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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자신의 업적이나 공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내재돼 있다. 양의 동서와 시간의 고금을 막론하고 이름을 널리 떨친 사람치고 묘비명을 남기지 않은 이가 드물다. 묘비명은 대부분 사자의 혼이 담겨있다.로큰롤의 제왕으로 일컬어졌던 엘비스 프레슬리가 죽었을 때, 또 위대한 록밴드로 인정받는 비틀즈의 존 레넌이 죽었을 때 당시 언론은 King Is Dead와 Music Is Dead라고 썼다.재치가 넘치는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이다.반년전 타개한 김종필 전 총리도 스스로 상당히 긴 비문을 지었는데 한마디로 사무사(思無邪)이다.사악함이 없는 생각이라는 의미인데 과연 실제 JP의 삶이 사무사 였는지는 많은 논란이 있을법 하다. 익히 알려진대로 중국 최초의 여황제였던 측천무후는 세상을 떠날 무렵 자신이 이룩한 업적이 너무나 많으므로 비석 하나에는 다 기록할 수 없을 테니 그저 아무 것도 새기지 말고 비워 두라는 유언을 남겼다. 측천무후의 무자비(無字碑)는 실로 방자하기 그지없다. 오랜 역사속에서 어떤 이는 업적을 돌에 새기고, 또 어떤 이는 쇳물을 녹여 온갖 미사여구로 담아냈으나 그 누구도 변화무쌍한 세월과 민심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잊혀지거나 부정적 이미지로 각인되기 일쑤였다. 며칠전 470조원에 달하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 막판 의결과정에서 당초 정부 예산안에도 없었으나 신규로 증액된 쪽지예산이 무려 1000억원이 넘었다고 한다. 소위 실세 정치인으로 꼽히는 문희상 국회의장, 이해찬 민주당 대표,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 김관영 미래당 원내대표, 안상수 예결위원장, 장제원 한국당 예결위 간사, 조정식 민주당 예결위 간사 등의 이름이 도하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뚜렷한 명분만 있다면 국회의원이 지역과 국가에 도움이 되는 예산을 확보한 것은 충분히 칭찬받을 만 하다. 그런데 내후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별다른 실적도 없는 국회의원들까지 모두 나서서 쪽지예산을 확보했다며 자랑하는 모습은 볼쌍스럽다. 심지어 일부 시장 군수는 비슷한 인구 규모를 가진 곳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예산을 확보하고서도 반성문을 쓰기는 커녕, 자랑하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일부 지방의원도 국회 쪽지예산을 그대로 답습해 뽐내고 있다. 이는 마치 자신의 묘비명을 단단한 돌에 끌로 새기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현상이 이럴진대 지금의 위정자들이 앞으로 어떤 비문을 스스로 지어서 후세에 남길지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올해도 도민들의 삶은 경제난으로 윤택해졌다기 보다는 팍팍했다. 지난해 장미대선 때 문재인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해 대통령으로 당선시켜준 도민들은 지역발전에 기대가 컸으나 결과가 미흡했다고 생각한다. 지난 이명박 박근혜 보수정권 9년동안 전북이 철저하게 소외된터라 문 정부에 큰 기대를 걸었으나역시나 내지는 아니올씨다로 끝났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 말이 딱 들어 맞았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와 GM군산공장 폐쇄로 직격탄을 맞은 전북은 정부에서 전북경제를 살려낼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연말이 닥쳐도 피부에 닿는 뾰족한 지원책이 없다. 그간 2개 기업의 비중과 협력사가 많아 군산경제를 좌지우지했지만 지금은 반토막 났다. 사실상 군산조선소의 내년도 재개는 물건너갔고 GM군산자동차공장 문제도 오리무중이다. 도의회가 전북예산 7조원시대를 열었다고 자랑하지만 도민들이 느끼는 체감지수는 차갑고 낮다. 생활형편이 풀리고 나아져야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송하진 지사가 사람과 돈이 모이는 전북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의욕 만큼 성과는 올리지 못했다. 송 지사는 도민들의 기대치와 요구사항에 제대로 부응 못해 못내 아쉬워 하는 마음이다. 10명의 국회의원들도 4개정파로 나눠져 말로만 협치 운운하지 실제로는 자신들 21대 총선 준비하기에 급급하다 보니까 도정에 큰 도움을 못줬다. 국회의원들이 송지사 앞에서는 도와준척 하지만 돌아서면 오히려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중앙정치 무대에서 큰소리 못치고 모기소리나 내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허약한 존재에 세비가 아깝다는 비난도 뒤따랐다. 도내 국회의원들이 당을 떠나 지혜를 모으고 협치를 해야 그나마 전북몫을 챙겨올 수 있지만 그렇게 안돌아가고 있다. 방안퉁수격인 전북 정치권의 소지역이기주의가 지역발전을 발목잡았다. 힘을 모아도 존재감이 약한데 서로 질시해 정치력만 약화됐다. 그간 학연을 중심으로 한 끼리끼리 형태로 도내 리더그룹이 형성되다 보니까 뭉치고 단합해야할 때 구심점이 없어 힘이 모아지지 않았다. 이 같은 구조가 지속되는한 전북발전은 요원할 뿐이다.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타지로 나가는 판에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업체를 반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김승수 전주시장이 기업유치한다고 산토끼 잡으려고 뛰어 다닌 것도 좋지만 투자하겠다고 찾아온 업체를 내팽개치는 것은 납득이 안간다는 것. (주)자광이 전주 대한방직 부지에 143층 높이의 익스트림 타워를 건립하겠다고 했지만 전주시가 일방적인 반대여론만을 의식한 나머지 거절했다. 책임론 때문에 거절한 것인지 아니면 더 크게 공익을 확보하려고 한 것인지 석연치 않다. 이런 와중에 15년간이나 전북애향운동본부를 이끌어왔던 임병찬 총재가 3년 더 하겠다는 말이 나돌자 논란이 일고 있다. 도민들이 그분의 공과를 잘 알고 있어 오는 13일 대의원 총회 개최 이전에 2선으로 물러 나겠다고 발표하는 게 도민들에게 마지막 도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여러해 전 인터넷상에서 눈길을 모았던 사진이 있다. 삭발한 할아버지와 역시 머리털이 없는 아기. 아기를 안고 활짝 웃고 있는 할아버지는 미국 41대 대통령인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이고 아기는 백혈병을 앓고 있는 두 살배기 패트릭, 부시대통령의 경호원 아들이다. 이 사진은 패트릭의 친구들(Patrics Pal)이란 사이트를 통해 알려졌는데 사이트에는 이 사진 말고도 부시대통령과 함께 20여명 삭발한 사람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 또 있었다. 더 큰 화제가 되었던 것은 부시대통령과 이들 20여명이 함께 삭발한 이유가 알려지면서다. 부시 대통령이 삭발한 것은 2013년, 그의 나이 89세때다. 파킨슨병을 앓았던 그는 이미 휠체어에 의지해야 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 퇴임 이후 봉사활동에 헌신하면서 모범적인 삶을 살아온 그는 자선단체를 통해 도서관과 장학단체 지원 등 폭넓은 봉사활동을 펼쳤는데, 특히 백혈병 어린이 환자돕기에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고 한다. 