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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영화감독님의 '세상 이야기'

가족에게 쓰는 영상편지, 초등학생들이 털어놓는 외모콤플렉스, 유독 여성에게 엄격하게 작용하는 사회의 잣대…. 시민감독들이 영상으로 담아낸 목소리는 참으로 다양하다. 미디어 소비자로서가 아니라 생산자로 자리를 옮긴 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서툴지만 세상을 향해 솔직하게 털어놓는다.전주시민미디어센터 영시미(소장 장낙인)가 2005년과 2006년 두 해 동안 진행한 미디어교육 참가자들의 작품을 DVD로 묶었다. 창작물 모음집 ‘피어라 영·시·미!’에는 어린이 청소년 주부 성인 장애우 등 계층에 따라, 또 퍼블릭액세스 독립영화 디지털만화 등의 부문으로 나눠 진행된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제작된 영상물 80여편을 모아냈다. 영시미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됐던 작품들도 함께 수록하는 등 다양한 영상언어를 담아냈다. 주부영상제작교실에 참여했던 수강생들은 30여편의 영상편지를 제작했다. 대부분 가족들에게 보내는 따스한 사랑의 메세지다. 부안에서 진행된 영상소외지역 순회교육을 통해서는 주부영상제작단 ‘줌마’가 탄생하기도 했다. 이들은 환경과 먹거리를 주제로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함께 만들어 봅시다-뽕잎과자 만들기’ ‘땅은 숨쉬고 있다’ ‘조은이의 일기’ ‘똥, 자연으로 돌아가다’가 줌마의 작품들이다. 청소년 지원 프로그램은 매우 활발하게 진행됐다. 이를 통해 제작된 ‘거울아, 거울아(김성은 작)’는 제 26회 동랑청소년종합예술제에서 금상을 수상했으며, ‘비탈을 걷다(최에녹 작)'는 청소년 영상페스티벌 금빛대상을 받기도 했다. 이밖에도 ‘너에게 반짝이는 무언가’ ‘성장통’ 등 청소년들이 제작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가 모음집에 수록됐다. 단편영화 제작지원작은 기성 작품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평을 받는다. ‘진짜 사랑했다’ ‘red’ ‘가슴에 묻은 연인’ ‘계화갯벌 여전사전 Ⅱ’ 등은 디지털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했고, KBS 열린채널을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퍼블릭액세스 강좌를 통한 라디오액세스 프로그램 '오막살이-전북도청부당해고 청소용역노동자 박광순씨 편'과 주부제작단이 만든 '명절표 스트레스로부터 해방을 꿈꾼다!' '중년 여성이 경제활동을 한다는 것', 그리고 '택시 안 1.5평의 서러움-택시노동자 정영만씨 편' '환경농업인 김인택씨 편' 등도 모음집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밖에도 공부방어린이 영상제작교육 중 제작된 영시미뉴스와 방송캠프 수료작, 또 장애우 미디어교육 결과물, 디지털만화강좌 작품 등도 한데 엮였다. 무료로 받아볼 수 있다. 063)282-7942

