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1-07 19:22 (Fri)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문학·출판

고향 방문 고은 시인 "무덤에서도 펜 안 놓을 것"

노벨문학상 후보이자 한국문학의 거장인 고은 시인(77)이 고향인 군산에서 "통일이 되면 한반도를 영원히 떠나겠다. 잠잘 때도, 죽어서도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전북오페라단의 창작 오페라인 '만인보'를 관람하기 위해 고향을 방문한 고은 시인이 20일 오전 군산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고은 시인은 이 자리에서 "조국이 통일만 되면 내 나라를 떠나 민족을 잊고 싶다. 조속히 분단이 끝나길 바란다"며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내비췄다.그는 노벨문학상 수상실패, 만인보, 고향 군산, 앞으로 활동방향 등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고은 시인은 노벨상 수상 실패가 한글에 대한 외국인들의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부정한 뒤 "한국어가 외국에서 번역되는 과정이 쉽지 않은 점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노벨문학상 발표를 앞두고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에 대해서는 "지난 2002년부터 수상후보로 올려놓고 있으나 지금까지 크게 신경 쓴 적이 없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즐겨 쓰던 유천희해(遊天戱海·하늘에서 놀고 바다에서 노니네)라는 글귀를 좋아한다"며 말문을 닫았다. 이는 욕심없이 작품활동 등에만 매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고은 시인은 또 "숨을 쉴 때까지 글을 쓰고 무덤에서도 글을 쓰겠다. 25년이 걸린 만인보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아직 쓰고자 하는 것이 너무 많다"며 내년에 만인보 특별판 제작을 우회적으로 시사하기도 했다.고은 시인은 전날 고향 선산을 찾은 데 이어 "어렸을 적 친구들과 함께 오랜만에 소회에 젖기도 했다. 고향땅을 밟으면 힘이 나고 새로운 활력소가 생기는 것 같다"며 군산에 대한 애틋한 향수를 드러냈다.서울대와 단국대 석좌교수를 맡고 있는 그는 내년 3월부터 군산대 석좌교수로 임용돼 강의를 실시한다는 계획과 함께, 다양한 작품활동 등을 통해 독자들을 만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문학·출판
  • 홍성오
  • 2010.11.22 23:02

[내가 권하고 싶은 책] ③당나라 유협의 『문심조룡(文心雕龍)』

인간은 무언가에 쫓기듯 살면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싶어 하는 속성이 있다. 자신에 대한 존재감일수도 있고 경쟁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생활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행위일수도 있다. 예술은 그런 분야에서 인간과의 관계가 밀접하다. 그 중 문학이 차지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바야흐로 신춘문예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를 시기이다.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기웃거려 보거나 뛰어 들어 열정을 쏟는다. 글 한 줄 채우기에 밤새 끙끙대기고 하고 탁 튀는 단어 하나 고르기에 몇 날을 고심하기도 한다. 글 한 편에 그토록 몸살을 앓는 것도 아름다운 일인 듯싶다.나 역시 그런 열정으로 문학을 향한 꿈을 꾸었다. 그러나 쉽게 나타나지 않는 길이어서 늘 목이 말랐다. 그러다 글쓰기에 대해 눈이 뜨이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글로 인해 알게 된 분에게서 받은 책 한권에 눈과 귀가 밝아지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신춘문예 응모 시기인 지금, 글 쓰는 분들에게 한번쯤 읽어 보기를 원하는 마음에 이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문심조룡(文心雕龍)은 당나라 문인 유협이 문장이론을 아름다운 문체로 엮어 놓은 책이다. 문장의 원리에서부터 작가의 인간성까지 10편으로 되어 있다. 내용은 이론이지만 설명과 예문들이 정말 아름답고 적절한 표현이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번역자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그 기본 문맥은 같으리라 본다. 그 중 몇 구절을 여기에 옮겨 선보이기로 한다. 책을 읽고 적어 두었던 간단한 메모이다.나는 여태껏"만근이나 되는 종은 짤랑짤랑한 가느다란 울림을 내지 않는다."는 깊이와 "구름이 비가 되어 황하로 흘러 천리 사방을 적신다."는 은근함을 감히 생각해 보지도 못했으며 "아무리 아름다운 비단이 많아도 옷을 자를 때 치수를 정확히 맞추어 자르는 것"이 아름다움을 가장 적절히 표현하는 것이라는 순리도 미처 깨닫지 못한 듯하다. "환희와 슬픔을 표현함에 있어서는 문자도 같이 웃고 같이 눈물지을 만큼의 묘사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는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졌고"꽃이 지나치게 많이 피면 가지를 손상시킨다."는 대목도 꼭 새겨두어야겠기에 밑줄을 그어 놓았다.다른 글을 인용할 때는 정밀한 논리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대목도 참으로 중요한 내용이었다. "아무리 미묘한 말과 아름다운 사실이라도 자리가 빗나가면 다리에다 보석을 장식하고 가슴에다 화장을 한 것 같다."는 비유는 얼마나 적절한 문장인가. 또 "한 편의 작품 가운데에도 여러 가지 심정의 움직임이 통괄되어 있어 마치 30개의 바큇살이 하나의 바퀴에 집결되어 있는 것과 같아야 한다."는 문장의 기본원리나 조직에 관해서도 더 많은 공부를 해야겠다. 이 외에도"감동이 자연에의 선물이라면 시상은 마음에의 보답 같은 것"이라든가 "말은 마음의 소리요 문자는 마음의 그림이다"등등의 아름다운 문장에 마음이 설레곤 했다. 언젠가는 내게도 그런 글 한 줄 뽑아 낼 수 있는 시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염원을 품은 때문이리라.김재희 수필가는 정읍 출생으로 200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로 등단했다. 2006년 수필집「그 장승이 갖고 싶다」를 출간했고, 행촌수필 문학상을 수상했다./ 김재희(수필가)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0.11.22 23:02

