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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스쿨존 사고 전북도 예외 아니다…저감대책 지속 추진해야

어린이는 성인에 비해 위험을 인지하고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차량의 속도와 거리를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고, 순간적으로 도로에 뛰어드는 등 예측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학교 주변만큼은 어린이를 기준으로 교통환경을 설계하고 특별한 보호조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세계 주요 교통선진국들이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을 운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19년 고(故) 김민식 군 사고는 어린이 안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이후 이른바 민식이법이 제정되면서 어린이보호구역 내 신호등과 과속단속카메라 설치가 확대되고 처벌도 강화됐다. 어린이의 생명과 안전은 어떤 가치와도 바꿀 수 없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제도적 장치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제도와 시설 확충에도 불구하고 스쿨존 내 어린이 교통사고는 줄지 않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23~2025년) 전국 스쿨존에서 발생한 어린이 교통사고는 1939건에 달했다. 전북에서도 같은 기간 49건이 발생했다. 농촌 공동화와 학령인구 감소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지역 여건을 감안하더라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수치다.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운전자들의 안전의식이 뒷받침돼야 한다. 아무리 방호울타리와 무인단속장비를 설치하고 제한속도를 강화하더라도 운전자들이 이를 지키지 않는다면 사고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 제한속도 준수와 횡단보도 앞 일시정지 등은 운전자의 선택이 아닌 의무다. 그렇다고 물리적 저감대책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정부의 이번 저감대책 지역 선정에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어린이 안전정책은 단순히 지역별 수요 건수 등을 비교해 지원 여부를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개별 현장의 보행 환경과 도로 구조 등을 감안한 위험성과 시급성을 우선적으로 따져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전북도가 올해 배정된 예산을 기반으로 자체적으로라도 저감시설을 설치하기로 한 것은 바람직한 조치다. 어떤 경우라도 어린이 안전 확보를 위한 노력을 늦춰서는 안 된다. 어린이들이 안심하고 학교를 오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은 국가와 지방정부, 그리고 지역사회 모두가 함께 책임져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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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읍시 급수체계, 전주권 광역상수도 전환을

민선 9기 전북도가 출범을 앞두고 있다. 새 도정은 지역소멸과 산업, 교통 문제뿐 아니라 오랫동안 풀지 못한 ‘물 관리’ 문제에도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그 대표적인 과제가 정읍시 급수체계의 전주권 광역상수도(용담댐) 전환이다. 임실 옥정호를 둘러싼 논란은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됐던 1999년 이후 지역발전과 식수원 보호라는 가치가 충돌해왔다. 2015년 상수원보호구역이 해제되면서 규제는 상당 부분 완화됐지만, 수면이용과 관광개발을 둘러싼 논쟁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옥정호를 여전히 상수원으로 이용하는 정읍시민들은 안전한 식수원 확보를 내세워 임실군의 수면 개발계획에 강력 반발하고 있고, 임실군은 과도한 규제로 지역발전이 가로막히고 있다며 맞서는 상황이다. 이는 단순한 지역 갈등을 넘어 전북 물 관리 체계가 안고 있는 구조적 과제를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해 익산시가 오랜 논란 끝에 광역상수도체계로의 전면 전환을 결정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시민들이 보다 깨끗하고 안전한 수돗물을 이용하도록 하기 위해 한국수자원공사와의 협약을 통해 2027년부터 용담댐 물을 전면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전북 주요 도시인 전주와 군산·김제·완주는 이미 용담댐을 수원으로 하는 전주권 광역상수도를 이용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정읍의 급수체계 역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론 광역상수도 전환에는 적지 않은 예산이 필요하고, 기존 취수장과 정수시설 활용 문제, 수도 요금과 공급체계 개편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그러나 비용을 이유로 논의를 미룰 일은 아니다. 수십 년째 반복되는 갈등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과 지역 간 불신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먹는 물과 관련해서는 안전성과 지속가능성이 우선돼야 한다. 정읍시민들이 옥정호 개발계획에 적극 반대하는 것도 식수원 안전에 대한 우려와 불안감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대안 역시 함께 논의하는 것이 책임 있는 행정의 자세다. 더 깨끗하고 안정적인 수돗물 공급이 가능하다면 미래 지향적인 관점에서 급수체계 개편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갈등의 반복이 아니라 상생을 위한 결단이다.

