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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국무총리 - 조상진

요즘도 그러는지 모르겠으나, 예전 관선 때는 시장·군수로 발령이 나면 그 지역 유지들을 찾아 뵙는 게 관례였다. 지역의 큰 어른이나 유지들에게 앞으로 "잘 좀 봐달라"고 신고 겸 협조를 부탁하러 가는 것이다.당시 초임 고창군수를 따라 공음면 진의종 전 총리댁을 방문한 적이 있다. 뜨거운 여름, 해질녘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진 총리는 농장에 딸린 집 마당의 대나무 평상에 앉아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얼굴에 이미 술 기운이 올라 불그스름한 게 석양빛과 잘 어울렸다. 덕담 몇마디가 오가는 것을 보고 농장 구경을 하기 위해 나왔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총리를 지낸 분이 참 소탈하구나"하는 거였다.그곳이 지금 경관농업을 하는 학원농장이다. 아들 진영호씨가 귀향해 청보리밭축제를 열어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이후 전북출신 총리 두 분을 인터뷰할 기회를 가졌다. 황인성 총리와 고건 총리다. 황 총리는 김영삼정부 첫 총리로'주부 총리론'을 펴며 조용히 국정을 챙겼다. 고 총리는 김영삼정부와 노무현정부에서 각각 총리를 지냈다. 김종필 총리와 함께 두번 총리를 지낸 '유(唯)2'한 분이나 실세는 아니었다.그리고 사석에서 이해찬 총리를 만난 적이 있다. 이 총리는 분권형 총리답게 명쾌하고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총리가 나보다 더 똑똑하다"며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다.건국 이후 대한민국 총리는 39명이다. 이번에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친 정운찬 총리 내정자가 40번째다. 총리의 평균 재임기간은 1년 4개월로 짧은 편이다.이 가운데 전북출신은 5명이다. 호남권 총리 5명이 모두 전북에서 나왔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김상협 총리가 전북출신으론 첫 총리였다. 김 총리는"막힌 것은 뚫고 굽은 것은 펴겠다"고 의욕을 보였으나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이어 진의종- 황인성- 고건- 한덕수로 이어졌다. 한 총리는 한때 서울 출신으로 행세해 전북과는 소원한 감이 없지 않았다.흔히 총리를 '1인지하 만인지상'이라 표현한다. 비상시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고 국무위원 임명 제청권·해임건의권을 갖는다. 하지만 책임만 있을 뿐 실제 권한은 별로 없는 게 대통령제하의 총리다. 청문회에서 많은 흠이 드러난 정 내정자의 앞길이 험난해 보인다./조상진 논설위원

  • 정치일반
  • 조상진
  • 2009.09.25 23:02

[오목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 장세균

전국 공무원 노조, 민주공무원 노조, 법원 공무원 노조의 3개의 공무원 노조가 민노총 가입을 결정했다. 다분히 정치 지향적이라는 평을 받는 민노총에의 가입은 앞으로 공무원 노조의 강성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것은 일반인의 상식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헌법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 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규정하여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원칙을 밝히고 있다.또 국가 공무원법은 공무원이 정당, 기타 정치단체의 결성에 관여하거나 가입할 수 없고 공무원이 선거에서 특정정당 또는 특정인의 지지나 반대를 위한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리고 정치적 중립이란 어떤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공무원은 당파성(黨派性)을 떠나 공평성(公平性)을 가지고 임해야 함을 말한다. 이는 행정에 대한 정치권력의 개입을 방지함으로써 행정의 능률성 공정성 전문성을 보장받을려는 것이다.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므로 특정 정당에 대한 봉사자가 될수없으며 공익(公益)의 수호자로써 업무를 수행하여 행정의 공평성, 공정성을 확보해야 하는것이 공무원이다. 그러나 모든 국가들이 공무원의 엄정한 정치중립만을 표방하지는 않는다.예를 든다면 정치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영국은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지나치게 제한하지 않고 있다. 공무원을 3등분 하여 하급직(下級職)에게는 의원 입후보 및 가타 정치활동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으며 행정계급, 집행계급의 공무원에게만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다.서독이나 프랑스, 이태리등 대부분의 서구나라들은 공무원 신분을 가지고 입후보할 수 있고 당선되면 당연히 사임해야 하지만 의원직을 사퇴하면 복직(復職)도 가능하다.그러나 미국은 우리처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엄격히 요구하고 있다. 공무원은 선거자금을 제공해서는 안되며 선거운동, 공무원 조합의 정치활동을 금지한다. 우리의 경우도, 사회의 중추적 기능을 하고 있는 공무원 집단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 사회의 안전장치가 되어야 할 것이다./장세균 논설위원

  • 정치일반
  • 장세균
  • 2009.09.24 23:02

[오목대] 4人3色 - 백성일

전주 완주 통합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됐다. 지난 17년간 간헐적으로 통합 논의가 있어왔지만 이번처럼 찬반이 확실하게 엇갈린 적은 없다. 통합 찬성측은 십시일반으로 경비까지 마련해가며 순수민간단체를 구성해 서명운동에 나서는 등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적극성을 띠고 있다. 이에반해 완주군 관내에서는 관변단체가 주축이 된 가운데 갑자기 급조된 반대단체들이 주민 반대 홍보에 열 올리고 있다.이번 통합 논의는 내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델리키트한 면이 적지 않다. 김제 완주가 지역구인 최규성의원은 주민 의견을 따르겠다면서 반대 입장이다. 무소속 정동영과 신건의원은 찬성 입장인 반면 민주당 장세환의원은 통합에 찬성하면서도 신중론을 보였다. 장의원은 전주 완주가 통합돼 광역시로 승격될 경우 전북도는 인구와 재원면에서 심각한 공동화 현상을 겪을 것을 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국회의원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입장을 견지할 수 있다. 지역구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의무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 정치인이라면 문제를 크게 넓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자신을 뽑아준 지역 주민을 볼모로 잡아서도 안되지만 본인 자신이 오히려 볼모로 잡혀서도 안된다. 자기 나름대로 뚜렷한 소신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너무 눈치를 살피고 있다.물론 주민들의 뜻도 존중해야 겠지만 그 뜻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다. 정확한 여론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지금 완주군 여론은 주민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흘려서 형성된 여론이기 때문이다. 우선 정상적인 여론이 형성될 수 있도록 자유스런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급하다. 찬성론자들은 완주군 관내에서 마치 독립운동을 벌이는 것처럼 숨어서 활동하고 있다. 최근 완주군 상관면에서 찬성측 서명을 받다가 서류를 빼앗기고 폭행을 당한 일까지 발생했다.이쯤되면 사태가 잘못가고 있다.자칫 통합도 되기 전에 엉뚱한 일이 더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은 정치권이 자신의 유불리를 떠나 적극 나서야 할 때다. 전주 완주에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정동영과 신건 그리고 장세환의원은 전주시민의 70~80% 이상이 찬성을 보임에 따라 통합 문제에 더 나서야 한다. 설령 정·신의원은 민주당 복당에 걸림돌이 되더라도 온몸을 던질 때다./백성일 수석논설위원

