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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소통 2022 시민기자가 뛴다]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

인간에게 죽을 권리(right to die)가 있을까. 생명의 주체인 인간이 죽음의 시기와 방법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논의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그리고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고 의학이 발달하면서 죽을 권리는 점차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오는 용어가 웰다잉, 호스피스 완화(또는 연명)의료, 안락사, 자연사, 존엄사 등이다. 최근 국회에 제출된 조력존엄사를 인정하자는 법률안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이를 정리하면 죽을 권리는 연명의료 중단 → 의사조력사(자살) → 자발적 안락사 등의 3단계로 진행되며 우리나라는 이 중 2단계 문턱에 와 있는 셈이다.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 즉 죽을 권리는 자살의 권리, 연명치료 거부의 권리, 의사의 도움을 받아 죽을 권리 등으로 나눌 수 있다(문재완, 2020). 첫째, 자살의 권리다. 자살은 서구에서 일찍부터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닥쳤을 때 내릴 수 있는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해 훌륭한 죽음으로 간주했다. 그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조력자살과 안락사를 사회적으로 용인된 평범한 행위로 본 것이다. 그러던 것이 기독교의 영향이 커지면서 자살을 살인과 마찬가지로 죄악시했다. 다시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들어 자살은 전적으로 개인 자유의 문제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종결할 수 있는 권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향유하는 권리라는 것이다. 둘째, 연명의료(치료) 거부의 권리다. 흔히 존엄사 또는 소극적 안락사라 불린다. 여기서 연명치료는 의학적 관점에서 의료행위를 시행하더라도 환자를 치료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행해지는 치료를 의미한다. 연명의료 결정법(제2조 4)은 더 구체적으로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및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정하는 것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연명의료에 관한 논의는 2009년 ‘세브란스병원 김 할머니 사건’에서 본격화되었다. 당시 76세의 김 할머니는 폐암 발병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검사를 진행 중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 소위 식물인간 상태에서 인공호흡기와 같은 생명연장 장치에 의존해 중환자실에서 누워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가족들은 평소 할머니의 뜻이라며 병원 측에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청했다. 하지만 병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법정소송에 이르게 되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진입하였고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는 경우라면 해당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를 중단 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어 헌법재판소도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자기결정권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으로 인정되고, 이 권리에 입각하여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진입한 환자의 경우 무의미한 연명치료 장치제거를 허용한다”고 결정했다. 이후 존엄사법으로 불리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2016년 제정되었고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되었다. 셋째, 의사의 조력을 받아 죽을 권리다. 이는 전문가인 의사의 도움을 받아 죽는 자살의 한 유형이다. 의사조력자살(physician-assisted suicide) 또는 의사조력사(physician-assisted death)라 한다. 의사가 회복 가능성 없는 환자에게 죽음을 초래하는 정보와 도구를 제공하고 환자가 스스로 죽음에 이르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의사는 도움을 줄뿐이기 때문에 형법 제 252조의 제2항 자살방조죄의 처벌을 받지 않는다. 지난 6월 15일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 등 12명의 의원이 발의한 일명 조력존엄사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은 현행법이 임종과정만의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임종과정에 있지 않는 환자라도 회복 가능성이 없는 경우 이를 인정하자는 취지에서 제안되었다. 말기환자로서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환자의 경우 본인이 희망하면 담당의사의 조력을 받아 삶을 스스로 종결할 수 있도록 환자에게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주자는 것이다. 이 법률안에서 조력존엄사를 희망하는 사람은 보거복지부 소속의 조력존엄사 심사위원회에 결정을 신청하도록 하고 있다. 또 대상자 결정일로부터 1개월이 경과한 후 본인이 담당의사 및 전문의 2명에게 조력존엄사를 희망한다는 의사표시를 한 경우에 한해 이행토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호스피스·완화의료 학회는 “‘의사조력을 통한 자살’이라는 용어를 ‘조력존엄사’라는 용어로 순화시켰을 뿐 치료하기 어려운 병에 걸린 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자살하는 것을 합법화한 것으로 생명경시 풍조를 유발할 위험이 크다”고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들은 “현행법은 호스피스 돌봄 이용이 암 등 일부 질환에만 국한되고 이 조차도 21.3%에 그쳐 존엄한 죽을 위해서는 존엄한 돌봄이 선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70대 회원들로 구성된 ‘노년 유니온· 내 생애 마지막 기부클럽’은 한발 더 나아가 안락사법 도입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증가하는 연명치료 거부 우리나라 사람들은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 합법화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질까. 이에 대해 지난해 3~4월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호영 교수팀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매우 동의한다’ 61.9%, ‘동의한다’ 14.4% 등 찬성률이 76.3%를 차지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2016년 50%에 비해 크게 높아진 것이다.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의사조력자살 혹은 직접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는 스위스·네덜란드·벨기에·스페인·룩셈부르크·캐나다·미국(10개 주)·호주·뉴질랜드·콜롬비아 등 10개국에 이른다. 존엄사법에 따르면 19세 이상 우리나라 국민은 누구나 등록기관을 찾아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다. 등록기관은 보건소와 의료기관, 비영리법인, 건강보험공단 지소와 국가생명윤리정책원 등 전국 567개소가 지정돼 있다. 이와 함께 지난해 12월 법 개정으로 올해부터 새롭게 노인복지관이 지정 대상에 포함됐다. 전북의 경우 전북대병원, 예수병원, 원광대병원, 대자인병원, 전주병원, 고려병원 등 19곳이다. 이 의향서는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되어야 법적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또한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환자 또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요청에 의해 담당의사가 작성하며 종합병원 등 328개 의료기관이 지정돼 있다. 2022년 6월말 현재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는 134만 8199명에 이른다. 등록 첫해인 2018년 말 8만 6691명에 비해 대폭 증가했다. 성별로는 여성이 69.0%로 남성 31%에 비해 두 배가 넘는다. 연명의료계획서는 9만 1673명이 작성했다. 전북의 경우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는 전국의 6.0%인 8만 891명,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자는 3.0%인 2750명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조상진 전 전주시 노인취업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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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04 16:46

[지역 상생의 길 - KTX광명역세권에서 배운다] ⑫ 롯데프리미엄 아울렛이 들어온다고?

