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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선유도와 이순신 - 조상진

군산항에서 배를 타고 남서쪽으로 50㎞쯤 가다보면 고군산(古群山)군도에 닿는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크고 작은 섬들이 어깨동무하듯 모여 있다. 행정구역상 옥도(沃島)면에 속하며 선유도를 중심으로 신시도 야미도 무녀도 장자도 등 10개의 유인도와 20여개의 무인도를 아우른다.이곳은 고려시대 이래 해운교역상 중요한 위치였다. 여송(麗宋) 무역로의 기항지로서, 몽고 일본, 멀리 대식국(아라비아) 상인까지 드나들었다. 당시는 만경현 소속이었다.조선시대 들어 태조 6년(1397)에는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선유도에 수군부대 만호영을 두었다. 그에 앞서 1380년 최무선이 진포(현 군산시) 일대에서 왜선 500척을 무찌른 쾌거는 유명하다. 하지만 왜구들은 수군이 있는 선유도를 우회해 금강하구지역을 노략질하곤 했다. 그래서 세종때 선유도에 있던 군산진을 진포로 옮기고 군산도(島)는 옛 고(古)자를 붙여 고군산이라 칭했다.이어 선조 2년(1569)에는 김영아문이란 관청을 설치하고 수군절제사가 상주했다. 이 수군절제사는 임피군창(軍倉) 만경 김제 부안 무장 고창 영광 등 8개 군현을 관할했다.이곳 선유도는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임진왜란 당시인 선조 30년(1597) 9월 21일 위도를 거쳐 선유도를 찾아 12일간 머무른 것이다. 명량해전에서 크게 승리한후 이 사실을 임금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계를 작성하며 휴식을 취했다. 난중일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9월 21일 새벽에 나서서 고군산도에 이르니 호남순찰사 박홍로가 내가 왔다는 말을 듣고서 배를 타고 옥구로 갔다는 것이다./ 10월 초1일 아들을 보내서 저의 모친도 보고 집안 사람들의 생사도 알아보게 하였다.… 아산(牙山)집이 적에게 분탕질 당해 잿더미가 되어 남은 것이 없다고 한다./ 10월 초3일 새벽에 배를 띄워서 법성포로 돌아왔다."또 신시도에는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이 글을 읽던 월영대가 있었다.군산시는 최근 이순신 장군이 머물던 선유도 진영 복원사업을 서두르고 있다. 11월께 학술세미나를 갖고 용역을 맡길 것이라고 한다. 고군산군도는 탄력을 받고 있는 새만금사업과 함께 머지않아 국제해양관광단지로 탈바꿈될 예정이다. 이에 발맞춰 선인들의 숨결을 되살리는 것도 괜찮을듯 싶다./조상진 논설위원

  • 문화재·학술
  • 조상진
  • 2009.08.28 23:02

[오목대] 지역의식 - 장세균

서거(逝去)하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살아생전에 많은 오해를 받었다. 그중의 하나가 그분은 지역감정의 최대 피해자요 동시에 지역감정의 최대 수혜자(受惠者)라는 것이다. 지역감정의 최대 피해자라는 말은 맞지만 지역감정의 수혜자라는 것은 사리(事理)에 어긋난다.지역감정의 수혜자라는 표현은 주로 영남 사람들 입에서 나왔다. 김 전 대통령이 호남에서 종교 교주처럼 절대적 지지를 받아 정치적 위기를 벗어났다는 것을 빗댄것이다. 그러나 그분이 만약 영남인이었다면 대권 4수(修)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아마도 그분이 영남인이었다면 그분의 인격으로 그런 험난한 고생 없이 오래전부터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 호남인의 판단이다.지역감정의 수혜자라고 하는 것은 억지주장이다. 우리의 지역의식은 옛날부터 남달랐는지도 모른다. 우리 조상들은 고향에 대해서 뿌리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벼슬을 하러 객지에 나갔다고도 벼슬이 끝나면 고향으로 귀향(歸鄕)하고 장사꾼도 객지에서 명절이면 고향을 찾는다.우리나라의 옛 노래 중, 상당부분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가사로 엮어져 있다. 심지어 고향에서 죽지 않고 객지(客地)에서 죽는 것을 불행한일로 보고 "객사(客死)할 놈"이 욕이 된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고향에서 죽어 가까운 혈족(血族)옆에 눕기를 원했다. 서양 사람들이 죽으면 끝이라는 생사단절(生死斷絶)의 문화라면 우리 조상들은 죽어도 후손(後孫)에 살아있는 생사연결형(生死連結形) 문화라고나 해야 할것이다.그러니 자기 고향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서양 사람들의 생업(生業)은 유목적, 상업적이어서, 이지역 저 지역에 떠돌아다니며 살았기에 고향이라는 절대적 애착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몬순지대의 벼농사는 생업 중에서도 가장 노동 집약적 이면서 토지 정착적이기 때문에 고향을 떠나서 산다는 것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그러나 지역의식이 자기 고향에 대한 애착 수준을 넘어 다른 지역에 대한 배타의식, 심지어 적대의식(敵對意識)로까지 갔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이제 우리는 농업국가가 아니다. 지역감정은 퇴물(退物)이 되어야한다./장세균 논설위원

