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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14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검찰이 이날 MB를 소환한 것은 그의 큰 형 이상은 다스회장을 지난 1일 불러 참고인 조사 하는 등 그동안 벌인 수사를 통해 ‘다스의 실소유주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MB의 큰 범죄 혐의는 16가지나 된다. 삼성의 다스 소송비 대납액 60억 원, 국정원 특수활동비 17억 원,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으로부터 건네진 22억 원, 김소남 전 의원이 준 4억 원 등 100억 원이 넘는 뇌물죄가 포함돼 있다, 그렇지만 진짜 핵심 혐의는 ‘도곡동 땅과 다스’의 진짜 주인이 MB라는 것이다. 2007년부터 야당 등이 문제를 제기하고 검찰이 수사했지만 의혹으로 남겨졌던 시비다. 검찰은 이상은 회장 등 다스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에서 이를 상당부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MB 형 이상은 회장과 이회장의 아들 이동형 다스 부사장 등은 ‘MB 아들 이시형씨가 이동형으로부터 도곡동 땅을 매각한 후 남은 돈이 들어 있는 이상은 회장 명의 통장을 가져가 10억 원 가량을 썼다’고 진술했다. 그 돈의 실제 주인이 MB라는 사실정황으로, 검찰의 확신을 키웠다. 이상은이 도곡동 땅 매각대금 150억 중 일부로 다스 지분을 확보, 다스 회장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검찰은 땅 매각대금 주인도, 다스 주인도 MB라고 확신하는 것 같다. 처음 이 사건이 불거진 2007년 대선 당시 검찰과 특검은 ‘이상은 회장 몫의 도곡동 땅 판매대금이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었다. MB가 다스 실소유주라면, 대통령 후보로서 거짓말 한 MB는 애초 대통령 후보 자격도 없었다. 그런 거짓말로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해도 선거법상 허위 재산신고를 했기 때문에 당선 무효였다. 이번 검찰 조사에서 모든 실체적 진실이 제대로 규명돼야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막장 드라마가 끝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14일 오전 9시25분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서 전직대통령으로서 하고 싶은 말도 많지만 말을 아끼겠다고 했다. 역사에서 이런 일이 마지막이 되었으면 한다고도 했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이 된 후 철퇴를 내리친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에 대한 정치보복을 받고 있다고 소리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게 정치보복이든 아니든, 어쨌든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진실로 반성하지 않는 것은 유감이다. 그는 누군가의 저격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교묘하게 장치한 미늘에 걸려 만신창이가 된 채 철창에 갇힐 처지가 됐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8.03.14 19:38

출구전략

GM이 군산공장 폐쇄 방침을 밝힌 지 한 달이 지났으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GM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군산공장 카드를 활용한 후 종국에는 군산공장 재가동에 나설 것이란 낙관론은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오히려 군산공장 폐쇄가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전북은 근 한 달 가까이 온통 한국지엠 군산공장 사태에 짓눌렸다. 전북도와 군산시, 지역의 시민사회단체 등은 거의 매일 군산공장 정상화를 부르짖었고, 지난주에는 서울에서 대규모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결정 철회 및 정상화를 위한 범도민 총 궐기대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전북도민들의 군산공장 정상화를 위한 이런 몸부림과 함성에 지엠은 꿈쩍도 않는 것 같다. 되레 GM의 입지만 키워주는 건 아닌지 자괴감마저 든다. 과연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재가동될까. 냉철하게 한국지엠의 의지나 정부의 자세를 보면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들 사이에 출구전략 이야기가 솔솔 나온다. 애써 외면했을 뿐이지 출구전략의 필요성은 GM의 군산공장 폐쇄방침이 나온 직후부터 나왔다. 정부에서 내놓은 군산지역 산업위기특별대응·고용위기지역 지정도 출구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한국지엠 군산공장의 재가동 보다는 폐쇄쪽에 무게를 둔 대책이었던 셈이다. 출구전략(exit strategy)은 베트남전쟁에 발이 묶인 미국이 승산 없는 싸움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군대를 철수할 방안을 모색할 때 사용된 용어로 알려졌다. 오늘날에는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후유증을 최소화하면서 정상으로 되돌리는 방책을 찾을 때 통상적으로 쓰는 용어가 됐다. 어떤 사안이 위기상황이나 답보상태에 놓였을 때 출구전략이 필요한지,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면 어느 시점에서 사용하는 게 효과적인지 판단이 중요하다. 출구전략이 거론되는 지엠 군산공장은 어떤가. 엊그제 여야 5당 ‘한국지엠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공동으로 주최한 ‘군산공장 폐쇄 특별대책토론회’에서 김재록 인베스투스글로벌 회장의 제안이 눈길을 끌었다. 군산공장을 부평·창원공장과 분리해서 오픈 플랫폼 형태로 만들어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한 GM의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생산기지로 활용할 경우 인근 새만금지역을 전기차·자율주행차 모범도시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북도는 출구전략의 시기상조론에 방점을 두는 것 같다. 자율주행차로의 전환까지 시간이 걸리고, 그 과정 또한 순탄할 수만은 없다고 보는 것이다. 더 나은 출구전략을 위해서도 군산공장 정상화 방침의 고수가 필요하다고도 판단하는 것 같다. 지금은 출구전략이 아닌, 군산공장의 정상화에 힘을 모을 때라는 전북도의 판단을 믿어보자.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8.03.13 20:46

전군가도 백리길

해마다 이맘때면 울려퍼지는 노래가 있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라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 이다. 2012년 3월 발매된 이래 7년째 봄 캐럴로서의 저력을 과시한다. 그만큼 벚꽃은 봄의 전령사라는 얘기다. 진해 군항제에는 해마다 100만명에 육박하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고 있고, 여의도 일대에서 벚꽃축제가 열리면 서울 서남부권의 교통흐름이 크게 바뀐다. 완주 송광사, 마이산, 전주동물원 야간개장때 화려한 조명을 머금은 벚꽃을 보기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려드는 것을 보면 반일 감정과는 별개로 일본 국화인 벚꽃(사쿠라)은 그 나름의 매력이 있는것 같다. 국내에서 벚꽃을 말할때 빼놓을 수 없는게 바로 전군가도 백리길이다. 원래 전군가도는 한일합방 직전인 1908년 전주에서 군산까지 장장 46km에 걸쳐 만든 신작로였다. 일제는 호남곡창지대에서 수탈한 쌀을 이 도로를 통해 운반, 군산항을 거쳐 일본으로 가져갔다. 1975년 정부예산에 재일교포들의 성금을 합쳐 총 6400여 그루 벚나무가 식재되면서 국내에서 가장 긴 100리 벚꽃터널로 전국에 알려졌다. 군산시 대야면 백마산 공원, 익산 목천포, 김제 유강검문소 옆 만경강 제방 길은 벚꽃축제로 상춘객들이 몰려들곤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제대로 꽃을 피워내지 못한 벚나무가 많아졌고, 차량매연과 잦은 교통사고로 인해 벚꽃터널의 명성은 쇠락해갔다. 길가에 있는 굵은 벚나무는 교통사고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이름만 대면 알만 기업인 M씨 역시 전군가도에서 교통사고로 하직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쨌든 시대가 바뀌면서 자동차전용도로가 생기면서 벚꽃축제는 없어졌고, 전군가도(=번영로) 100리 벚꽃길도 뇌리에서 잊혀졌다. 전군가도를 말할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전군마라톤’ 이다. 전주∼군산간을 수놓은 환상의 벚꽃 백리길에 철각들의 힘찬 행진이 이어졌다. 2000년 4월 유종근 당시 지사가 만들어낸 이 대회에는 국내외에서 1만여명의 선수들이 몰려들었다. 이봉주, 황영조, 김완기, 형재형, 오미자 등 국내의 기라성같은 선수들이 참가하는 국가대표 선발대회였고, 케냐 등지의 유명 선수들도 참가하는 명실상부한 국제대회로 성장했다. 전군대회는 단번에 동아일보 동아마라톤,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중앙일보 중앙마라톤에 이은 국내 4대 대회의 반열에 올라섰으나 민원 등을 이유로 8년만에 흐지부지 없어졌다. 강현욱 지사에서 김완주 지사로 바뀌는 등 지역 주도세력의 교체는 전군마라톤대회의 폐지를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 최근 전북도는 전주·군산·익산·김제 등 4개 시와 함께 30억원을 들여 벚꽃길 100리의 명성을 되찾기 위한 ‘번영로 벚꽃길 되살리기’ 사업을 올해부터 5년간 추진키로 했다. 벚나무를 새로 심고 주변 문화와 역사적 경관을 새롭게 조성하는 한편, 마라톤이나 사이클 등 국제스포츠대회 유치도 검토한다니 그 결과가 크게 기대된다.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8.03.12 20:07

