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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향기 남기고 먼길 떠난 법정 스님

'무소유'의 가르침을 전하고 실천한 법정(法頂)스님이 불길 속에 아름다운 향기를 남기고 먼 길을 떠났다. 14일 오전 전남 순천 송광사를 품은 조계산 언덕에 마련된 전통다비장에서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법정 스님의 습골(뼈를 수거하는 의식) 의식은 추모객 1천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건하게 진행됐다. 삼귀의례와 반야심경을 함께 독송하는 것으로 시작된 습골 의식은 상좌 스님과 문도 10여명에 의해 차분하게 진행됐다. 상좌 스님과 문도들은 전날 오전부터 계속 다비된 후 타다 남은 유골을 수습해 유골함으로 옮겼고 이를 지켜보는 추모객들은 일제히 합장하고 "나무아미타불" 등을 염불하며 법정스님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나 당초 이날 오전 10시께 유골이 모두 수습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불이 모두 꺼지지 않아 일부 유골만 수습됐고 약 2시간이 지난 정오께 모든 유골이 수습돼 송광사 지장전으로 옮겨졌다. 밤새 참나무 장작이 타면서 환하게 불을 밝힌 법정 스님의 다비장은 스님과 신도들이 염불을 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법정 스님의 유골은 뼈를 빻는 쇄골(碎骨)' 이후 다음 달 28일 송광사에서 열리는 49재에 상좌스님들이 비공개로 산골(散骨)'을 진행한다. 김재섭(63.광주 남구)씨는 "어제 오늘 봤는데 사람이 한줌 재가 되서 세상을 떠난다는 것이 참 허무하게 느껴졌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돌아가는 삶을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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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0.03.15 23:02

'무소유' 향기 남기고 먼길 떠난 법정 스님

'무소유'의 가르침을 전하고 실천한 법정(法頂)스님이 불길 속에 아름다운 향기를 남기고 먼 길을 떠났다. 14일 오전 전남 순천 송광사를 품은 조계산 언덕에 마련된 전통다비장에서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법정 스님의 습골(뼈를 수거하는 의식) 의식은 추모객 1천여명이지켜보는 가운데 경건하게 진행됐다. 삼귀의례와 반야심경을 함께 독송하는 것으로 시작된 습골 의식은 상좌 스님과문도 10여명에 의해 차분하게 진행됐다. 상좌 스님과 문도들은 전날 오전부터 계속 다비된 후 타다 남은 유골을 수습해유골함으로 옮겼고 이를 지켜보는 추모객들은 일제히 합장하고 "나무아미타불" 등을염불하며 법정스님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나 당초 이날 오전 10시께 유골이 모두 수습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불이 모두 꺼지지 않아 일부 유골만 수습됐고 약 2시간이 지난 정오께 모든 유골이 수습돼송광사 지장전으로 옮겨졌다. 밤새 참나무 장작이 타면서 환하게 불을 밝힌 법정 스님의 다비장은 스님과 신도들이 염불을 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법정 스님의 유골은 뼈를 빻는 쇄골(碎骨)' 이후 다음 달 28일 송광사에서 열리는 49재에 상좌스님들이 비공개로 산골(散骨)'을 진행한다. 김재섭(63.광주 남구)씨는 "어제 오늘 봤는데 사람이 한줌 재가 되서 세상을 떠난다는 것이 참 허무하게 느껴졌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돌아가는 삶을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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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0.03.12 23:02

<법정 입적> 길상사 떠나는 스님 "추우시겠다"