KTX 광명역세권의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입점은 광명시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복병이었다. 이케아는 KTX 광명역세권 부지 78,198㎡를 토지 소유주인 LH공사로부터 매입, 건물 2개 동을 신축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 가운데 1개 동 부지를 광명시와 사전 논의 없이 KB자산운용주식회사에 매각했다. KB자산운용주식회사는 이 부지를 매입해 롯데쇼핑주식회사와 장기임대 계약을 체결했다. 롯데쇼핑은 이곳에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매장을 입점시킬 계획이었다. 이런 롯데쇼핑의 계획은 입점 수순을 밟기 전에 언론에 보도되면서 알려졌다. 이후 2013년 12월 17일 이케아가 광명시에 건축허가 변경 신청을 하면서 관련 사실이 확연히 드러났다. 건축주가 이케아에서 이케아와 롯데쇼핑으로 바뀐 것이다. 이것을 시작으로 롯데쇼핑은 이케아 부지에 대규모 의류점포 매장인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입점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당시 7호선 전철역 광명사거리역 주변에는 60여개의 패션의류매장이 밀집해 ‘광명 패션문화의 거리’를 이루면서 영업을 하고 있었다.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입점 소식이 전해지자 광명 패션문화의 거리에서 패션의류매장을 운영하는 중소상인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입점으로 직격탄을 맞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패션문화의 거리와 가까운 영등포역이나 가산디지털단지에 다양한 형태로 입점한 아울렛과 패션복합몰 때문에 매출에 타격을 입고 있던 터라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입점은 생존을 위협하는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이들 패션 의류 중소상인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2014년 1월 23일, 광명시의회를 방문해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입점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중소상인 보호와 대책마련을 요구했다. 또한 이들은 KTX 광명역세권 개발 업무를 담당하는 미래전략실을 찾아가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유치를 강력히 항의하기도 했다. 이때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입점 업무를 담당하면서 상생협상을 중재했던 김선태 당시 광명시 미래전략실장의 말을 들어보자. “롯데쇼핑이 직접 토지를 매입해 건물을 짓고 입점하려면 지역주민들의 엄청난 반대 때문에 입점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회적인 방법으로 땅을 임대해 건물을 짓고 들어온다는 겁니다. 그러면 비교적 쉽게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죠. 다른 지역에서도 이런 방법으로 진출한 사례가 많다고 합니다.”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입점이 공식화되자 현황 파악과 함께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김선태 미래전략실장, 신세희 지역경제과장 등 관련 부서 공무원들은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이천점을 방문했다. 코스트코와 이케아 입점 때와 마찬가지로 중소상인들이 피해를 입지 않고 롯데프리미엄 아울렛과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코스트코, 이케아 입점 등의 대형 유통기업 관련 업무는 기업경제과 담당으로 신세희 과장과 민문식 팀장이 맡았으나 양기대 당시 광명시장은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입점 업무를 미래전략실로 배정했다. 업무 분담의 효과적인 측면을 고려한 것도 있지만, 김선태 실장 때문이기도 했다. 김선태 실장은 공무원으로는 보기 드물게 배짱이 두둑하면서 뚝심 있게 업무를 추진하는 스타일이다. 그는 옳다고 판단하면 어느 누구 앞이라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밀어붙인다. 양기대 당시 광명시장은 김선태 실장이 중소상인과 롯데프리미엄 아울렛의 상생협상을 맡는다면 중소상인들에게 최대한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런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김선태 실장은 중소상인-롯데프리미엄 아울렛 상생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중소상인 편에서 탁월한 협상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상생협상을 진행하면서 롯데쇼핑으로부터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고 중소상인 편을 든다고 여러 번 항의를 받았습니다. 가장 절실한 건 중소상인들이죠. 그분들은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입점으로 영업에 타격을 받으면 생계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상생은 많이 가진 사람이 적게 가진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인데 일방적으로 한쪽 편을 든다고 주장하면 안 된다, 내가 중소상인 편을 드는 건 당연하다, 많이 가진 쪽이 양보하는 게 맞다고 롯데 측에 말했습니다.” 김 실장은 이런 입장을 상생협상이 마무리될 때까지 바꾸지 않았다. 그는 뚝심과 소신을 갖고 중소상인들과 롯데쇼핑 협상을 중재했다. 김선태 실장은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광명점장에게 협상 실권이 없다고 판단, 책임을 질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임원이 협상 테이블에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여 관철시키기도 했다. 만일 김선태 실장이 없었다면 중소상인들은 롯데쇼핑과 상생협상에서 만족할만한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선태 실장은 말한다. “롯데쇼핑과 협상을 중재하면서 저는 퇴직한 이후에도 계속 광명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중소상인들에게 유리하게 상생협상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중소상인들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상생협상이 마무리된다면 저는 평생 광명에서 살면서 원망을 들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롯데쇼핑이 중소상인들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는 게 진짜 상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게 먹힌 거죠.” 양승조 광명 패션유통사업 협동조합 이사장은 김선태 실장 때문에 롯데프리미엄 아울렛에 맞선 광명 패션유통사업 협동조합에게 유리하게 협상이 진행됐다고 했다. “김선태 실장이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상생협상을 이끌어낸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전국에서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이 마무리된 것은 사실이거든요. 