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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백과사전, 240년 늦게 간행된 까닭은?

옛 동아시아의 유서(類書)는 여러 내용을 사항별로 분류해 정리한 책을 일컫는 말로 오늘날의 백과사전과 같은 책이다. 규모와 내용면에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유서는 중국 원나라 '운부군옥'의 제목과 체제를 딴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이다. 한학자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가 쓴 이 책은 선조 20년인 1587년 이전에 이미 초고 집필이 끝났고 1589년에는 정서(正書) 작업마저 마쳤다. 이어 판을 짜서 정식으로 간행하려 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뤄져 240여년이나 지난 1836년에야 목판본으로 간행됐다. 그 사이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등 나라의 큰일 때문에 간행이 미뤄지기도 했지만, 실제로 잘 알아보면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간행되기 전에도 '대동운부군옥'은 필사본으로 무척 많이 유통돼 읽혔는데, 각 집안에서 자신의 조상에 관련된 옛 내용들을 고쳐달라는 부탁을 하고 수용되지 않으면 간행을 막으려 했던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은 옥영정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교수를 비롯한 6명의 학자가 함께 집필한 '조선의 백과지식-대동운부군옥으로 보는 조선시대 책의 문화사'(한국학중앙연구원 펴냄)에 실린 이야기다. 같은 책에 실린 다른 글에서 전경목 한중연 교수는 한자의 발음사전으로 당대에 친숙했던 '운서(韻書)' 형태로 만들어진 '대동운부군옥'의 문화사적 의의를 짚었고, 오영균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수는 당시 상업출판 상품의 성격을 띠었던 원나라의 '운부군옥'의 역사를 살폈다. 주영하 한중연 교수는 "15세기 이후 조선에서는 중국과 구별되는 조선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며 '대동운부군옥'에서도 조선적인 용례와 정의가 많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책은 지난 2008년 출간된 '조선시대 책의 문화사'에 이어 한중연 교수들이 책에 담긴 문화사적 의미를 다룬 두 번째 책이다. 288쪽. 1만3천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04.09 23:02

비서구 작가들과 세계문학을 생각한다

비서구권 작가들이 한데 모여 유럽 중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세계문학을 새롭게 논하기 위한 자리가 마련된다. 인천문화재단(대표이사 심갑섭)은 이달 23-25일 인천아트플랫폼과 하버파크호텔에서 한국문학번역원(원장 김주연) 후원으로 '제1회 인천 아시아ㆍ아프리카ㆍ라틴아메리카(AALA) 문학 포럼'을 개최한다고 8일 말했다. '세계문학을 다시 생각한다'라는 전체 주제 아래 열리는 이번 포럼에는 쿠바 시인 난시 모레혼, 중국 소설가 류전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디웨 마고나 등 해외 문인 13명과 박완서, 현기영, 도종환 등 한국 문인이 함께 참여한다. 해외 문인 중 난시 모레혼(66)은 2006년 마케도니아 국제시 축제에서 '스트루가 상'을 받은 쿠바의 흑인 시인이며, 신디웨 마고나(67)는 아프리카 여성작가로는 드물게 전업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시오닐 호세(86)는 살아있는 필리핀의 문학사로 불리며, 호 아인 타이(50)는 베트남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포럼에는 이들 외에도 인도, 브라질, 팔레스타인, 나이지리아, 이집트 등 다양한 나라에서 비서구권 문인들이 함께한다. 포럼 첫날인 23일에는 개막식에 이어 박완서, 이경자, 난시 모레혼 등이 '비서구 여성 작가의 목소리'라는 주제를 토론한다. 이튿날에는 시오닐 호세, 현기영, 류전윈 등이 비서구권 작가들의 눈으로 짚어본 '제국, 탈식민, 근대, 이산'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 마지막 날에는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선 세계문학?'이라는 주제 아래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를 포함한 국내외 평론가들이 세계문학의 담론과 개념 등을 논한다. 행사 기간에는 참가 문인들의 '낭독의 밤'(23일)에 이어 쿠바 소설가 미겔 바르넷 등 국내에 작품이 번역된 해외 작가들의 '저자와의 대화'(24-25일)도 펼쳐진다. 인천문화재단 측은 "이번 포럼은 인천이 근대의 개항장을 넘어 새로운 세계문학의 중심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매년 포럼을 개최하는 한편 그 성과를 반영한 출판물도 출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년 하반기에는 시인 한하운의 친필 원고를 비롯 다양한 자료를 갖춘 '한국근대문학관'도 문을 열 예정이어서 문학과 인천의 연계성이 강화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 문학·출판
  • 연합
  • 2010.04.09 23:02

[오항녕의 인문학 에세이] 역사 속에서 걸어 나온 학생들…그러면 선생들은?