"나무아미타불", "석가모니불..."12일 오전 11시 22분 서울 성북동 길상사의 행지실 앞. 행지실 쪽에서 목탁 소리와 요령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합장한 채 "나무아미타불", "석가모니불"을 염송하는 신자들의 목소리도 커졌다.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듯 행지실 주변의 대나무가 크게 흔들릴 정도로바람이 두 번 거세게 불었다. 4분 후 위패와 영정을 든 스님들이 차례로 행지실 밖으로 나오고 뒤이어 법정스님의 법구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자 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시민ㆍ불자들의염불 소리에는 울음소리가 섞여들었다. 법정스님이 이날 대중에게 보여준 마지막 육신의 모습은 스님이 평소에 말했던'무소유' 그 자체였다. '강원도 오두막에서 평소에 사용하던 대나무 평상에 올려서 화장하라'던 스님의평소 뜻을 받들어 다비준비위원회는 강원도 오두막에서 평상을 가져오려 했지만, 눈이 내려 접근이 불가능해지자 똑같은 모양의 평상을 만들었다. 한 사람이 누우면 꼭 맞는 좁은 평상 위에 모셔진 법정스님의 법구는 갈색 가사한 장으로 온몸을 감싼 모습이었다. 근사한 관도, 꽃 장식도 없었다. 매서운 봄바람 속에 입던 승복 그대로 가사 한 장을 덮은 법정스님의 마지막 모습에 여성 신도들은 "스님 추우시겠다"고 안타까워하며 흐느꼈다. 성북동 골짜기 길상사에 이날 모인 인원은 8천여 명. 먹구름 낀 하늘 아래 스님의 법구가 극락전을 향하는 걸음걸음마다 땅에 엎드려 절을 하는 시민이 속출했고,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나무아미타불" 소리는 점점 커졌다. 법정스님의 법구를 멘 스님 10명이 극락전 앞에서 무릎을 세 번 구부렸다 펴 부처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린 것을 끝으로, 법정스님의 법구는 곧바로 영구차에 모셔졌다. 많은 시민이 법구가 모셔진 영구차를 어루만지며 울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영구차는 곧바로 길상사 산문을 통과했고, 신도들과 인사를 나누는 듯 잠깐 멈춰 섰다가이날 낮 12시께 곧바로 송광사로 향했다. 신도들은 줄지어 큰길까지 영구차를 뒤따랐다. 법정스님의 법구는 송광사에서도 13일 조촐한 다비를 치를 예정이다. 다비식에서는 큰스님들의 장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만장도 사용하지 않는다. 법정스님은자신이 창건한 절 길상사를 나서던 모습 그대로 불 속에 몸을 맡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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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3.12 23:02

<법정 입적> "길상사 가시겠느냐 묻자, 고개 끄덕"

11일 입적한 법정스님은 입적 하루 전날 병원에서 덕조, 덕현 등 상좌스님 7명이 모인 가운데 "내 제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라,정진의 힘으로 죽을 때 어지럽지 않게 하라"고 당부했다. 법정스님 다비준비위원회 대변인 진화스님은 12일 오전 길상사에서 연 언론 브리핑에서 "법정스님은 상좌스님들에게 이같이 당부하신 후 상좌스님들이 길상사에가시겠느냐고 여쭤보니 고개를 끄덕이셨다"고 말했다. 진화스님은 "법정스님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의식을 또렷이 유지하신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스님은 병상에서도 계속 강원도 오두막으로 가고 싶다고 하셨지만,그곳에는 눈이 쌓여 접근이 불가능해 상좌스님들이 길상사로 모셨다"고 설명했다. 진화스님은 법정스님은 길상사를 1997년 창건했지만, 길상사에서는 하룻밤도 잔적은 없다고 설명하면서 "병원에서 돌아가시는 것보다는 절에서 돌아가시는 것이 좋다는 뜻에서 길상사로 가시겠느냐고 물었고 스님이 수락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정스님은 11일 오전 11시50분께 삼성서울병원에서 출발, 12시 30분께 길상사에 도착했다. 진화스님은 "절에 도착한 후에 상좌들이 '여기 길상사 절입니다'하니 고개를 끄덕이셨고, 상좌스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눈을 감으셨다"고 말했다. 한편, 법정스님은 병세가 나빠지면서 주로 필답으로 의사를 표현했으며 따라서스님의 유지 상당 부분은 필답에 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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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3.12 23:02

