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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영산재,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처용무 5건의 무형문화재가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으로 등재될 전망이다. 문화재청은 30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위원회에서 강강술래 등 5건의 세계무형유산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고 29일 말했다. 이들 무형문화재는 무형유산위원회 사전 자문회의에서 등재 권고를 받아 본회의에서 등재가 확실시된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세계무형유산은 76개국 166건이 있으며 우리나라는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2001년), 판소리(2003년), 강릉단오제(2005년) 등 3건이 등재돼 있어 이번에 5건이 추가 등재되면 모두 8건의 세계무형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강강술래(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는 설, 대보름, 추석 등에 행해진 노래, 무용, 음악이 삼위일체로 이뤄진 원시종합예술이다. 남사당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는 조선후기 남사당패가 농ㆍ어촌을 돌며 주로 서민층을 대상으로 했던 놀이로 양반사회의 부도덕성을 놀이를 통해 비판하고 민중의식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 영산재(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는 49재의 한 형태로 영혼이 불교를 믿고 의지함으로써 극락왕생하게 하는 의식이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은 제주시 건입동의 칠머리당에서 하는 굿으로 영등신에 대한 제주도 특유의 해녀신앙과 민속신앙이 담겨 있으며 우리나라 유일의 해녀의 굿이다. 처용무(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는 궁중 무용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 형상의 가면을 쓰고 추는 춤으로 처용설화를 바탕으로 하며 가면과 의상, 음악, 춤이 어우러진 무용예술이다.
왕희지가 유상곡수연에서 즉흥으로 휘호한 '난정서'는 그의 문장력은 물론 필력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명작이다. 이러한 희대의 명작은 유전하며 많은 일화를 남긴다. 정관지치(貞觀之治)로 유명한 당태종 이세민은 왕희지의 글씨를 좋아하여 보이는 대로 수집하였으나 이 '난정서'만은 구하지 못하였다. 그러다 희지의 7세손 지영(智永)이 '난정서'를 비장하고 있다는 것은 알아차리고 심복인 소익(蕭翼)을 시켜 '난정서'를 빼돌려 마침내 손에 넣었다. 그 기쁨이 어떠했을까. 모든 명물은 수집가 앞으로 모인다는 소동파의 말처럼 당태종은 그것을 입수하고 더 없는 행복감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남의 물건을 빼돌린 죄의식도 차마 없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행복감과 죄의식이 당태종의 마음을 이끌었는지 모르지만, 당태종은 손수 '왕희지전'을 지었고, 이것이 현재 '당서(唐書)'에 전한다. 이는 역사에서 보기 드문 예이다.불행스럽게도 '난정서'는 당태종의 유언에 따라 소릉(昭陵)에 부장되었고, 이로써 천하명적은 세상에서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할까. 그것을 입수한 당태종이 당시의 명서가들을 불러 진적을 똑같이 모사하여 대신들에게 하사했는데 그것들이 지금 세상에 전하여 그 전모를 볼 수 있다. 왕희지의 '난정서'가 이러한 비운의 역사를 예견했는지 봄날의 아름다운 서경을 술회하는 것으로 시작한 문장은 점차 인생무상을 자탄하는 처연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한없는 즐거움 뒤에 밀려오는 불안감이 고조되어 있다. 목숨이 길거나 짧거나 자연의 조화에 따라 죽음은 기약되어 있는데, 오늘 같은 즐거움에 앙연자족하며 늙음이 장차 이르는 줄을 알지 못했던 자신. 이제야 장자가 사생(死生)이 하나이며 팽상이 똑같다고 했던 말들이 모두 허탄하고 망령된 것임을 알겠다고 회고하며 비탄한다. 마지막 문장에서 '훗날 이것을 보는 자는 또한 나의 글에서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라고 예언까지 하고 있으니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처럼 명문장에 명필로 쓰여진 이 '난정서'는 명시문을 모은 소통(蕭統)의 '문선(文選)'에 선택되지 못했다. 확실하지 않지만, '天朗氣淸'이라는 구절이 마치 가을을 의미하는 듯해서 당시 늦봄의 서경을 표현하는 데 적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왕희지가 이처럼 인생을 비탄조로 바라본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가장 절친했던 벗 은호(殷浩)의 실각과 죽음, 며칠 차이로 재롱둥이 두 손녀의 죽음, 며느리의 죽음, 형과 형수의 죽음, 친족의 죽음 등등 가혹할 정도로 처연한 슬픔에 잠긴 왕희지는 봄날의 경치가 아무리 기꺼워도 즐거워할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병약한 자신의 처지도 한 몫을 하였을 것이다.'난정서'보다 3년 뒤(356)에 쓰여진 '상란첩(喪亂帖)'은 이러한 왕희지의 애수를 증명하는 또 다른 명작이다. '상란(喪亂)이 극심해져 조상의 묘가 다시 재난을 만나 황폐화되었으나 당장 수리하려해도 아직은 달려갈 수가 없다.'는 애통한 심정이 절절이 드러나며, 유려한 비애미를 넘어 숭고미로 치닫고 있다. 명작은 슬픔을 동반한다는 말이 이런 것일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닥치는 불행한 일들로 인하여 한없는 슬픔과 인생무상을 체감한 왕희지는 이렇게 숨김없이 자신의 삶을 표현하였다. /이은혁(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