  • 자치·의회
  • 백성일
  • 2009.09.23 23:02

[오목대] 차 없는 날 - 박인환

근대 이전 우리의 도로는 사람을 위해 존재했다. 수레도 사람이 끄는 교통수단이었다. 이를 뒤집은 것이 일제 강점기 때의 신작로(新作路)였다. 신작로는 글자 그대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게 새로 낸 길을 말한다.일제는 식민지 수탈을 목적으로 신작로와 철도를 개설했다. 도내의 경우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군산항을 통해 반출하기 위해 1907년 개설한 전주∼군산간 신작로가 최초다. 새로 뚫린 신작로에는 가끔씩 트럭만 다닐 정도 였다. 아이들은 흙먼지를 뒤집어 쓰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트럭의 꽁무니를 쫓을 정도로 자동차가 신기할 때였다.하지만 이제는 사람이 자동차를 피해 다녀야 하는 시절이 됐다. 우리의 경우 압축성장을 통해 자동차 숫자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자동차가 도로를 지배하는 힘은 커졌다. 지난해말 국내 자동차 대수는 1679만대로 국민 2.95명당 1대 꼴이다. 월 평균 10만2000여대, 매일 3300여대씩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말 우리나라 도로 총 연장은 10만4236㎞다. 한줄로 이으면 지구 두바퀴반을 도는 거리다. 그런데도 출퇴근 시간대나 명절이면 넘쳐나는 자동차들로 도심 도로나 고속도로는 꽉 막히기 일쑤다.정부가 아무리 도로를 확장해도 차량증가를 따를 수 없다보니 교통혼잡은 이제 일상이 돼버렸다. 또 다른 문제가 환경오염이다. 대도시 대기오염의 주원인은 자동차 배출가스 때문이다. 도심 열섬현상 원인도 자동차에서 내뿜는 열기가 큰 몫을 차지한다.오늘(22일)이 '세계 차 없는 날'이다. 1년에 하루라도 자동차 이용을 자제해 대기오염, 소음 , 교통혼잡등을 줄여보자는 취지에서 시행되고 있다. 1997년 프랑스 항구도시 라로쉐에서 시작됐고, 우리나라도 2001년 부터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 행사 기간에는 일산화탄소가 20% 저감되는등 효과가 나타났다고 한다.올해 도내에서는 전주, 익산, 군산등 3개시에서 각종 행사가 열린다. 세계는 지금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줄이기와의 전쟁중이다. 이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의 하나는 자동차 운행을 줄이는 길이다. 오늘 행사가 지나치게 빠름과 안락만을 추구하는 자동차 의존적 생활에서 벗어나는 의미있는 행동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박인환 주필

  • 사회일반
  • 박인환
  • 2009.09.22 23:02

[오목대] 매맞는 남편 - 장세균

우리사회에 매맞는 남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폭력을 휘두르는쪽은 아직도 대부분 남편들이지만 적지않는 남편들이 구타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매맞는 남편은 당연히 공처가(恐妻家)라고 불리워 질것이다. 매맞는 남편이 아내를 무서워할 것은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심했던 우리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사건이었으나 이젠 여권의 신장으로 폭력을 휘드루는 아내들도 등장하는 모양이다. 경찰청에서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아내에 의한 남편 학대사례가 2005년에 무려 276건에서 2006년 299건, 2007년 345건, 지난해 353건으로서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남편들이 여자보다 힘이 없어서 맞기보다는 가정파탄을 막으려 아내의 폭력을 참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이미 매맞는 남편에게 가장(家長)이라는 왕관은 허울좋은 명칭일뿐이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부인을 무서워하는 공처가가 전혀 없었던것은 아니었다.   중국 청나라때의 소설인 "팔동천(八同天)"이라는 책에는 작가가 부인을 두려워하는것에는 3가지가 있다고 적었다. 첫째는 세파로써 부인의 세력을 두려워 하는것이고 두 번째는 이치로써 이치를 두려워하는 하는것이고 세 번째는 정파로써 정을 두려워 하는것이다.이를 더 자세히 설명하면 첫 번째인 "세파"에는 다시 세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부인의 가문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그리고 두 번째는 부인의 부유함을 두려워 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부인이 사나웁기 때문이다. 다시 이파에도 세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부인의 현숙(賢淑)함에 눌리는것, 두번째는 부인의 재주에 굴복하는것, 세번째는 부인의 힘든점을 헤아리는 것이고, 정파의 세가지는 첫째는 부인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기 때문에 눌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부인이 나이 어리기 때문에 받아주어야만 하는, 세 번째는 부인의 교태(嬌態) 때문에 어쩔수 없이 눌려지내는 것이다.   실제로 공처가란 세파와 이파에 해당되는 남편들이다. 오늘의 매맞는 남편들은 세파와 이파의 어느쪽인가./장세균 논설위원