'여기 한 남자가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앞에 두고도 결코 자신이 그것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걸 용납하지 않는 것이었다.'나카지마 아츠시(中島敦)는 「역사 속에서 걸어 나온 사람들」에서 이릉(李陵)의 삶을 이렇게 요약했다. 이릉은 중국 한(漢)나라 무제 때 흉노군과 치열한 전투 끝에 죽지 못하고 포로가 된 비운의 장수이다. 한 무제는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한 일로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 바로 그 사람이다.천한(天漢·BC 99년) 2년 9월, 기도위(騎都尉) 이릉은 보병 5000을 이끌고 알타이 산맥 동남쪽 끝이 고비 사막에 닿은 자갈 많고 거친 구릉 지대를 뚫고 한 달이 걸려 막북(漠北) 준계산(浚稽山) 기슭에 진을 쳤다. 변방에서도 1500리가 떨어진 곳이었다. 그리고 3만 아니 8만 흉노의 군대와 벌인 기나긴 전투…. 얼마 남지 않은 군사들과 뒤엉켜 싸우던 중 그의 말은 화살을 맞아 고꾸라지고 그는 뭔가에 뒤통수를 얻어맞고 쓰러졌다. 장군을 잃은 패잔병 400명은 그해 11월에 변방에 도착했고, 패보도 곧 장안에 전해졌다.무제는 처음에 화를 내지 않았다. 충분히 납득할 만한 패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릉이 죽지 않고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에 무제는 격노했다. 조정은 이릉의 매국적 행태를 비난했다. 세상인심이 그러하듯, 이제 평소 이릉의 행동 하나하나가 의심스러웠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명장 이광(李廣)의 손자라며 고군분투하는 이릉을 칭송했던 이들도 그들이었다. 이때 한 하위직 대부(大夫)도 이릉의 처리에 대한 황제의 질문을 받았다. 그는 말했다."평소에 이릉을 보니, 부모께 효도하고, 벗과는 신의가 있었으며,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을 돌보지 않고 자진해서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오직 자신과 처자식만 생각하는 폐하의 측근들이 이릉의 실수 하나를 들어 사실을 왜곡하고 과장하여 폐하의 총기를 가리고 있습니다."이 사람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무제는 관자놀이에 경련을 일으키며 듣고 있었다. 무모한 그 남자, 사마천(司馬遷)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오직 자신과 처자식만 생각하는 신하(全軀保妻子臣)들은 부끄러움을 느끼기보다 사마천의 말을 자신들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고, 그 공격에 대해 앙갚음하기 위해서 사마천을 그래서 이릉의 가족들보다 사마천이 먼저 벌을 받게 되었다. 형벌은, 부형(腐刑)이라고도 불리는 궁형(宮刑)이었다. 이 와중에서 그는 「사기(史記)」를 남겼다.▲ 다시 걸어 나온 사람의 말을 듣다이렇게 세상에 맞부딪혔던 사람들, 이들을 역사는 종종 다시 불러낸다. 그래서 그들은 지나간 역사 속에서 성큼 걸어 나온다. 그러나 여기에는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불안한 상황이 있다. 역사의 인물로 남는다는 것, 그것도 세상과 한 판 벌인 경우는 대부분 뭔가의 힘겨운 상황이 벌어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심 가능하면 자꾸 역사 속에서 걸어나오는 인물들이 없었으면 하고, 이 소심한 역사학자는 바라기도 한다. 물론 여기서 '힘겹다'고 표현하는 것은 나 같은 범인의 눈에 그렇다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의 인격과는 상관없이 현실은 결단을 요구할 만큼 벅찬 것이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지금도 그런가 보다. 아니, 그렇다. 어떤 학생이 말했다."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를 거부한다고."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그는 학교를 '그만 두지 않았다'. 그는 학교를 '거부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이다. 국가는 의무교육의 이름으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고, 대학은 자본과 대기업에 '인간제품'을 조달하는 가장 효율적인 하청업체가 되었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이 변화가 빠른 시대에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는 또 대학원에, 유학에 돌입한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말처럼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학습된 두려움과 불안은 다시 우리를 그 앞에 무릎 꿇게 한다.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 없는 대학에서, 우리 20대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 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한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리고 대학에서 답을 찾으라는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동시에 이 체제를 떠받쳐온 내 작은 탓을 묻는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시들어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지금 바로 살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떡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됐다.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대학생(大學生)'의 첫발을 내디딘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김예슬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 이제 공은 넘어 왔다내 강의를 듣는 정성윤씨(고려대 재학)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누군가 대자보를 붙였고, 굉장히 많은 이들이 그 대자보를 주목했다. 안타깝기도 했고, '이제야 한 사람 나왔구나' 싶기도 했고, 쉽게 내리기 어려운 결정이기에 멀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일단, 나는 대자보 글을 '정치적으로 50%쯤' 지지한다. 손 놓고 구경하겠다는 '심정적 지지'가 아니다. 하지만, 대학에서 별다른 의미나 희망을 찾지 않고 있는 나로서는 그녀의 대갈일성에 담긴 메시지에 전적으로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그는 블로그에, 누군가의 손에 의해 훼손되고('테러 당한') 떨어져나간 김예슬의 대자보를 사진으로 찍어 고발했다.김예슬씨의 대자보를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느낀 수많은 상처 입은 영혼들이 있었나 보다. 그보다 미안해하고 답답해하는 더 많은 영혼들이 있었다. 그들은 학교에 남아 있는 자신들을 미안해했다. 이 황당한 상황! 학생이 학교에 남아 있는 것을 미안해해야 하다니! 그래서 나는 그들을 위로해야 했다. "학교에 남아 있든, 거부하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남든 거부하든 풀어야할 문제, 살아야할 현실은 그대로 남는다. 미안한 마음 대신 우리가 같이 마주하고 있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머리를 맞대자"라고 '선생 같은' 소리를 했다.김예슬씨의 대자보가 붙은 얼마 뒤 서울대에 대자보를 붙인 채상원씨(서울대 재학)는, "오늘,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 아니, 싸움을 시작한다"고 뜻을 같이 한 뒤, 이렇게 말했다. "이 물음에 답해야 하는 사람, 대안을 만들 수 있고 만들어내야 하는 사람은 대학 교수님도, 정치인도 아니다. 바로 우리 대학생들이다. 우리의 삶을 그들에게 내맡길 수는 없다. 이에 나는 오늘 조용히 다짐을 해보려 한다. 자발적 퇴교와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그러면서도 지금의 대학을 거부하기로. 대학의 주인이 되어 대학의 변화를 주도하기 위한 싸움을 벌이기로" 했다고. 믿음직하다. 그런데 나는 "대안을 만들 수 있고 만들어내야 하는 사람은 대학 교수님도, 정치인도 아니다. 바로 우리 대학생들이다"라는 말에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점잖게, '대학 교수님'은 아니란다. 나는 찍혔다./오항녕(문화전문객원기자·한국고전문화연구원)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0.04.09 23:02

