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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 보존 및 인간 존엄성 회복을 위한 친환경 대안농업의 지혜는 우리나라의 전통농업과 그 문화체계에서 찾아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구자옥 한국농업사학회 회장(전남대 명예교수)은 17일 전북대에서 열린 '제9회 동아시아 농업사 국제학술대회'기조발표를 통해 "현대 농업은 생태적·친환경적이어야 하고 동시에 생산성 향상을 추구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면서 그 해법으로 전통농업과 문화의 가치를 강조했다.구교수는 "지나치게 잘못 내달려 온 현대농법은 전통농업을 근본적으로 망각하거나 매도하게 했다"면서 "이로인해 지력감퇴와 농약공해·곡물자급률 하락은 물론, 농업의 근원적 포기현상까지 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농업체계를 하루 아침에 100년 전의 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새로운 길을 찾는 노력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면서 "농촌의 전통문화는 농가와 농지에 바탕을 두는 '두레'식 공동체 삶과 상호부조적인 정신으로 재건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우리나라 농촌에는 스스로 자긍심을 갖고 지켜갈 수 있는 수많은 전통 기술과 문화가 있는 만큼, 이를 되살려 현대 농업의 과제인 지속적·생태적·친환경적인 영농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전북대 '인문한국 쌀·삶·문명연구원'이 '동아시아 전통농업의 재조명'을 주제로 한국농업사학회 및 중국·일본농업사학회와 공동 주최한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17~18일 이틀동안 한·중·일과 프랑스·러시아 등 국내·외 학자 40명이 발표와 토론에 참여한다.
문화재청은 고창 선운산 도솔계곡, 무주구천동일사대(一士臺) 일원과 파회, 수심대(水心臺) 일원, 담양 식영정(息影亭) 일원, 담양 명옥헌(鳴玉軒) 원림(園林), 해남 달마산 미황사 일원을 국가지정문화재의 하나인 명승으로 지정했다고 17일 밝혔다. 선운산 도솔계곡 일원(명승 제54호)은 화산 작용으로 형성된 거대한 수직암벽이있어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이 일대에 도솔천 내원궁, 도솔암, 나한전, 마애불 등 불교 관련 문화재들도 있다. 무주구천동 일사대(명승 제55호)는 하천의 침식 작용에 의해 발달한 절벽으로고종 때 연재(淵齋) 송병선이 정자를 짓고 즐겼던 곳이며 파회, 수심대 일원(명승제56호)은 기암괴석이 절벽을 이루며 병풍처럼 서있어 마치 금강산과 같다고 해 일명 '소금강'으로 불리는 경승지다. 담양 식영정(명승 제57호)은 조선 명종 때 서하당(棲霞堂) 김성원이 지은 정자로, 송강(松江) 정철이 한시와 가사, 단가 등을 남겼던 곳이다. 명옥헌 원림(명승 제58호)은 조선 중기 이정(以井) 오명주가 선친인 명곡(明谷)오희도를 기리기 위해 정자를 지은뒤 주변에 연못을 파고 적송 등을 심어 가꾼 정원이며 달마산 미황사(명승 제59호)는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창건된 절이다. <사진 설명: 무주구천동 일사대(위)와 담양 식영정>
미륵사지유물전시관이 새롭게 단장된다.전라북도는 이달부터 2010년 1월까지 미륵사지유물전시관의 전시와 시설을 국립박물관 수준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9억6000만원을 들여 전시관 전면 리모델링 공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리모델링 공사는 1997년 5월 9일 미륵사지유물전시관 개관 이후 12년 만에 처음 실시되는 것으로, 유물의 안전한 보관 전시와 관람객들을 위한 보안시설과 청정 소화시설도 보완할 예정이다.리모델링과 함께 전시도 5개 주제 5개 실로 재정비된다. 1주제는 장엄한 규모의 삼국 최대 사찰 '미륵사'의 모습을, 2주제는 기록으로 알아보는 '미륵사 창건과 변천사', 3주제는 유물로 살펴보는 '미륵사의 변천', 4주제는 확인하고 만져보고 이해하는 '백제시대 미륵사 건축문화', 5주제는 탐색하고 체험하는 미륵사지 비밀의 방 '어린이 체험실'로 구성, 1000여 년간의 유물과 자료 400여점을 전시한다. 미륵사에 대한 종합설명을 담은 영상물은 한국어·영어·일어·중국어 등 4개 국어로 제작되며, 미륵사와 관련된 애니메이션과 검색 프로그램 등도 설치된다.도 문화예술과 문화재담당 박국구씨는 "현재 전시관의 전시 구성에서 백제의 호국사찰이면서 삼국 최대 규모였던 미륵사의 특징적 역사·문화 등을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한 부분을 검토해 백제시대 사찰문화를 대표하는 전시관으로 위상을 재정립하고 특성화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 중국 당나라 선승의 게송(偈頌)에 주석을 붙인 한문서적을 73년 뒤에 한글로 인쇄한 16세기 희귀 언해본이 발견됐다. 