"서두르지 말고 끈기있는 글쓰기 초점 맞춰야"

"1961년이 아마 전북일보 신춘문예가 처음 생긴 시점일 거에요. 김해강 신석정 선생님이 심사를 맡으셨죠. 신문에 내 시가 실린다는 것은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었어요." (정병렬 시인)"신춘문예 응모마감일 하루 전 단편소설을 봉투에 넣는 데 울컥 눈물이 났어요. 울면 재수 없다던데…. 내가 쓴 소설을 떠나보내기 전 어떤 형태로든 속앓이를 했던 것 같아요." (소설가 김애현)다시 신춘문예의 계절이다. 예비 문인들의 가슴이 쿵쿵쿵 뛰는 시기.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당선자들은 등단 이전과 이후의 경험을 각각 들려줬다.2000년 소설로 등단해 극작가로 '업종 변경'해 활동하고 있는 최기우(최명희문학관 연구실장)씨는 "당선 못지 않게 당선 후의 미래를 생각하며 준비하라"고 조언했다. 신춘문예는 상을 한 번 받고 끝나는 백일장이 아니기 때문에 당선 못지 않게 당당하게 내밀 수 있는 작품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최씨는 "산문의 경우 적어도 수준높은 5편 정도는 준비한 뒤 등단 첫해를 시작해야 한다"며 "당선 첫해에 원고 청탁이 집중되기도 하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응모작을 무조건 많이 제출하는 것은 옥석을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보낸 듯한 인상을 주기 쉬우니 스스로 최고의 작품을 엄선해 응모해야 한다고 말했다.문신 시인은 2004년 전북일보와 세계일보에 동시에 등단,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문 시인은 "낙선한 작품은 고쳐 쓰기 보다는 과감히 버리는 것이 좋다"고 했다. 떨어진 작품을 고쳐 낸다면 언젠가는 운 좋게 당선될 수도 있겠지만, 그 작품 하나로 끝날 위험이 있어서다. 문 시인은 "2003년까지 최종심에 올라갔다가 미끄러져 마음을 비웠던 기억이 난다"며 "식상한 이야기 같지만, '언젠가는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충실히 습작하는 게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2001년 수필로 등단한 뒤 9년 만에 수필집 「빈 들에 서 있는 지게 하나」를 출간한 한경선씨는 '단거리 육상 선수처럼 서두르지 말라'는 조언을 했다."초등학교 때부터 '글쓰기 선수'로 불려 다녔어요. 그래서 오히려 글을 멀리하게 됐습니다. 잘 써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살아가는 여백에 낙서하듯이 쓰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다만 끈기있게."1961년 등단했다가 절필을 선언, 30년 만에 문단에 다시 나온 정병렬 시인은 "그 당시는 치열하게 시를 쓸 자신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정 시인은 "나처럼 시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길 바란다"면서 "규정된 틀을 얽매여 준비한 작품들은 낙선한 반면 일기 쓰듯 자유롭게 쓴 글이 오히려 당선되더라"고 귀뜸했다. 이어 정 시인은 "불안한 시대를 시쓰기를 통해 통과하려는 문학청년들의 내면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 문학·출판
  • 이화정
  • 2010.11.18 23:02

[내가 권하고 싶은 책] ②도스토예프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

장정일은 말한다. '지금 시대의 문학은 십 오년 후에 읽겠다. 십 오년 후에도 살아남은 작품은 그 때 가서 읽겠다는 얘기다.' 하루에도 수많은 소설책들이 쏟아지고 수많은 소설책들이 진열대의 위치를 바꿔간다. 이중에서 십 오년 후에도 살아남은 작품들은 얼마나 있을까?'나는 병적인 인간이다…….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 나는 남의 호감을 사지 못하는 인간이다. 이것은 아무래도 간장이 나쁘기 때문인 것 같다.'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이름을 밝히기 꺼려하는 한 인간의 자책 어린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는 사회부적응자다. 신경은 예민하고 과대망상증 환자이며, 욕구불만으로 가득 찼다. 또한 사회와 사람들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지하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머릿 속으로 지하생활자가 되어본다. 사람들을 피해 집에서만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떠올린다. 다른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고, 지구 종말의 시대까지 그 인간을 비판하는, 그런 인간이 되어본다.인간은 지하생활자의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 단지 숨기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누구나 열등감의 존재이다. 남들보다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는다면, 발전도 없다. 하지만 지하생활자는 이러한 모습까지 조소한다. 어쩌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지하생활자를 내세워 인간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닌, 지하생활자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며, 인간을 비판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렇게 읽었다.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나에게 뼈아픈 충고였다.도스토예프스키를 니체는 스승이라고 불렀으나, 프랑스 실존주의자들은 오히려 그를 선구자로 추앙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삶은 지하생활자 같았다. 일생 동안 간질병으로 시달렸고, 사형 집행 직전에 풀려나 기나긴 시베리아 유형 생활을 하기도 했다. 광적인 도박벽이 있었고, 끝없는 궁핍과 고난을 가지고 살아갔다. 이런 경험 때문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은 무겁다. 그리고 격정적이다. 그는 개인적인 경험 속에서 인간 내면을 읽는다. 함부로 말하는 듯 보여도 그의 문장에는 사회가 숨어 있고, 인간의 본질이 숨어 있다.'나는 병적인 인간이다.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 나는 남에게 호감을 사지 못하는 인간이다.'때론 이렇게 생각한다. 남과 어울릴 줄 모른다고 해서 인간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문제는 추악한 인간의 모습들 속에 우리가 서 있을 때다. 오해와 갈등으로 얼룩진 사건들, 자기 안에 갇혀서 남에게 함부로 던지는 말들, 자기야 말로 우월하다고 믿는 행동들, 이런 모습들이야말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아닐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우리는 자제를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처럼 우리는 복잡하고 무겁다.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읽으며 나도 병적인 인간이 되어본다.▲ 백상웅 시인은 2010년 전북일보 동화 부문 신춘문예로 등단, 대산대학문학상(2006), 창비신인 시인상(2008)을 수상한 바 있다. 전남 여수 출생인 그는 우석대 문예창작학과에 재학중이다.