이슬람은 어떤 '사람의 역사'를 꾸려왔나

영국의 중동 역사학자 앨버트 후라니(1915∼1993)가 쓴 이슬람 역사 개론서 '아랍인의 역사'(심산 펴냄)는 중동과 이집트, 북아프리카, 스페인 안달루시아에 이르는 아랍 지역의 7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넓은 범위의 지역을 다루는 만큼 책에 그려지는 상황들은 복잡다단하다. 예언자 무하마드가 메카에서 알라(신)의 뜻에 따르도록 사람들을 이끌면서 이슬람 세계가 형성되고 그 후계자인 칼리파가 이슬람 제국을 세우는 과정, 여러 지역에서 칼리파들이 우후죽순 등장하며 이슬람 제국이 분열되는 과정이 이어진다. 이어 이슬람 세계는 이라크, 이집트, 마그립 등 세 영역으로 분할돼 정치적 격변을 겪다가 다시 오스만 제국, 사파비 제국, 무갈 제국의 3개 대제국으로 나뉜다. 유럽이 세계를 제패한 19세기에는 서구 열강에 휩쓸리다가 2차대전 이후 아랍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국민 국가들이 세워진다.저자는 이런 방대한 역사의 소용돌이를 침착하게 잡아내는데, 그 핵심에는 아랍 역사철학자 압둘 라흐만 이븐 칼툰(1332∼1406)이 '역사서설'에서 제시한 개념인 '아싸비야(asabiyya)'가 있다. 아싸비야란 간단히 풀이하면 '집단 연대 의식'이다. 강한 결속력을 지닌 추종자들을 거느린 통치자가 쉽게 국가를 세울 수 있고, 통치자의 안정된 지배를 바탕으로 도시가 성장하고 문화가 꽃피운다. 이슬람 세계는 코란과 아랍어를 바탕으로 견고한 아싸비야를 쌓았다. 그 덕에 아라비아 반도를 넘어 아프리카, 이베리아로까지 뻗어나갔으며 그리스 문명과 페르시아 문명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었다. 레바논 출신 영국인이며 기독교인인 저자가 이슬람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신중하고 객관적이다. 많은 서구인이 이슬람 문화에 접근할 때 급진적인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들의 과격한 활동에 대한 선입견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슬람 세계가 과도한 신앙심과 조건 없는 충성으로 점철된 것이 아니라, 다른 문화권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역사'를 이루며 현재에 이르렀음을 일깨운다. 그는 이슬람 세계에서도 여러 왕조가 외부 세력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흥망을 거듭했고 새로운 권력자들의 등장으로 도시와 백성의 삶이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또, 기독교와 유대교 등 외부 문화가 이슬람 사상과 경제, 문화에 영향을 줬으며, 오스만 제국을 비롯한 아랍 국가들이 외부 언어 및 문화와의 접목과 혼합을 거듭하며 보편성을 지켜왔다는 점도 짚어낸다. 물론, 책의 중심에는 격변의 역사 속에서도 같은 신앙과 언어를 통해 아랍인으로서 정체성을 지켜온 이슬람 민족들의 모습이 있다. 역자인 김정명ㆍ홍미정 씨는 "후라니는 이슬람의 모습을 기형적으로 과장된 예외적 현상 속에서가 아니라 최고 경지에 달한 울라마나 수피 수도승의 가르침 속에서 찾고자 했다"고 소개한다. 896쪽. 3만8천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04.08 23:02

中 유력문예지 4월호 전체가 한국문학

중국의 대표적인 문예지 월간 '쭤자'(作家)가 4월호 전체를 털어 한국 현대문학을 소개했다. 이 문예지는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의 해외 한국문학 연구지원을 받아 총 210쪽 분량의 4월호를 한국 현대문학 특집호로 꾸몄다. 1956년부터 중국 정부에서 매월 발간, 지난해 490호를 돌파한 '쭤자'는 모옌(莫言), 왕안이(王安憶), 위화(余華), 꺼페이(格非), 류전원(劉震雲) 등 중국의 당대 대표작가들의 작품을 발표하는 등 중국 작가들에게 필독서로 꼽히고 있다. 대산문화재단 측은 "쭤자가 지난해 몇몇 한국 문인들의 작품을 소개한 결과, 한국 문학에 대해 높은 평가가 이뤄지는 등 반응이 좋았다며 지면 전체에 한국 문학을 소개하고 싶다고 제안했다"며 "중국 문예지가 전체 지면을 통해 한국 문학을 소개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설명했다. '쭤자'의 종렌파 편집장과 번역가 박명애가 편집을 맡고, 중국 소설가 리얼이 감수한 특집호에는 한국 작가 28명의 약력과 사진, 작품 44편이 수록됐다. 소설로는 최수철의 '내 정신의 그믐', 윤대녕의 '제비', 이승우의 '전기수 이야기', 최인석의 '스페인 난민수용소', 박범신의 '내 기타는 죄가 많아요, 어머니', 김인숙의 '칼의 자국', 신경숙의 '감자 먹는 사람들', 한 강의 '왼손', 오정희의 '어둠의 집', 김연수의 '첫사랑' 등 중단편이 실렸다. 시로는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 장석남의 '나의 하관', 안도현의 '11월', 김혜순의 '얼굴', 김기택의 '껌', 곽효환의 '카페 재클린', 정끝별의 '불멸의 표절', 신경림의 '낙타', 황인숙의 '새를 위하여', 신달자의 '열애', 송찬호의 '나비', 박형준의 '저곳' 등의 작품이 소개됐다. 특집호는 중국의 주요 작가 및 평론가 100여명에게 배포된데 이어 중국 전역에 1만8천부, 해외에 1만부가 배포돼 중국어권 독자들에게 한국문학을 알린다. 대산문화재단은 "중국 문단의 유력 문예지로 꼽히는 '쭤자'가 한국 문학 특집호로 꾸며진 것은 중국 문인 및 평론가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 한국 문학을 본격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 문학·출판
  • 연합
  • 2010.04.08 23:02

러시아 거장 레프 도진의 연극 작업과정은

체호프 탄생 150주년을 맞아 그의 작품이 연이어 공연되는 등 영미권 연극에 집중됐던 국내 무대에 최근 러시아 연극이 활발히 소개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자료가 부족한 현실에서 러시아 출신 세계적 연출가 레프 도진의 작품 세계를 다룬 책이 출간됐다. 마리아 셰프초바 런던대 교수가 쓴 '레프 도진과 말리드라마극장'(동인 펴냄)은 비평보다는 자세한 분석과 정보를 담은 책이다. "공연이 어떻게 그리고 어떤 이유로 제작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저술했다"고 밝힌 저자는 작품이 어떤 과정을 거쳐 무대에 오르는지 묘사하고, 몇 년에 걸쳐 나타나는 주요한 변화들을 자세히 기록했다. 1부는 도진과 말리드라마극장의 역사와 작업과정을, 2부는 주요 작품들을 소개한다. 3부에서는 '스페이드 여왕' 등 도진의 오페라 연출 작업을 조명한다. 레프 도진은 러시아 연극 최고 권위의 골든마스크 상을 세 차례 수상했고, 러시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세계적인 권위의 유럽연극상을 받은 거장이다. 2001년과 2006년 각각 '가우데아무스'와 '형제자매들'로 한국 관객과 만난 그는 내달 상트페테르부르크 말리극장을 이끌고 LG아트센터에서 '바냐 아저씨'를 선보인다. 심정순 숭실대 교수와 김동욱 성균관대 교수가 3년여에 걸쳐 공역했다. 424쪽. 1만8천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04.08 23:02