  • 사회일반
  • 장세균
  • 2009.09.21 23:02

[오목대] 석전(石顚) 박한영 - 조상진

만해 한용운은 기개가 높은데다 '님의 침묵'등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도 사형으로 모시는 석전(石顚) 박한영(1870-1948)에게 혼난 적이 있다.만해가 '불교유신론'을 썼을 때다. 만해는 이 책에서 승려들의 가취(嫁娶·장가듦)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청정 비구였던 석전이 불같이 노해 만해에게 이렇게 쏘아 부쳤다."지옥이란 것이 있다면 너같은 놈이 들어 가야 할 곳이다. 승려가취론 때문에 조선 중 다 망쳐 놓은 놈이니…"이에 만해는 "제가 뭐 조선불교 망쳐놓고 싶어서 그랬습니까. 세상은 달라지는데 불교는 조금도 달라지는게 없으니 그런거죠"라고 어물어물 대답하고 말았다.미당 서정주는 석전을 '나의 피와 살을 데워준 스승'이라며 따랐다. 방황하던 미당을 데려다 옆에 두고 가르치는 등 앞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1934년 봄, 미당은 서울 개운사 별채 툇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공장 굴뚝에서 연기를 뿜는듯 하는구먼" 이같은 소리에 깜짝 놀라 뒤돌아 보니, 어느 순간 석전이 나타나 있었다. 석전은 "육당(최남선)은 서른세살까지 피우던 담배를 역사 공부하려고 끊었다. (너는) 공부하려고 왔다며, 그까짓 것 하나 끊지 못하냐"며 안타까운듯 지나쳤다. 크게 꾸지람한 것은 아니지만 미당은 담배를 떨어뜨리고 멍하니 땅만 보았다. 미당은 훗날 "스님의 가슴속에서 울리는 소리에 쓰라린 눈물이 고여 있음을 깨달았다"고 술회했다.완주군 초포면에서 태어나 위봉사에서 출가한 석전은 일반에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불교계나 지성계에서 그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광범위하다.당대 석학으로 이름난 육당은 "스님의 해박하심은 내외전을 궤뚫어 감히 내가 미칠 바가 못된다"고 하였다. 위당 정인보 역시 "사농공상(士農工商) 무엇에 관한 것이든 화제가 고갈될 줄 몰랐다"고 감탄했다.이들 말고도 이광수 안재홍 홍명희 이병기 김동리 신석정 조지훈 등도 그의 영향권에 있었다.한국 근대 불교의 주춧돌을 놓은 대강백이자 선승인 석전 대종사를 추모하는 학술세미나가 20일 고창 선운사에서 열린다. 그의 열반 60주기를 맞아 유묵과 육필원고 등도 전시된다. 그의 큰 뜻이 새롭게 조명되는 계기였으면 한다./조상진 논설위원

  • 문화일반
  • 조상진
  • 2009.09.18 23:02

[오목대] 성형왕국 - 장세균

요즈음 여자 연예인들의 약 90%는 성형외과의 신세를 진것 같은 느낌이다. 남자 연예인들 역시도 여자보다는 못해도 꽃미남을 만들기 위한 성형투쟁은 계속 증가할것이다. 마치 단칼 승부를 내려는듯이 외모에만 너무 집착하고 있다.쌍커풀 수술은 이젠 성형의 범주에도 못들고 콧대 높이는 성형수술이 너무 보편화 되어있다. 그러나 여자의 경우 얼굴 한복판의 콧대를 서양식으로 고치다보니 여자들 인상이 너무 강하게 보이고 어딘지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는 조물주의 뜻을 어긴 댓가이다.인간 특히 여자가 아름답게 보일려는 욕구는 본능이라고 할수 있겠지만 오로지 얼굴에만 집착하다보면 성형 중독증에 결릴 확률이 높은 것이다. 셩형은 마치 헌집 뜯어 고치듯이 한쪽을 보수하면 다른 한쪽이 허술하게 보이고 또 그것을 손보고 나면 옆의것이 문제가 있듯 쌍커플 수술하고 나면 코가 낮게 보이고 코를 높게하고 보니 광대뼈가 돌출한 것 같고 광대뼈를 손보면 턱이 문제라는 식이다.인간이 성형을 통해 결함을 고치려는 욕구는 언제나 있어왔다. 고대 인도의 [베다 성전(聖典)]을 보면 행실이 나쁜 아내나 딸을 둔 남편이나 아버지는 코를 벨수 있는 권리를 율법으로부터 보장받았다. 그래서 없어져 버린 코를 성형해주는 수술이 일찍부터 발달해 있었다.우리나라에도 고대부터 성형습속이 있었다. 마한(馬韓) 사람들의 머리팍이 납작하고 평평하였다는데 이는 어렸을때부터 머리팍이 납작하도록 돌로 눌러 놓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어느 지방에서는 19세기 까지도 이마와 뒤꼭지를 널빤지로 죄어 납작하게 하는 습속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반드시 예뻐지기 위해 성형을 하는것이 아니라 미워지기 위해 성형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중국의 강요에 의해 공녀(貢女)를 차출하는 채홍사(採紅使)가 날뛰면 여염(閭閻)집의 여자들은 괴화탕(槐花湯)이라는 독즙으로 얼굴을 씻었다는데 이로 인해 콧날이 비뚤어지고 언청이처럼 입술이 처들어지는 증상이 나타나 선발에서 제외되었다. 중국의 공녀로 가는것이 죽기보다 싫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요즈음 여자들의 성형 열기는 정상을 넘은 것 같다./장세균 논설위원

  • 문화일반
  • 장세균
  • 2009.09.17 23:02

[오목대] 脫 전북 - 백성일

전북 인구가 1966년에 252만명으로 가장 많았다. 통상 300만 시대라고 했다.전주도 전국 7대 도시안에 들 정도였다. 농경사회에서 전북은 인구가 꽤 많은 편이었다. 산업화가 불어 닥치면서 서울로 울산으로 경기도로 먹고 살기 위해 그리운 고향산천을 떠났다. 이농인구가 급증했다. 지금 농촌은 그 당시에 비해 인구가 절반 가량 줄었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전북은 젊은층은 없고 노인들만 많아졌다.인구 180만명대로 전락했다.최근 전북애향운동본부가 조사한 한 여론조사 결과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응답자 절반 가량이 기회가 되면 전북을 떠나고 싶다고 응답했다. 이유는 문화와 일자리 그리고 교육 문제 때문에 전북을 떠나고 싶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1차적인 책임은 산업화를 주도한 박정희정권에 있다. 18년간이나 장기 집권을 하면서 국가 개발축을 수도권과 경부축에 중점을 뒀기 때문이다.다음으로는 그간 전북에서 국회의원을 해먹은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지역이 낙후되거나 말거나 자신들만 잘 먹고 잘 살아온 것 밖에 안된다. 지난 김대중 노무현정권 때가 실로 좋은 지역 발전의 기회였다. 그 당시 전북 출신들이 고위직에 많이 진출했다. 과거 정권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자리에 앉았다. 대통령 자리만 빼고 거의 힘 있는 자리에 고르게 포진했다.그러나 그 당시 높은 벼슬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본인들만 호의호식했지 지역 일은 뒷전이었다.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다. 그 당시 지역을 발전시켜 일할 자리를 많이 만들어 놓았더라면 젊은이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이 밖에도 민선시절 도지사 시장 군수와 광역 기초의원을 지낸 사람들의 잘못도 있다. 이 사람들이 사리사욕을 벗어 던지고 지역발전을 위해 몸을 불살랐다면 오늘날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뒤늦게서야 기업을 유치한다고 난리법석을 떨고 있다. 결과적으로 주어진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애향운동본부도 왜 이같은 여론조사를 지금 이 시점에서 했는지 의문이 간다. 이 같은 여론조사는 자신들의 얼굴에 침 뱉는 것이나 다름 없어 차라리 발표하지 않고 정책자료로 삼는 것이 더 나았다. 신문에 대서특필 되었다고 무작정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백성일 수석논설위원

