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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을 위하세(稅)

▲ 최훈 행정안전부 지방세제정책관 만약 숨을 쉴 때 돈을 내야 한다면 어떨까? 매우 황당한 발상인 것 같지만 베네수엘라의 수도 국제공항에서는 이 같은 발상이 현실이다. 공항 이용 승객들에게 공항 내 정화된 공기를 제공하는 대가로 공조설비 이용료, 일명 호흡세를 부과하고 있는 것이다. 의외로 이런 이색적인 세금은 역사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은 없지만 중세 서양에 있었던 창문세는 부자의 집일수록 창문 수가 더 많다는 점에서 고안된 세금이었다. 비만과 당뇨 등을 앓고 있는 사람이 많은 현대 사회에서는 비만세, 설탕세가 바로 이런 시대의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는 이색 세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도 시대의 필요를 반영하고, 새로운 세원 발굴을 통한 재정확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세금을 걷을 수는 없다. 우리나라는 세금의 종류와 그 세율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서만 과세할 수 있는 이른바 조세 법률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가 새로운 세원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지방세의 종류와 세율 등을 정하고 있는 「지방세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운영되고 있는 지방세 중에서 과세대상의 추가만으로 쉽게 세원을 확장하고, 지역의 특수한 상황도 반영할 수 있는 세금이 있다. 바로 지역자원시설세이다. 지역자원시설세란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의 지하자원, 수자원 등을 보호개발하고, 재난예방, 환경보호개선 사업 및 지역균형개발사업에 필요한 재원 등을 확보하기 위해 징수하는 세금이다. 현재는 수력발전에 사용되는 발전용수, 지하수, 지하자원, 원자력화력발전을 과세대상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예를 들면 해저자원, 폐기물 등 과세대상을 새롭게 추가하는 방식으로 세원 확대가 가능하다. 이러한 지역자원시설세를 통한 새로운 세원 발굴과 관련하여 20대 국회에서 「지방세법」 개정 논의가 활발하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지방세법」 개정안의 지역자원시설세 과세대상은 11개이며, 과세대상에 따라 해당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다르다. 예를 들어 강원도충청북도는 시멘트를 과세대상으로 추가하거나, 전라북도전라남도경상북도 등은 원자력발전소 세율을 인상하고, 납세지를 발전소 소재지에서 방사선비상계획구역으로 확대하는 내용 등이다. 모두 해당 과세대상이 주변지역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해소하고, 지방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발의된 것이다. 법안의 내용에 따라 전기요금 인상 또는 해당 산업 위축 등의 우려가 있다는 의견도 있어, 국회에서 신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확충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8년 애초예산 기준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 평균은 53.41%이다. 전라북도 14개 시군의 평균은 27.92%로, 전국 평균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지방세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는 전라북도 14개 시군이 살림을 꾸리기 위해 필요한 예산의 1/4 정도 밖에 충당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새로운 세원 발굴 등을 통한 재정확충이 절실하다. 이러한 지방재정확충을 위한 간절한 마음은 사석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는데, 필자가 근무하는 지방세제정책관실의 건배사는 항상 지방세를 의미하는 세로 끝난다. 건강을 위하여를 건강을 위하세로, 하나로 뭉치자를 하나로 뭉치세로 외치는 식이다. 오늘 저녁에는 모두 이렇게 건배사를 외쳐보자. 전북 만세! 전북을 위하세! △최훈 정책관은 전라북도 기획관, 남원시 부시장, 행안부장관 비서실장, 전라북도 기획관리실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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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11 19:12

새만금개발공사 사장 제대로 뽑아야

▲ 윤승용 서울시 중부기술교육원장 문재인 정부 들어 전북의 오랜 현안인 새만금사업이 활기를 찾고 있다. 정부는 도민의 숙원에 부응해 새만금개발청장에 전북출신을 임명하고, 지지부진했던 내부매립 방식도 민자유치에서 정부 주도의 공공매립으로 전환했다. 매립을 주도할 새만금개발공사도 9월 설립을 향해 순항중이다. 남북2축도로와 새만금~전주간 고속도로 착수 등으로 SOC구축사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새만금사업은 사업의 정체성과 추진주체 모호성이 여전한 실정이다. 새만금사업은 첨단산업단지 개발사업인가, 국제업무단지 조성사업인가, 국제관광단지 조성사업인가, 대규모 농업단지 조성사업인가? 추진주체도 총리실인가, 새만금위원회인가, 국토부장관 혹은 농식품부장관인가, 아니면 새만금개발청인가, 농어촌공사인가, 그도 저도 아니면 전북도인가? 이 사안은 이미 지난 5월 31일 새만금새전북21포럼 등이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심층적으로 지적됐다. 이날 새만금간척지의 활용방안에 대해 항공우주산업 중심축으로 조성, 남북미 경제협력특구조성, 스마트팜 조성 등 다양한 청사진이 제시됐다. 하지만 이날 정작 핵심사안인 매립방식과 자금조달 방안에 대해선 종합토론 과정에서 해양수산부 출신 전직 관료가 제시한 방안 외엔 별다른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제 새만금사업의 마지막 관건은 조기매립 문제로 귀결된다. 8년 전 세계 최장 방조제를 완공했건만 매립률은 36.1%에 지나지 않는다. 즉 새만금단지는 거의 3분의 2가 아직도 호수로 남아있는 것이다. 매립이 지지부진하다보니 사업부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태양광사업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수상태양광사업을 하겠다고 덤비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도 미래 먹거리로 좋은 방안일 수 있으나 거액을 들여 바다를 막아놓고 그 내륙호수에 햇빛발전소를 세운다는 것은 경제논리에 전혀 맞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서 광양항 개발사업을 추진한 경험을 토대로 새만금 매립방안을 제시한 해수부 출신 전문가의 제언은 새겨들을 만하다. 그는 군산항을 25만톤급 대형항만으로 확장하면 공사폐기물인 토사가 발생하는데 이를 활용하여 새만금 매립을 실행하면 토지 조성원가가 크게 떨어지고 이어 토지가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므로 염가에 토지매각이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지금까지 새만금개발이 되지 않은 것은 과거 정부가 개발사업 예산을 제대로 주지 않은 탓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선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새만금개발방안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매립을 위해서는 육상에서 약 5억㎥의 토사가 필요한데 물류비 등을 고려하면 사업장 반경 30㎞내에 토취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부안군은 대부분이 국립공원이어서 토취가 불가능한데다 그나마도 남산만한 야산 120개 쯤을 깍아야 되는데 이는 환경문제 등을 고려하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매립에 필요한 토사는 바다에서 구할 수밖에 없다. 두바이나 맨하탄도 그랬다. 바로 이런 배경 때문에 조만간 선임하게 될 새만금개발공사 사장은 이 분야에 정통한 적임자를 발탁해야한다. 하지만 들려오는 얘기로는 정치인과 기획재정부 출신 관료가 내려온다는 설이 파다하다. 절체절명의 기로에 서있는 새만금사업이 낙선 정치인이나 힘센 부처의 퇴임관료 일자리 마련을 해주기 위한 낙하산 안착지가 돼선 안된다. 거듭 강조하지만 새만금사업의 성공은 조기 매립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선 새만금개발공사 사장은 이 분야에 경험과 식견이 있는 경험자가 맡아야한다. 정부당국, 특히 사장선임에 직접 관련있는 김현미 국토부장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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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04 19:49

호국보훈의 달을 보내면서

▲ 심덕섭 국가보훈처 차장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현충일과 625기념일이 있는 6월 한달 동안이라도 국가유공자에 대해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국민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하자는 취지에서 1963년 처음으로 지정되었다. 이로 인해 우리 국가보훈처에게는 6월이 일 년 중 가장 바쁜 달이다. 지난 한 달 동안 필자가 참석한 행사만 해도 20여 개가 넘는다. 그 중에서도 현충일과 625기념일과 같은 공식적인 국가기념일을 준비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다. 다행히 국가보훈처 주관 기념행사가 과거와 달리 흥미진진하고 감동을 주는 기념식으로 변했다는 주변의 칭찬도 많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방송에서 기념식이 방영되면 채널을 돌렸다는데, 요즘은 기념식을 한편의 뮤지컬이나 드라마를 감상하듯이 즐겨본다고 한다. 국가유공자와 유족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한 행사도 다채로웠다. 대통령은 이분들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위로와 감사 오찬을 대접했다. 국무총리도 보훈병원에 입원 중인 유공자들을 직접 찾아 위문했다. 또한 국가보훈처와 지자체, 보훈단체, 언론에서는 모범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에 대해 포상을 실시하는 행사도 많이 가졌다. 국가유공자들의 희생헌신 정신을 시민들과 함께 기리기 위해서 거북이 마라톤대회라든지 국토 대장정 행사도 가졌다. 유엔군으로 625전쟁때 참전한 분들을 우리나라로 초청해 감사를 표하는 시간도 보냈다. 각기 나름대로 의미있는 행사였고, 국가유공자들에게도 소소한 감동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몸을 바친 국가유공자들의 희생과 헌신에 비하면 이 정도 보훈행사로 끝낼 일은 아니다. 보훈의 개념이 역사상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5세기경 고대 그리스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431년에 그리스의 유명한 정치가이자 군인이었던 페리클레스는 전사자 추모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이 전몰자들과 그 유족에게 나라가 주는 그들에 대한 승리의 관으로서 그들의 자식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의 양육비를 아테네가 국고를 통해 오늘부터 보증합니다. 기원전 5세기부터 국가는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유족을 국가가 책임져 보호해 준다는 원칙을 천명해 왔다. 즉, 나라를 위한 희생과 헌신에는 반드시 마땅한 보상과 예우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점을 인류의 문명사가 웅변해 주고 있다. 이런 보장이 없다면 어느 누가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분연히 나서서 자기 목숨을 바치려 하겠는가? 국가유공자에게 최상의 보상과 예우를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유공자들에 대한 보훈은 반드시 중앙정부만 책임을 지는 업무는 아니다. 국가와 자자체가 함께 담당하는 책무이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지역 내 국가유공자에 대하여 각별한 보상과 예우를 해야 한다. 또 지역 내 독립유공자나 전쟁영웅들을 선양하는 사업들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지역에 있는 각종 현충시설이나 독립유적지를 유지관리하는 데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때마침 613 지방선거로 인해 새로 취임하는 단체장들이 많다. 단체장들도 이번 기회에 해당 시군의 보훈시책에 대해 종합적으로 점검해 보기 바란다. 더 나아가 독립국가민주유공자에 대한 보훈시책을 새롭게 설계해 주시기를 당부 드린다. 마지막으로, 함석헌 선생의 유명한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중 일부를 인용하면서 호국보훈의 달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만 리 길 나서는 길/처자를 내맡기며/맘 놓고 갈 만한 사람/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여기에서 밑줄 친 사람을 나라로 고쳐 다시 읽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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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27 19:35