고창군 아산면 봉덕리 백제시대 분구묘(墳丘墓)에서 지금까지 국내에서 출토된 것 중 가장 완벽한 형태의 금동신발 1켤레가 발굴됐다. 특히 이번 금동신발 발굴은 고인돌 유적지 인근에서 발견돼 고창이 선사는 물론, 마한 백제시대 중심지였음을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로 주목받고 있다.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소장 최완규)는 28일 봉덕리 1호분 제2차 발굴조사 현장설명회를 열고 4호 수혈식(竪穴式) 석실에서 완벽한 형태의 금동신발 1켤레를 비롯해 금제귀걸이 2쌍, 대나무 잎(죽엽·竹葉)형 머리장식, 은제탁잔, 중국제 청자반구호, 일본 고훈(古墳)시대 토기인 스에키(須惠器) 계통의 소호장식유공광구호(小壺裝飾有孔廣口壺), 칠기 화살통, 대도, 도자, 마구류, 철기류, 기대·개배 등의 토기류, 곡옥 등 각종 옥류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고 밝혔다.최완규 소장은 "마한식 전통 묘제에 백제(금동신발·개배), 중국(청자반구호), 일본(소호장식유공광구호) 등 4국의 유물이 모두 확인됐다"면서 "당시 백제와 쌍벽을 이루며 활발한 국제교류를 벌였던 마한국의 왕릉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이날 가장 관심을 모은 유물은 국내에서 출토된 14켤레의 금동신발 가운데 가장 보존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금동제 신발. 목 부분과 측판 2매, 바닥으로 이뤄진 이 신발의 바닥 중앙에는 용 1마리가 있으며, 발뒤꿈치 부분에는 고구려 장천1호분 고분벽화나 무령왕릉 허리띠 장식에 보이는 역사상(力士像)이 투조(맞새김)로 장식한 것으로 밝혀졌다.최 소장은 "이번 발굴로 고창지역에서 고인돌 문화 이후 마한문화의 단면을 새롭게 규명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으며, 백제 중앙과 지방과의 관계를 조명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고 말했다.봉덕리 1호분은 하나의 분구(봉분) 안에 석실분 5기·옹관묘 2기가 매장돼 있는 마한문화의 전통이 강한 5세기에 조성된 무덤. 이 가운데 3기의 횡혈식(橫穴式) 석실에선 다량의 기와편이 출토돼 경기 이남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무덤 위에 와즙(瓦葺·기와로 지붕을 이음) 건물이 설치돼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북 안동에 있는 도산서원이 설립 435년만에 향사례(享祀禮)에 일반인의 참관을 허용한다. 도산서원 향사례는 퇴계 이황 선생의 유덕(遺德)을 기리고 추모하는 행사로 민간차원에서는 최고, 최대의 전통적 제례행사이며, 매년 봄.가을 서원에 있는 상덕사(尙德祠)에서 치러진다. 경북 안동시는 도산서원측이 오는 29일 열리는 올해 추기 향사례부터 일반인의 참관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28일 밝혔다. 일반인의 향사례 참관이 허용되면 1574년 설립된 도산서원은 전통서원 가운데 최초로 지난 2002년 여성의 참관을 허용하면서 금녀(禁女)의 벽을 허문 데 이어 향사와 관련해 시행되던 유교적 제한을 완전히 풀게 된다. 도산서원측은 향사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향사례가 더이상 외부와 차단된 상태로 열려서는 안된다는 유림의 뜻에 따라 일반인의 참관을 허용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원측은 또 후학의 교육 편의와 일반인의 향사례 참관 편의 등을 위해 향사례 시간도 기존 오전 1시(축시)에서 오전 11시로 변경하고, 입재(入齋.향사에 참여할 수 있는 헌관과 축관, 유생 등이 서원 밖으로 나가지 않고 머무는 것)도 2박3일에서 1박2일로 단축하기로 했다. 그러나 제관들이 상덕사에 나아가 입재를 고하고 향사를 올리러 왔음을 알리는 알묘례(謁廟禮)와 역할을 나누어 정하는 분정(分定), 제사상에 올릴 돼지를 검사하는 생간례(牲看禮), 제기를 씻어 말리는 척기례(滌器禮) 등은 엄격히 치르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동시 관계자는 "2박3일 동안 외부와 단절된채 이뤄지던 향사례가 공개되면 도산서원을 찾는 관광객과 젊은 세대에게 전통문화를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창 봉덕리 백제시대 마한 분구묘(墳丘墓, 봉분을 갖춘 무덤)에서 보존상태가 양호한 금동신발을 비롯해 칠기로 만든 화살통, 중국제 청자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됐다. 금동신발에서는 발뒤꿈치뼈가 나오는 등 인골도 함께 발굴됐으며 소호장식유공광구호(小壺裝飾有孔廣口壺)는 국내 최초로 발견돼 주목을 모으고 있다.고창군의 예산지원을 받아 지난 6월부터 고창군 봉덕리 고분군을 발굴조사하고 있는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소장 최완규)는 28일 유적발굴 현장에서 현장설명회를 열고 "한성 백제기의 마한문화 전통을 가진 분구묘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금동신발을 비롯해 각종 유물이 쏟아진 석실분은 4호분으로 다른 석실분이 횡혈식인 것과는 달리 수혈식으로 분구의 동남편에 치우쳐 자리하고 있다. 4호분 내부 유물의 배치상태를 보면 시신이 안치됐을 중앙에는 머리부문에서 청동제 대나무잎 모양의 장식이, 머리와 가슴부분에서는 귀걸이 2쌍과 곡옥 2점을 비롯한 다량의 옥이 발견됐다. 팔 부분에서는 칠기로 만든 화살통, 대도 2점, 손칼이 놓여져 있었으며, 발치쪽에서는 금동제 신발이 약간 비스듬이 뉘여진 상태로 발견됐다.아가리가 바깥을 향해 벌어진 소호장식유공광구호는 일본 고분시대 토기인 스에끼에서는 장식호라 불리는 것으로, 고창 출토는 이들 토기의 원류로서 한일 고대 문화교류의 한 단면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이 토기를 받치고 있었던 그릇받침은 하부에 토제 구슬을 넣고 막은 형식으로 제작돼 방울과 같은 효과를 내고 있어 제의 의식에 사용된 토기로 추정되고 있다.최완규 소장은 "이 고분의 조성연대는 고분의 구조나 4호에서 출토된 남조대의 청자연대를 참고, 5세기 초엽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며 "봉덕리 1호분 주변에는 마한 분구묘 계통의 분묘가 밀집돼 있는 곳으로 마한의 '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의 중심지로 지목할 수 있는데, 이번에 출토된 유물을 통해 볼 때 백제 영역화 이후에도 이 지역을 중심으로 상당한 정치세력이 유지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금동신발을 비롯한 유물은 수습과정에서 훼손될 것을 우려,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실의 지원을 받아 수습 및 응급조치를 시행했으며 일부 유물은 현재 보존처리가 진행되고 있다.