20대 젊은이의 꿈 찾기

"넌 주관이 없어. 뭐든지 남이 하라는 대로 하고, 그것도 금방 포기해 버리잖아. 니가 아직도 고등학생인 줄 아니? 니 인생에 좀더 진지해봐. 본인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스스로 찾아야지. 인생은 남이 대신 살아 주는 게 아니니까."(14쪽)막 제대한 25세 휴학생 '영대'는 입대 전부터 짝사랑하던 과 선배에게서 "넌 꿈이 뭐니?"라는 질문을 받는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군대까지 갔다 온 자신에게 이런 물음은 "마치 아흔 살 먹은 노인에게 장차 어떤 여자와 결혼하고 싶으냐고 묻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영대를 과 선배는 주관이 없다고 답답해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자기 의지대로 살아보겠다고 결심한 그는 월 10만원짜리 허름한 지하 월세 방을 구해 독립을 실행한다. 최근 출간된 작가 김미월(33)씨의 첫 번째 장편 '여덟 번째 방'(민음사)은 꿈을 찾아 헤매는 20대 젊은이의 모습을 그린다. 김씨는 이번 소설이 "꿈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며 "자신이 당장은 꿈이 없다고, 있어도 이뤄질 것 같지 않다고 낙담만 하지 말고 끝까지 그것을 응시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썼다"고 말한다. "1980년대나 2000년대나 젊은이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잖아요. 자신이 처한 절망도 과장되게 생각하구요. 20대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지요."소설은 이사한 영대가, 전에 살던 여성이 남기고 간 '여덟 번째 방'이라는 제목의 노트를 발견하면서 그 노트 속 주인공과 영대의 이야기를 오가는 형식을 취한다. 노트 속 주인공은 바닷가 고향집에서 시작해 서울의 친척집 문간방, 대학가 하숙방, 단칸 셋방, 옥탑방, 반지하 골방 등지를 옮겨다녔다. "그 많은 방들에 나는 내 20대를 골고루 부려 놓았다. 나에게 방은 집에 부속된 공간이 아니라 온전한 집 자체였다. 부등식 '방<집'이 아니라 등식 '방=집'이 성립되는 곳이었다. 그 많은 방들을 거두고 이제 나는 서른이 되었다. (중략) 방들 속에 고여 있는 기쁨과 슬픔과 꿈과 절망과 환희와 분노는 하나같이 모서리가 닳아 있었다. 말랑말랑해진 그 모서리들을 만져 보는 것이 나는 좋았다."(49-50쪽)영대와 노트 속 주인공은 어떤 '꿈'을 찾아가게 될까. 작가 김씨는 소설 속에서처럼 자신의 꿈을 묻는 말에 "너무 소박하다"면서 "'좋은 소설'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데, 이것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는 것,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 여행을 많이 하는 것, 이삿짐 트럭의 짐칸이 휑할 정도로 간소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김씨는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소설집 '서울 동굴 가이드'(2007)를 냈다. 272쪽. 1만1천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04.08 23:02

각박한 세상에 위로의 메시지를

"이전의 제 에세이를 읽었던 분들이 제 글이 더 따뜻해졌다고 하더라고요. 나이가 들면서, 개인적으로도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저도 달라진 거겠죠. 남을 위로하면서 상대방도, 저도 위로받는 것 같습니다."소설가 김별아(41)씨가 '좋은생각' 웹진에 연재한 북 에세이와 2005-2008년 캐나다에 체류하며 쓴 시 감상문을 합친 에세이집 '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좋은생각)를 냈다. 책에는 저자가 책과 시를 읽으며 사유한 삶과 사람 등에 대한 단상이 실렸다. 출간을 맞아 6일 낮 서울시내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난 김씨는 일상의 소중함을 전하는 "'좋은생각' 웹진의 성격상 독자 대부분이 착한 분들로, 작은 것에 위로받고 희망을 갖는 사람들이었다"면서 "내가 가장 나쁜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씨는 책에 대한 감상을 적은 북 에세이를 통해 웹진 독자들의 호응을 느꼈다며 "세상이 각박해 지면서 마음을 닫아버린 사람이 많은데, 책을 통한 치유의 효과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고 돌아봤다. 장편 '미실' 이후 작가로서의 들뜸을 경계하기 위해, 자신을 유배시키기 위해 캐나다로 떠났다는 김씨는 그곳에서 모국어를 그리워하다 한 편, 두 편 한국 시인들의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시가 읽히지 않는 시대에 독자로서 시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번 에세이집에는 자동차 전문 사진작가로 활동 중인 오환 씨가 서울 종로와 성북구에 걸쳐 있는 낙산의 풍경을 찍은 사진이 김씨의 글과 함께 실렸다. "가난한 살림살이에도 따뜻했던 사람들과 봉제 공장, 무허가 건물들이 고스란히 1970년대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소설이 작가의 약점을 숨기고 강점을 강조했다면 에세이는 고백이자 발언이 아니겠느냐는 김씨는 자신이 쓴 글들이 자신을 가르치는 것 같다고 힘줘 말했다. "사는 게 숨 막히니까 마음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시대잖아요.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어요. 순정이나 열정, 소망, 이런 가치를 아직 제가 믿고 있더라고요. 상처받는 거 두려워하지 말고, 고통 속에서도 죽도록 사랑해도, 행복해도 괜찮지 않나요."264쪽. 1만1천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04.07 23:02

감정이 능력이자 자본이 되는 사회

"당신이 이혼한 아내를 잊지 못하는 것은, 자신을 미워했던 전처로부터 인정받으면 '나는 나쁜 사람'이라고 하는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에요."유명 토크 프로그램인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한 심리치료사는 출연자를 환자로 취급하면서 이렇게 그의 심리를 분석한다. 대중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친다. 대중매체에서 보는 심리학ㆍ정신분석학적 설명이 시청자의 인기를 끌고, 심리학적 틀로 접근한 대중실용서가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시대다. 이런 설명이 주가를 높이는 이유는 이렇게 명쾌하면서도 중립적으로 보이는 설명을 대중이 원하기 때문이다. 기업에서도 심리학에 의존하기는 마찬가지다. 심리학은 노사간의 감정적 소통을 강조하면서 기업에서 노동자와 기업가 모두에게 환영받았다. 노동자는 심리학적 소통이 직장 내 관계와 출세의 통로를 민주화한다고 생각했고, 기업가는 그것이 노동 소요를 막고 계급투쟁을 무마해 이윤을 늘려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 사회학자 아도르노에 대한 강의를 정리한 '감정 자본주의'(돌베개 펴냄)에서 심리학이 기업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은 현대사회를 감정이 능력이자 자본이 되는 사회로 변화시켰다는 점을 밝힌다. 저자에 따르면 이와 같은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는 미국의 대표적인 심리학적 경영이론은 엘튼 마요가 1920년대에 행한 연구다. 마요는 당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억제되지 않은 이야기와 감정을 끌어내고 신뢰를 얻는 방법'으로 '치료면담'을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가족간 갈등과 같은 감정적인 내용이 직장 생활에 영향을 미친 사례들을 발견했다. 마요의 연구 이후 건전한 가정생활을 비롯한 '감정'은 기업에서 중요한 개념이 됐으며, 이에 따라 감정에 점수를 매겨 등급화하는 방법이 고안됐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대표적 등급화가 EQ로 널리 알려진 대니얼 골먼의 감정지능(EI)이다. EI는 생산성이 높은 직원과 낮은 직원을 등급화하고, 감정능력이 좋은 사람은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한다는 명제를 자리 잡게 했다. 이에 따라 현대사회에서는 감정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관리 대상이 됐고, 가족간 갈등과 연애 문제 등 사적인 것을 관리하는 것 역시 기업의 중요한 업무가 됐다. 저자는 이런 사회에서의 소통이란 차가운 업무에 불과하다고 '감정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며, 대안으로 '낭만적 사랑'을 제시한다. 합리적인 가치 계산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끌림을 복원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김정아 옮김. 240쪽. 1만4천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04.02 23:02

