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숙 칼럼] 400년 전의 ‘공길’을 생각하며
얼마 전 한국영화 흥행사상 최고의 관객동원이라는 신기록을 만들어낸 이준익 감독의 영화 ‘왕의 남자’의 원작은 극작가 김태웅의 연극 ‘이’이다. 조선 연산군 시대의 배우였던 공길이 왕 앞에서 늙은 선비놀이를 하며 논어를 외워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며,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면, 비록 곡식이 창고에 가득한들 내 어찌 먹을 수 있겠는가?’ 라고 했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매질당하고 먼 곳으로 유배되었다는 기록이 연극사에 남아 있다. 작가는 이 짧은 역사적 기록에서 시작하여 연극적 상상력을 발휘해 ‘이’라는 흥미로운 작품을 만들어냈고, 이 연극의 영화화는 한국연극사의 한 페이지 속에서 전공자들에게만 알려지던 공길이란 배우의 이름을 400년 후 전 국민에게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했다. 독특한 소재와 탄탄한 구성이 돋보이는 연극 ‘이’는 2 년 전 우리 학과 학생들의 워크셥 공연으로 학교 극장의 무대에 올려졌던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로 만들어진 ‘왕의 남자’는 연극의 큰 골격을 가지고 가면서 연극 무대에서 보여주기 힘든 부분들을 영화적 재미를 주는 여러 장치들을 사용하고 있기에 무척 흥미롭게 보았다. 실제적으로 연산군 시대인 16세기 초 우리에게는 중국의 경극이 아직 소개되지 않았기에 우인이라 불리던 연기자들은 경극에 대해 알지 못했다. 영화 속에서 연산군의 어머니가 억울하게 죽게 되는 장면을 중국 경극으로 비유적으로 연기하는 장면은 극적인 긴장감과 재미를 주지만 연극사적 왜곡이나 오류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영화가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했어도 허구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오류는 너그럽게 눈감아 줄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연극 ‘이’이건 영화 ‘왕의 남자’이건, 이 작품의 큰 매력중의 하나는 천하의 폭군인 왕 앞에서도 바른 소리를 하고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루는 공길의 당당함이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우인이나 광대로 불리던 연기자들이 오랫동안 천민 계급으로 천대 받았던 것은 우리의 역사에서만의 일은 아니었다. 300년 전의 서양에서도 천민 신분이었던 배우들에게는 기독교식의 장례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프랑스 왕의 총애를 받던 배우이자 극작가인 몰리에르가 죽자, 부인이 신부님을 매수하여 한밤중으로 몰래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매스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오늘날 연기자는 선망의 대상이 되는 직업이 된듯하다. 브라운관이나 화면, 무대에서 보이는 화려함만을 쫒아 많은 청소년들이 연예인을 장래 희망으로 꿈꾼다. 고학년이 되면서 세부 전공과 진로가 바뀌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학과의 지원자 중 대다수는 역시 연기자 지망생들이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는 다르게 연기자의 길에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르고 아직도 세상은 자주 연기자들에게 딴따라라는 폄하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단순히 타인의 삶을 반영하고 모방하며, 물질적 성공을 추구하는 딴따라 광대가 아닌 정신적 풍요로움과 예술혼을 지닌 공길 같은 당당한 연기자를 키워내는 것이 나와 동료들에게 주어진 소임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칼럼을 쓰는 동안 정성껏 글을 읽어주시고, 생각을 나눠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유효숙(우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