올 가을 도내 시민단체들이 풍성하고 알찬 강좌를 마련, 인문학을 통해 우리 시대를 성찰하고 보다 나은 대안을 만들어가자는 움직임을 만든다.강연의 스타트는 '초록시민강좌'가 알린다. 전북환경운동연합과 전북일보의 공동주관으로 5기째를 맞는 이 강좌는 다음달 8일 전주시평생학습센터에서 첫 강좌가 열린다.올해 초록시민강좌의 초점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을 통한 우리사회의 가치찾기다. 자연생태와 진보, 여행, 인문학, 정치 등 10강으로 마련되며 강좌마다 해당 분야에서 선구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인사들을 초청했다. 보다 많은 시민의 참여를 바라는 초록시민강좌의 특성상 이번에도 손석춘, 도법스님, 고미숙, 김남희, 김규항 등 대중 지명도 높은 인사들이 강사로 나선다.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도 본보와 공동으로 제3기 '참여자치아카데미'를 다음달 13일부터 전주시 경원동 사무실에서 8개 강좌로 연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착을 목표로 하는 참여자치아카데미는 올해에도 우리시대의 민주주의, 지방자치의 제도적 실천, 풀뿌리민주주의 만들기 사례 등 크게 3가지 틀에서 강좌가 진행된다.우석훈, 강수돌 등 전국적 지명도를 갖고 있는 스타강사와 재연 실상사 주지, 구성은 전주시의원, 임성진 전주대교수 등 지역강사가 고루 포진해 있다.올바른 지역언론의 정착을 목표로 하는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도 오는 11월 전북대 합동강당에서 제16기 '언론학교'로 시민들을 찾아간다.특히 이번 언론학교에는 '미네르바' 박대성씨, 정연주 전 KBS사장,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 신경민 MBC 뉴스데스크 앵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 등 지난해와 올해 언론 관련 사안의 중심에 섰던 인물들이 강사로 나선다.
'제27회 전주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 판소리부 장원을 수상한 김나영양(한국전통문화고 3)은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선생님!"하고 장문희 명창의 품에 안겼다. 시상 소감을 묻는 내내 울먹이느라 한마디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지만,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엔 부모님도 아니고 선생님이라고 했다."연습은 안하더라도, 매일매일 봐야 마음이 편해요. 엄마가 항상 선생님만 믿고, 시키는 대로 다하라고 하셨거든요. 믿고 의지할 사람은 선생님 밖에 없으니까…."김양이 부른 대목은 '춘향가' 중 '십장가'. 목은 많이 잠겼지만, 무대에 주저앉는 발림까지 곁들여 '옹근' 소리를 펼쳤다. 청이 높고 긴장감 있는 소리로 열정적인 무대를 이끌어나갔다는 평가.김양의 첫 스승은 송순섭 명창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로부터 '흥보가'를 배운 뒤 장 명창의 문하생이 됐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그를 지도해왔던 장 명창은 "청이 높고, 끝심이나 뱃심이 좋아 '십장가'를 추천했다"며 "이모(이일주 선생님)도 소리를 들으시더니, 소리 잘 가져간다 하시며 눈물을 보이셔서 자신감이 있었다"고 전했다.실패를 맛보아야 좋은 소리를 키워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장 명창은 칭찬에 인색한 편. 장 명창이 대사습에 첫 출전해 단박에 명창 자리에 오르자, 너무 일찍 됐다고 아쉬워했던 스승 이일주 명창의 마음을 헤아리던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 명창이 심사위원에 참여하면서 "'심사회피제도' 로 평균 점수밖에 주지 못해 부담감은 오히려 컸다"며 "지난해엔 순위권에도 진입하지 못했는데 열심히 연습한 결과를 얻은 것 같다"고 김양의 어깨를 다독였다.이것 저것 다 해보고 싶은 나이인 만큼 김양도 소리를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중학교 2학년 때 연습 안하고 놀기만 하니까 엄마가 '그럴꺼면 아예 소리 집어치우라'고 하셨어요. 근데 집어칠 용기가 나지 않더라고요. 잔소리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잔소리 못하게끔 연습 더해야겠다는 오기가 생겼죠.""고3이 되면서부터 새벽 연습을 한 게 좋은 결과를 안겨준 것 같다"는 김양은 "여러 가지 목 쓰는 것을 제대로 익혀 자유자재로 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다"고 말했다.대학 입시를 앞둔 김양의 또다른 목표는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는 일. 하지만 김양은 "외도하지 않고 끝까지 정통 판소리를 고집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지난 25일 전주MBC 공개홀에서 열린 '제27회 전주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에서 김나영양(한국전통문화고 3년)이 판소리 부문 장원을 차지했다.예선과 본선이 함께 치러진 올해 대회는 판소리 32명, 농악 4명, 관악 21명, 현악 37명, 무용 16명, 민요 24명, 가야금 병창 21명 등 8개 부문에 4개팀, 총 327명이 출전, 국악 유망주들이 실력을 겨뤘다.