  • 사회일반
  • 장세균
  • 2009.08.27 23:02

[오목대] 코스모스 - 백성일

인동초는 졌으나 길가에 코스모스는 활짝 피었다. 아침 저녁으로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제법 쌀쌀하다. 귀뚜라미 소리가 귓전을 간지럽힌다. 점심 먹고 소슬바람 맞으며 정자에서 잠깐 시들기에는 제격이다.청량감이 넘쳐난다. 홑이불이 생각난다. 한낮에는 뙤약볕이 내려 쪼이지만 더위도 한풀 꺾인 기세다. 가을의 문턱에 들어 선다는 입추와 말복도 지났다. 계절의 변화가 실감난다.한들 한들 길가에 나부끼는 코스모스. 한번 씨를 뿌려 놓으면 해마다 알아서 꽃이 핀다. 꽃이 지면 그 자리에 씨가 떨어져 이듬해에도 꽃을 피운다. 개화기도 길다. 7월에 꽃을 피워 뜨거운 태양 볕을 견대내고 늦가을 까지 나부낀다. 생명력이 이렇게 강하건만 겉으로는 한없이 여린 모습을 내비친다. 더위에 지친 심신을 신선한 바람으로 달래 주는 가을에 어울리는 꽃이다.코스모스는 서로 다른 각색의 꽃들이 한데 어울릴 때라야 제대로 된 맛이 난다. 한 송이로는 고작 가냘프고 연약한 들꽃에 지나지 않는다. 빨간 것은 검붉을 만큼 빨갛고, 노란 것은 밀감껍질처럼 짙게 노랗고, 햐얀 것은 파스텔이 묻어날 것 같이 하얄때, 그리고 그 선명한 색깔들이 잘 섞여 있을 적에야 코스모스답다. 조화와 질서를 뜻하는 희랍어 코스모스(Kosmos)를 제 이름으로 얻은 것도 각색의 꽃들이 어울려 빚어내는 아름다움 때문일 것이다.70년대 이후 귀향길의 설렘을 잘 표현하기로는 나훈아가 불렀던 '고향역'만한 것이 없다.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역"으로 시작하는 노랫말이 다가온다. 김상희가 불렀던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도 감흥을 돋군다.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중략/길어진 한숨이 이슬에 맺혀서 찬바람 미워서 꽃속에 숨었네"라는 노랫말이 가을의 정취를 풍겨나게 한다.코스모스는 '소녀의 순정'이라는 꽃말을 갖고 있는데 비오는 날 수줍은듯 피어 있는 자태가 정말 소녀의 발그스레한 볼같아 보인다. 이름 있는 꽃들은 대개 전설이나 설화가 있게 마련이지만 코스모스는 그렇지 못하다.다만 신이 가장 먼저 습작으로 만든 꽃이 코스모스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화합과 통합을 시대정신으로 남기고 홀연히 떠난 DJ의 삶이 사즉생 (死卽生)으로 다가선다. 자신을 죽이려했던 원수까지 사랑했던 그의 삶이 벌써 코스모스로 활짝 피어난 느낌이다./백성일 수석논설위원

  • 사회일반
  • 백성일
  • 2009.08.26 23:02

[오목대] 이창호(李昌鎬)의 부진 - 박인환

전주출신 불세출의 프로 바둑기사 이창호(李昌鎬) 9단에는 여러 별명이 따라 붙는다. 희노애락을 모르는듯 무덤덤한 대국태도로 돌부처라는 별명이 붙었다. 아무리 판세가 불리해도 무리하지 않고 때를 기다린다 하여 강태공이라고도 불린다. 무엇보다 과분하지 않은 별명은 끝내기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인해 붙여진 신산(神算)이다. 이밖에 바둑의 국보(國寶), 무협지식으로 흑도(黑道), 외계인, 삼중(三重)허리등 많은 별명이 있다.11세 어린 나이에 입단한 이창호는 14세때인 1989년 KBS바둑왕전에서 국내 첫 타이틀을 따내며 세계 최연소 타이틀 보유 기록을 세웠다. 17세 때인 1992년에는 동양증권배를 차지하면서 세계를 제패했다. 1990년대는 이창호의 전성기 였으며, 이는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당시 국내는 물론 국제 기전에서도 적수가 없을 정도였다. 명실상부 세계 바둑계의 전설이 돼있었던 것이다.전성기의 화려한 기록들이 이를 입증한다. 1990년 41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으며, 연간 최다관왕(13관왕, 1994년), 연간 최다승(90승 19패,1993년). 연간 최고승률(88%, 1988년)등은 당분간 깨지기 힘든 기록들이다.세월앞에 장사는 없는 법인가. 올해 34세인 이창호의 최근 잇단 부진이 여간 심상치 않다. 지난 6월 중국에서 열린 춘란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결승에서 중국의 창하오에게 0대2로 패하면서 우승을 넘겨줬다. 2005년 삼성화재배 준우승을 시작으로 4년동안 메인 세계대회에서 한 차례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고 무려 7차례나 준우승에 머무르면서 분루를 삼켜야 했다. 지난주(20일)에는 국내대회인 물가정보배에서 그동안 4번 맞대결해 한번도 진적이 없는 신예 김지석 4단에게 0대2로 패해 타이틀을 내주었다. 현재 이창호가 공식 보유한 국내외 타이틀은 4개이지만 3개 대회는 이미 중단됐거나 연내 개최가 불투명한 점을 감안하면 달랑 하나만 남는다. 입단 이후 최대의 위기인 셈이다.이창호의 부진을 두고 여러 설(說)들이 많다. 체력적 부담이라든지 젊은 도전자들의 등장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그것이다. 이창호가 정말로 하락세에 접어든 것인지, 아니면 돌부처 특유의 뚝심으로 보란듯이 재기해 고향 팬들을 즐겁게해줄 수 있을지 관심있게 지켜볼 일이다./박인환 주필

  • 스포츠일반
  • 박인환
  • 2009.08.25 23:02

[오목대] 대통령 자서전 - 조상진

대통령의 자서전은 의미가 크다. 한 나라를 움직인 최고 지도자로서, 그가 남긴 정치적 결단이나 정책, 인간적 고뇌 등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아가 역사적 기록물이기도 하다.서구에는 이러한 자서전이 넘쳐난다. 베스트 셀러로 큰 인기를 얻는 경우도 많다.영국 총리를 지낸 처칠이'제2차세계대전 회고록'을 써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얘기는 유명하다.현직에서는'실패한 대통령'이었으나 퇴임후 더 빛을 발한 카터 미국 대통령이 쓴 '아름다운 노년'은 스테디 셀러로 인기가 높다.또 클린턴 대통령의'마이 라이프(My Life)'는 2004년 출간도 되기 전에 1000만 달러의 인세를 받았다. 예약 주문만 200만 부로 논픽션 사상 최고 기록이다. 그의 부인 힐러리 국무장관이 한해 앞서 발간한 '살아있는 역사'역시 선인세 800만 달러를 받았다.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내 아버지로 부터의 꿈(1995)'과 '담대한 희망(2006)'이란 자서전을 출간했다. 이 책은 그가 대통령이 되는데 디딤돌이 되었다.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2001년 "푸틴은 어떤 사람인가"로 시작되는 독특한 문답식 자서전을 출간했다. 여기에는 러시아 현대사에 관한 생생한 기록이 담겨있다.우리의 경우는 어떨까.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6·25 전쟁 전인 1949년 서정주 시인에게 자신의 자서전을 쓰도록 했다. 틈틈이 만나 자신의 생애를 일러 주었다. 하지만 출간된 책을 받아 본 이 대통령은 판매금지를 시켰다. 3인칭의 문장으로, 자신의 문체인'나 이승만은…'으로 시작된 자서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김영삼 대통령은 3권의 회고록을 냈다. 하나회 청산이나 금융실명제, 정상외교의 뒷이야기 등을 담았다. 하지만 자화자찬과 변명이 많아 기대에 못미친다는 지적을 받았다.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자신의 인생과 대통령직의 경험을 집필중이었으나 비극적 서거로 끝을 맺지 못했다.18일 서거한 김대중 대통령은 2005년 편찬위원회를 구성해 자서전 편찬작업을 해왔다. 5천여장에 이르는 초고가 완성되었지만 감수를 끝내지 못했다고 한다. 50년 동안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 있던 거목이었던 만큼 언제 어떤 내용으로 출간될지 기대가 크다./조상진 논설위원