  • 문학·출판
  • 이화정
  • 2010.11.15 23:02

'공감하는 인간'이 위기의 지구 구한다

'공감의 시대'(민음사 펴냄)는 미국의 대표적인 사회사상가이자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의 최신작이다. '노동의 종말'(1995년)에서 "첨단 기술이 화이트칼라의 직장을 빼앗을 것"이라고 전망한 데 이어 '소유의 종말'(2000년)에서는 '접속'(access)이란 개념으로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을 설명했던 그가 이번 책에선 기후변화 등 위기의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그는 우선 인간이 본래 이기적이고 공격적이라는 인간 본성에 대한 기존의 믿음을 부정한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고통과 행복을 자신의 것인 양 느끼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공감(empathy) 의식과 유대감이 인간의 본성에 더 강하게 내재해 있다고 주장한다. 리프킨은 이 책에서 고대 신화적 의식의 시대부터 기독교 문명의 발흥, 18세기 계몽주의와 19세기 이데올로기 시대를 거쳐 20세기 심리학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공감적 특성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살펴본다. 그는 인류가 기술적으로 진보할 때마다 공동체의 크기가 커졌고 인간의 의식이 확장됐으며 공감 의식도 촉진됐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산업사회를 지탱해주는 석유 등 값싼 화석연료가 빠르게 소진되고 기후변화가 심화되는 위기 상황에서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공감을 계속 성장시키고 글로벌 의식을 확장시켜 나가는 길뿐"이라고 주장한다. 또 실제로 IT와 인터넷 혁명으로 공감 의식이 사람들 사이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적자생존과 부의 집중을 초래한 경제 패러다임이 끝났으며 세계가 오픈소스와 협력이 이끄는 3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오픈소스 컴퓨터 운영체제인 리눅스와 무료 오픈소스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를 꼽았다. "경제활동은 더이상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전의를 다지고 벌이는 적대적 경쟁이 아니다. 오히려 마음이 통하는 선수들끼리 힘을 합쳐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모험이다. 나의 이익은 상대방의 손해를 대가로 얻어지는 것이라는 고전적 경제 개념은 물러나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 나 자신의 행복을 증폭시킨다는 개념이 새로 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21세기는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게임에서 '윈윈 게임'으로, 폐쇄성에서 투명 경영으로, 이기적 경쟁에서 이타적 협업으로, 엘리트 에너지에서 재생 가능한 분산 에너지로, 소유의 시대에서 접속의 시대로 변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원제는 'The Empathic Civilization'으로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됐다. 이경남 옮김. 840쪽. 3만3천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10.13 23:02

판소리의 미학 '제', 새롭게 풀어내다

"판소리 '제'는 판소리 연구를 시작할 때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주제입니다. 몇 차례 논문이나 책을 통해 내 견해를 제시했지만, 늘 부족함을 느끼던 차에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해 놓자 싶었어요. 일반인들의 견해와 달라 혼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판소리의 바른 모습을 사랑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판소리 길라잡이'를 자처한 최동현 군산대 교수(56)가 「판소리 동편제와 서편제」(민속원)를 펴냈다. 이미 판소리에 관한 전문서적들을 여러권 펴낸 그는 이 책을 통해 판소리 미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를 새롭게 개념 정리했다. 학술적인 주제이지만, 군더더기 없는 글로 판소리 이해를 돕는다."'제'는 이제 판소리 분류의 기준으로서 그 유효성을 상실해버렸습니다. 판소리를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로 나눌 수 있었던 시절에는 그것이 판소리를 이해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지만, 현대 판소리에서는 '제'의 개념에 완전히 일치하는 순수한 동편제나 서편제는 없습니다. 모든 판소리가 '제'로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요."그가 정의하는 '제'는 판소리를 이해하는 '참조의 틀(frame of reference)'. 그는 '제'가 창법, 전승 계보(소리 표준), 전승 지역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지만, 전승 지역과 창자의 출신 지역, 전승 계보를 판소리 '제'와 도식적으로 연결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과거에는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아 사람들이 잘 이동하지 않다 보니, 한 사람이 여러 사람에게 소리를 배우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다수의 소리꾼들이 서울에 모여 활동하면서, 서로 다른 '제'를 넘나들며 소리를 배우고 있죠. 결국 현대 판소리의 흐름은 동편제와 서편제의 심미적 가치 범위 안에서 존재합니다."매주 전북일보에 '최동현의 명창이야기'를 연재했던 그는 연재한 내용을 다듬어 「명창 이야기」 와 함께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소리꾼들을 소개한 「소리꾼」 출간을 앞두고 있다."판소리 연구는 5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커다란 발전을 이뤘지만, 잘못된 지식을 바로 잡지 못한 부분도 많습니다. 이에 대해 눈 감고 있는 것은 학자로서 무책임한 태도라고 봐요. 학계의 연구 성과를 일반인들이 공유할 수 있을 때 판소리에 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나 이해의 수준도 향상될 수 있다고 봅니다."