심사위원장을 맡은 정회천 전북대 교수는 "전반적으로 수준은 향상됐지만, 예선과 본선을 함께 치르다 보니 출전자들의 소리가 예선보다 더 쉬거나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면이 있어 아쉬웠다"며 "발굴된 학생들이 차세대 명인 명창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는 등용문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 판소리-장원 김나영(한국전통문화고3), 차상 장서윤(국악고3), 이진우 (국립전통예술고2) △ 농악-유재혁(천안병천고), 차상 남원학생농악단, 차하 부천 여월초교 △ 관악-장원 김태한(국립국악고2), 차상 김슬기(국립전통예술고3), 차하 장진엽(부산예술고3) △ 무용-김민선(고양예술고3), 차상 이지원(군산중앙여고3), 차하 민희정(브니엘예술고2) △ 가야금 병창-장원 한시형(보성고1), 차상 지유정(국립전통예술고3), 차하 박소윤(전주예술고3) △ 민요-장원 최해정(국립국악고2), 차상 박민주(전통예술고3), 차하 김무빈(국립전통예술고3) △ 현악-장원 문성혜(전남예술고3), 차상 서수진(한국전통문화고3), 차하 송현수(국악고3) △ 어린이 판소리-장원 박지원(전주용흥초6), 차상 라서진(울산신복초5), 차하 이채연(대구복현초5)
국립전주박물관(관장 김영원)이 황병근 전 전북예총 회장과 황병무씨가 기증한 유물의 총목록집 「기증유물목록집-황병근·황병무선생 기증유물」을 발간했다.「기증유물목록집」은 1999년부터 2002년까지 황병근 전 전북예총 회장이 기증한 5000여점의 유물과 1999년 황병무씨가 기증한 유물 4점을 정리한 전체 목록집.황병근 전 전북예총 회장은 1997년 전주박물관이 선친인 석전 황욱 선생의 탄생 100년을 기념, 특별전을 개최하자 선친의 유작과 자신이 수집한 고서류와 서화, 간찰, 고고미술품, 민속품 등을 박물관에 기증해왔다. 전주박물관은 기증자의 뜻을 기리기 위해 2002년 석전기념실을 마련했으며, 2002년부터 2006년까지 황병근 기증 간찰 자료집 4권과 2008년 석전 선생의 서예작품을 모은 「석전 황욱의 서예」를 간행했었다. 황병무씨는 거문고와 황종윤 초상화 등을 기증했다.전주박물관 학예연구실 이경주씨는 "이번에는 그간 발간한 간찰과 석전 서예를 제외한 전적 등을 분야별로 나누어 사진자료로 소개했으며, 후반부에는 기증유물 전체 목록도 함께 실어놨다"고 소개했다.전주박물관은 도내 공공도서관과 대학도서관에 「기증유물목록집」을 우선 배포, 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첨성대는 천문대일까, 아니면 선덕여왕을 기리는 상징물일까?24일 KAIST 시청각실에서 열린 제4차 첨성대 대토론회에서는 첨성대의 성격을 두고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이번 토론회는 그동안 학계에서 논란이 됐던 첨성대의 성격에 관한 논쟁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마련됐다. 동아시아의 천문학적 전통을 근거로 첨성대의 성격을 추론한 이문규 전북대 교수는 "신라인들도 인간을 포함한 자연계를 다스리는 대상으로 하늘을 숭배했던 고대 동아시아 천문관의 전통을 공유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이 때문에 일식, 혜성 등 각종 천문현상을 주의 깊게 관측하였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에따라 신라인들은 하늘의 세계를 더욱 효과적으로 관찰하기 위해 첨성대를 만들었을 것"이라며 "첨성대의 구조가 현대인이 보기에는 관측기구를 설치하기 불편할 듯 보이지만, 일상의 세계와 구별되는 신성함을 드러내기 위해 출입을 일부러 불편하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첨성대는 결국 하늘에 관한 일을 전문적으로 담당했던 신성한 공간인 신라의 천문대였다고 볼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반론에 나선 전용훈 교토산교대 연구원은 "삼국유사에 나온 '첨성대'가 현재 우리가 '첨성대'라고 부르는 경주의 석조건조물인지 여부마저 불투명하다"며 "두 첨성대가 같은 것인지 확인해줄 수 있는 실증적인 증거가 현재로서는 거의 없어, 첨성대는 그 존재부터 불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전 연구원은 또 "이 같은 사실착오에서 비롯된 추론은 공중누각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조세환 한양대 교수는 "우물은 물을 담는 그릇으로 여성의 자궁에 비유될 수 있는데 첨성대는 우물형식을 하고 있기에 여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이는 첨성대를 축조한 선덕여왕의 통치와 김씨계의 왕위계승을 정당화하고, 생산과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구조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어 "이에따라 첨성대를 단순한 천문관측대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국가적 상징과 정치적 의미가 있는 조형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이용복 서울교대 교수는 "첨성대가 과학적인 구조를 가진 과학적 활동을 한 장소라는 설과 종교적 활동을 위한 제단 또는 특별한 이념적 상징성을 가진 구조물이라는 설로 압축되지만 뚜렷하게 판단하기는 무척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 교수는 "그러나 건축물에 함축된 천문학적 상징성만으로 첨성대가 천문현상을 관측하던 천문대라고 확정할 수는 없다"고 단정 지었다. 