타자(他者)의 시선

▲ 김광휘 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 사무국장 타향에서 칼럼을 7번째로 쓴다. 어느덧 마지막이다. 칼럼을 쓰는 동안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을 가져보고자 애썼다. 그간 나의 시선을 살펴보니 대부분 아래에서 위를 보고 있었다. 거주하는 전주의 물리적 위치가 서남부이기도 하였지만 향인에게 수도 서울은 늘 높은 곳이다. 바라보는 초점도 하나였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전주의 생각, 전북의 사고만이 가득했다. 하이데거였던가, 언어란 존재의 집이라고. 한 번도 전북으로부터 떠남을 선택하지 않은 내게 고향은 영혼의 존재소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유일한 창이었다. 고향에서 나고 자라고 배우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다른 지역과 비교는 곧잘 했지만 전북인의 시각이 아닌 다른 눈을 가지기 어려웠다. 그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서울에서 생활한지 5년이 되었어도 마찬가지다. 몸은 서울에 있지만 내 정신은 여전히 전북에 머무르고 있다. 고향을 떠나와 다른 지역에서 계속 거주하는 자에게 요구되는 객관적 시선이 아직 구축되지 않았다. 기존의 전라북도 중심의 사고체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아무리 서울에서 살아도 전북인의 시각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다. 타향에서라는 칼럼을 쓰면서 처음으로 바깥에서 안을 보려고 했다. 서울에서 고향을 보는 것이다. 칼럼이 내게 강제했던 타향이라는 앵글은 이산(離散)된 자에게 주어진 정신의 디아스포라였다. 고향에서 외부를 보아왔던 나는 이제 중요한 타자(significant other)가 되었다. 만들어진 타자는 본래의 나와 맞닥뜨린다. 그 와중에서 나와 타자가 교환했던 가치와 이념들은 상호 주관성의 그물에서 만났다. 이 사고의 전환과정을 통해 타자의 시각이 요구하는 고향에 대한 애정 어린 객관성을 어느 정도는 확보할 수 있었다. 지난 반년 동안 4주에 한 번씩 극심한 열을 앓으면서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란 말을 믿으면서 타자의 시각으로 여러 고민들을 해보았다. 그 중 가장 큰 화두는 시대정신(zeitgeist)이었다.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미래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이들은 뚜렷한 해법이 있지는 않지만 공기처럼 우리가 늘 부딪혀야 하는 명제들이다. 쉼 없이 고뇌하며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바로 시대정신이다. 또 묻는다. 나의 중요한 타자여, 그대 시대정신을 구하는가. 또한 고향의 유장한 아름다움도 엿봤고, 새로운 추세와 고향의 발전전략도 연계시켜 보았다. 심하게 변동하는 세상의 문법도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했다. 그 사이 정리된 생각은 현재 전북에서 하는 것처럼 전북이 잘 할 수 있는 일에 더 집중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북이 가지는 블루오션으로서 농업, 식물, 생태, 관광 등의 가치가 아주 크게 보였다. 타향이 고향과 아무리 지리적 격리를 요구한다 하더라도 타향에 있을 때 고향이 더 찾아진다. 국경지역인 변방의 애국심이 더 높고, 경계지역의 지역정체성이 더 명확하듯이 말이다. 타향에서의 기의(記意)는 고향이기 때문이다. 루이스 스티븐슨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보다 희망을 가지고 계속 여행하는 것이 더 좋은 일이다. 진정한 성공은 열심히 노력하며 일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지난 6번의 칼럼에서 잠시 갖게 된 타자의 다른 시선으로 행한 고민들을 모두 쓰지는 못했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러나 그 타자의 시각이 변주했던 고향 사모곡은 계속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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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20 20:36

전주 한정식, 이래선 안된다

▲ 윤승용 서울시 중부기술교육원장 지난 주 전주를 다녀왔다. 모처럼 동행한 지인을 비롯 고향 친구들과 저녁도 먹고 한옥스테이를 하는 호사까지 누렸다. 어릴 적 쏘다니던 교동 일대는 한옥마을 조성 이후 한국 최고의 핫플레이스라는 찬사가 과찬이 아님을 보여주듯 잘 단장돼 있었다. 국적 불명의 상업시설들이 눈에 거슬리기는 했으나 과거의 골목길이 말끔히 정비된 데다 전통미로 단장한 상점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전주에서도 잘 알려진 모 한정식 집에서의 저녁은 젬병이었다. 가격도 비싼 데다 음식의 질과 서비스도 엉망이었다. 서울에서 내려갈 때부터 맛과 멋의 고향 전주음식에 한껏 기대가 부풀었던 일행들은 전주 음식이 왜 이 모양이냐며 타박을 했다. 서울 친구들의 불평에 난 얼굴이 화끈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 집의 찬은 내가 어릴 적 먹었던 그리운 그 맛, 약간은 곰삭은 듯 하면서도 은은한 향이 어우러진 그런 메뉴는 아니었다. 예를 들면 토하젓, 새우탕, 굴젓, 콩자반, 묵 생채, 명태무침, 콩나물국, 모래무지 탕(이름만 들어도 침이 돈다), 인삼한과, 어포조림, 열구자탕, 약밥, 가오리찜, 고추튀김, 잡채, 깻잎, 구절판 등 말이다. 대신 칠레산 홍어에 중국산 김치를 곁들인 삼합, 외국산 소고기 불고기, 짜기만 한 된장국 등이 상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전주 음식이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옥마을이 뜬 후 전주여행을 다녀온 서울 친구들로부터 전주 음식에 실망했다는 푸념을 들어온 지가 꽤 됐다. 특히 고향 친구 가운데 광주지역 기관장을 하고 온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전주한정식은 광주에 비하면 질과 양에서 비교가 안 된다며 목청을 돋웠다. 물론 아직도 전주는 비빔밥과 콩나물국밥, 그리고 가성비에 관한한 최고라 할 막걸리집과 요즘 새롭게 뜬 가맥집 등 음식에 관한 한 내세울 게 많긴 하다. 또한 수구정을 비롯해 전주한정식의 체면을 지키려는 전통 맛집들이 남아있긴 하다. 하지만 평균 차원에서 이제 감히 전주한정식이란 타이틀을 붙여주기엔 어림도 없는 집들이 일반화한 게 현실이다. 전북지방은 예로부터 드넓은 호남평야와 풍부한 해산물을 품고 있는 서해와 갯벌, 그리고 동부의 산악지대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식재료가 다양하고 풍부했다. 이에 따라 사대부와 지방 아전을 중심으로 격조 있고 풍성한 반상 차림을 특징으로 하는 특유의 남도 한정식이 식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 같은 배경에서 식재전주(食在全州)라는 말도 나왔다. 또한 전주에는 사불여(四不如)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관리는 아전만 못하고, 아전은 기생만 못하고, 기생은 소리만 못하고, 소리는 음식만 못하다(官不如史, 史不如妓, 妓不如音, 音不如食)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그만큼 전주인들의 음식 자부심은 대단했다. 일찍이 가람 이병기 선생은 전주 8미라고 하여 이 지역 특산물인 콩나물, 열무, 녹두묵, 미나리, 애호박, 모자, 민물 게 등을 높이 쳤다. 이런 다양한 제철 재료에 정성스런 손맛이 어우러져야만 격조와 품위의 전주한정식이 가능했던 것이다. 전주가 한옥마을로 다시 비상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요즘 외지인들은 일제 강점기의 건축문화가 잔존해 있는 군산과 새만금 방조제를 거쳐 전주 한옥마을을 돌아보는 코스를 최고의 남도 여행으로 꼽는다. 그러나 국적불명의 꼬치집과 스낵집, 커피가게 등이 대세를 이뤄 정체성을 상실해가고 있는 한옥마을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외화내빈으로 치닫고 있는 전주는 멋과 맛과 풍류의 본향으로 거듭나야만 한다. 새 전주시장이 맨 먼저 챙겨야 할 업무는 전주 바로세우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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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13 22:14

