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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삶 상상하고, 체험하고"

문화재아웃리치연구소가 올해 12월까지 문화재청과 전라북도, 임실군의 예산 지원을 받아 전북 민속문화재인 ‘이웅재고가’를 활용하는 고택 종갓집 활용 사업 ‘고택의 혼불! 생명으로 돌아오다’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프로그램은 작년에 ‘혼불의 생명, 콩깍지 속의 콩’으로 시작해 ‘이웅재고가’를 중심으로 전통생활문화를 체험하고, 최명희의 소설 ‘혼불’에 등장하는 ‘종가’의 모델이 되는 이웅재고가와 더불어 다른 혼불과 관련된 장소를 답사하는 문학기행 프로그램으로 기획됐다. 문화재청으로부터 우수상을 타기도 했다. 올해도 문화재아웃리치연구소는 두 팔 걷고 ‘이웅재고가’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웅재고가’에서 1500년대에 조선 태종의 차남인 효령대군의 증손 춘성정 이담손이 오수 둔덕마을에 입향해 터 잡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조선 왕실 문화가 지방에서 어떻게 양반문화와 교집합을 이루게 됐는가를 살펴보고, 문화사와 건축사적으로 가치 있는 고택의 구조와 특징에 대해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웅재고가’는 임실군 오수면 둔덕리 둔덕마을 안에 위치해 있다. 17세 종손의 이름을 따서 이웅재고가로 정했으며, 1977년 12월 31일에 전라북도 민속 자료 제12호로 지정됐다. 현재는 18세 종손인 이정평 씨가 관리 중이다. 한층 멋을 돋운 조선시대 삶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집이다. ‘고택의 혼불! 생명으로 돌아오다’ 프로그램은 종합형과 단일형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종합형 프로그램은 ‘먼 길, 달려온 그대, 여기 앉으시오’는 이웅재고가의 소유주 이정평 씨로부터 집안 내력에 대한 강의, 사랑채 모형 만들기 체험 및 이 씨 며느리들이 태교 당시 만들었던 배냇저고리 만들기와 집안의 간식거리 만들기 등의 체험활동으로 구성돼 있다. 단일형 프로그램으로는 이웅재고가의 한옥 모형을 통해 한옥 짓기를 체험하는 ‘사랑채 마루에 기대어’와 조선시대 여인들의 태교문화를 체험하는 ‘콩깍지 속의 콩’이 있다. 현재 종합형은 모집이 마감됐으며, 단일형은 모집 중에 있다. 참가 문의는 문화재아웃리치연구소 문화재활용사업단 홈페이지나 전화(063-243-3274)로 하면 된다.

  • 문화재·학술
  • 박현우
  • 2022.04.05 16:50

향교ㆍ서원 활용사업 '시동'..."어이~ 유생! 유생!"

문화재아웃리치연구소 문화재활용사업단이 오는 4월 16일부터 ‘2022 살아 숨 쉬는 향교ㆍ서원 활용사업’인 <어이~ 유생(儒生)!, 유생(乳生)!>을 임실향교에서 진행한다. 향교ㆍ서원 문화재 활용사업은 문화재청이 조선시대 지방 교육기관이었던 향교와 서원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인문정신을 계승해 이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전국의 각 시군에 있는 향교ㆍ서원의 순기능을 진정성 있게 해석하는 등 현대적인 기법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이에 따라 문화재아웃리치연구소도 <어이~ 유생(儒生)!, 유생(乳生)!>이라는 사업명으로 제안해 국고보조금을 지원받게 됐다. 향교의 진정성 있는 가치와 향교 주변의 지역재생을 통해 향교의 문턱을 낮추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안했다. <어이~ 유생(儒生)!, 유생(乳生)!>의 앞 ‘유생’은 선비 유생을 뜻하고, 뒤의 ‘유생’은 우유에서 생산되는 치즈라는 의미를 담아 재치 있는 사업명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이 사업은 인문학적 소양과 문화재를 이해하고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다양한 문화 체험 행사로 구성돼 있다. 임실향교 및 주변 일대, 영천서원, 신안서원 등에서 진행되는 사업이다. 종합형 프로그램인 <어이~ 유생! 유생!>에는 향교에서 예절과 임실의 역사 및 향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임실의 최강자를 선발하는 ‘열매가 있는 곳, 임실의 최강자 선발’과 도자기 타일에 임실의 고지도를 그려 임실 향교 골목을 꾸미는 ‘향교마을 어메니티’, 임실 치즈를 만들어 보는 ‘치즈 만들기 체험’과 신안서원, 주암서원, 영천서원 등을 답사하는 ‘향교와 서원 사이’ 등 4개의 활동이 포함돼 있다. 또 당일 프로그램인 ‘향교마을 어메니티’, ‘유생수다방’, ‘임실유생, 신안서원에 유학가다’ 등은 이미 신청이 마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향교마을 어메니티’는 임실 내 초ㆍ중학생을 대상으로, ‘유생수다방’은 임실 주부 및 다문화 가정 여성을 대상으로, ‘임실유생 신안서원에 유학가다’는 임실 향교 유생을 대상으로 모집한 결과 적극 신청으로 모집이 마감됐다. 현재 당일 프로그램은 신청이 어려우며, 종합형 프로그램은 모집 중에 있다. 프로그램 신청 문의는 문화재아웃리치연구소 전화(063-243-3274)로 문의하면 된다. 문화재아웃리치연구소 관계자는 “임실 향교ㆍ서원 활용사업은 앞으로 지역의 문화재 원형유지와 보존 관리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의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 문화재·학술
  • 박현우
  • 2022.03.29 17:33

'차세대 전승의 핵심' 국립무형유산원, 2022 국가무형문화재 우수 이수자 선정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원장 이경훈)이 올해 국가무형문화재 ‘우수 이수자’ 15명을 선정했다. 이는 지난 2019년부터 시작한 ‘우수 이수자 선정 및 역량 강화 사업’은 무형문화재 전승의 차세대 주역인 이수자 중 활동실적이 우수하고 각 종목별 전승 계획을 갖춘 이들을 선정해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사업이다. 국립무형유산원은 지난 12월부터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보유단체)의 추천을 받아 전승활동 계획서 검토 등을 통해 선발했다. 서도소리, 좌수영어방놀이, 석장, 하회별신굿 등 국가무형문화재 14개 종목에서 15명의 이수자가 선정됐다. 올해 선정된 이수자는 △좌수영어방놀이 이종화 △밀양백중놀이 송준호 △하회별신굿탈놀이 서봉교 △양주소놀이굿 박민준 △진도씻김굿 강은영 △기지시줄다리기 정석용 △서도소리(김광숙) 오세정 △가곡(김영기) 이아미 △가곡(조순자) 신용호 △판소리(송순섭) 박운종 △석장(이재순) 이백현 △번와장(이근복) 이주영 △갓일(강순자) 양윤희 △옹기장(정윤석) 정영균 △채상장(서신정) 김승우 등이다. 국립무형유산원은 앞으로 한국문화재재단과 함께 전승활동을 지원한다. 앞으로 ‘영문판 전수교육 교재 제작’, ‘초등 교육용 프로그램 연구’ 등 종목별로 전승 교육 교재 및 교구 개발, 고증 자료 채집, 전통기술의 현대화 기법 연구 등 다양한 주제로 전승활동을 수행할 예정이다. 우수 이수자로 선정되면 1년 동안 소정의 지원금과 전승활동 성과물의 완성도 제고를 위해 해당 종목 전문가로부터 개별 자문 상담 등의 지원을 받게 된다. 그동안 우수 사례로는 가야금 병창 악보 연구(가야금 산조 및 병창 최현미 이수자), 한글본 <뎡니의궤>로 보는 궁중의 일상식 연구 자료집 발간(조선왕조궁중음식 이소영 이수자) 등이 있다. 국립무형유산원 관계자는 “우수 이수자의 전승활동 성과물을 한국문화재재단 누리집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전승 환경의 미래 기반을 조성할 수 있도록 우수 이수자의 전승활동 성과물의 다양한 활용방법도 강구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박현우
  • 2022.03.21 17:03