베일 벗은 조선후기 전주역사

조선후기 전주의 역사와 문화를 아우르는 「완산지(完山誌)」가 번역됐다.전주시와 전주문화원은 "전주의 역사와 문화를 총망라해 집대성한 「완산지」 번역작업을 지난해부터 시작, 「완역 완산지」를 출판했다"고 30일 밝혔다.규장각 소장의 「완산지」를 저본으로 한 「완역 완산지」는 산천, 학교, 누정, 관청, 불우(佛宇), 고사(故事), 인물, 문관(科宦), 유림(儒林), 음사(蔭仕), 생진(生進) 등으로 구분돼 정리됐으며, 풍남문루와 한벽당 등에서 시객들이 읊은 80여 수의 시와 경기전과 선화당 등의 상량문과 기원문 등 전주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번역을 맡은 이희권 전주문화연구소장(전북대 명예교수)은 "「완산지」가 가지고 있는 자료 자체도 풍부하지만, 오자와 탈자, 탈행까지 잡아내 교정하다 보니 각주만 무려 650개가 넘은 역작이었다"며 "각종 인문지리서 등을 참조해 보다 완전한 모습의 「완산지」 복원을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이소장은 "「완산지」에는 전주의 역사와 문화, 철학이 담겨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문으로 기록돼 있어 해독이 극히 제한적이고 일반인의 접근이 힘들었다"며 "번역된 「완산지」를 통해 전주의 문화적 특성인 선비정신과 절의정신을 느끼고 전주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 문학·출판
  • 도휘정
  • 2010.03.31 23:02

법정스님 '무소유' 93년판 110만원에 낙찰

품귀 현상이 벌어진 법정스님의 '무소유' 1993년판이 인터넷 오픈마켓에서 110만5천원에 낙찰됐다. 26일 옥션(http://www.auction.co.kr)에 따르면 1993년 8월 발행된 '무소유' 증보판(39쇄) 중고책이 26일 오전 9시 50분 110만5천원에 낙찰됐다. 1993년 당시 시중가였던 1천500원보다 700배 이상 높은 금액이다. 이 책은 23일 오전 10시 1천500원으로 경매가 시작됐으며 26일 낙찰되기까지 23건이 입찰됐다. 오래된 흔적은 보이지만 상태는 양호하며, 법정스님 서명 등 특이한 점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낙찰자는 출판사를 운영하는 40대 남성으로, 법정스님 책들을 연도별로 모으고 있어 이번 책 경매에 입찰했으며 낙찰가에 입금도 마쳤다. 낙찰자는 옥션을 통해 "법정스님의 열렬한 팬으로, 법정스님의 관련 서적들을 연도별로 구하고 있다"며 "소장가치를 판단해 과하지 않은 금액 범위에서 수집 중"이라고 말했다. 옥션에는 11일 법정스님 입적 이후 '무소유' 중고책이 하루 평균 10건씩 올라오고 있으며, 발행된 지 20년 이상 지난 책은 경매 시작가 10만∼30만원에 올라와도 비교적 빠르게 낙찰되고 있다. 22일에는 입찰가가 21억원까지 치솟은 사례도 있었으나 실제 구매 의사가 없는 허위 입찰로 판단한 옥션 측이 경매에서 내리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옥션 관계자는 "'무소유' 중고책 경매의 과열 현상을 막기 위해 허위 입찰로 판명되는 입찰자 아이디의 입찰을 제한하고 있다"며 "앞으로 법정스님 도서에 대해 최고 입찰가 상한선을 두는 방법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길상사와 맑고향기롭게가 운영하는 웹사이트인 법정넷(http://www.beopjeong.net)은 24일 '무소유' 책 전문을 올렸다가 삭제했다. 법정넷 관리자는 24일 오후 글을 올려 "'무소유'를 읽고자 하는 분들의 전화가 많이 와 서비스했으나 이는 출판사와 협의된 것이 아니었다"며 "출판사 측에 죄송하다"고 밝혔다. 법정스님의 대표작인 '무소유'(1976)는 판과 쇄를 거듭하며 300만부 넘게 팔린 스테디셀러로, 법정스님 입적 이후 출판사 범우사에서 추가 인쇄를 하지 않아 서점가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은 상태다.

  • 문학·출판
  • 연합
  • 2010.03.26 23:02

[강준만의 책으로 읽는 세상] '전라도 장인 33인'