골목의 추억

▲ 최강욱 변호사법무법인 청맥 빵울치기란 게 있었다. 새봄이 오고 따스한 햇볕이 비치면 내가 살던 전주의 동네 아이들은 공터나 골목에 모여 테니스공을 갖고 주먹야구를 했다. 도루는 없었고 번트는 있었다. 자타 공인의 스타플레이어도 있었다. 맨손으로 해내던 기막힌 다이빙 캐치, 그리고 이어지는 역동작 송구는 물론이고, 한 손으로 잡아내는 직선타구와 왼손잡이도 2루수를 할 수 있었던 인간적인 경기~ 주먹야구를 일컫는 말이 지역마다 다르다는 건 서울로 대학을 간 뒤였다. 찜뽕이라는 친구도 있고 짬뽕이라 부르는 애도 있었다. 경상도 친구들이 말하는 야구사위 주먹치기도 있었는데, 사전에 등록된 단어는 또 찜뿌였다. 빵울치기는 방울(공)을 치는 거라는 유추가 가능하고 야구사위랑 주먹치기도 왜 그런지 알겠는데, 대체 찜뽕은 왜 그렇게 부른 건지 모를 일이다. 서울말이라고 다 표준말이 될 수 없다는 걸 다시 생각하는 순간. 하긴 하루라고 불렀다는 친구도 있었으니 정말 오리무중이다. 그 시절 아이들의 오락거리 가운데 쌈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짤짤이라고도 했다. 홀짝보다 난이도가 높고 도박성이 강해 뒷자리 아이들의 필수종목이기도 하고 쉬는 시간은 물론, 소풍 때나 수학여행지에선 큰 판이 벌어지곤 했다. 동전을 길게 쥐고 손바닥으로 세 개씩만 잡아 세어내는 솜씨도 얼마나 훌륭했던지~. 쌈치기에선 하나 둘 셋을 아찌, 뚜비, 쌈이라 했다. 으찌, 뚜지, 쌈이라 했던 애들도 있고 이것도 다른 데선 으찌, 니, 쌈 이랬다니 참 다양하다. 타고난 도박 유전자 부족으로, 난 이 때도 관전만 하고 끼질 못했다. 끼어봐야 결과가 뻔하고 가진 돈이 없기도 해서. 그땐 컴퓨터 없어도 서로 참 재미있게 놀았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 끼고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해져만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니, 온라인 게임과 SNS를 통해 함께 놀며 활발하게 연락하고 있으니 본질은 같고 그저 형태만 바뀐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그래도 아깝게 잃어버린 놀이가 너무 많은 건 사실이다. 그 시절엔 땅에 금만 그어도 수십 가지 놀이가 가능했었는데, 그리고 하나같이 몸을 부대끼며 실컷 놀았던 게 참 좋았는데. 벌써 반년이 흘러 타향에서 칼럼을 마무리해야 할 순간, 문득 어린시절의 추억이 떠오른 건 왜일까. 고향이란 늘 아스라이 잡히지 않는 무언가와 같다. 생각나면 애틋하고 찾아가면 늘 따뜻하고 낯설지 않은 곳, 그곳이 있었기에 아무리 어렵고 답답한 일이 생겨도 순간순간 머리를 식히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좀 있으면 지방선거다. 빵울치기의 스타플레이어와 쌈치기의 타짜들이 뒤섞여 서로서로 선택해 달라며 외친다. 하지만 무엇보다 유권자를 두려워하고 진실 앞에 겸허해질 수 있는 사람이 고향을 대표하고 지켜주길 바란다. 해태 타이거즈의 우승을 당연시하던 날들처럼 지역정치와 지방경제에도 늘 1등을 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국회의장, 야당 총재, 대통령후보를 배출한 지역이지만 전라북도가 지방자치의 모범이란 소식은 아직 없다. 돈 놓고 돈 먹는 쌈치기보다 다들 한바탕 즐거웠던 빵울치기처럼 재미있고 뿌듯한 경쟁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다른 선수들이 우리 동네 스타플레이어들을 부러워하며 하나라도 배우러 찾아오는 날들로 이어지길 바란다. 고향의 자랑거리야 셀 수 없이 많지만, 멋진 사람들이 모여 제일 잘 사는 곳이 되면 한없이 뿌듯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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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06 19:29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국가보훈

▲ 심덕섭 국가보훈처 차장 프랑스 조각가 로댕의 칼레의 시민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다. 그러나 작품의 소재가 된 칼레의 시민 일화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이 사건은 14세기 영국과 프랑스 간의 백년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북부의 항구도시 칼레는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 본토와 마주보고 있었기 때문에 칼레를 차지하는 것이 프랑스군과 영국군 양쪽 모두에게 매우 첨예한 문제였다. 오랜기간 치열한 전쟁을 거쳐 1347년 영국왕 에드워드 3세가 이끄는 군대는 마침내 칼레시를 점령했고, 1년여에 걸쳐 영국군에 저항했던 칼레의 시민들은 모두 몰살 당할 위기에 놓였다. 이때 영국왕은 칼레시의 지도자급 인사 여섯명을 자신에게 넘기면 나머지 사람들은 살려주겠다는 뜻을 전한다. 이에 피에르라는 부자가 먼저 자청하고 이어 고위관료와 변호사 등 상류층 인사 여섯 명이 교수형을 각오하고 스스로 목에 밧줄을 감고 성문의 열쇠를 가지고 에드워드 앞으로 나아간다. 이 사건은 오늘날 사회의 상류층이 공동체에 지는 도덕적 책무를 가리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전형적인 예로 인용되고 있다. 다행히 임신 중인 태아에게 해가 될 것을 우려한 왕비의 간청으로 영국왕은 이들의 목숨을 살려주었다고 하지만, 이들 시민대표들의 공동체를 위한 희생헌신 정신은 공동체 정신의 유지와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역사적으로도 국가를 위해 전사를 했거나 부상을 당한 군인들에 대한 존경과 보상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있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정치지도자 페리클레스가 행한 전사자 추모연설은 전사자에 대한 존경과 추모 그리고 유가족에 대한 약속을 그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이런 것이 없다면, 국가가 비슷한 위기에 다시 처할 때 그 어느 누가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자 하겠는가? 국가를 위한 희생에는 국가차원의 보훈보상이 반드시 따른다는 일종의 신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며 이러한 사회적 합의는 근대국가의 등장과 함께 보훈의 당위성에 대한 근거가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반드시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에 대한 보훈의 역사는 짧지 않다. 한국전쟁시의 전몰군경 유족과 부상자에 대한 지원으로부터 시작되어 1961년에는 군사원호청(軍事援護廳)을 설립하여 이들에 대해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하게 된다. 그러나 원호라는 일본식 용어에서 보여지듯이 생계지원의 의미가 강하던 시절이었다. 마침내 1985년에 군사원호청을 국가보훈처로 개편하면서 명예와 존경을 강조하는 보훈개념이 적용되고 국가유공자를 본격적으로 예우하기 시작한다. 국가유공자의 범위도 점진적으로 확대되어 현재는 광복회, 상이군경회, 419민주혁명회 등 14개의 보훈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이분들은 크게 세 영역으로 구분되는데, 국가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희생헌신하신 분들(호국)과 과거 일제로부터 국가를 되찾기 위해 희생되신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독립), 또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신 419, 518 민주화 유공자(민주)를 말한다. 정부는 국가유공자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고 이분들에게 감사를 표현하기 위하여 매년 6월 한달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하여 다채로운 기념식과 행사를 실시한다. 현충일과 625를 기념하면서 국가의 중요성을 느끼고 더 나아가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하기 위함이다. 56회를 맞이하는 금년에는 남북간 그리고 북미간 관계발전을 기원하는 차원에서, 국가유공자에 대한 추모와 감사를 넘어 평화와 번영으로 보답하자는 미래지향적 의미를 담아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우리 지역에서도 국가유공자들에게 따뜻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이분들을 위한 의미 있는 행사가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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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30 20:38