  • 지역일반
  • 은수정
  • 2007.01.04 23:02

[이치백의 一日五話] 1951년 1·4후퇴로 서울 중공군 손이통일기회 놓쳐

◎ 1월 4일①중공군 침입 1·4후퇴6·25 한국전쟁 때 우리 국군이 북한 전역을 점령하여 남북통일이 달성될 찰라, 1950년 11월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대거 남침했다. 이에 유엔군은 다시 후퇴하여 1951년의 오늘, 서울은 중공군의 손에 들어갔다. 이를 이른바 ‘1·4후퇴’라고 한다. 그후 반격으로 3월 16일 다시 탈환했다. ②치욕의 병자호란 발발우리 역사상 임진왜란과 더불어 치욕의 전란이었던 ‘병자호란’이 일어난 것은 1637년(음 1636.12.9)의 오늘이었다. 조선 16대 인조 때의 이 난리는 청나라의 군신관계를 맺자는 요구를 반대한데서 일어난 것이다. 당시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하고, 마침내는 삼전도에서 항복했다.③조선은행 수송차 습격1920년의 오늘, 당시 한국은행 회령(함북)지점의 현금 수송차가 돌연 습격을 받았다. 이때 탈취당한 현찰은 무려 15만원의 거액이었다. 오늘날의 화폐가치로 보면 수 10억원에 해당된다. 이는 간도 국민회 임국정, 한상호, 윤준희 의사들이 군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것이었다.④그림 형제의 독일어 사전독일의 언어학자이며 아동문학가 그림 형제는 전 16권의 ‘독일어 사전’을 만들었는데 그 첫 교정본이 나온 것이 1852년의 오늘이었다. 이날은 형 야곱의 생일이기도 했다. 이 사전의 전부가 완성된 것은 그들이 세상을 떠난 지 무려 91년 후인 1949년이었다.⑤군벌 등에 공직 추방령1945년 종전 후, 일본에 진주한 맥아더 사령부에서는 과거 군벌 및 그에 동조한 자들을 민주화에 부적절하다고 공식에서 추방령을 내렸다. 당시 추방된 자는 무려 20만 3600명에 달했다. 이중에는 전직 내각총리를 비롯하여 현직 대신(장관)도 포함됐었다.

  • 지역일반
  • 전북일보
  • 2007.01.04 23:02

[딱따구리] '넋나간' 道 새만금 행정

“아는 게 없다”도 새만금 관계자들이 새만금 사업과 관련해 늘 입에 달고 있는 말이다.진짜로 아는 게 없는지, 아니면 숨기는 것인지 이들은 환영받지 못할 태도를 견지해왔다.내부개발 용역이 납품되는 긴장된 순간에도 이 같은 썰렁함은 지속됐다.국토연구원이 최근 새만금 개발안을 정부 부처에 제출했지만 전북도는 이를 알지 못했다. 한 공무원은 “뒤늦게 언론보도를 보고서 알았다”고 실토했다. 그의 말은 차라리 거짓이었어야 했다.아쉽지만, 실제로 도는 새만금 집중개발 확정이란 본보 기사를 본 뒤에야 개발방향을 안 것으로 전해졌다.특히 한 관계자는 “국토연구원이 보내온 용역보고 문서를 스팸메일로 알고 지워버렸다”한다.이 때문에 새만금 개발방향이 확정된 것은 커녕, 국토연구원이 최종안을 정부에 보낸 것 조차 몰랐다는 것.하지만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진실게임을 하기 이전에 반드시 따져봐야할 게 있다.평소에는 새만금을 떠받들지만, 긴장된 순간에는 내려놓는 듯한 도 관계공무원들의 태도를 말이다.도는 항상 새만금이 전북도, 나아가 대한민국의 희망이라고 말해왔지만 실제론 그렇지 못해왔다.당장 새만금 개발방향을 제시해 나갈 내부개발계획안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을 실례로 들 수 있겠다.이번 내부개발용역은 새만금 미래를 결정해 갈 방향타나 다름없다. 그동안 도는 새만금과 관련해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면서, 각종 여론의 뭇매를 맞아온게 사실이다.도는 사업의 빠른 추진을 위해 정부의 내부개발 방향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하지만 새만금사업이 도의 욕심대로 발빠르게 진행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바로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 불신을 자초하는 도의 새만금 행정 때문이다.