구설수에 오른 골프정치인

골프 만큼 재미있는 운동은 없을 것이다. 그 만큼 골프는 흥미진진한 운동이다. 희노애락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운동은 골프 밖에 없을 것이다. 한번 치고 나면 또 치고 싶을 정도로 유혹과 중독기능이 강하기 때문이다. 골퍼들 한테 골프의 장단점이 뭣이냐고 물으면 너무 재미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비슷한 상황은 있어도 똑같은 일이 없어 라운딩 할 때마다 긴장과 갈등의 연속으로 끝난다. 너무 재미있어서인지 말도 많고 보이지 않게 마(魔)도 뒤따른다. 현충일에 공직자들한테 골프장 금족령이 내려져도 가명을 써가면서까지 기를 쓰고 골프를 친다. 심지어 노무현 정권때 실세총리로 불렸던 이해찬 전총리는 2005년 식목일에 대형산불이 발생했는데 골프를 쳤다가 결국 낙마했다. 지난달 24일 이낙연 총리 일행이 폐쇄 결정키로 한 한국지엠 군산공장을 방문했는데 그 자리에 민주당 김윤덕 도당위원장이 참석치 않고 대선 때 안희정측에 몸담았던 캠프출신들과 군산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골프 치기 하루 전날 김춘진 전 위원장의 사퇴로 생긴 도당위원장에 임명됐다. 그 당시는 GM이 군산공장 철수를 발표한지 열흘이 지난 시점으로 1만1000여명이 길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한 비상시국이어서 이 총리가 군산현장을 방문해 여야가 GM총괄부사장 노동자들과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있던 시간이었다. 골프를 마친 후 이들은 장소를 전주 한옥마을로 옮겨 골프를 함께쳤던 안희정 캠프출신과 오는 6·13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시장 군수 후보들까지 전국에서 20여명이 참석해 만찬을 즐겼다. 골프와 만찬자리를 마련했던 김 도당위원장은 지난 19대 전주 완산갑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초선으로 지난해 민주당 경선 당시 안희정후보 전북지역 총책임자로 활동했다. 문제는 총리까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나머지 군산 현지에 내려오고 또 민주평화당까지 적극 나서 동분서주하던 그 시각에 집권당 도당위원장이 차기 유력 대권주자 측근들을 골프 모임 모시기에 바빴다는 사실이다. 그의 눈에는 노동자 생존권이 걸린 문제는 완전히 뒷전이었던 셈이다. 더 가관인 것은 지난 6일 밤 안희정 성폭행 사건을 놓고 도당 비상근 조직국장이 “위계 강압, 술 마시니까 확 올라오네. 제 목적을 위해서일까, 알듯 모를 듯 성 상납한 것 아냐. 지금 와서 뭘 까는데”라는 성폭력사건을 옹호하는 글을 올리자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현실인식이 그러한데 어찌 아랫사람이라고 가만히 있겠냐”면서 그를 힐난했다. 야당과 도민들은 당시 골프회동과 만찬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명단과 골프 및 음식비용을 누가 결제했는지 낱낱이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현역의원을 제치고 원외위원장이 도당위원장을 맡은 이후 발생한 이번 사건에 이춘석 사무총장이 사과했으나 상당수 도민들은 “군산사태가 엄중한데도 그와 아랑곳 하지 않고 안희정측 사람들과 골프를 친 것은 단순한 사과로 그칠 문제가 아니다”면서 “김위원장이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8.03.11 20:48

2005년 조용필의 평양 공연

2005년 여름, 평양에서 가수 조용필의 공연이 열렸다. SBS가 광복 60주년 특별기획으로 추진한 ‘조용필 평양 2005’였다. 공연단 규모만도 120여명. 참관인 40여명까지 합하면 160여명이 이 공연을 위해 평양으로 갔다. SBS의 특별기획 공연은 어렵게 성사된 것이었다. SBS는 이 공연을 위해 3~4년 전부터 준비했고, 공연 1년 전부터는 본격적인 협의를 진행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남북관계는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하기 일쑤여서 일정이 여러 차례 번복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나마 대중가수의 평양공연이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은 SBS가 오래전부터 추진해온 남북교류사업 덕분이었다. 남북겨레말 큰 사전 사업, 사랑의 연탄모음 후원사업, 북한비닐하우스 건립 지원 등이 평양공연으로 이어진 셈이었다. ‘조용필 평양2005’가 열린 유경 정주영 체육관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꾸준히 추진해왔던 대북사업의 결실이었다. 유경 정주영 체육관은 1만2000석을 갖춘 대규모 실내체육관이었지만 무대를 설치하느라 객석을 7000석으로 줄여 공연장으로 활용됐다. 8월 23일 오후 6시, 조용필 공연이 시작됐다. 객석은 공연이 시작되기 30분 전 이미 가득 찼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북한에서도 ‘모나리자’로 널리 알려진 조용필 공연을 보려는 사람들이 많아 엄청난 값의 고가 암표가 나돌았다고 했다. 첨단의 영상 장비를 활용한 무대장치와 강렬한 록비트의 조용필 공연에 북한주민들은 환호했다. 객석의 관객들은 공연 마지막, 조용필이 부르는 ‘아리랑’을 따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참관단으로 동행해 3일 동안 머물렀던 그해 여름 평양의 풍경은 특별했다. 시내는 온통 아파트와 고층 건물 리모델링 작업이 한창이었는데, 겉으로는 번듯해 보이지만 대부분 건물이 70년대와 80년대 초반의 낡은 건물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어디를 가나 광장이 있는 곳에서는 마스게임 연습을 하고 있는 학생들도 인상적이었는데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60주년을 기념하는 횃불행진을 위한 대대적인 준비였다. 2000년대 중반 단절됐던 남북한 예술교류가 다시 시작되는 모양이다. 오늘 4월 열릴 예정인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이 남한예술단을 초청하면서다. 지난달에는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대표단으로 온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오찬장에서 만난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에게 평양 발레 공연을 제안해 관심을 모았다. 공식적으로 남한예술단을 구성해 평양에서 공연한 것은 2002년 9월, KBS교향악단이 북한 조선국립교향악단과 연합오케스트라를 구성해 연주한 것이 마지막이다. 다시 시작되는 남북한 예술단 교류가 반갑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8.03.08 20:04