  • 정치일반
  • 조상진
  • 2009.08.21 23:02

[오목대] 친일재산(親日財産) - 장세균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한 집안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독립운동을 하다보니 가지고 있던 재산마저도 탕진해야 했고 만주, 중국등, 타국(他國)을 전전(轉轉)하다보니 가정을 돌볼수 없어 자녀들마저 학교교육을 받지못해 사회 낙오자 되기가 십상이었다. 이런 어려움은 손자 손녀들 세대까지 이어져 가난이 대물림 된것이다.그래서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유행했었다. 지금도 최저 생계비에도 못미치는 최하위 생활을 하는 독립유공자 가족들이 너무도 많다. 8. 15 광복절 64주년을 보낸 지금도 그들의 시련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반면에 친일파 (親日派) 후손들 대부분의 생활은 유복했다."친일파 반민족 행위자 재산 조사위원회"가 과거 일본인 소유지로써 마땅히 국유재산으로 귀속되어야할 땅을 위계(僞計)로 개인 소유지로 불법 등기한 20여필지의 땅을 찾게 해주었다고 한다. "친일파 반민족 행위자 재산 조사위원회"는 2006년 7월 출범한 이래 3년간 친일파 106명이 일제 강점기에 취득한 1199 필지, 시가로 약 1617억원에 해당하는 땅을 국가 재산으로 귀속 시킨것이었다.지금도 국가 귀속 결정이 내려진 친일파 땅의 90%이상이 환수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반발과 저항이 심한지도 모른다. 과거 청산을 놓고 우리와 비슷한 프랑스는 제2차 세계 대전당시 독일 나치에 협력한 협력자 약 35만명 가운데 12만명이 재판에 회부되고 그중 약 3만8천명이 금고 이상의 실형선고를 받았다. 6천명 이상이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약 5만명이 공민권을 박탈당했다.과거 청산의 하이라이트는 1차 세계대전의 프랑스의 국민 영웅이었던 패텡 원수였는데 그는 독일 점령기, 짧은 기간에 허수아비 정부를 맡았다는 죄목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드골 대통령에 의해 종신형으로 감형된채 감옥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케 했다. 루이 16세를 과감히 길로틴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프랑스 국민다운 처리 방식었는지도 모른다.그러나 우리는 이땅의 친일파 단 한명도 처벌한적이 없다.수많은 유명인사들의 친일행각이 여과(濾過)된 적이 없는 우리에게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 조사위원회'의 역할은 컸다고 본다 ./장세균 논설위원

  • 정치일반
  • 장세균
  • 2009.08.20 23:02

[오목대] 골프와 인생 - 백성일

국민들은 때가 아닐 때 골프채를 휘두르는 정치인에게 잔인하다. 2006년 3월 이해찬 전 총리가 3.1절에 골프를 쳤다. 이 전 총리는 철도 파업이 한창일 때 부산의 한 골프장에서 지역 기업인들과 골프를 친 사실이 밝혀져 결국 사퇴했다. 정치인에게 골프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인 운동이지만 이 때문에 낙마한 정치인도 많다. 최근 경남기관장 4명이 접대골프를 쳐 물의를 빚었다. 골프는 멋진 운동이지만 잘못하면 마가 따른다. 대중화가 이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국민정서에 반하기 때문이다.골프가 너무 재밌는게 흠이라는 사람도 있다. 골프엔 심판이 없다. 자신과의 영원한 싸움이라는 것도 자신이 곧 심판인 때문이다. 플레이를 하면서 의심 받는 일이나 스코어를 속이는 일은 인격을 부정 받는 짓이다. 옆에서 거드는 캐디의 잘못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릴 줄 아는 관용도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샷할 때 볼을 보지 않으면 모두가 허사다. OB가 나거나 볼을 잃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누구나 라운딩 전에는 순리에 따라 샷 할 것을 다짐하지만 막상 코스에 들어가면 욕심을 부린다. 러프에 들어간 볼을 무리하게 쳐내려다가는 오히려 더 깊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은 골프에서도 통용된다. 순리를 무시한 과욕과 성급함이 주는 폐해는 골프라고 예외일 수 없다. 골프는 숱한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 좋은 스코어를 낼 수 있어 인생 여정에 비유한다."절대로 남의 스코어를 계산하지 말라"는 말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내기를 많이 해서인지 동반자의 스코어에 상당히 민감하다. 라운딩을 하다 보면 간혹 티격태격 말타툼이 일어 나는 것을 보는데 대부분이 타수 계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동반자의 스코어를 계산하지 말라는 것은 단지 분쟁을 피하자는 목적이 아니다. 자신의 플레이에 더 집중하고 동반자를 믿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골프는 기다림의 운동이다.지름 42㎜ 남짓한 작은 공을 채로 쳐서 물 언덕 모래 무덤을 지나 직경 108㎜의 작은 구멍에 넣는 것이라 힘과 기술 이외에도 미세한 조정력이 요구된다. 상대방이 툭 내던진 말 한마디에 경기를 망쳐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골프다. 제주 야생마 양용은이 타이거 우즈를 잡았다. 양용은이 희망의 다리를 놓았다. 그의 골프 인생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백성일 수석논설위원

