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news
전주 구도심에 있는 전북예술회관의 활용도가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모양이다. 알려지기로는 전라북도 브랜드 공연물을 위한 상설공연장으로의 활용이다. 브랜드 공연 연구 보고서는 이 공간을 공연장으로 리모델링할 경우 20억 원 정도의 비용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효율적인 활용도가 아쉬웠던 마당에 그 쓰임새가 구체적으로 모색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문제는 이 공간을 공연장으로 활용하는 것이 효율적인가에 대한 것이다. 전북예술회관은 1982년 문을 연 이후 80년대와 90년대 전북지역 문화예술 활동의 집산공간이었다. 적어도 전북대삼성문화회관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 문을 열기 전까지 지역 문화예술을 상징하는 문화공간은 전북예술회관 뿐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 전북예술회관의 공연장 기능은 마비됐다. 도심 안에 있다는 지리적 장점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낡고 빈약한 시설과 방치되어 있는 듯 한 공간 환경을 눈여겨보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전북예술회관이 제 기능을 할 때도 건물의 맨 윗층에 있는 공연장의 활용도는 늘 화제가 됐다. 1·2층과 3층을 지나 4층까지 오르내려야하는 불편함은 차치하더라도 공연예술의 특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구조 탓이었다. 그나마 전북예술회관의 존재를 지킨 것은 전시실의 기능과 문화예술단체의 사무실 기능이다. 얼마 전부터 구도심 활성화와 연계한 전북예술회관의 효율적 활용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아쉽게도 바람직한 활용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는 진전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전북의 브랜드공연과 관련되어 나온 전북예술회관의 상설공연장 활용은 그 배경의 목적성에도 불구하고 다소 일방적이고 충동적인 제안으로 보인다. 독일 베를린에는 '발하우스 콘서트홀'(Ballhaus Naunystrasse)이라는 아주 작고 낡은 공연장이 있다. 19세기 베를린의 전형적인 사교댄스장이었던 오래된 건물을 복원, 독특한 형식의 공연장으로 만들었다. 평범한 주거지역의 건물 사이에 있어 찾아가기도 쉽지 않고, 화려하게 리모델링된 재생공간들과는 대조될 정도로 낡고 비좁지만 베를린안의 자유로운 예술가 그룹의 창작무대로, 국제예술 무대로 활용되면서 이름을 알렸다. 우리를 주목하게 하는 것은 이 공간의 쓰임새를 결정한 과정이다. 이 지역주민들과 전문가들은 제안된 다양한 활용방안을 놓고 고민하면서 '오래된 공간의 역사를 기억하면서도 가장 가치 있게 활용하는 방식'을 찾아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공간은 지금 지역주민들의 자랑거리가 됐다. 전북예술회관도 지역의 자랑이 될 수 있는 오래된 공간이다. 그 활용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진전되기를 기대한다.
'운수(雲水)는 백제의 옛 영토였던 고현(古縣)과 청웅(靑雄)으로서 호남과 영남의 요충지에 끼어있어 가히 한 나라의 적을 방어하는 보루와 장벽이 될 만하다. 동쪽으로는 고덕산과 성수산의 뾰쪽이 빼어난 봉우리들을 이끌고 서쪽으로는 운암과 갈담강의 깊고 맑은 물에 에워싸여 폭과 둘레의 넓이가 100여 리이며 방면의 수가 18이다. 변경방어의 견고함과 물산의 풍부함으로 볼 때 참으로 토지가 비옥하고 산물이 풍부한 땅이다.'여기서 운수(雲水)는 임실의 옛 지명으로, 운수지(雲水誌) 서문의 내용 가운데 일부다. 운수지는 1904년(고종 41년) 참판 윤태일이 기록한 임실군의 역사지로서 그 번역본이 이번에 출간됐다. 지난해부터 임실문화원이 일반인들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작업에 심혈을 기울여 지난 8월초 펴냈다. 임실의 지지(地誌)인 운수지는 원래 1675년(숙종 1년) 현감 신계징이 기록했으나 지금은 발문(跋文)만 남아 있을 뿐이며 1924년 임실군지가 만들어졌으나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것이라 이번에 번역된 운수지가 임실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올바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임실은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로서 산수가 빼어나고 땅이 기름져 산물이 풍부한데다 충효의 고장으로 알려져 운수지에도 충신과 효자 열부 선행자들에 대한 방대한 기록이 망라돼 있다. 충절편에 보면 병조참판에 증직된 박순달은 의병장 고경명과 이종형제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천일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왜구와 맞서 싸웠고 절의를 지키다 죽었다. 이 처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갑자난(이괄의 난) 병인양요 갑신정변 등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몸을 던져 싸웠던 충신 48명의 행적이 기록돼 있다. 효행편에는 7살 어린 나이에 부모를 칼로 위협하는 도적 떼에 죽을 각오로 맞서자 도적들이 감탄하고 놓아주었다는 윤두표를 비롯 부모의 대변을 맛보며 병세를 알아서 처방했다던 박순 등 모두 244명의 효행이 수록됐다. 이외에도 남편의 병세가 위급해지자 넓적다리 살을 베어 복용케 해서 살렸다는 전주이씨, 정유재란 때 갑자기 왜구를 만나자 시아버지와 남편 앞에서 칼을 들고 대치하자 적들이 놀라서 달아나 화를 면하게 했다는 흥덕장씨 등 92명의 효열부 이야기도 있다. 임실의 역사와 문화의 재발견 작업인 운수지 번역본 발간을 통해 임실군이 그동안 민선 단체장들의 불명예를 씻고 새롭게 재도약하는 전기가 됐으면 한다.