법정 스님 "장례의식 거행 말라"…13일 순천 송광사서 다비식

산문집 '무소유'로 널리 알려진 법정(法頂)스님이 11일 오후 1시51분께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법랍 55세. 세수 78세.법정스님은 2007년부터 폐암으로 투병, 지난해 4월19일 길상사에서 열린 봄 정기법회 법문을 끝으로 지난해 6월7일 하안거 결제 법회, 12월13일 길상사 창건 기념법회에도 참석하지 못했다.지난해 연말에는 제주도에서 요양했으나 올 들어 병세가 악화하면서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왔고, 입적 직전인 11일 낮 자신이 창건한 길상사로 옮겼다.법정스님은 입적 전날 밤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내가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는 말을 남겼다.조계종과 법정스님의 출가본사인 송광사, 법정스님이 창건한 길상사 등은 장례절차를 논의한 결과 "일체의 장례의식을 거행하지 말라"는 법정스님의 평소의 말에 따라 별다른 장례행사는 치르지 않고 13일 오전 11시 송광사에서 다비식을 거행하기로 했다. 또 조화나 부의금도 받지 않기로 했다.별도의 장례위원회는 구성하지 않았으나 법정스님 입적 전에 장례절차를 논의하던 송광사 문중의 다비준비위원회(위원장 진화 스님)가 다비식을 맡아서 진행하기로했다.성북동 길상사, 순천 송광사, 송광사 불일암 등 3곳에 간소한 분향소가 마련될 예정이다.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법정스님(속명 박재철)은 목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목포상고를 거쳐 전남대 상대 3학년 때인 1954년 오대산을 향해 떠났다.하지만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막히자 서울의 선학원에서 당대 선승인 효봉 스님(1888-1966)을 만나 대화하고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았다.이튿날 통영 미래사로 내려가 행자 생활을 시작한 스님은 1959년 3월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이후 해인사 선원과 강원, 통도사를 거쳐 1960년대 말 봉은사에서 동국역경원의 불교 경전 번역작업에 참여했다.스님은 1975년 10월부터 17년간은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았으며 불일암 시절 초반인 1976년 4월 대표적인 산문집 '무소유'를 출간한 이후 불교적 가르침을 담은 산문집을 잇달아 내면서 대중적인 반향을 일으켰다.스님은 1992년부터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지내면서 외부인과의 접촉을 잘 하지 않았지만 1996년 성북동의 요정 대원각을 기부받아 1997년 12월 길상사를 개원한 후에는 정기적으로 대중법문을 들려줬다.대표적인 저서로는 '무소유', '영혼의 모음', '서 있는 사람들', '말과 침묵', '산방한담', '텅빈 충만', '물소리 바람소리', '버리고 떠나기', '인도 기행',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그물에 걸지 않는 바람처럼','산에는 꽃이 피네', '오두막 편지' 등이 있다.번역서로는 '깨달음의 거울(禪家龜鑑)', '진리의 말씀(法句經)', '불타 석가모니', '숫타니파타', 因緣이야기', '신역 화엄경',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스승을 찾아서' 등이 있다.법정스님은 자신의 건강상태를 의식한 듯 2008년 11월에는 길상사 소식지에 실었던 수필들을 모아 수필집 '아름다운 마무리'를 출간했고, 지난해 6월과 11월에는 2003년부터 했던 법문을 묶은 첫 법문집 '일기일회'와 두 번째 법문집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을 냈다.이달 들어서는 평소 법회 등에서 언급한 책 중 50권을 골라 소개한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이상 문학의숲 펴냄)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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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0.03.12 23:02

'무소유' 법정스님 입적

산문집 '무소유'로 널리 알려진 법정(法頂)스님이 11일 오후 1시52분께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법랍 55세. 세수 78세.법정스님은 3-4년 전부터 폐암으로 투병, 지난해 4월19일 길상사에서 열린 봄 정기법회 법문을 끝으로 지난해 6월7일 하안거 결제 법회, 12월13일 길상사 창건 기념법회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지난해 연말에는 제주도에서 요양했으나 올들어 병세가 악화하면서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왔고, 입적 직전인 11일 낮 자신이 창건한 길상사로 옮겼다. 법정스님은 자신의 건강상태를 의식한 듯 2008년 11월에는 길상사 소식지에 실었던 수필들을 모아 수필집 '아름다운 마무리'를 출간했고, 지난해 6월과 11월에는 2003년부터 했던 법문을 묶은 첫 법문집 '일기일회'와 두번째 법문집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이상 문학의숲 펴냄)을 냈다.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법정스님(속명 박재철)은 목포에서 어린 시절을보낸 후 1955년 오대산을 향해 떠났지만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막히자 서울의 선학원에서 당대 선승인 효봉 스님(1888-1966)을 만나 대화하고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았다. 이튿날 통영 미래사로 내려가 행자 생활을 시작한 스님은 1959년 2월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이후 해인사 선원과 강원, 통도사를 거쳐 1960년대 말 봉은사에서 동국역경원의 불교 경전 번역작업에 참여했다. 스님은 1975년 10월부터는 17년간은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았으며 불일암 시절 초반인 1976년 4월 대표적인 산문집 '무소유'를 출간한 이후 불교적가르침을 담은 산문집을 잇따라 내면서 대중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스님은 1992년부터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지내면서 외부인과의 접촉을 잘하지 않았지만 1996년 성북동의 요정 대원각을 기부받아 1997년 길상사를 개원한 후에는 정기적으로 대중법문을 들려줬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무소유', '영혼의 모음', '서 있는 사람들', '말과 침묵','산방한담', '텅빈 충만', '물소리 바람소리', '버리고 떠나기', '인도 기행',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그물에 걸지 않는 바람처럼','산에는 꽃이 피네', '오두막 편지'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깨달음의 거울(禪家龜鑑)', '진리의 말씀(法句經)', '불타 석가모니', '숫타니파타', 因緣이야기', '신역 화엄경',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스승을 찾아서' 등이 있다. 조계종과 길상사, 법정스님의 출가본사인 송광사 문중 등은 현재 장례절차를 논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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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0.03.11 23:02