오목대

맹주없는 전북 정치권

요즘 지역정가에서는 8월 17일로 예정된 민주당 전당대회가 최대 화두다. 내후년 4월로 예정된 총선을 앞두고 이번 전당대회의 결과는 전북 국회의원들의 정치생명을 뒤흔들 수 있는 결정적인 ‘시험대’이자 사실상의 심판대다. 새로운 당 지도부는 2028년 제23대 총선 공천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핵심권력이다. 민감한 시기인지라 전북의원들 상당수는 겉으로는 말을 아끼고 있으나, 어느 시점에 가면 결국 확실한 줄서기를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관건은 전북의원들이 친명계와 친청계 중 과연 어디에 서는가 하는것이다. 민주당 내 계파 지형이 최근 지방선거와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명(친이재명)계’와 ‘친청(친정청래)계’의 역학 관계로 뚜렷하게 각인되면서 이젠 중립이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다. 정청래 당 대표 체제의 지도부와 호흡을 맞추며, 최근 지방선거 공천 국면을 거치며 당권파로서의 입지를 굳힌 그룹으로는 이성윤, 박지원 최고위원, 한병도 원내대표, 윤준병 도당위원장 등이 꼽히며 이원택 도지사 당선인도 바짝 다가서있다. 정청래 대표가 연임가도에 나설 경우 이들은 어쨋든 정 대표에게 올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면 당에서 제명된 김관영 현 지사와 안호영 의원 등은 확실하게 친명반청 대열에 합류할 전망이며, 박희승 의원도 친청보다는 친명쪽을 선택할 전망이다. 현직 장관인 정동영 의원과 김윤덕 의원 등은 대놓고 특정 후보를 밀기는 어렵겠으나 막판에 가면 어떤 형태로든 선택을 해야 할 거다. 의원들은 철저하게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할 것이나 수많은 권리당원들은 전북의 위상 확보를 위해서는 정청래, 송영길, 김민석 중 누가 당권을 잡는게 좋을지 고민하는 분위기다. 지선 이후 새롭게 재편된 전북 내 당권파의 주도권을 지키고 안정적인 지분을 요구하는게 나을지, 대통령실과의 강력한 원팀 구조를 통해 새만금 등 지역 현안과 예산이라는 실리를 확실하게 챙기는게 좋을지 곧 판단할 거다. 문제는 의원들의 표심과 권리당원들의 지향점이 다를 개연성도 크다는 거다. 반세기 전 대한민국 야당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했던 순간 하나가 있었다. 1970년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이철승·김영삼·김대중’ 3자 경쟁(40대 기수론)이 펼쳐졌다. 당내 주류파(유진산계)의 지지를 업고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김영삼을 꺾기 위해, 2위 김대중과 3위 이철승이 결선투표 직전 극적으로 손을 잡았다. 김대중은 이철승에게 훗날 당권을 약속하는 이른바 소위 ‘명함각서’를 건네며 표를 흡수했고, 결선투표에서 대역전극을 이끌어냈다. 이 약속은 훗날 지켜지지 못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전북의 맹주는 소석이었는데 그가 비주류로 전락한 뒤 전북은 중앙에서 주머니속 공깃돌이 돼버렸다. 전북 정치권의 주도권을 쥔 확실한 맹주가 없이 다분화 된 지금 과연 전북의 표심이 어디로 쏠릴지 주목된다. 위병기 이사 전략기획실장