공정한 경쟁을 위하여

▲ 김광휘 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 사무국장 시장경제제도의 가장 큰 장점은 경쟁이 가져다주는 효과이다. 일찍이 애덤 스미스가 이야기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작동하면 품질은 좋아지고 가격은 낮아진다. 시장에서 경쟁이 이루어지면 소비자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 주어지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려는 합리적 인간들의 자발적인 경쟁을 말한다. 이런 최상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시장경제의 신화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경쟁이 계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경쟁은 공정해야 한다. 경쟁의 공정성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문제이다. 경쟁의 장점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출발점의 상태가 심각하게 균형을 상실했다면 결과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축구시합의 결과가 어떨지 잘 알기 때문이다. 개인들 간의 경쟁은 반드시 우열을 낳게 된다. 이 우열은 인간사회에서 소여(所與)이지만 그 격차가 커지면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게임의 룰이 중요하다. 모든 스포츠에 경기 규칙과 그것을 집행하는 심판이 있듯이 과정과 결과가 정의로운 사회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엄정한 중재자로서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 독과점 금지, 담합 방지 같은 정책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정부 개입도 항상 능률을 낳지는 못한다. 쌀 가격을 지지해주기 위해 시중가격보다 높은 수매가격제를 유지하면 결국 곡물창고에 재고만 넘치게 된다. 정부 개입이 지속될 경우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적 비효율이 더 커지므로 정부 개입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함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경쟁의 지속성이다. 경쟁이 계속되려면 경쟁을 방해하는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경쟁이 사라지면 상대적 우위에 있는 자의 이익만이 극대화된다. 독점이 아주 좋은 예이다. 이제 누군가 나서야 된다. 보이는 손인 정부 또는 사회적 중재기구는 보이지 않는 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건전한 경쟁이 지속되도록 걸림돌을 제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공정 경쟁 유지 조치(competitive balance)라 한다. 공정경쟁유지조치는 경쟁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경쟁의 상대방간의 경쟁조건을 비슷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한쪽이 과도하게 불리하면 경쟁할 수 있도록 유리하게 해주고, 지나치게 유리하면 제한을 가한다. 이런 조치가 가장 잘 적용되는 현장은 프로스포츠이다. 권투시합은 체중의 차이가 확연한 선수끼리 시합을 하지 않고 체급별로 한다. 미국 프로농구는 부자구단이 과도하게 많은 돈을 써서 우수선수를 싹쓸이하지 못하도록 팀별 연봉상한제인 샐러리캡을 운영 중이다. 미국 프로야구에는 사치세(luxury tax)가 있다. 어떤 팀의 연봉이 기준연봉을 넘으면 초과된 부분에 일정 요율을 적용한 금액을 야구협회에 낸다. 야구협회는 사치세를 모두 모아 팀연봉총액이 낮은 팀에 역분배하여 준다. 가난한 구단에 대한 지원인 것이다. 부자 구단에 대한 간접적인 제재조치이다. 이런 노력들로 인해 건전한 경쟁체제가 늘 유지되기 때문에 산업으로서 미국 프로스포츠는 매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민주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한 조건에서 동등하게 경쟁을 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계속해서 만들어 내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손의 긍정적 기능을 극대화시키는 절제되고 꼭 필요한 균형적 조치들로 인해 상생과 동반성장이 가능해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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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23 20:28

바둑진흥을 위한 격대교육

▲ 윤승용 서울시 중부기술교육원장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VVIP라 할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손으로 꼽자면 무척 많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65세 이상 인구가 14%를 초과하면서 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에서 새롭게 주목을 끌고 있는 격대교육(隔代敎育grandparenting) 학계의 주장에 따르면 이들은 격대교육의 효과가 잘 드러난 사례라고 한다. 격대교육은 조부모가 손자를 교육하는 것을 일컫는다. 클린턴의 경우 출생 직전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때문에 홀어머니가 생활전선에 나서는 바람에 외조부모에 의해 양육됐다. 시골에서 가게를 운영하던 외조부모는 클린턴을 정성껏 돌보았는데 외할아버지는 피부색에 관계없이 흑인들에게도 외상거래를 해주는 등 개방된 분이었다. 클린턴은 훗날 난 이를 보면서 평등과 인권에 대해 깨우쳤고, 이후 새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증세로 폭력을 일삼았지만 사랑으로 감싸는 외조부모의 덕에 오늘날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오바마는 백인인 어머니가 아프리카 출신 생부와 이혼하는 바람에 역시 외조부모에 맡겨져 길러졌다. 제2차대전 참전 용사였던 외조부로부터 역사와 미국 중산층의 언어를 정확히 익힐 수 있었고, 근면과 교육을 강조한 외조부모의 자극에 힘입어 열심히 노력한 끝에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이들 경우 외에도 수 십년에 걸쳐 특정집단을 추적조사하는 이른바 종단연구(longitudinal study)로도 격대교육의 효과는 입증된 바 있다. 미국 하와이주의 카우아이섬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그 한 예다. 이 조사를 주도한 미국 심리학자 에이미 워너에 따르면 1955년 이 섬의 신생아 833명을 대상으로 40년을 추적조사한 결과 고아나 범죄자의 자녀 등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소위 고위험군 200여명 가운데에서 놀랍게도 35%가 장학생을 차지하는 등 모범적으로 성장했다. 워너는 이러한 예외가 왜 생겼는지를 심층 분석한 뒤 이들이 유아기에 조부모 등으로부터 헌신적인 사랑과 신뢰를 받고 자란 덕에 긍정적 사고를 가지게 됐고, 이 결과 역경에 처해도 선순환으로 극복하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높아졌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사회에서 700만 명이 넘는 노인문제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큰 현안이 됐다. 특히 칠순이 넘어도 정정한 어르신들이 대부분인데서 알 수 있듯이 신체연령까지 늘어나는 추세에 걸 맞는 인적자원의 효과적 활용은 국가적 어젠다로 대두됐다. 요즘 대다수 은퇴자들은 비록 뒷방 노인네 신세가 됐지만 아직도 사회활동에 지장이 없기 때문에 무언가 사회를 위해 기여하고 싶어한다. 이를 위한 대책으로 노인들의 지혜를 격대교육에 활용하는 방안을 정부차원에서 강구했으면 한다. 구체적으로는 이들을 문화사각지대인 격오지의 멘토, 즉 독서 지도사나 바둑사범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특히 날로 퇴보하고 있는 한국바둑의 진흥을 위해 사실상 은퇴상태인 50세 이상 시니어 프로기사 100여 명과 1만여 명이 넘는 시니어 아마추어 유단자를 적극 활용하면 유소년의 정서함양과 논리력 증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게다가 바둑진흥을 위한 국가의 책무 등을 골자로 한 바둑진흥법의 제정을 계기로 한국기원과 여성가족부, 대한노인회 등이 머리를 맞대면 바둑진흥과 바둑고수 노인층의 활용 등 일거양득의 좋은 방안도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노인 한사람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버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가 되새겨야할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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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16 21:13

신록의 계절에 되돌아보는 5·18 민주화 운동

▲ 심덕섭 국가보훈처 차장 바야흐로 신록의 계절 5월이 성큼 우리 곁에 다가왔다. 주위의 나무에서는 연한 초록색 잎들이 돋아나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약동을 느낀다. 더구나 며칠 전에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으로 온 국민들은 정말 오랜만에 평화와 번영이라는 푸른 꿈에 부풀어 있다. 이처럼 항상 우리에게 생명과 희망을 주는 5월이지만, 언제부턴가 우리 마음 한켠에는 5월의 가슴시린 아픔도 함께 하고 있다. 518 민주화 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1980년 5월 18일, 이 땅에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 광주시민들은 신군부 세력의 불법적인 집권 기도에 대대적인 저항 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신군부는 이를 진압하고자 장갑차와 헬기까지 동원하여 시민들에 대한 무차별 사격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였으며, 결국 폭동이라는 오명을 씌워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짓밟아 버렸다. 그러나 518 민주화 운동이 꼭 실패로만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는 1980년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간 민주화 운동의 밑거름이 되었으며, 종국에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낸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마침내 1995년 국회에서는 518항쟁을 민주화운동으로 정식 규정하였고, 518특별법도 제정하였으며, 1997년에는 5월 18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였다. 2002년에는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518 사망자부상자희생자 등을 국가보훈 대상으로 편입되게 되었다. 그럼에도, 518 민주화운동의 수난은 계속 되었으니,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518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주장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하였다. 그러던 것이 새 정부의 출범과 함께 점차 정상을 되찾아 간다. 북한을 찬양하는 노래라며 외면 받아 왔던 임을 위한 행진곡은 지난해 518 기념식에서 8년 만에 제창되었고,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 규명을 위한 진상조사위원회도 금년 중 출범할 예정이다. 우리는 작년 518 기념식 생중계를 보면서 주체할 수 없이 흐르던 눈물과 말로 형언할 수 없었던 먹먹함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홀대만 받아 왔던 518 민주화 운동이 대통령의 따스한 한마디 위로와 올바른 평가로 그동안의 억울함과 한(恨)이 봄눈처럼 녹아버리는 순간이었다. 광주의 아픔이 아픔으로 머무르지 않고 국민 모두의 상처와 갈등을 품어안으라는 대통령의 당부는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감동이었다.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2016년의 촛불 혁명은 이런 518 민주화 운동이라는 거름을 먹고 자라난 우리 민주의식의 결정체이다. 국민들의 민주의식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1960년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와 故김주열 열사의 사망 소식에 분연히 일어난 시민들의 419 민주혁명을 시작으로, 518 민주화 운동 그리고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져 온 우리나라 민주화 역사는 위대한 시민이 만들어 낸 위대한 업적이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들에게 정당한 보상과 합당한 예우를 하는 것이 국가보훈이다. 우리나라 국가보훈은 625 전쟁에서 상이를 입으신 분들과 전몰유족에 대한 국가의 지원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독립하는 데 기여하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에 대한 보훈으로 영역이 확대되었다. 마지막으로 419와 518 민주화를 거치면서 자유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하신 분들이 보훈대상자에 포함되었다. 비록 시기적으로는 가장 늦게 국가보훈 영역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발전시킨 분들을 결코 소홀히 모셔서는 안될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푸른 꿈도 민주화라는 소중한 가치 위에서 실현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신록의 계절 5월에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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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02 21:04