상생협약이 잘 지켜지는 것도 모두 광명시에서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소상인들과 롯데쇼핑의 상생발전 협의는 6월 16일에 1차 협상이 진행됐으며, 2차는 8월 21일에, 3차는 9월 5일에, 4차는 9월 17일에 열렸다. 10월 31일에 열린 5차 회의에서 양쪽 의견이 최종 조율되면서 상생협상이 마무리됐다. 광명 패션유통사업협동조합과 롯데쇼핑의 상생발전 협약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광명 패션유통사업협동조합과 롯데쇼핑의 상생발전 협약 주요 내용 1. 롯데쇼핑(주)는 광명시 패션유통산업의 균형발전과 상생협력을 위해 광명패션유통사업협동조합 조합원이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광명점에 입점, 영업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한다. 2. 롯데쇼핑(주)는 광명시 일자리 창출과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광명점의 광명시민 우선 채용에 적극 노력한다. 3. 롯데쇼핑(주)는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광명점에 광명전통시장과 상생하는 방안을 만드는데 노력하며, 사회복지 사업에 대한 참여 등 광명시 사회공헌 사업에 적극 참여한다. 4. 롯데쇼핑(주)는 패션문화의 거리 활성화 및 지역경제 발전 등을 위한 광명시 지역 협력 사업에 적극 참여한다. 5. 롯데쇼핑(주)는 광명시 관광사업 활성화를 위해 적극 노력한다. 롯데쇼핑은 상생협상이 마무리되자 광명시에 대규모 점포 개설 등록 신청을 한다. 하지만 이것으로 상생협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입점에 따른 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를 검토하는 유통업 상생발전협의회가 남았기 때문이다. 2014년 11월 13일과 21일, 두 차례에 걸쳐 유통업 상생발전협의회가 열렸다. 1차 회의에서 롯데 아울렛 입점은 의류판매업 뿐만 아니라 다른 업종의 소상공인들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으므로 광명시 관내의 중소상인단체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지역협력계획서를 제출할 것과 상생협약 내용을 패션문화의 거리 의류판매점에만 맞추지 말고 광명시 구도심 상권 활성화 차원으로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2차 회의에서 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 검토가 순조롭게 끝났다. 이로써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입점과 관련된 모든 상생협상이 끝나면서 롯데쇼핑과 패션유통 중소상인들의 갈등은 매듭이 풀렸다.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광명점 입점에 따른 상권영향평가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광명점 입점에 따른 상권영향평가서 주요 내용 * 롯데마트 미입점으로 광명시 전통시장에 영향은 크지 않겠으나, 약 6.7km 떨어진 패션문화의 거리 상권에 일부 영향이 예상되지만, 지역 협력 사업 계획의 성실한 준수로 지역 주민, 지역 내 중소기업 및 중소상인들과의 상생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 제1상권인 소하동의 인구가 증가하고 있지만 현대화된 집객시설이 부족하여 서울 서남권이나 안양 등의 인근 도시로 소비 유출이 일어나고 있으며,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광명점 입점은 외부 유출을 막고 인근 도시 주민의 유입으로 이어져 광명 KTX 역세권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지역 경제 규모를 확대시켜 지역 내 중소 상인들의 매출 향상 및 지역 주민들의 생활환경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 기존 상권은 슈퍼마켓 등의 소매점, 생활용품 등의 기본 의식주를 주요 대상으로 하는 반면, 롯데 아울렛 광명점은 의류용품 구매, 아동 놀이시설 이용, 시네마 관람 등으로 동선이 이어져 쇼핑, 문화 향유와 즐거움의 요소가 복합된 공간을 활보하는 욕구 충족을 가능케 할 것이다. 여기에 기존 사업자인 코스트코, 이케아와 더불어 새로운 소비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분석된다. * 롯데 아울렛 광명점은 지역 경제를 구성하는 일원으로서 지역경제 선순환을 유도할 것임. 신규로 창출되는 일자리는 지역민과 함께 하고 지역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이익을 다시 지역으로 환원시켜 광명시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 패션유통사업협동조합과 롯데의 상생협약은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개점을 일주일 앞둔 2014년 11월 27일에 이루어졌다. 2014년 12월 5일 롯데프리미엄 아울렛이 개점되었다. 이로 인해 광명시민 500여 명이 일자리를 찾았다. 이 역시 상생협약의 효과였다. /양기대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광명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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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03 18:10

[전북 일가(一家), 이 사람] 손길환국악기연구소 손길환·손태백, 연구하며 몸으로 익힌 기술…40여년 외로운 길

처음 이야기의 시작은 '전북에 태평소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었다. 태평소라니, 낯익은 단어다. 초등학교에서 3년여 피리와 태평소를 배운 적이 있었다. 이십여 년 만에 다시 듣게 된 그 '태평소'라는 말에 귀가 쫑긋했다. 게다가 아버지에 이어 아들까지 대를 이어서 태평소를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에 더욱 관심이 생겼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태평소를 제작하는 곳이라는 이야기도 그때 들었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그 수많은 '태평소'들은 무엇일까. 궁금증이 발걸음을 이끌었다. 우선, 태평소(太平簫)는 전통 관악기이자 국악기다. 나무로 만든 관에 여덟 개의 구멍을 뚫어, 아래 끝에는 깔때기 모양의 놋쇠를 달고, 부리에는 갈대로 만든 서를 끼워 분다. 농악이나 불교음악, 군중음악, 군영음악 등에 사용하는 악기 중 유일하게 선율을 연주하는 악기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서도 ‘태평소는 규격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음정과 음고가 일정하지 않다’고 적혀있다. 이 때문에 만드는 사람에 따라 분류가 달라지기도 하고, 표준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지난 6월 말 파란 여름 하늘에 해가 쨍쨍 내리쬐던 날. 전주에서 40여 분을 달려 정읍에 위치한 손길환 국악기 연구소를 찾았다. 손길환 소장(64)과 그의 맏아들이자 제자 손태백 대표(33). 유쾌한 사람. 첫인상이 그랬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 국내 유일 업(業)이 된 거죠. 언제나 그렇듯 시작이 궁금했다. 손 소장은 처음엔 취미였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전라도에서 내로라하는 목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나무 다루는 일은 눈에 익었다. 풍물패 활동을 하던 부친의 모습을 보고 자라며 자연스럽게 태평소를 접했다. 나이가 들고 직장, 아파트, 동네까지 가는 곳마다 풍물패를 만들고 패장으로 활동하다 보니, 내 태평소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 일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이제는 아들도 함께한다. 