미투, 카드 도둑질

20년 전이다. 잇따르는 경찰관 비위 사건이 터지자 한 간부가 아쉬움을 쏟아내며 이런 말을 했다. “우리 경찰이 15만 명에 달한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는 법이다. 게다가 그동안 경찰관 채용은 허술했고, 저학력자도 많았다. 인성 정도가 불명확한 사람도 이런 저런 이유로 경찰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제 경찰에도 대졸자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 실력있고, 수준높은 경찰대생들이 계속 배치되고 있다. 경찰관 수준이 전반적으로 좋아지고 있다. 조금 기다려 보라” 20년이 지났다. 경찰관 학력 수준이 좋아지고, 이미지나 성과도 좋아져 보인다. 그런 여세로 수사권 독립에 나섰다.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바람 잘 날’이 드물지 않은 건 매한가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비교 하자면, 과거 경찰보다 ‘많이 배우고 머리 좋다’는 검사나 판사 쪽에서 부는 바람 정도를 가늠할라치면, 과거 경찰 쪽에서 들쭉날쭉했던 비위가 뭐 그리 대단한 것인가라고, 20년 전 그 경찰간부는 기자 앞에서 말하고 싶었을 것 같다. 검찰이 사고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없던 일이 되는 게 어디 한둘인 줄 아느냐는 둥 말이다. 당시 도지사 비서실장이 회식 자리에서 전주지검 검사가 내리친 맥주병에 눈두덩이를 맞아 피범벅이 된 사건이 유야무야 된 반면 이런 저런 경찰 비위는 모조리 공개되다시피 돼 경찰 위상을 떨어뜨렸으니, 경찰 속앓이가 작지 않았을 것이다. 검경을 이야기의 실례로 들었지만, 언론계가 자유스럽다는 건 아니다. 얼마 전 세상 떠들썩하게 했던 송주필 사건처럼 언론계에도 들보가 적지 않다. 아직 미투하지 않았지만, 한 공무원은 어떤 중진기자에게 거액을 ‘카드 도둑질’ 당한 억울함을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미투운동 초점이 일단 성폭행에 맞춰져 있지만, 그런 부류의 갑질이 어디 성폭행에 딱 한정된 것인가. 미투운동이 확산되면서, 럭비공이 어디로 튈지 몰라 표정관리하며 납작 엎드려 입 다물고 있는 야누스의 얼굴들,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동서고금으로 권력에 취한 자들은 안하무인 하고, 호가호위했다. 급기야 지록위마도 불사했다. 요즘 드러나는 성폭행 가해자들이 그랬다. 20년 전 경찰 간부 말대로 학력 수준이 높아지면 적어도 상식 수준의 도덕성이 확보돼야 마땅할 터이지만 도덕성은 지식정도와 비례하지 않는다. ‘나도 당했다’가 아니라 ‘나도 고백하고 사죄한다’ 운동이 시작되기를 기대한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8.03.07 20:29

대나무숲

가히 광풍이다. ‘미투’를 빼놓고 대화가 되지 않을 지경이다. 검찰에서 출발한 ‘미투’가 문화예술계, 대학가를 거쳐 정치권으로 넓혀가고 있다. 그 끝이 어디일지 예측하기 어렵다. 미투운동과 함께 SNS의 ‘대나무숲’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대나무숲’을 통해 성폭력 관련 글이 잇따라 게재되면서다. 전북지역 인권단체 활동가가 대학 강사 시절 여러 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폭로도 페이스북 계정인 ‘전북대 대나무숲’에 오르면서 알려졌다. ‘대나무숲’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신라 경문왕 설화에서 이름이 나왔다. 세상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자신만 알고 있다는 사실을 참을 길 없었던 두건 만드는 노인이 대나무 숲에서 토해냈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서다. 2012년 한 출판사 직원이 익명으로 ‘출판사X’라는 트위터 계정을 통해 회사의 부조리를 공개하는 글을 올린 것이 그 출발이었다. 이 계정이 사라진 것을 아쉽게 여겨 만들어진 트위터 계정이 최초의 대나무 숲인 ‘출판사 옆 대나무 숲’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익명으로 억울한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으로 퍼지기 시작한 ‘대숲’은 대학가의 이슈 메이커로 작동하면서 유명해졌다. 도내 여러 대학들도 페이스북 계정의 대숲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에 따라서는 ‘대숲’기능의 다른 이름인 ‘대신 말해드립니다’ ‘대신 전해드립니다’등의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술자리 강요와 막걸리 세례, 선배 졸업반지 선물비 걷기, 단체기합에 성희롱 등의 학내 이슈들도 바로 이 계정들을 통해 공론화됐다. 물론, 대숲에서 사회적 발언이 주류는 아니다. 수강신청을 위해 교수의 성향과 실력을 묻고, 시험기간에는 출제 관련 이야기를 공유하는 등 소통의 장으로 활용되는 게 보편적이다. 대학마다 학내 사이트가 많이 있기 때문에 대학 전체적으로 볼 때도 대숲은 변방이다. 그럼에도 대학의 공식 웹사이트가 아닌 대숲이 주목을 받는 것은 자유분방한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자신을 드러내놓고 불만을 토로하기 힘든 대학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리라. 온라인상 대자보인 대숲의 팔로워와 트위터가 늘어나는 것은 사회 전반적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음습한 단면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혼자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 큰 위안이 될 수 있다. 당나귀 귀를 마음껏 외칠 공간마저 없다면 우리가 어찌 임금님 귀를 알 수 있겠는가.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8.03.06 21:04