해인사 백련암의 원택스님은 15일 조계종 총무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 4월 중순 백련암 장경각 서고에서 성철 큰스님(1912-1993)이 남긴 장서를 정리하다가 '십현담(十玄談) 언해본'을 발견했다"며 "'십현담 언해본'은 문화재 서지목록이나 국립도서관ㆍ각 대학 서지목록에도 없는 희귀본 또는 유일본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십현담'은 중국 선종의 한 종파인 조동종(曹洞宗) 스님인 당나라 동안상찰(同安常察 ?∼961) 선사가 저술한 10가지 게송으로, 법화사상과 화엄사상을 포함한 조동종의 가풍과 수행자 실천지침 등을 아름다운 7언 율시로 노래한 선시다. 후에 역시 중국 선종 종파인 법안종(法眼宗)의 법안문익(法眼文益 885-958) 선사가 이 십현담에 주석을 달았다. 십현담은 우리나라에 건너와서는 조동종의 가풍에 심취했던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 조선 성종 6년인 1475년에 다시 주석을 붙여 한문으로 쓴 '십현담 요해(要解)'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이번에 발견된 '십현담 언해본'은 김시습의 '십현담 요해'를 한글로 번역한 것으로, '십현담 요해'가 나온 지 73년 만인 1548년(명종 2년) 강화도 정수사에서 판각한 것이다. '십현담 언해본'의 서명에는 "성화 을미년 도절(桃節) 재생패(哉生覇)에 청한자(淸寒子) 필추(苾芻) 설잠(雪岑)이 폭천산에서 주를 쓰다"라고 돼 있다. 여기에서 '성화 을미년'은 조선 성종 6년, 김시습의 나이 41살 때이고, '도절 재생패'는 3월16일로 해석돼, 단종 폐위 후 20대 초반에 출가해 자신을 '청한자 필추 설잠'이라고 불렀던 김시습이 수락산 기슭 폭천정사에서 지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십현담 언해본'은 조선 세조∼성종 때인 15세기 중후반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불경류를 한글로 옮긴 언해본이 아니라 16세기 전반기에 드물게 언해된 선종 서적이어서 의미가 있다고 원택스님은 설명했다. 성철스님의 상좌를 지냈고 성철스님이 오래 머무른 백련암의 감원(암자의 제일 어른스님)을 맡고 있는 원택스님은 "이번에 성철 큰스님의 서책을 정리하면서 귀한 고서와 언해본들을 발견해 서지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다"며 "검토결과 문화재로 가치가 있으면 문화재지정을 신청하고, 언해본들은 영인본으로 만들어 국어고문학자들의 연구자료로 활동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성철스님은 후학들에게 '책 보지 말라'며 참선 수행만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있으나 스님은 장경각에 1만권이 넘는 장서를 보유하고 계셨으며 일일이 읽은 책 리스트를 작성하고 요약까지 해놓았다"고 전했다. 이번 '십현담 언해본'에 대해 서병패 문화재 전문위원은 "기존의 '십현담요해'에 수록된 주석을 간결하게 하여 구성한 독립적인 언해본으로 희귀본에 속한다"며 "한글에는 반치음 'ㅿ'과 꼭지 'ㆁ'이 사용되고 있어 16세기 중엽 국어사연구와 서지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전주의 얼과 혼이 담긴 전통문화를 지켜가는 무형문화재들이 한자리에 모인다.전주문화재단(이사장 라종일)이 전주시 무형문화재들과 그 전수자들을 초대, '2009 전통의 맥 큰잔치 가무악장'을 연다. 18일 오전 10시 전주관광호텔 2층 풍남홀.무형문화재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이번 행사는 당초 한옥마을 공예품전시관 옆 야외무대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신종 인플루엔자로 인해 무형문화재들에 대한 공경과 예우를 위한 기념식과 판소리 전수자들의 합동 공연으로 축소됐다. 선자장, 악기장, 소목장, 단청장, 전통음식·향토술 담기 등 계획했던 체험행사도 취소됐다.이날 기념식에는 총 29명의 무형문화재 중 건강상 거동이 불편한 3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참석할 예정. 무형문화재들의 약력과 활동사항 소개, 화환 증정, 무형문화재를 대표한 주봉신 명인(판소리 장단)의 인사, 기념촬영 등이 진행된다.전주문화재단은 이번 행사를 계기로 향후 전주의 무형문화 보존가치 확산과 저변 확대를 위한 다양한 지역문화정책을 개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매주 수요일 서예가 이은혁 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의 '글씨로 만나는 옛 글'이 연재됩니다. 전북 서예의 맥은 한국 서단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오랜 역사와 단단한 뿌리를 가지고 있어, 서예에 대한 관심은 곧 우리 지역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먹을 갈고 붓을 드는 것은 깊이 생각하고 여유를 가지는 일입니다. 