올 여름은 비가 제때 안오고 폭염 때문에 고통이 컸다. 열대야가 15일 이상 지속돼 밤잠을 설친 경우가 많았다. 춘지기방야(春之氣放也) 하지기탕야(夏之氣蕩也) 추지기신야(秋之氣神也) 동지기도야(冬之氣道也). 일년 4계는 변환과 수렴과정이다. 봄에 씨앗 뿌려 여름에 부지런히 가꾸고 가을에는 수확의 기쁨을 맛 보며 겨울에는 다음 삶을 준비하는 것이다. 인생도 다름없다.절기상으로 처서가 지났기 때문에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 것이다. 하지만 여름의 열기가 남아서 덥다. 사람들은 지금을 여름으로 느끼지만 하늘은 가을을 준비한다. 음기운이 서서히 열화(熱火)를 에워싸 계절의 순행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봄이 생기(生氣)라면 여름은 왕기(旺氣)가 되고 겨울은 사기(死氣)가 되는데 ,특별히 가을은 숙살지기(肅殺之氣)라 했다. 엄숙해지고 살 떨리는 기운이라는 뜻이다.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과정을 '금화교역'이라 한다. 금(金)은 가을 화(火)는 여름이다. 금화교역이란 금기와 화기가 교체된다는 말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과정은 비교적 완만하다. 하지만 여름에서 가을은 그렇지가 않다. 뜨겁던 여름의 열기가 졸지에 쌀쌀하고 매서운 가을 기운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주의 대혁명이라고 말한다.대선 철이다. 30일 민주당 전북 경선이 시작된다. 비문(非文) 3인방이 문재인 후보의 선두를 탈환할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전북의 선거인단이 자그만치 10만 규모여서 경선의 분수령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출마선언도 안한 안철수 서울대교수의 영향권에 들어 있는 전북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결선투표의 향배가 달려 있을 수 있다. 대규모 캠프를 꾸린 정세균 후보의 득표력도 변수다.전북은 수도권 집중에 따른 소외로 가장 살기가 힘들다. 변방으로 내몰려 기업 유치도 팍팍하다. 김완주 지사가 백방으로 뛰어도 되는 게 없다. 중앙 정부로부터 힘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새만금사업도 하대명년이 될 수 있다. MB가 준공연도를 10년 앞당기고 토지이용계획을 바꿨지만 제때 완공될 것이라고 믿는 도민들은 많지 않다. 그렇다면 대선이 전북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화려한 여름의 열기가 사라진 터전에서 지혜의 열매를 얻으려면 전북인이 이번 경선에서 매운 맛을 보여줘야 한다.백성일 주필
"일본과 러시아가 인천항에서 포격전을 벌여 대포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탄환이 비오듯 하더니 러시아 함대가 패하고 말았다. 이때 궁안은 물론이고 장안의 사람이 모두 도망치고 구중궁궐이 텅 빈 집이 되었다." "외교력도 군사력도 없는 정부와 우와좌왕하는 지도층의 모습이 서양 종군기자들의 보도를 통해 세계에 알려지면서 국제적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지도층이 특히 웃음거리가 되었다."러일전쟁 당시 대한제국의 광경이다.(강준만의'한국근대사 산책') 1904년 2월8일 일본이 뤼순항과 인천 제물포 항의 러시아 함대에 어뢰를 쏘아 시작된 러일전쟁은 한반도와 만주를 놓고 격렬하게 맞붙은 땅따먹기 전쟁이었다. 일본의 승리로 뤼순과 다롄이 일본 수중에 들어갔다. 이듬해 을사늑약으로 이어져 결국 한반도가 일본에 빼앗긴 계기가 된 전쟁이다. 독도를 일본 땅으로 편입시킨 것도 이때였다. 1905년 2월22일 이른바 '시마네현 고시(제40호)'라는 걸 통해 독도를 시마네현 부속 섬으로 편입시켰다.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함대와 일본 함대가 마주치는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군사적 목적으로 강탈한 것이다. 동남아 식민지 재편을 공고히 한 것도 러일전쟁이었다. 일본 승리로 체결된 테프트(미 육군장관)-가쓰라(일 총리) 밀약은 미국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한 아주 나쁜 협약이다. 그러자 영국도 제2차 영일동맹을 맺어 일본의 조선 지배를 승인하고 일본도 영국의 인도와 버마(미얀마) 지배를 묵인했다. 동남아지역 땅따먹기 완결판이다. 러일전쟁은 실질적으로 한반도 지배권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의 전쟁이다. 그리고 가장 큰 피해자는 러시아도 중국도 아닌 일본의 식민지가 된 조선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우리 중·고교 교과서는 너무 소홀히 다루고 있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이자 미래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준다. 내일(29일)이 경술국치일이다. 나라를 빼앗긴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힘이 없으면 남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치욕을 감내해야 하고, 국가 지도자들이 무능하면 엄청난 희생을 치른다는 교훈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을 것이다. 지금도 독도와 센카쿠, 쿠릴열도를 놓고 한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다. 러일전쟁 108년이 지난 지금도 땅따먹기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옥수수에 붉은 솔이 늘어진 것이 꼭 등에 업힌 어린아이와 같다. 언제 보아도 그것이 어린애 같았다. 옥수숫대는 어린 것이 잠이 깰세라 하고 고이고이 업고 있었다." 이광수의 수필 '여름의 유머(일명 소가 웃는다)'에 나오는 대목이다. 작가 눈에는 옥수숫대에 옥수수가 열린 모습이 꼭 등에 업힌 어린애 같아 우스웠던 모양이다."옥수수밭은 일대 관병식(觀兵式)입니다. 바람이 불면 갑주(甲胄) 부딪치는 소리가 우수수 납니다." 이상의 '산촌여정(山村餘情)'의 한 대목으로 옥수숫대가 가지런히 서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밭에서 금방 꺾어 온 옥수수를 쪄서 치열(齒列)처럼 꼭꼭 박혀있는 알갱이를 씹는 맛이 그만이다. 또 방 안팎에 매달아 말린 옥수수 알갱이를 따서 튀밥을 튀기면 궁금한 입을 막기에 딱 좋다. 옥수수는 남아메리카가 원산지로 인류가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500년 정도로 짧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을 통해 들어왔으며 중국음의 위수수(玉蜀黍)에서 우리식 발음인 옥수수가 되었다. 구슬같이 노란 수수라는 뜻이다. 사투리 강냉이는 '강남에서 온 것'이라는 말이 바뀐 것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간식으로 애용되는 옥수수가 이제 세계 곡물시장을 호령하는 왕자가 되었다. 벼, 밀과 함께 세계 3대 식량작물로 등극한 것이다.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 1억5900만㏊에서 연간 8억1900만톤(2009년 기준)을 생산해 밀(6억8600만톤)과 쌀(6억8500만톤)보다 20%나 더 많다. 식품 사슬의 정점에 위치하는 셈이다. 슈퍼마켓 진열상품의 75%에 옥수수가 들어 있고, 연료와 약품, 비누, 연탄, 타이어, 잉크 등 다방면에 이용되고 있다.우리나라의 경우 곡물 생산량의 60%가 옥수수(자급률 0.8%)다. 수입된 옥수수의 75%가 가축사료, 21%가 가공용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세계 옥수수의 40%를 생산하는 미국이 올해 가뭄으로 흉작이 들면서 불과 2달 사이에 가격이 50%가량 급등했다. 더구나 세계 곡창지대인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도 소출이 20% 이상 감소했다. 사룟값이 오르면 소 돼지 닭고기 값이 오르고, 과자 음료수 등 가공식품 가격도 오를 수에 없다. 옥수수로 인한 애그플레이션(곡물 가격발 인플레이션)이 세계 식량 위기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거의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의 현실이 걱정이다. 조상진 논설위원