황방산 터널

우리나라 최초의 터널인 경의선(서울~신의주) 아현터널, 의영터널은 1904년 만들어졌다. 서울의 남산 1호(필동~한남동), 2호(장충동~이태원동), 3호터널(이태원동~회현동)은 오늘날 강북과 강남을 잇는 주요 도로의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으나 애초 남산터널의 구상은 교통이 아닌 안보 차원에서 이뤄졌다. 바로 1968년 발생한 1·21 사태다. 흔히 ‘김신조 사건’으로 일컬어지는 이 사태는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 세검정까지 침투한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은 ‘서울요새화계획’을 만드는데 이는 일단 유사시 최대 40만명의 시민이 대피할 수 있는 지하보호시설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교통량이 급증하면서 남산터널의 통행량도 증가, 지금은 시민 대피공간이 아닌 주요 교통로가 됐다. 강원도의 경우 백두대간에 의해 영동과 영서지역의 역사, 문화가 오랫동안 크게 달랐으나 오늘날엔 터널에 의해 하나의 문화권으로 통합됐다. 서쪽의 인제 주변에서 고성, 속초, 강릉 등지의 영동으로 가려면 진부령, 미시령,한계령, 대관령 등을 넘어야 했으나 오늘날엔 21.75km에 달하는 대관령터널 등에 의해 가까워졌다. 전주 역시 진북터널, 어은터널의 사례에서 보듯 산을 넘어가거나 크게 우회해서 돌아가야 했던 먼 길이 가까워진 경우도 있다. 새만금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전주와의 접근성이 중시되고, 전북혁신도시, 만성지구, 여의지구를 중심으로 한 전주서부권이 급속히 팽창하면서 최근들어 ‘황방산 터널’을 개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전북도 분석 자료를 보면 전북혁신도시 통과 차량은 하루 23만8708여대에 달하고 있고, 퇴근 시간대(오후 6~7시)에만 2만4807대가 통행한다. 앞서 전북연구원은 ‘이슈브리핑’을 통해 혁신도시 제2진입도로(=황방산 터널) 개설을 제안한 바 있다. 먼 훗날의 얘기처럼 들렸으나 국민연금공단을 중심으로 금융허브가 가시화 하고, 만성법조타운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면서 이같은 주장이 새삼 조명받고 있다.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가로놓인 황방산(해발 217m)은 전주화산공원보다 남북이 1.5배로 길다. 하지만 동서간 도로는 오직 황방산 남쪽의 지방도 716호선과 북쪽의 서부우회도로 밖에 없기에 황방산 터널 개통 필요성이 크다고 한다. 다만 생태환경을 파괴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황방산은 모악산으로 이어지는 전주권 주요 생태축이자 시민휴식의 숲이기 때문에 터널을 개설하면 생태축의 기능이 크게 훼손되고 주민들도 매연·소음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찬반 양론이 있으나, 하루가 다르게 혁신도시와 만성법조타운 주변 교통량이 폭증하는 상황을 제대로 인식, 당장 전문가 공청회 등을 통해 여론을 수렴해 터널을 설치하거나 아니면 다른 교통해소 대책을 세워야 한다.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8.03.05 18:54

애타는 송지사

새 봄이 왔는데도 도민들이 죽을 맛이다. 평창올림픽이 평화올림픽으로 치러지는 동안 군산GM공장이 문 닫기로 함에 따라 평지풍파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지난해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문 닫은지 불과 7개월만에 또다시 GM공장이 철수키로 함에 따라 군산시는 물론 전북 전체가 패닉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왜 부평 창원 공장은 놔두고 유독 군산공장만 문 닫기로 한 것인가에 대해 군산시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군산시민들이 날마다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외쳐대도 대꾸 없이 한낱 공허한 메아리로 들리고 있다. 군산시민들은 그간 GM공장이 있어 자동차도시라는 자존감을 갖고 살아왔는데 설 이틀전 군산공장 폐쇄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지금 군산시민들은 지난해 군산조선소 문 닫을 때보다 훨씬 큰 충격에 휩싸여 있다. 경주와 포항에 지진이 발생한 것 보다도 충격이 크다. 군산시민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어 살길이 막막해졌다고 아우성들이다. 실직자 뿐만 아니라 협력업체 음식점 숙박업소 원룸업자에 이르기까지 직간접으로 입는 피해규모가 엄청나다. 군산경제가 반토막 났다고 말한다. 그간 군산시민들은 GM차가 잘 안팔려 혹시라도 문 닫을까봐서 너나 할 것 없이 차 한대라도 사주는 등 GM공장 살리기에 적극 동참해왔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에 분노를 느끼고 있다. 지난해 군산조선소의 문 닫는 과정을 지켜본 군산 시민들은 ‘이낙연 총리가 왔다 가는 등 지난해와 똑같은 판박이가 재연됐다’면서 ‘정부나 정치권이 GM공장을 살리려는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정부를 성토했다. 특히 군산공장의 폐쇄설이 간헐적으로 흘러 나왔는데도 사전에 감지하지 못하고 대책 마련을 못한 것에 분통을 터뜨렸다. 이미 외국사례에서 보듯 GM이 먹튀논란에 휩싸여 있는데도 정부와 산업은행이 보인 일련의 무기력한 행태에 더 분노한다. 지난번과 같이 이번 사태에도 가장 애 타는 사람은 송하진 지사다. 송 지사는 사태해결을 위해 서울 군산 전주를 오가며 백방으로 뛰고 있지만 아직까지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송 지사는 어떻게든 군산공장을 정상화시키려고 하지만 정부의 정책이 전북도가 요구한 것과 달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송지사는 직접 이해당사자가 아니어서 운전석에 앉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른다. 정부는 정확한 실사 등을 거쳐 부평 창원공장이라도 문 닫지 않도록 지원책을 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딱 버티고 있어 자칫 밑빠진 독에 물붓기로 끝날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송 지사가 GM군산공장 살리느데 역점을 두지만 아직껏 사태의 추이만 지켜볼 뿐 이렇다할 해결책이 나오지 않아 속만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김제시장선거에 출마한 한 사람이 새만금신항만을 김제시로 행정구역 관할권을 편입해야 한다고 뜬금없이 주장한 바람에 더 군산시민을 열받게 했다. 이웃사촌이 불행을 겪고 있는 이 때에 하필 이런 주장을 해야 하는지 되묻고 싶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8.03.04 19:34

썰매의 역사와 금메달

스켈레톤은 봅슬레이, 루지와 함께 3대 썰매 종목을 이룬다. 머리를 아래로 두고 엎드린 자세로 썰매를 조정해 빠른 속도로 1200미터 이상의 트랙을 내려오는 방식이어서 위험성이 적지 않다. 1928년 생모리츠 동계 올림픽 때 정식 종목으로 지정되었지만 두 차례나 중단되었다가 20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 때 비로소 영구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설날 아침, 평창올림픽에서 안겼던 윤성빈의 금메달이 바로 이 경기다. 올림픽에서의 스켈레톤 금메달은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 선수로도 처음이이다. 그만큼 의미가 더 크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열악한 여건에서도 오늘의 한국 썰매 종목 역사를 있게 한 주인공 이야기다. 올림픽에서 빛나는 메달을 얻지 못하고도 이름을 널리 알린 스타. 강광배 국제 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부회장이다. ‘대한민국 썰매의 역사’로 불리는 그는 1998년 나가노를 시작으로 2010 밴쿠버까지 루지와 스켈레톤, 봅슬레이 등으로 동계올림픽에 출전했다. 썰매 3개 종목 전 경기 출전은 그가 세계 최초이자 유일하다. 스위스 IOC박물관에는 그가 2006 토리노동계올림픽에 입고 출전했던 운동복과 모든 장비가 전시되어 있을 정도다. 이쯤 되면 그의 성장 과정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그는 전주 토박이다. 고등학교 시절 유도를 했던 그는 전주대 체육학과 1학년 때 무주리조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스키를 만나 선수가 됐다. 각종 스키대회를 휩쓸었으며 최연소로 스키강사 자격증을 땄다. 그가 가르쳤던 ‘코흘리개’ 무주 산골 아이들은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가 됐다. 그 역시 스키로 성장하고 싶었지만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얻고 포기했다. 절망하지 않고 루지 국가대표선수 선발에 도전했다. 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 루지 국가대표 선수로 첫 출전할 수 있었지만 고난의 과정을 거쳐 루지 대신 스켈레톤으로 종목을 다시 바꾸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동계스포츠 역사가 일천한 한국의 여건상 국가대표로 자격을 얻지 못하고 개인자격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해야 했던 그는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이 국제연맹에 가입한 후에서야 비로소 국가대표로 국제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는 스켈레톤으로,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는 봅슬레이로 출전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올림픽 썰매 전 종목에 출전한 선수가 됐다. 밴쿠버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한 이후 그는 우수한 선수를 키워내는 지도자로 헌신해왔다. 윤성빈도 그가 발굴한 선수 중 한명이다. 우리도 이제 썰매의 빛나는 역사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외로운 길을 개척해온 그의 도전 정신 덕분이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8.03.01 20:47