바쁜 일상이 문제라면, 이 이사장의 '글씨로 만나는 옛 글'을 통해 묵향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세간에서 일컫는 서예는 예술의 한 분야로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옛날에는 단음절로 '서(書)'라고 하였다. 쉽게 우리말로 풀이하여 '글씨'라고 환치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쓰는 행위와 그로 인해 남겨진 결과물 그리고 그 모양(태)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씀(書)'에는 개관적 대상물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그 대상물은 다름 아닌 문자이다. '서'가 인간의 삶에서 한시라도 분리될 수 없는 언어생활과 직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요즘 항간에 회자되는 '소통'의 매개체로서 무형의 말이 있고 유형의 문자가 있다. 말은 순식간에 행해지고 사라지는 반면 문자로 쓰여진 것은 시간적 공간적 연속성을 가진다. 여기에서 '서'의 역사성을 찾을 수 있다. 이렇듯 '서'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채 수 천년의 세월을 우리와 함께 해온 것이다.이후, 모필(붓)의 발명은 일상적인 쓰는 행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붓을 사용함으로써 문자의 표현방식이 보다 다양해졌고, 그로 인하여 붓을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는 기능 또한 요구되었다. 이렇듯 개개인의 습성이 글씨에 자연스럽게 발로하는 문자서사가 생활화되면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미감을 가미하였다. 그 가운데 시대의 미감을 반영한 아름다운 글씨는 하나의 형식을 이루며 대유행을 거치는데 이것이 이른바 '서체(書體)'이다. '서체'는 우리말로 '글씨꼴', 더 축약하여 '글꼴'이라 할 수 있고, 서양식 표현을 빌리자면 '스타일'에 해당한다. 이른바 전서·예서·해서·행서·초서로 불리는 서체가 시대에 따라 나타나며 마침내 이를 선도하는 전문 서가(書家)가 출현한다. 역사에서는 이 시점을 대개 중국 한대로 규정한다. 이전에도 문자가 있고 서사가 행해졌지만 주로 주술적 의미나 제왕적 권위를 대변하는 특수적 상황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개인의 심미의식이 가미된 후대의 서사활동과는 구분 지어 논해야 한다.개인의 심미의식이 글씨에 투영됨으로써 비로소 서가와 서품(書品)이 세상에 공존하게 되었다. 앞서 말한 문자의 기록이라는 역사적 가치에다 예술적 가치를 보태게 된 것이다. 일치일란(一治一亂)의 순환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서가가 부침하며 다시 재현할 수 없는 불후의 필적들을 남겼다. 일필휘지로 대변되는 즉흥적인 서가 역사로서 또는 서품으로서 고색창연한 자태를 간직한 채 당당히 우리 앞에 서 있다. 중국의 서법, 우리의 서예, 일본의 서도라는 서로 다른 명칭이 있지만, 유독 서예는 예술적 감각이 탁월한 우리 민족성을 대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유가경전에 유어예(游於藝)라는 말이 있듯, 우리민족은 일상에서 격조 있는 삶을 지향했던 것이다.우리 고장 전북은 천년의 역사를 간직하여 유난히 전통의 텃새가 강한 곳이다. 기질이 순박하고 여유가 있어 맛과 멋을 동시에 선보였고, 지금 그 여유 속에서 느림의 철학이라 할 수 있는 서예의 꽃이 만발하고 있다. 어쩌면 천년의 전통을 토대로 역사적 가치와 예술적 삶을 중시하는 성향이 맞아떨어진 필연적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역사적으로 필명을 드날린 서가들의 붓길을 따라 예술적 순례를 떠나고자 한다. 때로는 서가에 얽힌 고사나 일화가 등장할 것이고, 서품에 담긴 멋과 철학을 이야기하며 음미할 것이다. 독자제현의 성원과 가르침을 기대한다. /이은혁(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 (사)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은혁 이사장은 1990년 '대한민국서예대전' 대상을 수상, 현재 초대작가로 활동 중인 서예가이다.한문학으로 문학박사를 받아 전주대 한문교육과 겸임교수로도 재직 중이며 저서로는 「서예담론 보고읽는 서예」 등이, 역서로는 「조선환여승람(김제)」 「중국서예사」 등이 있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원장 변평섭)은 청양군 칠갑산 기슭 도림사지(장평면 적곡리ㆍ기념물 제100호)에 대한 발굴조사 중 '금동여래입상'이 출토됐다고 14일 밝혔다. 머리가 훼손된 채 출토된 금동여래입상의 남아 있는 부분 높이는 7.5㎝, 폭은 4.3㎝로, 3단으로 이뤄진 도림사지 가운데 고려시대 건물지가 확인된 1단 지점에서 발굴됐다. 금동여래입상의 법의는 통견(通絹ㆍ얇은 비단)이고 전신을 덮은 법의의 주름이 신체의 굴곡에 따라 다리 부분에서 'U'자 형태로 표현돼 있으며, 가사(袈裟)가 양손에 걸쳐져 좌우대칭으로 길게 펴져 있다. 