한편, 이날 토론회는 동아시아 천문학적 접근, 신라사적 접근, 조경학적 접근, 종교학적 접근, 현대천문학적 접근 등 매우 다양한 접근방법이 소개됐다. 또 첨성대 1∼3차 대토론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원로회원인 송상용 교수가 이전의 논쟁 성과와 당시에 제시된 과제에 대해 기조강연을 했으며, 전상운 전 성신여대 총장은 한국 문명사에서 첨성대의 의미를 발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박물관은 1909년 11월1일 순종 황제의 명으로 창경궁 내에 개관한 대한제국 제실박물관(帝室博物館)으로 일컬어진다. 박물관 개관 100주년을 맞은 올해 '한국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위원장 이어령)와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최광식)은 박물관 100년의 발자취를 정리하고 앞으로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어령 100주년 사업 추진위원장은 23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박물관이 100주년을 맞았다는 의미는 매우 크다"며 "박물관에 진열된 것은 수천년 동안 국가체제와 상관없이 내려온 우리의 정체성이 있는 물건"이라고 박물관 개관 100주년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박물관은 민족의 기억을 담고 만물을 한 곳에 망라한 곳으로 모든 것을 아우른다"면서 "어린 학생들이 박물관에서 학습하는 것은 과거의 기억을 재생시키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는 것이다. 박물관은 이제 미래를 창조하는 지적 탱크로서 기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물관이 민족의 마음을 묻어두는 '마인드마크'가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100층 넘는 건축물을 랜드마크라고 부르면서 사방에 짓고 있는데 21세기엔 랜드마크가 아니라 온 국민의 정체성을 세울 수 있는 '마인드마크'가 필요하다. 국립중앙박물관뿐 아니라 작은 마을의 전시관이라도 마인드마크가 될 수 있다. 민족의 마음을 묻어두는 박물관이 마인드마크가 되자. 정신적 지주 없이 방황하는 한국인들이 마음을 함양하는데 닻으로서 역할을 했으면 한다"100주년 사업 집행위원장인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은 "1909년 순종 황제는 많은 대신의 반대에도 제실박물관을 대중에게 공개했다"며 "이후 제실박물관은 이왕가박물관으로 격하되지만, 총독부박물관과 합쳐져 해방후 국립박물관이 됐다"고 설명했다. 최 관장은 "장제스가 마오쩌둥에 패해 타이완으로 쫓겨가면서도 박물관 유물을 가져간 것은 그 유물이 국가 정통성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북한도 그 때문에 한국전쟁 때 후퇴하면서 국립박물관의 유물을 가져가려 했다"며 "100주년 기념행사는 단순히 문화기관의 기념행사가 아니라 국가의 정통성과 관련된 묵직한 무게가 있는 행사"라고 말했다. 그는 "21세기 박물관은 국가 브랜드의 상징이며 문화 콘텐츠의 보고"라면서 "국립중앙박물관 주변에 자연사박물관 등 다양한 박물관을 세워 뮤지엄 콤플렉스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00주년 기념행사 중 눈에 띄는 것은 29일부터 11월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100주년 기념 특별전-여민해락(與民偕樂)'이다. 일본 덴리대 소장 '몽유도원도',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수월관음도', '천마도' 등 해외에 있거나 보존상 이유로 보기 어려웠던 국내외 유물 120여점을 전시한다. 제실박물관 개관 100주년이 되는 11월1일에는 100주년의 상징물로 국립중앙박물관 내 거울 연못에 청자기와 정자가 건립되며 세계 유수 박물관장 등이 참석하는 국제포럼과 전국 600여개 박물관과 미술관이 참여하는 박물관 대축전도 연이어 열린다. 연말에는 한국 박물관의 100년 역사를 정리하는 책도 나올 예정이다.
국립전주박물관(관장 김영원)이 26일 오후 2시 국립전주박물관 강당에서 열리는'토요 명사 초청 특강'에 최몽룡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를 초청했다.기획특별전'마한, 숨쉬는 기록(22일~11월29일 )'의 이해를 돕고, 백제에 가려졌던 마한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한 취지.최 교수는 우리나라 및 동아시아 청동기 문명 연구의 대표적인 학자. 이날 그는 '마한 연구의 새로운 방향과 과제'를 주제로 한국 고고학 유물을 연대순으로 정리해 마한의 성격, 종교, 제사유적에 관해 설명하고, 마한의 목지국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강의를 듣고자 하는 시민들은 선착순으로 260명까지 참여가능하다.서울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미국 하버드 대학원에서 고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인문대 부학장, 한국상고사학회 회장, 서울대 박물관장, 전국 국립대학 박물관협회장 등을 역임, 문화재 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도시 문명 국가」, 「한국 고대국가 형성론」, 「고고학과 자연과학」, 「백제사의 이해」등을 펴낸바 있다. 문의 063) 220-1015.