그는 젊은 시절, 딸 로빈을 백혈병으로 잃었다. 그의 삭발은 자신을 경호하는 백악관 비밀경호실 직원들의 집단 삭발에 뜻을 함께 한다는 의지의 표시였다. 직원들은 동료의 아들인 패트릭이 백혈병 치료로 머리카락을 잃게 되자 아이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함께 삭발을 하고 모금에 나섰다. 패트릭의 친구들이 패트릭을 돕기 위한 모금 홈페이지였다. 직원들의 동행 삭발을 알게 된 부시 역시 삭발로 뜻을 더했다. 전직 대통령의 훈훈한 인간애에 미국 국민들은 뜨거운 존경과 박수를 보냈다. 지난달 30일 세상을 떠난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의 삶이 조명되고 있다. 그의 생애 94년. 세계사에 미친 궤적과 정치인으로 살아온 길에는 공과가 모두 존재하지만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면모로 퇴임 이후 미국 국민들로부터 더 큰 존경을 받았던 부시대통령의 삶의 면면을 보면서 우리의 대통령들을 돌아보게 된다. 지난 5일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국장으로 치러졌다. 그가 떠난 자리에 추모와 애도의 고별사가 넘쳐난다. 그 중 하나. 부시의 삶은 공공에 봉사하는 것이 고귀하고 즐거운 일이며 놀라운 여정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보낸 애도사가 눈길을 모은다. 공공에 봉사하고 헌신한 부시 대통령의 삶에 대한 경외일터다. 우리에게도 오늘을 함께 살고 있는 전직대통령들이 있다. 존경이나 품격은 그만두고 부끄럽지 않은 전직대통령과 동시대를 함께 한다는 일. 우리에게는 왜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싶다.
완주군은 로컬푸드의 수도다. 국내 로컬푸드 운동의 시발지이며, 로컬푸드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곳이 바로 완주군이다. 2012년 4월 첫 개설된 완주 용진농협 직판장은 한국 로컬푸드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완주군의 로컬푸드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올들어서만 정부 부처와 자치단체 등 190여개 기관에서 5700명이 찾았단다. 완주 로컬푸드의 열풍은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형인 셈이다. 완주군에서 처음 로컬푸드 운동이 시작됐을 때만해도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완주군 로컬푸드는 2008년 8월 임정엽 당시 군수가농업농촌발전 약속 프로젝트발표를 통해 처음 언급됐다. 농가의 소득안정과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여러 정책 중 유통혁신 시책으로 로컬푸드 추진 계획을 내놓았다. 이후 로컬사업단이 지역자활센터에 꾸려져 간헐적으로 직거래장터를 열면서 기반을 넓혔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식품으로건강 밥상 꾸러미를 만들어 배달하는 꾸러미 사업을 통해 소비자의 신뢰도 쌓았다. 실제 첫 직판장이 차려질 때까지 4년이 걸렸다. 완주군에서 로컬푸드가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지역적으로 배후에 전주라는 큰 소비처가 있다는 게 강점이었다. 안전한 먹을거리를 찾는 소비자들의 욕구, 지역 농산물에 대한 애정도 한 몫 거들었다. 특히 정책결정권자의 의지를 빼놓을 수 없다. 다품목 소량 생산구조인 지역농업의 특성을 꿰뚫고, 다수의 소농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 로컬푸드에 주목한 것이다. 물론 완주에서 로컬푸드 운동이 본격화되기는 했지만 비슷한 형태의 농산물직거래 시장은 오래 전부터 있었으며, 일본의 경우 이미 90년대 로컬푸드와 같은 지산지소 운동이 펼쳐졌다. 아이디어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지역의 특성과 농가의 사정을 살펴 이를 완주군 실정에 맞게 계속 업그레이드 시키며 정착시켰다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민선 7기 들어 자치단체장마다 여러 새로운 정책들을 개발해서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 눈에 확 띄는 정책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어떤 정책이든 진정으로 지역민의 삶의 질을 앞세울 때 감동을 줄 수 있다. 완주 로컬푸드가 그 점에서 교과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05년부터 전북과 함께 해오면서 한국 프로축구사에 새로운 전설이 된 최강희 전북현대 감독. 그의 닉네임은 봉동이장이다. 실제 지난 2012년 2월 25일 전주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 하프타임 때 완주군수로부터 명예 봉동이장 위촉패를 받았다. 이날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첫 데뷔전을 치른 최 감독은 완주군 이장단 전원과 봉동읍민 등 500여명을 경기에 초청, 답례했다. 최 감독이 봉동이장으로 불리운 것은 전북현대의 클럽하우스가 완주 봉동읍 율소리에 있는데다 그의 소박한 성품과 평소 편안하고 부담없는 언행에서 비롯됐다. 지난 2005년 만년 중하위팀인 전북현대 지휘봉을 잡은 최 감독은 부임 첫 해 FA컵을 거머쥐었고 2006년에는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당시 중국 원정경기에서 전북현대가 극적인 승리를 거두자 중국 언론에선 최 감독을 강희대제라 칭했다. 하지만 전북의 열성팬들은 그를 봉동이장이라 불렀고 지난 2011년 12월 전북현대가 K리그 정상에 올랐을 때 팬들이 건넨 밀짚모자와 고무장화를 착용하면서 봉동이장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그 해 최 감독은 전북일보가 선정한 올해의 전북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최 감독은 이후 전주에서 주요 경기가 열릴 때마다 완주지역 이장을 초청, 관전하도록 배려했다. 지난 14년동안 전북현대를 이끌어 온 최 감독은 프로축구사의 역사를 새로 써왔다. 지난 3일 KEB하나은행 K리그 시상식 2018에서 K리그1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역대 최다 신기록인 6회 수상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또 이른바 닥치고 공격이라는 축구철학으로 지난 2009년과 2011년 2013년 2015년 2017년 2018년 등 모두 6차례 K리그 우승과 지난 2006년과 2016년 2번의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정상을 이끌었다. 지난 4월에는 감독 통산 211번째 승리를 거두며 역대 K리그 감독 최다승 기록을 고쳐 썼다. 지난 2005년 감독 데뷔 이후 13년 만에, 210승을 거둔 김정남 전 감독의 기록을 경신했다. 올 시즌까지 전북현대 한 팀에서 통산 229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오는 14일 중국으로 떠나는 최강희 감독은 이제 한국프로축구의 전설로 남았다. 중국 슈퍼리그의 톈진 취안젠 사령탑에 오르는 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중원에서 그의 새로운 역사가 쓰이길 소망한다.
