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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소설] 배은정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제게 당선소감이라는 이름의 파일이 있습니다. 무턱대고 소감부터 쓰던 막막한 날들을 토닥토닥 위로해 봅니다. 막상 건질 문장 하나 없는 건 왜일까요. 신문사에서 연락을 받은 다음 날 해돋이를 갔습니다. 집 가까이 바다가 있지만 일출은 1년에 단 한 번인 연례 행사입니다. 그러니 올해 저의 ‘해피 뉴 이어’는 두 번입니다. 바닷가에서 해가 떠오르는 반대편을 오래도록 봤습니다. 밀려오는 여명과 걷히지 못한 어둠이 뒤섞인 색감이 아름답고도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제게 소설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윤슬의 반짝임은 흔들림임을 흔들리지 않으면 반짝일 수 없음을 이제는 압니다. 치열하게 쓰는 문우들이 많습니다. 쓰는 사람의 태도를 가르쳐 준 난계소설반 식구들. 소정, 영일, 미연, 성주, 지숙, 월향 님. 당신들처럼 소설에 진심인 이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김영, 이강란 님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창동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존경하는 엄창석 선생님. 차분하게 전진하라는 말씀 새기겠습니다. 지민, 지안, 사랑하는 우리 가족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웅크려들던 제게 한 걸음 더 가보라고 해주신 심사위원님과 신문사에 감사드립니다. * 배은정 작가는 대구 출생으로, 경북대 사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방송 작가로 경북교통방송 'TBN 경북 매거진' 원고를 쓰고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2.12.28 14:28

