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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지역 임진왜란사 정리 필요성 대두

전북지역 임진왜란사 정리의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다. 임진왜란 시기, 전북지역 관군과 의병이 지역뿐만 아니라 경기도, 경상도 등 전국적으로도 파견돼서 국가를 지켜내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연구 인력과 자료 부족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남에서는 최근 호남 의병을 기리기 위해 남도 의병역사 박물관을 건립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이에 전북에서도 체계적인 임진왜란사 연구고증작업에 돌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북 역사학계 등에 따르면, 1592년 있었던 웅치(진안과 전주사이에 있던 고개)전투와 이치(금산 서평)전투는 조선이 왜군을 방어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최대의 곡창지대로 후방 병참기지 역할을 해오던 전라도를 지켜냈기 때문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이듬해 사헌부 지평 현덕승에게 국가군량을 호남에 의지했으니, 만약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國家軍儲, 皆靠湖南, 若無湖南, 是無國家 국가군저, 개고호남, 약무호남, 시무국가)며 전쟁의 정황을 전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또 전북의 관군과 의병은 많은 지역에서 전투를 수행했다. 1593년 경기도 행주산성을 막아낸 행주대첩에서도 전북 관군이 활약했다. 전라도도절제사로 이치전투를 이끌었던 권율은 전쟁이 끝난 뒤, 군사를 이끌고 북상해 병력 1만여 명을 행주산성에 집결시켰다. 경상도 지역의 왜군을 막기 위해서도 파견됐다. 국방대학교 노영구 군사전략학과 교수는 전라도를 방어하는 데 성공한 뒤, 경상도 지역에 증원되는 왜군을 감당해야만 했다며 전북은 향토방어라는 관점도 있지만 국가를 수호하는 군대의 역할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북은 웅치, 이치 등 일부지역 전투를 제외하고 종합적인 연구와 자료 정리가 미비한 상황이다. 정유재란 시기 연구는 공백 상태이며, 일부 의병을 두고는 진위논란까지 빚어지는 상황이다. 반면 다른 지역에서는 1990년대부터 임진왜란사 자료 정리와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돼왔다. 경북에서는 <경북의병사>(1990년), <대구지역 임진란사>(2017), <경북지역 임진란사>(2018)가, 전남에서는 <호남지방임진왜란사료집>(1990)이 발간됐다. 전남도는 지난 9일 2024년까지 440억원을 들여 나주시 공산면 신곡리 일대 36만㎡에 건물 연면적 8300㎡규모로 남도 의병역사 박물관을 건립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도는 의병관련조사연구, 전시교육, 교류선양 등 활동에 필요한 유물 수집에 나섰다. 이런 상황을 두고 전북대학교 한문종 사학과 교수는 경상도나 전라남도 같은 경우 임진왜란 관련 자료 수집이 진행되고 있으며, 개별가문에서 문집들을 간행하기도 한다며 문집의 진위여부를 떠나 연구에 기여하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노영구 교수는 연구인력이 경상도에 많은 영향도 있다며 이들 중심으로 임진왜란사 자료정리와 연구가 이뤄지다보니 전쟁 자체가 향토방어로 각인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전라도 군인이 경상도 지역에서 이동해서 싸운 전투를 두고 경상도 임진왜란사로 기록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북에서도 체계적인 임진왜란사 정리와 고증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관찬사찬기록, 각 문중 소장 자료, 일본중국의 고문서 등을 수집한 뒤, 연구를 거쳐 학술총서와 자료집을 발간해야 한다는 게 도내 역사학자들의 설명이다. 한문종 교수는 황진, 채홍국, 김제민 등 전북 의병장 및 문무관, 최호, 송상현 등 타 지역 활동 인물, 권율, 이복남 등 다른 지역 출신이 전북에서 활동한 사례 등 정리해야 할 부분이 많다며임진왜란 당시 전북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문화재·학술
  • 김세희
  • 2021.03.14 16:57

“후백제성 동고산성 정비계획 수립해야”

후백제 성터유적으로 꼽히는 동고산성에 대한 고고학적인 조사를 실사하는 과정에서 정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동고산성은 1990년~2014년까지 7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진행됐지만, 발굴한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기 위한 정비계획은 수립되지 않은 상태다. 문화재의 상태에 따라 정비계획을 병행하면서 복원에 돌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북대학교 남해경 건축공학과 교수는 11일 전주시가 개최한 후백제전주성(동고산성) 국가지정 승격 학술대회에서 동고산성에 대한 보존과 활용을 전체적으로 기획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남 교수는 동고산성 정비는 성벽, 성 내부 시설, 문지 등의 보존과 문화재 안내판, 이정표, 편의시설 등 설치가 해당된다며 세분화한 계획을 제시했다. 성벽은 상태가 좋지 않은 지점부터 조사한 후 보수를 실시하고, 벽을 훼손시킬 우려가 있는 주면의 수목은 정리해야 한다는 게 남 교수의 설명이다. 성 내부에 있는 소나무 등 교목을 두고는 이식을, 경작지는 정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유적 탐방로에 위치한 민묘의 경우 이장을 주문했다. 남 교수는 정비를 전제로 보수복원경관유지관리재정계획을 순차적으로 세워야 한다고 정리했다. 동고산성이 후백제 도성의 피난성 역할을 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주 건물지가 궁전이었다는 고(故) 전영래 교수의 이론과 다른 관점이다. 전주문화유산연구원 강원종 학예실장은 성벽, 성문, 건물지 등지에서 여러 차례 개축과정이 보인다며 이런 대대적인 개축은 평상 시 이뤄진 개보수과정으로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유로 성벽의 통과선이 다르고 견치석으로 다듬은 성돌을 면석으로 사용했다. 주 건물지와 성벽 가까이에는 대형건물이 재건축된 흔적도 있다며 이런 축성법은 전쟁이 잦은 후삼국시기에 이뤄지는 대사역이라고 설명했다. 동고산성이 후백제의 성이라는 확증할만한 고고학적인 증거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공주대학교 서정석 문화재보존학과 교수는 견훤의 옛 궁터로 전해온다는 기록만 있을 뿐이라며 소어벽 최하단 성돌이 일반 성돌보다 크고 돌출된 부분을 두고 축성 시기를 설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날개처럼 좌우 양쪽에 쌓아 가운데 성의 부족한 기능을 도왔던 익성(翼城)의 최초사례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익성은 대몽항쟁기에 처음 출현한 성으로 춘천 삼악산성 내성, 원주 영원산성, 충주 대림산성, 속초 권금성 등이 대표적이다. 전주시 최락기 문화관광체육국장은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동고산성의 역사적 가치를 규명하면서 국가지정문화재 승격을 위한 기반을 조성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문화재·학술
  • 김세희
  • 2021.03.11 18:35