흔히 미국의 케네디 가문을 최고의 로열 패밀리로 꼽는다.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는 말처럼 오늘날에도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막강한 그물망 인맥의 한 중심에는 실로 어마어마한 혼맥지도가 있다. 재벌가를 중심으로 짜여진 로열 패밀리에서는 전현직 국회의원이나 장차관 정도는 우습게 발견할 수 있다. 고관현직을 지내지는 못했지만 독립운동을 하거나 사회운동을 하면서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 한 집안 역시 일반인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부지기수로 많다. 씨족의 개념의 약해지고 핵가족화 현상이 급격하게 진행된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옛날 얘기같지만 지금도 로열 패밀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전북의 경우 대표적인 로열 패밀리를 꼽는다면 단연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집안과 인촌 김성수 집안을 꼽을 수 있다. 인촌 김성수는 동아일보, 경성방직, 보성전문(=고려대)을 세웠고 친동생인 수당 김연수는 삼양사를 설립했다. 김연수의 아들이 김상협 전 총리이고, 그 손자가 바로 김한 JB금융지주 회장이다. 그런데 엊그제 당연히 3연임이 예상됐던 김한 JB 금융지주 회장이 전격 뜻을 접었다. 그 배경이야 어찌됐든 전북의 대표적 로얄 패밀리의 일원인 김한 회장의 결단이 새삼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김한 회장은 JB 금융지주 주식은 거의 없지만 삼양사가 약 7% 가량의 JB금융지주 주식을 가지고 있기에 회장인 그의 입김은 실로 막강하다. 사실 JB금융지주는 명실공히 전북 최대의 주식회사다. 50조에 가까운 자산, 3500여명의 직원, 전북은행광주은행JB우리캐피탈JB자산운용PBC 등 거대한 그룹을 만든 이가 김한 회장이다. 해마다 전북에 100억원의 기부금을 내는 곳은 JB금융지주가 유일하다. 전북은행 행장때 덩치가 훨씬 큰 광주은행을 인수하고, 전북에 본사를 둔 JB금융지주를 만들어낸 김한 회장의 공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런데 멋지게 용퇴한다지만 김한 회장이 앞으로 해야할 일이 하나 더 남아있다.창사 50주년이 될때까지 단 한번도 전북은행 출신 행장이 없었기에, 이제는 지역 인물을 후임자로 발탁하는데 힘을 보태야 한다. 전북은행장 뿐 아니라 JB금융그룹 회장에는 지역에 대한 기반과 애정이 있는이가 발탁돼야 한다. 물론, 후임 회장은 사외이사 5명, 비상임이사 2명 등 모두 7명으로 구성되는 후보추천 위원회에서 결정한다지만, 로열 패밀리의 후광을 등에 업고서 지역사회에 헌신해 온 김한 회장은 지금은 뒤로 빠질때가 아니다. 후임자를 잘 세워야 한다.
지역에 노인은 많아도 어른이 없다보니까 무슨 일이 생길때마다 여론형성이 제대로 안된다. 사실 좁은 지역사회에서 어른 역할 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공사 구분을 잘 하면서 처신을 올바르게 해온 사람이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베품과 나눔을 잘 해온 덕 있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칭할 수 있다. 물질적 기준은 아니더라도 정신적으로 덕망을 쌓은 사람이면 당연히 추앙 받아야 할 것이다. 그간 전북에다가 뿌리를 박고 살아오면서 흠 없이 살아오기란 쉽지 않다. 물질의 유혹과 명예욕에 빠질 수 있어 자신의 이름 석자를 온전하게 지켜온 사람은 그리 많치 않다. 누구나 자신 앞에 큰 감 놓고 싶지 멀리하기가 쉽지 않다. 예전보다 물질위주의 가치관과 개인주의가 팽배하면서 지역사회 인심이 더 팍팍해졌다. 산업화가 미진했을 때만해도 순수함과 낭만이 있었다. 존경받는 어른이 있어 방풍림과 사회 안전핀 역할을 했다. 지역에 무슨 큰 일이 생겨도 알게 모르게 어른들이 나서서 해결하는 소방수 역할을 했다. 서로간에 콩 한조각이라도 나눠 먹을려는 맘들이 있었다. 비교적 형 동생간에 의리도 지켜졌다. 막상 끼니 끓일 것이 없어도 째째하게 놀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냥 허세만 부린 것은 아니었다. 때로 의리가 지켜지지 않고 뒤틀렸을 때는 OK목장의 결투처럼 정의의 주먹을 날렸다. 비겁하게 뒤통수 치거나 야비하게 해코지 같은 짓은 안했다. 그 때 그 시절은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먹고사는 것도 큰 차이가 나질 않았다. 지금은 어떠한가. 인격과 품격을 떠나서 돈격이 따로 있을 정도로 돈에 맥 못추는 사회가 돼버렸다. 돈에 웃고 우는 사회가 됐다. 지금은 오직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 잘 살면 된다는 식이다. 경쟁이 치열하면서 그 좋았던 인심은 오 간데 없고 남 잘되는 꼴 못보는 몹쓸병이 생겼다. 돈이 돌지 않고 먹고 살기가 각박해지면서 진정과 투서가 많아졌다. 너무 건강성이 악화됐다. 어른이나 아들이 구분되지 않고 목소리 큰 사람이 판치는 세상이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고향을 떠난다. 전주한옥마을이 관광객들로 북적였지만 서서히 그 기운이 빠져가는 모습이다.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아 부를 창출할 수 있는 곳이 마땅하게 없기 때문이다. 파이를 키워 나갈려고 공동으로 노력은 않고 자신만 은근슬쩍 먹어 치우려다가 체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아직도 단체장 주변에서 아부하는 유지들이 많다. 또 복지부동형 공직자가 많다. 그간 전북사회를 이끌어왔던 나이든 세대들은 2선으로 빠지고 그들이 가졌던 경험과 지혜를 젊은층에게 줘서 전북사회를 역동성 있게 만들어나가도록 해야 한다. 세대교체가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다보니까 지역사회가 무기력하며 동력이 약화됐다. 이제는 누구나 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통섭의 시대로 세상이 변한 만큼 선배들이 어른으로 남아 존경 받으려면 후배들한테 기회를 줘야 한다. 새시대가 왔는데도 아직도 전북은 변화하지 않고 요지경속이다. 계속 이대로 갈 것인가.