이곳에선 금동여래입상 외에 석불상 4개가 함께 출토됐다. 역사문화연구원은 또 이번 조사결과, 도림사지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운영됐던 사찰이었으며, 조선 초기를 전후로 대대적인 중수(重修)가 이뤄졌던 것으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역사문화연구원 관계자는 "현재까지의 조사결과를 종합해 보면 도림사지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번에 학계가 주목할 만한 유물과 유적이 발굴된 만큼 앞으로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선유도에 진영을 설치했다는 역사적 기록에 따라 군산시가 복원사업을 추진하는 데 이어 고창 첨금정(沾襟亭)에 남아있는 이순신의 명문에 대한 연구결과가 발표돼 관심을 끌고 있다.전북역사문화학회와 전라금석문연구회는 "임진왜란과 이순신하면 전남 여수나 경남 통영의 전유물로 느껴오던 차에 군산시가 복원사업을 한다고 해 고창군 무장면 송현리 논 가운데 있는 바위에 새겨진 이순신의 명문을 찾아 조사했다"며 "이 순절비가 '첨금정'이라고 불려지게 된 이유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만력이십오년 시월 통제사 이순신 명(萬曆二十五年 十月 統制使 李舜臣 銘)'이라고 새겨져 있는 첨금정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무공 진영의 진하장으로 임명돼 진도 전투에서 독화살을 맞아 순절한 김위(1567~1597)가 주인공.이용엽 전라금석문연구회 고문은 "'김해김씨 장사군파' 후손 김영목의 증언과 족보, 선무원종공신녹원(1965) 등을 검토했다"며 "이순신은 총애하던 부하가 전사하니 슬픔을 억제할 수 없어 출장길에 친히 관을 하사해 입관한 후 위의 본가까지 호송·치장하고 묘 앞 바위에 앉아 눈물로 갑옷을 적시며 국사를 한탄, 이 때부터 김위의 순절비를 첨금정이라고 일컫게 됐다"고 말했다.이 고문은 "순절비 명문은 충무공이 위의 장례를 마치고 바위에 앉아 눈물을 흘리며 석별의 정을 나누는 내용으로 보인다"며 "이와 같이 유서 깊은 유적이 400년이 넘도록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혀 있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한편, 「무장읍지」(1917)에는 '첨금정은 정인 송별시 일가족이 서로 눈물을 흘리면서 석별의 정을 나누었던 곳'이라고 기록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권 들어서 문화분야와 관련한 새로운 정책은 발굴되지 않는 반면 문화계 인사들이 느끼는 정부의 권위주의와 비민주적 의사결정구조는 강화되고 있다는 주장이다.지난 11일 오후 7시 30분 전주시 경원동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5층 교육관에서 열린 민주회복 3차 시국토론회에서 이종진 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전북지회 사무처장은 "문화는 정권에 따라 좌지우지 되지 않으며 문화분야는 정치적 영향력이 가장 적게 미치는 분야여야 한다"고 밝혔다.이 전 사무처장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 문화분야를 진흥할 새로운 정책은 만들어지지 않고 정권에 맞지 않는 인사에 대한 청산작업만이 이뤄지고 있다"며 "정부 출범 2년이 다 돼 가고 있지만 정권의 철학과 비전을 실천할 문화정책은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이 전 사무처장은 이어 "정책은 나오지 않는 반면 인적 청산은 꾸준히 진행돼 문화예술위원장에서 출발해 한국종합예술학교 총장 퇴출까지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문화계가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다"고 주장했다.이 전 사무처장은 "문화 분야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원칙이 세계적 흐름이다"며 "다행히 도내에서 지역재단 사업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어 지역 자치단체들이 문화분야 진흥을 위한 지속적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고 제안했다.이날 양진규 전주새누리교회 담임목사는 "현 정부들어 기독교계 인사가 대거 고위직에 진출하고 친 정부성향의 기독교 단체가 세를 얻고 있지만 기독교계의 현 정부에 대한 지지도는 낮게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이용준 전북사회복지사협의회 사무국장은 "이명박 정권은 복지예산을 축소하고 복지서비스를 시장화 하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꾀하고 있어 복지정책이 시혜가 아닌 권리임을 알고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도내 시민사회단체의 시국토론회는 다음달 학계를 중심으로 민주주의의 이론과 실천에 관해 점검하고 마무리 될 예정이다.