[단독] 프랑스국립기록원 한국한지 존재 확인

프랑스 국립기록원이 고려시대 한지로 추정되는 문서를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려가 중국 원(元)나라 간섭을 받던 13세기, 고려왕이 원 황제에게 공물로 바친 종이가 프랑스왕에게 전달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문서를 두고는 전주에서 제작한 한지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오면서 관심이 집중된다. 한지와 한복, 한옥, 한식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단체 한스리그(공동대표: 손주경, 천상묵)는 지난 2019년 프랑스국립기록원에서 한지로 추정되는 문서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8일 한스리그 관계자는 전주시와 2017년부터 바티칸 비밀수장고에 있던 교황 요한 22세-충숙왕 서신(1333년), 고종 황제-교황 비오 10세(1904년) 서신을 한지로 복본하는 과정에서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서가 한지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은 프랑스에 있는 아시아 박물관인 기메(Guimet) 박물관장과 바티칸기록원에서 고문서를 담당하는 엔리코 플라이아니 박사가 제기했다고 덧붙였다. 기록원에 따르면, 문서는 1289년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의 일족인 몽골족이 지배하는 일칸국(바그다드 위치)의 왕이 프랑스 왕에게 보낸 서신이다. 고려 충렬왕(1264~1308년)이 쿠빌라이에게 조공으로 바친 종이를 일칸국에 교역물품으로 보낸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일칸국 왕이 고려 종이를 프랑스 왕에게 보낸 서신으로 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고반여사> 등과 같은 사료는 추정을 뒷받침한다. 이들 사료에는 고려가 원나라에 고려종이를 공물로 바친 사실이 나와 있다. 특히 중국사람의 취미를 설명한 명나라 사료인 <고반여사>는 원나라가 종이를 공납받은 것에 만족하지 않고 기술자를 징발해 현지에서 직접 제조하게 했다는 기록까지 있다. 당시 일칸국 성직자가 원나라를 오갔다는 사료는 고려 한지가 일칸국에 전달됐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경교 사제인 라반 바사우마(Rabban Bar Sauma)는 1287년 바그다드, 북경, 아비뇽 교황청 등을 다니며 일칸국의 사자(使者) 역할을 했다. 실제 프랑스 기록원이 가진 문서에도 Papier Coreen으로 적혀있어, 고려 한지임을 추정케 한다. 넓게는 전주에서 제조된 한지라는 추정까지 나온다. 고려시대 전주와 진안은 종이, 먹, 벼루 등을 생산했던 부곡으로 편입됐기 때문이다. 한스리그 관계자는 전주한지라는 추정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몽골문서 내용을 계속 추적해왔던 하버드대 엔칭도서관과 한국 동양사학계, 전주 한지 전문가 등과의 공동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문화재·학술
  • 김세희
  • 2021.03.08 18:24

‘완주군 조선시대 타임캡슐’, 전라북도 지정문화재 되다

조선시대 전기 복식사와 지방유림 연구 등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는 완주 류세화류세무 분묘 출토 유물 2건이 전라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됐다. 전라북도는 다음달 27일까지 문화재 지정 의견청취 후 최종심의회를 거쳐 지정을 확정한다. 2일 완주군에 따르면 류세화와 류세무는 완주군 봉동읍 둔산리에 터를 잡은 전주 류씨 류혼(柳渾)의 5세손 진학재(進學齋) 류팽성(柳彭成, 14831547)의 장자와 차남이다. 류세화, 류세무 분묘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전주 류씨 진학재공파가 완주군 둔산리에 선영(先塋)을 조성해 대대로 장지로 삼았는데, 1998년 이 일대를 전주과학산업연구단지로 조성하던 중 여러 무덤에서 다량의 부장품이 출토됨에 따라 전북대학교박물관의 긴급조사가 이루어지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류세화 분묘에서는 백자, 묘지명, 패옥과 구슬, 석제 인장, 청동거울과 청동수저 등 50점의 유물들이 출토됐으며, 류세무의 분묘에서는 백자, 묘지석, 벼루, 청동거울과 청동수저, 부채살, 붓 등 36점의 유물들이 출토됐다. 조선 전기(16C)에 활동한 무덤 주인의 신원이 명확해 해당 연대가 뚜렷하고, 조선시대 복식사와 상장례 풍속사 분야의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 조선 전기 문인의 행적을 파악하는 사료의 가치와 조선시대 지방 유림의 부장품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왕미녀 문화관광과장은 앞으로도 국가 및 도지정문화재 지정 추진을 통해 소중한 완주군 향토문화유산의 가치를 체계적으로 밝혀감으로써 완주군 역사자원에 대한 인식 제고와 역사 재정립 계기를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완주군은 국가 및 도 지정과 향토문화재를 포함해 총 59개의 지정문화재를 관리하고 있다.

  • 문화재·학술
  • 김재호
  • 2021.03.02 17:33

후백제 왕도 유일한 성터 동고산성 역사적 가치 재조명

이달 초 전주가 후백제 왕도였다는 사실을 규명하는 유일한 성터유적인 전주성(동고산성)의 역사적 가치가 재조명될 예정이다. 동고산성의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승격에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전북도 지정문화재였던 동고산성은 지난 2017년부터 사적 승격이 추진됐지만, 지정기관인 문화재청의 요구로 발굴조사정비 부문을 보완해 지난해 12월 다시 신청서가 제출된 상태다. 전주시는 이런 상황 속 동고산성의 중요성을 상기하기 위해 오는 11일 한국전통문화전당 교육장에서 후백제전주성(동고산성) 국가지정 승격 학술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이날 공주대 서정석 문화재보존학과 교수가 동고산성의 역사적 가치 및 특성, 전주문화유산연구원 강원종 학예실장이 동고산성의 발굴성과, 전북대 남해경 건축공학과 교수가 동고산성의 정비 및 활용을 발제한다. 토론자로는 군산대 곽장근 역사철학부 교수, 국립익산박물관 최흥선 학예실장, 문화재청 김석희 사무관이 나선다. 주제별 발표와 토론이 끝난 뒤에는 전주대 이재운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의 주재 하에 종합토론이 열릴 예정이다. 실제 동고산성이 가진 발굴성과와 사료적 가치는 크다. 동고산성은 승암산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은 포곡식 산성으로 둘레가 1712m에 이른다. 총8차례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13개 건물터, 25동 건물지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주 건물터에서 출토된 수막새와 암막새에 새겨진 全州城(전주성) 글자는 이곳이 견훤이 쌓은 산성이었음을 보여주는 근거로도 거론된다. 이를 두고 동고산성 일대를 왕궁으로 비정하는 설과 배후를 방어하는 방어성으로 보는 견해가 나눠진다.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에서는 이곳에 군량과 무기를 두는 창고가 있었다는 기록도 나온다. 이런 역사적 가치로 인해 동고산성의 사적 지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게 전주시의 설명이다. 사적으로 지정되면 발굴복원관리비 70%가 국비로 지원돼 안정적으로 복원관리할 수 있다. 전주시 전통문화유산과 관계자는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동고산성 학술조사를 계속 해왔는데 사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규명됐다며특히 학술적으로는 산성의 축조 기법까지 유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문화재·학술
  • 김세희
  • 2021.03.01 17:27