술이 금지된 시대가 있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시대와 국가에 따라 금주가 이루어진 예가 적지 않지만 현대사에서는 미국의 금주법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금주법은 1919년 제정됐다. 이 법은 1933년까지 시행되었는데, 미국에서는 이 시기를 금주법시대라 통칭한다. 미국의회는 1919년 10월, 미국의 금주법에 관해 규정한 법률 볼스테드법을 통과시켰다. 하원 사법위원장이었던 앤드류 볼스테드 이름에서 따온 볼스테드법은 이 법에 의해 허용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조금이라도 독주를 제조하거나 팔거나 물물교환하거나 운송 수입 수출할 수 없으면 제공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이 법은 미국의 대부분 주에 확산되면서 종교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술을 제조하거나 소비하는 모든 행위가 강력하게 금지됐다. 사실 미국의 금주법은 제 1차 세계대전으로 부족해진 식량(곡물)의 전용을 방지하기 위해 추진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취지와 목표가 달라졌다. 당시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알코올중독 약물남용 도박중독 등의 사회적 문제를 금주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제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에 대한 반감도 추진 동력이 됐다. 독일은 당시 맥주산업을 주도하고 있었는데, 미국으로 건너온 독일 이민자 중에는 역시 양조업으로 경제적 부를 쌓은 층이 많아 이들을 견제할 방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어찌됐든 볼스테드법이 발효된 그 해부터 미국의 술 소비량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법이 폐지된 1933년 이후에도 그 상황이 한참동안 유지되었으니 법 제정의 취지는 달성한 셈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이어졌다. 술의 합법적 생산이 금지되면서 제한적으로 유통되던 술값이 급등하자 가짜술 제조가 성행하면서 결국 그 고통이 서민들의 몫으로 돌아온 것이다. 게다가 밀주 생산과 밀거래, 무허가 술집까지 성행하면서 주류사업 이익을 둘러싸고 마피아 갱스터 같은 도시지역 범죄조직이 성장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전설적인 마피아 알 카포네가 이름을 알린 것도 이때였다. 1929년 대공황을 겪으면서는 금주법으로 주세를 걷지 못한 각 주 정부들이 세수부족에 더 시달려야 했다. 결국 1932년 미국 대통령선거에 당선한 루스벨트는 이듬해 이 법을 폐지했다. 그러나 미국 전역에서 금주법이 온전히 철폐되기 까지는 그 후로도 30여년이 더 걸렸다. 음주로 인한 사회적 범죄가 심각해지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금주법이 필요해질지도 모르겠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우리 사회의 미투 운동, 페미니즘 열풍과 맞물려 사회적 신드롬을 만들고 있다. PD수첩 메인 작가였던 소설가 조남주씨가 지난 2016년 10월 출간한 82년생 김지영이 2년여 만에 누적 판매부수 100만부를 돌파했다. 지난 27일부로 종이책 82만부, 전자책 18만부가 팔렸다고 출판사에서 밝혔다. 우리 문단에서 밀리언셀러는 2007년 김훈의 칼의 노래, 2009년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이후 9년 만에 나왔다. 82년생 김지영은 페미니즘과 양성평등 이슈가 나올 때마다 거론됐고 국회에서 남녀고용평등법, 아이돌봄지원법 개정안 등 소위 김지영법을 입법하는 동력이 됐다. 자치단체에선 새로운 정책 홍보수단으로 ○○년생을 위한 정책 문구가 등장하기도 했다. 현재 프랑스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일본 등 16개국에 수출이 확정됐고 지난 5월 출간한 대만에서는 전자책 부문 1위에 올랐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김지영 역에 정유미씨, 김지영 남편 역에 공유씨가 확정됐고 내년 초 촬영에 들어간다. 82년생 김지영은 평범한 서른넷 전업주부인 김지영의 삶을 통해 여성이 학교와 직장, 고용시장에서 받는 성차별과 불평등, 육아를 둘러싼 문제점 등을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연결해 보여 주는 소설이다. 극적인 사건이나 드라마틱한 스토리도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여성 주인공을 통해 누구나 공감하는 여성의 삶을 과장없이 이야기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82년생 김지영은 출간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들이 폭력과 성차별에 눈뜨기 시작했고 여성 문제가 주요 정치적 의제가 되면서 금태섭 의원이 동료의원들에게 이 책 300부를 선물하면서 알려졌다. 여기에 고 노회찬 정의당 대표가 2017년 5월 청와대 오찬 회동때 문재인 대통령에게 82년생 김지영을 안아주십시오라며 이 책을 선물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지영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또 미투 운동의 단초가 된 서지현 검사가 성추행 피해를 폭로하면서 이 책을 언급했고 가수 아이린을 비롯 일부 여성연예인들이 단지 이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남성팬들로부터 비난과 악플에 시달리면서 여성층에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여성 구독자가 76%로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다. 앞으로의 세상은 82년생 김지영의 삶이 아닌,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야 하는 게 우리의 시대적 책무이다.
도시가스가 보급되기 전까지 연탄은 서민들의 핵심에너지였다. 매년 겨울이면 연탄 관련 뉴스가 신문 사회면을 달궜다. 연탄가스 중독사고는 요즘의 교통사고만큼이나 빈번했다. 일가족 참변 등 안타까운 사연을 담은 뉴스도 많았다. 연탄 사재기나 연탄 파동이 연례행사처럼 벌어져 서민들을 움츠리게 했다. 지금이야 연탄이 빈곤층의 에너지로 전락했지만 70년대까지만 해도 농촌에서는 부유층의 에너지였다. 대부분 농가에서는 나무 땔감을 연료로 사용했다. 겨울을 나기 위해 나무 땔감을 장만하는 게 농가의 대사였다. 농가들에게 연탄은 큰 선물이었다. 김장과 함께 월동준비 1,2호를 다퉜던 그런 연탄도 더 편리한 도시가스에게 밀려났다. 연탄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추억이지만, 지금도 겨울을 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연탄 이용자들도 많다. 전북에서 연탄을 쓰는 가구가 8000여 세대에 이른다. 올 연탄 값이 크게 올랐다고 한다. 연탄이 보편적 연료이던 시절이라면 핫이슈가 될 사안이다. 연탄 가격이 왜 올랐는지, 연탄 수급에 문제가 없는지, 서민 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분석하는 기사들이 줄줄이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연탄 한 장 가격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일 게다. 