완주 이서 초남이성지 진정성 회복 위한 조사 착수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가 완주 바우배기(초남이성지) 한국 최초 천주교 순교자 유골 발견지 현장에서 발굴 착수보고회를 개최하고, 초남이성지의 진정성 회복을 위한 학술발굴조사를 시작한다. 초남이성지는 호남 천주교 발원지인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의 옛 이름 ‘초남이’를 이르는 말이며, 발굴 현장은 전북 완주군 완주군 이서면 초남신기길로 16일 오후 2시 부터 착수보고회가 열린다. 이번 발굴조사는 초남이성지에 대한 중장기 학술조사의 하나로 2021년 확인된 한국 최초 순교자 윤지충 등의 유골 발견지역에 대한 추가 확장조사다. 조사는 바우배기 일원에 대한 추가 매장자 확인과 순교자들의 최초 매장지 추적을 위한 토양 표본 확보가 목적이다. 초남이성지는 2021년 9월 한국 최초 순교자인 윤지충의 유골과 유품이 확인됐으며, 해당 유골은 천주교 전주교구가 해부학적 감식과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등 과학적 방법을 동원하여 피장자의 외상 소견, 나이, 성별 등을 추정, 윤지충, 윤지헌, 권상연 순교자로 특정했다. 발견된 유골과 유품은 조선 후기 혼란한 정치·사회적 상황에서 서학으로 주목받던 천주교가 전파되는 과정에 발생한 박해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로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초남이성지는 순교자가 묻혀있었던 것으로 추정된 바우배기 일대를 포함하여 순교자 유항검 생가터 등 신해박해, 신유박해와 관련한 유적이 다수 존재하여 이전부터 조사·정비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신해박해는 조선최초의 박해, 신해진산사건이라고도 하며, 1791(정조 15년)에 윤지충과 권상연 등이 제사를 거부하고 부모의 신주를 불태운 사건으로 체포되어 사형당했다. 신유박해는 1801년(순조 1년)에 발생한 천주교 박해사건으로, 당시 남인이었던 이승훈, 권철신, 정약종, 중국인 신부 주문모 등이 사형에 처해지고 정약전, 정약용 등이 귀양형을 받은 사건으로 천주교도 약 100명이 처형되고 400명이 유배됐다. 이번 조사는 이러한 의견들을 반영하여 처음 시행되는 학술발굴로서,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초남이성지를 포함한 전북지역의 주요 종교유적에 대한 현황조사도 시행할 예정이다. 또한, 바우배기 순교자 매장지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면 순교자 유항검(柳恒儉·1756~1801)의 생가에 대한 중장기 발굴조사도 계획하고 있다.

  • 문화재·학술
  • 이강모
  • 2022.03.15 17:13

문화재청, 완주 갈동유적·완주 상운리 원상운 고분군 조사 착수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소장 유재은)가 전북지역 마한문화 성격을 규명하기 위해 완주군에 자리한 선사·고대 시대 중요 문화유적 2개소를 대상으로 발굴조사에 착수한다. 완주군은 만경강유역권에 자리한 다양한 문화유적이 밀집된 지역으로 다수의 청동유물이 출토된 완주 갈동유적·신풍유적 등과 다수의 분구묘가 밀집 분포하는 완주 상운리유적·수계리 유적 등을 통해 전북 마한문화의 핵심지역 중 하나로 평가받는 곳이다. 분구묘(墳丘墓)는 봉분을 먼저 만들고 매장시설을 나중에 만드는 무덤으로 가장자리에 도랑을 두른 특징이 있다.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이들 중요유적 중 초기철기 시대에 해당하는 완주 갈동유적을 통해 마한문화의 성립기반을 조사하고, 원삼국~삼국 시대에 해당하는 완주 상운리 원상운 고분군을 통해 마한문화의 전개과정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시굴조사와 발굴조사를 병행한다. 완주 갈동유적은 2003년·2007년 발굴조사된 초기철기 시대 토광묘 내에서 청동검과 청동꺽창의 거푸집, 잔무늬거울 등 청동기 제작기술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출토되었으며, 2019년에는 출토된 유물이 보물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번 조사는 시굴조사로 조사지점 주변 유적의 추가적인 분포 현황을 파악하여 발굴조사 구역 확정 등 앞으로의 조사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완주 상운리유적은 2003년~2006년의 발굴조사를 통해 30기의 분구묘와 163기의 매장시설이 발견된 원삼국 시대~삼국 시대의 대규모 묘역공간이 조성된 곳이다. 묘역의 규모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출토된 다수의 토기, 철제무기, 마구, 단야구, 구슬 등은 이 지역의 위세를 짐작하게 한다. 특히 다량 출토된 철기와 단야구는 철기 제작기술을 바탕으로 상운리유적 일대가 중심지역으로 성장하였음을 보여준다. 이번 발굴조사는 완주 상운리유적과 인접한 완주 상운리 원상운 고분군을 대상으로 한다. 연구소에서는 2021년 시굴조사를 통해 고분의 존재를 확인한 바 있으며 올해부터 이 일대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전북지역 고유 매장문화의 성격을 밝혀내고자 한다. 단야구(鍛冶具)는 금속제품을 만들기 위해 열을 가하고 두드리는 일련의 작업과정에 사용하는 도구로 망치, 집게, 모루 등이 있다. 발견된 이후 20년 만에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주도로 체계적인 학술조사를 진행하는 완주 갈동유적과 완주 상운리 원상운 고분군에 대한 조사는 올해 3월 중순경 착수해 6월 말까지 이루어질 예정이다. 연구소는 이번 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학술조사와 유적에 대한 구체적인 보존정비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앞으로도 전라북도에 산재한 문화유산의 체계적인 조사연구와 보존정비를 적극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 문화재·학술
  • 이강모
  • 2022.03.10 16:56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전북지역 선사·고대문화 관련 연구서 3종 발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소장 유재은)는 2021년에 추진한 전북지역 선사·고대문화 연구 성과를 모아 관련 연구서 3종을 발간했다. 연구서 3종은 ‘익산 호암리 암각유적 일원 유적 분포 현황조사 보고서’, ‘전북지역 마한문화-발전기편(고분)’, ‘전북 동부지역 삼국시대 관방유적 분포 현황조사 보고서’ 등이다. ‘익산 호암리 암각유적 일원 유적 분포 현황조사 보고서’는 익산 호암리 암각유적과 낭산산성 일원의 청동기부터 삼국시대까지의 중요 유적을 대상으로 시행한 분포 현황조사 결과를 정리한 보고서다. 유물산포지와 발굴조사 유적으로 구분해 총 59개소 유적의 현황조사 결과를 집성하고 시대별 유적의 현황과 특징에 대한 논고를 포함했다. 이와 함께 익산 호암리 암각유적의 3차원(3D) 스캔 도면과 일대의 고지형 분석 자료가 수록돼 있다. 이어 ‘전북지역 마한문화-발전기편(고분’은 전북지역 마한 문화의 성격을 밝히기 위해 원삼국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대표적인 분묘유적 총 71개소의 분포 현황과 출토 유물을 정리한 것이다. 분묘유적은 분구묘, 주구묘, 토광묘, 옹관묘 등으로 구분하고 함께 나온 출토유물의 현황과 도면을 집성했다. 이와 함께 분묘의 변화 과정과 출토 토기, 철제무기에 대한 연구 논고를 수록했다. ‘전북 동부지역 삼국시대 관방유적 분포 현황조사 보고서’는 전북 동부지역의 산악지대인 운봉고원과 진안고원에 분포하는 삼국시대 관방유적 총 31개소 등의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보고서를 발간한 것이다. 관방유적은 산성과 봉수로 구분해 시·군별 현황조사 결과를 수록하고 남강·섬진강·금강 등을 수계별로 관방유적에 대한 현황과 특징에 대한 논고를 담았다. 책자 3종은 국공립 도서관과 관련 연구기관 등에 배포되며, 문화재청 누리집과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누리집에서 볼 수 있다.