고창 봉덕리 고분군 ‘금동신발’ 보물된다… 삼국시대 신발 유물 최초

고창 봉덕리 1호분에서 출토된 백제시대 금동신발이 삼국시대 신발 유물로는 최초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 된다. 문화재청은 16일 고창 봉덕리 1호분과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 2건을 각각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고창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은 백제 5세기에 제작됐다. 한국 고대인들의 상장례 문화를 알려주는 중요한 유물로 삼국시대 고분 출토 금동신발 중 가장 완전한 형태로 발견된 보기 드문 사례다. 그동안 삼국시대 고분 출토 유물 중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은 국보나 보물로 상당수 지정됐지만, 금동신발이 보물로 지정 예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동신발은 고구려백제신라가야 등 삼국시대 유적에서만 발견되는 우리나라 고유의 고대 금속공예품 중 하나다. 비슷한 시기 중국 유적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일본의 고분에서는 유사한 형태의 신발이 출토된 사례가 있으나 이는 우리나라에서 전래된 것이다.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4기의 대형 분구묘 중 규모가 가장 큰 1호분 제4호 석실에서 2009년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발굴했다. 4호 석실은 전혀 도굴되지 않은 무덤으로, 금동신발 한 쌍이 무덤 주인공의 양쪽 발에 신겨져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출토됐다. 특히 고창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은 현재까지 삼국시대 고분에서 나온 19점의 금동신발 중 가장 완벽한 형태로 알려졌다. 나주에서 출토된 금동신발과 비교했을 때 어자무늬(물고기 알 문양) 등 삼국시대 초기 문양이 확인돼 시기적으로 앞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고창 금동신발은 백제시대 의례용 금동신발로 보기 드물게 원형을 갖춰 출토된 중요한 고대 금속공예품이라며 다양하고 뛰어난 공예기법을 이용해 제작된 것으로 5세기 중반 백제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예고 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 문화재·학술
  • 문민주
  • 2021.02.16 17:34

전북 출토 유물 집대성하는 국립 기관 건립된다

전북혁신도시에 입주하는 또 하나의 국가기관이자, 전북을 포함한 호남북부지역 출토유물을 집대성할 전북문화재연구소가 올해부터 건립절차에 들어간다. 15일 문화재청과 국립완주문화재 연구소 등에 따르면 올해부터 전북혁신도시내 완주권역인 완주군 이서면 용서리 868번지를 대상으로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전북문화재 연구센터 건립을 위한 부지매입이 이뤄진다. 연구센터 건립 총사업비는 300억원(299억1500여만원)에 달하며, 전액 국비이다. 문화재청은 올해 안에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76억원의 예산으로 2만5600여㎡ 부지를 매입하게 된다. 이후 설계 공모에 나서고 내년에 기본설계 및 실시설계 용역을 거쳐 2023년에 착공, 2025년에 지하1층과 지상 2층, 건축면적은 3700㎡, 연면적 7500㎡ 규모의 센터 문을 열 계획이다. 이서 국립완주문화재 연구소 전북문화재 연구센터 예정지 센터는 출토유물보존관리(일반, 개방형 수장고, 유물정리실)와 연구기반시설(보존처리실, 실측실, 연구실)외 열린도서관, 교육, 홍보(연구성과) 등 다목적 시설과 국민과 함께 공유하는 체험형 유적문화공원 등 복합기능을 갖춘 지역주민 친화형 문화공간이 되게 된다. 현재 국립완주문화재 연구소는 완주군 삼례문화예술촌내 위치해 있는데, 유물 보관고의 경우 가설 건축물을 사용하는 등 국립연구소라는 명칭에 맞지 않게 운영돼 왔다. 문화재청은 센터 건립이 마무리되면 전북권역 매장문화재 출토유물들의 안전하고 체계적인 보관관리, 보존처리 등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사연구 결과를 일반 대중과 성과 공유, 전시활용, 문화재 체험, 홍보 등 종합적인 학술조사연구와 개방형 연구시설로도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 센터 건립은 안정적인 기관운영과 연구기반이 조성되는 것으로, 호남 북부지역의 초기철기시대 및 후백제, 가야 유적 조사연구기능 강화, 연구의 지역적 편차 해소, 지역문화권의 균형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호남북부지역은 고조선과 마한, 백제 및 가야, 후백제로 이어지는 고대사의 핵심 연결고리로 문화재청에서도 중요시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센터가 건립되면 문화재들을 체계적으로 관리, 전시 할수 있는 기관이 될것 이며, 지역사회 일자리 창출뿐만아닌 문화유산의 새로운 가치도 창출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백세종
  • 2021.02.15 18:24