[2023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소설] 오월의 박제관 - 배은정

박제관은 폐쇄되었지만 밖에서도 유리부스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해화는 철제 난간에 허리를 걸치고 얼굴을 통유리에 바싹 들이댔다. 줄무늬가 선명한 호랑이가 앞다리를 쳐들며 포효했고 그걸 청설모가 바라보았다. 사나운 맹수의 기백을 마주한 자그마한 설치류의 태도치고는 다소 능청스러워 관람하는 입장에서는 맥이 빠졌다. 족제비는 지루한 듯 시선을 창 너머로 멀찍이 드리웠다. 사슴은 다소곳하게 다문 입 밖으로 송곳니가 튀어나와 기괴했다. 해화가 잇몸을 드러내며 따라 했다. 인조 나무에 앉은 백문조는 빛바랜 종족들과 달리 도기로 만든 변기처럼 윤기가 흘렀다. 황관 앵무가 눈알을 치켜 올려 해화를 쳐다봤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사자관과 철새관이 있었지만 중첩된 유리에 잔상이 겹쳐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들어가서 보면 좋을 텐데…….” 정우가 난간에 매달린 해화를 쳐다보며 말했다. “박제라면 살아있었다는 거지?” 해화는 난간을 아예 타고 넘어버렸다. 난간에서 녹슨 철문 소리가 났다. 정우는 살아있었다의 ‘었’자를 강조하며 지금은 죽었다고 말했다. 해화는 같은 의미라도 말의 생기가 다르다며, 난간의 양 끝을 B와 D로 지칭하고 한쪽 발끝으로 반원 모양을 그리며 움직였다. “박제는 여기쯤 아닐까? Birth와 Death 사이의 여기.” D 바깥에 선 해화의 어깨를 정우가 슬며시 B 쪽으로 당겼다. 정우는 난간을 넘지 않았기에 난간 너머는 해화와 박제품이 있었다. 박제품은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나온 공산품과 달랐다. 생명과 결부되어본 것들만의 특징이 있었다. 인위적으로는 절대로 만들 수 없는 진득한 세월의 더께 말이다. 정우가 적당한 표현을 떠올리며 침묵하는 사이 해화가 끼어들었다. “구차하달까…….” 해화는 다음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것 같더니 곧 이어서 말했다. “너와 내가 나눠야하는 대화처럼 말이야.” 정우는 퇴단서를 꺼내려고 내려놓던 배낭을 다시 짊어졌다. 강의 조언대로 전망대가 나을 것 같았다. 해화는 손 그늘을 만들고 유리창에 바짝붙었다. 박제된 털은 결이 가지런했지만 인공의 광택은 없었다. 살았다면 부단하게 물고 빨고 핥았겠지만 손질 안된 티가 확연했다. 엉키고 뭉친 갈기를 철석거리며 달리는 박제 사자를 상상했다. 정우는 스틸은 괜찮지만 동영상은 부자연스런 것들을 열거했고 가슴확대수술을 한 여배우에 이르렀다. “오늘 우리 대화의 수위가 상당히 높은가 보구나?” 정우는 예술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을 뿐이라고, 불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변명을 길게 했다. 해화는 귀담아듣지 않고 줄곧 개미핥기의 발가락에 시선을 두었다. “박제될 걸 예상했나 봐요. 저토록 드라마틱한 자세로 죽은 걸 보면요.” 화제를 돌리려는 정우의 말에 해화는 대구도 없이 유리에 입김을 불고 개미핥기의 발가락 사이에 점을 찍었다. 이럴 때보면 반세기 넘는 해화의 나이가 믿기지 않았다. “이런 걸 발샅에 낀 때라고 하지.” 정우는 발샅의 의미를 몰랐지만 어쩐지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박제관은 단층의 두 개 동이 전부였고 면적에 비해 전시품이 많았다. 안내문에 따르면 H 리조트가 건설해 R 시에 기부했다. 리조트 뒤편의 숲 탐방로도 마찬가지다. 탐방로까지 도로가 닦여 있어 성수기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외발 수레를 밀고 가는 관리인이 두 사람을 흘깃거렸다. 수레에 담은 잔목은 관리인의 정돈 안 된 머리카락처럼 삐주룩했다. 관리인은 금방이라도 둘을 쫓아낼 기색이었기에 해화가 정우의 팔을 끌어당겼다. 오월 하순인데도 백합이 피어있었다. 한 그루 안에도 막 피어나는 봉오리와 쪼그라들고 말라비틀어진 꽃이 공생했다. 앞서가던 해화가 박제관 쪽으로 휙 돌아섰다. 뒤따르던 정우가 흠칫 놀라서 멈췄다. “깃털이 흔들렸어.” 해화가 말했다. 날갯죽지를 한껏 펼친 백문조가 날개를 슬며시 접더라는 것이다. 해화는 돌아오는 길에 확인하겠다며 사진을 찍고 호랑이 옆의 청솔모, 족제비 뒤의 사슴을 되뇌었다. 리조트에는 손님이 없었다. 인부들 서넛이 끙끙대며 파라솔을 옮겼다가 원위치에 갖다놓았다. 가로등에 다가서니 음악이 켜졌다. 나무에 붙은 매미 스피커였다. 처음이라기에는 이미 아는 듯하고 우연이라기에는 정해진 듯하다는 가사였다. “우리가 여길 통째로 빌린 것 같네.”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던 해화가 말했다. 등산로 입구는 덩굴장미로 꾸며졌다. 바닥은 두툼한 야자 매트가 깔려 푹신했다.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통로 같은데요.” 정우가 말했다. 얼마 안 가서 해화는 무릎에 손을 얹고 정우에게 눈을 찡긋했다. 극단에는 비밀로 해달라는 의미였다. 스스러울 것 없는 노화과정이 극단에서는 약점이 됐다. 정우가 아는 단원들 몇몇이 비슷한 속내를 드러냈기에 안쓰럽기까지 했다. 둘은 보조를 맞추며 걷다가 쉬었다. 성당이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고즈넉한 성당 정원에는 조경수가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나지막한 회양목을 울타리 삼아 성모상이 마을을 보고 서있었다. 옴폭한 분지에 올망졸망 모인 건물 대부분은 숙박시설이었다. 왕년에 빛나던 관광지구는 박제품처럼 움직임이 없었다. 인적은 드물었고 된볕만 넘쳤다. 쇠락했다기보다 시간에 멈춰버린 모양새였다. 정우는 극단이 떠오른다고 했고 해화는 무슨 말이 하고 싶으냐고 쏘아붙였다. “선배가 제출한 제안서 봤습니다.” 정우는 굳이 선배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해화와의 첫 회식에서 합의한 호칭이었다. 해화는 단무장이라는 호칭이 별로라고 했다. 너도나도 부르는 선생님은 질색했다. 해화는 누나라고 부르라고 했지만 선배의 선에서 타협을 봤다. 실제로 대학 선후배기도 했다. 정우의 직속상관인 강은 예술단 행정담당자가 연극단원과 어떻게 선후배가 되느냐고 했지만 해화는 운영의 묘를 살리려면 허울이 없어야 한다며 정우를 두둔했다. 해화는 제안서가 어떻더냐고 묻지 않았다. 정우로서도 급할 건 없었다. 탐방로는 길고 등반이 끝날 즈음 이야기는 마무리될 것이다. 걷기나 즐겨야지 생각하는데 해화가 서두는 치우고 결론만 요약해달라고 했다. “특별하지 않았어요.” 정우는 구태의연하다는 말까지 하지 않았다. 특별함은 예술의 숙명이고 예술가에게 특별하지 않음은 치명적이라고 해화가 읊조렸다. 성당에서 삼종소리가 들려와 대화가 끊어졌다. 성모상 앞에서 누가 성호를 그었다. 정우가 보기에는 목발을 짚은 여자였는데 해화는 남자라고 했다. 아무튼 정우에게는 여자로 해화에게는 남자로 보이는 목발 짚은 이가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목발에 겨드랑이를 낀 쪽으로 상체가 비뚜름하게 기울었다. 성모상은 아기 예수의 머리에 고개를 파묻고 묵상했다. 볼수록 남자가 분명한 목발이 성모상에서 서너 걸음 떨어진 벤치에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삭처럼 고개를 숙이더니 어깨를 들썩였다. 해화와 정우는 당혹스런 눈빛을 나눴다. 들썩임은 잦아들자 문제의 순간이 이어졌다. 목발을 짚지 않고 일어서다 쓰러진 것이다. 벤치의 모서리를 부여잡고 안간힘을 썼지만 일어서지 못했다.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주저않길 반복하다 제자리에 드러누워 버렸다. “저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해화가 말했다. “가시려고요?” “이런 대사가 있어. 예전의 당신과 완전히 이별하지 못했군요. 목발의 저이도 그럴거야.” 목발이 바닥을 치고 소리를 질렀다. 해화와 정우는 오던 길을 내려갔다. 갈림길이 나타났고 두 사람은 오지 않은 길을 택했다. 성당은 갈림길에서 멀지않았다. 방금까지 내려다보이던 성모상은 그대로였지만 목발은 없었다. 해화와 정우는 목발이 쓰러졌던 벤치에 앉았다. 정우는 해화에게 생수를 건넸고 해화는 벌컥 소리를 내며 들이켰다. “목발을 쓴 지 얼마 안 됐을 거야.” 해화의 말에 정우가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 “목발은 건강한 다리에 짚어야 하거든.” 정우는 이해되지 않았다. 아픈 다리를 보조하는 장치가 목발 아니냐고 되물었다. “성한 쪽에 목발을 짚고, 목발과 아픈 다리를 동시에 내밀며 걷는 거야.” 해화는 몸소 시범을 보였다. 목발에 엉켜 뒤뚱거리다 넘어져 가며 배운 지혜라고 했다. “목발의 그이는 잘 갔겠지?” 해화의 눈가에 주름이 깊어졌다. 가까이서 본 성모상은 표정이 모호했다. 마을을 굽어보는 시선이 자애로우면서도 근심스러웠다. 수몰하는 세상을 보는 모습이랄까. 정우의 말에 해화는 문학을 전공했다더니 소설을 썼냐며 피식 웃었다. 정우는 아무 말없이 배낭을 뒤적여 샌드위치를 내밀었다. 먼 길을 오느라 시장했던 터다. 출근하자마자 두 시간을 운전해왔다. 주소를 알려준 이는 강이었다. 강은 퇴단서를 쥐어주며 서명을 못 받으면 돌아올 생각을 말라고 했다. 해화는 포장지의 재료명을 읽었다. 성분 하나라도 내키지 않으면 먹지 않을 심사로 보였다. 밀은 캐나다산이고 멀티몰트믹스는 독일산이고 마가린은. 재료를 차례차례 읽던 해화가 처음 맡은 배역이 가린,이라고 했다. 마가린을 읊자마자 가린이라고 했기에 정우는 웃음을 터트렸다. 해화는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라며 정색했다. 가녀린 소녀 역할이었지만 어린 해화는 통통한 편이어서 지도교사가 대본에 없는 대사를 만들어주었다고 했다. “나는 가녀린 가린이라고, 모든 대사를 그렇게 시작해야 했어.” 배우와 캐릭터의 부조화를 대사로 보완했던 셈이다. 