세계의 도시들이 '도시 재생'에 나선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사적 건축물이나 오래된 건축물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일은 단순히 쓸모없게 된 공간을 다시 활용한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중국 최대도시 상해에도 도심재생을 성공시킨 공간이 적지 않다. 모간산루(莫干山路) 50호 지역이 대표적이다. 'M50'으로 불리며 널리 알려진 이곳은 북경의 '다산츠(大山子) 798'과 함께 중국의 대표적인 예술단지로 꼽힌다. 두 곳 모두 대규모 공장 단지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모간산루는 원래 황푸강 지류인 쑤주우허(蘇州河) 남쪽 강변에 있는 평범한 마을이었는데 배를 이용한 물류수송의 이점 때문에 1930년대, 방직공장들이 들어서 대규모 단지를 이루었다. 모간산루 뿐 아니라 쑤주우허 일대는 면화공장 기계공장, 인쇄공장, 염색공장 등이 몰려있어 상해 서부산업지구의 중심으로 꼽혔다. 자연히 연안의 개발과 보존에 각별한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던 상해 시정부는 치수와 수질오염개선 오염방지 연안정비에 집중투자하면서 새로운 연안개발계획을 세웠다.이 계획에 따라 공장들이 외곽으로 이전하자 오래된 공장과 창고는 철거되거나 방치됐다. 더 이상 공장으로는 쓸모없게 된 이 지역 공간을 눈여겨 본 사람이 대만 건축가 텐쿤얀(Teng Kun Yan)이다. 임대료도 싼데다 공장이라는 특성 때문에 공간도 넓어 창작을 하는 예술가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1998년 텐쿤얀의 'Dayang Design Company'를 시작으로 각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간산루의 빈 공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상해 시위원회는 2004년 이곳을 문화산업지구로 지정했다. 얼마 전 상해 문화산업지구 몇 군데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역시 가장 관심을 끈 곳이 이곳 'M50'이다. 'M50'에는 20여개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다. 미로처럼 놓인 건물 안팎에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갤러리, 아트샵, 서점, 카페가 자리하고 있다. 공간마다 특성을 달리하는 갤러리를 엿보는 것도, 관광객들의 눈길을 개의치 않는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훔쳐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알려지기로는 10여개국 200여명의 예술가들이 입주해있으며, 하루 평균 5천명 주말에는 1만 명 가까운 관광객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관광객 수도 그렇지만 더 주목했던 것은 이곳에 들어와 있는 적지 않은 외국계 갤러리와 문화관련 회사들, 다시 말하자면 외국 자본의 유입이다. 'M 50'를 예술창작지구나 예술촌이 아니라 문화산업지구로 지정한 배경도 분명해졌다. 예술가들의 창조적 작업을 경제적 가치와 연결시키는 산업. 기업의 역할은 이렇게 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지역이 골몰하는 기업유치 대상은 어떤가.
'하나의 근본에서 만 갈래로 나누어지는 것은 산이요, 만 가지 다른 것이 모여서 하나로 합하는 것은 물이다. 산수(山水)는 열둘로 나타낼 수 있으니 산은 삼각산 백두산 원산 낭림산 두류산 분수령 금강산 오대산 태백산 속리산 장안산 지리산 등 12산으로 나누어지며, 12산은 나뉘어 팔로(八路)가 된다. 팔로의 여러 물을 합하여 한강 두만강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 예성강 대진강 금강 사호강 섬강 낙동강 용흥강 등 12수가 되고, 12수는 합하여 바다가 된다. 흐름(水)과 솟음(山)의 형세와 나누어지고 합함의 묘함을 여기에서 가히 볼 수 있다.조선 후기 지리학자이자 실학자인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이 쓴 우리나라 최초의 지리서인 산수고(山水考)에서 산수의 원리에 대한 설명이다. 1년 12달과 같이 우리나라 산과 하천을 각각 12개의 산과 물줄기로 정리한 산수고는 후일 여암이 집대성한 지리서인 여지고(與地考)의 근간이 되며 백두대간과 장백정간 호남정맥 등 13정맥 용어를 처음 도입한 산경표(山經表)를 작성하는 기초가 되었다.이 천재 지리학자 신경준이 우리 고장 순창출신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신경준은 신숙주의 동생 신말주의 11대 후손으로 신말주는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르자 형과는 달리 벼슬을 버리고 그의 부인 설씨(薛氏)의 고향인 순창으로 내려와 귀래정을 짓고 시문을 벗삼아 지냈다고 한다. 1754년 문과에 급제, 강계·순천 부사와 제주 목사 등을 역임한 신경준은 지식이 해박하고 학문이 뛰어나 강계고 사연고 도로고 군현지제 가람고 차제책 등 다방면에 걸친 지리학 저술과 함께 동국여지도 팔도지도 등도 제작했다. 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운해(訓民正音韻解)를 지어 한글의 과학적 연구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일본증운(日本證韻) 언서음해(諺書音解)도 저술하는 등 음운학적으로도 유명하다.그는 당대에 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인정했던 천재 학자로서 지리학 분야에 금자탑을 쌓았지만 오늘날 우리 지리학계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인물이다. 다행히 순창군이 오는 10월 5일 신경준 탄생 3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국제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신경준의 생애와 업적을 정리하고 지리학과 문학 어학 과학 사학 분야에 있어서 학제적으로 고증하고 재조명할 예정이다. 무덤에 묻혀던 천재 지리학자 여암 신경준이 이제서야 다시 살아나는 듯 하다.··
지난 13일 군산은 441mm의 물폭탄을 맞고 아비규환의 장으로 변했다. 마치 노아의 방주를 타야만 할 정도로 하늘이 뚫렸다. 가뭄이 너무 들어 그렇게 애타게 비소식을 기다렸지만 한꺼번에 폭우로 변해버려 도시가 완전히 마비됐다. 도심이 저지대이고 만조 때라서 피해가 컸다. 수해 발생 일주일이 지나면서 피해액이 공공피해액 72억을 합해 500억을 넘었다. 다행히도 인명피해는 없었다.이처럼 군산시가 순식간에 물포탄을 맞아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도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되지 않고 있다. 이유는 공공시설 피해액이 75억원을 넘어야 하는 기준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지금 군산은 숫자놀음을 할 정도로 한가한 지역이 아니다. 응급복구하는데 일손이 부족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군산시민들은 최근 3년동안 수해를 입어 비만 오면 걱정이 태산같다.피해주민들은 전기와 상수도가 끊겨 뜬 눈으로 첫밤을 지새웠다. 또다시 호우경보가 발령될 때는 아파트 피해자들이 대피하는 소동을 벌였다. 그야말로 1주일 사이에 군산시민들은 지옥과 천당을 오가면서 심신이 극도로 지쳐버렸다. 피해소식을 접한 군 관 민은 즉각적으로 응급복구 대열에 합류했다. 주로 도내 기관단체가 줄을 이었다. 김완주지사를 필두로 서거석 전북대총장 송하진전주시장 정운천 새누리 도당위원장 등이 피해상황을 살피며 응급복구 대열에 동참했다.하지만 이렇게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도 중앙에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여야 대선 주자 중 정세균후보만 현장을 다녀 갔을 뿐 나머지 주자들은 꼴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국민을 사랑한다던 대선 주자들이 군산을 완전히 외면했다. 박근혜 등 여당 주자들은 19일 경선이 코 앞에 닥쳐서 그럴 수 있었겠지만 야권주자들은 말로는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고 강조한 사람들이었는데도 꼴도 보이지 않았다.대선주자처럼 중앙부처 장차관들이 안오기는 매 한가지였다. 군산이 큰 피해를 당하고도 주목 받지 못한 이유가 따로 있다. 거물 정치인이 없고 야당도시라서 외면하고 있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피해 입은 군산은 딴나라가 아니다. 민생투어에 나선 대선 주자들이 만사를 제치고 피해 현장으로 한걸음에 달려왔어야 옳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선거 때마다 열나게 민주당 후보만 찍어댄 군산시민이 불쌍할 뿐이다.
