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70주년 전북대학교] (상)태동·성장의 발자취 - 지역과 함께 쌓은 상아탑…도전과 성장 '큰걸음'
전북대학교가 오는 15일 개교 70주년 기념일을 맞는다.지역 거점 국립대인 전북대는 올 초 성장을 이룬 70년, 성숙을 향한 100년을 새 캐치프레이즈로 정했다. 지난 70년 동안 이룬 성장을 바탕으로 미래 성숙의 100년을 향해 힘차게 도약하겠다는 의미다. 성장을 넘어 성숙을 지향하는 대학의 비전도 구체화하고 있다. 특히 대학의 특성과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창조적 명품 브랜드 창출에 힘을 쏟고 있다. 개교 70주년을 맞아 지역과 소통하면서 대학의 자부심과 역동성을 알리고, 지속가능한 발전의 토대를 다지는 다양한 기념사업도 착착 추진하고 있다. 지역과 함께 성장한 전북대 70년의 발자취와 현재, 그리고 대학이 구상하는 미래의 청사진을 세 차례에 걸쳐 들여다본다.전북대는 전주의 미목(眉目)이라 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고, 천년 고도의 성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땅에 자리 잡고 있다. 학교 부지는 능선이 아름답고 호수가 있으며 묘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캠퍼스가 위치한 건지산 자락은 조선 왕조의 시조를 모신 성지로 천년 고도의 역사와 전통이 도도히 흘러, 대학의 70년 성장을 밀어줬고 앞으로 나아갈 100년의 성숙을 이끌어가고 있다. ( 전북대학교 70년사 발췌)전북대는 1947년 10월 15일 설립인가를 받아 이듬해 4월 개교한 도립 이리농과대학과 전북향교재단에서 운영한 전주 명륜대학, 그리고 군산대학관(사립) 등 3개 교육기관이 모체다.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1951년 10월 이들 3개 교육기관을 통합하여 국립 전북대 설립인가를 받았고, 1952년 6월 개교했다. 당시 대학의 규모는 5개 단과대학, 16개 학과에 정원 2700명이었다.대학 설립에는 도민의 힘이 컸다.지역사회에서 국립 전북대 설립을 추진하던 당시는 전란 중이었기 때문에 정부의 대학 설립 자금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대학설립 추진위원회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는 기금 확보였다.당시 대학설립 추진위원회가 찾아낸 돌파구는 전북도민으로부터 국채를 모집하는 것이었다. 이후 전북향교재단이 재산 및 토지를 기부하고, 도민이 모금 운동에 십시일반 참여해 대학 설립인가 신청에 필요한 기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지역에 번듯한 고등교육기관이 있어야 한다는 여론과 지역사회의 호응이 국립 전북대 설립의 토대가 됐다.정부의 대학 설립 인가 후 도립 이리농과대학은 전북대 농과대학, 군산대학관은 상과대학, 전주 명륜대학은 문리과대학과 법과대학으로 각각 개편이관됐다.대학 출범 초기 시련과 과제도 적지 않았다. 우선 전주와 군산, 익산(당시 이리)지역에 분산된 5개 단과대학을 한곳에 모으고, 교지도 확보해야 했다. 개교 당시 대학본부는 전주 중앙동에 있는 객사의 일부를 사용했다. 또 상대는 일본인 소유였던 농장 건물, 농과대학은 이리농림학교 교사, 공과대학은 이리공고 교사를 빌려 쓰는 형편이었다.이에 따라 대학 측은 교사 신축을 위한 도민 모금 운동을 전개했고, 지역사회의 성원으로 1960년대 중반 옛 조선황실재단이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매입해 오늘날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광활한 캠퍼스를 확보하게 됐다.이처럼 국립 전북대는 도민의 성원과 전북향교재단, 옛 조선황실재단의 후원협력으로 토대를 다진 셈이다.이후 지역 거점 국립대학으로서의 안정적 기반을 닦은 전북대는 1975년 도립병원을 인수해 의과대학 부속병원을 설치했고, 1977년에는 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를 개교했다.또 2008년에는 익산대학과 통합했고, 2009년에는 한국폴리텍Ⅴ대학 고창캠퍼스를 인수한 데 이어 2012년 군산-새만금 캠퍼스를 개교하면서 성장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