  • 문화재·학술
  • 박현우
  • 2022.03.06 16:41

문화재청, 문화재 방재의 날 맞아 한 달간 온라인 박람회 개최

문화재청은 문화재를 화재 등의 재해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고, 국민의 문화재 안전관리 의식을 높이기 위해 매년 2월 10일을 '문화재 방재의 날'로 지정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2월 10일 '문화재 방재의 날'을 맞이해 내달 10일까지 '2022년 문화재 재난 안전 온라인 박람회'(www.문화재방재의날.com)를 개최한다. 올해 '2022년 문화재 재난 안전 온라인 박람회'는 작년 문화재 방재의 날 기념으로 개최한 '문화재 재난 안전 분야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최우수 아이디어로 선정된 온라인 박람회 개최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마련된 행사다. 이번 온라인 박람회의 주요 내용은 문화재 재난 안전을 주제로 한 그림엽서•유튜브 공모전 수상작의 온라인 전시회, 문화재 현장에서 각종 재난으로부터 문화재 안전을 위해 힘쓴 유공자 표창, 문화재 정책 홍보영상(문화재 방재 홍보영상, 생활 속 문화재 안전 교육, 문화재 지킴이 시리즈, 어린이 문화재 안전 교육) 게시 등이다. 문화재청은 작년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초•중학생 연령대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소중한 문화재, 우리가 지켜요' 문화재 사랑 그림엽서 공모전을 개최했다. 총 360점의 출품작 중 총 11점을 수상작으로, 함께 개최한 유튜브 영상 공모전에서는 총 86점의 출품작 중 총 7점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최우수상은 그림엽서 분야에 신예원 학생의 <우리들이 지켜야 할 문화유산>, 영상 분야에 배유미 씨의 <문화재 안전을 지키는 수호자>가 받았다. 이어 문화재 재난 안전 문화 확산과 재난 예방 등에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으로 선도적 역할을 한 재난 안전 유공자(단체 및 개인)도 발표했다. 기관 부문에는 김제시청이, 민간 부문에는 한국소방안전원 조창식 대리, 한국전기안전공사 정인철 차장, 정용열 과장, 이인호 과장, 이진호 대리 등이, 공무원 부문에는 박연희 주무관(경기도 오산 문화예술과), 정용교 문화재 팀장(강원도 양양 문화체육과), 손지호 주무관(대구광역시 달성군 관광과) 등 18명이 선정됐다. 문화재청은 "박람회가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만큼, 국민 누구나 컴퓨터와 모바일을 통해 공모전의 수상작들을 시•공간 제약 없이 관람해 많은 국민이 문화재 재난 안전에 대한 관심과 공감할 수 있는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한편 문화재청은 문화재 방재의 날을 계기로 2월부터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국가 지정 문화재와 시•도 지정 문화재를 대상으로 해빙기 문화재 방재 분야 합동 점검을 펼치고, 문화재 현장 상황에 맞는 재난 대응 훈련을 시행할 예정이다. 앞으로도 문화재 재난에 대비해 사전예방 중심의 정책으로 각종 재난과 사고로부터 문화재를 안전하게 보호하고자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 문화재·학술
  • 박현우
  • 2022.02.13 17:15