  • 사회일반
  • 백성일
  • 2009.09.16 23:02

[오목대] 우측(右側)보행 - 박인환

최근 등산객이 부쩍 늘면서 유명산의 비좁은 둥산로에서는 가볍게 넘기기 힘든 일이 자주 발생한다. 등산객의 발길을 엇갈리게 하는 동선(動線)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오른손잡이가 대부분이다. 오른손으로 등산로의 난간등을 잡고 오르내리는 것이 편하다보니 본의아니게 우측통행을 하게 된다. 평소 습관대로 좌측통행을 하는 등산객들과 부딪칠 수 밖에 없다. 상식을 벗어난 행동과 현실 사이에 빚어지는 부조화인 셈이다.이같은 모습은 좁은 산길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접하는 일이다. 우리는 어려서 부터 배운대로 '사람은 좌측통행, 차량은 우측통행'이란 공식을 거의 세뇌 수준으로 받아들여 왔다. 공중도덕의 기본이며 핵심으로 여겨왔다.원칙과 현실 사이 괴리의 대표적 사례가 횡단보도 통행이다. 횡단보도에서는 우측보행이 원칙이다.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달려오는 차량과 보행자간의 거리가 그만큼 멀어 안전하기 때문이다. 생활 주변의 회전문이나 지하철 개찰구등도 우측통행이다.우리의 좌측통행 연원은 일제 식민시대와 연결된다. 1921년 조선총독부는 일본식 교통체계에 맞춰 좌측통행으로 바꿨다. 그에 앞서 1905년 제정된 대한제국 규정은 우측보행이었다. 일본의 좌측통행은 왼쪽에 칼을 찬 사무라이들이 마주오는 상대와 칼이 부딪치지 않도록 왼쪽으로 걷던 습관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그럴듯하다. 해방후인 1946년 미군정은 차량통행을 우측으로 변경했으나 좌측보행은 그대로 두었다. 이것이 그대로 이어져 88년동안 원칙으로 굳어진 것이다.정부는 현행 좌측통행 보행문화를 내년 7월부터 우측통행 원칙으로 전환하는 개선방안을 지난 4월 발표했다. 이에 앞서 10월 부터는 서울 전체 지하철 역사 안에서 우측보행이 시행된다고 한다. 좌측보행에 맞게 설치된 시설물도 우측보행에 맞게 정비한다.80여년된 관습을 하루 아침에 바꾸는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보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은 도로의 보행방식은 차량과 마주보고 통행하는게 안전하기 때문에 그대로 좌측보행이 지켜진다. 자칫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우려되는 대목이다. 아무튼 철저한 준비와 계도로 혼란을 최소화하고 사고도 줄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민의 안전이 가장 우선돼야 하기 때문이다./박인환 주필

  • 문화일반
  • 박인환
  • 2009.09.15 23:02

[오목대] 병역(兵役)기피 - 장세균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검증이 본격화 되면서 병역문제가 도마위에 올라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5명중, 1명은 병역면제를 받았다는 조사도 있다. 병역 면제자들이 너무 많이 국회에 진출해 있다. 이중에는 징집 당시 신체 허약자들도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그 후 몸이 건강해져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정치인이 되었다는 것이 납득이 가지않는 부분이다.아무튼 병역을 신성한 의무로 생각하기 보다는 어쩔수 없이 감내해야하는 부역(負役)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너무도 많다. 이런 의식은 조선사회의 잘못된 전통과도 연관된다. 고대 사회에서는 귀족이 전사계급(戰士階級)이었기 때문에 귀족들의 군복무는 당연지사(當然之事)였다.서양에는 아직도 이런 전통이 남아있어 지배층 자녀들의 군복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우리나라도 삼국시대(三國時代)까지는 지배층들이 군복무를 솔선수범(率先垂範)했다. 그러나 고려(高麗) 사회가 차츰 안정화되면서 고려의 지배층들은 무신(武臣) 성향을 버리고 유학을 배우는 문신(文臣)성향으로 바뀌었다. 이것이 숭문천무(崇文賤武)이다. 문(文)을 높이보고 무(武)를 천시하는 풍조이다.조선 시대에는 16살 이상 61세까지는 군복무의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소위 양반들은 일반 평민들이 져야 하는 군역(軍役), 즉 군복무를 싫어했다. 군복무 안하는 것을 양반의 특권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조선 초기의 인구 구성에서 양반이 10%미만이고 노비 등 천민이 40%에서 50%였던 점을 감안하면 전체 인구의 절반이 군역을 맡은셈이다.군역을 피하는 합법적인 방법도 있었다. 포(布) 2필을 바치면 군역에서 제외될수 있었고 양인(良人), 즉 평민의 신분을 포기하고 양반 가문의 노비가 되면 군역을 피할 수가 있었다. 또 각 지역에 있는 향교(鄕校)에 입학하면 군역에서 빠졌다.향교에서 유학(儒學)을 배우기 때문에 유학을 숭상하는 조선사회의 배려였다. 그러나 김안로(金安老)는 향교는 군역을 피하는 사람들의 소굴이라고까지 개탄한바있다. 또 승려(僧侶)가 되면 군역에서 제외가 되었다. 병역 의무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 절대 필요하다./장세균 논설위원