연구하고 제작하기 시작한 것만 따져도 40년은 족히 넘는 세월이다. 손 소장은 태평소가 눈에 띄는 악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만들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태평소를 전문적으로 제조하는 사람이 본인뿐이라는 것은 우연한 기회에 알게됐다. 지난 2018년 국립국악원이 '실내악용 태평소 특허기술'을 국악기 제작업체에 기술을 이전하면서다. 그곳이 손길환 국악기 연구소다. "우리보다 더 큰 곳들도 있을 텐데 왜 우리한테까지 왔을까 의문이었죠. 그런데 물어보니, 태평소 만드는 곳이 저희밖에 없대요." 국방부 군악대, 취타대나 국악원 등 태평소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손 씨의 태평소가 있다. 모양뿐 아니라 소리만 들어도 자신이 만든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태평소는 '비밀'이 많은 악기입니다 태평소에 대해 설명을 듣다 보니, 자꾸 중요한 것 한가지씩이 빠져있는 느낌이다. 어떤 나무로 만드는지, 어떤 과정을 어떻게 거치는지. 손 소장도 대답은 하지만 모호하게 말한다. 손 소장은 "악기에는 비밀이 많이 숨겨져 있다"고 말한다. 인터뷰도 그동안 하지 않은 이유가 비밀이 많아서라는 이야기다. 태평소 하나를 만들기 위한 공정은 셀 수가 없다. 아니, 셀 수 있다고 해도 기간이 짐작이 안된다. 우선 태평소를 떠올릴 때 기둥으로 볼 수 있는 '관'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나무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각진 나무 하나를 둥글게 깎아야 하고, 옻칠과 구멍을 뚫는 작업도 해야 한다. 이 과정들이 몇 번씩 반복되고, 나무 자체를 깎고 쪄서 말리는 과정도 1∼2년에 끝나지 않는다. 나무 하나가 태평소로 만들어지기까지 7∼8년은 족히 소요되는 셈이다. "누군가 태평소를 만드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좋을 텐데 아무리 물어봐도 없더라고요. 봉사 문고리 잡듯 힘들었습니다." 그 시행착오를 직접 부딪쳐가며 버텨왔다. 그래도 악기라는 게 나무는 특히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시간을 단축하려면 문제가 생기는 것. "나무는 기다려야한다는 겁니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량 생산 중국산 제품들이 손 씨의 제품을 따라올 수 없는 이유다. 아버지와 아들 3대, 숱한 실패에도 애정 가득 손 소장은 "(태평소는) 아버님께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한다. 부친은 집 짓는 목수였지만, 손 소장이 열 살 무렵 군산으로 이사한 이후에는 장롱이나 찬장도 만들고, 탁자도 만들며 분야를 넓혀갔다. 아버지 옆에서 '가리'라고 하는 나무 깎는 기계를 구르며 눈에 익혔던 것이 지금의 자산이 됐다. 고등학교를 익산으로 진학하며 잠시 멀어졌지만, 군산 한국유리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든 풍물패 덕분에 태평소와 다시 접점을 이을 수 있었다. 도립국악원 소속 박지중 선생과도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지금의 태평소 기틀을 다졌다. 배우고 만들고, 연구했지만, '돈'은 안되다 보니 직장 생활도 꼬박 25년을 채웠다. 눈부시게 화려하지는 않았어도 끈기 있고 성실한 시간이었다. "아들은 제가 꼬셨어요. 아깝잖아요. 인생은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고 계속 꼬셨죠. 중학생 때부터" 맏아들이자 제자인 손태백 대표의 이야기를 할 때면 애정이 뚝뚝 떨어진다. 큰아들인 태백 씨의 재능은 악기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연주에서 빛이 났다.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금세 예술고 학생들을 따라잡았고, 대학도 피리로 진학했다. 아들에 대한 말을 꺼낼때면 퉁명스럽게 이야기하지만, 하나하나 듣다 보면 어마어마한 칭찬들이다. "저한테는 없는걸 다 가지고 있어요. 음감도 있고, 욕심도 있고, 꼬라지도 있어서 대충하는 게 없어요. 검수할 때 마음에 안들면 하루 종일 붙들고 있습니다. 대충하는 법이 없거든요." 그래도 아들은 편할 거라 덧붙인다. 연구과정에서 얻은 숱한 실패들을 아버지인 본인이 했기 때문이다. 국악기는 참 외로운 분야입니다. 무척이나 아쉽죠. 아쉬운 것을 묻는 말에는 금방 답이 나온다. 연구소에서 만든 소책자에는 수상 경력도 쓰여 있는데, 가장 위에 있는 경력이 바로 '제1회 한국악기공모전 전통악기분야 차상(태평소)'이다. 그런데 공모전은 1회로 끝이었다고 한다. 국악기만 경쟁하는 곳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것. 전주 전통공예전국대전에서도 기타부문에서 동상과 장려상, 특성, 입선 등 수상을 하긴 했지만 국악기 부문이 아니라 기타 부문이다. 매듭, 인두화, 붓, 가죽, 유리, 캘리그래피 등이 함께 경쟁하는 부문이다. "전주라는 우리 지역에서 하는 전통공예전국대전이 그나마 전국에서 크죠. 2∼3년 간격으로라도 선을 보이고는 있습니다. 다만, 외롭죠. 기타 부문에서 악기를 두고 경쟁한다는 것이 아이러니 같습니다." 인연과 운명, 그리고 가족. 버틸 수 있게 해준 힘입니다. "어릴 땐 아버지 옆에서 돕는 게 참 지겨웠는데, 그런데 제가 어느 날 그걸 만들고 있더라고요. 이게 인연인가 싶기도 하고요." 손 소장은 모든 것이 '인연' 같다고 말하기도, '팔자'라고도 하며 섞어 부른다. 종교는 없지만 그런 마음으로 인생을 살려고 한다고 말한다. 앞으로의 목표와 같은, 상투적인 질문을 했더니, 금방 시큰둥한 말투로 바뀐다. "취미로 했고, 나이 들고도 돈이 되겠다고 해서 했지요. 악기 장인으로서 자부심 등 평생의 업으로 생각하고 그런 건 아닙니다. 하다 보니 이렇게 됐고요. 감사하게도 먹고사는데 지장은 없고요. 앞으로도 쭉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대답이 겸연쩍었는지 말하고 크게 웃는다. 그러면서 '가족' 이야기를 덧붙였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악기는 만들었지만, 제대로 팔리지 않았다. 공연도 사라지고, 입문하려는 사람들도 줄었기 때문. 통상적으로 1년에 150개에서 200개가 팔리지만 지난 2년여 동안에는 뚝 끊겨 굉장히 힘들었다. 하지만 지치지 않은 것은 가족과 악기. 이것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악기를 물려줄 수 있다는 생각이 크다. "내가 힘 있을 때 열심히 만들어놓으면 100년 뒤에도 내 악기를 사가는 사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저는 게을러질 수 없어요. 재미있어요. 100년 뒤 제 손주가 직업이 없더라도 제 악기를 팔 수는 있겠죠. 그때는 35만 원(지금은 30만 원 남짓이다)은 받지 않을까요." 끝으로 손 소장은 한마디를 덧붙인다. "제가 좋아하는 말이 '뭐든지 30년 넘으면 좀 된다더라' 이거에요. 30년은 너무 기니까 눈 딱 감고 3년만 해보세요. 그러면 무엇이든 인생에 중요한 동반자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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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경석
  • 2022.07.03 17:46

[참여&소통 2022 시민기자가 뛴다]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참사를 애도하며…