전남 장성군 서삼면 일대 축령산 기슭에 들어찬 편백나무 숲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치유의 숲'이다. 이 숲을 가꾼 주인공은 순창 출신 고(故) 춘원 임종국(林種國) 선생이다. 1957년부터 편백나무 253만 그루를 심었다. '숲(林)의 씨(種)가 되어 나라(國)에 기여할 사람'이라는 자신의 이름처럼 살았다. 평생토록 혼신의 땀과 열정으로 일궜지만 말년엔 조림사업에 들인 빚이 불어나 감당할 수 없게 됐다. 결국 숲은 외지인 9명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다행스럽게도 정부가 40억원을 들여 숲의 일부를 매입해 국민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숲은 2000년 '22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됐다. 연평균 30여만명이 찾아와 숲 체험과 산림욕을 한다. '치유의 숲'은 완주군 상관면에도 있다. 전주쪽에서 죽림온천 가는 길 조금 전에 위치한 공기마을 편백나무 숲이 그곳이다. 꽤 널리 알려진 곳이다. 1975년 미원그룹이 손가락 굵기의 편백나무를 조림한 것이 무성하게 자라 군락을 이루고 있다. 완주군이 '치유의 숲'으로 명명했다. 지금은 50여만평이 넘는 산림중 26만평이 사유림이다. 산주(山主)가 3명으로 나뉘어 있다. 지난주 2년만에 이곳을 찾았다. 책 몇권 끼고 피톤치드를 흠뻑 들이마시며 쉴 요량으로 갔지만 실망스러웠다. 돗자리를 깔고 앉아 쉴만한 곳도 마땅치 않고, 의자나 쉼터 등은 아예 생각할 수 조차 없었다. 2년전이나 똑같았다. 지난 장마때 비바람에 쓰러진 채 방치돼 있는 편백나무들도 많았다. 내친 김에 옥녀봉 한오봉 쑥재 등산로를 헤집고 다녔다. 2시간 30분 정도의 산행으로 제격이다. 호남정맥인 이 등산로는 사방팔방으로 이어진 능선이 많은 곳이다. 그런데도 안내판에는 거리나 시간 등이 명기되지 않아 정보기능이 제로였다. 최고봉인 옥녀봉에는 표지석이나 방향안내판도 없다. 완주 '치유의 숲'은 말만 치유의 숲이지 치유받아야 할 숲이었다. 산림욕이나 숲 체험, 편의시설, 간벌 등 손대야 할 곳이 많다. 사유림이다 보니 완주군이 예산을 투자할 수 없는 게 한계다. 축령산의 예처럼 공적 기능이 높다면 완주군이 매입, 가꾸는 게 정답이다. 임종국 선생 같은 철학이 있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다면 산주들이 이 숲을 자치단체한테 넘겨 도민 곁으로 돌려주는 것도 혜안이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중국 인구가 많은 이유는 뭘까. 고구마 때문이라면 의아해 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고구마가 중국 인구 폭발에 중대한 구실을 했다고 한다. 세계 인구는 지난해 말 70억 명을 넘어섰다. 이중 20%인 13억5000만 명이 중국 인구다. 하버드대 드와이트 퍼킨슨 교수에 따르면 중국 인구는 1600년대 1억2000만 명이었고 1913년 4억3000만 명이었다. 인구가 300년만에 4배 급증했다. 이 시기, 특히 청나라 전성기인 강건성세(康乾盛世)에 인구가 크게 늘어난 요인 중 하나는 고구마의 전래 덕분이라는 것이다. 옥수수 감자 등과 함께 원산지가 아메리카 대륙인 고구마는 유럽인들이 항해식량으로 싣고 다녔다. 이것이 필리핀으로 전해졌고 1594년경 중국에 도입되었다. 고구마는 생산량이 많을 뿐 아니라 다량의 전분과 각종 비타민이 풍부하다. 또 가뭄 등 척박한 땅에서도 적응력이 강해 구황작물로 아주 유용하다. 덕분에 청나라 중·후반에 전란과 기근이 이어졌지만 인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일본 역시 1700년대 가고시마(사쓰마번)에 인구가 급증한 것도 고구마와 무관치 않다.유럽에서 고구마는 한때 부유층만이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았다. 초창기 감자가 독성이 있어 천한 계층이 먹는 음식으로 폄하되었던 것과 대조적이다.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나라에는 영조때인 1763년 통신사로 대마도를 다녀온 조엄이 가져와 부산일대에 심었다. 감자보다 60년이 빨랐다. 도입 초기 고구마는 일본에서 들어 와 남저(南藷), 감자는 중국에서 들어 와 북저(北藷)라 구분했다. 대마도에선 고구마를 '고코이모'라 부른다. 고코는 효행(孝行)이라는 의미로 흉년에 부모를 먹여 살린 효도 구근이라는 의미다. 우리말 고구마는 여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고구마는 비타민C, 베타카로틴 알토시아닌 등 항암성분을 많이 함유한 웰빙 식품이다. 미국 공익과학센터(CSPI)가 2007년 '더 낳은 건강을 위한 10가지 슈퍼푸드'중 첫번째로 고구마를 꼽았다.올해는 혹심한 가뭄 등으로 여기저기 고구마 꽃이 피었다는 소식이다. 나팔꽃 모양의 이 꽃은 행운의 상징이다. 춘원 이광수가 자서전에서 '100년만에 한번 볼 수 있는 꽃'이라 해서 유명하다. 좀 과장된듯 하나 어쨌든 모두에게 행운이 함께 했으면 싶다. 조상진 논설위원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오전, 전주 오거리광장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한일역사를 극복하고 우호를 추진하는 모임' 회원 130여명이 일본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하는 집회였다. '한일역사를 극복하고 우호를 추진하는 모임'은 일본인 결혼이민자들로 구성된 단체다. 