  • 스포츠일반
  • 백성일
  • 2009.08.19 23:02

[오목대] 나로(羅老) 우주센터 - 박인환

전남 고흥반도 남쪽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 쪽빛 바다에 떠있는 섬 나로도(羅老島)에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내나로도와 외나로도 두 개의 섬 가운데 외나로도에 세워진 나로 우주센터에서 내일 오후 러시아와 공동개발한 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인'나로호(KSLV―Ⅰ)'발사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아름답고 깨끗해 '오래된 비단'에 비유해 이름 붙여진 나로도가 1995년 이후 적조(赤潮) 첫 발생해역이라는 달갑잖은 '타이틀'이 붙여진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제주해협을 통해 들어와 남해안을 거쳐 동해로 빠져나가는 난류대가 나로도 앞바다에서 영양염류가 많은 해수와 만나면서 적조가 발생하기 때문에 붙은 불명예다.우주센터는 안전을 고려해 바닷가 근처나 인적이 드문 외딴 곳에 건설한다. 로켓을 발사할 때 폭발음과 엄청난 화염이 발생하는데다 발사 직후 추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섬인 나로도가 우주센터로 선정된 이유다. 실제 96년 발사된 중국의 '창청 3호'가 주택지역에 떨어져 많은 민간인 피해를 내기도 했다.지난 6월 외나로도에 우주센터가 완공됨으로써 우리는 세계에서 우주센터를 보유한 13번째 나라가 됐다. 내일 나로호 발사에 성공하면 우리나라는 10번째로 스페이스클럽에 가입하는 국가가 된다. 자국(自國)의 발사기지에서 자국의 로켓으로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국가로 인정받는 셈이다.로켓을 개발해 처음 발사할 경우 성공률은 27% 정도에 그치고 있다. 실제 자국 발사기지에서 자력으로 인공위성 발사에 단번에 성공한 국가는 구 소련, 프랑스, 이스라엘등 3개국에 불과하다. 우주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과 일본, 영국 등도 1차 발사에서는 실패했다.내일 발사될 나로호는 2단(상단부) 로켓은 우리가 자체 개발하고, 1단(하단부) 로켓은 러시아가 기술협력을 하고 있다. 아직은 우리의 순수한 기술로만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없는 기술적 한계 때문에 러시아를 파트너로 선택한 것이다.나로호는 그동안 여섯 차례 발사를 연기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러시아쪽 1단 로켓에서 기술적 문제가 발견된다는 이유다. 하지만 이번에는 태극마크도 선명한 나로호가 어제 발사대로 이동해 사실상 발사준비에 돌입했다. 나로호의 발사 성공으로 우주 대장정을 향한 기술개발에 더욱 탄력을 받길 기대한다./박인환 주필

  • 사회일반
  • 박인환
  • 2009.08.18 23:02

[오목대] 지진(地震) 왕국 - 장세균

우리의 옛 조상들이 가장 두려워 했던것이 세 가지가 있었는데 첫째는 호랑이요 둘째는 보릿고개, 셋째는 양반(兩班)이었다고 한다. 이는 우회적으로 과거 우리 사회 문제점을 짚어준다.우리와 달리 일본인이 제일 무서워하는 세 가지는 첫째는 지진(地震)이요 둘째는 지진의 휴유증인 화재(火災)요 , 셋째는 아버지였다고 한다. 일본인은 지진의 엄청난 자연 재앙속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낼수밖에 없었던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안전한 삶의 보금자리를 찾고자 외부(外部)로 눈을 돌렸고 이것이 침략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는 그럴듯한 변명논리도 있다.지난 11일 오전 5시에 태평양을 마주한 일본 시즈오카(靜岡) 현, 남쪽 스루카만(灣)을 중심으로 하는 규모 6.5도의 지진이 발생하여 110명이 다쳤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이 지역에 30년안에 대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확률이 87%라고 예측한다고 한다.우리는 지진이라는 자연 재앙에서 다행이 한발짝 물서선 안전지대로 생각하지만 조선 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우리 한반도도 지진으로부터 해방된 안전지대만은 아니었다. 백두산도 지금은 휴화산(休火山)일뿐 사화산(死火山)은 아니잖는가. 조선시대의 지진횟수는 지진이 감지된 범위가 7개 고을이라면 A급,4개에서 6개 지역이라면 B급, 3개 고을 이하라면 C급으로 크게 범위를 잡고 창문이 흔들릴 정도의 미진(微震)은 제외한다면 A급 지진이 41건, B급 지진이 51건, C급 지진이 349건으로 집계되었다.우리가 지진 안전지대속에 있다는 착각은 1766년 이후부터 지진 발생빈도가 현격히 줄어들었던 것에서 기인한다. 환태평양 지진대(地震帶)에 놓여 있는 일본은 진도(震度) 8도의 격진은 대략 200년만에 한번꼴로 보고 있다. 일본 수도 도쿄의 경우에도 진도 7도 정도의 강진(强震)이 발생할 가능성이 10년 이내에 30% 이고 30년 이내에 발생할 확률은 70%라고 한다.그러나 이처럼 우리는 지진 때문에 생존의 불안감까지는 느끼지 않는다. 우리의 조상들이 한반도를 가르켜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고 칭송했던 이유의 하나도 일본 같은 심각한 지진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갖는 복(福)의 하나라고 본다./장세균 논설위원

  • 환경
  • 장세균
  • 2009.08.17 23:02

[오목대] 벙어리 장갑 - 조상진

이희호 여사를 가까이서 뵌 적이 있다. 2005년 1월 완주군 동상면에 있는 한농예능학교 졸업식에서다. 이날 새벽, 흰 눈이 설핏 내렸다. 전국 5대 오지(奧地)중 하나로 꼽히는 이곳, 대안학교로 향하는 길에는 제설용 모래가 뿌려졌다.조용한 산골학교가 모처럼 크게 북적였다. 30여 명이 졸업하는 이 학교에 김대중(DJ) 대통령 영부인인 이 여사를 비롯 최규호 교육감, 인재근씨(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부인), 박선숙씨(강현욱 지사부인) 등 내노라하는 내빈들이 참석했기 때문이다.이날 이 여사는 손녀뻘되는 학생들의 전통춤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뒤늦게 알려졌지만 이 여사는 학교의 보이지 않는 후원자였다. 본인의 손때 묻은 피아노를 선뜻 내주었고 컴퓨터 등 기자재도 기증한 바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여사는 관심있게 학교를 둘러 보고, 축사후 점심식사도 함께 했다.행사가 끝나고 서울로 떠나려는 이 여사에게 몇가지 질문을 던지며 "김 전 대통령의 건강은 어떠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 여사는 조근조근 대답한후 웃으며 "좋으세요"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요즘 DJ의 건강이 좋지 않다. 폐렴으로 연세대 병원에 입원한지 한달이 넘었다. 합병증인데다 86세(1924년생)의 고령이어서 병원이 비상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그레그 전 주미대사 등 국내외 인사들의 병문안이 발길을 잇는다.이런 가운데 가장 힘든 이는 이 여사가 아닐까 싶다. 간병뿐 아니라 그 많은 손님을 맞아야 하니 이만저만 고역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서도 지척에 있는 동교동 자택에서 하루도 잔 일이 없다고 한다. 특히 88세(1922년생)의 고령에도 틈틈이 뜨개질을 해 짠 벙어리 장갑과 덧신을 차가워진 남편의 손과 발에 씌워준 것이 인상적이다.하긴 이 여사의 감옥 뒷수발은 유명하다. DJ가 1977년 진주교도소와 1980년 사형선고를 받고 청주교도소에 수감되었을 때 이 여사는 겨울인데도 방에 불을 때지 않고 지냈다. 또 매일 써보낸 편지가 604통에 이른다. 갈때마다 속옷과 양말까지 다림질하고 향수를 뿌려 독방에 넣어주었다.그러한 지극정성이 오늘의 DJ를 만들었을 것이다. 물론 DJ도 그만큼 잘 했을테고. 벙어리 장갑의 온기가 DJ의 병마를 녹였으면 한다.