전북가야, 본래 이름 찾았다

가야사 국정과제 추진을 위해 만든 신조어가 전북가야다. 전북 동부에서만 발견된 가야 봉화망에 그 근거를 두었다. 전북 남원시와 완주군·진안군·무주군·장수군·임실군·순창군, 충남 금산군이 여기에 해당된다. 다시 또 전북가야의 용어에는 국정과제에 국민들을 초대하기 위한 대중적이고 홍보적인 의미만 담겼음을 밝힌다. 우리나라 전통지리학의 지침서가 ‘산경표’이다. 순창군 순창읍 남산대에서 탄생한 신경준이 편찬했다. 이 책에 실린 백두대간은 전북가야의 보금자리였다. 한반도의 척추이자 자연생태계의 보고로 큰 사랑을 받았지만 전북가야의 품속이자 터전이었다. 백두대간 양쪽 운봉고원과 진안고원에 기반을 둔 가야세력이 가야 소국으로까지 발전했기 때문이다. 가야사 국정과제가 시작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운봉가야와 장수가야라는 임시 용어로 그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솔직히 전북가야의 가명(假名)들이다. 왜냐하면 워낙 발굴조사가 미진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전라북도의 예산 지원으로 그 실체가 명쾌하게 검증됐고, 가야 봉화 및 산성, 제철유적의 분포양상도 파악됐다. 모두 다 전북가야의 아이콘(icon)들이다. 백두대간 동쪽 운봉고원은 신선의 땅으로 회자된다. 그 의미에 걸맞게 가야 이야기도 차고 넘친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 동북아를 아우르는 당대 최고급 위세품을 거의 다 모았다. 가야 고총에서 나온 금동신발, 철제초두는 모든 가야 영역에서 한 점씩만 출토됐다. 중국 양나라에서 바다를 건너온 계수호와 청동거울도 역시 운봉가야 고총에서만 나왔다. 금강 최상류에 지역적인 기반을 둔 장수가야는 봉화 왕국이다. 주지하다시피 가야 봉화는 국가의 존재와 국가의 영역과 국가의 국력을 대변한다. 현재까지 복원된 가야 봉화로의 최종 종착지가 장수군 장계분지이다. 240여 기의 가야 고총이 장수군 일원에서 발견되어 고고학 자료로 장수가야의 존재를 확증했다. 엄밀히 말하면 장수가야는 ICT왕국이다. 예나 지금이나 국력의 원천은 철이다. 철광석을 녹여 철을 생산하던 제철유적은 포항제철과 그 의미가 똑같다. 전북 동부에 가야 봉화망을 구축하려면 반드시 국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전북가야의 영역에서 250여 개소의 제철유적이 발견되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아직은 전북가야와의 연관성이 검증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제철유적의 밀집도가 가장 높다. 가야 소국의 위치 비정은 역사고고학의 범주에 속한다. 문헌의 내용이 유적과 유물로 입증되면 학계의 논의가 시작되고, 이를 근거로 결론 도출도 가능하다. 전북 동부에서 축적된 고고학 자료를 문헌에 접목시켜 운봉가야를 기문국으로 장수가야를 반파국으로 비정했다. 당시 문헌에서 요구하는 대부분의 내용을 고고학 자료로 충족시켰다. 1500년 전 백제 무령왕은 가야로 본격 진출할 때 기문국의 복속을 선언했다. 반파국은 기문국을 지키기 위해 백제와 3년 전쟁을 불사했고, 신라와는 적대관계를 야기한 봉화 왕국이다. 중국, 일본 문헌에 한 묶음으로 기문국과 반파국이 등장한다. 전북가야를 탄생시킨 가야 소국들로 역동성과 다양성, 국제성으로 상징된다. 언제나 늘 국민들은 가야를 철의 왕국으로 복원해 달라고 열망한다. 모든 가야의 영역에서 가장 많은 제철유적이 전북 동부에서 발견됐기 때문에 지속적인 검증이 요망된다. 올해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등 가야고분군이 세계유산 등재도 염원한다. 전북 동부에 350여 기의 가야 고총과 120여 개소의 가야 봉화를 남긴 전북가야가 백두대간을 무대로 대도약하길 소망한다.

  • 문화재·학술
  • 기고
  • 2022.01.28 14:00

[최완규 교수의 '마한이야기'] 호서 지역의 마한

마한의 공간적 범위는 대체로 경기충청전라지역에 해당되는데, 각 지역마다 시간적 흐름에 따라 문화적 양상을 달리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백제의 정치적인 성장에 따라서 마한 영역의 축소를 의미하며, 결국 점진적으로 마한 정치체의 소멸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 하겠다. 중국의 전국시대 이후 정치적 변혁기에는 중국으로부터 많은 유이민들이 한반도로 들어오면서 새로운 물질문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 시기 충청지역 즉 호서지역에서는 마한의 보편적인 분구묘와 계통이 다른 주구토광묘가 축조되고 있어 호남지역의 마한문화와 다른 문화적 양상을 띠고 있다. 호서지역의 보령 관창리에서 발견된 주구묘(분구묘)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주구묘 유적으로서 학사적인 의미가 있다. 발굴보고서에 의하면 이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의 종류들이 송국리형 토기, 원형점토대토기, 두형토기, 흑색마연토기 등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청동기시대의 송국리문화와 초기철기시대의 문화 간에 상호 관련성을 가지며, 그 시기를 기원전 3〜2세기로 추정한 바 있다. 그러나 발견 당시 대부분 연구자들은 관창리유적의 주구에서 발견된 송국리 토기에 대해서 교란되었을 것이란 견해에서 그 시기를 3세기를 넘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최근 분구묘에서 점토대토기편들이 잇달아 발견되고 있어 그 시기를 청동기시대 송국리문화 단계까지 소급될 수 있다는 의견들이 개진되고 있다. 이후 이러한 주구묘는 마한의 보편적 묘제로서 대형 분구묘로 발전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한편 천안의 청당동유적에서는 주구묘와 같이 주구가 굴착된 토광묘가 조사되었는데, 역시 마한의 분묘로 이해되어 왔다. 이후 주구토광묘는 공주시와 연기군, 청주일대에서 그 발견 예가 증가하고 있다. 주구의 형태는 대부분 눈썹 형태로 경사의 위쪽에서 매장부 시설인 토광을 감싸고 있지만, 청주 송절동이나 공주 하봉리에서는 토광을 거의 두르듯이 감싼 사례가 발견되기도 한다. 한편 주구토광묘의 매장부인 토광은 주구에 비해 매우 깊게 굴착되어 있는데, 이는 주구묘의 매장부가 토광일지라도 분구 중에 위치하고 있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한 주구토광묘의 출토유물은 원저단경호와 심발형토기를 기본적인 셋트로 하지만, 장신구류인 청동제 곡봉형대구(曲棒形帶鉤)와 마형대구(馬形帶鉤), 그리고 유리제 구슬 등이 부장되기도 한다. 이 가운데 천안 청당동에서 출토된 두 종류의 청동대구(帶鉤)에 대한 분석결과 중국 북부지역에서 생산되는 청동임이 밝혀져 대외교섭의 근거로 보았다. 곡봉형대구는 중국 전국시대부터 서진시기까지 폭넓게 발견되고 있고, 한반도에서는 낙랑의 분묘에서 발견된다. 또한 호형(虎形)이나 마형대구는 청원 오창, 영천 어은동, 경주 사라리, 김해 양동리와 대성리 등의 목곽묘에서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그 공간적 범위를 통해 중국 북부 ⤍ 낙랑 ⤍ 호서지역 ⤍ 영남지역으로 전파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문화의 전파 루트나 유이민의 이동경로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삼국지」 위서 진한전의 기록을 보면 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있으며, 진(秦)의 고역을 피해 한국(韓國)으로 왔는데, 마한이 동쪽의 땅을 할애해 주었다라는 내용과 더불어 언어 역시 마한인과 다르며 진인(秦人)과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또한 「사기」와 「후한서」에서도 위만의 망명기사와 더불어 한과 예가 강성하여 군현통제가 불가해지자 많은 유이민이 한으로 건너갔다라는 기사를 통해 진한대를 거치면서 중국에서 많은 유이민의 이입은 물론 물질적 교류가 활발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 전국시대의 진국(秦國)에도 주구토광묘와 유사한 속성을 가지는 위구묘(圍溝墓)가 축조되고 있었다. 따라서 호서지방의 주구토광묘 축조집단의 뿌리는 진에 바탕을 두고 있었던 유이민과 깊은 관련성을 찾을 수 있다. 이와 같이 호서지방의 마한세력은 재지전통이 강한 주구묘 축조집단과 유이민집단이 어우러져 형성되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최완규(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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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25 20:26