위대한 식물

▲ 김광휘 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 사무국장 오월이 되면 숲은 비등한다. 신록의 계절 오월에 숲 속에서 숲이 거는 이야기에 귀기울여 본 적 있는가. 그랬다면 알 것이다. 이때 숲은 우리에게 가장 많은 유혹을 한다. 꽃으로 이끌고 향기로 마주보며 산소로 말을 건다. 바야흐로 숲이 위대해지는 순간이다. 숲을 이루는 것은 식물이다. 식물은 인간보다 먼저 세상에 등장하였다. 그들은 바로 한 곳에 정착했다. 움직임을 포기한 대가로 식물들에게는 장수가 주어졌다. 숲은 디오니소스적이다. 인간이 아무리 줄을 맞추어 나무를 심어도 나무사이에는 경쟁하는 관목과 풀들이 저절로 군락을 이룬다. 햇빛과 바람과 비가 결과하는 아름다운 집단이다. 이성적이지 않은 숲이 가장 풍요로운 질서를 이루는 것은 자연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자연에 대항하지 않고 순응하는 식물의 삶은 우리에게 종다양성이란 큰 선물을 주었다. 더 많은 나무, 풀, 잡초들이 무성할 때 비로소 동물의 삶은 유지되고 강화된다.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는 무성한 숲이 벌과 새를 불러들이고 그들은 먹이를 얻는 대가로 식물들의 번성을 돕는다. 식물의 종다양성을 인간이 바꾸고자 할 때 단일종목의 비극이 시작된다. 미국 중서부를 가면 옥수수밭이 끝도 알 수 없을 만큼 펼쳐져 있다. 인간이 고기를 얻기 위해 가축들에게 필요한 사료가 옥수수다. 단종재배(monoculture)는 지력의 극심한 소모를 가져온다. 뿐만 아니라 과다한 농약과 인공비료의 남용으로 옥수수밭과 공존해야 할 동물들의 발걸음도 끊는다. 종국에는 농약에 찌든 농작물을 인간과 동물이 섭취하면서 땅은 황폐해지는 부(負)의 악순환이 펼쳐지는 것이다. 카슨여사는 이미 1962년에 침묵의 봄으로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 바 있다. 인류가 수렵 채취 시대를 마감한 것은 식물의 작물화다. 다이아몬드교수는 식물의 작물화가 맨 처음 시작된 곳은 비옥한 초승달지대라고 한다. 이곳은 지중해성 기후로 온화하고 강수량이 비교적 풍부하여 식물의 군락이 발달해 있었다. 이 중에서 인간이 작물화한 종은 한해살이 풀이었다. 인간의 노동력이 적게 들면서도 씨앗은 식량으로 삼을 만큼 충분히 컸다. 자화수분을 하는 종으로 번식이 용이해야 했다. 초승달지대는 같은 위도에 걸쳐 있어서 기후대가 같았기 때문에 인접지역으로의 전파도 용이했다. 식물의 작물화는 인간의 욕구와 변주하며 협동하는 공진화의 길을 걸었다. 마이클 폴란은 식물에게도 욕망이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사과, 튤립, 대마초, 감자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어느 산기슭에 열렸던 고대의 사과가 전 지구를 정복하게 된 것은 달콤함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인공화의 결과라고 한다. 문제는 식물에게도 욕망이 있고 인간과 협조할 때 지구의 생태계가 윤택해진다는 것이다. 생존경쟁은 도태와 패배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협력과 상생도 있다. 식물의 욕망을 인간이 선용하면 사과처럼 달콤함을, 튤립처럼 아름다움을, 감자처럼 구황을 견디게 해준다. 반대로 식물을 지배하려고 하는 순간 단일작물의 대규모재배가 가져오는 부작용이 생긴다. 이제 식물을 존중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식물은 말이 없는 게 아니다. 바람에 흔들리면서, 햇빛에 찬란하게 반사되면서 자연을 받아들이라고 식물들이 번성하도록 숲과 산과 들을 그대로 두라고 쉬지 않고 경고한다. 숲이 우리에게 거는 대화를 따라가 보자. 식물의 욕망을 이해할 때 인간은 위대한 식물과 더불어 삶이 풍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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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25 19:13

'김기식 낙마 사태'에서 얻는 교훈

▲ 윤승용 서울시 중부기술교육원장 피감기관 지원 외유의혹과 국회의원 시절 임기 말 정치자금 셀프 후원 등으로 퇴진요구를 받던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6일 밤 전격 사퇴했다. 중앙선관위가 김 원장의 셀프후원 의혹이 위법이라는 판단을 내린 직후다. 이번 사태는 장관급 고위공무원이 임명될 때마다 야당과 언론 등에서 제기하는 의혹 공세로 낙마하거나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직위를 고수하던 과거 행태와 유사한 듯 하지만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먼저 과거에는 전현직 국회의원이 발탁될 경우엔 야당의 공세가 일정 수위를 넘지 않던 관례가 무색했다는 점이다. 여야를 불문하고 전현직 의원, 특히 현직의원이 장관직에 임명되면 트집을 잡더라도 임명철회에 이를 정도로 그악스럽게 공격해대진 않았다. 여야간에 일종의 암묵적인 동료의식이 발휘되곤 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 차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 가운데 낙마한 경우는 안경환 법무장관 후보자 등 7명인데 이들이 모두 의원출신이 아니었던데 비해 이낙연 총리 등 전현직 의원 출신 9명은 모두 탈 없이 인사청문회를 통과했음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 같은 현상은 특히 임명동의 투표라는 관문을 통과해야하는 총리의 경우를 보면 두드러져 보이는데 2000년 이후 국무총리에 지명된 후보 18명 중 12명이 통과했고 6명이 낙마했다. 통과한 12명 중 이한동 전 총리 등 6명은 선출직 공무원 출신이고 나머지 6명은 비(非)선출직 공무원이다. 장상 후보 등 낙마한 6명 중 선출직 공무원은 김태호 전 의원 하나였을 뿐이다. 김기식 원장의 경우 비록 전직 의원이지만 진보적 성격의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출신이란 점이 동료의식이 작동하지 못하게 한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 또 하나는 여야간의 공방과정에서 여의도 정치권의 의도와는 달리 선출직 공무원 사회의 적폐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점이다. 사실 이번에 드러난 피감기관 지원 외유와 임기말의 정치후원금 땡처리라는 적폐는 의원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유권자들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종의 업계비밀이 여야간의 이전투구 덕분(?)에 백일하에 까발려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는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국회의원들의 오랜 관행가운데 아직도 적폐 요소가 산적해있으며 이 같은 적폐는 그들의 셀프개혁에 맡겨서는 부지하세월일 것이라는 점이다. 매번 총선 때마다 각 정당은 경쟁적으로 의원특권 내려놓기 공약을 내세우곤 했다. 지난 20대 총선 때도 △무노동 무임금 도입 △불체포 특권 포기 △4촌이내 친인척 보좌직원 채용금지 △출판기념회 금품모금 금지 △해외출장시 재외공관 지원 최소화 등을 내놓았었다. 20대 총선이 끝나자 정세균 국회의장이 주도해 의원특권 내려놓기 특위를 구성하기도 했으나 역시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에 태풍을 방불하게 하는 여야 간의 날선 공방과정에서 낱낱이 드러난 국회의원들의 적폐행태는 결코 다시 되풀이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구태와 관행을 규제하고 처벌하는 엄정한 법률적 잣대가 도입돼야만 한다. 매년 여름이면 찾아오는 태풍은 한반도에 엄청난 재앙을 가져오지만 그에 못지않은 경제적 효과도 있다고 한다. 기상학자들에 따르면 태풍은 수자원 확보, 대기질 개선 등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바닷물을 상하로 순환시켜 수질오염 약화와 적조 예방 등에 큰 효과가 있다고한다. 이번 김기식 낙마사태가 한바탕 스쳐지나가는 찻잔 속의 태풍이 아니라 정치권을 정화시키는 순기능적 태풍으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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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18 20:42

새로운 민주주의-지방분권

▲ 최강욱 변호사법무법인 청맥 꽃샘추위가 만만치 않다. 미세먼지와 황사의 습격도 그치질 않는다. 봄날은 따스한 햇살과 함께 맑은 공기에 실려오는 꽃향기에 취하는 날이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니 안타깝다. 4월에 때 아닌 눈까지 내렸으니 봄이 와도 진짜 봄이 온 것 같지 않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나라를 제 곳간으로만 알고 정권을 돈 버는 수단으로만 알았던 이의 말로도, 청와대를 사적 소유물로 알고 아버지의 영혼에 기대어 꼭두각시 생활을 영위하던 이의 말로도 여전히 어떤 이들에게는 교훈이 되지 못하는 모양이다. 대통령을 지낸 이들은 살아서 나오지 못할 수준의 범죄로 갇혀 있는데, 그 대통령을 등에 업은 채 재산을 불리고 자리를 챙기던 이들은 희한한 궤변을 토하며 여전히 거리를 활보하고 외국으로 날아다닌다. 정말 우리에게서 독재의 겨울은 확실히 떠나간 것일까. 지난 시절의 더러운 권력이 각성한 시민들이 끝내 꺼뜨리지 않은 촛불로 응징을 받았다면, 우리는 이제 새로운 권력과 민주주의의 모습을 고민해야 할 때다. 개헌이든 개혁이든 주권자의 각성이 없다면 새로워질 것은 없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진리를 다시 확인했다면 우리 손으로 올바른 권력의 모습을 더 치열하게 다듬어야 할 때다. 그 핵심은 누가 뭐래도 나누고 낮추는 데 있다. 집중된 힘을 나누고 위에서만 놀던 힘을 끌어내려야 한다. 지방분권의 중요성을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중앙집권체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왔다. 상행 하행이라는 관용어가 그렇고 중앙과의 연계를 통해 기득권을 지키려는 토호들의 몸부림도 그렇다. 중앙의 고관이라며 거들먹거리는 이들은 젊은 시절 근무했던 어느 지방의 후한 인심과 자신에 대한 호의를 자랑하며 뿌듯해 한다. 삶의 터전을 확실히 중앙에 잡았다 자부하는 이들일수록 지방의 현실을 그저 꿈에서도 아련하게 떠올리는 아름다운 추억 정도로 치부한다. 그들에게 지방은 영원히 베풂의 대상이고, 지방에서 바라보는 자신의 위치는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라 믿기에 더욱 그렇다. 고속철도의 대중화로 한 두 시간이면 닿는 서울이 된 이상, 중앙과 지방을 나누는 게 의미가 없다는 이들도 있다. 작은 땅덩어리에서 자꾸 구분짓는 일을 하지 말라며 짐짓 눈을 부라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 철도와 도로가 고속으로 빨아들이는 돈과 사람의 모습은 애써 외면한다. 중앙의 화려함을 바라고 자발적으로 날아드는 불나방을 어찌할 거냐며 그저 혀를 차댈 뿐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언제까지 그럴 수도 없다. 지방자치란 삶의 터전이 어디에 있든 문화의 혜택을 골고루 누리고 교육과 직업 및 소득의 격차를 두고 걱정하지 않는 세상을 일구는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지역마다 고유의 문화를 자랑하며 여유를 만끽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사람을 낳아서 서울로 보내지 않아도 충분한 성취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나라가 진짜 잘 사는 나라인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고, 아이들의 키높이에 눈을 맞추는 것만이 새로운 민주주의의 상징이 될 수는 없다. 권력기관의 개혁도 결국 나누고 낮추는 데 그 핵심이 있다. 결국 주권자가 주인이라는 헌법의 기본을 제대로 구현하는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라는 새나라는 중앙권력에 꿀리지 않는 멋진 지방분권의 시대를 열어가야 완성된다. 지방의 발전이 모여 건강한 권력을 이룰 때 우리는 진정한 선진국으로 거듭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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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11 19:00