  • 정치일반
  • 조상진
  • 2009.08.14 23:02

[오목대] 갯벌 - 장세균

군산에 있는 국립수산 과학원 갯벌 연구소를 전남으로 유치하려는 움직임은 전북도민을 실망시키고 있다. 전라도 사람을 가르켜 개땅쇠라고 불렀던 것은 전라도에 갯벌이 많은데서 나온 별명이다.갯벌의 사전적(事典的)인 의미는 조류(潮流)나 강에 의해 진흙이 쌓인 해안 습지 지대를 말한다. 그리고 썰물 때 나타나는 지역만을 가르켜 갯벌이라고 하는 것이다. 갯벌은 크고 작은 만(灣), 석호(潟湖) 강어귀에서 볼 수 있다.지질학에서는 갯벌은 노출된 진흙층으로 침적토, 점토, 바다 생물이 쌓여져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갯벌은 일반적으로 야생 생물에 있어서는 중요한 지역이라서 종종 철새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장소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서해안 갯벌은 북해 연안 (北海 沿岸), 캐나다 동부 연안, 미국 미시시강 하구, 아마존 하구와 더불어 세계 5대 갯벌의 하나로 국제적으로 매우 희귀한 갯벌이라는 것이다.한반도의 서해안과 남해안의 해안선은 복잡할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만(灣)들이 있고 금강, 만경강, 동진강, 연산강, 낙동강등 큰 강들의 하구가 있다. 일반적으로 갯벌은 강과 하천등에서 유입되는 토사(土沙)와 해안에서 해수(海水)에 의해 침식된 물질등이 퇴적되어 형성된다고 하는데 파도의 영향이 크지도 않고 조석류(朝夕流)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큰 곳에 나타난다고 한다.조차(潮差)는 남해안은 2.5m에서 4m 정도이지만 서해안은 남쪽이 4m 정도이고 북쪽으로 갈수록 차차 커져 인천 부근에서는 9.3m에 달한다고 한다. 따라서 서해안에 대규모의 갯벌과 염습지들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 서남해안에 분포한 갯벌은 국토 면적의 2.4%에 해당된다고 한다. 서해안에는 우리나라 전체 갯벌 면적의 약 83%이고 나머지는 남해안에 산재한다.지방별로는 경기도와 인천이 35%, 충남이 13%, 전북이 5% 전남이 44%, 경남과 부산이 3%로 나타난다. 그런데 전북이 우리나라 갯벌의 5%만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강, 만경강, 동진강 등 큰 강물이 유입되고 있어 전형적인 하구 갯벌이 발달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순히 갯벌의 면적만을 따져 전남으로 갯벌 연구소를 이전해서는 안된다./장세균 논설위원

  • 자치·의회
  • 장세균
  • 2009.08.13 23:02

[오목대] 견원지간(犬猿之間) - 백성일

개와 원숭이처럼 서로 사이가 안좋은 관계를 견원지간이라 한다. 우리 역사에서 '연개소문과 김춘추' '견훤과 왕건' '이성계와 최영' '정도전과 태종 이방원' '김상헌과 최명길'의 사이를 대표적인 라이벌로 꼽는다. 원래 라이벌 없이 크는 영웅은 없다. 건전한 라이벌은 새로운 긴장을 조성해 발전하게 돼 있다. 무재칠시(無財七施)가운데 상좌시(牀座施)가 있다.앉은 자리를 배려해 준다는 것이다. 설사 앙숙 같은 사람일지라도 그의 앉을 자리를 도려내지 마라.오히려 앉을 자리를 마련해 주라.그 경쟁자가 나를 밟고 가는 것이 아니라 되레 나를 더 키운다고 했다.트루먼과 맥아더가 원만한 관계였다면 한국전쟁의 양상과 우리 현대사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1815년 나폴레옹과 웰링턴의 워털루 전투는 유럽 근대사의 흐름을 바꿨다. 두 사람의 대결에서 웰링턴이 승리했지만 그가 나폴레옹의 적수가 되지 못함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승리는 거머줬지만 웰링턴은 미미한 존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워털루에서의 승리는 이후 유럽을 변모시켰다. 싹트던 혁명의 분위기가 사라지고 다시 보수 시대로 돌아섰다.세계지도에 러시아를 표기하는 것에 기여한 러시아 표트르 대제와 스웨덴 왕 카를 12세, 두개의 중국이 있게 한 마오쩌둥과 장제스, 하나의 왕국에 두 명의 여왕으로 군림한 엘리자베스 1세와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카르타고와 로마의 진검승부를 주도한 한니발 바르카와 스키피오 아프리가누스 등 세기적 라이벌들이 역사를 바꿔 놓았다. 에티오피아 속담에도 '유력한 친구는 유력한 적이 된다'는 말처럼 그렇다.DJ와 YS는 40여년간 엎치락 뒷치락거리며 정치적 라이벌로 성장했다. 지난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단일화를 실패한 이후 22년간이나 서로가 등져왔다. 특히 DJ가 남북정상회담을 가진 이후 YS는 남북문제 해결방식 차이로 DJ와 견원지간이 돼 버렸다. 하지만 엊그제 YS가 성경 말씀처럼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실천에 옮겼다. YS가 DJ 병문안을 통해 화해했기 때문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나와 있는 말처럼 '사람이 원수를 가장 사랑 할 때는 그가 죽었을 때'라는 것. 양김의 화해가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이념과 지역 갈등 해소에 크게 기여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백성일 수석논설위원