[전북 가야 찾기 어디까지 왔나] (하) 쟁점과 과제

전북 가야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한 작업은 진전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도내에서 가야의 존재를 유추할 수 있는 유적은 계속 발굴되고 있지만, 독자세력의 존재여부를 규명할 만한 검증이 더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북만의 특징을 보여주는 봉수와 제철유적의 시기규명, 문헌사료 양직공도(梁職貢圖)와 일본서기(日本書紀)의 해석문제가 관건이다. 가야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다소 이견이 큰 상황이다. 이에 철저한 학술연구와 고증을 바탕에 두고 전북 가야를 규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 쟁점-대가야 하위집단 vs 독자세력 학계에서는 남원 운봉고원과 장수 일대에 존재했던 세력을 대가야의 하위집단으로 보는 게 통설이다. 익명을 요구한 고대사 박사는 4일 경북 고령을 중심으로 하는 대가야가 섬진강까지 유역을 확장했고, 순천까지 대가야 묘제가 있다며 삼국유사 등 문헌사료를 통해 봤을 때도 통설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전북에서는 이 세력을 백제와 대가야 사이에 있었던 독자적 가야 세력으로 보고 있다. 봉수와 제철유적, 중국계 청자인 계수호(鷄首壺), 고분군을 근거로 들고 있으며, 존재했던 시기도 5세기 초부터 6세기까지 본다. 전북도 노기환 학예사는 특히 계수호는 중국과의 독자적인 외교 가능성을 시사한다며 대가야에 귀속되지 않은 느슨한 연맹체 상태로 존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연구와 고증, 발굴성과를 축적한 뒤, 통설과 비교분석하면서 입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역의 요구를 대변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기경량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는 가야사 같은 경우 자신이 속한 지역의 역사가 가장 가치있다는 사고에 사로잡혀 확대해석하는 경향도 있다며 전문가와 학계가 냉정한 시각을 바탕에 두고 철저한 검증과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 제철유적과 봉수 시기 규명 제철유적에 대한 시기비정도 과제다. 현재 전북에서 발굴된 제철유적 전체가 가야가 존재했던 고대시기에 국한해서 볼 수 없다는 반론이 나온다. 조선시대 지리지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고대시기부터 존재했던 모든 제철 산지가 나오는 데, 전북과 관련된 기록은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고대사학계에서도 전북에 제철유적이 존재했던 시기를 고대로 한정하긴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제철 유적 전문가로 유명한 한신대학교 이남규 한국사학과 명예교수는 조선 후기 이 지역에 제철산지가 조성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봉수도 제철유적과 마찬가지로 고대시기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 제기된다. 봉수제의 운영 초기 단계 시대에 100여개나 되는 봉수를 운영했다고 보긴 어려운데다, 불을 일으키는 발화구의 성격도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고대사 박사는 봉수는 먼 곳의 소식을 중앙에 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며 아차산의 보루성에 백제가 고구려를 방어하기 위해 세운 봉수가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이어 남원 운봉고원 일부 등을 방어하기 위해 봉수를 100여 개나 세웠다는 설은 쉽게 납득이 되질 않는다며 다시 고증작업을 거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문헌사료 해석문제 양직공도와 일본서기에 나오는 반파를 둘러싼 해석도 통설과 이견이 크다. 사료에는 백제의 주변 소국으로 반파, 탁, 다라, 전나, 신라, 상기문 등이 나오는데, 학계는 반파를 대가야를 설명하는 용어로 해석하고 있다. 고대사 박사는 봉수, 고분, 계수호를 비롯한 위신재 유물과 문헌기록을 맞춰 전북 지역에 존재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삼국유사에 전북 가야의 존재가 기록이 안 된 이유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삼국유사에는 금관가야(경북 김해), 아라가야(경남 함안), 소가야(경남 고성), 고령가야(경북 상주), 대가야(경북 고령), 성산가야(경북 성주)가 나와있다. 전북 가야사를 설명할 때 일본서기를 활용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기경량 교수는 가야사와 관련된 사료 자체가 적기 때문에 일본서기를 활용할 수 밖에 없다면서도 사료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굴곡과 왜곡이 있기 때문에 사료비판을 엄밀히 하면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문화재·학술
  • 김세희
  • 2021.02.04 18:41

[전북 가야 찾기 어디까지 왔나] (상) 발굴·고증 현황

남원 유곡리두락리 가야 고분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최종 절차를 밟고 있는 가운데 전북 가야사의 실체가 어느 정도 규명됐는지 관심이 모아진다. 현재까지 밝혀진 전북 가야사의 존재는 일부 문헌사료와 고분 및 부장품, 제철유적, 봉수 등을 통해 확인된다. 문헌사료에 있는 기록과 유물유적과의 비교 분석도 진전되면서 고증도 진전되고 있다. 특히 장수남원 등지에서 발굴되는 제철유적은 주목할 만하다. 흔히 가야를 철의 왕국이라 하지만, 가야의 중심지라고 일컬어지는 김해와 고령에서 발굴된 제철 유적은 없다. 다만 전북 가야 세력을 독자 세력이 아니라 영남권 대가야의 하위집단으로 보는 통설, 봉수제철유적의 연대기가 가지는 불확실성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 등이 남아있다. 전북의 가야사를 엿볼 수 있는 문헌사료와 유적 분포현황, 대표유적 그리고 이들이 갖는 의미와 추후 과제를 정리해본다. △ 전북 가야 유적 현황과 관련사료 1일 전북도에 따르면 도내 가야 유적은 남원완주무주장수진안임실순창지역에 모두 822개가 있다.(2020년 12월 현재) 종류는 고분, 제철유적, 봉수 산성으로 다양하다. 이 중 전북 가야의 존재를 방증해주는 유적인 제철, 봉수, 고분은 776개로 94%를 차지한다. 전북에 가야소국의 존재여부를 추정할 수 있는 문헌사료도 있다. 중국 양나라 때의 사료인 양직공도(梁職貢圖)와 720년대 완성된 일본서기(日本書紀)이다. 일본서기에는 반파는 백제와 3년 전쟁(514년~515년)을 치르면서 봉수를 쌓아올렸다고 나온다. 군산대학교 곽장근 역사철학부 교수는 반파는 가야계 소국으로 추정되며, 기록에 나온 봉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봉수가 발견된 곳은 전북 동부가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봉수 주변 가야계 산성과 석축, 수혈식 석곽묘, 축대시설이 분포한다며 가야의 봉수로 해석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양직공도에는 남원시 일대에 기문이라는 소국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다. 곽 교수는 이들은 5세기부터 6세기 초까지 백제에 의탁하면서 연명했던 소국이라며 이 지역에서 발굴된 토기와 봉토분 양식을 문헌사료와 비교해보면 가야계 국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 대표유적-남원 유곡리 두락리 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이 고분군은 기문국의 실체를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고고학적 자료로 꼽힌다. 연비산에서 서쪽으로 내려오는 능선을 따라 40기의 봉토분(封土墳)으로 존재하며, 이 중 12기는 지름 20m가 넘는 대형고분이다. 조성시기는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이다. 무덤양식은 가야계 수혈식 석곽묘(구덩식 돌덧널무덤)와 백제계 횡혈식 석실분(굴식 돌방무덤)이며, 지난 1989년과 2013년에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확인됐다 축조세력이 지배층이었음을 방증하는 유물도 출토됐다. 금동신발편, 청동수대경, 갑주, 환두대도(環頭大刀-장식용 칼) 등을 비롯한 금속유물 160여점, 기꽂이, 마구류, 꺽쇠 등의 철기류 210점, 원통형 기대를 비롯한 대가야 양식의 토기류 110여점 이다. 이 중 금동신발과 청동수대경은 처음 출토된 것으로 백제와 왜, 중국 남조 등과의 대외관계를 살필 수 있는 유물로도 평가받고 있다. 전북도 노기환 학예사는 토기를 통해서도 인접 국가와의 대외교류를 유추할 수 있다고 봤다. 노 학예사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철을 가야나 백제에 주고 토기를 가져왔을 것이라며 고부가가치의 생산품을 주고 소모품적인 생산물을 가지고 오는 무역 형태라고 했다. 이어 기문국의 주 세력은 운봉고원에 존재했던 사람들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 대표유적-단야구(鍛冶具) 지난해 9월 장수 백화산 고분군 발굴현장에서 공개된 단야구는 반파와 철제 유물의 실상을 밝혀줄 수 있는 자료로 꼽힌다. 단야구는 철기를 제작할 때 사용되는 망치, 집게, 모루 등의 도구로 호남 가야고분에서 처음 확인됐다. 게다가 단야구에서는 실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타격흔이 발견됐다. 이를 통해 피장자는 장수지역 철기제작을 담당했을 수장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장수남원 등지에서 확인되는 제철유적과의 연관성까지 높여준다. 곽 교수는 운영의 주체는 고증이 되고 있다며 문헌사료와 비교해보면 반파국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지표조사를 통해 확실히 가야 철제유물이라는 점을 시기적으로 규명하는 과제가 남았다고 강조했다.