전북도 "전북가야사 공론화 미흡했다"

속보=남원시 가야역사 바로세우기 시민연대(이하 남원가야 시민연대)가 전북가야사 육성 과정에서 관련 학회 예산 지출, 역사 규명 방식,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타당성 등을 두고 문제를 제기한 가운데, 전북도가 이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 미흡했다는 점을 인정했다.(2021년 12월 30일 5면) 그러면서 추후에 △공론화의 장 추가 마련 △문헌사료 검증‧보완 △정보공개 절차에 따른 학회 예산 공개 등을 약속했다. 도 문화유산과는 이달 중순 전북가야사 조사 성과와 미래전략 학술세미나 관련 민원회신을 통해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 추진의 현황과 쟁점토론회 등 관련 토론회를 3차례 열며 공론화를 추진했으나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며 향후 관련 기관 단체 등과 협의해 공론화의 장이 마련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문헌사료 <일본서기>를 활용해서 전북 가야사를 규명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행정에서 역사와 관련된 자료를 활용할 경우, 학계에서 나오는 보편적인 견해를 사용하고 있다면서도 향후 (남원가야 시민연대)의 의견을 바탕으로 학계 자문‧검토를 거쳐 역사가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답변했다. 예산집행 현황 공개에 대해서는 지난해 12월 31일부터 대행사업기관에서 추진되고, 올 1월말까지 사업 완료 보고서가 제출될 예정이라며 이후 정보공개 요청 시 절차에 따라 공개하겠다고 명시했다. 지난해 12월 20일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열린 전북 가야사 조사 성과와 미래전략 학술발표회에서 한 시민이 질문을 시도할 때 폭언과 폭행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점에 대해서는 본 건과 관련해 경찰에서 조사 중에 있다. 조사 결과에 따라 처리하겠다며 당일 불편했던 점에 대해서는 향후 학술대회 추진시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앞서 남원가야 시민연대는 지난달 29일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뒤,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 세계유산등재과정에 대해 공론화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남원가야 시민연대는 이날 "가야고분군 세계문화유산 신청과 관련한 공문 서류 한 장도 공개하지 않는 문재인 정부와 문화재청, 가야고분군 등재추진단과 7개 자치단체, 전북도‧경북도‧경남도 세 곳을 향해 엄중 경고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남원가야 시민연대는 "이미 올해 8월부터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남원가야고분군 국책사업의 문제점이 전국언론에 보도됐다"며 "그러나 가야고분군 세계문화유산 등재추진단에서는 관련 회의조차 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전북도가 주최하고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가 주관했던 학술대회에서는 행사장 출입을 제한했고, 시민의 자료집 요구도 여분이 없다고 거절했다"며 "추운 겨울 전주박물관 밖에서 6시간을 기다린 시민들이 학술행사를 마치고 나오는 발제자 곽장근 교수에게 공개 질문하려는 상황도 제지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발표자이며 연구책임자인 당사자에게 질문하려는 시민의 권리를 가로막고, 당사자도 아닌 제3자들이 개입하고 물리력을 행사하는 행위는 심각한 실정법 위반"이라고 꼬집었다. 또 "5000만원을 연 학술행사는 전북도민을 기망하는 학술대회로 추락했다"며 "전북도민의 혈세가 사용된 내역을 자세히 공개한 뒤, 모든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론화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본서기>에 나온 기문국 명칭을 삭제하지 않는 이유를 남원시민에게 해명한 뒤, 원점부터 재검토해서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해야 한다"며 "세계문화유산 신청은 매년 제출, 철회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 문화재·학술
  • 김세희
  • 2022.01.23 18:52

[최완규 교수의 '마한 이야기'] –마한역사 기록관 '나주 복암리 3호분' (상)

최완규(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 나주 복암리 3호분은 몇 년전에 KBS의 역사관련 다큐프로그램에서 “아파트형 고분”으로 소개되어 많은 관심을 끈 바 있다. 그것은 하나의 분구(墳丘) 내에 41기의 매장(埋葬)시설들이 마치 아파트처럼 중층 구조로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특징을 잘 묘사한 제목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복암리 3호분은 마한 분구묘의 속성 가운데 가장 마한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곧 혈연을 기반으로 하나의 분구 내에 무려 300〜400년의 시간 폭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매장이 추가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특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매장부의 구조가 변하고 있는 점이 잘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마한의 정치 사회문화를 살펴 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유적으로서 가히 ‘마한역사 기록관’ 또는 ‘마한 박물관’이라 불릴 수 있을 정도이다. 나주 복암리 고분군은 주변의 경지정리가 되기 이전에는 7기가 자리잡고 있어서 七造山이라 불렸으나 경지정리 과정에서 3기는 훼손되고 현재는 4기만이 남아 있다. 이와 같이 대형 분구묘가 저평한 구릉에 옹기종기 자리를 잡고 있어서 마치 산으로 보였던 것으로 이를 인위적으로 조성된 산이라는 의미에서 조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3호분은 1996년에서 1998년에 걸쳐 전남대학교와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해서 전면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 졌는데, 조사가 한창 이루어지던 시점인 1998년 2월에 유적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사적 404호로 지정되었다. 이 고분의 분구 규모는 동서 36m〜38m, 남북 37m〜42m, 높이는 6m 정도이며, 평면 형태는 방대형을 이루고 있다. 분구의 하단 주위에는 주구가 돌려져 있는데, 경작으로 인하여 일부가 훼손된 상태였다. 이와 같이 거대한 분구를 갖추게 된 것은 오랜 기간 매장이 이루어지면서 평면적으로 확장되고 상하로 중첩이 이루어진 결과로 판단된다. 곧 조사 결과에서 확인된 분구 조성이전의 선행기와 분구 조성은 2차에 걸쳐 이루어진 3단계를 거친 것으로 층서관계를 통해 파악되었다. 또한 각 단계마다 매장부의 구조에 따라 다시 2〜3단계로 세부적인 분기 설정이 가능하였다. 선행기는 방대형 분구 조성 이전에 사다리 모양의 분구묘가 주구를 통해 확인되는데, 매장 시설로는 옹관과 목관이 사용되었다. 방대형 분구 조성 1기는 선행기의 분구를 조정 확대하여 축조한 것으로 기존의 분구형태를 유지하면서 주구 및 옹관의 사이의 공백을 메웠다. 1기 분구 조성과 함께 안치된 매장시설은 96석실, 수혈식석곽, 옹관 등이다. 분구 조성 2기에는 방대형 분구 완성이후, 성토층을 되파기하여 묘광을 설치한 후 옹관, 횡혈식석실, 횡구식석실, 석곽옹관 등 다양한 매장시설이 보이고 있다. 나주 복암리 3호분은 분구 축조과정 및 매장시설에서 마한 분구묘의 속성을 매우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성격을 규명함으로서 마한의 정치와 사회문화의 변화를 추적하는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 문화재·학술
  • 기고
  • 2022.01.19 11:36

"후삼국 시대 선도한 후백제 재평가 시급"