해화가 대사를 읊듯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보이는 것과 달리 가녀리게 봐달라고, 가린이 대사를 할 때마다 관객석에서 폭소가 터졌다고. 벌써 사십 년이 넘은 일이라면서 샌드위치는 나중에 먹겠다고 했다. 평평하던 탐방로는 가파른 흙길로 접어들었다.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 사이로 바람 한 점도 불지 않았다. 쉴 곳을 찾던 두 사람 앞에 볕살 너른 곳이 펼쳐졌다. 도톰한 둔덕에는 나지막한 팻말이 꽂혀있었다. 분묘 번호 15번. 팻말에는 분묘 연고자의 연락을 기다린다는 이장 안내문이 적혀있었다. 해화는 분묘 앞에 주저앉았다. 정우는 무덤이라 신경 쓰인다며 어정쩡하게 쪼그려 앉았다. 해화가 여지껏 내려놓지 않던 배낭을 열었다. 배낭에 든 것은 와인 한 병과 오프너가 다였다. “웬 와인이에요?” 정우가 기가 찬 듯 물었다. “극단엔 비밀이야.” 해화는 검지로 입술을 지그시 눌렀다. 분묘에 와인을 뿌리고는 병째로 들이켰다. 정우에게도 권했지만 운전을 이유로 거절했다. 해화는 자기 몫의 샌드위치를 정우에게 건내고 와인을 마시며 샌드위치 포장지를 다시 읽었다. 출석부를 든 담임처럼 성분을 하나씩 호명했고 정우는 맛을 음미하며 들었다. 이름에서 각각의 맛이 났다. 샌드위치 하나에 들어간 재료가 스물여섯 가지였다. 정우가 극단의 단원 수와 똑같다며 신기해했다. 해화는 부분이 모여 전체가 되는 것들을 이야기했다. 완제품은 구성성분을 닮는다고 정우가 말했고 작품은 배우를 닮는다고 해화가 말했다. 해화는 대본을 읽듯 물티슈의 성분을 읊기 시작했다. 헥실렌글라이콜, 라우릴피리디늄클로라이드, 디소듐이디티에이……. 해화의 입술을 거쳐 나온 화학성분들은 마법을 부르는 주문 같았다. 하나같이 무게감이 꽉 찬 이름이었다. “복잡한 재료에 비해 결과물이 깔끔해서 좋네요.” 정우는 거추장스러운 성분을 한 장의 펄프에 녹여낸 성공작이라고 말했다. 해화가 이해가 안 된다며 물었다.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것들로 만들어졌는데도?”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결과물이 중요하죠. 안 그래요?” 와인병은 불투명했지만 해화가 고개를 꺾어 마시는 걸로 봐선 바닥에 가까웠다. 별말 없이 와인을 들이키는 해화에게 정우가 결정을 내려달라고 했다. 해화는 골치아픈 선택에서 벗어나려는 듯 태엽을 과거로 감았다. 해화는 돈사 근처에 살았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비가 오면 악취가 심해졌어.” 해화는 악취가 시간을 거슬러 온 것처럼 눈살을 찌푸렸다. 정우도 따라서 인상을 썼는데 대화의 맥이 흐려졌기 때문이다. 해화는 비가 오면 돈사에서 분뇨가 쏟아져 나왔다고 말했다. 농장주는 빗물에 쓸려가길 바랐지만 말 그대로 바람에 불과했다. 민원이 불거지자 취재기자가 농장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농장주는 선대부터 해왔던 방식이라고 맞섰다. 원래 분뇨에서는 냄새가 난다고.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부터 돼지가 살았고, 젊은 농장주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던 냄새라고 울먹이며 말했다. 그럼 우리 돼지는 어디서 살아야 하나요, 하소연도 했다. “아무래도 갠 날이 좋았겠어요?” 정우는 대화의 맥을 잊고 해화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말이야.” 해화는 입안에 머금고 있던 와인을 삼키면서 말했다. “맑은 날엔 포소리가 났어.” 외곽지 아파트는 저렴한 이유가 있었다. 사격훈련장은 거실에서도 보였다. 나무 한 그루도 자라지 않는 가파른 산비탈이었다. 훈련장으로 이어진 도로는 군용차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훈련 날마다 굉음이 요란하게 울려 돼지가 유산을 할 정도였다. “악취와 소음, 어느 편이 나을까?” 둘 중에 하나를 골라볼래,라는 말투였다. “그런 데서 어떻게 살았어요?” 정우는 골치 아픈 수학 문제를 집어던지는 아이처럼 심술궂게 말했다. “비가 오든 맑든 언제나 나는 말이야…….” 해화의 눈에서 희미한 미소가 지나갔다. “그때가 좋았어. 극단에 막 입단했을 때거든.” 모노드라마의 한 장면 같은 순간이었다. 해화는 대화를 나눈다기보다 홀로 과거로 가버린 것 같았다. 핀조명만 비추면 해화는 무대에서 독백하는 배우이고 정우는 제1열에 앉은 관객이었다. 정우는 해화의 모놀로그에 집중했다. 해화는 그때 예명을 해화로 지었다고 했다. 생활비를 아끼려고 에어컨도 못 켰지만 괜찮았다고. 악취가 심하면 돼지들이 크고 있구나, 포탄 소리가 나면 군인들이 저토록 훈련에 열중하니 편히 자도 되겠구나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연습은 고됐지만 무대가 있어 감사했다. 고백컨대 한 번도 나태하지 않았다고. 그녀는 긴 대사를 마친 배우처럼 눈을 질끈 감았다. 연극은 대사 없는 구간에도 메시지가 있다. 반면 현실의 침묵은 어색했다. 해화는 대사가 많은 연극일수록 침묵의 묘미를 살려야한다는 말로 침묵을 깼다. 정우는 극단을 위해 선배들이 결단해달라고 부탁했다. 선배라면 누구냐고 해화가 물었다. 몇몇을 지목하니 그들이구나,라며 이름을 읊조렸다. 정우는 석이 빠진 이유를 서너 문장으로 준비하고 있었지만 해화는 묻지 않았다. 석이 시장의 라인이라는 소문은 파다했다. 해화가 그들과 사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건 정우도 알고 있었다. 무대에 임하는 태도 또한 달랐다. 다만 극단은 변화가 필요하고 해화는 연장자다. 무엇보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재탕한 제안서로는 어림도 없다. “극단은 쇄신이 필요해요. 고도만 기다릴 수 없다고요.” “고도가 어때서?” 해화는 고도만큼 인간존재의 부조리성을 담은 작품이 어딨냐고. 부조리를 무대에서 구현하는 예술이 연극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대중은 새로운 걸 원해요.” “우리의 역량 안에서 새로운 걸 찾아으면 돼.” 해화는 시간을 두고 고민하면서 우선 잘 하는 것에 집중하자고 했다. “뭘 기다려요? 고도를요? 도대체 고도가 뭔데요?” “그걸 알았다면… 베케트가 썼겠지.” 다시 또 벽이다. 해화와의 대화는 풀리는가 싶다가도 어느샌가 막혔다. 해화를 거꾸로 읽으면 되는 화해는 멀어만 보였다. 극단은 언제부터인가 상임연출을 두지 않았다. 대외적으로는 극단만의 색깔을 찾는 여정이라지만, 속내는 상임을 둘 예산이 배정되지 않았다. 단원들은 연출 개인에 치우치기보다 극단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구축하는 기회로 삼자고 다짐했지만 객원 연출이 위촉될 때마다 객원과 합을 맞추느라 줏대 없이 흔들렸다. 최근 위촉된 객원은 대학로에서 감각 있는 연출로 지명도가 높았다. 대다수 단원들보다 어렸지만 그의 열정에 배려는 없었다. 객원은 몸짓 언어로 인물을 드러내는 실험적인 작품을 제안했다.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트레이너를 데려와 스트레칭을 시켰다. 경직된 몸이 본인도 모르게 캐릭터 창조를 방해한다는 이유였다. 몸의 움직임이 자유로워야 입체적인 연기가 가능하다는 건 단원들도 동의했다. 다리 찢기나 반복하려고 배우가 된 건 아니지만 동작이 제대로 되지 않아 뭐라 할 말도 없었다. 객원의 말대로 연극은 몸짓과 언어의 시학이다. 대사 위주로 연기했던 배우들의 몸은 굳어있었다. 나이 든 배우들의 무대가 몸짓보다 언어 쪽으로 기울어간 탓이다. 서넛의 연장자를 시작으로 지각이 속출했다. 느지막이 나타난 배우의 셔츠 위로 부황 자국이 선명했다. 진단서를 들이미는 단원들을 연출가도 어쩌지 못했다. 물론 해화는 누구보다 성실히 임했고 후배들을 다독여 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배역 테스트에서 연장자는 모조리 탈락했다. 최고 배점은 몸의 유연성이었다. 단원들은 관행을 송두리째 무시했다며 반기를 들었다. 의례적으로 주인공은 연장자에게 먼저 제안됐다. 연장자가 거절하는 제스처를 취하면 그제야 차순위를 의논했다. 정해놓은 규정은 없었지만 배역은 적절하게 배당됐다. 극단 나름의 오랜 규칙이 깨진 것이다. 강은 다시 정우에게 연락해 퇴단서를 가져오지 못하면 시말서로 대신해야 할 거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정우는 불쾌한 음성이 새나갈까 해화를 등지고 통화했다. 극단은 해체의 기로에 섰다. 의회는 예산 감액을 통보했고 장기적으로 법인화를 거론했다. 정우는 곧 마무리하겠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너도 고생이 많구나.” 통화가 끝낸 정우에게 해화가 말했다. 강은 해화에게 말을 조심했다. 말을 해놓고 눈치를 보고 아니다 싶으면 말을 부정했다. 강이 해화에게 자주 한 말은, 그런 말이 아니고요,였다. 해화에게는 사람 좋은 척하다가 골칫거리는 정우에게 떠넘기는 꼴이었다. 바로 이 순간이 그렇다. 강은 사무실에서 전화기나 붙들고 있고, 정우는 무명의 묘지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다. 정우는 더 이상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다. “퇴단해 주십시오.” 고개를 숙이고 눈치를 살피는 정우를 보고 해화가 피식거렸다. 도무지 심각해지지 않는 해화에게 정우는 그만 짜증이 났다. “극단도 변해야죠.” 정우가 극단이 올린 최근작들을 열거했다. “씨받이로 들어간 여자 이야기도 있었잖아요?”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씨받이냐고 따지려는 의도였다. “만삭이 돼서야 독립운동가 남편이 돌아오지.” 금세 작품에 몰입한 듯 해화의 눈빛이 아득해졌다. “죄다 지난 시대잖아요.” 해화가 그게 뭐 어때서라며 정우를 쳐다봤다.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정우는 고전이나 기웃하는 방식으로 예술기금을 지원받기 어렵다고 했다. 