17세기 이후 우리나라와 일본 간 문화교류의 첨병역할을 했던 조선통신사의 화려하면서도 웅장한 행렬이 245년만인 오는 20일 일본 후쿠오카(福岡)에서 재현된다.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집행위원장 강남주)는 '후쿠오카 아시안먼스 2009' 행사 기간인 이날 오전 10시 홍성률 부산시의회 부의장을 정사(正使)로 하는 조선통신사 일행이 후쿠오카 하카타(博多)항에 도착한 뒤 일본 측 환영단과 합류해 후쿠오카 마린멧세까지 행진할 예정이라고 13일 밝혔다. 또 오전 11시에는 마린멧세에서 '부산-후쿠오카 우정의 해' 기념식이 열릴 예정인데 이 자리에서 허남식 부산시장과 요시다 히로시 후쿠오카 시장은 한일 간 우호와 협력을 내용으로 하는 친서를 교환하게 된다. 이어 오후 2시30분에는 제종모 부산시의회 의장을 정사로 하고, 200여명이 참가하는 조선통신사 행렬이 레이센 공원을 출발해 카와바타 상점가를 거쳐 후쿠오카 최대의 쇼핑단지인 캐널시티까지 진행될 계획이다. 이에 앞서 19일 오후 4시 마린멧세에서 개최될 예정인 조선통신사 우정의 밤 행사에서는 비보이 그룹 XTC와 남산놀이마당의 합동공연, 부산시립무용단의 천하태평지무, 후쿠오카 힙합그룹 Be Bop Crew So와 일본 모듬북 합동공연이 있다. 이 행사에서는 또 한국 전통의상 패션쇼가 열리는데 일본 어린이 3명이 모델로 참가해 그 의미를 더할 전망이다. 이와 함께 마린멧세에서는 18일부터 20일까지 조선통신사 역사존, 부산 푸드존, 한국 전통의상 체험존 등으로 구성되는 '부산페어'가 마련된다.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1607년에 467명 규모로 처음 일본에 파견된 뒤 1811년까지 모두 12차례에 걸쳐 파견됐으나 최종 목적지인 도쿄(東京)까지 가기 위해 후쿠오카를 거쳐간 것은 245년전인 1764년이 마지막이었다. 그동안 도쿄와 쓰시마(對馬島)와 오사카(大阪), 우시도마(牛窓), 오우미하치만(近江八幡), 시모노세키(下關) 등 일본 각지에서 조선통신사 행렬이 재현되기는 했으나 후쿠오카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국 300여개 직영 커피전문점을 거느린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대표이사 이석구. 이하 스타벅스)가 문화재 보호활동에 참여하는 30번째 기업이 된다. 이를 위해 스타벅스는 11일 오후 5시30분 덕수궁 경내 정관헌(靜觀軒)에서 문화재청과 기업의 자발적 문화유산 보호 참여운동인 '한 문화재 한 지킴이' 협약을 맺는다. 이번 협약에 따라 스타벅스는 임직원 등이 덕수궁 현장에서 봉사활동을 벌이고, 덕수궁 정관헌을 명소로 만들기 위한 봄ㆍ가을 시민대상 활용프로그램 개최를 후원한다. 또 문화재청 산하 4년제 국립대학인 한국전통문화학교(총장 배기동)에는 매년 장학금 1천만 원을 전달한다.
창암(蒼巖) 이삼만은 1840년 9월 제주도 귀양길에 오른 추사(秋史) 김정희와 전주에서 만난다. 당시 창암은 71세의 노인이었고, 추사는 55세였다. 누가 먼저 청했는지 오르나 이 자리에는 당대 명필로 이름을 날리던 추사를 보기 위해 여러 사람이 몰렸다.창암이 쓴 글씨를 본 추사는 그 자리에서 주저없이 내뱉는다. "노인장께선 지방에서 글씨로 밥은 먹겠습니다." 그러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버렸다. 지방에서 글씨로 밥은 먹겠다? 이 말 속에는 "지방에서 행세깨나 하는 것 같으나 촌티를 벗지 못했다"는 의미가 숨어있지 않는가.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한 창암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이 글씨를 잘 아는지 모르지만 조선 붓의 헤지는 멋과 조선 종이의 스미는 맛은 잘 모르는 것 같더라" (유홍준의 완당평전)이와 다른 얘기도 있다. 추사가 전라감영에 들렸을 때 창암을 만나게 해 줄 것을 관찰사에게 청했다. 이에 관찰사는 창암을 만나도록 주선했다. 아무리 유배길이라 해도 오늘날 차관급인 병조및 형조참판을 지낸 인물이니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창암은 추사를 만나 밤을 새우며 서법과 서체를 논했고, 추사가 예를 다해 창암을 대하며 신필에 감탄하자 창암의 이름이 더욱 높아졌다는 것이다.그리고 어느덧 8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1849년 1월, 유배에서 풀려난 추사는 귀경길에 전주에 들려 창암을 찾았다. 그러나 창암은 작고한지 3년이 지난 뒤였다.그날 밤 창암의 제자를 만난 추사는 이런 말을 들었다."글씨는 한(漢)·위(魏)나라의 고전을 원전으로 삼아야지, 진(晉)나라 왕희지를 받들면 글씨가 형태만 예뻐지기 쉽다" 창암이 추사가 떠난 뒤 입버릇처럼 했다는 말이다. 이 글은 강암서예관에 소장돼 있다.이 말을 들은 추사는 깨달은 바 있어'명필창암완산이공삼만지묘(名筆蒼巖完山李公三晩之墓)'라는 묘비를 쓴다. 그리고 "어질고 위대한 서가가 누워있으니, 후생들아 감히 이 무덤을 훼손하지 말지어다"는 묘문을 남긴다. 뒤늦게 창암의 진가를 인정한 것이다.마침 창암을 기리는 휘호대회가 그의 출생지 정읍에서 열릴 예정이다. 평생 이 지역에 살며 조선 글씨의 진수를 보여준 명필의 예술혼이 새롭게 조명되었으면 한다./조상진 논설위원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한국 불교를 이끌었던 대강백(大講伯·경전 강의를 잘 하는 스님) 석전 영호 대종사(1870~1948). 그를 조명하는 학술세미나 '석전 영호 대종사의 생애와 사상'이 20일 오전 10시 고창 선운사 강당에서 열린다.