데스크창

신항, 현재아닌 미래에 초점 맞춰야

새만금항 신항(이하 신항)의 개장 시기를 놓고 해양수산부와 항만 현장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올해말 신항의 개장을 강행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반면 현장에서는 준비가 덜 된 항만의 개장은 개장 초기부터 휴업 등 많은 문제점을 드러낼 것이라며 개장 시기 연기를 요청하고 있다. 이 같은 요청은 어수룩한 항만 시설과 부두 운영 계획, 물동량 부족 때문이다. 신항은 남방파호안 미축조, 비좁은 5만톤급 부두 야적장, 낮은 접안시설 마루 높이, 배후 부지와 단지 미조성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이 상태에서의 개장은 운영 파행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불안한 항내 정온도, 야적장 기능 미흡, 야적 화물 침수 피해 등의 우려로 운영이 삐걱거릴 공산이 크다. 원활한 부두운영을 지원할 배후부지와 단지는 언제 축조될 지 기약조차 없다. 특히 새만금 내부개발 부진으로 신항에서 소화할 물동량마저 확보할 수 없어 부두운영회사인 가칭 새만금 신항(주)은 개장식에 대령할 ‘물동량 확보 쇼’ 를 벌여야 할 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현재 상태에서 개장한다면 군산항의 물동량을 동원해야 해 향후 군산항과의 지속적인 충돌이 불가피하게 된다는 점이다. 신항은 크루즈를 제외하고 현재 군산항과 같은 잡화, 컨테이너, 자동차를 취급토록 계획돼 있기 때문이다. 운영에 대한 ‘발상의 대전환’을 하지 않고는 군산항과 신항의 동반 침몰로 도내 항만의 경쟁력은 크게 저하될 것이라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키 위해서는 상시준설체계를 구축, 현재 토사 매몰로 침체상태에 빠진 군산항을 활성화시키는 한편 신항은 전북의 미래를 담아 운영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다. 현 정부 들어 산업용지 2배 이상 확대를 계획하는 새만금을 중심으로 한 전북의 미래는 밝다. 피지컬 AI 산업 육성 , RE100 산단 조성, K-푸드 세계화 전진기지와 재생 에너지 허브 육성, 현대차 그룹의 9조원 투입을 통한 로봇 제조, AI데이터센터, 수소생산, 재생에너지 발전사업 등… 현재 재수립중인 새만금 기본계획에 이런 사업이 반영돼 추진되면 전북은 대한민국의 미래 산업을 주도하는 지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군산항과의 충돌 없이 신항의 향후 운영 방향에 대한 해답이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항만은 배후지역의 물류를 지원하는 인프라인 만큼 신항의 운영 방향을 ‘현재가 아닌 미래’에서 찾아야 한다. 지역내 항만간 경쟁을 피하고 공생하려면 컨테이너, 자동차, 잡화 등 중복된 화물처리보다 전북의 미래에 반영된 산업을 지원하는 항만으로 신항은 태어나야 한다. 군산항은 곡물, 사료, 목재 및 잡화 등을 취급하는 항만으로 운영되고 신항은 콜드체인 거점 , 그린수소 , 로봇 무인 , 크루즈 항만 등으로 특화돼 운영돼야 한다. 최근 이원택 전북특별자치도 도지사 당선인이 “전북의 새로운 성장기회를 반드시 현실로 만들겠다”고 밝힌 만큼 물류 인프라인 신항은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항만 물류 경쟁력을 확보, 전북의 미래를 담아내 지역 발전과 연계시키려면 신항이 현 시점에서 안고 있는 시설, 운영, 기능상의 문제점을 차근차근 해소해 나가면서 개장을 해야 한다. 신항, 개장만이 능사가 아니다 !