2022년 6월 9일 오전 10시 55분경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지방법원 옆 변호사 사무실 건물에서 방화로 보이는 화재가 발생해 방화 용의자를 포함해 7명이 숨지고 40여 명이 다쳤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처음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 카카오톡 단체창에는 연이어 사고와 관련된 메시지가 올라왔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올라오기도 했고 다들 참담한 심정으로 속보를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는 하루였다. 그날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사건의 전말은 수억 원대 투자 반환금 소송을 했다가 1심에서 패소한 의뢰인이 상대편 변호사 사무실에 찾아가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던 변호사와 직원들을 흉기로 찌르고 방화를 저지른 것이었다. 심지어 희생된 사람들은 그 사건과는 무관한 사무실을 함께 사용하는 변호사와 직원들이었다. 정작 가해자가 앙심을 품고 찾아간 변호사는 지방재판 중이어서 화를 면했고, 사망한 변호사와 직원인 사무장은 사촌 관계이고, 여직원은 이제 막 결혼한 신혼이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이번 참사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커졌다. 테러에 가까운 방화가 애꿎은 희생자들을 만들었다.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대구 수성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 현장에서 정밀 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를 확인하고 나니 허탈한 마음과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인지에 대한 분노가 치솟았다. 그리고는 사무실에 앉아 최근에 나에게 불만을 가질 만한 사람은 없었는지 화재가 발생하면 지금 내 머리 위에 있는 스프링클러는 제대로 작동을 하긴 하는 것인지, 이제는 의뢰인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나에게 보복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생각하며 재판을 해야 하는 것인지 이러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또한 이러한 위험을 막는 보다 확실한 방법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보안요원을 채용하는 것은 비용이 너무 부담되는 것이 사실이고, 영업을 위해 출입 통제를 강화하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어렵다 보니 고민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이번 사건 이후 가스총이나 삼단봉 등 개인 호신용구를 구입을 권유 받기도 했는데, 대한변호사협회까지 나서서 호신용구를 협회 차원에서 공동구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말도 들린다. 변호사업무를 하는데 이러한 호신용구까지 필요하다니 더 참담한 심정이다. 재판 결과는 대개 승패가 나눠지다 보니 패자는 억울함과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나 역시 변호사로서 10년 정도 일 해오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는 했는데 법정에서 변론 후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상대 의뢰인이 ‘저런 사기꾼 편인 당신도 똑같은 사람’이라며 소리를 지르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막무가내로 사무실에 찾아오기도 하고, 심지어 상대방 변호사가 나의 핸드폰 번호를 자신의 의뢰인에게 줘 개인번호로 전화가 오는 황당한 일이 있기도 했다. 변호사가 의뢰인을 대신해서 분쟁 상대방과 법리적으로 다투다 보니 어느 순간 당사자와 변호사를 동일시하여 적대감을 표출하는 사례들이 발생하는 것 같다. 심지어 소송과정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다 보니 그 과정에서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기도 한다. 다른 동료 변호사들 역시 상대 측 의뢰인들의 폭언, 협박 등이 비일비재한 현상이라고 이야기 하고는 한다. 이렇듯 변론 과정에서 의뢰인뿐만 아니라 상대방으로부터 이런저런 곤욕을 치른 일들이 있다. 이번 참사가 더 큰 충격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변호사들은 실명과 사무실 위치까지 다 공개되어 있다 보니 위험에 상시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 때문이다. 미디어가 만들어 낸 변호사의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누군가는 ‘변호사가 뭔가를 잘못했겠지’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주변의 변호사 누구를 봐도 이런 일을 겪어야 할 만큼 잘못된 일을 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의뢰인을 위해 판례와 논문을 뒤지고, 상대방 주장의 허점을 찾아 공격하며, 최대한 의뢰인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정리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고, 가끔은 공익활동을 하면서 사회에 기여도 하며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변호사는 그 사건을 발생시킨 당사자가 아니다. 변호사는 그저 당사자의 권익을 위해 변호·대리하며 맡은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더욱이 다른 어떤 이유가 있었다 해도 그와 같은 테러행위에 정당성을 부여 할 수는 없다. 이와 같은 사적 보복은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행위이고, 우리 사법 시스템의 한 축인 변호사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다. 상대방의 보복이 무서워 변론 활동이 제한된다면 이는 결국 실체적 진실 발견에 저해가 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하여 잘못된 판결이 내려진다면 사법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해 변호사 대상 범죄를 가중처벌하는 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발의안에는 △변호사 및 그 사무직원을 폭행하여 상해·중상해·사망에 이르게 하는 경우 △폭행·협박 등 방법으로 변호사의 직무수행을 방해하는 경우 △변호사 업무수행을 위한 시설·기물을 파괴·손상하는 경우 가중처벌한다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라고 한다. 변호사가 그 직무를 성실히 수행했다는 이유로 도리어 범죄의 대상이 되는 사회가 정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상적 변론 활동이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제도적 장치와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우아롬 법무법인 한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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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27 17:56

[지역 상생의 길 - KTX광명역세권에서 배운다] ⑪ 상생실천으로 가장 주목받게 된 KTX광명역세권