  • 문학·출판
  • 이화정
  • 2010.10.13 23:02

佛 정통코미디 '스카펭의 간계' 재연

중세 소극(笑劇, Farce)을 주로 공연해온 극단 '수레무대'가 프랑스 정통 희극 '스카펭의 간계'를 17년 만에 다시 선보인다. 17세기 극작가 몰리에르의 대표작으로 수레무대가 1993년 창단 기념작으로 국내에 첫선을 보였다. 정략결혼을 거부하고 몰래 연애에 빠진 청년이 아버지의 압박에서 벗어나려고 꾀쟁이 하인 스카펭에게 뒤처리를 의뢰하면서 이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속고 속이는 한바탕 소동을 유쾌하게 그려냈다. 이번 공연에서는 배우들이 널뛰기를 이용해 등장하고 공중돌기로 퇴장하는 독특한 무대 연출을 시도한다. 2m 높이의 무대에 대형 시소를 설치하고 배우들의 의상도 17세기 프랑스풍으로 복원하는 등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사한다. 초연에 이어 이번 공연도 수레무대 김태용 대표가 연출을 맡았으며 넌버벌 퍼포먼스 '점프' 연출가이자 배우인 백원길이 주연으로 출연해 재치 넘치는 희극 연기를 선보인다. 김 대표는 11일 "'스카펭의 간계'에서는 특이한 등퇴장 외에도 오랜 시간 갈고 닦은 배우들의 코미디 연기를 맛볼 수 있다"면서 "국어로 번역한 대사를 우리말 리듬 속에서 풍요롭게 표현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28일~11월 9일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에서 공연하며 1만2천~2만원. ☎031-358-2515.

  • 문학·출판
  • 연합
  • 2010.10.12 23:02

'나' 아닌 '나머지'의 이야기들을 들추다

"우리는 자신을 어느 정도까지 경험할 수 있는 것일까? 겨우 한 귀퉁이 정도만 볼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나머지는 누가 보는 것일까? 그 나머지의 공간, 그 나머지의 경험, 그 나머지의 이야기들은 어디를 떠돌게 되는 것일까? 나는 늘 그것이 궁금했다."소설가 윤성희(37) 씨가 등단 11년 만에 첫 장편 '구경꾼들'(문학동네)을 펴냈다. 소설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큰삼촌, 작은삼촌, 고모까지 함께 사는 '나'가 말하는 많은 사람의 이야기다.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은 '나'의 입으로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 대가족이 파란만장하고 극적인 삶을 산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이 펼쳐진다. 이 소설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스쳐 지나가는 보통 사람들의 진짜 삶의 이야기들을, 꾸밈없이 쉽고 진솔한 문장으로 깨알처럼 촘촘히 되살린다. 소설은 아버지가 어릴 때 아이스박스에 이틀이나 갇혔던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하면서 시작한다. 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 그러니 '나'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다. 아이스박스 이야기는 아버지의 프러포즈가 되고, 이는 하루에 백 개씩 돼지족발을 썰면서 홀로 어머니를 키운 외할머니 이야기로 이어진다. '나'와 가족의 이야기에서 수없이 많은 줄기가 뻗어나간다. 온 가족의 바다 여행을 떠나면서는 가족이 타고 간 봉고를 빌려준 아버지의 회사 동료 김 대리의 사연이 가지를 치고, 외할머니가 일출을 보다 우연히 만난 침낭 속 소녀의 이야기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결국, 모두가 주인공이다. 저마다 사연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감칠맛 나는 웃음이 끊이지 않고, 어느새 따뜻한 감동이 솟아난다.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등에 업혀 잠이 들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갑자기 옆에 서 있는 나를 꼭 껴안으며 자주 업어줄걸, 하고 생각했다. 업어 키우면 다리가 휜다는 기사를 읽은 후 어머니는 나를 거의 업어주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대신 자주 안아줬잖아요, 하고 대답했다."(56-57쪽)작가가 "삶이란 이런저런 것들을 쳐다보고 그냥 어리둥절해하는 일은 아닐까"라며 "미로를 헤매다보면 뭔가 희미하게나마 알게" 될 것이라며 쓴 이 소설에서, '나'는 그렇게 이런저런 것들을 보고 어리둥절해하면서 어른이 돼간다. 312쪽. 1만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10.11 23:02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 공연 '천년의 사랑여행'