'버리고 또 버렸던' 법정스님의 생애

11일 입적한 법정(法頂)스님은 탁월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한 산문집을 통해 일반 국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스타' 스님이다. 불자나 스님들 사이에서도 1993년 열반한 성철 스님에 이어 인지도가 높은 스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평생 불교의 가르침을 지키는 출가수행자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았고, 산문집의 제목처럼 '무소유'와 '버리고 떠나기'를 끊임없이 보여줬다. 스님은 자신이 창건한 길상사의 회주를 한동안 맡았을 뿐, 그 흔한 사찰 주지 한 번 지내지않았다. 법정스님은 1990년대 초반 "나는 아마 전생에도 출가수행자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직관적인 인식만이 아니라 금생에 내가 익히면서 받아들이는 일들로 미루어 능히 짐작할 수 있다"고 한 적이 있다. 1932년 10월8일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법정 스님은 한 핏줄끼리 총부리를 겨눈 한국전쟁을 경험하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 앞에서 고민한다. 그는 대학 재학중이던 1955년 마침내 입산 출가를 결심하고 싸락눈이 내리던 어느날 집을 나선다.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오대산으로 가기 위해 밤차로 서울에 내린 스님은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막히자 서울의 안국동 선학원에서 당대의 선승 효봉스님(1888-1966, 1962년 조계종 통합종단이 출범한 후 초대 종정)을 만나 대화한 후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는다. "삭발하고 먹물옷으로 갈아입고 나니 훨훨 날아갈 것 같았다.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나는 그길로 밖에 나가 종로통을 한바퀴 돌았었다. 다음날 통영 미래사로 내려가 부목(負木.땔감을 담당하는 나무꾼)부터 시작해행자 생활을 했다." 당시 환속하기 전의 고은 시인, 박완일 법사(전 조계종 전국신도회장) 등이 함께 공부했다. 법정스님은 이듬해 사미계를 받은 후 지리산 쌍계사에서 정진했다. 28세 되던 1959년 3월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고, 1959년 4월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명봉스님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했다. 1960년 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통도사에서 운허 스님과 함께 '불교사전' 편찬에 참여하다 4.19와 5.16을 겪은 스님은 1960년대 말 서울 봉은사 다래헌에서 운허스님 등과 함께 동국역경원의 불교 경전 번역 작업에 참여했다. 이 시절 함석헌, 장준하, 김동길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결성과 유신 철폐운동에 참여했던 법정스님은 1975년 인혁당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후 반체제운동의 의미와 출가수행자로서의 자세를 고민하다 다시 걸망을 짊어진다. 출가 본사 송광사로 내려온 법정스님은 1975년 10월부터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기 시작했다. 1976년 산문집 '무소유'를 낸 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자 불일암 생활 17년째 되던 1992년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불일암을 떠나 강원도 화전민이 살던 산골 오두막에서 지금까지 혼자 지내왔다. 스님은 건강이 나빠지면서 지난해 겨울은 제주도에서 보냈다가 건강상태가 악화하면서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지만, 의식을 또렷하게 유지하면서 "강원도 오두막에가고 싶다"고 거듭 말했다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다. 법정스님은 평소에는 강원도 산골에서 지냈지만 대중과의 소통도 계속했다. 특히 1996년 고급요정이던 성북동의 대원각을 시인 백석의 연인으로 유명했던 김영한할머니(1999년 별세)로부터 아무 조건없이 기부받아 이듬해 12월 길상사로 탈바꿈시켜 창건한 후 회주로 주석하면서 1년에 여러차례 정기 법문을 들려줬다. 법정스님은 2003년 12월에는 길상사 회주 자리도 내놓았다. 하지만 정기법문은 계속하면서 시대의 잘못은 날카롭게 꾸짖고, 세상살이의 번뇌를 호소하는 대중들을 위로했다. 산문인으로서 법정스님은 뛰어난 필력을 바탕으로 우리 출판계 역사에도 기록될 베스트셀러를 숱하게 남겼다. 스님은 해인사에 살 당시 팔만대장경이 있는 장경각을 가리켜 "빨래판같이 생긴것이요?"라고 묻던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아무리 뛰어난 지혜와 자비의 가르침이라도 알아볼 수 없는 글자로 남아있는 한 한낱 빨래판에 지나지 않으며, 부처의 가르침을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쉬운 말과 글로 옮겨 전할 방법을 고민했다. 또 "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망각한 채 전통과 타성에 젖어 지극히 관념적이고 형식적이며 맹목적인 수도생활에 선뜻 용해되고 싶지 않았다"고 회고한 적도 있다. 스님의 이런 원력은 스님의 이름과 동의어처럼 불리는 산문집 '무소유'의 모습으로 꽃을 피운다. '무소유'는 1976년 4월 출간된 후 지금까지 34년간 약 180쇄를 찍은 우리 시대의 대표적 베스트셀러다. 법정스님은 다른 종교와도 벽을 허물었던 것으로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법정스님은 길상사 마당의 관음보살상을 독실한 천주교신자 조각가인 최종태 전 서울대교수에게 맡겨 화제를 모았고, 1997년 12월 길상사 개원법회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방문했다. 법정스님은 이에 대한 화답으로 이듬해 명동성당에서 특별 강론을 하기도했다. 법정스님은 이밖에 조계종단과 사회를 위한 활동도 활발히 했다. 법정스님은 대한불교 조계종 기관지인 불교신문 편집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보조사상연구원장 등을 지냈고 1994년부터는 환경보호와 생명사랑을 실천하는 시민운동단체인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를 만들어 이끌어왔다.