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선운사가 주최하고 불교신문사와 백파사상연구소가 주관하는 이번 세미나는 석전 영호 대종사의 열반 60주기를 맞아 마련된 것. 선운사 주지 등운 법만 스님은 "석전 스님은 선승으로 한국 불교계에 그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며 "오늘날 한국 불교의 교육과 포교, 역경사업에 필요한 인재들을 양성하신 선불장으로서 후학들이 큰 스님의 학문과 덕화를 가슴 속에 새기고 계승하기 위해 세미나를 열게됐다"고 말했다.1870년 완주군 초포면에서 태어난 석전 스님은 열아홉살이 되던 해인 1888년 완주군 소양면 태조암으로 출가했다. 근대 불교의 유명한 학승으로, 미당 서정주와 가람 이병기를 비롯해 정인보, 최남선, 이광수, 홍명희, 조지훈, 신석정, 김동리 등 많은 재가 불자 문인들이 석전 스님의 가르침을 받았다. 일반인들에게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한성임시정부 건립에 참여했던 독립운동가이자 한국불교의 초대 교정을 지낸 박한영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선운사와는 추사 김정희가 하사해 선운사 백파 문중에 내려오던 호인 '석전'을 물려받아 인연을 맺게 됐다.이날 세미나에서는 혜남 스님(전 종립승가대학원장)의 기조강연 '석전 영호 스님의 강맥'을 시작으로 노권용 원광대 교수가 '석전 박한영의 불교사상과 그 유신운동', 효탄 운문사 승가대학 교수가 '석전 영호 대종사의 계율사상', 오경후 한국불교선리연구원 선임연구원이 '영호 박한영의 항일운동', 김상일 동국대 교수가 '석전 박한영의 문학관', 동국대 불표문화원 김호귀씨가 '석전의 선사상과 선종사적 배경 고찰'을 발표한다.선운사는 세미나와 함께 19일부터 11월 22일까지 '제2회 선운문화제'를 열어 석전 스님의 유묵과 '석전시초' 육필원고, 편지, 엽서 등 50여점을 전시할 예정이다. 내년까지 석전 스님이 저술한 단행본과 번역한 서적을 중심으로 전산작업을 진행, 발간하고 2012년까지 석전과 관련된 모든 자료들을 한글로 번역해 현대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생가 복원과 석전기념관 건립도 추진될 전망이다.
김경호 한국사경연구회 회장(48)이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는 '2009 문자문명전'에 초대됐다.20일까지 열리는 '2009 문자문명전'은 창원 다호리 고분에서 출토된 붓을 중심으로 해인사 팔만대장경과 불교 경전을 필사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사료를 모은 전시라는 점에서 주목을 모은다.이 고분에서 출토된 붓 다섯자루가 우리나라 문자문명의 발원지가 될 수 있다는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그는 이번 문자문명전에서 '천부경''관세음보살백련화수진언''초안당유성선사탑비''관세음보살 시무외수진언''감지금니 반야심경'을 선보였다.김 회장은 "통일신라와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문자예술이 바로 사경"이라며 "화려하고 장엄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경을 통해 한국의 문자문명의 의의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김제 출신인 그는 전북대 국문과,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서예문화정예작가 100인초대전 등 많은 전시에 참여해왔다.
고창군청내 멀구슬나무가 국가지정문화재인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문화재청은 생활문화와 관련이 깊은 전통나무인 고창군청내 멀구슬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고 8일 밝혔다.천연기념물 503호로 등재된 고창군청내 멀구슬나무는 수령 200년 정도로 추정되며 이 수종으로는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확인됐다. 수고 14.0m에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가 4.1m에 달하는 이 나무는 다른 멀구슬나무가 대부분 남해안과 제주도에 주로 생장하는 것에 비해 비교적 북쪽에 자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한편 고창군은 이 멀구슬나무를 친환경 농업의 상징으로 육성하기 위해 이 나무에서 종자를 채취, 농업기술센터 실증시범포에서 매년 1만5000주 가량의 멀구슬 나무의 2세대를 육성한 뒤 농가에 보급하고 있다.
동의보감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것을 기념하는 행사가 8일 창덕궁 후원에서 열렸다. 보건복지가족부와 문화재청, 대한한의사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날 행사는 '한의학의 보물' 동의보감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것을 축하하며 그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한 것으로 전재희 복지부장관을 비롯해 이건무 문화재청장, 변웅전 국회 복지위원장, 김현수 대한한의사협회장 등 정·관계 및 한의약계 관계자 150여명이 참석했다. 특히, 이날 기념식에서는 의성(醫聖) 허준선생이 동의보감을 완성해 임금께 올린 의식인 '동의보감 진서의(進書儀)'를 국조보감감인청의궤에 따라 재현해 눈길을 끌었다. 행사는 세계기록유산 등재경과 보고, 세계기록유산 심사평 및 등재 의의, 기념사, 축사, 유공자 포상 등 순으로 2시간여동안 진행됐다.