6·13 지방선거에 거는 기대

▲ 심덕섭 국가보훈처 차장 613 지방선거가 이제 불과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는 앞으로 4년간 우리 지역의 발전을 이끌어 갈 단체장을 선출하는 정말 중요한 선거이다. 필자는 작년까지 행정자치부의 지방행정실장으로 재임하면서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현실과 폐단을 직접 목도한 경험이 있다. 특히 지역의 발전과 주민의 복지가 단체장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사례를 현장에서 수도 없이 보아 왔다. 한 예로, 전북의 어떤 군에서는 민선 5기까지 선출된 군수가 모두 4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하차를 반복하다 보니, 그 군은 발전은커녕 오히려 후퇴했다는 말이 나왔다. 반면 어떤 시군은 단체장이 목표의식을 갖고 지역발전을 이끌어 관선 때보다 획기적으로 지역을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단체장을 잘못 뽑아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에는 그 피해가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간다. 민선 6기로 당선된 228명의 기초단체장 중 거의 10%에 육박하는 21명이 선거법 위반과 부정부패 비리 등으로 당선이 무효가 되었다. 여기에는 우리지역의 익산, 정읍, 김제시장도 포함되어 있다. 당선이 무효 되면 보궐선거를 통해 다시 뽑아야 하는데 그 선거비용은 주민들의 세금으로 충당된다. 게다가 수사나 재판과정에 나타나는 행정 공백사태는 주민들에게 정책 지연, 정치 불신, 지자체의 이미지 훼손 등 금전으로 계산할 수 없는 더 큰 손실을 초래한다. 굳이 이런 좋지 않은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지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단체장을 정말 잘 뽑아야 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께서 다음 몇 가지 기준을 갖고 단체장을 선출해 주셨으면 한다. 첫째, 우리 지역의 발전에 가장 적합한 후보자를 뽑자.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러나 많은 단체장은 지역의 발전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실제로는 단체장 개인의 욕심을 채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 전 정권의 대통령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단체장이 되려는 사람들은 선거에 출마해서는 아니 된다. 한 지역의 단체장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올바른 통치와 경영을 통해 그 지역의 발전을 이끌어 가겠다는 마음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둘째로, 군림하는 단체장이 아니라 봉사하는 단체장을 뽑자. 요즘 공무원들은 과거와 비교해 볼 때 엄청나게 변해있다. 어떻게 하면 주민들을 위해서 더 서비스를 잘 할 것인가를 가장 큰 가치로 삼고 낮은 자세로 주민들에게 봉사하고자 한다. 그러나 일부 단체장은 아직도 거의 제왕적 권한을 행사하면서 주민들 위에 군림하는 자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지역사회의 발전과 주민들의 복리증진을 위해 낮은 자세로 서비스 해주는 사람을 뽑아야 할 것이다. 셋째로, 돈을 써서 당선되려는 사람은 절대로 뽑지 말자. 서울, 경기 등 대도시 지역에는 돈 선거가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지방으로 갈수록 아직도 돈 선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러나 돈 선거는 결국 지역에 커다란 재앙을 가져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선거과정에 돈을 많이 쓰면, 당선 후 들어간 비용을 채워 넣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인지상정이다. 결국 공무원들에 대한 인사의 대가로 금품을 받거나 관급공사 조달 비리를 통해 들어간 비용을 메꾸고자 한다. 이런 비용들이 궁극적으로는 지역주민들의 혈세로 충당되어야 한다. 이번 613 선거에서 이상의 세 가지 기준을 충족시키는 단체장들만 선출된다면, 우리 지역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앞으로 4년 동안 우리 지역의 발전을 맡길 단체장을 뽑는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혜안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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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04 19:02

역시 사람이더라

▲ 김광휘 행안부 평창동계올림픽지원단 부단장 2월 9일 개막한 동계올림픽이 3월 18일 패럴림픽 폐막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성공 여부에 확신을 하지 못했던 국민들은 개막식에서 보여준 감동의 공연을 보면서 희망을 가졌다. 대회 초반 국민들의 관심은 컬링팀 덕분에 고조되었다. 팀킴의 함성과 호흡은 국민들을 하나로 만들었다. 쇼트트랙 등 강세종목과 더불어 스노보드, 스켈레톤 등에서 우리 선수들이 연이어 선전하면서 올림픽의 성공을 예감할 수 있었다. 일주일 쉬고 시작된 패럴림픽에서는 신의현선수, 컬링오벤저스 등 참가 선수 모두가 감동을 주었다. 썰매아이스하키팀은 동메달을 따고 링크에서 태극기를 펼치고 목이 터져라 애국가를 불렀다. 그 자리에서 영광의 순간을 함께 하던 나도 울었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저력을 확인하였다. 여름과 겨울 올림픽, 월드컵, 육상선수권 등 4대 메이저 스포츠를 모두 개최한 6번째 나라가 되었다. 단순히 스포츠제전을 많이 개최한 것 이상이다. 국격이 상승되었다. 개막식은 아름다운 공연과 더불어 평화의 메시지도 가지고 왔다. 남북한 동시입장으로 시작된 올림픽이 한반도 평화를 준비되는 계기가 되었다. 외국 언론은 안전한 평창올림픽에 가장 높은 점수를 주었다. 경기장과 도로 어디에도 제복을 입거나 총을 든 안전요원들이 보이지 않았지만 별다른 사건 사고 없이 올림픽을 치렀다. 평창이 휴전선에서 몇 킬로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역이 맞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우리 모두 평창올림픽은 성공했다고 한다. 국민들이 한 마음으로 응원하여 만들어낸 성과이다. 전국 지자체의 물적인적 지원도 컸다. 그렇다면 평창올림픽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결정적 요인은 무엇일까. 2월부터 두 달여 동안 평창 현지에서 올림픽을 직접 준비하면서 느낀 것은 역시 사람이더라.이다. 대규모 행사를 준비할 때 잘 수립된 계획, 재정적 지원 등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집행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적재를 선발하여 적소에 배치한다 하더라도 그분들이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지 않으면 의도된 성과를 올릴 수 없다. 평창올림픽은 로터리에서 주차장에서 경기장에서 애를 쓴 자원봉사자, 군경, 단기파견 공무원, 직원 등 약 5만 여명의 종사인력이 빚어낸 아름다운 합작품이다. 종사인력 처우를 지원하기 위해 각 경기장을 돌아볼 때마다 추운 날씨 속에서 미소와 친절로 그리고 큰 소리로 필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자원 봉사자들에게서 깊은 영감을 얻었다. 우리는 그간 큰 행사를 준비하면서 경기장, 시설, 도로, 장비 등 보이는 것에 치중해온 경향이 있다. 사람을 후순위로 두면 인간을 목표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도구적 관점으로 인해 뷔리당의 당나귀를 초래하기가 십상이다. 몹시 허기지고 목마른 당나귀에게 한 쪽에는 먹이통을 다른 쪽에는 물통을 주고 선택하라면 당나귀는 망설이다가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고 성과를 올리려면 자발적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자원봉사자 등 종사인력 한 분 한 분이 가지고 있는 전문성과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이는 각 개인에게 자유의지가 부여될 때 가능하다. 자유의지는 모든 것에 사람이 우선한다는 정책적 감수성이 제공해주는 선물이다. 여기에 사람을 귀히 여기는 진성리더십이 뒷받침될 때 우리가 의도하는 일은 성공할 수 있다. 이것이 평창올림픽의 성공에서 얻은 인간중심적 성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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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28 20:25