신부자의 「전라도 장인 33인 : 신부자의 장인탐구」(전주문화원, 1998)는 저자가 PD로서 전주문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을 위해 '전라도의 장인정신' 시리즈로 취재했던 것을 책으로 펴낸 작품이다. 대단히 휼륭한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살 수 있는가? 쉽지 않을 것이다. 10여년전에 나온 책이라서 구하기 어려운 게 아니다. 지난해 아니 올해 나온 책이라도 우리 지역에서 출간된 책은 돈 주고 사겠다고 발버둥쳐도 사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지난 1년간 연재해온 '강준만의 책으로 읽는 세상'을 오늘로 끝내면서, 지역출판의 현실에 대해 평소 해온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다.내가 신부자의 「전라도 장인 33인」을 매우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탄탄한 내용도 내용이지만, 지역사랑과 지역연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모범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니 이건 지역경제와도 연관된 문제이다. '책'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시대에 무슨 책이냐는 식이다. 엄청난 착각이라는 걸 힘주어 말하고 싶다. 이른바 창구효과(window effect) 때문이다.미디어업계에서 창구효과란 하나의 프로그램을 서로 다른 시점에서 서로 다른 채널을 통해 공급하여 프로그램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전략적인 배포방식을 의미한다. 예컨대, 한번 방송된 지상파방송 프로그램은 이후 케이블TV, 위성방송, 지역민방, 인터넷, 비디오, DVD, 해외수출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또 게임, 음반, 캐릭터 등과 같은 부가산업이나 드라마 촬영지의 관광상품화까지도 활성화시킨다. 바로 이런 창구효과를 통해 프로그램은 각 미디어의 성격에 맞게 변형되고 계속 재활용되어 하나의 프로그램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는 '원 소스 멀티 유스(one-source multi-use)'의 구조를 갖게 되는 것이다.(김지운·정회경의 「미디어 경제학」)이런 창구효과의 기본이 되는 미디어가 바로 책이다. 전북의 미래산업으로 '영상'이 외쳐지면 질수록 그 콘텐츠 공급원인 책과 출판의 가치도 인정받아야 할 터인데, 우리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귀찮다고 뿌리를 자른 채 나무를 심는 꼴이다. 전북지역내 큰 서점들을 가서 살펴 보시라. 전북에서 출판되었거나 전북을 다룬 책들이 별도의 코너로 마련돼 있는가? 아니 그런 코너가 없어도 좋다. 책이 있기는 한 건가?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전북을 알고 싶어 미치겠다는 사람에게 당신은 어떤 책을 선뜻 소개해줄 수 있는가? 그런데 그 책을 구할 수는 있는 건가? 전북의 출판문화 발전을 위해 헌신해온 신아출판사의 이름을 아는 전북인은 얼마나 될까?전북 관련 책을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 언젠가 신아출판사에 직접 연락을 해 그간 나온 책을 모두 한꺼번에 구입한 적이 있다. 사실 신아출판사야말로 전북학의 총본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간 지역 관련 책들을 많이 출간해왔다. 이 책들을 널리 읽히게 하는 동시에 더욱 많은 필자들이 전북사랑·전북연구에 뛰어들게 할 수는 없을까?참으로 유감스러운 사실이지만, 기존 '시장논리'는 그걸 허용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굳이 말씀드리지 않더라도 잘 아실 것이다. 한국시장 전체를 상대로 한 책도 나가질 않아 출판사들이 위기에 처해 있는데 인구 200만도 안되는 전북에서 '시장논리'에 따른 출판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모든 걸 시장에 맡겨야 하는가? 좋다. 그게 모든 전북인의 뜻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으리라. 그러나 그렇다고 말하는 전북인은 거의 없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어떤 식으로건 '지역'을 내세우면서 시장논리를 초월한 주장과 호소들을 많이 내놓는다. 물론 그런 일을 위해 적잖은 예산이 투입된다. 그렇다면 책과 출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일이 아닌가?책과 출판이라고 하면 촌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각 지자체별로 가칭 '영상 콘텐츠 발전 위원회'라는 민간위원회를 구성해보면 어떨까? 이 위원회가 평가와 심사를 맡아, 전북 관련 책의 출간에 재정 지원을 해주는 건 어떨까? 돈 많이 들지 않는다. 건당 수백만원이면 족하다. 전북발전에 큰 도움이 될 책을 내려는 사람에게 자비(自費) 출판을 하라는 건 너무 가혹하다. 아니 그래서 전북발전을 위해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정보·지식·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아예 책을 써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과연 이대로 좋은가?신부자의 「전라도 장인 33인」은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궁금하다. 어디 그뿐인가. 전북의 문화정책에 대한 검증은 그들의 입을 통할 때에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닌가? 누군가 그 후속편을 써야 하는 게 아닌가? 전북의 거시적인 발전전략에 대해서도 지역대학의 교수들이나 관련 전문가들이 책을 내고, 그걸 근거로 신문지상 논쟁과 방송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 지역대학 교수들이 전북을 넘어서 대한민국 전체만 생각하고 걱정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긴 하지만, 더욱 아름다운 건 '땅을 딛고 서 있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해보는 게 아닐까?지자체에서 펴내는 각종 간행물들이 많다. 그 상당부분을 민간 영역으로 돌려보자. 관(官)은 아무리 성실하고 양심적이라 하더라도 그 특유의 관료적 매너리즘 때문에 대중과의 적극적인 소통 의지가 약한 법이다. 그간 지자체들이 펴낸 지역 역사서들이 꽤 나와 있다. 돈을 적잖이 들인 만큼 알찬 내용들도 많다. 그런데 아쉬운 건 책을 시장에서 팔아 보려는 마인드가 없기 때문에 '상품화'가 전혀 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아 조금만 더 정리하고 구성을 이렇게 했더라면" 하고 안타깝게 생각한 게 한두번이 아니다. 게다가 그런 책들은 한결같이 도서관에 가야만 볼 수 있는 비매품(非賣品)이다. 누가 도서관까지 찾아가서 그걸 읽으려고 할까?지역내 서점들도 발상의 전환을 해보면 어떨까? 잘 읽지도 않고 팔리지도 않을 지역 관련 책들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한다는 건 손실을 유발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이해한다. 그래서 그건 감히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서점의 구석 한 편에라도 전북 관련 서적들을 모아서 작은 코너 하나쯤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처음에야 손해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겠지만, 손해를 보면 얼마나 보겠는가? 하나의 새로운 풍토를 만들어나가는 일이고, 바람직한 풍토 조성이 이루어진다면 그 만한 보상이 반드시 뒤따를 것이다.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이런 이야기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무슨 '지역'이냐, 전북도 범수도권이다, 그러니 서울 하늘 바라보면서 살아가자, 지역대학 가려는 학생들에겐 어떻게 해서건 서울소재 대학 가라고 모멸하고 압박을 넣자, 그렇게 거창하게 살아야지 쫀쫀하게 무슨 시대착오적인 전북 타령인가? 민관(民官) 합동으로 이렇게 생각한다면, 내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넌센스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다시 생각해보자. 왜 순창 고추장이 유명한가? 당신은 그걸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설명해줄 수 있는가? 「전라도 장인 33인」의 '문정희편'(336~345쪽)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0.03.26 23:02

국립전주박물관, 어린이 전시유물감상 프로그램 개발

국립전주박물관(관장 김영원)이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전시유물 감상 프로그램 '고대문화실 보물찾기'를 개발했다.이 프로그램은 고대문화실 입구에 비치된 활동지를 가지고 유물을 찾아 관찰하고 퀴즈와 과제들을 풀어나가는 방식. 활동지는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저학년을 위한 '저학년용'과 초등학교 고학년 및 중·고교생을 위한 '고학년용', 학부모와 교사를 위한 해설서 등 3종류로 나뉘어져 있다. 전시실 동선에 따라 고인돌문화, 청동기시대 제사장, 토기, 익산 입점리 금동신발, 가야의 병사, 백제 무왕, 부안 죽막동 유적 등으로 구성했다.학예연구실 교육담당 이정원씨는 "그동안 박물관을 방문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유물을 어떻게 보고 느껴야 하는 지에 대해 많은 어려움을 호소해 왔다"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이들은 좀더 쉽고 재밌게 유물을 이해할 수 있고, 박물관은 어린이들의 관심과 흥미요소, 전시에 대한 반응 등의 자료를 수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고대문화실 보물찾기'는 고대문화실 입구에서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40명 이상 단체의 경우 박물관 교사의 지도도 받을 수 있으며, 보물찾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참가자 중 매월 두 명을 선발해 선물도 증정한다. 상반기 중 미술실과 민속실의 보물찾기도 개발할 예정이다.