후백제의 역사적 위상을 재정립하고 문화권 정비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토론회가 개최됐다. 더불어민주당 김성주(전주병)‧안호영(완주진안무주장수)‧김종민(논산)의원과 국민의힘 임이자(상주 문경) 의원이 주최하고, 후백제학회(회장 송화섭)가 주관하는 '역사문화권 지정을 위한 후백제 국회 토론회'가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지역 학자들은 후백제의 위상을 조명했다. 이어 후백제 역사문화권이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이하 역사문화권 정비법)에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문화재청은 이를 두고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토론을 주최한 의원들을 비롯, 송하진 전북도지사, 후백제문화권 지방정부협의회 소속 김승수 전주시장, 박성일 완주군수, 전춘성 진안군수, 고윤환 문경시장, 강영석 상주시장 등이 참석했다. △후백제 위상=이날 주제발표에 나섰던 학자들은 한국 고대사에서 후백제가 차지하는 위상을 조명했다.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지역주의를 뛰어넘고 기회와 참여의 폭을 넓힌 사회로 넘어가는 사회가 후삼국시대라며 이 시대를 선도한 국가가 후백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진훤(견훤)은 농민 출신이었으며 지도층은 신라에서 정치 참여에 한계가 있었던 6두품과 지역 토호 세력들이었다면서 백성들의 생활향상에도 힘썼는데 둔전이나 관개를 통해 농업경제 증진에 힘을 쏟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라 말보다 진전된 국가로 평가했다. 정상기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실장은 고고‧미술사적 자료를 통해 후백제문화권의 범주를 살폈다. 정 실장은 산성과 청자 가마터, 청자, 사찰유적 등을 통해 살펴볼 때 후백제의 범주는 광주, 전남‧전북, 경남 서부, 경북 북부, 충남 홍성 등이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진정환 국립익산박물관 학예실장은 역사문화권정비법에서 정의하는 역사문화권은 문헌기록과 유적‧유물을 통해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발전시켜 온 권역이라며 후백제는 법에서 정의한 역사문화권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새롭게 발굴된 후백제 유물‧유적=이날 발표에서는 완주군이 후백제 문화유적 15곳을 확인하고 발굴 조사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박성일 완주군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후백제 문화유산 현황 파악을 위한 전수조사 결과 봉림사지와 용계산성을 포함한 15개소의 유적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봉림사지는 후백제 시대 절터, 용계산성은 운주면 용계천을 따라 남쪽으로 4㎞가량 뻗은 석성이다. 특히 3차례 발굴 조사를 통해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봉림사지의 실체를 최초로 실증했다며 올해는 용계산성에 대한 발굴조사를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후백제 문화권 역사문화권정비법에 포함 여건 충분=문화재청 이재필 고도보존정책과장과 군산대 곽장근 교수, 문경시청 엄원식 문화예술과장, (사)채미옥 미래세상 이사가 참여한 토론에서는 후백제 역사권이 역사문화권 정비법에 추가 포함될 여건이 충분한 것으로 논의됐다. 이재필 과장은 역사문화권 정비법 개정안과 관련한 지역의 요구를 문화재청은 최대한 수용하는 정책방향"이라며 "이런 방향성에 의해 후백제 역사문화권이 개정안 에 포함되는 방향을 적극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에 예맥과 중원 등이 들어오면서 너무 많은 문화권이 난립할 우려가 있다"며 "태봉과 진안, 변한문화권에 대한 요구도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이로 인해 "문화재청은 올해 전국적으로 역사문화권 기초 현황조사를 실시한다"며 "전반적인 조사를 통해 원삼국부터 후백제까지 아우르는 역사적 개념을 정립한 뒤, 법안 포함여뷰를 적극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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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세희
  • 2022.01.18 18:32

[최완규 교수의 '마한이야기'] 마한역사 기록관 '나주 복암리 3호분'(하)

나주 복암리 3호분이 영산강유역의 분구묘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이유는 하나의 분구 내에 400여년 정도 지속적으로 매장행위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매장부의 유형 변화를 통해 마한의 정치와 사회문화를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선 대형분구 축조 이전의 3세기 중엽에서 5세기 중엽에 이르는 선행기에는 난형(卵形) 몸통의 목이 좁은 형태에서 U자형 대형옹관으로 변화된 옹관이 주요 매장부로 채용되고 있다. 이 시기는 영산강유역의 연맹체 세력들이 백제의 영향력에 압박을 받으면서 새롭게 결집성장하는 단계로 파악할 수 있다. Ⅰ기는 5세기 후엽에서 6세기 전엽에 해당하는데, 선행기의 분구를 조정확대하여 방대형 분구를 축조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새로이 출현하는 96석실은 공주지역의 백제 석실분과는 입지, 평면형태, 축조방법과 구조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일본 구주지역과 교섭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소위 영산강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석실 내에 시기차를 두고 안치된 4기의 옹관의 존재는 전통적인 옹관과 외래의 석실이 결합된 양상으로서, 이는 옹관을 주요 매장시설로 이용하던 마한세력이 석실분을 자발적으로 수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당시 한반도 정세를 보면 백제는 고구려의 남진정책으로 인하여 상당한 어려움을 겪던 시기라 할 수 있는데, 이를 틈타 영산강유역의 마한 세력이 대외교섭을 통한 독자적 발전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석실을 받아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96석실 내의 2호 옹관에서 출토된 금은장삼엽환두도(金銀裝三葉環頭刀)를 통해 피장자의 신분이 지배자 계층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특히 4호 옹관은 영산강유역의 대형 옹관과 달리 생활용기로 사용되던 회청색 경질의 호형토기이며, 4기의 옹관 가운데 가장 늦게 안치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 옹관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것과 통하고 있어 Ⅰ기의 마지막 단계로서 백제의 지방통치와 관련된 단서가 되고 있다. Ⅱ기에는 본격적으로 백제계의 횡혈식석실분을 매장부로 채용하는 단계인데, 6세기 중엽에서 7세기 초에 해당한다. 이 단계에는 석실이 정형화소형화되는 사비유형이 주를 이루지만, 긴 묘도와 연도의 시설에서 전형적인 사비유형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미 채택하고 있었던 영산강식 석실의 속성이 가미된 것이라 할 것이다. 그것은 곧 복암리 3호분 축조집단이 사비유형의 석실분을 자발적으로 수용한 증거가 된다. 이 단계의 사비유형 5호 석실에서는 관모틀과 은제관식이 출토되었는데, 이러한 유물은 백제 고지에서 폭넓게 발견되고 있다. 은제관식은 중국 역사서인 「周書」에 보면 백제의 16관등 가운데 6품인 나솔(奈率) 이상의 관인이 착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은제관식을 착장하고 있었던 피장자는 복암리 3호분 축조집단에서 배출되었던 중앙관리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것은 백제가 이 지역을 완전하게 편입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영산강유역의 마한계 집단도 백제 중앙관리로 진출하여 지속적으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같이 나주 복암리 3호분은 3세기부터 7세기 초까지 영산강 유역의 마한 연맹체세력들이 변화에 어떻게 적응해갔는지 보여주는 기록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최완규(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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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18 17:37