광명시 중소상인과 이케아의 상생협약 체결로 이케아 입점 문제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우선 이케아 입점이 광명시 관내 상권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한 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를 작성해야만 했다. 이를 위해 광명시는 부시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를 구성했다. 2014년 5월 26일 광명시청에서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가 열렸다. 김용연 광명부시장이 위원장으로 참석했으며, 신세희 기업경제과장, 안경애 광명시장상점가진흥사업협동조합 이사장, 김남현 광명시슈퍼마켓협동조합 이사장, 이진발 광명시생활용품협동조합 이사장 등 광명시 중소상인들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특히 지역협력계획서의 경우, 광명시 구도심권 활성화 및 사회공헌사업과 광명시민 우선채용 계획에 대해 구체적인 사업계획과 이행계획을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2014년 7월 24일 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는 완성됐다. 상권영향평가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광명시에는 대규모 점포, 전통시장, 다수의 소매점이 존재하나 이케아 판매상품과 겹치는 비중이 낮아 이케아 개점으로 부정적인 영향이 적을 것으로 판단되며, 광명시 주요 상권은 광명동 및 철산동에 집중돼 있어 이케아 사업예정지인 소하동은 KTX 등 교통인프라 확충 및 역세권 복합개발계획에 따라 지역 활성화가 기대된다. * 광명시의 인구 통계현황, 기존 사업자, 상권의 특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이케아 개점은 광명시 세수확대 및 고용창출 효과를 유발해 기존 사업자들과 신규 고객의 유입확대로 부정적 효과보다 긍정적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은 지역협력계획서 주요 내용이다. * 이케아는 광명시 지역발전과 함께 기존 사업자들과 상생을 구축하기 위해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이케아 매장 내에 350평 규모의 지역 업체 전시장을 설치하고, 광명시와 협력해 중소상인 상생협력 방안을 지속적으로 발굴한다. * 이케아 코리아 본사를 광명으로 이전하고 이케아 광명점 직원은 광명시민을 우선 채용한다. 광명시민을 위한 어린이집을 개원하며 구도심권 활성화 및 사회공헌사업에 참여한다. 이러한 상생협약의 결과로 이케아는 개점을 앞두고 직원을 채용하면서 광명시민 300여명을 채용했다. 이케아의 광명시민 우선채용은 2015년과 2016년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져 2016년에는 500여 명이 넘는 광명시민들이 이케아 광명점에서 일했다. 또한 2014년 7월 23일에는 광명시 요청으로 이케아에서 발주하는 사업에 광명시 관내업체가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광명시-이케아 실무협의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신세희 과장을 포함한 광명시 공무원들과 김한진 이케아 코리아 이사 등 이케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케아는 개점을 앞두고 폐기물처리업체, 세탁업체, 음식물처리업체 등의 협력업체를 선정할 계획이었다. 광명시는 이케아 입점으로 유발되는 경제효과가 광명시 관내 중소기업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면서 이케아가 광명시 관내업체를 협력업체로 선정할 수 있도록 적극 유도하였다. 그리고 2014년 12월 18일 드디어 이케아 광명점이 문을 열었다. 2011년 12월 27일 광명시가 이케아 유치를 발표한 뒤 이케아 입점까지 꼬박 3년이 걸린 셈이다. 김한진 이케아 코리아 이사의 말을 들어보자. “양기대 광명시장 등의 중재로 수 차례의 협의과정을 거치면서 지역상인단체들의 기대와 우려를 알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그들에게 이케아 광명점이 가져올 긍정적인 효과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서로 진심을 가지고 대화하면 양쪽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도움을 준 양기대 광명시장을 비롯한 관계부서 공무원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케아 광명점은 광명시의 일원으로 전국에 광명시를 알리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앞으로 열린 마음으로 광명시의 소비자들과 중소상인들 위해 좋은 이웃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케아 개점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이케아 개점은 전국적인 관심사였다. 이케아 개점일에 광명시는 1981년 시 승격 이후 처음으로 KTX 광명역세권으로 향하는 도로가 꽉꽉 막히면서 거대한 주차장으로 바뀌는 사태가 벌어졌다. 개점시간 전부터 이케아 매장으로 향하는 차량들로 KTX 광명역 주변 간선도로가 마비되면서 도로에는 차량이 2km 이상 길게 늘어섰다. 이케아와 롯데프리미엄 아울렛은 3,500여 대의 차량을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케아 개점일에 방문객이 몰려들 것을 예상, 600대를 주차할 수 있는 임시주차장까지 만들었지만 한꺼번에 몰려든 차량으로 주차난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했다. 도시가 완전히 마비된 것 같은 사태가 벌어지자 광명시 공무원들은 광명시 초유의 교통난과 주차난 해소를 위해 날마다 대책회의를 열었으며, 휴일도 없이 비상근무 체제에 들어갔다. 광명시, 코레일, 광명경찰서, LH공사는 합동으로 ‘KTX 광명역세권 교통특별대책본부’를 설치,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섰다. 이케아와 롯데프리미엄 아울렛은 기 확보한 주차장 외에 550대를 더 주차할 수 있는 임시주차장을 마련하고 무료주차시간을 5시간에서 3시간으로 단축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이런 상황은 오래되지 않아 진정됐다. 광명시의 능동적인 대처로 교통체증과 주차난이 해소됐기 때문이다. 전인자 당시 광명시 자치행정국장의 말을 들어보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저희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직원들은 비상근무 체제에 들어갔고 광명경찰서도 마찬가지였죠. 늘 조용하던 도시가 이케아 개점으로 갑자기 복잡해지면서 교통체증이 유발돼 시민들의 불편이 가중되었고 민원이 쏟아졌습니다. 무엇보다도 민원 해결이 우선이라 거기에 초점을 맞춰 행정력을 집중했어요. 이케아 입점으로 온 도시가 마비된 것 같아 시민들에게 죄송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케아가 개점했는데 매장이 썰렁하다면 KTX 광명역세권 활성화가 실패한 것이 되기 때문이죠. 몰려드는 차량들을 보면서 일단은 성공했다는 안도감을 느꼈던 것도 사실입니다.” 전인자 국장 설명대로 이케아 개점으로 불거진 교통문제와 주차난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해결되었다. 이케아는 입점 1년 뒤, 기자회견을 열어 1년 동안 670만 명이 이케아 광명점을 방문했다고 발표했다. 이케아는 1년 동안 3,08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광명시의 코스트코, 이케아 유치가 성공을 거두면서 한 때 광명시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KTX 광명역세권은 전국에서 가장 주목받게 되었다. 광명시의 KTX 광명역세권 활성화 의지가 값진 성공을 거두면서 광명시 브랜드 가치는 상승했으며 도시의 경쟁력이 강화되는 효과를 거뒀다. /양기대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광명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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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26 18:08