평양 주재기자를 하고 싶다

▲ 윤승용 서울시 중부기술교육원장 마치 치킨게임을 하듯 일촉즉발로 치닫던 한반도의 핵 위기가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언제 그랬냐 싶게 극적 반전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북한의 전격적인 올림픽 참가와, 이와 함께 전개된 잇단 남북간의 접촉, 이어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합의는 한반도 핵 위기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가능케 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 추이를 지켜보며 잠시 18년 전 시절을 되돌려본다. 그러니까 새 밀레니엄이 시작된 2000년 10월. 당시 한국일보 워싱턴특파원으로 재직 중이던 나는 타사 워싱턴 특파원 동료들과 한때 행복한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는 그해 6월 분단 이래 처음으로 역사적 615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리는 등 한반도가 탈냉전의 훈풍으로 후끈 달아오르던 시절이었다.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한의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해 빌 클린턴 미 대통령과 백악관 집무실에서 만나 북미관계 정상화를 논의하고, 미국의 메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 김정일과 면담했다. 곧 이어 북미관계 정상화를 매듭짓기 위해 클린턴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평양을 방문하려고 내부적으로 준비를 하던 시기였다. 복기해 보자면 당시 상황은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 중지(모라토리엄)남북 정상회담북한 조명록 특사 방미미국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방북클린턴의 방북과 북미정상회담 등의 순서가 예정돼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취재원 가운데 북한돕기운동 등을 하며 북한과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던 한 재미동포는 나중에 뉴욕의 북한 대표부 요원으로부터 북미 수교 후 사용할 북한의 워싱턴대표부 사무실용 건물을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받고 워싱턴D.C.의 외교가인 매사추세츠 애비뉴 일대의 빌딩을 물색했었다고 털어놓기도 했었다. 북한도 그만큼 대미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예화다. 이처럼 정말 조만간 한반도에서의 비정상적 군사적 대치상태가 해소되고 통일이 현실화할 듯한 분위기였다. 약 20여명 달하는 한국 언론의 워싱턴 특파원들은 백악관, 국무부, 펜타곤을 오가는 숨가쁜 취재 와중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워싱턴 내셔널프레스센터 인근 선술집에서 향후 한반도 정세의 추세에 대해 희망어린 전망을 하며 맥주를 기울이곤 했다. 당시 나는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북한 취재가 가능해지면 초대 평양주재기자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어느 동료 기자가 평양 특파원이 아니라 평양 주재기자라고?라며 의아해했다. 주재기자와 특파원,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큰 차이가 있다. 주재기자는 진정한 통일이 되어서 남북한이 단일 정부 체제에 속해 평양도 한국의 일부라는 전제가 깔려있는 반면 특파원은 남북이 별개국가이지만 외교관계를 맺고 있을 때 가능한 경우일 것이다. 이 경우 물론 주재기자는 언론사의 편제상 지방취재부 소속이고, 특파원은 국제부(혹은 외신부) 소속일 터이다. 하지만 당시의 상상은 뒤이어 등장한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들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경수로 건설을 골자로 하는 제네바합의를 파기하고 이에 맞서 북한이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을 하는 등 다시 북미 간 갈등이 고조됨으로써 한낱 취중 공상으로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한반도에 조금씩 머리를 내미는 평화의 새싹을 보며 당시의 공상이 한낱 취중 망상이 아니었기를 바라는 마음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남북관계가 정상화한다면 현역으로 복귀해 초대 평양주재기자를 해보고 싶다는 몽상이 봄날과 함께 다시 스멀스멀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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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21 19:59

지방자치의 새봄이 피어나려면

▲ 최강욱 변호사법무법인 청맥 새봄이다. 1년 전엔 대통령의 탄핵과 더불어 새시대를 알리는 봄이 오더니, 올해엔 한반도 평화의 서막을 여는 봄이 왔다. 아울러 들불처럼 번지는 me too운동을 보면, 알량한 권력에 기대어 약자 위에 군림하고 사욕을 채우던 시대가 여러모로 저물고 있다는 것도 확실하다. 자유와 보수를 개칠하여 정권을 잡았던 자들이 벌였던 각종 범죄와 추문들이 내부자들의 자백을 통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도 새봄이 우리에게 주는 국운융성의 희망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좀 있으면 지방선거다. 후보자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지역의 발전을 말하고, 주민들의 머슴이 되는 삶을 말한다. 출판기념회를 열고 명함을 돌린다. 절대 자신의 영달이 아니라 주민들을 위해 희생하려 출마한 것이라며 고개를 숙인다. 호남을 일컬어 민주화의 성지라 한다. 대한민국 진보와 개혁의 교두보라고도 한다. 가슴 뿌듯한 칭찬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마음 한구석이 찜찜한 것도 사실이다. 과연 우리는, 우리 고향은 지방자치와 지역정치를 통해 남들이 부러워할 성과로 어떤 것들을 내놓을 수 있을까. 어느 나라나 지역당이라는 게 있다. 그 지역민의 정서를 이해하고 가장 앞장서 대변하는 이들이 정당을 구성하고 의회에 진출하여 지역민의 뜻과 가치를 대변하는 모습이 무조건 퇴행적이라 할 수는 없다. 특히 우리의 경우엔 독재를 떠받친 쪽과 핍박을 받은 쪽의 지역당을 동일 선상에서 평할 수도 없다. 중앙정치 무대에서 전북과 전북 출신이 지향했던 가치가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면에 가까웠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는 법. 그 와중에도 과연 저러한 모습의 정치가 올바른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장면도 많았고, 각종 추문을 통해 지역민의 가슴에 상처를 남긴 정치인도 많았다. 지역정치는 어떤가. 진정 지방자치의 가치를 구현하며 시민의 공복으로 충실한 임무수행에 매진하는 이들만을 선출하였던가. 누가 뭐래도 전라북도의 지방자치는 매우 건강하고 건전한 것으로 모범이 된다며 자랑할 수 있는가? 교육감 선거에 나선 후보자 여럿이 일제히 수사 대상이 된 적이 있고, 군수들이 연달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형사처벌을 받은 곳들이 있다. 후보자간 매수행위는 물론 후보자와 선거운동원들이 무더기로 기소되는 경우가 있었다. 하물며 한 때의 유력 후보자는 수사가 시작되자 잠적하여 아직도 행방이 묘연하다. 지방행정과 자치의회가 이룬 성과는 무엇이 있을까. 다들 열심히 노력했다지만 생각처럼 모든 것을 이루지는 못했다. 인사는 어떻고 조직문화는 어떤가. 전국적으로 귀감이 될만한 인사운영 사례나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질화한 정책으론 무엇이 있었을까. 아니. 선량들의 면면을 볼 때 중앙정치 무대에 내세워도 손색이 없는 인재들은 얼마나 활동하고 있는가. 꼼꼼히 살필 일이다. 고향이 같은지, 학교가 같은지. 성씨가 같은지, 아니 내게 뭘 갖다 준 게 있는지만을 두고 후보자를 판단해선 안 될 일이다. 잘 알지 못하니 그저 정당을 믿자는 것도 정답이 될 수 없다. 당내 경선에만 집중하여 승리하고 자동으로 당선되는 후보가 과연 당 지도부와 주민 가운데 누구를 더 의식할까. 제도를 탓할 수만은 없다. 주권자들의 참여와 의식수준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투표로 당선된 이명박과 박근혜가 저지른 일을 보고도 우리 스스로 깨우치는 게 없다면, 새봄은 더 이상 새날을 약속할 수 없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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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14 19:38

전북지역에도 보훈요양원 들어선다

▲ 심덕섭 국가보훈처 차장 우리 전북은 지난 수십 년간 집권정권에 의해 끊임없이 지역차별을 받아 왔다. 지역발전은 물론이고 예산이나 인사에서도 전북은 철저하게 소외되어, 도민들은 분노의 수준을 넘어 체념의 단계까지 도달한 게 최근까지의 지역차별 현 주소였다. 그런 와중에 정말 참기 어려운 또 한 꺼풀의 지역차별은 호남권 내에서 이루어진 차별이었다. 어렵사리 호남 몫으로 배정된 중앙의 사업이나 예산은 통상 광주나 전남에 우선배정되고 우리 지역에는 남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급기야 우리는 호남이라 불리는 것을 몹시도 싫어했고, 호남과는 별개로 취급해 달라고 주장하던 웃지 못 할 때도 있었다. 이런 가슴 아픈 사례는 국가유공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보훈병원과 보훈요양원의 입지에서도 찾을 수 있다. 국가보훈처에서는 국가를 위해 희생공헌한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들을 위해 전국 5개 권역별로 보훈병원 5개소(서울부산대전대구광주)와 보훈요양원 6개소(수원광주김해대구대전남양주)를 건립하여 운영 중에 있다. 이에 따라 전북 지역에 거주하는 3만 가구 이상의 보훈가족은 보훈병원이나 요양원을 이용하고자 할 때에 광주에 입지해 있는 시설을 이용해야만 했다. 거리상으로도 짧지 않아서 느끼는 불편도 불편이지만, 전북지역에 보훈시설이 없어 광주까지 가야 한다는 점에서 보훈가족들은 굉장히 자존심을 상해했다. 그렇다고 광주 지역에 보훈병원과 보훈요양원이 설치되어 있으니 경제성을 고려할 때 전북에 이들 시설을 건립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전북지역 보훈가족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전북권 보훈요양원 건립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이는 전북지역 보훈가족들의 간절한 염원을 전북 정치인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결실을 맺은 감동의 스토리 그 자체였다. 그동안 호남이라는 지역구도 내에서 받은 지역차별을 한순간에 털어버린 순간이기도 하였다. 보훈 가족 한분 한분을 끝까지 챙기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출범이 있었기에 이런 쾌거도 가능했음은 물론이다. 보훈요양원은 법정 배치인력보다 더 많은 수의 요양보호사를 투입하여 보다 우수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참전상이(傷痍)자가 대부분인 입소자의 특성을 고려하여 심리안정과 재활치료작업치료도 집중 운영하고 있다. 그 외에도 치매극복과 보훈대상자 자긍심 향상 등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으며, 자원봉사단체 연계 등에 있어서도 월등한 실적을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매년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하는 장기요양기관 평가에서 8년 연속 최우수 시설로 평가받고 있다. 전북권 보훈요양원은 200병상 규모로 356억 원의 복권기금 재원으로 건립될 예정이며, 올해 부지매입을 시작으로 2019년도 착공, 2020년도 완공을 거쳐 2021년도에 개원할 계획으로 추진되고 있다. 3만 3000여 가구의 전북 보훈가족들을 위한 백년대계 사업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최적의 부지를 정하고자 현재 20여 곳 가까이 되는 후보지들을 현장답사 후 검토 중에 있다. 올해 상반기 부지매입을 끝낸 후 하반기에는 설계공모를 통해 전북지역의 자랑이 될 수 있는 설계디자인을 선정하여 공사를 추진할 예정이다. 특히나 전북지역 보훈가족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만큼 최고의 보훈요양원이 전북지역에 지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를 통해 그동안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어 왔던 전북 보훈가족들의 자긍심을 드높일 수 있는 멋진 계기가 되도록 할 것이다. 도민 여러분들의 뜨거운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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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07 20:29