지역 학자들 후백제 역사문화권 지정 위해 머리 맞댄다

전북 지역 역사학자들을 중심으로 후백제 역사문화권 지정 방안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열린다.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국회의원은(전주병)은 18일 국회 의원회관 2층 제1세미나실에서 후백제 역사문화권 지정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한다. 이번 토론회는 후백제가 한국사에서 가지는 위상을 확인하고 역사문화권 지정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토론회는 송화섭 후백제학회장(중앙대 교수)이 좌장을 맡아 진행한다.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 교수가 '한국고대사에서 후백제사의 의미', 정상기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이 '고고 미술사적 자료로 보는 후백제 문화권의 범주', 진정환 국립익산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이 '후백제 문화권 정립과 추진 방향' 에 대해 주제발표를 한다. 자유토론에는 이재필 문화재청 고도보존정책과장, 채미옥 (사)연구그룹 미래세상 이사, 곽장근 군산대 교수, 엄원식 문경시청 문화예술과장이 참여한다. 김성주 의원은 후백제는 고유의 통치이념과 체제, 문화를 발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후삼국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국가로 인식돼 역사적 가치규명과 보존 등에 소홀했다며 '후백제 역사문화권 지정과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에 후백제를 추가하는 것은 후삼국 시대의 역사적 의미를 복원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는 유튜브(후백제학회 검색)로 생중계된다. 한편 토론회는 후백제 관련 지역의 김성주 의원(전주병), 안호영 의원(완주진안무주장수), 김종민 의원(충남 논산), 임이자 의원(경북 상주문경)이 공동 주최했고, 전국시도지사협의회장인 송하진 전북도지사와 후백제문화권 지방정부협의회 소속 김승수 전주시장, 박성일 완주군수, 전춘성 진안군수, 고윤환 문경시장, 강영석 상주시장이 함께 했다.

  • 문화재·학술
  • 김세희
  • 2022.01.17 19:21

[최완규 교수의 '마한 이야기'] 마한역사 기록관 '나주 복암리 3호분' (상)

나주 복암리 3호분은 몇 년전에 KBS의 역사관련 다큐프로그램에서 아파트형 고분으로 소개되어 많은 관심을 끈 바 있다. 그것은 하나의 분구(墳丘) 내에 41기의 매장(埋葬)시설들이 마치 아파트처럼 중층 구조로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특징을 잘 묘사한 제목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복암리 3호분은 마한 분구묘의 속성 가운데 가장 마한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곧 혈연을 기반으로 하나의 분구 내에 무려 300〜400년의 시간 폭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매장이 추가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특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매장부의 구조가 변하고 있는 점이 잘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마한의 정치 사회문화를 살펴 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유적으로서 가히 마한역사 기록관 또는 마한 박물관이라 불릴 수 있을 정도이다. 나주 복암리 고분군은 주변의 경지정리가 되기 이전에는 7기가 자리잡고 있어서 七造山이라 불렸으나 경지정리 과정에서 3기는 훼손되고 현재는 4기만이 남아 있다. 이와 같이 대형 분구묘가 저평한 구릉에 옹기종기 자리를 잡고 있어서 마치 산으로 보였던 것으로 이를 인위적으로 조성된 산이라는 의미에서 조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3호분은 1996년에서 1998년에 걸쳐 전남대학교와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해서 전면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 졌는데, 조사가 한창 이루어지던 시점인 1998년 2월에 유적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사적 404호로 지정되었다. 이 고분의 분구 규모는 동서 36m〜38m, 남북 37m〜42m, 높이는 6m 정도이며, 평면 형태는 방대형을 이루고 있다. 분구의 하단 주위에는 주구가 돌려져 있는데, 경작으로 인하여 일부가 훼손된 상태였다. 이와 같이 거대한 분구를 갖추게 된 것은 오랜 기간 매장이 이루어지면서 평면적으로 확장되고 상하로 중첩이 이루어진 결과로 판단된다. 곧 조사 결과에서 확인된 분구 조성이전의 선행기와 분구 조성은 2차에 걸쳐 이루어진 3단계를 거친 것으로 층서관계를 통해 파악되었다. 또한 각 단계마다 매장부의 구조에 따라 다시 2〜3단계로 세부적인 분기 설정이 가능하였다. 선행기는 방대형 분구 조성 이전에 사다리 모양의 분구묘가 주구를 통해 확인되는데, 매장 시설로는 옹관과 목관이 사용되었다. 방대형 분구 조성 1기는 선행기의 분구를 조정 확대하여 축조한 것으로 기존의 분구형태를 유지하면서 주구 및 옹관의 사이의 공백을 메웠다. 1기 분구 조성과 함께 안치된 매장시설은 96석실, 수혈식석곽, 옹관 등이다. 분구 조성 2기에는 방대형 분구 완성이후, 성토층을 되파기하여 묘광을 설치한 후 옹관, 횡혈식석실, 횡구식석실, 석곽옹관 등 다양한 매장시설이 보이고 있다. 나주 복암리 3호분은 분구 축조과정 및 매장시설에서 마한 분구묘의 속성을 매우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성격을 규명함으로서 마한의 정치와 사회문화의 변화를 추적하는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최완규(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