지난 23일부터 인상된 연탄 한 장 가격(공장도 가격)은 640원이다. 105원 올랐다. 소비자 가격은 900~1100원이다, 저소득층의 겨울나기가 그만큼 더 팍팍해진 셈이다. 엄밀히 따질 때 연탄은 사실 퇴출 대상이다. 아황산가스와 일산화탄소를 배출하고, 단위 열량당 온실가스도 많은 에너지여서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 정부도 연료 전환정책을 통해 연탄 대신 다른 연료를 사용하도록 지원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의 연탄조차 제대로 구입하지 못하는 에너지 빈곤층을 연탄으로부터 탈출시키기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정부 차원의 새만금에 대규모 태양광과 풍력발전을 추진하고, 수소차 산업을 일으키는 등의 에너지개발 정책도 중요하다. 그러나 당장 올 겨울을 어떻게 날 지 걱정하는 에너지 빈곤층을 살펴야 할 것이다.연탄 미담에 계속 의존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26일 의전비서관의 음주운전, 경호처 직원의 시민 폭행 등 최근 청와대 인사들의 잇따른 물의와 관련해 청와대 전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자성을 촉구했다. 임 실장은 지금 우리가 무엇보다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익숙함이라며 ~관성이 이끄는 데로 가면 긴장감은 풀어지고 상상력은 좁아질 것이다. 익숙함관성과는 단호하게 결별하시라고 당부했다.비서이자 국민을 섬기는 공복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국민께 폐가 되고 대통령께 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요즘 임종석 비서실장은 자주 눈에 띈다. 실세 비서실장이기에 한쪽에선 질시도 많이 받고있다.최근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됐던 비서실장의 선글라스 파동도 사실 오해를 받는 측면이 많아 보이지만 실세의 처신은 더욱 엄중해야 함을 일깨워준다.굳이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 뿐만이 아니다. 지역사회에서도 입줄에 오르는 참모들이 종종 있다. 꼭 20년전의 설화 사건이 떠오른다. 1998년 유종근 지사주재 회식자리에서 설화사건이 터졌다. 옛 전북도청 주변 고급 음식점에서 회식을 하던중 주성영 당시 전주지검 검사(훗날 국회의원 역임)가 자신을 말리던 박 모 지사 비서실장의 이마를 찍어 눈썹 주위가 6cm 가량 찢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결국 주 검사는 이 사건으로 인해 천안지청으로 전보되기도 했다. 당시 유종근 지사가 실세였기에 크게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지사나 비서실장 또한 구설수에 올랐다. 흥미로운 것은 주 검사가 도지사 비서실장의 이마를 까는데 이용한 도구가 당시 막 출시된 설화(雪花)라는 이름의 술병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관련자들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진짜 설화(舌禍)에 휩싸였다.오랜 세월이 흘렀으나 당시 설화 사건이나 최근 발생한 일련의 청와대 참모들의 일탈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간의 주목을 받는 사람일수록 더 겸손한 자세로 봉사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방선거가 치러진지 반년도 되지 않아서 요즘 일선 시군에서는 일부 참모들의 전횡이나 잘못된 보좌가 종종 입방아에 오른다고 한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낙마하거나 연임에 실패한 단체장들은 너나없이 사람을 잘못 쓴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다시 선거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면 모든게 다 보이게 돼있다.
전주는 도시팽창으로 외형상 다핵도시 같지만 한옥마을 하나에 의지하는 단핵도시나 다름 없다. 그간 전주시가 심혈을 기울여 성장동력으로 만들었던 한옥마을의 파급효과가 도시 전체로 고르게 퍼지지 못하고 현재는 그 동력마저 떨어진 상태다. 한때 붐비는 관광객으로 장사가 잘돼 가게 얻기가 힘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비싼 임대료 때문에 장사가 안돼 빈 가게가 속출하고 있다. 다른 도시나 마찬가지로 상가에서 파는 음식 등 먹거리가 특색이 없고 풍남문~전동성당~경기전~한옥마을로 이어지는 관광코스를 둘러 보는데 반나절이면 끝나 버리기 때문에 굳이 전주에서 잘 필요가 없다는 것. 한때 전주 갔다오면 자랑삼아 무조건 선물용으로 수제 초코파이를 사갔지만 지금은 잘 안사간다. 일부 숙박업소에서 성수기 때 비싼 숙박료를 받는 등 횡포를 부려 이미지가 나빠졌다. 이 때문에 잠자리를 전남 여수에 빼앗기면서 반토막 났다. 전주는 값싼 콩나물국밥이나 비빔밥 그리고 안주거리가 푸짐한 막걸리 정도나 먹고 스쳐 지나가는 경유관광지 밖에 안되고 있다. 숙박관광객들로 붐벼야 전주가 불야성을 이루면서 흥청거리고 돈을 쓰고 가는데 그렇지가 않다. 특히 전주 한옥마을이 지금 와서는 다른 곳과 차별이 안돼 다시 찾고 싶은 곳이 아니라는 것. 내국인들이 줄고 외국인들이 느는 모습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연간 1천만이 찾는 도시라고 자부심을 가졌지만 한옥마을을 차지한 외지인들이 건물을 비싸게 임대해줘 전주는 속빈강정꼴이 돼가고 있다. 문제는 전주에 볼거리와 체험형 관광지를 만들어 관광객들의 체류시간을 늘리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전주시 혼자만의 힘 갖고는 안되고 민자유치 방안이 적극 검토돼야 한다. ㈜자광에서 도청 옆 대한방직 자리에 143층 높이의 익스트림 타워를 건립하는 것은 전주 관광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 시중에는 먹튀논란에다가 온갖 특혜시비까지 미처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난무하지만 프랑스 파리 상징인 에펠탑처럼 만들어야 한다.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1889년 세계박람회 때 세워진 높이 324m의 에펠탑을 건립할 때도 논란이 많았다. 역사성이 깃든 문화와 예술도시에 철제탑을 만드는 걸 놓고 파리지엥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무슨 파리에 철제탑을 만드느냐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모든 관광객이 에펠탑을 찾아 예술의 도시 파리가 더 빛나면서 랜드마크가 되었다. 투자해서 일자리까지 창출하겠다는 사람을 발목잡거나 반대하는 건 모순이다. 언제까지 전주사람들이 일부 보수 언론들의 비난섞인 조롱을 받고서 살아야 하는가. 전주도 보수적인 낡은 사고의 틀을 깨고 새롭게 세상을 바라다 보아야 한다. 반대하는 사람은 애향론자고 찬성한 사람은 전주를 피폐하게 만드는 사람쯤으로 인식하는 것은 잘못이다. 전주시나 의회는 면피성 공론화위원회를 만드는 것 보다 과도하게 특혜가 주어지지 않고 개발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용머리 고갯길로 호남선 철길이 못나도록 반대했던 그런 우(愚)를 다시금 범해서는 안된다.