딱따구리

‘우리 동네’ 싸움에 막힌 학교 통합…이제 달라져야 한다

올해 남원시 초등학교 신입생은 326명. 금지초와 산동초는 신입생이 단 한 명도 없다. 지역 소멸은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예고된 위기였지만, 대응은 제자리였다. 금지·송동·수지중학교를 묶는 남원 서부권 중학교 통합 논의는 결국 무산됐다. 부지 선정을 둘러싼 지역 간 갈등이 끝내 발목을 잡았다. 각 지역은 접근성과 균형 발전을 내세웠지만, 논의는 ‘우리 지역이어야 한다’는 주장에 갇혔다. 그 사이 정작 중심에 있어야 할 학생들은 주변으로 밀려났다. 교육 여건 개선이라는 출발점은 흐려졌고, 갈등만 남았다. 물론 학교 통폐합은 민감한 문제다. 학생 통학 문제, 지역 공동체 붕괴 우려 등 어느 하나 가볍게 볼 수 없다. 충분한 의견 수렴과 사회적 합의는 필수다. 지역 주민들에게도 학교는 단순한 교육 시설이 아니다. 마을의 상징이자 지켜야 할 공공 인프라다. 학교가 사라지면 젊은 세대 유입은 더 어려워지고, 지역 소멸은 가속화될 것이라는 불안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현상 유지는 해법이 될 수 없다. 학생 수가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서 학교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교육의 질과 재정 효율성 모두를 포기하는 선택이다. 시골 학교의 현실은 냉정하다. 교사는 여러 학교를 넘나들며 수업을 해야 하고, 학생들은 진로나 특기·적성은 차치하고 교과 다양성조차 누리기 어렵다. 전교생이 5명인 학교에서 동아리 활동, 또래 관계, 경쟁과 협력의 경험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온전한 교육 공동체로 기능하기 어려운 수준이기 때문이다. 남원의 동부 지역인 지리산권역에서도 통합 중학교 논의가 일고 있다. 이제는 결단의 시간이다. 부지 논쟁에 머무는 한 해법은 없다. 학교를 지키려는 싸움이 교육의 본질을 지워선 안 된다.

최근칼럼

[금요칼럼]중력의 이동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넘고 싶지 않은 선이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기준이라 다른 사람에게 이를 강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인생에선 최소한의 기준 이를테면 정의감이나 공정성에 대한 감각 정도는 갖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들어 반도체 기업의 작업복이 가장 인기 있는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한때는 그저 공장에서 입는 작업복 정도로 여겨졌던 옷이 이제는 명품 브랜드의 최고급 오트쿠튀르를 압도하는 상징이 된 것이다. 또한 의과대학을 꿈꾸던 학생들이 반도체와 IT를 가르치는 학과로 몰려가고 있다. 도대체 그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우리는 모두 그 답을 알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세상과 단절된 채 살지 않았다면 말이다. 특히 최근 한 대형 노조의 총파업 위협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그들이 요구한 조건과 결국 얻어낸 결과를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내가 들은 숫자가 사실이라면 일부 반도체 기업 종사자들의 연봉은 한국 평균 소득의 10배를 훌쩍 넘는다. 이는 상당히 놀라운 수준이다. 이미 한국의 평균 소득은 일본보다 높은 편인데 일본 경제 규모가 한국의 두 배 이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현재 한국 경제를 사실상 떠받치고 있는 반도체 산업에서 국가 경제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파업을 무기로 삼아 막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도덕적으로 정당한 일일까? 물론 이러한 의구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 입장 역시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의사들과 의대생들의 집단행동을 바라볼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정원 확대 문제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환자들이었고 그 과정이 마치 사회 전체를 상대로 한 압박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전쟁과 관세 갈등은 세계 경제를 약화시키고 있으며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칼날은 수많은 직업 위에 드리워져 있다. 불평도 하지 않고 병가도 없으며 1년 365일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많은 직업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도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위기 속에서 한국에는 지금 새로운 ‘귀족 계급’이 탄생한 듯하다. 바로 반도체 엔지니어들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대기업 최고경영자 수준에 가까운 보수를 받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러한 중력의 이동은 앞으로 의사 변호사와 같은 전통적인 선망 직업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리고 더 나아가 한국 사회 전체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또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지금 IT와 반도체 학과로 몰려가는 학생들이 졸업할 즈음에도 과연 지금과 같은 수요가 유지될까? 기술 산업의 호황은 영원하지 않다. 만약 언젠가 반도체 호황이 끝난다면 오늘날 성과급과 이익 배분을 강하게 요구하는 사람들이 그때는 손실도 함께 나누자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조용히 등을 돌린 채 모든 책임을 경영진에게 떠넘길까? 물론 큰 성공이 이루어졌을 때 그 결실을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은 매우 인간적인 일이다. 그것이 노력의 결과이든 훌륭한 경영의 성과이든 혹은 약간의 행운이 더해진 결과이든 말이다. 다만 나는 한국 사회가 때때로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이 걱정된다. 어제까지는 의대가 최고의 선택지였다가 오늘은 반도체가 되고 또 내일은 다른 분야가 될 수도 있다. 만약 의대를 꿈꾸던 학생들이 갑자기 반도체 학과로 방향을 바꾼다면 처음부터 사람을 살리고 돕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가장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의 일과 직업에 대한 진정한 소명은 사라지고 오직 최대한 많은 돈을 버는 것만이 목표가 된다면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게 될까? BTS 콘서트가 열린다는 이유만으로 호텔 가격을 열 배로 올리는 숙박업자를 보며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는가. 시장 원리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무언가 불편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정답은 없다. 다만 생각해볼 문제임에는 분명하다.