예산 담당인 정우가 문화예술과로 차출된 이유는 재정 감축을 위해서다. 표면적으로는 합리적인 재정운영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시장의 공약사업 추진비를 최대한 확보하자는 의도였다. 사업의 중요도에 따라 예산을 배분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에서 공공예술은 선택받지도 집중되지도 못했다. “젊은 관객 좋아하네.” 해화는 지금은 초고령 사회가 아니냐고 비꼬았다. 정우는 고령일수록 극장을 덜 찾는다고 말했다. 해화는 그래서 찾아가는 공연을 하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돌뱅이처럼요?” 정우는 단어 선택이 적절치 않다고 깨달았지만 이미 내뱉은 후였다. 정우는 극단만의 시그니처 극을 만들 계획이며 투자자를 찾는 것이 목표라고 마저 말했다. 원대한 계획에서 해화는 제외됐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배제된 이유를 모르겠다고 넋두리하는 단원들도 있기는 했다. 정우는 형의 놀이에 끼워달라고 보채는 어린 동생 같다고 생각했다. “목발도 성한 쪽에 쥐어줘야 한다면서요? 우리 처방이 그래요. 건강한 쪽에 목발을 주려는 거라고요.” 정우는 창단 20주년 기념식에서 감사의 뜻을 전하겠다고 덧붙였다. 예술회관 로비에 아트 월을 조성해 해화를 기억할 계획이다. “나를 박제하겠다는 거야?” 해화는 얼음처럼 미동이 없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자잘하고 우아한 동작들, 쾌활한 언어와 눈웃음이 사라졌다. 연극 ‘마리오네트’의 주인공처럼 몸짓에 생기를 잃었다. 해화는 마리오네트 역이 마음에 들었지만 주인공을 열망한 다른 배우가 차지했다. 몸의 마디마다 실을 묶는 연기라 체력 조건도 고려됐다. 해화보다 한참 어린 배우는 의욕이 앞섰는지 몸짓이 과하다는 평을 받았다. 해화라면 어땠을지 상상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눈앞에서 현실이 됐다. 해화는 줄이 끊긴 마리오네트처럼 어깨가 늘어졌다. 무대에는 승강장 표지판뿐이고 마침 이곳에도 분묘 번호 15번 팻말이 있다. 망연자실하며 팻말 아래 주저앉은 승객은 돌아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를 따라 뛰어가봤지만 얼마 못가 벅찬 숨을 몰아쉬며 쓰러졌다. 배낭에는 백 미터를 18초에 뛰던 탄탄한 다리와, 무대만 보면 방망이질하던 심장과, 남이 뭐라든 상관없던 자존감과, 잃을 것 없으니 두려울 것 없다는 냉소와, 굵고 윤기나는 머리칼까지 들어있다. 배낭 없이는 살아본 적이 없으니 이전처럼 살려면 찾아오는 수밖에. 하지만 가진 거라고는 덜거덕거리는 무릎과 늘어진 어깨, 나약한 정신력뿐이었다. “박제가 아니라 기념하겠다는 겁니다.” 극단이 지금까지 오는데 해화의 역할이 컸음을 안다. 지렛대라는 말보다 주춧돌에 가까웠다. R 시의 가난한 연극인들은 20년 전 해화를 주축으로 공립극단을 창단했다. 직장에서 퇴근해야 연습을 할 수 있었던 배우들이 아침부터 연습실로 출근했다. 극단에서 월급을 받으면서 무대에 집중했다. 해화는 초대 연출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배우로 남았다. 그동안 많은 작품들이 무대에 올랐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연습해서 완성한 작품들이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호흡은 안정됐고 연기가 노련해졌다는 평을 들었지만 관객은 늘지 않았다. 무대를 마치고 뒤풀이 때마다 노련하다는 말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노련미 넘치는 무대라면 왜 관객은 오지 않는 것인지. 노련의 능란함과 익숙함 중에 무엇이 문제인지를 다투다가 술에 취했고 다음날이면 모조리 잊고 다시 연습을 했다. 패기에 찬 단원 일부가 관객을 직접 만나러 가자고 제안했고 거리공연이 성사됐다. 관객도 배우도 집중하기 어려운 무대였지만 호응은 좋았다. 대중적인 작품이 선택되고 통속적인 각색이 이뤄졌다. 극단이 야외에서 머무르는 동안 예술회관은 고가의 초청 공연으로 채워졌고 연일 매진을 기록했다. R 시의 세금으로 만든 극단을 시민들이 외면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위기를 뚫고 나갈 손쉬운 일 순위로 인력의 물갈이가 거론됐다. 연봉이 높은 단원을 정리하고 빈자리는 계약직으로 채우는 계획이었다. 정우의 말을 듣던 해화가 주섬주섬 배낭을 열었다.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뭐하는 거예요?” 해화가 정우의 목에 오프너를 들이댔다. 코르크를 뚫던 나선형의 날카로운 끝이 울대를 건드렸다. “어때?” 해화가 물었다. 정우를 더욱 당혹게 한 건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라는 것이었다. 기시감의 정체는 곧 무대에 오를 20주년 기념 연극이었다. 낭떠러지로 내몰린 주연배우의 표독한 연기를 정우도 본 적이 있다. 연출에게 서류를 전하러 연습실에 들렀던 때였다. 배역을 맡지 못한 배우들은 연습에 불참했지만 해화는 귀퉁이에 앉아 지켜봤다. 연습실에서 본 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주연배우는 상대의 뒤편에서 칼을 들이댔지만 해화는 정우를 마주 봤다는 것이다. 한 손으로 정우의 어깨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 오프너를 들이댔다. 해화가 오프너를 조금 더 밀었다면 살갗을 건드렸을 것이다. 정우는 오프너를 보며 굴까개를 떠올렸다. 껍데기 속 보드러운 굴을 날카로운 끝으로 벗겨내는 신속한 손놀림을 말이다. 껄끄러운 상황을 어이없는 상상으로 모면하는 건 정우의 오랜 습관이었다. 눈앞의 위기를 회피하는 마인드 컨트롤의 일종이랄까. 해화의 돌발행동은 뾰족한 도구를 사용하는 온갖 장면을 떠오르게 했다. 정우는 그간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쳐진 것 같은 당혹스런 입장도 이해한다고. 그럼에도 극단의 미래를 위해 결단해달라고 부탁했다. 이곳까지 달려오느라 야근을 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해화의 팔목에는 핏줄이 불거졌고 나잇대 치고는 완력이 상당했다. 그럼에도 스무 살 아래 남성이 못 빠져나갈 정도는 아니었다. 정우를 굴복시킨 건 눈빛이었다. 막다른 골목에 몰려 관용 따위는 베풀 수 없는 자의 위태로움이 느껴졌다. 다행히도 위태로움은 유동성을 내포했고 곧이어 자포자기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해화는 평생의 하나를 내려놓는 심정을 아느냐고 했다. 날씨는 예보와 달랐다. 흐려진다더니 햇볕은 더 따가워졌다. 해화는 헉헉대며 전망대까지 올랐다. 가쁜 숨에서 달짝지근한 술 냄새가 났다. 해화는 내려가라고 했지만 정우는 별말없이 뒤따랐다. 잎끝이 날카로운 사철나무가 길을 알려주었다. 아카시아 꽃송이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먼저 도착한 해화가 벤치에 드러누웠다. 양말을 벗고 발을 휘저으며 마지막으로 무대에서 읊었던 대사를 중얼거렸다. 지금은 공문이 유일한 글쓰기지만 한때는 문학도였던 정우가 들어도 멋진 대사였다. 벤치에서 관광지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마을은 운치가 있었다. 저속 촬영을 해도 한 장면과 다를 바 없는 박제관 같았다. “동물을 어떻게 박제하는지 아니?” 마을을 쳐다보던 해화가 물었다. 박제에 문외한인 정우는 체액을 제거하고 화학물질을 채워 넣는 줄만 알았다. 그러니까 뼈대는 진짜라고 생각했다. “마네킹에 가죽을 씌우는 거야.” 해화는 박제의 어원도 상세하게 알았다. 박제의 한자는 벗겨서 만든다는 뜻이지만 영어로는 가죽이 원래 위치로 움직인다는 의미였다. 외국에선 키우던 개가 죽으면 박제를 한다고 했다. 정우는 가죽이 제 위치로 돌아오는 장면을 상상했다. 바람이 불자 가지가 엉키고 잎사귀들이 포개졌다. 해화가 벤치를 차지했기에 정우는 모서리에 기대섰다. 해화가 누운 채로 몸을 움직여 앉을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정우는 해화의 머리맡에 앉았다. “무성한 나무가 여기만 정돈됐네요.” 벤치 앞쪽 회양목 가지 끝이 단정하게 잘려있었다. 벤치에 앉아서도 마을을 조망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한 듯 했다. “가지치기를 누가 했을까요?” 정우는 잔목이 수북하게 실어 나르던 외발 수레를 떠올렸다. 산을 오르며 본 사람은 리조트 관리인과 목발뿐이었다. “그보다는…… 누굴 위해 했을까?” 해화는 리조트 관리인은 아닐 거라고 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뒷산까지 누가 신경을 쓰겠냐고. 전망대에서 보는 관광지구는 미동이 없었다. 도로는 한산했고 숙박시설 주차장은 텅 비어있었다. 내리쏟는 햇살조차 변함이 없었다. 그때 해화가 상기된 목소리로 마을을 가리켰다. “저길 봐.” 황량한 거리를 홀로 걷는 목발 사내였다. 그의 걸음은 엇박자처럼 덜커덕거렸지만 제법 리듬이 맞았다. 광활한 무대를 활보하는 배우처럼 경쾌한 걸음이었다. 해화는 배낭에서 종이를 꺼냈다. 정우가 건넨 퇴단서였다. 해화는 그걸 반으로 접어펴고 삼각형으로 접기를 반복했다. 그러고는 다 접은 비행기를 가슴에 대고 눈을 감았다. 몸을 일으킨 해화가 미세한 근육까지 늘려가며 기지개를 켜고 오른팔을 힘차게 뻗었다. 비행기가 나뭇가지에 걸려 내려앉는 것 같더니 다시 날아올랐다. 멀리서 버스 한 대가 관광지구로 들어왔다. 관광버스가 들썩이도록 흥겨운 음악이 전망대에서도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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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28 14:27