김남규 전주시의장 “지역 발전 위해 헌신하는 자세로 살겠습니다”

김남규 전주시의회 의장이 오는 30일 24년 동안의 의정 생활을 마무리한다. 후배들을 위해 앞길을 터줘야 한다는 생각이 아름다운 퇴장의 이유가 됐다. 김 의장은 제6대 전주시의회를 시작으로 11대까지 무려 여섯 차례나 주민의 선택을 받아 의원 배지를 단 인물이다. 그는 특히나 20년 넘는 의원 생활 중 문화·예술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는 평가도 받는다. 퇴임을 앞둔 김 의장을 만나 그동안을 회고하고, 퇴임 후 활동에 대해 들어봤다. 6선 의원으로 24년간 의정 활동을 하셨습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의정 활동의 기본에 충실했습니다. 6번이나 당선된 것은 머리가 아닌, 가슴과 발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슴으로 다가서고, 발로 뛰는 의정 생활을 했습니다. 꼭 가야 할 곳에 남들보다 먼저가 있었고, 감동이 있는 지역구 활동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주민들에게 항상 감사한 생각입니다.” 내심 7선 의원에 도전하고 싶은 욕심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솔직히 7선을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에서는 6·1지방선거에서 청년과 여성을 많이 우대했습니다.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후배들이지만 과감하게 물려줘야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기득권을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퇴장의 시점을 잘 잡는 것도 정치인의 덕목이고, 입신(立身)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결심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의원 생활이 무려 24년입니다. 그동안 기억에 남는 일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IMF 시절 함박눈이 펑펑 내릴 때, 제가 배달하는 도시락을 기다리는 노인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누가 알아주지도 않았지만 ‘소외된 곳에서 살아가는 분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며 배달을 했습니다. 그 때 도시락을 두 손에 받으며 기뻐하던 그 분들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처음 의정 생활을 시작할 때 ‘가장 모범적인 지방의원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항상 근본에 충실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특히 문화 분야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전주는 전국적으로 문화 분야의 지수가 가장 높은 곳이라고 생각하고, 그 분야를 통해 지역 발전을 이끌고 싶었습니다. 문화경제위원회에서 전문성 있는 자기 브랜드를 만든 것 같습니다. 의원 생활 초창기인 20여 년 전에는 문화 부서를 다들 기피했지만 나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문화의 씨앗을 뿌렸다고 자부합니다. 낙후된 북부권 개발을 위해 에코시티 개발과 학교 유치, 건지산과 오송제를 명품화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지금도 보람된 일을 했다고 생각하고,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반대로 정말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일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시의원 생활을 하다 보면 다양한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시민이 원하는 의정 생활을 하지 못했을 때가 가장 아쉬운데, 그랬던 기억이 바로 시내버스 파업입니다. 아이들이 등·하교를 제때 하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 속에서 느꼈던 안타까움은 지금도 아쉽기만 합니다. 삼천동의 쓰레기 소각장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좀 더 멀리 내다보고 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의정 활동을 펼쳤어야 했는데, 시내 전체에 쓰레기 대란이 일어나 시민이 불편을 크게 겪었던 것은 24년 의정 생활을 되돌아볼 때 지금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전라북도 정치권 인사 중 문화·예술 분야에서 단연 최고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동안 문화 예술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해오셨나요. “한옥마을을 브랜드화하는 데 힘을 많이 쏟았습니다. 20여 년간 한옥보존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한옥마을의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첫 회부터 열정을 다 했고, 지금 전주영화제는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영화제가 됐습니다.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영화제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습니다. 맛의 도시의 위상을 발판으로 음식관광과 미식관광을 활성화하려고 했었는데, 이 분야에서는 성과를 만들지 못한 것 같아 아쉽기만 합니다. 음식을 발판으로 한 관광산업 활성화는 후배 정치인들이 이끌어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11대 전주시의회를 마무리하는 의장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었나요. “지방의회의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지만, 이에 부응하지 못한 점도 많은 것 같습니다. 의원들의 도덕적 해이와 시민과의 소통 부재, 여론 수렴의 한계 등이 그런 것입니다. 의회는 정책 생산과 집행부 견제 역할에 더욱 충실해야 하고, 시민에게 더 다가서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11대 전주시의회를 잘 마무리하고, 12대 의회를 준비하는 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예산과 정책, 입법 분야의 강화와 홍보 분야의 대폭적인 조직 개편을 통해 시대의 변화에 맞는 의회 활동과 이를 통한 시민의 알권리 충족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퇴임 이후에는 어떤 일을 하실 계획이신가요. “전주시가 앞으로 10~20년 후에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시민거버넌스’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시민과 함께 의견을 나누는 공유 공간을 만들고, 관광과 예술, 경제의 도시로 전주시가 발전할 수 있도록 밑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시민거너넌스가 시민운동 차원으로 승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은 소박한 소망입니다.”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24년 동안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 준 시민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한솥밥을 먹으며 지역 발전에 힘을 쏟은 동료, 선·후배 의원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의 삶은 지역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로 살고 싶습니다.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줬으면 합니다. 24년 의정 생활의 마지막을 아름다운 꽃길로 단장해 주신 시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늘 기쁜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는 전주시민의 김남규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기획