1993년 8월, 일본 정부가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담화를 발표한 사람은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하여 담화 이름은 고노담화가 됐다. 그는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 이송에 일본군이 관여했음을 발표하는 담화에 일본군 위안부들에게 사과하고 반성하는 마음을 더했다. 고노담화가 다시 부상한 것은 지난 2014년, 아베 정부가 고노담화 검증보고서를 발표하면서다. 표면적으로는 고노담화를 유지한다는 입장을 취했지만 담화의 취지를 사실상 파기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숨겨져 있었다. 물론 이 덕분에(?) 고노담화의 의미와 가치는 훼손되고 부정됐다. 정부가 화해치유재단의 해산을 결정했다. 재단 출범 2년 4개월만이다. 화해치유재단은 박근혜정부 시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정부의 합의에 따라 2016년 7월 일본정부가 출연한 10억 엔을 바탕으로 출범했다. 그러나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시민단체는 피해자가 빠진 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해산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해산은 출범당시부터 예상됐던 결과인 셈이다. 사실 이 합의 내용은 재단 설립이 전부가 아니다. 국제사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상호비판 자제나 일본 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이전 같은 내용이 더 있다. 그러나 합의의 핵심이랄 수 있는 재단 해산은 한일간 합의 효력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정부가 해산 결정에 합의 자체를 파기한다는 표현을 담지 않았지만 외교적 분쟁과 갈등이 예고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예상대로 일본 정부가 즉각 반발에 나섰다. 일본 외무성은 주일 한국 대사를 불러 강력하게 항의하는가하면 아베 총리는 한국은 국제사회 일원으로 책임 있는 대응을 하기 바란다며 합의를 지키라고 대응하고 있다. 국제법까지 운운하는 형국이다. 이쯤되니 이 합의가 갖는 효력의 범위가 궁금해진다. 법적 효력을 갖는 협약도 아닌데다 정작 중심에 있어야 할 위안부 피해자들이 배제된 합의의 효력은 어디까지일까.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1993년 고노담화를 발표한 사람은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그 고노담화의 의미를 부정하는 검증보고서를 발표한 아베 정부의 외무상은 고노 다로, 고노 요헤이 장관의 아들이다. 시대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극명하게 갈리는 아버지와 아들의 역사인식. 자칫 진전된 것처럼 보이는 한일 관계의 현실이 새삼 놀랍다.
지난 15일 국회에서 FTA 이행에 따른 농어촌기업 상생발전 간담회를 가졌다. 정부에선 이개호 농식품부 장관과 김영춘 해수부 장관이 참석했고 국회에서는 농해수위 소속 황주홍 위원장과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간사인 경대수정운천 의원, 그리고 김태흠김종회박주현 의원이 자리했다. 기업에서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그룹 LG전자 롯데지주 등 15개 대기업 관계자들이 나왔고 한국무역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 단체들도 함께했다. 민주당은 예산안 처리 지연을 이유로 불참했다. 이날 간담회는 정부와 국회가 대기업 관계자들을 불러서 농어촌상생기금 출연을 독려하는 자리였다. 앞서 지난달 국정감사에서도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5개 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기금 출연을 촉구했었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수혜를 보는 기업들이 농어민들의 피해를 보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매년 1000억원씩, 10년 간 1조원을 조성하기로 하고 지난해부터 시작했다. 이와 관련, 한미, 한중FTA 체결 당시 여야정과 경제단체들이 무역이득공유제를 약속했고 지난 2016년 12월 현 자유한국당의 대표 발의로 FTA농어업법도 제정했다. 하지만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조성액이 너무 저조함에 따라 국회와 정부에서 기금 출연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2년간 조성된 농어촌상생기금은 505억여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공기업과 공공기관에서 470억원을출연한 반면 민간기업에선 고작 35억원만 냈다. 1억 이상 낸 대기업은 현대차 4억원, 롯데 2억원 정도다. 아무리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하지만 FTA로 인한 수혜를 독점하는 대기업의 행태가 너무 옹졸하다. 물론 글로벌 경기침체와 미중 무역전쟁으로 국내 기업 경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FTA로 직격탄을 맞은 농어민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 연간 총 수입이 1000만원도 안되는 농가가 70%에 달하는게 농도 전북의 현실이다. FTA 때문에 파산당한 농어민들도 부지기수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서울지역의 일부 언론들이 일제히 정부와 국회를 맹비난하고 나섰다. 국정농단 주범인 최순실의 미르K스포츠재단을 빗대면서 또 다른 적폐행위, 권력형 앵벌이 수준, 기업 팔 비틀기, 반강제적 준조세 운운하며 대기업을 두둔했다. 우리 농업농촌이 무너지면 식량주권이 무너지고 국가경제도 붕괴된다는 사실을 서울지역 언론들도 직시해야 한다.
고창 전통시장 내에 위치한개미상회가백년가게로 선정돼 얼마 전 현판식을 가졌다. 야채와 과일 등을 판매하는 이 가게는 올해로 33년째 한우물을 파왔다. 충분한 냉동냉장창고를 둬 신선한 상품을 제공하고, 아들이 대를 이어 지속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았다.백년가게로 선정된 곳이 전국에 48개가 있으며, 전북에서는 전주의늘채움과탑외국어, 정읍의 제일스포츠와 정읍낚시 등 4개가 더 있다. 중소기업벤처부가 올 시작한백년가게사업은 30년 이상 우수 소상공인을 발굴하고, 홍보마케팅금융 등을 지원해 100년 이상 존속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 성공모델을 확산하기 위한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자영업 현실은 100년은커녕 몇 년도 버티기가 힘든 상황이다. 최근 5년 간 전북도내 자영업자 13만552명이 문을 닫았다. 지난해만 2만7640명이 폐업했다. 도내 전체 자영업자 21만1773명의 10%가 넘는다. 자영업의 위기가 전북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국적으로도 지난해 자영업자 83만7714명이 문을 닫았다. 1년간 개업 대비 폐업 비율이 90%에 육박한다. 자영업 붕괴론이 결코 엄살이 아님을 보여준다. 