[청춘예찬]계절은 현재에서만 만날 수 있다

봄이면 참새가 방앗간을 찾듯 동네 꽃집으로 향한다. 초여름이 오면 자주 짐을 챙겨 밖으로 나선다. 장미로 시작해 능소화, 백일홍으로 알록달록 물드는 여름을 온몸으로 마주한다. 가을이면 하루하루 다르게 물드는 나뭇잎의 색을 관찰하며 더 자주, 오래 걷는다. 겨울이 오면 따뜻한 차와 커피를 마시며 몸의 온도를 높인다. 꽃이 피고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 제철에 맞는 음식을 챙겨 먹는다는 것은 지금 이 계절을 살아간다는 말과 다름없다. 계절은 늘 현재에서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같은 시대에 마음을 현재에 두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에 발붙인 채 삶의 순간순간에 감응하며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언제부터 오늘보다 내일을 먼저 살아가기 시작했을까. 지금의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먼 미래를 살아간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대비하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기꺼이 유예한다.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압박은 어느새 현재를 머무는 시간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시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결국 요즘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온통 불안이 스며 있고, 젊은 세대는 역설적으로 그 불안을 극복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것들에 몰두한다. 어쩌면 불안은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너무 오래 살아낸 결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수없이 상상하고, 그 가능성 속에서 이미 여러 번 지쳐 버린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미래를 미리 살아버릴 필요는 없다. 반대로 현재는 지금 내 손에 닿아 있는 시간이다. 내가 보고, 걷고, 먹고, 숨 쉬는 모든 감각은 오직 ‘지금’에서만 존재한다.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은 미래를 외면하는 일이 아니라, 미래를 감당할 힘을 오늘에서 길러내는 일이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나는 그 답을 계절에서 찾곤 한다. 봄이면 꽃을 사고, 여름이면 짙어진 녹음을 찾아 길을 나선다. 가을이면 단풍이 드는 속도를 눈으로 좇고, 겨울이면 따뜻한 차 한 잔으로 몸을 쉬게 한다. 거창한 의식도, 특별한 준비도 필요하지 않다. 다만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는 동안만큼은 어제도 내일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오늘을 살아가게 된다. 생각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지만 몸은 언제나 현재를 살아간다. 꽃의 향기를 맡고, 바람의 온도를 느끼고, 제철의 맛을 음미하는 순간에는 조급했던 마음도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간다. 현재를 회복하는 가장 소박하고도 확실한 방법이다. 계절은 누구도 재촉하지 않는다. 장미는 자신의 때를 알고, 능소화는 여름을 기다리며, 나뭇잎은 가을이 되어서야 비로소 물든다. 자연은 늘 정직한 속도로 자신의 시간을 살아간다. 어쩌면 우리가 배워야 할 것도 그런 태도인지 모른다. 미래를 준비하느라 오늘을 흘려보내지 않는 것, 내일을 위해 오늘을 유예하지 않는 것.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보고, 오늘만 피어 있는 꽃을 바라보고, 오늘만 맛볼 수 있는 계절의 음식을 먹는 일. 그렇게 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현재는 특별한 깨달음이 아니라 우리 곁에 늘 머물러 있던 시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삶은 거창한 미래가 아니라 계절이 건네는 작은 신호들에 기꺼이 응답하는 오늘들의 합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실패도 청춘의 일부다