  • 문화재·학술
  • 김세희
  • 2021.02.02 19:02

충주박씨 기증유물 2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지정

원광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충주박씨 기증유물 2점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2일 익산시에 따르면 충주박씨 기증유물인 눌재 박상 초상화와 사암 박순 초상화가 지난해 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지정예고를 거쳐 최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75호제276호에 각각 지정됐다. 눌재 박상사암 박순 초상화는 충주박씨 문중이 유물의 온전한 보존을 위해 지난 1970년 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눌재 박상은 병조좌랑, 사간원헌납, 상주목사, 나주목사 등을 역임한 조선 전기 사림파 문신이다. 박상 초상화는 오사모에 담홍색 단령을 입은 전신교의좌상으로 15세기 문인 관료 초상화의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19세기 이후 서화를 본떠서 그리는 이모(移模) 과정에서 당시의 시대색과 음영기법이 추가됐다. 조선시대 초상화의 전형적 양식과 시대적 변천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회화사적과 지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눌재 박상의 조카인 사암 박순은 눌재 박상의 조카로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조선 중기 문신이다. 박순 초상화는 오사모와 청색 단령을 입은 전신교의좌상으로서 16세기 공신 초상화의 전형적인 양식을 갖추고 있다. 18세기 이후 이모(移模) 과정에서 당시의 시대색과 장식적 기법이 추가됐으며 조선시대 초상화의 전형적 양식과 시대적 변천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박상 초상화와 마찬가지로 회화사적, 지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박상박순 초상화는 원광대 박물관 4층 서화기증실에 보관 전시되고 있으며,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코로나19 방역수칙에 따라 사전예약 후 관람 가능하다.

  • 문화재·학술
  • 엄철호
  • 2021.02.02 16:15

전주 경원동서 조선시대 ‘전주부성 성벽’ 추가 발굴

전주 한국전통문화전당 인근 구도심에서 조선시대 쌓았던 전주부성의 성벽 일부가 추가 발굴됐다. 26일 전주시에 따르면 (재)전주문화유산연구원(원장 유철)이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지난해 11월부터 진행한 전주부성의 성벽(1구역)과 성벽 바깥 부분(2구역) 발굴조사 결과 전주부성 북동편 성벽의 윤곽을 확인했다. 앞서 전주문화유산연구원은 지난 2018년 시굴조사를 통해 한국전통문화전당 북동쪽 주차장 부지에서 처음으로 전주부성 성벽 기초부분 흔적을 발견했다. 당시 발굴된 성곽은 기초부분 1단만 남겨져 있었다. 이번에 전주부성 북동편 성벽의 기초시설이 발견된 1구역은 완산구 경원동3가 28-5번지 일원이다. 발굴된 성벽은 부성 하단의 1~2단이 잔존하는 상태로 성벽의 폭은 5.2m이며, 현재까지 조사된 체성의 길이는 26m, 잔존높이는 40㎝ 내외인 것으로 알려졌다. 2구역에서는 전주부성과 관련된 조선시대 유구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후백제 시대로 추정되는 층위에서 박석시설 등이 확인됐다. 시는 전주부성 북동편 성벽 일부가 확인됨에 따라 부지 4397㎡를 매입해 성곽을 복원할 예정이다. 전주시 관계자는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성벽 일부의 구체적인 축조방식을 살펴보고, 복원 및 정비를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할 것이라며 향후 옥토주차장 부지에 대해서도 발굴조사를 추진해 전주부성 성곽의 잔존양상을 확인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한편, 전주부성은 영조 10년(1734년) 전라감사 조현명이 허물어진 성을 둘레 2618보, 높이 20자, 여장 1307좌, 치성 11곳, 옹성 1곳 등으로 고쳐 쌓은 것으로 전주부성 축성록에 전해진다.