자영업의 위기 진단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높은 자영업자 비중과 과당경쟁, 온라인 쇼핑의 득세, 프랜차이즈 수수료 부담 등으로 다산다사의 악순환을 겪어왔다. 여기에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자영업자들의 심리적 부담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자영업의 붕괴는 자영업자 개인을 넘어 지역경제에 직접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자영업자 폐업이 늘면서 당장 빈 상가들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 3분기 전북지역 소규모 상가 공실률이 9.9%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다. 굳이 통계 수치가 아니더라도 전주시내만 둘러봐도 건물 사무실을 임대하겠다는 곳이 수두룩하다. 전주 서부신시가지, 한옥마을, 대학로 등 도내 핵심 상권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과거 억대의 권리금을 받았던 곳에서 권리금 없이 임대한다고 해도 임자를 찾지 못한단다. 자영업의 구조조정 과정으로만 편하게 볼 일이 아니다. 자영업자의 연착륙과 재도약을 지원하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지금부터 27년전인 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되면서 유행한 단어중 하나가 가불(假拂)이었다. 가불이란 노동시장에서 앞으로 받을 임금이나 품삯 중 일부 또는 전부를 미리 앞당겨 받는것을 말하는데, 그만큼 생활이 어려운 지방의원들이 많았다는 얘기다.소위 황색돌풍에 의해 지방의회에 입성한 이들중에는 제대로 된 학벌은 커녕, 직업한번 없이 정당 주변을 맴돌았던 이가 많았다. 더욱이 당시 지방의원은 명예직에 불과했을뿐 급여조차 없었기에 오직 남은 것은 깡다구 뿐이었다.일비나 여비 등 회의참석 수당으로 근근이 생활하던 일부 지방의원들은 가불을 해가기 일쑤였다. 다음 회기때 받을 수당을 미리 타가는 것이다. 법률적으로는 변태경리였으나 이것을 잘 하는게 유능한 경리 담당자였다. 그런가하면 새해 예산안을 다루는 예결위는 으레 기관장의 업무 추진비중 일부를 쪼개 쓰는게 관례였다. 만일 분배가 잘 안되면 의정단상에서 난리가 나기 일쑤였고, 사사건건 시비가 걸렸다. 이런 와중에서도 일부 의원들은 행정의 난맥상을 제대로 짚어내면서 점차 이름을 알려가는 이들이 있었다. 학벌이나 경력 등에서 별다른게 없었으나 결기 하나로 무장된 일부 의원들은 향후 정치적 성장 가능성에 무게를 두면서 잘못된 관행에 대항했고, 대안을 제시해냈다.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내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역량을 한껏 발휘하거나 운동권이나 각종 단체에 몸담으면서 익힌 노하우를 접목시켜 나간 것이다. 그래서 일부 의원들은 진정성을 인정받았고, 훗날 시장 군수나 국회의원을 지낸 경우도 많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지방의원들은 이제 영악해졌다. 의정활동 과정에서 구태여 많은 적을 만들려고 하지 않고, 어떻게든 자신의 위상을 높이면서 지지기반을 넓힌다. 지방의원은 도약을 위한 발판이라는 얘기다.10년전, 20년전에 비해 요즘 의원들의 소양과 품위는 한참 위에있다. 정의감으로 무장되고 세련된 기술을 갖춘 이들도 많다. 더욱이 지선이후 첫 등단한 올해 도의회나 시군의회 모두 열정이 넘친다. 그런데 벌써부터 일부 지방의원들은 갑질 행태를 보인다고 한다. 의정활동은 무조건 물고 뜯어야만 자신을 찾아온다는 것을 깨달아가면서 행정사무감사, 예산심의를 깐깐히 하는데 그치지 않고 지나친 오만이 종종 눈에 띈다고 한다. 일부 목소리를 높이는 의원중에는 공적인 일에 사적 감정을 개입시키는 경우가 없지않아 보인다. 심지어 닭 잡는데 소잡는 칼을 쓰는 의원도 있다고 한다. 시민들은 무관심한 듯 해도 의원들이 4년동안 어떤 마일리지를 쌓는지 예의주시 하고있다.
세상사는 음양의 조화로운 관계다. 빛과 어둠이 있듯이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는 법. 빛은 오감만족을 위해 중요하다. 빛은 그 자체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밝기가 중요하다. 요즘 세상은 낮과 밤이 따로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촛불처럼 생명이 타오른다. 밤을 낯같이 만들다 보니까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기술의 발달로 또다른 멋진 밤거리가 만들어진다. 전주가 지향하는 개발방향은 전통이 살아 숨쉬는 관광도시건설이다. 하지만 전주 초입에 들어서는 순간 전주IC나 호남제일문이 너무 어둑컴컴하다. 전주역은 한심하기 그지없다. 밤에는 전주역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암흑세계다. 전국 그 어느역에도 이 같은 밤분위기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다. 전주역을 새로 짓는다고 하지만 그 이전까지 관광객을 위해서라도 전주역을 환하게 불 밝혀야 한다. 지금 밤에 전주로 들어오는 각 방면의 초입부터 너무 어두워 전주 이미지가 좋지 않다. 전주시가 그간 한옥마을에 야간경관조명사업을 펼쳤지만 외국과 비교하면 초보수준이다. 경관조명이란 낱말이 무색할 정도다. 예산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시 당국의 의지가 문제다. Led 제품이 다양하게 출시돼 하나의 예술작품까지도 만들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야간관광이 대세다. 젊은 세대들은 먹고 마시고 체험하면서 야간에 돈 쓰고 가기 때문에 야간경관조성은 필수인프라다. 지금같이 전주 밤거리를 어둠으로 내몰아선 안된다. 한옥마을만 신경 쓸게 아니다. 도시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먼저 LED가로등으로 조도를 올리고 대형빌딩에 간접조명하고 근린공원을 더 밝게 해야 한다. 시민들이 야간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해줘야 한다. 그렇게 되면 범죄예방에도 큰 도움이 된다. 관광객들이 맘 놓고 어디나 오갈 수 있도록 하면 밤에 활력 넘치는 전주가 될 수 있다. 야경으로 유명한 홍콩 리오데자네이루 도쿄 파리 뉴욕 등만 들먹일 필요가 없다. 재선인 김승수 전주시장이 그간 발벗고 뛴 성과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것도 야간경관조성사업을 소홀히 한 탓이 크다. 전주가 발전하고 빛나야 전북이 사람살기 좋은 고장으로 발전해 갈 수 있다. 그렇지않고 이대로 전주를 놔뒀다가는 생명력 잃은 불꺼진 도시로 가고 말 것이다. 관광객 수에 흥분하지 말고 다시 찾고 싶은 전주로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시민들이 해외여행을 자주 다녀와 눈높이가 달라진 만큼 전주의 야경도 확 달라져야 한다. 시민들의 눈높이에 비해 전주시의 행정력이 뒤쳐져 시민들의 불만이 많다. 무작정 예산타령만 늘어 놓을 게 아니라 김 시장이 의지를 갖고 야경이 아름다운 아시아의 문화중심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시의회도 야간경관조성사업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간 문제 많았던 여수시를 비롯 다른 선진도시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했으면 좋겠다.