  • 사회일반
  • 백성일
  • 2009.08.12 23:02

[오목대] 왼손잡이의 날 - 박인환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은 특정 문화권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시대와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정적 선입견과 차별의 대상이었다. 왼손잡이를 가리키는 영어 'sinister'는 '불길한, 사악한, 못된'등을 뜻하며, 또 다른 단어인'left'에는 '서투른, 극단적인, 의심스러운'등 부정적인 뜻이 담겨있다.우리나라도 왼손잡이를 터부시하는 전통이 유난히 강했다. 우리 말에서 오른손이'바른손'이라는 인식 때문에 왼쪽은 상대적으로'그르다'는 뜻을 가리킨다. 한직으로 밀려나는 좌천(左遷)이나, 좌·우파간의 이념대립에서 '좌'라는 언어에 불온하고 위험한 의미를 덧씌었다. 장년층 이상의 왼손잡이들에게 어린시절은 악몽과도 같다. 밥상등에서 오른손 사용을 강요당한 추억 때문이다. 왼손잡이를 '짝배기', 우리지방에서는 '까락잽이'라고 비하했다.왼손잡이에 대한 편견의 유래는 확실치 않다. 분명한 것은 왼손잡이가 열등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른손잡이가 주류인 사회에서 소수들에게 행하는 다수들의 횡포다. 역사적으로도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등 세기적 천재들을 비롯 레이건, 클린턴등 미국 대통령중에도 유독 왼손잡이가 많다. 현 오바마 대통령도 왼손잡이다. 특히 최근에는 야구 농구 테니스등 대중적 스포츠에서 왼손잡이 선수들이 희소 가치 때문에 오히려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고 있다.현재 왼손잡이 수는 전세계 인구의 10% 정도로 추산된다. 국내는 성인 5%, 어린이는 17% 정도다. 왼손잡이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돼 가고 있지만 아직도 왼손 사용자들은 일상생활에서 적잖은 불편을 감내하고 있다. 컴퓨터 마우스, 자동차 시동장치, 카메라 셔터등 부지기수다.모레(13일)은 왼손잡이에 대한 차별을 불식하기 위해 제정한 '세계 왼손잡이의 날'이다. 서유럽 국가에서는 왼손잡이가 겪는 불편을 직접 체험해보는 각종 행사를 열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002년 정몽준의원(당시 무소속)이 '왼손잡이 지원법'제정을 추진했으나 회기를 넘겨 자동폐기되기도 했다.왼손잡이는 누구에게나 유전적으로 생길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문화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차이점 즉 개성을 인정해야 한다. 왼손잡이들은 당연히 배려해야 할 우리 사회의 소수들이다./박인환 주필

  • 문화일반
  • 박인환
  • 2009.08.11 23:02

[오목대] 도박 - 장세균

환치기로 거액을 해외로 빼돌려 마카오 카지노에서 원정 도박을 한 유명 연예인들과 대기업 임원등이 검찰에 무더기로 적발되었다고 한다. 검찰은 지난해 12월부터 이들 연예인들이 상습적으로 해외 원정도박을 한 혐의를 잡아 수사를 벌였고 최근 아들에게 돈을 환전해준 환치기 업자를 수사하면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고 한다.서양 사람들이 처음 만나면 나이나 직업을 묻기보다 상대방의 취미를 묻곤한다. 취미를 통해 그 사람의 인격을 저울질 하는것이다. 우리는 지금과 달리 오래전에는 생활의 여유가 없었기에 취미를 가지기가 벅찼었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주저하거나 당황하게 되었고 쉬운 대답으로 독서나 산보라고 했던 것이다.그러나 서양 사람들에게는 독서나 산보는 취미가 아닌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다. 사람들에게 확실한 취미가 있으면 도박과는 인연이 없게 된다. 지금도 한국인들의 지나친 도박근성은 사회 심리학의 연구대상이다. 과거 한국의 노름문화가 우리 유전자속에 그대로 녹아있는지도 모른다.서양에서는 노름빚을 갚지 못하면 사회에서 소외받고 크나큰 불명예로 여겼지만 우리 전통사회에서는 관가(官家)에서 노름빚을 갚아 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임금님의 행차(行次), 전날밤의 도로나 난장(亂場)이나 초상집 마당에서의 노름은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고 이런 노름판의 노름빚은 관가(官家)에서 갚아주었다 하니 양민들의 노름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대 했었던것 같다. 가난한 백성들의 한(恨)도 노름판에서 풀려갔는지도 모른다.재미있는 것은 유럽에서 노름도구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카드라는 것이 바로 한국의 노름였던 투전에서 비롯된 것 이라는 학설까지도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도박심리는 여전하여 부처님도 6가지 도박 불이익을 설법할 정도였다.첫째는 이기면 상대방이 적의를 품고 둘째, 지면 마음이 아프며 셋째, 이기거나 지거나 패가(敗家)를 하게 되며 넷째 ,이웃에게 망신당하며 다섯째, 감옥이 자리를 비우고 기다리고 있으며 여섯째, 아무도 그에게 딸을 주지 않는다. 2천 5백년전에 부처님도 도박을 경계했던 바이다./장세균 논설위원

  • 사회일반
  • 장세균
  • 2009.08.10 23:02

[오목대] 입추(立秋) - 조상진

"가지 위의 저 매아미 무엇으로 배를 불려/ 공중에 맑은 소리 다투어 자랑는고/ 칠석에 견우 직녀 흘린 눈물 비가 되어/ 섞인 비 지나가고 오동잎 떨어질 때/ 눈썹 같은 초승달은 서쪽 하늘에 걸리었다/ 슬프다 농부들아 우리 일 거의로다/ 마음을 놓지 마소 아직도 멀고 멀다" (농가월령가 7월령 중에서)오늘은 입추(立秋)다. 24절기의 절반을 넘어 처음 오는 13번째 절기다. 대서(大署)와 처서(處署) 사이에 있으며 입동(立冬) 전까지를 가을로 친다. 무더위 속에서도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것이다. 이 때부터 밤이면 비교적 선선한 바람이 불어 서서히 가을 채비를 해야 할 시기다.옛날 중국에서는 입추의 15일간을 5일씩 3후(三侯)로 나누어 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② 이슬이 진하게 내리며 ③ 쓰르라미가 운다고 하였다.24절기는 중국 화북지방의 기후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 우리나라는 입추를 전후한 8월 상순이 가장 무덥다. 하지만 이번 여름은 기상이변인지 예년에 비해 덥지 않아 날씨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입추 고개는 더위 뿐 아니라 태풍과 각종 전염병과도 싸워야 한다. 자칫 1년 농사를 망칠 수 있어 경계를 게을리해선 안된다.이 시기에는 벼농사와 관련된 속담이 많다. "입추가 되면 벼가 패기 시작한다" "입추때는 벼 자라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 등이 그것이다. 이중 벼 자라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는 감수성 높은 표현이 재미있다.이 때는 논농사도 김매기가 끝나 물 조절하는 것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이 시기를 '어정 7월'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건들 8월'이라는 말도 있다.입추 무렵의 풍속으로 기청제(祈晴祭)가 있다. 이 때는 벼가 한참 여무는 시기이므로 비가 내리는 것을 큰 재앙으로 여겼다. 각 고을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고 맑은 날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기청제를 지낸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때 성안으로 통하는 수로(水路)를 막고 성안의 모든 샘물을 덮게 했다. 제를 지내는 동안 사람들은 물을 써서도 안되고 소변을 보아서도 안된다. 심지어 부부관계도 피했다. 비를 유감(類感)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한 것이다. 가뭄에 지내는 기우제와는 반대 성격이다.아직 늦더위가 남아 있지만 세월은 가을로 달려가고 있다./조상진 논설위원