  • 문화재·학술
  • 이용수
  • 2021.01.26 18:33

전북 남원 가야문화 유산 ‘세계 속 유산으로 인정될까’

철기문화를 꽃피웠던 남원 가야 문화의 발자취가 그간의 베일을 벗고 바다 건너 유네스코로 향했다. 25일 남원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에 따르면 유네스코에 남원 유곡리두락리 등을 포함한 가야고분군 등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최종 절차를 밟고 있다. 세계유산등재추진단은 지난 21일 유네스코에 세계유산 등재신청서를 제출했으며, 2월 중 유네스코 현지실사에 대비해 3회에 걸친 유적정비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유네스코 현지실사는 오는 8~9월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세계유산등재추진단이 전북으로 이전하면서 남원 가야문화가 세계를 대표하는 유산으로 이름을 올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세계유산등재추진단은 지난 17~19년 경남연구원(창원)에서 운영을 맡아오다 2019~2020년 경북문화재단(고령), 2021년 1월 15일부터 업무가 전북으로 이관됐다. 당초 세계유산등재추진단은 올해 중으로 가야고분군이 세계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준비해 왔지만 문화재청이 각 지역의 고분에 대한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 확인에 신중을 기하면서 준비기간이 길어졌다. 하지만 신중한 준비로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활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다. 신청서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에 대한 구체적 근거들이 담겨 있다. 가야문명 당시 중앙집권 체제로 운영됐던 주변 국가들과 달리 연맹체재로 운영됐던 가야 문명에 대한 보편성을 기술하고 또 지배계층들의 고분들이 갖는 특징 등이 강조됐다. 전북도는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록을 위해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해 온 만큼 서류 통과에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도는 추진단을 통해 8월에 예정된 유네스코 현지실사팀 방문을 대비한 준비 작업에 돌입할 계획이며, 유네스코가 유산에 대한 보편적 가치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 민관이 어떻게 유산을 어떻게 이해하고 관리하는지 등에 대한 부분도 보는 만큼 주민활동도 지원할 계획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오랜 시간 준비해온 만큼 내년도에 가야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서류 통과 이후 현장실사를 위한 준비에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가야고분군은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사적 제542호), 김해 대성동 고분군(사적 제341호), 함안 말이산 고분군(사적 제515호), 합천 옥전 고분군(사적 제326호), 고령 지산동 고분군(사적 제79호), 고성 송학동 고분군(사적 제119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의 7개 유산으로 구성된 연속유산이다.

  • 문화재·학술
  • 엄승현
  • 2021.01.25 18:28

전북서 반출된 해외 소재 문화재 ‘현황 파악 시급’

해방 이후 소재가 불분명한 '완주 보광사 석탑' 전북 부안군 개암사(開巖寺)의 5층 석탑은 총독부 조사계에서 조사해 고적급유물로 등재해 보존하려던 중에 종적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후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1932년 4월에 군산 일본 요리점 하나쓰기(花月)의 정원에서 발견됐다. 최학수 옥구군수가 하나쓰기 요리집의 정원에 있는 석탑이 개암사의 탑이라는 것을 알아본 것은 최 군수가 옥구군수로 부임해오기 전에는 부안군수로 있었기 때문에 이 탑을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당시의 신문 기사에는 탑을 매수해 개암사로 보내기로 했다는데, 이후 어떻게 진행됐는지 알 수 없다. 현재 개암사에는 1932년 4월에 찾았다는 탑은 보이지 않는다. 해외로 반출된 전북지역 문화재의 환수 활동을 지원하는 전북 국외소재문화재 환수 활동 지원에 관한 조례가 지난해 12월 31일자로 공포된 가운데 도내 현황 파악을 위한 실태 조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확한 현황 파악을 통해 실질적 환수뿐만 아니라 학술적 환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해외로 반출된 도내 문화재의 현황과 반출 경위 등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동안 일부 연구자와 단체가 부분적으로 자료를 조사했을 뿐이다.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국외문화재는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등에 8만1889점(42.40%),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등에 5만3141점(27.52%), 중국 베이징고궁박물관 등에 1만2984점(6.72%), 독일 쾰른동아시아박물관 등에 1만2113점(6.27%) 등 21개국 19만3136점에 달한다. 다만 지역별 출처를 따로 조사하지 않아, 지역 현황은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다. 문화유산회복재단 전북본부에 따르면 도내 대표적인 피해 사례는 임진왜란 당시 반출돼 현재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된 금산사 향로를 비롯해 현재 일본 도쿄대에 소장된 남원 출토 도자와 기와, 소재가 파악되지 않은 완주 보광사 석탑과 사리함 등이 있다. 이외에도 전주 회암사 불상, 순창 구암사 불상, 부안 개암사 석탑, 정읍 망제리 석탑 등도 소재가 불명하다. 재단 전북본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문화재가 소실됐는지 유출됐는지 하나도 정리가 안 된 상태이다. 대략적인 추정치로만 파악하고 있을 뿐이라며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자치단체 중심으로 향토사학자, 관련학과 교수 등과 연계해 정확한 현황 파악이 이뤄져야 한다. 이는 지역적 자존의 문제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 관련 조례가 제정된 만큼 도내에서 반출된 문화재의 환수 활동이 속도를 낼지 주목된다. 조례는 국외소재문화재 환수 활동 지원에 관한 계획 수립과 실태 조사를 위한 조사단 구성, 환수된 문화재의 관리 등의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지난 2016년 문화재보호법이 개정된 이후 광역 자치단체 7곳, 기초 자치단체 1곳이 국외소재문화재 환수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충남도의 경우 도 차원의 환수추진단을 조직하고 예산을 확보하는 등 자치단체 최초로 국외소재문화재 보호, 환수 활동에 직접 나섰다.

  • 문화재·학술
  • 문민주
  • 2021.01.25 16:56

애니메이션으로 만나는 국보 제62호 ‘금산사 미륵전’

국보 제62호 김제 금산사 미륵전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이 제작됐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는 국보 제62호 금산사 미륵전 홍보영상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보리의 약속을 유튜브 채널에 공개했다.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제작한 애니메이션 보리의 약속은 7분41초 분량으로 금산사의 역사와 3층 미륵전에 대한 소개가 담겨 있다.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고 화낸 보리가 개구리를 따라 미륵전 벽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벌 받는 소를 만나고, 동자승의 안내를 받아 미륵전을 구경한다는 줄거리다. 사라진 보리를 찾는 엄마에게 스님은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준다. 미륵전은 거울처럼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는 곳, 비추어서 자신을 맑게 만드는 곳이다. 맑게 만든 마음은 헛생각에 더 이상 속지 않게 되고, 욕심과 분노, 걱정이 침범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면 점점 세상이 맑아질 것이고, 우리를 진정 평화로운 세계로 도와주는 분이 미륵부처님이다. 금산사 강만곤 홍보팀장은 미륵부처가 항간의 인식처럼 먼 미래에서 와 인간을 구원해주는 메시아적인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먼저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자비심으로 살아갔을 때 비로소 만날 수 있는 대상임을 애니메이션에 풀어냈다고 설명했다. 김제시 백덕규 학예사는 문화재 조성 당시의 상징성과 현대적 가치를 스토리로 입혀 영상을 제작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며 앞으로 문화재 홍보영상 제작에 좋은 기준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 문화재·학술
  • 문민주
  • 2021.01.18 16:56

