 동시에 첨단 제조업을 유치하여 소비도시가 아닌 생산 도시로 거듭나야한다. 경전철 문제도 구미 제작사의 공장을 전주로 유치하여 아시아 시장 개척 기지로 육성하는 그랜드 플랜으로 접근 해볼 필요가 있다. 도내 시군이 잘살면 그 혜택을 가장 먼저 받아 누리는 곳은 전주이건만 전주가 전북을 이끌어가는 능력은 항상 기대 수준에 못 미쳤기에 드리는 충고다. 가장 강한 경제를 가지고 있는 경남도청과 창원시는 지역 내 국내 정상급 민간기업의 인적, 정보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전라북도와 시군이 벤치마킹 해야 할 부분이다. 중국경제가 기형적으로 커지면서 해외자본에 대한 차별을 본격화함으로 이탈 해 나오는 자본을 전북으로 유치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군산경제특구를 정부가 지정해 주면 지난 3년간 ‘인천, 부산, 광양’ 경제특구의 시행착오를 극복하면서 한국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새 전북임을 증명 해 보일 수 있다. 중앙정부가 매사 부정적 시각에서 벗어나 전북을 위기를 돌파하는 돌격부대로 육성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의 미래 전북경제에 달려있다 !/김준규(경제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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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7.3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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