문화재청이 경기도 화성시 태안3지구 부지에서 발굴된 정조대왕 왕릉터의 사적지정 권고를 취소하는 과정에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는 감사원 지적이 제기됐다. 22일 정조 효문화 보존 국민연합에 따르면 최근 감사원으로부터 '문화재청이 정조대왕 왕릉터 사적지정 권고를 취소하는 과정에서 절차상 하자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돼 문화재청에 재발방지 주의를 요구했다'는 감사 결과 통보를 받았다. 감사 결과 문화재청은 문화재위원회가 태안3택지개발지구에서 발굴된 정조의 초장지(정조의 시신이 처음 묻혔던 곳)의 재실터와 건물지 등을 사적으로 지정하도록 권고했으나 대한주택공사(주공)의 이의신청을 받은 뒤 현지조사를 거쳐 2007년 12월 사적 지정 대신 역사공원으로 보전하도록 결정했다. 현행법상 유적지가 사적으로 지정되면 반경 500m 이내의 개발행위가 금지되지만 단순 보전되면 개발할 수 있게 된다. 감사원은 이 과정에서 문화재위원회의 현지조사결과 심의 절차가 생략됐고 현지조사위원 6명 가운데 2명이 주공 자문위원으로 활동했었음이 드러나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조사위원 선정과정에는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며 "문화재위원회 재심의는 거치지 않아도 되도록 위원회 심의에서 협의된 사항으로 보전 결정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번 감사 청구 주체인 정조 효문화 보존 국민연합은 문화재청에 사적 지정 재심의를 요청하고 추가 감사를 청구한 데 이어 28일 국회 포럼을 열어 문화재청의 부당성을 알리기로 해 융건릉 등 문화유적 훼손 논란이 다시 가열될 전망이다. 이 단체는 50여개 종교.시민단체가 참여해 10여년째 왕릉터 보호를 위한 태안3지구 개발 반대운동을 벌여 오고 있다. 한편 주공은 1998년 화성시 태안읍 송산리·안녕리 일원 118만여㎡를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받고 개발을 추진하다 "왕릉터 등 문화재를 보호해야 한다"는 반발에 부닥쳐 공사를 잠정 중단한 상태다.
정부가 디지털 시대에서 저작권 권리자와 이용자의 상생 및 균형을 모색하려는 '신(新) 저작권 구상'에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저작권위원회와 함께 22일 정동극장에서 '저작권 상생협의체' 및 '저작권포럼' 발족식을 열고 이런 구상을 공개했다. 문화부는 저작권 상생협의체 및 포럼을 통해 ▲사회적 합의에 기반을 둔 공정이용 가이드라인 수립 ▲저작권 집중관리체제의 선진화 ▲확대된 집중관리제의 단계적 도입 ▲공공저작물에 대한 공유 확대 등 방안을 모색,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가운데 공정이용 가이드라인은 지난 6월 포털사이트에서 5살 짜리 소녀가 가수 손담비의 '미쳤어' 노래를 육성으로 따라 부른 손수제작물(UCC) 동영상이 저작권 침해 우려로 삭제됐던 사례처럼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사용할 수 있는 범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사회적인 기준을 명확히 하려는 것이다. 또 '확대된 집중관리제도'도 저작권 출처불명 등 일정한 경우에는 저작권자의 사전 허락없이 집중 관리단체의 허락을 거쳐 저작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저작권의 이용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인촌 장관은 "그동안은 저작권을 보호하고자 규제에 힘을 쏟아 미국의 지적재산권 감시대상국 리스트에서 빠지게 되는 등 성과를 냈다"며 "이제는 저작물이 정당한 가치를 주고받으며 이용이 활성화되도록 할 때"라고 말했다. 새 저작권 구상은 복제와 전송이 자유로운 디지털 시대에서 저작권을 둘러싼 분쟁과 소송이 끊이지 않음에 따라 저작권 권리자와 이용자의 상생을 모색, 콘텐츠 산업의 발전을 추구하려는 것으로 저작권 상생협의체와 포럼은 구체적인 대안을 찾고 갈등을 대화로 풀어나가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날 출범한 상생협의체의 상임위원은 안문석 고려대 교수ㆍ정홍택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 회장ㆍ허진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ㆍ윤종수 대전지법 논산지원장ㆍ이해완 변호사ㆍ유병한 문화부 문화콘텐츠산업실장 등 6명으로 구성됐다. 포럼에는 이상정 한국저작권법학회 회장ㆍ홍승기 엔터테인먼트법학회 회장ㆍ이대희 고려대 교수 등이 참여한다.