[2023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시] 어렵지 않고 자연스럽게 펼쳐 보인 시적 진정성

이미지의 부조화와 언어표현의 부정교합으로 빚어내는 파격미 혹은 의외적 정서충격도 소통의 가능성을 전제로 했을 때 유의미하다. 투고한 많은 작품들이 새로움의 추구라는 강박에서 크게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소통을 염두에 두지 않은 실험적 언어표현을 과도하게 구사한다든지 열린 언어 구조로 너무 많은 것을 독자의 몫으로 떠넘기는 경우를 본다. 의미맥락을 간추릴 수 없거나 일상적 의미맥락에서 너무 멀어진 경우가 많다. 주제의 치우침 현상 때문에 예심을 넘어서지 못한 작품들이 많았다. 사회적인 주제를 직간접적으로 다루었을 때 변별력을 잃고 또한 상식을 넘어서는 개성을 찾기 어려웠다. 그리고 투고된 많은 작품들에서 산문화 경향이 뚜렷했다. 압축과 생략 그리고 비유를 통해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드러내는 (혹은 감추어두는) 시의 언어적 속성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긴 시간 고립된 생활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문장 특성도 자주 발견되었다. 고립된 시간을 견디며 혼자 읊조리는 독백형, 사변형의 문장들이 그것이다. 배출 혹은 배설과 다른 지점에서 씨 쓰기의 이유는 찾아져야 한다는 점에서 얼마간의 우려를 하기도 했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 가운데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된 작품은 '아보카도', '밀리터리룩의 이중성', '활어', '검은 고양이'다. 이 작품들과 함께 제출한 다른 작품도 참고하여 시인이 그의 시 세계를 계속하여 펼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도 가늠하였음을 미리 밝힌다. '아보카도'에서 견디기 힘든 폭염 속 시적화자는 “비닐하우스가 녹아내려 그 안에 자라고 있던 푸른 식물들이 다 타버릴지도 모를 날들”을 떠올린다. 우리가 직면한 위기를 환기한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밀리터리룩의 이중성'은 위선과 관능과 관음을 도덕으로 위장한 ‘이곳’(도시)에서 ‘그곳’으로의 이탈(혹은 일탈)하고자 하는 자유의지를 표현했다. 시의적절한 문제의식과 함께 많은 장점을 갖고 있음에도 단순 서사에 머물거나 설명적 요소가 강하여 형상화가 미흡하다거나 정서 수준으로 용해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검은 고양이'는 빚어내는 이미지가 발랄하고 언어가 불러일으키는 상상이 흥미롭다는 점에서 눈이 오래 머물렀다. 하지만 그 이미지와 상상이 과잉된 측면이 있고 그 어떤 메시지로 수렴되기엔 부족한 면이 있다. '활어'는 바닷가의 삶에서 읽어낸 활력과 긍정의 힘을 그려낸 작품이다. 어렵지 않은 표현으로 끌어가는 시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안정감이 있다. 그가 펼치는 정서에 신뢰를 갖게 하는 노련함이 보인다. 서정성도 잃지 않고 있다. 그 어떤 섬광 같은 새로움이 아쉽지만 새로운 시도를 보여줄 역량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이의 없이 「활어」를 당선작으로 밀기로 하였다. /심사위원 김사인(문학평론가)·복효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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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28 14:27

[2023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시] 황사라

눈 내리는 ktx 안에서 등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책이 자꾸 미끄러져 내려옵니다. 흘러온 시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6년 시를 처음 접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였지요. 제가 접한 시들은 예전에 알고 있던 시들이 아니었습니다. 시가 전해주는 의미와 감정의 결도 모른 채 수십 권의 시집을 필사했습니다. 그럴수록 시는 더욱더 혼미한 곳으로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불현듯‘시는 본래가 그런 것이다.’라는 어디선가 본 글이 떠올랐습니다. 삶처럼 시도 그럴 수 있겠구나, 삶과 다를 바가 없겠구나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앞선 등단자분들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등단은 시작일 뿐이라고, 오직 좋은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산 아카데미 길상호 선생님, 시클 하린 선생님, 걷는 사람 김성규 선생님, 박형준 교수님을 비롯한 동국예술대학원 교수님들, 시로 좋은 예시를 보여주신 많은 시인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중대포엣, 블루버드 선생님들도 고맙습니다. 크리스티나, 필립보 네리, 너희들이 있어 엄마는 항상 웃을 수 있단다. 마지막으로 전북일보 심사위원 선생님께도 진심으로 감사 인사드립니다. * 황사라 작가는 익산 출생으로 동국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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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28 14:27

제15회 JB한국미래문화상 시상식...주인공은 김영진 시인, 유미숙 시낭송가

사단법인 한국미래문화연구원(원장 이두현)이 지난 23일 전주시청에서 제33회 한국미래문화 출판 기념회와 제15회 JB한국미래문화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윤석정 전북일보 사장, 소재호 전북예총 회장, 김득남 전주예총 회장, 홍성일 전라매일신문 대표 등이 참석해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다. 올해 문화상 주인공은 문학 부문에 김영진 시인의 '구이 저수지에서', 문화 부문에 유미숙 공연시낭송가가 선정됐다. 문학 부문 송희 심사위원장은 "심사 기준으로 작품성, 작가 정신, 문단에 대한 열정과 기여도, 권리와 의무 이행 여부 등을 참고했다"며 "김 시인의 작품은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자아가 하늘에 닿아 있다. 높음과 낮음, 멈춤과 흐름의 미학으로 자신을 성찰하는 태도는 삶이 수행 처"라며 "그의 작품성은 자신의 삶을 살피고 정진하는 데서 비롯됨을 발견하게 된다"고 평가했다. 유 공연시낭송가는 시낭송가, 연출 전문가, 문화 기획자로서 '공연 시 낭송'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원목요콘서트를 여러 차례 개최해 도내 시를 널리 알리고 있고 시 낭송 지도를 통해 후학을 양성해 온 점 등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두현 원장은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한국미래문화연구원은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다. 올해도 힘겨운 시간을 버텨내고 소기의 성과를 냈다"며 "특히 고3 수험생을 대상으로 '무대 위의 인문학-미래를 여는 꿈' 시 낭송을 통해 학생을 위로하고 새로운 장르를 선보인 것이 가슴 벅찬 여운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미래문화연구원은 지난 2000년에 설립해, 문학인과 문화예술인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매년 회원을 신작을 엮어 종합 문예지 '한국미래문화'를 발간하고 있다. 문화상은 한국미래문화연구원이 주관하고 전북은행이 후원한다.

  • 문학·출판
  • 박현우
  • 2022.12.27 17:42

쉼터 청소년 열세 명의 생생한 생활 현장을 기록하다

"나는 흉터로 얼룩진 지금의 나밖에 가진 것이 없어. 그렇지만 나답게 살고 싶어!" 지금도 성폭력, 가정 폭력, 가정 해체, 빈곤, 갈등, 폭력, 방황 등으로 상처받은 청소년들은 길 위에서 헤매고 잠을 청한다. 이들이 찾는 곳은 '청소년 쉼터'. 그곳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청소년상담사, 청소년지도사, 임상심리사 등(이하 케이)과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속 깊숙이 있던 비밀 이야기를 하나둘 꺼내 보인다. 전주푸른청소년단기여자쉼터 사회복지사로 활동하고 있는 오복이 작가가 청소년들의 손을 꼭 붙잡고 있는 수많은 케이들과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책 한 권에 담았다. 제목은 <꽃들의 흉터>(청동거울). 오 작가는 쉼터 청소년 열세 명의 생생한 생활 현장을 기록했다. 그는 2011년부터 2022년 현재까지 청소년 쉼터에서 만난 청소년들의 인터뷰를 통해 수집한 이야기를 재해석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은 가정 해체, 한부모, 조부모, 다문화, 입양 가정 등 다양한 형태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청소년들이 어떻게 쉼터를 찾고, 어떻게 살고, 어떻게 떠나는지의 과정을 모두 담기 위해 노력했다. 책은 '사라진 아이-여정 이야기', '긴급 입소-시내 이야기', '꿈-다래 이야기', '그가 사는 방식-희진 이야기', '한밤에 머리 감기기-나연 이야기', '무한 도돌이표-채윤 이야기', '선생님!-해인 이야기', '공백기-유진 이야기', '패션쇼-애란 이야기', '개복치와 긍정충-남주 이야기', '소라게-지원 이야기', '짐승의 죽음-민서 이야기', '방황-강희 이야기', '에필로그-케이 이야기' 등 14장으로 구성돼 있다. 오 작가는 "상처받은 아이가 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해 묻고 싶다. 질문을 통해 상처받은 아이들의 처지가 독자에게 닿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동화마중>에서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동화마중> 편집위원,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회원, 전북작가회의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문학·출판
  • 박현우
  • 2022.12.21 17:31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마음 갖기" 동화 '집고양이 꼭지의 우연한 외출' 출간