안해룡 다큐멘터리 감독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2000년 그가 기록한 영상물 끝나지 않은 법정을 둘러싼 저작권 문제다. 그는 일본에서 열린2000년 일본군과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 법정 행사를 기록한 영상물을 만들었다. 당시 다섯 명으로 영상팀을 구성했다니 물리적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았을 터였다. 이 다큐는 KBS의 열린채널을 통해 방송되기도 했는데, 방송이 나가자 복사본을 요청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방송사에 부탁해 복사본 50개를 구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현 정의기억연대)도 복사본을 요청한 단체 중의 하나였다. 문제는 18년이 지난 지금 불거졌다. 아시아 프레스 인터내셔널 서울 사무소 대표를 맡고 있는 안감독이 그동안 촬영하고 기록한 일본 위안부 관련 테이프를 국가기록원에 기증 보존하는 과정에서였다. 안 감독은 테이프로 보관되어 있는 영상물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디지털화 작업으로 공공의 역사적 자산으로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사무실에 갖고 있던 영상물을 정리하고 보니 2000년 국제 법정 기록물 원본을 찾을 수 없었단다. 정의기억연대로부터 당시 전달했던 복사본을 구해 국가기록원에 전달하고 디지털화한 영상물을 다시 정대협에 전달했다. 그런데 국가기록원과 협약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정의기억연대가 이 기록물의 저작권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확인이 필요했지만 정의기억연대에는 18년 전 어떤 약속으로 이 영상물이 단체에 전달되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럼에도 정의기억연대는 회의를 거쳐 자기 단체에 저작권이 있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변호사 자문까지 받았다는 이 단체의 결론에 안 감독은 분노했다. 당시 정대협은 영상팀 4명에게 200만원의 경비를 지급했다. 제작비 전체의 극히 일부였다. 그런데도 저작권을 정당화시키려고 한다. 변호사에게 자문을 받았다니 법대로 하라는 것이다. 그래 끝까지 가보자. 그는 열악한 여건에서도 조선인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 조선족, 입양아 등 식민지시대 역사와 소외된 계층의 삶을 기록하는 작업을 치열하게 지켜온 대표적인 다큐 감독이다. 20여 년 동안 일본군 피해자의 증언과 식민지 지배 하에서 권력을 갖지 못하고 배우지 못했던 가난한 민중들의 피해의 역사를 추적해온 안감독이 다른 곳도 아닌 정의와 인권을 지키는 시민단체와 분쟁하게된 상황이, 그가 안게될 상처가 안타깝다.
지금 군산경제는 출구 없는 불황의 늪에 빠졌다. 지난해 7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가동을 전면 중단한 데 이어 한국지엠 군산공장마저 문을 닫으면서 그야말로 불 꺼진 항구로 전락했다. 군산조선소의 가동중단으로 한 때 5000여명이 넘었던 인력은 대부분 공장을 떠났다. 조선소 협력업체 86개사 가운데 64개사, 74%가 연쇄 도산했고 협력업체 근로자 4900명이 길거리로 내몰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국GM 군산공장이 폐쇄되면서 2000여명에 달하는 근로자들이 생계의 터전을 잃었다. 협력업체 149곳은 개점휴업 상태고 이 가운데 30%는 부도를 맞았다. 협력업체 근로자 1만2700여명도 실직상황에 처했다. 실제 폐업한 협력업체 수는 통계치보다 훨씬 많다는게 군산자동차부품협의회장의 전언이다. 사실 완성차의 협력사는 조그마한 볼트 만드는 공장까지 치면 15차까지 간다고 한다. 군산조선소와 자동차공장 폐쇄로 1년여 새 군산지역 실업자수는 2만명을 넘어섰다. 올 상반기 실업률은 4.1%로 지난해 1.6%보다 2.5%포인트 상승했다. 생계위기에 처한 시민들이 군산을 떠나면서 인구는 1년6개월 사이에 4000여명이 줄어들었다. 전북산업의 두 축인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와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전북경제 역시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로 지역경제 생산량은 2조2900억원이 감소했고 전북GDP의 15~16%가 줄어들었다. 군산조선소를 포함하면 전북산업생산의 30%가 타격을 입은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전북 정치권은 군산조선소와 한국지엠 군산공장을 정상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군산을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과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 정부와 여당은 최근 전북민심 수습책으로 군산형 일자리를 제시했다. 지난 2일 전북을 찾은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광주형 일자리처럼 군산형 일자리를 전북도와 중앙당이 함께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완성차 업계의 반값 연봉 수준인 광주형 일자리는 현대차 노조와 민주노총의 강력 반발로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내년 정부 예산 반영시한인 오늘(15일)까지 협상 타결이 안되면 추진동력을 잃게 된다. 문닫은 한국GM 군산공장 등을 활용한 군산형 일자리창출에 정부와 여당, 그리고 전북도와 전북 정치권이 발벗고 나서야 한다. 피폐해진 군산경제가 너무 절박하기 때문이다.
조계종은 한국 불교의 최대 종단이다. 종단 조직의 정점에 종정이 자리하고, 그 산하에 원로회의감찰원총무원원로회의중앙종회 등으로 편성되어 있다. 종정은 조계종 종단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며, 종단 전반은 총무원장 중심 체제로 운영된다. 조계종 총무원장은 종단의 인사와 예산, 3000여개의 사찰 주지 임면권을 갖고 있어 그 권한이 막강하다. 총무원장 선출을 둘러싸고 매번 갈등이 따르는 배경이다. 조계종 총무원장 선출을 둘러싼 갈등이 극에 달했던 것이1994년 분규다. 당시 총무원장 3선 연임을 놓고 난투극까지 벌였다. 1998년에는 정화개혁회의측과 총무원측 사이에 총무원장 선출을 둘러싼 분규가 발생해 법정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사찰 수와 신도 수에서 큰 세력을 갖지 못한 전북지역 사찰에 승적을 둔 금산사 송월주 회주스님과 실상사 도법스님이 이들 조계종 최대 분규의 한복판에서 종단의 안정을 꾀하는 데 각기 주역으로 활동했다. 금산사에서 줄곧 수행해온 원행스님이 조계종 총무원장으로 선출돼 어제 취임 법회를 가졌다. 원행스님의 총무원장 선출 과정 또한 순탄치 못했다. 이번에는 월주도법스님과 함께 기득권 세력으로 비쳐지면서다. 원행스님도 이를 의식한 듯 취임사에서 소통과 화합을 강조했다. 총무원장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켜 각급 기관과 법인들이 책임성과 전문성을 갖고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개혁에도 방점을 뒀다. 김제 만경 출신의 원행스님은 지역사회에서도 폭넓게 활동했다. 두 차례의 금산사 주지를 역임하는 동안 콘서트템플스테이 개최 등을 통해 지역사회와 소통했다. 전북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전북갈등조정위원회, 전북 녹색성장위원회, 새만금사업 등 지역 현안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참여했다. 권세와 명리, 사치와 부귀를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을 결백하다지만 이를 가까이 하고서도 이에 물들지 않는 사람이 더욱 결백하며, 권모술수를 모르는 사람을 고매하다고 하지만 이를 알면서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더욱 고매하다. 원행스님이 금산사 주지 때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소개한 자신이 좋아하는 <채근담> 글귀다. 총무원장에 취임한 원행스님에 대한 종단과 지역사회의 기대가 크다.
전북 중심축 김제・전주 통합이 해법이다
완주·전주 통합의 불씨 꺼뜨리지 말자
소설 남한산성 영화로 읽기
뉴스에서 기억이 된 ‘호외’
공장화재 전반에 대한 철저한 점검을
정치 전성기라는 전북, 왜 전남처럼 하지 못하는가
두근두근 음악회-허보승 자연초등학교 6학년
‘얼굴 없는 천사 기념관’ 유감
전북문화관광재단, 예산배분 공정한가
언어유희 또는 말장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