전북연극계 '미투'

전북연극협회가 10년 전 <전북연극사 100년>을 출간했다. 지역의 원로중견 연극인 등을 중심으로 엮은 이 책을 통해 전북연극이 어떤 길을 걸으며 오늘에 이르렀는지 확인할 수 있다. 지역의 연극사를 정리했다는 점을 넘어 전북연극의 자긍심을 높이게 했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근대연극의 뿌리를 창극으로 보고, 판소리의 창극화에 공헌한 고창 출신의 동리 신재효 선생을 주목했다. 전북이 한국 연극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드러낸 셈이다. 전북연극사를 들여다보면 지역 연극인들이 참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문화예술이 서울로 향했던 시절에 척박한 지역에 씨를 뿌리고 꽃을 피웠으니 말이다. 60년대부터 여러 극단이 창단되고 소멸되는 과정을 거쳤던 전북연극이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80년대 이후다. 특히 창작극회와 극단 황토는 80년대파벌 싸움을 벌인다고 할 만큼 무대 안팎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전북연극발전을 이끈 양대 축이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전국연극제 대통령상을 거머쥐기도 하고, 자체 소극장을 마련해 상설 공연에 나선 것도 이 시기였다. 이후 익산과 군산, 정읍, 남원 등지에도 극단이 생기면서 양적질적 발전을 더했다. 매년 전북연극제를 비롯해 전북소극장연극제영호남 연극제를 열어 무대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다른 지역에 앞서 전주시에 시립극단이 탄생한 것도 전북연극의 저력이었다. 시립극단은 지금도 전국에 몇 개 되지 않는다. 전북연극이 오늘날 단단히 뿌리내리는 데 큰 역할을 한 분이 박동화 선생(1911~1978)이다. 일본 유학시절 극단 활동을 했던 박동화는 1950년대 중반부터 전북대신문 편집국장으로 활동하며 대학연극반을 만들었고, 여기 출신들을 모아 창작극회를 결성한 이다. 창작극회가 1964년 전국연극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했다. 그의 극작(두 주막)과 연출을 통해서다. 그의 연극적 업적을 기려 전주체련공원에 박동화선생 동상이 세워졌고, 대표작 <나의 독백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가 사후에 발간됐으며, 20년 넘게 박동화연극상이 시상되고 있다.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와 선배를 가진 전북연극계가 요즘 한 극단 대표의 여배우 성추행 문제로 물의를 빚고 있다.미투 열풍 속에 나온 8년 전의 일이라고 하지만, 전북연극계 일각의 민낯을 드러낸 셈이다. 더욱이 지역 연극계 일각에서오태석이윤택을 복사한 괴물이 근처에 살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걸 보면 이번 극단 대표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나의 독백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연극계 대선배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환골탈태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8.02.28 19:54

미투, 성폭력 뿐이랴

미투, 나도 당했다. 여자로서, 딸로서, 엄마로서, 누이로서 그 얼마나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고백인가. 씻을 수 없는 상처는 자존감을 무너뜨렸다. 망가진 영혼은 그늘 속에서 떨었고, 일상 삶마저 힘들게 했다. 약자였다. 갑이 아닌 을이었다. 갑자기, 혹은 끈질기게 추근댔다. 처음에는 따뜻한 선배, 선생의 손길인 줄 알았다. 다정하고 호의적인 그가 느닷없이 괴물, 늑대의 발톱을 드러냈다. 꼼짝없이 당했다. 다행히 세상에는 용기 있는 사람이 많았다. 미국 등 외국에서 몰아친 미투 운동에 국내 피해자들이 앞다퉈 미투를 외치고 있다. 그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치욕과 아픔을 짓누르고 대중 앞에 선 그들은 아귀의 탈을 뒤집어 쓴 성폭력범들을 당당히 고발하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섰다. 최근 미투운동에서 드러난 피해사례들을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는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사이다. 최영미 시인이 괴물이라고 폭로한 고은 시인은 원로 대접을 받는 문인이다. 연출가 이윤택은 연극계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해당 분야에서 실력을 쌓아 크게 성공한 선생님이다. 당연히 그들처럼 성공한 인생을 추구하는 후배들이 따르고 싶고 또 본받고 싶었을 것이다. 가까이 하고 싶었을 것이다. 괴물들은 그런 점을 악용했다. 미국 체조 대표팀과 대학 체조팀 주치의로 일하면서 265명의 선수들을 성폭행하거나 성추행한 혐의가 드러나 징역 140~360년 형을 선고받은 래리 나사르는 선수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친절하고 가까운 의사 선생님이었다. 일반적인 성폭력범도 주변 인물이 많다. 아동 성폭력범 또한 낯선 사람보다는 주변 인물이 70~80%를 차지한다는 보고가 있다. 괴물은 멀리 있지도 않았고, 낯선 이방인도 아니었다. 나의 친구였다. 나를 이끌어주고, 보살펴주는 친절한 지인이었지만, 실은 야누스 얼굴을 한 괴물이었다. 미투, 억울한 피해 사건은 과연 은밀한 성폭력 뿐일까. 이번 미투운동에서 알 수 있듯이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2차, 3차 가해와 보복 등이 두려워서 피해 사실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위축된 상태의 그들이 느끼는 주변의 냉소는 더욱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피해는 성폭력 뿐 아니라 상거래관계, 직장 내 상하관계 등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만연하는 게 현실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을은 교묘한 폭력에 제대로 맞서지 못한다. 그게 상대적 을인 인간의 비애다. 인간이 인도적 세상을 추구한다면, 이제 나는 고백한다에 대한 미투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8.02.27 18:44