  • 사회일반
  • 장세균
  • 2009.09.14 23:02

[오목대] 창암과 추사 - 조상진

창암(蒼巖) 이삼만은 1840년 9월 제주도 귀양길에 오른 추사(秋史) 김정희와 전주에서 만난다. 당시 창암은 71세의 노인이었고, 추사는 55세였다. 누가 먼저 청했는지 오르나 이 자리에는 당대 명필로 이름을 날리던 추사를 보기 위해 여러 사람이 몰렸다.창암이 쓴 글씨를 본 추사는 그 자리에서 주저없이 내뱉는다. "노인장께선 지방에서 글씨로 밥은 먹겠습니다." 그러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버렸다. 지방에서 글씨로 밥은 먹겠다? 이 말 속에는 "지방에서 행세깨나 하는 것 같으나 촌티를 벗지 못했다"는 의미가 숨어있지 않는가.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한 창암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이 글씨를 잘 아는지 모르지만 조선 붓의 헤지는 멋과 조선 종이의 스미는 맛은 잘 모르는 것 같더라" (유홍준의 완당평전)이와 다른 얘기도 있다. 추사가 전라감영에 들렸을 때 창암을 만나게 해 줄 것을 관찰사에게 청했다. 이에 관찰사는 창암을 만나도록 주선했다. 아무리 유배길이라 해도 오늘날 차관급인 병조및 형조참판을 지낸 인물이니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창암은 추사를 만나 밤을 새우며 서법과 서체를 논했고, 추사가 예를 다해 창암을 대하며 신필에 감탄하자 창암의 이름이 더욱 높아졌다는 것이다.그리고 어느덧 8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1849년 1월, 유배에서 풀려난 추사는 귀경길에 전주에 들려 창암을 찾았다. 그러나 창암은 작고한지 3년이 지난 뒤였다.그날 밤 창암의 제자를 만난 추사는 이런 말을 들었다."글씨는 한(漢)·위(魏)나라의 고전을 원전으로 삼아야지, 진(晉)나라 왕희지를 받들면 글씨가 형태만 예뻐지기 쉽다" 창암이 추사가 떠난 뒤 입버릇처럼 했다는 말이다. 이 글은 강암서예관에 소장돼 있다.이 말을 들은 추사는 깨달은 바 있어'명필창암완산이공삼만지묘(名筆蒼巖完山李公三晩之墓)'라는 묘비를 쓴다. 그리고 "어질고 위대한 서가가 누워있으니, 후생들아 감히 이 무덤을 훼손하지 말지어다"는 묘문을 남긴다. 뒤늦게 창암의 진가를 인정한 것이다.마침 창암을 기리는 휘호대회가 그의 출생지 정읍에서 열릴 예정이다. 평생 이 지역에 살며 조선 글씨의 진수를 보여준 명필의 예술혼이 새롭게 조명되었으면 한다./조상진 논설위원

  • 문화재·학술
  • 조상진
  • 2009.09.11 23:02

[오목대] 조중변계조약(朝中邊界條約) - 장세균

지난 9월4일은 과거 일본과 중국 청나라와 불법적으로 맺었던 간도협약이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국제법에 의하면 불법적으로 맺은 국제간의 협약이라 하드래도 100년동안에 쌍방중 어느쪽도 이의를 제기치 않으면 유효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한다.이번에 우리 정부는 우리 외교권이 빼앗긴 상태에서 일본과 청(淸)나라간에 맺은 간도협약은 무효라고 주장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중국과의 외교 마찰을 의식해서인지 침묵으로 지나쳤다. 또 100년이라는 시효는 국제법상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시효가 아니기에 별문제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간도는 북간도 서간도 남간도를 총칭하는 말로써 지금의 중국 동북 삼성(三省)을 지칭한다고 보면 된다. 간도는 청나라에서도 자기 조상들의 발원지로 보았으며 우리 조선 역시도 국력이 약한 상태에서도 간도를 지키기에 혼신(渾身)의 힘을 다한 흔적이 있다. 백두산정계비가 바로 그것이다.1712년 숙종때에 백두산위에 청나라와 조선사이의 경계를 나타내는 경계비를 세웠다. 경계비에 쓰여진 '서위압록(西爲鴨綠), 동위토문(東爲土門)'이라는 글귀에서 '토문'을 중국은 두만강으로 해석하고 우리는 송화강으로 해석하는 쪽이다. 그러나 을사보호조약으로 주권이 빼긴 상태에서 일본은 만주철도 부설권을 얻는 조건으로 간도를 청나라에 귀속시켜버렸다.간도 반환문제는 북한과 남한의 일치된 주장이 전제되어야 할것이나 북한은 이미 중국과 "조중변계조약"이라는 것을 맺어 간도는 이미 중국영토임을 추인해준 꼴이다.북한과 중국은 1962년 10월12일 "조중변계조약"을 맺었다는데 그 조약에 따르면 "백두산 천지의 경계선은 백두산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마루 서남단에 위에 있는 2520고지와 2664고지 사이의 안부(鞍部)의 중심을 기점으로 동북방향 직선으로 천지를 가로질러 대안(대안)의 산마루인 2628고지와 2680고지 사이의 안부 중심까지이다. 그리고 그 서북부는 중국에 속하고 동남부는 속한다"로 되어있다고 한다 . 그래서 천지(天池)의 55%는 북한에 45%는 중국에 속한다. 아무튼 "조중변계조약"은 백두산 천지의 절반을 양보하고 간도땅도 결국 포기하는 것이었다./장세균 논설위원

  • 정치일반
  • 장세균
  • 2009.09.10 23:02

[오목대] 10㎝ 킬힐 - 백성일

TV에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가 나오면 난리법석이다.깜찍하게 생긴 미끈한 외모와 잘 빠진 몸매 때문일 것이다.S라인과 늘씬한 각선미가 한층 돋보여 팬들을 사로 잡는다.요즘은 각선미를 부각시키는 핫 팬츠나 미니스커트가 유행이다.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서늘해 졌지만 여성들의 각선미를 향한 열정은 식지 않고 더 뜨거워지고 있다.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여성의 본능이 스커트 길이와 하이힐 높이를 더 짧게 하고 높게 했다.치마 속에 감춰진 여성의 다리가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은 1세기도 채 안되었다.제1차세계대전이 끝난 후에야 종아리를 겨우 드러낼 정도로 치마 길이가 올라왔고 그 마저도 일부 보수적인 남성들의 비난을 받아야 했다.그러나 1960년 여름 메리 퀸트라는 영국 디자이너에 의해 미니스커트가 첫선을 보였다.우리나라에서는 1967년 가수 윤복희가 처음 입었다고 알려져 있다.여성들이 각선미를 뽐내고 싶을 때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하이힐을 신는다.지금은 하이힐이 무색할 정도로 굽이 더 높은 킬힐이 유행한다.보기에도 거북하고 민망스러울 정도로 10㎝가 넘는 킬힐을 신고 다닌다.마치 곡예 걸음이나 모델들의 불안한 워킹을 보는 것 같아 아슬아슬하다.14세기 프랑스 궁전에는 화장실이 없었다고 한다.하이힐은 여기저기 널려 있는 오물을 밟지 않으려고 신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더불어 키가 작았던 루이 14세가 신으면서 유행했다고 한다.여성의 역사를 펴낸 후크스는 하이힐이 17세기 초에 스페인서 유행했다고 한다.스페인 몰인의 여자들이 신고 다닌 높은 목제의 뒷굽이 달린 구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당시 여자들이 흙탕물을 피하기 위해 굽 높은 신발을 신고 다녔다고 한다.독일의 풍속사가 에루아르트도 '풍속의 역사'에서 프랑스에서 여자들이 마른 땅과 진 땅을 가려 밟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굽 높은 신발이 고안됐다고 했다.지금은 하이힐이 날씬한 각선미 이외에 볼록한 엉덩이,가는 허리,튀어 나온 가슴의 S라인 몸매를 돋보이게 해준다하여 여성의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그러나 하이힐이 발과 척추 건강에 치명적이다.엄지발가락의 관절이 바깥쪽으로 툭 튀어 나온 '무지외반증'과 발바닥에 염증이 생기는 '족저근막염'의 원인이 될 수 있다./백성일 수석논설위원