이날 집회는 전주 뿐 아니라 서울을 비롯한 전국 13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렸다. 회원들은 "이 같은 사죄가 일본이 저지른 역사적인 죄를 씻기엔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양심의 목소리를 차마 무시할 수 없었다"고 집회 이유를 밝혔다. 이들의 사죄집회를 보면서 문득 한사람이 생각났다. 여러해 전 취재로 만났던 스가노 토모코 할머니다. 1922년생, 올해 91세지만 당시 중풍으로 투병생활중이셨으니 생존해계신다면 참으로 반가울 일이다. 스가노 할머니는 일제식민지시대, 한국남자와 결혼해 현해탄을 건넜다. 당시 와세다 대학에 유학중이었던 남편을 따라 한국에 왔지만 남편에게는 이미 결혼한 아내와 두 아이가 있었다. 그래도 아이를 다섯 명이나 낳으면서 한국인의 아내로 살았다. 호적도 없으니 법적으로는 아이들과도 남이었으며, 주민등록증도 얻지 못한 서러운 삶이었다. 20년 동안 함께 살았던 남편이 작고하고 나서는 생계까지 도맡아야 했다. 일본인으로 멸시받으면서도 참고 견뎌야만 남의 집일과 품팔이라도 할 수 있었던 시절, 할머니가 즐겨 부른 노래는 이미자의 '가슴 아프게'였다. 스가노 할머니의 경우와는 다르지만 일제시대, 한국인과 결혼한 일본인 아내들은 적지 않았다. 1919년 3.1운동 이후 조선총독부가 추진한 '내선 결혼' 장려정책 때문이었다. 1920년에 있었던 왕세자 이은과 일본 왕족인 이방자여사의 결혼은 내선결혼의 상징적 사건으로 꼽힌다. 당시 총독부는 내선결혼을 이룬 가정에 표창장까지 내릴 정도로 이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고 한다. 내선결혼의 대상은 대부분 힘없고 가난한 조선남자들이었다. 일제의 잔혹한 농지수탈과 강제징용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던 사람들이다. 한 자료에 따르면 1926년에 내선결혼으로 459쌍이 가정을 이루었으며 1927년 499가정, 1928년 527가정 등으로 해마다 그 숫자가 늘어나 1940년대에는 해마다 1천여 가정이 내선결혼을 한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그들, 한국인과 결혼했던 일본인 여성들의 말년은 대부분 생활고와 질병에 시달렸다.국적이 일본이어서 생활보호대상자도 될 수 없었던 그들은 남편과 아이들의 조국인 대한민국에서도, 자신의 조국 일본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밤잠을 설치게 했던 런던올림픽이 지난 12일 막을 내리면서 메달을 딴 선수들에게 지급되는 포상금도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4년간 흘린 땀과 노력, 눈물의 보상이라 할 수 있는 포상금은 선수들에게 명예뿐만 아니라 부(富)도 함께 거머쥘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금메달이라도 소속 협회와 후원기업, 선수의 외모나 스토리 등에 따라 메달의 경제적 가치는 크게 달라진다.우선 이번 런던올림픽의 정부 포상금은 지난 베이징올림픽 때보다 6배나 인상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금·은·동 메달리스트에게 각각 6000만원 3000만원 18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 여기에 각 종목별 연맹의 포상금과 기업으로부터 받는 후원금을 합치면 '억'소리'가 난다. 더욱이 외모나 스토리 등 상품성이 있는 메달리스트에게는 광고 섭외가 들어오면 메달의 영광 이외도 '돈방석'에 앉는 성공이 보장된다.한국 체조사상 첫 금메달을 안긴 양학선 선수는 비닐하우스에서의 성공 스토리로 국민들에게 진한 감동과 심금을 울리면서 기업과 각계의 후원이 쇄도하고 있다.먼저 정부 포상금 6000만원과 매달 받는 연금 100만원 외에 체조연맹 1억원, 구본무 LG그룹 회장 5억원, 신한금융지주 9000만원, SM그룹이 약속한 시가 2억원 아파트 등 9억5000만원에다 전주의 한 건설업체가 지어주기로 한 주택까지 합하면 10억원 대가 훌쩍 넘는다.공기권총에서 금메달 2개를 따낸 진종오 선수는 문체부에서 지급하는 금메달 포상금 1억2000만원과 대한사격연맹 포상금 1억원, KT 포상금 2억원을 받는다. 여기에 연금지급 초과점수에 대한 연금 일시금 1억2000만원을 합하면 포상금은 모두 5억4000만원에 달한다.은메달 2개를 따낸 마린보이 박태환도 정부 포상금 6000만원과 SK텔레콤과 CJ제일제당 휠라코리아에서 3억7000만원을 받는다. 올림픽 첫 동메달을 따낸 축구 대표팀은 포상금 18억3000만원 외에도 병역면제 혜택과 선수 몸값 상승 등 더 큰 선물이 주어진다. 기성용 선수의 경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퀸즈파크레인저스가 제시한 이적료가 100억원이었으나 올림픽 뒤 영국 일간지가 아스널에서 기성용의 몸값으로 158억원을 책정했다고 보도했다. 불과 2주사이 기성용 몸값이 50억원이 더 뛰었다. 또 독일의 구자철 영국의 박주영과 지동원 카타르 남태희 등 해외파들도 다가올 이적 시장에서 블루칩으로 떠오를 전망이다.순수한 스포츠 정신을 내세운 올림픽 그 이면에는 영광과 명예 뿐만 아니라 '돈의 전쟁'도 치열하다.