  • 종교
  • 연합
  • 2010.03.11 23:02

시복시성 중심 성지관광 활성화 모색

천주교 시복시성을 중심으로 전북지역 종교유산의 창의적 관광활성화를 위한 학술행사가 열린다.전주시에 따르면 전북 종교유산의 문화관광자원화를 위해 '한국 천주교 시복시성과 전북 창의문화관광'을 주제로 한 학술세미나를 오는 12일 전주 전통문화센터에서 개최한다.세미나는 류한영 한국천주교 주교회 시복시성특별위원회 총무의 '한국 천주교 125위 시복시성 과정과 그 의미', 호남교회사연구소 서종태 연구원의 '전북지역 천주교 순교신앙 문화유산', 전북발전연구소 정명희 연구원의 '전북 종교문화자원의 관광산업화 가능성'이란 주제 등으로 펼쳐진다.또 한국관광공사와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에서 토론자로 참석, 천주교 시복시성을 중심으로 한 천주교 성지관광 활성화 전략을 마련해나갈 계획이다.'시복시성(諡福諡聖)'은 신앙이 깊고 덕행이 뛰어난 가톨릭 신자를 기리기 위해 사망 후 복자(福者)나 성인으로 추대하는 것으로, 한국천주교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가 지난해 5월 로마 교황청에 한국 천주교의 첫 순교자인 윤지충 등 125명을 신청했다.이중 24명이 전주교구에서 순교했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22명이 전동성당과 초록바위, 숲정이 등 전주 도심에서 순교, 전주는 한국천주교 순교 역사의 최고 유적지로 불리고 있다.시 관계자는 "전주 등 전북지역을 125명의 시복시성에 맞춰 세계인의 발길을 모을 수 있는 성지순례지로 조성하고, 천주교 성지관광 활성화 전략을 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종교
  • 구대식
  • 2010.03.11 23:02

"존재만으로 우리에게 큰 위안"