  • 여성·생활
  • 백성일
  • 2009.09.09 23:02

[오목대] '브랜드 네이밍' - 박인환

'이름'이란 단어는 '이르다(謂)'나 '말하다'는 뜻을 가진 옛말 '닐다'에서 출발해 '닐홈― 일홈― 이름'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사람의 경우 주로 성(姓)에 붙은 개인명만을 이름이라고 하지만 넓게는 성을 포함해 사람이나 사물을 부르거나 가리키는 모든 명칭을 지칭한다.이름은 누구에게나 중요하지만 우리 조상들의 경우 더욱 각별했다. 유가(儒家)에서 이르는'이름이 곧 몸이요, 몸이 곧 이름'이라는 '명체불리(名體不離)'도 이름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문중마다 항렬을 정해놓고 그 항렬에 따라 이름을 지어야 했으며, 이름을 잘 짓기 위해 작명소나 철학관을 찾는 관습은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다.이름은 사람에게만 중요한게 아니다. 기업은 창업때나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때 이른바 '브랜드 네이밍(Brand naming)'이라는 '이름짓기'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어떤 이름을 쓰느냐에 따라 소비자들의 사랑을 오래 받느냐, 아니면 소비자들의 기억속에 미처 자리잡기도 전에 사라지느냐는 명운(命運)이 갈리기 때문이다. 생명이 긴 제품 브랜드는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기업에게 엄청난 부가가치를 안겨준다.브랜드 네이밍은 제품의 차별화 뿐 아니라 홍보의 전제조건으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홍보를 전제로 해야 하는 네이밍에서는 읽기 쉽고, 듣기 쉽고, 말하기 쉽고, 외우기 쉬어야 한다는 것을 고려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특히 최근 국제화 시대를 맞이 이같은 원칙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세계 최장의 방조제를 낀 새만금사업은 이같은 추세와 달리 정작 투자 주체인 외국인들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네이밍 실패사례로 꼽힌다. '새만금'의 어원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만경평야의 '만(萬)',김제평야의 '김(金)'자를 따 새 옥토를 조성한다는 의미로 새만금이라는 명칭이 채택됐다. 그러나 이런 의미와 달리 영문발음이 외국인들이 부르기 어렵고 어색하다는 사실이 흠으로 지적되고 있다. 글로벌시대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작명(作名)이었던 셈이다. 이같은 지적에 따라 새만금 별칭(닉네임) 공모가 11일 까지 진행되고 있다. 대상에게는 상금 1000만원등 상금도 적잖다. 사업 성격도 제대로 부각되면서 외국인들이 부르기 쉽고 친근한 새로운 새만금의 닉네임 탄생을 기대해 본다./박인환 주필

  • 문화일반
  • 박인환
  • 2009.09.08 23:02

[오목대] 우리 고대사 - 장세균

18세기에 발견됐다가 사라져버린 신라 문무왕릉비 조각이 200여년만에 수도 검침원에 의해 주택가 수돗가에서 재발견됐다는 뉴스는 흥미롭다. 이는 1940년대에 이집트의 어느 사막 동굴에서 "도마 복음서"를 발견한 어느 양치기 소년을 연상케도 한다.1796년에 문무왕릉의 비석 조각들이 경주사람에 의해 발견됐다가 행방불명이 된 후 1961년에는 비석의 하단부만 발견되고 이번에는 상단부가 발견됨으로써 문무왕비는 사실상 다 찾은셈이라고 한다. 그 비문에는 문무왕의 조상 즉, 신라 김씨의 가계(家系)에 대한 것이 적혀있다고 한다.현재 한국의 270개 성씨중에 김씨가 약 4분의 1이며, 김씨는 다시 120개 본관으로 나누어지지만 대부분 신라, 김알지(金閼智)계와 가야(伽倻)의 김수로왕계에서 분파(分派)됐다고 한다.중국사서(史書)에서는 김알지보다 200년 앞서서 중국 한(漢)나라에 김씨 성을 가진 제후가 있었는데 바로"김일제"라는 사람인데 그는 원래 흉노족 왕, 휴도의 왕자이었으나 한나라에 정복된 후 한무제(漢武帝)의 눈에 들어 제후에 임명되고 김(金)씨라는 성(姓)을 하사받은 것이다. 김일제의 후손들이 번창하다가 나중에 왕망(王莽)의 반란에 가담한 죄로 멸문지화(滅門之禍)를 피해 한반도로 피신해와 신라의 지배세력이 되었는데 김일제의 7대손, "김성한"이 신라김씨의 시조 "김알지"이며 김일제의 동생 "김윤"의 5대손 "김탕"이 가야, 김수로왕이 되었다는 것이 학계 일부의 주장이다.박혁거세에 대한 새로운 주장도 있다. 박혁거세가 나라를 세운곳은 "서라벌"인데 이곳은 경주가 서울이라는 것이다. 또 서울에서 초기 신라의 박(朴)씨 집단이 청주와 보은을 거쳐 상주(尙州)로 왔다가 경주(慶州)월성으로 남하했다고 한다.또 박씨 집단은 북방계의 오환족(烏丸族)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는데 박혁거세의 "거세(居世)"는 오환족이 사용했던 '거수(居帥)"와 똑같이 부족장(部族長)의 칭호라고 한다. 몽고과학원의 베수미야바하르 교수는 박혁거세를 흉노족(匈奴族)으로 보았다고 한다. 이상은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의 저자인 김성호박사의 주장이기도 하다. 우리고대사를 다시보자/장세균 논설위원