동화를 좋아해서 20여 년을 어린이들과 함께 책을 읽으며 활동해 온 이경옥 동화작가가 새 장편동화 <집고양이 꼭지의 우연한 외출>(별숲)을 펴냈다. 어떻게 살아야 각자가 속해 있는 공동체 속에서 인정받으며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담긴 동화다. 이 동화작가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재로 설정했다. 그는 집고양이와 길고양이 이야기를 통해 남녀노소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기획했다. 주인공은 집고양이 꼭지와 길고양이 사월, 사월이 친구 단비다. 고양이들이 바깥세상을 마주하면서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았다. 이 동화작가는 독자들이 고양이를 통해 사회가 안고 있는 차별의 시선을 고스란히 접하길 바랐다. 남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자연스럽게 인정하지 않는 사회를 보여 주고자 한 것이다. 그는 "관습과 고착화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양이답게 살아야 한다는 단비와 다르게 살 수도 있다는 꼭지의 외침에 우리는 차별이 아닌 차이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동화와 마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을 짧은 시간에 평가한다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그럼에도 각자의 경험과 얕은 지식에 맡긴 채 상대를 가볍게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는 것에는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 동화작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 <두 번째 짝>으로 등단했다. 발간한 책으로는 장편 동화 <달려라, 달구!> 등이 있다. 2019년 우수출판콘텐츠제작사업, 올해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 지역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에 선정됐다.

  • 문학·출판
  • 박현우
  • 2022.12.21 17:30

다섯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수필집 '다섯 빛깔로 빚은 수채화' 펴내

변양희(양볕꽃)·서성현·소유정·송태규·이은미(미야) 수필가가 다섯 작가 수필집 <다섯 빛깔로 빚은 수채화>(수필과 비평사)를 출간했다. 서로 다른 길을 걷는 다섯 사람이 한데 모여 의미가 남다르다. 이들이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읽고 쓰기를 생활의 한 부분으로 여기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수필집에는 변양희 수필가 9편, 서성현 수필가 8편, 소유정 수필가 7편, 송태규 수필가 13편, 이은미 수필가 13편 등 다섯 작가의 수필 작품 50여 편이 담겨 있다. 각자 다른 환경에 처해 있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제각각이라 읽는 재미도 있다. 이중 편집위원도 맡은 송태규 수필가는 다섯 작가 중 등단한 지 가장 오래된 수필가다. 최근 등단한 수필가가 대다수지만 송 수필가는 2019년 '에세이 문예'로 등단했다. 2020년에는 '시인 정신'에서 시로 등단했다. 그는 교장으로 퇴임 후 글을 써보고 싶어 그때그때 짧게라도 느낌을 적어뒀다.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것이다. 마음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한 번에 몰아 쓰는 작업보다는 생각났을 때, 무언가 느껴질 때 짧게 표기했다. 송 수필가는 "없는 재주에 글을 써보고 싶다고 여기저기 기웃대고 닥치는 대로 구실을 붙였다. 관심을 핑계로 글감을 마련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마다 짧게라도 느낌을 표현하고 남겨뒀다. 덕분에 수필집과 시집을 냈다. 글을 준비하며 나를 돌아보고 반성했다"고 말했다.

  • 문학·출판
  • 박현우
  • 2022.12.21 17:30

이광웅 시인의 추모 30주기를 맞아

‘사랑을 하려거든 목숨 바쳐라 사랑은 그럴 때 아름다워라 술 마시고 싶을 때 한 번쯤은 목숨을 내걸고 마셔 보아라’ 민중가요 <바쳐야한다>는 사랑꾼이든 술꾼이든 진짜가 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며 당치도 않은 권력과 시대를 일갈한다. 1990년대 거리에서 많이 불렸지만, 이 노랫말이 이광웅(1940∼1992)의 시 「목숨을 걸고」에서 비롯된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익산에서 나고 자란 이광웅은 ‘오송회 사건’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시인이자 교사였던 그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용공주의자로 몰려 40대의 많은 시간을 철창 안에서 보냈다. 문학의 진실한 힘에 눈을 뜨고 현실을 바로 보려는 자세를 굳게 지킨 대가였다. 오송회 사건은 1982년 한 학생이 전주·군산 간 직행버스에 놓고 내린 오장환의 시집 『병든 서울』 필사본에서 시작된다. 월북 시인의 시집을 돌려봤다는 이유로 함께 문학을 논하던 군산 제일고 전·현직 교사 9명이 구속됐다. 잡아다 족치면 간첩단이 만들어지던 시절, 전북도경 대공분실에 불법 연행돼 20여 일 모진 고문을 받은 이들은 교사간첩단이 되었다. 주동 인물로 꼽힌 이광웅은 7년 형을 받아 사상범을 가둔 광주 특사 독방에서 수형생활을 시작했고, 전주교도소로 옮긴 지 1년 만인 1987년 특별사면됐다. 시인은 높고 높은 담의 안쪽에서 새로운 눈을 떴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그가 무신론자가 된 것도, 삶의 의미와 인간의 신념과 분단된 민족의 아픔에 보다 절실한 의식과 의지를 갖게 된 것도 그곳에서였다. 특히, 비전향 장기수들을 만나며 신념을 지키는 삶의 가치를 깨닫고 기나긴 날을 시로 채우기 시작했다. 가슴으로 끓어오르는 수많은 언어가 주체할 수 없이 쏟아졌다. 가장 소중한 무기인 펜조차 빼앗겼기에 운동하다 주운 못을 갈아 우유갑에 시를 썼고, 그것을 간직하기 위해 책 표지를 뜯어 붙여 시의 목숨을 지켰다. 「바깥의 노래」, 「바람의 손길」, 「햇빛 한참」은 이렇게 세상을 만났다. 감옥에서 나온 후 고문 후유증으로 투병 생활을 하고, 전교조 활동으로 교단에서 밀려나면서도 시인은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고통과 분노와 절망을 그만의 맑은 서정으로 풀어내며 시집 『목숨을 걸고』(1989·창작과비평사)와 『수선화』(1992·두리)를 냈다. 오송회 사건의 피해자들은 2008년에서야 명예를 되찾는다. 이 사건은 제5공화국의 대표적인 공안 조작 사건으로 꼽히며 2008년 광주고등법원 재심에서 관련자 전원 무죄 선고를 받았고, 2011년 대법원은 국가 배상을 확정했다. 시인의 추모 30주기인 12월 22일. 시인을 아끼고 따르고 기억하는 전북작가회의 시인·작가들과 교육문예창작회 교사들은 그의 시비가 있는 금강하구(군산 금강호휴게소 뒤 공터)에서 ‘이광웅’ 이름 석 자를 다시 부르며 시인의 친필로 새겨진 시 「목숨을 걸고」를 힘차게 외칠 것이다. 진짜 술꾼이든, 참된 연애든, 좋은 선생이든, 뭐든지 진짜가 되려거든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시인의 고성을 마음 깊이 새길 것이다. 포악한 시대는 진짜 좋은 시인과 선생이 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순결한 사람에게 진짜 목숨을 요구했지만, 어둠과의 치열한 싸움 끝에야 비로소 조금씩 참된 세상이 열린다는 것을 시비는 묵묵히 전해줄 것이다. 부당한 시대는 절로 저무는 것이 아니기에 목숨을 걸고…. /최기우 극작가·전북작가회의 부회장

  • 문학·출판
  • 기고
  • 2022.12.21 15:49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 김영자를 책으로 만난다