법조타운 불패

국내의 내로라하는 로펌의 지난해 매출 순위는 김앤장, 태평양, 광장, 율촌, 세종, 화우 순이다. 김앤장이 매출 1조144억원으로 1위에 올랐고, 태평양이 2761억원, 광장이 2637억원, 율촌이 1911억원, 세종이 1676억원, 화우가 1205억원 등이다. 6대로펌만을 놓고볼때 시장점유율은 김앤장이 49.9%, 태평양이 13.6%, 광장이 13.0%, 율촌 9.4%, 세종 8.2%, 화우 5.9% 등이다. 말이 연매출 1조원이지 1152명의 전문가를 지니고 있는 김앤장 하나가 올린 실적은 가히 놀랄만하다. 186만명의 도민 살림살이를 총괄하는 전북도의 연간 예산이 6조5000억원 남짓한 것을 고려하면 김앤장의 매출 1조는 어마어마한 수치임을 알 수 있다. 이들 대형 로펌은 종로나 강남 등지에 산재해 있으나 변호사 사무실이 밀집돼 있는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안팎에서 대형 로펌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하기만 하다. 법원과 검찰이 있는 법조타운은 단순히 판사와 검사들만의 공간이 아니다. 수많은 변호사와 법무사, 행정사는 물론, 엄청난 이해관계인들이 아침저녁으로 찾는 공간이다. 그래서 서울 서초동에 있는 법조타운 뿐 아니라 전국 주요도시는 법조타운 불패라는 말이 있을만큼 부동산 측면에서도 늘 핫(hot)한 곳으로 통한다. 도내에서도 요즘 만성동 주변에서 법조타운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현재 덕진동 가련산 기슭에 있는 법원검찰 등 법조타운이 내년에 만성지구로 옮겨오기 때문이다. 덕진동 현재 타운 면적이 2만8270㎡인데 만성지구 법조타운은 3만2900㎡이다. 청주, 순천 등지의 사례에서 나타났듯 법조타운 주변은 많은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에 도시의 판도를 바꾸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문제는 덕진동 현 청사가 내년에 떠난뒤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하는 점이다. 새 법조타운이 번영을 구가할때 기존 법조타운은 불꺼진 도시나 되지 않을까 우려가 크다. 자칫 종합경기장 개발의 제2라운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시각도 있다. 전북도와 전주시가 전주지방법원과 검찰청 이전 부지 활용 방안에 대해 큰 시각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상황을 보면 전주시는 법원과 검찰청의 건물을 보존해 미래 유산으로 활용하고 근린공원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돌려준다는 방침이나 전북도는 이 부지를 호텔 건립 용도로 전환하는방안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자칫하면 대법원, 전북도, 전주시의 입장이 서로 달라 덕진동 일대가 도심속의 섬으로 전락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지난해 국감때 이춘석 의원이 덕진동 일대 법원 기존 부지 활용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법원이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한 것도 바로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앞으로 1년뒤 법원과 검찰이 만성지구로 떠났을때 폐허가 될게 뻔한 덕진동 옛 법조타운 부지를 어떻게 살려낼지 치열한 고민과 논쟁이 뒤따라야 한다.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8.02.26 22:25

정치적 악용

군산이 흐느끼고 있다. 한번도 아니고 연례행사격으로 두번이나 공장폐쇄라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으면서 군산 경제가 반토막 났다. 지금 군산 시민들 한테는 그 어떤 위로의 말이 필요 없다. 폐쇄키로 한 군산GM을 살려 내지 않으면 군산은 불꺼진 항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창올림픽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며 평화올림픽으로 성공적으로 치러지고 있지만 군산은 시민들의 치밀어 오른 분노와 배신밖에 없다. 그간 군산시민들은 행여 공장이 문 닫을까봐 노심초사하면서 차 한대라도 더 사주려고 발버둥쳤다. 이런 헌신적인 노력은 오간데 없고 급기야 공장폐쇄라는 극약처방이 내려져 시민들의 억장을 무너 뜨렸다. 정부와 정치권이 군산사태를 바라보면서 해결책을 강구하는 모습이 백가쟁명식이다. 당리당략에 따라 소리만 요란하다. 이번 사태를 놓고 국민의당이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으로 나눠지면서 613지선에서 마치 이슈를 선점하려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 창당 때 마땅한 이슈가 없었는데 메가톤급 악재가 터지자 때는 이때라고 순발력있게 대응하고 나선 것. 양 당이 민주당 대항마로 호남에서 서로가 지지율 확보를 위해 사생결단식으로 나선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 목표가 왜곡되거나 정략적으로 흘러 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군산GM 사태는 산업구조가 취약한 전북한테는 아킬레스건이었다. 협력업체까지 합치면 실직자가 1만명이 넘는다. 4인 기준으로 하면 하나의 작은 도시가 없어지는 것이나 다를바 없다. 지난해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폐쇄로 그 악몽이 잊혀질뻔 했는데 또다시 되살아 나면서 살길이 막막하다. 정부나 정치권이 폐쇄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 군산사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서 폐쇄를 막아 내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다. 정부와 전북도가 해결책을 놓고 상충되는 면이 발생할 수 있다. 요즘 군산사태 해결을 위해 눈물나게 뛰는 송하진 지사는 사즉생의 각오로 더 뛰어야 한다. 도민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고 있기 때문에 잠시도 주저하거나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정치권과 협치를 통해 공장이 폐쇄되는 것을 막아내야 한다. 미리서부터 겁먹고 선택과 집중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면 작년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다시금 전략과 전술을 가다듬어 어떻게든 군산공장을 살려 내겠다는 일념으로 임해야 한다. 도민들은 이 문제를 지사 한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진정성을 갖고 해결책을 강구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안보와 경제를 하나로 묶어 생각하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편 것이 결국 군산공장 폐쇄라는 결론을 이끌었다. 정부가 GM을 살리려고 재정지원 방안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겠지만 무작정 원칙없이 끌려 가면 안된다. 자칫 도미노현상이 뒤따라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도 도민들의 아픈 상처를 위로하는 척 하면서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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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18.02.25 17:46

미투(Me Too), 연대의 힘

설상가상. 이밖에 달리 표현한 말이 없다. 불붙은 미투 운동으로 고발되는 한국사회의 성폭력 실상이 그렇다. 미투(#MeToo ) 운동은 성폭력 생존자들이 SNS를 통해 자신의 피해 경험을 잇달아 고발하는 현상이다. 사회에 만연해있는 성폭력의 심각성을 알리는 것이 목적인데, 그 힘의 근원은 따로 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공감하며 나서는 연대, 그것이 미투 운동의 힘이다. 미투 운동이 대중에게까지 널리 알려진 것은 지난해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에 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트위터를 통해 미투 캠페인을 제안하면서부터다. 미투에 해시태크(#)를 붙여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자는 알리사의 제안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확산됐다. 하루 만에 50만 건의 트윗이 이어졌으며 페이스북에도 처음 24시간 동안 1,200만 건 이상의 글이 올라왔을 정도다. 공감과 연대는 유명 배우들을 시작으로 정계 재계 문화계 언론계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여성들의 참여로 이어지면서 무서운 힘 이 됐다. 사실 미투 운동은 이미 2006년에 시작됐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성범죄에 취약한 유색 인종 여성 청소년을 위해 이 캠페인을 제안한 것이다. 미투는 말 그대로 나도 겪었다는 뜻이지만 단순히 피해사실을 알리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폭력 피해 경험을 공유하며 생존자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며 우리는 함께 연대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목적이 훨씬 더 크다. 하비 와인스타인 스캔들 이후 미투 운동은 현대사회에 만연해있는 권력형 성범죄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통로가 됐다. 권력형 성범죄는 가해자가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저지르는 성폭력이다. 연대가 이끌어낸 성과다. 요즈음 불붙은 미투 운동으로 드러나는 한국사회의 민낯은 처참한 지경에 와있다. 비단 가해자들이 한 시대의 우상이었던 시인이거나 연출가이거나 배우여서만이 아니다. 더 큰 충격과 분노는 그들의 행태를 침묵과 암묵적 동조로 방관해온 우리 사회의 구조적 환경에 맞닿아 있다. 돌아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이보다 훨씬 이전에 미투 운동에 나섰던 사람들이 있다. 80년대 중반 일어난 부천서 성고문사건 피해자였던 권인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이나 90년대 초반, 한국 최초로 법적으로 제기된 서울대 교수 성희롱사건의 피해자인 우조교가 그들이다. 이들의 선구자적 역할에도 불구하고 직면하게 된 오늘의 상황은 그래서 더 처참하다. 오늘의 미투 운동, 그 연대의 힘을 주목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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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18.02.22 19:08