도민들은 새누리당 경선판이 시작되면서 새누리당에 섭섭해 하고 있다. 유력주자인 박근혜후보가 경선 기간 동안 전북을 단 한차례도 다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총선이 끝나고 공약실천발대식 참석차 도당에 들른 것 외에는 없었다. 4.11 총선 때도 박후보가 전주 완산을을 잠시 스쳐 지나갔을 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지역방송국 합동토론회까지 합쳐 모두 18번의 합동연설회 등이 광역자치단체별로 열리지만 전북에서는 단 한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지난 7월26일 광주에서 전남·북 광주 합동연설회만 열렸다.지난 20년 이상 전북은 동토의 왕국처럼 돼 버렸다. 민주당만 있고 새누리당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북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지난 6·2 도지사 선거에서 정운천 한나라당 후보가 18.2%라는 두자릿수를 기록했다. 지난 4.11선거 때는 35.79%를 얻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선거 5일전에 발표된 본보 여론조사에서는 정후보가 42.8%를 얻어 민주당 이상직후보 31.1%를 11.7%나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전주시내 공기는 정후보가 당선될 것이란 여론이 확산됐다. 장관까지 지낸 정후보 한명이라도 당선시켜 지역발전을 가져오자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었다.이처럼 지역 정서가 변해가고 있지만 박근혜후보가 전북을 찾지 않아 실망감만 키웠다. 예전 같으면 표가 안나와 그렇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박후보가 잘못했다. 박후보는 보통 후보가 아니다. 새누리당의 가장 강력한 후보이기 때문에 도민들은 그에 대해 어느 정도 기대감을 갖고 있다. 김문수 임태희 안상수 마이너 후보들이 전북을 방문할 때는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정운천 도당위원장이 "이번 대선서 도민들이 30%를 지지해줘야 전북이 발전할 수 있다"고 외치지만 자칫 공염불로 그칠 공산이 짙다.이유는 박근혜후보가 전북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박후보도 대선 주자로 확정되면 어떤 형태로든 전북을 찾아 지지를 호소할 것이다. 그러나 경선 때 전북을 방문치 않고 외면한 일은 비난 받아도 싸다. 도민들은 MB정권서 찬밥신세였지만 지난 총선때 새누리당 후보들에게 많은 표를 안겨주었다. 전북을 고립시키는 전략 보다도 끌어 안고 가는 전략을 택하는 게 대선 때 도움될 것이다. 백성일주필
"조선은 바둑판이요, 조선 인민은 바둑돌이다. 현하(現下)의 대세가 다섯 신선이 바둑을 두는 형국인데 두 신선은 판을 대하고, 두 신선은 각기 훈수하고, 한 신선은 주인이다. 네 신선이 판을 대하여 서로 패를 들쳐서 따먹으려 하지만 주인은 어느 편도 훈수할 수 없어 수수방관하고 공궤(供饋·손님대접)만 할 따름이라…" 구한말 한반도를 무대로 한 세계 열강의 각축전을 바둑에 비유했다. 정읍 고부 출신으로 동학혁명을 겪고 자란 증산 강일순(1871~1909)은 한반도라는 가로 세로 19줄짜리 바둑판에서 조선 사람들은 흑과 백의 바둑돌이자 '4 신선들(4대 강국)'을 접대하는 주인이건만, 일본과 청, 러시아· 미국이라는 네 신선들의 바둑판(조선) 따먹기 놀이에 휩쓸려 있다고 꼬집었다(강준만의 '한국근대사산책' 3권) 전봉준을 극찬하고 자신의 사상을 '참 동학'이라 했던 강증산이 외세의 눈초리를 꿰뚫어 보고, 당시의 국제적인 역학관계를 바둑판에 비유한 것이 흥미롭다. 1899년에 갈파했으니 113년 전의 일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역학관계는 조선이 남북으로 갈라진 것 말고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남북이 서로 다투는 바둑돌이고 미·일·중· 러가 굽어 보고 있다. 한반도는 예나 지금이나 이해 당사국 눈치 보며 살 운명에 처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0일 독도를 방문했다. 1500년 전 신라 장군 이사부(異斯夫)가 신라에 복속시킨 우리땅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 운운하며 왕왕거린다. 대통령이 자기 땅을 밟는 데에도 눈치를 보아야 하는 게 국제관계다. 그동안 한국의 경제력은 크게 신장했다. 수출규모로는 세계 7위이고 상선 보유량, 항만컨테이너 처리량 등 물류 인프라는 세계 5위이다. 작년엔 무역 1조달러 시대를 열었다. 세계 9번째다. 어제 폐막된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은 13개의 금메달을 따내 국가별 종합순위 5위에 올랐다. 한국축구는 일본을 꺾고 올림픽 축구 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땄다. 이런 게 곧 국력이다. 국력이 약하면 짓밟히기 마련이다. 독도도 그렇거니와 한반도의 운명도 결국엔 국력에 달려 있다. 내일이 광복절이다. 극일(克日)에 그치지 말고 국력을 키워 세계로 뻗어나가는 게 진정한 광복이다. 그렇게 된다면 주변국이 우리의 눈치를 볼 때도 오지 않겠는가.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전북도립국악원에서 펴낸 전통예인 구술사에는 재미있는 대목들이 많다. 우선 판소리에서의 책거리. 판소리 전수자들은 스승에게 판소리 한 바탕을 다 배우고 나면 그 대가를 치렀다. 금으로 반지나 팔찌를 해 주기도 하고 옷을 맞춰 주기도 했는데 그것을 '책거리'라 했다. 마치 서당에서 책을 다 뗐을 때 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선생님, 받으십시오"하고 드리면 "뭘 이렇게 많이 했나!" 그러면서 받았다고 한다. "선생님, 많지 않아요" 그러면 스승은 "자네는 명창됐네!"라고 화답했다. 그 동안의 노고에 감사하고 스승의 격려를 받는 것이다.또 하나는 판소리 전수자에게 빠질 수 없는 똥물 얘기. 소리 연습을 너무 많이 하다 보면 목이 뒤집어(꽉 쉬어)졌다. 그래서 삭신이 쑤시고 온 몸에 어혈이 생겨 부었을 때 똥물이 최고다. 똥물은 남자 똥만 받아 가지고 3-4개월 삭히는데(발효), 그렇게 되면 똥 건더기는 없어지고 말갛게 된다. 그 국물을 채에 걸러, 대접에 받아 마신다. 마늘과 생강으로 입가심을 하면 끝이다. 똥물은 생똥이나 삭힌 것이나 냄새나기는 매 한가지며 오히려 삭힌 게 냄새가 더 난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인 이일주 선생의 증언이다.고법 보유자인 이성근 선생은 북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북을 칠라믄 소리를 알아야 한다"면서 "가사가 힘이 부쳐서 까라질 적에는 강하게 해 주고, 소리 가사가 맥힐라고 허믄 북으로 메워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소리 보필을 잘 해주는 게 명고수(名鼓手)란다. 부안 농악(상쇠) 보유자인 나금추 선생은 농악단 이전 국극단으로 전국 공연을 다닐 때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자신이 처녀였던 자유당 시절, 묵고 있는 여관에 깡패들이 간혹 찾아 오곤 했다. 마루에다 큰 칼을 딱 꽂아 놓고 꽹과리 치는 아가씨를 내놓으라고 을러댔다. 그러면 새벽에 보따리를 싸서 도망을 쳤다. 결국 단장만 곤욕을 치러야 했다.호남 살풀이춤(동초수건춤) 보유자인 최선은 총각때 "여자냐? 남자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러다 중매로 늦게 결혼을 했는데 신석정 시인이 주례를 섰다. 지금은 없어진 봉래원예식장에서다. 신혼살림은 전주 중앙동 이시계점(이창호 국수의 집) 3층에 차렸다. 무더위 속에 자칫 사라질 뻔한 얘기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조상진 논설위원