전라북도립국악원이 지난 2011년부터 추진해 온 연속 사업인 '전북의 전통예인 구술사' 사업을 올해도 어김없이 진행했다. 올해의 주인공은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예능 보유자 김영자씨다. 김영자 편은 김정태 도립국악원 학예연구사가 김영자 선생과 총 8회에 걸쳐 구술 대담 조사를 실시해 김영자 선생의 구술을 채록하고 연구했다. 목차는 학습내력·스승 이야기, 국립창극단 재직 시절의 회고, 전라북도립국악원 창극단장 시절, 판소리 담론, 창극의 이런저런 이야기, 인생의 뒤안길 등 총 6장으로 구성돼 있다. 부록에는 그가 걸어온 길을 연보로 정리해 실었다. 김영자 선생은 도립국악원 창극단의 발전을 위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국립창극단 있을 때 주인공을 맡으면 주연 수당을 받았다. 예술단은 수당을 줘야 발전할 수 있다. 그래야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고, 하려고 하는 사람이 늘어야 단체가 발전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창극단에도 수성 파트가 있어야 한다. 북(장구), 가야금, 거문고, 대금, 아쟁을 먼저 뽑아야 한다. 창극에서 웅장하게 갈 때 관현악 반주로 가기 때문이다. 창극단에는 남자 고수도 필요하다. 연습할 때 북도 쳐 주고 하면 훨씬 연습 능률이 오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소리뿐만 아니라 연기에도 탁월한 예인이다. 지난 1975년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발탁된 이후 창극 <심청전>의 심청 역, <춘향전>의 춘향 역, <별주부전>의 토끼 역을 맡아 주목받았다. 2004년부터 2011년까지 7년 동안 도립국악원 창극단장에 재임하면서 전북도 판소리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도립국악원 관계자는 "(이 사업을 통해) 전통 예인들이 살아온 삶의 발자취를 더듬어 봄으로써 전통 예인들이 지닌 예술의 편린을 살펴볼 수 있는 잣대가 될 뿐만 아니라 전라북도 국악 발전에 초석을 다지는 일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라고 말했다.

  • 문학·출판
  • 박현우
  • 2022.12.20 17:04

[2023 전북일보 신춘문예 예심] "올해 소재 폭넓어졌지만, 완결성은 아쉬워"

2023 전북일보 신춘문예 공모가 지난 9일 마감됐다. 올해는 시 부문에 289명이 1114편, 단편소설 부문에 94명이 99편, 수필 부문에 151명이 343편, 동화 부문에 80명이 93편 등 총 614명이 1649편을 응모했다. 연령별로는 10대부터 80대 응모자까지 비교적 고른 분포를 보였다. 지역별로는 전북보다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눈에 띄게 많았다. 전국 곳곳에서 골고루 작품을 보냈으며, 해외에서 보낸 작품도 다수였다. 신춘문예 예심은 15일 전북일보사 역사전시실에서 진행했다. 심사는 전북일보 문우회(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모임) 회원인 김근혜·김영주·김헌수·박태건·안성덕·이경옥·이진숙·오은숙·장은영·장창영·정숙인·최기우·최아현 작가가 함께했다. 올해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 가족 문제 등 사회적인 소재와 돌봄 노동, 반려 동물, 특정 직업군의 이야기 등 소재가 폭넓었다. 다만 완결성 측면에서 다소 아쉽다는 의견이 많았다. 시 부문 예심 심사위원들은 19편을 본심에 올렸다. 심사위원들은 "산문 경향의 작품이 늘어났다. 길이가 늘어났다는 것은 분량의 문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혼자 있는 시간에 읊조리는 독백형, 사변형 문장을 구사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평가했다. 수필 부문에서는 22편이 본심에 올라갔다. 심사위원들은 “올해 응모한 많은 작품 중 분량과 수필의 특성을 갖추지 못한 작품들이 있어서 아쉬웠다. 다행스럽게 창의적인 소재와 문학의 깊이, 철학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도 많았다”고 평했다. 단편소설은 12편을 본심 진출작으로 선정했다. 심사위원들은 “전반적으로 현실이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고 세련되게 녹아들었다. 일상적인 소재를 새로운 세대의 표현 방식과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내 많은 작품이 잘 읽혔다”며 "다만 이야기를 잘 이끌어 가면서도 마무리하는 힘이 부족한 작품이 여럿 보여 아쉬웠다"고 말했다. 4편이 본심에 진출한 동화는 자연물, 동물, 아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물건, 게임, 부모님, 친구 등 소재가 다양했다는 평가다. 심사위원들은 "주제 또한 현실을 반영하는 생활 속에서 겪는 아픔과 고민을 극복하는 내용부터 부족한 자아를 딛고 일어서려는 노력이 담긴 글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눈에 띄는 몇 작품을 발견했다. 오랜 습작으로 매끄러운 문장력을 갖추고 개연성과 감동을 자연스럽게 엮은 이야기들은 불모지에서 희망을 보는 것과 같았다"고 덧붙였다. 당선작은 본심을 거쳐 2023년 1월 2일자 본보 신년호를 통해 발표한다. 당선자에게는 개별 통보한다.

  • 문학·출판
  • 박현우
  • 2022.12.15 18:14

나의 삶은 어떤 색깔이었을까...김형중 에세이집 출간

"자신이 소망하는 것들이 이루어지리라 굳게 믿으면서 내일을 설계해 가는 삶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닌가 한다. 삶을 어떻게 영위하느냐는 각자의 몫이며, 행불행의 차이는 자신의 생각 여하에서 느껴지리라."(본문 '당신은 지금 행복하세요' 일부) 김형중 에세이스트가 마음을 열고 어떤 부끄러운 일도 스스럼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오래된 벗을 찾아 길을 나섰다. 그의 여행기는 에세이집 <내 삶은 어떤 색깔이었을까>(신아출판사)에서 볼 수 있다. 책은 '그리운 단어 추억', '욕망은 인간의 본질이다', '어른과 꼰대', '동전의 양면처럼', '온누리 풍경' 등 총 5부로 구성돼 있다. 5년 여에 걸쳐 세월 따라 다듬고 공부하면서 써온 글 70여 편을 모았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생각하며 모은 감정의 모음집과도 같다. 이중 '온누리 풍경'은 지난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신문에 게재한 40여 편의 작품 중 발췌했다. 대부분 서적과 인터넷에서 인용한 상식적인 내용에 작가의 생각을 덧붙였다. 김 에세이스트는 에세이집 출간을 자기 인생에 어떤 그림이었고 어떤 색상으로 물들여져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로 삼았다. 출간을 위해 20대에 첫 직장을 얻었을 때부터 전남 영광에서의 중등교사 시절, 피로에 지친 어느 날 퇴근길 등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을 하나씩 되돌아봤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나의 삶은 어떤 색깔이었을까"를 묻고 또 물었다. 그에게 이번 에세이집의 의미가 남다른 이유다. 김 에세이스트는 "어둠이 내리고 인적이 끊겨가는 마을 길을 따라 하숙집을 향해 걸어가는데, 저 멀리 전봇대에 매달려 졸고 있던 희미한 가로등이 따뜻한 온기를 전하며 맞이해 준 아려한 그림자들이 스쳐간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흘러온 내 인생에 새겨진 아름다운 추억의 흔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집 <허수아비들의 노래>, <어머니의 지게>, <길>, <향긋한 사람 냄새가 그립다>, 에세이집 <도전하는 사람이 아름답다>, <당신도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 <하얀 흔적들> 등이 있다. 중등교사, 원광대 사범대 강사, 벽성대 교양과 교수, 전북여고 교장, 원광보건대 다문화복지과 교수, 군산대 산학협력단 자문교수 등을 지냈다.

  • 문학·출판
  • 박현우
  • 2022.12.14 17:14

현대사회 정면으로 비판한 방서현 작가의 '좀비시대'

방서현 작가가 장편 소설 <좀비시대>(리토피아)를 출간했다. 책은 '세뇌 교육 연수원', '악덕 지국', '이상한 사람들', '수아의 일기', '전사가 되다', '도시에 버려지다' 등 총 6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학습지 방문 교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방 작가는 물질만능주의 사상으로 사람들에게서 더는 순수성과 양심을 찾아볼 수 없다고 판단하고 등장인물을 돈과 권력이라는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로 설정했다. 그는 책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가 인간성을 상실한 좀비시대라고 말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교묘하게 자신을 감추고,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고자 했다. 이 책은 돈과 권력이라는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과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19 상황이 비슷한 면이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에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문학 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고명철 문학평론가는 "이 책을 읽는 것은 좁게는 학습지 교사가 겪고 있는 부당한 노동의 처우와 지옥의 현실에 대한 사회적 고발이다. 넓게는 21세기 새로운 노동 고용의 형태로 팽배해지고 있는 간접고용 아래 중간착취의 엄혹한 노동 억압을 겪고 있는 노동자의 현실에 대한 증언을 경청하고 이에 대한 투쟁에 동참하는 사회적 실천"이라고 평가했다. 방 작가는 "내게 있어서 글과 소설은 어릴 때 보았던 무지개와 같았다. 신비하고 환상적이며 꿈속 같고, 아지랑이처럼 몽롱하다. 그 존재만으로 벅찼다.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아 가면서도 꿋꿋이 달려올 수 있었던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충남 논산 출신으로, 목원대 국어교육학과 및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22년 계간 리토피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현재 무지개와 같은 빛나는 글을 쓰기 위해 고향에 자리 잡고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 문학·출판
  • 박현우
  • 2022.12.14 17:13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진숙 수필가 - 김근혜 '다짜고짜 맹탐정'