정읍 고사부리성, ‘상부상항’명 온전히 새겨진 첫 목제 유물 발견

정읍시 고부면 소재 사적 제494호 정읍 고사부리성(井邑 古沙夫里城)에서 상부상항명이 온전하게 새겨진 첫 목제 유물이 발견됐다. 정읍시는 (재)전라문화유산연구원(원장 천선행)과 진행한 정읍 고사부리성 성벽에 대한 8차 정밀발굴조사를 지난달 완료했다고 12일 밝혔다. 사적 제494호 정읍 고사부리성(井邑 古沙夫里城)은 행정구역상 정읍시 고부면 고부리, 성황산(해발 133m) 정상부에 자리한다. 고사부리성은 백제 오방성(五方城) 중의 하나인 중방(中方) 성으로, 조선시대 영조 41년(1765년)까지 읍성으로 이용됐던 곳이다. 고사부리성은 성황산의 두 봉우리를 감싸는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둘레 1050m, 장축 길이 418m, 단축 길이는 200m 내외다. 이번 발굴조사는 남성벽 내측 평탄지를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두 봉우리 사이의 계곡부에 해당한다. 조사 결과 삼국시대, 통일 신라시대, 조선시대의 다양한 유구와 공간 이용의 변화상이 확인됐다. 특히 조사구역이 두 봉우리 사이 계곡부에 위치해 유수 퇴적층과 물을 이용하기 위한 저수시설 및 우물, 배수 시설(목제 배수로), 지반 보강 시설 등이 다수 확인됐다. 그 가운데 백제시대 층에 조성된 직사각형 모양의 구덩이(길이 640㎝, 잔존 너비 192㎝)는 내부가 오랜 기간 침수돼 얇은 점토층과 실트층이 반복적으로 쌓여있었다. 바닥에는 삿자리를 깔고, 양 가장자리에 구덩이의 길이 방향으로 한쪽에 결구를 위한 구멍을 뚫은 막대형 목재(길이 144148㎝, 두께 3.33.6㎝)를 한 쌍씩 나란히 붙여 설치한 것이 확인됐다. 막대형 목제 유물의 하나에서 상하 방향으로 새긴 상부상항명이 확인됐다. 상부와 상항은 백제의 수도를 편제한 오부(五部)오항(五巷) 중의 하나로, 기존 북문지 발굴조사(2005)에서도 상부상항 기와편이 출토된 바 있다. 이 자료들은 부여, 익산 등 백제의 고도에서 주로 출토되는 것으로, 정읍 고사부리성에서도 확인됐다는 사실은 백제 중방 성으로서 위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오부명이 새겨진 유물은 대부분 기와이고, 오부명과 오항명이 함께 기술된 것은 부여 궁남지에서 출토된 西(서부) 후항(後巷) 명 목간(木簡)이 유일하다. 이번 고사부리성에서 나온 상부상항 명 유물은 나무에 새겨진 목제 유물로 최초이자, 온전한 형태로 확인된 첫 사례로, 백제 사비기의 것이 확실한 오부와 오항 명이 함께 새겨져 학술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시는 앞으로 오부와 오항의 관계, 상부상항 명의 의미를 파악하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 출토된 목제 유물들은 현재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원형 유지를 위한 보존처리 중이며, 문화재위원 등 전문가의 유물 선별 과정을 통해 국립박물관 등에 소장될 예정이다.

  • 문화재·학술
  • 임장훈
  • 2021.01.12 16:07

전북 서원·사우 255곳 중 25곳 국립문화재 지정 가능

전북지역에 서원과 사우가 255 곳에 달하고 90여 곳은 시도, 국가 문화재로 등록가능한, 문화적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조사됐다. 11일 전북도가 지난해 도내 14시군에 존재하는 서원 및 사우를 전수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총 255곳의 서원사우가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중 서원은 전체 비중의 38%인 85곳 이었으며, 사우는 전체 62%를 차지하는 140곳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도는 국가문화재로 등록가능한 서원 및 사우는 약 25곳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고, 70여 곳은 시도 문화재 등록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문화재청이 전국 20여곳의 서원향교문화재를 보물로 지정했는데, 전북지역에서는 단 한곳도 지정되지 않으면서 향후 도내지역 서원 등의 보물지정을 추진을 위한 기초자료 확보 차원에서 이뤄졌다. 서원은 조선시대 명현(明賢)을 제사하고 인재를 키우기 위해 전국 곳곳에 세운 사설기관이다. 성리학을 널리 알린 인물들을 기리고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도 담당했다. 사우는 조선 시대에 선현(先賢)을 제사하기 위해 건립된 제향처(祭享處)이다. 사우는 유현이나 충절인의 가향(家鄕), 거주지, 근무지, 유배지, 순절지(전승지), 타계지 등에 세워졌다. 사우의 건물 구조는 대개 제사를 지내는 사묘(祠廟)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서원과 사우의 차이는 교육기관(건물 강당)의 유무다. 지역별로는 고창이 32곳으로 가장 많은 서원사우가 존재했다. 이어 김제 28곳, 정읍 24곳, 남원 23곳, 진안 16곳, 무주장수익산이 각각 14곳, 완주 13곳, 전주임실 각각 11곳, 군산 10곳, 순창 9곳, 부안 6곳 순이었다. 서원사우의 건물배치는 학문의 공간이 앞쪽에 배치되고 제향공간이 뒤쪽에 위치하는 전학후묘형과 그 반대인 전묘후학형, 두 공간이 나란이 위차한 좌묘우학형, 좌학우묘형 등 다양한 건물배치를 보였다. 사당의 평면규모는 정면3칸, 측면 2칸 형태가 235건 중 140건(60%)이었고, 강당의 평면규모는 정면4칸, 측면 3칸 형태가 53건으로 나타났다. 사당의 지붕형식은 맞배지붕(건물 앞뒤에서만 지붕면이 보이고 추녀가 없으며 용마루와 내림마루만으로 구성된 지붕) 196건으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강당의 지붕형식은 팔작지붕(우진각지붕과 같이 사방으로 지붕면이 있으나 양측 지붕면 위에 삼각형의 합각(合閣)이 있어서, 우진각지붕 상부를 수평으로 잘라 그 위에 맞배지붕을 올려놓은 것 같은 복합형 지붕형식)이 138건으로 약80%를 차지했다. 도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수리가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역사와 건축양식등을 볼 때 95곳에 달하는 서원사우가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서원관리에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문화재·학술
  • 최정규
  • 2021.01.11 16:45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일제강점기 농촌수탈의 기억 화호리’ 보고서 발간