가을은 사랑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 '2010 전주세계소리축제'의 개막 특별 공연'천년의 사랑 여행'은 사랑에 좌절한 우리에게 이 시대의 참 사랑을 묻는다. 1일 오후 7시, 2일 오후 3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올려지는 이번 작품은 김명곤 소리축제 조직위원장이 총감독을, 류기형이 연출을 맡아 '2003 소리축제'의 개막작'백제물길-천음야화'를 새롭게 각색했다.'백제물길-천음야화'가 백제인의 음악기행을 다룬 음악 다큐멘터리였다면, '천년의 사랑 여행'은 '사랑의 노래'를 찾아 나서는 도깨비의 여정을 그린 음악 종합극. 옛 백제가요 '산유화가','정읍사가','서해안 용왕굿' 등을 토대로 해외 전통 가무악, 국악 관현악과 오케스트라 연주, 웅장합 합창이 조화를 이루며 삼위일체의 무대를 선물한다.중국 강소성 곤곡 예술단, 포마사섬(대만의 옛 이름) 루카이족 전통 민요단, 인도 카탁 전통 무용단, 캄보디아 왕실 무용단도 세계의 소리와 몸짓으로 사랑을 전한다. 인도 카탁 전통 무용단은 안숙선 명창이 부른 '춘향가'의 '사랑가'에 맞춰 사랑의 몸짓을 표현한다. 온소리국악단, 광주시립국악단, 전북대학생합창연합단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소리가 무대의 완성도를 높인다.류기형 연출가는 "다만 소리축제의 개막작으로서는 판소리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은 아쉽다"며 "소리를 매개로 한 다양한 세계의 소리를 아우른다는 점에서 너그럽게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 문학·출판
  • 이화정
  • 2010.10.01 23:02

도굴품이 박물관에 전시되는 경로는

고대 에트루리아 도기 컬렉션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중부 도시 멜피의 멜피박물관에 1994년 1월 강도가 들어 고대 도기를 훔쳐 달아났다. 이탈리아 문화재 전담 수사국은 위장에 능한 골동품 밀거래 시장이 머리 셋 달린 괴물 게리온과 비슷하다는 의미로 '게리온 작전'이라고 이름 붙인 수사에 착수했다. 독일 뮌헨 경찰의 제보를 받고 뮌헨 골동품상 집을 압수수색한 이탈리아 경찰은 집에 있던 수영장에서 엄청난 양의 고대 토기와 항아리를 발견하면서 사건을 해결했지만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집에서 압수한 서류에서 지역 도굴꾼의 우두머리 이름을 발견했고 수사는 확대됐다. 고대 도기 도난사건으로 시작한 수사는 결국 자코모 메디치라는 고미술품 불법 유통업자의 정체를 밝혀내기에 이르렀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그의 창고에서는 골동품 수천 점이 발견됐고 결국 2005년 이탈리아 법원이 메디치에게 징역 10년형과 1만6천 유로의 벌금을 선고하는 것으로 10여 년에 걸친 긴 수사는 마무리됐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맥도널드 고고학연구소 연구원인 피터 왓슨이 쓴 '메디치의 음모'(들녘 펴냄)는 멜피박물관의 도기 도난 사건에서 시작해 메디치에 대한 선고가 내려지기까지 이탈리아 수사팀의 추적 과정을 담은 책이다. 영국 신문 '타임스'의 뉴욕특파원을 지내기도 한 저자는 소설 요소를 가미해 마치 한 편의 흥미진진한 수사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도굴 미술품의 유통 경로를 극적으로 그려낸다. 책이 말하는 도굴 미술품 유통경로는 충격적이다. 세계 유수의 경매 회사와 박물관, 미술관, 그리고 유명 컬렉터들은 뻔히 실상을 알면서도 메디치 같은 유통업자에게서 미술품을 샀고 버젓이 세상에 이를 내놓는다. 저자는 불법 고미술품의 유통이 성행하는 것은 바로 이들 작품의 수요자인 박물관과 미술관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들이야말로 진짜 도굴꾼이자 불한당이다. 고고유물의 현실적인 필요는 그들에게서 비롯되었으며 사회 환원이란 명목과 세금 감면이란 실익으로 컬렉터들을 유인하여 그들의 소장품을 박물관에 기증하도록 만든다. (중략) 그들은 개탄스러운 이 문제를 척결해야만 하며 이탈리아와 세계 각지에서 반출되는 막대한 양의 아름답고 귀중한 문화유산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512쪽)원제는 'The Medici Conspiracy'로 2006년 출간됐다. 세실리아 토데스키니 공저. 김미형 옮김. 564쪽. 2만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09.30 23:02