  • 문화일반
  • 황주연
  • 2009.09.07 23:02

[오목대] 사회복지사 - 조상진

"나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개인 가족 집단 조직 지역사회 전체사회와 함께 한다. 나는 언제나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저들의 인권과 권익을 지키며, 사회의 불의와 부정을 거부하고, 개인이익보다 공공이익을 앞세운다.… "(사회복지사 선서문)우리 주변에는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선천적 장애를 가졌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한 사람, 생계가 어렵거나 중한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그들이다. 또 가정폭력 피해자, 알코올 중독자, 부랑인·노숙자, 독거노인 등도 따뜻한 손길을 필요로 한다.이들이 사회복귀를 위해 맨 처음 만나는 사람이 사회복지사다. 이들은 클라이언트(대상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며 사회안전망의 최전선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일선 자치단체나 복지단체가 설립·운영하는 사회복지관, 복지시설 등이 주된 일터다.이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자격요건이 없었다. 그러다 1970년 제정된 사회복지사업법에 의해 '사회복지사업종사자 자격증'제도가 처음 도입되었다. 1982년에는 이름이 사회복지사(社會福祉士·social worker)로 변경되었다. 클라이언트를 상담·대변·옹호하는 성격이 변호사의 사(士)와 유사하다는 의견에 따른 것이다.2003년부터는 국가시험이 실시돼 1급의 경우 이를 통과해야 자격증이 주어진다. 하지만 2급의 경우 대학 관련학과나 사이버 대학, 평생교육원 등에서 일정 과목만 이수하면 자격을 주고 있다.사회복지사는 한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복지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나는데다 경제불황과 실업난이 겹쳐 취업에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같은 결과, 지난 6월말 현재 등록된 사회복지사는 32만185명에 이른다. 이들중 사회복지 전담공무원은 1만 명에 불과하다. 또 6만여 명이 사회복지관과 각종 복지시설에 종사하고 있다. 공급과잉으로 20%만 현직에서 활동하는 셈이다.그러다 보니 고강도 업무와 저임금, 신분불안 등 이들이 처한 현실은 팍팍하기 이를데 없다. 서서히'번 아웃(burn out)'되고 있는 것이다. 의욕을 갖고 출발했지만 결국 소진됐다는 뜻이다.7일은 사회복지의 날이다. 이들이 선서대로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에서 일할 수 있는'복지'가 마련되었으면 한다./조상진 논설위원

  • 사회일반
  • 조상진
  • 2009.09.04 23:02

[오목대] 명성황후 - 장세균

1895년, 일본인들에 의해 살해된 명성황후 시해 사건 전모와 시해사건에 관련된 범인들의 후손들이 110년 만에 한국을 찾아 사죄하는 모습을 담은 특집 뉴스가 지난달 24일 밤, 아사히 TV를 통해 일본 전역에 방송되었다고 한다. 일본 자민당 60년 집권의 종식과 더불어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방송은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외교 관계에 있는 이웃나라 왕비를 무참히 난자(亂刺) 살해한 일본은 세계 역사에도 없는 만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국력이 쇠약미미(衰弱微微)했던 조선은 그런 치욕을 당하고 말았다. 1894년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전리품으로 중국의 요동반도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극동(極東)에서 남하정책을 펴던 러시아가 일본의 팽창을 두려워하여 독일과 프랑스를 끌어들여 요동반도를 청나라에 다시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이것을 "삼국(三國)간섭"이라고 한다.일본은 할수없이 국제압력에 굴복, 요동반도를 중국에 반환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나라의 후원을 기대할수 없게 되자 고종(高宗)이 의지할 곳은 러시아뿐이라고 판단했다. 이것을 "인아거일책(引我拒日策)"즉 아라사를 가까이 하고 일본을 멀리한다는 것인데 여기에서 아라사란 러시아를 말한다. 박정양, 이범진, 이완용, 등을 등용하여 친러내각을 출범시켰다.일제는 명치유신(明治維新)이후 30년간 조선의 정복을 주장하는 정한론(征韓論)을 펴왔고 조선에서 러시아에게 주도권을 뺏길것을 염려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와 한판 전쟁을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친(親) 러시아 중심인물이라고 생각된 민비를 제거하기로만 일본은 결정하였다.민비 시해에 참가한 병력은 일본인 30명, 경찰 10여명, 조선군 훈련대, 일본수비대로 구성되었다. 1895년 8월 20일 동쪽 곤녕전에는 고종과 왕세자가 있었고 서쪽 옥호루(玉壺樓)에는 명성황후가 있었는데 이때 궁녀 3명과 함께 시해되었다. 이때 흉도(胸徒)들은 명성황후의 시체를 숲속으로 운반한 뒤 장작더미위에 올려놓고 불을 질렀다고 한다.이런 처참한 광경은 미국 공사관의 보고와 영국 공사관의 보고에 적시되어있다. 다시한번 국력이 약한 민족의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장세균 논설위원