  • 문화일반
  • 조상진
  • 2009.08.07 23:02

[오목대] 고종황제 - 장세균

고종황제는 조선의 26대 임금이다. 우리에게 흔히 알려진 고종의 이미지는 아버지 대원군과 부인인 민비 사이에서 자기 목소리를 못낸 무능력한 임금이다. 가정 구조상 강한 성격의 시아버지와 영민한 며느리의 갈등은 고종의 처신을 어렵게 했을것이고 국내적으로는 오랫동안 이어왔던 신분제의 변동과 국제적으로는 근대화된 여려 선진 강대국들의 식민지 쟁탈전 의 격동의 한가운데서의 고종의 처신은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그러나 이번에 새로 발견된 문서는 고종은 결코 나약한 군주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대한제국 외교권을 빼앗고 일제의 통감부 설치를 결정한 '을사 늑약 '체결당시 서울 주재 외국공사가 그 조약의 강제성을 본국에 보고한 문서가 처음 발견됐다고 한다.1905년 11월 20일 독일 공사(公使) 잘데른이 보낸 보고서는 고종이 끝까지 조약에 반대하는 확고한 입장이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독일 외교부 정치문서 보관서가 소장하고 있다고 하며 2005년 국사 편찬위원회가 복사 정리한 1만8000쪽 분량의 한국 관련 독일 외교 문서에서 모 교수가 찾아냈다고 한다.12쪽 분량의 '잘데른 보고서'는 고종에 대해서 "자신을 괴롭히는 적을 두려워 하지않는 황제"라고 평가했다고 하며 또 괄목할만한 대목은 고종이 미국 대통령의 딸과 황태자(순종)의 결혼을 통해 국면을 전환시키려고 했다는 사실도 기록했다고 한다. 이 문서를 통해서도 드러나듯이 그 당시 일본과 맺은 을사보호 조약(乙巳保護條約)이란 일본의 강제에 의해서 맺어진 "을사늑약"인 것이다.고종은 아버지 대원군의 그늘에서 벗어나자 조선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의욕이 강했다. 개혁가 다산(茶山) 정약용이 쓴 [여유당전서]라는 책을 수시로 꺼내 읽기도 했고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은 이후 일본으로 수신사를 보내고 귀국한 그들에게 일본의 앞서간 문명을 자세히 듣고 묻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조선을 개혁하려고 해도 '위정척사(衛正斥邪)'라는 명분하에 '최익현'같은 고루한 유림 세력들의 완강한 반대는 개혁의 엄청난 걸림돌이었다. 왕권시대라고 해서 어찌 고종 혼자 개혁할 수 있었겠는가?/장세균 논설위원

  • 문화일반
  • 장세균
  • 2009.08.06 23:02

[오목대] 휴대전화 요금 - 박인환

국내의 휴대전화 서비스는 1984년 아날로그 방식의 차량용 휴대전화(카폰)가 도입되면서 시작됐다. 겨우 20여년전 일이다. 초기 가입자는 2658명에 불과했다. 서비스 지역도 서울과 경기 일부 수도권으로 한정됐다. 수도권 지역 서비스가 시작된지 7년이 지난 1991년에야 전국 통신망이 갖춰졌다.본격적인 휴대전화 시대는 1996년 디지털 방식의 CDMA서비스와 함께 막이 열렸다. 1995년 164만명이던 가입자는 1년 사이 313만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1997년 시작된 개인휴대통신(PCS)서비스는 가입자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전기가 됐다.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단말기 가격과 이용요금이 초기보다 내려간 탓이다.1998년 6월 휴대전화 가입자는 1000만명을 넘어섰고, 1년2개월이 지난 1999년 8월에 2000만명을 돌파했다. 현재 가입자는 4700만명, 전국민의 96%가 사용하고 있다. 휴대전화를 다룰줄 모르는 어린이나 일부 노인들을 제외하면 전국민 거의가 사용하는 생활필수품인 셈이다. 휴대전화가 없는 사람은 '이기적'이라는 비난에 시달려야 하는 세상이 됐다.이동통신과 같은 장치산업은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지만 이용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해 비용회수가 끝난 뒤에는 요금은 내려가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우리의 휴대전화 요금은 세계 주요국가 가운데 가장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소비자원이 월평균 통화시간 3시간 이상인 미국·영국·호주등 15개국의 요금과 비교해 분석 발표한 결과다. 우리의 비싼 요금은 이동통신사들이 가입자를 끌기 위한 과당경쟁에 쏟아 붓고 있는 단말기 보조금 지급등이 원인이다. 이같은 분석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이용자들은 현재의 휴대전화 요금체계를 과다하게 느끼고 있는게 사실이다.소비자원의 발표 이후 휴대전화 요금 인하문제가 최근 정부·여당의 민생위주 정책과 맞물리면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이번 논란에 업계는 외국과의 단순비교는 적절치 않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명박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통신비 20% 인하를 제시했었지만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번 문제 제기가 휴대전화 요금 거품을 걷어내 가뜩이나 제자리를 맴돌고 있거나 줄어든 소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 가계에 도움을 주길 기대한다./박인환 주필

  • 경제일반
  • 박인환
  • 2009.08.04 23:02

[오목대] 손재주 - 장세균

손재주가 좋기로는 한국과 일본이 정평(정평)이 나있다. 식사 때 젓가락을 이용하기 때문에 손기술이 발달한 것이다. 그러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의 손재주가 둔해져가고 있다고 한다.핀란드 학생들의 100%가 장난감이나 물건을 고치기 위해 망치로 못을 박아봤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반면 한국 초등학생들의 20% 정도가 그런 경험을 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현장에서는 교육 문구용 칼이나 송곳도 준비 못하게 하고 칼은 가위로 송곳은 펀치 기계로 대체하는 식이라고 한다.초등 학생들 중 젓가락을 제대로 하는 애들이 10%도 안된다고 하고 연필을 제대로 쥐는 초등학생들도 불과 3분의 1에 지니지 않는다고 한다. 이처럼 손재주가 둔해지다 보니 2005년 핀란드에서 열렸던 기능 올림픽에서 한국이 겨우 3개의 금메달을 땄을 뿐이었다. 약 30년전의 기능 올림픽에서 22개의 금메달을 땄던 것과는 비교가 안된다. 손기술이 무기인 치대생들의 손기술이 예전에 비해 많이 뒤떨어져 있다고 한다.전에는 우리 손기술은 세계가 감탄한바 있다. 세계 유명한 여류 소설가였던 펄벅 여사가 한국에 처음 왔을때 경주에서 한식 밥상을 보고 놀랐는데 밥상위에 놓여있는 무채나 호박전들이 기계로 썰은것처럼 한결같았기 때문이었다. 병아리 암수를 구별하는데도 예민한 손의 감각이 필요한데 한국인이 여기에 최고의 적임자였다고 한다.병아리는 알에서 깨어난지 45일이 지나야 암수의 특징이 나타나지만 갓 태어나서는 구별할 수가 없다고 한다. 다만 손가락 끝으로 병아리 항문 아래쪽을 발정시키면 수놈일 경우 창자내의 생식기에 해당되는 미세한 돌기물을 지각할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암놈에게도 아직 퇴화하기 이전의 돌기물이 있어서 암수 구별이 무척 여려운데 겨우 0.5밀리미터의 초미니 "남성의 상징"을 놓고 손의 감각으로 파악해야 하는것이다.어렸을 때부터의 젓가락을 통한 손기술과 그 감각이 이 어려운 작업을 해내게 한 것이다. 아무리 컴퓨터 시대라 해도 장인정신(장인정신)이 고부가(고부가) 가치를 이끌어내는 시대이기도 하다. 손을 쓰는 우리 전통문화를 산업화하기 위해서도 손재주는 필요하다./장세균 논설위원