집단지성과 대중

▲ 김광휘 행안부 평창동계올림픽지원단 부단장 문제를 내면 소수의 전문가와 대중 중에 누가 정답을 맞힐 것인가. 일반적으로 전문가이다. 맨켄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대중의 상식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까지 했다. 그런데 대중이 더 정확하다는 견해가 있다. 1907년에 플리머스에서 생긴 일이다. 가축품평회장 한켠에서 소가 도축되었다. 800명에게 소의 무게를 물어보았다. 이들 중 판독 가능한 787명이 써낸 소 무게의 평균값은 1197파운드였다. 소의 실제 무게는 1198파운드였다. 대중이 예측한 값이 실제 무게와 거의 정확하게 일치했던 것이다. 통계학자 달튼의 목격담이다. 서로우키는 이를 인용하여 전문가보다는 대중이 보다 더 정확한 문제 해결책을 제시한다고 주장했다. 소위 대중(大衆crowd)의 지혜이다. 여기서 대중은 공중이 아니다. 우연히 한 자리에 모인 군중도 아니다. 어떤 분야에 의사를 가지고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대중의 해결책이 전문가의 의견보다 우수하기 위해서는 대중들의 출신과 배경이 다양해야 한다. 의사를 결정할 때 독립성도 있어야 한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야 한다. 소수 전문가 집단이 종종 심각한 의사결정 상 실패를 하는 것은 다양성과 독립성의 부족 때문이다. 집단 내 리더나 유력자의 의사를 추종할 경우 집단의 전문성은 훈련된 무능력이 된다. 최고의 두뇌들만 모였다는 나사에서 발사한 우주선 컬럼비아호가 폭발해버린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대중의 지혜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경쟁하거나 협력하는 동안 집단지성이 된다. 개미를 보자. 하나의 개미는 연약하지만 수많은 개미들이 모여서 사람 키만 한 개미집을 만들어낸다. 질서 있게 협동하는 개미의 군집행동이 바로 집단지성인 것이다. 집단지성을 활용하여 만들어내는 놀라운 변화가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이다. 크라우드소싱은 개인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인터넷 상에 해결방안을 구하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해당문제에 의견을 주면 이런 의견들이 모여서 최적의 해법을 만들어준다. 네선생이라 불리는 네이버지식iN이나 위키피디아가 대표적이다. 멋진 사업계획이 있는데 재원이 부족할 경우 크라우드펀딩을 이용한다. 인류의 불치병을 치료하기 위해 우주의 광물이 필요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하자. 이를 구현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성공시 효과가 큰 사업 구상이나 돈이 모자란다. 이때 인터넷상을 통해 단기간 내에 원하는 투자금액을 모으는 방식이다. 우주광물 채굴계획을 세웠던 피터 디아만디스의 사례가 있다. 이와 같은 변화의 기저에는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몇 가지 철학적 관점이 있다. 정보와 데이터는 공개되어야 한다. 그리고 서로 같이 협력해 나가야 한다. 자원은 공유하고 행동은 전 지구적으로 과감하게 해야 한다. 집단지성을 행정에도 적용해 볼만 하다. 예산은 공공만 부담하는 것이 아니다. 관심 있는 대중이 돈을 댈 것이다. 문제해결도 주민들이 더 잘 할 수 있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커뮤니티를 만들어주거나, 우수한 아이디어는 있는데 실현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경연대회 등의 기반과 통로를 만들어주는 것이 행정이 해야 할 일이다. 80년대까지가 조장행정이었고, 90년대 이후 협력행정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이제는 바야흐로 행정에서도 집단지성과 다양성을 갖춘 대중이 문제해결의 주체가 되는 시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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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28 19:54

반복되는 국회의 선거구 획정 직무태만

A씨는 지금도 2012년의 411 국회의원 총선을 떠올리면 실소를 금치 못한다.언론계 출신인 그는 현실정치에 뜻을 두고 출마 지역구로 경기 용인시를 선택했다. 수년째 살던 곳이기도 했지만 인구가 90만이 넘는데도 의석수가 3석에 불과해 4석 선거구 분구가 예상되므로 그곳을 택하라는 당 지도부의 권유도 작용했다. 이미 공직선거법에 의해 구성된 19대총선 선거구획정위에서 인구 최다 선거구와 최소 선거구의 인구편차를 3대1로 한다는 기준 아래 용인시 기흥구와 수지구 등 전국 8개 선거구를 분구하는 것으로 보고한 것도 염두에 두었다.그는 기흥구의 신도심인 동백지구에 사무소를 열고 새벽부터 명함돌리기에 전력투구하는 한편 선거인단 투표 50%, 여론조사 50% 적용이 예상되는 당내 경선규칙을 고려해 선거인단 모집에도 최선을 다했다. 기초의원 출신 당내 라이벌 후보가 기흥구가 분구될 경우 자신의 고향인 기흥구 남쪽지역을 택할 것으로 예상하고 북쪽지역인 동백동을 집중 공략했다. 여론조사에서 라이벌 후보에게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오자 용기백배했다.하지만 국회 정개특위가 선거구획정위의 보고안을 무시한 채 최종 확정을 차일피일 미루자 그는 애가 닳기 시작했다.정개특위는 여야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안을 관철시키기 위해 실랑이만 벌이다 법정시한을 두 달이나 넘긴 2012년 2월 27일에야 선거구를 확정했다.그런데 그 결과는 최악이었다. 용인시의 경우 3인선거구에서 5인 선거구로의 분구를 요구한 선거구 획정위안과는 무관하게 그냥 3인 선거구로 존치하되 인구 과잉으로 인한 위헌 논란을 회피하기 위해 기흥구 동백상하동을 처인구로 편입시키는 꼼수가 가해졌다. 말 그대로 이 같은 게리맨더링 탓에 기흥구 동백동 일대 8만여 명은 하루아침에 처인구 선거구에 편입됐다 .분구를 전제로 동백동을 중심으로 선거인단을 집중 모집한 A씨는 이 바람에 다수의 선거인단을 잃어버리는 사태에 봉착했다.더구나 당의 국민경선 시행세칙에 선거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선거인 모집 개시일 5일 전 현재 해당 국회의원 지역선거구 안에 주민등록이 돼 있어야 한다고 규정돼 있어 선거인 모집이 2월 20일부터 시작된 점을 고려하면 2월 15일 이전까지 주소지가 해당 선거구에 등재돼 있지 않은 사람은 선거인이 될 수 없게 됐다.이로 인해 졸지에 동백동이 주소지인 A씨는 자신을 위한 선거인조차 되지 못하는 황당한 상황에 처해버렸다.결국 여론조사에서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선거인단 경선에서 큰 차로 뒤지는 바람에 A씨는 당 경선에서 탈락했다.이처럼 국회 정개특위가 정쟁에 매몰돼 선거구를 지각 획정해서 입후보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사례는 비단 19대 총선 때 뿐 만이 아니다. 경우는 다르지만 올 6월 지방의원 선거를 앞두고도 똑 같은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국회가 법정 시한 두 달 이상 지나도록 지방의원 선거구를 획정하지 않자 중앙선관위는 19일 우선 3월 2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을 받기로 했다고 한다. 이 바람에 일부 지방의원 후보자의 경우 자기가 출마할 선거구도 정확히 모른 채 선거운동을 시작해야 할 판이다.이처럼 2년마다 반복되는 국회의 직무유기를 어떻게 하면 방지할 수 있을까? 최선의 방책은 선거구 획정권한을 국회에서 중앙선관위나 별도의 획정위로 이관하는 것이라는 게 여의도를 제외한 정치권의 중론이다. 정당의 이해와 첨예하게 관련된 선거구 획정을 국회에 맡기는 것은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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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22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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