"그분은 추기경, 대주교, 사제이기 전에 따뜻하고 여린 마음을 지닌 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이처럼 해맑은 추기경님의 미소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 주었습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되었던 추기경님이 그래서 더 그립습니다."(정진석 추기경의 추모미사 강론 중에서)고(故)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의 1주기인 16일 전국 성당과 관련 기관에서는1주기 추모미사를 비롯한 각종 추모행사가 진행됐다.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성당)과 기관들에는 김 추기경이 남긴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글과 김 추기경의 얼굴 사진을 담은 현수막·포스터가 걸렸다. 서울대교구는 이날부터 내달 28일까지를 공식 추모기간으로 정했다.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이날 오후 7시 명동대성당에서 정진석 서울대교구장 추기경과 주교단, 사제단의 공동 집전으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선종 1주기 추모미사'를 봉헌했다.정 추기경은 강론에서 "김 추기경님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을 넘어 그분께서 남기신 사랑과 나눔의 정신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김 추기경님은 삶을 통해 인간에 대한 사랑을 말과 행동으로 온전히 보여주셨다. 그분은 자신의 삶을 완전히 낮추어 다른 모든 이의 밥이 되기를 바라셨다"고 회고했다.또 "김 추기경님은 각계각층 사람들과의 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진정한 대화는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당면한 갈등과 분열을 해결하려면 김 추기경의 삶을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정 추기경의 강론과 영성체에 이어 김 추기경의 생전 활동 모습과 육성, 각계 인사의 회고 등이 담긴 5분 분량의 동영상이 소개됐다.미사 참석자들은 "옹기장이 손에 든 진흙과 같이 내게 있는 모든 것 주님 손에서 빚어지리니"라는 가사의 성가 '옹기장이'를 합창, 옹기장수의 아들로 태어나 옹기장학회도 남긴 김 추기경의 삶을 추억했다.이날 추모미사에는 오스발도 파딜랴 주한 교황대사, 김희중 대주교, 장익·염수정·강우일 주교 등 주교 20명을 비롯한 사제와 수도자, 일반 신자 등 1천300여명이참석했고, 명동대성당 마당과 주변 꼬스트홀에서도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가운데 미사가 진행됐다.후안 레냐 주한 스페인 대사, 요제프 뮐너 주한 오스트리아대사, 마시모 안드레아 레제리 주한 이탈리아 대사 등 주한 외교사절 12명과 고흥길, 강기갑, 나경원, 문희상, 이강래, 박선영, 심대평 의원 등 국회의원, 한승수 전 총리, 전재희 보건복지부장관 등 천주교 신자 정치인과 배우 안성기씨도 참석했다.서울대 교구 이외에 전국 각지에서도 추모행사가 진행됐다.천주교 대구대교구에서는 오전 김 추기경이 사제서품을 받은 계산성당에서 추모미사를 봉헌했고, 안동 교구는 김 추기경 첫 부임지인 목성동성당 대성전에서 오후에 김 추기경 1주기 추모미사를 올렸다.김 추기경이 투병하다 선종한 서울성모병원도 1주기를 맞아 16일 오전 병원 1층성당에서 추모미사를 봉헌했으며, 사진전도 시작했다. 명동성당 들머리에서는 김 추기경 사진을 보여주는 추모 사진전이 열려 행인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서울 절두산 순교성지 내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에서는 김 추기경 유품전이 이날 시작돼 정진석 추기경과 염수정 주교 등이 오전 개막식에 참석했고, 추모미사도 봉헌됐다.정진석 추기경은 유품전 개막식에서 "김 추기경님이 남기신 중요한 교훈은 물질로부터의 자유로운 마음"이라며 "유품도 모두 소박한 것들이며, 혹시라도 값나가는 물건을 선물받게 되면 즉시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셨다"고 회고했다.김 추기경의 묘소인 용인 성직자 묘역에서는 21일 서울대교구의 공식 추모미사가예정된 가운데 이날도 김 추기경의 비서를 지냈던 정민수 신부(도곡동성당) 등 많은천주교 성직자와 신자들이 모여 추모미사를 봉헌했다.