  • 문화재·학술
  • 기고
  • 2022.01.11 16:49

[전북 마한역사문화권 포함…과제는](하) 관련분야 연구자 육성, 발굴 활성화

각종 문헌사료와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전북에 여러 마한 소국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확인되지만 소국의 규모와 위치, 전북 마한 중심지설을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각 문헌사료에 나온 기록이 적은데다 유물유적 역시 발굴단계이기 때문이다. 근거가 적은 이유로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관련법 통과로 전북 마한사를 복원하는 데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 만큼 여러 선행과제가 제시되고 있다. 유물유적의 발굴과 지표로 확인된 유적의 보존관리, 학술연구, 관련분야 연구자 육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마한 54개 소국가운데 전북에 분포했다는 20개 소국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마한소국을 연구했던 역사학자 정인보(전 연희전문대 교수)‧이병도(전 서울대 교수)‧천관우(전 동아일보 주필)‧박순발(충남대 교수)도 논문에서 전북 내 소국의 위치에 대해 다른 견해를 드러내고 있다. 최완규 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은 고창에 존재했던 모로비리국과 김제 벽비리국, 익산 함라 일대의 감해국 등 9곳은 어느 정도 의견 접근이 이뤄졌다면서도 나머지 11곳은 학자마다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문헌자료 분석의 한계를 실감하게 한다고 부연했다. 전북에 마한 세력만 존재했을 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20개 소국의 존재를 전부 마한세력으로 지칭할 수 없다는 것이다. 권오영 서울대 교수는 연구 논문을 통해 마한을 구성한 여러 정치체가 전라도 지역에 존재했던 것은 분명하다며 다만 이 지역에 마한이라는 이름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종족도 많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권 교수가 <삼국지>, <삼국사기>, <송서>, <진서> 등 문헌사료를 비교연구하면서 분석한 내용이다. 그는 특히 <송서>에 모한(慕韓)이 있는데 <삼국지>, <삼국사기>, <진서>에 나온 마한(馬韓)과는 다른 존재라며 백제가 고대국가로 발돋움한 5세기~6세기 전반까지 존재했던 별개의 정치세력이라고 설명했다. 김승옥 전북대 교수는 출토된 유물만으로 마한 소국의 존재를 단정지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마한 등 여러 고대문화의 정체성이 주거지나 무덤에서 발견된 한두 가지 유물로 규정될 수 없다며 주거지와 무덤, 성곽, 수혈, 패총 등 모든 유구의 특질과 출토된 유물에 대한 과학적 해부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헌사료 <제왕운기>와 <고려사>는 고조선 준왕이 위만에 패한 뒤 내려온 남쪽 지역을 익산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이를 두고 역사적 사실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박대재 고려대 교수는 관련 연구를 통해 준왕이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기록은 후대 역사가들에 의해 윤색된 기록으로 분석하고 있다. 박 교수는 중국 문헌 <삼국지>에 앞서 쓰인 사서에도 준왕이 정착된 지역이 다르게 나오고 있다면서 게다가 위만조선 멸망 이후 남쪽으로 내려온 유민들은 자신들의 계보를 준왕과 결부시키는 동종 의식을 갖고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이에 따라 마한이 강성해지기 시작한 2세기 후반 남하한 조선계 유민집단이 준왕과 가계를 연결시켰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마한사 관련 유물유적 발굴을 활발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마한사를 정확하게 규명위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표조사로 확인된 유물유적을 보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최 이사장은 혁신도시와 만경강 일대에서 지표조사로 확인된 유물유적의 경우 표식조차 없이 방치되는 경우가 있다며 이들을 보관할 수 있는 박물관이나 별도의 시설을 만드는 등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마한소국과 관련에서는 익산에 3~4세기 이후 존재한 것으로 보이는 건마국의 실체를 규명해야 한다고 했다. 건마국이 익산이라는 전제로 다른 지역과 뚜렷이 구분되는 자료를 발굴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련분야 연구자 육성이 필요하다고도 조언했다. 마한과 관련된 문헌사료를 분석하고 고고학적 유물을 검증하는 학자들이다. 최 이사장은 현재 마한사를 전공하는 학자가 적다며 지역 대학에서 관련분야 연구자를 육성하기 위한 체계를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김세희
  • 2022.01.06 19:15

[전북 마한역사문화권 포함…과제는] (상) 마한사 기록과 발굴 현황

지난달 31일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이하 역사문화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로 인해 전북은 전남에 이어 마한역사문화권의 범주에 포함됐고, 전북 마한사를 보존‧관리‧발굴‧복원하는 데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마한사를 검증하는 역사연구도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전북 마한역사문화권에 대한 이론과 쟁점, 과제를 살펴본다. △문헌 기록과 유물‧유적=마한과 관련된 기록은 <고려사>, <제왕운기>, <동국통감>, <동사강목>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 문헌사료인 <삼국지>와 <후한서>, 일본 사료인 <일본서기>에도 등장한다. 이들 사료에는 (고)조선왕 준(準)이 위만에 패한 뒤 남쪽으로 내려와 마한을 정복하고, 스스로 한왕에 올랐다고 나와 있다. 특히 <제왕운기>와 <고려사>는 준왕이 내려온 지역을 금마군(익산)으로 지목하고 있다. 마한의 정치‧사회적 규모도 엿볼 수 있다. <삼국지>에 나온 만여가(萬餘家)로 구성됐다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학자들은 이를 두고 상당히 큰 규모의 소국이 존재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최완규 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은 관련 연구를 통해 문헌사료와 군집된 유적군과 비교해보면 백제로 영역화 되기 이전, 강력한 세력을 가진 정치‧사회적 집단이 존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관련 유물‧유적의 발굴도 지속되고 있다. 최근 만경강 이남과 황방산 일대에는 대형 군집묘 구상유구(U자 모양 수로)가 발견됐다. 익산 영등동과 율촌리에서는 마한 초기 문화권을 보여주는 점토대토기들이 다량으로 묻힌 주구묘와 분구묘가 잇달아 발굴됐다. 김승옥 전북대 교수는 관련 연구를 통해 국읍을 중심으로 상당한 규모의 인구가 밀집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전북 지역 마한소국 규모와 존속 시기=마한소국을 연구한 역사학자 정인보(전 연희전문대 교수)‧이병도(전 서울대 교수)‧천관우(전 동아일보 주필)‧박순발(충남대 교수)의 견해를 종합하면, 마한에 속한 소국 54곳 중 20곳이 전북에 위치한다. 이들은 군산과 익산, 김제, 부안, 정읍, 고창, 저주, 완주, 진안, 순창, 임실, 남원 등에 분포돼 있다. 문헌사료와 고분, 토기에서 나타난 공통적인 특징을 바탕으로 도출한 견해다. 이들 소국은 기원전 3세기 말기원 후 4세기 중엽까지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 최 이사장은 "각종 문헌사료를 보면 백제 근초고왕 24년(369년)에 침미다례(忱彌多禮)비리벽중포미지반고사읍(比利辟中布彌支半古四邑)을 복속했다고 나온다"며 "침미다례는 해남과 강진, 고흥, 비리벽중포미지반고사읍은 전주, 부안, 김제, 정읍, 태인에 존재한 소국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전북에 있는 마한소국들은 4세기 중엽 백제에 복속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주장했다.

  • 문화재·학술
  • 김세희
  • 2022.01.04 19:02

장수군 장계면 삼봉리 봉화터에서 가야산성 확인

장수군은 장계면에 위치한 삼봉리 봉화터 발굴조사를 통해 가야산성을 확인했다고 30일 밝혔다. 장수군은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의 허가를 받아 군산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소장 곽장근)와 함께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장수 삼봉리 산성이 그 당시 장수가야에 의해 축조운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30일 밝혔다. 이번 발굴조사는 현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된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전북도와 장수군의 지원을 통해 이뤄졌으며, 지난 21일에는 장수 삼봉리 산성의 발굴조사 성과를 논의하기 위해 자문위원회의도 열렸다. 회의에서 관련 전문가들은 장수 삼봉리 산성의 입지와 형태성벽의 축조방법이 최근 영남지역에서 발견된 가야산성과 유사하고, 산성에서 적지 않은 가야토기가 출토돼 6세기 전반 이전에 장수지역 가야세력에 의해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가야 멸망 이후의 6세기 후반에는 신라가 산성을 장악했으며, 그 과정에서 집수시설이 운영된 것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군은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장수 삼봉리 산성과 장수에 존재했던 가야와의 관련성이 보다 명확하게 확인돼 향후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가야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이번 장수가야 발굴 조사를 통해 장수가야가 어떻게 성장하고 소멸했는지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많은 분들이 장수가야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도록 문화재 발굴조사를 적극적으로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이재진
  • 2021.12.30 19:16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