  • 문학·출판
  • 도휘정
  • 2010.03.25 23:02

시와 시인, 그리고 독자와의 친밀한 만남

가난과 슬픔의 시인 박재삼. 시인은 평소에 책상을 잘 사용하지 않았다. 엎드려 시를 쓰고 고치고 또 고치고 이것이 시인의 삶이었다. 천상병은 젊은 시절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했다. 삶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 그의 낙천적인 인생관은 막걸리 한 잔으로 응축되어 있다.육사는 자신의 작품 중 '청포도'를 가장 아꼈다. "어떻게 내가 이런 시를 쓸 수 있었을까"라며 육사 스스로 감탄했다. 당시 그와 가까이 지내던 지인들은 육사가 이 작품을 쓰고 "내 고장은 조선이고, 청포도는 우리 민족인데, 청포도가 익어 가는 것처럼 우리 민족이 익어간다. 그리고 곧 일본도 끝장난다."고 말했다고 한다.박재삼 김춘수 유치환 천상병 이형기 이육사 구상 박목월 이호우 이상화 조지훈. 「추억의 詩, 여행에서 만나다」(도서출판 경진)는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에 삶의 흔적을 남겨놓은 시인들을 좇고 있다. 양병호 전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비롯해 노용무 이승철 송지선 이강하(전북대 강사) 정유미(중국 중산대 강사) 김형근(남원여고 교사) 신혜원(양주 회천중 교사) 박지학(전북대 박사과정) 백장완 박선미(전북대 석사수료) 등 전북대에서 시를 공부한 이들이 글을 썼다.이들은 연구서 보다는 대중들에게 시를 소개하는 안내서로서 시와 독자의 행복하고 친밀한 만남을 꿈꿨다고 했다. 방학과 휴일을 이용해 시인들의 고향과 생가, 문학관, 시비 등을 찾았으며, 시인의 고향 마을 언저리에서 일박을 하며 마을 사람들을 만나고 밤 세워 술을 마시며 온 몸으로 시인의 시정신에 감염되려고 했다. 시 연구의 학문적 압박으로부터 벗어난 이들 역시 그동안의 답답함을 풀어버릴 수 있어 즐거웠다.양병호 교수는 "시 연구자들은 대개 작품 위주로 보는데 시인의 인간적인 면을 발견하고 부각시키고 싶었다"며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시에 대한 열병을 앓고, 직접 시인의 고향이나 생가를 찾는 처방으로 열병을 치유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때문에 시인과 시 선택은 의외로 쉬웠다. 우리 시문학사에 의미가 있는 시인들을 택했으며, 일반인들이 좋아하는 그들의 시를 골랐다. 대신 시인이 살았던 공간에 대한 현장 조사를 통해 시를 이해하려고 했으며, 시인의 시정신을 기행의 서정과 결부시키려고 노력했다. 일반 독자들을 위해 해설 텍스트와 사진을 병행 편집했으며, 편안한 문체로 풀어썼다.2년 전 이미 전라도와 충청도를 돌아보고 「그리운 詩, 여행에서 만나다」를 펴내기도 했던 이들은 내년 서울·경기·강원도 지역의 시인들로 다시 책을 낼 계획이다. 나중에는 중국 연변의 조선족 시인들과 일본의 재일교포 시인들도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물론, 남북통일이 되고 나면 북쪽 시인들과 그들의 시도 만나고 싶다.