얼마 전에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프로를 시청했다. 박주호 선수의 딸 나은이가 동생인 건후, 진우와 함께 카페나들이 한다. 손소독제인 줄 알고 시럽을 바른 동생 건우를 향해 나은이는 “건후야, 잘못해도 돼. 손 씻으면 되지”라며 당황한 동생을 다독인다. 또 코코아를 마시려다 다 쏟는 동생 진우에게 “진우야, 괜찮아 누나가 있으니까. 내가 닦을 수 있어” 라며 닦아주고 먹여주는 장면이었다. 어린 누나인 나은이가 침착함과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 부모의 자녀 교육 성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니까. 김근혜 작가의 다섯 번째 동화, 《다짜고짜 맹탐정》의 주인공인 맹탐은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빠 없이 산다. 엄마마저 꿈을 실현하러 유학을 가고 외할머니와 생활하면서 더 큰 상처를 받는다. 만사를 귀찮아하고 남들 일에는 관심이 없다. 어느 날 교실에서 발생한 화재의 방화범을 찾으라는 선생님의 특명을 받고 비밀 수사를 시작하면서 변화가 일어난다. 담임 선생님이 탐이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었다. 자기의 상처가 제일 크다고 생각했던 탐이는 방화사건을 수사하면서 많은 친구들의 아픔들을 알게 된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동생을 돌보느라 친구들과 놀 수 없는 상철이, 알콜 중독자인 아빠로부터 매를 맞고 사는 소정이, 공부만 중요시하는 아빠에게 춤을 추고 싶다고 말하지 못하는 종혁이, 이들은 텅 빈 탐이 마음에 아픈 꽃들로 자리 잡는다. 특히 공부도 잘하고 글쓰기 상도 곧잘 받는 모범생 동우, 알고 보니 엄마의 강요에 의해 공부라는 감옥에 갇혀 스트레스를 받고 일탈행동을 하고 있다. 동우를 구하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탐이는 오해와 질타를 받으면서도 동우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릴 때까지 곁을 내준다. 유럽의 어머니들은 자녀들에게 남을 괴롭히거나 해를 끼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되며 나보다 약한 자를 도와야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동우 엄마는 학교와 학원이라는 철망 안에서 머리만 있고 가슴은 없는 아들로 키우고 있었다. 우리나라 교육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한때 호랑이처럼 자녀를 엄격히 관리하는 엄마를 뜻하는 ‘타이거 맘’이나 아이의 미래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알아서 처리해주는 ‘잔디 깎기 맘’, 거센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자녀의 삶에 끊임없이 간섭하는 ‘헬리콥터 맘’이란 단어가 회자되었다. 그러나 요즘 자녀와의 정서적 유대를 중요시하며 숨겨진 재능을 스스로 발견해 낼 수 있도록 조력자의 역할을 하는 ‘스칸디 맘’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환대할 일이다. 이러한 시점에 이 책을 읽으면 부모님들은 자녀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을 알게 될 것이고, 상처 위에 서 있는 위태로운 학생들은 위안과 용기를 얻을 것이다. 또 교사들은 돌아온 슈퍼맨이 되어 공부는 물론이고 꿈과 낭만에 대하여 생각하는 자유를 찾아줄 수 있을 것이다. 상처를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는 단단한 영혼들을 위하여 이 책을 권한다. 이진숙 수필가는 전직 고교 국어교사로, 201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 당선됐다. 2010년부터 최명희문학관에서 혼불 완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2.12.14 17:11

전국의 마을숲에서 발견한 보물 같은 이야기...이상훈의 마을숲 이야기

예로부터 사람들은 계절풍 바람·홍수를 막는 등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서 마을 어귀나 강과 산이 있는 방향에 숲을 가꿨다. 마을 사람들은 숲이 만들어 낸 커다란 그늘 아래 서 있기도 하고, 낙엽이 쌓인 거리를 걷기도 하고, 숲 아래 모정에서 햇빛을 피하기도 하고, 주변 개울에서 물을 튀기며 놀기도 한다. 이상훈 진안문화원 부원장은 이러한 마을숲과 마을의 풍경 등을 담아 <이상훈의 마을숲 이야기>(푸른길)를 출간했다. 책은 '진안의 마을숲', '장수의 마을숲', '임실의 마을숲', '무주의 마을숲', '완주·전주의 마을숲', '남원·순창·정읍·부안·고창의 마을숲', '전국의 마을숲' 등 7장으로 구성돼 있다. 도내 곳곳의 마을과 마을숲의 구조, 지명, 의미, 그곳의 사람들과 삶 등을 담았다. 내용은 지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새전북신문'에 연재했던 글이다. 오랫동안 전국의 마을숲을 돌아보며 민속을 연구해 온 이 부원장의 역사·문화적인 시각을 볼 수 있는 책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지역부터 생소하게 느껴지는 장소까지 모두 담고자 한 이 부원장의 노력도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저서 <진안, 가슴으로 담다>, <우리 마을>, <진안의 마을 신앙>, <진안의 마을 유래>, <진안 지역 돌탑>과 공저 <생태 전환시대 생태 시민성 교육>, <마을 생활>, <진안의 마을숲>, <전통마을의 이해>, <전통문화의 이해>, <전북 산간지역 공동체 신앙>, <전북 지역 마을 지킴이> 등을 펴냈다. 현재 전북 마령고 역사 교사, 진안문화원 부원장 등을 지내며 진안 문화와 농촌 교육에 대한 연구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

  • 문학·출판
  • 박현우
  • 2022.12.07 16:58

용담댐에 얽힌 수몰민들의 추억...황현화의 시 '용담댐'

"종이배처럼 신발들이/물 위로 둥둥 떠올랐지//댐 공사 시작하고/장대비 퍼붓던 날/물이 마루 앞까지 올라왔었지//동네 사람들 한자리에 모여/단체 사진 찍었네/표정들이 묘했지//분위기 눈치챈듯한/슬레이트집 기와집들도 사진 찍어/모두 담겨 있는 책/한 권씩 받았네//아버지의 아버지 그 전부터/맺어온 인연/가슴속에 묻었지//서울 아들네로/전주 아파트로/여기저기로/우리는 민들레 씨처럼 날아갔지//아스라이 눈길 더듬어/마을 있었던 그 자리/구름 담긴 맑은 물 넘실//눈물 빛/마음판에 새기고/추억들 녹여서/수많은 생명 살리겠노라/다짐 반짝이는 용담호"('용담댐' 전문) 용담댐이 만들어지면서 진안군 6개면 68개 마을이 물속에 잠겨 2864세대 1만 2616명의 이주민이 발생했다. 이들은 고향을 잃은 아픔을 안고 인근 도시로 뿔뿔이 흩어졌다. 수몰민들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고향 인근으로 하나둘 돌아오고 있다. 그중 한 명인 황현화(56) 시인. 그가 용담댐에 얽힌 이야기와 추억을 담아 시 '용담댐'을 썼다. 황 시인은 용담댐을 '감사하고 소중한 곳'이라고 표현했다. 사시사철 맑은 물이 넘실거리고 주변에 우거진 숲과도 완벽한 조화를 이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게 황 시인의 설명이다. 그는 "용담댐이 수몰되면서 30대 초반에 전주로 나갔다. 최근, 그러니까 50대 중반이 다 돼서야 다시 고향의 품에 안기게 됐다. 어릴 적 떠올려 보면 가뭄이 오면 작은 물조리개부터 살수차까지 동원해 곳곳에서 용담댐 물을 받아 썼다.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곳인지 모른다"며 "누군가는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아픔과 희생을 감수했지만, 용담댐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더욱더 편리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황 시인은 진안농협에서 퇴직했다. 지난 2021년 '문예사조'로 등단했다. 현재 진안문인협회 회원, 진안 문화의 집 기획·운영팀장을 맡고 있다.

  • 문학·출판
  • 박현우
  • 2022.12.0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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