자고로 한·중·일을 막론하고 글씨하면 떠오르는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왕희지(王羲之)이다. 그가 출현한 이후 지금까지도 서가든 서가가 아니든 글씨를 논할 때면 언필칭 왕희지를 운운한다. 단지 천하명적을 남겼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왕희지는 오랜 역사를 통해 수없이 재평가되면서 신화를 축적하였고, 이로써 서성(書聖)의 지위에 오르며 신비로운 인물이 되었다. 한 사람이 역사를 만들고 역사가 다시 영웅을 만든 것이다.동진(東晉)시대 목제(穆帝)의 치세기인 영화(永和) 9년, 서기로는 353년,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월 삼짓날, 중국 회계군 산음(山陰)에 위치한 난정(蘭亭)에서 천하의 풍류객들이 모여 사악한 기운을 씻어내는 경건한 의식을 행한 뒤, 유상곡수(流觴曲水)의 잔치를 베풀었다. 쌍세창(桑世昌)의 「난정고(蘭亭考)」에 의하면 당시 행사에는 회계내사였던 우장군(右將軍) 왕희지, 그리고 그의 아들과 인척들, 사안(謝安)과 사만(謝萬), 손작(孫綽) 등 42인이 참석하였다고 한다. 동진의 권문세가인 왕(王)·사(謝)·유(庾)씨를 비롯하여 그 지역의 현사들이 참여한 유상곡수연에는 왕희지 일가만 10명이 참가하였고, 그 중에는 희지의 장자 현지(玄之)와 5자 휘지(徽之), 7자 헌지(獻之)도 포함되어 있었다. 유상곡수연은 맑은 냇물을 끌어들여 포석정처럼 구불구불한 물길을 만들고, 여기에 잔을 띄워 잔질하며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시작(詩作)하는 것이다. 계곡의 아름다운 풍광이 시상을 일으키고 술이 시흥을 돋구자 하나 둘씩 시를 읊어내기 시작하였다.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였던 왕희지는 4언시와 5언시를 각각 1편씩 지었다. 이렇게 두 수를 지은 사람은 11인, 한 수를 지은 사람은 15인이었으며, 시를 짓지 못하여 벌주 석 잔을 마신 사람은 16인이나 되었다. 대안도(戴安道)를 찾아간 일로 유명한 희지의 5자 휘지도 두 수를 지었으나, 역사상에서 희지와 더불어 이왕(二王)으로 불리는 7자 헌지는 끝내 시를 짓지 못하였다.잔치가 끝날 무렵, 시를 한 곳에 모아 시집을 엮자는 말에 모임의 중심이었던 왕희지가 흥을 타고 즉석에서 시집 서문을 지어 쓴다. 세로 폭이 한 자를 조금 넘긴 질긴 견사지(繭絲紙)가 앞에 놓이고 쥐수염으로 만든 예리하고 탄력 있는 서수필(鼠鬚筆)이 놓여졌다. 잠시 흥기된 마음을 가라앉혀 평심정기(平心靜氣)를 이룬 후, 이윽고 필단을 곶추세워 가슴속 깊은 언저리의 흥회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누구나 그러하듯 붓을 처음 내리 찍을 때는 신중하되 과감하여야 한다. 글씨의 기상과 크기 그리고 절주가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永和九年歲在癸丑暮春之初…'.무슨 일이 언제 어디서 있었는지를 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므로 문장은 이렇게 시작하였다. 붓에 흥을 싣는 데는 행서가 가장 적격이다. 첫 행이 13자로 끝나고 다음 행으로 넘어가면서 행간이 결정되고 전체적인 장법이 예견된다. 행간이 지루하지 않으면서 대소강약의 절주를 느끼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희지가 앞서 읊었던 두 편의 시처럼 늦은 봄날의 아름다움과 한없이 즐거운 시회를 술회하는 것으로 문장은 이어진다. 동진시대 353년 늦봄에 열린 난정에서의 멋진 풍류는 이렇게 고스란히 역사에 남겨지게 되었다. /이은혁(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호 보유자였던 박갑근 선생의 빈 자리로 맥이 끊어지다시피 했던 익산목발노래가 다시 일어선다.익산 지방에서만 전해오는 목발노래는 지게 목발에다 작대기 장단을 치면서 자진 노래 장단에 자진 춤을 추는 노동요. 8kg 정도 나가는 지게를 지고 한 판을 다 돌고나면 젊은 사람도 지쳐 숨이 차오르지만, 흰 바지저고리를 입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이들의 모습은 백의민족의 소박한 삶을 떠올리게 한다.익산목발노래는 자신이 살던 익산시 삼기면을 중심으로 농요를 발굴하던 박갑근 선생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리됐다. '제1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1970)에 익산농요로 출전해 전라북도지사상을 수상하고 '제1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1972)에서 익산목발노래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1984년 박갑근 선생이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호 익산목발노래 보유자로 지정받았지만 전수장학생이 자주 바뀌고 이수자를 제대로 배출해 내지 못한 상황에서 2005년 선생이 세상을 떠나면서 문화재 지정도 해지됐다.새타령, 육자백이, 자진육자백이, 흥타령, 등짐노래, 목발노래(일명 '콩꺾자'), 작대기타령, 둥당게타령(일명 '꿩타령'), 상사소리로 이어지는 목발노래 전 바탕을 물려받은 사람도 강매실씨과 양기호씨 뿐. 원래 판소리를 했던 강씨는 전수장학생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해 이수자가 되지 못했지만 소리를 잘 한다는 소문에 박갑근 선생이 삼고초려해 데려온 제자다. 양씨는 25년간 박갑근 선생을 따라다녀 그 누구보다 목발노래에 대한 애정이 깊다.목발노래보존회를 재정비하면서 어느새 여든이 넘은 초창기 회원들은 고문으로 물러났으며 강씨가 회장을, 양씨가 부회장을 맡기로 했다. 