우리는 자기 인생을 설계할 때조차 스스로 남의 눈치를 본다. 몇 살에 취업해야 하고, 언제 결혼하며, 언제까지 얼마를 모아야 하는지 정해진 평균 삶의 궤적이 공식처럼 존재한다.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뒤처졌다는 불안감에 끊임없이 자기 위치를 체크하고 스스로 재촉한다. 새로운 시작에 마지노선 나이가 있을까. 내가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약대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많이 들은 말은 “결혼은 언제 하고, 학교를 언제 졸업하냐”였다. 사회는 한 번의 진로 선택으로 나를 정의하고 싶어 했다. 무모함 혹은 용기라는 말로 선을 그으며 거리감을 뒀다. 내 청춘의 이면은 사실 수많은 실패로 점철되어 있다. 나 역시 남들이 말하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 치열하게 달렸다. 대학 시절 품었던 공인회계사의 꿈은 연이은 낙방으로 바스러졌고, 7급 공무원 시험도 면접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수많은 오답을 거친 끝에야 검찰청 마약 수사관으로 임용되었고, 비로소 남들이 말하는 안착의 궤도에 들어서는 듯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내 삶은 여전히 미완성의 연속이었다. 직장 생활과 병행했던 공인중개사와 경영지도사 시험은 최종 2차 문턱을 넘지 못했고, 부산지방검찰청 강력범죄수사부 다크웹수사팀 근무 시절 도전했던 방송통신대 컴퓨터과학과 역시 끝내 중도 포기했다. 이 오답 노트는 서른이 넘어 새로 입학한 약대에서도 현재 진행 중이다. 국회 교육위원장 표창과 대구광역시장상, 전주시장상, 전주시장 표창, 연이은 정책·창업 아이디어 경진대회 수상과 청년문학상까지 무려 11개의 상을 탔고, 전주시 청년희망도시 정책위원회 부위원장과 대학신문사 편집장 직함까지 달며 화려한 1학년을 보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버려진 기획서 더미와 유기화학 F가 남았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차라리 무언가라도 해보고 결과를 마주하는 편이 낫다고 믿는다. 한 번의 선택이 전부가 되고, 한 번의 실패가 낙인이 되곤 한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이력의 공백은 감점 요인으로 읽히곤 한다. 빨리 증명하고 안착하지 못하면 낙오자가 된다는 공포가 사회에 만연하다. 그러나 세상의 혁신은 언제나 오답 노트 위에서 피어났다. 세계적인 플랫폼 유튜브는 원래 영상 데이팅 앱으로 시작했고, 협업 툴 슬랙은 망해가는 온라인 게임 회사의 사내 채팅 프로그램에 불과했다. 이들이 실패를 종착지로 받아들였다면 지금의 혁신과 성공은 없었을 것이다. 실패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방향을 찾아내는 유연성, 즉 피벗은 우리네 삶에도 필요하다. 우리는 누구나 아직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다. 시행착오 속에서 배우고 흔들리고 있다면, 그가 바로 청춘이다. 모든 도전 앞에 실패할 권리를 허락해야 한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조심스러워지고, 결국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안전한 선택만을 반복하게 된다. 도전 없는 삶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잃고 바싹 마른 숲과 같다. 나는 앞으로도 실패할 것이다. 틀린 선택을 하고, 끊임없이 방향을 수정하겠지만, 그 실패가 결코 인생의 종착지가 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새로운 시작에 마지노선 나이 따위는 없다. 꿈을 좇아 기꺼이 흔들릴 준비가 되어 있다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과정 속에 있는 청년이다. 시행착오를 인생의 공백이 아닌 가치 있는 경험으로 인정하는 것, 그것이 지금 다시 시작하려는 모든 청춘에게 진짜 필요한 예찬이다.