GM 군산공장

제너럴모터스(GM)가 군산을 벌집으로 만들었다. 설 명절을 앞두고 군산공장 폐쇄 방침을 밝히면서다. 공장 근로자는 물론, 공장 폐쇄로 직격탄을 맞을 군산시민들이 분기탱천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고, 정치권의 눈도 군산에 쏠리고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까지 GM 군산공장의 폐쇄를 거론했다. 국내외 시선이 이렇게 군산에 쏠린 적이 있었는지 싶다.대기업의 한 공장이 문을 닫는 것으로 그치는 문제라면 이리 큰 폭발성을 갖지 않을 것이다. 경기도 부평, 경남도 창원공장의 미래와 연결돼 있다. GM이 한국에서 완전히 철수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파장을 키우고 있다. 여기에 자동차 산업이 갖는 특성도 한몫 하고 있다.자동차 산업의 위축이 어떻게 도시를 피폐하게 만들었는지 미국 디트로이트 시가 보여준다. GM·포드·크라이슬러 등 자동차 빅3의 주력 공장들이 소재한 미국 최대의 자동차 도시인 디트로이트가 자동차 산업의 쇠락과 운명을 같이 했다. 자동차산업의 전성기 시절 185만명에 이르던 거주 인구가 지금은 70만명 규모로 줄었다. 도시인구의 3분이 1이 극빈층으로 전락했으며, 미국 내 범죄 발생률 1위의 오명까지 얻었다. 이는 중산층의 이주와 세수 감소로 이어져 디트로이트 시는 급기야 2013년 파산보호를 신청할 만큼 몰락했다. 군산이 디트로이트의 이런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 그러나 GM의 군산공장 폐쇄를 막을 방안이 현실적으로 뾰족하지 않은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예 GM이 한국을 떠나 디트로이트로 돌아올 예정이라고 했단다. 자국의 대통령까지 거든 마당에 GM의 군산공장 폐쇄 방침의 철회는 더욱 어려워 보인다. GM 경영진은 여야 정치권과 만난 자리에서도 군산공장 폐쇄 철회 가능성을 일축한 것으로 전해졌다.GM사태를 겪으면서 대우자동차가 그리워진다. GM 군산공장은 본래 대우차로 출발했다. IMF가 터지기 전이었던 1997년 4월 대우 승용차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던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은 자동차 생산을 기반으로 대규모 국제컨벤션센터 건립 등 군산발전을 위한 각종 사업을 펼치겠다고 약속했었다. GM의 대우차 인수 후에도 10년간 따라다녔던 지엠대우의 명칭이 2011년도 한국지엠으로 바뀌면서 대우의 그림자까지 사라졌다. GM에 대한 군산시민들의 짝사랑은 그간 차고 넘쳤다. GM의 고비 때마다 차사주기 운동, 정부지원 건의, GM대우의 날 선포, 명예도민증 수여 등으로 정성을 쏟았다. 그런 군산시민들의 눈물을 쏟게 만들고 있는 GM이 야속하다. 감정적으로는 GM을 쫓아내도 시원치 않을 판이다. 그러나 GM문제는 지역의 미래가 걸렸다.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김원용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8.02.22 13:36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가 지난 13일 배임수재와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일간지 전 주필에 대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47만 원을 선고했다.재판부는 언론 전체에 대한 국민 신뢰를 상실시킨 사건이다. 기자로서 의무를 저버렸으며 편집인으로서의 권한을 사적으로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가 엄벌에 처한다고 거창하게 판결문을 내놓았지만 일부만 유죄로 안정하고 집행유예형을 선고한 것은 국민 법감정은 물론 촛불 민심에도 반하는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하다. 징역 4년에 추징금 1억648만원을 구형했던 검찰은 판결에 불복, 즉각 항소했다.한겨레신문은 15일자 사설에서 언론인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를 저버린 행위 주필이라는 지위를 사적 이익을 위해 남용한 사례라며 언론계 전체가 이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사회적 공기라는 언론 역할에서 벗어난 적은 없는지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했다.이번 사건의 기소와 1심 판결이 세상에 남긴 것은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형의 세태가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라는 사실이다. 힘없는 기레기는 콩밥 먹이고, 힘있는 기레기는 배려하니 말이다.재판에서 드러난 전 주필의 범죄는 화이트칼라범죄의 전형이다. 야누스의 얼굴이다. 겉으로 세상의 정의란 정의는 모두 자신이 세운다는 듯 멋지게 사설과 칼럼을 썼지만, 실상은 대기업과 로비꾼으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은 대가로 쓴 글이 수두룩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만나 고재호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 연임 청탁을 하고, 능력도 안되는 자신의 인척을 대우조선해양에 청탁 입사시켰다. 1심 재판부가 남사장과 고사장 관련 배임수재 혐의를 무죄라고 했지만, 이재용 항소심과 최순실 1심이 같은 사안에 대해 엇갈린 판단을 한 것처럼, 항소심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알 수 없다.요즘 돌아가는 판을 보면, 이명박도 박근혜 빰치는 고수였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MB기소는 초읽기에 들어간 형국이다. 세상이 이럴진대 일개 신문사 주필 따위가 무슨 정의의 사도라도 된다는 말인가 싶었을까. 약인지 똥인지 가리지 않은 채 네가 하면 나도 한다, 그랬을까. 언론은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나아가 반성은커녕 지금 이 순간에도 대중을 향해 장난질 치고, 언론계에 분탕질 일삼는 내부자들을 솎아 퇴출시켜야 한다. 곧, 언론이 살 길이다. 비리는 감춰지는 게 아니다. 나는 그와 같은 부류가 아니다라고 끝까지 우겨도 세상은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이미 속속들이 알고 있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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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호
  • 2018.02.21 23:02

티토 별장, MB 별장

발칸반도에 있는 작은 나라 슬로베니아에 있는 ‘블레드 성’은 최고 관광명소 중 한곳인데 최근 국내 한 TV의 인기드라마 ‘흑기사’를 통해 더욱 널리 알려졌다. 블레드 호수는 알프스의 만년설과 빙하가 녹아서 만들어진 호수인데 짙은 옥색을 띄고 있는 호수는 주변에 설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기막힌 풍경을 연출한다.절벽 위에 우뚝 솟은 블레드 성과 호수 한 가운데 있는 블레드 섬도 좋지만 호수 주변에 있는 작은 호텔 하나가 눈길을 끈다.바로 김일성이 와서 묵었다는 ‘티토 별장’이다. 지금은 호텔로 개조해서 사용중이다.유고슬라비아의 티토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저항했던 연합국 지도자들 중 최후의 생존 인물로 1980년 5월 세상을 떠났다.그는 제3세계 비동맹국가연합의 지도자였기에 티토 별장은 엄청날 것 같지만 아주 경치좋은 곳에 지은 집무실겸 휴식처 정도에 불과하다.별장은 원래 사는 집 외에 주로 휴양을 위해 주변 경관이 좋은 곳에 따로 마련한 집을 말한다. 유력한 권력자 치고 그의 이름을 딴 별장이 있기 마련이다.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의 경우 강원 고성 화진포에 별장이 있었고, 경남 진해, 제주 구좌읍 등지에 별장이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화진포에는 이승만 별장, 김일성 별장, 이기붕 별장이 있었다는 점이다.대통령 별장 청남대는 전두환 대통령때 만들어진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때까지 사용되다 국민에게 되돌려줬다.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나 그 가족이 쓰는 것보다는 국민 누구나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여겨 몇번 사용하다 이를 주민에게 넘겼다.그런데 그 이후에 대통령을 지낸 MB(이명박)는 최근 개인 별장 문제로 따가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경기도 가평에 있다는 별장의 경우 전부 호수 쪽을 바라보면서 쉴 수 있는 구조로 돼 있다고 한다.앞서 경주에 있는 곳도 마을 주민들이 ‘이명박 별장’으로 부르고 있다.일부에서는 이곳 이외에도 또다른 MB 별장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있다.서류상 명의가 다스 관계자든, 현대쪽 관계자든 많은 국민들은 실소유주가 MB일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직접 선출 직후 수많은 도지사나 시장, 군수 등은 크게 보잘것 없는 관사 조차도 주민품으로 돌려주겠다며 지역 주민들에게 공개했다.하물며 일국의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국민들이 모르는 별장을 가지고 있다 뒤늦게 알려졌다면 이를 과연 후세의 사가들은 어떻게 평가할지 자못 궁금하다.세계 10대 경제대국의 반열에 오른지 오래됐으나 대한민국은 아직 그 위상에 걸맞는 지도자를 갖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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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18.02.20 23:02