  • 강정원
  • 2022.06.23 17:06

[문화&공감 2022 시민기자가 뛴다] 다시 찾은 생명, 압화를 말한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 가면 손주들 온다고 문살에 붙어있던 누런 종이를 떼어내고 밀가루 풀을 직접 쒀 바르던 문살 창호가 생각난다. 창호지 안쪽에는 마당에 피어있던 꽃잎 몇 장을 따서 얹고 다시 한 장을 덧바르면 우리들은 예쁘다며 좋아했던 추억이 있다. 우리 선조들이 문살 창호지에 단풍잎, 은행잎, 코스모스 등을 넣어 장식했던 것처럼 압화의 방법으로 자연에서 얻어지는 것들을 실생활에 응용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재탄생 시킨다. 어릴 적 생각하며 압화 전문가 ‘꽃그림 이야기’의 주인공인 전은숙 작가를 만나러 부안 작업실을 찾았다. 들꽃, 다시 피어나다 압화는 공예적, 실용적이며 예술이라는 또 다른 영역으로 인식된다. 조형예술의 일종으로 꽃과 잎을 눌러서 말린 그림을 말한다. 아름다운 꽃과 잎사귀 등을 이용하기에 어떤 미술소재보다도 정적이며 소박하고 자연의 사계절 색을 회화적으로 표현한다. 작업을 통해 자연을 이해하고 또 다른 자연의 모습을 알아간다. 자연과 함께하며 자연의 모습을 알아 간다는 것, 가장 큰 장점이라는 압화 작품은 보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秋’ 작품은 콩잎, 해바라기, 가시여뀌, 담뱃잎, 기린 기생초등을 이용해 작품을 완성했다. 작가는 ‘꽃그림 이야기’ 동아리를 활성화 시켰는데 활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부안여성회관 압화교육 출강 당시 꽃으로 만나 꽃으로 이야기하다란 뜻을 함께한 수강생들을 중심으로 동아리를 만들면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다양한 연령대의 회원들이 3~4년 동안 활동을 함께 해 오고 있으며 오랜 기간 참선의 자세로 가족처럼 활동을 하고 있는 회원들은 전국의 압화 공모전에서 다수의 수상을 차지할 만큼 경력이 쌓였고 회원전 등을 통해 압화 작가로의 길에 한걸음씩 내딛고 있다. ‘내변산의 봄’ 작품은 노루귀, 다닥냉이, 왓소니아, 떡쑥, 가죽나무 껍질 등을 이용해 작품을 완성했다. 작가는 꽃꽂이를 통해 화훼장식 기능사 공부를 하고 있을 때 꽃이라는 소재가 마음을 행복하게 한다는 걸 알았다. 꽃에는 다양한 색과 질감 그리고 향기가 있다. 자연이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 ‘꽃’이라는 생각에 압화를 연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압화를 배우기 시작했을 당시 국내에 압화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때였다. 지금처럼 압화 도구나 꽃 건조용품이 발달되지 않아 모든 게 부족한 상태로 부안에서 처음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압화는 시간을 넘고 계절을 지나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압화가 국내에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봄이 시작되고 햇살이 쏟아질 듯 한 어느 날 내변산의 봄을 즐기며 사색의 시간을 즐기던 내게 발길 멈추게 했던 봄의 왈츠 같았던 그 곳을 작품에 담고자 했다. 작품에 쓰인 모든 소재는 내변산에서부터 격포 해안 길을 따라 들에 핀 꽃과 풀잎을 채취 건조하여 만든 소재를 이용한 작품이다.(작가노트 중에서) 누름 꽃이 만들어지는 과정 압화는 생화 채취 후 전 처리과정과 건조과정을 잘 알아야 하고 색의 변화와 보관법 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건조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작품완성은 압화 작품을 미완성으로 만들 수 있다. 이렇듯 전 처리과정, 건조과정, 보관법등을 잘 이해한다면 압화작품을 더욱 아름답고 오랫동안 볼 수 있게 해 작품의 가치를 높게 평가 받을 수 있다. 핀셋을 이용해 정교하게 말린꽃을 올리고 있다. 압화는 자연소재를 채취 건조한 소재로만 작업하기 때문에 다른 공예보다 많은 어려움을 수반한다. 섬세함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 장시간의 작업과정을 통해 완성되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만큼 압화의 매력은 깊고 가치가 높다. 들로 산으로 발길을 옮겨야 하는 작업 또한 시간과 열정이 허락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압화다. 자연에서 얻어지는 것들로 작업을 하는 만큼 작가가 살고 있는 천혜의 경관 ‘부안’은 압화를 하기에 최고의 환경인 것 같다. 꽃 이름은 모르지만 계절마다 봤던 꽃들이라 정겹다. 들국화와 장미가 보이고 향나무 같은 잎사귀도 보이는데 그 본질은 그대로 살려 또 다른 형태의 작품이 완성됨이 놀랍다. 자연에서 알게 된 사계절의 변화와 계절의 색에서 늘 설렘으로 만나는 기다림의 시간 앞에 들꽃과 들풀의 모습은 행복이고 즐거움의 여유로 다가온다며 작가는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마냥 들 떠있다. 압화를 통한 향기 나는 삶 ‘풍요’ 작품은 갯모밀, 노루귀, 팬지, 비올라, 자작나무 껍질 등을 이용한 작품이다. 작가는 계절을 만지는 작업을 통해 자연을 닮아가는 본인을 발견하면서 자연이 주는 건강한 행복 앞에 또 다른 삶의 행복을 만나는 길임을 알게 됐다고 한다. 작업이 힘들고 어려우며 완성까지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만큼 꽃그림 전시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동아리 회원들이 지난해 중국 청도에서 열린 압화전에 참여 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로 나아갈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압화는 앞으로 더 많은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작가는 압화를 폭넓게 발전시켜 액세서리와 소품 등을 다양한 상품으로 만들고 작품을 통해 예술작품을 깊이 있게 발전시키며 많은 사람들과 예술로의 길을 가고 싶다고 말한다. 전은숙 작가는 2006년에 압화공예가로 활동을 시작하여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내고자 회화작품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압화대전 대상 (농림부장관상)을 수상 그 외 코리아아트페스타전, 부안미협회원전, 군산 아트페어 참여 꽃그림이야기회원3회 등 전시를 했다. 부안독립신문 압화이야기로 1년간 연재하면서 압화를 소개했다. (사)한국압화아카데미협회 이사와 대한민국 압화대전 심사위원, 사)한국미술협회 정회원 등 꽃그림이야기를 운영하며 자연의 풀꽃을 작품에 담고자 하는 압화작가들과 동행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지영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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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2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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