  • 지역일반
  • 구대식
  • 2007.01.04 23:02

[발언대] 청백리 명재상 황희선생을 본받자 - 김기곤

청백리 명재상 방촌(蔯村) 황 희(黃喜) 선생은 1363년(공민왕 12년)에 장수에서 탄생했다. 선생은 8세에 목은이색, 야은 길재 두 선생의 문하에서 학문을 연마하여 22세에 진사에 참방하고 1389년 27세에 성균관 학관의 보직을 받았다. 그러나 고려 왕조의 몰락으로 벼슬을 버리고 두문동으로 들어가 선비들과 교유하게 됐다. 무신들로 집권한 이성계는 구세제민의 선정을 베풀 수 없자 두문동에 치국동량을 하산시킬 것을 설유하게 되었는데 이 때 두문동 72현들의 협의로 지목된 대상이 바로 31세의 황희 선생이었다. 두문동의 수절신들을 대표하여 하산한 황 희 선생은 중용의 도를 이도(吏道)에 접목함으로써 정변의 풍파에서 방황하는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고 나라의 화평을 도모했다.그는 1413년(태종 13년) 양영대군의 폐 세자 논의의 반대하여 적장세계를 직간함으로써 태종의 노여움을 사서 장수군 임현내면으로 유배당했다. 이 때 그는 이미 귀양 온 고려 말 명재상 정신재 백장 선생을 만나 교유하면서 그 분의 탁월한 경륜을 익히며 우국충정을 논하기도 했다.그는 1422년(세종 4년) 태종의 유언을 받은 세종의 윤허로 유배에서 풀려나 우의정에 기용됐고 이어 1428년(세종 10년)에는 영의정 되기보다 어렵다는 청백리록에 선록되는 최고의 영광을 얻었으며 1431년(세종 13년)에 영의정에 올라 그의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게 됐다. 그리고 종신토록 국정에 참여하다 1452년(문종 2년)에 90세의 일기로 유명을 달리 했다. 선생은 60여 년간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치면서 정치 행정 교육 문화 국방 세제 역사 등 국가 전반에 걸쳐 제도를 쇄신하여 국기를 다져 세종조에 태평성대를 이루어 놓았다.불의에 추상같은 기상으로 중용의 도를 과감히 실천한 황 희 선생!법통을 쇄신하여 국통을 다진 명재상으로서, 극기복례의 도를 몸소 실천한 검소하고 결백한 청백리로서, 오늘의 탐관오리들에게는 이도의 사표가 되고, 속세의 졸부들에게는 더 없는 각성제가 되어 오늘 우리 앞에 다가 선다./김기곤(전북문화유산해설자)

  • 지역일반
  • 전북일보
  • 2007.01.04 23:02

완주 이서 관상어단지 수출단지로 개발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 일대 관상어단지가 정부의 올해 향토산업 육성 대상사업으로 선정돼 이 일대가 수출 전략사업단지로 개발된다. 완주군은 최근 반교리 관상어단지가 농림부의 향토산업 육성 대상사업으로 선정돼 올해부터 3년간 수출단지 조성을 위한 시설비 10억원을 지원받는다고 3일 밝혔다. 군은 이에 따라 올해부터 관상어를 키워 번식시킬 때 종자로 삼는 종어(種魚) 구입과 축양장 및 관상어 경매장 설치 등 수출전략단지 조성을 위한 기반시설을 확충할 예정이다. 군은 수출단지가 조성되면 이 마을 류병덕(48)씨가 자신의 집 5천여평에 조성한 관광농원 형태의 '물고기 마을'과 연계, 농촌체험 관광코스로 개발할 방침이다. 이 물고기 마을은 물고기 전시 체험장과 물고기 양식장, 대형 인조 물고기와 물레방아, 잔디구장, 수족관, 식당 등을 갖추고 있다. 완주군 관계자는 "관상어 양식이 벼농사에 비해 수익이 5배 이상 많다"며 "이서면 반교리 일대가 관상어 수출전략단지로 조성되면 농가소득 향상은 물론 관광객 유치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 일대에는 현재 주민 20여명이 비단잉어와 금붕어 등 관상어를 양식하고 있는데 이 곳에서 국내 관상어 판매량의 85%를 공급하고 있다.