8년은 긴 세월

전반적으로 익산시장 자리만 빼고 민주당이 우세하다. 민주당 지지율이 66%를 기록해 특별한 변화가 생기지 않는한 이번 지방선거는 민주당 압승으로 끝날 것 같다. 누가 경선을 통해 민주당 단체장과 지방의원 공천을 받느냐가 중요하다. 정당공천이 없는 교육감 선거도 김승환교육감을 비롯해 7명이 출마해 관심거리가 됐다. 바른미래당 출범으로 1여4야 정치구도속에서 어떤 당이 2위를 차지할지도 관심사다. 현재까지 피튀기는 곳은 군산시장을 비롯해 정읍 김제 남원 고창 장수군수다. 하지만 다른 시장 군수 자리도 확실하게 우위를 점치기가 쉽지 않아 민주당 당내 경선이 끝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예전에는 교육감 선거가 별로 관심을 못 끌었는데 이번에는 초반부터 관심이 높다. 그 이유는 김 교육감이 3선 출마를 선언하자 6명이 잇따라 출마를 선언하면서 다자구도가 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초반에 다자구도가 형성된 것은 김교육감이 ‘지난 8년간 전북교육을 잘못 이끌어 엉망진창으로 만든 결과’라면서 서로가 전북교육을 살릴 적임자라고 강조한다. 김 교육감측은 내심 다자구도를 반기면서도 행여 유불리에 따라 합종연횡이 조기에 이뤄질 것을 경계하는 눈치다. 그는 현직 이점과 전교조 노조 야권 등 30%에 가까운 콘크리트 지지층 때문에 승산을 자신한다. 또 자신이 세운 좋은 정책들이 자칫 무너질까 염려한 나머지 3선 출마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북대 총장을 두번 역임한 서거석 후보의 지지세 확산에 따른 맹추격이 결코 만만치 않아 현재로선 결과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나락으로 빠졌던 위기의 전북대를 전국 10위권 대학으로 탄탄하게 올려놓은 서 후보는 ‘더이상 현직에게 전북교육을 맡겼다가는 전북의 미래가 암울해질 것 같아 주위 만류를 무릅쓰고 출마했다’고 말했다. 여론조사 결과 서 후보가 상승세를 타 군소 후보들이 서 후보쪽으로 단일화 할 경우 파괴력이 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까지 군소 후보들이 완주할 뜻을 내비쳐 단일화가 당장 이뤄질 것으로는 안 보인다. 촛불로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도민들은 ‘전북교육이 위기에 처했다’고 들고 ‘학력신장을 비롯해 중앙정부와 지역에서 소통을 잘 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상당수 도민들은 ‘김 교육감이 8년동안 모든 역량을 다 드러냈다’면서 ‘최근 그가 그렇게 잘했다고 자랑한 인사도 투명성과 객관성을 잃었다’며 새로운 혁신 아이콘의 출현을 바라고 있다. 학부형이든 아니든간에 유권자들은 전북교육의 장래를 위해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누구를 교육감으로 뽑아야 아이들의 교육이 잘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지금은 학생인권 못지 않게 교권을 존중하고 전반적으로 소통을 잘할 수 있는 민주적 리더십이 절실하다. 바꿀 것을 제때 바꾸지 않으면 썩어 문드러진다는 것을 교훈으로 삼았으면 한다. 위기에 처한 전북교육 도민들이 살리는 길 밖에 없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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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18.02.19 23:02

고은 시인

미당의 아내 사랑은 각별했다고 한다. 방옥숙 여사와 평생을 함께 하며 애틋한 마음을 담은 시도 많이 남겼다. 아내가 세상을 뜨자 그때부터 곡기를 끊고 두 달여 만인 2000년 12월 그 곁으로 갔다. 미당의 고향인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 부부가 나란히 묻혀 있다. 그런 미당도 생전에 외도를 했던 모양이다. 미당과 함께 전주 선미촌을 간 적이 있다는 어떤 문인에 의하면 미당이 방에서 가장 늦게 나오더라단다. 왜 벌써 나왔느냐는 말로 머쓱한 분위기를 바꾸려 했다던가. 보통의 평범한 남자들의 이야기라면 그저 시시한 얘깃거리일 뿐이다. 미당이라는 저명성 때문에 지금껏 지역의 문인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미당의 생전에 성매매 특별법도 없었다. 군대 가기 전 친구의 총각 딱지를 떼도록 하는 게 우정으로 여기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러나 시절이 바뀌었다. 검찰 내 성추행 폭로가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에 등장하는 성폭력 가해자로 고은 시인이 지목되면서 문단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고은 시인이 누구인가. 지난 2005년부터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한국 문단의 간판이다. 그가 이룬 문학적 성과는 석박사 논문과 연구 논문으로 무수히 쌓여 있다. 박근혜 정부 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시인의 이름이 올랐어도 중고교 교과서에서 그의 시를 빼지는 못했다. 시와 소설, 평론, 에세이 등 160여권의 저서를 낸 고은 시인의 대표작은 시집 <만인보>다. 1986년부터 발표하기 시작해 2010년 30권의 책으로 완성된 만인보에는 4001편의 시가 수록됐다. 25년이라는 긴 세월과 작품 수만으로 한국 문단에 특기할 만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 대부분은 소위 밑바닥 생활을 하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이다. 사람은 사람 속에서만 사람이다 세계이다는 1권의 서시가 대변한다. 수원시가 삼고초려 끝에 둥지를 마련해 시인을 모셨고, 서울시가 서울도서관 만인의 방을 개설한 것도 시인의 성취를 기려서다. 군산시에서도 고은 문화사업추진위원회를 대대적으로 꾸려 고은 시 창작음악제, 고은 시 낭송대회, 고은 학술대회 등 문화제를 열어왔다. 이렇게 어려운 이의 아픔을 보듬어온 시인이기에 성폭력 딱지는 그 진위를 떠나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블랙리스트 보다 더 무서운 게 미투(Me Too)라는 것을 시인은 왜 몰랐을까. 내려올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못 본 / 그 꽃.이라는 시인의 짧은 시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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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용
  • 2018.02.1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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