며칠 전 미국에 살고 있는 지인과 전화통화를 했다. 안부 인사 나누고 막 끊으려는데 그 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주비빔밥이 맛이 없어졌다면서요. 값만 비싸고. 어쩌죠. 전주하면 그래도 비빔밥이었는데……." 근래 들어 '전주비빔밥'의 값이며 맛에 대한 문제점들이 불거지고 있던 터여서 내용이야 새로울 것 없다 치더라도 대한민국도 아닌 미국에 살고 있는 분이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좀 뜨악했다."인터넷에서 보셨군요. 요즘 전주를 다녀간 관광객들이 많은가봐요. 부쩍 그런 불만이 많아졌네요. 식당마다 맛도 다르고 서비스도 다르니……." 곧바로 답이 돌아왔다. "아니에요. 한국 신문 미주판에 그런 기사가 나왔어요. 얼마나 문제가 많으면 여기까지 그런 기사가 실리나 싶어 안타깝더라고요." 전주가 고향인 그 분은 유난히 전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깊다. 그 분은 신문에서 '전주비빔밥이 제대로 될 수 있도록 잘 써야지 않겠느냐'는 조언까지 덧붙였다. '제대로 될 수 있도록'이란 말은 '맛도 있고 값도 적정한', 그래서 전주비빔밥 이름에 걸맞은 가치를 지킬 수 있게 하란 이야기일 터다. 얼마전 '전주비빔밥 유감'을 경험했다. 외지 손님을 대접하는 자리였는데 동행한 젊은이들이 유난히 '전주비빔밥'에 대한 기대가 컸다. 고민하다 이름 꽤나 알려진 식당을 찾아 갔다. 점심을 하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단체손님들이 많아 '유명세'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됐다. 그런데 문제는 맛이었다. 새벽같이 서울에서 출발했으니 '시장이 반찬'이기도 했을 시간이었지만 별로 많지 않은 양의 비빔밥을 약속이나 한 듯이 남겼다. 전주에서 전주비빔밥을 먹기는 처음이라는 20대 젊은이들조차 그릇을 비우지 못했다. 인사말로라도 내놓았을법한 '전주비빔밥 예찬'은 물론 없었다. 한국의 대표음식으로 꼽히는 '전주비빔밥'이 위기다. 맛 없어지고 값이 비싸서만은 아니다. '전주비빔밥'의 '전통적 가치'가 사라지고 있어서다. 사실 '밥에 여러 가지 나물을 넣어 비벼 먹는' 비빔밥은 전국 어디서나 즐겨먹는 음식이다. 그런데도 '전주비빔밥'이 유독 이름 내세워진 것은 지역 특산물이 재료로 사용되면서 고유한 맛과 특성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른 가지가 넘는 재료에 밥 짓기 방식부터 다른 '전주비빔밥'은 '전주'란 이름을 얹어 한국음식과 맛의 상징이 되었다. 인터넷 지식백과에 나온 '전주비빔밥' 만드는 과정을 보니 그야말로 '황홀한 맛'의 풍경이 따로 없다. '전주비빔밥'의 본 모습이 그러할진대 음식창의도시가 된 전주의 지금 비빔밥은 왜 진짜보다 가짜가 더 많아지는지. 부끄러운 일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4·11 총선을 앞두고 여러 차례 공천개혁을 표명했지만 비례대표 돈공천 의혹이 불거지면서 대선가도에 빨간불이 켜졌다. 당시 박 전 위원장은 "공천이야말로 정치쇄신의 첫 단추"라고 누누이 강조하면서 클린 정치, 클린 공천을 약속했다. 하지만 비례대표로 당선된 현영희 의원과 친박계 핵심으로 공천위원이었던 현기환 전 의원과 홍준표 전 대표 등이 공천을 대가로 각각 3억원과 2000만원을 주고 받았다는 혐의로 중앙선관위원회가 검찰에 수사의뢰했고 현재 검찰수사가 진행중이다. 옛 자유선진당(현 선진통일당)에선 비례대표 공천과 관련해 김영주 의원과 당 관계자 사이에 50억원에 달하는 공천헌금이 오갔다는 혐의로 중앙선관위가 역시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이것이 사실이라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아직도 돈으로 국회의원 자리를 사고파는 매관매직의 부패사슬이 여전하다는 얘기다.새누리당 안팎에선 공천과 관련해 돈을 준 사람이 더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부산지역 정가에선 현영희 의원 외에도 현역의원 1~2명의 실명이 떠돌고 있다는 전언이다. 새누리당 텃밭인 부산에선 공천이 곧 당선이기에 총선때마다 돈공천 소문이 끊이질 않았고 실제 재력있는 무명의 정치신인들이 공천장을 거머쥐고 국회에 입성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사실 돈공천 문제는 그동안 정치판에 고질적인 악습이었다. 선거를 치르기 위해선 정치자금이 필요하고 이를 조달하기 위해 특별당비 명목으로 공천헌금을 거두는게 오랜 관행이었다. 그래서 전국구(全國區) 국회의원을 전국구(錢國區)라 부르고, 비례대표를 비밀대표라 비꼬기도 한다. 18대 총선때 친박연대 서청원 대표가 비례대표로 당선된 김노식 의원에게서 15억원, 양정례 의원과 그의 모친에게서 26억여원을 받았다가 실형 1년6개월을 선고받았고 김 의원과 양 의원은 당선이 취소됐었다. 17대 대선에 출마했던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도 비례대표 공천을 대가로 이한정 의원에게 당 채권 6억원 어치를 사게 했다가 이 의원과 함께 의원직을 잃었다.박선영 전 자유선진당 의원은 엊그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 선진당과 새누리당에서 공천 헌금 문제가 심각했고 18대 국회보다 구린내가 더 많이 났다"면서 "저 같은 경우 단돈 1원도 내지 않고 들어가니까 모든 사람들이 제게 화살을 퍼부었다. 돈 한푼 안내고 비례대표가 됐다고"라고 실토했다. 부패정치의 고리인 돈공천을 뿌리뽑지 않고는 정치개혁도 깨끗한 정치도 헛구호에 불과하다.
"LH 본사를 껴안고 죽을지언정 포기할 수 없다"는 플래카드가 전주시내를 도배질 했었다. 김완주 지사를 비롯 도내 국회의원 시장 군수 도의장 도의원 시민 사회단체장 할 것없이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LH 유치에 총력을 걸었다. 결과는 당초 경남 진주로 가기로 했던 국민연금공단만 전주·완주혁신도시로 왔다. 자녀 결혼식을 앞둔 김지사는 삭발이란 초강수를 뒀고 뒤이어 최규성·장세환의원도 삭발했다. 도내 의원들도 모였다하면 LH 유치를 위해 결기를 다졌다. 그 누구도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현역들은 워낙 지역 여론이 강한데다 4.11 총선을 의식해서 발뺌할 수 없었다.LH가 경남 진주로 간 지금 전북 정치권은 어떠한가. 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인 김두관 전 경남지사 쪽으로 전북 출신 상당수 전·현직 정치인들이 줄서 있다. 김두관 후보는 LH 유치에 성공한 지사였다. 김완주지사는 패자다. 무소속 출신인 김 지사는 LH 유치를 위해 혼신의 힘을 발휘했다.정부쪽을 가급적 자극하지 않고 각계에 포진해 있는 경남 인맥을 총동원해서 유치에 성공했다. 김지사도 밀양 신공항 백지화에 따른 여론 부담이 컸지만 LH 유치로 일거에 지지세를 되돌려 놓았다.지난달 민주당으로 복당한 재선의 유성엽의원은 잉크도 마르기 전 김두관 캠프에서 지방분권추진본부장을 맡았다. 군산 출신 김관영의원은 대변인을 맡았다. 장영달·조배숙 전의원과 이무영 전 경찰청장, 임수진 전 진안군수, 김세웅 전 무주군수, 김희수 전 도의장, 최진호 도의장 등 전 현직 도의원이 대거 지지하고 나섰다. 유의원은 캠프 참여에 대해 "평소 지방분권·지역균형발전을 역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역량 있는 후보가 누구인가로 고민해왔다"며 "이장에서 시작해 군수 도지사를 역임한 김후보가 최적임자라고 생각해 제의를 수락했다"고 밝혔다.MB정권이 LH후보지를 결정했지만 전북을 애먹인 상대는 경남 도정을 이끈 김두관 지사였다. 지금까지 전북 정치인들이나 추진위원들은 모두가 MB정권 한테만 비난의 화살을 던졌다. 그러고 나서 지금은 아무일 없다는 듯이 전북과 맞짱 뜬 김두관 지사 쪽으로 우르르 달려가 그를 돕고 있다. 지난 5일 김후보는 "전북 도민에게 큰 빚 졌다.갚을 기회를 달라"고 이해와 지지를 부탁했다. 쓸개 빠진 얼간이들이 이렇게 많은 줄 미처 몰랐다.