  • 문학·출판
  • 도휘정
  • 2010.03.19 23:02

[강준만의 책으로 읽는 세상] 뇌물의 역사

(사례 1) "얼마 전 미국 뉴욕 타임스에 우리나라의 경조문화가 소개된 적이 있었다. 기사는 뇌물인지 선물인지 모를 돈 봉투를 줄 서서 기다리다 내고, 결혼 당사자보다 부모의 하객이 훨씬 많고, 축하하러 온 건지 밥 먹으러 온 건지 '눈도장' 찍자마자 식당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의 모습 등 불합리한 우리의 결혼문화를 잘도 꼬집었다."(중앙일보 2009.12.14)(사례 2) "서울시교육청은 인사 때마다 뒷말이 많은 곳이다. 인사를 전담해온 어떤 과는 '무슨 무슨 지역 마피아의 돈지갑'이라는 소리를 들어왔다. 어떤 인사 때는 인사 상납금이 '따블'이 됐느니 '따따블'이 됐느니 하는 말까지 돌아다녔다. 돈을 주고 교감·교장, 장학사·장학관 자리를 꿰찬 사람들이 일선학교나 교육청에서 무슨 일을 할 건가는 보나마나다. 교육보다는 본전 챙기기에 급할 수밖에 없다. 교육청 발주(發注) 건물은 10년만 지나면 금이 간다는 얘기도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조선일보 2010.1.25)(사례 3) "양산시장이 지난해 11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의 원인은 시장 선거를 치르면서 빌린 60억원인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빚 독촉에 시달리다가 24억원의 뇌물을 받고 부동산 개발 청탁을 들어준 것이다. 이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상당수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들이 수십억원의 직간접적인 선거비용을 쓰고 당선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한국일보 2010.2.1)한국은 '뇌물 공화국'인가? 굵직한 뇌물 관련 사건이 끊임없이 터지고, 신문지상엔 크건 작건 뇌물 사건이 빠지는 날이 하루도 없으니 말이다. 흥분하기보다는 차분하게 '뇌물'의 정체에 대해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미국의 법조인이며 법학자인 존 T. 누난(John T. Noonan)이 쓴 「뇌물의 역사」(이순영 옮김, 한세, 1996)는 뇌물이 의외로 매우 복잡한 사회적 현상임을 말해주고 있어서 흥미롭다.뇌물 연구의 최대 장애는 '선물'과 '뇌물'의 경계를 구분하는 일이다. 인류 역사 이래로 늘 이게 쟁점이었다. 선물과 뇌물 사이의 경계를 짓는 일에 보편주의는 적합지 않다는 게 문화 상대주의에 친화적인 문화인류학자들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뇌물'이라는 말을 아예 사용하지 않으면서 그것도 선물로 보았다. 선물과 뇌물의 경계를 가르는 게 쉬운 일도 아니다. 청교도 정신이 강한 미국 연방법원조차 뇌물과 선물을 구분하려는 시도를 했었지만 매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에 머무르고 말았다.뇌물이라 한들 그게 나쁘기만 한 거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 하버드대 행정학 교수 제임스 윌슨(James Q. Wilson)은 1968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기고한 글에서 "부정부패는 반드시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다"고 주장하면서 '통합적 부패'와 '분열적 부패'를 구분했다. '통합적 부패'는 엘리트 내부의 분열로 인한 폐해를 방지해 결과적으로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었다.제임스 스코트(James C. Scott)는 1973년에 출간한 「정치적 부패의 비교」라는 책에서 제3세계에서 부패가 횡행하는 이유를 ①이들 나라에는 선물을 주고받는 전통이 강하다, ②인맥·학맥·혼맥 등 인간관계의 유대를 지나치게 중시한다, ③뇌물보다 더 큰 반대급부를 정부로부터 받아낼 수 있다, ④각종 사업에 정부의 간섭이 지나칠 정도로 많다, ⑤사회의 다른 분야에 비해 관료조직의 힘이 너무 크다, ⑥공무원들의 신분이 상대적으로 높아서 농부들의 존경을 받는다 등 6가지를 지적했다.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닉슨 행정부에 관한 이야기다. 닉슨 행정부라고 하면 당장 떠오르는 생각이 워터게이트를 포함한 각종 비리 스캔들이다. 그런데 미국 역대 행정부 중 가장 강력한 반(反)부패법을 제정한 주역이 바로 닉슨 행정부라니, 재미있지 않은가.1970년 닉슨 행정부는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와의 협조속에 '사기 및 부패금지법(Racketeering Influenced and Corrupt Organization Act: RICO)'을 제정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 법은 매우 강력한 반부패법이어서 미국인권연합이 우려를 나타낼 정도였다. 물론 이 법에 대한 대중의 인기는 매우 높았다.이 법 덕분에 1970~1977년 사이에 43명의 시장, 44명의 주 사법부 판사, 60명의 주의회 의원, 260명의 경관들이 연방정부에 의해 뇌물죄로 기소되었고 대부분 유죄판결을 받았다. 종합해 보자면, 369명의 주정부 공직자와 1,290명의 카운티 관리들이 부패로 인해 유죄판결을 받았다. 닉슨 행정부의 부통령 스피로 애그뉴도 이 법의 희생자가 되어 중도 사임했다.그런데 궁금한 건 왜 하필 1970년 그것도 온갖 스캔들로 얼룩진 닉슨 행정부에 의해 이런 강력한 법이 제정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저자는 "이것은 어떤 특정개인의 힘이 아니라, 사회 전반을 주도하는 도덕관과 가치관이 그렇게 시킨 것이라 보아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1960년대 학생운동의 주된 목표는 베트남 참전을 반대한 것이었으나, 이 운동을 계기로 해서 정당·정부 등 사회적 권위에 대한 회의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런 사회적 권위를 인정해준 기존의 법에 대한 회의감이 생겨나, 보다 더 강력한 도덕적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욕구가 태동했다. 법관들도 법의 권위와 공정성을 보장하는 신법(新法)의 제정에 찬성했다."그게 전부일까? 좀더 심층적인 이유는 없는 걸까? 저자는 미국의 성도덕 변화에 따라 '순결'이 사라진 세태의 정점이 1960년대 말이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다음과 같은 가설을 제시한다."과거에 성문제에 대한 순결규칙(혹은 사회적 오염을 예방하는 규칙)은 사회에 어떤 질서를 부여하는 기능을 했다. 그러나 그런 순결 규칙이 힘을 잃어버리자, 공직자에 대한 순결을 강조하는 대체적 규칙이 힘을 얻게 되었다. 고대에는 성적 타락이 곧 인격의 타락을 의미했고, 그래서 뇌물을 묘사할 때 성적 비유가 많이 쓰였다. 이것은 반뇌물윤리와 성윤리가 모두 사회의 오염을 막아 주는 강력한 힘이었음을 반증해 준다. (…) 유산·간통·피임·간음·동성연애 등을 금하고, 결혼을 장려하고 이혼을 죄악시하던 성윤리가 서서히 퇴조하면서, 그 자리에 공직자들이 직무상의 결백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가 대두된 것이다. 이제 성윤리의 책임이 면제된 선거구민들은 제 멋대로 성에 탐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거기에 대해 사회를 지탱하는 힘으로서의 공직자들이 대신 순결해져야 한다는 부담을 떠안게 된 것이다."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 안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뇌물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게 하는 주장임엔 틀림없다. 우리는 편리한 이중기준을 갖고있는 건 아닐까? 나의 선물은 선물일 뿐이지만, 너의 선물은 뇌물이라는 식의 이중기준 말이다. 또 하나의 이중기준이 있다. 부정의 규모에 의한 상대 평가다. "그 돈을 먹었다 해도 그렇지, 지들이 해처먹은 것과 비교하면 그거 껌값 아니오?" 언젠가 어느 택시기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강력 옹호하면서 그렇게 외쳐대기에 그저 잠자코 먼 산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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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3.19 23:02

최하림 시인의 러시아 기행

최하림(71) 시인의 러시아 기행기 '최하림의 러시아 예술 기행'(랜덤하우스)이 출간됐다. "오랫동안 시베리아를 마음속으로 그려"왔다는 시인은 2004년과 2006년 두 차례 러시아에 다녀왔다. 문인들과 교사, 이들의 가족 등이 함께한 여행에서 시인은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푸슈킨 등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 배경지와 집, 기념관을 찾았다. 먼저 시베리아에서 광활한 대지를 본 시인은 "시베리아는 검은 몽상과 검은 침묵의 땅"이라며 "러시아의 모든 작가와 시인들은 시베리아의 검은 몽상을 경험하고서 러시아의 대작가가 된다"고 말한다. "도스토예프스키도 체호프도 스카초프도 시베리아에서 유형 생활을 하거나 시베리아에서 살거나 시베리아를 경험했다. 그들은 수백 리 자작나무 숲을 헤맸다."(26쪽)시인은 모스크바에서 출발해 버스와 지하철, 택시를 번갈아 타며 소설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닥터 지바고'를 집필한 이층집을 찾아 소설의 주인공을 떠올리기도 했다. 책은 러시아 문호들의 자취를 좇으면서 그들의 작품과 등장인물에 대한 시인의 해석도 담았다. 또한,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 자연, 여행지의 감상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폭넓은 시선을 적고 있다.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최 시인은 '우리들을 위하여',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때로는 네가 보이지 않는다' 등의 작품집을 냈다. 지난 2월에는 '최하림 시 전집'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왔다. 2002년 경기도 양평에 정착한 시인은 지난해 간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다. 208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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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0.03.1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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