만경대 암각시, 남고진 사적비, 경기전 하마비, 덕진공원 3층석탑, 전북대 석불입상, 향교 앞 박진효자비, 회안대군 신도비 등이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또 이중 경기전 하마비와 회안대군 신도비는 지방문화재로 지정 받기 위해 도 문화재위원회에 신청하기로 했다.전주시는 7일 향토문화유산 심의위원회(위원장 윤덕향)를 개최해 이 같이 우리지역에 분포된 문화유산 7점을 선정, 전주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로 했다.현재 전주시가 국가지정문화재(14점)와 지방문화재(63점)을 보유하고 있으나, 향토문화유산을 지정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유홍준(60) 명지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창비)는 1993년 5월 첫 출간이래 꾸준한 화제를 낳아왔다. 첫 출간 당시에는 드물게 역사 학술서나 여행서 형식을 갖추지 않은 채 국내 여러 유적지를 답사하며 느낀 점을 구수한 입담으로 솔직하게 풀어썼고 현실 정치와 문화재 정책까지 신랄하게 비판해 이목을 끌었다. 1권은 물론 1994년과 1997년에 나온 2, 3권도 모두 인기를 얻었다. 1권은 2000년 100만부를 돌파했고 최근 100쇄 발행을 넘어섰다. 1∼3권을 모두 합해 7일 현재까지 230만부가 팔렸고 10일에는 200쇄 발행을 맞는다. 첫 출간 당시를 돌아보고 4, 5권 집필 계획을 소개하려 7일 기자들과 만난 유 교수는 1991년 지인들이 창간했다가 1년도 못돼 폐간한 진보계열 월간 '사회평론'에 원고료도 받지 않고 연재한 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시작이라고 회상했다. "안병욱 교수가 월간지 구색 맞춰야 하니까 학생들 데리고 버스 안에서 떠들던 얘기를 글로 쓰라고 해서 시작했죠. 나는 문화유산을 이렇게 봤다는 얘기를 딱 3차례 쓸 테니 다음에 국문학 하는 사람, 역사 하는 사람이 바통 이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못 이어받겠다고 그래서 계속 내가 쓴 거죠."백낙청 창비 편집인이 창간호에 실린 첫 연재분을 읽고 "나중에 책으로 내자"고 청하면서 자연스럽게 책이 출간됐다. 출간 이후 책의 인기는 엄청났다. 유 교수도 "상상을 초월하는 열풍"이었다고 회고했다. "책이 계산대 바로 옆에 쌓여 있었어요. 사람들이 계산대 옆에서 바로 집어들고 살 정도였죠. 강연 요청이 많아서 1주일에 2∼3번은 했습니다. 전국 군 단위는 그때 거의 다 가봤어요."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르자 책은 독자와 함께 성장했다. 휴대전화나 인터넷도 없던 시절 독자들의 편지가 '반닫이 하나' 가득 채울 정도였고 독자들의 항의와 지적으로 재판을 찍으며 고친 부분이 120군데에 달했다고 했다. 유 교수는 "왜 그렇게 사갔는지 나도 모르겠다"면서도 재차 인기 비결을 묻자 시대적으로 당시 독자들이 그런 책을 기다렸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이 책은 당시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라는 말을 유행시키면서 우리 유산에 대한 자긍심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우리 유산은 왜 이집트 유산이나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같지 않느냐'는 생각이 있었을 때죠. 그때 '우리 눈으로 보면 우리 문화유산은 이렇다'라는 걸 보여줬던 거예요. 또 승용차 700만대 시대여서 의미 있는 여행지를 찾는 사람도 많았죠. 책이 나온 뒤에 강진 사람들이 '예전엔 대구ㆍ경북 자동차 번호판이 이렇게 많이 보인 적이 없었다'고 하더군요."또 유 교수는 문인들이 자신의 문체를 '수다체'라고 말한 적이 있다면서 "창작자 기질이 6, 학자 기질이 4인 글이라고 평가하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 교수는 3권 이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이어 쓰려고도 했으나 북한행이 결정돼 '나의 북한 문화유산답사기' 상ㆍ하권을 쓰게 됐고 2004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문화재청 청장을 지내면서 4권 작업과는 한동안 멀어졌다. 기약 없이 미뤄졌던 4권을 독자들은 내년 중 만나게 된다. 유 교수는 최근 전남 순천의 선암사편 1회분 원고를 썼으며 곧 지면을 골라 연재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안 쓰려고도 했었어요. 그때는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민주화 열기로 검열 걱정 없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였죠. 군사 정권도 마음껏 비판할 수 있었으니 나도, 독자들도 통쾌했어요. 지금은 민주화가 다 됐으니 다르죠. 또 '문화재를 이따위로 관리하나?'라고 무책임하게 쓸 수 없고, 이제 나도 환갑을 지났는데 중견 시절에 쓴 글과 같은 톤을 유지하기도 어려워요."그럼에도, 4∼5권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다루지 못한 지역 때문이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1∼3권에 충청과 제주, 서울 지역의 문화유산을 다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장 시절에 충북 지역 산성(山城)들, 지리산 지역 산사(山寺)들을 묶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하는 방안을 생각했어요. 그만큼 충북 지역 산성들이 아주 멋있고, 산사들도 중국이나 일본 산사에 없는 우리만의 멋이 있죠. 