삼기, 웅포, 함라 등 주민 50여명이 보존회에 새롭게 합류했고, 지난 4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연습을 시작했다. 다행히 소품으로 쓰던 지게나 삿갓, 절구, 소가죽, 꿩 등은 창고에 남아있었다.보존회를 새롭게 꾸린 이상 이들의 목표는 문화재 재지정. 그러나 더 큰 뜻은 농경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목발노래를 농경문화의 꽃으로 피워보는 데 있다. 강씨는 "세대 교체가 이뤄지면서 아직 숙련되지 않은 회원들이 있지만,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씨는 "당초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공연을 하기로 예정돼 있었는데 축제가 취소되면서 시연 기회가 사라졌다"며 많은 사람들에게 익산목발노래를 보여줄 수 있는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임진왜란 당시 중봉 조헌과 승병장 영규대사가 이끈 칠백의사가 왜군으로부터 청주성을 되찾고 금산 전투에서 순절한 내용을 담은 사적비인 금산 칠백의총 경내 '중봉조선생일군순의비'가 복원됐다. 문화재청 칠백의총관리소(소장 이기범)는 지난해 10월 순의비의 해체ㆍ복원 작업에 착수, 최근 복원을 마무리했으며 콘크리트로 된 비각도 목조 양식으로 다시 만들었다고 21일 밝혔다. 이 순의비는 칠백의사가 순절하고 11년 뒤인 1603년 칠백의총 옆에 건립됐으나 1940년 일제가 폭파했으며, 지역 유림이 훼손된 비석을 모아 땅속에 묻어두었다가 1945년 해방이 되자 다시 파내 보관하다가 1971년 불완전하게나마 깨진 조각을 붙여 세우고 순의비각을 건립했다. 칠백의총관리소는 23일 오후 3시 칠백의총에서 칠백의사 순의 제향(七百義士 殉義 祭享)행사를 거행하며 순의비 제막식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대형 도자기가 일반에 공개된다. 13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자양각송하인물문상감시명대매병(靑磁陽刻松下人物紋象嵌詩銘大梅甁)은 높이 49㎝이며, 위와 아래에 문양대가 없고 큼직한 노송과 암벽, 계곡물에 발을 담근 도인과 산채가 묘사된 작품이다. 뒷면에는 능화형으로 구획된 면 안에 흑상감기법을 사용해 시 구절을 써넣었다. 윤용이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고려시대 회화작품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데 이 도자기는 당시 산수화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도자기와 함께 두루마리에 붓글씨로 쓴 9세기말의 대반야바라밀다경 묵서본(墨書本)도 공개된다. 이번 전시는 ㈜구구절절콘텐츠디자인랩의 '고려 시서화' 기획전으로 25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팔판동 디자인스튜디오 나비에서 개최된다. ☎02-742-8742
100년 고택 학인당(전북민속자료 제8호)이 묵은 먼지를 털고, 그 큰 문을 열어제쳤다.19일 오후 5시30분 100주년 기념 예술제 '옛 시간을 찾아서' . 내빈객들이 학인당의 고풍스러움에 흠뻑 취할 무렵, 고택예술단이 사물놀이로 흥을 돋우기 시작했다.사회를 맡은 한민욱 전북민예총 사무국장의 재촉에 내빈객들이 대청안으로 성큼 들어서자, 감칠맛 나는 판을 위한 '마당'이 됐다.한 사무국장은 "기획 제의를 받았을 때 소리의 대물림 역사를 이어온 김일구 명창과 '김일구류 아쟁산조' 로 맥을 잇는 김 명창의 아드님 김도현씨를 떠올렸는데, 두 분의 나이를 합쳐보니 100세가 됐다"며 "오늘의 만남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고 소개했다.김일구 명창의 남성적이면서도 호방한 소리에 권혁대 고수가 북을 맞추자 신명을 더하는 무대가 되면서, 명창들의 큰마당으로 여겨졌던 그 판이 재현되는듯 했다.학인당 백광제 대표는 "보수·복원을 하는 동안 가족들의 많은 희생을 요구됐다"며 "종가의 고택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후대에 가서는 전통문화가 꽃피우는 공간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창 선운산 도솔계곡과 무주구천동 일사대, 무주구천동 파회·수심대 등 6곳이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됐다.문화재청(청장 이건무) 17일 전북지역 3곳을 포함해 전북 및 광주·전남지역 6곳을 명승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명승 제54호인 고창 선운산 도솔계곡은 화산 암석들이 거대한 수직 암벽을 이루는 수려한 경관과 도솔천 내원궁, 도솔암, 나한전, 마애불 등 불교 관련 문화재, 천연기념물이 분포해 문화유산적 가치가 큰 곳이다.또 명승 제55호인 무주구천동 일사대는 고종 때 연재 송병선이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은거하면서 정자 '서벽정'을 짓고 후진을 양성했던 곳으로 서벽정 서쪽에 배의 돛대 모양으로 우뚝 솟은 경관이 빼어나다.명승 제56호 무주구천동 파회·수심대는 연재 송병선이 고요한 소(沼)에 잠겼던 물이 급류를 타면서 기암에 부딪쳐 휘돌아간 파회와 일지대사가 이곳의 맑은 물에 비치는 그림자를 보고 도를 깨우쳤다고 전해지는 무주구천동 수심대로 풍광이 아름답다.전남·광주지역에서는 '담양 식영정 일원'(제57호)과 '담양 명옥헌 원림'(제58호), '해남 달마산 미황사 일원'(제59호)이 지정됐다.문화재청은 이번에 지정한 6개소를 국민이 함께 향유할 수 있도록 관광자원으로 보존·활용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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