  • 종교
  • 연합
  • 2010.02.17 23:02

"행복한 전북 만드는 데 힘 보탤터"

"하나되어 전북을 바꾸자는 도정의 지표처럼 '행복한 전북'을 만드는데 우리 모두 앞장 섭시다!"지난달 31일 오후 2시 원불교 전북교구에서 원불교 전북교구장·사회복지법인 한울안 이사장에 취임한 왕타원 고원선(63) 교구장이 취임사를 통해 의지를 밝혔다.이날 취임식에는 김완주 도지사 김희수 도의회 의장 박규선 도교육위 의장 교정원 원불교기획실장 배현송 교무를 비롯해 원불교 관계자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올해는 원불교 100년 성업봉찬 불사의 원년을 맞아 '제2의 개교, 새 문명건설을 위하여'라는 비전을 선언했습니다. 교정원이 새로 출범하면서 '100년 성업봉찬으로 결복교운 열어가자'를 교정표어에 맞춘 것입니다."편안한 인상과 선한 미소가 인상적인 고 교구장은 참석한 모두에게 밝은 웃음으로 화답했다.1970(원기55)년 원불교 교무 양성기관인 영산선원에서 첫 근무를 시작한 고원선 교구장은 경남교구 마산교당과 전무출신 훈련기관인 중앙훈련원·정토회의 교무를 거쳤다.이후 서울교구 서울지구장과 중앙총부 교정원 교육부장을 지냈고, 영광교구 교구장과 중앙교구 교구장 및 사회복지법인 중도원 이사장을 역임했다.왕타원이라는 법호를 받고 지난 2000년에는 원불교 최고의결기구인 정수위단원에 피선돼 6년의 임기를 마쳤다.오랜 세월 원불교와 함께한 고 교구장은 믿음이 강한 전북교구를 맡은 데 대해 영광스럽다고 밝혔다."최초의 서원(誓願)을 챙기고자 합니다. 우리의 서원은 나를 완성하고 이웃에게 은혜를 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질의 풍요 속에서도 갈수록 어려워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래의 서원을 챙기는 것도 해결책이 될 것입니다. 또 신심을 키워 마음을 다지고, 원불교 100년 성업을 기쁨과 보람이 넘치는 '억만불공'으로 동참하고자 합니다."고 교구장은 전북에서 지내는 동안 꼭 해야 할, 이뤄내고 싶은 일들을 세세히 읊었다.원불교를 통해 교인들뿐만 아니라 전북 도민 모두의 행복지수가 올라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각오도 전했다.

  • 종교
  • 백세리
  • 2010.02.01 23:02

종교계, 아이티 위로ㆍ모금 발길 이어져

지진으로 막대한 인적ㆍ물적 피해를 본 아이티에 대한 국내 종교계의 위로와 구호기금 모금이 이어지고 있다. 개신교 교단 연합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아이티 지진 이후 첫 일요일인 17일 아이티 지진현장에서 구호하는 선교단체와 봉사단체, 비정부기구(NGO) 등을 격려하면서 회원 교단과 교회들을 향해 "피해자 가족과 이재민을 위해 기도하고 구호와 헌금에 동참해달라"는 당부 메시지를 발표했다. 개신교계의 봉사단체들인 한국교회봉사단과 한국교회희망연대는 지난 15일 '한국교회희망봉사단'(대표회장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 상임단장 이영훈 순복음교회담임목사ㆍ오정현 사랑의교회 담임목사)으로 통합하기로 결의하고, 이달 말까지 100만 달러 모금 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원불교 은혜심기운동본부는 지난 16일 긴급회의를 열어 봉사자 2명을 현지로 급파, 현장 조사활동을 하고 성금과 구호물자 모으기에 나서기로 했다. 또 원불교는 전국 600여개 교당에서 참사 희생자를 위한 위령제도 올리기로 했다. 원불교 김주원 교정원장은 "원불교는 전 교단적인 역량을 모아 이웃 나라의 불행이 빨리 치유될 수 있게 돕겠다"는 위로 메시지를 발표했다. 구세군 대한본영도 전국적으로 2월 말까지 아이티의 이재민과 어린이를 지원하기 위한 긴급 모금활동을 벌여 아이티 구세군을 통해 지원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지난 14일 봉사단체인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통해 긴급 구호자금 5만달러를 아이티에 지원한 데 이어 아이티 돕기 모금 운동에 돌입했다. 대한불교 조계종도 지난 15일 종단 자비나눔 긴급재해구호기금에서 아이티에 5만달러를 지원하기로 했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이달 30일까지 1억원을 모금해 세계교회협의회(WCC)의 긴급지원 국제기구를 통해 지원할 예정이며,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총회는 아이티에 긴급구호금 3만달러를 건네기로 했다.

  • 종교
  • 연합
  • 2010.01.18 23:02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