[금요칼럼] 레밍 효과와 이차적 사고

1970년대 디즈니 다큐멘터리 한 편이 세상에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수천 마리의 레밍이 무리를 지어 절벽을 향해 돌진하며 바다로 떨어져 죽고 마는 장면이었다. 훗날 이 장면은 제작진이 레밍을 직접 절벽으로 밀어붙인 조작이었음이 밝혀졌지만 역설적으로 그 조작된 이미지가 더욱 강력한 진실을 담게 됐다. 그렇다, 군중 심리에 이끌려 나락으로 달려가는 존재는 레밍이 아니라 인간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심리가 군중을 따르는 것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생존 본능이다. 수십 만년의 진화 과정에서 인간은 고립되는 것보다 다수를 따르는 편이 생존 확률을 높인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학습했다. 맹수가 출몰했을 때 나홀로 딴 길로 도망치는 것보다 무리 속에 묻혀 함께 달아나는 개체가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뇌과학도 이를 확인한다. 타인의 행동을 모방할 때는 뇌의 보상 회로가 활성화되나 군중과 다른 판단을 내릴 때는 공포와 유사한 신호가 발생한다. 나만의 길로 가는 것은 신체적으로도 불안하다. 이것이 레밍의 본능이 인간의 심리 속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이유다. 문제는 이 동물적 본능이 21세기 금융 시장이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는 데 있다. 가격이 비쌀수록 투자자들은 더 몰려든다. 뉴스가 뜨거울수록 매수 욕구는 한층 강렬해진다. “모두가 산다”는 사실 자체가 안도감의 근거가 된다. 1999년 닷컴 버블 정점에서 인터넷 주식을 사들인 개인 투자자들, 2021년 가상자산 광풍 속 코인을 매수한 군중,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가장 화려한 AI 스토리를 가장 비싼 가격에 사려는 사람들, 모두 같은 본능을 따른다. 다수의 군중 속에 있으면 안전하다는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시장에서 군중의 쏠림은 오아시스가 아닌 가파른 절벽을 가리키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국면이 꼭 그렇다. 맹주 엔비디아는 차세대 AI 플랫폼을 공개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공급사로 직접 호명했다. AI 반도체 수혜의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스페이스X, OpenAI, Anthropic의 기업공개가 목전이다. 수천억 달러 규모의 신규 공모 물량이 시장에 쏟아지고 넘치는 유동성이 끝을 향해 돌진하는 레밍처럼 그들에게 달려갈 태세다. 가장 화려한 스토리들이 거의 동시에 신데렐라처럼 시장에 등장하는 순간, 레밍의 본능은 최고조에 달할 것이다. 군중이 제시하는 새로운 장미빛 내러티브로 갈아타야 할 것 같은 압박이 밀려온다. 다수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가지 않으면 무리에서 탈락할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한다. 바로 이 순간이 소수의 현명한 투자자와 다수의 레밍을 가르는 분기점이 될 공산이 크다. 현명한 투자자는 군중의 움직임을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역이용한다. 군중이 꾸준한 수익을 가져다준 자산을 팔고 새로운 이야기로 달려갈 때, 매도 압력이 만들어내는 안전마진을 조용히 확대하며 매수의 기회로 삼는다. 이 결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군중과 반대로 선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틀렸을 때의 두려움, 홀로 남겨지는 불안, 뒤처진다는 조급함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나만의 고뇌에 찬 의사결정만이 탁월한 결과를 창출한다. 분석하고, 의심하고, 다시 확인하는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견딘 사람만이 군중이 만들어 준 기회를 손에 쥘 수 있다. 맹자는 말했다.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을 견지할 수 있다고. 안정적인 현금흐름 기반 위에 선 사람만이 시장의 소음 속에서 중심을 지킬 수 있다. 군중을 따르는 것은 안전처럼 느껴지지만, 진짜 안전은 자신의 분석과 원칙에서 나온다. 레밍은 함께 달려야 안전하다고 느끼지만, 투자자는 혼자 멈출 수 있어야 비로소 안전하다. 절벽 앞에서 군중이 달릴 때, 발을 멈추고 홀로 고뇌하는 것. 그것이 현명한 투자자의 첫 번째 조건이다.

