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미FTA'와 국민건강보험 붕괴 - 이혁재
정부가 시민단체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미간 자유무역협정(FTA)을 서두르고 있는 가운데, 전 경제부총리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는 자유무역협정을 충분한 연구도 없이 전광석화같이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식자들은 말이 없다고 일침을 놓았다.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정부 입장은 한국 경제성장의 촉매제가 되어 일자리 창출과 소득증대를 통해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다는 장미빛 청사진을 주장하고 있고, 시민단체를 비롯한 비판적인 입장에서는 제2의 을사늑약 또는 제2의 IMF라고 경고하고 있어 국민들을 헷갈리게 한다.정부의 최근 행보를 볼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이 정부의 주장처럼 장미빛 청사진이 될 것이란 주장은 미덥지가 않다. 정부는 협상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그 동안 양국간 통상 4대 현안(스크린쿼터, 환경규제, 쇠고기 수입, 의약품 가격결정)을 자발적으로 해결했다고 주장했으나, 미 의회 보고서에는 미국 측의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나타나 협상 초기부터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가하는 의혹을 사고 있으며,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협상의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이는 지적재산권분야의 의약품가격 및 특허기간 보장과 금융분야의 보험규제 완화, 영리병원 허용만 하더라도 국민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보건의료체계에 중대한 변화가 예상된다.제약협회에 따르면 우리 나라 의약품의 가격은 선진 7개국의 약값과 비교할 때 혁신 신약은 76%수준이지만, 혁신 신약을 제외하면 48.4%수준이고, 미국과 비교하면 31%수준에 있다.미국은 자유무역협상에서 혁신적 신약의 지정을 늘리고, 오리지널 약값을 선진국 수준으로 보장할 것과 신약의 특허출원 심사기간 만큼 특허기간 연장을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보건복지부에서 추진 중인 건강보험 약품등재에 포지티브방식 도입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국내 제약사들은 설자리가 없어지고, 국민의 건강은 미국의 식민지화되며 약값은 천정부지로 뛰어 올라 건강보험료의 대폭적인 인상이 불가피해 보인다.보험의 규제완화는 민간의료보험이 포화상태여서 국민건강보험에 위협이 되고 있는데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운 미국의 보험회사까지 민간의료보험을 판매할 경우 민간보험 구매로 수급권이 확보된 계층은 국민건강보험의 추가부담 기피 또는 탈퇴를 요구하게 되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는 공염불에 그칠 것이고, 재정은 악화되어 공보험으로서의 기능을 잃게된다. 부자는 민간의료보험, 가난한 자는 국민건강보험으로 이원화되어 사회양극화는 더욱 벌어지게 될 것이다. 또한 보험시장 개방은 영리병원 도입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공공의료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이 10% 내외이고 건강보험 보장성이 64%수준에서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메이저급 병원을 선두로 경쟁력 있는 병원들은 대부분 영리병원으로 전환하여 건강보험 적용병원에서 이탈할 것으로 예상되어 잘 나가는 영리병원과 그러치 못한 중소병원간의 양극화 현상이 불가피해 보인다.정부에서는 공공부분은 협상이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공공과 민간부분은 불가분의 관계로 구분을 짓는다는 것이 무의미하여 민간부분의 개방은 위와 같이 공공부분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 협정 추진에 있어 연구 결과를 과대 포장하고 있다는 의혹을 사며 서두를 것이 아니라 충분한 연구 검토와 비판적인 의견에 귀 기울려 국민적 합의의 토대 위에서 협상에 임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혁재(전북대 평생교육원 행정팀장)