伊정치철학자 네그리를 위한 비판

이탈리아 출신의 사상가이자 정치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1933∼)는 슬라보예 지젝, 자크 랑시에르 등과 함께 유럽을 대표하는 지성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안토니오 그람시와 게오르그 루카치에 버금가는 서구 마르크스주의 거목이기도 하다. 네그리는 1970년 이탈리아 비의회 좌파의 대중운동에 전략가, 교사, 조직가로서 적극 참여하는 등 평생을 코뮤니즘에 바쳐 왔다. '이제 모든 것을 다시 발명해야 한다'(갈무리 펴냄)는 네그리와 함께 활동하거나 지적 공유 관계에 있는 동료 7명이 그의 사상이 어디에서 기원했고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짚어 본 책이다. 저자들은 스타 사상가로만 여겨지거나 오해와 오독(誤讀)의 대상이었던 네그리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을 통해 그의 사유를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70년대 그와 함께 아우토노미아(자율) 운동을 했던 세르지오 볼로냐는 국가와 당의 역사적 역할에 대한 네그리의 견해의 변화를 설명하면서 그가 산업노동자의 헤게모니와 당의 매개적 역할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고 지적한다. 닉 다이어-위데포드는 전 지구적 생산체제에서 비물질적 노동을 둘러싼 논쟁을 다시 끄집어낸다. 그는 네그리와 그의 동료인 마이클 하트 듀크대 교수가 말하는 비물질적 노동 개념과 그 맹점을 설명하면서 이를 보완할 방법으로 '보편노동' 개념을 제안한다. 보편노동은 현대 기술과학을 구축한 창조적 힘이다. 보편노동의 부분인 비물질적 노동, 물질 노동, 궁핍 노동이 참여적인 일반 지성으로 네트워크화되고 재구성될 때 보편노동은 비로소 정치적 힘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케네스 수린은 네그리의 사유를 국제금융자본에 대한 저항과 관련지어 다룸으로써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사회운동의 무대로 떠오른 지구촌 금융세계를 저항적 실천의 테두리 안으로 불러온다. 티모시 S. 머피ㆍ압둘 카림 엮음. 윤영광ㆍ강서진 옮김. 372쪽. 1만9천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09.27 23:02

영화로 살펴본 한국 근현대사

'팩션(faction)' 붐이 일고 있다고 할 만큼 특정 시기의 역사를 다룬 영화가 쏟아지고 있다. 일제강점기, 해방과 분단, 전쟁, 군부독재, 민주화 등의 시기를 겪으면서 영화는 시대와 결코 떼놓을 수 없는 관계를 맺었다. '영화는 역사다'는 영화평론가 강성률 광운대 동북문화산업학부 교수가 일제강점기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영화에 나타난 근현대사를 분석한 책이다. 추상적인 담론을 배제하고 영화에 나타난 역사적 시각을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에 비춰 풀이하고 한계를 지적했다.저자는 역사 영화는 과거의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현재를 그린 영화도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된다고 말한다. 1960년대에 만들어진 청춘 영화를 보면서 관객은 영화 속에 그려진 서울의 풍경을 보고 당시 서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또 같은 사건을 다룬 영화라도 만들어진 시기에 따라 해석이 달랐다면서 특정 사건을 특정 시각에서 해석한 영화는 제작 시기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각 장을 시대별로 나눴다. 제1장 '한국영화 100년, 한국현대사 100년'에서는 한국 영화사를 개괄했으며 제2장 '일제강점기와 영화'에서는 선전도구 역할을 했던 친일 영화에 주목하면서 '낮은 목소리' 등 위안부 여성을 조명한 다큐멘터리를 다뤘다. 제3장 '분단과 한국전쟁을 그린 영화들'에서는 '웰컴 투 동막골' '피아골' '태백산맥' '길소뜸' '송환' '우리 학교' 등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아우르면서 제주 4.3 항쟁에서부터 한국전쟁, 빨치산, 이산가족, 비전향 장기수 등을 분석했다. 제4장 '군부독재와 영화'에서는 '바보들의 행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님은 먼 곳에' 등의 영화로 1970~1980년대를 조명했으며 제5장 '2000년대 우리 모습을 담은 영화들'에서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다룬 봉준호 감독과 임순례 감독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288쪽. 1만3천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09.17 23:02