일반인에겐 좀 생소할 테지만 '지역신문발전특별법'이란 게 있다. 참여정부 시절인 지난 2004년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제정한 법률이다. 이 법 1조에는 '지역신문의 건전한 발전기반을 조성하여 여론의 다양화, 민주주의의 실현 및 지역사회의 균형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쉽게 말하면 여론의 다양성 확대와 지역사회의 균형발전을 돕기 위해 제정한 것이다. 이 특별법에 근거해 2005년부터 6년 동안 매년 평균 150억 원씩 지역신문발전기금이 지원돼 왔다. 기금은 주로 인력양성 및 교육 조사연구, 정보화사업, 유통 및 경영구조 개선, 경쟁력 강화와 공익성 제고를 위한 사업 등에 쓰인다. 소외계층 구독료와 NIE시범학교 지원도 이 기금에서 이뤄진다. 탐사보도나 해외취재 등 기획취재도 이 기금을 지원 받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기금지원은 어려운 환경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지역신문들에게는 단비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러한 성과가 인정되자 국회는 2010년 5월19일 한시법인 특별법을 6년 더 연장했다. 당시 정병국 문광부 장관은 '지역신문발전 3개년 지원계획'(2011∼2013)을 발표하고 2011년 40억, 올해 200억, 내년 200억 원 등 3년 동안 모두 440억 원을 확보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었다.이 약속은 식언(食言)이 돼 버렸다. 올해분 200억 원을 확보하지 않았고 내년 예산도 아예 요구조차 하지 않았다. 기획재정부가 기금지원에 부정적이라는 게 이유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에는 종편채널을 4개씩이나 안겨주면서 여건이 열악한 지역언론은 말살돼도 상관 없다는 태도다. 국민과 지역언론을 기만한 것이자 MB정부의 지역신문 홀대다. 이 문제는 국회 배재정 의원(여· 44)이 지난달 말 관련 상임위에서 최광식 문광부장관을 상대로 지적하면서 불거졌다. 배 의원은 지난 2011년부터 올해 3월까지 부산문화재단 기획홍보팀장으로 일하다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몫으로 19대 국회에 들어간 초선이다. 당에서는 언론정상화특별위 간사를 맡고 있다. 배 의원은 "내년 예산이 확보될 때까지 수시로 보고하고, 올해 확보하지 못한 200억원 확보 계획에 대해서도 보고하라"고 최 장관한테 쐐기를 박았다. 국회의원 300명이 있으면 뭐하나. 맥을 제대로 꼬집는 똑똑한 한명이 더 낫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신궁(神弓)과 관련된 고사 두 가지. 하나는 천양(穿楊). 춘추전국시대 초(楚)나라에 양유기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활을 잘 쏘아 100보 떨어진 곳에서 버드나무 잎을 맞혔는데, 100번을 쏘면 100번 모두 명중했다. 여기서 백발백중(百發百中) 또는 백보천양(百步穿楊)이라는 고사가 유래했다.또 하나는 관슬(貫蝨). 옛날 중국에 비위(飛衛)라는 명궁이 있었다. 기창(紀昌)이라는 사람이 비위에게 활쏘기를 가르쳐 달라고 하자, 비위는 눈을 깜빡거리지 않는 방법을 먼저 익히라고 했다. 기창은 집으로 돌아가 아내가 일하는 베틀 밑에 누워서 왔다갔다 하는 북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리지 않는 훈련을 했다. 2년이 지나 송곳이 눈앞에 와도 눈을 깜빡거리지 않게 되자 다시 비위를 찾았다. 비위는 아직 부족하다며, 작은 것이 크게 보이고 희미한 것이 뚜렷하게 보일 정도로 훈련을 쌓은 뒤에 오라고 했다. 기창은 가는 털에 이를 묶어 창문에 매달아 놓고 매일같이 바라봤다. 열흘이 지나자 이가 조금씩 크게 보이더니 3년이 지난 뒤에는 수레바퀴만하게 보였다. 기창은 조그만 활과 화살을 만들어 이를 쏘아 꿰뚫었는데, 이를 묶은 털은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기창관슬(紀昌貫蝨)의 고사다. 중국인들은 옛부터 우리 민족을 동이(東夷)라 불렀다. 여기서 '이(夷)'는 대궁(大弓)이니 큰 활을 잘 쏜다는 뜻이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이나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역시 명궁으로 날렸다. 조선시대에 활쏘기는 무인은 물론 문인들도 인격수양을 위한 필수과목이었다.이런 내력을 지녀서인지 우리나라 양궁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번 2012년 런던올림픽도 예외가 아니다. 여자단체전과 개인전에서 금메달, 남자단체전 동메달·개인전 금메달을 따냈다. 특히 여자단체전은 1988년 양궁단체전이 도입된 이래 7연패의 위업을 이뤘다. 이같은 위업 한 가운데 전북 관련 얼짱궁사 3인방이 있어 더욱 자랑스럽다. 충남 홍성출신의 이성진(27·전북도청)과 전주출신의 최현주(28·창원시청), 고창출신의 기보배(24·광주광역시청)가 그들이다. 기보배는 개인전도 우승했다. 이에 앞서 박성현(29·전북도청 감독)은 2004년과 2008년 올림픽 우승의 주역이다. 로이타통신은 비결로 김치 버무리기와 젓가락 사용을 들었다. 여기에 미모까지 추가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조상진논설위원
관광 전주, 경주에서 배워라
정동영과 이재명의 진심
새만금특별자치단체 설립도 매듭지어야
“저는 전북 사람인데요”라는 항변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금융사 전북 이전, 구체적 실행방안 제시하라
전주 화약(全州 和約)
전주가정법원 설치법 소위 통과를 환영하며
홈택스가 놓칠수 있는 연말정산시 주의할점
'핫이슈' 대신 '주요쟁점' 이라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