  • 문화일반
  • 장세균
  • 2009.08.03 23:02

[오목대] 전주의 산성(山城) - 조상진

우리나라는 '산성(山城)의 나라'라 할만 하다. 지금까지 조사된 성터(城址)만 해도 1650개가 넘으니 말이다. 조선시대 행정구역을 330개로 치면 시군당 평균 5개꼴로 성이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조선 세종때의 학자 양성지는 우리나라를 '성곽의 나라'라고 했다. 당시 중장비가 없던 시절이었던 만큼 백성들의 노고가 얼마나 컸을 것인가.이처럼 성이 많은 이유는 뭘까. 아마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외적의 침입이 잦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에 900여 차례가 넘는 외침을 받았다. 그 때마다 목숨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성곽을 축조했다. 특히 산성에는 평상시 군창(軍倉)을 두고 무기와 곡식을 준비해 뒀다. 적이 침입해 오면 평지의 주민들을 산성으로 피신시키고 항전에 나선 것이다.또 하나는 우리나라의 지형 때문이다. 전국토의 70%가 산지여서 이를 최대한 이용했다.산성은 퇴뫼식과 포곡식(包谷式)으로 분류한다. 퇴뫼식은 산의 정상부를 테를 두르듯 쌓은 것으로 대개 규모가 작다. 포곡식은 성내에 계곡을 포함하는 형식으로, 계곡과 주변의 산세지형을 이용해 성벽을 둘렀다. 때문에 수원이 풍부하고 활동공간이 넓다.그러면 도내의 산성은 어떨까. 40여 년간 외롭게 산성을 연구해 온 전영래 선생에 의하면 삼국시대에 축성된 산성이 100여개, 전체적으로 135개로 어림한다. 전 선생은 고대산성 81곳을 실측하고 연구한 '전북 고대산성 조사보고서'를 펴내기도 했다.전주지역으로 범위를 좁혀보면 남고산성과 동고산성, 황방산성 등이 남아있다. 사적 294호로 지정된 남고산성은 고덕산 서북록의 골짜기를 둘러싼 포곡형 석성이다. 전주천을 사이에 두고 동쪽의 기린봉과 승암산으로 이어지는 동고산성과 더불어 전주의 남쪽을 방어하는 관문이랄 수 있다. 산성둘레는 2950m로 조선후기까지 장졸들이 지켰다. 황방산성은 소규모 석성으로 거의 파괴되고 흔적만 남아 있다.동고산성은 900년에 견훤이 전주를 중심으로 후백제를 세울 때 왕궁터였음이 발굴조사 결과 드러났다. 현존하는 후백제의 유일한 유적이다. 전주시는 동고산성을 국가사적지로 지정받는 한편 100억 원을 들여 복원키로 했다. 전주 한옥마을과 연계한다면 좋은 역사문화 콘텐츠로 각광받을 듯 싶다.

  • 문화재·학술
  • 조상진
  • 2009.07.31 23:02

[오목대] 덕진실내수영장 - 백성일

예전에는 실내수영장이 없어 냇가나 저수지 등지에서 멱 감았다.멱 감다란 말은 충청도 사투리로 목욕탕이 아닌 냇물에서 물장구치며 목욕하는 것을 말한다.물안경이나 수영팬티 그리고 귀마개 등 장비도 없이 마냥 물속으로 뛰어 들었던 것.여름 방학 때는 시골 아이들은 쑥으로 귀 막고 옷을 홀딱 벗어 던진채 그냥 퐁당 물속으로 들어가 멱 감았다.자연히 얼굴과 온 몸은 새까맣게 탔다.전주에는 40년 전쯤 덕진 연못 인근에 야외 풀장이 개설됐다.시내버스 타고 전주 인근 봉동 마그네다리, 신리 각시바위, 한벽당 등을 가지 않아도 되었다.풀장에서 노는 것은 흐르는 냇가에서 수영하는 것과 맛이 달랐다.햇볕에서 수영하다 지치면 비치 파라솔 밑에서 쉬기도 했지만 소독약이 너무 진해 오래할 수 없었다.그러나 새로운 시설이라서 아이들한테는 최고 인기였다.요즘 철거키로 한 전주 덕진실내수영장을 놓고 말이 많다.1991년 전국체전을 개최하기 위해 현대식 실내수영장이 개설돼 전주시민들이 그간 많이 이용해왔다.덕진실내수영장은 소유주가 전북도여서 그간 도 체육회가 위탁관리해왔다.이용자는 전주시민이지만 관리는 도가 해왔던 것.그러나 지난해 11월 보일러실에 화재가 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시설 노후로 안전관리에 비상이 걸렸다.도는 연간 관리비로 4억 이상이 들어가고 안전에 이상이 있다며 올 9월 추경에 5억4천만원을 확보해서 연내에 철거키로 했다.그러나 덕진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정동영의원이 덕진수영장을 다시 열겠다고 공약으로 내건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동호인과 장애인 등 그간 이용 시민들이 도를 수없이 찾아가 재개장을 요구했지만 도 당국의 폐쇄 방침에는 변함이 없었다.그러던 것이 정동영의원의 말 한마디에 개장 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했다.도의원과 전 현직 시의원들까지 거들고 나섰다.한마디로 골목대장 위세가 가관이다.지금 당장 덕진수영장은 부분보수하는데 12억 전면 보수하는데는 35억원이 들어가야 재개장 할 수 있다.여기에 또다른 형평성 논란이 있다.임실군이 2004년 수영장을 폐쇄한 이후 도에 보수비로 25억원을 요청해 놓았기 때문이다.아무튼 폐쇄하려던 덕진수영장을 도가 재개장할 움직임을 보이자 데모에 참가했던 시민들 조차 김완주지사 태도에 어리둥절하고 있다./백성일 수석논설위원

  • 자치·의회
  • 백성일
  • 2009.07.2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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