[오항녕의 인문학 에세이] 음서제(蔭敍制)와 상피제(相避制), 그리고…

지난 5월 전주대로 왔지만, 그 좋은 방학도 없이 동료 학자들과 위백규(魏伯珪)라는 호남 학자의 문집 「존재집(存齋集)」을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매주 수·목요일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7시까지는 합동 검토시간을 갖고 있다. 그동안 나온 논문들을 보면 위백규에 대해 '호남 실학자'라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번역 때문에 그의 문집을 꼼꼼하게 읽을 수밖에 없었던 나나 동료들은 다르게 생각한다. 위백규의 문집은 조선시대 지방 학자가 충실하게 성리학을 공부했을 때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 보여주는 자료이다. 해서, 조만간 나는 이 분을 놓고, 성리학의 변이(變異)라는 사실(史實)의 측면과 실학 개념의 해체라는 인식(認識)의 측면을 엮어 곧 글을 하나 만들어보려고 한다. 지난 금요일에도 태풍이 지나간 따뜻한 날씨 속에서 예의 검토모임을 하고 있었는데, MBC 라디오 프로그램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서 전화가 왔다. 외교통상부 장관 유명환이 자기 딸을 특채한 일 때문에 네티즌 사이에서 현대판 음서제(蔭敍制)라고 비판하고 있으니, 이에 대해 역사학자의 소견을 듣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판 음서제'라는 말 속에는 이미 음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들어 있다. 사람들이 행정고시의 폐지와 정실(情實) 인사를 두고 음서제를 떠올린 모양이다. 내가 관심을 두고 있던 주제이기도 해서 승낙했다.인터뷰 요청받은 시간은 오후 2시30분쯤이었는데 방송이 오후 7시28분부터 8~9분간이란다. 작가에게 질문지를 메일로 달라고 했다. 잠깐 몇 마디 나누다가 역사학자가 보는 이번 사건의 성격을 말해달란다. "천한 짓이지요." 했더니, 웃는다. 그런데 웃음에 경계가 묻어있다. 이 분이 방송사고나 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묻어나는 웃음이다.4시30분에 작가가 보낸 질문지를 받았다. 약간 조정이 필요할 듯했으나, 상의할 시간이 없었다. 내가 답변을 조정하는 수밖에. 방송 전, 작가가 전화를 걸어 준비상황을 물으면서 다시 '방송 수위'에 대해 당부한다. 조금만 낮추어달라고. 거봐라, 내 말이 맞았지.방송이 시작되었다. 간단히 음서제도를 정의하는 대화부터 시작했다. 우리가 흔히 조상의 음덕(蔭德)이라고 하는데, '음(蔭)'이란 그늘, 덕택이란 말이다. 음서제(蔭敍制)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5품 또는 3품 이상을 지낸 관리의 자손이나, 나라에 공을 세운 공신의 자손을 우대해서 관원, 즉 공직자로 임용하는 제도였다. 보통 음보(蔭補), 문음(門蔭), 음사(蔭仕), 음직(蔭職) 등으로 부른다. 음서는 사회나 문명의 여러 차원 중에서 국가 차원의 일이다.음서는 그 사회에 대한 기여를 인정하여 보답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먼저 공음(功蔭)이 있다. 나라나 사회에 공을 세운 집안 어른 덕에 관직에 간단한 시험만 치고 들어가는 것이다. 독립유공자, 민주화유공자에 대한 보상 방식에 음서가 들어갈 수 있겠지만, 민주화유공자는커녕 독립유공자의 자손들도 생활보호대상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또 고위 관료의 경우도 오랫동안 나라 살림에 기여한 공을 인정하여 그 자손을 특별채용하는 음서의 대상이 된다. 참 실감하기 어렵다. 이 사회에 그런 존경받는 고위공직자가 없어서 그런가? 만일 그런 존경받는 공직자가 있다면, 난 찬성할 것이다. 관료제가 발달했던 고려와 조선에도 음서제가 있었다. 고려는 귀족제 성격이 강한 사회였다. 귀족제 사회란 왕족에 버금가는 벌열(閥閱) 등이 여럿 있는 사회다. 그래서 음서제가 훨씬 강했는데, 그렇다고 부정적인 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불교라는 깊이 있는 사상, 종교가 함께 기능했기 때문이다. 물론 고려말기로 오면 어느 사회, 문명이나 그렇듯이 음서제의 말폐가 생긴다.한편 조선시대는 사림, 학자, 양반, 관료라는 말이 떠오르다시피, 이들이 주축이 되어 사회를 끌어갔다. 우선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사회는 어떤 원칙과 질서 속에서 움직여야하는 지에 대한, 요즘 말로 하면 인문, 사회학적 비전이 있어야 했고, 실제로 그걸 정책으로 만들 수 있는 경륜이 있는 인재를 요구했다. 따라서 절대적인 학습량이 요구되었고, 문장이나 토론을 못하면 정부에서 자기 몫을 다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음서 수혜자라도 과거시험을 보았다. 흔히 청요직(淸要職)이라고 하는 중요하거나 명예로운 자리는 음서만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었으니까. 법적으로 제한하여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낄 수가 없게 만든 것이다. 요 부분! 조선사회의 작동 메커니즘을 해석할 수 있는 포인트 되겠다.분명히 음서제에는 기득권을 유지하는 측면이 있다. 수월하게 관직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귀족들이나 양반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방법이 된다. 과거제도를 비롯한 제도는 자체로 체제를 유지하는 측면이 있다. 제도의 보수성이다. 과거제도도 그렇고 현재의 고시도 제도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동시에 음서제도는 과거제도가 포괄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사회에 대한 기여를 보상하는 성격도 있다.진행자인 김미화씨가 "'상피제(相避制)'에 빗대서 특혜 논란을 비판했던데, 상피제, 이건 또 어떤 제도인가요?" 라고 묻는다. 성균관 같은 학관(學官)이나 병조의 군관(軍官)을 제외하고, 의정부(議政府)·의금부(義禁府)·이조(吏曹)·병조(兵曹)·형조(刑曹),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 승정원(承政院)과 사관(史官), 장예원(掌隸院)·종부시(宗簿寺) 같은 관청에서는, 집안의 고모나 조카의 남편, 사촌자매의 남편, 이모의 남편은 상피한다. 똑같은 제한이 처첩 집안에도 적용된다. 쉽게 말해 친척은 같은 관청에 근무하지 못하는 것이다.의정부는 대부분 잘 알 것이고, 의금부와 형조는 범죄사건을 다루는 관청이다. 이조와 병조는 인사(人事)를 다루는 관청이다. 사간원과 사헌부는 감찰과 언론 기관이다. 승정원은 비서실이고, 사관은 모든 국정을 기록하는 자리이다. 장예원과 종부시가 상피 대상이 된 이유는 모르겠다. 병조의 당상관(요즘으로 치면 '별'들)이나 내금위장(內禁衛將. 청와대 경호실장)은 동일한 관청이 아니라도 상피한다. 그러니 애비가 장관으로 있는 데에 자식이 지원서를 내지는 못한다.마지막에,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공직인사제도나 특혜 논란을 보면서 넌지시 생각해볼 한 것들이 있으면 짚어달라고 한다. 이번 사태를 통해 서로 다른 성격의 두 가지 문제가 섞여버렸다는 점을 먼저 생각해보아야 할 듯하다.첫째, 행정고시 폐지.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공직의 문호를 열려고 행정고시를 폐지하는 것은 정책적인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는 현 정부에서만 나온 얘기도 아니다. 워낙 공무원 사회가 폐쇄적이고 부처 이기주의가 심해지니까 외부 전문가를 채용하여 조직에 활력을 넣자는 취지로 이미 시행되고 있는 직위도 있다.필자도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에 특채되어 두 차례에 걸쳐 5년을 근무한 경험이 있다. 또 조선시대에도 과거시험만으로는 훌륭한 사람들이 정부에 들어올 수 없으니까, 천거제도를 활용했다. 그러므로 행정고시 폐지, 이런 식으로 갈 것이 아니라, 공직의 어떤 부분에 전문성이 중요한지를 하나하나 짚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맹형규 장관은 2011년까지 30%, 2015년까지 50%를 전문가로 채용하겠다고 했는데, 이런 계량적 방식이 아마추어 느낌을 준다. 거듭 말하자면, 수치가 아니라 어떤 자리에 전문성이 필요한지, 그 전문성이 공무원의 재교육으로 되는 성격인지, 외부에서 특채할 자리인지를 먼저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다음, 자기 자식 임용문제. 자신이 장관으로 있는 관청에, 자식이 지원했고, 또 유일하게 선발되었다는 사실은 공직자 윤리까지도 갈 것 없이 사회적 상식의 문제이다. 다행인 것은 이런 짓이 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좌절되었다는 것이다. 행시 폐지는 정책적인 합의나 이해를 받지 못하고, 게다가 제 자식을 임용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태까지 벌어지니까, 국민들은 당연하게도 '행시폐지=특채'에서 음서라는 말이 주는 부정적 이미지, 즉 기득권의 재생산을 떠올린 것이다. 그리고 이런 비판은 매우 정당하다고 생각한다.이렇게 서로 다른 사안을 엉키게 만들어 문제의 성격을 어지럽게 만들면서 생산적인 논의를 불가능하게 하는 짓, 이런 짓이 국가경영 차원에서 발생할 때 쓰는 말이 바로 '국정의 난맥상'이란 말이다. 난맥(亂脈), 어지러울 난, 맥락이라고 할 때 맥!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이번 일을 조선시대 식으로 표현하고 싶었는데, 방송이라 차마 하지 못했다. 여기서 하고 가자. 상것들!/ 문화전문객원기자(전주대 교수)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0.09.10 23:02