일제강점기 일본은 조선으로 이주하는 일본인들을 위한 농업 이민정책을 폈다. 조선을 영구적으로 식민지화하기 위해서였다. 일제는 정읍시 신태인읍 화호리를 이주지로 선정하고 대규모 농장을 개설했다. 개간된 농지와 대지의 소유권은 구마모토 리헤이(熊本利平), 다우에 타로(田植太郞), 오사와 신조(大澤新藏) 등 일본인들에게 넘어갔다. 자영농이었던 토착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했고 해방 전까지 궁핍한 삶을 살았다. 이 중 구마모토 리헤이는 46세대 92명이 거주하는 용서마을을 거점으로 신태인 지역의 드넓은 평야를 착취했다. 현재 이곳에는 일제강점기 화호병원과 화호우체국, 일본인 대농장주(구마모토) 사택 등 일본 근대식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특히 농민들을 착취한 구마모토 리헤이는 전북도 옥구군 박면 내사리와 신태인읍 화호리 두 지역에 농장을 개설했다. 그 범위는 3500정보(町步1050만평)에 달했다. 국책회사인 동양척식회사를 제외하고 개인으로는 전북 최대 지주였다. 그는 소작농을 부려먹어 생산한 쌀을 일본에 보냈다. 소작농들의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런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보고서가 발간됐다.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일제강점기 농촌수탈의 기억 화호리Ⅰ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7일 밝혔다. 이번 보고서는 일제강점기 농촌수탈과 해방 후 농촌 보건의 역사가 남아있는 정읍시 화호리에서 실시한 학술조사 결과를 담았다. 해방 후 정읍시는 구마모토 리헤이 농장 소속 의사였던 쌍천 이영춘 박사가 열악한 농촌 보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이곳을 떠나지 않고 농장 시설물을 활용해 입원실과 내과 등 5과 진료과목을 갖춘 화호중앙병원을 설립했으며 현재도 이 흔적이 남아있다. 쌍천 이영춘(1903~1980)은 일제의 수탈로 고통당하는 한국 소작농의 치료에 일생을 바친 농촌 보건위생의 선구자로 전해진다. 보고서는 △ 식민지 화호리의 일본인 지주들, 정읍 화호리의 식민지 기억과 경관 △ 신문기사와 지도, 사진, 공문서 등을 통해 당시 화호리 역사와 인문지리 △ 건축물 현황과 부재 수종조사, 식생조사, 석재 산지조사, 디지털 기록을 수록했다. 연구소는 화호리에 남아있는 적산가옥 6동과 해방 이후 공간변화 등을 디지털 영상자료로도 제작했다. 이 영상을 보고서내 QR코드로 삽입해 스마트폰 등 휴대기기로 재생해 볼 수 있게 했다. 이번에 발간한 보고서는 국공립 도서관과 지방자치단체 등에 배포된다. 문화재청과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공개될 예정이다.

  • 문화재·학술
  • 최정규
  • 2021.01.07 17:49

전주전통술박물관 사실상 박물관 기능 상실

5일 오전 한옥마을내 전주시 완산구 한지길(풍남동 3가) 전주전통술박물관. 한옥마을 공영주차장 인근에 위치한 이 박물관은 기와를 얹은 한옥풍의 박물관이다. 입구를 지나 전시실을 둘러봤다. 술의 역사부터 술을 담그는 기구가 몇 개 전시되어 있었다. 술을 만드는 재료인 누룩모형도 전시돼 있었다. 이뿐 이었다. 전시장을 둘러보는데 단 5분도 소요되지 않았다. 이 전시장 면적은 44㎡. 박물관이라 하기엔 협소하기 그지없었다. 전시장을 나와 또 다른 입구로 들어가보니 비슷한 크기의 공간에서는 전통술을 판매하고 있었다. 개관 20년이 다 되가는 전주시 설립 전주전통술박물관이 사실상 박물관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주전통술박물관은 전통가양주(집에서 빚어내던 술)의 맥을 이어가기 위한 목적으로 전주시가 2002년 현재의 자리에 개관했다. 개관 당시 전통술을 내세운 박물관으로는 전국 최초였다. 개관 초기부터 10여 년까지는 맷돌, 소줏돌, 용수, 체 등 전통술을 빚는 기구를 포함해 212점의 유물을 소장했지만 이후 10년 가까이 추가 유물을 확보하지 못했다. 상설전시 된 유물수도 48점으로 소장 유물의 4분의 1 정도만 공개하고 있는 수준이다. 기획전시할 공간도 부족한 실정이다. 전주전통술박물관 측은 전시공간이 부족해 많은 유물을 전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박물관에는 전문학예사도 없다. 박물관장을 포함한 2명의 직원이 전부로 전문학예사가 없다보니 유물관리와 전시유물 교체와 신규유물확보가 안되고 새로운 연구를 통한 기획전시도 이뤄지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그나마 전통술 빚기부터 시음행사 등 다양한 교육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 마저도 농림수산식품부에서 국비를 따와 근근이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문제로 술 박물관은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한 공립박물관 평가인증에서 낙제점을 받아, 평가인증을 받지 못했다. 전주전통술박물관은 2017년부터 전라슬로푸드문화원이 전주시로부터 위탁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전라슬로푸드문화원은 시의 지원금을 박물관 유지 비용의 약 80%를 차지하는 운영비와 인건비로 쓰고 있다. 그리고 20%는 자체 수익을 통해 메꾸고 있는 실정이다. 박물관 측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어떻게든 박물관은 운영해보고자 직원들이 학예공부를 하고, 관장이 퇴직금 등 사비를 투입해 버티고 있지만 힘든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시는 해당 박물관이 사실상 박물관 기능을 상실한 점에 대해서 인정하면서, 술 박물관에 대한 변화를 고심하고 있다. 지난해 박물관의 기능보다 교육, 전시를 극대화할 수 있는 문화관 전환을 검토했지만, 전국 최초의 술 박물관이란 이유로 철회했다. 올해 전시공간 확대를 위한 리모델링 예산을 책정하고, 개편에 나설 예정이다. 전문학예사도 추후 배치해 추가 유물구입 및 연구도 진행 할 방침이다. 시 관계자는 전주전통술박물관에 대한 지적에 충분히 공감한다면서 여러 방면으로 활성화를 위해서 많은 고심을 하고 있다. 거점관광도시에 걸맞게 술박물관을 변화시킬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 문화재·학술
  • 최정규
  • 2021.01.05 18:2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