산성 순례, 산사 순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유 교수는 자신의 고향인 서울의 문화유산에 대해서도 쓸 계획이라면서 수도권 등지의 '옛 정취 있는 곳'을 골라 다루겠다고 말했다. "유적으로 제일 가치 있게 남은 궁궐에 대해 써야겠죠. 또 600년 왕도의 귀족이 다 살았지만, 사대문 안에 저택이 별로 남지 않았어요. 범위를 넓혀 성북동 성락원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한테 '3대 정원'을 꼽으라면 담양 소쇄원, 성락원, 보길도 부용동을 꼽을 겁니다. 그리고 인왕산에서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성곽과 화가, 문인들 이야기, 경기도의 세종대왕 영릉에 대해 쓰려고 합니다. 여주 고달사지, 원주 법천사지, 흥법사지 등 폐사지들이 굉장히 멋있는데 그곳을 쓸 생각도 하고 있어요."그는 1∼3권과 시차를 두고 쓰는 4∼5권을 '시즌 2'라고 부르면서 "'부시맨', '영웅본색'은 2편이 1편보다 더 잘 나온 영화라는데 그 정도로 색채를 달리하면서도 예전 책과는 다른 메시지를 던진다면 좋지 않겠느냐?"라고 말하며 웃었다. "일단 써 보고 4권이 괜찮다고 하면 그대로 5권을 쓰고, 형편없다고 하면 분발해서 5권을 더 잘 쓰려고 합니다. (웃음)"
경기도 안산시는 오는 10일 한양대 게스트하우스에서 '안산 다문화 국제포럼'을 개최한다고 7일 밝혔다. '다문화 공존시대! 이해와 화합의 길을 열다'는 슬로건으로 개최되는 이번 포럼에는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과 박진 국회 아시아.경제문화포럼 대표, 제니스린 마셜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가 기조 연설자로 나선다. 정경수 서울대교수와 크리스틴 슬리퍼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레티큐 베트남 하오이대 교수, 다카무라겐지 일본 가와사키시 시민옴부즈먼사무국 주관, 크리스틴 잉글리스 호주 시드니대 교수, 압둘라자크오스만 영국 레스터시의회 부의장, 박선희 안산시의회 의원 등이 토론자로 참여한다. 포럼은 세션1,2로 나눠 진행되며 세션1에서는 '내일을 향한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주제로 이민자와 다문화가정에 대한 토론을 벌이고, 세션2에서는 '화합의 장을 모색하다'는 주제로 각국의 다문화 정책과 노하우 등이 다뤄진다.
고창출신의 정운전 전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이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박비향(撲鼻香)' 출판기념회를 열고 "박비향 전도사가 되겠다"고 밝혔다.정 전 장관은 이날 "지난 '촛불정국'에 대한 아픔, 원망, 분노를 모두 다 이 자리에서 내려놓겠다"며 "과거의 갈등을 잊고 화합과 소통을 위한 전도사가 될 테니 여러분도 내게 희망의 향기를 나눠 달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권에 있지 않아도 농업 발전을 위해 할 일이 많다"면서 "앞으로 '박비향'브랜드를 단 친환경 농산물을 개발하는 등 농업 선진화를 위해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이날 출판기념회에는 한승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장태평 농식품부 장관, 이영희 노동부 장관, 이만의 환경부 장관, 변도윤 여성부 장관,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 최경환 지경부 장관 후보자, 무소속 유성엽 의원,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 김덕룡 청와대 국민통합특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백용호 국세청장, 김승유 하나금융회장, 장수만 국방부 차관, 정광수 산림청장, 오세익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김영식 한국농업대학 총장, 전북일보 서창훈 회장, 7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이명박 대통령은 축하화환을 보냈다.이날 한 총리는 축사에서 "1차 산업에 머물러 있던 우리의 농업과 수산업이 당당히 제조업 등 2, 3차 산업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터를 닦은 사람이 바로 정 전 장관이고, '농림수산식품부'란 이름도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고 격려했다.변도윤 장관도 "정 전 장관이 현 정부 첫 내각에 있으면서 정말 고생이 많았다"면서 "'살 맛 나는 농촌' '돈 버는 농촌'을 앞장서 외친 정 전 장관의 바람이 농촌 곳곳에 퍼져 성공하는 나라가 되길 기원한다"고 밝혔다.한편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파문으로 중도하차했던 정 전 장관은 이 책을 통해 대학 졸업 후 농업에 뛰어든 사연과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 촛불시위 당시 광화문 현장을 찾았던 얘기 등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제목인 '박비향'은 중국 당나라 고승인 황벽선사의 시(不是一番 寒徹骨 爭得梅花 撲鼻香)에서 따온 것으로, '코를 찌는 희망의 향기'라는 의미다.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박복영 시인-장선희 ‘조금조금 초록 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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