  • 문화일반
  • 장세균
  • 2009.09.03 23:02

[오목대] 행복유전자 - 백성일

미국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 행복해진다'고 했다. 웃음은 유효기간이 없는 최고의 보약이다. 많이 웃으면 몸 속의 650개 신체근육 가운데 300개 가까이가 움직인다.웃음은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행복호르몬을 솟게 하는 샘이다. 스트레스는 라틴어의 Strictus라는 말에서 나왔는데 '팽팽한, 좁은'이라는 뜻이다. 사고의 틀이 팽팽하고 좁아지니까 막히는 것이다. 이 때 웃음은 긴장을 풀어주고 좁은 길을 뻥 뚫어준다.웃음이 건강에 효과가 있다는 실증적 연구는 많다. 2005년 미 메릴랜드대 연구진은 혈관 연관성을 파헤쳤다.연구진이 피험자에게 코미디 영화를 보여준 뒤 혈류량을 측정하자 평균 2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혈류량이 늘면 심혈관이 튼튼해진다.웃음이 만병통치약에 가깝다는 얘기다. 반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영화를 본 피험자는 혈류량이 35% 가량 줄었다.긍정적 사고와 웃음이 주는 의학적 효능도 많이 알려져 있다. 웃지 않는 사람들이 암에 잘 걸린다는 이야기도 어쩌면 암세포로부터 우리 몸을 방어하는 인체 면역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비유일 것이다. 현대의 각박한 사회 구조속에 웃음과 긍정의 마음보다 근심과 걱정의 바다속에 잠겨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실제로 걱정이 지나치면 일찍 죽을 위험성이 증가한다고 알려져 있다.그간 우리 사회는 웃음을 천시해왔다.뭐,우리 뿐이었겠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을 고상한 장르로 희극을 천한 장르로 구분해서 설명했다. 우리 사회에는 오랫동안 가부장제와 군사문화로 인한 엄숙주의가 팽배했다. 괜히 웃는 사람은 '실 없는 사람'이고 '속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곤했다.하지만 요즘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유머 감각이 좋은 사람을 능력자로 꼽는다.우리나라 성인들은 하루 평균 열번,한 번에 8.6초를 웃는다고 한다. 하루 90초 ,팔십 평생에 달랑 30일만 웃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근심 걱정은 하루 3시간 6분. 일평생 10년 이상 고민만 하다 죽는 셈이다. 일소일소 일노일로(一笑一少 一怒一老)라 했다. 웃으면 젊어지고 화내면 늙는다는 말이다. 억지로라도 웃으면 인상이 바꿔진다. 얼굴 모습이 바꿔지면 운명이 달라진다. 웃을 일 없어도 일부러 웃으면 어떨까./백성일 수석논설위원

  • 사회일반
  • 백성일
  • 2009.09.02 23:02

[오목대] 빛(光) 공해 - 박인환

1897년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면서 인류는 빛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자연의 빛으로 살아오던 인간들에게 인공의 빛은 축복이었다. 조명 기술의 발전은 사람들에게 생활 전 영역에서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했다.그러나 인구증가와 도시화에 따라 늘어나기 시작한 인공조명은 밤하늘 별을 헤아리는 낭만을 깨뜨리게 했다. 인류 건강과 자연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인공조명이 지구에서 가장 빠르게 번지는 신(新) 공해로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명'빛(光) 공해'를 물, 공기에 이어'제 3의 공해'로 지적했다.현재 인공조명은 1970년대에 비해 3배나 증가했다. 이제 전세계 인구 3분의 2는 거주지에서 별을 관찰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국내 도시의 경우 맑은 날 볼 수 있는 별의 숫자는 고작 10개 미만, 인공조명이 없을 때 관측가능한 별의 숫자가 2000개 정도인데 비하면 사실상 별은 사라진 셈이다.생태계 교란도 심각하다. 미국 코네티킷대 연구팀 조사 결과 대도시 거주 여성들은 시골 거주 여성들에 비해 유방암 발병률이 최대 78%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야간 불빛이 인체 숙면 호르몬이자 항암능력을 갖춘 멜라토닌의 분비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대도시 첨탑과 고층빌딩 불빛은 야간이동을 하는 철새들의 이동경로를 바꿔 놓는다. 회유성 어종인 연어와 청어가 북태평양의 인공불빛 때문에 이동을 하지 않는다. 밤낮없이 울어대는 대도시 매미 또한 같은 이유다. 야간 조명이 비치는 논은 벼 수확량이 감소하고, 불빛에 민감한 들깨의 경우는 아예 결실도 없이 성장만 지속한다.최근 빛 공해가 심각한 환경문제로 대두되면서 '빛 공해 방지법'을 제정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도시의 조도를 낮추고 가로등을 비롯 조명 불빛이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 규제 등을 담고 있다. 이탈리아는 국가적으로 빛 공해 추방운동을 벌이고, 매년 10월4일을 '빛 공해 인식의 날'로 정할 정도다.우리나라도'빛 공해 방지법'제정을 위한 공청회가 지난주 국회에서 열렸다. 빛 공해는 빛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않아 생긴 공해다. 에너지 절약과 환경 생태계 보호 차원에서도 법 제정이 필요하다. 약간의 어두움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불편이다./박인환 주필

  • 환경
  • 박인환
  • 2009.09.01 23:02

[오목대] 남자뇌 여자뇌 - 장세균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이자 철학자인 시몬드 보부아르가 발표한 "제2의 성(性)"이라는 책은 지금도 여성 해방운동의 교과서로 불리운다. 이 책속에서 보부아르는 유명한 말을 했는데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키워지는것이다". "성경(聖經)의 이념도 남성의 여성 장악에 적지 않게 기여했다.그녀의 이런 선언은 당시의 사회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그녀의 반 전통적인 의식은 장 폴사르트르라는 철학자와 계약결혼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결혼을 시작하여 처음에는 2년간의 시한부 계약결혼을 했으나 80년 4월에 샤르트르가 죽을때까지 계속했기 때문에 평생 계약결혼이 된 셈이다.보부아르의 주장의 골자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고 문화 사회적 영향에서 생겨난 결과라는 것이다. 그녀의 주장이 높이 평가받았던 이유는 맹목적 남성비판을 넘어서 처음으로 생물학적 ,정신 분석학적, 신학, 철학, 사회학 등 폭넓은 이론을 바탕으로 남녀의 사회적 조건과 차별의 원인을 명쾌하게 분석하여 여성 권리 주장의 당위성을 밝혔다는데 있다고 한다.그녀의 주장은 종교계와 남성에겐 도전이었고 여성에겐 자아(自我)를 일깨우는 촉매제였다는 주장도 많다."제2의 성"은 출간 1주일만에 2만부가 팔렸다고 하며 바티칸 교황청은 이책을 금서목록(禁書目錄)에 올렸고, 유명한 실존주의 작가인 알베르 카뮈는 "프랑스의 수컷을 조롱했다"는 내용의 글까지 발표하게 만들었다고 한다.그러나 오늘날의 뇌 과학은 보부아르의 주장에 수정을 가하게 만들고 있다. 지금껏 남녀의 차이는 보부아르 주장과도 비슷하게 사회적 학습에 의해 달라진다는것 이 정설처럼 되어있지만 남녀차이를 만드는 비밀은 바로 뇌에 있다는 것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는것이다.일반적으로 여자의 뇌와 남자의 뇌의 크기는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뇌의 크기가 지능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지라도 기능면에서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오늘의 뇌 과학은 남녀의 차이 즉 기능의 차이를 말하는것일뿐 남녀의 능력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조물주는 남녀에게 각각의 다른 기능을 통한 다른 능력을 부여한 것이다./장세균 논설위원

  • 사회일반
  • 장세균
  • 2009.08.3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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