이윤기 유작 '그리스로마신화' 5권 내달 출간

지난달 27일 별세한 소설가 이윤기 씨의 유작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권이 다음 달 출간된다. 웅진지식하우스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권을 다음 달 중순 출간할 예정"이라고 8일 밝혔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국내 출판계에 신화 열풍을 불러일으킨 고인의 대표작. 2000년 1권이 처음 나온 이래 4권까지 출간됐다. 웅진지식하우스의 최윤경 편집자는 "2000년대 초반 고인과 출판계약을 맺고 지난해 5권까지 완간하려 했으나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출간 일정이 연기됐었다"면서 "유족들이 장례를 마친 뒤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다 5권 원고가 담긴 파일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인이 생전에 더 집필한 작품이 있는지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이 작품이 현재로서는 고인의 마지막 작품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권은 그리스의 영웅 이아손이 황금양털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아르곤 원정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인은 5권 서문에서 "우리가 넘어야 하는 산은 험악할 수 있고, 우리가 건너야 하는 강은 물살이 거칠 수도 있다. 우리가 건너야 하는 바다도 늘 잔잔하지는 않다. 하지만 명심하자. 잔잔한 바다는 결코 튼튼한 뱃사람을 길러내지 못한다. 신화적인 영웅들의 어깨에 무동을 타면 우리는 더 멀리 볼 수 있다. 내가 영웅 신화를 쓰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고 썼다.

  • 문학·출판
  • 연합
  • 2010.09.09 23:02

시향기 흐르는 가을밤속으로

시의 자리. 오랜 세월 시심(詩心)을 다듬어온 원로시인들이 초대됐다.전북시낭송협회(회장 표수욱)가 주최하는 '제1회 전북 시인 초청 시낭송의 밤'이 10일 오후 6시30분 전북생물산업진흥원 대회의실에서 열린다.'가슴 한가득 아름다운 시의 향기를!'을 주제로 한 시낭송의 밤은 시낭송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원로시인의 깊은 시세계와 만날 수 있는 의미있는 자리. 첫번째 시낭송의 밤 주인공으로는 이운룡 김남곤 이소애 시인이 초대됐다.시낭송에 앞서 이동희 전북문인협회장이 '이운룡의 시세계'를, 김동수 백제예술대학 교수가 '김남곤의 시세계', 소재호 전 전북문인협회장이 '이소애의 시세계'를 전한다. 이운룡 시인의 '농'을 비롯한 대표시 5편, 김남곤 시인의 '어머니에게'를 비롯한 대표시 5편, 이소애 시인의 '아버지가 걸어가다'를 비롯한 대표시 5편이 각각 낭송된다.낭송에는 표수욱 김명자 최은서 김서운 송경임 채순종 서상철 황송해 이해숙 김주순 김금남 이진아 김현자씨가 참여한다.표수욱 전북시낭송협회장은 "전북 시인들의 문학적 위상을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라며 "주옥같은 시와 시인들 한 분 한 분을 가슴에 새기다 보면 각박한 현실에서 벗어나 한결 정화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문학·출판
  • 도휘정
  • 2010.09.09 23:02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