  • 지역일반
  • 연합
  • 2007.01.03 23:02

[새얼굴]"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행원 첫출발

“인간관계로 통하기 보다는 실력으로 인정을 받고 싶습니다.”지난해말 입행, 설렘과 긴장속에서 정해년 새해를 맞이한 제44기 전북은행 신입행원들이 “실력으로 승부를 내겠다”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김아름(여, 26, 총무팀), 전영신(27,영업팀), 김국헌(28, 전산정보팀), 김성재(25, 전산정보팀).16명의 동기 가운데 전북은행 본점에 배치된 이들 4명은 살아온 환경과 가치관은 다르지만 한결같이 ‘실력에서 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겠다’는 것으로 새해 목표를 설정했다.공개모집이 아닌 각 대학으로부터 선발인원의 3배수 추천을 받아 선발된 신입행원들은 B플러스 이상의 학점에 토익점수가 800점 이상에 달했다.“사회에 첫발을 내디뎌 보니 주위사람들과의 관계도 새롭게 설정·유지해야 하고 실력도 배양하는 등 선택해야 할 것이 많은 것 같다”는 전영신씨는 “팀원들과 화합하면서 조직에서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능력을 키우겠다”며 말했다.전공(컴퓨터공학)을 살려 전산팀에 배치된 김국헌씨는 “일반 시중은행에 비해 뒤지지 않은 전산부를 만들어가는게 꿈”이라며 “전산팀에서 없어서는 안될 인재가 될 것”이라며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은행에서의 기대치도 높아 적잖게 부담이 된다”는 김성재씨는 “개개인의 실력도 중요하고, 팀웍도 중요한 만큼 전문적 기술배양에 힘쓰면서 선배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은행을 선택한 김아름씨는 처음으로 맞이한 직장생활이 즐겁기만 하다.새로운 환경에서 오는 긴장감이 오히려 ‘즐겁다’는 그는 “새내기 금융인으로서의 책임감도 따르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일을 배우는 자체가 재미있다”며 “밤샘을 하면서 일도 하고 싶다”며 의욕을 밝혔다.“사회초년생인 만큼 학교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하나씩 하나씩 현실에 맞춰 나가겠다”며 때묻지 않은 사회 첫출발의 소감을 밝힌 이들은 “조직에 새로운 활력를 불어넣을 수 있는 인재가 되고 싶다”고 재차 강조했다.

  • 지역일반
  • 김준호
  • 2007.01.03 23:02

32년 소신있는 행정...김영국 정읍의사국장 공로연수

빈틈이 없고 소신공무원으로 손꼽히는 정읍시 김영국 의회사무국장이 32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지난 연말 공로연수에 들어갔다. 김 사무국장은 박진상 의장을 비롯한 의원과 동료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송별연을 갖고 석별의 정을 나눌 예정이다. 74년 고창군에서 공직을 처음 시작한 김 국장은 81년에 정주시 총무과로 전입, 청소계장, 새마을계장, 기획계장,시정계장을 역임하다 94년 5급사무관으로 승진해 상평·장명동장을 역임했다.95년 정주시와 정읍군이 통합된 이후 탁월한 행정능력을 인정받아 민방위재난관리과장, 지역경제과장, 사회복지과장, 회계과장,총무과장, 문화관광과장을 거쳐2004년 지방서기관으로 승진했다. 이후 김국장은 문화행정국장을거쳐 의회사무국장에 재임하다 이번에 공로연수에 들어가게 됐다.김국장은 “인생은 순리대로 살아야한다는 생각과 더불어 스스로 얼마나 정도를 걸어왔으며 열심히 일했는지 자문자답하면서 남은 여생을 새옹(塞翁)같이 생각하며 살아가는 방법도 터득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소회를 밝혔다.김국장은 부인 강춘자씨(52세)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노모(82세)를 극진히 모시고 있는 효자로 주위에 칭송이 자자하다. 내무부장관과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 지역일반
  • 손승원
  • 2007.01.0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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