계획이 틀어진 자리에서

현대인의 일상이란 정해진 시간표를 오차 없이 소화해 내는 과정에 가깝다. 밤에 잠들기 전,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스마트폰에서 달력 애플리케이션을 켠다. 정해진 기한과 스스로 정해 둔 마감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더구나 의뢰인의 이익을 지켜내기 위해 매일을 다투는 직업이다 보니, 작은 변수 하나라도 놓칠세라 늘 신경을 곤두세운다. 눈앞의 상황을 통제하고 예측해야 직성이 풀리는 습관 때문일까. 일상의 피로를 벗어나려는 여행조차 철저한 계획에서 출발하곤 한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안동, 영주, 청송 등 조용한 목적지를 정해 두고, 며칠 전부터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켰다. 여행지 사이의 이동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고, 식당이 문을 닫을 때를 대비해 대안까지 몇 군데 찾아둔다. 정체 구간을 피하는 동선을 완성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손쓸 수 없는 변수로 가득한 낯선 타지에서도 하루를 빈틈없이 장악하고 있다는 감각이 나를 안심시켰다. 돌이켜보면 그것이야말로 고단한 일상을 버티게 해 준 작은 도피처였다. 하지만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도 막상 현장에선 크고 작은 변수를 마주하게 된다. 기상 예보를 비웃듯 쏟아지는 장대비에 발이 묶이고, 고대하던 식당은 하필 내부 수리로 문을 닫는다. 내비게이션 오류로 엉뚱한 국도에 접어들어 애써 계산한 동선이 무너지기도 한다. 완벽을 기했던 만큼 처음에는 당혹감이 밀려오고, 이내 짜증이 치민다. 표정은 굳고, ‘어디서부터 어긋났을까?’ 조바심을 내며 다음 계획을 꿰맞추느라 스마트폰을 붙들고 씨름한다. 역설적이게도 여행이 끝난 뒤 뇌리에 남는 가장 선명한 장면은 대체로 그 계획이 틀어진 순간이다. 소나기를 피하려 뛰어든 낡은 카페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넘기던 책장.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매다 마주친 한적하고 다정한 골목길. 일정에 쫓겨 걷다 엉겁결에 멈춰 선 언덕에서 바라본 서늘한 노을. 치밀하게 계산하고 기대했던 유명 관광지보다, 무방비 상태에서 우연히 마주친 풍경이 한층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여행지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일상에서도 우리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매일 촘촘하게 내일의 계획표를 짠다. 남들이 다져 둔 안정적인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조금이라도 뒤처지거나 변수가 생기면 몹시 불안해한다. 그러나 살다 보면 공들여 세운 계획이 어그러지는 날이 수없이 찾아온다. 뜻밖의 일 앞에서 길을 잃고, 애써 들인 공이 한순간에 허사가 되어 허탈한 쓴웃음을 짓곤 한다. 그렇지만 정해진 경로를 벗어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도 밖으로 밀려났을 때 비로소 시야가 넓어지기도 한다. 억지로 이전의 동선으로 돌아가려 애쓰기보다, 낯선 길에 놓인 우연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 계획대로 흘러가는 인생은 안전하고 효율적이지만, 때로는 계획이 어긋난 곳에서 소중히 간직할 경험을 하기도 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책상에 앉으면, 나는 습관대로 여전히 달력의 기한을 확인하고 촘촘한 계획을 세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예기치 못한 변수로 계획이 틀어지더라도 예전처럼 당황하거나 조바심 내지는 않으려 한다. 지도가 가리키는 반듯한 길을 조금 벗어나더라도,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장면이 있다. 계획이 틀어진 자리에도, 때로는 가장 오래 남는 풍경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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